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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nday, August 5, 2013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들을 사랑하는 법(갈등 해결 방법) - 국제제자훈련원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들을 사랑하는 법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목하라” (롬 12:28)
우리가 그리스도와 동행하면서 계발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기술 중 하나는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들을 사랑하는 것이다.
다음은 예수님께서 어려운 사람들을 만나셨을 때 본을 보이셨던 네 가지 방법들이다.
  • 모든 사람을 만족시킬 수는 없음을 깨달으라. (마 22:18) 그것은 하나님도 하실 수 없는 일이다! 그들에게 좌우되는 것을 거부하라. (마 22:18)
  • 비현실적인 기대에 ‘노’라고 말하는 법을 배우라. (엡 4:15)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말함”으로써 그들을 대하라.
  • ‘절대’ 보복하지 마라. (마 5:38-39) 그렇게 하면 그들의 수준까지 내려갈 뿐이다.
  • 그들을 위해 기도하라. (마 5:44) 그러면 상대방과 나 모두에게 도움이 된다. 하나님께서 직접 말씀하시게 하라.
먼저 행동을 취함으로써 갈등을 해결하라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절제하는 마음이니” (딤후 1:7)
아담과 하와가 범죄하고 하나님께서 아담을 찾으러 오셨을 때 아담은 “내가 …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라고 말했다. (창 3:10) 이러한 두려움은 인류 역사만큼이나 오래된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진짜 자아를 숨긴다. 우리가 진정 어떠한 사람인지 사람들이 모르게 하는 것이다. 왜 그런가? 바로 “내가 어떤 사람인지 얘기했다가 상대가 날 안 좋아하면 어떡하지?”라는 생각 때문이다.
두려움은 관계에 세 가지 악영향을 미친다.
두려움은 우리를 방어적으로 만든다. 두려울 때 우리는 자신을 드러내기를 겁낸다. 사람들이 약점을 지적하면 우리는 그에 보복하고 우리 자신을 방어한다.
두려움은 사람들로부터 거리를 두게 만든다. 두려울 때 우리는 사람들이 가까이 오지 못하게 한다. 뒤로 물러나서 감정을 숨기고 싶어한다. 마음을 열고 정직하게 대하기를 원치 않는다.
두려움은 지나치게 요구하게 만든다. 불안정할수록 우리는 통제하거나 지배하려고 애쓰게 된다. 관계에서도 결정권을 가지려고 든다. 이는 언제나 두려움과 불안정함의 징후이다.
갈등을 해소할 때 먼저 발걸음을 뗄 수 있는 용기는 어디에서 얻을 수 있을까? 이는 삶 속의 하나님의 영으로부터 온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비겁함의 영을 주신 것이 아니라, 능력과 사랑과 절제의 영을 주셨습니다.” (딤후 1:7, 새번역)
누군가와 관계를 재개하는 출발점은 잠시 멈췄다가 이렇게 기도하는 것이다. “하나님, 제가 이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 먼저 발걸음을 뗄 수 있도록 도우소서.”
자신의 부분을 인정함으로써 갈등을 해결하라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 먼저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어라 그 후에야 밝히 보고 형제의 눈 속에서 티를 빼리라” (마 7:3-5)
갈등 상황에 직면했을 때, 비난하거나 공격하거나 다른 사람 탓으로 돌리기 대신, 겸손함으로 시작하라. 이는 갈등의 90퍼센트가 상대방 탓일지라도 마찬가지다.
사람은 누구나 맹점이 있다. 완벽한 사람은 없으며, 사람은 각자 자신이 미처 보지 못하는 것이 있기 때문에 갈등에 기여하는 부분이 생긴다.
그러므로 공격하거나 비난하려고 하기 전에 스스로 솔직하게 평가하고 이렇게 물어야 한다. “이 갈등에서 내 잘못은 얼마나 되는가?” 정직하게 진단하고 내 부분을 인정해야 한다. 잘못한 것이 있으면 인정하라.
그리고 당신이 옳았다면, 그저 입을 다물어라!
자기 자신에게 솔직해라. 예수님은 자신의 눈 속에 있는 것을 먼저 보라고 말씀하신다. 그러면 그 갈등 상황이 명확하게 보일 것이다.
이렇게 자문하라. “내가 비현실적으로 행동하고 있는가? 내가 둔감한가? 내가 너무 민감한가? 내가 지나치게 요구하고 있는가? 내가 감사하지 못하고 있는가?”
목사로서 내 경험에 의하면, 제일 가는 이혼 사유는 “우린 서로 안 맞아요!”이다. 성경은 서로 성장한다면 어떤 두 사람이라도 서로 사랑하는 법을 배울 수 있다고 가르친다.
그러나 우리의 본성은 자기중심적이고 완고하며 변화하려고 하지 않는다! 다른 어떤 것보다 ‘굽히지 않는 태도’ 때문에 관계가 깨진다.
성경은 우리가 겸손함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가르친다. 갈등 상황에서 막힌 곳은 어떻게 뚫을 수 있을까? 이렇게 말하라. “미안해. 내가 내 생각만 했어.”
갈등 해결 방법 - 상대방을 우선으로 생각하라
“각각 자기 일을 돌볼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하게 하라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빌 2:4-5)
갈등은 저절로 해결되지 않는다. 갈등은 의도적으로 다뤄야 한다. 갈등을 내버려두면 상태는 더 나빠진다. 어떤 사람과 관계가 좋지 않거나 문제가 생겼다면, 당신이 먼저 나서서 해결하라.
갈등은 언제 해결해야 하는가? 그 즉시이다. 해결을 미루면 상태는 악화된다. 가능한 한 빨리, 상황이 곪아서 반감으로 변하기 전에 해야 한다. 자신의 관점이나 상황만 봐서는 안 된다. 다른 사람의 관점도 봐야 한다. 이는 본능을 거스르는 것이기 때문에 무척 어렵다. 초점을 자신의 필요를 바라보는 데서 다른 사람의 필요를 바라보는 데로 옮기는, 의도적인 전환이 요구되는 것이다.
여기에는 그렇게 하도록 삶 속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도움도 필요하다.
상대방의 행동에 대한 배경을 이해할 때, 우리는 갈등을 덜 겪게 될 것이다.
다른 사람을 이해하는 법은 어떻게 배우는가? 그들의 말을 들어야 한다. 말하기보다 듣기를 더 많이 해야 한다. 이것이 쉬운 사람 또한 별로 없다. 우리는 자신의 논지를 분명히 하고, 자신의 입장을 말하고, 자신을 변호하는 데 급급한 경우가 많다. 잠시 멈춰 상대방이 하는 이야기가 뭔지 듣거나 그들의 관점에서 생각하려 하지 않는다.
“상대방의 필요는 무엇이며, 내가 그것을 어떻게 채워줄 수 있을까?”라고 물을 때, 우리는 더욱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것이다. 화가 나면 자신에 대한 생각으로 꽉 차게 된다. 그러나 그리스도와 같이 되면 자기만 보는 게 아니라, ‘서로’의 이해를 바라보게 된다.
평화를 가져오는 가장 강력한 말 중 하나는 “미안해. 내가 내 생각만 했어.”라고 말하는 것이다.
다음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보자.
  • 당신에게는 현재 곪도록 내버려두고 있는 갈등이 있는가? 시간을 더 흘려버리지 마라. 오늘 시간을 들여 그것을 해결하라.
  • 당신의 듣기 기술은 몇 점 정도 되겠는가? 잘 듣는 사람이 되는 데 집중하라.
갈등 해결 방법 - 사랑으로 상대방을 마주하라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마귀에게 틈을 주지 말라” (엡 4:26-27)
갈등은 일어나게 마련이다. 그것을 피할 방법은 없다.
갈등이 생겼을 때는 정면으로 대응해야 한다. 그것이 곪아가도록 내버려두지 마라. “그냥 무시해야지. 시간이 가면 없어질 거야.”라고 생각하는 것은 큰 실수이다.
갈등은 무시한다고 없어지지 않는다. 사도 바울은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마귀에게 틈을 주지 말라”라고 말한다. (엡 4:26-27)
이 구절은 죄에 이르는 분노가 있고 죄에 이르지 않는 분노가 있음을 시사한다. 분을 품는 데도 바른 방법과 틀린 방법이 있는 것이다.
그 차이는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잘못된 분노는 빨리 해결하지 않은 분노이다. 제대로 다뤄지지 않은 분노는 원망과 반감으로 변한다. 원망과 반감은 언제나 죄이다. 이러한 감정은 늘 잘못된 것이다.
갈등은 어떻게 해야 빨리 해결할 수 있을까? 그 해결책은 대면하는 것이다. 갈등을 해결하려 한다면, 직접 마주해야 한다.
그러나 분노를 품은 상태에서 대면할 필요는 없다. 사실, 분노한 상태에서 대면해서는 안 된다. 사랑하는 마음으로 상대방에게 가서, 사랑 안에서 진실된 것을 말하고, 즉시 문제를 다뤄야 한다.
성경은 사람을 대면할 때의 세 가지 원칙을 가르쳐준다. 누구나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며, 성내기도 더디 하라”는 것이다. (약 1:19)
첫 두 가지 원칙을 지키면 세 번째는 자동적으로 된다. 듣기를 속히 하고 말하기를 더디 하면, 성내는 것도 더뎌질 것이다.
다음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보자.
  • 누군가를 대면해야 함을 알 때, 당신은 어떤 감정이 생기는가? 왜 그런 감정이 든다고 생각하는가?
  • 두렵거나 위축된다고 느낄 때도, 당신은 하나님께서 당신이 대면하는 순간을 인도하심을 믿는가?
  • 성경은 우리가 사랑으로 마주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것은 어떤 모습이라고 생각하는가?
갈등 해결 방법 - 화해에 초점을 맞추라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마 5:9)
갈등 상황에 놓였을 때, 해답보다는 화해에 집중하라. 이 둘에는 큰 차이가 있다. 화해는 관계의 재건을 뜻하지만, 해답은 모든 것에 동의하게 됨으로써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뜻한다.
이러한 해결은 이뤄질 수 없다. 두 사람이 다 하나님을 사랑하든, 서로를 깊이 사랑하든 상관 없이, 두 사람이 결코 동의하지 못하는 것이 있다. 하나님께서 우리 각 사람을 서로 다르게 지으셨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불쾌해 하지 않고도 동의하지 않을 수 있는데, 이것을 지혜라고 부른다. 야고보서 3장은 “지혜는 평화를 조성하고, 양순하다. 지혜는 토론을 용납하며, 기꺼이 다른 사람에게 양보한다.”고 말한다.
성경은 양보하는 것이 지혜롭다고 말한다. 우리는 일치함 없이도 통일을 이룰 수 있다. 마음이 맞지 않아도 손 잡고 걸을 수 있다. 모든 문제를 해결하지 않아도 화해할 수 있다.
관계에 초점을 맞출 때, 문제는 무의미한 것이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내가 당신에게 던지는 도전은 이것이다. - 갈등, 전쟁, 편견, 폭력, 분열, 깨진 관계로 가득 찬 세상에서, 화해의 행동가가 되는 데 힘쓰라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를 평화의 사람이 되게 하는 목적을 갖고 계신다. 갈등을 해결하는 것은 관계를 끝내는 것보다 훨씬 더 가치가 있다.
다음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보자.
  • 당신은 삶 속의 어떤 관계, 어떤 상황에서 화해의 행동가가 될 수 있는가?
  • 당신은 갈등 상황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할 때, “내가 할 수 있는 건 여기까지야.”라고 생각하곤 했는가? 관계를 화해로 이끌기 위해 당신의 태도는 어떻게 바뀌어야 하겠는가?
언쟁에서 이기려고 애쓰지 마라
“형제들아 내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모두가 같은 말을 하고 너희 가운데 분쟁이 없이 같은 마음과 같은 뜻으로 온전히 합하라” (고전 1:10)
언쟁에서 이기려고 애쓰지 마라.
그 대신, 당신과 생각지 맞지 않는 사람들을 사랑하는 것을 목표로 삼으라. 승리가 아니라 사랑을 추구하라. 예수님은 사랑이 언제나 이긴다고 말씀하신다. 주님은 그것을 무덤에서 나오심으로 보증하셨다.
다른 신자들과 언쟁이 벌어졌다면, 원만한 해결을 위해 다음 성경적 지침을 사용하라.
자비로 반응하라. (잠 3:3-6) 갈등 상황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공정한 것만을 원한다고 말하지만, 하나님의 접근법은 공정함이 아니라, 은혜와 자비에 대한 것이다. (롬 5:8)
진실에 대한 판단은 하나님께 맡기라. (고후 13:8) 진실은 당신의 생각이나 감정으로, 또는 다른 사람들의 의견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요일 4:1) 진실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이 진실이다. 하나님만이 모든 상황을 설명하시는 유일한 권위이시다. (고후 10:5)
성경은 자기 자신의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고 말한다. (잠 3:5) 즉 우리 눈엔 올바르게 보이는 것도 잘못된 것일 수 있다는 것이다. (잠 14:12)
하나님의 임재를 찾으라. (마 28:20) 사탄은 우리가 전쟁터에 혼자 있다고 믿기를 바란다. 어린 양치기 소년 다윗의 예를 본받으라. 그는 하나님께서 싸우고 계시며, 전쟁이 하나님께 속해 있다고 믿었다. (삼상 17:47)
갈등의 진정한 근원을 찾으라. (엡 6:12) 하나님 말씀에 따르면, 실제로 우리는 다른 사람들과 싸우고 있는 게 아니다. 우리의 진짜 적은 사탄이며 그의 “보이지 않는 악한 영의 세력”이다.
인간의 무기를 내려놓으라. (고후 10:4-5)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독립적으로 행동하면서 자기 자신의 필요를 채우려고 애쓸 때, 우리는 사도 바울이 말했던 ‘육신의 무기’를 사용하는 경향이 있다. 여기에는 조작, 험담, 비방, 조롱, 위협, 비난, 잔소리, 속임, 침묵 등이 포함된다. 그러한 것들을 사용할 때 우리는 결국 ‘악에는 악으로’의 상황을 반복하게 되는데, 이는 ‘냄새’를 이용하여 스컹크와 싸우려고 드는 것과 마찬가지다. 모두가 패배자가 되는 것이다!
영적 무기 사용법을 배우라 (고후 10:4) 성경은 기도가 강력한 영적 무기라고 말한다. 하나님의 전신갑주로 무장한 후, 우리는 “모든 기도와 간구를 하되 항상 성령 안에서 기도”해야 한다. (엡 6:18)
다음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보자.
  • 다른 신자와 갈등이 있다면, 오늘 당신은 그것에 대해 무엇을 해야 하는가?

Tuesday, January 15, 2013

죄의식, 후회, 수치심을 안고 살지 마라 - 국제제자훈련원

죄의식, 후회, 수치심을 안고 살지 마라 - 목적이 이끄는 삶을 위한 매일의 묵상 - 1100호


그리스도는 생명을 내어 주시기까지 교회를 사랑하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교회를 물로 씻고,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셨습니다.” (5:25-26, 쉬운성경)
당신은 더 이상 죄의식, 후회, 수치심을 안고 살 필요가 없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과거의 기억에 사로잡혀 이를 극복하지 못한다. 상처를 받아 분노를 안고 살든지 아니면 다른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어 죄의식을 안고 산다.
 
하나님은 당신이 그러한 무거운 짐을 평생 지고 다니길 원치 않으신다. 당신이 자유롭길 바라신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에게 성경을 주신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 죄를 뿌리째 뽑기 위해 그분의 말씀을 사용하신다.
 
오래 전, 내가 설교를 했을 때, 한 여인이 눈물을 흘리며 나를 찾아왔다. 그녀는 자신이 저지른 모든 과오로 인해 벌어진 매우 슬픈 이야기를 내게 쏟아놓기 시작했다. 그녀는 몹시 괴로워했으며 서럽게 울었다. 그리고 자신이 얼마나 죄책감을 느끼는지에 대해 계속 이야기했다.
 
그때 나는 요한일서 1:9을 읽어주었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이는 더러움을 씻는구절이다. 하나님은 우리를 목욕시켜주시고, 삶의 더러움을 없애주시며, 우리를 용서하시고, 우리 죄를 씻어주실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그 다음 나는 로마서 8:1을 들려주었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그녀는 물었다. “그럼 제가 잘못한 모든 것에 대해 하나님께서 제게 벌을 내리지 않으실 거라는 말씀이세요?” “그렇습니다.” “왜죠?” 그녀가 물었다. “예수님이 그 죄값을 다 치르셨기 때문입니다.” “제가 내일 지을 죄는요?” “그 죄값도 예수님이 다 치르셨습니다.”
하나님 말씀은 더러움을 씻어내고 우리 마음을 깨끗하게 하며 우리 몸을 정화시킨다. 말씀은 우리 삶에서 모든 더러움, 먼지, 쓰레기, , 수치심, 죄악을 제거한다.
 
에베소서 5:25-26은 이렇게 말한다. “그리스도는 생명을 내어 주시기까지 교회를 사랑하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교회를 물로 씻고,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셨습니다.” (쉬운성경)
 
다음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보자.
하나님은 당신의 죄를 용서하겠다고 약속하셨다. 당신은 하나님께 용서를 구한 적이 있는가?
당신이 하나님의 은혜와 용서를 받아들이고 후회를 내려 놓는다면 삶이 어떻게 바뀌겠는가?

Monday, December 17, 2012

한 날 묵상 - 갈 5:19-21 <성령과 믿음 2. 성령의 사람은 육체의 일을 버리노 라. 육체의 일은 분명하니, 이를 버려 야 하노라>


1. 성령을 따라 사는 삶은 육체의 일을 버리는 삶이다.

2. 엡 5장 3절.
"음행과 온갖 더러운 것과 탐욕은 너희 중에서 그 이름조차도 부르지 말라 이는 성도에게 마땅한 바니라"
3. => 성도들이 행해야 하는 마땅한 것들은 육체의 일을 따라 사는 삶이 아닙니다.
4. => 이러한 것들은 그 이름 조차도 부르지 말아야 합니다. 말이 씨가 됩니다. 아무 생각없이 말하는 것들은 실상은 자기 자신의 내면에서 흘러 나오는 것입니다.
5. 한편으로 그렇든 아무 생각없이 하는 말일지라도 삼가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이러한 것을 생각이 되고, 행동이 되어 습관이 되기 때문입니다.

6. 19절 "육체의 일은 분명하니"
7. => 육체의 일이란 죄의 영향아래 드러나는 모습들이다. 죄로 인해 인간은 관계의 파괴가 몰아쳤다. 자신 한 사람으로부터 모든 관계가 파괴되었다.
8. 이게 바로 죄의 영향력이다.
하나님과의 관계
이웃과의 관계
자신과의 관계
9. 이 모든 것들이 죄로 인해 파괴되었다. 육체의 일이란 바로 이러한 죄의 영향아래 나타나는 현상들이다.

10.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11. => 가장 전형적인 육체적인 일이다. 이러한 일들이 가장 위험한 것은 이는 관계를 실제적으로 파괴하고 하나님이 허락하신 질서를 어지럽게 하는 것이다. 가정은 하나님이 허락하신 가장 중요한 관계의 질서이다. 가정을 통해 가족을 이루고, 가족의 세대를 통해 민족이 이루어지게 된다.
12. 최근에 일어나는 성폭력과 성추행은 가정을 파괴하며 생명까지 앚아가는 모습을 보게 된다. 이러한 일들을 고발하는 영화들이 있는데, "도가니", "돈크라이 마마"이다.
13. 성의 타락은 생명의 타락이며 가족의 파괴이며 새생명을 위해 이 땅에 예수님을 보내주시기까지 죄가운데 있지 않게 하시는 생명의 하나님이 가장 싫어하시는 죄악이다.

14. 20절 "우상 숭배와 주술과 원수 맺는 것과"
=> 이러한 육체적인 일들은 바로 십계명의 제1, 제2, 제 3의 계명을 어기는 행위들이다. 이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지게 된다.

14.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열함과 이단과"
15. => 이러한 육체의 일을 가지고서는 이웃과의 관계를 바르게 이룰 수 없다. 인간의 관계를 맺지 않고서는 살 수 없다. 홀로 있을 때에 일어나는 문제들이 무엇인지 우리는 충분히 잘 알고 있다.
16. 홀로 있지 않고 인간이 관계를 맺을 때 죄로 인해서 이웃과의 파괴된 관계를 맺게 되었다. 관계를 맺는데 바른 관계 맺기가 아니라 파괴된 관계 맺를 하게 된다.
17. 파괴된 관계 맺기는 끼리 끼리로 나타난다. 자기 당을 짖게 된다. 그리고 자기 당 이외의 사람들을 가만히 두지 않고 그들의 모임을 파괴하려고 한다.
18. 고린도전서에서 나타난 분쟁의 문제를 우리는 익히 알고 있다. 고린도전서 1장 10-17절에서 바울은 말하고 있다.
19. 10절 "형제들아 내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모두가 같은 말을 하고 너희 가운데 분쟁이 없이 같은 마음과 같은 뜻으로 온전히 합하라"
20. 12절 "내가 이것을 말하거니와 너희가 각각 이르되 나는 바울에게, 나는 아볼로에게, 나는 게바에게, 나는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 한다는 것이니"

21. 분쟁, 시기, 분냄을 바로 이처럼 이웃과의 관계를 파괴시키는 육체적인 일이다.

22. 21절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탐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23. => 탐욕, 한탕주의, 방탕함이는 바로 술취함과 관련이 있다. 그리스도인은 성령에 취해야 한다. 그런데 술에 취하게 되면 탐욕이 자라게 되고 방탕하면서 투기나 신실하지 삶을 살지 못하도록 한다.
24. 자신안에 있는 나와의 바른 관계를 맺지 못하고 오직 물질이나, 돈이나, 재물이나, 탐욕이 자신을 이끌어가도록 내버려 두는 일들이 일어나게 된다.
25. 바로 투기, 술취함, 방탕함은 자신이 온전히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지 못하고 유물론적 삶을 살을 살아가고자 하는 마음이 자신을 이끌어가는 것을 보게 된다.

26.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 것 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
27. => 이러한 자들이 바로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는 자들이다. 그렇다. 성령에서 떠나 있기 때문에 당연한 결과이다. 자연스럽게 귀결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28. 결론.
이러한 모든 모습들은 다 성령에서 떠나 살아가기 때문에 드러난 일들이다.
29. 한번의 성령체험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육신과의 싸움은 한 번의 성령체험으로 되지 않고, 끊임없이 내 안에 성령의 거하도록 훈련하지 않으면 안된다.
30. 바울은 갈라디아서 자유를 말하면서 성령안에서 자유하기를 간절히 바라는 이유이기도 한다. 육체의 일을 떠나야 한다는 말씀이다.

31. "일그러진 성령의 얼굴들" pp81-82.

성령을 체험함으로 우리는 옛자아의 실현이 아니라 죽음을 체험하낟. 옛 자아의 야망이 성취되기보다 좌절되는 쓰라림을 맛본다. 십자가의 은혜는 단순히 우리의 죄를 사할 뿐 아니라 죄의 근원인 옛사람의 생명을 파괴한다. 그 욕심과 야망을 가차 없이 십자가에 못 박는다. 우리의 옛 자아를 죽이는 십자가의 능력을 매일 체험하지 않으면 부활의 능력을 결코 경험할 수 없다. 성령의 열매를 맺는 새사람으로서의 변화가 전혀 이루어지지 않는다. 성령의 능력을 누리는 유일한 비결은 십자가의 죽음을 통과하는 것이다.

...

성령을 체험하면 나를 체험하는 동시에 또한 너를 체험한다. 인간은 진정한 자아뿐 아니라 타자를 잃어버렸다. 세상에는 오직 내가 이용할 '것'으로서의 너만 널려 있을 뿐 진정한 '너'는 존재하지 않는다.
지옥이 뒤틀린 관계에서 온다면 천국은 관계의 회복으로부터 온다. 구원과 하나님 나라의 핵심은 바로 관계의 회복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하나님과 원수 된 것뿐 아니라 인간 서로 간에 원수 된 것을 소멸하였다(엡 :15-18 참조). 그분은 우리와 하나님 사이 그리고 우리와 이웃 사이로 가신다. 그래서 우리를 하나님과 교제하게 하시고 또한 형제자매들과도 교제하게 하신다. 천국은 근본적으로 하나님과 이웃과의 관계가 회복된 곳이다.

32. 아직 미정리다. ^^

Monday, April 2, 2012

마뀌와 싸우기 위해 필요한 여섯 가지 - 에베소서 6장

목적이 이끄는 삶을 위한 매일의 묵상


마귀와 싸우기 위해 필요한 여섯 가지: 1. 성실
“그런즉 서서 진리로 너희 허리 띠를 띠고 의의 호심경을 붙이고” (엡 6:14)
에베소서에서 사도 바울은 영적 전쟁에서 해야 할 첫 번째는 허리에 띠는 허리띠처럼 진리를 띠는 것이라고 말한다. 진리는 적과 싸우기 위한 토대다. 진리의 토대가 없으면 유혹과 혼란이 삶을 공격할 때 무너져버릴 것이다. 하나님의 진리는 당신을 굳게 붙들어준다.
진리의 허리띠는 ‘성실(integrity)’이다. 이는 진리를 알 뿐만이 아니라 진리대로 행동함을 뜻한다. 진리를 알지만 그대로 행동하지는 않는 사람은 성실하지 않은 것이다. 사실 그것은 위선이다. 하나님은 위선자는 사탄을 막아낼 수 없다고 말씀하신다.
하나님은 사탄을 막으려면 성실성을 유지해야 한다고 말씀하신다. 이것은 우리가 완벽해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진실되고 정직해야 함을 뜻한다. 서로 다른 그룹의 사람들에게 가면을 쓰지 않는 것이다. 당신을 잘 아는 사람들은 당신에 대해 ‘겉과 속이 같은 사람’이라고 묘사할 수 있어야 한다.
성실의 반대는 삶에 칸막이를 두어 구분하는 것이다. ‘성실(integrity)’이라는 단어는 완전수를 뜻하는 ‘정수(integer)’에서 왔다. 이는 삶을 파이 조각처럼 나누거나 자르지 못함을 의미한다. 성실은 삶의 모든 부분이 통일되어 있음을 뜻한다. 어디를 가든지 똑같이 행동하는 것이다. 직장에서와 교회에서, 또 친구들과 있을 때 서로 다르게 행동하지 않는 것이다. 성실한 사람은 삶의 모든 영역에서 진실되게 행동한다.
불행히도 사탄이 힘들여 공격할 필요가 없는 신자들이 있는데, 바로 성실성이 결여된 사람들이다. 사탄에게 이들을 유혹하기란 누워서 떡 먹기이다. 이들은 진리의 허리띠를 띠지 않아 쉬운 먹이감이 된다. 성경은 우리가 진리의 허리띠를 단단히 매고 굳게 서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당신은 인생에 칸막이를 두고 구분하고 있는가? 삶에 성실성이 결여된 영역이 있는가? 하나님은 당신이 진리의 허리띠를 띠기를 바라신다. 그분께 죄를 고백하고 사람들 앞에서 진실되게 살 수 있는 능력을 더해주시기를 구하라.


마귀와 싸우기 위해 필요한 여섯 가지: 2. 의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 그런즉 서서 진리로 너희 허리 띠를 띠고 의의 호심경을 붙이고” (엡 6:12-14)
에베소서에서 사도 바울은 영적 전쟁에서 두 번째로 해야 할 것은 ‘의’를 호심경(또는 가슴받이)처럼 붙이는 것이라고 말한다. 로마의 백부장들은 심장, 간, 폐, 신장과 같은 필수 장기를 보호하기 위해 가슴받이를 했다.
그렇다면 의의 호심경은 무엇일까? 그것은 마음과 동기의 청결함이다.
성경은 이렇게 묻는다. “여호와의 산에 오를 자가 누구며 그의 거룩한 곳에 설 자가 누구인가 곧 손이 깨끗하며 마음이 청결하며 뜻을 허탄한 데에 두지 아니하며 거짓 맹세하지 아니하는 자로다” (시 24:3-4)
누가 하나님께 가까이 가게 될까? 성경은 손이 깨끗하며 마음이 청결한 사람이라고 말한다. 이는 우리가 완벽해야 한다는 뜻이 아니다. 그것은 마음에 있는 것을 모두 고백하는 것을 말한다. 늘 옳은 일을 할 수는 없지만, 옳은 일을 하기를 원하는 것이다. 비록 여전히 실수는 하지만 마음은 진실로 청결하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마 5:8) 직장에서, 재정에서, 가정에서 복을 받고 싶다면 마음이 청결해야 한다. 성실함과 청결함이 있어야 한다. 진리에 따라 행동하고 동기를 계속 청결하게 유지해야 한다.
당신에게 묻고 싶다. 당신의 마음은 청결한가?
사탄은 당신을 약하게 만들고 당신의 삶을 불결한 것으로 채우려고 유혹함으로써 당신을 먹이감으로 삼을 것이다. 사탄은 당신에게 불결한 생각과 불결한 동기를 심어줄 것이다. 불결한 욕망을 제안할 것이다. 포르노를 통해, 영화를 통해, 책을 통해, 음악을 통해 불결함을 심으려 노력할 것이다. 욕망 또는 교만을 통해 불결함을 심으려 노력할 수도 있다.
반면에 의의 호심경을 붙인 사람은 청결한 마음과 깨끗한 동기를 유지하려고 진심으로 노력하게 된다. 마음이 깨끗하고 용감한 사람은 누구나 사탄이 두려워하는 대상이다.
당신의 삶에서 불결한 부분은 어디인가? 하나님 앞에 깨끗함으로 나아오라. 그리고 의의 호심경을 붙이라.

마귀와 싸우기 위해 필요한 여섯 가지: 3. 평화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 그런즉 서서 진리로 너희 허리 띠를 띠고 의의 호심경을 붙이고 평안의 복음이 준비한 것으로 신을 신고 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이로써 능히 악한 자의 모든 불화살을 소멸하고” (엡 6:13-15)
에베소서에서 사도 바울은 영적 전쟁에서 해야 할 세 번째는 평화의 복음을 전하는 신발을 신는 것이라고 말한다. 따라서 하나님의 전신갑주에는 성실성, 청결함, 그리고 평화가 포함된다. 평화는 평화 안에서 살고 평화 안에서 말하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에게 갈등을 일으킬 말을 하지 않는다. 평화의 말을 한다.
로마의 백부장은 전쟁에서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특별한 신발이 필요했다. 신발의 바닥에는 쐐기와 비슷한 징이 있었다. 이는 로마의 병사들이 전쟁에서 미끄러지고 넘어지지 않게 해주었다. 이 징은 땅에 발을 붙이고 단단히 서 있을 수 있게 해주었다.
사도 바울은 전쟁에서 넘어지지 않고 서 있으려면 평화의 복음을 전할 신발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평화에는 세 종류가 있다. 당신은 하나님과 화목하고 자신과, 그리고 다른 사람들과 평화를 이루어야 한다. 평화는 늘 관계적이다.
사도 바울은 뭐라고 말하고 있는가? 관계를 망쳤다면 사탄의 먹이가 된 것이다. 만약 당신이 원망이나 괴로운 마음을 붙들고 있다면 사탄은 당신을 괴롭힐 수 있게 될 것이다.
하나님과, 다른 사람들과, 그리고 나 자신과 화목하는 법은 어디서 배울 수 있을까? 성경은 이렇게 말한다. “주의 법을 사랑하는 자에게는 큰 평안이 있으니 그들에게 장애물이 없으리이다” (시 119:165)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낼수록 더 화목할 수 있다.
사탄은 당신이 하나님의 갑옷을 입기를 원치 않으므로 당신의 성실을 거짓으로 공격한다. 또한 당신의 청결을 정욕으로 공격하고 당신의 평화로움을 근심으로 공격한다. 근심할 때마다 당신은 문을 열고 사탄을 맞이하는 것이다. 근심하고 염려하고 두려워하면서 동시에 평온을 유지하기는 어렵다.
하나님은 평화롭게 살고 다른 사람의 삶 속으로 평화를 얘기하라고 우리를 부르신다. 이는 갈등이 없을 것이라는 뜻이 아니다. 성경은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목하라”라고 말한다. (롬 12:18) 복음의 신발은 우리가 갈등의 한복판에서도 굳게 서 있고, 할 수 있을 때 화해를 향해 나아갈 수 있게 돕는다.


마귀와 싸우기 위해 필요한 여섯 가지: 4. 확신
“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이로써 능히 악한 자의 모든 불화살을 소멸하고” (엡 6:16)
에베소서에서 사도 바울은 영적 전쟁에서 네 번째로 해야 할 일은 믿음의 방패를 드는 것이라고 말한다. 따라서 하나님의 전신갑주에 포함되는 것은 성실, 청결, 평화, 그리고 확신이다.
방패는 얼마나 효과가 있을까? 역사상 가장 유명한 전쟁 중 하나는 기원전 480년 300명의 스파르타 병사가 10만 명에 달하는 페르시아 대군에 맞서 싸웠던 테르모필레 전쟁이다. 전쟁 중 어느 시점에서 페르시아 군대는 300명의 스파르타 병사들에게 일제히 화살을 날렸다. 이때 스파르타 병사들은 함께 무릎을 꿇고 방패를 들어올려 쏟아지는 화살로부터 방어벽을 만들었다.
당신은 그러한 느낌을 받은 적이 있는가? 모든 각도에서 공격이 들어오고 수많은 불화살이 자신을 겨냥하고 있는 듯한 때 말이다. 바울이 말한 ‘믿음의 방패’가 필요한 것이 바로 이때이다. 바울은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이로써 능히 악한 자의 모든 불화살을 소멸하라”라고 말한다. (엡 6:16)
그렇다면 ‘악한 자의 불화살’은 무엇일까?
  • 의심
  • 우울증
  • 낙심
  • 꾸물거림
  • 곤경
  • 절망
사탄은 에덴 동산 때부터 인간에게 의심의 씨앗을 뿌려왔다. 처음 사탄은 하와에게 이렇게 물었다.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에게 동산 모든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 (창 3:1) 의심에게 문을 열어준 순간(비록 아주 조금이라 할지라도), 사탄은 곧바로 쳐들어와 의심과 절망, 우울증을 만든다. 그렇다면 그러한 ‘불화살’이 날아올 땐 무엇이 필요할까? 바로 믿음, 즉 확신이다.
확신은 인생의 모든 일이 잘 안되고 있을 때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함에서 온다. 우리는 믿음의 방패를 들고 의심하는 것들을 의심하며 믿는 것들을 믿어야 한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정반대로 한다. 그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우리가 의심해야 할 것은 우리의 의심이며, 믿어야 할 것은 우리의 믿음이다. 믿음이 없으면 사탄의 공격에 넘어지게 된다.
성경은 “너희 믿음대로 되라”라고 말한다.(마 9:29) 무슨 뜻일까? 그 순간엔 진실처럼 보이지 않을지라도 하나님의 약속을 의지하고 믿음의 방패를 들라는 것이다.


마귀와 싸우기 위해 필요한 여섯 가지: 5. 온건한 정신
“구원의 투구를 쓰고…” (엡 6:17)
에베소서에서 사도 바울은 영적 전쟁에서 필요한 것 다섯 번째는 구원의 투구를 쓰는 것이라고 말한다. 따라서 하나님의 전신갑주에는 성실, 청결, 평화, 확신, 그리고 온건한 정신이 포함된다.
성경이 쓰여진 시대에, 병사라면 당연히 치명적인 부상에서 머리를 보호해줄 헬멧을 쓰고 전쟁에 나갔을 것이다. 오늘 말씀에서 사도 바울이 구원의 투구를 쓰라고 한 것은 우리가 정신을 보호해야 함을 뜻한다. 하나님은 미쳐 돌아가는 세상에서 우리가 정신을 온건하게 보호하길 바라신다.
세상이 미쳐가고 있다는 게 믿겨지지 않는다면 그저 신문을 한번 들어보라. 사람들은 온갖 종류의 미친 - 정신 이상의 - 짓들을 하고 있다. 옳고 그른 것, 선하고 악한 것들을 혼동하고 있으며, 모든 것을 뒤집고 정반대로 된 것을 얘기한다.
이에 대한 하나님의 충고는 무엇일까? 구원의 투구를 씀으로써 악으로부터 정신을 보호하라는 것이다. 악은 모든 경로를 통해 우리의 정신에 침입하려고 애쓴다. 예를 들어 텔레비전은 플러그가 달린 마약과 같아서, 정신을 도랑으로 끌고 내려가곤 한다.
당신이 눈과 귀의 ‘문’을 통해 당신 안에 들어와 막대한 영향을 끼치도록 내버려 두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당신 자신을 보호하려면 하나님과 그분의 도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골로새서 3장 2절은 이렇게 말한다. “위의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라”
예수님께 초점을 맞추고 그분이 당신의 삶에서 하시고자 하는 것에 집중하라. 실제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당신을 통해 사시도록 할수록, 미쳐가는 세상에서 온건한 정신을 찾게 될 것이다.


마귀와 싸우기 위해 필요한 여섯 가지: 6. 하나님의 말씀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 (엡 6:17)
에베소서에서 사도 바울은 영적 전쟁에서 여섯 번째로 필요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검으로 사용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에, 하나님의 전신갑주에는 성실, 청결, 평화, 확신, 온건한 정신, 그리고 성숙이 포함된다.
마귀에게 대항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사용할 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심지어 수년 동안 교회를 다니고 말씀을 늘 들어왔던 사람들조차도 그렇다. 그러나 ‘말씀을 듣는 것’이 ‘말씀을 사용하는 것’과 동일하진 않다.
사탄에 대항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은 영적 성숙의 가장 중요한 특징 중 하나이다. 성경은 이렇게 말한다. “때가 오래 되었으므로 너희가 마땅히 선생이 되었을 터인데 너희가 다시 하나님의 말씀의 초보에 대하여 누구에게서 가르침을 받아야 할 처지이니 단단한 음식은 못 먹고 젖이나 먹어야 할 자가 되었도다” (히 5:12)
신자를 성숙하게 만드는 것은 듣는 것도, 읽는 것도, 심지어 배우는 것도 아니다. 히브리서 5장 12절에 따르면 성숙한 신자는 말씀을 실천하는 사람이다.
바울은 에베소서에서 성경을 ‘성령의 검’이라고 부른다. ‘검’은 병사들이 영토를 확장하고 점령할 썼던 공격적인 무기이다. 성경 말씀을 실천하는 것은 사탄의 영역으로 쳐들어가는 것이다. 사탄은 당신의 말은 두려워하지 않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두려워한다!
그러나 성경은 외우기 전까지는 검이 되지 못한다. 왜 그럴까? 성경은 필요할 때 몸에 지니고 있는 경우가 별로 없기 때문이다. 50만 원짜리 옷을 바라보며 빚을 지고라도 그것을 살 것인지를 결정하려고 할 때는, 감당할 수 없는 소비에 대한 하나님의 말씀이 마음에 저장되어 있어야 한다.
예수님은 그렇게 하셨다. 사탄이 광야에서 예수님을 세 번 시험했을 때, 예수님은 늘 성경을 인용하며 대응하셨다. 주님은 사탄에게 대답하기 위해 주머니에서 구약성경을 꺼내실 필요가 없었다. 주님의 마음엔 벌써 말씀이 숨겨져 있었다. 우리도 악을 이기기 위해서는 그렇게 해야 한다.
나는 열 일곱 살 때부터 성경을 외웠다. 그때부터 암기해온 구절이 수천 개가 된다. 이 말씀들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갖지 못한 힘을 내게 준다. 종종 사람들은 내게 답을 알 수 없는 질문을 물어오곤 하는데, 그럴 때 나는 하나님께 “제가 이 분에게 뭐라고 말하길 원하십니까?”라고 묻는다. 그러면 성령께서는 내가 배운 모든 구절을 떠올리게 하시고 내 마음에 적절한 말씀을 가져다 주신다.
자신이 자주 유혹 받는 영역 - 성, 참을성 없음, 생각 없이 말하기 등 - 의 중요 구절부터 시작하라. 그러면 유혹이 올 때 사탄을 향해 하나님의 말씀의 검을 휘두를 수 있게 될 것이다.


Wednesday, January 25, 2012

한 날 묵상 - 창 39:7-18 <누구에게나, 어느 때에나 유혹은 있게 마련이다. 성[ 性 ], 게으름, 속임수, 거짓.. 수없이 나를 유혹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결국 유혹을 이기는 힘은 스스로를 이기는 힘에서 나온다. 결국, 마음의 문제다. 심령에 날마다 새롭게 함을 입힐 때 유혹의 욕심에서 벗어 날 수 있다.>

 누구에게나, 어느 때에나 유혹은 찾아온다. 성[ 性 ] 게으름 속임수 거짓 마약 중독. 유혹을 이기는 힘은 스스로를 이길 수 있는 힘이다 그 힘은 심령에 날마다 새롭게 함을 입힐 때 온다

유혹을 이기는 힘(엡4:13-24)
-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온전한 데까지 이르느 자람이 있어야 한다.
엡 4:13-14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 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속임수와 간사한 유혹에 빠져 온갖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 진리가 예수 안에 있는 것 같이 너희가 참으로 그에게서 듣고 또한 그 안에서 가르침을 받아야 한다.
엡 4:21-22 "진리가 예수 안에 있는 것 같이 너희가 참으로 그에게서 듣고 또한 그 안에서 가르침을 받았을진대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결국은,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하여라.
엡 4:23-24 "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결국, 마음의 문제다. 심령에 날마다 새롭게 함을 입힐 때 유혹의 욕심에서 벗어 날 수 있다.

유혹에 넘어지는 자는 말씀을 이루지 못함(마13:22)
요셉이 유혹에 넘어져버렸다면, 그의 인생이 어떤 방향으로 갈지는 알 수 없다. 무엇보다 하나님의 주신 약속의 말씀(꿈, 비전)들이 온전히 이루지 못하게 될 수 있다.
 가시떨기 나무가 있는 곳은 좋은 땅(?)일 수 있다. 땅은 좋았지만, 가시떨기 나무가 있어 결실을 맺지 못한 것이다.  염려와 유혹이라는 것이 그렇다. 좋은 땅에 많은 열매를 기다려야 하지만, 마지막까지 인내하지 못해, 결국 염려와 유혹에 넘어져 다른 사람이 열매를 거두게 될 때가 있다.
마 13:22
"말씀을 들으나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에 말씀이 막혀 결실하지 못하는 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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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절 "그 후에 그의 주인의 아내가 요셉에게 눈짓하다가 동침하기를 청하니"
8절 "요셉이 거절하며"
=> 요셉에게 있어서 가장 큰 유혹이 다가왔다. 성적 유혹과 넓은 길 유혹이다. 요셉의 때에 가장 위험한 유혹이었다. 청년의 때이며, 주변에 아무 연고도 없이, 도움받을 수 있는 사람이 없는 상황에서 찾아온 유혹이기에 더욱 달콤한 유혹이다.
 그러나 요셉은 자신의 길을 갔다. 믿음의 길을 갔으면, 믿음에서 벗어난 선택을 하지 않았다. 그 선택이 바로 험난한 고난의 길일지라도 그렇다.
 요셉은 또한 하나님의 훈련의 시간을 잘 통과하였다. 훈련을 통해 더욱 강한 믿음의 군사로 세워져 가는 사람들을 보라. 하나님은 그 과정을 통해 신실한 일꾼을 세우신다.

 참고 -    http://saltandlight21.blogspot.com/2011/09/126-8.html (훈련받으실 준비 되셨나요>)
 하나님의 사람으로 세워져가는 훈련은 무엇인가?
 첫째 인간의 생각을 버리는 훈련이다. (창12:11-13절)
 둘째, 하나님의 마음을 품는 훈련이다. (창12:17-20절)
 점점 더 거룩해지는 훈련은 하나님의 이끌림에 민감하게 더욱 더 반응할 때 성공적이 된다.
이끌림의 주도권은 하나님께 있다. 나의 생각이 틀릴 때 인정하고 돌아오자.
나의 실패로 주어진 환경을 하나님께서 바르게 세우실 때 그 상황을 감사로 인정하자.

10절 "요셉이 듣지 아니하여 동침하지 아니할 뿐더러 함께 있지도 아니하니라"
11-18절 유혹의 자리을 벗어나려면,
 - 그 자리를 빨리 떠나라(12절 "그러나 요셉이 자기의 옷을 그 여인의 손에 버려두고 밖으로 나가매"
 - 뒤돌아 보지말고, 다른 생각도 하지 말라(12절 "자기의 옷"이 생각나, 뒤를 돌아보거나, 다른 생각을 할 때, 또 다른 생각이 파고 들어 나의 결단을 흐리게 한다).
 - 일의 결과가 어떻게 될까 예측하지 말라(거룩을 위한 결단은 하나님의 기쁨이다. 하나님의 기쁨이 있는 곳에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있다).

Saturday, January 14, 2012

이번주 설교 : 에베소서 5:8-17 "빛의 자녀답게 살아라!"

에베소서 5:8-17
8 너희가 전에는 어둠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9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
10 주를 기쁘시게 할 것이 무엇인가 시험하여 보라
11 너희는 열매 없는 어둠의 일에 참여하지 말고 도리어 책망하라
12 그들이 은밀히 행하는 것들은 말하기도 부끄러운 것들이라
13 그러나 책망을 받는 모든 것은 빛으로 말미암아 드러나나니 드러나는 것마다 빛이니라
14 그러므로 이르시기를 잠자는 자여 깨어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어나라 그리스도께서 너에게 비추이시리라 하셨느니라
15 그런즉 너희가 어떻게 행할지를 자세히 주의하여 지혜 없는 자 같이 하지 말고 오직 지혜 있는 자 같이 하여
16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
17 그러므로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하라
 
마태복음 5
13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 데 없어 다만 밖에 버려져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14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지지 못할 것이요
15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에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 안 모든 사람에게 비치느니라
16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null)
영화 도가니라고 아십니까?
황 감독은 영화 `도가니`를 통해 2000년부터 5년간 비인간적인 성폭력과 학대로 얼룩진 장애인 학교의 은폐된 진실을 고발, 장애인 인권 침해와 불합리한 사회에 대한 경각심을 촉구했다. 이 영화 덕분에 일명 `도가니법`으로 불리는 `성폭력범죄의 처벌 특례법 개정안`이 통과되기도 했다.
 
영화 `도가니`의 황동혁 감독이 `2011 세상을 밝게 만든 사람들`로 선정됐다.
영화 도가니는 어두운 세상을 밝힌 사건으로 기록됩니다. 어두움에 영원히 묻힌 놀라운 일을 이 땅에 드러나게 했습니다.
 
세상을 밝게 하는 일은 가치 있는 일입니다. 의미입니다. 누구나 이러한 인생을 꿈꿀 것입니다.
 
어두움을 밝히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교회를 다니는 사람이든, 교회를 다니지 않던지, 어두운 세상을 빛추어야 한다는 강한 부르심을 느끼는 사람들이 세상에는 참으로 많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이러한 일을 통해 스스로 만족하거나, 사람들로부터 인정받기 원하거나, 정치에 뜻을 두거나, 후대에 이름을 남기려 합니다.
 
그렇지만, 교회를 다니는 사람들에게는 이건 사명입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입니다. 어느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모두가 감당해야 하는 사역입니다.
 
어두운 세상을 밝게 비추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밝게 비추는 삶이란 의미있는 삶입니다.
나에게 드러나는 빛을 한 사람이 받던, 많은 사람들이 받던 숫자는 다르지만 방향은 같은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이 우리 크리스찬의 삶입니다.
 
8절 너희가 전에는 어둠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이러한 빛의 삶은 어느 특정한 시간에만, 특정한 장소에서만, 특정한 사람들에게 행하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상시로, 어느 순간, 누구에게나 반드시 빛을 비추어야 합니다. 그래서 16절 말씀에서 세월을 아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세상에 빛으로 사는 사람을 가리켜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세상에 꼭 필요한 사람이다.
 
크리스챤을 포함해서 세상에 살아가는 사람들을 세 부류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꼭 필요한 사람.
있으나 마나 하는 사람,
있어서는 절대 안되는 사람.
 
여러분은 어떤 부류의 사람입니까?
나는 과연 어떤 부류의 사람입니까?
 
있어서는 절대로 안되는 사람입니까?
있으나마나 하는 사람입니까?
꼭 필요한 사람입니까?
 
“Linchipin 린치핀이란 영어 단어가 있습니다.
책도 있고,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쓰는 단어입니다.
뜻은? (조직계획 등의) 핵심이 되는 인물. 꼭 필요한 사람을 가리킵니다.
 
자동차 바퀴를 연결하는 쇠막대기를 고정시키는 핀이라는 것입니다.
이게 없으면 조직이 무너져 내린다는 의미입니다.
그저 그런 인간으로 살아가기를 거부하고, 핵심적인 역할을 해내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은 소모품입니까? 아니면 린치핀입니까?
핵심적인 사람이 된다는 의미는 차이를 만드는 사람입니다.
남과 다른 생각을 가지고, 나만의 계획과 행동으로 나아갈 때 꼭 필요한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세상은 꼭 필요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자기 실력이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자기계발이 필요합니다.
 
좋은 학벌이든, 능력이든, 힘이든, 권력이든, 재물이든, 나만의 특별한 것, 어느 누구나 따라올 수 없는 것이 있어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만약 이러한 것들이 없다면, 이러한 것들을 가질 수 있도록 자기계발을 통해서 인정받아서 세상에 꼭 필요한 사람이 되라고 말합니다.
 
그리스도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세상 어느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특별한 것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앞에서 말한 학벌이든, 능력이든, 돈이든, 권력이든, 그러한 것들이 아니라, 그러한 것들보다 더 중요한 것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바로 사랑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사랑으로 세상을 비추는 사람들입니다.
 
예수님도 세상의 빛이셨습니다.
수많은 병자를 고치셨습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을 보이셨습니다.
죽은 자를 살리셨습니다.
수 많은 무리들이 따라다녔습니다.
그의 한 마디, 한 마디에 따르던 무리들은 춤을 추었습니다.
 
이 보다 더 빛나는 인생이 어디 있습니까?
 
그러나 진짜로 예수님을 빛나게 하는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사랑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수많은 놀라운 일들을 행하셨지만, 그에게 사랑이 없었다면, 수 많은 무리들은 아침 안개와 같이 곧 사라져 버렸을 것입니다.
아니 예수님 생전에는 따라 다녔을지 모릅니다.
혹시나 하면서 기적을 바라면서요.
예수님 생전에 어떤 병고침을 받기 위해서, 허기진 배를 채우기 위해서, 놀라운 기적을 위해서, 로마를 전복하기 위해서,
 
그러나 사랑이 없었다면 2천년이 지난 지금에는 아무런 영향력을 끼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사랑으로 섬기었기 때문에 지금도 빛으로, 등대로 수 많은 사람들을 어둠에서 인도할 수 된 것입니다.
예수님이 비추는 사랑의 빛은 지금도 힘들고 소망없는 사람들에게, 낙망하고 있는 사람들을 비추는 빛이십니다. 참 소망이십니다.
세상을 꺼지지 않는 불빛으로 영원히 비추는 진정한 힘은 사랑입니다.
진정한 빛은 사랑에서 비롯됩니다.
 
이지성씨가 쓴 자기계발서 리딩으로 리드하라는 책을 읽었습니다.
그 책에서 인문고전을 읽는 사람들이 세상을 이끈 지도자가 되었고, 지금도 세상을 이끌어 가고 있다고 말하면서
세상을 리더하기 원한다면 인문고전 서적을 많이 있어야 한다고 말하더라고요.
 
그 책에서는 세상을 이끈 리더가 되기 위해서 조건으로 여러 가지가 있는데, 그중에서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특징은 인문고전을 사랑했다고 말합니다. 고전에는 짧게는 100년의 인생에서 1000년의 인생이 담겨있기 때문에 인문고전을 읽으면 읽을수록 더욱 지혜로운 사람이 된다는 말합니다. 인문고전을 읽으면 인생을 살아갈 길이 보인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진정한 리더가 되기를 원한다면 인문고전 서적만 읽어서는 안된다고 하면서 거기에 사랑이 있어야만 한다고 세상의 리더가 될 수 있다고 말하더라고요.
 
그의 책의 일부를 인용해 보겠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깨닫기 위해서는 영안이 열려야 한다. 쉽게 말해서 하늘의 은총이 필요한 것이다. 하지만 인문고전은 제아무리 대단하다 한들 인간이 쓴 것에 불과하다. 때문에 간절한 마음으로 다가간다면 누구나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
한편으로 사랑이 간절함보다 훨씬 중요하다. 사랑은 곧 인문고전 독서의 목적과 관련된다. “나는 왜 인문고전을 읽는가라는 질문에 답을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천재가 되기 위해서, 창조적인 사고를 하기 위해서, 업무능력을 하기 높이기 위해서, 회사를 잘 경영하기 위해서, 부자가 되기 위해서 등등, 그렇다면 왜 천재가 되어야 하고, 왜 창조적인 사고를 해야 하고, 왜 업무능력을 높여야 하고, 왜 회사를 잘 경영해야 하고, 왜 부작 되어야 하는가? 여기에 대한 유일무이한 답은 사랑이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뿌리 깊은 나무아시죠? 드라마... 전 보다 말았습니다.
거기서 세종이 수많은 위험을 무릅쓰고 목숨을 내어 놓고 한글을 내어 놓았는가?
그가 애타게 백성을 사랑했기 때문이다.
바로 백성을 사랑했기 때문에, 그는 드라마의 표현으로 미쳐갔고, 그는 목숨을 내어 놓았고, 그는 자식을 내어 놓아야만 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세종이 집현전 학사들을 모아 놓고 한 말이 있습니다.
내 유일한 소망은 백성들이 원망하는 일과 억울한 일에서 벗어나는 것이요. 농사 짓는 마을에서 근심하면서 탄식하는 일이 영원히 그치는 것이요. 그로 인해 백성들이 살아가는 기쁨을 누리고자 하는 것이다. 너희들은 내 지극한 마음을 알아주었으면 한다
백성을 사랑한 그 마음을 알아달라는 것입니다. 사랑이 아니고 무엇으로 이것을 설명할 수 있겠습니까?
 
세종대왕이 한글을 내어 놓아서 지금까지 우리에 위대한 사람으로 남아 있는 것이 결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그를 위대한 사람으로, 존경받는 사람으로 만들었습니까?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백성들을 사랑했기 때문에, 그는 한글이 아니라 다른 어떤 것도 했을 것입니다.
어떻게 알 수 있느냐고요?
그의 이야기를 계속 들어보겠습니다.
세종은 오직 백성을 위하여 마음으로 유교에 찌든 사대부 지식인들의 격렬한 반대를 무릅써가면서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문자인 한글을 창조했다. 어디 그뿐인가, 정치, 경제, 과학, 의학, 군사, 법률, 학문, 눙업 등 백성들의 삶과 관련된 거의 모든 영역에서 백성을 위해 분투했고, 인류 역사상 그 어떤 왕도 따라오지 못할 찬란한 결과물들을 만들어냈다. 심지어는 여자 노비들을 위하여 100일에 달하는 출산휴가 제도를 만들었고, 같은 노비인 남편도 한 달 동안 아내를 돌볼 수 있도록 했다. 재위 기간 내내 고안, 노인, 병자, 죄수 같은 사회적 약자들의 기본권을 직접 챙겼음은 물론이다
 
무엇이 이렇게 그를 이끌었을까요?
사람을 진실로 사랑하는 마음이 없이는 결코 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다시 말씀으로 돌아가서 보면, 마태복음 514절에서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단순한 부탁이 아니라, 반드시 너희는 세상의 빛이 되어야 한다는 명령입니다.
사명입니다. 세상의 빛이며, 어두운 곳을 환하게 비출 사명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반드시 해야만 한다. 그게 한 사람이든, 열 사람이든, 수 만, 수 백만, 수 억의 사람이든 너희들은 반드시 세상의 빛이 되어야 된다는 강력한 명령입니다.
 
무엇으로 세상의 빛이 되기 원하십니까?
 
나는 가진 것이 없어서,
돈이 없고,
능력도 없고,
권력도 없고,
힘도 없어서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이렇게 말하시겠습니까?
 
아니요. 그렇게 말할 수 없습니다. 그러한 핑계를 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만 있으면 우리는 세상의 빛이 될 수 있기 때문에 그러한 핑계를 할 수 없습니다. “사랑만 있으면 누구나 세상의 빛으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예수님 또한 그렇게 실제로 사셨습니다.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이 그를 세상의 빛으로 만드셨습니다.
사랑하는 마음이 그를 고아에게 나아가게 했습니다.
사랑하는 마음이 그를 과부에게로, 죄인 세리에게로, 보잘 것 없는 어린아이에게로 나아가게 했습니다.
사랑하는 마음이 배신 때리고 도망쳐버린 제자들에게로 나아가게 했습니다.
사랑하는 마음이 자기를 저주하면서 자신의 길로 가버린 베드로에게로 나아가게 했습니다.
 
그리고 그에게 빛이 되셨고, 다시 가야할 길을 보여주셨습니다.
 
베드로가 가야 할 길을, 제자들이 가야 할 길을, 고아들이, 과부들이 가야 할 길의 빛이 되시기 위해서, 자신을 배신하고, 저주하고, 세상이 보잘 것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나아가셨습니다.
 
사랑하는 마음이 그를 세상의 빛으로, 소금으로, 섬김으로 자리로 나아가게 했습니다.
 
(좀 쉬었다가.....)
사랑하는 마음을 갖는데 우리에게 뭐가 필요합니까? 우리에게 필요한 무엇이 또 필요하나요?
 
우리는 때가 되어 죽음을 맞게 됩니다. 그 때 하나님 앞에 섰을 때, 너는 왜 사람을 사랑하지 않음으로서 세상에 빛으로, 등대로 살아가지 않았느냐?라고 물으실 때,
 
저는 돈 없어 사랑하는 마음을 가질 수 없다고 하실 것입니까?
저는 능력이 없어서 사랑하는 마음을 가질 수 없었습니라고 말하시겠습니까?
저는 권력이 없어서
저는 좋은 회사의 사장이 아니어서
저는 목표로 하는 것을 다 아직 다 이루지 못해서 사랑하는 마음을 가질 수 없었습니다.
이러한 핑계는 통하지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세상의 빛으로 살아가라고 말씀하시면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사랑하는 그 마음뿐이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렇게 또 핑계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사랑을 몰라주면 어떻게 합니까?
내가 사랑했는데, 그 사람이 내 사랑을 몰라주면 어떻게 합니까?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마태복음 5
16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우리의 착한 행실은 진정 사랑하는 그 마음을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진정 사랑의 마음을 가지고 있으면, 우리의 사랑의 마음은 착한 행실로 세상을 비추게 될 것이며, 나아가 세상 사람들이 우리의 착한 행실을 보며 빛을 보았다고 말하게 될 것입니다.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만 있으면, 빛이 되어 사람에 앞에 비출 수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우리의 사랑의 행실을 보고 우리안에 그들을 인도할 빛이 있음을 그들로 알게 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마음으로 우리 각자의 빛을 사람 앞에 비추게 될 때 하나님은 영광 받으십니다.
하나님의 이름이 높아지십니다.
 
하나님의 영광 받으심이,
여러분이 좋은 대학에 가는 것에,
여러분이 좋은 직장에
여러분이 돈 많이 버는 것, 그것 자체에 있지 않음을 반드시 기억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영광 받으심은 우리가 사람들을 사랑하여, 그 사랑의 착한 행실로, 그들을 섬기며 나아갈 때 드러납니다.
 
세상의 빛이 되십시오.
사명입니다.
사랑하는 마음만 있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예수님이 우리에게 보여주신 것이며, 우리를 부른 부르심이며, 우리에게 감당하라고 주신 미션입니다.
 
결론.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우리 모두는 세상의 빛입니다.
무엇으로 세상의 빛이 될까는 여러분 각자에게 주신 하나님의 부르심안에 있습니다.
어떠한 모습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돌리기 원하든지 그 안에 사람을 사랑하는 그 마음이 꼭 필요함을 기억하기 원하니다.
진정한 빛,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세상의 빛, 등불이 되고 싶다면 사람을 사랑하는 그 마음을 마음에 두고 살아가기 바랍니다.
 
또한 진정으로 그러한 꿈을 꾸는 우리 청소년부 친구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을 축복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