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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nday, February 3, 2020

내 마음의 밥상 고전 4:20 <생각 그리고 기도>

내 마음의 밥상
 고전 4:20  <생각 그리고 기도>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아니하고 오직 능력에 있음이라"




생각을 하지 말고 기도하자.
아니 정확한 표현은 생각 먼저 하기 전에 기도부터 하자.

사람이 생각하지 않고 살 수 없다. 무슨 일에든 계획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생각하지 말고 기도하자는 말은 무슨 말인가?

바로 생각하기 앞서 기도하니 하나님의 생각이 나의 생각을 뒤덮게 된다는 것이다.

내 생각이 하나님의 마음과 계획을 품게 되는 것이다.

하나니의 인도하심이 있는 생각을 갖게 되다라는 것이다.


===
하나니의 일꾼

충성

===
기도가 이어지면 그가 보이지만
기도가 끊어지면 내가 보입니다.

기도를 이어가겠습니다.

- 조병범 목사님 페이스북에서

Monday, August 5, 2013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들을 사랑하는 법(갈등 해결 방법) - 국제제자훈련원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들을 사랑하는 법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목하라” (롬 12:28)
우리가 그리스도와 동행하면서 계발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기술 중 하나는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들을 사랑하는 것이다.
다음은 예수님께서 어려운 사람들을 만나셨을 때 본을 보이셨던 네 가지 방법들이다.
  • 모든 사람을 만족시킬 수는 없음을 깨달으라. (마 22:18) 그것은 하나님도 하실 수 없는 일이다! 그들에게 좌우되는 것을 거부하라. (마 22:18)
  • 비현실적인 기대에 ‘노’라고 말하는 법을 배우라. (엡 4:15)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말함”으로써 그들을 대하라.
  • ‘절대’ 보복하지 마라. (마 5:38-39) 그렇게 하면 그들의 수준까지 내려갈 뿐이다.
  • 그들을 위해 기도하라. (마 5:44) 그러면 상대방과 나 모두에게 도움이 된다. 하나님께서 직접 말씀하시게 하라.
먼저 행동을 취함으로써 갈등을 해결하라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절제하는 마음이니” (딤후 1:7)
아담과 하와가 범죄하고 하나님께서 아담을 찾으러 오셨을 때 아담은 “내가 …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라고 말했다. (창 3:10) 이러한 두려움은 인류 역사만큼이나 오래된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진짜 자아를 숨긴다. 우리가 진정 어떠한 사람인지 사람들이 모르게 하는 것이다. 왜 그런가? 바로 “내가 어떤 사람인지 얘기했다가 상대가 날 안 좋아하면 어떡하지?”라는 생각 때문이다.
두려움은 관계에 세 가지 악영향을 미친다.
두려움은 우리를 방어적으로 만든다. 두려울 때 우리는 자신을 드러내기를 겁낸다. 사람들이 약점을 지적하면 우리는 그에 보복하고 우리 자신을 방어한다.
두려움은 사람들로부터 거리를 두게 만든다. 두려울 때 우리는 사람들이 가까이 오지 못하게 한다. 뒤로 물러나서 감정을 숨기고 싶어한다. 마음을 열고 정직하게 대하기를 원치 않는다.
두려움은 지나치게 요구하게 만든다. 불안정할수록 우리는 통제하거나 지배하려고 애쓰게 된다. 관계에서도 결정권을 가지려고 든다. 이는 언제나 두려움과 불안정함의 징후이다.
갈등을 해소할 때 먼저 발걸음을 뗄 수 있는 용기는 어디에서 얻을 수 있을까? 이는 삶 속의 하나님의 영으로부터 온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비겁함의 영을 주신 것이 아니라, 능력과 사랑과 절제의 영을 주셨습니다.” (딤후 1:7, 새번역)
누군가와 관계를 재개하는 출발점은 잠시 멈췄다가 이렇게 기도하는 것이다. “하나님, 제가 이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 먼저 발걸음을 뗄 수 있도록 도우소서.”
자신의 부분을 인정함으로써 갈등을 해결하라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 먼저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어라 그 후에야 밝히 보고 형제의 눈 속에서 티를 빼리라” (마 7:3-5)
갈등 상황에 직면했을 때, 비난하거나 공격하거나 다른 사람 탓으로 돌리기 대신, 겸손함으로 시작하라. 이는 갈등의 90퍼센트가 상대방 탓일지라도 마찬가지다.
사람은 누구나 맹점이 있다. 완벽한 사람은 없으며, 사람은 각자 자신이 미처 보지 못하는 것이 있기 때문에 갈등에 기여하는 부분이 생긴다.
그러므로 공격하거나 비난하려고 하기 전에 스스로 솔직하게 평가하고 이렇게 물어야 한다. “이 갈등에서 내 잘못은 얼마나 되는가?” 정직하게 진단하고 내 부분을 인정해야 한다. 잘못한 것이 있으면 인정하라.
그리고 당신이 옳았다면, 그저 입을 다물어라!
자기 자신에게 솔직해라. 예수님은 자신의 눈 속에 있는 것을 먼저 보라고 말씀하신다. 그러면 그 갈등 상황이 명확하게 보일 것이다.
이렇게 자문하라. “내가 비현실적으로 행동하고 있는가? 내가 둔감한가? 내가 너무 민감한가? 내가 지나치게 요구하고 있는가? 내가 감사하지 못하고 있는가?”
목사로서 내 경험에 의하면, 제일 가는 이혼 사유는 “우린 서로 안 맞아요!”이다. 성경은 서로 성장한다면 어떤 두 사람이라도 서로 사랑하는 법을 배울 수 있다고 가르친다.
그러나 우리의 본성은 자기중심적이고 완고하며 변화하려고 하지 않는다! 다른 어떤 것보다 ‘굽히지 않는 태도’ 때문에 관계가 깨진다.
성경은 우리가 겸손함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가르친다. 갈등 상황에서 막힌 곳은 어떻게 뚫을 수 있을까? 이렇게 말하라. “미안해. 내가 내 생각만 했어.”
갈등 해결 방법 - 상대방을 우선으로 생각하라
“각각 자기 일을 돌볼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하게 하라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빌 2:4-5)
갈등은 저절로 해결되지 않는다. 갈등은 의도적으로 다뤄야 한다. 갈등을 내버려두면 상태는 더 나빠진다. 어떤 사람과 관계가 좋지 않거나 문제가 생겼다면, 당신이 먼저 나서서 해결하라.
갈등은 언제 해결해야 하는가? 그 즉시이다. 해결을 미루면 상태는 악화된다. 가능한 한 빨리, 상황이 곪아서 반감으로 변하기 전에 해야 한다. 자신의 관점이나 상황만 봐서는 안 된다. 다른 사람의 관점도 봐야 한다. 이는 본능을 거스르는 것이기 때문에 무척 어렵다. 초점을 자신의 필요를 바라보는 데서 다른 사람의 필요를 바라보는 데로 옮기는, 의도적인 전환이 요구되는 것이다.
여기에는 그렇게 하도록 삶 속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도움도 필요하다.
상대방의 행동에 대한 배경을 이해할 때, 우리는 갈등을 덜 겪게 될 것이다.
다른 사람을 이해하는 법은 어떻게 배우는가? 그들의 말을 들어야 한다. 말하기보다 듣기를 더 많이 해야 한다. 이것이 쉬운 사람 또한 별로 없다. 우리는 자신의 논지를 분명히 하고, 자신의 입장을 말하고, 자신을 변호하는 데 급급한 경우가 많다. 잠시 멈춰 상대방이 하는 이야기가 뭔지 듣거나 그들의 관점에서 생각하려 하지 않는다.
“상대방의 필요는 무엇이며, 내가 그것을 어떻게 채워줄 수 있을까?”라고 물을 때, 우리는 더욱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것이다. 화가 나면 자신에 대한 생각으로 꽉 차게 된다. 그러나 그리스도와 같이 되면 자기만 보는 게 아니라, ‘서로’의 이해를 바라보게 된다.
평화를 가져오는 가장 강력한 말 중 하나는 “미안해. 내가 내 생각만 했어.”라고 말하는 것이다.
다음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보자.
  • 당신에게는 현재 곪도록 내버려두고 있는 갈등이 있는가? 시간을 더 흘려버리지 마라. 오늘 시간을 들여 그것을 해결하라.
  • 당신의 듣기 기술은 몇 점 정도 되겠는가? 잘 듣는 사람이 되는 데 집중하라.
갈등 해결 방법 - 사랑으로 상대방을 마주하라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마귀에게 틈을 주지 말라” (엡 4:26-27)
갈등은 일어나게 마련이다. 그것을 피할 방법은 없다.
갈등이 생겼을 때는 정면으로 대응해야 한다. 그것이 곪아가도록 내버려두지 마라. “그냥 무시해야지. 시간이 가면 없어질 거야.”라고 생각하는 것은 큰 실수이다.
갈등은 무시한다고 없어지지 않는다. 사도 바울은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마귀에게 틈을 주지 말라”라고 말한다. (엡 4:26-27)
이 구절은 죄에 이르는 분노가 있고 죄에 이르지 않는 분노가 있음을 시사한다. 분을 품는 데도 바른 방법과 틀린 방법이 있는 것이다.
그 차이는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잘못된 분노는 빨리 해결하지 않은 분노이다. 제대로 다뤄지지 않은 분노는 원망과 반감으로 변한다. 원망과 반감은 언제나 죄이다. 이러한 감정은 늘 잘못된 것이다.
갈등은 어떻게 해야 빨리 해결할 수 있을까? 그 해결책은 대면하는 것이다. 갈등을 해결하려 한다면, 직접 마주해야 한다.
그러나 분노를 품은 상태에서 대면할 필요는 없다. 사실, 분노한 상태에서 대면해서는 안 된다. 사랑하는 마음으로 상대방에게 가서, 사랑 안에서 진실된 것을 말하고, 즉시 문제를 다뤄야 한다.
성경은 사람을 대면할 때의 세 가지 원칙을 가르쳐준다. 누구나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며, 성내기도 더디 하라”는 것이다. (약 1:19)
첫 두 가지 원칙을 지키면 세 번째는 자동적으로 된다. 듣기를 속히 하고 말하기를 더디 하면, 성내는 것도 더뎌질 것이다.
다음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보자.
  • 누군가를 대면해야 함을 알 때, 당신은 어떤 감정이 생기는가? 왜 그런 감정이 든다고 생각하는가?
  • 두렵거나 위축된다고 느낄 때도, 당신은 하나님께서 당신이 대면하는 순간을 인도하심을 믿는가?
  • 성경은 우리가 사랑으로 마주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것은 어떤 모습이라고 생각하는가?
갈등 해결 방법 - 화해에 초점을 맞추라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마 5:9)
갈등 상황에 놓였을 때, 해답보다는 화해에 집중하라. 이 둘에는 큰 차이가 있다. 화해는 관계의 재건을 뜻하지만, 해답은 모든 것에 동의하게 됨으로써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뜻한다.
이러한 해결은 이뤄질 수 없다. 두 사람이 다 하나님을 사랑하든, 서로를 깊이 사랑하든 상관 없이, 두 사람이 결코 동의하지 못하는 것이 있다. 하나님께서 우리 각 사람을 서로 다르게 지으셨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불쾌해 하지 않고도 동의하지 않을 수 있는데, 이것을 지혜라고 부른다. 야고보서 3장은 “지혜는 평화를 조성하고, 양순하다. 지혜는 토론을 용납하며, 기꺼이 다른 사람에게 양보한다.”고 말한다.
성경은 양보하는 것이 지혜롭다고 말한다. 우리는 일치함 없이도 통일을 이룰 수 있다. 마음이 맞지 않아도 손 잡고 걸을 수 있다. 모든 문제를 해결하지 않아도 화해할 수 있다.
관계에 초점을 맞출 때, 문제는 무의미한 것이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내가 당신에게 던지는 도전은 이것이다. - 갈등, 전쟁, 편견, 폭력, 분열, 깨진 관계로 가득 찬 세상에서, 화해의 행동가가 되는 데 힘쓰라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를 평화의 사람이 되게 하는 목적을 갖고 계신다. 갈등을 해결하는 것은 관계를 끝내는 것보다 훨씬 더 가치가 있다.
다음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보자.
  • 당신은 삶 속의 어떤 관계, 어떤 상황에서 화해의 행동가가 될 수 있는가?
  • 당신은 갈등 상황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할 때, “내가 할 수 있는 건 여기까지야.”라고 생각하곤 했는가? 관계를 화해로 이끌기 위해 당신의 태도는 어떻게 바뀌어야 하겠는가?
언쟁에서 이기려고 애쓰지 마라
“형제들아 내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모두가 같은 말을 하고 너희 가운데 분쟁이 없이 같은 마음과 같은 뜻으로 온전히 합하라” (고전 1:10)
언쟁에서 이기려고 애쓰지 마라.
그 대신, 당신과 생각지 맞지 않는 사람들을 사랑하는 것을 목표로 삼으라. 승리가 아니라 사랑을 추구하라. 예수님은 사랑이 언제나 이긴다고 말씀하신다. 주님은 그것을 무덤에서 나오심으로 보증하셨다.
다른 신자들과 언쟁이 벌어졌다면, 원만한 해결을 위해 다음 성경적 지침을 사용하라.
자비로 반응하라. (잠 3:3-6) 갈등 상황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공정한 것만을 원한다고 말하지만, 하나님의 접근법은 공정함이 아니라, 은혜와 자비에 대한 것이다. (롬 5:8)
진실에 대한 판단은 하나님께 맡기라. (고후 13:8) 진실은 당신의 생각이나 감정으로, 또는 다른 사람들의 의견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요일 4:1) 진실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이 진실이다. 하나님만이 모든 상황을 설명하시는 유일한 권위이시다. (고후 10:5)
성경은 자기 자신의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고 말한다. (잠 3:5) 즉 우리 눈엔 올바르게 보이는 것도 잘못된 것일 수 있다는 것이다. (잠 14:12)
하나님의 임재를 찾으라. (마 28:20) 사탄은 우리가 전쟁터에 혼자 있다고 믿기를 바란다. 어린 양치기 소년 다윗의 예를 본받으라. 그는 하나님께서 싸우고 계시며, 전쟁이 하나님께 속해 있다고 믿었다. (삼상 17:47)
갈등의 진정한 근원을 찾으라. (엡 6:12) 하나님 말씀에 따르면, 실제로 우리는 다른 사람들과 싸우고 있는 게 아니다. 우리의 진짜 적은 사탄이며 그의 “보이지 않는 악한 영의 세력”이다.
인간의 무기를 내려놓으라. (고후 10:4-5)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독립적으로 행동하면서 자기 자신의 필요를 채우려고 애쓸 때, 우리는 사도 바울이 말했던 ‘육신의 무기’를 사용하는 경향이 있다. 여기에는 조작, 험담, 비방, 조롱, 위협, 비난, 잔소리, 속임, 침묵 등이 포함된다. 그러한 것들을 사용할 때 우리는 결국 ‘악에는 악으로’의 상황을 반복하게 되는데, 이는 ‘냄새’를 이용하여 스컹크와 싸우려고 드는 것과 마찬가지다. 모두가 패배자가 되는 것이다!
영적 무기 사용법을 배우라 (고후 10:4) 성경은 기도가 강력한 영적 무기라고 말한다. 하나님의 전신갑주로 무장한 후, 우리는 “모든 기도와 간구를 하되 항상 성령 안에서 기도”해야 한다. (엡 6:18)
다음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보자.
  • 다른 신자와 갈등이 있다면, 오늘 당신은 그것에 대해 무엇을 해야 하는가?

Wednesday, June 19, 2013

분노 - 국제제자훈련원 목적이 이끄는 매일의 묵상


분노를 다스리기로 결단하라

“[사랑은] … 성내지 아니하며” (고전 13:5)
성경은 “사랑은 성내지 않는다”라고 말한다. 이는 “사랑은 결코 화를 내지 않는다.”라는 말이 아니다. 사실 때때로 사랑의 행위에는 화가 나는 것도 포함된다. 예수님도 아버지의 집인 성전이 시장처럼 된 것을 보시고 화를 내셨다.
우리는 누군가를 사랑하면서 동시에 그 사람에게 화가 날 수 있다. 그 분노는 의롭게 보일 때도 있고 이기적으로 보일 때도 있지만, 보통은 우리가 제일 사랑하는 사람들이 우리를 가장 화 나게 만드는 사람들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생물학적 구성에 화를 내는 능력을 넣으셨다. 화가 나는 것은 죄가 아니다. 그것이 파괴적인 행위로 자신을 몰고 가도록 허락하는 것이 죄가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감정 그 자체는 죄가 아니다. 성경은 하나님도 분노하신다고 말한다.
화가 나는 것은 피할 수 없지만, 그것을 조절하는 법은 배울 수 있다. 분노를 다스리기로 결단하면 그것은 ‘의무’라기보다는 ‘자산’이 될 것이다. 즉 “그게 바로 나야. 화가 나는데 어떡해? 난 화를 참을 수 없어.”라고 하는 것처럼 분노에 대해 변명하고 정당화하는 것을 그치게 된다.
분노는 통제될 수 있다. 당신은 누군가와 말다툼이 시작되어 분위기가 고조되고 있는데, 바로 그 때 전화벨이 울렸던 경험이 있는가? 자신이 화를 얼마나 빨리 다스릴 수 있는지 보라! 당신은 자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분노를 훨씬 잘 통제할 수 있다. 화를 다스리기로 결단하라. 그리고 이렇게 고백하라. “저는 하나님께서 도와주셔야 화를 다스릴 수 있습니다.”
다음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보자.
  • 예수님은 아버지의 집인 성전이 시장처럼 된 것을 보시고 화를 내셨지만, 예수님을 ‘화 내는 분’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는 “그게 바로 나야. 화가 나는데 어떡해? 난 화를 참을 수 없어.”라는 주장에 대해 무엇을 말해주는가?
  • 당신이 마지막으로 버럭 화를 낸 때는 언제인가? 오늘의 교훈을 참고로 앞으로는 그 화를 다르게 해결할 수 있겠는가?
분노의 댓가를 기억하라

“어리석은 자는 성급하게 굴고 신중한 사람은 오래 참는다.” (잠 14:17, 공동번역)
성경은 통제되지 않은 분노에는 늘 가격표가 붙어 있다고 말한다. 그것을 다음 구절과 연관 지어 확인해보라.
  • “분을 쉽게 내는 자는 다툼을 일으켜도 노하기를 더디 하는 자는 시비를 그치게 하느니라” (잠 15:18)
  • “노하는 자는 다툼을 일으키고 성내는 자는 범죄함이 많으니라” (잠 29:22)
  • “어리석은 자는 성급하게 굴고 신중한 사람은 오래 참는다.” (잠 14:17, 공동번역)
성경은 말한다. “자기 가족을 괴롭히는 사람은 얻는 것이 없으며 미련한 자는 지혜로운 사람의 종이 될 것이다.” (잠 11:29, 현대인의 성경)
화를 참지 못할 때마다 우리는 지는 것이다. 번번히 분통을 터뜨리면 될 일도 안 된다. 영어에서 위험(danger)은 분노(anger) 앞에 d만 더 붙인 것이다. 분노는 위험하다. 분노 때문에 우리는 모든 것을 잃을 수도 있다. 명성, 배우자, 직장, 건강까지.
몇 년 전에 읽은 인간 심장에 대한 의학 연구에 따르면, 삶 속에서 적의나 반감을 줄이면 수명이 연장된다고 한다. 부모들이여, 기억하라. 우리는 분노를 통해 아이들에게 자극을 줌으로써 단기적인 이득(자녀가 두려움 때문에 순종하는 것)을 얻을 수 있을지는 모르나, 장기적인 관점에서는 우리가 지게 될 것이다. 분노는 늘 스스로 소외되도록 만들기 때문이다. 분노는 사람들을 끌어들이기보다는 쫓아내기 마련이다. 또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는 대신, 분노는 사람들로 하여금 당신의 필요에 대해 냉담하고 당신에 대해 화가 나게 만든다.
분노를 다스리는 법 중 하나는 그것 때문에 당신이 어떤 대가를 치르게 되는지 이해하는 것이다.
다음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보자.
  • 과거에 분노는 당신의 의사 결정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가?
  • 과거에 당신은 분노 때문에 인간 관계에서 어떤 대가를 치렀는가? 현재의 인간 관계에는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가?

“어리석은 자는 자기의 노를 다 드러내어도 지혜로운 자는 그것을 억제하느니라” (잠 29:11)
화가 났을 때, 충동적으로 반응하지 마라. ‘참음’은 화를 통제하는 데 훌륭한 도구이다. 이는 무한정 참으라거나 심지어 하루를 넘기라는 말이 아니다. 성경도 화가 난 상태로 잠자리에 들지 말라고 말한다. 내가 말하는 ‘참음’은 5분이다.
화가 나기 시작하면, 몇 분 동안 ‘타임 아웃’ 시간을 가지라. 잠시 상황에 대해 곰곰이 생각할 시간을 충분히 갖는 것이다. 잠시 멈춰 생각하지 않으면 잘못된 행동을 하기 쉽다. 반응하기 전에 심사 숙고해야 한다.
화가 나면 뒤로 물러서서 잠시 시간을 가지며 하나님의 관점에서 상황을 바라보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 성경에서 지혜로운 사람이 분노를 억제한다고 한 말에 주목하라. (잠 29:11) 이것을 현대적인 표현으로 바꾸면 “지혜로운 사람은 잠시 멈춰서 열을 식힌다.”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독립선언문을 쓴 토머스 제퍼슨은 이렇게 말했다. “화가 났다면, 입을 열기 전에 열을 세라. 화가 많이 났다면 일부터 백까지 세라.”
다음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보자.
화가 나는 이유를 이해하면 더 잘 인내할 수 있고, 심지어는 허물까지도 덮어줄 수 있게 된다. (잠 19:11) 다음과 같이 자신이 화가 나는 이유를 이해할 수 있게 도와주는 질문 세 가지를 던져보라.
  • 나는 왜 화가 나는가?
  • 내가 정말로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 그것은 어떻게 얻을 수 있는가?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엡 4:26a)
화를 푸는 데는 유익한 방법도 있고 해로운 방법도 있다. 예를 들어 때때로 우리는 자신의 분노를 인정하기보다 화가 난 상태에 머물려고 한다. 그러나 성경은 화가 났는데도 인정하지 않는 것은 거짓말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것은 죄이다.
분노가 꼭 잘못된 것은 아님을 명심하라. 분노는 그것을 부적절하거나 파괴적인 방식으로 표출했을 때만 잘못된 것이다. 목사로서 내 경험에 의하면, 우리 중 대부분은 두세 살 때 분노를 표현하는 법을 배웠으며, 어른이 돼서도 여전히 같은 방식으로 분노를 표현한다. 그러나 당연하게도, 지금은 이것이 통하지 않는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얻고자 했던 목표가 화를 내기 전보다 더 멀어지게 되는 방식으로 분노를 표현한다. 부적절하게 표현된 분노는 의도한 것과 정반대인 결과를 낳는다. 사람들을 향해 분노를 터뜨리면 변화를 지속시킬 수 없다. 더 많은 분노와 소외만 초래할 뿐이다. 그것을 알면서도 우리는 여전히 그렇게 한다.
분노는 결코 근본적인 문제가 아니다. 일반적으로 분노는 다음 세 가지 중 하나의 증상이다. 상처, 두려움, 또는 좌절. 이 세 가지 때문에 우리는 화가 난다. 그러므로 우리는 늘 잠시 멈춰 마음을 가라앉혀야 한다.
다음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보자.
분노의 근원을 이해하면 적절한 방식으로 반응하고, 결과적으로 분노로 인해 “죄를 짓지” 않게 된다. (엡 4:26) 잠시 멈춰 마음을 가라앉힐 때, 스스로에게 다음의 질문을 던져보라.
  • 내가 상처를 받았는가?
  • 내가 두려워하고 있는가?
  • 내가 위협을 느끼고 있는가? 아니면 뭔가 귀중한 것을 잃고 있는 것 같은가?
  • 내가 좌절했는가?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 (롬 12:2a)
행동하는 방식은 느끼는 방식에 의해 결정된다. 느끼는 방식은 생각하는 방식에 의해 결정된다. 행동 방식을 바꾸고 싶으면 사고 방식을 먼저 바꿔야 한다. 분노의 부적절한 관리가 습관화되어(툴툴대기, 울분 터뜨리기, 비난하기 등) 이를 바꾸고 싶다면, 먼저 정신을 개조할 필요가 있다.
가족상담가인 개리 스몰리는 스스로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지라고 제안한다. “나는 화를 내는 것을 즐기는가?” “화를 내면 내가 의도했던 결과가 나타나는가?” “동일한 결과를 좀더 효과적인 방법으로 얻을 순 없을까?” “나는 어떻게 달라질까?”
스몰리는 자신에게 편지를 쓰면서 그 답을 적고 6개월 동안 일주일에 한 번씩 (총 26번이 될 것이다) 큰 소리로 자신에게 읽어주라고 말한다. 또한 다른 사람 앞에서도 읽어보라고 말한다. 이렇게 하는 게 일이 많아 보일 수도 있겠지만, 당신은 이 습관을 바꾸는 것에 대해 얼마나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는가? 분노를 통제하는 것에 대해 얼마나 심각하게 여기는가?
나는 자신에게 쓰는 편지에 성경 말씀을 인용하기를 제안한다. 그러면 하나님의 말씀이 당신의 생각을 채우고,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게 될 것이다. 변화가 일어나는 것이다.
사실 분노하는 이들은 불안정한 사람들이다. 불안정할수록 더 많은 것들에 화가 나기 마련이다. 불안정할수록 더 예민해지고 더 짜증이 나게 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당신을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그리고 그리스도 안에서 당신이 얼마나 안전하고, 당신이 하나님께 얼마나 중요한지를 이해할 때, 당신은 화가 덜 나게 될 것이다.
다음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보자.
  • 에베소서 1장과 로마서 8장을 읽어보라. 이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그리고 우리가 그분 안에서 얼마나 안전한지 가르쳐줌으로써 분노를 방지하는 성경 말씀들이다.

Thursday, April 11, 2013

하나님이 사용하시는 사람들은 누구인가? - 국제제자훈련원

http://www.purposedriven.co.kr/mailService/list.asp?m_Type=QT&LMCode=6&MMCode=2

하나님은 자신의 죄를 고백하는 사람들을 사용하신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준비함이 되리라” (딤후 2:21)
하나님은 모든 종류의 그릇을 사용하신다. 큰 것이든 작은 것이든, 장식이 있는 것이든 없는 것이든, 매우 값진 것이든 평범한 것이든 다 사용하신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사용하시지 않는 그릇이 한 가지 있는데, 바로 더러운 그릇이다. 따라서 하나님께 쓰임 받으려면 정화를 해야 한다.
여호수아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너희는 자신을 성결하게 하라. 여호와께서 내일 너희 가운데에 기이한 일들을 행하시리라.” (수 3:5) 사실 하나님은 당신의 미래에도 위대한 일을 행하기 원하신다. 그러나 먼저는 과거를 청산해야 한다. 어제의 일을 깨끗이 씻어내야 한다.
그것은 어떻게 가능할까? 바로 고백을 통해서이다. 어거스틴은 이렇게 말했다. “악한 일에 대한 고백은 선한 일의 시작이다.” 이는 과거를 더듬어봄으로써 시작할 수 있다. 성경은 말한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요일 1:9)
나는 처음으로 ‘죄 목록’을 만들었던 때를 결코 잊지 못한다. 당시 나는 하나님께서 너무나 멀리 계신 것처럼 느껴졌다. 그분의 권능도 그분의 은혜도 느낄 수 없었다. 내 기도가 천장에 부딪쳐 돌아오는 것만 같았다. 그래서 어느 날 밤 나는 종이를 꺼내 들고 이렇게 말했다. “하나님, 저와 하나님 사이에 있는 죄를 모조리 보여주십시오. 그러면 그것을 구체적으로 적겠습니다. 저는 구체적인 죄를 저질렀고, 그것을 구체적으로 고백하겠습니다. 하나님과 함께, 지금 당장 그것을 처리하여 없애겠습니다.”
나는 쓰기 시작했다. 쓰고 또 썼다. 마치 ‘목적이 이끄는 죄인’이라는 한 권의 책을 쓰기라도 할 기세로 말이다! 마침내 죄의 목록은 9페이지쯤에서 끝났다. 새벽 두 시였다. 나는 모든 죄를 하나님께 고백하고 각각의 죄 위에 요한일서 1장 9절 말씀을 적었다.
나는 그날 밤 이후로도 여러 번 ‘죄 목록’을 만들어야 했다. 우리와 하나님 사이에 죄가 비집고 들어오기란 매우 쉽기 때문이다.
깨끗한 그릇이 되어 하나님께 드려져 사용되려면 정기적으로 죄의 목록을 만들어야 한다. 집안의 쓰레기를 한 달에 한 번만 버리면 온 집안에 퀴퀴한 냄새가 나기 시작할 것이다.
다음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보자.
  • 당신이 마지막으로 ‘특정한’ 죄를 하나님께 고백한 것은 언제였는가?
  • 죄의 목록을 만들 때, 당신이 기억나는 것, 또는 기억나는 것의 수에 있어 어떤 점에 놀라게 되는가?

하나님은 ‘건강 증진의 원칙’을 실천하는 사람을 사용하신다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고전 6:19-20)
‘봉헌(sanctify)’은 무언가를 하나님께서 그분의 뜻대로 사용하시도록 바치는 것을 뜻한다. 집을 들어 “하나님, 이 집을 당신께 드립니다.”라고 말할 수도 있고, 차를 들어 “하나님, 이 차를 당신께 드립니다.”라고 말할 수도 있다. 무엇이든 그것을 들어서 하나님께서 그분 뜻대로 사용하시도록 바치는 것이다.
성경은 이렇게 말한다.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고전 6:19-20)
하나님은 모든 종류의 그릇을 사용하시지만, 우리의 그릇이 순수하고 깨끗하고 건강하길 바라신다. 하나님께 쓰임 받으려면 좋은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 당신의 몸(즉, 그릇)이 하나님이 사용하시도록 봉헌될 때, 그것은 하나님이 부르신 뜻을 행하기에 가장 좋은 상태에 있어야 한다. 성경은 말한다. “주의 손이 나를 만들고 세우셨사오니 내가 깨달아 주의 계명들을 배우게 하소서” (시 119:73)
하나님은 건강 증진의 원칙을 세우셨다. 즉 식사와 운동, 그리고 수면의 균형을 맞추라고 하신다. 좋은 건강을 유지하려면 이 세 가지가 다 필요하다.
하나님은 당신을 통해 위대한 일을 행할 수 있도록, 당신이 영적으로 건강한 것처럼 육체적으로도 건강하기 바라신다.
다음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보자.
  • 당신의 수면 습관은 어떠한가? 때때로 당신이 할 수 있는 가장 영적인 일은 잠자리에 드는 것이다.
  • 당신은 살기 위해 먹는가 아니면 먹기 위해 사는가? 당신의 식사 습관은 영적 건강에 어떤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하는가?
하나님은 단순화된 삶을 사는 이들을 사용하신다
“…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며” (히 12:1b)
하나님의 목적을 위해 사용되고자 할 때, 우리는 삶을 집중시켜야 한다. 성경은 인생을 마라톤에 비유하는데, 이는 우리가 삶을 단순화해야 함을 뜻한다.
성경은 말한다.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며” (히 12:1b)
이는 우리를 방해하고 저지하게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든 삶에서 제거해야 한다는 뜻이다. 사탄은 우리를 무너뜨리지 못한다면 우리를 바쁘게 만들 것이다. 심지어 ‘선한 일을 하느라’ 너무 바쁜 나머지 ‘최선의 일’을 할 시간을 못 내게 할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은 삶을 단순화하라고 말하는 것이다. 우리는 삶에서 불필요한 짐을 버려야 한다. 모든 것을 다 하려고 애쓰지 마라. 가장 중요한 것을 하라. 충실한 주자는 경주에 집중한다.
“하나님의 목적을 위해 살고 싶은 생각이 간절하지만, 시간이 없어요.”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그들이 시간이 없는 이유는 삶을 단순화하려는 데 시간을 내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음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보자.
삶을 단순화하지 못하게 방해하는 것들은 수없이 많다. 다음 중 당신의 주의를 분산시키고 삶을 단순화하지 못하도록 막는 것은 무엇인가?
  1.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대로 되려고 하는 대신 다른 사람들과 같이 되려고 노력하는 것
  2.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하려고 노력하는 것
  3. 다른 사람들이 제멋대로 정한 기대에 부응하려고 애쓰는 것
  4. 너무 많은 취미 또는 한 취미에 너무 많은 시간을 쏟는 것
  5. SNS, 블로그 등의 소셜미디어, 인터넷, 영화, 또는 TV
  6. 잘못된 종류의 관계
  7. 과거의 실수
하나님은 믿음을 견고히 하는 사람들을 사용하신다
“그 후로는 다시 사람의 정욕을 따르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육체의 남은 때를 살게 하려 함이라” (벧전 4:2)
당신은 믿음을 견고히 하기 위해 어떻게 하는가? 믿음을 강화하는 데는 몇 가지 방법이 있다.
성경을 연구하라. 우리는 하나님 말씀을 삶의 일부로 만들 필요가 있다. 하나님 말씀은 계시된 것이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을 다 할 수 있도록 우리를 온전히 준비시킬 것이다.
경건의 시간(QT)을 지속하라. 요즘 당신의 경건의 시간은 어떠한가? 어떤 사람들은 이 질문에 죄책감을 느낄지도 모른다. 그것은 아마도 누군가가 오래 전에 가르쳐준 대로 경건의 시간을 가지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그 방법이 하나님께서 자신을 지으신 방식과 맞지 않기 때문일 수도 있다. 당신이 매일 하나님 말씀 안에서 일정한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신앙 서적을 읽으라. 다른 신자들로부터, 가능한 한 모든 것을 배우라. 다른 신자들이 한 이야기들을 계속해서 영혼에 공급하라. 혼자서만 성경을 연구하고 다른 신자들이 그에 대해 하는 이야기를 듣지 않는다면, 다른 신자들의 지혜와 경험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것을 얻지 못한다.
간증거리를 새롭게 하라.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삶에 무엇을 행하고 계신가? 당신이 가장 마지막으로 간증거리를 쓴 때는 언제인가? 간증거리를 쓰면, 하나님께서 그것을 나눌 수 있는 기회를 주실 것이다. 다른 사람들과 간증거리를 나눌 때, 우리의 믿음은 강화된다.
신자들의 소그룹 모임에 성실하게 참여하라. 성경은 우리가 “피차 권면하고 서로 덕을 세우기를” 힘써야 한다고 말한다. (살전 5:11a) 우리는 믿음의 마라톤을 경주하고 있으며, 함께 뛰어야 한다. 우리는 다른 신자들의 지지와 격려가 필요하다.
다음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보자.
  • 정기적인 성경 연구를 위한 당신의 계획은 무엇인가?
  • 소그룹과 이야기를 나눠보고, 훌륭한 신앙 서적의 목록을 만들어보라.
  • 이번 주에 시간을 들여 당신의 간증문을 써보라. 길게 쓰지 않아도 된다. 그리고 몇몇 크리스천 친구들에게 그것을 보여주라. 그들은 당신이 진정 말하고자 하는 것에 초점을 맞출 수 있도록 도와줄 것이다.
  • 소그룹 내에서 서로를 격려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보라.




하나님은 그분을 향한 열정이 있는 사람들을 사용하신다
“배역한 자식들아 돌아오라 내가 너희의 배역함을 고치리라 하시니라. 보소서 우리가 주께 왔사오니 주는 우리 하나님 여호와이심이니이다.” (렘 3:22)
가장 마지막으로 하나님을 향한 갈망을 느꼈던 때가 언제였는가? 하나님과의 친밀함을 너무나 간절히 원해서 모든 것을 버려두고 하나님을 좇을 정도로, 하나님을 너무나 갈망해서 메마르고 거친 광야에서도 줄곧 그분을 따를 정도로 갈망했던 때 말이다. (렘 2:2)
당신도 나와 같다면 당신은 아마도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하나님, 그런 사랑은 인간적으로 불가능한 것 같습니다!”
당신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면, 당신 생각이 맞다. 우리는 우리 안에 예수님이 계셔야만 하나님 사랑의 초자연적인 신비로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다. 하나님은 당신 안의 욕구를 변화시키실 수 있다. 즉, 하나님은 당신 안에 깊고 헌신적인 사랑의 불꽃을 다시 살리실 수 있다.

하나님을 향한 열정을 잃어버렸다면, 그것을 되찾는 방법은 어떻게든 그 사랑의 수준에 도달할 때까지 더 열심히 노력하는 것이 아니다. 열정을 되찾는 방법은 당신을 깊은 헌신의 모습으로 돌아오게 하는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하는 것이다. (렘 2:2)
하나님은 우리의 방탕한 본성을 용서해주실 것이다. 그리고 우리의 무딘 믿음을 고쳐주실 것이다.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배역한 자식들아, 돌아오라. 내가 너희의 배역함을 고치리라.”
이때 우리의 반응은 다음과 같아야 한다. “보소서, 우리가 주께 왔사오니 주는 우리 하나님 여호와이심이니이다.” (렘 3:22)
다음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보자.
  • 당신은 하나님을 향한 자신의 열정을 어떻게 묘사할 수 있겠는가?
  • 하나님께서 우리의 무딘 믿음을 고쳐주실 거라면, 하나님을 향한 깊은 열정으로 돌아오지 못하도록 우리를 막는 것은 무엇인가?
하나님은 거룩한 열정을 다른 이들에게 전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을 사용하신다
“좋은 일에 대하여 열심으로 사모함을 받음은 … 언제든지 좋으니라” (갈 4:18)
하나님은 열정적인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은 열정적으로 어떤 것을 사랑하시고 열정적으로 다른 것을 미워하신다. 하나님께 더 가까이 갈수록, 하나님은 당신이 세상에서 그분의 대변인이 될 수 있도록 하나님이 깊이 마음 쓰시는 것에 대한 열정을 당신에게 부어주실 것이다.
그것은 문제에 대한 열정일 수도 있고, 목적, 원칙, 또는 사람들에 대한 열정일 수도 있다. 그것이 무엇이든 당신은 그것에 대해 소리 내어 말하고, 변화를 일으키고자 하는 열망에 휩싸일 것이다.
사람들은 자신이 가장 관심을 갖는 것에 대해 말하지 않고는 못 배긴다. 예수님은 “마음에 가득 찬 것을 입으로 말하는 법이다.”라고 말씀하셨다. (마 12:34, 새번역)
이에 대한 좋은 예가 두 가지 있다.
  • “주님의 집에 쏟은 내 열정이 내 안에서 불처럼 타고 있습니다.”라고 말한 다윗. (시 69:9, 새번역)
  • “주님의 말씀이 나의 심장 속에서 불처럼 타올라 뼛속에까지 타들어 가니, 나는 견디다 못해 그만 항복하고 맙니다.”라고 말한 예레미야. (렘 20:9, 새번역)
하나님은 어떤 사람들에게는 대의를 위해 싸우고자 하는 거룩한 열정을 주신다. 그것은 종종 학대, 중독, 불임, 우울증, 질병, 또는 다른 역경처럼, 자신이 개인적으로 경험한 문제가 된다.
때때로 하나님은 스스로 목소리를 낼 수 없는 사람들을 위해 소리를 낼 수 있는 열정을 주시기도 한다. 태아, 박해 받는 사람, 가난한 사람, 감옥에 갇힌 사람, 학대 받는 사람, 불우한 사람, 공평한 대우를 받지 못하는 사람 등.
성경은 방어 능력이 없는 사람들을 보호하라는 명령으로 가득 차 있다.
하나님은 열정적인 사람들을 사용하셔서 그분의 왕국을 발전시키신다. 하나님은 당신에게 새 교회를 시작하거나, 가정을 견고히 하거나, 성경 번역 사역에 자금을 공급하거나, 크리스천 리더를 훈련시키고자 하는 거룩한 열정을 주실 수도 있다. 또는 사업가, 십대 청소년, 외국인 교환학생, 젊은 엄마, 또는 특정한 취미를 가진 사람들처럼 특정 부류의 사람들에게 복음을 들고 나아가고자 하는 거룩한 열정을 주실 수도 있다.
또, 하나님께 여쭤본다면, 하나님은 강한 크리스천 증인을 간절히 필요로 하는 구체적인 나라 또는 민족을 향한 마음의 짐을 지워주실 것이다.
하나님은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서 이루시고자 하는 모든 것이 이뤄지도록 우리에게 서로 다른 열정을 주신다. 우리는 남들도 자기의 열정에 대해 똑같이 열정적이 되기를 기대해선 안 된다.
오히려 우리는 서로의 삶의 메시지를 귀 기울여 듣고 소중히 여겨야 한다. 모든 것을 다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절대 다른 누군가의 거룩한 열정을 경시해선 안 된다.
성경은 말한다. “좋은 일에 대하여 열심으로 사모함을 받음은 … 언제든지 좋으니라” (갈 4:18)
다음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보자.
  • 하나님은 당신에게 어떤 열정을 주셨는가?
  • 현재 당신은 그 열정을 추구하기 위해 무엇을 하고 있는가?
  • 당신은 하나님께서 당신이 그분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무언가를 더 많이 또는 다르게 하기를 바라신다고 믿는가?
  • 당신은 친구와 가족의 거룩한 열정을 어떻게 도울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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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은 선택의 문제였다
===
하나님께서는 당신을 오래 전에 선택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오래 전에 여러분을 선택하셨고, 그분의 거룩한 백성으로 삼기로 계획해 놓으셨습니다.” (벧전 1:2, 쉬운성경)
좌절은 찾아온다. 좌절은 늘 우리를 찾아온다. 어쩌면 당신은 관계의 어려움이나 경력의 정체, 또는 질병 같은 것 때문에 좌절감을 느끼고 있을지도 모른다.
좌절이 찾아오면, 다음 한 가지를 확신하며 안도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 당신을 그분의 가족으로 삼기 위해 선택하셨다는 것이다. 당신이 하나님을 선택하기 오래 전에, 하나님께서 당신을 선택하셨다!
베드로전서 1:2은 이렇게 말한다. “하나님께서는 오래 전에 여러분을 선택하셨고, 그분의 거룩한 백성으로 삼기로 계획해 놓으셨습니다.” (쉬운성경)
하나님은 당신이 뭔가를 했기 때문에 당신을 선택하신 게 아니다. 당신을 선택하신 것은 하나님이 ‘그런 분’이시기 때문이다. 당신은 하나님께서 구원하실 만큼 선하지도, 똑똑하지도, 경건하지도 않았다. 하나님이 당신을 구원하신 것은 그분이 당신을 사랑하시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복음이다 - 진정 복된 소식인 것이다! 이것이 바로 당신의 전 생애의 토대가 되어야 할 복음이다.
하나님의 가족이 되기 위해 한 것이 아무 것도 없기에, 당신은 그것을 잃을 방도가 없다. 베드로전서 1:3은 이렇게 말한다. “하나님은 자비로우셔서, 우리에게 산 소망을 주셨습니다. … 우리는 새 생명을 받은 것입니다.” (쉬운성경)
하나님의 가족이 되는 것은 당신의 행위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비에 의한 것이다. 우선 당신은 하나님의 가족이 될 자격이 없었다. 또한 지금도 그럴 자격이 없다. 오직 우주의 창조주께서 “네가 내 가족이 되길 바란다”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다음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보자.
  • 자신이 틀림없는 하나님의 가족이라는 사실을 알 때, 삶에 대한 당신의 태도와 관점은 어떻게 바뀌겠는가?
  • 오늘 당신이 하나님의 견고한 사랑과 안아주심 속에서 안도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하나님께서 당신을 사용하실 수 있도록, 의심을 버리라
“…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약 1:6-7)
삶 속에서 자기회의에 빠지게 하는 것에는 다음 두 가지가 있다.
1. 남과 능력을 비교하면 자신의 능력을 의심하게 된다. 이는 하나님은 바라보지 않고 다른 사람들을 바라보기 시작하는 것이다. 다른 이들에게 더 많은 재능, 능력, 학력, 또는 경험이 있다고 생각한다. 자기 자신을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는 순간, 우리는 자기 회의에 가득 차게 된다.
성경은 자신을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는 것이 어리석다고 말한다. (고후 10:12) 하나님은 당신이 다른 누구와도 비교하길 원치 않으신다. 하나님은 당신이 고유한 존재로 있길 원하신다. 당신이 당신답길 바라신다.
2. 과거의 실패를 떠올리면 자신의 능력을 의심하게 된다. 과거의 실패를 떠올리는 것은 마치 그간의 모든 실수에 관한 영화를 머릿속에 집어넣고 그것을 되풀이하여 재생하는 것과 같다. 그것은 자신에게 엄청난 고문이다.
하나님은 당신이 과거에 초점을 맞추길 원치 않으신다. 과거의 실수에 계속 얽매어있으면, 현재를 제대로 살아갈 수 없으며, 하나님은 그러한 당신을 미래에 사용하실 수 없다. 하나님은 과거를 잊으라 말씀하신다.
과거의 의심이나 죄 때문에 하나님께 쓰임 받을 기회를 놓치지 마라. 하나님은 “네 과거가 어떻든, 난 상관 없다. 난 널 사용하고 싶다!”라고 말씀하신다.
다음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보자.
  • 당신은 하루에 몇 번이나 자신이 가진 것, 성취했거나 성취하지 못했던 것, 또는 보여지는 모습을 다른 사람과 비교하는가?
  • 당신은 하나님께서 그 허비했던 시간 대신 무엇을 이루시길 바라는가?

Friday, December 28, 2012

한 날 묵상 - 갈6:1 <은혜와 사랑안에 거하는 성령에 속한 사람들은 죄의 꾀임에 넘어간 지체를 볼 때 사랑과 온유함으로 그들을 바라볼 뿐 아니라, 그들에게 드러난 범한 죄악들을 거울삼아 자신을 비춰보도록 해야 한다>

한 날 묵상 - 갈6:1 <은혜와 사랑안에 거하는 성령에 속한 사람들은 죄의 꾀임에 넘어간 지체를 볼 때 사랑과 온유함으로 그들을 바라볼 뿐 아니라, 그들에게 드러난 범한 죄악들을 거울삼아 자신을 비춰보도록 해야 한다>

1. 성령의 사람은 성령으로 행할것을 갈라디아서 5장에서 말씀하고 있다.

2. 갈라디아서 6장을 시작하면서 바울은 갈라디아 교회의 형제들에게 "사람이 무슨 범죄한 일이 드러나거든" 그 일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에 구체적으로 말씀하고 있다.

3. 세상의 죄는 만연하고 있다. 때론 성령의 사람도 넘어지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목사라고, 교회의 직분자로, 성령의 뛰어난 은사를 선물로 받았다고 예외가 결코 될 수 없다.

4. 이 땅에 속하여 살아가는 인생 여정에는 언제나 육체의 일은 생각보다 나에게 가까이 있을 뿐 아니라, 실제로 그렇게 살아가고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5. 결국 우리는 갈5장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성령의 사람으로 육체의 일을 버리는 믿음의 삶을 살아도록 늘 깨어 있어야 한다.

6. 아울러 6장 1절에서 말씀하고 있는 "범죄한 일이 드러난 사람들"을 어떻게 관용해야 하는지 분명히 기억해야 한다.

7. 죄는 미워하데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

8. 나쁜 행실은 죄의 영향아래 있기 때문에 드러나는 일이다. 죄의 영향아래 있지 않고 늘 성령안에 깨어 있도록 나를 살피고, 범죄한 사람을 권하여야 할 것이다.

9. 1절 "형제들아 사람이 만일 무슨 범죄한 일이 드러나거든" 이들을 교회와 성도는 어떻게 해야 할까?

10. 1절 이어서 말씀하기를 "신령한 너희는 온유한 심령으로 그러한 자를 바로잡고 너 자신을 살펴보아 너도 시험을 받을까 두려워하라"

11. 오늘 본문 1절 말씀을 묵상하면서 생각나는 말씀이 있다.

12. 참고하면 좋을 것 같다.  참고) 마태복음 7장 1-6절 <네 눈 속에 들보를 빼어라>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13. 참고) 고린도전서 4장 21절 "너희가 무엇을 원하느냐 내가 매를 가지고 너희에게 나아가랴 사랑과 온유한 마음으로 나아가랴"

14. 보다 구체적으로 말씀을 살펴보자. 나는 어떻게 죄를 범한 자들을 바라보아야 하는가?

15. 첫번째는, 1) 신령한 자가 되어라.
 나는 첫번째로 말하고 싶다. 먼저 늘 신령한 자가 되어야 한다. 세상속에서 이는 그 무엇보다 우선이며 가장 필요로 하는 것이다. 신령한 자가 되지 않은 충고나 권면이나, 사람들과의 관계는 늘 약함이 드러나게 되어 있다. 그렇다면 완벽히 신령한 자가 될 때까지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지 말라는 것이 아니다. 그 만큼 신령한 자가 되는 것이 무엇보다 가장 우선이다는 것을 가르치고 있다.
 신통한 사람이 아니라, 신령한 사람, 성령이 충만한 사람이 되자.

16. 두번째는 2) 온유한 심령으로 하라.
 온유한 심령을 가진 사람은 참으로 매력적인 사람이다. 그 사람에게는 끌리는 무엇이 있다. 잘 빗어진 심령같다. 포근하면서도 위로가 되며 안기고 싶다. 그 사람에게는 품지 못할 사람이 없을 것 같다. 그만큼 어머니처럼 포근하며 아버지의 다정함을 느낄 수 있다.
 죄로 실수하여 두려움과 무서움에 떨고 있는 사람이 가장 만나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그러한 사람은 바로 온유한 심령을 가진 사람이다.

 에덴동산에서 범죄한 아담과 하와에게 찾아온 하나님의 음성을 혼내기 위함이 아니요, 꾸짖음이 아니라 온유한 심령에서 부르는 사랑의 음성이다.
 창3장 8절 "그들이 그 날 바람이 불 때 동산에 거니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9절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부르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 있느냐"

 갈릴리 호숫가에서 예수님은 시몬을 부르셨다. 실망과 좌절과 실패속에 있는 베드로를 찾아가 말씀하셨다. 그 때 예수님의 모습이 바로 온유한 심령의 소리였다.
 요21장 15절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하고 부르시는 예수님의 음성속에서 요한의 마음을 녹았으며, 실망과 좌절, 실패는 물러나고 물밀듯 내 맘음을 적시는 사랑의 포근함을 누릴 수 있었다.

 죄와 실패한 인간을 찾아가신 하나님, 예수님의 심령으로 우리도 범죄한 일이 드러난 사람들을 찾아가야 한다.

17. 세번째는 3) 바로 잡도록 권면하라. 아주 조심스럽게 잘하라.
 아주 조심스럽게 잘못된 것을 바로 잡아 주어야 한다.
 에덴동산에서의 하나님, 갈릴리 호숫가에서 예수님은 아담과 하와, 베드로에게 찾아가 그들을 바로 서도록 도와주었다.
 결국 그들은 다시 일어설 수 있었으며 새사람이 되어 자신의 길을 갈 수 있게 되었다. 일으켜 세워주는 힘이 우리 안에 필요하다. 회복하여 다시 사명의 길을 걸을 수 있도록 격려하며 권할 수 있는 힘과 능력이 우리 안에 꼭 필요하다. 거기까지 셀 수 있도록 우리는 무한 책임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죄에 넘어져 일어나 새롭게 믿음의 길을 가는 사람들을 보라. 그들은 결코 홀로 설 수 없다.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했으면 권면과 사랑이 필요했다. 그들을 격려하는 누군가 있었으면, 그들을 위해 기도하는 한 사람, 한 사람이 그들을 다시 죄에서 넘어져 살아가는 인생이 아니라, 일어서 새사람의 길을 갈 수 있도록 하였다.

 18. 네번째는 4) 자신을 잘 살펴보아라.
 내 자신을 살펴보도록 하라. 성경은 우리의 삶을 비추는 거울이다. 그렇다면 죄로 넘어진 사람들을 또한 내 삶을 비추는 거울이다. 성경의 이야기는 사람의 이야기이다. 성경에 이야기는 성공한 이야기만 있는 것이 아니다. 실패한 이야기가 수두룩하다. 실패한 이야기는 우리에게 분명한 메시지를 주고 있다. 우리 자신을 살피는 것이다.
 시편 51편 다윗의 이야기는 인생에서 실패한 이야기이지만, 그 이야기는 실상은 우리의 이야기이며, 나의 이야기이다. 그래서 그 말씀은 나를 가장 잘 해부하고 있으며, 나의 치부를 드러내는 이야기지이지만, 실상은 나를 회복시키는 이야기이다. 나를 일으켜 주시는 이야기이다.
 시편 51편 10절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12절 "주의 구원의 즐거움을 내게 회복시켜 주시고"
  죄 또한 나를 살피는 거울이며 나를 회복시켜주는 아주 좋은 방법이다.

19. 다섯번째로 5) 범죄는 시험의 결과임을 기억하라. 죄에 넘어진 결과이다. 죄를 미워해야지 미혹한 영과 맞서 싸우도록 하라. 결코 사람을 상하게 하지 말라.
 우리의 싸움의 대상은 사람이 아니다. 미혹케 하는 영이다. 적을 바로 알아야 승리할 수 이다. 적을 바로 알아야 승리할 수 있다. 적을 바로 알아야 괜한 사람을 다치지 않게 한다. 권하여 바로 서도록 하는 선한 동기로 시작했을 지라도 적을 잘 알지 못해 오히려 상처를 주는 경우가 허다하다.
 조심하라. 조심하라. 또 조심하라.

20. 여섯번째로 6) 두려움으로 깨어 있으라. "늘 깨어 있으라"
 나도 언제나 시험에 넘어 질 수 있다. 교만하지 말자. 완벽하다 말하지 말자. 자신을 더욱 살펴 늘 깨어 조심하자. 이 일을 두려워하라. 그렇지만, 두려워하는 나를 망치는 일이 되지 않고, 더욱 하나님을 찾는 일이 되도록 하라. 두려움은 믿음의 가장 큰 적이다. 두려움이 오거든 하나님을 찾으라. 하나님을 만나라.
 하나님을 찾고 만나는 것이 바로 깨어 있다는 증거이다. 언제나 우리도 동일한 "범죄한 일이 드러나는 일"에 노출되어 있음을 기억하자.

21. 오늘도 아직 예수님의 재림이 임하지 아니한 때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미혹의 영은 최후의 결전을 하고 있다. 어떻게도 한 사람이라도 더 예수님께 나아가지 못하도록, 넘어지도록 쓰러지도록, 죄 아래 있도록 하고 있다.

22. 그들 가운데 맞서 싸울 강력한 무기는 서로 사랑하는 사랑의 띠이다.
"우리는 사랑의 띠로 하나가 되었으니" 그 어떠한 유혹과 시험으로 넘어지지 않고 더욱 견고한 사랑의 진을, 성령안에 하나가 되는 강력한 진을 구축하도록 하자.

23. 마지막으로 "우리들의 무기는" 찬양이 생각난다.
    우리들의 무기는 육체가 아니요
     그러나 강하오 참으로 강하오
    우리들의 무기는 육체가 아니요
     그러나 강하오 성령안에서
    견고한 진을 파하는 강력이요
     강한 힘이요 참으로 강하오
    견고한 진을 파하는 강력이요
     강한 힘이요 성령안에서

24. 아멘.


Tuesday, May 8, 2012

성공하는 사역의 7가지 특징 - 출처 : 목적이 이끄는 사역자료, 릭워렌 칼럼



기독교 역사상 가장 영향력 있는 리더 가운데 한 사람은 사도 바울일 것입니다. 바울은 휴대전화도 없었고 비행기도 없었으며 인터넷도 되지 않은 시대에 살았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에서 로마제국에 이르기까지 기독교에 큰 영향력을 끼쳤습니다. 새들백교회의 릭 워렌 목사는 사도 바울의 삶에서 리더의 7가지의 특징을 발견하고.SUCCESS(성공)이라는 단어에 대입해 설명합니다. 이 7가지 특징이 바울을 기독교 역사상 가장 영향력 있는 지도자로 만들었다고 말합니다. 그 중에서 우선 세 가지를 살펴 보겠습니다.
S- Sense of direction (방향감각)
U- Understanding (이해)
C- Commitment (헌신)
C- Compassion (긍휼)
E- Enthusiastic faith (열정적인 믿음)
S- Service to others (섬김)
S- Staying power (지속력)
S- Sense of Direction(방향감각)

여러분이 만약 어디로 갈 지 모른다면, 결국 아무 곳에나 가 있게 될 것입니다.
바울은 분명한 목적이 있었습니다. “또 내가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곳에는 복음을 전하지 않기를 힘썼노니 이는 남의 터 위에 건축하지 아니하려 함이라”(롬 15:20). 바울은 선구자였습니다. 그는 이미 있는 교회를 이끌려고 하지 않았고 새로운 것을 시작하길 원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바울을 어떤 종류의 사역으로 부르셨는가 라는 물음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이미 바울은 그 사역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기 때문에 성공하지 못합니다. 사람들은 몇 년간은 어떤 일을 했다가 또 다음에는 다른 일을 하고 그 다음에 또 바꾸고 이런 식으로 살아갑니다. 그리고는 40,50,60세가 되어 뒤 돌아 보면 한 열 가지쯤 다른 일을 해 왔음을 알게 됩니다. 정확히 초점을 맞추지 못하고 이리저리 흔들린 삶을 살았다는 이야기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무엇 때문에 부르셨는가?”라는 질문에 즉시 대답할 수 있어야 합니다.
삶 속에서 ‘왜’라는 질문에 대해 이해하기 시작하면, 하나님께서는 ‘어떻게’를 보여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이해하기 시작할 때 사역은 성공합니다.

U- Understanding (이해)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빌 4:12). 바울은 살아오면서 만족하는 비결을 배웠습니다. 그러나 결코 쉬운 것은 아니었습니다.
여러분은 목표를 가진 사람들이지만 어떤 상황에도 만족해야 한다는 말은 상당히 모순처럼 들립니다. 그러나 목표가 없을 때 즉 목표를 다 이루고 나서 만족할 수 있다는 말은 아닙니다. 여러분이 어디를 가든지 목표와 함께 행복해 하는 것이 만족입니다. 목표에 도달하기 전까지 행복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면 결코 행복해 질 수 없습니다.
실제적인 사역의 모습과 이상적인 사역 사이에는 항상 팽팽한 긴장감이 있습니다. 마음속에는 이상과 목표를 간직하고 있어야 하지만, 현실과 함께 살아가야 하고 그것 때문에 좌절해서는 안됩니다. 목회자는 교회가 안정되고 좋은 상태에 이르렀다고 해서 안주해서도 안됩니다. 늘 노력하고 움직이며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주께서 너희 마음을 인도하여 하나님의 사랑과 그리스도의 인내에 들어가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살후 3:5). ‘인내’와 ‘이해’는 항상 함께 하는 단어입니다. 사람들이 일이 채 끝나기도 전에 그만두는 것은 그 일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고 비전을 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사소한 일에 너무 집중한 나머지 사역의 전체적인 그림을 보지 못합니다.
문제에 대해서 이해하지 못했을 때보다 충분히 이해했을 때 훨씬 더 인내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사역을 지속해주는 인내는 어디에서부터 온 것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입니다. 여러분의 마음을 말씀으로 채우십시오. 말씀이 여러분을 지혜롭게 할 것입니다.
C- Commitment (헌신)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행 20:24).
바울은 헌신이 무엇인지 알았습니다. 그리고 조금도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자기 자신을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진 사람만이 주님을 따를 수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의 종으로서 우유부단 하지 말고 겁쟁이처럼 주저 하지 말라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온전한 헌신을 드려야 한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단호하게 이 일을 감당해야 합니다. 진정으로 중요한 일에 헌신 하십시오. 그리고 예수님을 섬기는 일에 자원하는 마음으로 여러분 자신을 드리십시오.

C- Compassion(긍휼)
“내가 예언하는 능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 것도 아니요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고전 13:2-3). 
사랑이 없는 삶은 아무 것도 아닙니다. 마태복음 22장에서 예수님은 ‘사랑’이 우리의 첫째 되는 책임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사역은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사랑은 곧 선택입니다. 다른 사람에게 관심을 갖겠다는 헌신입니다. 성공적인 사역을 하고 싶다면, 사람을 사랑해야 합니다. 골로새서 3장 12절에서 바울은 사역의 성공 비밀 한 가지를 알려주고 있습니다. “너희는 긍휼을 옷 입으라” 이것이 바울의 사역을 성공적으로 이끈 비법입니다. 긍휼이란 무엇입니까? 긍휼이란 사람들의 필요에 민감해 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실은 단순히 민감해 지는 것을 넘어서 그들에게 무언가를 해 주는 것을 의미합니다. 동정은 “네가 아프다니 참 안됐다”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공감이란 “네가 아프니 나도 아프다” 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긍휼은 “네 아픔을 멈출 수 있다면 내가 어떤 것이라도 해 줄께”라고 말합니다. 그것이 십자가에서 죽는 일이라도 말입니다.

E- Enthusiastic faith(열정적인 믿음)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롬 8:31b).
제가 바울을 사랑하는 이유는 그가 영원한 낙천주의자이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태장으로 맞고, 돌로도 맞았으며, 파선하고, 옥에 수없이 갇히기도 하였지만 늘 긍정적이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위해 위대한 일들을 하였고 또한 하나님께서 베푸실 위대한 일들을 기대하였습니다. 성공적인 사역을 하고 싶다면, 열정적인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소망을 가지십시오. 바울은 소망이 없는 불가능한 상황은 없다고 믿었습니다. 빌립보서 4장 13절에서는 하나님 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라고 고백 하였습니다. 바울은 열정적인 믿음으로 정말 그렇게 했습니다. 열정이 없이는 어떤 위대한 일도 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마가복음 9장 23절 후반부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 고 말씀하십니다.
사람들이 저를 비웃으며 이렇게 말한 적이 있습니다. “오렌지 카운티에서 교회를 짓기 위해 70에이커(약 85,694평)의 땅을 사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제가 교회에서 처음 예배를 드릴 때, “우리가 앞으로 최소한 50에이커(약 61,210평)의 땅을 가지게 될 것입니다.”라고 말했더니 사람들이 “우리가 누구라고 생각하십니까?” 라고 물었습니다. 잘못된 질문입니다. 올바른 질문은 “하나님이 어떤 분이라고 생각하십니까?”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사역의 크기를 결정하도록 하십시오.

S- Service to others(섬김)
효과적인 사역을 하고 싶다면, 다른 사람을 섬기십시오. “이뿐 아니라 그는 동일한 주의 영광과 우리의 원을 나타내기 위하여 여러 교회의 택함을 받아 우리가 맡은 은혜의 일로 우리와 동행하는 자라” (고후 8:19). 바울은 자신을 표현할 때 “그리스도의 종된 나 바울은”이라는 타이틀을 즐겨 사용했습니다.
섬김이 없이는 성공도 없습니다. 교회에서나 세상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다른 사람을 섬기지 않고도 성공 했다면, 그것은 거짓이고 위조된 성공입니다. 진정한 성공이 아니고 보이는 이미지에 지나지 않습니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만나십시오. 사역뿐 아니라 다른 분야에서도 성공하는 방법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내가 너희 영혼을 위하여 크게 기뻐하므로 재물을 사용하고 또 내 자신까지도 내어 주리니 너희를 더욱 사랑할수록 나는 사랑을 덜 받겠느냐” (고후 12:15). 바울이 이런 말을 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의 섬김의 마음 때문이었습니다.

S- Staying power(지속력)
사역은 포기하고 싶어도 참아야 하는 것입니다. 문제가 있다고 해서 바로 포기해 버리면, 사역에서 어떤 일도 이룰 수 없습니다. 갖가지 어려움은 언제나 여러분 주변에 있기 마련입니다.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박해를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 (고후 4:8-9). 바울은 하나님을 섬기는 일이 쉽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절대 쉬운 일이 아닙니다. 포기하지 말라고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좋은 예가 있습니다. 사도행전 14장에서 바울이 한 마을에 들어가 말씀을 전합니다. 사람들이 바울의 말을 듣기 싫어하여 그를 돌로 쳤습니다. 사람들은 바울이 죽은 줄로 알고 그를 시외로 끌어 내쳤습니다. 그 다음에 바울이 어떻게 한 줄 아십니까? 다음 마을에 가서 말씀을 다시 전했습니다. “저는 교회를 위해서 열심히 했는데 정말 낙심됩니다. 다시는 교회를 섬기지 않겠습니다. 아무도 제 사역에 대해서 감사해 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제 그만 두겠습니다.”라고 바울은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냥 다시 일어났고, 다른 마을에 가서 지금껏 해왔던 일을 동일하게 했습니다.

사역의 최종 목적지는 바꿀 수 없습니다. 그러나 사역의 방향은 지금 즉시 바꿀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사역이 살짝 잘못된 방향으로 빗나가있을 수도 있습니다. 만약 그렇다면 오늘 바꾸실 수 있습니다. S-U-C-C-E-S-S의 7가지 원리를 적용해 보십시오. 올바른 방향으로 다시 시작하도록 여러분을 이끌어 줄 것입니다.

출처 : 목적이 이끄는 사역자료, 릭워렌 칼럼

Friday, December 23, 2011

"중심" - 조신영. 비전과 리더십.

"중심 " 조신영. 비전과 리더십

"생각하는 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 조신영.

* 모든 생각의 저 아래에는
 우리의 믿음이 깔려 있다네.
 마치 영혼의 마지막 베일과도 같이. "중심"- 조신영, p71.

"진정으로 원하는 소망을 분명하게 정하고, 그 소망이 영혼의 마지막 베일 너머에 있는 중심에 와 닿도록 해야 한다" p78.

"소망이 중심에 닿게 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구체적인 소망의 내용을 담은, 열 개의 어절로 된 한 문장을 만드는 것이다. 우리의 내면은 말의 지배를 받는다. 말에는 각인력, 견인력, 창조력이 있어서 소망을 중심에 새기고 집중시키는 데 가장 큰 힘을 발휘한다" - "중심" p78.

"내면의 중심에 간절한 소망이 뚜렷하게 각인되지 않으면 온갖 부정적인 생각들이 무의식의 영역에 침투해서 결국 중심을 오염시키고 말 것이다. 불안, 두려움, 공포, 열등감, 좌절, 실패에 대한 이미지들이 서서히 중심을 물들이고 나면, 오염도니 중심은 부정적인 결과만을 확대 재생산하는 악순환에 빠지게 된다." p79

"소망이 현실로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중심을 건드려야 하고, 중심에 소망이 맞닻는 순간 이미 이루어졌다는 확신이 들게 되는 법이다" p87.

"드림 센텐스를 반복하면 어느 순간 임계점에 다다르게 되는데 바로 그때 확신의 문이 활짝 열인다고 했다. 그러나 임게점을 지나는 것 자체가 쉬운 일이 아니다. 드릴이 중심으로 뚫고 내려가는 과정에서 엄청난 장애물들을 만나게 되기 떄문이다. 그 장애물이란 부정적인 경험을 통해 스스로 학습한 부정적인 생각들이다. 이것이 바로 내면의 적이다. 드림 센텐스는 그 적들을 깨부스는 유용한 참과 검, 때로는 방패가 되는 셈이다." p87

* 중심을 새롭게 하는 첫 번째 지혜
영혼의 마지막 베일 그 아래에 중심이 있다.
1. 지구의 중심에 핵이 존재하고 세포의 중심에도 핵이 존재하듯 만물에는 중심이 있다.
2. 우리의 내면 가장 깊은 곳에 중심이 존재한다.
3. 중심에는 상상을 초월하는 강렬한 에너지가 응축되어 있다. 중심의 위력을 깨닫고 중심을 잘 관리하는 것이 행복하고 성공적인 삶을 이루는 비결이다.
4. 중심에는 우리의 소망을 현실로 이루어 주는 능력이 내재되어 있다.

* 중심을 새롭게 하는 두 번째 지혜
중심은 진정한 소망을 반드시 이루어 낸다.
1. 피상적인 소원은 사소한 장애물에도 쉽게 포기하게 되지만 진정한 소망은 모든 장애를 돌파하고 중심에 닿을 정도로 간절한다.
2. 드림 센텐스를 반복하는 과정을 통해 피상적인 소원은 걸러지고 진정한 소망만이 중심에 닿을 수 있게 된다.
3. 중심은 마치 생명을 품고 있는 알과 같이 자신을 뚫고 들어온 소망을 잉태한다.
4. 이 과정을 확신 conviction 또는 믿음 faith의 단계라고 부른다. 믿음의 단계에 도달한 소망은 반드시 현실로 이루어진다.

"단지 뭔가를 소망하고 그것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확신의 단계를 이를 때까지 노력하고, 그 결과로 지고의 평화를 맛본다는 그런 메커니즘이 전부가 아니야. 더 근본적인 걸 찾아야 해. 가장 중요한 것을 찾아야 한단 말이지. 핵발전소의 힘을 이용할 생각만 할 게 아니라 그 힘의 원천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한다고." p136.

"누구도, 그 무엇도 분명한 소망을 가진 인간의 의지를 꺽을 수 없다." p138.

"창조의 모든 행위에는 하나의 근본 원리가 있다. 우리가 스스로 하겠다는 결단을 내린 순간 하늘도 움직인다는 것이다." 괴테  p139.

"결단 decision이 뭔지 아나? from(~로부터)의 뜻을 가진 de와 to cut(잘라 내다)의 뜻을 가진 caedere가 만나서 decision이 됐다네. 결단을 내린다는 건 이루겠다는 마음을 먹는 것 외에는 다른 가능성을 다 잘라 버린다는 뜻일세.: p140.

"멘탈 비거러스 Mental vigorous!란 의욕이 샘솟고 뇌 내 신경전달물질이나 호르몬의 균형에 변화가 일면서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끊임없이 용솟음치고 직관이 날카롭게 작용하는 상태를 말한다. 이 상태에서는 미래에 대해 긍정적인 사고와 긍정적인 감정을 갖게 된다. 이런 활기차고 역동적인 심리 상태를 멘탈 비거러스라고 한다." p143.

"소망이 중심을 뚫고 들어가면 가슴이 셀레면서 마음에 깊은 평안이 찾아오고 가진 능력을 최대로 발휘하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확신의 경험이다. 뇌의학에서는 편도핵 부위가 활성화되는 단계라고도 한다. 내면의 중심이 움직일 때 개인적으로든 집단적으로든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폭발적인 에너지가 분출된다." p145.

*카이로프랙틱(척추교정)
 척추가 우리 몸의 중심이 아니냐? 여기 결리네, 저기 결리네 하는 사람들 눕혀 놓고 만져 보면 대부분이 척추 문제야. 척추가 휘었으니 신경통에 안 걸릴 제간이 있나. 척추로 혈관이며 신경이며 중요한 것들이 다 연결되어 있는데 말이야. 원주민들도 마찬가지더라고.
 우두둑우두둑, 굽은 척추를 바르게 펴 주면 효과가 바로 나타난단 말이지. 막힌 데가 뚫리면서 금세 혈액이 좋아져. 통증도 가라앉고, 물론 한 두 번 했다고 다 고쳐지는 건 아니지만 꽤 좋아지긴 하거든.
 인생에도 척추가 있다. 문에 보이지 않고 손에 잡히지 않아도, 내 삶을 지탱하는 척추 같은 게 있다. 그런데 다들 그놈의 척추가 휘어졌단 말이지. 그러니 인생이 고통스럽지 않겠어?
  '모든 생각의 저 아래에는 우리의 믿음이 깔려 있다네. 마치 영혼의 베일과도 같이.' 인생의 중심이란  게 '모든 생각의 저 아래, 영혼의 마지막 베일'에 싸인 곳에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중심의 힘은 대단해요. 소망이 중심을 뚫고 들어가면 그 위력이 나타나죠. p150-153.

"평소에 잘 먹고 운동 열심히 했던 게 오히려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왔지. 젊고 건강 관리를 철저하게 한 사람일수록 암세포 역시 건강하게 잘 자라거든, 그것도 아주 빨리 말이야."  p155

"근본적인 중심에서 나아가 '근본적인 이해의 단계'에 들어가야 한다. 태초에 하나님이 사람을 빚을 때 영혼의 가장 깊은 곳에 '중심'이라는 핵발전소를 만들어 주신 셈이야. 비밀의 장소지. 그런데 거기서 멈추면 안돼. 피상적인 해결은 또 다른 문제를 불러오기 마련이지. 그래서 근본적인 이해의 단계로 들어서는 게 중요하다. 단지 뭔가를 소망하고 그것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학신의 단계에 이를 때가지 노력하고, 그 결과로 지고의 평화를 맛본다는 그런 메커니즘이 전부가 아니야. 더 근본적인 걸 찾아야 해. 가장 중요한 것을 찾아야 한단 말이지. 핵발전소의 힘을 이용할 생각만 할 게 아니라 그 힘의 원천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한다고" p159-160.

"네 스스로 찾아야 해. '근본적인 이해.' 말 그대로야 누가 가르쳐 줘서 알 수 있는 문제도 아니지만, 설사 지식적으로 안다고 해도 근본적으로 이해한다고 할 수는 없다. 네 상황이 좀 어렵딘 하지만 직접 부딪혀 가며 치열하게 고민해야 해. 그런 과정이 있어야 스스로 깨닫는 날이 와. 그때가 되면 내 말이 무슨 뜻인지 알거야" p161.

"사람들이 왜 스타를 필요로 하는지 알고 있나? 왜 영국인들은 주말마다 미친 듯이 축구장으로 몰려드는 것일까? 왜 미국인들은 퇴근만 하면 TV 앞에 둘러앉아 프로 야구에 빠져드는 걸까? 중심이 채워지지 않아서 느끼는 허전함 때문이다. 우리 중심은 블랙홀과도 같아서 뭔가를 끌어들이게 마련이지. 그런데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인생을 걸만큼 매력적인 게 딱히 뭐가 있겠나? 첫바퀴 돌듯 돌고 도는 반복적인 일상에 갑갑함을 느끼고 지친 사람들이 저런 스타나 운동 경기에 감정을 이입하며 대리 만족을 하는 거라고." P164.

* 60년대 하버드대학의 개혁을 주도했던 내이턴 푸쉬 총장의 말. p164.
오늘날 젊은이들에게는 네 가지가 반드시 필요하다.
마음껏 흔들 수 있는 깃발,
목 놓아 부를 수 있는 노래,
철저히 믿을 수 있는 신조,
목숨을 걸고 따를 수 있는 지도자.

"중심 - 중심中心 = 충
"가운데 중(中), 마음 심(心), 가로로 읽으면 중심인데, 세로로 놓고 읽으면 뭐가 되나? 충성 충(忠)이 된다. 인간은 자신의 중심에 놓인 것에 충성을 다하는 존재라는 사실을 일지 말자. 마치 지구가 태양을 중심으로 공전하고, 달이 지구를 중심으로 공전하듯 우리는 자신의 중심에 놓인 그것을 축으로 맴돌며 충성을 바치는 존재란 말이지." P167.

* 코페르니쿠스적 발상
"지금의 내 모습은 그동안 눈에 보이는 대로 하찮은 것들이 중심에 스며들도록 내버려 둔 탓이야. 중심에 놓어야 할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는 게 필요하다는 말이야. 인생의 척추를 바로 세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발상의 전환이 있어야 비로소 근본적인 이해의 단계에 들어갈 수 있다" p172.

"근본적인 이해의 단계는 명사noun가 아니다. 착각하지 말자. 사실 그 본질은 동사verb다. 오로지 명사인 줄로만 알고 생각해서 단지 어느 순간 이걸 느끼고 깨닫기를 원할 뿐이야. 그래 가지고선 알 수가 없는데 말이야. 스스로 낮추고 희생해야만 알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움직임이 없이는 도무지 느낄 수 없는 것이지. 그러나 한 번 그 맛을 알면 다른 소망들은 하찮게 느껴지는 것이기도 해" p173.

* 중심을 새롭게 하는 세 번째 지혜
인간의 자신의 중심에 충성하는 존재다.
1. 중심은 단지 우리의 소망을 이루어 주는 요술 방망이가 아니다.
2. 달이 지구를 중심으로, 지구가 태양을 중심으로 공전하듯 우리의 삶은 내면의 중심을 축으로 영위되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3. 중심을 방치하거나 단지 욕망을 이루려는 목적으로만 이용할 경우,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세상의 지배적인 생각들이 중심을 오염시키게 되고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그것에 충성을 바치게 된다.
4. 그러므로 우리 중심은 가장 완전한 것으로 채워져야 한다.

* 박테리아와 북극제비갈매기
"세상에서 가장 작은 자석은 바로 박테리아야. 박테리아 몸속에는 아주 작은 자석이 들어 있다. 아직까지는 박테리아가 세상에서 제일 작은 생물이라고 알려져 있으니까 당연히 그 몸속에 있는 자석이 세상에서 제일 작겠지."
"북극제비갈매기는 10월쯤 남극에 가면 볼 수 있다. 북극이 너무 추워서 따뜻한 남극으로 이사 를 간다. 남극은 그때부터 여름이 시작된다. 나침반도 없는 북극제비갈매기가 어떻게 그 먼 거리를 잘 찾아서 갈 수 있을까? 자석 때문이다. 철새들의 뇌에 자석이 들어 있다. 아주 작은 자석이 나침반의 역할을 해 주기 때문에 아무리 멀리 날아가도 방향을 잃지 않는 것이다" p181-182.

"현재의 삶은 내가 중심에서 진정으로 원하는 것들의 결과물인 것이다" p186.

* 확신의 단계
 "우리 인생에는 중심이란 것이 존재하는데 누구나 쉽게 발견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내면의 마지막 베일 속에 감춰진 신비로운 것으로 무슨 소망이든지 진정으로 원하는 소망인 경우, 중심에 닿을 수만 있다면 반드시 이루어진다. 그런데 중심에 닿기까지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내면을 겹겹이 싸고 있는 베일을 하나씩 벗겨야 하는데 그러려면 경험으로 굳어진 부정적인 자아와 싸워야 한다. 드릴로 뚫는 작업이 필요하다. 하지만 마침내 중심에 닿으면 확신을 갖게 된다. 확신의 단계이다. 확신의 단계에 들어가면 마음에 평화가 찾아오고 소망이 마침내 이루어진다. 그런데 대부분 확신의 단계에 도달하기도 전에 지레 포기해 버리고 마니까 그래서 드림 센텐스 같은 장치가 필요하다." p186-187.

"대부분, 명사라고 착각하지만 본질은 동사인 것,
스스로 낮추고 희생해야만 알 수 있는 것,
한번 그 맛을 알면 다른 소망들은 하찮게 느껴지는 것." p191.


* 중심 - 말씀. p224-225.
"이 세상의 천지 만물은 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창조된 것입니다. 온 우주가 말씀으로 창조되었으니 피조물인 우리 인간 역시 말씀의 지배를 받는 존재인 것입니다 오늘 밤 저는 여러분에게 일시적인 도움밖에는 드릴 수가 없습니다. 내일이면 이곳을 떠나고 없을 사람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언제나 여러분 곁에 있습니다. 날마다 말씀을 약처럼 드십시오. 말씀에는 창조력과 함꼐 치유력이 있습니다. 말씀이야말로 여러분의 문제를 본질적으로 해결해 줄 치료제인 것입니다"

* 나이아가라 증후군
 소망이나 목적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인생은 강물과도 같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어디로 가 닿겠다는 구체적인 생각 없이 그냥 인생의 강물에 뛰어들어 살아가지요. 그리고 그 속에서 이런저런 사건과 사고를 만나면서 두려움에 떨기도 하고 도전하기도 합니다.
 강이 갈라지는 분기점이 다가오는데도 자신이 가고자 하는 곳이 어디인지, 어느 방향인지조차 모릅니다. 그저 강물에 몸을 의지하고 흘러갈 뿐입니다. 이것은 자신의 가치 체계가 아닌 사회적 환경에 지배에 따라 사는 삶이요, 그저 흘러가는 대로 사는 삶의 모습입니다. 흘러가는 대로 사는 존재는 더 이상 자신의 운명을 통제할 수 없다고 느끼게 됩니다.
 그러다 갑자기 물살이 빨라지고 물결이 요동치는 순간이 오지요. 그때 소스라치게 놀라며 깨어납니다. 바로 몇 미터 앞에 나이아가라 폭포가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만 이미 때는 늦었습니다. 아무리 몸부림쳐도 소용이 없으니까요.
 강 상류에서 좀 더 일찍, 좀 더 나은 결단을 내렸더라면 폭포로 떨어지는 일은 없었을 것입니다.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발목을 잡은 탓에 제때에 결단을 내리지 못한 것입니다. 살면서 겪는 크고 작은 실패들이 우리를 꼼짝 못하게 묶습니다. 한 번 실패한 사람이 왜 계속해서 실패하는 줄 아십니까? 실패를 거듭 생각함으로써 더 큰 실패들을 불러들이기 때문입니다.

 ... 현재의 삶은 내가 중심에서 진정으로 원한 것들의 결과물인 것이다...

 변화에는 꽤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고들 생각합니다. 왜 그렇게 생각할까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그동안 변화해 보려고 갖은 노력을 다해 봤지만 잘 안 됐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시간이라는 변수를 생각해 낸 것이지요. 시간이 넉넉하게 주어진다면 변화할 수 있을 것이라는 가정을 세우게 됩니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거든요. 시간의 양이 문제가 아니라 실은 어떻게 변화해야 하는지 모르기 때문에 변화가 일어나지 않은 것입니다.
 변화를 원하지 않는 사람은 숙명이 있다고 믿고, 변화를 원하는 사람은 기회가 있다고 믿습니다. 여러분은 과연 어는 쪽입니까? 지금 내가 끌어안고 있는 문제가 진정으로 변화되기를 원하십니까? 여러분의 마음 깊은 곳에 낫기를 원하는 마음이 있으신가요? 그동안 아무리 노력해도 잘 안 되었은니 이번에도 아무 변화가 없을 거야. 이 문제는 내 숙명인걸...., 이렇게 체념하고 있는 건 아닙니까?  p194-202.

* 반성할 줄 모르는 조직이 성공한다. 세상 어떤 분야에서든 성공한 이들을 보면 하나같이 반성을 모르는 인간들이라네. 상황이 안 좋을 때,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 특히 제대로 되 지 않을 때 '절대로'라고 해도 좋을 만큼 반성을 하지 않아. 참 특이한 기질들이지" p204.
 "밤낮없이 반성만 하고 있는 조직을 보면 백이면 백, 능력 없는 인간들입니다. 무슨 일만 터지면 기다렸다는 듯이 회의를 소집해서 반성을 유도하는 관리자는 성공하기 힘든 부류의 사람이에요. 늘 잘못만 지적하고 자신감을 갖지 못하게 만드니까요." p204.


* 드림 센테스 Dream Sentence 만들기
 1. 소망
 2. 열 단어로 만드라.
 3. 부정적인 낱말이 들어가지 않는게 좋다.
 4. 확신의 단계에 이르게 한다.

* 중심을 새롭게 하는 네 번째 지혜
 나의 현재 상태는 중심의 수준을 정확하게 반영한다.
1. 중심은 매우 강력한 에너지 자력을 갖고 있다.
2. 현재의 내 삶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내 중심의 자력에 이끌린 모든 것들의 집합체다.
3. 뚜렷한 소망을 품고 살아가지 않을 때, 우리의 중심에는 온갖 부정적인 에너지들이 스며들게 되고 그 결과 중심은 심하게 오염되고 부패된다.
4. 변화를 원한다면 중심에 흘러드는 부정적 에너지를 차단하고, 진정으로 원하는 것들을 중심이 받아들일 수 있도록 교정해야 한다.

 * 사랑이 없으면 unless I loved others 내가 아무것도 아니요.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다. 이 때 사랑. Love는 분명히 명사다. 그런데 지금 여기서 사용된 loved는 동사 love의 과거형이잖아. 그렇다. Love, 사랑은 명사이면서 동시에 동사인 거야,:
8절 사랑은.... 예언을 하는 사람은... 어느 날 완변학 것이 나타나면...
'완벽한 것이라? 완벽한 것이 대체 뭘까? 동사로서의 사랑? 사랑이 임하면 방언도, 예언도 멈출 것이라고 했는데 ...'  p230-234.

사랑은 명사가 아닙니다.
사랑은 아무리 아름답고 깊다 할지라도
사랑이 움직이지 않는다면
그것은 이미 생명이 떠난 것입니다
사랑은 행동입니다.
살아 움직이는 것이며
감동시키는 것이며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사랑한다고 말하면서
나를 주지 않는다면 그것은 사랑이 아닙니다.
사랑한다고 말하면서
나를 포기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사랑이 아닙니다.
사랑은 나를 온전히 주는 것입니다.
사랑은 동사입니다.
사랑하기를 주저하지 마세요.  p253-254.

"중심에 채워져야 할 것은 소망도 확신도 아니었다. 소망과 확신을 뛰어넘은 그 무엇이었다. 그게 바로 사랑이었다" p254.

"그런데 왜 '동사로서의 사랑'이 중심에 대한 '근본적인 이해'라는 거지? 근본적인 이혜의 반대 개념은 무엇인지? '피상적인 이해'" p255.

"중심을 채우는 사랑 없이 피상적으로 그저 드림 센텐스만 외우고, 소망을 이루고 문제를 해결하려는 목적으로 중심을 이용하는 것 결국 자신의 욕망을 채우려는 것에 지나지 않아. 중심은 생각보다 훨씬 더 크고 더 높고 더 넓고 더 깊은데. 알맹이는 모르고 껍데기만 아는 그야말로 피상적인 이해밖에는 못하고 있었다." p255.

"중심에 사랑이 임하면 사랑이 자기력을 뿜내어 다른 사람의 사랑을 끌어들이죠. 그렇게 사랑이 돌고 도는 거예요. 사랑이야말로 내면의 중심에 채워야 할 근본적인 것이에요." p260.

"내면의 중심은 블랙홀과도 같아서 끊임없이 뭔가를 끌어들이게 마련이다. 그런데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인생을 걸 만큼 매력적인 게 딱히 있느냔 말이지. 쳇바퀴 돌듯 돌고 도는 반복적인 일살에 갑갑함을 느끼고 지친 사람들이 저런 스타나 운동경기에 자신을 이입하며 대리 만족을 하는 거라고."p2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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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에 관한 유명한 구절이 들어 있는 고린도전서 13장이요. 우리가 잘 아는 이야기가 나오기 전에 이런 구절이 있더군요.
'Unless I loved others.' 내가 다른 사람들을 사랑하지 않는다면?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 " 여기에서의 Love는 분명히 명사인데 위의 'loved' 동사의 과거형이잖아요. 사랑은 명사이면서 동시에 동사이다.
'근본적인 이해에 도달해야 문제를 본질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
'중심에 이것이 임해야 근본적인 이해에 도달할 수 있다.'
'사람들이 대게 이것을 명사라고 착각하고 있지만 실은 동사다.'
'스스로 낮추고 희생해야만 알 수 있다.'
'일단 중심에 이것이 채워지면 다른 소망들은 하찮게 느껴진다.'

'사랑은 절대로 실패하지 않는다. 누구든지 예언을 하는 사람은 그 예언을 멈추게 될 것이다.'

중국에서 자석을 '사랑의 돌'이라고 불렀다. 부모가 자녀를 품에 안고 있는 모습, 자석의 모습이다. 근본적인 이해의 단계라고 한 말이. 우리가 중심에 채워야 할 것은, 진정으로 끌어들여야 할 것은 바로 사랑이다.
 중심에 사랑이 임하면 사랑이 자기력을 내뿜어 다른 사람의 사랑을 끌어들이죠. 그렇게 사랑이 돌고 도는 거예요. 내면의 중심에 채워야 할 근본적인 것이다.
고린도전서 13장 13절 '그런즉 이제 믿음, 소망, 사랑이 있는데 이 셋 중에서 가장 위대한 것은 사랑입니다.'
 피상적이 소망이 아니라, 진정한 소망이라면 온갖 장애물을 뚫고서라도 중심에까지 내려가 닿는다.
 여기서 키워드는 '소망'이다. 그런데 그 소망이 중심을 뚫고 들어갔을 대 우리 안에 '확신'이 생긴다. 그 확신의 단계라는 게 결국은 '믿음'이라는 키워드와 통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우리가 그토록 찾아 헤맸던 답이 '사랑'이 맞는다면, 바로 이게 중심에 대한 근본적인 이해에 도달하는 길이다.
------------------------------- p277-280.

*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어쫓나니. 요한일서 4:18.
사랑과 두려움은 정반대에 서 있다. p290.

* 스스로를 낮추고 희생해서 사랑을 실천하며 살았다. 그의 중심에 사랑이 가득 차서 다른 소망들은 하찮은 것에 불과했다. 명사가 아닌 동사의 사랑을 온몸으로 실현하며 살았다." p293.

* 중심을 새롭게 하는 다섯 번째 지혜
중심에 사랑이 임할 때 우리의 삶은 가장 완전해진다.
1. 중심에 강력한 에너지를 활용해 소망을 이루는 것도 중요하지만, 소망을 이루는 것, 그 자체로 우리의 삶이 행복해지지는 않는다.
2. 인간은 끊임없이 새로운 욕망을 추구하는 존재이며 그 결과 소망의 성취만으로 만족하지 못한다.
3. 우리를 둘러싼 환경은 우리 삶을 시시때때로 불안으로 뒤덮는다.
4. 중심에 가장 완전한 것, 즉 사랑이 임할 때 비로서 우리는 진정한 평안과 행복을 누릴 수 있다.

"내면의 중심에 동사로서의 사랑이 가득 채워질 때 모든 불안과 두려움이 사라지고 지고의 행복에 도달할 수 있다" p309.

"소망을 포기하고 사는 삶보다 자신의 소망을 확실히 깨닫고 이루며 사는 삶이 백 배, 천 배 귀한 삶이죠. 하지만 중심이 소망을 이뤄 내는 능력을 맛보는 것만으로는 시시때때로 다가오는 불안과 두려움을 극복할 수 없어요. 얼마나 가졌느냐, 얼마나 이루었느냐에 따라 행복해지는 게 아니더라고요. 소망을 이루는 것만으로는 진정한 행복에 도달하기 어려워요." p310.

"중심에 사랑이 임하면 우리는 그 사랑을 섬기게 돼 있어요. 사랑이 이끄는 삶, 얼마나 매혹적인지 그건 경험해 본 사람만이 알 수 있다." p310.

"세상에는 사람을 움직이는 세 가지 힘이 있다고 해요. 첫 번째로 공포심을 심어 주면 움직인대요. 매우 효과적이지만 저차원적인 방식이죠. 그런데 대개의 사람들은 다 이 공포심 때문에 움직여요. 미래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부진런히 일하잖아요.
 두 번째는 뭔가 얻을 게 있다는 자극을 주는 거예요. 떡고물이라도 떨어져야 움직인다는 거죠. 주위를 둘러봐요. 모두들 자신에게 어떤 이득이 있을지 판단하고 움직이잖아요.
 공포와 이익, 이 두 가지 채찍과 당근으로 세상이 움직이는 거래요. 그런데 이 두 가지를 뛰어넘는 마지막 것이 있어요. 바로 사랑이죠. 자식을 향한 부모의 사랑, 자신이 믿는 가치에 대한 사랑, 존경하는 사람에 대한 사랑, 마지막 세 번째, 사랑이 바로 사람을 움직이는 세상에서 가장 부드러우면서도 강렬한 힘이에요. 중심에 공포나 이익이 아닌 사랑이 임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이거예요." p312.

"이 비행기가 안전하게 착륙하기 위해 조종사는 얼마나 피나는 훈련을 받았을까요? 착륙이라는 것, 알고 보면 비행기의 중심을 활주로의 중심에 맞추는 과정이잖아요. 이 과정이 무난히 이루어져야 비행이 안전하게 마무리되는 거예요." p3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