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owing posts with label 데살로니가전서. Show all posts
Showing posts with label 데살로니가전서. Show all posts

Monday, September 23, 2013

한 날 묵상 - 막 5:21-34 <적극적 간청자이든, 소극적 간청자이든, 간청자의 자세와 예수님의 마음>

한 날 묵상 - 막 5:21-34 <적극적 간청자이든, 소극적 간청자이든, 간청자의 자세와 예수님의 마음>
  
추가) 간절함을 갈망하자. 간절함은 회복시키며 역사한다.

1. 말씀을 매일 매일 묵상하며 하나님의 뜻을 찾는 것이 쉽지 않다.

2. 마가복음 묵상을 시작한지 꽤 되었지만, 아직도 5장에 머물러 있다. 더욱 문제는 요즘 묵상의 속도나 질이 무척이나 떨어진다는 사실이다.

3. 이 모든 것은 집중력의 차이인듯하다. 말씀을 묵상하고자 하는 마음의 집중력이나, 말씀을 묵상할 때의 집중력이 현저히 떨어지기 때문에, 매일 묵상이 힘들고, 묵상의 질도 또한 높지 않게 되는 것이다.

4. 요즘 새벽기도를 다시 나간다. 정확히 말하면 2주되었다. 그러나 2주 동안도 정확히 3일은 빼 먹었다.

5. 어제 주일을 보내면서, 늦은 시간에 잠을 이루었다. 요즘 내 상황이 결코 편치 않기 때문에 이런 저런 생각이 눈 앞을 가리기 때문에 쉽사리 잠자리에 들 수 없다. 그렇다고 그 시간에 딱히 다른 유익한 일들을 하는 것도 아니다.

6. 어제 늦게 잠들었지만, 오늘 아침 알람 소리 한 번에 잠이 깼다. 정확히 말하면 몽롱한 상태에서 일어났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이전 같으면 바로 다시 잠을 청했을 것인데, 그 몸을 일으켜 잠자리에서 일어났다는 사실이다.

7. 그만큼 요즘 기도가 간절히 필요하다. 기도의 간절함이 나의 몸을 이기고 있는 듯 하다. 아침 기도하러 가면서 이런 저런 생각이 들었다. 새벽을 깨우는 일에 완전히 익숙해진 것은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때 교만하지 말자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시작인데, 뭐 익숙해진것은 무엇이란 말인가....

8. 요즘 기도하지 않으면 살지 못할 것 같다. 기도의 자리에 있지 않으면 불완하다. 그 만큰 내일에 대한 불완히 참으로 많다. 

9. 새로운 사역지 문제, 한국으로 귀국하는 문제, 재정문제, 한국 귀국하는 항공권 재정문제, 한국에 돌아가면 전셋집 문제, 아이들 한국 적응문제, 한국에서 일어나 일련의 일들에 대한 염려까지 그야말로 내 앞에 놓인 수만가지의 기도제목이다.

10. 참으로 지금이 기도할 때이다. 그렇다고 기도한다면서 일상을 완전히 떠나 기도만 할 수 없다.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마음을 품고, 하나님의 마음을 품은 그대로 합력하여 선을 이루도록 나도 열심히 뛰어야 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주신 지혜대로 말이다.

11.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어떻게 "쉬지 말고 기도하라"(살전 5:17)는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기도함으로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공급받을 수 있을까...

12. 시간을 정하고 적극적으로 기도만 하는 것으로 쉬지 않고 기도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속세를 떠나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기도하는 시간을 정하지 않고, 간절하게 부르짖지도 않고 쉬지 말고 기도하라는 말씀에 순종했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13. 우리는 어떻게 기도함으로 "쉬지 말고 기도하라"는 말씀에 순종하며 기도함으로 누릴 수 있는 유익과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하나님의 능력을 공급받을 수 있다는 말인가...

14. 오늘 본문에서 그 해답을 찾아 보고자 한다.

15. 본문은 예수님의 사역에 두 부류의 간청자가 등장한다. 그들은 자신의 문제를 해결받고자 예수님께 자신의 문제를 들고 나아왔다.

16. 회당장의 하나인 야이로의 딸과 예수의 옷에 손을 댄 여자이다.

17. 이 둘의 행동은 그들의 신분만큼이나 상반되었다. 나는 이를 "적극적 간청자와 소극적 간청자"로 말하려 한다. 달리 하면서 일상에서 적극적으로 시간을 정하고 기도에 목숨을 거는 일과 소극적이지만 매 순간 기도하는 일이다.

18. 전혀 상반된 두 사람의 간청자들의 일상과 기도의 모습을 정리해 보자.

19. 적극적 간청자 회당장 
 1) 예수님 앞에 당당하게 설 수 있었다. 
 2) 그러나 자신의 신분을 뒤로한다. 
 3) 자신보다 주님께 집중했다. 
 4) 적극적으로 간청하지만 그는 높은 신분의 사람이었다.
 5) 자신을 비우고 진심으로 주님께 나아갔다.

20. 소극적 간청자 혈루증 앓은 여인
 1) 그녀는 예수님께 나아갈 때 숨어 갈 수 밖에 없었다.  
 2) 내세울 것이 전혀 없었다. 
 3) 나를 전혀 봐주지 않는 사람들속에서 오직 주님께 집중했다. 
 4) 소극적으로 간청했다.


 5) 자신을 비우고 진심으로 주님께 나아갔다. 

21. 전혀 다른 두 가지가 바로 우리가 이 땅을 살아가는 기도의 일상이 되어야 한다. 일상에서 이 두 가지의 기도를 적절히 유지할 때에 "쉬지 말고 기도하라"는 말씀에 순종할 수 있다.

22. 만약 이 두 가지 중 하나라도 소홀히 한다면, 우리의 일상은 기도하는 것 때문에 무너질 것이다.

23. 매일 매 순간 24시간 가정이나 일터 등 삶을 떠나 기도만 한다면 그는 그 일만을 위해 부르심을 받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 또한 일상에서 순간적으로, 찰라의 기도, 즉 집중하며 간절함으로 적극적으로 눈물로 기도하지 않고 기도하였다고 하면서 잘못된 기도의 함점에 빠져서 기도했다는 속임에 넘어져 살아가는 신앙인이 될 것이다.

24. 이 둘은 적절한 균형이 필요하다. 그래야 이 땅에 그리스도인다운 그리하여 사람들에게 온전히 기독교와 복음을 전할 수 있는 최소한의 자격을 갖춘 자로 삶의 자리에 있다고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25. 그런데 이 두 가지의 기도방법중에 가장 기본이 되면서도 중요한 것이 있다.

26.바로 기도의 자세이다. 마음 가짐이다.이들을 향한 예수님의 마음은 한결같았다.
 22절 "회당장 중의 하나인 야이로라 하는 이가 와서 예수를 보고 발 아래 엎드리어"
 33절 "여자가 자기에게 이루어진 일을 알고 두려워하여 떨며 와서 그 앞에 엎드려"
27. 간청자로서 우리의 자세는 단 하나이다. 오직 예수님만이 나의 구원자이십니다. 오직 예수님만이 나의 치료자이십니다. 오직 예수님만이 나의 문제를 해결해 주실 수 있습니다.

28. 오직 예수님, 당신 한 분만이 하실 수 있습니다.  

29. 이 사실을 알고 이 사실이 진리이기에 우리는 오늘도 예수님앞에 무릎을 꿇고 기도하게 됩니다.

30. 예수님께 기도할 때, 우리에게 다가오시는 주님의 음성을, 주님의 손길을 들을 수 있고, 느낄 수 있습니다.
 34절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네 병에서 놓여 건강할지어다"

31. 예수님은 우리에게 구원을 주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그리고 또한 평안을 위해 오셨습니다.

32. 오늘 우리가 구원받은 자로서 평안하기 원한다면, 기도의 자리에 있기 바랍니다.

33. 적극적 간청자로 서 기도하던, 소극적 간청자로 기도하던, '예수님 당신만이 하실 수 있기에 오늘 당신의 존전앞에 무릎을 꿇고 나아갑니다. 나를 받아 주시옵소서'라고 쉬지 말고 기도할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34. 기도하니, 이제야 마음이 평안해집니다.

35. 아침 기도후에 한결 마음이 편해집니다. 물론 빛에서 멀어지고 어두움에 가까이갈 때 또 다시 두려움과 염려는 몰려오겠지만, 그 때마다 기도함으로 평안이 가는 인생을 살아가기 소망해 봅니다.

36. 우리 모두에게 이러한 평안이 삶에 가득하기를 축복합니다.

37. 오늘 한 날도 기도함으로 예수님이 주시는 참 평안, 영원한 평안을 누릴 수 있기를 간절히 축복합니다.

38. 할렐루야! 아멘!


=========================================
예수님의 마음

- 적극적 간청자
- 소극적 간청자

==> 이들을 향한 예수님의 마음은 한결같다.
 22절 "회당장 중의 하나인 야이로라 하는 이가 와서 예수를 보고 발 아래 엎드리어"
 33절 "여자가 자기에게 이루어진 일을 알고 두려워하여 떨며 와서 그 앞에 엎드려"
간청자로서 우리의 자세는 단 하나이다. 
오직 예수님만이 나의 구원자이십니다.
오직 예수님만이 나의 치료자이십니다.
오직 예수님만이 나의 문제를 해결해 주실 수 있습니다.

오직 예수님, 당신 한 분만이 하실 수 있습니다. 

* 21절 예수님의 한결같은 마음을 볼 수 있다.
 무리가 따르니, 바닷가에서 서시다. 

22-24절 회당장 중의 하나인 야이로와 그의 딸
 회당장 - 자신의 신분의 걸맞지 않게 "예수를 보고 발 아래 엎드리어"(22절), "간곡히 구하여"(23절)
 자신의 신분의 잊고 딸을 향한 처절한 몸부림으로 예수님께 옆드려 기도하는 회당장 야이로의 모습을 본다.

* 25-34절 열두 해 혈루증으로 앓아 온 한 여자
 혈루증 앓아 온 한 여자 - 혈루증을 앓아온 여인은 아무도 과부였을 것이다. 돌보는 사람이 없었을 것이다. 12년을 병들어 있었기 때문에 주변에 아무도 없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래서 그는 많은 사람들 앞에 당당하게 설 수 없었다. 그래도 그는 살기 원했고, 예수님의 이야기를 듣고 그는 결심하게 된다. 그녀가 선택한 방법은, "무리 가운데 끼어 뒤로 와서 그의 옷에 손을 대니"(27절), "이는 내가 그의 옷에만 손을 대어도 구원을 받으리라 생각함일러라"(28절), 
 예수님의 일련의 반응(30-32절)에 그녀는 "여자가 자기에게 이루어진 일을 알고 두려워하여 떨며 와서 그 앞에 엎드려" 예수님께 두려움과 무서움을 나아오는 모습을 볼 수 있다. 

* 전혀 상반된 두 사람의 간청
- 적극적 간청자 회당장 
 1) 예수님 앞에 당당하게 설 수 있었다. 
 2) 그러나 자신의 신분을 뒤로한다. 
 3) 자신보다 주님께 집중했다. 
 4) 적극적으로 간청하지만 그는 높은 신분의 사람이었다.
 5) 자신을 비우고 진심으로 주님께 나아갔다.

- 소극적 간청자 혈루증 앓은 여인
 1) 그녀는 예수님께 나아갈 때 숨어 갈 수 밖에 없었다.  
 2) 내세울 것이 전혀 없었다. 
 3) 나를 전혀 봐주지 않는 사람들속에서 오직 주님께 집중했다. 
 4) 소극적으로 간청했다.
 5) 자신을 비우고 진심으로 주님께 나아갔다. 

Saturday, December 15, 2012

내 마음의 밥상 - 히브리서 10장 24-25절 <서로 돌아보라.

<서로 돌아보라>

서로 돌아봅시다.

어떻게 서로를 돌아볼까요?

사랑으로,
선행으로,
사랑과 선행에 대해서 서로 격려함으로,
서로 돌아보라.

서로 돌아보기 좋은 방법은 무엇일까?

주님의 이름으로 모이라.
자주 모이라.
함께 모이라.
초청하여 모이라.
모이는 것이 돌아보는 좋은 방법이다.

그런데요. 모일 때 잘 모여야 합니다.
잘못 모이면 아니 모인만 못합니다.

그렇다 모여서 무엇을 할까?

"격려하며" - 사랑과 선행으로 그들을 격려하자.  
"권하여" - 책망 할 것이 있으면 그들을 책망하자.

데살로니가전서 4장 14절
 “또 형제들아 너희를 권면하노니 게으른 자들을 권계하며 마음이 약한 자들을 격려하고 힘이 없는 자들을 붙들어 주며 모든 사람에게 오래 참으라”

그런데 모여서 책망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모여서 칭찬만 하면 좋지요. 모든 것이 좋지요.
그런데 모여서 칭찬만 하면
그냥 잠깐 즐거움을 맛보는 모임이 됩니다.
서로에게 유익이 되는 모임이 되려면
책망이 필요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책망을 해야 할까요?
 권계하며 
 격려하며
 붙들어주며
 오래 참으라

이렇게 네 가지가 꼭 책망할 때 필요합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자주 모여서 무엇해요?하는 사람들이 있다.

사실 나도 자주 모이는 것에 익숙하지 않다.
혼자 있는 것이 좋기 때문이다.

그런데,,,
가끔 이러면 외로워질 때가 있다.
그럴 때, 찾아 만나러 간다.
대화한다.
그러면 좋다.

그런데 말이죠...
저처럼 하고 싶어도 잘 할 수 없는 사람들이
정말 많다는 것이다.
찾아가서 만나주지 않으면
쉽게 소그룹같은 모임을 할 수 없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그들을 위해 찾아가야 합니다.

모이지 못하게 하는 것은 아주 나쁜 습관입니다.
사탄의 권법이지요.
거기에 넘어지면 안됩니다.
어색해도
불편해도
별 유익이 없다 생각이 들어도
모여야 합니다.

모여야 믿음이 성장합니다.

히브리서는 우리에게 말합니다.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더욱 그리해야 합니다.
그 날이 가까이 올 수록 더욱 그리해야 합니다. 

오늘도 찾아갑시다.

오늘도 만나러 갑시다.
오늘은 혼자 있지 맙시다.
오늘은 형제가 연합함이 얼마나 크고 아름다운지를 아는 한 날이 됩시다.

===
히브리서 10장 24-25절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 "모이기를 폐하는" ... 자꾸 모여야 한다. 소그룹을 가져야 하는 이유이다. 

 모여서 무엇을 할까?
"격려하며" - 사랑과 선행으로 그들을 격려하자.  
"권하여" - 책망 할 것이 있으면 그들을 책망하자.

데살로니가전서 4장 14절 “또 형제들아 너희를 권면하노니 게으른 자들을 권계하며 마음이 약한 자들을 격려하고 힘이 없는 자들을 붙들어 주며 모든 사람에게 오래 참으라”

어떻게 책망할 것인가?
권계하며 
격려하며
붙들어주며
오래 참으라

이 네 가지가 꼭 책망할 때 필요하다. 

===
교회가 시작되고 난 이후부터 여러 가지 방법들을 통해 영혼을 가꾸는 훈련들을 해왔습니다. 공동체 예배, 함께 떡을 떼는 일, 사도들의 가르침, 공동체 금식과 경건한 삶을 살 수 있도록 서로 책임을 지는 일 등입니다. 처음부터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변화가 교회의 목표이며 책임이었습니다. 교회가 그러한 책임을 가지고 있다면, 성도들에게 어떤 행동들을 권하고 격려할 수 있는 권리 또한 가지고 있습니다. 교회는 물론 용서하고 화해하고 망가지고 깨어진 사람들을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수용한다는 것이 공동체에 들어오겠다는 사람에게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는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그런데 바로 이러한 요구가 오늘날 교회를 찾는 사람들을 불편하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히 10:24-25을 주목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으로 격려하며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서로 돌아보아”라는 표현을 주목해서 보면 우리는 함께 그리스도를 따르는 다른 사람들을 어떻게 선한 일을 할 수 있도록 “격려”할지 신중하게 돌아보아야 합니다. ‘격려한다’는 말은 문자적으로 ‘서로를 고무시키고 자극하다’라는 의미입니다.

 상호책임은 격려와 책망 사이의 곡예와 같습니다. 우리는 선한 싸움을 싸우다가 한눈을 팔거나 지쳤을 때 격려가 필요합니다. 격려는 서로를 책임지는 데 없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각자 우리가 성공할 때 박수쳐주고 실패할 때 손잡아 일으켜줄 수 있는 믿음의 동지가 필요합니다. 

 격려는 또한 책망을 수반합니다. 책망하는 것은 경고하고, 주의를 주며, 길잡이가 되어주는 것입니다.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인들에게 특정한 사람들은 상황에 맞게 특정한 방법으로 대하라고 조언했습니다. “또 형제들아 너희를 권면하노니 게으른 자들을 권계하며 마음이 약한 자들을 격려하고 힘이 없는 자들을 붙들어 주며 모든 사람에게 오래 참으라”(살전 5:14).

 이 구절에 나오는 동사들인 권계하며, 격려하고, 붙들어주며, 참으라 등은 공동체의 문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을 돕고 인내하는 데는 확실히 격려가 필요합니다. 이것들이 예수님의 제자들의 특성입니다. 그리고 혼자가 아닌 오직 공동체를 통해서만 할 수 있습니다. 특히 첫 번째 동사 ‘권계’는 우리 대부분이 불편해 하는 단어입니다. 그러나 이 단어는 사랑의 다른 면을 보여줍니다. 만일 우리가 서로를 사랑 안에서 돌보아야 한다면, 동료 그리스도인들에게 진리를 말하지 못하게 하는 두려움을 극복해야 합니다. 중요한 것은 언제나 사랑으로 진리를 말해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공동체 속에 격려가 필요한 사람은 누구인지 기도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들의 영혼의 상태가 어떠한지 어떤 부분에서 어떤 격려가 필요한지, 전적으로 하나님을 위해서 살아가는데 방해를 하는 요소는 어떤 것이 있는지 사랑의 대화를 통해서 알아보고 격려하고 때로는 책망함으로 함께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공동체가 되시길 바랍니다.

이 글은 제임스 브라이언 스미스의 <선하고 아름다운 공동체> 6장 일부를 발췌 정리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