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turday, December 31, 2011

청.매.묵. 에스겔 4:1-17 <믿음의 사람이 분명히 보여줘야 할 믿음의 행동이 있다. 나의 행동 하나 하나에 하나님의 뜻이 드러나도록 하자!>

청.매.묵. 에스겔 4:1-17 <믿음의 사람이 분명히 보여줘야 할 믿음의 행동이 있다. 나의 행동 하나 하나에 하나님의 뜻이 드러나도록 하자!>

하나님이 말씀하신 죄에 대한 심판에 대해 징조가 있었습니다. 
에스겔의 포퍼먼스가 바로 이스라엘 백성의 죄에 대한 심판의 징조입니다.

이 시대에 믿음의 사람들도 재림의 때가 있음을 세상에 보여주어야 합니다.
떤 징조로 우리가 하나님의 심판을 세상 사람들에게 보여주어야 할까요?
 깨어 있는 슬기로운 자가 되어야 합니다. 마 25:1-13
 언제 올지 모르는 신랑을 성실하게 기다리지 못하고, 허랑 방탕한 세월을 지나면서, 기름이 있을 때에 신랑에 오기를 바라는 요행을 바라는 처녀들이 되지 맙시다. 


 이 시대의 우리가 세상에 보여주어야 할 징조는 "깨어 있으라"는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들만을 쫓아 향방 없이 살아가지 말고, 세상사 이면에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섭리와 하나님의 마음을 알고 깨달아야 합니다.
 2012년 어떠한 일들이 우리 가운데 일어날지 모릅니다. 그러나 단 한가지 분명한 사실은
우리가 깨어 있으면 이러한 일들은 우리에게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우리만 문제가 되지 않으면 안된다는 개인적인 신앙을 버려야 합니다.
세상에 아직 그리스도를 알지 못해 향방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이 허다합니다.
 그들에게 우리는 "깨어 있어" 믿음을 보임을 통해서 다시 오실 주님의 재림의 때를 예언합시다.

빌리 그래함 목사님의 이야기입니다. 
한번은 집회를 인도하러 갔는데, 교회의 위치를 몰라서 그 마을에 사는 사람에게 교회의 위치를 물었답니다. 그리고는 그 사람을 향해 오늘 그 교회에 나오는 천국에 가는 길을 알려주겠다고 말입니다. 
그랬더니 그 사람이 하는 말, “교회 가는 길도 모르는 사람이 무슨 천국 가는 길을 가르쳐 주느냐고요.


 믿음의 사람은 행동으로 자신의 믿음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말이 아니라 행동입니다.

2012년 새 해가 시작되된다는 의미는 예수님이 재림의 때가 더 가까이 왔음을 의미합니다.
기억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반드시 심판주로 다시 이 땅에 오십니다.


 에스겔의 포퍼먼스
1절 "너 사람아, 토판 하나 가져와 ... 그 위에 예루살렘 지도를 새겨라"
  3절 "너와 성 사이에 철 성벽처럼 세워 두어라"
         "이것이 이스라엘 민족에게 보여주는 징조다"
4절 "너는 왼쪽으로 누워라"
       "이것은 네가 이스라엘의 죄를 네 몸에 지는 것이다"
       "네가 그렇게 누워 있는 날수만큼 네가 그들의 죄를 떠맡아야 할 것이다"
5절 "삼백구십일 동안 너는 이스라엘 민족의 죄를 떠맡아야 한다"
6절 "오른쪽으로 누워서 유다 민족의 죄를 네 몸에 져야 할 것이다"
       "하루를 한 해로 쳐서 내가 너에게 사십 일을 정해 준다"

7절 "너는 또 포위당한 예루살렘 쪽으로 고개를 돌려 보아라"
       "예루살렘을 향해 심판을 예언하여라"
8절 "내가 너를 밧줄로 묶어서, 네가 묶여 있는 동안에 몸을 움직이지 못하게 할 것이다"
  9절 "네가 옆으로 누워 있는 삼백구십일 동안, 그것을 먹어라"
 12절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인분으로 불을 지펴 빵을 구워라"
 13절 "여호와께서 도 내게 말씀하셨다. "내가 이스라엘을 다른 나라로 쫓아 낼 것이며, 그들이 그 곳에서 이와 같은 부정한 음식을 먹게 될 것이다""
   14절 "나는 이제껏 한 번도 부정한 음식을 먹은 적이 없습니다"
   15절 "인분 대신에 쇠똥을 사용해 빵을 구워라"
            "사람들이 식량과 물을 배급 받으면서 걱정과 두려움에 떨 것이다"
   17절 "식량과 물이 부족하여 사람들이 뼈만 남아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는 것조차 무섭게 될 것이다. 이것이 모두 그들의 죄 때문이다"


목회자도 설교에 말씀을 선포하고, 성도를 깨우기 위 몸으로 설교 해야 할 때가 있다. 설교 선포 시간에 몸짓 언어라? 퍼포먼스라? 재미와 긴장과 부담감이....

Friday, December 30, 2011

한 날 묵상 - 창 32:13-32 <2012년 영적 균형을 잃지 마시기 바랍니다. 찾아오시는 하나님앞에 자신의 무력함을 인정하고 모든 것을 내어 맡기는 믿음, 결코 포기하지 않는 겨루어 이기는 믿음, 이 둘 사리의 균형을 잃지 않는 한 해가 되었으면 합니다>

  Happy New Year "2012"
벧엘과 브니엘의 차이에서 믿음의 참 맛을 느낄 수 있다.
벧엘은 일방적으로 찾아와 만나주시고 위로해주시는 하나님을 볼 수 있다.
브니엘에서 하나님과 사람들과 겨루이 이기어 축복을 쟁취하는 야곱의 보습을 보게 된다.
이 둘 사이의 균형이 삶에서 필요하다. 균형잡힌 영성, 균형잡힌 기도가 하나님을 만나 축복을 누리는 비결이 된다.


13절 "야곱이 거기서 밤을 지내고" "에서를 위하여 예물을 택하니"
 13-19절
    대열  ==>
    예물 ->  첫 떼 -> 둘째 떼 -> 셋째 떼

20절 "주의 종 야곱이 우리 뒤에 있다 하라 하니 이는 야곱이 말하기를 내가 내 앞에 보내는 예물로 형의 감정을 푼 후에 대면하면 형이 혹시나 나를 받아 주리라 함이었더라"

터닝포인트 -
21절 "그 예물을 그에게 앞서 보내고 그는 무리 가운데서 밤을 지내다가"
 22절 "밤에 일어나.. 얍복 나루를 건널새"
23절 "그들을 인도하여 시내를 건너가게 하며 그의 소유도 건너가게 하고"
24절 "야곱은 홀로 남았더니 어떤 사람이 날이 새도록 야곱과 씨름하다가"

 비교 => 창28:10-22 <피할 곳을 찾아 나서는 야곱을 찾아오시는 하나님>
                창 28:11절 "한 곳에 이르러는 해가 진지라"
                                     http://saltandlight21.blogspot.com/2011/12/2810-15.html
      28장 스스로 찾아와 일으켜 세워주신 여호와. 위로하여 주시고 회복시켜 주신 하나님.
      32장 적극적 쟁취. 절대로 포기하지 않는 야곱. 스스로의 길을 개척하라. 
              여호와를 적극적으로 자신의 삶에 끌여드리라. 
      25-32절
      25절 "자기가 이기지 못함을 보고"
      26절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 하지 아니하겠나이다"
          28절 새 이름 "네 이름을 다시는 ... 이스라일이라 부를 것이니 이는 네가 하나님과 및 사람들과 겨루어 이겼음이니라"
      30절 브니엘 "그가 이르기를 내가 하나님과 대면하여 보았느나 내 생명이 보전되었다 함이더라"
        -> "일상기도" 폴 밀러. "기도에 균형을 잡으라"
야고보는 구함과 관련되 두 가지의 위험을 언급함으로 예수님의 엄청난 약속에 균형을 잡아 준다.
다음 그림의 왼쪽에 해당되는 첫 번째 위험은 구하지 않음이다. 야고보는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하기 때문이요라고 했다. 두 번째 위험은 이기적으로 구함이다.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쓸려고 잘못 구하기 때문이라”(4:2-3). 우리는 둘 중 어느 쪽 벼랑으로든 떨어질 수 있다.
 
 예수님의 겟세마네 기도는 완벽한 균형을 이룬 예다. 14:36. ‘구하지 않음의 벼랑을 피하면서 이기적으로 구함의 벼랑도 피하신다. 예수님은 자신의 감정에 솔직하시지만, 그렇다고 감정에 지배당하거나 감정으로 하나님을 조종하려 하지 않으신다. 아버지와 소통할 수 있는 능력을 자신의 뜻을 관철시키는 수단으로 이용하지 않으신다.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도 맹렬히 타는 풀무 앞에서 똑같은 상황에 처했다. 그들도 예수님과 똑같이 균형잡힌 반응을 보였다. 3:17. 하나님이 자신들을 구해 주실 것이라고 담대히 선포함으로써 구하지 않음의 벼랑을 피한 것이다. 그러면서 바로 이어 그렇게 하지 아니하실지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3:18 할 것이라고 말한다. 모순처럼 보이지만, 이들은 지금 담대히 구하면서 또한 완전히 순복하고 있다


Thursday, December 29, 2011

청.매.묵. 에스겔 3:16-27 <죽어가는 영혼들을 향한, 소망 없는 세상을 향한 파수꾼으로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청.매.묵. 에스겔 3:16-27 <죽어가는 영혼들을 향한, 소망 없는 세상을 향한 파수꾼으로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이 시대의 소망의 파수꾼이 됩시다. 소망 없는 세상에서, 죽어가는 영혼들을 향해 하나님은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하나님이 부르신 부르심의 자리에서 자신의 역할을 다할 때 52일만에(느헤미야 7:15) 성벽의 역사가 끝낸 느헤미야의 백성들처럼 하나님이 우리신 놀라운 역사를 세상은 보게 되며 알게 될 것입니다. 부름받은 자신의 자리에서 파수꾼의 사명을 온전히 감당하는 2012년 한 해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파수꾼과 느헤미야 성벽세우기가 함께 생각납니다.
각자 맡은 곳에서 52일만에 성벽을 완성시킨 사건이죠!
자신이 맡은 곳에서 자신의 일을 감당할 때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 성령이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17절 "내가 너를 이스라엘 민족의 파수꾼으로 세웠다:
나는 파수꾼이다.
         "내가 하는 말을 잘 듣고 그들에게 경고하여라"
주님이 하시는 말을 잘 들어라.

18절 "악한 사람을 향해 '너는 반드시 죽을 것이다'라고 말하며.. 경고해야 한다"
         "만일 그렇지 않으면, 그 악한 사람은 자기의 죄 때문에 죽겠지만, 나는 그 사람이 죽는 것에 대한 책임을 너에게 물을 것이다"
책임있는 삶을 살라.
19절 "네가 악한 사람에게 경고했는데됴.... 돌아서지 않는다면 ... 너는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을 것이다"


20절 "또 어떤 착한 사람이 올바른 길에서 떠나 죄를 지으면, ... 네가 그를 경고하지 않으면 그는 자기 죄 때문에 죽게 되고, 그가 한 올바른 일들은 아무 소용이 없을 것이다. 나는 그 사람이 죽은 책임을 너에게 물을 것이다"
21절 "네가 그 착한 사람에게 죄를 짓지 말라고 경고하여 그가 죄를 짓지 않는다면, 그는 반드시 살 것이다. 그리고 너도 네 목숨을 건질 것이다"
22절 "거기서 여호와의 손이 나를 강하게 잡으시면서 말씀하셨다" "일어나 들로 나가거라"
23절 "여호와의 영광이 거기 있었는데, 그것은 내가 그발 강가에서 본 것과 같았다"
         "나는 땅에 엎드렸다"
24절 "주님의 영이 내게 와, 나를 일으켜 세우시고 내게 말씀하셨다"

25절 "바깥에 나가 사람들을 만날 수 없게 될 것이다"
26절 "네 혀가 입천장에 붙어 벙어리가 될 것이니"
         "너는 더 이상 사람들을 꾸짖지 못할 것이다"
27절 "그러나 내가 너에게 말할 때에는 네 입을 열어주겠다"
         "들은 사람도 있고 듣지 않을 사람도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내게 반항하는 백성이기 때문이다"

한 날 찬양 - 저 죽어가는 영혼을 위해 새 날을 주소서

Wednesday, December 28, 2011

한 날 묵상 - 창 32:1-12 <두렵고 떨림을 이길 수 있어야 화해를 이룰 수 있습니다. 화해를 위한 인간적인 방법들로는 부족합니다. 정말 화해하고 싶다면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서 감당하신 예수님의 십자가의 사역을 기억하자>

 한 날 묵상 - 창 32:1-12 <두렵고 떨림을 이길 수 있어야 화해를 이룰 수 있습니다. 화해를 위한 인간적인 방법들로는 부족합니다. 정말 화해하고 싶다면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서 감당하신 예수님의 십자가의 사역을 기억하자>

 예수님이 감당하시 전날 밤에 두렵고 떨림을 화해를 위해 나아가야 할 길에서 만날 수 밖에 없는 순간이다. 화해는 인간편에서 결코 쉬운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막힘 담을 허물기 위해서는  화해는 분명히 필요하다. 화목케 하는 사역은 그리스도인의 사명이다. 
 2011년 지나기 전에 화해해야 할 사람들이 있다면, 두렵고 떨림이 있지만, 자존심 내려 놓고 화해의 장으로 나아가는 시간들이 되었으면 합니다.

 화해를 위한 길은 쉬운 길이 아니다. 두렵고 떨림이 있다. 순수한 마음을 가지고 나아간들 두려움이 물러가는 것은 결코 아니다.
화해를 위한 길에서 이러한 두려움을 이겨야 한다. 결코 피해서는 완전한 화해가 이루어지지 않는다.
야곱은 여러 수를 써서 화해를 시도하지만 그러한 방법으로 뒤끝이 없는 화해가 되어다 말할 수 없다.

 예수님이 보여주신 하나님과 인간과의 관계회복을 위한 화해의 길을 생각해보자.
예수님이 보여주신 화해의 길 또한 결코 피할 수 없는 두려움이 있었다. 자기 가야 하는 잔을 피하게 해 달라고 기도하셨다.
그렇지만, 자기 뜻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안에서 화해의 방법의 길을 가셨다. 피하고는 결코 완성되지 않기 때문이다.

 일상에서 화해의 방법도 다르지 않다.
동기가 순수해야 한다.
두렵고 떨림의 단계를 극복해야 한다.
자신의 방법이 아니라, 하나님의 방법으로 화해해야 한다.
중재자 되시는 하나님께 기도함으로 도우심을 구해야 한다.
기도할 때 약속의 말씀을 붙잡고 기도하라. 야곱은 하나님이 가라 명하신 말씀을 붙잡고 기도했다. 우리가 화해할 때 자신이 결코 잘못하였다면, 당연히 고난을 감수하고 감당한 화해의 손을 내밀어야 한다. 때론 억울한 상황에서 먼저 화해할 때도 있다. 그때에도 당연히 먼저 손을 내밀어야 한다.

1절 "야곱이 길을 가는데 하나님의 사자들이 그를 만난지라"
 => 삶의 굽이굽이에서 하나님을 만나다.
    2절 하나님의 군대. 마하나임.

3절 "자기보다 앞서 사자들을 보내며"
 => 마음의 전부를 내어드리지 못하다.

5절 "내게 소와 나귀와 양 떼와 노비가 있으므로 ... 내 주께 알리고 내 주께 은혜 받기를 원하나이다 하라"
 => 조건적 화해. 물질을 통해서 마음을 얻고자 함. 
 조건이 붙은 화해는 온전한 화해가 되지 못하다. 조건은 변경될 수 있으며, 조건은 환상이기 때문이다.

6절 "사자들이 야곱에게 돌아와 이르되 ... 우리가 주인의 형 에서에게 이른즉 그가 사백 명을 거느리고 주인을 만나려고 오더이다"

7절 "야곱이 심히 두렵고 답답하여 ... (자기 소유를) 두 떼로 나누고

야곱의 기도
9절 "주께서 전에 내게 명하시기를 네 고향, 네 족속에게로 돌아가라 내가 네게 은혜를 베풀리라 하셨나이다"
10절 "나는 주께서 주의 종에게 베푸신 모든 은총과 모든 진실하심을 조금도 감당할 수 없사오나"
11절 "내가 주께 간구하오니 ... 나를 건져내시옵소서 .. 내가 그를 두려워함은 ... 겁이 나기 때문이니이다"
12절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반드시 네게 은혜를 베풀어"
 => 긴급대화. 긴급기도.
      약속의 말씀을 붙잡고 기도하라.
      찬송가 455장 주 안에 있는 나에게

Tuesday, December 27, 2011

청.매.묵. 에스겔 3:1-15 <말씀을 먹어라! 마음에 간직하라! 먹은 말씀을 나누어라! 나누되 은혜가 되게 나우어라! 주님의 영이 이끄심이 있도록 하라! >

청.매.묵. 에스겔 3:1-15 <말씀을 먹어라! 마음에 간직하라! 먹은 말씀을 나누어라! 나누되 은혜가 되게 나우어라! 주님의 영이 이끄심이 있도록 하라! >

 오늘 말씀은 특별히 선교사님을 기억하게 합니다. 그들의 힘들고 어려운 여건과 환경을 볼 수 있습니다. 그들 뿐 아니라 우리도 선교적 삶을 살아야 함을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은 특별한 한 사람이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말씀을 받아 먹고, 나누되 은혜가 되게 하도록 우리의 삶에 은혜를 주십니다.

 먹으십시오.
 먹되 혼자 먹는 것으로 그치지 마십시오.
 먹되 혼자 먹는 것이 아니라 전하며 나누십시오.
 먹되 혼자 먹는 것이 아니라 전하며 나누되 은혜가 되도록 나누십시오.
 이 일은 홀로 하는 일이 아닙니다. 주님의 영이 이끌어 붙잡고 이끄십니다.
 말씀을 나누되 주님이 영이 이끌리고 가시는 곳으로 자신의 힘을 맡기십시오.
 주님의 영이 계신 그곳에 여호와의 영광이 높이 들립니다. 한 날도 나를 그곳으로 이끌어주소서!

1절 "사람아, 네 앞에 있는 것을 먹으라. 이 두루마를 먹고, 가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전하여라"

2절 "내가 입을 벌렸더니, 주님께서 두루마리를 내 입에 넣어주셨다"
3절 "이 두루마리를 먹어 네 배를 채워라"
       "먹었더니 내 입에 꿀같이 달았다"
4절 "그들에게 전하여라
5절 "이해하기 어려운 말을 하는 백성에게 보내는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에게 보내는 것이다"

6절 "내가 만일 이해하기 어려운 말을 하는 민족들에게 보냈더라면, 그들은 네 말을 들었을 것이다"
 => 가까운 사람에게 가십시요???
   나에게 어려운 말을 하는 사람들에게 갈 때 에스겔의 말을 그들은 들을 것이라고 했다. 이 부분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분명히 들을 사람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왜 이스라엘 백성에게 가라 하실까?  

7절 "이스라엘 백성은 네 말을 들으려 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그들 모두 고집이 세고 마음이 닫혀 있기 때문이다"
8절 "나도 너를 그들처럼 억세고 굳세게 하며"
9절 "더 단단하게 할 것이다"
10절 "내가 네게 하는 말을 잘 듣고 마음에 간직하여라"
12절 "주님의 영이 나를 들어 올리셨다"
         "성소에서 여호와의 영광을 찬양하라!"
14절 "주님의 영이 나를 들어 올려 데리고 가실 때 괴롭고 불안했으나, 여호와의 강력한 손이 나를 잡고 계셨다"

* 사명으로 나아가는 길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나누며 전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나누며 전하되 은혜가 되게 하여야 합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말씀을 넣어주십니다. 나를 굳세고 하여 주시고, 나를 더욱 단단하게 하십니다. 나를 들어 올리셔 사용하십니다. 강력한 손으로 힘들어 하는 나를 붙잡아 주십니다.
괴롭고 힘들더라고 주님의 영이 나를 이끌어 갑니다.

말씀을 먹는 것에 그치면 안됩니다.
말씀을 나눌 때 은혜 받았다 말합니다.
말씀을 먹었으면 나누자! 가까운 가족부터 매일 나누자. 아내랑 먼저 나누자!
말씀의 은혜가 깊어지지라!

Monday, December 26, 2011

일상기도 - 시 132:2 <기도가 나를 고요하고 평온함으로€

"실로 내가 내 영혼으로 고요하고 평온하게 하기를 젖 뗀 아이가 그의 어머니 품에 있음 같게 하였나니" 일상기도 p56. 당신의 마음이 아무리 피폐하고 아무리 은혜를 달라고 부르짖어야 한다 해도 부끄러워하지 말라. 그냥 기도를 시작하라.

Sunday, December 25, 2011

한 날 묵상 - 창 31:36-55 <나와 너 사이는 하나님이 계십니다>

한 날 묵상 - 창 31:36-55 <나와 너 사이는 하나님이 계십니다>

우리 둘 사이에 누가 계시는가?
사람과 사람사이에 누가 계시는가?
결혼 서약하는 남녀 가운데 누가 계시는가?
부부 사이에 누가 계시는가? 부모와 자녀 사이에 누가 계시는가?
어떤 종류의 약속이든 당사자 사이에 누가 계시는가?
나와 동료 사이에 누가계시는가?

사이 사이에 누가 계시는가?

하나님이 계십니다.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에 상대방과의 약속을 넘어 하나님과의 약속이 됩니다. 결혼 서약도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에 상대방과의 서약을 넘어 하나님과의 서약이 됩니다. 직장에서도, 만남에서도, 약속에서도, 어떠한 종류의 계약에서도 그 사이에 하나님이 계십니다. 크리스챤은 누구를 만나 무엇을 하더라도 그 사이에 하나님이 계심을 기억해야 합니다.

2011년 12월 24일 아내가 써준 성탄카드에
"당신과 나 사이에 주님이 계심을 감사드립니다"

40절 "낮에는 더위와 밤에는 추위를 무릅쓰고 눈 붙일 겨를도 없이 지냈나이다"

41절 "내가 외삼촌 집에 있는 이 십년 동안 ... 봉사하였거니와 외삼촌께서 내 품삯을 열 번이나 바꾸셨으며"
42절 "우리 아버지의 하나님, 아브라함의 하나님 곧 이삭의 경외하는 이가 나와 함께 계시지 아니하셨더라면"
=> 직장에서의 일이 결코 계약관계의 일이 아니다. 상사와 나와의 관계만도 아니다. 일을 하고 돈을 받는 계약만의 것이 아니다. 라반이 야곱을 속였을지라도 야곱은 하나님이 중심에 계심을 알고 열심히 일을 했다. 하나님이 돌보아주실 것을 알고 하나님을 바라고 일하였다.
 일과 봉사는 그렇게 하는 것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하나님이 계심을 바라보고 일하는 것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하나님이 주관자로 계심을 바라보고 일하는 것이다.

야곱과 라반의 언약
44절 "이제 오라 나와 네가 언약을 맺고 그것으로 너와 나 사이에 증거를 삼을 것이니라"
49절 "미스바라 하였으니 이는 그의 말에 우리가 서로 떠나 있을 때에 여호와께서 여호와께서 나와 너 사이를 살피시옵소서"
50절 "하나님이 나와 너 사이에 증인이 되시느니리라"
53절 "아브라함의 하나님, 나홀의 하나님, 그들의 조상의 하나님은 우리 사이에 판단하옵소서"


기도는 관계속으로 들어가는 행동이다.  일상기도가 가능한 이유이다.   삼상 7:12 에벤에셀 "미스바와 센 사이에 세워" 여호와께서 여기까지 우리를 도우셨다.


20120128설교문.
설교본문 : 창세기 3136-55
설교제목 : 나와 너 사이에 하나님이 계십니다.
 
36 야곱이 노하여 라반을 책망할쌔 야곱이 라반에게 대척하여 가로되 나의 허물이 무엇이니이까 무슨 죄가 있기에 외삼촌께서 나를 불같이 급히 쫓나이까
37 외삼촌께서 내 물건을 다 뒤져 보셨으니 외삼촌의 가장집물 중에 무엇을 찾았나이까 여기 나의 형제와 외삼촌의 형제 앞에 그것을 두고 우리 두 사이에 판단하게 하소서
38 내가 이 이십년에 외삼촌과 함께하였거니와 외삼촌의 암양들이나 암염소들이 낙태하지 아니하였고 또 외삼촌의 양떼의 수양을 내가 먹지 아니하였으며
39 물려 찢긴 것은 내가 외삼촌에게로 가져 가지 아니하고 스스로 그것을 보충하였으며 낮에 도적을 맞았든지 밤에 도적을 맞았든지 내가 외삼촌에게 물어 내었으며
40 내가 이와 같이 낮에는 더위를 무릅쓰고 밤에는 추위를 당하며 눈붙일 겨를도 없이 지내었나이다
41 내가 외삼촌의 집에 거한 이 이십년에 외삼촌의 두 딸을 위하여 십 사년, 외삼촌의 양떼를 위하여 육년을 외삼촌을 봉사하였거니와 외삼촌께서 내 품값을 열번이나 변역하셨으니
42 우리 아버지의 하나님, 아브라함의 하나님 곧 이삭의 경외하는 이가 나와 함께 계시지 아니하셨더면 외삼촌께서 이제 나를 공수로 돌려 보내셨으리이다 마는 하나님이 나의 고난과 내 손의 수고를 감찰하시고 어제밤에 외삼촌을 책망하셨나이다
43 라반이 야곱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딸들은 내 딸이요 자식들은 내 자식이요 양떼는 나의 양떼요 네가 보는 것은 다 내 것이라 내가 오늘날 내 딸들과 그 낳은 자식들에게 어찌할 수 있으랴
44 이제 오라 너와 내가 언약을 세워 그것으로 너와 나 사이에 증거를 삼을 것이니라
45 이에 야곱이 돌을 가져 기둥으로 세우고
46 또 그 형제들에게 돌을 모으라 하니 그들이 돌을 취하여 무더기를 이루매 무리가 거기 무더기 곁에서 먹고
47 라반은 그것을 여갈사하두다라 칭하였고 야곱은 그것을 갈르엣이라 칭하였으니
48 라반의 말에 오늘날 이 무더기가 너와 나 사이에 증거가 된다 하였으므로 그 이름을 갈르엣이라 칭하였으며
49 또 미스바라 하였으니 이는 그의 말에 우리 피차 떠나 있을 때에 여호와께서 너와 나 사이에 감찰하옵소서 함이라
50 네가 내 딸을 박대하거나 내 딸들 외에 다른 아내들을 취하면 사람은 우리와 함께할 자가 없어도 보라 하나님이 너와 나 사이에 증거하시느니라 하였더라
51 라반이 또 야곱에게 이르되 내가 너와 나 사이에 둔 이 무더기를 보라 또 이 기둥을 보라
52 이 무더기가 증거가 되고 이 기둥이 증거가 되나니 내가 이 무더기를 넘어 네게로 가서 해하지 않을 것이요 네가 이 무더기, 이 기둥을 넘어 내게로 와서 해하지 않을 것이라
53 아브라함의 하나님, 나홀의 하나님, 그들의 조상의 하나님은 우리 사이에 판단하옵소서 하매 야곱이 그 아비 이삭의 경외하는 이를 가리켜 맹세하고
54 야곱이 또 산에서 제사를 드리고 형제들을 불러 떡을 먹이니 그들이 떡을 먹고 산에서 경야하고
55 라반이 아침에 일찌기 일어나 손자들과 딸들에게 입맞추며 그들에게 축복하고 떠나 고향으로 돌아갔더라
야곱 이야기는 창세기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합니다.
25장 야곱이 태어난 이야기부터 49장에서 야곱이 죽을 때까지 50장의 절반이 25장에 걸쳐서 야곱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의 인생은 파란만장했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형의 발뒷굼치를 잡고 태어났고, 형과 아비를 속이는 인생을 살다가 삼촌 라반의 집에서 죽도록 일만하였습니다.
이러한 야곱의 인생에서 중요한 사실이 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하나님이 결코 야곱을 떠나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무엇 때문일까요?
야곱의 약속의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2523절에 보면,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되 두 국민이 네 태중에 있구나 두 민족이 네 복중에서부터 나누이리라 이 족속이 저 족속보다 강하겠고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
하나님이 야곱의 아비 이삭에게 주신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우리에게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우리도 믿음의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영원한 생명을 주신다고 약속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그렇기에 우리의 인생이 때로는 믿음의 눈으로 보기에 야곱처럼 모자람이 있어도 하나님을 결코 우리를 떠나지 않음을 기억하기 원합니다.
하나님은 늘 우리의 삶에 개입하셔서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하나님이 야곱과 함께 하셨다고 야곱이 믿음의 아무런 믿음의 반응을 결코 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없어 보이던 야곱에게 결정적 믿음의 터닝 포인트가 찾아오는데, 벧엘에서 하나님을 만난 사건입니다.
 
그는 과연 하나님이 여기 계시거늘이란 고백을 통해서 하나님이 늘 자기와 함께 하고 있음을 깨닫고 이 후에 그이 고백처럼 하나님과 늘 동행하는 삶을 살게 됩니다.
 
오늘 본문도 그의 고백이 어떻게 삶에서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살필 수 있습니다.
벧엘의 사건 이후에 늘 자신이 누구와 있던지 자신과 그 사이에 하나님이 계심을 고백합니다.
 
아내를 맞이할 때에도
라반의 집에서 열심히 일을 할 때에도,
그리고 오늘 본문에서 본 것처럼 이제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에서도
 
나와 다른 사람사이에 하나님이 계심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본문은 라반이 야곱과 언약을 맺는 모습입니다.
우리 44, 48, 49, 50절 말씀을 같이 읽도록 하겠습니다.
 
44 이제 오라 너와 내가 언약을 세워 그것으로 너와 나 사이에 증거를 삼을 것이니라
48 라반의 말에 오늘날 이 무더기가 너와 나 사이에 증거가 된다 하였으므로 그 이름을 갈르엣이라 칭하였으며
49 또 미스바라 하였으니 이는 그의 말에 우리 피차 떠나 있을 때에 여호와께서 너와 나 사이에 감찰하옵소서 함이라
50 네가 내 딸을 박대하거나 내 딸들 외에 다른 아내들을 취하면 사람은 우리와 함께할 자가 없어도 보라 하나님이 너와 나 사이에 증거하시느니라 하였더라
 
계속 반복되는 말씀이 있습니다.
너와 나 사이에라는 말씀입니다. “너와 나 사이에누가 계시다고 고백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이십니다.
그렇습니다.
모든 역사에 등장하는 사람들, 그리고 지금 오늘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이나, 비그리스도인들이나, 앞으로 태어날 사람들까지도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바로 하나님이 계십니다.
 
지금 이곳에서도, 나와 여러분 사이에 하나님이 계십니다. 아멘.
그리고 지금 여러분 옆에 계신 분들 사이에도 역시나 하나님이 계십니다. 아멘.
 
야곱은 지금 사람들 사이에 하나님이 계심을 믿음으로 고백하고 있습니다.
야곱의 고백이 우리의 고백이 되기를 원합니다.
믿음의 눈으로 사람 사이에, 내가 만나는 누구든지 그 사이에 하나님이 계심을 믿음으로 고백하는 삶을 살아가기를 간절히 축복합니다.
이것만 잘하면 믿음의 생활에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사람과 사람들 만남에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날마다 이런 믿음의 질문을 하는 것입니다.
 
우리 둘 사이에 누가 계시는가?
사람과 사람사이에 누가 계시는가?
결혼 서약하는 남녀 가운데 누가 계시는가?
부부 사이에 누가 계시는가? 부모와 자녀 사이에 누가 계시는가?
어떤 종류의 약속이든 당사자 사이에 누가 계시는가?
나와 동료 사이에 누가 계시는가?
 
사이 사이에 누가 계시는가?
 
바로 하나님이 계십니다.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에 상대방과의 약속을 넘어 하나님과의 약속이 됩니다. 결혼 서약도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에 상대방과의 서약을 넘어 하나님과의 서약이 됩니다. 직장에서도, 만남에서도, 약속에서도, 어떠한 종류의 계약에서도 그 사이에 하나님이 계십니다. 크리스챤은 누구를 만나 무엇을 하더라도 그 사이에 하나님이 계심을 기억해야 합니다.
 
20111224일 아내가 써준 성탄카드에 -
"당신과 나 사이에 주님이 계심을 감사드립니다"
 
야곱은 고백합니다.
자기가 라빈의 집에서 일할 때,
 
40"낮에는 더위와 밤에는 추위를 무릅쓰고 눈 붙일 겨를도 없이 지냈나이다"
41"내가 외삼촌 집에 있는 이 십년 동안 ... 봉사하였거니와 외삼촌께서 내 품삯을 열 번이나 바꾸셨으며"
42"우리 아버지의 하나님, 아브라함의 하나님 곧 이삭의 경외하는 이가 나와 함께 계시지 아니하셨더라면"
=> 직장에서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합니까?
직장에서의 일이 결코 계약관계의 일이 아니다. 상사와 나와의 관계만도 아니다. 일을 하고 돈을 받는 계약만의 것이 아니다. 라반이 야곱을 속였을지라도 야곱은 하나님이 중심에 계심을 알고 열심히 일을 했다. 하나님이 돌보아주실 것을 알고 하나님을 바라고 일하였다.
일과 봉사는 그렇게 하는 것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하나님이 계심을 바라보고 일하는 것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하나님이 주관자로 계심을 바라보고 일하는 것이다.
 
올 한 해 믿음의 문제아였던 야곱이 벧엘의 하나님을 만나고 나와 만나는 사람 사이에 늘 하나님의 계심을 고백하며 살아갔던 것처럼 우리 모두도 이러한 고백이 한 해동안, 평생의 삶에서 넘쳐 흐르기를 간절히 축복합니다.
 
직장에서도, 작년들과의 관계에서도, 부부간에도, 사이 사이에 하나님이 계심을 기억하며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간절히 축복합니다.
 
특별히 4남선교회가 이러한 믿음의 고백이 넘치는 선교회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그래서 소문나고 믿음의 부흥이 넘치는 모습이 드러나는 귀한 선교회가 되기를 간철히 축복합니다.
무엇보다 가정에서 이러한 믿음의 고백만이 가득하기를 원합니다.
 
마지막으로 옆 사람을 보라보며 고백할까요? “당신과 나 사이에 하나님이 계십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우리 아버지의 하나님, 아브라함의 하나님 곧 이삭의 경외하는 이가 나와 함께 계시지 아니하셨더라면
하나님은 지금까지 나와 함께하셨습니다. 힘들고 어려운 시간에도 함께하셨습니다. 나를 지켜주시고 인도하셨습니다. 모난 부분이 많은 사람이었지만 은혜를 주셔서 나를 지금 선한 길로 인도하셨습니다.
그런데 한쪽 믿음만 가지고 있었습니다. 나와 함께 한 하나님만 바라보았지, 나와 옆 사람 사이에 계시는 하나님을 바라보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들과 관계가 깊어지지 못했고, 그들과 사귐이 있지 못했습니다.
직장에서의 동료 선후배는 그져 일하는 사람으로만 보았고, 가정에서 남편과 아내로는 서로 나에게 더 잘 주기만을 바랐으며, 자녀들에게는 잔소리하거나 큰 사람이 되기만을 원하는 반쪽 믿음을 가진 삶을 살아왔습니다.
벧엘의 하나님을 만나고 그의 믿음의 고백이 바뀐 야곱처럼, 우리도 나와 내 옆에 사이에 나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 동일하게 계심을 믿음으로 고백하는 귀한 4남선교회 지체들과 가정들이 되게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4남선교회를 섬기는 회장과 임원, 회원들을 축복하시고 올 한해 믿음이 더욱 자라 하나님의 사람의 세워져 가는데, 부족함이 없게 하시고, 가정 가정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드러나며 영광돌릴 때, 하늘의 문이 열고 수많은 하늘 보화들이 흘러 넘치는 복된 가정 되게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의 교회를 아름답게 섬길 수 있도록 건강과 물질의 축복들을 허락하시옵소서. 한 해 되돌아보는 시간에 영적 열매들을 많이 맺어 감사할 수 있는 한 해를 허락하여 주시기를 간절히 원하옵니다.
오늘 이 모임가운데에서도 하나님이 함께하시고 홀로 영광받아 주시옵소서. 감사하오며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