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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uesday, January 10, 2012

한 날 묵상 - 창 36:1-43 <에서의 족보는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창 36:1-43 <에서의 족보는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에서의 족보는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은 반드시 성취되며,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고 이방인과 결혼하는 이야기, 그리고 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안에 거하지 않았고, 야곱은 약속의 말씀안에 거하였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도 우리의 족보를 남길 것입니다. 에서의 족보가 아니라 믿음의 가문의 족보를 남기는 은혜가 있는 삶을 살아가기를 기원합니다.

왜 에서의 족보인가?
하나님은 왜 여기서 에서의 족보를 한 장에 걸쳐서 기록하고 있는가?

1. 하나님의 말씀이 충만히 이루어지심을 보여주고 있다.
창25:23절 에서와 야곱의 출생의 시간으로 되돌아 가 보자.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두 국민이 태 중에 있구나 두 민족이 네 복중에서부터 나누이리라 이 족속이 저 족속보다 강하겠고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 하셨더라"

하나님이 주신 이삭에 주신 약속의 말씀이 성취되어지고 있다.

이삭이 에서에게 유언
창27:39-40.
"그 아버지 이삭이 그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네 주소는 땅의 기름짐에서 멀고 내리는 하늘 이슬에서 멀 것이며 너는 칼을 믿고 생활하겠고 네 아우를 섬길것이며 네가 매임을 벗을 때에는 그 멍에를 네 목에서 떨쳐버리리라 하였더라"
=> 창 36:12 "에서의 아들 엘리바스의 첩 딤나는 아말렉을 엘리바스에게 낳았으니"
 아멜렉은 누구인가? 이스라엘 백성을 괴롭힌 족속이다. 그들은 칼을 믿고 생활하였지만, 결국은 이스라엘을 섬기게 되었다.

2. 에서의 가족이야기는 이방인과의 결혼이야기이다.
   2절 "에서가 가나안 여인 중 헷 족속 엘른의 딸 아다와 히위 족속 시브온의 딸인 아나의 딸 오홀리바마를 자기 아내로 맞이하고"
 그 땅 주민 호리 족속 세일의 자손...24절 "시브온의 자녀는 아야와 아나며"
 12절 "에서의 아들 엘리바스이 첩 딤나는 아멜렉을 엘리바스에게 낳았으니 이들은 에서의 아내 아다의 자손이며"
  그 땅 주민 호리 족속 세일의 자손.. 22절 "로단의 자녀는 호리와 헤맘과 로단의 누이 딤나요"
 
3. 에서는 하나님과 관계없는 삶을 살았고, 야곱은 하나님의 언약의 말씀안에 거하였음을 비교하고 있다. 
 36:40-43.
   43절 "이들은 그 구역과 거처를 따른 에돔 족장들이며 에돔 족속의 조상은 에서더라"
 37:1 "야곱이 가나안 땅그의 아버지가 거류하던 땅에 거주하였으니"
=> 에서가 거주한 땅은 이방인의 땅이다. 그러나 야곱은 아버지 이삭이 거류하던 하나님이 말씀하신 약속의 땅, 가나안 땅에 거주하였다. 36장 마지막절과 37장 첫 절을 비교함으로서 에서와 야곱이 각각 하나님의 말씀을 어떻게 대하고 있는지를 비교하여 보여주고 있다.

 
1절 "에서 곧 에돔의 족보는 이러하니라"
9절 "세일 산에 있는 에돔 족속의 조상 에서의 족보는 이러하고"
15절 "에서 자손 중 족장은 이러하니라"
20절 "그 땅의 주민 호리 족속 세일의 자손은"
31절 "이스라엘 자손을 다스리는 왕이 있기 전에 에돔 땅을 다스리던 왕들은 이러하니라"


Thursday, December 1, 2011

한 날 묵상 - 창 27:5-45- <축복싸움. 사명이 담긴 축복이었다면 과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복받기 위해서 싸울까? 단지 눈에 보이는 축복만을 바라보고 사람들과 우리는 다른 축복 받기 위한 싸움을 해야 한다>

한 날 묵상 - 창 27:5-45- <축복싸움. 사명이 담긴 축복이었다면 과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복받기 위해서 싸울까? 단지 눈에 보이는 축복만을 바라보고 사람들과 우리는 다른 축복 받기 위한 싸움을 해야 한다>

네 명의 부모형제가 펼치는 숨막히는 축복싸움입니다. 아버지의 축복권을 놓고 벌이는 어머니와 두 아들간의 관계에서 결국 축복 싸움이 한 아들이 미움과 분노를 갖는 것으로 막을 내리고 있습니다.

무엇이 문제일까요?
왜 이러한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요?

축복에 대한 잘못된 생각입니다. 복, 복, 복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오늘 본문에서 펼쳐집니다.
그런데 진짜 복은 무엇을까요?

(오늘 본문에서 찾아보는 축복의 바른 의미, 아님 본문의 앞 뒤 문맥에 흐르는 축복의 의미를 살펴보며 연구하자)

 하나님이 말씀하신 영적인 의미와 축복의 의미가 분명히 담겨 있다. 누가 약속의 말씀을 이을 것인가? 하나님의 주신 약속의 말씀을 이을자로서의 축복이다. 그 의미는 사명의 의미도 포함되어 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약속의 말씀을 이을자로서 훈련을 받으며, 시험을 통과했던 것처럼 결코 쉽지 않는 길임을 알아야 한다.

 그러나 아직, 에서와 야곱은 그 의미를 모르고 있다. 단지 아버지가 축복하시는 복만을 받기 원했다. 사명에 붙들린 축복이 바른 축복의 의미이다.


이삭(부)
 1절 "이삭이 나이가 많아 눈이 어두워 잘 보지 못하더니"
 => 축복싸움의 시작은 이삭이 눈이 어두워 잘 보이지 않은데에서 시작된다. 가장 절묘한 타이밍에 서 있다. 하나님의 주권 1.

 5절 "이삭이 그의 아들 에서에게 말할 때에"

 왜? 이삭은 에서였는가?
 장자였으므로??
 이삭은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은 어떻게 이해하고 있었는가?

 18-22절
 23절 "그의 손이 형 에서의 손과 같이 털이 있으므로 분별하지 못하고 축복하였더라"

 분별력이 떨어진 이삭, 하나님의 계획안에 있는 이삭의 축복...
 25절 "네게 축복하리라"
 27절 "그에게 축복하여 이르되"
  28-29절 이삭의 축복
 30절 "이삭이 야곱에게 축복하기를 마치매"


리브가(모)
 6절 "리브가가 그의 아들 야곱에게 말하여 이르되"
       "네 아버지가 네 형 에서에게 말씀하시는 내가 들으니"
 => 절묘한 타이밍. 리브가가 이삭과 에서의 대화를 들었다. 하남니의 주권 2.
 7절 "죽기 전에 여호와 아에서 네게 축복하게 하라 하셨으니"
 10절 "죽기 전에 네게 축복하기 위하여 잡수시게 하라"

 왜? 에서는 아니었는가?
 하나님이 주신 말씀을 기억할 때,
 에서가 지금까지 해온 행동을 비추어 볼 때,

 13절 "어머니가 그에게 이르되 내 아들아 너의 저주는 내게로 돌리리니"
 14-17절 리브가의 준비

 42-45절 리브가와 야곱의 대화
  44절 "노가 풀리기까지 몇 날 동안 그와 함께 거주하라"
 => 몇 날이 될지, 몇 년이 될지 리브가는 알 수 없었다. 모든 주권은 하나님에게 있다. 하나님의 주권 4. 야곱의 몇 년이 그가 훈련받는 시간이었으며, 주님과 인격적으로 만나는 여정이었다.
  45절 "네 형의 분노가 풀려"


에서(형)
  늦은 에서의 등장
 30-41절
 31절 에서가 말함. "내게 축복하소서"
 33절 이삭의 대답 "그를 위하여 축복하였은즉" "그가 반드시 복을 받을 것이니라"
 34절 에서 "내게 축복하소서"
 35절 "네 복을 배앗았도다"
 36절 "내 복을 빼앗았나이다" "나를 위하여 빌 복을 남기지 아니하셨나이까"
 38절 에서 "아버지가 빌 복이 이 하나 뿐이리이까" "내 아버지여 내게 축복하소서"
 39-40절 이삭이 에서에게 대답 이삭이 에서에게는 "축복"이라는 말을 쓰지 않고 있다.
 40절 "네 아루를 섬길 것이며"

 41절 "그의 아버지가 야곱에게 축복한 그 축복으로 말미암이"
 41절 "에서가 야곱을 미워하여 심중에 이르기를 아버지를 곡할 때가 가까웠은즉 내가 내 아우를 죽이리라 하였더니"

리브가는 어떻게 에서의 심중에 있는 마음을 알 수 있었을까?
42절 "맏아들 에서의 이 말이 리브가에게 들리매" 하나님의 주권 3. 리브가는 에서의 심중의 말을 들을 수 있었다. 그 방법이 어떠했던들 들었다. 그리고 야곱의 피할 길을 생겼다.

야곱(동생)
 12절 "내가 아버저의 눈에 속이는 자로 보일지라 복은 고사하고 저주를 받을까 하나이다"


* 생각해 볼 것..
에서의 축복관과 야곱의 축복관은 차이는?
에서는 자신의 개인적인 부를 위한 축복이었다.
야곱은 하나님의 주권과 역사안에서 하나님 나라를 위한 축복이었다.
 가장 먼저는 36절에서 다시 한 번 언급되는 "장자의 명분"을 소홀히 하는 것에서 볼 수 있다.

나의 축복관은 어디인가? 에서의 축복관인가? 야곱의 축복관인가?

* 참으로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27장이다. 등장인물도 많으며, 상황도 급박하게 진행되며, 생사가 오고가며, 축복이 오고간다. 인간사 다 이런 것 아니겠는가? 그렇지만 중요한 것은 이 상황에서 하나님은 어디에 계시는가? 누가 하나님을 지금 기억하고 있는가?
 반드시 하나 기억해야 할 것은 이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역사, 하나님의 주권, 하나님의 통치는 계속되고 있다는 것이다.
 참으로 놀라운 사건이며, 은혜가 아닐 수 없다.

Friday, November 18, 2011

한 날 묵상 - 창 25:22- 34 <에서와 야곱, 그들은 무엇이 달랐는가? 하나님이 주신 명분을 가볍게 여김>

한 날 묵상 - 창 25:22-34 <에서와 야곱, 그들은 무엇이 달랐는가? 하나님이 주신 명분을 가볍게 여김>
 => 하나님이 주신 말씀을 가볍게 여기고 있지는 않은가?
 목사님을 통해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얼마나 귀하게 여기는가?
 말씀을 묵상을 통해, 아니면 여러 상황을 통해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 하나님의 이끄심을 얼마나 마음에 판에 세기는가?
 오늘 한 날 스스로에게 질문해 본다.
  나는 얼마나 말씀을 귀하게 다루는가? 마음판에 새겼는가? 행실로 옮겼는가?


하나님의 주신 언약의 말씀을 품고 있는가?
말씀을 얼마나 마음속에 품고 행함으로 실천하고 있는가?


에서와 야곱의 출생부터 성장하여 장성할 때까지 둘을 비교하는 말씀이다.

22-23절 여호와의 선택. 참고 신약
 23절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
 [롬 9:10-13] "......리브가가 우리 조상 이삭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잉태하였는데 그 자식들이 아직 나지도 아니하고 무슨 선이나 악을 행하지 아니할 때에 택하심을 따라 세우신 하나님의 뜻이...... 리브가에게 이르시되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 하셨나니 기록된바 내가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하였다 하심과 같으니라" 
 - 악이나 선이 있기전에 하나님은 선택하셨다. 하나님의 계획하심이 있었다. 로마서에서 이방인을 향한 구원을 말씀하시면서 에서와 야곱의 선택에 대한 예를 들으심.

24-26절 에서와 야곱의 출생
 25절 "먼저 나온 자는 붉고 찬즉 전신이 털옷 같아서 이름을 에서라 하였고"
 26절 "후에 나온 아우는 손으로 에서의 발꿈치를 잡았으므로 그 이름을 약보이라 하였으며"

27-28절 에서와 야곱의 성장
 27절 에서 -> 익숙한 사냥꾼. 들사람
 28절 야곱 -> 조용한 사람. 장막에 거주

29-34절 에서와 야곱의 장성, 그리고 장자권
 29절 에서 "심히 피곤하니"
 30절 "그 붉은 것을 내가 먹게 하라"
 31절 야곱 "장자의 명분을 오늘 내게 팔라"
 32절 "내가 죽게 되었으니 이 장자의 명분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리요"
 33절 "장자의 명분을 야곱에게 판지라"
 34절 "에서가 장자의 명분을 가볍게 여김이었더라"

[히12:16-17] "음행하는 자와 혹 한 그릇 식물을 위하여 장자의 명분을 판 에서와 같이 망령된 자가 있을까 두려워하라. 너희의 아는 바와 같이 저가 그 후에 축복을 기업으로 받으려고 눈물을 흘리며 구하되 버린바가 되어 회개할 기회를 얻지 못하였느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