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의 밥상 - 민14:5, 16:4절 <자신에게 원망하며 공격하는 백성들을 향한 모세의 문제해결 방법과 리더십>
1. 중간 관리자는 힘들고 어려운 길이다.
2. 지난 토요일에 있었던 무한도전 "무한상사 8주년"을 보았다. 직장인들의 애환을 뮤지컬로 담은 내용이었다.
3. 유재석 부장의 역할이 참으로 고독하며 고뇌의 자리이며 결코 쉽지 않는 자리임을 보았다.
4. 위로는 사장으로, 아래로는 직원들로부터 우겨쌈을 당하는 힘들고 어려운 자리였다. 늘 어떤 실적을 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서 사장의 눈치를 보면서, 직원들을 사기를 꺽기 않고 격려해야 했다. 때론 사장이나 직원들로부터 오해나 원망을 수시로 들어야 했다.
5. 결국 사장으로 통보로 한 명의 직원을 정리해고 해야 하는 상황에 이를 때에 그의 고뇌는 절정에 이르렀다.
6. 모세의 상황도 이와 유사하다. 하나님의 언약과 축복의 말씀속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도록 하면서 그들을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인도해야 할 사명을 받은 자였다.
7.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하지 못하고 하나님을 역사하심을 늘 기억하지 못하면서 자꾸 현실의 문제앞에 하나님을 잊어버릴 때, 하나님과 백성들을 이끌어가야하는 그 사이에서 모세는 그야말로 고난의 연속이었다.
8. 이러한 고난과 고뇌의 시간에서 모세는 하나님과 백성 모두에게 가장 선한 것들의 영향을 받을 수 있도록 중재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
9. 문제앞에 문제 해결을 방법과 리더로서의 리더십을 발휘하는 모습들이 민수기에서 그려지고 있다.
이는 예수님의 사역에서 볼 수 있다. 제자들에게 지상명령을 두시기까지 훈련하는 그들을 위해 섬김의 무릎을 꿇으셨다(세속식)
또한 예수님은 이 땅에서의 십자가 사역을 완수하시기 위해 대제사장들의 칼에 무릎을 꿇의셨다. 그는 충분히 "열두 군단 더 되는 천사를"(마26:53) 사용하실 수 있었다.
10. 요즘 민수기를 읽으면서 오늘 민수기 14장, 16장에서 반복되는 모세의 특이한 행동에 마음이 가게 되었다.
11. 민수기 14장 5절 "모세와 아론이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 앞에서 엎드린지라"
민수기 16장 4절 "모세가 듣고 엎드렸다가"
12. 문제해결을 위한 모세의 해결 방법은 양쪽 모두에 "엎드림"이었다.
13. 우리는 흔히 하나님 앞에 엎드림을 잘 하지만, 리더가 어떻게 팔로우들에게 엎드릴 수 있지?라고 생각하게 된다.
14. 사장에게는 엎드릴 수 있지만, '어떻게 아랫 직원들에게 엎드릴 필요가 있어'라고 생각하게 된다는 것이다.
15. 흔히 리더는 직원들에게 군림을 하고자 한다. 그런데 모세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군림이 아니라 엎드림"을 통해서 문제 해결을 하고 있다.
16. 이는 모세가 그렇다고 해서 하나님께 엎드림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앞에 엎드림 뿐 아니라 따르는 백성들에게도 엎드림을 통해 당면한 문제들을 해결해 가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17. 모세가 하나님앞에, 그리고 백성들앞에 엎드림은 탁월한 선택이면서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 오게 된다.
18. 첫째는 하나님께 전적인 신뢰를 맹세하는 것이다. 이 문제의 해결은 전적으로 하나님께 있습니다. 하나님이 이 문제의 주인이 되어주시고, 해결의 인도자가 되어주셔야만 합니다. 다른 어떤 지혜로도 이 일을 해결할 수 없습니다. 오직 문제 해결은 하나님께만 있습니다.
19. 둘째는 백성들에게 전시적인 효과를 내는데 우리는 문제 앞에 하나님께 엎드림을 통해 해결받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면서 또한 하나님께 무언의 압박을 주는 것이다. "하나님 보십시오. 이스라엘 백성들이 보게 있습니다. 하나님이 어떤 하나님이신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보여주십시오"라는 강력한 요구의 간구이다.
20. 섯째는 백성들에게 주는 메시지이다. 나는 너희들이 나의 생명을 요구한다고 할지라도 나는 너희들에게 군림이 아닌 섬기는 자로 세워졌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군림이 아닌 섬김의 리더십을 보여주었다.
21. 모세는 어떠한 어려움을 만날 때, 하나님앞에, 그리고 그 문제를 야기시킨 백성들앞에서까지 엎드리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22. 이러한 엎드림은 굴복이 아닙니다. 패배를 인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엎드림을 패배로 생각하곤 하는데 모세의 엎드림은 승리을 위해 꼭 필요한 방법이었습니다.
23. 우리도 리더로서, 또는 세상에 아직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을 이끌어가야하는 사명을 받은자로서, 가정에 아직 하나님을 믿지 않는 자들과 더불어 요단 강을 함께 건너야 하는 리더로서 부름을 받은 자들입니다.
베드로전서 3:1 "아내들아 이와 같이 자기
남편에게 순종하라 이는 혹 말씀을 순종하지 않는 자라도 말로 말미암지 않고 그 아내의 행실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게 하려 함이니"
24. 그 때 어떠한 리더십을 보여주실 것입니까? 그들과 함께 요단 강을 건너 가나안 땅으로 가는 길에 만나는 수많은 문제들 앞에 우리가 취해야 할 자세는 모세의 엎드림입니다.
25. 하나님 앞에 엎드림과 내가 이끌고가야 할 사람들앞에 엎드림입니다. 이 두 엎드림은 전혀 다른 엎드림이 아닌, 똑같은 마음과 심정과 사랑과 섬김과 간구함을 가진 엎드림입니다.
26. 혹 오늘 내가 하나님께만 잘 엎드리고, 백성들앞에 잘 엎드리지 못해 아직 여러 문제들을 해결받지 못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27. 이는 우리가 하나님께만 잘 엎드린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모세를 통해 분명하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나 뿐 아니라 백성들에게 엎드려야 된다.
28. 오늘 모세처럼 엎드립시다. 하나님께 잘 엎드릴 뿐 아니라, 내가 이끌어야 할 사람들에게도 잘 엎드립시다.
29. 엎드림은 패배가 아닌 승리입니다.
30. 오늘 하루도 엎드림을 통해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의 문제가운데 충만하게 임하기를 기도합니다.
31.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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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uesday, April 30, 2013
Thursday, April 11, 2013
하나님이 사용하시는 사람들은 누구인가? - 국제제자훈련원
http://www.purposedriven.co.kr/mailService/list.asp?m_Type=QT&LMCode=6&MMCode=2
하나님은 자신의 죄를 고백하는 사람들을 사용하신다
하나님은 자신의 죄를 고백하는 사람들을 사용하신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준비함이 되리라” (딤후 2:21)
하나님은 모든 종류의 그릇을 사용하신다. 큰 것이든 작은 것이든, 장식이 있는 것이든 없는 것이든, 매우 값진 것이든 평범한 것이든 다 사용하신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사용하시지 않는 그릇이 한 가지 있는데, 바로 더러운 그릇이다. 따라서 하나님께 쓰임 받으려면 정화를 해야 한다.
여호수아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너희는 자신을 성결하게 하라. 여호와께서 내일 너희 가운데에 기이한 일들을 행하시리라.” (수 3:5) 사실 하나님은 당신의 미래에도 위대한 일을 행하기 원하신다. 그러나 먼저는 과거를 청산해야 한다. 어제의 일을 깨끗이 씻어내야 한다.
그것은 어떻게 가능할까? 바로 고백을 통해서이다. 어거스틴은 이렇게 말했다. “악한 일에 대한 고백은 선한 일의 시작이다.” 이는 과거를 더듬어봄으로써 시작할 수 있다. 성경은 말한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요일 1:9)
나는 처음으로 ‘죄 목록’을 만들었던 때를 결코 잊지 못한다. 당시 나는 하나님께서 너무나 멀리 계신 것처럼 느껴졌다. 그분의 권능도 그분의 은혜도 느낄 수 없었다. 내 기도가 천장에 부딪쳐 돌아오는 것만 같았다. 그래서 어느 날 밤 나는 종이를 꺼내 들고 이렇게 말했다. “하나님, 저와 하나님 사이에 있는 죄를 모조리 보여주십시오. 그러면 그것을 구체적으로 적겠습니다. 저는 구체적인 죄를 저질렀고, 그것을 구체적으로 고백하겠습니다. 하나님과 함께, 지금 당장 그것을 처리하여 없애겠습니다.”
나는 쓰기 시작했다. 쓰고 또 썼다. 마치 ‘목적이 이끄는 죄인’이라는 한 권의 책을 쓰기라도 할 기세로 말이다! 마침내 죄의 목록은 9페이지쯤에서 끝났다. 새벽 두 시였다. 나는 모든 죄를 하나님께 고백하고 각각의 죄 위에 요한일서 1장 9절 말씀을 적었다.
나는 그날 밤 이후로도 여러 번 ‘죄 목록’을 만들어야 했다. 우리와 하나님 사이에 죄가 비집고 들어오기란 매우 쉽기 때문이다.
깨끗한 그릇이 되어 하나님께 드려져 사용되려면 정기적으로 죄의 목록을 만들어야 한다. 집안의 쓰레기를 한 달에 한 번만 버리면 온 집안에 퀴퀴한 냄새가 나기 시작할 것이다.
다음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보자.
- 당신이 마지막으로 ‘특정한’ 죄를 하나님께 고백한 것은 언제였는가?
- 죄의 목록을 만들 때, 당신이 기억나는 것, 또는 기억나는 것의 수에 있어 어떤 점에 놀라게 되는가?
하나님은 ‘건강 증진의 원칙’을 실천하는 사람을 사용하신다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고전 6:19-20)
‘봉헌(sanctify)’은 무언가를 하나님께서 그분의 뜻대로 사용하시도록 바치는 것을 뜻한다. 집을 들어 “하나님, 이 집을 당신께 드립니다.”라고 말할 수도 있고, 차를 들어 “하나님, 이 차를 당신께 드립니다.”라고 말할 수도 있다. 무엇이든 그것을 들어서 하나님께서 그분 뜻대로 사용하시도록 바치는 것이다.
성경은 이렇게 말한다.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고전 6:19-20)
하나님은 모든 종류의 그릇을 사용하시지만, 우리의 그릇이 순수하고 깨끗하고 건강하길 바라신다. 하나님께 쓰임 받으려면 좋은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 당신의 몸(즉, 그릇)이 하나님이 사용하시도록 봉헌될 때, 그것은 하나님이 부르신 뜻을 행하기에 가장 좋은 상태에 있어야 한다. 성경은 말한다. “주의 손이 나를 만들고 세우셨사오니 내가 깨달아 주의 계명들을 배우게 하소서” (시 119:73)
하나님은 건강 증진의 원칙을 세우셨다. 즉 식사와 운동, 그리고 수면의 균형을 맞추라고 하신다. 좋은 건강을 유지하려면 이 세 가지가 다 필요하다.
하나님은 당신을 통해 위대한 일을 행할 수 있도록, 당신이 영적으로 건강한 것처럼 육체적으로도 건강하기 바라신다.
다음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보자.
- 당신의 수면 습관은 어떠한가? 때때로 당신이 할 수 있는 가장 영적인 일은 잠자리에 드는 것이다.
- 당신은 살기 위해 먹는가 아니면 먹기 위해 사는가? 당신의 식사 습관은 영적 건강에 어떤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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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ursday, July 26, 2012
우리는 하나 '인종 화합"
사도행전 17장 26절 - 성경은 인류 전체가 '한 혈통'이라고 말한다. 하나님의 말씀은 인종간의 화해를 이루도록 에너지를 공급하는 원천이다. 특히 창조에 관한 설명은 일종 편견의 중추신경을 밑동에서부터 싹뜩 잘라 버린다. 창조주가 아담을 지으시는 장면은 인종을 이해하는 데 결정적인 단서를 제공한다.
유대인 학자들이 편집한 성경의 주요 주석서로 첫손에 꼽히는 미슈나는 이렇게 가르친다.
"하나님이 인간을 하나로 만드신 까닭은 무엇인가? 그래야 아무도 '내 아버지가 그대의 아버지보다 낫다'는 소릴 할 수 없을 것 아니겠는가!"
인종차별은 어디서 비롯되었는가? 창세기 11장에 기록된 바벨탑 이야기는 교만과 권력욕에 사로집힌 인류의 모습이 등장한다. 하나님은 그 오만함을 벌하시기 위해 "언어를 혼잡하게"하셨다. 인간의 교만과 권력욕으로 인해 인종과 국가가 여럿으로 분리되었고, 서로 갈등하고 미워하게 되었다는 창세기의 설명에는 심오한 메시지가 담겨 있다. 어느 학자는 이 대목을 "서로 다른 언어를 구사하는 수많은 인간 집단으로 쪼개지게 된 건 하나님께 불순종한 결과"라는 말로 정리했다.
그러나 창세기 12장에서 하나님은 곧바로 아브라함에게 찾아오셔서 구원을 약속하시면서 :땅에 사는 모든 민족(mispahah)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받을 것"이라고 하셨다. 여기에 쓰인'민족'이라는 말은 인간들의 집단이나 민족, 또는 인종을 의미한다. 주님은 인류라는 가족의 연대가 깨어진 걸 안타까워하시고, 인간의 죄와 교만이 빚어 낸 인종차별과 국수주의의 장벽을 허무시겠다는 뜻을 분명하게 선포하신 것이다.
복음 안에서 인종의 벽이 허물어진다.
신약성경은 이 주제에 대한 논의를 완결 짓는다. 사도행전 2장을 보면, 오순절을 맞아 한지리에 모여 있던 교회 위에 성령님이 강림하시사 또 다른 기적이 일어나는 걸 확인할 수 있다. 바벨탑에서는 같은 언어를 사용하던 이들이 서로의 뜻을 알아듣지 못했는데, 오순절에서는 제각기 다른 말을 쓰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사도들이 선포하는 복음의 메시지를 빠짐없이 이해했다. 예수님의 은혜가 인종차별의 상처를 치유하고도 남는다는 선언이기도 했다.
오순절에 복음을 선포하는 설교가 모든 언어로 전달됐다는 사실은, 어떤 문화도 '정통'을 주장할 수 없으며, 성령님 안에서 민족과 언어, 문화적인 장벽을 넘어 일치를 이룰 수 있음을 분명하게 보여 준다.
에베소서 2장 11-22절에 따르면, 그 결과 인종과 민족이 '동일한 시민'으로 참여하는 공동체가 탄생했다.
베드로전서 2장 9절은 그런 점에서 크리스천은 '새로운 종족'이라고 말한다.
교회를 통해 인종의 벽을 뛰어넘는 파트너십과 우정을 이루는 것이야말로 복음 임재와 권능의 증표라고 할 수 있다.
복음은 크리스천들을 익숙한 고향 문화를 등지고 한 번도 밝아 본 적이 없고, 그럴 일도 없는 땅으로 떠났던 아브라함처럼 만든다.
성경의 마지막 장은 "모든 민족과 언어와 백성과 민족"(계 5:9; 7:9; 11:9; 14:6)에서 나온 백성이 하나가 되는 장면을 그리고 있다.
창세기 12장의 약속부터 요한계시록의 성취에 이르기까지, 성경은 인종차별을 맹렬하게 공격한다.
"정의란 무엇인가" 팀 켈러, 두란노, pp.178-1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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