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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nday, August 5, 2013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들을 사랑하는 법(갈등 해결 방법) - 국제제자훈련원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들을 사랑하는 법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목하라” (롬 12:28)
우리가 그리스도와 동행하면서 계발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기술 중 하나는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들을 사랑하는 것이다.
다음은 예수님께서 어려운 사람들을 만나셨을 때 본을 보이셨던 네 가지 방법들이다.
  • 모든 사람을 만족시킬 수는 없음을 깨달으라. (마 22:18) 그것은 하나님도 하실 수 없는 일이다! 그들에게 좌우되는 것을 거부하라. (마 22:18)
  • 비현실적인 기대에 ‘노’라고 말하는 법을 배우라. (엡 4:15)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말함”으로써 그들을 대하라.
  • ‘절대’ 보복하지 마라. (마 5:38-39) 그렇게 하면 그들의 수준까지 내려갈 뿐이다.
  • 그들을 위해 기도하라. (마 5:44) 그러면 상대방과 나 모두에게 도움이 된다. 하나님께서 직접 말씀하시게 하라.
먼저 행동을 취함으로써 갈등을 해결하라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절제하는 마음이니” (딤후 1:7)
아담과 하와가 범죄하고 하나님께서 아담을 찾으러 오셨을 때 아담은 “내가 …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라고 말했다. (창 3:10) 이러한 두려움은 인류 역사만큼이나 오래된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진짜 자아를 숨긴다. 우리가 진정 어떠한 사람인지 사람들이 모르게 하는 것이다. 왜 그런가? 바로 “내가 어떤 사람인지 얘기했다가 상대가 날 안 좋아하면 어떡하지?”라는 생각 때문이다.
두려움은 관계에 세 가지 악영향을 미친다.
두려움은 우리를 방어적으로 만든다. 두려울 때 우리는 자신을 드러내기를 겁낸다. 사람들이 약점을 지적하면 우리는 그에 보복하고 우리 자신을 방어한다.
두려움은 사람들로부터 거리를 두게 만든다. 두려울 때 우리는 사람들이 가까이 오지 못하게 한다. 뒤로 물러나서 감정을 숨기고 싶어한다. 마음을 열고 정직하게 대하기를 원치 않는다.
두려움은 지나치게 요구하게 만든다. 불안정할수록 우리는 통제하거나 지배하려고 애쓰게 된다. 관계에서도 결정권을 가지려고 든다. 이는 언제나 두려움과 불안정함의 징후이다.
갈등을 해소할 때 먼저 발걸음을 뗄 수 있는 용기는 어디에서 얻을 수 있을까? 이는 삶 속의 하나님의 영으로부터 온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비겁함의 영을 주신 것이 아니라, 능력과 사랑과 절제의 영을 주셨습니다.” (딤후 1:7, 새번역)
누군가와 관계를 재개하는 출발점은 잠시 멈췄다가 이렇게 기도하는 것이다. “하나님, 제가 이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 먼저 발걸음을 뗄 수 있도록 도우소서.”
자신의 부분을 인정함으로써 갈등을 해결하라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 먼저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어라 그 후에야 밝히 보고 형제의 눈 속에서 티를 빼리라” (마 7:3-5)
갈등 상황에 직면했을 때, 비난하거나 공격하거나 다른 사람 탓으로 돌리기 대신, 겸손함으로 시작하라. 이는 갈등의 90퍼센트가 상대방 탓일지라도 마찬가지다.
사람은 누구나 맹점이 있다. 완벽한 사람은 없으며, 사람은 각자 자신이 미처 보지 못하는 것이 있기 때문에 갈등에 기여하는 부분이 생긴다.
그러므로 공격하거나 비난하려고 하기 전에 스스로 솔직하게 평가하고 이렇게 물어야 한다. “이 갈등에서 내 잘못은 얼마나 되는가?” 정직하게 진단하고 내 부분을 인정해야 한다. 잘못한 것이 있으면 인정하라.
그리고 당신이 옳았다면, 그저 입을 다물어라!
자기 자신에게 솔직해라. 예수님은 자신의 눈 속에 있는 것을 먼저 보라고 말씀하신다. 그러면 그 갈등 상황이 명확하게 보일 것이다.
이렇게 자문하라. “내가 비현실적으로 행동하고 있는가? 내가 둔감한가? 내가 너무 민감한가? 내가 지나치게 요구하고 있는가? 내가 감사하지 못하고 있는가?”
목사로서 내 경험에 의하면, 제일 가는 이혼 사유는 “우린 서로 안 맞아요!”이다. 성경은 서로 성장한다면 어떤 두 사람이라도 서로 사랑하는 법을 배울 수 있다고 가르친다.
그러나 우리의 본성은 자기중심적이고 완고하며 변화하려고 하지 않는다! 다른 어떤 것보다 ‘굽히지 않는 태도’ 때문에 관계가 깨진다.
성경은 우리가 겸손함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가르친다. 갈등 상황에서 막힌 곳은 어떻게 뚫을 수 있을까? 이렇게 말하라. “미안해. 내가 내 생각만 했어.”
갈등 해결 방법 - 상대방을 우선으로 생각하라
“각각 자기 일을 돌볼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하게 하라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빌 2:4-5)
갈등은 저절로 해결되지 않는다. 갈등은 의도적으로 다뤄야 한다. 갈등을 내버려두면 상태는 더 나빠진다. 어떤 사람과 관계가 좋지 않거나 문제가 생겼다면, 당신이 먼저 나서서 해결하라.
갈등은 언제 해결해야 하는가? 그 즉시이다. 해결을 미루면 상태는 악화된다. 가능한 한 빨리, 상황이 곪아서 반감으로 변하기 전에 해야 한다. 자신의 관점이나 상황만 봐서는 안 된다. 다른 사람의 관점도 봐야 한다. 이는 본능을 거스르는 것이기 때문에 무척 어렵다. 초점을 자신의 필요를 바라보는 데서 다른 사람의 필요를 바라보는 데로 옮기는, 의도적인 전환이 요구되는 것이다.
여기에는 그렇게 하도록 삶 속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도움도 필요하다.
상대방의 행동에 대한 배경을 이해할 때, 우리는 갈등을 덜 겪게 될 것이다.
다른 사람을 이해하는 법은 어떻게 배우는가? 그들의 말을 들어야 한다. 말하기보다 듣기를 더 많이 해야 한다. 이것이 쉬운 사람 또한 별로 없다. 우리는 자신의 논지를 분명히 하고, 자신의 입장을 말하고, 자신을 변호하는 데 급급한 경우가 많다. 잠시 멈춰 상대방이 하는 이야기가 뭔지 듣거나 그들의 관점에서 생각하려 하지 않는다.
“상대방의 필요는 무엇이며, 내가 그것을 어떻게 채워줄 수 있을까?”라고 물을 때, 우리는 더욱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것이다. 화가 나면 자신에 대한 생각으로 꽉 차게 된다. 그러나 그리스도와 같이 되면 자기만 보는 게 아니라, ‘서로’의 이해를 바라보게 된다.
평화를 가져오는 가장 강력한 말 중 하나는 “미안해. 내가 내 생각만 했어.”라고 말하는 것이다.
다음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보자.
  • 당신에게는 현재 곪도록 내버려두고 있는 갈등이 있는가? 시간을 더 흘려버리지 마라. 오늘 시간을 들여 그것을 해결하라.
  • 당신의 듣기 기술은 몇 점 정도 되겠는가? 잘 듣는 사람이 되는 데 집중하라.
갈등 해결 방법 - 사랑으로 상대방을 마주하라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마귀에게 틈을 주지 말라” (엡 4:26-27)
갈등은 일어나게 마련이다. 그것을 피할 방법은 없다.
갈등이 생겼을 때는 정면으로 대응해야 한다. 그것이 곪아가도록 내버려두지 마라. “그냥 무시해야지. 시간이 가면 없어질 거야.”라고 생각하는 것은 큰 실수이다.
갈등은 무시한다고 없어지지 않는다. 사도 바울은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마귀에게 틈을 주지 말라”라고 말한다. (엡 4:26-27)
이 구절은 죄에 이르는 분노가 있고 죄에 이르지 않는 분노가 있음을 시사한다. 분을 품는 데도 바른 방법과 틀린 방법이 있는 것이다.
그 차이는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잘못된 분노는 빨리 해결하지 않은 분노이다. 제대로 다뤄지지 않은 분노는 원망과 반감으로 변한다. 원망과 반감은 언제나 죄이다. 이러한 감정은 늘 잘못된 것이다.
갈등은 어떻게 해야 빨리 해결할 수 있을까? 그 해결책은 대면하는 것이다. 갈등을 해결하려 한다면, 직접 마주해야 한다.
그러나 분노를 품은 상태에서 대면할 필요는 없다. 사실, 분노한 상태에서 대면해서는 안 된다. 사랑하는 마음으로 상대방에게 가서, 사랑 안에서 진실된 것을 말하고, 즉시 문제를 다뤄야 한다.
성경은 사람을 대면할 때의 세 가지 원칙을 가르쳐준다. 누구나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며, 성내기도 더디 하라”는 것이다. (약 1:19)
첫 두 가지 원칙을 지키면 세 번째는 자동적으로 된다. 듣기를 속히 하고 말하기를 더디 하면, 성내는 것도 더뎌질 것이다.
다음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보자.
  • 누군가를 대면해야 함을 알 때, 당신은 어떤 감정이 생기는가? 왜 그런 감정이 든다고 생각하는가?
  • 두렵거나 위축된다고 느낄 때도, 당신은 하나님께서 당신이 대면하는 순간을 인도하심을 믿는가?
  • 성경은 우리가 사랑으로 마주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것은 어떤 모습이라고 생각하는가?
갈등 해결 방법 - 화해에 초점을 맞추라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마 5:9)
갈등 상황에 놓였을 때, 해답보다는 화해에 집중하라. 이 둘에는 큰 차이가 있다. 화해는 관계의 재건을 뜻하지만, 해답은 모든 것에 동의하게 됨으로써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뜻한다.
이러한 해결은 이뤄질 수 없다. 두 사람이 다 하나님을 사랑하든, 서로를 깊이 사랑하든 상관 없이, 두 사람이 결코 동의하지 못하는 것이 있다. 하나님께서 우리 각 사람을 서로 다르게 지으셨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불쾌해 하지 않고도 동의하지 않을 수 있는데, 이것을 지혜라고 부른다. 야고보서 3장은 “지혜는 평화를 조성하고, 양순하다. 지혜는 토론을 용납하며, 기꺼이 다른 사람에게 양보한다.”고 말한다.
성경은 양보하는 것이 지혜롭다고 말한다. 우리는 일치함 없이도 통일을 이룰 수 있다. 마음이 맞지 않아도 손 잡고 걸을 수 있다. 모든 문제를 해결하지 않아도 화해할 수 있다.
관계에 초점을 맞출 때, 문제는 무의미한 것이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내가 당신에게 던지는 도전은 이것이다. - 갈등, 전쟁, 편견, 폭력, 분열, 깨진 관계로 가득 찬 세상에서, 화해의 행동가가 되는 데 힘쓰라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를 평화의 사람이 되게 하는 목적을 갖고 계신다. 갈등을 해결하는 것은 관계를 끝내는 것보다 훨씬 더 가치가 있다.
다음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보자.
  • 당신은 삶 속의 어떤 관계, 어떤 상황에서 화해의 행동가가 될 수 있는가?
  • 당신은 갈등 상황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할 때, “내가 할 수 있는 건 여기까지야.”라고 생각하곤 했는가? 관계를 화해로 이끌기 위해 당신의 태도는 어떻게 바뀌어야 하겠는가?
언쟁에서 이기려고 애쓰지 마라
“형제들아 내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모두가 같은 말을 하고 너희 가운데 분쟁이 없이 같은 마음과 같은 뜻으로 온전히 합하라” (고전 1:10)
언쟁에서 이기려고 애쓰지 마라.
그 대신, 당신과 생각지 맞지 않는 사람들을 사랑하는 것을 목표로 삼으라. 승리가 아니라 사랑을 추구하라. 예수님은 사랑이 언제나 이긴다고 말씀하신다. 주님은 그것을 무덤에서 나오심으로 보증하셨다.
다른 신자들과 언쟁이 벌어졌다면, 원만한 해결을 위해 다음 성경적 지침을 사용하라.
자비로 반응하라. (잠 3:3-6) 갈등 상황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공정한 것만을 원한다고 말하지만, 하나님의 접근법은 공정함이 아니라, 은혜와 자비에 대한 것이다. (롬 5:8)
진실에 대한 판단은 하나님께 맡기라. (고후 13:8) 진실은 당신의 생각이나 감정으로, 또는 다른 사람들의 의견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요일 4:1) 진실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이 진실이다. 하나님만이 모든 상황을 설명하시는 유일한 권위이시다. (고후 10:5)
성경은 자기 자신의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고 말한다. (잠 3:5) 즉 우리 눈엔 올바르게 보이는 것도 잘못된 것일 수 있다는 것이다. (잠 14:12)
하나님의 임재를 찾으라. (마 28:20) 사탄은 우리가 전쟁터에 혼자 있다고 믿기를 바란다. 어린 양치기 소년 다윗의 예를 본받으라. 그는 하나님께서 싸우고 계시며, 전쟁이 하나님께 속해 있다고 믿었다. (삼상 17:47)
갈등의 진정한 근원을 찾으라. (엡 6:12) 하나님 말씀에 따르면, 실제로 우리는 다른 사람들과 싸우고 있는 게 아니다. 우리의 진짜 적은 사탄이며 그의 “보이지 않는 악한 영의 세력”이다.
인간의 무기를 내려놓으라. (고후 10:4-5)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독립적으로 행동하면서 자기 자신의 필요를 채우려고 애쓸 때, 우리는 사도 바울이 말했던 ‘육신의 무기’를 사용하는 경향이 있다. 여기에는 조작, 험담, 비방, 조롱, 위협, 비난, 잔소리, 속임, 침묵 등이 포함된다. 그러한 것들을 사용할 때 우리는 결국 ‘악에는 악으로’의 상황을 반복하게 되는데, 이는 ‘냄새’를 이용하여 스컹크와 싸우려고 드는 것과 마찬가지다. 모두가 패배자가 되는 것이다!
영적 무기 사용법을 배우라 (고후 10:4) 성경은 기도가 강력한 영적 무기라고 말한다. 하나님의 전신갑주로 무장한 후, 우리는 “모든 기도와 간구를 하되 항상 성령 안에서 기도”해야 한다. (엡 6:18)
다음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보자.
  • 다른 신자와 갈등이 있다면, 오늘 당신은 그것에 대해 무엇을 해야 하는가?

Thursday, April 11, 2013

하나님이 사용하시는 사람들은 누구인가? - 국제제자훈련원

http://www.purposedriven.co.kr/mailService/list.asp?m_Type=QT&LMCode=6&MMCode=2

하나님은 자신의 죄를 고백하는 사람들을 사용하신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준비함이 되리라” (딤후 2:21)
하나님은 모든 종류의 그릇을 사용하신다. 큰 것이든 작은 것이든, 장식이 있는 것이든 없는 것이든, 매우 값진 것이든 평범한 것이든 다 사용하신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사용하시지 않는 그릇이 한 가지 있는데, 바로 더러운 그릇이다. 따라서 하나님께 쓰임 받으려면 정화를 해야 한다.
여호수아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너희는 자신을 성결하게 하라. 여호와께서 내일 너희 가운데에 기이한 일들을 행하시리라.” (수 3:5) 사실 하나님은 당신의 미래에도 위대한 일을 행하기 원하신다. 그러나 먼저는 과거를 청산해야 한다. 어제의 일을 깨끗이 씻어내야 한다.
그것은 어떻게 가능할까? 바로 고백을 통해서이다. 어거스틴은 이렇게 말했다. “악한 일에 대한 고백은 선한 일의 시작이다.” 이는 과거를 더듬어봄으로써 시작할 수 있다. 성경은 말한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요일 1:9)
나는 처음으로 ‘죄 목록’을 만들었던 때를 결코 잊지 못한다. 당시 나는 하나님께서 너무나 멀리 계신 것처럼 느껴졌다. 그분의 권능도 그분의 은혜도 느낄 수 없었다. 내 기도가 천장에 부딪쳐 돌아오는 것만 같았다. 그래서 어느 날 밤 나는 종이를 꺼내 들고 이렇게 말했다. “하나님, 저와 하나님 사이에 있는 죄를 모조리 보여주십시오. 그러면 그것을 구체적으로 적겠습니다. 저는 구체적인 죄를 저질렀고, 그것을 구체적으로 고백하겠습니다. 하나님과 함께, 지금 당장 그것을 처리하여 없애겠습니다.”
나는 쓰기 시작했다. 쓰고 또 썼다. 마치 ‘목적이 이끄는 죄인’이라는 한 권의 책을 쓰기라도 할 기세로 말이다! 마침내 죄의 목록은 9페이지쯤에서 끝났다. 새벽 두 시였다. 나는 모든 죄를 하나님께 고백하고 각각의 죄 위에 요한일서 1장 9절 말씀을 적었다.
나는 그날 밤 이후로도 여러 번 ‘죄 목록’을 만들어야 했다. 우리와 하나님 사이에 죄가 비집고 들어오기란 매우 쉽기 때문이다.
깨끗한 그릇이 되어 하나님께 드려져 사용되려면 정기적으로 죄의 목록을 만들어야 한다. 집안의 쓰레기를 한 달에 한 번만 버리면 온 집안에 퀴퀴한 냄새가 나기 시작할 것이다.
다음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보자.
  • 당신이 마지막으로 ‘특정한’ 죄를 하나님께 고백한 것은 언제였는가?
  • 죄의 목록을 만들 때, 당신이 기억나는 것, 또는 기억나는 것의 수에 있어 어떤 점에 놀라게 되는가?

하나님은 ‘건강 증진의 원칙’을 실천하는 사람을 사용하신다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고전 6:19-20)
‘봉헌(sanctify)’은 무언가를 하나님께서 그분의 뜻대로 사용하시도록 바치는 것을 뜻한다. 집을 들어 “하나님, 이 집을 당신께 드립니다.”라고 말할 수도 있고, 차를 들어 “하나님, 이 차를 당신께 드립니다.”라고 말할 수도 있다. 무엇이든 그것을 들어서 하나님께서 그분 뜻대로 사용하시도록 바치는 것이다.
성경은 이렇게 말한다.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고전 6:19-20)
하나님은 모든 종류의 그릇을 사용하시지만, 우리의 그릇이 순수하고 깨끗하고 건강하길 바라신다. 하나님께 쓰임 받으려면 좋은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 당신의 몸(즉, 그릇)이 하나님이 사용하시도록 봉헌될 때, 그것은 하나님이 부르신 뜻을 행하기에 가장 좋은 상태에 있어야 한다. 성경은 말한다. “주의 손이 나를 만들고 세우셨사오니 내가 깨달아 주의 계명들을 배우게 하소서” (시 119:73)
하나님은 건강 증진의 원칙을 세우셨다. 즉 식사와 운동, 그리고 수면의 균형을 맞추라고 하신다. 좋은 건강을 유지하려면 이 세 가지가 다 필요하다.
하나님은 당신을 통해 위대한 일을 행할 수 있도록, 당신이 영적으로 건강한 것처럼 육체적으로도 건강하기 바라신다.
다음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보자.
  • 당신의 수면 습관은 어떠한가? 때때로 당신이 할 수 있는 가장 영적인 일은 잠자리에 드는 것이다.
  • 당신은 살기 위해 먹는가 아니면 먹기 위해 사는가? 당신의 식사 습관은 영적 건강에 어떤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하는가?
하나님은 단순화된 삶을 사는 이들을 사용하신다
“…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며” (히 12:1b)
하나님의 목적을 위해 사용되고자 할 때, 우리는 삶을 집중시켜야 한다. 성경은 인생을 마라톤에 비유하는데, 이는 우리가 삶을 단순화해야 함을 뜻한다.
성경은 말한다.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며” (히 12:1b)
이는 우리를 방해하고 저지하게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든 삶에서 제거해야 한다는 뜻이다. 사탄은 우리를 무너뜨리지 못한다면 우리를 바쁘게 만들 것이다. 심지어 ‘선한 일을 하느라’ 너무 바쁜 나머지 ‘최선의 일’을 할 시간을 못 내게 할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은 삶을 단순화하라고 말하는 것이다. 우리는 삶에서 불필요한 짐을 버려야 한다. 모든 것을 다 하려고 애쓰지 마라. 가장 중요한 것을 하라. 충실한 주자는 경주에 집중한다.
“하나님의 목적을 위해 살고 싶은 생각이 간절하지만, 시간이 없어요.”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그들이 시간이 없는 이유는 삶을 단순화하려는 데 시간을 내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음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보자.
삶을 단순화하지 못하게 방해하는 것들은 수없이 많다. 다음 중 당신의 주의를 분산시키고 삶을 단순화하지 못하도록 막는 것은 무엇인가?
  1.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대로 되려고 하는 대신 다른 사람들과 같이 되려고 노력하는 것
  2.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하려고 노력하는 것
  3. 다른 사람들이 제멋대로 정한 기대에 부응하려고 애쓰는 것
  4. 너무 많은 취미 또는 한 취미에 너무 많은 시간을 쏟는 것
  5. SNS, 블로그 등의 소셜미디어, 인터넷, 영화, 또는 TV
  6. 잘못된 종류의 관계
  7. 과거의 실수
하나님은 믿음을 견고히 하는 사람들을 사용하신다
“그 후로는 다시 사람의 정욕을 따르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육체의 남은 때를 살게 하려 함이라” (벧전 4:2)
당신은 믿음을 견고히 하기 위해 어떻게 하는가? 믿음을 강화하는 데는 몇 가지 방법이 있다.
성경을 연구하라. 우리는 하나님 말씀을 삶의 일부로 만들 필요가 있다. 하나님 말씀은 계시된 것이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을 다 할 수 있도록 우리를 온전히 준비시킬 것이다.
경건의 시간(QT)을 지속하라. 요즘 당신의 경건의 시간은 어떠한가? 어떤 사람들은 이 질문에 죄책감을 느낄지도 모른다. 그것은 아마도 누군가가 오래 전에 가르쳐준 대로 경건의 시간을 가지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그 방법이 하나님께서 자신을 지으신 방식과 맞지 않기 때문일 수도 있다. 당신이 매일 하나님 말씀 안에서 일정한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신앙 서적을 읽으라. 다른 신자들로부터, 가능한 한 모든 것을 배우라. 다른 신자들이 한 이야기들을 계속해서 영혼에 공급하라. 혼자서만 성경을 연구하고 다른 신자들이 그에 대해 하는 이야기를 듣지 않는다면, 다른 신자들의 지혜와 경험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것을 얻지 못한다.
간증거리를 새롭게 하라.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삶에 무엇을 행하고 계신가? 당신이 가장 마지막으로 간증거리를 쓴 때는 언제인가? 간증거리를 쓰면, 하나님께서 그것을 나눌 수 있는 기회를 주실 것이다. 다른 사람들과 간증거리를 나눌 때, 우리의 믿음은 강화된다.
신자들의 소그룹 모임에 성실하게 참여하라. 성경은 우리가 “피차 권면하고 서로 덕을 세우기를” 힘써야 한다고 말한다. (살전 5:11a) 우리는 믿음의 마라톤을 경주하고 있으며, 함께 뛰어야 한다. 우리는 다른 신자들의 지지와 격려가 필요하다.
다음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보자.
  • 정기적인 성경 연구를 위한 당신의 계획은 무엇인가?
  • 소그룹과 이야기를 나눠보고, 훌륭한 신앙 서적의 목록을 만들어보라.
  • 이번 주에 시간을 들여 당신의 간증문을 써보라. 길게 쓰지 않아도 된다. 그리고 몇몇 크리스천 친구들에게 그것을 보여주라. 그들은 당신이 진정 말하고자 하는 것에 초점을 맞출 수 있도록 도와줄 것이다.
  • 소그룹 내에서 서로를 격려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보라.




하나님은 그분을 향한 열정이 있는 사람들을 사용하신다
“배역한 자식들아 돌아오라 내가 너희의 배역함을 고치리라 하시니라. 보소서 우리가 주께 왔사오니 주는 우리 하나님 여호와이심이니이다.” (렘 3:22)
가장 마지막으로 하나님을 향한 갈망을 느꼈던 때가 언제였는가? 하나님과의 친밀함을 너무나 간절히 원해서 모든 것을 버려두고 하나님을 좇을 정도로, 하나님을 너무나 갈망해서 메마르고 거친 광야에서도 줄곧 그분을 따를 정도로 갈망했던 때 말이다. (렘 2:2)
당신도 나와 같다면 당신은 아마도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하나님, 그런 사랑은 인간적으로 불가능한 것 같습니다!”
당신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면, 당신 생각이 맞다. 우리는 우리 안에 예수님이 계셔야만 하나님 사랑의 초자연적인 신비로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다. 하나님은 당신 안의 욕구를 변화시키실 수 있다. 즉, 하나님은 당신 안에 깊고 헌신적인 사랑의 불꽃을 다시 살리실 수 있다.

하나님을 향한 열정을 잃어버렸다면, 그것을 되찾는 방법은 어떻게든 그 사랑의 수준에 도달할 때까지 더 열심히 노력하는 것이 아니다. 열정을 되찾는 방법은 당신을 깊은 헌신의 모습으로 돌아오게 하는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하는 것이다. (렘 2:2)
하나님은 우리의 방탕한 본성을 용서해주실 것이다. 그리고 우리의 무딘 믿음을 고쳐주실 것이다.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배역한 자식들아, 돌아오라. 내가 너희의 배역함을 고치리라.”
이때 우리의 반응은 다음과 같아야 한다. “보소서, 우리가 주께 왔사오니 주는 우리 하나님 여호와이심이니이다.” (렘 3:22)
다음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보자.
  • 당신은 하나님을 향한 자신의 열정을 어떻게 묘사할 수 있겠는가?
  • 하나님께서 우리의 무딘 믿음을 고쳐주실 거라면, 하나님을 향한 깊은 열정으로 돌아오지 못하도록 우리를 막는 것은 무엇인가?
하나님은 거룩한 열정을 다른 이들에게 전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을 사용하신다
“좋은 일에 대하여 열심으로 사모함을 받음은 … 언제든지 좋으니라” (갈 4:18)
하나님은 열정적인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은 열정적으로 어떤 것을 사랑하시고 열정적으로 다른 것을 미워하신다. 하나님께 더 가까이 갈수록, 하나님은 당신이 세상에서 그분의 대변인이 될 수 있도록 하나님이 깊이 마음 쓰시는 것에 대한 열정을 당신에게 부어주실 것이다.
그것은 문제에 대한 열정일 수도 있고, 목적, 원칙, 또는 사람들에 대한 열정일 수도 있다. 그것이 무엇이든 당신은 그것에 대해 소리 내어 말하고, 변화를 일으키고자 하는 열망에 휩싸일 것이다.
사람들은 자신이 가장 관심을 갖는 것에 대해 말하지 않고는 못 배긴다. 예수님은 “마음에 가득 찬 것을 입으로 말하는 법이다.”라고 말씀하셨다. (마 12:34, 새번역)
이에 대한 좋은 예가 두 가지 있다.
  • “주님의 집에 쏟은 내 열정이 내 안에서 불처럼 타고 있습니다.”라고 말한 다윗. (시 69:9, 새번역)
  • “주님의 말씀이 나의 심장 속에서 불처럼 타올라 뼛속에까지 타들어 가니, 나는 견디다 못해 그만 항복하고 맙니다.”라고 말한 예레미야. (렘 20:9, 새번역)
하나님은 어떤 사람들에게는 대의를 위해 싸우고자 하는 거룩한 열정을 주신다. 그것은 종종 학대, 중독, 불임, 우울증, 질병, 또는 다른 역경처럼, 자신이 개인적으로 경험한 문제가 된다.
때때로 하나님은 스스로 목소리를 낼 수 없는 사람들을 위해 소리를 낼 수 있는 열정을 주시기도 한다. 태아, 박해 받는 사람, 가난한 사람, 감옥에 갇힌 사람, 학대 받는 사람, 불우한 사람, 공평한 대우를 받지 못하는 사람 등.
성경은 방어 능력이 없는 사람들을 보호하라는 명령으로 가득 차 있다.
하나님은 열정적인 사람들을 사용하셔서 그분의 왕국을 발전시키신다. 하나님은 당신에게 새 교회를 시작하거나, 가정을 견고히 하거나, 성경 번역 사역에 자금을 공급하거나, 크리스천 리더를 훈련시키고자 하는 거룩한 열정을 주실 수도 있다. 또는 사업가, 십대 청소년, 외국인 교환학생, 젊은 엄마, 또는 특정한 취미를 가진 사람들처럼 특정 부류의 사람들에게 복음을 들고 나아가고자 하는 거룩한 열정을 주실 수도 있다.
또, 하나님께 여쭤본다면, 하나님은 강한 크리스천 증인을 간절히 필요로 하는 구체적인 나라 또는 민족을 향한 마음의 짐을 지워주실 것이다.
하나님은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서 이루시고자 하는 모든 것이 이뤄지도록 우리에게 서로 다른 열정을 주신다. 우리는 남들도 자기의 열정에 대해 똑같이 열정적이 되기를 기대해선 안 된다.
오히려 우리는 서로의 삶의 메시지를 귀 기울여 듣고 소중히 여겨야 한다. 모든 것을 다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절대 다른 누군가의 거룩한 열정을 경시해선 안 된다.
성경은 말한다. “좋은 일에 대하여 열심으로 사모함을 받음은 … 언제든지 좋으니라” (갈 4:18)
다음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보자.
  • 하나님은 당신에게 어떤 열정을 주셨는가?
  • 현재 당신은 그 열정을 추구하기 위해 무엇을 하고 있는가?
  • 당신은 하나님께서 당신이 그분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무언가를 더 많이 또는 다르게 하기를 바라신다고 믿는가?
  • 당신은 친구와 가족의 거룩한 열정을 어떻게 도울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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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은 선택의 문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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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는 당신을 오래 전에 선택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오래 전에 여러분을 선택하셨고, 그분의 거룩한 백성으로 삼기로 계획해 놓으셨습니다.” (벧전 1:2, 쉬운성경)
좌절은 찾아온다. 좌절은 늘 우리를 찾아온다. 어쩌면 당신은 관계의 어려움이나 경력의 정체, 또는 질병 같은 것 때문에 좌절감을 느끼고 있을지도 모른다.
좌절이 찾아오면, 다음 한 가지를 확신하며 안도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 당신을 그분의 가족으로 삼기 위해 선택하셨다는 것이다. 당신이 하나님을 선택하기 오래 전에, 하나님께서 당신을 선택하셨다!
베드로전서 1:2은 이렇게 말한다. “하나님께서는 오래 전에 여러분을 선택하셨고, 그분의 거룩한 백성으로 삼기로 계획해 놓으셨습니다.” (쉬운성경)
하나님은 당신이 뭔가를 했기 때문에 당신을 선택하신 게 아니다. 당신을 선택하신 것은 하나님이 ‘그런 분’이시기 때문이다. 당신은 하나님께서 구원하실 만큼 선하지도, 똑똑하지도, 경건하지도 않았다. 하나님이 당신을 구원하신 것은 그분이 당신을 사랑하시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복음이다 - 진정 복된 소식인 것이다! 이것이 바로 당신의 전 생애의 토대가 되어야 할 복음이다.
하나님의 가족이 되기 위해 한 것이 아무 것도 없기에, 당신은 그것을 잃을 방도가 없다. 베드로전서 1:3은 이렇게 말한다. “하나님은 자비로우셔서, 우리에게 산 소망을 주셨습니다. … 우리는 새 생명을 받은 것입니다.” (쉬운성경)
하나님의 가족이 되는 것은 당신의 행위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비에 의한 것이다. 우선 당신은 하나님의 가족이 될 자격이 없었다. 또한 지금도 그럴 자격이 없다. 오직 우주의 창조주께서 “네가 내 가족이 되길 바란다”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다음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보자.
  • 자신이 틀림없는 하나님의 가족이라는 사실을 알 때, 삶에 대한 당신의 태도와 관점은 어떻게 바뀌겠는가?
  • 오늘 당신이 하나님의 견고한 사랑과 안아주심 속에서 안도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하나님께서 당신을 사용하실 수 있도록, 의심을 버리라
“…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약 1:6-7)
삶 속에서 자기회의에 빠지게 하는 것에는 다음 두 가지가 있다.
1. 남과 능력을 비교하면 자신의 능력을 의심하게 된다. 이는 하나님은 바라보지 않고 다른 사람들을 바라보기 시작하는 것이다. 다른 이들에게 더 많은 재능, 능력, 학력, 또는 경험이 있다고 생각한다. 자기 자신을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는 순간, 우리는 자기 회의에 가득 차게 된다.
성경은 자신을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는 것이 어리석다고 말한다. (고후 10:12) 하나님은 당신이 다른 누구와도 비교하길 원치 않으신다. 하나님은 당신이 고유한 존재로 있길 원하신다. 당신이 당신답길 바라신다.
2. 과거의 실패를 떠올리면 자신의 능력을 의심하게 된다. 과거의 실패를 떠올리는 것은 마치 그간의 모든 실수에 관한 영화를 머릿속에 집어넣고 그것을 되풀이하여 재생하는 것과 같다. 그것은 자신에게 엄청난 고문이다.
하나님은 당신이 과거에 초점을 맞추길 원치 않으신다. 과거의 실수에 계속 얽매어있으면, 현재를 제대로 살아갈 수 없으며, 하나님은 그러한 당신을 미래에 사용하실 수 없다. 하나님은 과거를 잊으라 말씀하신다.
과거의 의심이나 죄 때문에 하나님께 쓰임 받을 기회를 놓치지 마라. 하나님은 “네 과거가 어떻든, 난 상관 없다. 난 널 사용하고 싶다!”라고 말씀하신다.
다음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보자.
  • 당신은 하루에 몇 번이나 자신이 가진 것, 성취했거나 성취하지 못했던 것, 또는 보여지는 모습을 다른 사람과 비교하는가?
  • 당신은 하나님께서 그 허비했던 시간 대신 무엇을 이루시길 바라는가?

Thursday, February 9, 2012

한 날 묵상 - 창41:40-45 <하나님의 크나 큰 역사, 가나안 구원의 길을 여는 역사의 시작>에 철저히 쓰임 받은 요셉을 보라!


한 날 묵상 - 창41:40-45 <하나님의 크나 큰 역사, 가나안 구원의 길을 여는 역사의 시작에 철저히 쓰임 받은 요셉을 보라!  고센 땅에서 출애굽할 때까지 구별되어 하나님의 백성의 정체성을 유지할 수 있는 길을 열어 주는 자가 되다.>

40절 "너는 내 집을 다스리라"
41절 "바로가 또 요셉에게 이르되 내가 너를 애굽 온 땅의 총리가 되게 하노라 하고"
42절 "자기의 인장반지 ... 세마포 옷 ... 금 사슬 목에 걸고"
43절 "버금 수례에 그를 태우고 무리가 그의 앞에서 소리 지르기를 엎드리라 하더라"
=> 하나님의 꿈(v37-40. 하나님의 영광이 만방에 선포됨)을 이루어짐을 통해, 요셉의 꿈(창28:10-22절)도 이루어집니다.
         "바로가 그에게 애굽 전국을 총리로 다스리게 하였더라"
=> 느낀점...
 읽으면서 흥분이 된다. 어찌 마음이 요동치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하나님께서 요셉을 이렇게 사용하시다니.
 놀랍다. 하나님의 눈에 벗어나 있는 자는 아무도 없다. 그가 종이 되었을 때에도, 옥에 갇혀 있을 때에도, 억울한 누명을 쓸 때에도 하나님의 눈에 여전히 요셉이 있었다.

44절 "애굽 온 땅에서 네 허락없이는 수족을 놀릴 자가 없으리라 하고"
=> 요셉의 영향력은 대단하다. 이토록 애굽 땅에서 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니..

어느 정도 였는가?
출 1장 8절을 보면, "요셉을 알지 못하는 새 왕이 일어나 애굽을 다스리더니"
=> 바로 요셉을 전혀 알지 못하는 새 왕이 일어날 때까지 요셉의 영향력은 계속 되었다.

그렇다면, 얼마동안 요셉의 당대에 영향을끼쳤는가?
애굽에서 종살이하던 기간이 430년이었다.

 출12:40-41절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에 거주한지 사백삼십년이라 사백삼십 년이 끝나는 그 날에 여호와의 군대가 다 애굽 땅에서 나왔은즉"
 이 기간 동안 이스라엘 백성은 종이었지만, 애굽의 주인이었다. 지역적으로 변방인 고센 땅에 거하였지만, 그들의 영향은 애굽의 중심이었다.
  430년 동안 75명의 사람이 20세 이상 계수된 인원만 육십만 삼천오백오십명(민1장46절)이었다. 족히 이백만 이상의 대가족이 되어서,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하나님의 크나 큰 역사의 시작은 어디서부터 인가?
 바로 요셉의 꿈이었다. 요셉의 꿈은 하나님의 꿈이셨다. 요셉은 자기의 꿈을 자기의 야망으로 보지 않았고, 하나님의 꿈이 이루어질 통로로 철저히 보았다. 그래서 그는 인내했고, 준비했고, 하나님의 영이 충만할 때까지 훈련했다. 하나님의 때에 그는 충만한 하나님의 영과 지혜로 열방이 하나님께 영광돌리도록 쓰임받은 하나님의 신실한 도구가 되었다.

45절 "요셉의 이름을 사브낫바네아라 하고 또 온의 제사장 보디베라의 달 아스낫을 그에게 주어 아내로 삼게 하니라"
 => 요셉의 한계. 요셉의 쓰임은 여기까지. 길을 여는 자로 쓰임받데, 예수님의 족보(마1장2절. "야곱은 유다")에는 들지 못함.
 여호와 하나님의 계획은 알았지만, 철저히 자신이 감당해야 할 몫에서까지 충실히 감당함.
  자신이 감당해야 할 선을 넘지 말자. 철저히 하나님의 뜻안에서 감당하자.
  * 디모데후서 2장 20-21절
 "큰 집에는 금 그릇과 은 그릇뿐 아니라 나무 그릇과 질그릇도 있어 귀하게 쓰는 것도 있고 천하게 쓰는 것도 있나니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준ㅂ함이 되리라"
  * 예레미아 18장 1-6절
 "진흙과 토기장이"

Monday, November 14, 2011

나침반과 시계 - 우리 인생의 네비게이선, 성경


우리의 네비게이션, 성경
- 예수님을 바라보도록 한다. 히브리서 12장 2절, 디모데후서 3장 14-17절

수 1:8 "이 율법 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시편 16: "내가 여호와를 항상 내 앞에 모심이여" - 신인협력. 

어떻게 여화와를 우리 앞에 모실 것인가? 성경암송. 하나님을 당신의 생각 앞에 두라. 


나침반과 시계

아버지와 아들이 등산을 가게 되었습니다.
처음으로 가게 된 높은 산이었습니다.
산에서 야영을 하면서 산 정상을 정복하는 것이 목표였습니다.
아들이 머리 위에 있는 태양을 바라보며 아버지에게 물었습니다.
"아버지, 언제쯤 산 정상에 도착할 수 있을까요?"
아버지는 지도와 나침반을 보며 아들에게 말했습니다.
"얘야, 그것보다는 앞을 잘 보고 걸어야 한다"
올라가는 길 주위에는 빽빽하게 나무가 우거져 등산로 구분이 잘 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그만 길을 잃어버리고 만 것입니다.
아들의 얼굴은 불안으로 창백해지고 있었습니다.
아들은 아무 설명도 없이 나침반만 내려다보며 방향을 확인하는 아버지에게 화가 났습니다.
"이러다간 평생 이곳을 못 벗어날 거예요. 벌써 며칠이 지난 줄 아세요? 
"아버지, 좀 더 빨리 걸어야겠어요. 발걸음을 재촉하세요."
그 때 아버지는 오른팔을 뻗어 가리키며 아들에게 말했습니다.
"얘야, 이쪽이다. 우리는 다른 방향의 길을 걷고 있었던 거야"
두 사람은 방향을 바꾸어 한참 걸은 후에야 목적지인 산 정상에 도착하고 무사히 하산을 했습니다.
하산한 후 아버지가 아들을 불렀습니다.
"얘야, 시간보다 소중한 건 방향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라.
하마터면 우리는 산속에서 헤맬 뻔했구나"
아버지는 자신이 가지고 있던 나침반을 아들에게 내밀었습니다.
그러자 아들이 자신의 손목에 찼던 시계를 풀어 아버지 앞에 건네며 말했습니다.
"감사합니다. 아버지,
이건 제가 스스로 방향을 가늠할 수 있을 때까지만 보관해 주세요."


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