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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ursday, January 10, 2013

한 날 묵상 - 갈 6:17-18 <내가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지니고 있노라>

한 날 묵상 - 갈 6:17-18 <내가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지니고 있노라>

1. "그 청년 바보 의사, 안수현" 그는 진정 그의 몸에 예수의 흔적을 남긴 사람이다. 그 섬김의 모습을 통해 우리는 진정 그리스도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2. 우리도 우리 몸에 예수 그리스도의 흔적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떠난 자리에도 예수의 흔적이 남아한다. 우리의 걸음 걸음이 곧 그리스도의 흔적이 남는 발걸음이 되어야 한다.

3. 바울은 진정 그러한 사람이었다. 그가 걷는 곳곳모다 그리스도의 흔적들이 남겨졌다.

4. 갈라디아 교회에 주는 편지에서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흔적만이 남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5. 예수 그리스도의 흔적이란 바로 성령의 열매이다. 육체적인 일을 버리고 오직 성령의 열매만을 율법 아래 놓이지 않고 자유한 인생들에게 기대할 수 있는 것들이다.

6. 바울은 자기의 육체를 위한 심는 인생이 아니라 오직 성령을 위하여 심는 인생을 살아 왔다.

7. 그리고 이제 마지막 갈라디아 성도들에게 편지하면서 오직 나는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지니고 있노라"고 말하고 있다.

8. 사실, 바울 자신의 육체에 흔적이 있었다. 유대인이며, 율법 아래 있던 자로서 흔적이 뚜렷이 남겨져 있었다.

9. 그러나 이제 자신에게 이러한 흔적은 아무 것도 아니며, 바울 자신에게아무 유익도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결코 그러한 것들을 자랑하지 않는다고 말하고 있다.

10. 바울 자신에게 남아 있는 흔적이란 오직 예수의 흔적 뿐이었다. 그래서 그는 말한다.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외는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바울의 자랑인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뿐이다.

11. 이제는 이러한 할례나, 율법 아래 있는 문제로 더 이상 고민할 필요도 없을 뿐 아니라, 이 문제로 인하여 괴로워할 필요도 없었다.

12. 갈라디아 서신을 통해 그의 인생 뿐 아니라, 복음의 진수를 깔끔하게 정리하였기 때문이다.

13. 우리도 그렇다. 바울을 본받아, 이제 오직 우리 몸에 남아 있어야 할 흔적은 십자가, 예수의 흔적 뿐이다.

14. 결코 다른 것이 우리의 흔적이 되어서는 안된다.

15. 현시대의 다른 복음인 "번영 복음", "탐욕의 복음"이 우리의 흔적이 되어서는 안된다.

16. 세상은 "정욕과 탐심"(갈 5:24)을 좇아 자기 이기주의, 물질주의로 자신의 온 몸의 흔적을 남긴다 할지라도, 복음의 진리는 그렇지 않다.

17. 오직 하나님의 뜻 안에서,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닮아 나도 그렇게 거룩하여지는 일에 내 믿음의 목표를 두어야 한다.

18. 바울은 골로새서 1장 24절에서 이렇게 고백한다. "나는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

19. 우리안에 예수의 흔적이 남을 때, 우리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 우리 심령 가운데 차고 넘치게 될 것이다.

20. 세상의 어떠한 것을도 맛볼 수 없으며, 채울 수 없으며, 공급받을 수 없는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내 심령안에 가득하게 된다.

21. 이것뿐이면 족한 인생이 그리스도인의 인생이다. 믿음의 경주를 하는 인생이다.

22. 그 이상, 다른 어떤 것도 아닌, 오직 그리스도의 은혜만을 내 심령안에 가득 채울 수 있는 은혜가 우리 안에 차고 넘치기를 소망한다.

23. 결코 다른 복음은 없습니다. 결코 다른 것을 내 몸에 남길 수 없습니다.

24. 오직 복음, 오직 예수, 오직 십자가 뿐입니다.

25. 할렐루야. 아멘.

=====
17절 "이 후로는 누구든지 나를 괴롭게 하지 말라"

       "내가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지니고 있노라"


18절 "형제들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너희 심령에 있을지어다"

       "아멘"

참고 - 골로새서 1장 24절
"나는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



"스티그마 - 흔적"
 카엘레온은 영국 웨일즈 지방에 있는 역사적으로 뿌리가 깊은 마을입니다. 로마가 영국을 점령하였을 당시 로마 군단이 영국에 주둔하였던 세 장소 중 한 곳입니다. 로마군대의 주둔은 약 1500년 전에 끝났지만, 그들이 점령했던 흔적은 오늘날에도 볼 수 있습니다. 로마가 세계를 지배하고 웨일즈를 점령했던 당시를 상기시켜 주는 성곽, 병영, 원형경기장 등을 보기 위해 세계 곳곳에서 사람들이 관광을 옵니다이 작은 마을에 로마군대가 존재했었다는 증거들을 15세기가 지난 아직까지 매우 분명하게 볼 수 있다는 사실이 나에게는 신기하게만 느껴집니다.
 
* 흔적이란 헬라어로 스티그마입니다. 이는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 표시를 의미합니다. 예를 들면 소나 나귀 등에 자기 소유를 표시하기 위하여 불로 지졌습니다. 불로 지져서 죽을 때까지 지워지지 않는 표시가 되었습니다. 심지어는 어떤 노예에게 이마에 노예 표시를 하였다고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흔적이라는 말은 고대 사회에서 주인이 노예에 대한 자신의 소유권을 나타내기 위해 노예의 몸에 찍는 낙인을 뜻하는 말입니다.
 
나포레옹 군대는 독일군을 포로로 잡아서 마구 죽였습니다. 그러나 예외가 있었습니다. 팔뚝에 나폴레옹을 상징하는 "N"이라는 글자를 불로 지져 나폴레옹에게 충성을 맹세하면 살려 주었습니다. 바울의 영혼에는 불로 지진 흔적보다도 더 강한 흔적이 있습니다. 다메섹에서 만난 예수 그리스도가 그의 영혼에 각인이 되었습니다. 그의 흔적이 사울을 바울 되게 한 것입니다.
 
*[흔적(痕迹)] - 하원택
 
갈보리 산 위에 십자가 흔적은 아니어도
주님 주신 가슴 아린 흔적은 가졌노라
스데반 같은 순교자의 흔적은 아니어도
성령의 감동으로 무릎적신 흔적은 지녔노라
엘리야가 외친 기적의 흔적은 아니어도
작은 것에 감사의 눈물을 흘릴 수 있는 흔적은 지녔노라
 
주님이 주시는 흔적은
내가 감당 할 수 있는 흔적이고
주님이 주시는 흔적은
내가 주안에 있는 흔적이고
주님이 주시는 흔적은
내가 주님의 자녀인 확증의 징표이다.

* 티그마라는 헬라어 단어는 스티조라는 동사에서 나온 것인데 이 스티조라는 단어는 문신을 새기다혹은 날카로운 도구로 표시를 하다라는 뜻입니다. 특별히 이 스티그마는 고대 헬라 세계에서 뜨거운 쇠도장으로 몸에 새긴 문신이나 표시를 의미했습니다. 이 스티그마가 뭐냐하면 쇠로 도장을 만들어서 뜨겁게 달구어서 몸에 대면 도장이 찍히잖아요. 이런 도장이나 문신을 스키그마라고 그랬는데 이 스티그마를 어떤 사람에게 찍었느냐면 물건을 훔치거나 도망간 노예들에게 찍었습니다. 이것이 부끄러움의 수치였습니다. 수치의 표시였습니다.
 
고대 중국에서도 어떤 죄를 지으면 혹은 중대한 죄를 지으면 그 얼굴에다가 도장을 찍어버려요. 그냥 도장이 아니라 쇠로 달구어서 찍어버려요. 그 도장이 새겨져 버리죠. 찍어버리기 때문에 사람들마다 그것을 보면 저 사람이 어떤 사람인 것을 금방 아는 것이죠. 이 문신이 스티그마입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을 따르려면 성령께 민감한 삶을 살려면 반드시 이 수치의 표시를 가져야 합니다. 능욕을 져야합니다. 주님을 따라는 삶에 이것이 포함됩니다.

1세기에 사용되던 ‘흔적’(痕迹, 스티그마)이란 단어의 배경을 살펴보면 몇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당시 로마나 헬라 사회에서 노예제도가 보편적이었는데, 노예들의 이마에 주인의 이름을 화인으로 만들어서 찍은 흔적이 있었습니다. 이 경우는 그 노예가 상전의 소유물이라는 사실을 표시한 것입니다.

두 번째 배경은 로마의 군인들이 자기 사령관의 흔적을 이마에 받은 적이 있다고 합니다. 이 경우는 사령관의 명령에 절대 복종하겠다는 표시가 되겠습니다. 

또 다른 배경은 당시에 억울하게 죄인으로 몰려 박해받는 사람이 로마의 신전에 들어가서 보호를 받게 되면 신전의 흔적을 이마에 받습니다. 이 사람은 아무나 함부로 손을 대어 해치지 못하도록 보호됩니다.



Monday, January 7, 2013

한 날 묵상 - 갈 6;11-16 <할례라, 율법이 아닌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의 십자가에 외는 결코 자랑할 것이 없다>

한 날 묵상 - 갈 6;11-16 <할례나, 율법이 아닌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외는 결코 자랑할 것이 없다>

1. 우리는 특별히 더 내 세울 것이 있는 사람들을 선호하는 듯 합니다. 그래서 더욱 열심히 공부하거나 자신의 스팩을 쌓기에 노력합니다.

2. 요즘 출세하는 사람들의 면면을 보면, 일반적으로 좋은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많습니다. 공부를 많이했거나, 능력이 있거나, 아니면 누군가가 뒤에서 밀어준다거나 하는 것 말입니다.

3. 새로운 2013년은 새로운 정부가 출발합니다. 새 술은 새부대에 담아 함다고 표현들 합니다. 그래서 수 많은 자리가 새로운 사람으로 채워지게 될 것입니다.

4. 그렇다면, 누가 그 자리에 주인이 되어야 할까요? 앞서 말한 면면히 화려한 사람들만으로 채워질 수 있을 것입니다.

5. 저게 바램이 있다면 정말 필요한 사람이, 그 자리에 잘 할 수 있는 사람이 그 자리의 주인이 되었으면 합니다.

6. 모든 사람을 포용하고, 품을 수 있는 사람이면 좋겠습니다. 거기에 그 자리에 충분히 일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사람이라면 금상첨화이겠지요.

7. 그렇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정말 필요한 사람이 그 자리에 앉는 것이 아니라, 임명권자를 잘 대변해 줄 수 있는 사람을 그 자리에 앉히는 것이 더욱 현실적입니다.

8. 초대교회에 있어서 유대인들은, 자칭 할례받은 자들에게는 특권의식이 있었습니다. 여전히 태어날 때부터 구별된 자로 선택받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말입니다.

9. 그들은 늘 자신의 혈통을 자랑했습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과는 다르다 말하곤 했습니다.

10. 바울은 지금 이게 아주 크게 잘못되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갈라디아 지역의 교회에 보내는 편지가 바로 이 내용입니다.

11. 오늘 본문은 바울의 갈리다아 여러 교회에 편지를 쓰면서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핵심의 요지를 정리하여 마지막 간곡한 부탁을 하고 있습니다.

12. 우리의 진짜 자랑은 혈통이 아니다. 율법이 아니다. 할례가 아니다.

13. 우리의 진짜 자랑은 14절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는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14. 오직 십자가이다. 이는 15절 "할례나 무할례가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새로 지으심을 받는 것만이 중요하니라"

15. 할례자나 무할례자나 모두가 다 새로 지음 받은 것만이 오직 중요할 뿐이다는 것입니다.

16. 믿음의 사람들에게 자랑은 오직 복음입니다. 십자가외에는 결코 자랑할 것이 없습니다.

17. 기독교인으로 출세하려고 합니다. 믿음으로 복받으려고 합니다.

18. 믿음의 크기가 출세가 부에 있다고 착각을 합니다. 그래서 나는 출세했기에, 부자이기에, 믿음이 좋다고 자랑하려고 합ㄴ디ㅏ.

19. 그러나 이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20. 복음은 우리에게 부나 출세를 주는 것이 아니라 평강과 긍휼의 마음을 줍니다. 그래서 없어서 평안할 수 있고, 있으면 나누어주려고 합니다.

21. 16절 "무릇 이 규례를 행하는 자에게와 하나님의 이스라엘에게 평강과 긍휼이 있을지어다"

22. 이 말씀은 십자가의 복음을 믿는 자들과 약속의 민족 이스라엘에게 함께 평강과 긍휼이 있겠다는 뜻이다.

23. 이는 먼저 십자가 복음만이 구원의 유일한 길임을 선포하는 것이다.

24. 또한 구약 이스라엘에게 약속된 선택 받은 민족이라는 의미도 결국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안에서 임을 강조하고 있다.

 사도행전 1장 8절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 되리라 하시니라"

 마태복음 24장 14절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언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


25. 우리 안에 십자가외에는 결코 어떠한 다른 자랑이 없기를 바랍니다.

26. 오늘도 십자가 복음만을 사랑합시다.

참고) 예레미야 9장 23-24절
"지혜로운 자는 그의 지혜를 자랑하지 말라...."




Friday, December 21, 2012

한 날 묵상 - 갈 5:22-24 <성령과 믿음 3. 오직 성령의 열매는>


1. 그리스도인은 성령의 사람이다.

2. 성령의 인도하심이 아니면 그리스도를 구주로 결코 고백할 수 없다.

3. 또한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의 육체를 그리스도아 함께 십자가에 못 박은 사람들이다. 그래서 이제는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살아가는데,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으로 살아가는 인생이다.

4. 결국 그리스도인들은 성령의 사람이며,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는 것으로 살아가는 인생이다.

5. 성령의 사람은 성령의 열매를 맺고 살아가야 한다.

6. 사과나무는 사과를 열매 맺듯이, 포도나무는 포도 열매를 맺듯이 성령의 사람도 성령의 열매를 맺으로 살아가야 한다.

7. 성령의 열매는 이러한 것이다.

22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23 온유와 절제니

8. 성령의 사람들이 맺어야 하는 성령의 열매를 금지할 법은 결코 없다.

9. 모세를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어진 십계명을 반드시 지켜야 하나님이 보호하시는 울타리안에 참 평안을 누릴 수 있듯이 그리스도인들도 성령안에서 성령의 열매를 맺을 때 하나님의 보호 아래 거할 수 있다.


10. 성령의 열매와 더불어 믿음의 사람들은 자신의 육체와 더불어 육체의 일의 뿌리가 되는 정욕과 팀심을 못박아야 한다.

11. 정욕과 탐심은 일만 악의 뿌리이다. 일상에서 일어나는 죄아래 있는 모든 행위들은 사람들의 마음속에 깊이 자리잡아 죄의 영향아래 있는 정욕과 탐심으로부터 시작된다.

12. 우리가 성령의 사람이 되어 아홉가지 성령의 열매를 맺기를 원한다면, 반드시 정욕과 탐심을 다스릴 수 있어야 한다.

13. 결코 사람은 두 가지를 함께 가질 수 없다. 정욕과 탐심이 드러나면 성령은 사그라들게 되어 있다.

14. 반대로 성령이 살아나야만 정욕과 탐심을 버릴 수 있다.

15. 오직 정욕과 탐심을 버릴 수 있는 유일한 방법 십자가에 못박는 것 뿐이다.

16. 십자가에 예수님은 죽으심으로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 새로운 세상을 허락해주셨다. 그렇듯 우리도 죄아래 있는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달아 죽어야 한다.

17. 로마서 12장 2절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18. 성령의 열매를 맺기 위해 우리는 이제 십자가에 못박은 것은 나의 육체의 소욕이 되어야 한다. 바로 정욕과 탐심이다. 그리스도만 홀로 십자가에 두어서는 결코 안된다.

19. 오늘 나는 성령의 열매를 맺고 있는가?

20. 오늘 나는 탐심과 정욕을 십자가에 못박았는가?

21. 이일에 집중하여 세상속에 거하기를 원한다.

22. 주님의 은혜를 구한다. 할렐루야. 아멘.

 =====
22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23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24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오직 성령의 열매

1) 사랑

2) 희락

3) 화평

4) 오래참음

5) 자비

6) 양선

7) 충성

8) 온유

9) 절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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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욕

탐심

Monday, November 5, 2012

한 날 묵상 - 갈 3:5-14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았습니다. 율 법 의 행위로는 성령을 받을 수 없습니다. 오직 믿음으로 그리스도의 의에 이 르 고 성령의 행하시는 일을 받게 됩니다.>

한 날 묵상 - 갈 3:5-14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았습니다. 율법의 행위로는 성령을 받을 수 없습니다. 오직 믿음으로 그리스도의  의에 이르고 성령의 행하시는 일을 받게 됩니다.>

1.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힘은 어디서 오나요?

2. 밥심! 지심(지식)! 권심(권력)! ㅋㅋㅋㅋ 뭐 대충 이런 저런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오늘 우리가 살아갈 힘은 어디서 오는가?

3. 성령의 역사하심은 우리에게 주시는 믿음을 넘어 삶의 전영역에서 역사하십니다.

4. 우리가 성령의 역사하심에 대해서 생각할 때 믿음으로만 제한시키면 우리의 삶이 율법에 매일 수 있습니다.


5. 5절 "너희에게 성령을 주시고 너희 가운데서 능력을 행하시는 이의 일이 율법의 행위에서냐 혹은 듣고 믿음에서냐"

6. 신앙이 오래되다면 보면 잊어버리거나 익숙해지면서 초심의 은혜를 잊어버리기 쉽게 되는데, 초기의 은혜는 바로 믿음으로 성령의 은혜이다. 신앙이 오래되다면, 그리고 교회의 일들이 익숙해지다면 자신의 경험이나 능력을 의지하게 되는데, 이 때 늘 초심을 잊지 말아야 한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바로 성령의 역사와 성령의 은혜이다.


7. 성령의 역사하심은 삶의 전영역에 미칩니다.

8. 우리가운데 성령을 주시고, 믿음으로 능력을 행하게 하시는 일은 하나님의 전적인 선물입니다.

9. 우리의 그 어떠한 행위에서 오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10. 믿음에 관한 성령이 주시는 선물은 아브라함의 의가 어디서 온 것인가에 대한 예를 통해 확증하고 있습니다.

11. 아브라함의 의는 믿음에서 왔습니다.

12. 결코 아브라함의 행위로는 의로운 사람이 될 수 없었습니다.

13.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복의 근원이 된다는, 즉 8절 "모든 이방인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는 약속의 말씀은 하나님을 믿는 믿음에서 비롯됩니다.

14. 9절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는 믿음이 있는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받느니라"

15. 오직 믿음으로 성령의 능력을 받습니다.

16. 그렇다면, 죄와 은혜를 논 할 때, 성령은 어떻게 죄 속에서 역사하는가?

17.   박총님 facebook에서...
  "너는 네 과거의 죄와 부도덕한 습관에서 온 모든 결함이 너를 위한 나의 사랑스런 섭리의 한부분이라는 것과, 그 결함을 지닌 너의 지금 모습 그대로 내가 너를 사랑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단다. 
그러므로 너는 내 마음에 들기 위해 자신을 어떻게 만들어야 할지 
판단하는 습관을 극복해야 한단다.…
네가 나의 마음에 드는 길, 즉 내가 너를 사랑하기 원하는 길은, 너의 모든 결점과 결함을 지닌 채 지금 있는 그대로 있는 것이란다.
만약 내가 원한다면 순식간에 그 단점과 결점을 없애버릴 수 있단다. 그러나 그렇게 되면 내가 너를 사랑하기 원하는 방식으로 즉, 너의 지금 그대로의 모습대로 사랑할 수 없게 된단다."
_Julian of Norwich, Revelations of Divine Love.

18. 율법은 여전히 그 나름대로 필요성이 있습니다.

19. 율법의 행위가 그리스도의 의에 이르는 단초는 되지 못합니다.

20. 그러나 우리는 우리가 행하는 율법의 행위속에서 우리가 전적으로 그리스도의 선물을 구하게 하는 상한 심령으로, 심령의 가난함으로 인도합니다.

21. 그래서 율법은 율법 나름의 역할을 잘 하고 있습니다.

22. 우리안에 있는 성령의 은혜와 율법의 행위의 전쟁은 끝나지 않고 계속되어질 것입니다.

23. 물론 성령의 은혜가 승리하겠지만 말이지요.

24. 아브라함이 믿음으로 의에 이르렀다는 말씀을 통해서, 모든 민족으로 구원의 선물을 받는 것이 결코 율법의 행위가 아닌 믿음으로 뿐임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25. 오늘 이 말씀은 우리에게 또 다른 은혜와 감사를 줍니다.

26. 성령이 여전히 내 안에 나의 잘남이나 못남이나 능력이나 무능력이나 나의 상태를 떠나서 여전히 계시다는 것입니다.

27. 왜냐하면 믿음이 내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28. 오로지 나는 하나님을 찾아 나서기 때문입니다.

29. 오늘도 그 은혜, 성령의 내주하심의 은혜를 주시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30. 할렐루야. 아멘.

==
5절 "너희에게 성령을 주시고 너희 가운데서 능력을 행하시는 이의 일율법의 행위에서냐 혹은 듣고 믿음에서냐"
=> 신앙이 오래되다면 보면 잊어버리거나 익숙해지면서 초심의 은혜를 잊어버리기 쉽게 되는데, 초기의 은혜는 바로 믿음으로 성령의 은혜이다. 신앙이 오래되다면, 그리고 교회의 일들이 익숙해지다면 자신의 경험이나 능력을 의지하게 되는데, 이 때 늘 초심을 잊지 말아야 한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바로 성령의 역사와 성령의 은혜이다.

6-12절 아브라함에게 나타난 의. 믿음에 관한 이야기
 6절 아브라함의 의 -=>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믿으매"
 7절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들이 아브라함의 자손이다.
 8절 이방인 -=> 이방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로 정하실 것을 미리 성경이 미리 알고
       아브라함에 전함 복음이란? 모든 이방인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
        => 복이란 복음을 통해서 온다. 따라서 복은 구원이다.
 9절 "믿음으로 말마암은 자는 믿음이 있는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받느니라"

 10절 율법의 행위에 속한 자들 -=> 저주 아래 있다.
        "기록된 바 누구든지 율법 책에 기록된 대로 모든 일을 항상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11절 "하나님 앞에서 아무도 율법으로 말미암아(롬3:9-18) 의롭게 되지 못할 것이 분명하니"
       우리는 항상 죄가운에 있다. 율법 아래 있지 않다. 율법아래 있으면 저주를 받게 된다.
 그러나 죄아래 있기 때문에 은혜안에 있다.
  박총님 facebook에서...
  "너는 네 과거의 죄와 부도덕한 습관에서 온 모든 결함이 너를 위한 나의 사랑스런 섭리의 한부분이라는 것과, 그 결함을 지닌 너의 지금 모습 그대로 내가 너를 사랑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단다. 
그러므로 너는 내 마음에 들기 위해 자신을 어떻게 만들어야 할지 
판단하는 습관을 극복해야 한단다.…
네가 나의 마음에 드는 길, 즉 내가 너를 사랑하기 원하는 길은, 너의 모든 결점과 결함을 지닌 채 지금 있는 그대로 있는 것이란다.
만약 내가 원한다면 순식간에 그 단점과 결점을 없애버릴 수 있단다. 그러나 그렇게 되면 내가 너를 사랑하기 원하는 방식으로 즉, 너의 지금 그대로의 모습대로 사랑할 수 없게 된단다."
_Julian of Norwich, Revelations of Divine Love.

12절 그리스도께서 율법으로부터 우리를 자유하게 하셨다. 율법을 항상 행하지 않음으로 오는 우리의 저주를 그리스도께서 감당하셨다.
13절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 아래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 이 말씀의 저주가 신명기 28:15-69에 나오는 저주(질병, 가난, 줏음을 포함하는)와 동일하다고 확신하는 번영복음주의 자들이 있다.
여기서 바울의 관점은 하나님 앞에서 바로 서는 것이다.


 
14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
       "또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려 함이라"
 






참고
갈 3:8.또 하나님이 이방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로 정하실 것을 성경이 미리 알고 먼저 아브라함에게 복음을 전하되 모든 이방인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 하였느니라
-> 열방에 빛을, 마이클 고힌 pp79-84.

Wednesday, October 31, 2012

한 날 묵상 - 갈 2:11-14 <복음의 진리에서 벗어날 때 분명한 목소리를 내라. 게바도 책망받았다면 나도 예외일 수 없고, 그 어느 누구도 예외일 수 있는가? 그렇지만, 나에겐 말씀을 칼처럼 적용하라, 다른 사람에겐 관용함으로 보라.>

한 날 묵상 - 갈 2:11-14 <복음의 진리에서 벗어날 때 분명한 목소리를 내라. 게바도 책망받았다면 나도 예외일 수 없고, 그 어느 누구도 예외일 수 있는가? 그렇지만, 나에겐 말씀을 칼처럼 적용하라, 다른 사람에겐 관용함으로 보라.>

1. 갈라디아서는 은혜의 복음과 율법에 관한 이야기가 계속된다. 우리는 나 자신에게 이러한 질문을 할 수 있따. 나의 구원은 어디서 왔는가?

2. 나의 구원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이다. 하나님의 나를 사랑과 용서로 품으셨다.

3.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한 구원을 기억할 때, 나를 보지말고 하나님의 은혜를 바라보아야 한다.

4. 구원이 하나님의 선물임에도 불구하고, 율법에 갖혀 있는 사람들이 있다.

5. 아직도 삶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인정하지 못하고, 율법에 갇혀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6. 게바는 지금 안디옥에서 '복음의 진리를 따라 행하지 아니함으로' 바울의 책망을 받고 있다.

7. 바리새인의 외식함이 게바에게서 나타난 것이다.

8. 그리스도인들은 복음의 진리에서 벗어날 때를 조심해야 한다. 사실 그외에 모든 것은 관용함으로 인정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 결코 복음의 진리에 따르지 않는 단 한가지 이것은 결코 관용함이 있어서는 결코 아니된다.

9. 교회안에, 공동체안에 이러한 모습이 드러날 때 어떻게 해야 할까? 이때 잘 처리해야 합니다. 절대 관용함이 있어서는 안되면 신속정확한 결단이 필요합니다.

10. 바울이 게바를 책망하는 모습에서 우리는 몇 가지 사실을 생각해 봐야 한다.

11. 첫째는 복음의 진리를 따르지 않는 것이 보일 때, 책망해야 하며 바르게 세워야 한다. 그들의 말들과 논리가 뿌리 내리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12. 게바도 책망 받았다. 바나바도 책망받았다. 이들이 누구인가? 결국 한 사람도 예수 그리스도외에는 그 어는 것도 예외일 수 없다.

13. 둘째는, 복음의 진리를 따르지 않는 행동들은 전염성이 아주 강하다는 경각심이 필요하다. 왜냐하면 외식은 우리의 삶에 아주 친숙하기 때문이다. 전혀 이러한 것들은 낯설지 않는다. 특별한 모티브가 없더라도 쉽게 외식에 유혹된다. 그래서 더욱 절처히 해야 한다.
 영화 "연가시"에서 처음 동네 일가족 사건이 일어났을 때, 이장이 제대로 위험성과 전염성의 경각심을 가졌더라면 하는 생각이 갖는다.

14. 게방의 영성은 뛰어나다. 또한 바나바도 그에 못지 않는다. 그러나 게바의 행동은 바나바에게도 쉽게 전염되었다. 이게 바로 악함의 힘이다.

15. 셋째, 책망의 목적이 분명해야 한다. 복음이 바로 서게 함에 있다. 책망 받는 사람을 사장시키는 것이 아니다. 교회를 떠나게 함도 아니다. 복음이 바로 서는 일에까지만 책망해야 하며 그 후 바로 일으켜 세워야 한다.

16. 교회안에 이단이 침투할 수 있다. 요즘은 더욱 그렇다. 어떻게 그들과 대처해야 하는가? 우리의 질문이며 답이 바로 여기에 있다.

17. 복음의 진리에 벗어남에는 단호하며, 그들을 긍휼히 여기는 마음이 필요하다.

18. 또한 어느 위치에 있든, 공동체에서 차지하는 위치가 매우 크다 할지라도 복음의 진리를 따르지 않는 일이 보이면 단호하게 신속해야 한다.

19. 오늘도 거짓 선지자들이 활동하고 있다. 그들을 경계하며 찾아내는 것, 그리고 현명하게 대처하는 것 또한 우리가 깨어 해야 할이다.

20. 주님의 은혜만이 가득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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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절 "게바가 안디옥에 이르렀을 때 책망 받을 일이 있기로 내가 그를 대면하여 책망하였노라"
=> 할 말은 하는구나. 꼭 필요한 말은 하구나.
 왜냐하면 14절 "그들이 복음의 진리를 따라 바르게 행하지 아니함을" 보았기 때문이다.
 2장 5절 "복음의 진리가 항상 너희 가운데 있게 하려 함이라"
 --> 복음의 진리가 항상 우리의 삶 가운데 있어야 합니다.

  게바의 책망 내용
  14절 "네가 유대인으로서 이방인을 다르고 유대인답게 살지 아니하면서 어찌하여 이방인을 유대인답게 살게 하려느냐 하였노라"
 "복음의 진리" => 율법으로 아닌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는다는 기독교 신앙의 핵심이다(롬3:19-30).


12-13절 게바의 책망 받을 일 ... 이방인과 함께 먹다가 그들이 오매 그가 할례자를 두려워하여 떠나 물러가매"
=> 게바의 당시의 마음 이해하기. 율법이 무엇이기에... 율법은 유대인에게 무엇이기에 ..

  13절 "남은 유대인들도 그와 같이 외식하므로 바나바도 그들의 외식에 유혹되었느니라"




Saturday, April 7, 2012

[고난 주간 특새] 눅 23:34-37 - 십자가 밑의 인생들


고난주간 특별새벽기도회 여섯째 날 "십자가 밑의 인생들" 20120407

십자가, 무한한 하나님의 선물이다.

그러나 황금상자로 포장되어 있지 않다.

강준민 목사님 말씀처럼 "감추어져 있는 보화"이다.

십자가밑에서
우리는 서서 구경하는 백성이 되지 말자.
우리는 비웃는 관원도 되지 말자.

우리는 십자가에서 몸은 멀리 떨어져 있을지라도 마음은 십자가를 품는 자가 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