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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iday, October 25, 2013

한 날 묵상 - 막7:1-23 <바리새인들의 마음에 무엇이 가득 담겨 있는가? 형 식, 외식, 전통입니다. 그래서 그들의 문제는 마음입니다. 바리새인도 우리 도 보이는 것을 씻지 말고 마음을 씻어야 합니다. 마음을 씻기를 할 때 마음 에 거룩이 채워진다. 마음에 거룩이 채워질 때 행동 또한 거룩해진다.>

한 날 묵상 - 막7:1-23 <바리새인들의 마음에 무엇이 가득 담겨 있는가? 외식, 전통이 가득하였습니다. 그런데 바리새인들의 문제는 드러나는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의 문제는 마음이었습니다. 보이는 것을 씻지 말고 마음을 씻으라. 마음을 씻기를 할 때 마음에 거룩이 채워진다. 마음에 거룩이 채워질 때 행동 또한 거룩해진다. 나는 내 안에 무엇을 담고 있는가? 나는 내 마음을 잘 씻고 있는가?>

1. 예수님의 지상 사역의 또 다른 한 축을 오늘 본문을 통해서 보게 됩니다.

2. 예수님은 복음을 통해(복음을 주시고) 새생명을 주시기 위해, 불쌍히 여기는 마음으로 힘없는 약자들을(섬기고 치료하시고) 위해 참 소망을 주시기 위해 이 땅에 오셨습니다.

3. 그리고 예수님은 율법으로 인하여 돌같이 굳어버린 마음을 가진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의 마음을 깨뜨려 온전한 율법의 완성을 이루기 위해 힘들고 어려운 사역을 감당했습니다.

4. 오늘 본문을 기점으로 예수님을 시험하며, 죽이기 위해 중상모략하는 한 축의 인물들이 본격적으로 등장합니다.

5. 그들이 예수님을 넘어뜨리기 위한 시비의 주제는 율법입니다. 모세의 율법을 제대로 지키지 않는 일들을 통해서 예수님께 시비를 걸고, 예수님을 시험하고, 예수님의 제자들을 율법으로 낱낱이 파헤지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5장 17절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

 예수님께 제대로 그들은 걸려드렸습니다. 그들이 율법을 가지고 예수님께 나아올 때 예수님은 그들의 나아옴이 진정 기쁘셨을 것이 분명합니다.

6. 5절에서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예수께 묻되"라는 말씀을 통해서 스스로 판단하기에 예수님의 제자들이 율법에 벗어나지 않았느냐고 묻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당신의 제자들은 장로의 전통을 준행하지 아니하고 부정한 손으로 떡을 먹나이까"

7. 예수님을 이들의 질문에 대답을 이사야의 말씀으로 대답하십니다.
 "너희들은 문제는 마음이다". - 율법의 문제를 율법으로 대답하시는 예수님
 6-7절 "이사야가 너희 외식하는 자에 대하여 잘 예언하였도다 기록하였으되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

8. 그들의 문제는 하나님을 경배하지 않는 것에 있음이 아닙니다. 그들의 문제는 하나님보다 하나님의 계명으로 하나님을 경배한 것이 문제였습니다.

9. 하나님보다 모세를 통해서 주신 율법이 더 컸습니다. 바로 하나님을 경배하지 않고 율법이라는 우상을 숭배하고 있는 것입니다.

10. 그렇게 하나님이 없이 하나님의 계명을 더 앞세우다보니 결국에는 모세에게 율법을 주신 하나님의 의도와 뜻을 제대로 헤아리지 못하고, 결국은 그들 스스로 만들어버린 전통으로 하나님을 경배하는 모순에 빠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8절 "너희가 하나님의 계명은 버리고 사람의 전통을 지키느니라"

11. 결국 이러한 모습은 부모를 공경하라는 십계명의 말씀을 계명으로 지키지 않고 스스로 만든 전통으로 살아가는 모습으로 나아가게 됩니다.
 10-11절 "모세는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고 또 ... 너희는 이르되 사람이 아버지에게나 어머니에게나 말하기를 내가 드려 유익하게 할 것이 고르반 곧 하나님께 드림이 되었다고 하기만 하면 그만이라 하고"

12. 부모를 공경하기 부모님의 필요을 채워드려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부모님께 드릴 몫을 고르반이라 함을 통해 하나님께 드리고 부모님게 드리지 않게 된 것입니다.

13. 결국 그들은 12절 "자기 아버지나 어머니에게 다시 아무 것도 하여 드리기를 허락하지 아니하"게 되었습니다.

14. 그들의 말씀을 잘못 적용한 전통이 하나님의 말씀을 폐하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러한 잘못된 율법을 완전하게 하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15.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잘 깨달아야 합니다.

16. 오늘 우리도 우리에게 주어진 성경 말씀을 잘못 이해하며 적용하며 깨달을 때 하나님보다 성경으로 경배할 수 있습니다.

17. 또한 성경 말씀을 잘못 이해하고 적용함으로 상대방을 이해하지 못하고 포용하지 못하고, 본질적인 것이 아닌 것에 사랑을 할 여유를 갖지 못하게 될 수 있습니다.

18. 이러한 모습이 전통이 되어 버릴 수 있습니다. 한국 교회안에 지금 신학이라는 학문이 전통의 노릇을 하고 있습니다. 본질적인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서로를 용인하지 못하고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19. 이것 조심해야 합니다. 그래서 더욱 올바른 깨달음이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을 말씀하십니다. 14절 "무리를 다시 불러 이르시되 너희는 다 내 말을 듣고 깨달으라"

20. 말씀을 읽고 묵상하며 적용하면서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행한 오류의 빠지지 않기 위해서 우리는 이어지는 예수님의 말씀을 주목해야 합니다.

21. 우리의 겉이 아니라 마음을 씻어내야 합니다. 속은 탐욕과 거짓으로 가득하여도 겉은 반지르하게 살 수 있습니다.

추가) 로마서 7장 18절, "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
 
"갈고 닦고 기경해야 할 내 마음"

22. 목회자가 늘 조심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아무도 보고 있지 않을 때 목회자다움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때에 하나님이 보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23. 많은 사람들앞에 목사인척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혼자 있을 때에도 진정한 목회자가 되어야 합니다.

24. 이는 겉의 문제가 아니라 마음의 문제입니다. 겉만 씻을 뿐 마음을 씻지 못하는 바리새인들을 보게 된다.

25. 예수님의 말씀이 기록된 14-19절까지 말씀의 요지가 바로 이것입니다.

26. "밖에서 들어가는 것이 능히 사람을 더럽게 하지 못함이다. 사람에게서 나오는 그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27. 내 안에 지금 무엇이 있는가? 그것이 밖으로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28. 그래서 바울은 로마서 12장 2절에서 이런 말씀을 우리에게 하고 있습니다.
 롬 12:2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29.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말씀이 가지고 있는 선함, 기쁨, 온전함을 올바르게 깨닫고 분별할 수 있을 때 우리 마음은 새롭게 변화를 받을 수 있습니다.

30. 하나님의 주신 말씀에는 율법적으로, 문자적으로 의미하는 것 이상이 있습니다.

31. 예수님은 자주 비유를 말씀하셨습니다.

32. 우리가 영적인 예배를 온전히 드릴 때 성령님은 우리와 함께 하시고, 성령님은 우리에게 분명한 깨달을 할 수 있도록 도울 것입니다.

33. 바리새인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들의 선진들이 외식함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외식함을 그대로 본받는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의 모습을 보게 되다는 것입니다.

34. 그들에게 무엇이 문제입니까? 깨닫지 못하는 마음이 문제입니다. 그래서 마음에 온전한 말씀을 담지 못했고, 그래서 율법은 알지만, 외곡하였고, 온전한 뜻안에서 행하지 못한 것입니다.

35. 마음의 변화는 말씀의 깨달을 통해서 옵니다. 
14절 "너희는 다 내 말을 듣고 깨달으라"
18절 "너희도 이렇게 깨달음이 없느냐"

36. 만약 우리가 온전히 말씀을 깨닫지 못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어설프게 이해하고 적용한다면, 더 큰 왜곡과 상대방에게는 더 큰 상처를 주게 됩니다.

37. 율법을 외곡한 상황에서는 그들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들은 무엇입니까? 속에서 나오는 악한 것들은 무엇입니까?
21절 "속에서 곧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 곧 음란과 도둑질과 살인과"
22절 "간음과 탐욕과 악독과 속임과 음탕과 질투와 비방과 교만과 우매함이니"

38. 그런데 만약 믿음의 사람들이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깨닫지 못하며, 믿지 않는 사람들이 행하는 것보다 더 큰 상처와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행위를 할 수 있습니다.

39. 믿음의 사람들은 깨어 조심해야 합니다. 특별히 하나님의 주신 이 거룩한 말씀을 잘 분별하여 순종해야 합니다.

40. 외식함이나 가식이 먼저가 아닙니다. 어설픔 흉내가 먼저가 아닙니다. 진정성이 먼저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진정한 마음이 가장 큰 것입니다.

41. 지금도 함께 하시고 역사하시는 성령님께 나의 외식함이나 율법의 전통이 아니라 내 전부인 마음을 드리는 것이 바로 새롭게 변화받는 길입니다.

42. 이 찬양이 생각납니다. "성령님"
  성령님 내 마음 드립니다
  지금 이시간 충만하게 임하옵소서
  누구도 거부할 수 없는
  주의 임재로 나를 둘러 덮으소서

  후렴
  
  십자가를 바라보며 온 맘 다해 예배하니
  사랑스런 성령님 임하소서
  십자가를 바라보면 온 맘 다해 예배하니
  사랑스런 성령님 충만하게 임하소서

43. 형식이 아니라, 전통이 아니라, 후패한 속사람이 아니라, 새롭게 변화된 마음입니다.

44. 나의 전부인 마음을 주님께 내어 드리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45. 할렐루야!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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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 은혜의 복음이란 무엇인가? P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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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리새인들과 또 서기관  중 몇사람과 예수님의 대화

1절 "바리새인들과 또 서기관 중 몇이 예루살렘에서 와서 예수께 모엿들었다가"
=> 예루살렘으로부터 무엇을 하기 위해 내려왔는가? 그들의 발걸음의 의미는? 그다지 선하지 못하다. 순수하지 못하다. 무슨 꼼수를 쓰기 위해 내려 왔을 것이다.

겉모습을 씻는 것을 집중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2절 "그의 제자 중 몇 사람이 부정한 손 곧 씻지 아니한 손으로 떡 먹는 것을 보았더라"
3-4절 (손을 잘 씻지 않고서는 음식을 먹지 아니하며 ... 물을 뿌리지 않고서는 ... 씻음이러라"

5절 "이에 바래시인들과 서기관들이 예수께 묻되"

겉을 신경쓰는 것과 지금까지 행해왔던 전통과 연결시키는 바리새인들과 서기관
5절 "어찌하여 당신의 제자들은 장로들의 전통을 준행하지 아니하고 부정한 손으로 덕을 먹나이까"

예수님의 대답
6절 "이르시되"

첫번째, 전통을 내세우는 그들에 율법의 말씀을 통하여 그들의 외식을 문제를 지적하신다.
6절 "이사야가 너희 외식하는 자에 대하여 잘 예언하였도다"
6-7절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
=> 이스라엘 백성들은 형식적으로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망하는 백성이 되었다. 입술로는 찬양하며 예배하되 마음을 그렇지 못하엿다. 그들은 헛된 경배를 하였다.

=> 하나님의 계명을 온전히 이해하며 실천하기 바란다. 하나님의 경외하는 것이 무엇이며 하나님의 율법의 말씀을 주신 것을 잘 이해하고 실천하며 행하기 원하셨다.

=> 그런데 지금 바리새인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지 못하고 있다. 그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형식으로 하나님을 경배하고 있는 것이다.
8절 "너희가 하나님의 계명을 버리고 사람의 전통을 지키느니라"

둘째, 그들은 지금 전통에 얽매혀 형식적으로 율법을 지키면서 하나님의 계명을 참된 의미를 깨닫지 못할 뿐 아니라 거기에서 멀리 떠나 있음을 보게 된다.
9절 "또 이르시되"
      "너희가 전통을 지키려고 하나님의 계명을 잘 저버리는도다"
13절 "너희가 전한 전통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폐하며"

  - 예를들어, 모세의 율법 "네 부모를 공경하라"(10절) 또 "아버지나 어머니를 모욕하는 자는 죽임을 당하리라"(10절) 하였는데, 너희들은 이 말씀을 온전히 지키지 못하였다는 것이다.

11절 "너희는 이르되 사람이 아버지에게나 어머니에게나 말하기를 내가 드려 유익하게 할 것이 고르반 곧 하나님께 드림이 되었다고 하기만 하면 그만이라 하고"

12절 "자기 아버지나 어머니에게 다시 아무 것도 하여 드리기를 허락하지 아니하여"

 셋째, 겉만 씻을 뿐 마음을 씻지 못하는 바리새인들을 보게 된다.
14-19절 말씀입니다.
 - 밖에서 들어가는 것이 능히 사람을 더럽게 하지 못함이다.
 - 사람에게서 나오는 그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의 외식함을 그대로 본받는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의 모습을 보게 된다.

* 무엇이 문제인가?
깨닫지 못하는 마음이다. 그래서 마음에 온전한 말씀을 담지 못했다. 그래서 율법은 알지만, 외곡하였고, 온전한 뜻안에서 행하지 못했다.

14절 "너희는 다 내 말을 듣고 깨달으라"
18절 "너희도 이렇게 깨달음이 없느냐"


* 율법을 외곡한 상황에서는 그들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들은 무엇인가? 속에서 나오는 악한 것들은 무엇인가?
21절 "속에서 곧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 곧 음란과 도둑질과 살인과"
22절 "간음과 탐욕과 악독과 속임과 음탕과 질투와 비방과 교만과 우매함이니"

===
계명은 깨달음을 통해 행하라고 주신 것이다.
계명을 마음에 담아 행하자.

===
찬양 - 성령님
성령님 내 마음 드립니다
지금 이시간 충만하게 임하옵소서
누구도 거부할 수 없는
주의 임재로 나를 둘러 덮으소서

후렴

십자가를 바라보며 온 맘 다해 예배하니
사랑스런 성령님 임하소서
십자가를 바라보면 온 맘 다해 예배하니
사랑스런 성령님 충만하게 임하소서

찬양 - "내 마음에 가득채운"
내 마음을 가득 채운 주 향한 찬양과 사랑 어떻게 표현할 수 있나
수 많은 찬양들로 그 맘 표현할 길 없어 다시 고백 합니다

주 사랑해요 온 맘 다하여 
말로 다 할 수 없어 오 주 사랑해요 찬양 받아 주소서

수 많은 멜로디와 찬양들을 드렸지만 다시 고백하기 원하네
주님은 나의 사랑 삶의 중심 되시오니 주를 찬양합니다

주 사랑해요 온 맘 다하여 말로 다 할 수 없어

오 주 사랑해요 찬양 받아 주소서

주님 사랑 다시 고백하는 새 날 주심 감사해요
주님 사랑 다시 고백하는 찬양 주심 감사해요

주님 사랑 다시 고백하는 새 날 주심 감사해요
주님 사랑 다시 고백하는 찬양 주심 감사해요

주 사랑해요 온 맘 다하여
말로 다 할 수 없어
오 주 사랑해요 찬양 받아 주소서

주 사랑해요 온 맘 다하여
말로 다 할 수 없어
오 주 사랑해요 찬양 받아 주소서

주님 사랑 다시 고백하는 새 날 주심 감사해요
주님 사랑 다시 고백하는 찬양 주심 감사해요

주님 사랑 다시 고백하는 새 날 주심 감사해요
주님 사랑 다시 고백하는 찬양 주심 감사해요 

===
참고도서
1. 마음 전쟁 -
2. 하나님의 모략 p467. 변화된 신념은 행동과 상품을 바꾼다  "우리는 다가가 섬기는 이들의 마음을 바꾸는데 집중해야 한다"
     P488 "제자들로 하여금 사고와 감정과 행동을 지배하던 구습과 그 "노예" 상태에서 벗어나는 것이다(요8:34, 롬 6:6).
===
참고 - 동물이 돌이 되는 호수
http://blog.naver.com/lemonade3939?Redirect=Log&logNo=140198422578

Wednesday, June 19, 2013

분노 - 국제제자훈련원 목적이 이끄는 매일의 묵상


분노를 다스리기로 결단하라

“[사랑은] … 성내지 아니하며” (고전 13:5)
성경은 “사랑은 성내지 않는다”라고 말한다. 이는 “사랑은 결코 화를 내지 않는다.”라는 말이 아니다. 사실 때때로 사랑의 행위에는 화가 나는 것도 포함된다. 예수님도 아버지의 집인 성전이 시장처럼 된 것을 보시고 화를 내셨다.
우리는 누군가를 사랑하면서 동시에 그 사람에게 화가 날 수 있다. 그 분노는 의롭게 보일 때도 있고 이기적으로 보일 때도 있지만, 보통은 우리가 제일 사랑하는 사람들이 우리를 가장 화 나게 만드는 사람들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생물학적 구성에 화를 내는 능력을 넣으셨다. 화가 나는 것은 죄가 아니다. 그것이 파괴적인 행위로 자신을 몰고 가도록 허락하는 것이 죄가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감정 그 자체는 죄가 아니다. 성경은 하나님도 분노하신다고 말한다.
화가 나는 것은 피할 수 없지만, 그것을 조절하는 법은 배울 수 있다. 분노를 다스리기로 결단하면 그것은 ‘의무’라기보다는 ‘자산’이 될 것이다. 즉 “그게 바로 나야. 화가 나는데 어떡해? 난 화를 참을 수 없어.”라고 하는 것처럼 분노에 대해 변명하고 정당화하는 것을 그치게 된다.
분노는 통제될 수 있다. 당신은 누군가와 말다툼이 시작되어 분위기가 고조되고 있는데, 바로 그 때 전화벨이 울렸던 경험이 있는가? 자신이 화를 얼마나 빨리 다스릴 수 있는지 보라! 당신은 자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분노를 훨씬 잘 통제할 수 있다. 화를 다스리기로 결단하라. 그리고 이렇게 고백하라. “저는 하나님께서 도와주셔야 화를 다스릴 수 있습니다.”
다음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보자.
  • 예수님은 아버지의 집인 성전이 시장처럼 된 것을 보시고 화를 내셨지만, 예수님을 ‘화 내는 분’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는 “그게 바로 나야. 화가 나는데 어떡해? 난 화를 참을 수 없어.”라는 주장에 대해 무엇을 말해주는가?
  • 당신이 마지막으로 버럭 화를 낸 때는 언제인가? 오늘의 교훈을 참고로 앞으로는 그 화를 다르게 해결할 수 있겠는가?
분노의 댓가를 기억하라

“어리석은 자는 성급하게 굴고 신중한 사람은 오래 참는다.” (잠 14:17, 공동번역)
성경은 통제되지 않은 분노에는 늘 가격표가 붙어 있다고 말한다. 그것을 다음 구절과 연관 지어 확인해보라.
  • “분을 쉽게 내는 자는 다툼을 일으켜도 노하기를 더디 하는 자는 시비를 그치게 하느니라” (잠 15:18)
  • “노하는 자는 다툼을 일으키고 성내는 자는 범죄함이 많으니라” (잠 29:22)
  • “어리석은 자는 성급하게 굴고 신중한 사람은 오래 참는다.” (잠 14:17, 공동번역)
성경은 말한다. “자기 가족을 괴롭히는 사람은 얻는 것이 없으며 미련한 자는 지혜로운 사람의 종이 될 것이다.” (잠 11:29, 현대인의 성경)
화를 참지 못할 때마다 우리는 지는 것이다. 번번히 분통을 터뜨리면 될 일도 안 된다. 영어에서 위험(danger)은 분노(anger) 앞에 d만 더 붙인 것이다. 분노는 위험하다. 분노 때문에 우리는 모든 것을 잃을 수도 있다. 명성, 배우자, 직장, 건강까지.
몇 년 전에 읽은 인간 심장에 대한 의학 연구에 따르면, 삶 속에서 적의나 반감을 줄이면 수명이 연장된다고 한다. 부모들이여, 기억하라. 우리는 분노를 통해 아이들에게 자극을 줌으로써 단기적인 이득(자녀가 두려움 때문에 순종하는 것)을 얻을 수 있을지는 모르나, 장기적인 관점에서는 우리가 지게 될 것이다. 분노는 늘 스스로 소외되도록 만들기 때문이다. 분노는 사람들을 끌어들이기보다는 쫓아내기 마련이다. 또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는 대신, 분노는 사람들로 하여금 당신의 필요에 대해 냉담하고 당신에 대해 화가 나게 만든다.
분노를 다스리는 법 중 하나는 그것 때문에 당신이 어떤 대가를 치르게 되는지 이해하는 것이다.
다음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보자.
  • 과거에 분노는 당신의 의사 결정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가?
  • 과거에 당신은 분노 때문에 인간 관계에서 어떤 대가를 치렀는가? 현재의 인간 관계에는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가?

“어리석은 자는 자기의 노를 다 드러내어도 지혜로운 자는 그것을 억제하느니라” (잠 29:11)
화가 났을 때, 충동적으로 반응하지 마라. ‘참음’은 화를 통제하는 데 훌륭한 도구이다. 이는 무한정 참으라거나 심지어 하루를 넘기라는 말이 아니다. 성경도 화가 난 상태로 잠자리에 들지 말라고 말한다. 내가 말하는 ‘참음’은 5분이다.
화가 나기 시작하면, 몇 분 동안 ‘타임 아웃’ 시간을 가지라. 잠시 상황에 대해 곰곰이 생각할 시간을 충분히 갖는 것이다. 잠시 멈춰 생각하지 않으면 잘못된 행동을 하기 쉽다. 반응하기 전에 심사 숙고해야 한다.
화가 나면 뒤로 물러서서 잠시 시간을 가지며 하나님의 관점에서 상황을 바라보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 성경에서 지혜로운 사람이 분노를 억제한다고 한 말에 주목하라. (잠 29:11) 이것을 현대적인 표현으로 바꾸면 “지혜로운 사람은 잠시 멈춰서 열을 식힌다.”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독립선언문을 쓴 토머스 제퍼슨은 이렇게 말했다. “화가 났다면, 입을 열기 전에 열을 세라. 화가 많이 났다면 일부터 백까지 세라.”
다음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보자.
화가 나는 이유를 이해하면 더 잘 인내할 수 있고, 심지어는 허물까지도 덮어줄 수 있게 된다. (잠 19:11) 다음과 같이 자신이 화가 나는 이유를 이해할 수 있게 도와주는 질문 세 가지를 던져보라.
  • 나는 왜 화가 나는가?
  • 내가 정말로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 그것은 어떻게 얻을 수 있는가?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엡 4:26a)
화를 푸는 데는 유익한 방법도 있고 해로운 방법도 있다. 예를 들어 때때로 우리는 자신의 분노를 인정하기보다 화가 난 상태에 머물려고 한다. 그러나 성경은 화가 났는데도 인정하지 않는 것은 거짓말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것은 죄이다.
분노가 꼭 잘못된 것은 아님을 명심하라. 분노는 그것을 부적절하거나 파괴적인 방식으로 표출했을 때만 잘못된 것이다. 목사로서 내 경험에 의하면, 우리 중 대부분은 두세 살 때 분노를 표현하는 법을 배웠으며, 어른이 돼서도 여전히 같은 방식으로 분노를 표현한다. 그러나 당연하게도, 지금은 이것이 통하지 않는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얻고자 했던 목표가 화를 내기 전보다 더 멀어지게 되는 방식으로 분노를 표현한다. 부적절하게 표현된 분노는 의도한 것과 정반대인 결과를 낳는다. 사람들을 향해 분노를 터뜨리면 변화를 지속시킬 수 없다. 더 많은 분노와 소외만 초래할 뿐이다. 그것을 알면서도 우리는 여전히 그렇게 한다.
분노는 결코 근본적인 문제가 아니다. 일반적으로 분노는 다음 세 가지 중 하나의 증상이다. 상처, 두려움, 또는 좌절. 이 세 가지 때문에 우리는 화가 난다. 그러므로 우리는 늘 잠시 멈춰 마음을 가라앉혀야 한다.
다음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보자.
분노의 근원을 이해하면 적절한 방식으로 반응하고, 결과적으로 분노로 인해 “죄를 짓지” 않게 된다. (엡 4:26) 잠시 멈춰 마음을 가라앉힐 때, 스스로에게 다음의 질문을 던져보라.
  • 내가 상처를 받았는가?
  • 내가 두려워하고 있는가?
  • 내가 위협을 느끼고 있는가? 아니면 뭔가 귀중한 것을 잃고 있는 것 같은가?
  • 내가 좌절했는가?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 (롬 12:2a)
행동하는 방식은 느끼는 방식에 의해 결정된다. 느끼는 방식은 생각하는 방식에 의해 결정된다. 행동 방식을 바꾸고 싶으면 사고 방식을 먼저 바꿔야 한다. 분노의 부적절한 관리가 습관화되어(툴툴대기, 울분 터뜨리기, 비난하기 등) 이를 바꾸고 싶다면, 먼저 정신을 개조할 필요가 있다.
가족상담가인 개리 스몰리는 스스로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지라고 제안한다. “나는 화를 내는 것을 즐기는가?” “화를 내면 내가 의도했던 결과가 나타나는가?” “동일한 결과를 좀더 효과적인 방법으로 얻을 순 없을까?” “나는 어떻게 달라질까?”
스몰리는 자신에게 편지를 쓰면서 그 답을 적고 6개월 동안 일주일에 한 번씩 (총 26번이 될 것이다) 큰 소리로 자신에게 읽어주라고 말한다. 또한 다른 사람 앞에서도 읽어보라고 말한다. 이렇게 하는 게 일이 많아 보일 수도 있겠지만, 당신은 이 습관을 바꾸는 것에 대해 얼마나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는가? 분노를 통제하는 것에 대해 얼마나 심각하게 여기는가?
나는 자신에게 쓰는 편지에 성경 말씀을 인용하기를 제안한다. 그러면 하나님의 말씀이 당신의 생각을 채우고,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게 될 것이다. 변화가 일어나는 것이다.
사실 분노하는 이들은 불안정한 사람들이다. 불안정할수록 더 많은 것들에 화가 나기 마련이다. 불안정할수록 더 예민해지고 더 짜증이 나게 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당신을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그리고 그리스도 안에서 당신이 얼마나 안전하고, 당신이 하나님께 얼마나 중요한지를 이해할 때, 당신은 화가 덜 나게 될 것이다.
다음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보자.
  • 에베소서 1장과 로마서 8장을 읽어보라. 이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그리고 우리가 그분 안에서 얼마나 안전한지 가르쳐줌으로써 분노를 방지하는 성경 말씀들이다.

Tuesday, April 23, 2013

한 날 묵상 - 막 1:40-45 <예수님의 병고침, 율법과 예수, 그리고 병고침 이후의 삶>

한 날 묵상 - 막 1:40-45 <예수님의 병고침, 율법과 예수, 그리고 병고침 이후의 삶>

1.  신이 있다는 것을 알면서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2.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하면서 하나님에 대해 잘 알려고 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3. 하나님에 대해서 알려하면서도 하나님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4. 하나님을 알되 제대로 아는 것이 중요한다.

5. 야고보의 형제 사도 요한은 요한복음에서 예수님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요한복음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요1:1)

6. 예수님도 말씀하십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지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요 14:9)

7. 예수님은 "그의 아들에 관하여 말하면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롬1:3) 나신 분이시다.

8. 예수님은 이처럼 율법의 약속의 말씀따라 이 땅에 오신 분이시다.

9. 이렇게 확실함에도 불구하고, 율법에 계시는 예수님을 율법에 정한데로 하지 않는다고 예수를 고발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10. 예수님은 결코 예수님은 율법 파괴자가 아니시다

11.예수님을 율법을 완성하러 오셨다.

12. 예수님은 율법의 말씀을 지킬 뿐 아니라 율법의 완전한 완성, 즉 의미를 온전히 세우기 위해 오셨다.  마태복음 5장 17-20절

17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
18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도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19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계명 중의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고 또 그같이 사람을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지극히 작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누구든지 이를 행하며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크다 일컬음을 받으리라
20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13. 오늘 본문에서도 예수님께서는 병든 나병환자를 고치시고(40절), 말씀하십니다. "삼가 아무에게 아무 말도 하지 말고 가서 네 몸을 제사장에게 보이고"(44절)

14. 예수님은 율법에 순종하였다. 나아가 예수님은 구약의 율법에 대해 온전한 해석자로 오셨습니다.

15. 율법을 주신 이유가 있다는 것입니다. 율법은 우리의 삶을 옭아매는 것이 아닙니다. 내 안에 있는 죄를 발견하는 도구로 율법을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

16. 율법을 통해 죄를 발견한 우리는 율법을 통해서 사랑을 받게 됩ㄴ디ㅏ.

17. 그래서 율법의 완성은 사랑입니다. 로마서 13장

8피차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 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느니라
9간음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탐내지 말라 한 것과 그 외에 다른 계명이 있을지라도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그 말씀 가운데 다 들었느니라
10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행하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니라

18. 예수님은 율법에 억매여 있는 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율법을 지키지 않는다고 하는 자들에게 대한 예수님은 질타합니다. 마가복음 7장 6-13절

6이르시되 이사야가 너희 외식하는 자에 대하여 잘 예언하였도다 기록하였으되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7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 하였느니라
8너희가 하나님의 계명은 버리고 사람의 전통을 지키느니라
9또 이르시되 너희가 너희 전통을 지키려고 하나님의 계명을 잘 저버리는도다
10모세는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고 또 아버지나 어머니를 모욕하는 자는 죽임을 당하리라 하였거늘
11너희는 이르되 사람이 아버지에게나 어머니에게나 말하기를 내가 드려 유익하게 할 것이 고르반 곧 하나님께 드림이 되었다고 하기만 하면 그만이라 하고
12자기 아버지나 어머니에게 다시 아무 것도 하여 드리기를 허락하지 아니하여
13너희가 전한 전통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폐하며 또 이같은 일을 많이 행하느니라 하시고


19. 율법은 외식함이 아니라 사랑함입니다.

20. 예수님을 율법의 말씀을 지키시면서 사랑을 위해 율법이 주어졌음을 말씀하십니다.

21. 예수님의 가르침을 본받아 율법아래 자유함으로 통해 사랑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아울러 율법의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의 사랑을 받으십시오.

22. 나아가 우리가 예수님의 사랑을 받은자로서 그 사랑의 노래를 선포할 수 있기를 원합니다.

23. "그 사람이 나가서 이 일을 많이 전파하여 널리 퍼지게 하니"(45절)

24. 오늘 우리가 불러야 할 노래는 내가 받은 사랑의 노래입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내게 오신 사랑을 노래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25. 할렐루야!

===
40절 한 나병환자가 예수께 와서 꿇어 엎드려 간구하여 이르되 원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나이다

41절 예수께서 불쌍히 여기사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시며 이르시되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하시니

42절 곧 나병이 그 사람에게서 떠나고 깨끗하여 진지라

44절 이르시되 삼가 아무에게 아무 말도 하지 말고 가서 네 몸을 제사장에게 보이고 네 깨끗하게 되었으니 모세가 명한 것을 드려 그들에게 입증하라 하셨더라

45절

Friday, December 14, 2012

한 날 묵상 - 갈 5:13-15 <'바보야 문제는 사랑이야' 오직 서로 사랑으로 종 노릇하라>


1. 사랑은 율법의 완성입니다. 모든 율법은 사랑으로 귀결됩니다. 그래서 우리를 향한 그리스도의 은혜가 더욱 값지게 됩니다.

2. 은혜입은 자들에게 율법은 은혜입기 이전과는 전혀 다르게 다가옵니다.

3. 바로 성령으로 믿음을 따라, 사랑으로 역사하는 믿음으로 하나님이 주신 말씀을 대하게 됩니다.

4. 사랑하라. 사랑하라. 죽도록 사랑하라.

5. 사랑의 노래는 일반 가요에서도 주요한 주제입니다. 그만큼 사랑은 사람들의 삶과 밀접합니다. 사랑없이는 못삽니다.

6. 사랑의 진정한 일방적 주는 사랑입니다. 사랑은 Give and Take가 아닙니다. 일방적 사랑입니다. 무조건적 사랑입니다.

7. 받을 사랑을 계산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 편에서는 아무런 조건 없이 사랑하는 것이며, 다른 편에는 아무 것도 요구하지 않는 것입니다.

8. 로마서 13장 8-10절에서는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라고 합니다.

9. 그리고 말합니다. 8절 "피차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 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이루었느니라"

10. 참으로 아름다운 말씀입니다. 10절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행하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니라"

11. 사랑이란 사랑의 대상을 깊이 생각하는 것입니다. 사랑의 대상이 되는 사람의 생각속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내 편에서는 사랑이라고 사랑의 대상에서도 사랑일 수 없습니다.

12. 이처럼 사랑은 이웃을 늘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13. 오늘 본문에서는 말합니다.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 노릇하라"(13절)

14. 갈 5장 2-12절은 성경이 가르치는 사랑을 각 개개인이 어떠한 힘으로 행해야 하는지를 말씀하고 있다면, 13-15절은 공동체안에서 사랑을 실천하는 방법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다.

15. 앞서 갈 5:2-12절에서 사랑은 성경이 우리에게 가르치며 행해야 하는 핵심 주제임을 말씀드렸습니다.

16. 그리고 우리는 사랑의 전사가 되어 작은 누룩이지만 온 덩이에 퍼지는 사랑의 누룩이 되어야 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17. 그리고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그렇다면 공동체 안에서, 우리 안에서 사랑을 효과적으로 실천하는 방법은 무엇인가?

18. 그 방법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나니 서로 사랑하기를 종노릇하라는 것입니다.

19. 우리는 서로 사랑하기를 종노릇하기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다.
 13절 "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 노릇하라"

20. 율법은 사랑으로 완성됩니다. 14절 "온 율법은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 같이 하라 하신 말씀에서 이루어졌나니"
 예수님이 친히 이 땅에 오셔서 우리들에게 율법이 주는 어렵지만 고귀한 말씀일 친히 이루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똑같이 사랑할 수 있음을 보여주셨습니다. 이게 바로 제자의 삶입니다.

21. 한쪽의 일방적은 사랑이 온전히 이루어진다면, 이는 사실 쌍방이 모두 일방적 사랑을 실천하게 되는 것입니다.

22. 나도 내 아내에게 일방적 사랑을 하고, 아내도 나에게 일방적 사랑을 한다면, 이는 참으로 쌍방이 온전한 사랑을 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23. 이러한 사랑이 13절이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는 사랑의 방법입니다.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 노릇하라"

24. 이 시대에 진정 사랑이 필요합니다. 사랑이면 허다한 허물을 덮을 뿐 아니라 공의와 공법을 하수처럼 흐르게 할 수 있습니다.

25. 모든 문제의 해결은 사랑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사랑으로 모든 것을 바라보면 모두에게 기쁘고 감사하게 마무리 되지 못할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26. "바보야 문제는 사랑이야" 이 말이 가슴에 팍 와닿습니다.

27. 그래서 진정 십자가 사랑이 위대합니다. 바보처럼 진정 그 분은 사랑으로 모든 율법의 말씀을 이루셨기 때문입니다.

28. 우리 모두 피차 서로 사랑으로 종노릇하여 율법의 말씀을 완성되는 삶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29. 진정 사랑합니다.

30.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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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B에서

한 날 묵상 - 갈 5:13-15 <'바보야 문제는 사랑이야' 오직 서로 사랑으로 종 노릇하라>
사랑의 진정한 일방적 주는 사랑입니다. 받을 사랑을 계산하는 것은 사랑이 아닙니다. 내 편에서는 아무런 조건 없이 사랑하는 것이며, 다른 편에는 아무 것도 요구하지 않는 것입니다.

 로마서 13장 8절에서 "피차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 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이루었느니라"말씀합니다.

 이처럼 사랑이란 사랑의 대상을 깊이 생각하는 것입니다. 사랑의 대상이 되는 사람의 생각속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내 편에서는 사랑이라고 사랑의 대상에서도 사랑일 수 없습니다.

 이처럼 사랑은 이웃을 늘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우리는 이러한 사랑을 위해 부르심을 입었습니다. 갈 5:13절 "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 노릇하라"

  그런데, 한쪽의 일방적은 사랑이 온전히 이루어진다면, 이는 사실 쌍방이 모두 일방적 사랑을 실천하게 되는 것이 참으로 요묘합니다.

 나도 내 아내에게 일방적 사랑을 하고, 아내도 나에게 일방적 사랑을 한다면, 이는 참으로 쌍방이 온전한 사랑을 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요. 이러한 사랑이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 노릇"하는 사랑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문제의 해결은 사랑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사랑으로 모든 것을 바라보면 모두에게 기쁘고 감사하게 마무리 되지 못할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바보야 문제는 사랑이야"
 이 말이 가슴에 팍 와닿습니다.

 사랑하는 청소년부 친구들 우리 우리 모두 이런 사랑 만들어갸 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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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말씀 - 히브리서 10장 24-25절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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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마음 문을 여는 열 가지 무기

주위에 마음 문이 닫혀있는 사람이 있으세요? 
그 사람 때문에 힘이 드세요? 
마음 문만 연다는 악마가 천사로 변하는 
경험을 하게 될 겁니다.
그 사람 때문에 오히려 행복할 겁니다.

그래서 사람의 마음을 얻는다는 것은
모든 것을 얻는 것을 의미합니다.

다음과 같은 무기를 사용해 보세요.

1. 환한 미소
관계가 불편하다고 인상 쓰면 점점 더 악화됩니다.

2. 먼저 건네는 가벼운 인사
상대방이 인사하기를 기다리지 말고
밝은 목소리로 먼저 인사하세요.

3. 구체적인 칭찬
틀에 박힌 칭찬보다는
상대방의 변화에 민감한 칭찬이 효과적입니다.

4. 상대방에 대한 경청
귀로만 듣지 말고 눈과 몸짓으로도 들으세요.

5. 즉각적인 작은 배려
요청하거나 표현하기 전에 먼저 필요를 채워줘 보세요.

6. 낙심한 순간의 격려
힘들어 할 때 잘 할 수 있다는 용기를 줘 보세요.

7. 긍정적 리액션
상대방의 말이나 행동에 대하여
긍정적으로 반응하면 자연스럽게 하나가 됩니다.

8. 미러 효과
호감을 느끼는 사람에게는
무의식적으로 행동을 따라하는 심리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사람에게 호감을 갖습니다.
상대방이 물을 마시거나 깍지를 끼는 것 같은 행동을
자연스럽게 따라해 보세요.

9. 마음이 담긴 작은 선물
선물만큼 강력한 무기는 없지 않을까 싶네요.

10.기도
그래도 안 된다구요?
위의 것들을 실천하면서 매일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해 보세요.

가장 중요한 것은
그 사람 때문에 불편하고 싶지 않다는 마음보다는
그 사람과 좋은 관계에 있고 싶다는 간절한 소원을 갖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은 당신이 먼저 마음의 문을 여는 것을 의미합니다.


-탁영철님이 담벼락에 남겨주신 글-








Friday, December 7, 2012

내 마음의 밥상 - 롬 1:8-17절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간절한 바램 - 나는 할 수 있는대로>

내 마음의 밥상 - 롬 1:8-17절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간절한 바램 - 나는 할 수 있는대로>





15절 "그러므로 나는 할 수 있는 대로 로마에 있는 너희에게도 복음을 전하기를 원하노라"

17절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1.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일을 해 보자.

2. 그런데, 그게 무엇이면 좋을까?

3. 바울은 참으로 할 수 있는 것이 많은 사람이었다. 학자로서, 선생으로, 어느 면에서 보아도 열심이 있는 자였다.

4. 바울은 그래서 복음 전도자의 삶에도 언제나 최선을 다했다.

5. 자기 목숨을 아끼지 않고, 할 수 있는대로 진짜 좋은 복음이 많은 사람들에게 복음이 되도록, 열심히 살았다.

6. "할 수 있는대로" 그는 "로마에 있는" 그들에게도 "복음을 전하기" 원했다.

7. 할 수 있는대로...

8. 믿음의 사람은 이 땅 가운데 참으로 성실하게 살아야 한다.

9. 성경에 게으름에 대한 책망은 참으로 많다. 열심하지 않고, 성실하지 않고, 최선을 다하지 않는 크리스찬은 아직 믿음에 참 맛을 알지 못하는, 더 가야 하는 자들이다.

10. 하나님의 자녀로, 예수님의 제자로, 성령과 함께 하는 자들은 복음안에서, 복음을 위해, 복음 들고 그 어떠한 산이라도 넘는 자들이다.

11. 하나님이 주신 각기 다른 하나님 나라를 위한 부르심이 믿는 자 모두에게는 있다.

12. 한 사람도 예외일 수 없다.

13. 그리고 그들은 그 부르심에 앞에 최선과 열심과 "할 수 있는 대로"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 붇는 자가 되어야 한다.

14. 목회자로서, 선교사로서, 회사 CEO로서, 직장인으로, 전문인으로서, 운동인으로서, 예술인으로, 과학인으로, 가정주부로서, 어느 곳도 예외 인 곳은 없다.

15. 단 하나,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일이라면, 절대적으로 우리가 가지 못하거나, 최선을 다하지 않아야 할 이유가 결코 없는 것이다.

16. 오늘도 내가 앉아 있는 그곳에서, 내가 서 있는 그곳에서, 나의 정신이 깨어 있는 어는 곳이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것을 다하는 간절한 바램"이 우리 안에 가득한 한 날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17. 이 시간 내가 오늘 어디에 앉아 있게 되는지, 어디에 서 있게 되는지 한 번 하루의 일정을 생각해 보자. 그리고 그곳에 할 수 있는 최선을 것을 다하도록 다짐해보자.

18. 무엇보다 그 매 순간 내 영과 정신이 깨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할 수 있는 최선의 지혜를 갖는 상상을 해 보자.

19. 하루가 참으로 감사와 은혜가 넘치게 될 것이다.

20. 할렐루야~~~. 아멘.

Thursday, November 29, 2012

한 날 묵상 - 갈 4:21- 5장 1절 <우리를 자유롭게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이제는 굳게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1. 우리는 어느때 자유할 수 있는가?

2. 율법안에 있을 때 결코 자유할 수 없다.

3. 은혜 안에 있을 때 자유할 수 있다.

4. 법은 우리를 억압하려고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를 지키려고 있다. 결국 법안에 자유할 수 있으련 법이 있는 목적을 깊이 알아야 한다.

5. 율법안에 있으면 우리는 결코 죄 아래 있을 수 밖에 없다. 율법에 완벽한 사람은 결코 없기 때문이다.

6. 그렇지만 우리는 여전히 율법을 떠나서는 살 수 없지만, 율법을 초월하여 자유할 수 있다. 은혜안에 거하기 때문이다.

7. 예수님은 우리게 참 자유를 주셨다. 진정한 자유를 주시기 위해서 자유를 주신 것이다.
 5장 1절

8. 우리는 태어날 때 신분상 약속을 따라 났다.

9. 아브라함에게는 두 아들이 있었다. 여종 하갈에게서 난 아들과 자유있는 여자에게서 난 아들이다.

10. 여종에게서는 육체를 따라 났다. 그러나 자유 있는 여자에게서는 약속을 따라 났다.

11. 육체를 따라 낳은 자녀는 시내 산으로부터 온 율법의 아들이다.(24절) 시내 산에는 속박이 있고, 억압이 있고, 죄가 있다.

12. 자유 있는 여자에게서난 낳은 아들은 예루살렘으로부터 온 어머니로부터 나왔다. 예루살렘에는 약속이 있다. 그리고 자유가 있으며, 은혜가 있다.(24절)
 참고) 로마서 9장 1-18절. 약속의 자녀 약속의 말씀.

13. 믿음의 사람들은 시내산이 아니라, 예루살렘에서 낳은 아들 이삭과 같이 약속의 자녀이다.(28절) "형제들아 너희는 이삭과 같이 약속의 자녀라"

14.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지금 여저히 육체를 따라 살아가고 있다. 29절 "그러나 그 때에 육체를 따라 난 자가 성령을 따라 난 자를 박해한 것 같이 이제도 그러하도다"

15. 로마서 7장에서는 혼인 관계로 비유한 율법과 죄에 대해서, 로마서 8장에서는 생명의 성령의 법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다.

16. 우리는 로마서 7장 24절 말씀을 읽히 알고 있다.
 24절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17. 우리에게는 자유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나 결코 쉽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종의 멍에를 메는 것이 때로는 편하기 때문이다.

18. 출애굽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십시오.
 출애굽기 16장 2-3절 "이스라엘 자손 온 회중이 그 광야에서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여"
 "이스라엘 자손이 그들에게 이르되 우리가 애굽 땅에서 고기 가마 곁에 앉아 있던 때와 떡을 배불리 먹던 때에 여호와의 손에 죽었더라면 좋았을 것을 너희가 이 광야로 우리를 인도하여 내어 이 온 회중이 주려 죽게 하는도다"

19. 왜 그럴까요? 왜 우리는 진정한 자유를 누리지 못할까요? 왜 자꾸 종의 습성을 버리지 못할까요?

20. 갈라디아서 5장 1절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건하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21.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22. 마태복음 11장 28-30절에서는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23. 이게 바로 하나님이 원하시는 자녀들의 삶입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우리에게 참 자유를 주시려고 오셨다.

24. 우리가 자유할 수 있는 은혜를 갖는것에 아무런 조건이나 의무사항이 없습니다. 전적인 은혜 뿐입니다.

25. 하나님의 이 사랑을 받으십시오. 예수님의 이 마음을 받으십시오. 그리고 자유의 삶을, 은혜의 삶을 진정 누리며 살아가기 바랍니다.

26.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있다면, 바로 이런 삶입니다.

27. 자유하라. 무엇을 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버리라. 나아게 믿음이 있기에 내가 무엇을 섬기지 않으면 안된다는 생각을 버리라. 그져 예수님이 주시는 은혜안에 자유함을 누리라고 말씀하신다.

28. 우리는 무엇으로부터 자유할 수 있는가?
 죄책감으로부터 자유할 수 있다. 은혜의 복음은 우리를 그렇게 만든다.

29. 래디컬 투게더, p58-59에 실린 글이다.
 복음은 인류를 행위의 중압감에서 해방시켰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은 죄책감으로부터 자유로워졌다. 하나님은 그리스도 안에 머무는 이들의 죄를 말소해 주셨다.
 ...
 어떠한 행위나 공로로도 구원의 조건을 충족시킬 방도가 전혀 없다는 사실을 마음 깊이 새기고 늘 떠올리지 못하기 때문에 아무리 많은 일을 해도 하나님 앞에서 의로워질 수 없다. 오직 이미 할 일을 다 하신 그리스도를 신뢰해야만 주께 나갈 수 있다.
 ..
수준이 떨어지는 죄책감은 내면에서 솟아나는 자발적이고, 절박하며, 즐겁고, 단호하며, 은혜에 감격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고품격 순종에서 밀려난다. 어떤지 죄를 짓는 것 같아서가 아니라 한없이 큰 사랑을 받았으면 남을 위해 희생하는 사랑에서 큰 만족을 얻을 수 있기에 아낌없이 베푸는 삶을 살게 된다. 의무감이 아니라 기대감을 가지고 급진적인 그리스도인의 길을 걷게 된다는 뜻이다.

30. 그져 선물이다. 인생이 선물이다. 삶이 선물이다. 결코 인생이 불행이 아니다. 삶이 불행이 아니다.

31. 성령이 주시는 참 자유를 누리기 원한다. 성령이 주시는 참 자유속에서야 우리는 하나님께 온전히 순종할 수 있다.

32. 아멘.





Wednesday, November 28, 2012

한 날 묵상 - 갈 4:12-20절 <나와 같이 되기를 원하노라, 이 일을 위하여 나는 너희를 향한 또 한 번의 해산의 수고를 하겠다. 우리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이 우리는 그 날까지>

한 날 묵상 - 갈 4:12-20절 <나와 같이 되기를 원하노라,  이 일을 위하여 나는 너희를 향한 또 한 번의 해산의 수고를 하겠다. 우리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이 우리는 그 날까지>

1. 우리 사회에 "나와 같이 되기를 원합니다"라고 말해줄 수 있는 선생이 많았으면 좋겠습니다.

2. 오늘 우리 사회에 참으로 좋은 선생은 많이 있을 수 있지만, 좋은 선생을 만났다 말하는 이들은 적은 것 같습니다.

3. 한편으로 좋은 선생은 결코 혼자 만들어지지 않는 것 같습니다. 아무리 좋은 선생이라도 좋은 제자들이 있어야 진정 좋은 선생이 되겠지요.

4. 좋은 선생은 스스로 들어나는 것이 아니라, 좋은 제자들을 통해 드러 날 수 있기 때문에, 좋은 제자들이 좋은 선생은 세상에 드러나게 하는 것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5. 바울이 참으로 좋은 선생이었습니다. 그러나 결코 바울을 따르는 학생들 없이는 그는 결코 좋은 선생으로 드러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6. 바울은 갈리디아 교회에 이렇게 자신있게 말하고 있습니다. 12절 "형제들아 내가 너희와 같이 되었은즉 너희도 나와 같이 되기를 구하노라"

7. 바울은 이렇게 말할 수 있는 처지에 있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바울은 참으로 허물많은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13절 "내가 처음에 육체에 약함으로 말미암아 너희에게 복음을 전한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

8. 그럼에도 바울이 좋은 선생으로 들어날 수 있었던 이유는 그의 가르침을 따르는 자들이 바울의 허물과 약점을 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오직 그 안에 역사하시는 성령님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9. 바울의 고백을 들어보겠습니다. 14절 "너희는 시험하는 것이 내 육체 있으되 이것을 너희가 업신여기지도 아니하며 버리지도 아니하고 오직 나를 하나님의 천사와 같이 또는 그리스도 예수와 같이 영접하였도다"

10. 여기서 생각해 볼 것은, 흠많은 우리의 인생에서 어떻게 서로 사랑해야 할까? 시험꺼리가 많은 우리 인생에서 과연 우리는 어떻게 남을 바라 보아야 할까? 때론 서로가 짐이 될 수 있는 상황에 닥칠 때 우리는 과연 어떻게 이 어려움을 이겨야 할까?

11. 다음 세 가지로 정해 보았습니다. 
 1) 업신 여기지 말라. 무시하지 말라. 허물은 덮으라고 있는 것이다. 
 2) 짐이 된다 버리지 말라. 부부관계에서, 가족관계에서, 신앙안에서.
 3) 그렇다면 어떻게 그들을 바라볼까? 하나님의 천사같이 보라. 그리스도 예수와 같이 영접하라. 

12. 바울은 참으로 흠 많은 이전의 인생을 살았다.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하고 감옥에 넣고, 죽이기까지 했다. 스데반의 죽음의 증인이기도 했다.

13. 바울이 이제 다메석에서 주님을 만난 이후 전혀 다른 인생의 길에 접어들었다. 옛것은 지나가고 보라 새것이 되었습니다.

14. 바울이 마음을 새롭게 하여 주님의 증인의 삶을 살아 복음을 전할 때, 복음을 듣는 자들이나 동역자들의 마음에 아직 아픔은 채 가시지 않았다.

15. 그러나 바울은 복음안에 우리와 하나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아픔많은 사연이 아직 가슴이 남아 있는 우리는 복음안에 하나가 된 바울을 어떻게 대해야 할까요?

16.  바울은 지금 그들앞에 이렇게 고백합니다. "너희는 시험하는 것이 내 육체 있으되 이것을 너희가 업신여기지도 아니하며 버리지도 아니하고 오직 나를 하나님의 천사와 같이 또는 그리스도 예수와 같이 영접하였도다"

17. 그들은 한 걸음 더 나아갑니다. 바울을 본 것이 아니라 바울속에 역사하시는 성령을 본 것입니다. 그렇다. 우리도 죄인인 한 사람을 보는 것이 아니라, 죄인인 사람이 그리스도를 만나 새영으로 새롭된 성령의 역사와 그리스도의 은혜를 보아아 합니다. 

18. 이것을 가리켜  바로 우리의 영안이 열리었다 말하는 것이다. 죄를 보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의롭게 된 사건을 보는 것이다.

19. 그들은 바울이 아니라 그 속에 역사하시는 성령의 역사를 보고 바울에게 전적인 도움을 준다. 자신의 눈이라도 빼어줄 수 있는 전적인 도움이었다.

20. 바울의 육신의 가시가 "눈"이었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래서 "바울에 눈이라도 빼어" 줄 정도로 전적인 성령의 역사에 동참하게 된 것이다.

21. 15절 "너희의 복이 지금 어디 있느냐 내가 너희에게 증언하노니 너희가 할 수만 있었더라면 너희의 눈이라도 빼어 나에게 주었으리라"

22. 바울이 여기서 참으로 "복"에 관한 중요한 말씀을 하고 있다. 그리스도인에게 있어 "복은 무엇인가?"

23. 바울은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복은 주님의 사역에 동참하는 것이라 말하고 있습니다.

24. 하나님은 결코 혼자 일하시지 않으십니다. 사람을 부르시고 사람을 일으켜 사용하신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부르시는 사람들이 있다. 하나님께 쓰임받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25. 바울은 하나님의 부름받아 하나님의 사역에 쓰임받는 일이야 말로 진정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인들의 "복"임을 말씀하고 있다. 

26. 그렇게 바울은 도와 하나님의 사역에 동참하던 그들이 이제 다시 이전의 돌아가 하나님과 복음으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자에게 열심을 내는 사람들이 되었다.(16-18절).

27. 이럴 때 바울은 그리스도안에서 참된 교제가 무엇인지를 또한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28. 하나님으로부터, 복음으로부터 멀어지려 할 때, 바울은 그들을 결코 포기 않고 또 한 번의 해산의 수고를 하고 있다.
 고린도전서 4장 15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내가 복음으로써 너희를 낳았음이라"

29. 19절 "나의 자녀들아 너희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기까지 다시 너희를 위하여 해산하는 수고를 하노니"

30. 바울은 그들은 "자녀들"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므로 자녀를 낳은 한 번의 해산의 수고를 이미 했다.

31. 그리고 또 한 번의 해산의 수고를 하는데, 그 이유는 "그들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기까지" 또 한번의 해산의 수고를 하는 것이다.

32. 이 일을 위해서 바울은 자신의 "언성"을 높이겠다고 말합니다. 바울이 큰 소리로 말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런데 이 순간만큼은 언성을 높이겠다고 말한다. 그 만큼 "우리 안에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는까지" 그들이 자라는 것을 포기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이것이 바로 가장 중요하고 우선순위에 있기 때문이다.

33. 마지막으로 이 말씀이 생각납니다. 로마서 12장 2절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34. 바울이 추구하는 하나님의 자녀들의 삶이 바로 이런 것 아니겠습니다.

35. 허물많은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이 이처럼 바울과 갈라디아 교인들과의 모습이 되기를 원합니다.

36. 이런 아름다운 공동체를 꿈꾸고 함께 만들어 갈 수 있다면, 그것 자체로 행복할 것 같습니다.

Monday, October 22, 2012

모든 사람은 죄인 - 롬 3장 10절

영국에서 일어난 에피소드입니다. 
한 청년이 장난 삼아 보낸 한 통의 편지가 
우스꽝스러운 결과를 낳았습니다. 
런던의 유명인사 20명이 거의 같은 시각에 
모두 런던에서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는군요. 

긴급전문 “모든 것이 들통났으니 속히 피신하기 바람.”      

그 청년은 단순히 재미로 
런던의 유명인사 20명을 뽑아 명단을 작성해서 
일제히 같은 전문을 발송했을 뿐인데 말입니다. 

Tuesday, May 8, 2012

성공하는 사역의 7가지 특징 - 출처 : 목적이 이끄는 사역자료, 릭워렌 칼럼



기독교 역사상 가장 영향력 있는 리더 가운데 한 사람은 사도 바울일 것입니다. 바울은 휴대전화도 없었고 비행기도 없었으며 인터넷도 되지 않은 시대에 살았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에서 로마제국에 이르기까지 기독교에 큰 영향력을 끼쳤습니다. 새들백교회의 릭 워렌 목사는 사도 바울의 삶에서 리더의 7가지의 특징을 발견하고.SUCCESS(성공)이라는 단어에 대입해 설명합니다. 이 7가지 특징이 바울을 기독교 역사상 가장 영향력 있는 지도자로 만들었다고 말합니다. 그 중에서 우선 세 가지를 살펴 보겠습니다.
S- Sense of direction (방향감각)
U- Understanding (이해)
C- Commitment (헌신)
C- Compassion (긍휼)
E- Enthusiastic faith (열정적인 믿음)
S- Service to others (섬김)
S- Staying power (지속력)
S- Sense of Direction(방향감각)

여러분이 만약 어디로 갈 지 모른다면, 결국 아무 곳에나 가 있게 될 것입니다.
바울은 분명한 목적이 있었습니다. “또 내가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곳에는 복음을 전하지 않기를 힘썼노니 이는 남의 터 위에 건축하지 아니하려 함이라”(롬 15:20). 바울은 선구자였습니다. 그는 이미 있는 교회를 이끌려고 하지 않았고 새로운 것을 시작하길 원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바울을 어떤 종류의 사역으로 부르셨는가 라는 물음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이미 바울은 그 사역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기 때문에 성공하지 못합니다. 사람들은 몇 년간은 어떤 일을 했다가 또 다음에는 다른 일을 하고 그 다음에 또 바꾸고 이런 식으로 살아갑니다. 그리고는 40,50,60세가 되어 뒤 돌아 보면 한 열 가지쯤 다른 일을 해 왔음을 알게 됩니다. 정확히 초점을 맞추지 못하고 이리저리 흔들린 삶을 살았다는 이야기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무엇 때문에 부르셨는가?”라는 질문에 즉시 대답할 수 있어야 합니다.
삶 속에서 ‘왜’라는 질문에 대해 이해하기 시작하면, 하나님께서는 ‘어떻게’를 보여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이해하기 시작할 때 사역은 성공합니다.

U- Understanding (이해)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빌 4:12). 바울은 살아오면서 만족하는 비결을 배웠습니다. 그러나 결코 쉬운 것은 아니었습니다.
여러분은 목표를 가진 사람들이지만 어떤 상황에도 만족해야 한다는 말은 상당히 모순처럼 들립니다. 그러나 목표가 없을 때 즉 목표를 다 이루고 나서 만족할 수 있다는 말은 아닙니다. 여러분이 어디를 가든지 목표와 함께 행복해 하는 것이 만족입니다. 목표에 도달하기 전까지 행복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면 결코 행복해 질 수 없습니다.
실제적인 사역의 모습과 이상적인 사역 사이에는 항상 팽팽한 긴장감이 있습니다. 마음속에는 이상과 목표를 간직하고 있어야 하지만, 현실과 함께 살아가야 하고 그것 때문에 좌절해서는 안됩니다. 목회자는 교회가 안정되고 좋은 상태에 이르렀다고 해서 안주해서도 안됩니다. 늘 노력하고 움직이며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주께서 너희 마음을 인도하여 하나님의 사랑과 그리스도의 인내에 들어가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살후 3:5). ‘인내’와 ‘이해’는 항상 함께 하는 단어입니다. 사람들이 일이 채 끝나기도 전에 그만두는 것은 그 일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고 비전을 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사소한 일에 너무 집중한 나머지 사역의 전체적인 그림을 보지 못합니다.
문제에 대해서 이해하지 못했을 때보다 충분히 이해했을 때 훨씬 더 인내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사역을 지속해주는 인내는 어디에서부터 온 것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입니다. 여러분의 마음을 말씀으로 채우십시오. 말씀이 여러분을 지혜롭게 할 것입니다.
C- Commitment (헌신)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행 20:24).
바울은 헌신이 무엇인지 알았습니다. 그리고 조금도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자기 자신을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진 사람만이 주님을 따를 수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의 종으로서 우유부단 하지 말고 겁쟁이처럼 주저 하지 말라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온전한 헌신을 드려야 한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단호하게 이 일을 감당해야 합니다. 진정으로 중요한 일에 헌신 하십시오. 그리고 예수님을 섬기는 일에 자원하는 마음으로 여러분 자신을 드리십시오.

C- Compassion(긍휼)
“내가 예언하는 능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 것도 아니요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고전 13:2-3). 
사랑이 없는 삶은 아무 것도 아닙니다. 마태복음 22장에서 예수님은 ‘사랑’이 우리의 첫째 되는 책임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사역은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사랑은 곧 선택입니다. 다른 사람에게 관심을 갖겠다는 헌신입니다. 성공적인 사역을 하고 싶다면, 사람을 사랑해야 합니다. 골로새서 3장 12절에서 바울은 사역의 성공 비밀 한 가지를 알려주고 있습니다. “너희는 긍휼을 옷 입으라” 이것이 바울의 사역을 성공적으로 이끈 비법입니다. 긍휼이란 무엇입니까? 긍휼이란 사람들의 필요에 민감해 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실은 단순히 민감해 지는 것을 넘어서 그들에게 무언가를 해 주는 것을 의미합니다. 동정은 “네가 아프다니 참 안됐다”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공감이란 “네가 아프니 나도 아프다” 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긍휼은 “네 아픔을 멈출 수 있다면 내가 어떤 것이라도 해 줄께”라고 말합니다. 그것이 십자가에서 죽는 일이라도 말입니다.

E- Enthusiastic faith(열정적인 믿음)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롬 8:31b).
제가 바울을 사랑하는 이유는 그가 영원한 낙천주의자이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태장으로 맞고, 돌로도 맞았으며, 파선하고, 옥에 수없이 갇히기도 하였지만 늘 긍정적이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위해 위대한 일들을 하였고 또한 하나님께서 베푸실 위대한 일들을 기대하였습니다. 성공적인 사역을 하고 싶다면, 열정적인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소망을 가지십시오. 바울은 소망이 없는 불가능한 상황은 없다고 믿었습니다. 빌립보서 4장 13절에서는 하나님 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라고 고백 하였습니다. 바울은 열정적인 믿음으로 정말 그렇게 했습니다. 열정이 없이는 어떤 위대한 일도 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마가복음 9장 23절 후반부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 고 말씀하십니다.
사람들이 저를 비웃으며 이렇게 말한 적이 있습니다. “오렌지 카운티에서 교회를 짓기 위해 70에이커(약 85,694평)의 땅을 사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제가 교회에서 처음 예배를 드릴 때, “우리가 앞으로 최소한 50에이커(약 61,210평)의 땅을 가지게 될 것입니다.”라고 말했더니 사람들이 “우리가 누구라고 생각하십니까?” 라고 물었습니다. 잘못된 질문입니다. 올바른 질문은 “하나님이 어떤 분이라고 생각하십니까?”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사역의 크기를 결정하도록 하십시오.

S- Service to others(섬김)
효과적인 사역을 하고 싶다면, 다른 사람을 섬기십시오. “이뿐 아니라 그는 동일한 주의 영광과 우리의 원을 나타내기 위하여 여러 교회의 택함을 받아 우리가 맡은 은혜의 일로 우리와 동행하는 자라” (고후 8:19). 바울은 자신을 표현할 때 “그리스도의 종된 나 바울은”이라는 타이틀을 즐겨 사용했습니다.
섬김이 없이는 성공도 없습니다. 교회에서나 세상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다른 사람을 섬기지 않고도 성공 했다면, 그것은 거짓이고 위조된 성공입니다. 진정한 성공이 아니고 보이는 이미지에 지나지 않습니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만나십시오. 사역뿐 아니라 다른 분야에서도 성공하는 방법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내가 너희 영혼을 위하여 크게 기뻐하므로 재물을 사용하고 또 내 자신까지도 내어 주리니 너희를 더욱 사랑할수록 나는 사랑을 덜 받겠느냐” (고후 12:15). 바울이 이런 말을 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의 섬김의 마음 때문이었습니다.

S- Staying power(지속력)
사역은 포기하고 싶어도 참아야 하는 것입니다. 문제가 있다고 해서 바로 포기해 버리면, 사역에서 어떤 일도 이룰 수 없습니다. 갖가지 어려움은 언제나 여러분 주변에 있기 마련입니다.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박해를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 (고후 4:8-9). 바울은 하나님을 섬기는 일이 쉽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절대 쉬운 일이 아닙니다. 포기하지 말라고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좋은 예가 있습니다. 사도행전 14장에서 바울이 한 마을에 들어가 말씀을 전합니다. 사람들이 바울의 말을 듣기 싫어하여 그를 돌로 쳤습니다. 사람들은 바울이 죽은 줄로 알고 그를 시외로 끌어 내쳤습니다. 그 다음에 바울이 어떻게 한 줄 아십니까? 다음 마을에 가서 말씀을 다시 전했습니다. “저는 교회를 위해서 열심히 했는데 정말 낙심됩니다. 다시는 교회를 섬기지 않겠습니다. 아무도 제 사역에 대해서 감사해 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제 그만 두겠습니다.”라고 바울은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냥 다시 일어났고, 다른 마을에 가서 지금껏 해왔던 일을 동일하게 했습니다.

사역의 최종 목적지는 바꿀 수 없습니다. 그러나 사역의 방향은 지금 즉시 바꿀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사역이 살짝 잘못된 방향으로 빗나가있을 수도 있습니다. 만약 그렇다면 오늘 바꾸실 수 있습니다. S-U-C-C-E-S-S의 7가지 원리를 적용해 보십시오. 올바른 방향으로 다시 시작하도록 여러분을 이끌어 줄 것입니다.

출처 : 목적이 이끄는 사역자료, 릭워렌 칼럼

Thursday, January 26, 2012

청.매.묵. 에스겔 22:1-16 <나를 감싸고 있는 두 말씀을 보라! "여호와는 내게 말씀하십니다." "너는 내가 여호와라는 것을 알게 될것이다">

청.매.묵. 에스겔 22:1-16 <나를 감싸고 있는 두 말씀을 깊이 묵상해 보라! "여호와는 내게 말씀하십니다." "너는 내가 여호와라는 것을 알게 될것이다". 의로운 심판은 하나님의 사랑과 함께옵니다. 주님께 돌아가면 심판은 더 이상 두렵지 않습니다. 오히려 마음의 참 평안을 누리게 됩니다. 죄로부터 자유입니다.>

오늘 본문을 싸고 있는 두 말씀을 깊이 묵상해보자.
 1절 "여호와께서 내게 말씀하셨다"
 16절 "너는 내가 여호와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계속되는 심판을 예언하는 말씀을 묵상합니다.
하나님의 에스겔을 통해 주시는 말씀에 오늘은 큰 위로를 받습니다.
심판을 대할 때 두렵고 떨림이 있지만,
하나님이 왜 심판하셔야만 하는지를 알면 자유와 평안을 갖게 됩니다.

잘못하면 법원에서 판결을 받고 죄에 대한 형벌을 받습니다.
거룩한 양심은 자신의 잘못이 드러나지 않는 것을 가장 두려워합니다.
자신의 죄악이 드러나 판결이 되고, 심판을 받게 되면
마음이 홀가분해 질 거라 생각됩니다.
(롬 6:12-23. 22절 "그러나 이제는 너희가 죄로부터 해방되고 하나님께 종이 되어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맺었으니")

하나님의 심판의 이유는 우리를 죄로부터 자유롭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고후 5:17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다"
 옛 것은 버리고 새로운 삶을 사는 참 평안과 기쁨을 누리시기 원한다면, 심판을 두려워하지 말고, 주님께 돌아갑시다. 주님께 돌아간 인생은 더 이상 심판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나의 지난 날의 잘못, 나의 죄악들이 마음을 스치는 것이 아니라,
회개하고 주님께 돌아가면 나를 품어주실 주님을 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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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아야 할 사실은 하나님의 공의의 이유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 예언은 죄악에 대한 공의입니다.

2-3절 하나님의 심판은 먼저 그들이 저지른 혐오스러운 죄악을 알고 난 후입니다.

이스라엘의 죄악의 심판은 그들의 죄악이 만천하에 드러났기 때문입니다.
3-5절 범죄한 이스라엘
6-12절 구체적인 죄악을 나열.


Wednesday, September 7, 2011

<밴쿠버올림픽 단상[斷想]>


2010년 2월 밴쿠버 올림픽으로 인해 많은 즐거움과 아쉬움이 교차되는 시간이었다. 자국의 경기결과에 따라 기쁨과 안타까움으로 보낸 시간들이었다. 열심히 한 선수가 메달을 탄 후 기쁨의 환호와 눈물을 흘리는 모습은 정말 멋진 모습이다. 한편으로 메달은 따지 못했지만 최선을 다한 후 만족하는 모습은 세상의 어떤 모습보다 멋진 모습이었다.
그러나 열심히 했음에도 불구하고 만족할 만한 결과를 얻지 못하고 자신의 감정을 억제하는 모습을 보는 것은 너무나 안타까운 모습이다. 특별히 김연아의 피겨 금메달로 환호 할 때, 최선을 다했음에도 불구하고 은메달에 만족해야 하는 아사다 마오의 흘린 눈물은 우리에게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한다. 그녀가 경기 후 한 인터뷰에서 “최고지만 2등은 함부로 울 수도 없었다”라고 말한 부분은 동양적 사고의 1등만 기억하는 세상적 사고의 단면을 보게 된다. 지난 1월 교사신년새다짐 시간에 담임목사님께서 말씀하신 1등이 아닌 1등급을 기억하시는 하나님에 대해서 다시금 생각해 본다. 믿음의 경주에 1등은 필요치 않습니다. 사역의 열매에도 1등은 필요치 않습니다. 5달란트 받은 자나 2달란트 받은 자 모두 “잘하였다 충성된 종”이라고 칭찬하시는 하나님은 우리가 믿음의 경주에서, 사역의 현장에서, 그리고 교사로서 1등급의 교사가 되기를 원하신다

 올림픽에 생각하며 또 하나 생각해보는 것은 쇼트트랙 여자 3000미터 릴레이 경기이다. 이 때 심판의 판정에 대해서 여러 이야기를 하게 된다. 특별히 피해자인, 아닌 앞서 말한 열심히 하고 정당한 결과를 기대했던 선수들의 입장에서 보면 이 세상은 공평하지 못한 세상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 공평하신 하나님이시지만, 그리고 세상을 향해 공의를 행하라 말씀하시지만, 이 땅 가운데 살아가는 사람과 세상은 공평하지 못한 게 현실이다. 단 하나의 사건을 일반화시키는 것은 문제가 있지만, 우리는 공평하지 못한 세상 가운데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이 문제에 대해서 온라인상에서 우리 청소년부 친구들이 격하게 분노하는 모습을 보면서 여러 생각을 하게 되었다.
 마침 요즘 몇 권의 책을 읽고 있는데, 거기에서 동일하게 하박국의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여호와여 내가 부르짖어도 주께서 듣지 아니하시니 어느 때 까지리이까 내가 강포를 말미암아 외쳐도 주께서 구원하지 아니 하시나이다 어찌하여 내게 죄악을 보게 하시며 패역을 눈으로 보게 하시나이까 겁탈과 강포가 내 앞에 있고 변론과 분쟁이 일어 났나이다” 하박국 1장 2-3절
 모순 된 세상, 모순된 권력, 모순된 통치자 밑에서 살아가는 우리이다. 이러한 세상에 살아가는 우리는 무엇으로 이 세상을 살아가야 하는가?이다. 정당한 노력을 기대하기 힘들거나 어려운 세상에, 그리스도인들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여기에 대한 질문의 답은 간단한다. 첫째는 하박국 선지자는 이 질문에 대해서 “의인은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믿음”은 ‘버티다’라는 뜻이 있다. 의인은 버텨야 한다. 세상 사람들과 똑같이 살아가고자하는 마음으로부터 믿음을 성실하게 지키며 버티는 것이다. 그들의 달콤한 유혹에 빠지지 않고 믿음을 지키는 것이다. 둘째는 로마서, 전도서의 말씀에서 찾을 수 있다. 로마서 13장 1절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복종하라”, 전도서 8장 2절 “내가 권하노라 왕의 명령을 지키라” 답은 간단하다. 악한 권세도 하나님이 그 자리를 허락하지 않으면 어느 누구도 그 자리에 앉아 있을 수 없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섭리에 순복해야 한다. 우리가 굴복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권력의 근원자앞에 순복하는 것이다.

그럼 마지막으로, 언제까지, How long?이란 질문이 남게 된다.
 그 답 역시 간단한다. 하나님이 이 땅이 온전히 통치하실 그 날을 소망하면서 인내하며 기다리며 기다리는 것이다.

Thursday, July 21, 2011

한 날 묵상 - <자존심 생각하지 말고 뎁다 품에 안기십시오> - 롬 8:38-39절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 끊을 수 없으리라"

하나님은 자녀들을 끝까지 홀로 내버려 두시지 않으신다.
그 자녀가 하나님을 아버지로 인정하지 않더라도, 결코 떠나지 않으신다.

하나님을 전혀 인정하지 않다가,
어느 날 갑자기 하나님이 아버지로 느껴집시니까?
아버지의 품에 안긴 평온함을 느끼셨습니까?

그렇다면, 지난 날 내가 했던 무례한 행동으로부터 오는
'내가 지난 날의 행동이 있는데, 어찌 아버지 품에 안길 수 있어'라는
자존심을 뎁다 버리십시오.
그냥 달려가십시오.

그것 뿐입니다.

아무말 하시지 않고 덥석 기쁘게 앉아주시는
더욱 더 넉넉한 아버지의 품에 안긴 평온함을 맛볼 것입니다.

Tuesday, July 12, 2011

한 날 묵상 - 롬 3장 10-12절 "나는 누구인가" - 본 회퍼

로마서 3장 10-12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다도 없고 다 치우쳐 함께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나는 누구인가?" 라는 제목으로 이번주 청소년부 말씀을 나눈다. 
본 회퍼의 "나는 누구인가" 글을 보면서, "나는 누구인가"의 답을 찾았다. 
나는 죄인이다.  그렇다. '
나는 본질상 하나님을 찾을수 없는 존재였다. 그렇다. 
나는 아무런 선을 행하지 못하는 존재이다. 그렇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나에게 아무런 문제가 아니다. 
왜냐하면, 나는 이제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이다. 
나는 은혜를 입었기 때문이다.
고로,
"나는 누구인가?" 나는 하나님의 자녀이다. 이젠  죄아래 있는 나는 더 이상 아무런 문제가 없다. 













"나는 누구인가" - 본 회퍼

나는 누구인가.

그들이 종종 말하기를
나는 감방에서 걸어나올 때
마치 왕이 자기의 성을 걸어나오듯
침착하고, 활기차고, 당당하다고 한다.

나는 누구인가.

그들이 종종 말하기를
나는 간수에게 말을 건넬 때
마치 내게 명령하는 권한이라도 있는 듯
자유롭고, 다정하고, 분명하다고 한다.

나는 누구인가.

그들이 또한 말하기를
나는 불행한 나날을 견디면서
마치 승리에 익숙한 자와 같이
평화롭고, 미소 지으며, 자연스럽다고 한다.

나는 정말 다른 이들이 말하는
그런 존재인가?
아니면 다만 나 자신이
알고 있는 자에 지나지 않는가?

새장에 갇힌 새처럼
불안하게 뭔가를 갈망하다 병이 들고
손들이 나의 목을 조르고 있는 듯
숨 가쁘게 몸부림치고
빛깔과 꽃들과 새소리를 갈구하고
부드러운 말과 인간적인 친근함을 그리워하고
사소한 모욕에도 분노를 일으키는..

그리고 위대한 사건들을
간절히 고대하고
저 멀리 있는 친구들을 그리워하다

힘없이 슬퍼하고
기도하고 생각하고
글 쓰는 일에 지치고 텅 빈,
무기력하게 그 모든 것과
이별할 채비를 갖춘 그런 존재..

나는 누구인가.

이것인가, 저것인가.
오늘은 이런 인간이고
내일은 다른 인간인가.
아니면 동시에 둘 다인가.
타인 앞에서는 위선자이고,
자기 자신 앞에서는 경멸할 수밖에 없는
가련한 약자인가.

나는 누구인가.

이 고독한 물음이
나를 비웃는다.

내가 누구이건
오 하느님 당신은 아십니다.
나는 당신의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