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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ursday, June 6, 2013

서번트 리더의 특징 - 리더십 네트워크

21세기 초에 들어 우리는 전통적이고 독재적이며 위계적인 리더십의 양식 보다 새로운 리더십 모델을 추구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바로 서번트 리더십입니다. 서번트와 리더는 상반된 단어입니다. 상반된 두 단어가 창의적이고 의미 있는 방식으로 결합하면 역설이 발생하게 됩니다. 서번트와 리더도 그렇게 결합하여 서번트 리더십이라는 역설적인 개념을 낳았습니다. 아래 내용들을 통해 서번트 리더로 발전하는 데 더 없이 중요하게 여겨지는 특징들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듣기

리더를 평가하는 전통적인 기준은 의사소통 및 의사결정 능력이었습니다. 서번트 리더는 한 집단의 의지를 확인하고 명료화하기 위해 다른 사람들의 말을 하나하나 귀담아 듣는데 집중함으로써 이 중요한 능력을 강화해야 합니다.

2. 공감

서번트 리더는 다른 사람들을 이해하고 그들과 공감하려고 애씁니다. 그는 다른 사람들의 고유한 재능과 정신을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합니다. 서번트 리더는 동료들의 선의를 믿으며, 그들을 인간적으로 거부하지 않습니다.

3. 치유

어려운 상황을 치유하는 데 도움을 주는 능력은 변형하고 완성하는 강력한 힘입니다. 서번트 리더는 사람들과 기관들이 온전해지도록 도울 기회가 자신에게 주어져 있음을 인정합니다.

4. 설득

서번트 리더의 또 다른 특징은 조직 내에서 결정을 내릴 때 직권이 아니라 설득에 의지한다는 점입니다. 서번트 리더는 동의를 강제하기보다 다른 사람들을 납득시키려고 노력합니다. 서번트 리더는 여러 집단들 사이에서 합의를 이끌어내는 데 유능합니다.

5. 인식

전체적인 인식, 특히 자기인식은 서번트 리더를 강하게 만듭니다. 인식은 윤리와 가치가 결부된 사안들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며, 상황을 보다 통합적이고 전체적인 관점에서 바라 볼 수 있게 해 줍니다.

6. 선견

어떤 상황에서 비롯될 만한 결과를 선견하는 능력을 통해, 서번트 리더는 과거의 교훈과 오늘날의 현실, 그리고 의사결정이 미래에 가져올 결과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선견은 직관적인 정신에서 비롯됩니다.

7. 개념화 

서번트 리더는 원대한 꿈을 꾸는 능력을 키우려고 노력합니다. 이는 곧 일상의 경영 현실을 넘어서서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8. 사람들의 성장을 위한 헌신

서번트 리더는 사람들이 노동자로서 기여하는 바를 넘어 본질적인 가치를 지닌다고 믿습니다. 그래서 조직에 소속된 모든 개인들의 인간적, 직업적, 정신적 성장을 위해 헌신합니다.

9. 공동체 형성

서번트 리더는 조직에 소속된 사람들 사이에서 공동체의식을 형성하려고 노력합니다. 그린리프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공동체를 재건하여 수많은 사람들에게 유효한 삶의 형태가 되도록 만드는 데는, 충분한 수의 서번트 리더들이 대중운동을 통해서가 아니라 각자 공동체와 관련된 어떤 특정 집단에 대해 무한책임을 보여줌으로써 그 길을 제시하는 것으로 족하다.”

이상의 것들로 서번트 리더십의 특징을 총망라했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특징들은 서번트 리더십 개념의 초대와 도전에 응하는 사람들에게 제공하는 힘과 약속을 잘 보여 줍니다. 영향력 있는 리더가 되기 위해 먼저 서번트 리더가 되어야 할 필요가 있음을 기억하는 한 주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 이 글은 스티븐 R. 코비외 32인이 쓴「오늘을 이끄는 힘 ‘리더십’」의 일부를 발췌 각색한 글입니다.

퍼온글

Tuesday, April 30, 2013

내 마음의 밥상 - 민14:5, 16:4절 <자신에게 원망하며 공격하는 백성들을 향 한 모세의 문제해결 방법과 리더십>

내 마음의 밥상 - 민14:5, 16:4절 <자신에게 원망하며 공격하는 백성들을 향한 모세의 문제해결 방법과 리더십>

1. 중간 관리자는 힘들고 어려운 길이다.

2. 지난 토요일에 있었던 무한도전 "무한상사 8주년"을 보았다. 직장인들의 애환을 뮤지컬로 담은 내용이었다.

3. 유재석 부장의 역할이 참으로 고독하며 고뇌의 자리이며 결코 쉽지 않는 자리임을 보았다.

4. 위로는 사장으로, 아래로는 직원들로부터 우겨쌈을 당하는 힘들고 어려운 자리였다. 늘 어떤 실적을 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서 사장의 눈치를 보면서, 직원들을 사기를 꺽기 않고 격려해야 했다. 때론 사장이나 직원들로부터 오해나 원망을 수시로 들어야 했다.

5. 결국 사장으로 통보로 한 명의 직원을 정리해고 해야 하는 상황에 이를 때에 그의 고뇌는 절정에 이르렀다.

6. 모세의 상황도 이와 유사하다. 하나님의 언약과 축복의 말씀속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도록 하면서 그들을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인도해야 할 사명을 받은 자였다.

7.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하지 못하고 하나님을 역사하심을 늘 기억하지 못하면서 자꾸 현실의 문제앞에 하나님을 잊어버릴 때, 하나님과 백성들을 이끌어가야하는 그 사이에서 모세는 그야말로 고난의 연속이었다.

8. 이러한 고난과 고뇌의 시간에서 모세는 하나님과 백성 모두에게 가장 선한 것들의 영향을 받을 수 있도록 중재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

9. 문제앞에 문제 해결을 방법과 리더로서의 리더십을 발휘하는 모습들이 민수기에서 그려지고 있다.

이는 예수님의 사역에서 볼 수 있다. 제자들에게 지상명령을 두시기까지 훈련하는 그들을 위해 섬김의 무릎을 꿇으셨다(세속식)

또한 예수님은 이 땅에서의 십자가 사역을 완수하시기 위해 대제사장들의 칼에 무릎을 꿇의셨다. 그는 충분히 "열두 군단 더 되는 천사를"(마26:53) 사용하실 수 있었다.

10. 요즘 민수기를 읽으면서 오늘 민수기 14장, 16장에서 반복되는 모세의 특이한 행동에 마음이 가게 되었다.

11. 민수기 14장 5절 "모세와 아론이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 앞에서 엎드린지라"
     민수기 16장 4절 "모세가 듣고 엎드렸다가"

12. 문제해결을 위한 모세의 해결 방법은 양쪽 모두에 "엎드림"이었다.

13. 우리는 흔히 하나님 앞에 엎드림을 잘 하지만, 리더가 어떻게 팔로우들에게 엎드릴 수 있지?라고 생각하게 된다.

14. 사장에게는 엎드릴 수 있지만, '어떻게 아랫 직원들에게 엎드릴 필요가 있어'라고 생각하게 된다는 것이다.

15. 흔히 리더는 직원들에게 군림을 하고자 한다. 그런데 모세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군림이 아니라 엎드림"을 통해서 문제 해결을 하고 있다.

16. 이는 모세가 그렇다고 해서 하나님께 엎드림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앞에 엎드림 뿐 아니라 따르는 백성들에게도 엎드림을 통해 당면한 문제들을 해결해 가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17. 모세가 하나님앞에, 그리고 백성들앞에 엎드림은 탁월한 선택이면서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 오게 된다.

18. 첫째는 하나님께 전적인 신뢰를 맹세하는 것이다. 이 문제의 해결은 전적으로 하나님께 있습니다. 하나님이 이 문제의 주인이 되어주시고, 해결의 인도자가 되어주셔야만 합니다. 다른 어떤 지혜로도 이 일을 해결할 수 없습니다. 오직 문제 해결은 하나님께만 있습니다.

19. 둘째는 백성들에게 전시적인 효과를 내는데 우리는 문제 앞에 하나님께 엎드림을 통해 해결받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면서 또한 하나님께 무언의 압박을 주는 것이다. "하나님 보십시오. 이스라엘 백성들이 보게 있습니다. 하나님이 어떤 하나님이신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보여주십시오"라는 강력한 요구의 간구이다.

20. 섯째는 백성들에게 주는 메시지이다. 나는 너희들이 나의 생명을 요구한다고 할지라도 나는 너희들에게 군림이 아닌 섬기는 자로 세워졌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군림이 아닌 섬김의 리더십을 보여주었다.

21. 모세는 어떠한 어려움을 만날 때, 하나님앞에, 그리고 그 문제를 야기시킨 백성들앞에서까지 엎드리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22. 이러한 엎드림은 굴복이 아닙니다. 패배를 인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엎드림을 패배로 생각하곤 하는데 모세의 엎드림은 승리을 위해 꼭 필요한 방법이었습니다.

23. 우리도 리더로서, 또는 세상에 아직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을 이끌어가야하는 사명을 받은자로서, 가정에 아직 하나님을 믿지 않는 자들과 더불어 요단 강을 함께 건너야 하는 리더로서 부름을 받은 자들입니다.

베드로전서 3:1 "아내들아 이와 같이 자기
남편에게 순종하라 이는 혹 말씀을 순종하지 않는 자라도 말로 말미암지 않고 그 아내의 행실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게 하려 함이니"

24. 그 때 어떠한 리더십을 보여주실 것입니까? 그들과 함께 요단 강을 건너 가나안 땅으로 가는 길에 만나는 수많은 문제들 앞에 우리가 취해야 할 자세는 모세의 엎드림입니다.

25. 하나님 앞에 엎드림과 내가 이끌고가야 할 사람들앞에 엎드림입니다. 이 두 엎드림은 전혀 다른 엎드림이 아닌, 똑같은 마음과 심정과 사랑과 섬김과 간구함을 가진 엎드림입니다.

26. 혹 오늘 내가 하나님께만 잘 엎드리고, 백성들앞에 잘 엎드리지 못해 아직 여러 문제들을 해결받지 못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27. 이는 우리가 하나님께만 잘 엎드린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모세를 통해 분명하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나 뿐 아니라 백성들에게 엎드려야 된다.

28. 오늘 모세처럼 엎드립시다. 하나님께 잘 엎드릴 뿐 아니라, 내가 이끌어야 할 사람들에게도 잘 엎드립시다.

29. 엎드림은 패배가 아닌 승리입니다.

30. 오늘 하루도 엎드림을 통해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의 문제가운데 충만하게 임하기를 기도합니다.

31. 할렐루야!

Monday, March 25, 2013

리더십 네트워크 633호 - 신뢰 받는 리더

http://www.disciplen.com/resource/mail/now2.asp?m_mode=rn&v_msid=3137&m3_No=2


리더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 중에 하나는 신뢰이다. 리더에 대한 신뢰가 깊어지면 깊어질수록 영향력도 깊어 질 것이다. 더욱이 주님을 위해 뭔가를 하기 원하는 리더라면 신뢰 쌓기를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한다. 그렇다면 신뢰를 쌓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리더가 신뢰를 쌓으려면 다음 요소들이 필요하다.
  1. 인격을 닦아라

    리더에 대한 신뢰를 형성하는 첫 번째 요소는 인격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닮은 인격이야말로 그리스도인 리더의 밑바탕이 되는 자격요소이다. 올바른 인격은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고 무엇보다 신뢰감을 주기 때문에 모든 대인관계의 기반이 된다. 사람들은 자신이 따르는 리더가 훌륭한 인격의 소유자라는 사실을 확인하고 나서야 리더가 제안하는 것들을 마음으로부터 따를 것이다. 그리스도인 리더들은 신뢰를 쌓기 위해 예수님의 성품과 인격을 닮고자 기도하며 노력해야 한다.
  2. 유능함을 갖추어라
    신뢰 형성의 두 번째 요소는 능력 다른 말로 유능함이다. 유능함이란 무엇일까? 어떤 상황에서 일을 잘 처리하는 능력이다. 즉 뛰어난 재능으로 일을 완수하는 것이다. 일을 수행 하는 데 필요한 은사, 지식, 재능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리더들은 이것들을 계발하여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 유능함은 리더에게 자신감을 가져다 준다. 그러나 인간의 유능함은 제한적이고 한계가 있다는 것을 리더는 늘 명심하고 주의해야 한다.
  3. 분명한 방향을 제시하라

    리더에 대한 신뢰 형성의 세 번째 요건은 명확한 방향성이다. 요즘 사람들은 리더, 특히 교회의 리더들이 어디를 향해 가는가에 대해 매우 관심이 많다. 그러기에 리더는 자신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그리고 사람들을 어디로 이끌고 있는지를 분명히 알아야 한다. 그래서 누가 물어봐도 교회의 방향성이 어디인지를 확실하게 대답해 줄 수 있어야 한다.
  4.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려 주어라

    리더들은 사람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정기적으로 알려 주어야 한다. 알려 주는 사람은 신뢰를 얻고 알려주지 않는 사람은 의심을 받는다. 리더가 무엇을 숨기고 있다는 의심이 들면 사람들은 그 리더를 따르려고 하지 않는다. 특히 교회의 리더들은 교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에 대해 정기적으로 교인들에게 알려 주어 원활한 의사전달이 될 수 있어야 한다.
  5. 돌봄의 자세를 가져라

    사람들은 누군가가 자신을 돌봐 주고 진심으로 관심을 가져 주기를 바란다. 성의껏 돌봐주는 사람에게는 저절로 신뢰가 형성된다. 돌봄이란 리더가 따르는 사람들을 사랑하고 그들의 행복과 복지에 최선을 다하는 관심의 표현이다. 또한 상대의 인격을 존중하고 마음에서 우러난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 돌봄이다. 하나님이 자신의 백성을 돌보시듯 리더도 하나님의 사람들을 잘 돌봐 주기를 하나님은 바라신다. 사람들이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어떤 아픔과 두려움이 있는지를 알고 성경적으로 그러한 문제를 도와줄 수 있어야 한다. 
리더는 영향력을 통해 사람들을 따라오게 만들고 목적지까지 갈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리더는 신뢰를 깊이 쌓아가야만 한다. 만약 여러분이 리더의 위치에 있다면 위에서 제시된 요건들을 통해 신뢰가 더욱 깊어지길 바란다. 신뢰가 무너지면 리더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신뢰가 무너진 후에 그것을 회복하고 다시 쌓게 위해 노력하기 보다 신뢰가 무너지지 않도록 예방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더 나아가 신뢰가 깨어지기 전에 오히려 깊어 질 수 있도록 만든다면 사람들은 더욱 기쁜 마음으로 리더를 따르게 될 것이다.
* 이 글은 오브리 맬퍼스의 「리더가 된다는 것은,」의 일부를 발췌해서 각색한 글입니다.

Tuesday, March 12, 2013

‘사실’은 리더의 친구 - 리더십 네트워크 632호

http://www.disciplen.com/resource/mail/now2.asp?m_mode=rn&v_msid=3124&m3_No=2&page=1

 최근 교회에 대대적인 개혁을 감행하여 급진적인 변화의 길을 걷고 있는 교회가 있다. 바로 한국에도 잘 알려져 있는 윌로크릭 교회이다. 
 이 교회는 2008년 이후 지금까지 계속 몇 가지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우선 이원화되어 있는 예배 모델을 없애고, 수요 예배를 강의식 형태로 바꾸었고, 주일 예배에도 중대한 변화를 단행했다. 그리고 20년이 넘게 가지고 있던 소그룹의 목표를 다시 설정하고 소그룹 전략을 변경했다.

 모든 교인들에게 기본적으로 매일 성경을 읽는 훈련을 요구하고, 지역 공동체를 섬기는 일에 더 많은 에너지와 물질을 투자하기 시작했다. 꾸준히 변화를 시도한 결과 현재 윌로크릭 교회에는 다음과 같은 변화가 생겨났다.
  1. 성경을 읽고 묵상하는 교인들의 비율이 35퍼센트 증가하여, 이 항목에 대한 윌로크릭의 수준이 다른 최고의 모범 교회들과 같아졌다.
  2. 주일 예배에 대한 교인들의 만족도가 모든 단계의 성도들에게서 골고루 상승했다. 이 예배들이 자신들의 영적 성장에 도움이 된다고 말하는 교인 수가 전체적으로 29퍼센트 많아졌다.
  3. 영적 삶에서 성장하고 다음 단계로 나아가도록 도전하는 교회의 역할에 대한 만족도가 27퍼센트 증가했다.
  4. 성도들의 영적 성장을 돕는 교회의 역할에 대한 전체적인 만족도가 34퍼센트 증가했다.
 윌로크릭 교회의 변화는 설문조사 결과가 보여준 ‘사실’을 받아들이면서 가능했다. 그 과정에 대해서 잠시 알아보자. 

 빌 하이벨스 목사는 교회에서 처음 설문조사가 시작된 이유는 윌로크릭 교회가 제공하는 다양한 활동과 프로그램 가운데 어떤 것이 성도들의 영적 성장에 가장 큰 도움이 되는지를 알아보는 것이었다.
 설문조사 결과를 가지고 기존의 다양한 사역들을 면밀히 재조정해서 좀 더 많은 사람들의 신앙을 성장시키는 데 도움을 주려고 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조사결과가 보여준 ‘사실’은 윌로크릭 교회가 가지고 있던 몇몇 핵심 전제들에 의문점을 남겼다고 한다.

 설문조사가 보여준 ‘사실’은 다음과 같은 내용을 포함하고 있었다. 전체 교인 중 18퍼센트의 사람들이 영적으로 침체된 상태에 있으면서도 그 상황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모르고 있고, 아예 교회를 떠날 생각을 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가장 성숙하고 열정적인 성도들은 더 깊은 신앙의 세계로 나아가고 더 큰 도전을 받고 싶어 했지만, 다음 단계로 성장하는 일에 교회가 그리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사실’을 보고받은 담임목사는 얼마나 힘들었을까가 상상된다. 한 기관의 리더가 자신이 추구하고 생각하고 있는 기관의 모습과 실제로 달성한 바가 상이하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만큼 힘든 일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빌 하이벨스 목사처럼 이러한 ‘사실’을 받아들이는 길만이 원래 리더가 추구하고자 했던 그 본질을 더 확실히 이룰 수 있는 첫걸음이 된다는 것을 간접 경험했다. 그리고 ‘사실’을 바로 직시하기 위해서는 윌로크릭 교회와 같이 정확한 측정 도구를 가지고 교회를 진달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윌로크릭 교회는 자신들의 교회를 진단했던 동일한 측정도구를 가지고 미국 내 1,000여개 교회의 25만 명 이상의 성도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했고 그 결과를 가지고 중요한 책을 발간했다. 

 바로 국제제자훈련원에서 최근 출간한 <무브_영적 성장에 대한 1,000여개 교회들의 증언>이라는 책이다. 이 책을 설문조사는 아직 실시하지 못하여도 이러한 책자를 통하여 교회를 올바로 바라볼 수 있는 시각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사실’은 리더의 친구라고 말하는 빌 하이벨스 목사의 말은 한 교회를 이끄는 목회자들이 귀담아 들어야 할 명언이다. 

Saturday, March 9, 2013

영성훈련의 일곱가지 방법

http://www.disciplen.com/resource/mail/now2.asp?m_mode=rn&v_msid=701&m3_No=2&page=78

많은 목회자들과 평신도 지도자들을 만나고, 또 다양한 목회현장을 방문하여 대화를 나누면서 확인하게 되는 진리는 ‘리더십의 중요성’입니다. 목회의 환경이나 토양 등은 다양하지만 열매맺는 사역의 중심에는 언제나 좋은 지도자가 있습니다. 좋은 리더십이 없이 성공적인 사역이 이루어진다는 것은 정말 기적과 같은 일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자신이 좋은 지도자가 되는 것과 좋은 지도자를 발굴하고 훈련시켜 지도자로 세우는 것은 너무도 중요한 일입니다.

물론 어떤 지도자가 좋은 지도자 인지 한마디로 정의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시편에 기록된 바처럼 ‘성실함과 그 손의 공교함“의 균형을 갖춘 지도자라고 표현할 것입니다. 깊은 영성과 참된 목자의 심정을 소유한 지도자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사실 어느 것 하나도 놓칠 수 없는 것들입니다. 한마디로 정의할 수 없다 할찌라도 우리가 어떠한 리더십을 지향하고 있는지를 분명히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스스로에게 한번 물어보십시오. 그리고 그것이 어떻게 드러나고 있는지, 지향함의 증거로 지금 하고 있는 일은 무엇인지 물어보시기 바랍니다.

목회자의 리더십을 이야기할 때, 특별히 제자훈련 인도자로써의 리더십을 이야기 할때 ‘영성훈련’은 빼놓을 수 없는 주제라고 생각합니다. 영성의 깊이를 가지지 않고서는 사람들을 제대로 섬길 수가 없습니다. 성도들의 인격과 삶에 하나님의 흔적을 남기기 어렵습니다.

 저는 게리 토마스의 책 ‘뿌리 깊은 영성은 흔들리지 않는다’를 매우 인상깊에 읽었습니다. 한번 읽어버리고 말 책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그 책에서 지금까지 잊혀졌거나 등한시된 영성훈련의 일곱 가지 방법을 다음과 같이 정리하고 있습니다.

1. 경건한 책 읽기

믿음에서 성숙해 가기를 원한다면 성숙한 시각에서 우리 보다 앞서 고민하고 이 주제에 대해 글을 쓴 사람들에게 눈을 돌리는 것이 좋습니다. 우리가 그들의 신학에 100% 동의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의 글은 우리 가슴에 헌신과 열정의 불길을 타오르게 해 줄 것입니다. 우리 영혼에게 ‘거룩한 열심이 타오르게 할 수 있는 고전작가’들을 찾아보십시오. 그들은 우리에게 깊이 있는 통찰력을 제공해 주는 좋은 친구가 될 수 있습니다. 제가 개인적으로 고전읽기를 권하는 또다른 이유는 이 시대가 너무나 분주한 시대라는 것입니다. 경건한 책들은 우리로 멈춰 서서 보다 중요한 것들을 볼 수 있도록 도움을 줍니다.

2. 훌륭한 본보기들을 본 받기


무엇인가를 배울 수 있는 영적인 만남은 중요합니다. 제게는 영적으로 도전을 주는 그런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과 이메일을 주고 받거나 대화를 나누고 나면 내 영혼이 소생하는 느낌이 들 때도 있고, 목표를 향해 달려가고자 하는 열정이 생기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러한 만남을 소중히 여기십시오. 동시에 내가 다른 사람들에게 본보기가 되는 것 또한 우리의 소명임을 잊지 마십시오.

3. 덕목을 기르기


성경은 우리가 성령의 일에 협력해야한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전 원래 그래요”라는 말은 겸손의 고백이 아니라 게으름의 고백입니다. 아빌라의 테레사의 말처럼 덕을 기르고 행하는데 애쓰지 않으면 성장하지 않는데서 멈추지 않고 퇴보하게 될 것입니다.

4. 불편함을 활용하기


불편함을 꺼리는 우리의 태도를 극복해야 합니다. 때때로 우리는 편안한 길을 택하지 않고 훈련함으로써 우리의 열정과 습관을 새롭게 형성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진정으로 성장하기를 원하는 사람에게 불편함은 적이 아니라 친구일 수 있습니다.

5. 진리를 몸에 적용하기


훈련의 궁극적인 목표는 진리를 우리 삶에 적용하는 것입니다. 몸에 우리를 맡기면 우리는 하나님께 멀어지게 됩니다. 단지 바르게 행동한다고 마음이 깨끗해지는 것은 아니지만, 율법주의의 위험 때문에 진리가 우리 안에서 살아 움직이게 하는 훈련을 포기하면 안됩니다. 외적행위들의 주인이 되는 것은 마음의 내적 상태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몸의 주인이 되느냐 몸이 우리의 주인이 되느냐에 따라 몸은 우리의 친구도 적도 될 수 있습니다.

6. 일찍 일어나기


역사적으로 일찍 일어나는 것은 그리스도인들의 영적 훈련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해 왔습니다. 일찍 일어나는 것은 효율성 이상의 의미는 가집니다. 게리 토마스는 젊은이들을 훈련 시키면서 가장 골치 아픈 문제들은 저녁 늦은 시간에 일어난다는 것을 발견했다고 말합니다. 훈련된 스케쥴은 실제로 죄를 없앨 수 있으며, 우리 마음과 삶에서 죄를 제거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로우는 이렇게 말합니다. “지나친 수면은 영혼을 느슨하고 게으르게 만듭니다. 그리고 그 게으름은 자신을 부인하는 영, 곧 그리스도의 영, 그 분의 사도들의 영, 모든 성도들과 순교자들의 영과는 너무나 대조됩니다”

7. 되돌아 보면서 살기


지혜로운 사람, 성숙한 사람들은 자신을 돌아봅니다. 자기반성, 자기성찰이야말로 영적훈련의 핵심적인 요소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규칙적인 자기 성찰은 세월을 허송하지 않도록 도와줄 것입니다.
헌신이 없이 목표는 성취되지 않습니다. 우리에게 거룩한 목표가 있다면 우리는 그것을 추구해야하며, 그 추구함의 과정에는 헌신이 필요합니다. 그리스도인의 영성은 일깨워진 마음으로 모든 것을 드림으로써 하나님의 자비에 반응하는 은혜의 영성임을 잊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자비에 올바르게 반응하기 위해서 우리는 훈련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잘 훈련되는 만큼 우리는 더 건강한 삶을 살 수 있으며, 우리의 사역도 건강하고 풍성해 질 것입니다. 우리 자신을 세우는 일, 이것은 놓칠 수 없는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Wednesday, December 5, 2012

팀워크를 만들어가는 리더 - 리더십 네트워크


미국의 시인 헨리 워즈워드 롱펠로우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모든 힘은 연합할 때 생기며, 모든 고난은 불화 가운데 생긴다.” 

 우리가 함께 하는 공동체에서 어떠한 일을 기획하고 진행, 완성시켜 나갈 때 가장 중요한 부분이 바로 하나됨(Unity)입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교회 내에서도 팀사역이 확대되어가고 있습니다. 단지 목회자들의 팀사역 뿐만이 아니라 평신도 지도자들 가운데서도, 그리고 사회 전반적으로 개인의 월등한 능력을 요구하기 보다는 팀워크를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존 맥스웰은 이러한 부분을 인지하고 ‘팀플레이’라는 단어를 내걸고 우리가 감당하는 사역에 있어서 리더가 유의해야 할 사항과 자신이 속한 공동체를 어떻게 살펴야 할지를 그의 책 「모든 팀이 원하는 팀플레이어」에서 소개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제시하는 목표에 동기부여를 하면서 도전할 때, 그 도전이 크면 클수록 팀워크도 강해야 합니다. 힘든 도전에 처할수록 공동체 구성원 사이에 가장 필요한 것이 협력입니다. 협력하는 구성원들은 함께 일하는 것 이상을 만들어냅니다. 공동체 내에서 관계에 가치를 더하게 되고 시너지 효과를 창출하게 됩니다. 존 맥스웰은 협력적인 팀플레이어가 되기 위해서 몇 가지 부분에 있어서 변화가 일어나야 함을 제시합니다.

 첫 번째는 인식의 변화입니다. 공동체 구성원들이 서로가 경쟁자가 아닌 협력자로 인식해야 합니다. 어느 팀을 보더라도 잠재된 경쟁심은 내재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협력적인 팀원은 상호보완하는 것(completing)을 서로 경쟁하는 것(competing)보다 더 중요하게 여깁니다. 그들은 서로를 함께 일하는 구성단위로 여기며 결코 팀에게 상처를 입힐 정도의 동료간 경쟁을 용납하지 않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태도의 변화입니다. 팀 동료에 대한 의구심을 버리고 조력자의 마음을 가지는 것입니다. 서로를 보완해주려는 마음자세를 갖는 것은 의심을 뒤로하고 협력적인 팀플레이어가 되고자 할 때에만 가능합니다. 리더가 팀원들을 신뢰한다면 팀원들을 더 잘 대하게 됩니다. 팀원들을 잘 대하게 되면 리더와 팀원 사이에는 협력적인 관계가 더 쉽게 만들어지며 그 속에서 형성된 팀워크는 위대한 일을 이루어낼 것입니다.

 세 번째는 초점의 변화입니다. 자기 자신이 아닌 팀에 집중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특별히 리더와 함께 팀원들이 공유해야 할 중요한 내용입니다. 어떤 상황이 벌어졌을 때 ‘난 어떻게 되는 거지?’ 또는 ‘이 팀이 어떻게 되는 거지?’라는 생각을 하게 될 것입니다. 어디에 관심을 갖느냐에 따라서 우리는 다른 팀원들이 경쟁해야 할 대상인지 협력해야 할 대상인지를 판단하고 행동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공동체에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묻는 습관을 가지는 리더가 되어야 합니다. 구성원들이나 팀원들이 자신이 속한 그룹에 관심을 갖고 협력적 관계를 통한 끈끈한 팀워크가 형성되도록 분위기를 조성해야 합니다. 그리고 만약 그 그룹이 더 잘될 수 있다면 자신보다 다른 사람을 내세우고 일하게 하는 제안도 필요할 것입니다.

* 이 글은 존 맥스웰의 「모든 팀이 원하는 팀플레이어」의 일부를 발췌 각색한 글입니다.

예비 리더를 키우는 리더
   


다국적 기업인 제너럴일렉트릭(GE)에서 최연소 CEO가 되어 GE를 세계최고 기업으로 성장시켰던 젝 웰치. 그는 예비 리더를 키우는데 있어서 자신이 사용할 수 있는 시간 가운데 무려 30%에 달하는 시간을 투자했다고 한다. 상위 1% 이내에 드는 탁월한 리더들에게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그것은 좋은 인재들을 발굴하고 그들을 리더 주위에 두는 것이다. 시스템은 옛 것이 되고 건물은 허물어지며 기계는 노후된다. 그러나 사람은 자신의 잠재된 가치를 인정해주는 리더를 만날 때 성장과 발전을 이루며 유능한 인물이 될 수 있다. 존 맥스웰의 「인재경영의 법칙」에서는 리더를 세우는 리더에 대한 중요성을 다양한 리더십의 원리를 통해 제시하고 있다.
존 맥스웰은 자신이 리더로 있는 공동체에서 가장 가까이에 있으며 소중히 여기는 5,6명의 사람을 떠올리고 다음의 질문을 던져볼 것은 권한다.
  1. 당신은 그들을 키우고 있는가?
  2. 그들을 위해 어떤 전략을 펼치고 있는가?
  3. 그들은 성장하고 성숙해가고 있는가?
  4. 그들이 당신의 무거운 책임을 덜어주고 있는가?
리더는 리더의 재목을 알아보고 리더를 기르고 리더의 참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그리고 중요한 사실은 리더에게 자연스럽게 예비 리더가 따른다는 것이다. 여기서 더 나아가 리더는 예비 리더를 길러내는 것만이 아니라 리더를 기르되 곱하기(multiplying)의 원리에 따라 길러야 한다는 것이다. 혼자 일하는 리더는 이것이 불가능하다. 그러나 함께 하는 리더들이 모두 한 가지 공통된 목표를 위해 일할 때 그들이 가지고 있는 성장의 가능성은 더하기의 수준이 아니다. 그들이 가진 강점들은 곱하기의 수준으로 올라가게 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존 맥스웰은 리더들에게 우선순위와 자기의 한계를 설정하는 정교한 기술을 가르쳤다. 그들이 목적을 분명히 이해하고 예비 리더들을 키워 그들이 언제리더의 자리에 올라서든지 중요한 책임을 감당하며 일의 성과를 극대화시킬 수 있는 사람을 배출하는데 노력을 기울였다.

존 맥스웰은 수 십 년간 리더로 활동하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리더십의 원리에 대해 ‘리더 가까이에 있는 사람이 그 리더의 성공의 정도를 결정한다.’고 말한다. 반대로 생각해보면 리더 가까이에 있는 사람은 그 리더의 실패의 정도를 결정하게 된다는 것이다. 리더십의 핵심은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들을 얼마나 잘 키워주느냐에 달려 있다. 또한 주위 사람들이 조직을 위해 얼마나 큰 공헌을 할 수 있는지를 보는 안목인 것이다.
요즘 TV 프로그램을 보면 어느 일정한 목표를 이루기 위해 멘토와 멘티의 관계를 통해 성장해 나아가는 모습이 감동을 주고는 한다. 우리의 사역에 있어서도, 그리고 사역의 다음 세대에 있어서도 리더의 자리에 있는 사람은 예비 리더와 어떤 관계를 이루고 있으며 예비 리더와 같이 성장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지 자문하며 사역의 지평을 넓혀갈 수 있는 2013년이 되기를 소망한다.

* 이 글은 존 맥스웰의 「인재경영의 법칙」의 일부를 발췌 각색한 글입니다.

Friday, November 2, 2012

출 4장 24-26절 십보라의 할례


출애굽 4장에서 왜 하나님은 모세를 죽이려 하셨을까?인데....

십보라의 할례는 모세와 아들 모두에게 행한 할례입니다.
25절 십보라가 아들에게 할례를...   
       "피남편이로다" 말함은 모세에게 행한 영적할례입니다.

모세는 아마도 할례를 받지 않았을 것입니다.
모세가 태어났을 때 모든 아이는 죽었어야 했기에
할례를 행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석달동안 숨어서 키워야 하니까요..
물론 바로 궁에서 할례는 더욱 더 못했을 것이고..
그렇게.. 시간이 흘러 이제 80살이 되어 부르심을 받았는데.
지금 당장 바로에게 가야 하는데 
모세가 할례를 받을 수 없으니
십보라가 남편에게는 "피 남편"이라는 말을 통해서
26절에서 보듯이 "피 남편이라 함은 할례 때문이었더라"는
말처럼 남편에게도 영적 할례를 행하게 되었는데
하나님이 이를 받아주신 것입니다.

육체의 할례가 아닌 마음의 할례가 중요하다는 말씀이 구약에서도 나오듯이
마음의 할례를 통해서 할례의 문제와 지도자의 리더십 문제를 해결하신 것입니다.


정리하면...
하나님의 백성들은 아브라함때부터 내려온 전통에 따라 태어난지 8일만에 
할례를 행해야 합니다. 하지만 모세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자신과 아들모두에게...

또한 모세는 지도자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할례를 행하지 않음으로
모세의 리더십에 문제가 생길 수 있었습니다.

결국 할례를 행해야 하는 당면적 문제와 지도자로 부르심속에서 리더십을 위해
하나님께서 극단적인 방법을 사용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또 하나 중요한 사실은 모세의 아내 십보라는 
이방출신이라는 사실입니다.
구약 때부터 이미 하나님은 할례를 통한 율법을 통한 구원이 아닌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말씀하신 것이지요.
이방인에게도 구원이 임할 것임을 십보라를 통해서 
한 번 더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할례를 행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Tuesday, August 14, 2012

유혹을 이기는 리더 - 리더십 네트워크 619호


국제제자훈련원에서 발취한 글...

 공동체의 건강의 그 공동체의 리더의 건강에 달려있다는 것을 인정 하실 것입니다. 또한 리더는 악한 사탄이 노리는 첫 번째 대상이 된다는 것도 익히 아실 것입니다. 그래서 리더는 능력의 근원이 되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끊어놓으려는 사탄의 유혹의 전략에 대해서 알고 그에 대처하는 구체적 방법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사도 베드로는 자기 동료 장로들에게 편지를 보내어 이렇게 경고합니다.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벧전 5:8). 사탄이 취하는 행동양식을 알기위해 예수님이 받으신 유혹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1. 우리의 존재에 대한 인식이 필요합니다.  
 복음서를 살펴보면 광야의 시험 직전 예수님이 세례 받으신 사건을 기록하고 있음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마태복음에서는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마 3;17).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로 이어질 공생애 사역의 문턱을 넘는 순간에 성부 하나님은 자기 아들의 삶이 제자무리 모질게 변하여도 그는 변함없이 아버지의 사랑받는 아들로 남아 있다는 사실을 알기를 원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받는 자라는 인식은 그가 수행할 전투의 기반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에게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크리스천 리더의 삶에서 가장 높은 특권과 근본이 되는 본질은 우리가 하나님의 가족에 양자로 들여졌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느니라”(롬8:15).
만일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받는 자”라는 존재의 핵심을 믿지 못한다면, 우리를 하나님에게서 멀어지게 하고 리더로서 무너지게 할 수 있는 마귀의 속임수에 쉽게 넘어갈 것입니다.

 2. 우리가 직면하는 유혹에 대한 인식이 필요합니다.
 가장 잘 알려진 고전적인 사탄의 무기는 돈, 권력, 그리고 섹스입니다.
 우선 돈(안락함)을 살펴봅시다. 사십일 금식을 마치신 예수님께 사탄이 이용한 것도 돈입니다.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명하여 이 돌들이 떡덩이가 되게 하라”(마 4;3). 사탄은 생명을 물질로 격하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크리스천 리더에게 유혹은 안락한 생활방식을 받아들이고 편안하게 사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성경을 인용하여 사탄에게 반격하셨습니다.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마 4:4). 단순히 물리적이고 만질 수 있는 것이 전부인 것처럼 하지 말고, 영적인 지혜라는 영원한 관점 위에 당신의 삶을 세우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마주친 두 번째 유혹은 권력입니다. 사탄은 예수님 앞에 엄청난 장관을 보여 달라는 유혹을 제기했습니다. 진짜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보여줄 수 있는 극적인 무언가를 해보라는 것입니다. 신성을 감싸고 있는 육체의 베일을 벗어보라는 요청인 것입니다. 성공과 개인적인 하나님 나라 건설이 얼마나 은밀하게 그 사람의 영혼을 공격할 수 있는지 모릅니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받는 자라는 정체성이 확실하지 않다면 이런 결핍감을 사람들의 칭찬으로 채우려고 할 것입니다. 우리의 가치는 우리 사역의 크기와 조직 안에서 자신이 차지하고 있는 위치로 결정이 될 것입니다. 그에 대한 방어로 예수님은 아버지 하나님의 마음 안에 있는 자신의 자리와 구속사역을 소행하라는 부르심을 스스로 항상 되새기셨습니다.

 마지막 세 번째 유혹은 섹스와 관련된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몸담고 있는 사회는 성적 탐닉이 만연한 곳이라는 것을 인정하실 것입니다. 이러한 문제로 넘어진 리더들에 대한 소식이 교회 안에서도 공공연하게 회자되고 있는 실정입니다. 리더가 자신의 마음을 지키고 이성을 대할 때 시간과 장소에 관하여 엄격한 지침을 유지하는 일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입니다. 또한 인터넷 시대의 도래와 함께 사람들은 인격적인 만남이 없이도 성적 욕망을 해결할 수 있는 기술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 자신의 심령 가운데 깊게 뿌리내릴 수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인식해야 합니다. 또한 욕기 있게 자신의 내면 깊숙한 곳을 바라보게 도와주는 숙련된 크리스천 상담가, 믿음의 친구 혹은 영적인 인도자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돈(안락함)의 유혹이든, 권력이나 섹스의 유혹이든 그것들은 모두 만족을 주겠다고 약속을 합니다. 하지만 그것들이 가져다 줄 수 있는 것은 일시적인 쾌락일 뿐임을 깨닫고 이 우상과 싸워야 합니다. 사탄의 이 모든 시도는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받는 아들과 딸이라는 사실 외에 다른 곳에 우리의 가장 중요한 만족과 궁극적인 정체성을 찾을 수 있다고 믿게끔 만드는 시도입니다. 존 파이퍼의 말은 의미심장합니다. “기쁨과 의미와 열정을 향한 나의 목마름이 그리스도의 임재와 능력을 통해서 해갈될 때 죄의 능력을 깨뜨릴 수 있다. 그릴 위에서 구워지는 스테이크 냄새를 맡을 수 있을 때는 샌드위치를 주겠다는 제안에 넘어가지 않는 법니다.”

 7,8월의 무더운 여름날 나약해지기 쉬운 이때 우리의 육체를 보강하려는 보양식을 찾는 사람이 많습니다. 크리스천 리더로서 나약해서 넘어지기 쉬운 영혼을 지키기 위해 말씀 묵상으로 유혹에 강한 리더로 거듭나시는 여러분 되시길 바랍니다.
이 글은 <평신도 지도자를 위한 리더십 첫걸음>10과를 발췌 정리한 것입니다. 

Monday, June 25, 2012

리더십 네트워크 - 618호 - 하나님께 사로잡힌 리더


여러분들은 리더란 어떤 사람을 말한다 생각하십니까? 세상 사람들이 원하는 리더, 혹은 영웅은 대부분 외형적인 기준에 있어서 뛰어나거나 준수함을 갖춘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현실 속에서 시대를 이끌었던 리더들을 비교해 보면 신기하게도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외모가 뛰어나거나 성품이나 도덕성에서도 뛰어남을 보였던 리더들이 그리 많지 않았다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얼마나 흥미로운 사실입니까? 사람들이 바라는 리더와 정작 역사 속에서 커다란 획을 그었던 사람들은 의외로 그들의 관심을 받지 못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사람들이 바라는 리더가 아닌 한 시대를 풍미했던 거대한 리더들을 살펴보면서 그들의 배경이나 환경이 그리도 달랐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공통적으로 큰 리더들이 될 수 있었던 공통점을 고민해보아야 합니다. 그들이 공유하고 있었던 것이 과연 무엇이었을까요?
그들은 자신들만의 비전과 꿈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그들이 시대를 앞서간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자신들의 꿈을 현실 속에서 일궈내기 위해 그 꿈에 사로잡혀 있었다는 것을 그들의 자서전에서 종종 발견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발견을 앞에 두고도 우리는 분명 조심해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의 바람이 시대적 영웅들을 만들어 내지 못했던 것처럼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꿈과 비전은 다 위대함으로 뛰어 넘을 수 있는 기회를 가져다 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리더라면 진정한 비전과 꿈을 찾기 위해 자기 성찰의 시간을 갖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를 가장 효과적으로 할 수 있는 방법을 R.C. 스프룰 목사는 다음과 같이 제시합니다.
“인간이 자신의 하찮은 모습에서 깨달음을 얻고 도전 받는 일은 거의 없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위대하심 앞에 섰을 때 비로서 자신과 상반되는 모습을 발견하고 깨달음을 얻게 됩니다.”
이같은 스프룰 목사의 조언을 따라 하나님 앞에 섰던 프랜시스 챈 목사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하나님 자체가 이 세상에서 가장 좋은 분이신데, 그 하나님이 우리를 가까이 부르지 않으신다면 우리가 어떻게 그분을 사랑의 하나님이라 부를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 가까이 머무는 것이 인간에게는 최고의 선물이기에 오늘도 하나님은 우리를 부르시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귀한 것은 하나님 이십니다. 더 이상은 없습니다.”
이 같은 챈 목사의 고백은 그가 결국 하나님 앞에서 섰을 때 자신의 부족함을 발견함은 물론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서 가장 좋은 분이라는 것을 발견했음을 보여줍니다. 달리 말하자면 목회자가 진정한 리더로서 거듭나기 위해서는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괴수 됨을 발견함과 동시에 여호와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발견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 안에서만 발견할 수 있는 비전과 꿈으로 비로서 진정한 리더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비전과 꿈에, 아니 하나님께 사로잡힌 리더들을 챈 목사는 <크레이지 러브>에서 다음과 같은 사람들이라 이야기 합니다.
  • 하나님께 사로잡힌 리더들은 나눠 줄 줄 아는 사람들입니다. 예수님께 푹 빠진 사람은 자신을 미워하는 이들마저 사랑하며 그 사랑이 감사로 되돌아오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포기하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 하나님께 사로잡힌 리더들은 자신의 안전과 안락함만을 위해 살지 않습니다. 위험과 고통에서 스스로를 보호하기 보다 다시 오실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더욱 집중합니다.
  • 하나님께 사로잡힌 리더들은 어떠한 방식으로든지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 살아갑니다. 전심으로 주를 따르는 사람들은 예수님이 재물과 가난한 사람들에 대해 자주 이야기 한 이유가 그만큼 중요한 일이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 하나님께 사로잡힌 리더들은 상황이나 사람들의 요구를 채워주기 보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일에 더욱 우선순위를 둡니다. 이 세상의 재물과 명예, 성광과는 상관 없는 일일지라도 주저하지 않습니다.
  • 하나님께 사로잡힌 리더들은 교만의 죄가 항상 도사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또한 아무리 마음을 낮추어도 스스로 “완벽한 겸손”을 이룰 수 없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께 사로잡힌 리더들은 이 세상의 기대와 예상과는 전혀 맞지 않는 리더들일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 눈을 고정시킨 이들이야 말로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진정한 리더들이 아닐까요?
그렇다면, 오늘 우리도 하나님 앞으로 달려 나아가서 그 분의 아름다우심과 위대하심을 찬미하며 그 분께 온전히 사로잡힌 리더가 되길 소망해 봅니다.

* 이 글은 미션월드에서 출간된 프랜시스 챈의 책 <크레이지 러브>의 일부를 각색한 글입니다.

Tuesday, March 27, 2012

리더십 네트워크 612호 -청지기 리더십의 두 가지 필수적인 요소 - 국제제자훈련원



 선교단체나 지역교회 내에서 훈련을 받는 사람들 중에 훈련 내용은 아주 좋지만 헌신을 요구하는 리더십에 문제가 있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그 때문에 마음에 상처를 입게 되고 심지어는 신앙까지 왜곡되기도 합니다. 
 특히 훈련 프로그램이 잘되어 있고 헌신을 요구하는 강도가 강한 교회일수록 그럴 위험성이 큽니다. 이런 문제가 생기지 않기 위해서는 리더십, 특히 제자훈련을 위한 리더십의 정비가 필요한데, 청지기 리더십이 아주 좋은 대안이 됩니다. 
 성경에 나오는 청지기 리더십의 가장 좋은 예는 사도 바울이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보여준 것입니다. “우리가 너희 믿음을 주관하려는 것이 아니요 오직 너희 기쁨을 돕는 자가 되려 함이니 이는 너희가 믿음에 섰음이라”(고후 1:24). 
 청지기 리더십은 다른 사람의 믿음이나 삶을 주관하지 않지만 그들의 신앙 성장을 돕는 효과적인 리더십입니다. 이러한 청지기 리더십은 적어도 두 가지 필수적인 요소를 갖추고 있습니다.

 첫 번째, 청지기 리더는 다른 사람의 믿음과 삶을 주관하지 않는다 
 성경에서는 리더에 대한 복종을 강조합니다. 그래서 리더십을 가진 사람들은 따르는 사람에게 절대 복종을 요구합니다. 그런데 복종을 요구하다가 이것이 지나쳐서 따르는 사람의 삶과 신앙까지 주관하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리더는 모든 영역에서 절대적인 권위를 갖게 되며, 그를 따르는 사람들은 인격적인 대접을 받지 못하게 됩니다. 그 결과 둘 사이의 관계는 건강한 인격적인 관계가 되지 못하고, 상명하복의 기계적인 관계가 되어버립니다. 이것은 성경이 가르치는 건전한 리더십을 왜곡하는 것입니다. 

 왜곡된 리더십의 첫 번째 경우는, 리더가 신앙과 삶을 주관하는 절대적인 지위에 있게 되어 모든 것을 자신과 똑같이 하기를 요구하는 것입니다. 제자훈련을 할 때도 인도자가 제자들이 처한 상황에 대해 고려하지 않고 절대 복종을 요구하는 경우가 생길 수 있습니다. 또 사역에서 무조건 복종을 강요한 나머지 삶의 다른 영역에서는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못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사역에 헌신을 강조한 나머지 가족들을 제대로 돌아보지 못하는 경우가 왕왕 있습니다. 절대적인 권위를 가진 리더들은 헌신을 요구할 때 이런 면을 고려하지 못합니다. 

 두 번째 경우는 리더가 절대적인 권위를 갖게 되면, 자칫 하나님의 권위를 대신할 위험성이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나 바나바는 자기들에게 절하려는 사람들을 만류하면서 자기들이 하나님처럼 여겨지는 것을 금했습니다. 그러나 헤롯은 하나님에게 주어지는 영광을 자기가 취하려다가 죽고 말았습니다. 교회 안에 있는 리더들은 종종 헤롯과 같은 실수를 하기 쉽습니다. 교회 리더가 절대적인 권위를 가지고 사람들 위에 군림하게 될 때 본의 아니게 하나님을 대신하게 되는 것입니다. 청지기 리더십은 이런 실수나 왜곡을 막을 수 있습니다.  
 청지기는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주인과는 분명히 구별됩니다. 청지기는 주인과 비슷한 권위를 가지고 있지만, 주인은 아닙니다. 그는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은 사람이며 주인을 대신하여 사람들을 다스리는 것입니다. 청지기 리더십은 바로 이런 자세로 사람들을 훈련 시키고, 가르치기도 하고, 이끄는 것입니다.

두 번째, 청지기 리더는 충성된 관리자가 되어야 한다 
 독재적인 리더십에 대한 반발이나 대안으로 ‘위임하는 리더십’이 많이 거론됩니다. 그런 예는 성경에 많이 있습니다. 예수님도 제자들이 아직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그의 권위나 사역을 그들에게 많이 위임했습니다. 사도 바울 역시 디모데나 에바브로디도에게 자신의 권위를 나누어 줌으로써 위임의 리더십을 잘 보여주었습니다. 그
런데 위임하는 리더십은 자칫 잘못하면 방임으로 흐르기 쉽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리더십을 위임하고 돌아보지 않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위임이 방임이 되고 무책임한 결과를 낳게 됩니다. 이렇게 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청지기 리더십입니다.  

 청지기는 주인은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관하는 자세를 가져서는 안 됩니다. 그렇지만 주인의 마음으로, 주인이 맡겨준 일과 사람들을 충성되고 철저하게 관리할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청지기 리더십은 따르는 사람들을 관리하는 데 성실하고 철저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파송할 때 자신이 가진 권위와 능력을 나누어 주셨습니다. 그렇지만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돌아온 후에 그들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고, 어떤 경험을 했는지를 물어보았습니다. 이런 피드백을 통해서 그들의 신앙과 삶을 철저히 관리했습니다. 사도 바울도 마찬가지입니다. 디모데나 디도에게 리더십을 위임했지만 그것으로 끝내지 않고 지속적으로 그들을 관리했습니다. 디모데전후서나 디도서가 바로 사도 바울의 청지기 리더십의 매뉴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청지기 리더십을 가진 사람은 부지런하고 성실합니다. 특히 사람에게 굉장한 애착을 가지고 대합니다. 성과를 지향하는 권위적인 리더들은 사람을 목표를 이루기 위한 도구로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청지기 리더십은 일을 이루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보다 사람을 더 중요시합니다. 사람을 섬기는 것이 리더십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청지기 리더십 
 이런 청지기 리더십이 가정이나 직장 그리고 교회 내에서 꼭 필요합니다. 가정에서 부모들이 청지기 리더십을 가져야 합니다. 자녀를 자기의 소유로 생각하는 부모들이 종종 자녀들의 삶을 과도하게 주관하려고 합니다. 반대로 부모가 되어서 자녀들에게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은 채 방치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직장에서 경영자들이나 윗사람들이 청지기 리더십을 가져야 합니다. 경영자들이 직원들의 인격을 인정해주지 않고 업무의 성과만을 강요하게 될 때, 단기적으로는 성과를 얻을 수 있을지 몰라도 경영에는 실패합니다. 그렇다고 직원들을 마냥 자유롭게 내버려둔다면 제대로 성과를 얻지 못해서 역시 경영에 실패하고 맙니다. 기업을 경영하는 데도 역시 청지기 리더십이 필요합니다.

 교회에서 목양을 하고 사람들을 양육하고 훈련하는 사람들 역시 청지기 리더십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빙자해서 사람들의 신앙과 삶을 자기의 뜻대로 주관하려 들면 일시적으로는 성장하는 것 같지만 영적으로 제대로 성숙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기보다 사람을 의지하는 신앙, 하나님을 두려워하기보다 사람을 두려워하는 신앙 자세를 갖게 됩니다.
 반대로 성도들의 삶이나 사역에 대해 아무런 간섭도 없이 그냥 내버려두면, 혹 자연스럽게 성장하는 사람들이 있을지 모르지만 우는 사자와 같이 삼킬 자를 찾는 마귀의 공격에 희생되는 사람들이 생길 수 있습니다.
 
 이 두 양극단에 치우치지 않고 균형을 이루도록 돕는 청지기 리더십이 필요합니다.

 특히 제자훈련을하는 인도자는 정말 청지기 리더십을 가져야 합니다. 예수님의 제자를 만드는 것이지, 자신의 제자를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또 제자훈련은 사람을 그리스도의 제자로 만들어가는 과정이 되어야지, 사람을 경직된 제자훈련 프로그램에 꿰맞추는 것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제자훈련은 사람들을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도록 돕는 것입니다. 그가 경건생활을 잘하도록 점검도 하고, 때로는 생활에 필요한 조언도 해주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제자훈련에는 다른 사람의 신앙과 삶을 주관하지 않으면서도, 그들의 신앙 성장을 도우려는 청지기 리더십이 필요한 것입니다.

 우리 모두 청지기 리더십을 발휘하여 주님께서 원하시는 회사, 가정 그리고 교회를 섬기기를 원합니다. 이 한 주도 청지기 리더십으로 승리하시길 바랍니다.

 이 글은 월간 <디사이플> 2012년 3월호에서 방선기 목사의 “청지기 리더십으로 충성된 관리자가 되자”를 요약 편집한 것입니다.

Monday, March 12, 2012

611호 - 리더십은 기술이 아니라 마음입니다

어떤 여자 직원이 식당에 대한 고충을 담당 부서 리더에게 이야기했더니 리더는 조용히 듣기만 했습니다. 며칠 후 그 직원을 복도에서 마주치게 되었습니다. 그녀는 리더에게, 덕분에 식당이 완전히 바뀌었다고 인사를 했습니다. 그 리더는 어찌 된 일인가 해서 식당을 알아봤습니다. 식당의 담당자는 지금까지와 달라진 게 하나도 없다고 했습니다. 그녀의 불평을 들은 후 리더는 미처 어떤 조치도 취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결국, 리더가 잠자코 불평을 들어줬던 일로 인하여 그녀의 기분이 바뀌어 식당이 바뀐 것처럼 느껴졌던 것입니다. 

고민은 타인에게 이야기하는 것에 의해 반감되고, 기쁨은 타인에게 이야기하는 것에 의해 두 배로 증가한다는 말이 맞습니다. 인간 심리의 70퍼센트는 감정이고 30퍼센트가 이성이라고 합니다. 논리적으로 이성에 호소하는 것보다는 고민을 확실하게 들어주는 쪽이 훨씬 더 좋은 효과를 부른다는 것을 리더는 잘 알아두어야 합니다. 
리더십은 기술이 아니라 마음입니다. 리더십은 구성원의 마음을 잡는데서 출발합니다. 가족 초청 송년회, 경조사에 대한 깊은 관심과 지원, 사생활에 대한 상담, 개인의 조직 내 성장을 위한 관심, 시 한 편으로 시작하는 회의, 즉흥적인 격려와 인정, 구성원을 존중해 주는 분위기, 그리고 리더의 헌신적이고 희생적인 노력 등이 따르는 이들의 마음을 잡습니다. 

마음을 얻는다는 것이 단순히 아랫사람을 무조건 높여주고 칭찬해주라는 말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칭찬도 꾸짖는 것도 모두 아랫사람을 좀 더 훌륭한 사람으로 키우기 위한 애정에서 발생하게 됩니다. 오히려 상대를 진심으로 꾸짖지 않는 것은 애정이 결핍되었기 때문이라고 비판받아야 합니다. 하물며 칭찬도 하지 않고 꾸짖지도 않는 것은 아랫사람을 무시하는 행위, 내지는 리더의 게으름으로 치부될 수 있습니다. 

다만, 칭찬이든 꾸짖음이든 리더가 어떤 마음을 가지고 아랫사람을 대하고 있는가를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우리나라 리더의 자질 중 부족한 것 중의 하나는, 아랫사람을 잘못을 꾸짖을 때 개인적으로 하지 못한다는 점, 그리고 아랫사람에 대한 칭찬이 부족하다는 점입니다. 아랫사람은 윗사람에게서 열 번 칭찬받고 한번 창피를 당하면 마음속으로는 평생 원수지간으로 변하게 됩니다. 아랫사람들의 인격을 존중해 주되, 잘못이 있을 때는 그 인격을 존중해서 개인적으로 불러 혹독하게 혼을 내서 다시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도록 고쳐 주는 노력도 해야 합니다. 그럴 때, 아랫사람은 단순한 ‘짓누름’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바로 자신을 향한 ‘진솔한 관심과 사랑’을 마음으로 느끼게 됩니다. 

나이나 직급, 직위로 누르지 마십시오. 그보다는 전문성, 지식, 열정으로 리드하십시오. 나이나 직급, 직위란 리더 자신만의 노력으로 얻어진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눈앞에서는 순종하는 척하지만 돌아서서는 불만스러워합니다. 요즘세대가 인정할 수 있는 권위를 쌓으시길 바랍니다. 독재형 리더십이란 겉으로는 매우 강해 보이지만, 사실상 리더십이 부족해서 생겨난 궁여지책에 불과합니다. 지배자와 피지배자의 논리를 벗어나야 합니다. 
기억하십시오, 지금 필요한 리더십은 바로 아랫사람의 “마음을 얻는 일”입니다.


퍼온글 - http://www.disciplen.com/resource/mail/now2.asp?m_mode=rn&v_msid=2813&m3_No=2&page=1

Tuesday, January 3, 2012

SNS(Social Networking Service) 시대의 리더


최근 중동과 북아프리카에서 일어난 민주화 운동인 ‘쟈스민 혁명’과 미국 뉴욕을 중심으로 거대한 자본의 탐욕으로 인해 청년 실업률의 증가에 항의하는 의미로 시작된 ‘월가 시위(Occupy Wall Street)’, 그리고 지난 10월에 진행된 서울 시장 보궐 선거. 서로 전혀 연관이 없어 보이는 이 세 가지 사건 속에는 하나의 공통적인 키워드가 숨어 있습니다. 바로 트위터(twitter)와 페이스북(Facebook)으로 대표되는 ‘SNS(Social Networking Service)’입니다.
SNS가 사회 변혁의 핵심 키워드가 된 결정적인 이유는 바로 ‘1인 네트워크 커뮤니티’라는 SNS의 독특한 특성 때문입니다. 쉽게 말하면, 이제 사람들은 SNS를 통해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보다 더 많이, 그리고 더 쉽게 듣고 전할 수 있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과거에는 자신과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되는지 알지 못하기 때문에 권력에 항거하거나 자신의 주장을 내세우지 못하는 이른바 ‘침묵하는 다수’에 속했던 사람들이, 이제 SNS를 통해 자신과 같은 생각을 하는 이들이 얼마나 많은가를 확인할 수 있고 그래서 자신들의 주장을 관철시키기 위해 힘을 모을 수 있는 시대가 된 것입니다.
특히 동영상을 무료로 공유하는 웹사이트인 유투브(Youtube)와 아이폰(IPhone)을 만든 애플사에서 계발한 개인 방송 시스템인 팟캐스트(Podcast)등이 SNS와 결합하게 된 것은 가히 미디어의 혁명을 가져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래서 전문가들 중에는 ‘이제 사람들마다 자신만의 방송국을 가진 시대가 열렸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급격하게 변화하는 시대 속에서 리더는 어떤 태도와 자세를 취하는 것이 옳을까요? 오늘은 SNS(Social Networking Service) 시대에 리더에게 필요한 것들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보겠습니다.

1. 더 많이 들으려고 노력하라
트위터나 페이스북으로 대표되는 2세대 SNS가 블로그(blog)나 홈페이지와 같은 1세대 SNS와 가장 크게 차이가 나는 것은 바로 ‘확장성’과 ‘개방성’의 차이입니다. 1세대 SNS는 ‘회원’으로 가입을 해서 그 블로그와 홈페이지의 주인이 써 놓은 글을 읽는 식의 일방향적인 커뮤니케이션 시스템이었던 반면, 2세대 SNS는 친구와 팔로워로 연결된 사람들이 서로의 글을 확인할 수 있는 쌍방향적 커뮤니케이션 시스템을 갖추고 있습니다.
2세대 SNS의 특징을 잠깐 살펴보면, 먼저 트위터는 내가 보고 싶은 다른 사람을 의미하는 ‘팔로잉(Following)’과 내 글(트윗)을 볼 수 있는 사람인 ‘팔로워(Follower)’로 구분되어 조금 더 폐쇄적인 반면, 페이스북은 서로 친구가 되면 서로의 글을 모두 볼 수 있다는 점에서 더 개방적입니다. 그러나 트위터는 별도의 승인 절차 없이 내가 보고 싶은 다른 사람의 글을 마음대로 선택할 수 있지만, 페이스북은 반드시 글을 쓴 주인과 친구관계가 수립되어야만 그의 글을 읽을 수 있다는 점에서 확장성에 차이가 있습니다. 그래서 전 세계적으로 아직까지는 트위터보다 페이스북 사용자가 더 많은 것으로 조사되고 있지만, 최근 한국에서는 트위터 사용자가 급격하게 증가되면서 2011년 11월 현재, 페이스북 사용자는 약 450만명인데 반해 트위터 사용자는 약 530만명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되었습니다. 어찌됐건, 1세대 SNS가 주로 내 의견을 다른 사람에게 전달하는 도구로 사용됐다면, 2세대 SNS는 다른 사람의 의견을 더 많이 듣는 도구로 사용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이런 정보는 리더인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의미를 던져 줍니다. 즉, 2세대 SNS에 익숙한 사람들과 커뮤니케이션 하기 위해서는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하는가 입니다. 이제 리더가 무조건 의견을 제시하기만 하는 시대는 지났습니다. 리더일수록 더 많은 사람들의 의견을 들어 보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다른 사람들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를 듣는 것에 익숙하지 않은 리더는 2세대 SNS에 익숙한 이들로부터 ‘소통불가’로 낙인 찍히기 쉽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2. 반대되는 의견도 들어보라
2세대 SNS의 또 다른 특징 중 하나는 네트워킹의 결정권을 자신이 갖는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내가 듣고 싶은 것만 듣고 듣기 싫은 소리는 듣지 않을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보수적인 사람들하고만 SNS로 연결되어 있는 사람은 보수적인 시각의 글만 접하게 될 것이고, 그러다 보면 보수적인 주장이 마치 다수인 것처럼 착각하기 쉽습니다. 따라서 2세대 SNS 시대에 리더는 보다 폭넓은 네트워킹을 통해 자신과 다른 의견과 성향을 갖고 있는 사람들의 의견도 들어보려는 노력을 반드시 해야만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자신이 갖고 있는 네트워크의 한계 속에서 자신이 보고 듣는 것만이 전부라는 엄청난 판단의 오류를 범할 수 있습니다.

3. 객관적인 사실에 집중하라
정보와 사실을 제공하는 통로로서 미디어는 강력한 힘을 갖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대다수의 국민들은 미디어를 통해 전달되는 정보를 사실로 받아들이는 습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독재 정권일수록 가장 강력하게 통제하는 기관이 바로 방송과 언론사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2세대 SNS가 단순히 자신의 의견을 표현하는 통로의 역할만이 아니라 수많은 정보를 제공하고 공유하는 기능을 감당하고 있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즉, 이전 사람들은 어떤 정보의 사실 여부를 스스로 확인하거나 판단하기 보다는 매체가 전달하는 내용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한계를 지니고 있었지만, 스마트폰을 통해서 언제 어디서든 보다 정확하고 다양한 내용을 확인할 수 있는 2세대 SNS 세대들은 제공되는 정보가 정확한 것인지, 사실인지를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었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2세대 SNS 시대를 살아가는 리더일수록 보다 객관적인 사실에 집중할 필요가 있습니다. 자신의 개인적인 의견과 객관적인 사실을 구분하지 못하는 리더의 말은 결국 신뢰를 얻지 못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4. 공유의 가치를 통해 수평적 리더십을 추구하라
마지막으로 2세대 SNS는 어떤 정보나 개인의 글을 무제한적으로 공유할 수 있다는 특징을 갖고 있습니다. 이것은 2세대 SNS만이 갖는 가장 독특한 특징 중 하나입니다. 트위터에서는 ‘리트윗’이라는 단추 하나를 누름으로써 내가 읽은 어떤 사람의 글을 내 글을 읽는 사람들(팔로워)에게 소개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2세대 SNS에서는 공유의 속도가 배가의 수준을 넘어서 기하급수적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2세대 SNS 시대를 살아가는 리더는 공유의 가치를 추구해야 합니다. 이것은 ‘상명하복(上命下服)’이라는 기존의 리더십과는 분명 다른 것입니다. 리더는 항상 지시만 내린다는 생각에서 벗어나서, 모든 사람들이 정보와 사실을 공유하는 수평적인 관계를 형성하고 그 속에서 리더로서의 역할을 찾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SNS로 인해 변해가는 사회를 보면서 당신은 무엇을 느끼십니까? 그리고 그 교회를 책임지는 리더로서 당신은 어떤 준비가 되어 있습니까? 혹시 당신이 ‘그런 것을 사용하지 않으면 되지’라고 생각한다면, 머지않아 당신이 섬기는 공동체에는 머리가 하얀 노인들만이 앉아 있게 될 것입니다. 미래를 생각하고 다음 세대를 중요하게 여긴다면, 지금부터라도 SNS 세대에 맞는 리더의 모습을 갖추기 위해 노력하시기 바랍니다.

리더싶 네트워크  604호 - SNS(Social Networking Service) 시대의 리더


Friday, December 23, 2011

"중심" - 조신영. 비전과 리더십.

"중심 " 조신영. 비전과 리더십

"생각하는 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 조신영.

* 모든 생각의 저 아래에는
 우리의 믿음이 깔려 있다네.
 마치 영혼의 마지막 베일과도 같이. "중심"- 조신영, p71.

"진정으로 원하는 소망을 분명하게 정하고, 그 소망이 영혼의 마지막 베일 너머에 있는 중심에 와 닿도록 해야 한다" p78.

"소망이 중심에 닿게 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구체적인 소망의 내용을 담은, 열 개의 어절로 된 한 문장을 만드는 것이다. 우리의 내면은 말의 지배를 받는다. 말에는 각인력, 견인력, 창조력이 있어서 소망을 중심에 새기고 집중시키는 데 가장 큰 힘을 발휘한다" - "중심" p78.

"내면의 중심에 간절한 소망이 뚜렷하게 각인되지 않으면 온갖 부정적인 생각들이 무의식의 영역에 침투해서 결국 중심을 오염시키고 말 것이다. 불안, 두려움, 공포, 열등감, 좌절, 실패에 대한 이미지들이 서서히 중심을 물들이고 나면, 오염도니 중심은 부정적인 결과만을 확대 재생산하는 악순환에 빠지게 된다." p79

"소망이 현실로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중심을 건드려야 하고, 중심에 소망이 맞닻는 순간 이미 이루어졌다는 확신이 들게 되는 법이다" p87.

"드림 센텐스를 반복하면 어느 순간 임계점에 다다르게 되는데 바로 그때 확신의 문이 활짝 열인다고 했다. 그러나 임게점을 지나는 것 자체가 쉬운 일이 아니다. 드릴이 중심으로 뚫고 내려가는 과정에서 엄청난 장애물들을 만나게 되기 떄문이다. 그 장애물이란 부정적인 경험을 통해 스스로 학습한 부정적인 생각들이다. 이것이 바로 내면의 적이다. 드림 센텐스는 그 적들을 깨부스는 유용한 참과 검, 때로는 방패가 되는 셈이다." p87

* 중심을 새롭게 하는 첫 번째 지혜
영혼의 마지막 베일 그 아래에 중심이 있다.
1. 지구의 중심에 핵이 존재하고 세포의 중심에도 핵이 존재하듯 만물에는 중심이 있다.
2. 우리의 내면 가장 깊은 곳에 중심이 존재한다.
3. 중심에는 상상을 초월하는 강렬한 에너지가 응축되어 있다. 중심의 위력을 깨닫고 중심을 잘 관리하는 것이 행복하고 성공적인 삶을 이루는 비결이다.
4. 중심에는 우리의 소망을 현실로 이루어 주는 능력이 내재되어 있다.

* 중심을 새롭게 하는 두 번째 지혜
중심은 진정한 소망을 반드시 이루어 낸다.
1. 피상적인 소원은 사소한 장애물에도 쉽게 포기하게 되지만 진정한 소망은 모든 장애를 돌파하고 중심에 닿을 정도로 간절한다.
2. 드림 센텐스를 반복하는 과정을 통해 피상적인 소원은 걸러지고 진정한 소망만이 중심에 닿을 수 있게 된다.
3. 중심은 마치 생명을 품고 있는 알과 같이 자신을 뚫고 들어온 소망을 잉태한다.
4. 이 과정을 확신 conviction 또는 믿음 faith의 단계라고 부른다. 믿음의 단계에 도달한 소망은 반드시 현실로 이루어진다.

"단지 뭔가를 소망하고 그것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확신의 단계를 이를 때까지 노력하고, 그 결과로 지고의 평화를 맛본다는 그런 메커니즘이 전부가 아니야. 더 근본적인 걸 찾아야 해. 가장 중요한 것을 찾아야 한단 말이지. 핵발전소의 힘을 이용할 생각만 할 게 아니라 그 힘의 원천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한다고." p136.

"누구도, 그 무엇도 분명한 소망을 가진 인간의 의지를 꺽을 수 없다." p138.

"창조의 모든 행위에는 하나의 근본 원리가 있다. 우리가 스스로 하겠다는 결단을 내린 순간 하늘도 움직인다는 것이다." 괴테  p139.

"결단 decision이 뭔지 아나? from(~로부터)의 뜻을 가진 de와 to cut(잘라 내다)의 뜻을 가진 caedere가 만나서 decision이 됐다네. 결단을 내린다는 건 이루겠다는 마음을 먹는 것 외에는 다른 가능성을 다 잘라 버린다는 뜻일세.: p140.

"멘탈 비거러스 Mental vigorous!란 의욕이 샘솟고 뇌 내 신경전달물질이나 호르몬의 균형에 변화가 일면서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끊임없이 용솟음치고 직관이 날카롭게 작용하는 상태를 말한다. 이 상태에서는 미래에 대해 긍정적인 사고와 긍정적인 감정을 갖게 된다. 이런 활기차고 역동적인 심리 상태를 멘탈 비거러스라고 한다." p143.

"소망이 중심을 뚫고 들어가면 가슴이 셀레면서 마음에 깊은 평안이 찾아오고 가진 능력을 최대로 발휘하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확신의 경험이다. 뇌의학에서는 편도핵 부위가 활성화되는 단계라고도 한다. 내면의 중심이 움직일 때 개인적으로든 집단적으로든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폭발적인 에너지가 분출된다." p145.

*카이로프랙틱(척추교정)
 척추가 우리 몸의 중심이 아니냐? 여기 결리네, 저기 결리네 하는 사람들 눕혀 놓고 만져 보면 대부분이 척추 문제야. 척추가 휘었으니 신경통에 안 걸릴 제간이 있나. 척추로 혈관이며 신경이며 중요한 것들이 다 연결되어 있는데 말이야. 원주민들도 마찬가지더라고.
 우두둑우두둑, 굽은 척추를 바르게 펴 주면 효과가 바로 나타난단 말이지. 막힌 데가 뚫리면서 금세 혈액이 좋아져. 통증도 가라앉고, 물론 한 두 번 했다고 다 고쳐지는 건 아니지만 꽤 좋아지긴 하거든.
 인생에도 척추가 있다. 문에 보이지 않고 손에 잡히지 않아도, 내 삶을 지탱하는 척추 같은 게 있다. 그런데 다들 그놈의 척추가 휘어졌단 말이지. 그러니 인생이 고통스럽지 않겠어?
  '모든 생각의 저 아래에는 우리의 믿음이 깔려 있다네. 마치 영혼의 베일과도 같이.' 인생의 중심이란  게 '모든 생각의 저 아래, 영혼의 마지막 베일'에 싸인 곳에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중심의 힘은 대단해요. 소망이 중심을 뚫고 들어가면 그 위력이 나타나죠. p150-153.

"평소에 잘 먹고 운동 열심히 했던 게 오히려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왔지. 젊고 건강 관리를 철저하게 한 사람일수록 암세포 역시 건강하게 잘 자라거든, 그것도 아주 빨리 말이야."  p155

"근본적인 중심에서 나아가 '근본적인 이해의 단계'에 들어가야 한다. 태초에 하나님이 사람을 빚을 때 영혼의 가장 깊은 곳에 '중심'이라는 핵발전소를 만들어 주신 셈이야. 비밀의 장소지. 그런데 거기서 멈추면 안돼. 피상적인 해결은 또 다른 문제를 불러오기 마련이지. 그래서 근본적인 이해의 단계로 들어서는 게 중요하다. 단지 뭔가를 소망하고 그것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학신의 단계에 이를 때가지 노력하고, 그 결과로 지고의 평화를 맛본다는 그런 메커니즘이 전부가 아니야. 더 근본적인 걸 찾아야 해. 가장 중요한 것을 찾아야 한단 말이지. 핵발전소의 힘을 이용할 생각만 할 게 아니라 그 힘의 원천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한다고" p159-160.

"네 스스로 찾아야 해. '근본적인 이해.' 말 그대로야 누가 가르쳐 줘서 알 수 있는 문제도 아니지만, 설사 지식적으로 안다고 해도 근본적으로 이해한다고 할 수는 없다. 네 상황이 좀 어렵딘 하지만 직접 부딪혀 가며 치열하게 고민해야 해. 그런 과정이 있어야 스스로 깨닫는 날이 와. 그때가 되면 내 말이 무슨 뜻인지 알거야" p161.

"사람들이 왜 스타를 필요로 하는지 알고 있나? 왜 영국인들은 주말마다 미친 듯이 축구장으로 몰려드는 것일까? 왜 미국인들은 퇴근만 하면 TV 앞에 둘러앉아 프로 야구에 빠져드는 걸까? 중심이 채워지지 않아서 느끼는 허전함 때문이다. 우리 중심은 블랙홀과도 같아서 뭔가를 끌어들이게 마련이지. 그런데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인생을 걸만큼 매력적인 게 딱히 뭐가 있겠나? 첫바퀴 돌듯 돌고 도는 반복적인 일상에 갑갑함을 느끼고 지친 사람들이 저런 스타나 운동 경기에 감정을 이입하며 대리 만족을 하는 거라고." P164.

* 60년대 하버드대학의 개혁을 주도했던 내이턴 푸쉬 총장의 말. p164.
오늘날 젊은이들에게는 네 가지가 반드시 필요하다.
마음껏 흔들 수 있는 깃발,
목 놓아 부를 수 있는 노래,
철저히 믿을 수 있는 신조,
목숨을 걸고 따를 수 있는 지도자.

"중심 - 중심中心 = 충
"가운데 중(中), 마음 심(心), 가로로 읽으면 중심인데, 세로로 놓고 읽으면 뭐가 되나? 충성 충(忠)이 된다. 인간은 자신의 중심에 놓인 것에 충성을 다하는 존재라는 사실을 일지 말자. 마치 지구가 태양을 중심으로 공전하고, 달이 지구를 중심으로 공전하듯 우리는 자신의 중심에 놓인 그것을 축으로 맴돌며 충성을 바치는 존재란 말이지." P167.

* 코페르니쿠스적 발상
"지금의 내 모습은 그동안 눈에 보이는 대로 하찮은 것들이 중심에 스며들도록 내버려 둔 탓이야. 중심에 놓어야 할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는 게 필요하다는 말이야. 인생의 척추를 바로 세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발상의 전환이 있어야 비로소 근본적인 이해의 단계에 들어갈 수 있다" p172.

"근본적인 이해의 단계는 명사noun가 아니다. 착각하지 말자. 사실 그 본질은 동사verb다. 오로지 명사인 줄로만 알고 생각해서 단지 어느 순간 이걸 느끼고 깨닫기를 원할 뿐이야. 그래 가지고선 알 수가 없는데 말이야. 스스로 낮추고 희생해야만 알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움직임이 없이는 도무지 느낄 수 없는 것이지. 그러나 한 번 그 맛을 알면 다른 소망들은 하찮게 느껴지는 것이기도 해" p173.

* 중심을 새롭게 하는 세 번째 지혜
인간의 자신의 중심에 충성하는 존재다.
1. 중심은 단지 우리의 소망을 이루어 주는 요술 방망이가 아니다.
2. 달이 지구를 중심으로, 지구가 태양을 중심으로 공전하듯 우리의 삶은 내면의 중심을 축으로 영위되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3. 중심을 방치하거나 단지 욕망을 이루려는 목적으로만 이용할 경우,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세상의 지배적인 생각들이 중심을 오염시키게 되고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그것에 충성을 바치게 된다.
4. 그러므로 우리 중심은 가장 완전한 것으로 채워져야 한다.

* 박테리아와 북극제비갈매기
"세상에서 가장 작은 자석은 바로 박테리아야. 박테리아 몸속에는 아주 작은 자석이 들어 있다. 아직까지는 박테리아가 세상에서 제일 작은 생물이라고 알려져 있으니까 당연히 그 몸속에 있는 자석이 세상에서 제일 작겠지."
"북극제비갈매기는 10월쯤 남극에 가면 볼 수 있다. 북극이 너무 추워서 따뜻한 남극으로 이사 를 간다. 남극은 그때부터 여름이 시작된다. 나침반도 없는 북극제비갈매기가 어떻게 그 먼 거리를 잘 찾아서 갈 수 있을까? 자석 때문이다. 철새들의 뇌에 자석이 들어 있다. 아주 작은 자석이 나침반의 역할을 해 주기 때문에 아무리 멀리 날아가도 방향을 잃지 않는 것이다" p181-182.

"현재의 삶은 내가 중심에서 진정으로 원하는 것들의 결과물인 것이다" p186.

* 확신의 단계
 "우리 인생에는 중심이란 것이 존재하는데 누구나 쉽게 발견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내면의 마지막 베일 속에 감춰진 신비로운 것으로 무슨 소망이든지 진정으로 원하는 소망인 경우, 중심에 닿을 수만 있다면 반드시 이루어진다. 그런데 중심에 닿기까지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내면을 겹겹이 싸고 있는 베일을 하나씩 벗겨야 하는데 그러려면 경험으로 굳어진 부정적인 자아와 싸워야 한다. 드릴로 뚫는 작업이 필요하다. 하지만 마침내 중심에 닿으면 확신을 갖게 된다. 확신의 단계이다. 확신의 단계에 들어가면 마음에 평화가 찾아오고 소망이 마침내 이루어진다. 그런데 대부분 확신의 단계에 도달하기도 전에 지레 포기해 버리고 마니까 그래서 드림 센텐스 같은 장치가 필요하다." p186-187.

"대부분, 명사라고 착각하지만 본질은 동사인 것,
스스로 낮추고 희생해야만 알 수 있는 것,
한번 그 맛을 알면 다른 소망들은 하찮게 느껴지는 것." p191.


* 중심 - 말씀. p224-225.
"이 세상의 천지 만물은 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창조된 것입니다. 온 우주가 말씀으로 창조되었으니 피조물인 우리 인간 역시 말씀의 지배를 받는 존재인 것입니다 오늘 밤 저는 여러분에게 일시적인 도움밖에는 드릴 수가 없습니다. 내일이면 이곳을 떠나고 없을 사람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언제나 여러분 곁에 있습니다. 날마다 말씀을 약처럼 드십시오. 말씀에는 창조력과 함꼐 치유력이 있습니다. 말씀이야말로 여러분의 문제를 본질적으로 해결해 줄 치료제인 것입니다"

* 나이아가라 증후군
 소망이나 목적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인생은 강물과도 같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어디로 가 닿겠다는 구체적인 생각 없이 그냥 인생의 강물에 뛰어들어 살아가지요. 그리고 그 속에서 이런저런 사건과 사고를 만나면서 두려움에 떨기도 하고 도전하기도 합니다.
 강이 갈라지는 분기점이 다가오는데도 자신이 가고자 하는 곳이 어디인지, 어느 방향인지조차 모릅니다. 그저 강물에 몸을 의지하고 흘러갈 뿐입니다. 이것은 자신의 가치 체계가 아닌 사회적 환경에 지배에 따라 사는 삶이요, 그저 흘러가는 대로 사는 삶의 모습입니다. 흘러가는 대로 사는 존재는 더 이상 자신의 운명을 통제할 수 없다고 느끼게 됩니다.
 그러다 갑자기 물살이 빨라지고 물결이 요동치는 순간이 오지요. 그때 소스라치게 놀라며 깨어납니다. 바로 몇 미터 앞에 나이아가라 폭포가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만 이미 때는 늦었습니다. 아무리 몸부림쳐도 소용이 없으니까요.
 강 상류에서 좀 더 일찍, 좀 더 나은 결단을 내렸더라면 폭포로 떨어지는 일은 없었을 것입니다.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발목을 잡은 탓에 제때에 결단을 내리지 못한 것입니다. 살면서 겪는 크고 작은 실패들이 우리를 꼼짝 못하게 묶습니다. 한 번 실패한 사람이 왜 계속해서 실패하는 줄 아십니까? 실패를 거듭 생각함으로써 더 큰 실패들을 불러들이기 때문입니다.

 ... 현재의 삶은 내가 중심에서 진정으로 원한 것들의 결과물인 것이다...

 변화에는 꽤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고들 생각합니다. 왜 그렇게 생각할까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그동안 변화해 보려고 갖은 노력을 다해 봤지만 잘 안 됐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시간이라는 변수를 생각해 낸 것이지요. 시간이 넉넉하게 주어진다면 변화할 수 있을 것이라는 가정을 세우게 됩니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거든요. 시간의 양이 문제가 아니라 실은 어떻게 변화해야 하는지 모르기 때문에 변화가 일어나지 않은 것입니다.
 변화를 원하지 않는 사람은 숙명이 있다고 믿고, 변화를 원하는 사람은 기회가 있다고 믿습니다. 여러분은 과연 어는 쪽입니까? 지금 내가 끌어안고 있는 문제가 진정으로 변화되기를 원하십니까? 여러분의 마음 깊은 곳에 낫기를 원하는 마음이 있으신가요? 그동안 아무리 노력해도 잘 안 되었은니 이번에도 아무 변화가 없을 거야. 이 문제는 내 숙명인걸...., 이렇게 체념하고 있는 건 아닙니까?  p194-202.

* 반성할 줄 모르는 조직이 성공한다. 세상 어떤 분야에서든 성공한 이들을 보면 하나같이 반성을 모르는 인간들이라네. 상황이 안 좋을 때,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 특히 제대로 되 지 않을 때 '절대로'라고 해도 좋을 만큼 반성을 하지 않아. 참 특이한 기질들이지" p204.
 "밤낮없이 반성만 하고 있는 조직을 보면 백이면 백, 능력 없는 인간들입니다. 무슨 일만 터지면 기다렸다는 듯이 회의를 소집해서 반성을 유도하는 관리자는 성공하기 힘든 부류의 사람이에요. 늘 잘못만 지적하고 자신감을 갖지 못하게 만드니까요." p204.


* 드림 센테스 Dream Sentence 만들기
 1. 소망
 2. 열 단어로 만드라.
 3. 부정적인 낱말이 들어가지 않는게 좋다.
 4. 확신의 단계에 이르게 한다.

* 중심을 새롭게 하는 네 번째 지혜
 나의 현재 상태는 중심의 수준을 정확하게 반영한다.
1. 중심은 매우 강력한 에너지 자력을 갖고 있다.
2. 현재의 내 삶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내 중심의 자력에 이끌린 모든 것들의 집합체다.
3. 뚜렷한 소망을 품고 살아가지 않을 때, 우리의 중심에는 온갖 부정적인 에너지들이 스며들게 되고 그 결과 중심은 심하게 오염되고 부패된다.
4. 변화를 원한다면 중심에 흘러드는 부정적 에너지를 차단하고, 진정으로 원하는 것들을 중심이 받아들일 수 있도록 교정해야 한다.

 * 사랑이 없으면 unless I loved others 내가 아무것도 아니요.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다. 이 때 사랑. Love는 분명히 명사다. 그런데 지금 여기서 사용된 loved는 동사 love의 과거형이잖아. 그렇다. Love, 사랑은 명사이면서 동시에 동사인 거야,:
8절 사랑은.... 예언을 하는 사람은... 어느 날 완변학 것이 나타나면...
'완벽한 것이라? 완벽한 것이 대체 뭘까? 동사로서의 사랑? 사랑이 임하면 방언도, 예언도 멈출 것이라고 했는데 ...'  p230-234.

사랑은 명사가 아닙니다.
사랑은 아무리 아름답고 깊다 할지라도
사랑이 움직이지 않는다면
그것은 이미 생명이 떠난 것입니다
사랑은 행동입니다.
살아 움직이는 것이며
감동시키는 것이며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사랑한다고 말하면서
나를 주지 않는다면 그것은 사랑이 아닙니다.
사랑한다고 말하면서
나를 포기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사랑이 아닙니다.
사랑은 나를 온전히 주는 것입니다.
사랑은 동사입니다.
사랑하기를 주저하지 마세요.  p253-254.

"중심에 채워져야 할 것은 소망도 확신도 아니었다. 소망과 확신을 뛰어넘은 그 무엇이었다. 그게 바로 사랑이었다" p254.

"그런데 왜 '동사로서의 사랑'이 중심에 대한 '근본적인 이해'라는 거지? 근본적인 이혜의 반대 개념은 무엇인지? '피상적인 이해'" p255.

"중심을 채우는 사랑 없이 피상적으로 그저 드림 센텐스만 외우고, 소망을 이루고 문제를 해결하려는 목적으로 중심을 이용하는 것 결국 자신의 욕망을 채우려는 것에 지나지 않아. 중심은 생각보다 훨씬 더 크고 더 높고 더 넓고 더 깊은데. 알맹이는 모르고 껍데기만 아는 그야말로 피상적인 이해밖에는 못하고 있었다." p255.

"중심에 사랑이 임하면 사랑이 자기력을 뿜내어 다른 사람의 사랑을 끌어들이죠. 그렇게 사랑이 돌고 도는 거예요. 사랑이야말로 내면의 중심에 채워야 할 근본적인 것이에요." p260.

"내면의 중심은 블랙홀과도 같아서 끊임없이 뭔가를 끌어들이게 마련이다. 그런데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인생을 걸 만큼 매력적인 게 딱히 있느냔 말이지. 쳇바퀴 돌듯 돌고 도는 반복적인 일살에 갑갑함을 느끼고 지친 사람들이 저런 스타나 운동경기에 자신을 이입하며 대리 만족을 하는 거라고."p2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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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에 관한 유명한 구절이 들어 있는 고린도전서 13장이요. 우리가 잘 아는 이야기가 나오기 전에 이런 구절이 있더군요.
'Unless I loved others.' 내가 다른 사람들을 사랑하지 않는다면?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 " 여기에서의 Love는 분명히 명사인데 위의 'loved' 동사의 과거형이잖아요. 사랑은 명사이면서 동시에 동사이다.
'근본적인 이해에 도달해야 문제를 본질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
'중심에 이것이 임해야 근본적인 이해에 도달할 수 있다.'
'사람들이 대게 이것을 명사라고 착각하고 있지만 실은 동사다.'
'스스로 낮추고 희생해야만 알 수 있다.'
'일단 중심에 이것이 채워지면 다른 소망들은 하찮게 느껴진다.'

'사랑은 절대로 실패하지 않는다. 누구든지 예언을 하는 사람은 그 예언을 멈추게 될 것이다.'

중국에서 자석을 '사랑의 돌'이라고 불렀다. 부모가 자녀를 품에 안고 있는 모습, 자석의 모습이다. 근본적인 이해의 단계라고 한 말이. 우리가 중심에 채워야 할 것은, 진정으로 끌어들여야 할 것은 바로 사랑이다.
 중심에 사랑이 임하면 사랑이 자기력을 내뿜어 다른 사람의 사랑을 끌어들이죠. 그렇게 사랑이 돌고 도는 거예요. 내면의 중심에 채워야 할 근본적인 것이다.
고린도전서 13장 13절 '그런즉 이제 믿음, 소망, 사랑이 있는데 이 셋 중에서 가장 위대한 것은 사랑입니다.'
 피상적이 소망이 아니라, 진정한 소망이라면 온갖 장애물을 뚫고서라도 중심에까지 내려가 닿는다.
 여기서 키워드는 '소망'이다. 그런데 그 소망이 중심을 뚫고 들어갔을 대 우리 안에 '확신'이 생긴다. 그 확신의 단계라는 게 결국은 '믿음'이라는 키워드와 통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우리가 그토록 찾아 헤맸던 답이 '사랑'이 맞는다면, 바로 이게 중심에 대한 근본적인 이해에 도달하는 길이다.
------------------------------- p277-280.

*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어쫓나니. 요한일서 4:18.
사랑과 두려움은 정반대에 서 있다. p290.

* 스스로를 낮추고 희생해서 사랑을 실천하며 살았다. 그의 중심에 사랑이 가득 차서 다른 소망들은 하찮은 것에 불과했다. 명사가 아닌 동사의 사랑을 온몸으로 실현하며 살았다." p293.

* 중심을 새롭게 하는 다섯 번째 지혜
중심에 사랑이 임할 때 우리의 삶은 가장 완전해진다.
1. 중심에 강력한 에너지를 활용해 소망을 이루는 것도 중요하지만, 소망을 이루는 것, 그 자체로 우리의 삶이 행복해지지는 않는다.
2. 인간은 끊임없이 새로운 욕망을 추구하는 존재이며 그 결과 소망의 성취만으로 만족하지 못한다.
3. 우리를 둘러싼 환경은 우리 삶을 시시때때로 불안으로 뒤덮는다.
4. 중심에 가장 완전한 것, 즉 사랑이 임할 때 비로서 우리는 진정한 평안과 행복을 누릴 수 있다.

"내면의 중심에 동사로서의 사랑이 가득 채워질 때 모든 불안과 두려움이 사라지고 지고의 행복에 도달할 수 있다" p309.

"소망을 포기하고 사는 삶보다 자신의 소망을 확실히 깨닫고 이루며 사는 삶이 백 배, 천 배 귀한 삶이죠. 하지만 중심이 소망을 이뤄 내는 능력을 맛보는 것만으로는 시시때때로 다가오는 불안과 두려움을 극복할 수 없어요. 얼마나 가졌느냐, 얼마나 이루었느냐에 따라 행복해지는 게 아니더라고요. 소망을 이루는 것만으로는 진정한 행복에 도달하기 어려워요." p310.

"중심에 사랑이 임하면 우리는 그 사랑을 섬기게 돼 있어요. 사랑이 이끄는 삶, 얼마나 매혹적인지 그건 경험해 본 사람만이 알 수 있다." p310.

"세상에는 사람을 움직이는 세 가지 힘이 있다고 해요. 첫 번째로 공포심을 심어 주면 움직인대요. 매우 효과적이지만 저차원적인 방식이죠. 그런데 대개의 사람들은 다 이 공포심 때문에 움직여요. 미래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부진런히 일하잖아요.
 두 번째는 뭔가 얻을 게 있다는 자극을 주는 거예요. 떡고물이라도 떨어져야 움직인다는 거죠. 주위를 둘러봐요. 모두들 자신에게 어떤 이득이 있을지 판단하고 움직이잖아요.
 공포와 이익, 이 두 가지 채찍과 당근으로 세상이 움직이는 거래요. 그런데 이 두 가지를 뛰어넘는 마지막 것이 있어요. 바로 사랑이죠. 자식을 향한 부모의 사랑, 자신이 믿는 가치에 대한 사랑, 존경하는 사람에 대한 사랑, 마지막 세 번째, 사랑이 바로 사람을 움직이는 세상에서 가장 부드러우면서도 강렬한 힘이에요. 중심에 공포나 이익이 아닌 사랑이 임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이거예요." p312.

"이 비행기가 안전하게 착륙하기 위해 조종사는 얼마나 피나는 훈련을 받았을까요? 착륙이라는 것, 알고 보면 비행기의 중심을 활주로의 중심에 맞추는 과정이잖아요. 이 과정이 무난히 이루어져야 비행이 안전하게 마무리되는 거예요." p312.






Monday, December 5, 2011

리더의 두 가지 선택, 피그말미온과 스티그마

리더의 두 가지 선택, 피그말미온과 스티그마

리더십이란 구성원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일입니다. 구성원들의 마음을 움직이기 위해서는 결국 리더는 구성원들의 마음을 잘 알아야 합니다. 겉으로는 단순히 행동만 드러난다고 하지만 그 행동의 이면에는 수십 가지의 생각이 잠재되어 있음을 안다면, 리더는 단순히 구성원들의 행동만 보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마음을 잘 헤아리고 그 마음을 움직일 수 있도록 만드는 법을 익혀야 합니다. 

미국 하버드 대학의 교육심리학과 교수인 하워드 가드너에 의하면 사람들은 때로 '다섯 살 난 아이의 마음'을 상대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대부분의 심리학자들도 사람의 마음은 이미 다섯 살에 거의 결정된다고 합니다. 다섯 살 난 어린아이 속에 형성된 마음이, 사람에 따라서는 성인이 된 후까지 영향을 미칩니다. 따라서 마음의 영역을 다루는 분야가 리더십이라고 한다면, 결국 진짜 리더는 다섯 살 난 아이의 마음을 헤아릴 줄 알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과연 리더는 어떻게 인간의 마음에 잠재되어 있는 '다섯 살 심리'에 호소력을 발휘할 수 있을까요?
‘다섯 살 심리’의 마음을 움직이게 만드는 대표적인 방법은 의외로 간단합니다. 바로 ‘칭찬’입니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마슬로우에 따르면 칭찬, 즉 인정과 존경의 욕구는 제법 높은 단계의 욕구수준입니다. 아이든 어른이든 할 것 없이 칭찬을 받게 되면 높은 수준의 동기를 부여받게 됩니다. 소위 ‘다섯 살 심리’에 칭찬과 격려는 제대로 에너지를 부여하는 도구인 것입니다. 

칭찬은 일의 결과에 따라 내어놓는 단순한 ‘보상물(reinforcement)’이 아닙니다물론 구성원들이 잘 하고 있는 일들에 대하여서는 당연히 칭찬을 해 주어야겠지만, 그렇지 않은 일에 대해서도 리더가 앞으로는 잘 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을 심어주고 격려를 아끼지 않는 태도는 너무나도 중요합니다. 이 부분을 설명하는 것이 바로 피그말리온과 스티그마입니다
 사람은 비록 실수를 하더라도 격려를 해 주게 되면 언젠가 그들도 조금씩 기대에 걸맞는 행동을 하게 되고, 결국 그 기대가 실제로 이루어지도록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흔히 말하는 피그말리온 효과입니다. 
 그러나 그 반대로, 구성원에게 낮은 기대감을 보임으로써 낮은 수준의 성과나 행동을 얻게 되는 경우가 있는데, 이것을 피그말리온의 반대개념으로 ‘스티그마(실패증후군) 현상’이라고 부릅니다. 
 우리 조직 내에서 사람들이 제대로 맡겨진 일들을 수행하지 못하는 경우들을 가만히 봅시다. 과연 그들이 실제로 능력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일까요? 피그말리온 효과를 생각해보면,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실제로 능력이 없어서라기보다 스티그마 현상의 파급효과로 그들에게 맡겨진 일들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할 때가 많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볼까요? 만약 구성원이 어떤 일을 기한 내에 수행하지 못하거나 기대에 못미치는 결과물을 가져왔다고 가정해 봅시다. 일반적으로 리더는 그 때 즉각적으로 그 구성원이 다른 사람들에 비하여 능력과 성과가 떨어진다고 걱정하게 됩니다. 스티그마 현상은 그 시점부터 시작됩니다. 처음에 리더는 그의 부족한 점들을 꼼꼼하게 지적해주고 그의 필요를 챙기게 됩니다. 그런데 이런 행동은 점점 감독과 통제위주의 관리방식으로 리더십의 길을 내게 됩니다. 이런 관리방식이 일정 수준 넘어가면, 구성원들의 스티그마 현상은 급속도로 골이 깊어지게 됩니다. 리더가 자신을 믿지 못하거나 능력이 없는 사람으로 여긴다는 마음에서 조바심을 가지거나 자신감을 상실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현상은 결국 그로 하여금 상사의존적 성향을 선택하게 만들거나 아니면 그 반대로 상사회피, 혹은 인정받기 위하여 무리한 목표지향으로 인한 또다른 문제들을 발생하게 되는 결과를 낳고 맙니다. 불행하게도 결과는 여기서 머무르지 않고, 이런 모습을 보고 있던 리더는 더욱 그를 판단력이 부족하고 능력이 모자라는 사람으로 더 완전히 낙인찍어버린다는 것입니다. 설사 그가 그 다음에 좋은 결과물을 만들어 내는 경우가 있다하더라도 그것은 운이 좋았을 경우로 생각할 뿐입니다. 

스티그마 현상이 조직 내에 만연할 경우, 그 대가는 만만치 않습니다. 소위 ‘낙인찍힌 구성원’은 불만족을 표시하거나 조직행동을 거부하게 되고, 리더는 이 때문에 심리적인 에너지를 소진하게 됩니다. 그리고 낙인찍히지 않은 사람들은 일의 과부하 현상으로 주저앉고 싶어지면서, 결국 팀워크는 깨어지고 조직의 역동성에 큰 타격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스티그마 현상은 소위 능력이 없는 구성원만의 문제가 아니라 그를 처음부터 이끌어주지 못했던 리더에게도 책임이 있습니다. 

피그말리온의 효과와 스티그마 현상, 이 둘은 리더의 초기선택에 달려있습니다. 남자는 여자 하기 나름이라는 어느 CF의 멘트처럼, 리더가 구성원들을 어떤 관점에서 바라보고 어떤 방식으로 이끄느냐에 따라 조직 안에 스티그마 현상이 만연할 수도, 반대로 피그말리온 효과로 생동감이 넘칠 수도 있습니다. 구성원들을 춤추는 고래가 되게 할 것인지, 실패 증후군 환자로 만들 것인지는 전적으로 리더 하기 나름입니다. 

퍼온글
리더십 네트워크 603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