Wednesday, November 30, 2011

청.매.묵 -에스겔 16:15-34 <배신한 왕후>

청.매.묵 -에스겔 16:15-34 <배신한 왕후>

 하나님이 온 세상에 가장 유명한 사람이 되게 하셨으며, 화려함으로 만들어 입히셨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위치를 깨닫지 못한다면 그 보다 더 어리석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들풀도, 자연도, 자신의 위치를 알고 피어야할 때, 떨어져야 할 때, 숨 죽이며 다음을 기약해야 할 때를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리석은 인간들은 자신의 화려함에 취해서 그것이 어디로부터 온 것인지 기억하지 못한다.

 이러한 사람들은, 자신이 가진 귀한 달란트를 자신만을 위해서 쓴 사람들이다.
 자신에 맡기신 화려한 아름다움과 부귀한 것이 어디서 온 것인지 잊어버리고 산다.

 하나님이 주신 귀한 것들 자신을 위해 쓴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15절 "너는 네 아름다움을 믿고, 네 명성을 사용하여"
16절 "네 아름다운 옷드을 가져다가"
17절 "너는 내가 네게 준 금과 은으로 만든 보석을 가지고"
18절 "내가 네게 주었던 화려한 옷들을 그 우상에 입혔고"
19절 "너는 또 내가 네게 준"
20절 "너는 또 너와 나 사이에 태어난 자녀들을"
-> 하나님이 주신 것을 감사할 뿐 아니라 바르게 사용해야 합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이 주신 축복을 우상숭배에 사용하였고, 우상들에게 재물로 바쳤습니다.

22절 "네가 벌거벗은 채 피투성이인 몸으로 버둥거리던 때를 기억하지 않았다"
28절 "하지만 너는 여전히 만족하지 않았다"
30절 "네 마음의 의지가 참으로 약하기 그지없구나"
-> 많은 것을 가진 것이 오히려 하나님을 떠나게 하는 도구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를 경계하시고 축복을 우리에게 주시지 않습니다. 내가 아직 재물을 이길 힘이 없다면, 큰 재능을 이길 힘이 없다면, 훈련이 필요합니다. 훈련받고 그 어떠한 것보다 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을 때까지 기다리십니다. 그리고 때가 되었다 싶을 때 은혜를 주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옛날을 기억해야 합니다. 내가 적신으로 왔으며, 이 모든 것을 하나님이 주셨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교만하지 않기를 기도합니다. 교만은 쉽게 우리를 넘어뜨립니다. 쉽게 우리에게 찾아옵니다. 때로는 내가 교만한 상태인지도 인지할 수 없을 무감각한 상태에 빠질 수 있습니다.

34절 "돈을 받기는 커녕, 오히려 돈을 주어가며"
 -> 인간의 악함이 어디까지가야 끝이 나는가? 자기 돈을 쓰면서까지 나쁜 짓을 하고 있다.
 늘 깨어 자신의 삶을 돌아보지 않으면 안됩니다. 말씀으로 날마다 자신을 비추지 않으면 안됩니다. 깨어 기도하여 하나님께 길을 묻지 않으면 안됩니다.
 돈을 돈데로 쓰고, 시간은 시간데로 낭비하고, 몸은 몸데로 망치고, 하나님과 더욱 더 멀리 떠날 수 있는 것이 우리네 인간입니다. 내 자신을 날마다 정확히 볼 수 있기를 사모하자.!

Tuesday, November 29, 2011

한 날 묵상 - 창 3:1-21- <하나님의 음성은 들렸지만, 아담과 하와의 마음은 떠나 버렸습니다>

한 날 묵상 - 창 3:1-21- <하나님의 음성은 들렸지만, 아담과 하와의 마음은 떠나 버렸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죄를 범한 후에 이 땅에 있는 그들의 모습에서 생각해 볼 것이 있다.
하나님과 관계에서 인간이 보이는 반응은 마음의 온전한 상태에서 벗어나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들은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라고 말합니다.
여전히 하나님의 음성은 들리지만, 그들의 마음이 온전한 상태에서 파괴되어서 상해있습니다.
마음이 회복이 되어야 온전한 하나님과 관계를 다시금 회복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가르치시고, 전파하시고, 고치셨습니다.
마태복음 4장 23절 "예수께서 온 갈릴리에 두루 다니사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백성 중의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
 예수님의 고치심은 육신의 병이 낫는것에 목적이 있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고치심은 마음의 고치심입니다. 마음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회복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사역에서 이러한 모습은 두드러지게 나타납니다. 병의 고침에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회복시키시는 것에 초점이 있으십니다. 마음이 회복되어야 가르침을 받고 복음을 받아들이는데 유익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육신의 고통을 당하는 사람들을 볼 때 안타까움과 그들을 향한 연민의 마음이 있었습니다.


오늘날 이 땅에 다시 예수님이 오신다면, 아니 지금도 예수님의 고치심의 사역은 계속되고 있는 예수님은 무엇을 고치시기 원하실까? 생각해 봅니다. 
 무엇보다 먼저 마음의 병이 가장 큰 이슈라고 생각합니다. 그 당시에 마음에 병은 있었습니다. 그래서 귀신들린 사람들에게서 귀신을 좇아내고 병을 고치셨습니다.
 요즘은 더욱 더 문화적으로 마음의 병을 가진 사람들이 많습니다. 아니 조금이라도 모든 사람들이 마음의 병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마음의 병이 우울증을 만드고, 자살을 하게 하고, 마약을 하게 하며, 집단적 행동을 하게 합니다. 
 마음이 온전히 회복되어 하나님의 형상을 다시금 회복하게 된다며, 우리는 마음의 병에서 떠날 수 있습니다. 

 외롭죠?
 자신감 없죠?
 자존감도 없죠?
 자신의 무능력함을 보죠?

무엇으로 회복할 수 있을까요?
도피, 중독(게임, 마약, 술), 세상과의 삶의 단절, 외로움, 절망감...
이 모든 것은 다 마음의 병입니다.


오직 예수님의 만날 때 가능합니다.
아니 예수님이 지금도 나와 함께 있다고 느낄 때 회복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들렸지만, 아담과 하와의 마음이 죄로 인해 떠나버렸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마음을 고치시기 원합니다. 우리는 마음의 병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내어 드립시다. 마음의 병을 주님께.




1-7절 뱀과 여자와의 대화, 그리고 범죄
  
8절 "그들이 그 날 바람이 불 때  동산에 거니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아담과 그의 아내가 여호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은지라"


9절 "네가 어디 있느냐"

10절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

11-14절 죄의 전가
15-21절 하나님의 심판과 가죽옷(수치를 덮으시는 하나님의 보살핌)


Monday, November 28, 2011

청.매.묵 -에스겔 16:1-14 <버려진 여인이 왕후가 되다>

청.매.묵 -에스겔 16:1-14 <버려진 여인이 왕후가 되다>

14절 "너무 아름다워 온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사람이 되었은, 이는 내가 너를 화려하게 만들었으므로 네 아름다움이 완전해진 것이다"
 우리의 적신을 다 알게 계시는 하나님
 고아 같은 우리를 버려두시지 않으시는 하나님
 우리의 부르짖음을 들으시는 하나님
 우리를 벌거벗은 몸을 가려주시고, 꾸미시고, 아름답게 하시 왕비처럼 되게 하신 하나님.

오늘도 하나님의 그 사랑과 그 감격을 기억하며 살아가기 원합니다.



2절 "그들이 저지른 악한 일들을 알리라"
3절 "네가 태어난 날을 기억하라"
5절 "너는 들판에 버려진 아기였다"

6절 "그 때에 내가 네 곁을 지나가게 되었다"
       '너는 살아야 돼! 반드시 살아나야 해!'라고 소리질렀다.

7절 "내가 너를 밭의 식물처럼 키웠더니 너는 잘 자라나 아름다운 보석처럼 되었다"

8절 "내가 내 옷을 벗어 네 벌거벗은 몸을 가려 주었고, 너에게 엄숙히 맹세하고 너와 언약을 맺어서 너는 내 것이 되었다"
9-13절 너를 꾸미고, 가꾸니 점점 아름다워지면서 왕비처럼 되었다.

14절 "너무 아름다워 온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사람이 되었으니, 이는 내가 너를 화려하게 만들었으므로 네 아름다움이 완전해진 것이다"

Sunday, November 27, 2011

한 날 묵상 - 창 27:1-4- <떠나야 하고, 떠나 보내야 하는 부모와 자식 사이에 할 수 있는 최고의 축복은 무엇인가?>

한 날 묵상 - 창 27:1-4- <떠나야 하고, 떠나 보내야 하는 부모와 자식 사이에 할 수 있는 최고의 축복은 무엇인가?>


1절 "이삭이 나이 많아 눈이 어두워 잘 보지 못하더니"
    -> 이삭의 삶이 어떠 했는지, 이 말씀에서 알 수 있다. 눈이 어두워져 있는 만큼이나, 그의 인생도 희미한 상황에서 시작했다. 그리고 꺼져가는 생명의 때도 있었다. 아내를 맞이할 때에도 뚜렷히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선하게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경험할 수 있다. 자녀들이 태어날 때에도 쉽지 않았을 뿐 아니라, 태어날 때에도 형제가 순서가 뒤바뀌는 운명으로 태어났다. 자녀들이 자라면서도 그 둘 사이에 늘 긴장감이 있었다. 서로 하나되지 못하는 형제에서 이삭의 마음이 얼마나 눈이 어두워져 잘 보이지 않는 것처럼 희미한 인생을 살았는지 충분히 알 수 있다.
 그리고 마지막 임종의 순간에도 그의 눈은 어두워 잘 보이지 않았다. 이 또한 또 한번의 누간가의 손길이 필요하다.
 바로 하나님이시다. 그의 인생은 희미했지만, 뒤돌아 본 그의 삶은 뚜렸하다. 왜? 하나님이 손길이 늘 함께 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그의 인생을 이끄시고 인도하셨기 때문이다.

 파란 만장한 삶을 살아오다, 이 마지막 순간에 이르러 그는 무엇을 준비하고 있는가?

    4절 "내가 즐기는 별미를 만들어 내게로 가져와서 먹게 하여 내가 죽기 전에 내 마음껏 네게 축복하게 하라"
   -> 아비는 자식에서 마음 껏 축복을 해야 한다. 어떤 축복의 말씀을 하는가? 27-29절에서 분명하게 나온다. 하나님의 주시는 축복을 말한다. 하나님의 어떠한 축복을 주실 것인지 말씀하신다. 하나님과 함께 함이 형통이 함임을 선포하고 있다.
   -> 자녀는 아비에게 자신이 할 수 있는 최고으 진미를 만들어 드려야 한다(2-4절). 에서가 할 수있는 최선의 준비를 드려서 아비를 공꿰하는 모습을 보게 한다.
   -> 최선과 최선이 만나 최고의 분으로 이름으로 축복할 때 그 인생은 축복의 길, 형통함의 인생, 그 분의 함께 하심을 맛보는 인생을 살 수 밖에 없다.
      하나님이 인생의 주인이시기 때문입니다.

Friday, November 25, 2011

청.매.묵 -에스겔 15:1-8 <열매를 맺지 못하면?>

청.매.묵 -에스겔 15:1-8 <열매를 맺지 못하면?>

앙상한 가지 - 정훈

오늘
마지막 남은 나무잎이 떨어졌습니다
이제 앙상한 가지만
남아 있습니다.

오늘
앙상한 가지를 보니
더 이상
이 나무에게서
소망을 발견할 수 없어 보입니다.

오늘
소망을 발견할 수 없는
앙상한 가지에서
한 걸음 물러나
나무를 보았습니다.

오늘
나무를 보니
희망을 보았습니다.
나무에 붙은 가지이기에
이게 끝이 아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내일
앙상한 가지에서
다시금 화려한 옷들이
피어 오를 것입니다.

가지는 나무에 붙어 있어야 합니다.
가지는 도구일 뿐입니다.
앙상한 가지는
오늘이 아니라 내일을 바라봐야 합니다.



요한복음 15장 6절 "사람이 내안에 거하지 아나하면 가지처럼 밖에 버리워 말라지나니 사람들이 이것을 
  모아다가 불에 던져 사르느니라"


 하나님안에 거하지 아니하는 것은 포도나무가 열매를 맺지 못하는 것과 같습니다. 포도나무가 열매를 맺지 못하면 땔감으로 사용되고 그 땅의 모든 나무는 베어져 땅은 들판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기에 하나님 말씀안에 거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포도나무요, 우리는 가지입니다. 말씀으로 맺어진 하나님과 우리입니다. 

2절 "사람아, 포도나무가 다른 나무보다 더 쓸모가 있느냐?"
3절 "포도나무로 무엇을 만들겠느냐?"

4절 "포도나무는 땔감밖에 달리 사용할 곳이 없다"

5절 "곧게 자란 포도나무로도 만들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는데 하물며 불에 타 버린 포도나뭇가지로 무엇을 할 수 있겠느냐?"

6절 "내가 수풀 가운데서 포도나무를 베어 땔감으로 불어 던져 넣었듯이 예루살렘에 사는 백성들도 그렇게 만들 것이다"

7절 "내가 그들을 여지없이 치겠다"
  8절 "내가 그 땅을 거친 들판으로 만들 것이니 이는 그 백성이 내게 신실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요한복음 15장 1-17절
1,내가 참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그 농부라
2,무릇 내게 있어 과실을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이를 제해 버리시고 무릇 과실을
  맺는 가지는 더 과실을 맺게 하려 하여 이를 깨끗케 하시느니라
3,너희는 내가 일러준 말로 이미 깨끗하였으니
4,내 안에 가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절로
  과실을 맺을 수 없음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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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겨울입니다. 아직 떨어지지 않는 낙엽도 있고, 다 떨어져 버려 앙상한 가지만 남아있는 나무도 있습니다. 이 겨울이 지나면 또 봄이 오고 나무에서 잎이 나오고 꽆이 피겠지요.
 이러한 아름다음을 준비하기 위해서는 이 겨울 나무에 가지가 잘 어 있어야 합니다. 앙상한 가지일지라도 붙어야 있어야 내년 봄을 기대할 수 있습니다.

 내가 지금 앙상항 가지일지라도 좋습니다. 포도나무 되신 예수님께 붙어있으면 겨울이 지나가면 아름다운 낙엽과 열매와 꽃을 피게 되어 있습니다.
 봄이 오면 잎이 나오고 꽃이 피고 열매를 맺는 것이 하나님의 창조하신 피조물의 질서라면, 사람이 포도나무된 예수님께 붙어 있으면 열매를 맺는 것, 역시 창조의 질서입니다.

 열매를 맺지 못하면 땔감으로 사용되고, 그 땅은 들판이 된다고 에스겔은 경고하고 있습니다. 말씀만이, 하나님 안에 거하는 것만이 포도나무에서 가지로 공급되는 수액입니다.

 오늘 한 날도 아름다움 기다리며 나무에 말씀의 수액을 공급받아 앙상할지라도  나무에 붙어 있는 가지가 되어 살아가는 한 날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Thursday, November 24, 2011

한 날 묵상 - 창 26:12-35 <여호와를 의뢰하여 선을 행하라.. 땅에 거하며 그의 성실로 식물을 삼을지어다>

한 날 묵상 - 창 26:12-35 <여호와를 의뢰하여 선을 행하라.. 땅에 거하며 그의 성실로 식물을 삼을지어다> 시편 33편
 13절 "그 사람이 창대하고 왕성하여"음에도 불구하고 이삭은 온유함으로 인내하였습니다. 그리고 여호와를 신뢰하였습니다. 결국 아비멜렉이 찾아와 "여호와꼐서 너와 함께 계심을 우리가 분명히 보았으므로"라고 고백합니다. 그랄지역에서 이삭이 우물 사건에 앞에 보인 믿음의 모습입니다.


12절 "이삭이 그 땅에서 농사하여 그 해에 백배나 얻었고 여호와께서 복을 주시므로"
 -> 이삭의 수익이 전해에 백배인지?, 아니면 다른 사람들보다 백배인지? 알 수는 없지만, 중요한 사실은 백배의 소득이다. 여호와께서 복을 주시지 않으면 형통할 수 없다. 여호와께서 특별한 은혜를 주시지 않으면 일상의 소득은 얻을 수 없다.
   땅은 정직하다. 노력한 만큼 얻게 되어 있다. 그러나 그게 전부가 아니다. 소출을 얻기 위해서 필요한 수많은 것들이 있다. 늦은비, 이른비, 일조량 등이 그렇다.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이 복 주셔야 한다.

13절 "그 사람이 창대하고 왕성하여 마침내 거부가 되어"
  -> 하나님의 이삭을 살피심.

그렇다면,  "여호와께서 이삭에게 나타나 가라사대 애굽으로 내려가지 말고 내가 네게 지시하는 땅에 거하라" 

 하나님이 지시한 땅은 어디인가????

 WBC 창세기 하, p356
"내가 지시하는 땅에 거하라" 그 땅은 가나안인가? 아니며 그랄인가? 대다수의 주석가들은 3절에서 명확히 드러나는 것처럼 그랄을 의미한다고 추정한다. 그러나 니콜은 2절과 3절 사이에 대조적인 면이 있다고 주장한다. 
2절의 '거하다'는 "브엘세바의 땅에서 영구적으로 사는 것"을 의미하며, 그것은 가나안 안에 있지만, 3절은 "그랄에 일시적인 이주민으로서 정착하다"로 이해한다. 


14-22절 "블레셋 사람이 그를 시기하여" - 왜 다툼이 계속 일어났는가?
  15절 아브라함 때의 모든 우물을 막고 흙으로 메웠더라.
  16절 아비멜렉이 이삭에게 이르되 네가 우리보다 크게 강성한즉 우리를 떠나가라
  17절 이삭이 그랄 골짜기에 장막을 치고 우거하며
  18-19절 "이삭의 종들이 골짜기에 파서 샘 근원 얻었더니"
  20절 "그랄 목자들이 이삭의 목자들과 다투어"
  21절 또 다른 우물. 다툼
  22절 또 다른 우물. 다투지 아니하였으므로. 르호봇. "이제는 여호와께서 우리의 장소를 넓게 하셨으니 이 땅에서 우리가 번성하리로다 하였더라"
 -> 강성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싸우지 않고 자리를 스스로 피하는 이삭.

26-33절 아비멜렉의 약조
 28절 "그들이 가로되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씸을 우리가 분명히 보았으므로 우리의 사이 곧 우리와 너의 사이에 맹세를 세워 너와 계약을 맺으리라 말하였노라"

34-35절 에서는 이삭과 리브가의 마음의 금심이 됨.
 34절 "에서가 사십세에 헷 족속... 아내로 취였더니"

*충분히 상대방에게 대응할 수 있는 힘이 있을지라도, 선을 행하며, 함께 거하며 성실함을 그들에게 보여주어야 합니다. 
이삭은 "그 사람이 창대하고 왕성하여"음에도 불구하고 온유함으로 인내하였습니다. 그리고 여호와를 신뢰하였습니다. 결국 아비멜렉이 찾아와 "여호와꼐서 너와 함께 계심을 우리가 분명히 보았으므로"라고 고백합니다. 그랄지역에서 다툼이 일어날 때, 이삭이 우물 사건에서 보인 믿음입니다.

오늘 하루 억울한 일을 만나며, 한 줌도 안되는 상대를 만나더라도 교만하지 말고 선을 행하고 함께 거하며, 성실함으로 다가가기 원합니다. 
한 날 이러한 날을 기대하며 소원합니다. 
* 26장이 다루고 있는 주제들은 이후와 마찬가지로 아브라함 생애의 초기 주제들과 유사하다.
25:19-34의 내용의 순서가 11:27-12:9과 유사하다.
26장과 12:10-14:19 내용이 유사다.

* 시편 33편
"여호와를 의뢰하여 선을 행하라.
땅에 거하며 그의 성실로 식물을 삼을지어다...
그러나 오직 온유한 자는 땅을 자치히며,
풍부한 화평으로 즐기리로다..
의인의 구원은 여호와께 있으니:
그는 환난 때에 저희 산성이시로다.
여호와께서 저희를 도와 건지시되:
악인에게서 건져 구원하심은,
그를 의지한 연고로다."


Wednesday, November 23, 2011

청.매.묵 -에스겔 14:12-23 <이유 있는 심판>

청.매.묵 -에스겔 14:12-23 <이유 있는 심판>

 하나님의 심판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 오랫동안 경고하시고 난 다음에 심판을 하십니다. 몇 번이고 심판에 대한 경고를 하셨습니다.
 -  자기 의로움으로 자기의 목숨만을 건질 수 있습니다. 자녀도 다른 어느 누구도 심판을 피할 수 없습니다.
 - 우리는 심판을 피한 사람들을 통해서 위로를 받아야 합니다. 그들의 행동과 행위를 보고 알아야 할 내용이 있습니다.


13절 "어떤 나라가 내게 신실하지 않음으로 죄를 지었다고 하자"
         "그러면 내가 손을 뻗쳐 그들의 양식을 끊어 버리고 그 땅에 기근을 보내어 사람들과 짐승들을 모두 멸망시키겠다"

14절 "비록 그 나라에 노아와 다니엘과 욥과 같은 위대한 사람이 있다 하더라도 그들은 자기들의 의로움으로 자기 목숨만 건질 수 있을 뿐이다"

16절 "노아와 다니엘과 욥이 그 땅에 있다 하더라고 그들은 자기 자기 자녀들도 구하지 못할 것이다"
18절도 반복된 말씀. "자기 자신들만 구원받을 것이다"
20절도 반복된 말씀. "자기 자녀들도 구출하지 못할 것이다"
              "그들은 자기 의로움으로 오직 자기 목숨만을 구해 낼 것이다"

22절 "그 가운데서 살아남는 자녀들이 있을 것인데, 그들은 예루살렘 성에서 끌려 나와 너희에게로 올 것이다. 너희는 그들의 행동과 행위를 보고 내가 예루살렘 성에 내린 재앙에 대해 위로를 받을 것이다"

23절 "너희는 그들의 행동과 행위를 보고 위로를 받을 것이다"
        "너희는 내가 예루살렘에 한 모든 일에 다 이유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다."

Tuesday, November 22, 2011

Think Orange - 가정의 본질 - 신명기 6장 4-9 <모세가 말한 민족을 살리고, 가정을 살리고, 자녀를 살리는 가정교육>

Think Orange p54-80.
- 가정의 본질 - 신명기 6장 4-9 <모세가 말한 민족을 살리고, 가정을 살리고, 자녀를 살리는 가정교육>

결말을 상상하라. 
 - 그것은 그분의 성품과 연관된 무한한 하나님의 사랑이다.

마음을 얻기 위해 싸우라.
 - 그것은 마음을 다해 신뢰하게 만드는 강권적인 사랑이다.

몸소 보여주라.
 - 그것은 우리가 몸소 보여주는 전염되는 사랑이다.

리듬을 창조하라. 
 - 그것은 가족 생활의 리듬 속에서 발전된 일상의 사랑이다.

테두리를 넓히라.
 - 그것은 더 넓은 테두리 안에서 우리와 다른 사람들을 일어주는 진정한 사랑이다.

모든 가정의 중심에는 한 세대를 완전하고 사랑이 충만하신 하나님의 마음으로 인도하라는 기본적인 소명이 있다.

"이스라엘아 들으라"
 -> 가정에게만 아니라. 통합된 공동체에게 주시는 말씀. 통합적 교육이 필요..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이시니"
-> 교육의 기본.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를 이끄신다. 결국 하나님의 사랑안에 거할 수 밖에 없다.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 신뢰의 문제이다.

"오늘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 몸소 실천하라.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을 갈 때에든지 누워 있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너는 또 그것을 네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으며 네 미간에 붙여 표로 삼고 또 네 문설주와 바깥 문에 기록할지니라"

-
성경에서 신명기 6장만큼 가정의 역할을 분명하게 정의한 구절은 없다. 모세는 할아버지자 리더로서 전 민족 앞에 서서 가정을 하나님의 구속과 회복의 이야기를 들려줄 가장 중요한 통로로 자리매김한다. 이 중요한 과도기에 모세는 시간과 문화를 초월해야 하는 가치들을 강조한다. 나는 그가 리더와 부모들에게 다음과 같은 도전을 던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큰 그림에 계속 초점을 맞추기 위해 결말을 상상하라.
하나님을 사랑함으로써 가족의 마음을 지키기 위해 투쟁하라.
삶 속에서 하나님이 부모들에게 행하시는 것을 보게 하라.
리듬을 만들어 가족이 함께하는 시간 속에서 일상의 신앙을 양육하라.
테투리를 넓혀 아이들이 그들을 인도하는 부가적인 영향을 받게 하라.


Monday, November 21, 2011

한 날 묵상 - 창 26:1-11 <하나님이 지시한 땅으로 가야 안전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뿌리를 두고 사는 삶을 살 때 때론 잘못을 해도, 그건 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왜요? 말씀에 근거한 인생이기 때문입니다. >

한 날 묵상 - 창 26:1-11
      <하나님이 지시한 땅으로 가야 안전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뿌리를 두고 사는 삶을 살 때 때론 우리가 실수의 잘못을 해도, 그건 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왜요? 말씀에 근거한 인생이기 때문입니다. >

약속의 말씀과 이삭이 거주한 그랄은 어떤 관계?
그랄 땅은 하나님이 지시한 땅(2, 6절)인가?

                                         (나의 고향 교회, 100년이 넘은 교회. 진목교회)                                  

1절 "아브라함에 때에 첫 흉년이 들었더니"
       "이삭이 그랄로 가서 블레셋 왕 아비멜렉에게 이르렀더니"
     -> 가서는 안된 곳. 블레셋 땅.

2절 "여호와께서 이삭에게 나타나 이르시되 애굽으로 내려가지 말고 내가 지시하는 땅에 거주하라"
3절 "이 땅에 거류하면 .. 복을 주고 .. 내가 이 모든 땅을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라"
       "네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맹세한 것을 이루라"
4-5절 아브라함에 주신 말씀을 다시금 말씀하심.

6절 "이삭이 그랄에 거주하였더니"

7-11절 이삭이 그의 아내를 누이라고 아비멜렉에게 말함.
  8절 "이삭이 거기 오래 거주하였더니"
  거짓은 오래가지 않습니다. 진실은 드러나게 되어 있습니다.
  거짓이 탈로난 상황에서, 이삭이 어려움을 처할 수 있는 상황에서, 어떻게 안전할 수 있는가?
 그곳은 하나님이 지시한 땅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말씀에 서 있을 때 우리가 때로는 어떤 부분에 대해서 잘못을 할지라도 하나님은 약속의 말씀을 기억하시고,  하나님은 그 상황을 정리해 가십니다.
  그랄은 하나님이 지시한 땅이었다. 그곳에 거하여야 안전합니다.

 하나님의 방법을 우리가 헤아릴 수 없습니다. 약속의 말씀은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우리의 이성을 뛰어넘는 방법으로 하나님은 역사를 이루어 가십니다.

*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할지라도 하나님의 사랑은 멈추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하나님의 언약안에 있는 백성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이기 때문에 하나님 품에 거하십시오.

청.매.묵 -에스겔 14:1-12 <양다리 걸치는 이스라엘>

청.매.묵 -에스겔 14:1-20 <양다리 걸치는 이스라엘>

1절 "몇몇 이스라엘 장로들이 내 앞에 나아와 앉았다"
  2절 "이 사람들은 마음속에 우상을 만들고, ... 이런 사람들이 내게 찾아온다고 내가 만나 줄 수 있겠느냐?"
  -> 마음은 우상으로 가득하고, 하나님을 찾으면 만나 주시겠느냐?
      마음은 딴데 가 있고, 몸만 형식적으로 오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마음도 와야 하는데, 몸만 오는 사람들.
      지도자들 뿐만 아니라 백성들도 그렇다.

     이들을 향해 하시는 말씀
6절 "회개하여라. 우상 섬기는 일에서 돌아서라. 내가 미워하는 모든 일을 멀리하여라"
  -> 인생들이 해야 할 세 가지. 회개. 돌아서라.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일을 멀리하라.


7절 "이스라엘 백성이나 이스라엘에 사는 외국인 가운데서 나를 저버리고 그 마음에 우상 섬기기를 좋아하며 ... 내 뜻을 물으려고 예언자를 찾아가면"
    "나 여호와가 몸소 대답해 주겠다"
   8절 "내가 그를 내 백성 가운데서 없애 버릴 것이다"


11절 "그 때에"
  "이스라엘 백성이 다시는 나를 저버리지 않을 것이며, 다시는 온갖 죄로 자기 몸을 더럽히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내 백성이 되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될 것이다"
  -> 하나님이 원하시는 뜻을 알라.
  심판이 왜 있는지? 그렇다면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하나님이 백성이 되라. 잘못에서 회개하라. 돌아서라.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일을 멀리하라.

 마음은 우상에 가 있고, 몸만 와서 형식적인 예배를 드리는 삶을 멀리하자.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지 않고, 종교행위로 예배 드리러 오는 삶에서 회개하자.
 그러한 삶에서 돌아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뜻이 무엇인지 알고 그 뜻대로 행하자.
 하나님은 마음의 중심을 보십니다.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예배하자.
 예배 후 교회 문을 나간 후, 다시 예배의 자리에 앉는 시간까지 삶에서 예배하자. 하나님을 노래하자.


Saturday, November 19, 2011

청.매.묵 -에스겔 13:17-23 <자기 마음대로 예언하는 여자들>

청.매.묵 -에스겔 13:17-23 <자기 마음대로 예언하는 여자들>

 17절 "자기 마음대로 예언하는 여자들을 바라보고"

 18절 "팔목에 부적을 메다는 여자들과 길고 작은 온갖 너울을 만들어 사람들을 덫에 빠뜨리는 자들에게"
 => 부적을 가지고 다니는 사람들. 부적을 통해 백성들을 미혹시키는 여자 예언자들.
  "부적" "너울"은 악령을 쫓아내거나 질병을 치료하기 위해 몸의 여러 부분에 매듭이나 끈을 착용했던 바빌로니아의 주술적 의식을 따른 것으로 보인다(매일묵상 참고).
 => 일부 여자성도들과 비슷하다. 교회에 출석하면서 점보러 다니는 사람들이 많다. 부적을 가지고 다니는 사람들이 많다.
  거짓 예언자는 반드시 심판을 받을 것이다. 나아가 미혹된 사람들도 주술적 행위로 인해 심판을 받게 된다(레위기 19:26).

 20절 "부적들을 내가 너희 팔목에서 뗴어 버리겠다"

 22절 "의로운 사람의 마음을 슬프게 한 것은 내가 아니었다. 거짓말로써 의로운 사람의 마음을 근심하게 한 사람은 너희다"

Friday, November 18, 2011

한 날 묵상 - 창 25:22- 34 <에서와 야곱, 그들은 무엇이 달랐는가? 하나님이 주신 명분을 가볍게 여김>

한 날 묵상 - 창 25:22-34 <에서와 야곱, 그들은 무엇이 달랐는가? 하나님이 주신 명분을 가볍게 여김>
 => 하나님이 주신 말씀을 가볍게 여기고 있지는 않은가?
 목사님을 통해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얼마나 귀하게 여기는가?
 말씀을 묵상을 통해, 아니면 여러 상황을 통해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 하나님의 이끄심을 얼마나 마음에 판에 세기는가?
 오늘 한 날 스스로에게 질문해 본다.
  나는 얼마나 말씀을 귀하게 다루는가? 마음판에 새겼는가? 행실로 옮겼는가?


하나님의 주신 언약의 말씀을 품고 있는가?
말씀을 얼마나 마음속에 품고 행함으로 실천하고 있는가?


에서와 야곱의 출생부터 성장하여 장성할 때까지 둘을 비교하는 말씀이다.

22-23절 여호와의 선택. 참고 신약
 23절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
 [롬 9:10-13] "......리브가가 우리 조상 이삭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잉태하였는데 그 자식들이 아직 나지도 아니하고 무슨 선이나 악을 행하지 아니할 때에 택하심을 따라 세우신 하나님의 뜻이...... 리브가에게 이르시되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 하셨나니 기록된바 내가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하였다 하심과 같으니라" 
 - 악이나 선이 있기전에 하나님은 선택하셨다. 하나님의 계획하심이 있었다. 로마서에서 이방인을 향한 구원을 말씀하시면서 에서와 야곱의 선택에 대한 예를 들으심.

24-26절 에서와 야곱의 출생
 25절 "먼저 나온 자는 붉고 찬즉 전신이 털옷 같아서 이름을 에서라 하였고"
 26절 "후에 나온 아우는 손으로 에서의 발꿈치를 잡았으므로 그 이름을 약보이라 하였으며"

27-28절 에서와 야곱의 성장
 27절 에서 -> 익숙한 사냥꾼. 들사람
 28절 야곱 -> 조용한 사람. 장막에 거주

29-34절 에서와 야곱의 장성, 그리고 장자권
 29절 에서 "심히 피곤하니"
 30절 "그 붉은 것을 내가 먹게 하라"
 31절 야곱 "장자의 명분을 오늘 내게 팔라"
 32절 "내가 죽게 되었으니 이 장자의 명분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리요"
 33절 "장자의 명분을 야곱에게 판지라"
 34절 "에서가 장자의 명분을 가볍게 여김이었더라"

[히12:16-17] "음행하는 자와 혹 한 그릇 식물을 위하여 장자의 명분을 판 에서와 같이 망령된 자가 있을까 두려워하라. 너희의 아는 바와 같이 저가 그 후에 축복을 기업으로 받으려고 눈물을 흘리며 구하되 버린바가 되어 회개할 기회를 얻지 못하였느니라." 

청.매.묵 -에스겔 13:1-16 <사이비 예언자>

청.매.묵 -에스겔 13:1-16 <사이비 예언자>

2절 "거짓 예언하고 있는 이스라엘의 예언자들을 향해 말하여라"
       "자기 마음대로 예언하는 자들에게 말하여라"
3절 "아무것도 본 것이 없이 자기 마음대로 예언하는 어리석은 예언자들에게 재앙이 내릴 것이다"

7절 "너희는 나의 이름을 빌어 거짓 환상과 속이는 예언을 하지만, 나는 그렇게 예언하라고 말한 적이 없다"
9절 "그들의 이름은 내 백성의 명단에 적혀 있지 안을 것이며, 이스라엘 백성의 호적에도 기록되지 않을 것이다"


10절 "그들이 벌을 받게 되는 것은 내 백성을 잘못된 길로 인도하고, 평화가 없는데도 평화가 있다는 것처럼 말했기 때문이다"


 말씀이 바로 서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임재가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관계가 바르게 서 있어야 합니다.
 본문에서 계속해서 이야기하는 말씀은 하나님의 임재없이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자는 사이비 예언자가 된다는 내용입니다.
 날마다 스스로에게 매일 묻기를 원한다.
  "나는 하나님의 임재안에 있는가?"
  "나는 말씀을 선포하기 이전에 먼저, 하나님의 관계에 집중하고 있는가?"

 하나님의 임재 없이 선포된 말씀은 거짓된 것이며 속이는 것을 전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임재가 없기 때문에 자기의 이기심과 개인적 욕심을 위해 말씀을 이용하고 있다. 거짓된 상황을 이야기하고 있다.
 하나님의 임재 없는 삶을 살지 않기를 기도한다.
 하나님의 임재 없는 말씀 선포를 하지 않기를 기도한다.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는 일에 우선을 두는 삶을 살기를 기도한다.

오늘 한 날도 이러한 기도가 있기를 원한다.

Thursday, November 17, 2011

청.매.묵 -에스겔 12:17-28 <반드시 이루어질 말씀>

청.매.묵 -에스겔 12:17-28 <반드시 이루어질 말씀>


 17-20절 이스라엘 민족의 극심한 불안과 폐허의 땅
      19절 "그들이 걱정와 두려움에 사로잡혀 빵과 물을 먹고 마실 것이다."
      20절 "모든 사람들이 저지른 악한 행위들 때문에 그들의 땅이 폐허가 될 것이다"
   20절 "그 때에 너희는 내가 여호와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21-28절 이스라엘의 속담과 반드시 이루어질 말씀
  21절 이스라엘 땅에서 사용되고 있는 속담, 곧 "세월은 흐르지만 환상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23절 이러한 속담이 다시는 인용되지 않는다.
  25절 "내가 말하려고 하는 것은 지체없이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다"
  27절 "사람아, 이스라엘 백성이 말하기를 '에스겔이 본 환상은 먼 훗날에 이루어질 일들이다. 그는 아득히 먼 훗날의 일을 예언하고 있다'라고 한다"


 28절 "나의 말은 하나라도 더 이상 미뤄지지 않을 것이다. 내가 한 말은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다"

1. 죄악은 반드시 심판하신다. 사람의 심판이 목적이 아니라, 죄악을 심판하는 것이 목적이다.
 그렇기에 하나님은 계속해서 "그 때에 너희는 내가 여호와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는 말슴을 반복하고 계신다.
 죄악을 벗어버리지 아니하면 죄악 때문에 심판을 받게 된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면서 하나님을 알지 못한 죄에 대한 심판을 받는다.
 죄악의 심판은 반드시 이루어진다.

 "깨어 있으라"
마가복음 13:33 "너희는 언제 그 일이 일어날지 모르니 항상 조심하고깨어 있으라."


2. 예수님의 재림을 없다고 말하거나, 먼 훗날에 올 것이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
 믿음의 사람들 중에서도 '지금이 좋사오니, 나중에, 좀 더 있다, 내가 충분히 누린 다음에 오십시오'라고 말하는 사람이 많다.
   27절 "사람아, 이스라엘 백성이 말하기를 '에스겔이 본 환상은 먼 훗날에 이루어질 일들이다. 그는 아득히 먼 훗날의 일을 예언하고 있다'라고 한다"
 예수님은 이 땅에 다시 오신다. 구원자로 오셔서 하늘로 구원의 길을 열어주시고 가신 주님께서 심판의 주로 다시 이 땅에 오심은 반드시 이루어진다. 


 우리는 늘 종말론적 신앙에서 살아가야 한다.
 종말론적 신앙이 주는 유익은 무엇인가?
 - 죄악을 벗어 버리는 삶을 산다. 
 - 이 땅에 소망을 두지 않는다. 
 - 자신의 욕심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위해 살아간다. 


 우리는 늘 '마라나타, 주 예수 어서 옵소서'라고 소망하며 살아가야 한다. 
 고린도전서 16:2절 

 반드시 그 날을 올 것입니다. 오늘이 그 날이기를 기대하며 깨어 살아가는가?





소향 마라나타



마라나타 주 예수여 어서 오시옵소서
땅의 모든 끝 모든 족속 주를 찬송하게 하소서
마라나타 주 예수여 어서 오시옵소서
모든 열방이 주께 돌아와 춤추며 경배하게 하소서

우리 주님 다시 오실 길을 만들자
십자가를 들고 땅 끝까지 우린 가리라
우리 주님 하늘 영광 온 땅 덮을 때
우린 땅 끝에서 주를 맞으리

마라나타 마라나타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마라나타 마라나타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마라나타 주 예수여 어서 오시옵소서
땅의 모든 끝 모든 족속 주를 찬송하게 하소서
마라나타 주 예수여 어서 오시옵소서
모든 열방이 주께 돌아와 춤추며 경배하게 하소서

우리 주님 다시 오실 길을 만들자
십자가를 들고 땅 끝까지 우린 가리라

우리 주님 하늘 영광 온 땅 덮을 때
우린 땅 끝에서 주를 맞으리

마라나타 마라나타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마라나타 마라나타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우리 주님 다시 오실 길을 만들자
십자가를 들고 땅 끝까지 우린 가리라
우리 주님 하늘 영광 온 땅 덮을 때
우린 땅 끝에서 주를 맞으리

마라나타 마라나타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마라나타 마라나타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출처] 소향 - 마라나타|작성자 샬롬



Wednesday, November 16, 2011

한 날 묵상 - 창 25:1- 21 <아브라함의 많은 후예들 중에서 약속의 말씀을 이을 자는 이삭이었습니다. 이삭은 다른 형제들과 무엇이 달랐는가?>

한 날 묵상 - 창 25:1- 21  

    <아브라함의 많은 후예들 중에서 약속의 말씀을 이을 자는 이삭이었습니다. 이삭은 다른 형제들과 무엇이 달랐는가?>


 수 많은 아브라함의 자손들 중에서도 하나님의 특별히 택하시고 구별하시고 약속을 이루어가시는 자손이 있다. 믿음의 사람이다. 기도하는 사람이다.
 1-21절까지 아브라함의 후손들을 기록하면서 기도로 하나님께 나아간 자손은 오직 이삭 한 사람임을 분명하게 말하고 있다.
 창세기 15장 4절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후사가 되리라 하시고"

 왜 아브라함의 후손들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기록하고 있는가?
 왜 21절에서 이삭의 기도와 응답에 대해서 기록하고 있는가?

 아브라함에 몸에서 난 자라고 다 약속의 말씀을 이을 후사가 아닙니다. 오늘 본문에서 아브라함의 후예들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단 한 사람입니다. 그 한 사람만 선택받았습니다.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직접 체험하며 하나님께 자신의 약함을 놓고 기도함으로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난 자가 후사입니다.
 이삭은 그 시간을 지나고 있습니다(21절). "잉태하지 못하므로" "간구하매" "간구를 들으셨으므로" "잉태하였더니"
 이 고난의 터널을 하나님과 함께 지난 자가 이삭입니다. 하나님은 그를 택하시고 약속의 말씀을 이을 후사로 세우셨습니다.

1-6절 아브라함의 후처와 자손들. 그두라를 아내로 맞은 아브라함. 
  6절 "자기 서자들에게도 재물을 주어 자기 생전에 그들로 자기 아들 이삭을 떠나 동방 곧 동국으로 가게 하였더라"
-> 아브라함의 교통정리. 약속의 말씀을 이을 자 누구인가?

7절 "아브라함의 향년이 일백칠십 오세라"
8절 "그 수가 높고 나이 많아 기운이 진하여 자기 열조에게로 돌아가매"

11절 "아브라함이 죽은 후에 하나님이 그 아들 이삭에게 복을 주셨고"
 -> 아브라함의 자손이 계속해서 복을 받습니다. 아브라함의 순종이 자손에게 복이 됩니다.

12-18절 이스마엘의 후손

19절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의 후예는 이러하니라"
  21절 "이삭이 그 아내가 잉태하지 못하므로 그를 위하여 여호와께 간구하매 여호와께서 그 간구를 들어셨으므로 그 아내 리브가가 잉태하였더니"
  -> 약속의 말씀은 어떻게 이어져 가는가? 하나님의 섭리와 이끄심으로 하나님의 약속은 성취되어 간다.

  기도는 약속의 말씀이 이어가도록 이끄는 끈이다. 기도의 응답은 하나님이 우리를 파트너로 부르시고 함께 약속의 말씀을 성취해 가시는 하나님의 방법이시다.

 나에게 주신 하나님의 약속은 무엇인가?
 그리고, 그를 위해 왜 기도하지 않는가?
 그러면서, 왜 하나님께 반문하는가? 왜 약속은 주셨지요? 왜 그 약속을 성취하시지 않으신가요?
 
 기도하라! 기도하라! 기도하라!
 일을 이루시는 여호와 하나님을 보라! 일을 성취하시는 하나님을 보라!

  

존 뉴턴 - 나 같은 죄인 살리신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존 뉴턴(John Newton, 1725년 7월 24일 - 1807년 12월 21일)

영국의 성공회 신부이자, 찬송가 작가이다. 노예선 선장이었던 그는 1748년 복음주의 설교자의 설교를 듣고 회심하였으며, 1755년 성공회에서 사제서품을 받았다. 그가 지은 대표적인 찬송가로는 '나 같은 죄인 살리신'(Amazing Grace, 1779년작)이 있다.

기자: 안녕하세요 존 뉴턴 선생님, 갓피아 지식의 거장입니다. 만나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존 뉴턴: 네, 반갑습니다. 이것 참, 살다 보니 제가 지식의 거장에서 인터뷰하는 날이 오기도 하네요(웃음). 부족해도 잘 부탁 드립니다.

Q1. 목사님은 굉장히 특이한 이력을 가지고 계시다고 들었어요.
A1. 허허. 아마 제가 뱃사람이었던 시절을 말씀하시는군요. 그렇습니다, 38살의 나이에 영국 국교회에서 인정하는 성직자, 그러니까 목사가 되기 전까지 저는 배를 타는 선원과 배를 운영하는 선장을 지냈지요.
존경 받는 선장이셨던 아버지의 뒤를 이어 말단 선원부터 선장이 되기까지, 저는 20년 가까이 배를 타던, 천상 뱃사람이었습니다. 사실, 배를 타는 것 외에는 다른 일을 생각해 본 것이 없어요. 집을 비우는 시간이 많고, 가족에게 무뚝뚝한 아버지였지만 저는 아버지를 존경했거든요. 그것이 아마도 ‘나중에 크면 아버지처럼 훌륭한 선장이 되어야지’ 라는 결심으로 이어진 것 같아요.
비록 배를 타는 일은, 그리고 배를 운영하는 일은 고되고 힘들었지만 저는 제가 뱃사람이라는 사실에 항상 자부심을 느끼며 살아왔습니다.

Q2. 배를 타면서 신앙을 갖기는 쉽지 않은데요, 그럼 목사님은 모태신앙?
A2. 모태신앙이라기보단 제가 일곱 살 무렵에 돌아가신 저희 어머니가 저를 교회에 데리고 나가셨죠.
어머니는 매우 아름다운 분이셨어요. 또한 교회를 사랑하고, 예수님을 사랑하는 아주 모범적인 신앙 생활을 하셨습니다. 그분은 제가 이담에 크면 훌륭한 목사가 되어 영혼을 구하는 일을 하게 해달라고 어린 저의 손을 잡고 기도하곤 하셨어요.
그러나 그런 어머니가 너무나 급작스럽게 돌아가시자 저는 교회에서 점점 멀어지고, 본격적으로 배를 타던 청년기부터는 방탕하고 거친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말이죠, 어쩌면 사랑하는 어머니를 그렇게 빨리 데려가신 하나님께 화가 났던 것 같기도 하군요.

Q3. 그렇다면 본격적으로 신앙을 갖게 되신 계기는 어떤 것인가요?
A3. 저의 신앙과 바다는 매우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것부터 말씀 드리고 싶군요. 저는 반평생을 배를 타고 바다에 있었습니다.
그리고 앞서 말씀 드렸다시피 어렸을 적에는 어머니의 보호 아래에서 화목한 분위기의 교회를 다녔지만 세상에 나오고, 특히 거친 바다에 나오니 신앙에서 멀어지는 것이 매우 쉽더군요. 그러나 부끄럽게도 저는 멀어지는 신앙을 붙잡으려 애쓰긴커녕, 그 와중에 하나님을 믿고 신실하게 살려고 노력하는 동료 선원들을 조롱하고 괴롭히는데 앞장섰습니다. 이것은 제 가슴에 평생 지워지지 않을 상처로 남았지요. 그러나 저는 유년기에 만난 하나님이 끊임없이 붙잡으시는 것을 느꼈습니다.
몇 번이나 죽을 고비에서 저를 기적적으로 살려주시고, 선장의 오해로 일등 항해사에서 최초의 백인 노예로 흑인 주인의 아래에서 학대 받을 때도 하나님은 저를 구하셨죠. 간혹 환상을 통해 나타나기도 하셨는데 그 당시만해도 건방졌던 저는 그 환상을 몇 번이나 무시했습니다.
그랬던 제가 조금씩 하나님께로 돌아오기 시작한 것은 바다 생활을 뒤로 하고 배의 세관원으로 일하기 시작할 때였습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제가 말을 타고 가다가 얕은 웅덩이에 빠져서 아무렇지도 않게 걸어 나와 옷을 말렸는데 알고 보니 제가 빠진 곳이 웅덩이가 아니라, 한 번 빠지면 나올 수 없는 늪지대였다는 것을 안 이후입니다.
저는 그 동안 배를 타며 수 없이 많은, 기적이라고 할 수 밖에 없는 목숨을 구했고, 제가 타야 했던 보트에 다른 사람이 타고 가다가 그 보트가 갑자기 침몰되어 전원이 익사하는 모습을 눈앞에서 보기도 했습니다. 그런 기적을 눈앞에 두고도 깨닫지 못하다가 그 날, 그 늪에 빠졌다가 나온 이후로 제 삶의 하나님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확신했죠. ‘하나님은 아직 나를 버리지 않으셨다’ 라는 것을요.

Q4. 배를 오랫동안 타시면서 여러 가지 일이 많았을 텐데요, 가장 기억에 남는 사건은 어떤 것이 있나요?
A4. 배를 탄다는 것은 끝없이 펼쳐진 바다에 대한 인내와, 그리고 언제 닥칠지 모르는 자연재해를 각오해야 하는 긴장과, 해도해도 끝없는 뱃일에 따르는 고난의 연속입니다. 육지에서는 쉽게 고칠 수 있는 열병도 배에서 걸리면 낫지 못하고 죽음으로 가는 경우도 허다합니다. 제대로 된 의약품은 물론이고 흔들리고 악취 나는 배에서 휴식을 취하는 것이 불가능하거든요.
저는 배를 타며 세 번이나 열병에 걸렸고, 기적적으로 일어났습니다. 제가 건강해서가 아니라 정말 하나님이 베푸신 은혜였죠. 그러나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제가 최초의 백인 노예가 되었던 일입니다.
당시 제가 타던 배의 선장이 갑자기 죽고 저와 사이가 좋지 않았던 친구가 선장 대행직을 맡게 되었을 때, 젊고 치기 어렸던 저는 함께 화합하여 배에 남아있을 생각을 하지 못하고 저와 친분이 있었던 배의 공동 소유주인 클로우 씨와 함께 배를 떠나는 쪽을 택했죠.
클로우 씨의 집은 편안했지만 그의 아프리카 계 흑인 아내가 저를 매우 싫어했습니다. 아마도 아이를 낳지 못한 그녀 입장에서는 나이로 보면 아들뻘인 제가 클로우 씨의 재산을 상속 받기라도 할까 봐 그랬던 것 같습니다만....아무튼 여러 가지 이유로 클로우 씨가 나가자마자 저는 그 집에서 모함을 받고 노예와 함께 살다가, 나중에는 노예들도 쓰지 않는 창고에서 나무토막을 베고 자게 되었죠. 저는 그런 생활이 그닥 오래 가지 않을 것이라 예상하고 런던으로 편지를 보내어 도움을 청했지만 저의 노예 생활은 생각보다 길어졌습니다. 게다가 평생 해본 적 없는 강도 높은 노역 때문에 병까지 걸렸죠. 저는 노년이 된 지금도 여기저기가 아픈데, 아마 그 때 얻은 병이 아닐까 싶습니다.
결국 1년 반 만에 저는 백인 노예를 수상히 여긴 바깥 상인들 덕분에 노예 신세에서 탈출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때 겪은 노예들의 삶과 강도 높은 노역은 평생 잊혀지지 않았습니다.

Q5. 언제 목사(성직자)가 되어야겠다고 결심하셨나요?
A5. 제가 서른 살이 되던 해에 리버풀에서 세관원 일을 하고 있을 때, 조지 휘트필드 목사의 설교를 우연히 듣게 되었습니다.
그의 설교는 이제까지 제가 교회에서 듣던 판에 박힌 설교와는 다른 설교로, 제 마음을 단박에 울렸습니다.
그 동안 제가 갖고 있던 신앙에 대한 의문들을 완전히 해소시켜주는, 참으로 가슴 시원하고도 먹먹한 설교였죠. 4주 동안 그의 설교 천막을 따라다니면서 감명을 받은 저는 온 리버풀 사람들에게 휘트필드 목사의 설교를 알리고, 영혼의 중요성을 알리기 위해 ‘종교 단체 소고’라는 작은 책을 냈어요.
그 외에도 몇 권의 책을 더 냈는데 이로 인해 영국 비국교회에서 제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한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 후, 몇몇 사람으로부터 목사가 되어 보라는 권유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때만해도 ‘나 같은 죄인이?’ 라는 생각 때문에 깊이 생각해보진 않았지만, 이듬해 생일에 저는 하나님이 저를 향해 계획하신 길이 성직자라는 확신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 성직자는 귀족 계급이었고, 신학을 공부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교황의 승인이 번번히 무시되었지만, 각고의 노력과 하나님의 적절하신 개입 끝에 4년 만에 저는 영국 국교회에서 인정하는 사제의 서품을 받는데 성공했고, 교회에서 설교를 할 수 있게 되었죠.

Q6. 선생님의 삶에서 가장 영향력을 끼친 사람을 꼽자면 누구를 꼽으실 건가요?
A6. 첫째로, 저의 첫사랑이자 가장 든든한 지원군인 저의 아내, 폴리입니다. 열 일곱 살에 첫눈에 반한 이후로 스물 다섯 살에 결혼해 38년의 결혼 생활을 하는 동안, 폴리는 길면 몇 년씩이나 떨어져 있어야 하는 뱃사람의 아내로써, 그리고 제가 성직자가 된 이후부터는 저의 사역을 뒤에서 묵묵히 돕는 동역자로써의 역할을 그 어떤 불평도 하지 않고 맡았습니다. 1790년 12월 15일을 마지막으로 폴리가 제 곁을 떠났을 때 가장 먼저 든 생각도 ‘폴리 없이 내가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 였어요.
두 번째로는 제가 언제나 마음의 십자가처럼 기억하고 있는 나의 친구, 조브 루이스입니다.
조브는 제가 한창 하나님을 조롱하고 다니던 청년기의 중반, 서더랜드 호에 함께 승선하고 있었던 훌륭한 뱃사람이었습니다. 누구에게나 친절하고, 공평하고 다정하게 대했던, 흔치 않은 청년이었지요. 노예에게도 그는 공평한 친절을 베풀었습니다. 그는 어떤 일이 일어나도 감사를 잊지 않고 언제나 평안한 모습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당시 저는 하나님을 떠나는데 급급했고, 무엇보다도 그렇게 ‘선량한 척’하는 작자들을 놀리고 조롱하는데 혈안이 되어있었습니다. 조브는 처음에는 저의 상스러운 신성모독을 들은 척도 안 하거나, 조용히 웃음으로 무마시켰지만 점차 그의 표정이 어두워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10년쯤 지난 후, 영국 해군 상선에서 저희가 우연히 조우했을 때 저는 하나님께로 완전히 돌아온 후였지만 조브는…그 선량하고 신실하던 조브는 그 옛날 저의 모습이 되어, 그 때 제가 한 것보다 더한 신성 모독과 죄악을 즐기는 술고래가 되어있었습니다. 하나님을 떠난 것은 물론이고 악마를 찬양하는 말도 서슴없이 내뱉었습니다.
저는 그가 잃은 신앙에 전적으로 책임을 느꼈습니다. 그러나 그가 금새 하나님께로 회심할 것을 믿고 그를 전도하기 시작했지만, 그에게는 저의 말이 들어가지 않았습니다….그렇기도 하겠죠. 자신의 신앙을 조롱하고, 결국엔 저버리게 만든 사람이 회심했답시고 전하는 복음이 우습기도 했을겁니다…..가여운 조브. 그는 결국 비참한 죽음을 맞았습니다. 옆에서 그의 죽음을 지켜본 사람들이 전하는 말에 따르면 그는 자신을 데리러 악마가 오고 있다며 고통에 찬 비명을 지르다가 죽었다고 하더군요. 사람들은 그의 죽음이 저 때문이 아니라고 하지만, 기자님, 그가 그렇게 고통스러운 죽음을 맞이한 것에 어떻게 저의 책임이 조금도 없을 수가 있겠습니까?
한낱 치기 어린 장난에 불과했던 악의에 찬 욕설이, 한 사람의 영혼을 그토록 타락시킬 줄은 그때는 몰랐습니다. 영혼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도 그 때는 몰랐죠.
조브의 죽음은 제게 지워지지 않는 상처로 남았고, 그 지워지지 않는 기억을 품고, 저는 복음을 전도하기 시작했습니다.

Q7. 너무나 마음 아픈 이야기에요. 그러나 목사님의 설교는 청중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설교로 유명해요. 목사님이 지으신 ‘나 같은 죄인 살리신(Amazing grace)’ 이라는 찬송시는 근래에 없는 훌륭한 작품으로 칭송 받고 있구요.
A7. 그게 어떻게 제가 한 일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겸손하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기자님. 저는 오래된 뱃사람이라는 핑계로, 거친 바다에서 살고 있다는 핑계로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으시는 온갖 일을 다 하고 살았습니다.
상스러운 신성 모독과 알코올 중독은 물론, 사랑하는 폴리를 두고도 아프리카 어딘가에서는 흑인 노예를 아내로 맞은 적도 있어요. 조브의 일은 드러난 일면일 뿐입니다. 제가 타락시킨 영혼이, 혹은 상처 입힌 영혼이 어쩌면 조브보다 많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평생 안고 살았습니다.
어쩌면 그랬기에 더욱 간절하게 주님께 매달렸는지도 모릅니다. 더욱 간절한 마음으로 복음을 전했구요. 물론 영혼은 저의 소관이 아닌 하나님의 손에 있는 것이지만, 남의 죄로 인해 멀쩡한 영혼도 영향을 받을 수 있는 것이 연약한 인간임을 조브를 통하여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배를 타던 선원 출신 목사라서 유명해진 것일까요?
그럴 수도 있겠습니다만, 만일에 저의 이름이 영국에 조금이라도 알려졌다면, 그것은 하나님이 영혼을 구할 기회를 조금이라도 더 주신 것이라 믿고 필사적으로 매달렸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말씀하신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이라는 찬송시는, 말 그대로 저 같은 죄인을 살리신 주님의 은혜에 감격해서 나온 것입니다.
저는, 진실로, 뼛속까지 주님을 떠난 죄인이었습니다….그런 저를 용서해주시고, 숱한 어려움에서 구해내시고, 다시 받아주기까지 하신 주님의 은혜가 얼마나 크게 느껴지는지, 아마도 결코 갚을 길이 없을 겁니다. 그 빚을 마음에 안고 살아가는 참회가, 저의 설교를 듣는 청중들에게 조금이나마 전해진 것이기만을 바랄 뿐입니다.

기자: 가슴이 먹먹해지는 존 뉴턴 목사님과의 인터뷰였습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영혼을 사랑하고, 노년에는 노예제도 폐지를 위한 운동에 여생을 바치신 뉴턴 목사님의 결코 순탄치 않았던 삶을 들을 기회를 갖게 되어 감사한 마음입니다.

참고도서;
‘나 같은 죄인 살리신’의 작시자 존 뉴턴/ 캐서린 스위프트 지음, 김은홍 옮김/ 기독 신문사

야고보서의 믿음과 행함, 어떻게 봐야 하나?


야고보서의 믿음과 행함(약 2:1, 14-17), 어떻게 봐야 하나?

현재 한국교회에서 논란이 되는 이슈가 무엇인가 생각해 보았습니다그 중의 하나가 믿음과 행함의 관계가 아니겠는가 생각되었습니다이 주제와 관련해서는 예수님의 산상설교가 많이 논의되지만야고보서 2장도 빼놓을 수 없는 본문입니다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는 야고보서 2장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야고보는 믿음과 행함에 대해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가에 대해 핵심만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야고보서 2장은 ‘행함에 대해 강조하고 있다고 합니다물론 이것은 맞습니다야고보는 성도의 실생활에 대해 많이 강조하고 있습니다그러나 야고보는 믿음과 분리된 행함믿음과 관계없는 행함을 강조하는 것이 아닙니다오히려 참 믿음은 행함으로 나타난다는 것을 말합니다그래서 야고보의 관심은 참된 믿음이란 무엇인가참 믿음은 어떤 것인가하는 것에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우리는 이것을 어디서 알 수 있을까요간단하게 네 가지로 살펴보겠습니다.

믿음을 외모로 취함으로 갖는 문제
1절은 “내 형제들아 영광의 주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너희가 받았으니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말라고 말합니다(개역한글판). 개역개정판도 비슷합니다. “내 형제들아 영광의 주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너희가 가졌으니 사람을 차별하여 대하지 말라.” 그러나 이런 번역은 오해를 초래하기 쉽습니다너희는 이미 믿음을 가지고 있으니 이제부터는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말라”, 이제부터는 ‘행함에 대해 말한다는 인상을 줍니다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야고보서 2장은 ‘행함에 대해 말한다고 봅니다.
그러나 원문을 직역하면 “내 형제들아너희는 영광의 주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외모로 취함으로 가지지 말라.”가 됩니다여기서 ‘믿음이 목적어입니다야고보는 여기서 우리가 ‘믿음을 어떻게 가져야 하는가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우리는 영광의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외모로 취함으로 가지지 말라는 것입니다차별함으로 가지지 말라고 합니다.
그래서 남아공화국의 L. 플로어(Floor) 교수가 1-13절을 ‘외모로 취함이 없는 믿음’, 14-26절을 ‘행함이 있는 믿음으로 본 것은 매우 적절한 것으로 생각됩니다영어로 표현하자면, 1-13절은 “faith without ...”, 14-26절은 “faith with ...”가 됩니다.
따라서 야고보서 2장은 “참 믿음이 무엇인가?”, “영광의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은 어떤 것인가?”에 대해 말하는 것입니다첫째는외모로 취함이 없는 믿음 곧 차별함이 없는 믿음입니다가난한 자라고 무시하거나 멸시하는 것이 없어야 한다는 말입니다둘째는행함이 있는 믿음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행함으로 나타나는 믿음이어야 합니다.

믿음과 행함말함과 행함의 대비
많은 사람들은 야고보서 2장의 말씀을 ‘믿음 ‘행함의 대비라고 생각합니다. 14절의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이익이 있으리요?”라는 말씀에 대해, ‘믿음 ‘행함이 대비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믿음만 있으면 안 되고 ‘행함이 있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믿음> + <행함>이 야고보가 말하는 주제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본문을 자세히 읽어 보면 그게 아닙니다믿음이 있노라 하고(levgh/, 말하고행함이 없으면 아무 유익이 없다는 것입니다따라서 이것은 믿음이 있노라고 ‘말함과 실제로 ‘행함’ 사이의 대비입니다말하는 것은 거짓될 수 있고 속일 수 있습니다말뿐인 믿음,거짓된 믿음죽은 믿음은 아무 소용이 없고 유익이 없다는 것입니다.
16절 끝에 “평안히 가라 더웁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 하며(ei[ph/, 말하며그 몸에 쓸 것을 주지 아니하면 무슨 이익이 있으리요?”에서도 ‘말함 ‘의 대비입니다 ‘말뿐인 믿음과 실제로 ‘행함이 있는 믿음’ 사이의 대비인 것입니다.
17절에 보면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고 합니다여기서그 자체가’(kaq! eJauthvn) ‘자기 안에서’(in itself), ‘스스로’, ‘원래부터란 의미입니다.그리고 ‘죽은 것’(nekrav)은 형용사로서 죽은 상태(dead)에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중간에 죽은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계속 죽은 상태에 있다는 말입니다.
처음에 믿음이 있었는데나중에 행함이 없어서 죽은 것이 아닙니다행함이 보태지지 않아서첨가되지 않아서 죽은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죽은 상태에 있었다는 것입니다곧 원래부터 참 믿음이 없었다는 뜻입니다따라서 그것은 거짓 믿음이요 헛된 믿음이며 말뿐인 믿음이었습니다.
26절에도 같은 내용이 나옵니다.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처럼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 여기서 ‘죽은 것’(nekrav)도 형용사로서 계속 죽은 상태에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영혼 없는 몸은 처음부터 죽은 상태에 있었던 것처럼곧 한 번도 산 적이 없었던 것처럼행함이 없는 믿음은 처음부터 죽은 믿음이었다는 것입니다한 번도 산 적이 없었다한 번도 참 믿음인 적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야고보서 2장이 말하는 것은 ‘믿음 ‘행함을 플러스 하라는 것이 아니라 ‘참 믿음을 가지라는 것입니다그리고 참 믿음은 행함으로 나타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로마서는 이신칭의야고보서는 이행칭의(?)
21절에 보면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그 아들 이삭을 제단에 드릴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고 합니다여기서 “행함으로 의롭다 함 받았다고 하니 참 당혹스럽습니다어찌 이런 말을 한단 말인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왜냐하면 사도 바울은 믿음으로 의롭다 함 받는다고 누누이 말하기 때문입니다왜 서로 다르게 말하느냐 하는 의문이 생깁니다그래서 루터는 야고보서를 안 좋게 보았습니다야고보서를 ‘지푸라기 서신으로 불렀습니다.
그러나 바울과 야고보의 주장이 다른 것이 아닙니다바울은 ‘이신칭의를 주장하고야고보는 ‘이행칭의를 주장하는 것이 아닙니다이렇게 서로 주장이 다른 것은 아닙니다바울과 야고보는 각기 사용하는 용어의 개념이 다릅니다이 사실을 바로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단어는 같지만 그 의미가 다릅니다.
우선, ‘의롭다 함 받는다’(dikaiovomai)는 용어의 개념이 서로 다릅니다바울은 이 용어를죄인이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고 인정받는다’, ‘죄 용서 받고 하나님과 화목하게 된다는 의미로 사용합니다법정적 용어입니다이에 반해 야고보는 하나님을 믿고 있는 사람,곧 의롭다 함 받은 사람이 그의 믿음이 하나님에 의해 인정받는다분명히 드러난다는 의미로 사용합니다. 22절 끝에 “믿음이 온전케 된다고 했는데이것을 야고보는 ‘의롭다 함 받는다는 의미로 사용합니다.
둘째로, ‘행함’ 또는 ‘행위’(e[rga)의 개념도 다릅니다바울은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 함 받으려는 노력공로라는 의미로 ‘행위를 사용합니다그래서 부정적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이에 반해 야고보는 믿음의 열매로 나타나는 행함이라는 의미로 사용합니다이 행함은 믿음이 있다는 것을 증거하는 것이며믿음의 열매가 드러나는 것으로서의 행함입니다그래서 긍정적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이처럼 각자가 사용하는 단어의 의미가 다릅니다그런데 이런 의미상의 차이를 무시하고단어가 같다고 의미도 같은 것으로 보면 큰일 납니다예를 들어집에서 아기가 ‘마마라고 하면 어머니(mother)란 뜻입니다그러나 궁중에서 임금을 보고 ‘마마라고 하고,중전과 왕자를 보고 ‘마마라고 부르면 다른 뜻입니다왕족이나 궁중 사람을 높여 부르는 말입니다또 의사가 어떤 사람을 보고 ‘마마’ 걸렸다고 한다면그것은 ‘천연두란 뜻입니다.
이처럼 같은 단어라 하더라도 뜻이 전혀 다릅니다그런데 이런 의미상의 차이를 고려하지 않고 ‘마마라는 단어가 나타나면 무조건 ‘어머니란 뜻이라고 보면 안 됩니다전혀 맞지 않습니다예를 들어어떤 역사학자가 조선실록을 보고서 조선시대에는 대신들이 임금을 보고 ‘어머니라고 불렀다고 주장한다면그것은 얼토당토않은 말이며 그런 사람은 학자도 아닙니다.
그런데 지금 한국에서는 그런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야고보가 여기서 “행함으로 의롭다 함 받는다고 말했기 때문에우리가 ‘행함으로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옳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우리는 사도 바울이 사용하는 용어들과 야고보가 사용하는 용어들의 의미상의 차이를 고려해야지그렇지 않으면 대단히 위험합니다큰일 납니다.
우리는 야고보의 가르침을 오해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야고보는 바울과 다른 것을 가르친 것이 아닙니다갈라디아서 2장에 보면바울은 예루살렘에서 야고보와 교제의 악수를 하였다고 합니다사도들이 전하는 복음에 아무런 차이가 없었다는 것을 확인한 것입니다.
야고보는 바울에게 단지 가난한 자들 생각하는 것을 부탁했습니다가난한 자 구제에 힘을 써 달라고 부탁했습니다바울은 이에 대해 “이것을 나도 본래 힘써 행하노라고 말합니다바울은 구제에 열심이었습니다바울은 가는 곳마다 복음을 전할 뿐만 아니라또한 구제 헌금을 모아서 예루살렘의 가난한 자들 돕는 일을 힘썼습니다.

참 믿음은 행함이 있는 믿음
우리 한국교회는 믿음으로 의롭다 함 받는다 하는 이신칭의 교리를 바로 이해하고 굳게 붙들고 힘 있게 전해야 하겠습니다그리고 또한 구제에 힘쓰는 교회가 되어야 하겠습니다가난한 자들과 서민들을 돕는 일에 힘쓰는 교회가 되어야 하겠습니다이것은 곧 야고보가 강조했던 것이고또한 바울이 힘써 행했던 것입니다이렇게 하는 것이 곧 참 믿음을 드러내는 것입니다이것이 곧 행함이 있는 믿음이며 참 믿음입니다.
여러분은 미래의 한국교회를 짊어지고 나갈 교회 지도자들입니다여러분이 담당할 한국교회는 바울이 힘써 행했고 야고보가 강조하였던 바대로 가난한 자들을 돌아보고사회적 약자들과 소외된 자들을 사랑하고 돌아보는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그렇게 할 때,우리 한국교회는 다시금 세상의 빛이 되고 소금이 되어서 우리 사회를 환하게 밝히는 등불이 될 줄로 믿습니다이런 희망과 꿈을 가지고 힘써 기도하고 열심히 공부하고 준비하는 여러분들이 다 되시기 바랍니다아멘.

-변종길 교수(고려신학대학원 신약학), 2011 11 10일 고려신학대학원 경건회 설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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