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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nday, April 8, 2012

한 날 묵상 - 창50:1-26 <창세기 이야기는 가정이야기이다. 본토 친척집을 떠난 아브라함의 시대가 저물로, 이스라엘 민족의 12지파 시대가 시작되기까지 모든 이야기의 중심은 가정이다>

한 날 묵상 - 창50:1-26 <창세기 이야기는 가정이야기이다. 본토 친척집을 떠난 아브라함의 시대가 저물로, 이스라엘 민족의 12지파 시대가 시작되기까지 모든 이야기의 중심은 가정이다>
1. 한 시대를 풍미했던 사람이 저물고 있다.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고, 이스라엘 민족의 토대가 되었던 야곱이 이제 본향으로 가고 있다.

2. 친척 본토 집을 떠난 아브라함이후로, 이삭, 야곱, 그리고 요셉과 12지파에 이르기까지 창세기 12장부터 시작된 아브라함 가족의 이야기를 뒤로 하로 새로운 시대가 시작되었다.

3. 새로운 시대의 주된 이야기는 이스라엘의 12지파 이야기이다.

4. 요셉을 중심으로 아버지와 형제들의 이야기를 살펴보면, 여전히 불안한 부분이 있다.

5. 요셉은 아버지를 향해 마지막까지 섬김과 사랑으로 나아간다.

6. 야곱은 참으로 축복받은 인생이다.

7. 하나님이 다시 야곱에게 주셨던 말씀으로 돌아가보자.

8. 창세기 25장 23절 "두 국민이 네 태중에 있구나 두 민족이 네 복중에서부터 나누이리라 이 족속이 저 족속보다 강하겠고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
 하나님은 야곱을 자손을 통해서 이스라엘 민족을 이루시고, 구원의 계획을 이루어 가신다.

9. 창28장 15절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신지라"
 창28장 14절에서 야곱에서 주신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은 애굽의 430년의 생활과 출애굽 이후 이스라엘 백성의 가나안 땅 입성을 통해 이루어진다.
 아울러, 야곱이 어디로 가든지, 심지어 애굽으로 내려가기까지 하나님은 지키시고 돌보아 주셨으면, 다시금 애굽 땅에서 죽음을 맞이하지만 그는 가나안 땅에 장사되는 은혜를 누리게 되었다.
 하나님이 벧엘에서 주신 약속의 말씀이 하나도 땅에 떨어지 아니하고 다 이루어짐을 보게 된다.

10. 창32장 28절 "그가 이르데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를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니"
 야곱의 이름은 이스라엘이 되었다. 그리고 그의 아들과 손자를 통해서 이스라엘 12지파의 시작이 되었다. 야곱의 자신의 이름만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민족의 처음이 되었다.
 야곱은 하나님과 겨루어 싸웠다. 세상과 세상의 이치와 세상의 방법과 싸우지 않았다. 그의 믿음이 날로 견고하여 짐을 볼 수 있다.

11. 야곱의 축복의 말씀이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어졌다.

12. 야곱은 이젠 남은 자들이 어떻게 이스라엘 민족을 세워가야 하는지에 대한 몫은 그들 스스로에게 남겨두었다.

13. 창세기는 요셉의 죽음으로 끝나게 된다. 요셉의 죽음이 아마도 형제들의 죽음과 시차가 어떻게 되는지는 알 수 없지만, 출애굽의 이야기를 통해서 볼 때, 12지파의 민족성은 하나였고, 또한 가나안 땅에 되돌아가는 정체성에 대한 신앙교육도 잘 유지되고 있음을 알수 있다.
 참고, 24절, 25절.

14. 새로운 시대의 이스라엘 민족의 이야기는 어떻게 진행될까?에 대한 시작은 좋았지만, 어떻게 진행되어질지에 대한 불안은 여전하다.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을 본문에서 찾을 수 있다.
 15-21절 - 요셉의 형제들은 불안해 하고 있다. 요셉은 그 형들을 위로하고 있다.

15. 그러나 형제들의 불안으로 창세기가 마무리 되지 않고, 요셉의 위로와 요셉이 자손들에게 전한 말씀을 보면, 야곱의 아들로 시작되는 이스라엘의 12지파 이야기의 시작은 하나됨이었다고 할 수 있다.

16. 창세기의 이야기는 하나님 나라의 이야기이다. 또한 공동체의 이야기이며, 가족의 이야기이다. 결코 한 사람의 이야기가 아니다.

17. 우리가 교회를 생각할 때에 한 사람에 대해 강조하지만, 한 사람 한 사람의 연합이어야 한다. 결코 혼자일 수 없다.

18. 결국 혼자가 아니라면, 가정이 이야기가 곧 교회의 이야기이며, 가정같은 교회가 곧 하나님 나라로 이어지게 된다.

19. 다시금 가정으로 돌아간다. 가정이 올바르게 세워지면, 교회가 올바르게 세워지며, 하나님의 나라가 올바르게 세워진다.

20. 교회의 기초가 가정임을 기억하고, 교회는 가정이 바로 서는 사역에 집중해야 한다. 가정이 바로 서야 교회가 바로 설 수 있기 때문이다.

21. 창세기를 마무리하면서 지난 8개월의 말씀 묵상을 다시 정리하려고 한다. 가정을 중심으로 재구성하여 "창세기의 이야기는 가정의 이야기이다"라는 글을 정리하고자 한다.

22. "창세기의 이야기는 가정의 이야기이다"라는 말에는 세 가지 의미가 있다.
 1) 혼자가 아니다. 연합니다.
 2) 가정이 믿음안에 서야 교회가 바로 선다.
 3) 가정으로 시작되어 교회가 되고, 교회가 연합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간다.

23. 하나님의 은혜가 있는 지난 시간 창세기 묵상이었다.

24.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올려드리며, 주신 말씀에 감사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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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절 "곡하는 시한이 지내매"
5절 "가나안 땅에 파 놓은 묘실에 나를 장사하라 하였나니"
      "내가 올라가서 아버지를 장사하게 하소서 내가 다시 오리이다"
10절 "요셉이 아버지를 위하여 칠 일 동안 애곡하였더니"
11절 "애굽 사람의 큰 애통이라 하였으므로 그 땅 이름을 아벨미스라임이라 하였으니"
14절 "요셉이 아버지를 장사한 후에 자기 형제 ... 애굽으로 돌아왔더라"

요셉이 형들을 위로하다. 15-21절.


요셉의 죽음. 22-26절.

Thursday, January 12, 2012

한 날 묵상 - 창 37:1-4 <성실을 식물로 삼을 때 더 큰 사랑을 받는다. 더 큰 사랑이 시기와 미움이 대상이 된다할지라도 무엇보다 더욱 성실하라>

한 날 묵상 - 창 37:1-4 <성실을 식물로 삼을 때 더 큰 사랑을 받는다. 더 큰 사랑이 시기와 미움이 대상이 된다할지라도 무엇보다 더욱 성실하라>


시 37:3 "Trust in the LORD and do good; dwell in the land and enjoy safe pasture."


1절 "야곱이 가나안 땅 곧 그의 아버지가 거류하던 땅에 거주하였더니"
 => 야곱은 약속의 땅을 떠나지 않고, 아버지가 거한 곳에, 아버지가 주신 말씀안에, 하나님과 함께 가나안 땅에 거주하였다. 형 에서와는 다른 모습이다.

2절 "야곱의 족보 ... 요셉의 실칠 세의 소년으로서"
 => 야곱의 족보를 언급하면서 가장 먼저 요셉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 것이 상징적으로 무엇을 의미하고 있는지 알아야 한다.
 그는 형들과 달랐다.
 요셉은 야곱의 마음에 들었다. 그에게 형제들과 다른 어떠한 것이 그  당시에 있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는 형제들과 달랐다. 가장 먼저 족보에 언급되었다는 것이 의미하는 바가 크다.

      "그이 형들과 함께 양을 칠 때에 ... 그가 그들의(형들의) 잘못을 아버지에게 말하더라"
 => 형들과 함께 양을 치고 있었다. 그 때에 그는 정직한 소년이었다. 어떠한 잘못을 형들이 했는지 알 수 없지만, 그는 정직하면서도 성실했고, 이러한 것들이 형들과 달랐다. 그리고 잘못한 것들에 대해서 바르게 하고자 하는 마음이 강했다. 그랬기 때문에 형들의 잘못을 아버지에게 말하지 않았을까.

3절 "요셉은 노년에 얻은 아들이므로 이스라엘이 여러 아들보다 그를 더 사랑하므로 그를 위하여 채색옷을 지었더니"
 => 채색옷이 가지는 상징적인 의미가 있다. 다른 사람보다 더 귀한 사랑을 받고 있었다는 것이다. 

4절 "그의 형들이 아버지가 형들보다 그를 더 사랑함을 보고 그를 미워하여 그에게 편안하게 말할 수 없었더라"
=> 형들의 미움을 받을 정도로 아버지의 사랑을 받았다. 아버지의 재산을 노리는 것이 아니라, 성실로 식물을 삼았더니(시37:3), 더 큰 사랑을 받은 것이다.

 지금 같은 상황이라면, 즉 내가 형들이라면, 내가 요셉이라면, 내가 아버지라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러한 질문도 가히 나쁘지는 않다.
 요셉의 입장에서 풀어보면, 그는 차라리 아버지의 미움을 받는 것보다 형들의 미움을 받는 편을 택했을 뿐 아니라, 그가 택한 것들이 무엇보다 정직함과 성실함에서 드러나는 것이었기에 더욱 빛을 발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우리도 한 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다른 사람의 미움을 받을 정도로 아버지를 더 사랑하고 있는가?
 무엇보다 하나님을 더 사랑함으로 다른 사람의 시기와 질투, 편안하게 대할 수 없는 정도로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하나님을 사랑해 본 적이 있는가?
 특별히 정도의 길을 걸을 때 오는 고난, 불의와 타협하지 않을 때 오는 장애물은 기쁨으로 감당함 마음이 있는가?

 우리가 이처럼 좁은 길을 가면, 하나님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주실 것이다. 무엇보다 개인에게 어떠한 큰 이익이 아니라, 협력하여 선을 이루어, 관계가 회복되는 은혜를 주신 다는 것임을 기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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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37:3 "Trust in the LORD and do good; dwell in the land and enjoy safe pasture."

성실로 식물을 삼을 때, 아버지의 사랑을 받게 된 요셉.

"여호와를 의뢰하고 선을 행하라 땅에 머무는 동안 그의 성실을 먹을 거리로 삼을지어다"
여호와를 의로하고 선을 행할 때에 다른 사람의 미움과 시기와 질투의 대상이 될 수 있다.
그렇다고, 포기하겠는가?

나는 과연 미움을 받을 정도로 아버지를 더 사랑하고 있는가?
무엇보다 아버지를 더 사랑하고 있는가?
혹, 관계가 틀어질 것이 겁이 나 하나님 사랑하는 것을 타협하고 있지는 않는가?

요셉은 형들과 타협하지 않았다.
2절 "그들의 잘못을 아버지에게 말하더라"
그는 정직과 성실을 땅에 머무르는 동안 그의 먹을 거리로 삼았다.

오늘 우리의 먹거리는 타협인가? 성실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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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ursday, January 5, 2012

한 날 묵상 - 창 35:1-7 <세번째 만남. 아직도 부족한 야곱. 이 때 야곱은 어떠한 결단을 하는가?>

한 날 묵상 - 창 35:1-7 <세번째 만남. 아직도 부족한 야곱. 이 때 야곱은 어떠한 결단을 하는가?>

 하나님과 야곱의 만남은 계속됩니다.
이번이 벌써 세번째 만남입니다.
세번째 만남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세번째 만남에서 야곱은 떠나 보내는 훈련입니다. 처음과 두번째 만남이 하나님이 찾아와 만나는 시간이었다면, 이제는 하나님 홀로 내 마음에 계셔야하기 때문에 하나님과 함께 있을 수 없는 것들을 버리는 훈련이 세 번째 훈련입니다.
 두 마음을 섬길 수 없다. 하나님만이 나의 전부가 되어야 한다. 하나님의 나의 전부가 될 때, 비로서 세상을 품고 세상을 유혹당하지 않고 세상을 섬길 수 있다.

 먼저, 이방신을 버리는 훈련이다. 1-7절. 라반의 집에서 섬길 수 있었던 이방신들을 버리는 훈련이다. 이 때에 하나님보다 더 사랑한 모든 것을 버리는 일도 함께 하게 된다.
 오직 하나님만을 섬기리라. 

 둘째,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이별 훈련이다.
    1) 리브가의 유모 드보라. 8절
    2) 사랑하는 라헬. 19절.
    3) 아버지 이삭. 29절.
 오직 하나님만 영원히 함께 하신다.
 다시금 홀라 남았지만, 홀로 있는 것이 아니라 함께 있다. 하나님이 동행하는 삶이다.

1절 "하나님이 야곱에게 이르시되"
   => 세번째 만남.
     첫번째 만남. 창 28:10-15.  <피할 곳을 찾아 나서는 야곱을 찾아오시는 하나님>
                             http://saltandlight21.blogspot.com/2011/12/2810-15.html
     두번째 만남. 창 31:3 "여호와께서 야곱에게 이르시되" <귀향에서 길에서 늘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만난 야곱, 그러나 믿음의 거목의 세워가는 길은 쉬운 길이 결코 아님을 이제 보게 될 것이다> http://saltandlight21.blogspot.com/2011/12/311-16.html
     그리고 세번째 만남.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서 거기 거주하며 네가 네 형 에서의 낯을 피하여 도망하던 때에 네게 나타났던 하나님께 거기서 제단을 쌓으라"


2절 "야곱이 이에 자기 집안 사람과 자기와 함께한 모든 자에게 이르되 너희 중에 있는 이방 신상들을 버리고 자신을 정결하게 하고 너희들의 의복을 바꾸어 입으라"
 => 모든 것을 버리는 야곱. 지금까지 



3절 "그들이 자기 손에 있는 모든 이방 신상들과 자기 귀에 있는 귀고리들을 야곱에게 주는지라"
 => 정결케 하라. 


6-7절 벧엘... 제단... 엘벧엘...
 6절 "곧 벧엘에 이르고"
 7절 "거기서 제단을 쌓고 그 곳을 엘벧엘이라 불렀으니"
     엘벧엘=> 벧엘의 하나님.




*다시금 처음 창세기 묵상의 때로 돌아간다.

한 번에 되지 않는 제자의 길

모두들 단 번에 되고자 합니다. 
그리스도의 제자를 
그러나 그렇게 되지 않네요!

모두들 한 번에 하려고 합니다.
그리스도의 닮음을
그러나 그게 쉽지 않네요!

모두들 한 방에 하려고 합니다.
그리스도의 놀라운 기적을
그러나 그럴 수 없다네요!

한 번에 되지 않는 제자의 길을
날마다 경험합니다.
아브람을 통해서
모세를 통해서
제자들을 통해서

한 번에 되지 않기에 
오늘 인내하며 나아가렵니다.

* 창세기 말씀 묵상을 정리하면서.. 적어봅니다. 
더 큰 믿음을 사모합니까?그렇다면 말씀의 훈련을 받으십시오. 아브람을 묵상하면 묵상할 수록 더욱 크게 들리는 음성이 있습니다. 믿음은 훈련과 관계속에서 성장하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12제자를 위한 예수님의 삼 년의 공생애의 마음을 쪼금이나마 이해하고 있습니다.

Sunday, December 11, 2011

한 날 묵상 - 창 29:1-35 - <홀로 세상에 뛰어들다. 아내를 만나고, 아이들을 갖고 한 가정의 가장의 되다>

한 날 묵상 - 창 29:1-35 - <홀로 세상에 뛰어들다. 아내를 만나고, 아이들을 갖고 한 가정의 가장의 되다.>

"벧엘에서 만난 하나님으로 인해 야곱은 어떻게 바뀌었는가? 벧엘에서 만난 하나님으로 인해 그의 신앙이 하란에서 꽃을 피우고 있다"

 부모를 떠남
 1절 "야곱이 길을 떠나... 동방 사람의 땅에 ... 이르러"
 -> 홀로서기에 성공하다.

 2절 "본즉"
 주변 상황을 정확히 살피라. 자신을 정확히 바라보라.
-> 세상을 보는 눈을 가졌다. 우물안 개구리에서 벗어나라.
 =>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느껴진다.
     그 때에 라반의 식구를 만나다. 이는 아브라함이 이삭을 위해 보내는 장면, 창세기 24장과 너무나 닮았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은 우리가 이처럼 눈을 볼 수 있다. 하나님은 언제나 여기 계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언제 인간과 함께 하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일하심은 우리의 삶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만남 - 사람들과의 관계 
 4-13절
 4절 "야곱이 그들에게 이르되"
 5절 "야곱이 그들에게 이르되"
 6절 "야곱이 그들에게 이르되"
 7절 "야곱이 이르되"
 10절 "야곱이 그의 외삼촌 라반의 딸 라헬과 그의 외삼촌의 양을 보고"
 11절 "그가 라헬에게 입맞추고 소리 내어 울며"

 일함 
 14-20절
 - 인내하라. 인내하라. 참고 견디라.
    무엇이 그를 이토록 인내하게 하였는가?
    바로 벧엘을 통과했기 때문이다. 벧엘을 통과했기에 인내할 수 있었다. 그에게 이제는 전과 다른 힘이 있었다. 그 안에 여호와과 계신다.
 - 목표를 정하라. 그래야 즐길 수 있다(20절 "그를 사랑하는 까닭에 칠 년을 며칠같이 여겼더라"
 - 영원한 소유할 목표를 취하라. 금방 사라져 버리는 목표는 무의미하다.
    => 라헬과 결혼하기. 자기 집을 세우기(창 30:30 "언제나 내 집을 세우리이까)
 - 인정받으리라. 먼저 좋은 조건을 제시하게 하라(15절. 창 30:29)
 - 악조건의 고용주에게도 성실하라(창 31:40.41). 열번이난 번복하는 라반.
    "낮에는 더위와 밤에는 추위를 무릅쓰고 눈 붙일 겨를도 없이 지냈나이다"(31:40)

=> 그가 양치는 곳은 하나님이 계신 벧엘이자 성전이요, 양 치는 일은 예배며, 그가 맡은 양은 라반의 것인 동시에 하나님의 것이고, 그가 하는 일은 하나님의 일이다(야곱 DNA p124).

    결론 - 하나님을 바라보라. 하나님을 의지하라. 하나님을 신뢰하라. 주인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며, 주인의 이익을 위한 섬김이 아니라, 하나님의 위한 섬김이다. 섬김을 성실과 정직으로 심으라. 그러면 그대로 거두리라.
  갈 6:7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없신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 시편 33편
"여호와를 의뢰하여 선을 행하라. 땅에 거하며 그의 성실로 식물을 삼을지어다...
그러나 오직 온유한 자는 땅을 자치히며, 풍부한 화평으로 즐기리로다..
의인의 구원은 여호와께 있으니: 그는 환난 때에 저희 산성이시로다.
여호와께서 저희를 도와 건지시되: 악인에게서 건져 구원하심은,b그를 의지한 연고로다."


 결혼
 21-30절
  25 "나를 속이심은 어찌도미이니이까" -> 자신도 속였다. 이제 속임을 당했다.

 자녀출생(31절에서 "여호와"라는 말이 등장함)
 31-35절

 홀로 세상에 뛰어들다. 아내를 만나고, 아이들을 갖고 한 가정의 가장의 되다. 그러나 그는 결코 혼자가 아니었다. 하나님의 계획하심과 섭리안에 있었다.
 31절 "여호와께서 레아가 사랑 받지 못함을 보시고 그의 태를 여셨으나 라헬은 자녀가 없었더라"
 -> 때론 아픔과 슬픔이 있지만, 그러나 그건 하나님의 큰 계획과 섭리안에 있기에 아무것도 아님을 알 수 있다.
 -> 어떤 이야기로 진행될지 알 수 없었지만, 야곱의 삶에 하나님의 함께 하심은 분명하다.

 하나님은 언제나 함께 계신다.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방법으로 찾아오시고 일하신다.
 오늘 하나님은 없다 하지 말고, 하나님은 나의 일에 무관심하다 하지 말고, 여전히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기다려보자.
 "왜 이제야 오셨습니까?"라고 말하지 말고, 제 때에 찾아 오심에 감사하라.

=> 홀로 세상에 뛰어들어 살 길을 개척하다.
 그런데 결코 아버지의 유언을 잊지않았고, 하나님을 기억하며 살았다.
 우리 아버지들이여 자기의 유언이 하나님의 말씀안에 있도록 하라. 아버지의 유언의 말씀만 잘 지켜도 하나님과는 결코 떠나지 않도록 유언하라.
  세상의 그 어떠한 것보다 하나님이 먼저며, 하나님의 말씀이 먼저임을 자녀들이 삶에서 지킬 수 있도록 유언하라.

 야곱의 믿음의 성장의 단면을 창세기 30장 2절에서 볼 수 있다. 라헬과 야곱의 대화.
 창 30장 2절 "야곱이 라헬에게 성을 내어 이르되 그대를 임신하지 못하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겠느냐"


Friday, December 9, 2011

한 날 묵상 - 창 28:16-22 - <좋은 만남, 위대한 만남이 아닌, 하나님과의 만남으로 결단하는 야곱>

한 날 묵상 - 창 28:16-22 - <좋은 만남, 위대한 만남이 아닌, 하나님과의 만남으로 결단하는 야곱>

 하나님과의 만남은 결단으로 이어집니다. 신앙이란 참으로 묘합니다. 하나님을 만나면, 마음에서 오는 성령의 음성때문에 결단을 자연스럽게 만남은 결단으로 이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만약, 하나님을 만났음에도 자연스럽게 결단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면, 하나님과 만남이 온전한 만남이 아닐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만남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진 야곱의 결단은 무엇입니까?

16절 "야곱이 잠이 깨어 이르되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
 1.-> 절로 신묘막측하심을 고백하게 합니다. 야곱이 처한 최악의 상황에서 찾아오신 하나님, 그리고 만남이어지며, 고백으로 나아가는 야곱의 모습이 너무나 신묘막측하시다.
 -> 하나님은 어디에든 계십니다. 어느 때에든 계십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어느 순간이라도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 "과연 하나님이 여기 계시거늘"이라고 고백할 수 있는 하나님과의 만남이 매일, 매순간 있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이 순간, 오늘 어느 순간에 무엇을 하든, 누구를 만나든 그러한 만남과 입술의 고백이 있는 결단을 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 우리의 가장 큰 결단은 매 순간 하나님이 계심을 인정하며, 그리고 인격적으로 그분을 삶에서 인정하는 것입니다. 내안에 성령님이 계십니다. 그렇다면, 그 분을 인격적으로 인정해야 합니다. 내 안에 성령님이 계심을 고백하지만, 여전히 성령님이 원하시는 삶으로 살아가지 않는 것은 인격적으로 성령님을 인정하는 삶이 아닙니다.


17절 "이에 두려워하여 이르되 두렵도다 이 곳이여 이것은 다름 하나님의 집이요 이는 하늘의 문이로다 하고"

18절 "베개로 삼았던 돌을 가져다가 기둥으로 세우고 그 위에 기름을 붓고"
19절 "그 곳 이름을 벧엘이라 하였더라"

 2. 만남은 서원으로 이어집니다. 서원의 의미는 지금 이 순간을 넘어 한평생을 주님께 나의 삶을 드리겠다는 고백입니다.
 좋은 만남은 순간의 결심을 하게 합니다. 그러나 좋은 만남은 좋은 결심으로서 거기까지입니다. 한계가 있습니다.
 위대한 만남은 마음에 잔양을 담게 됩니다. 그들의 걸어온 길을 듣노라면 절로 탄성이 나아옵니다. 본받고 싶은 마음이 절로 나옵니다. 그리고 그 마음의 잔양이 위대한 결단으로  이어져 삶의 변화가 일어납니다. 한 하나 아쉬움이 있다면 어려움을 만날 때입니다. 어려움을 만날 때 그것을 이길 힘은 따로 있습니다.
 하나님과의 만남입니다.
 하나님과의 만남은 인간의 한계를 뒤어넘은 그 무엇을 가지게 됩니다. 우리는 이것을 기적이라고 하지만, 하나님과 만남이 있는 사람은 기적이 상식이 됩니다. 하나님과의 만남에서 오는 서원, 결단은 나 혼자만의 결단이 아닙니다. 성령님과 함께 한 결단입니다. 여기에 놀라운 비밀이 숨겨져 있습니다. 나의 한계와 상황을 뛰어넘는 놀라운 능력을 갖게 됩니다.
 오늘 하루 좋은 만남의 갖기 원합니다.
 오늘 위대한 만남을 할 수 있기 원합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하나님과 만남을 가장 먼저, 가장 소중히 생각하기 원합니다. 하나님과의 만남이 나의 상식을 뛰어넘는 놀라운 일들이 나를 통해 일어날 수 있게 합니다.
 오늘도 하나님과 만남을 위해 자신을 순수하고 아무꾸밈없이 오픈할 수 있는 한 날 되기를 주님의 이름을 기원합니다.

20절 "야곱이 서원하여 이르되"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셔서 내가 가는 이 길에서 나를 지키시고 먹을 떡과 입을 옷을 주시어"
21절 "내가 평안히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게 히시오면'

21절 "여호와께서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요"
22절 "내가 기둥으로 세운 이 돌이 하나님의 집이 될 것이요"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모든 것에서 십분의 일을 내가 반드시 하나님께 드리겠나이다"


"중심" - 조신영
p78-79.
"소망이 중심에 닿게 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구체적인 소망의 내용을 담은, 열 개의 어절로 된 한 문장을 만드는 것이다. 우리의 내면은 말의 지배를 받는다. 말에는 각인력, 견인력, 창조력이 있어서 소망을 중심에 새기고 집중시키는 데 가장 큰 힘을 발휘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느 순간 동기 부여를 받으면 강렬한 소망을 갖지만, 누군가가 곁에서 지속적으로 동기 부여를 해 주지 않으면 금세 싫증을 내거나 쉽게 포기해 버리고 만다. 자기 자신 안에 얼마나 강력한 점화 장치가 있는지 몰라서 지레 포기하는 것이다. 그러고는 불평불만을 늘어놓기 일쑤다." - 지속성. 하나님 만남. 말씀을 통한 임재가운데....

Wednesday, December 7, 2011

한 날 묵상 - 창 28:10 - 15 - <피할 곳을 찾아 나서는 야곱을 찾아오시는 하나님>

한 날 묵상 - 창 28:10-15 - <피할 곳을 찾아 나서는 야곱을 찾아오시는 하나님>

야곱은 생명의 위협을 느끼고 피할 곳을 찾아 허겁지겁 집을 나서게 됩니다.

11절 "한 곳에 이르러는 해가 진지라"
 -> 야곱의 마음을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해가 진지라" 어둠과 두려움이 몰려오고, 외로움이 느끼는 순간입니다. 어느 곳에서도 소망을 찾을 수 없습니다.
   돌아갈 집이 없습니다. 찾아 나선 곳도 미래를 알 수 없는 곳입니다.
 그곳에서 유일한 친구는 "그 곳의 한 돌"이었습니다. 그걸 가져다가 베개로 삼고 누워 잠을 잤습니다.


12-15절 야곱을 찾아오시는 하나님, 그리고 야곱에서 약속을 상기시키시고 확신을 주시는 하나님.
12절 "하나님의 사자들이 .. 오르락 내리락..."
13-14절 "여호와께서 그 위에 서서 이르시되 나는 여호와니 ..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존으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
 약속을 상기시켜 말씀하시는 것은 야곱을 일으켜 세울 힘이다. 야곱이 형을 속여 팥죽으로 장자권을 사고, 거짓으로 자신을 꾸며 이삭의 축복을 빼앗은 것은 바로 하나님이 주신 약속을 붙잡고 살아갔기 때문이다. 태어나면서 들은 자신의 이야기, 살아오면서 들은 리브가의 말인 축복의 통로로서 큰 민족을 이루리라는 약속의 말씀이 오늘 자신을 여기까지 오게 하였다.
 그런데, 이 밤에 홀로 있고 외롭고 두려움이 가득한 이 순간에 전능하신 하나님이 찾아오셔서 약속의 말씀을 상기시켜주신 것이다.

 야곱은 찾아오시는 하나님을 만나 두 가지를 깨닫게 된다.
 1. 자신이 지금까지 걸어온 길이 결코 잘못되지 않았던 것을 깨닫게 되었다.
 2. 그가 걸어온 길은 잘못되지 않았지만 그것 걸어가려고 노력했던 그 길을 걸어가는 방법들이 잘못되었음을 깨닫게 된다. 그 잘못을 깨닫고 자신의 방법들을 바뀌는 사건이 벧엘에서 만난 하나님을 통해 얻은 신앙의 유익이다.

15절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 야곱에게 있는 두 가지 근심 걱정이 다 해결되었다.
 나아갈 길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다. 그 때 하나님이 말씀하셨다.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켜 주시겠다 말씀하신다.
 또 하나는 가족이 있는 곳으로 다시 돌아올 수 있을까에 대한 염려이다. 기약없이 떠나는 길이지만 마음은 고향, 가족과 함께 있었다. 그러나 다시 돌아올 기약을 할 수 없었다.
 이 때 하나님이 말씀하신다.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하나님은 야곱의 마음을 정확히 알고 계셨다.


 - 전부
내 감은 눈안에 이미 들어와 계신 예수님 나보다 앞서 나를 찾아 주시네

내 뻗은 두손 위로 자비하심을 내어 주시니 언제나 먼저 나를 위로하시네

내 노래 가운데 함께 즐거워 하시는 늘 나의 기쁨이 되시네

수 많은 사람중에 나를 택해 잡으시고 눈물 거두워 빛살가루 채우시니

그분은 내 자랑 나의 기쁨 나의 노래 나의 전부 되시네







한 날 묵상 - 창 28:10-15 - 
<생명의 위협을 느켜 피할 곳을 찾아 나선 야곱을 찾아오시는 하나님>


 야곱은 생명의 위협을 느끼고 피할 곳을 찾아 허겁지겁 집을 나서게 됩니다. 태어날 때 있었던 일들과 리브가가 주었던 꿈들을 품고 오직 한 길 만을 걸어 왔는데 문제가 생긴 것입니다. 


 외롭고 쓸쓸한 밤 돌을 베게 삼고 잠을 잡니다.
 두려움과 미래에 대한 불안을 가득안고 잠을 잡니다.


그 때 하나남이 찾아오십니다. 그리고 그를 만나 주십니다. 
그리고 말씀하십니다. 
13-14절 "여호와께서 그 위에 서서 이르시되 나는 여호와니 ..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존으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 
 약속을 상기시켜 말씀하시는 것은 야곱을 일으켜 세울 힘입니다. 야곱이 형을 속여 팥죽으로 장자권을 사고, 거짓으로 자신을 꾸며 이삭의 축복을 빼앗은 것은 바로 하나님이 주신 약속을 붙잡고 살아갔기 때문입니다. 태어나면서 들은 자신과 관련 된 이야기, 살아오면서 들은 리브가의 말들은 축복의 통로로서 큰 민족을 이루리라는 약속의 말씀이 오늘 자신을 여기까지 오게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 밤에 홀로 있고 외롭고 두려움이 가득한 밤을 보내고 있습니다. 이 순간에 전능하신 하나님이 찾아오셔서 약속의 말씀을 상기시켜주신 것입니다.


 야곱은 찾아오시는 하나님을 만나 두 가지를 깨닫게 됩니다. 
 1. 자신이 지금까지 걸어온 길이 결코 잘못되지 않았던 것을 깨닫게 됩니다. 
 2. 그가 걸어온 길은 잘못되지 않았지만 그가 걸어가려고 노력했던 그 길을 걸어가는 방법들이 잘못되었음을 깨닫게 됩니다. 그 잘못을 깨닫고 자신의 방법들을 바뀌는 사건이 벧엘에서 만난 하나님을 통해 얻은 신앙의 유익입니다.


15절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 야곱에게 있는 두 가지 근심 걱정이 다 해결되었습니다.
 나아갈 길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습니다. 그 때 하나님이 말씀하십니다.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켜 주시겠다 말씀하십니다. 
 또 하나는 가족이 있는 곳으로 다시 돌아올 수 있을까에 대한 염려가 잇었습니다. 기약없이 떠나는 길이지만 마음은 고향, 가족과 함께 있었습니다. 그러나 다시 돌아올 기약을 할 수 없었습니다. 
 이 때 하나님이 말씀하십니다.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하나님은 야곱의 마음을 정확히 알고 계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각 사람의 상황과 형편을 정확히 알고 계십니다.



Thursday, December 1, 2011

한 날 묵상 - 창 27:5-45- <축복싸움. 사명이 담긴 축복이었다면 과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복받기 위해서 싸울까? 단지 눈에 보이는 축복만을 바라보고 사람들과 우리는 다른 축복 받기 위한 싸움을 해야 한다>

한 날 묵상 - 창 27:5-45- <축복싸움. 사명이 담긴 축복이었다면 과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복받기 위해서 싸울까? 단지 눈에 보이는 축복만을 바라보고 사람들과 우리는 다른 축복 받기 위한 싸움을 해야 한다>

네 명의 부모형제가 펼치는 숨막히는 축복싸움입니다. 아버지의 축복권을 놓고 벌이는 어머니와 두 아들간의 관계에서 결국 축복 싸움이 한 아들이 미움과 분노를 갖는 것으로 막을 내리고 있습니다.

무엇이 문제일까요?
왜 이러한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요?

축복에 대한 잘못된 생각입니다. 복, 복, 복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오늘 본문에서 펼쳐집니다.
그런데 진짜 복은 무엇을까요?

(오늘 본문에서 찾아보는 축복의 바른 의미, 아님 본문의 앞 뒤 문맥에 흐르는 축복의 의미를 살펴보며 연구하자)

 하나님이 말씀하신 영적인 의미와 축복의 의미가 분명히 담겨 있다. 누가 약속의 말씀을 이을 것인가? 하나님의 주신 약속의 말씀을 이을자로서의 축복이다. 그 의미는 사명의 의미도 포함되어 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약속의 말씀을 이을자로서 훈련을 받으며, 시험을 통과했던 것처럼 결코 쉽지 않는 길임을 알아야 한다.

 그러나 아직, 에서와 야곱은 그 의미를 모르고 있다. 단지 아버지가 축복하시는 복만을 받기 원했다. 사명에 붙들린 축복이 바른 축복의 의미이다.


이삭(부)
 1절 "이삭이 나이가 많아 눈이 어두워 잘 보지 못하더니"
 => 축복싸움의 시작은 이삭이 눈이 어두워 잘 보이지 않은데에서 시작된다. 가장 절묘한 타이밍에 서 있다. 하나님의 주권 1.

 5절 "이삭이 그의 아들 에서에게 말할 때에"

 왜? 이삭은 에서였는가?
 장자였으므로??
 이삭은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은 어떻게 이해하고 있었는가?

 18-22절
 23절 "그의 손이 형 에서의 손과 같이 털이 있으므로 분별하지 못하고 축복하였더라"

 분별력이 떨어진 이삭, 하나님의 계획안에 있는 이삭의 축복...
 25절 "네게 축복하리라"
 27절 "그에게 축복하여 이르되"
  28-29절 이삭의 축복
 30절 "이삭이 야곱에게 축복하기를 마치매"


리브가(모)
 6절 "리브가가 그의 아들 야곱에게 말하여 이르되"
       "네 아버지가 네 형 에서에게 말씀하시는 내가 들으니"
 => 절묘한 타이밍. 리브가가 이삭과 에서의 대화를 들었다. 하남니의 주권 2.
 7절 "죽기 전에 여호와 아에서 네게 축복하게 하라 하셨으니"
 10절 "죽기 전에 네게 축복하기 위하여 잡수시게 하라"

 왜? 에서는 아니었는가?
 하나님이 주신 말씀을 기억할 때,
 에서가 지금까지 해온 행동을 비추어 볼 때,

 13절 "어머니가 그에게 이르되 내 아들아 너의 저주는 내게로 돌리리니"
 14-17절 리브가의 준비

 42-45절 리브가와 야곱의 대화
  44절 "노가 풀리기까지 몇 날 동안 그와 함께 거주하라"
 => 몇 날이 될지, 몇 년이 될지 리브가는 알 수 없었다. 모든 주권은 하나님에게 있다. 하나님의 주권 4. 야곱의 몇 년이 그가 훈련받는 시간이었으며, 주님과 인격적으로 만나는 여정이었다.
  45절 "네 형의 분노가 풀려"


에서(형)
  늦은 에서의 등장
 30-41절
 31절 에서가 말함. "내게 축복하소서"
 33절 이삭의 대답 "그를 위하여 축복하였은즉" "그가 반드시 복을 받을 것이니라"
 34절 에서 "내게 축복하소서"
 35절 "네 복을 배앗았도다"
 36절 "내 복을 빼앗았나이다" "나를 위하여 빌 복을 남기지 아니하셨나이까"
 38절 에서 "아버지가 빌 복이 이 하나 뿐이리이까" "내 아버지여 내게 축복하소서"
 39-40절 이삭이 에서에게 대답 이삭이 에서에게는 "축복"이라는 말을 쓰지 않고 있다.
 40절 "네 아루를 섬길 것이며"

 41절 "그의 아버지가 야곱에게 축복한 그 축복으로 말미암이"
 41절 "에서가 야곱을 미워하여 심중에 이르기를 아버지를 곡할 때가 가까웠은즉 내가 내 아우를 죽이리라 하였더니"

리브가는 어떻게 에서의 심중에 있는 마음을 알 수 있었을까?
42절 "맏아들 에서의 이 말이 리브가에게 들리매" 하나님의 주권 3. 리브가는 에서의 심중의 말을 들을 수 있었다. 그 방법이 어떠했던들 들었다. 그리고 야곱의 피할 길을 생겼다.

야곱(동생)
 12절 "내가 아버저의 눈에 속이는 자로 보일지라 복은 고사하고 저주를 받을까 하나이다"


* 생각해 볼 것..
에서의 축복관과 야곱의 축복관은 차이는?
에서는 자신의 개인적인 부를 위한 축복이었다.
야곱은 하나님의 주권과 역사안에서 하나님 나라를 위한 축복이었다.
 가장 먼저는 36절에서 다시 한 번 언급되는 "장자의 명분"을 소홀히 하는 것에서 볼 수 있다.

나의 축복관은 어디인가? 에서의 축복관인가? 야곱의 축복관인가?

* 참으로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27장이다. 등장인물도 많으며, 상황도 급박하게 진행되며, 생사가 오고가며, 축복이 오고간다. 인간사 다 이런 것 아니겠는가? 그렇지만 중요한 것은 이 상황에서 하나님은 어디에 계시는가? 누가 하나님을 지금 기억하고 있는가?
 반드시 하나 기억해야 할 것은 이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역사, 하나님의 주권, 하나님의 통치는 계속되고 있다는 것이다.
 참으로 놀라운 사건이며, 은혜가 아닐 수 없다.

Sunday, November 27, 2011

한 날 묵상 - 창 27:1-4- <떠나야 하고, 떠나 보내야 하는 부모와 자식 사이에 할 수 있는 최고의 축복은 무엇인가?>

한 날 묵상 - 창 27:1-4- <떠나야 하고, 떠나 보내야 하는 부모와 자식 사이에 할 수 있는 최고의 축복은 무엇인가?>


1절 "이삭이 나이 많아 눈이 어두워 잘 보지 못하더니"
    -> 이삭의 삶이 어떠 했는지, 이 말씀에서 알 수 있다. 눈이 어두워져 있는 만큼이나, 그의 인생도 희미한 상황에서 시작했다. 그리고 꺼져가는 생명의 때도 있었다. 아내를 맞이할 때에도 뚜렷히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선하게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경험할 수 있다. 자녀들이 태어날 때에도 쉽지 않았을 뿐 아니라, 태어날 때에도 형제가 순서가 뒤바뀌는 운명으로 태어났다. 자녀들이 자라면서도 그 둘 사이에 늘 긴장감이 있었다. 서로 하나되지 못하는 형제에서 이삭의 마음이 얼마나 눈이 어두워져 잘 보이지 않는 것처럼 희미한 인생을 살았는지 충분히 알 수 있다.
 그리고 마지막 임종의 순간에도 그의 눈은 어두워 잘 보이지 않았다. 이 또한 또 한번의 누간가의 손길이 필요하다.
 바로 하나님이시다. 그의 인생은 희미했지만, 뒤돌아 본 그의 삶은 뚜렸하다. 왜? 하나님이 손길이 늘 함께 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그의 인생을 이끄시고 인도하셨기 때문이다.

 파란 만장한 삶을 살아오다, 이 마지막 순간에 이르러 그는 무엇을 준비하고 있는가?

    4절 "내가 즐기는 별미를 만들어 내게로 가져와서 먹게 하여 내가 죽기 전에 내 마음껏 네게 축복하게 하라"
   -> 아비는 자식에서 마음 껏 축복을 해야 한다. 어떤 축복의 말씀을 하는가? 27-29절에서 분명하게 나온다. 하나님의 주시는 축복을 말한다. 하나님의 어떠한 축복을 주실 것인지 말씀하신다. 하나님과 함께 함이 형통이 함임을 선포하고 있다.
   -> 자녀는 아비에게 자신이 할 수 있는 최고으 진미를 만들어 드려야 한다(2-4절). 에서가 할 수있는 최선의 준비를 드려서 아비를 공꿰하는 모습을 보게 한다.
   -> 최선과 최선이 만나 최고의 분으로 이름으로 축복할 때 그 인생은 축복의 길, 형통함의 인생, 그 분의 함께 하심을 맛보는 인생을 살 수 밖에 없다.
      하나님이 인생의 주인이시기 때문입니다.

Friday, November 18, 2011

한 날 묵상 - 창 25:22- 34 <에서와 야곱, 그들은 무엇이 달랐는가? 하나님이 주신 명분을 가볍게 여김>

한 날 묵상 - 창 25:22-34 <에서와 야곱, 그들은 무엇이 달랐는가? 하나님이 주신 명분을 가볍게 여김>
 => 하나님이 주신 말씀을 가볍게 여기고 있지는 않은가?
 목사님을 통해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얼마나 귀하게 여기는가?
 말씀을 묵상을 통해, 아니면 여러 상황을 통해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 하나님의 이끄심을 얼마나 마음에 판에 세기는가?
 오늘 한 날 스스로에게 질문해 본다.
  나는 얼마나 말씀을 귀하게 다루는가? 마음판에 새겼는가? 행실로 옮겼는가?


하나님의 주신 언약의 말씀을 품고 있는가?
말씀을 얼마나 마음속에 품고 행함으로 실천하고 있는가?


에서와 야곱의 출생부터 성장하여 장성할 때까지 둘을 비교하는 말씀이다.

22-23절 여호와의 선택. 참고 신약
 23절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
 [롬 9:10-13] "......리브가가 우리 조상 이삭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잉태하였는데 그 자식들이 아직 나지도 아니하고 무슨 선이나 악을 행하지 아니할 때에 택하심을 따라 세우신 하나님의 뜻이...... 리브가에게 이르시되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 하셨나니 기록된바 내가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하였다 하심과 같으니라" 
 - 악이나 선이 있기전에 하나님은 선택하셨다. 하나님의 계획하심이 있었다. 로마서에서 이방인을 향한 구원을 말씀하시면서 에서와 야곱의 선택에 대한 예를 들으심.

24-26절 에서와 야곱의 출생
 25절 "먼저 나온 자는 붉고 찬즉 전신이 털옷 같아서 이름을 에서라 하였고"
 26절 "후에 나온 아우는 손으로 에서의 발꿈치를 잡았으므로 그 이름을 약보이라 하였으며"

27-28절 에서와 야곱의 성장
 27절 에서 -> 익숙한 사냥꾼. 들사람
 28절 야곱 -> 조용한 사람. 장막에 거주

29-34절 에서와 야곱의 장성, 그리고 장자권
 29절 에서 "심히 피곤하니"
 30절 "그 붉은 것을 내가 먹게 하라"
 31절 야곱 "장자의 명분을 오늘 내게 팔라"
 32절 "내가 죽게 되었으니 이 장자의 명분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리요"
 33절 "장자의 명분을 야곱에게 판지라"
 34절 "에서가 장자의 명분을 가볍게 여김이었더라"

[히12:16-17] "음행하는 자와 혹 한 그릇 식물을 위하여 장자의 명분을 판 에서와 같이 망령된 자가 있을까 두려워하라. 너희의 아는 바와 같이 저가 그 후에 축복을 기업으로 받으려고 눈물을 흘리며 구하되 버린바가 되어 회개할 기회를 얻지 못하였느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