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esday, January 29, 2013

말씀은 읽는게 아니라 먹는거래요! - 정훈


말씀은 읽는게 아니라 먹는거래요! - 정훈

오늘은 무엇을 먹을까?
아내는,
아침마다,
끼니마다,
생각에 잠긴다.

오늘은 무엇을 먹을까?
나와 아이들은.
아침마다,
끼니마다,
기대를 한다.

그런데,
더 이상
생각 할,
기대 할,
필요가 없다.

오늘, 내일,
매일 매일
꼭 먹어야 할 것이 있기에!!!

기록된바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 아니요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 것이다.

이제,
아침마다,
끼니마다,
하나는 생각과 기대는
없다.

오늘 
아내,
나와 아이들은
말씀을 먹었다.


2013. 1. 23 by Hooley Dooley.

참고말씀
로마서 2장 13절
"하나님 앞에서는 율법을 듣는 자가 의인이 아니요 오직 율법을 행하는 자라야 의롭다 하심을 얻으리니"

Monday, January 28, 2013

국민연금에서 외국연금 찾아 드려요!

국민연금에서 외국연금 찾아 드려요!
사회보장협정에 의한 연금 청구안내
미국 주재원으로 근무하면서 미국 사회보험료를 납부하신 경우 그 연금액을 어떻게 청구할 수 있을까요? 국민연금공단에서 외국연금을 간편하게 청구할 수 있도록 돕고 있는데요, 좀 더 자세하게 알아보실까요?

국민연금공단은 우리나라 사회보장협정 실무기관으로 외국에서 사회(연금)보험료를 납부하신 분의 외국연금 청구를 지원하고 있습니다. 
 2012년 5월 현재 우리나라와 사회보장협정을 통해 외국연금을 수급하는 국민이 1,900여명(미국 1,535명, 캐나다 178명, 독일 133명, 프랑스 62명 등)에 이르고 있습니다. 

외국연금 청구 자격요건을 살펴보겠습니다.

- 외국연금 청구 자격요건 -
 1. 우리나라와 연금가입기간 합산 사회보장협정을 체결한 나라에서 일정기간
     (예 :
  미국 18개월) 이상 연금보험료를 납부하였고,
    【 합산협정체결국(16개국) 】
      미국, 캐나다, 독일, 프랑스, 호주, 헝가리, 체코, 아일랜드, 벨기에, 폴란드,
      불가리아, 슬로바키아, 루마니아, 오스트리아, 덴마크, 인도
     ※ 일본, 사우디아라비아, 리비아, 이집트 등은 해당되지 않습니다.

 2. 국민연금과 외국연금 합산 가입기간이 국가별 최소 가입기간 이상이며,     예) 미국, 호주 : 10년,    독일 : 5년,    오스트리아 : 15년 

 3. 해당국에서 사회보장번호를 부여받은 사실이 있고,
 4. 외국연금 수급개시연령에 도달한 경우     예) 미국 : 조기 62세, 완전 66세, 독일 및 프랑스 : 65세

          
위의 4가지 요건을 모두 충족시킬 경우에만 해당 국가의 연금을 청구하실 수 있습니다 .

잠깐, 이미 외국 연금을 청구하여 외국연금공단 등에서 연금 미해당 통지를 받으신
분께서는 청구할 수 없다는 것 꼭 기억해 주시기 바랍니다.
 
 
☆ 문의처 : 국민연금공단 국제협력센터 (☎02-2176-8700)
☆ 공단 홈페이지 ( www.nps.or.kr ) : 연금정보 - 사회보장협정 

성공적인 소그룹 만들기 - 363호 - 성공적인 소그룹 만들기(소그룹 네트워크)

교회 안에서 소그룹을 인도하는 지도자들은 누구나 성공적인 소그룹을 원한다. 그러나 성공적인 소그룹을 위해 어떻게 시작해야 하는 지를 모르고 소그룹을 시작하고 진행하는 경우가 많다. 단지 교회 안에 소그룹이 필요하고 있어야 하기 때문에 하는 것이다. 성공적인 소그룹을 만들기 위해서는 다음 3가지를 가장 먼저 점검해야 한다.
1.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 
성공적인 소그룹을 만들려면 여러 가지 방법을 잔뜩 모아 놓은 것 이상이 필요하다. 성공적인 소그룹은 단지 올바른 방법을 제때에 적용한다고 해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성공적인 소그룹을 위해 최우선 순위에 두어야 할 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와의 개인적인 관계에서 성장하는 것이다. 올바른 지식과 방법은 하나님과 동행한 이후에야 생길 수 있다. 소그룹을 인도하기 위한 가장 좋은 준비는 하나님과 교제를 발전시키고 삶 가운데서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깨어 있는 것이다. 소그룹 사역은 예수 그리스도와 얼마나 친밀한 교제를 나누며 성령의 인도하심에 얼마나 민감히 깨어 있느냐에 달려 있다. 그리스도께서 최우선 순위에 있어야 한다. 소그룹은 관계 속에서 일어나는 것이기에 교회 안에서의 소그룹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먼저 바르게 세워져 있지 않으면 성공적인 소그룹으로 갈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소그룹 인도자는 소그룹을 시작하기 전에 자신이 얼마나 그리스도와 친밀한 관계 속에 있는가를 늘 점검하며 나아가야 하는 것이다.
2. 올바른 소그룹 사역의 동기 
소그룹의 동기가 무엇인지를 정확히 알고 있어야 한다. 무엇을 위해 소그룹을 하는가에 대한 답을 인도자는 분명히 가지고 있어야 한다. 교회 안의 소그룹의 동기는 무엇인가? 바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한 것이다.(골3:17) 교회 안의 소그룹 인도자들은 이 점에 있어서 정직히 자신을 돌아 볼 수 있어야 한다. 성공적인 소그룹을 통해 교회의 외적 성장을 바라거나 자신의 성공에 대한 성취감을 기대하고 있다면 잘못된 동기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많은 소그룹 지도자들이 자기도 모른 사이에 자신의 능력으로 소그룹을 성공시키고 성공적 수행에 대한 주목과 찬사를 받고 싶어한다. 교회 안의 소그룹 인도자는 늘 이점에 대해 주의하여야 한다. 그리스도께서 영광을 받으시기 위한 동기를 가진 소그룹이 되어야 할 것이다.
3. 소그룹의 목적과 목표설정 
교회 안의 소그룹은 그 소그룹이 존재하는 목적과 목표가 분명해야 한다. 소그룹을 통해서 무엇을 성취하고 싶은 지에 대해 분명해야 한다. 이것이 없이 행동의 방향을 정한다는 것은 매우 어리석은 일이다. 왜냐하면 목적과 목표가 없으면 방향이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목적과 목표는 어떻게 다른 것인가?
목적은 그룹이 왜 존재하는가에 대한 문제이다. 그룹이 어떤 이유로 만나고 그룹의 초점이 무엇인지를 말하는 것이다. 너무도 당연히 있어야 할 것으로 보이지만 상당수의 소그룹들이 분명한 목적 없이 진행되고 있다. 소그룹의 목적은 대개 그 그룹의 유형에 잘 반영되어 있다. 대체로 4가지 유형의 그룹이 있다. 과정중심의 소그룹, 내용중심의 소그룹, 과업중심의 소그룹, 필요중심의 소그룹이다.
과정중심의 소그룹은 그룹 멤버 상호간의 관계발전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주로 교제를 위한 그룹들이다.
내용중심의 소그룹은 새로운 지식과 정보를 배우고 토의하는 위한 그룹이다. 성경공부를 위한 그룹이 예가 된다.
과업중심의 소그룹은 그룹이 함께 어떤 일이나 책임을 완수하는 것으로 대개 사역이 그 대상이 된다. 위원회나 부서 그리고 전도 팀 등이 예가 된다.
필요중심그룹은 그룹멤버들이 공통적인 필요를 채우기 위한 그룹으로 회복과 치유를 위한 소그룹이 예가 된다.
목표는 목적과 연관하여 구체적으로 성취하기를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것이다. 소그룹이 함께 추구하는 과정 속에서 만들어지는 “측정 가능한 결과”이다. 소그룹의 최종적인 목적을 이루기 위해 눈에 보이는 단계적 목표들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기간적으로 언제까지, 분량적으로 얼마나에 대한 분명한 목표가 있어야 하는 것이다.
이렇게 소그룹이 하나님과의 관계를 최우선 순위에 두고, 소그룹에 대한 올바른 동기를 가지며, 소그룹의 목적과 목표를 분명히 하는 것은 성공적인 소그룹을 위한 첫걸음이 될 것이다.
* 이 글은 닐 F. 맥브라이드의「성공적인 소그룹 만들기」의 일부를 발췌 각색한 글입니다.

Sunday, January 27, 2013

생일( 生業)

생일(生業) - 생生 살 일業

생명을 살리는 날

오늘는 나의 생일이다
사실,
어제도 나의 생일이었다
그리고,
내일도 나의 생일이다

사실,
날마다 내 생일이다

왜?
날마다 내 생일이냐면,
나는 오늘 꿈을 꾸었다.
진짜 꿈 말이다.
하나님이 나를 부르셨다.
생명을 살리는 일에,
그래서,
나는 날마다 생일이다.

생살일
생일
생명을 살리는 일
이게 바로
내 일이다

오늘은 나의 생일이다
어제도 생일이었다
물론 내일도 생일이다
나는,
날마다 생일이다.


2013. 1.21 by Hooney Dooley.


오늘 생일케익은 김혜민 선생님이 준비해 주셨습니다.

Saturday, January 26, 2013

진정한 여행 / 나짐 히크메트


진정한 여행 / 나짐 히크메트
 
가장 훌륭한 는 아직 씌여지지 않았다.
가장 아름다운 노래는 아직 불려지지 않았다.
최고의 날들은 아직 살지 않은 날들
가장 넓은 바다는 아직 항해되지 않았고
가장 먼 여행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불멸의 춤은 아직 추어지지 않았으며
가장 빛나는 별은 아직 발견되지 않은 별
무엇을 해야 할 지 더 이상 알 수 없을 때
그 때 비로소 진정한 무엇인가를 할 수 있다.
어느 길로 가야할 지 더 이상 알수 없을 때
그 때가 진정한 여행의 시작이다.
 
Hikmet, Nazim(1902.1.20~1963.6.3)
터키의 혁명적 서정시인. 극작가.

Thursday, January 17, 2013

너 지금 뭐하니? - 정훈

기도하니? 

그래 나 기도한다

기도하니 좋다

기도하니 생명이 싹튼다

기도하니 사랑 또한 싹튼다

기도하니 생각이 정리되고, 

기도하니 꿈을 꿀 필요가 없다

기도하니 사람들이 생각나고,

기도하니 사람들이게 할 말이 적어진다

기도하니 마음이 가볍다

기도하니 이 자리가 그립다

기도하니 이 자리를 또 찾고 싶다

기도하니 저 멀리 동이 터오고 있다

기도하니 내 가까이 희망이 솟아오고 있다

그래 지금 너 뭐하니? 기도하니?

그래 나 지금 기도해!!!

너도 하길 바래!!!

2013. 1. 17 by  Hooney Dooley. 

Wednesday, January 16, 2013

하나님의 말씀에 관하여 - 국제제자훈련원

최고의 성경 교사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요 14:26)

최근에 나는 연구를 하는 데 필요한 새 스탠드를 사러 가게에 갔다. 나는 글을 읽고 연구하는 시간이 많다. 그 동안 썼던 스탠드의 할로겐 전구는 무척 밝아서 사물이 똑똑하게 잘 보여서 매우 맘에 들었는데, 최근에 그 전구가 나가버렸다. 집안을 뒤져보았지만, 이전 것보다 밝기가 삼분의 일밖에 안 되는 약한 백열등만 사용하는 스탠드밖에 찾을 수 없었다.

스탠드를 사러 가다가 중요한 사실 하나가 생각났다. 바로, 전구가 밝을수록 사물이 더 잘 보인다는 것이다. 밝기는 선명도를 증가시킨다. 얼굴 사진을 찍을 때, 너무 밝은 빛에서 찍는 것은 좋아할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너무 밝으면 얼굴에 난 잡티, 점, 여드름 등이 다 보이므로, 사람들은 덜 밝은 빛을 좋아한다. 어두운 곳에서는 누구나 멋있게 보인다!
똑같은 일반적인 원리가 하나님 말씀에도 적용된다. 마음에 빛이 더 많이 비췰수록, 하나님 말씀에서 더 많은 것들이 보인다.
이는 바로 성령께서 하시는 일이다. 하나님 말씀이 뜻하는 바와 그것이 우리 삶에 어떻게 적용되는지를 보여주시는 것이다. 예수님은 요한복음 14:26에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성령께서 하시는 일 중 하나는 우리가 성경에서 다른 방법으로는 볼 수 없는 것을 볼 수 있도록 도우시는 것이다. 성령이 없으면 성경에서 많은 것을 놓치게 될 것이다. 성령은 우리 삶에서 최고의 성경 교사이시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계시 - 성경 - 뿐만이 아니라 ‘조명’, 즉 하나님께서 주신 것을 이해할 수 있는 능력도 주셨다.
성경은 당신이 소유한 책 중에서 읽는 동안 저자와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유일한 책이다! 성경을 읽으면서 당신은 성령께 “이것은 무슨 뜻입니까? 이것은 내 삶에 어떤 변화를 일으킬 수 있습니까?”라고 물을 수 있다. 한번 해보라. 그러면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말씀해주실 것이다. 하나님은 당신의 귀에 속삭여주실 것이며, 머리에 생각을 넣어주시고, 인상을 남겨주실 것이다.
다음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보자.
  • 성경이 이해되지 않을 때, 당신은 성령께 이해할 수 있게 해주시라고 구한 적이 있는가?
  • 당신은 성령께서 당신의 삶 속에서 역사하고 계심을 받아들이기가 어려운가? 왜 그런가?
  • 가장 최근에 성령께서 인도하고 계신다고 느낀 때는 언제인가? 당신은 어떻게 반응했는가?

하나님 말씀이 믿음을 작동시킨다 1101호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롬 10:17)
우리 중 대부분은 담대하거나 용감하지 못하다. 우리 중 대부분은 두려워 벌벌 떤다. 우리는 위험을 무릅쓰는 것도, 실패하는 것도, 죽는 것도 두려워한다. 우리는 자신 있게 일어서지 못한다. 믿음의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당신은 믿음의 사람이 되고 싶은가? 믿음은 하나님 말씀에 의해 작동된다. 로마서 10:17에서 성경은 이렇게 말한다.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당신은 성경을 읽다가 별안간 이렇게 생각한 적이 있는가? “난 할 수 있어! 난 할 수 있어!” 그것은 하나님 말씀에 의해 믿음이 작동된 순간이다.
이것이 바로 성경과 자기계발서의 차이이다. 자기계발서는 종종 유용한 통찰을 제공한다. 이 책들은 옳은 일을 알려줄 수는 있지만, 그렇게 할 힘은 주지 못한다. 자기계발서는 걱정을 그만 두라거나 잘못된 습관들을 다 끊어버리라고 말한다. 유용한 정보가 맞다. 그러나 그 조언을 따를 능력은 얻지 못한다. 이것들은 살아 있는 책이 아니다.
그러나 하나님 말씀은 무엇을 해야 할 지만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할 힘도 준다. 그리고 그렇게 할 때 믿음도 성장시킨다.
나는 이러이러하게 하나님께 순종하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대신하여 일하겠다고 말씀하시는 성경 속의 수많은 약속을 읽을 때, 자신감을 얻는다. 나는 하나님께서 내게 부탁하신 것을 하면 하나님께서 특정한 결과를 약속해주심을 안다.
1981년의 대부분의 시간 동안 나는 침체기에 빠져 있었다. 막 남부 캘리포니아로 와서 새들백 교회를 시작한 다음 해였다. 당시 나는 감정적, 정신적, 육체적, 영적으로 고갈된 상태였다. 마치 헤쳐나갈 수 없는 구름이 내 머리 위를 뒤덮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나는 그때 실제로 내 믿음을 작동시켰던 몇몇 구절을 결코 잊을 수 없다. 그 중 하나였던 출애굽기 23:29-30 말씀은 이것이다. “그러나 그 땅이 황폐하게 됨으로 들짐승이 번성하여 너희를 해할까 하여 일 년 안에는 그들을 네 앞에서 쫓아내지 아니하고 네가 번성하여 그 땅을 기업으로 얻을 때까지 내가 그들을 네 앞에서 조금씩 쫓아내리라”
하나님은 이스라엘 민족에게 약속의 땅을 주겠다고 약속하셨다. 그들은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 이미 그곳에 살고 있던 부족들과 싸워야 했다. 그들은 이것을 해낼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들은 목표가 너무 거대하다고 생각했다.
출애굽기 23:29-30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렇게 말씀하고 계신다. “너희 적들은 너희보다 크다. 그러나 나는 첫 해에 이 땅을 다 너희에게 주지 않겠다. 너희는 그것을 한 번에 조금씩 차지하게 될 것이다. 전쟁을 하나씩 치르면서, 너는 강해질 것이다. 네가 온 땅을 다스릴 만큼 강해지면 너는 이 땅을 다 얻게 될 것이다.”
이 구절을 읽을 때, 이것은 내게 직접 주시는 약속처럼 느껴졌다. 나는 첫 해에 다 성취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예수 그리스도를 섬기며 남은 평생을 보낼 것이며, 그분의 일정과 그분의 보조에 맞춰 따라갈 것이다.
이것을 이해한 뒤 내겐 거대한 목표를 감당할 자신이 생겼다. 말씀이 내 믿음을 작동시킨 것이다. 하나님 말씀은 당신의 믿음도 작동시킬 수 있다.
다음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보자.
  • 당신은 하나님이 당신의 삶에서 무엇을 이루시길 바라는가?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실 것을 믿는가?
  • 당신은 하나님이 당신의 삶에서 무엇을 이루길 원하신다고 생각하는가? 당신이 그것을 해내기 위해 필요한 것을 하나님께서 주시리라고 확신하는가?
  • 오늘 당신은 하나님의 약속 중 무엇을 붙들고 있는가?



하나님의 약속을 알고 싶은가? 성경을 읽으라! 1102호
“지금 내가 여러분을 주와 및 그 은혜의 말씀에 부탁하노니 그 말씀이 여러분을 능히 든든히 세우사 거룩하게 하심을 입은 모든 자 가운데 기업이 있게 하시리라” (행 20:32)
당신에겐 예비된 유산이 있다. 하나님 말씀을 읽으면 성경이 당신을 위한 유산을 약속한다.
사도행전 20:32은 말한다. “지금 내가 여러분을 주와 및 그 은혜의 말씀에 부탁하노니 그 말씀이 여러분을 능히 든든히 세우사 거룩하게 하심을 입은 모든 자 가운데 기업이 있게 하시리라”
유산은 한 가족의 일원이 됨으로 얻는 것이며, 합법적인 소유물이다.
당신의 아버지가 워렌 버핏인데, 그가 죽었다고 가정해보자. 그간 아버지의 유언장을 읽을 시간을 한 번도 갖지 않았다면, 그것은 어리석은 것이다. 그렇게 되면 합법적인 당신의 몫을 받지 못할 것이며, 워렌 버핏의 자녀로서 당신에게 주어진 몫의 혜택을 받지 못할 것이다.
예수님의 제자가 되면, 당신은 단순한 신자가 아니다. 상속자다. 하나님 가족의 일원이 된 것이다. 그리고 가족의 특권은 그 결정에 따라 온 것이다. 당신에겐 영적 유산이 있다.
그러나 평생을 살면서 하나님 자녀로서 어떤 혜택이 있는지도 모르고 산다면, 그것은 슬픈 일이다. 그리고 어리석은 것이다. 하나님은 당신이 성장하여 그분에게서 어떤 것을 누릴 수 있는지 알기를 바라신다. 그러기 위해서는 성경을 읽어야 한다.
디모데후서 3:16-17에서 성경은 이렇게 말한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

성경의 목적은 당신의 삶을 향한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도록 돕는 것이다. 그것이 당신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유산이다. 하나님은 당신이 창조된 목적에 맞게 완전히 준비되기를 바라신다. 그렇게 하기 위해 하나님은 성경을 통해 다음 네 가지 일을 하신다.
  • 당신을 가르치신다 - 하나님은 당신이 걸어가야 할 길을 보여주신다.
  • 당신을 훈계하신다 - 하나님은 당신이 길을 벗어날 때 그 사실을 보여주신다.
  • 당신을 고치신다 - 하나님은 그 길을 어떻게 돌아올 수 있는지 보여주신다.
  • 당신을 훈련시키신다 - 하나님은 당신이 그 길을 줄곧 따라가는 방법을 보여주신다.
이러한 방법으로 하나님 말씀은 당신이 성장하여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위대한 유산을 받을 수 있게 해준다.
다음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보자.
  • 당신이 만왕의 왕께 유산을 상속받는다는 ‘진리’가 삶에서 반영된다면, 당신의 삶은 어떻게 변화되겠는가?
  • 당신의 유산으로부터 얻는 혜택 중 당신이 아직 받아들이지 못한 것은 무엇인가?
  • 당신에게 성경은 매일 유익한 도구가 되고 잇는가? 당신은 그 가르침을 충분히 이용하고 있는가?

Tuesday, January 15, 2013

죄의식, 후회, 수치심을 안고 살지 마라 - 국제제자훈련원

죄의식, 후회, 수치심을 안고 살지 마라 - 목적이 이끄는 삶을 위한 매일의 묵상 - 1100호


그리스도는 생명을 내어 주시기까지 교회를 사랑하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교회를 물로 씻고,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셨습니다.” (5:25-26, 쉬운성경)
당신은 더 이상 죄의식, 후회, 수치심을 안고 살 필요가 없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과거의 기억에 사로잡혀 이를 극복하지 못한다. 상처를 받아 분노를 안고 살든지 아니면 다른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어 죄의식을 안고 산다.
 
하나님은 당신이 그러한 무거운 짐을 평생 지고 다니길 원치 않으신다. 당신이 자유롭길 바라신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에게 성경을 주신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 죄를 뿌리째 뽑기 위해 그분의 말씀을 사용하신다.
 
오래 전, 내가 설교를 했을 때, 한 여인이 눈물을 흘리며 나를 찾아왔다. 그녀는 자신이 저지른 모든 과오로 인해 벌어진 매우 슬픈 이야기를 내게 쏟아놓기 시작했다. 그녀는 몹시 괴로워했으며 서럽게 울었다. 그리고 자신이 얼마나 죄책감을 느끼는지에 대해 계속 이야기했다.
 
그때 나는 요한일서 1:9을 읽어주었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이는 더러움을 씻는구절이다. 하나님은 우리를 목욕시켜주시고, 삶의 더러움을 없애주시며, 우리를 용서하시고, 우리 죄를 씻어주실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그 다음 나는 로마서 8:1을 들려주었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그녀는 물었다. “그럼 제가 잘못한 모든 것에 대해 하나님께서 제게 벌을 내리지 않으실 거라는 말씀이세요?” “그렇습니다.” “왜죠?” 그녀가 물었다. “예수님이 그 죄값을 다 치르셨기 때문입니다.” “제가 내일 지을 죄는요?” “그 죄값도 예수님이 다 치르셨습니다.”
하나님 말씀은 더러움을 씻어내고 우리 마음을 깨끗하게 하며 우리 몸을 정화시킨다. 말씀은 우리 삶에서 모든 더러움, 먼지, 쓰레기, , 수치심, 죄악을 제거한다.
 
에베소서 5:25-26은 이렇게 말한다. “그리스도는 생명을 내어 주시기까지 교회를 사랑하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교회를 물로 씻고,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셨습니다.” (쉬운성경)
 
다음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보자.
하나님은 당신의 죄를 용서하겠다고 약속하셨다. 당신은 하나님께 용서를 구한 적이 있는가?
당신이 하나님의 은혜와 용서를 받아들이고 후회를 내려 놓는다면 삶이 어떻게 바뀌겠는가?

Friday, January 11, 2013

앱스토어 완전정복 - 앱스토어(아이튠즈커넥트)에서 앱등록하는 방법2


http://edgekim.tistory.com/m/post/view/id/1132




하나님 말씀을 습관화하는 네 가지 방법 - 국제제자훈련원

하나님 말씀을 습관화하는 네 가지 방법
“너희가 내 말에 거하 참으로 내 제자가 되고” (요 8:31)
성경을 짧은 기간(몇 주 정도) 정기적으로 읽는 데 전념하는 것은 정말 중요한 단계이다. 그것은 시작하기에 좋은 방법이지만, 거기서 멈춰선 안 된다. 예수님은 “너희가 내 말에 거하 참으로 내 제자가 되고”라고 말씀하셨다. (요 8:31) 우리를 예수님의 제자로 만드는 것은 장기적으로 예수님과 그분의 말씀으로부터 배우는 데 전념하는 것이다.
장기적으로 예수님의 말씀에 거하고 말씀을 통해 예수님과 연결되어 있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1) 그렇게 하기로 결심하라. 말씀에 거하는 것은 결단으로부터 출발한다. 하나님 말씀을 삶의 정기적인 부분으로 만들 수 있는 더 좋은 때를 기다리지 마라. 오늘 결단함으로 시작하라.
2) 선포하라. 당신의 의지를 다른 사람들에게 알리라. 자신의 말에 대해 책임을 지라. 하나님 앞에서 한 결단을 비밀로 하면 잘못되기 쉽다.
3) 결연히 행하라. 그 무엇도 당신의 결심을 넘어뜨리게 놔두지 마라. 이것을 인생에서 (특히 첫 몇 달간) 영원한 습관으로 삼기로 결연히 다짐하라. 건너뛰는 날이 생기기 시작하면 하나님 말씀에 거하는 것이 훨씬 어려워질 것이다.
4) 배로 늘리라. 당신과 함께 가면서 지원과 격려를 해줄 영적 파트너를 찾으라. 이는 당신이 경건의 시간 때 배운 것을 나눌 수 있는 사람으로, 소그룹, 친구, 또는 가족 중 누군가가 될 수 있다. 성경은 말한다. “… 두 사람이 한 사람보다 나은 것은 두 사람이 힘을 합치면 더 큰 일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전 4:9, 쉬운성경)
하나님과 시간을 보내는 것은 일시적인 기분에 의한 것이 아니라, 평생의 습관이 되어야 한다. 어느 연구 결과에 따르면 습관을 들이려면 약 6주를 연속해서 무언가를 해야 한다고 한다. 하나님 말씀을 오늘, 그리고 남은 평생 동안 삶의 일부분으로 만들어라.
다음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보자.
  • 하나님 말씀이 인생의 습관이 되게 하기 위해 오늘 어떤 결단을 하겠는가?
  • 이 결단을 누구에게 알리겠는가? 그리고 누가 책임감을 갖고 당신을 도와주겠는가?
  • 매일 하나님 말씀에 거하기로 결심할 때 마주치게 될 가장 큰 방해물들을 나열해보라. 그러한 방해물을 최소화하거나 제거하기 위해 오늘 무엇을 바꿀 수 있겠는가?


목적이 이끄는 삶을 위한 매일의 묵상 - 1097호


다른 사람들에게 설명함으로써 말씀을 배우라
“내가 주께 범죄하지 아니하려 하여 주의 말씀을 내 마음에 두었나이다” (시 119:11)
친구와 이야기를 나눌 때, 내용이 깊어져서 당신이 듣고 있다는 사실을 상대방이 알 수 있도록 그가 방금 말한 것을 당신이 반복해서 말한 경험이 있는가? 그것은 사람과의 깊은 대화에서만 유용한 방법이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과 대화하는 데도 아주 유용한 방법이다.
나는 이것을 성경 묵상의 ‘바꿔 말하기 방법’이라고 부른다. 그것은 꽤 간단한 방법이다. 현재 자신이 읽고 있거나 연구하고 있는 성경에서 한 구절을 택하여 그것에 대해 곰곰이 생각한 다음 그것을 자신의 표현으로 바꾸어 말하는 것이다.
궁극적으로, 우리는 성경의 한 구절 또는 한 단락을 자신의 단어로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성경은 아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우리는 성경을 이해해야 한다. (그리고 성경이 말한 것을 ‘행해야’ 한다!)
성경 구절을 읽고 그것을 자신의 단어로 설명했다면 그 표현을 종이에 적어보라. 그런 다음 말씀을 마음에 비춰보고 그 구절을 자신에게 어떻게 적용해야 할지 생각해보라. 종이로 적고 삶에 적용하기 전까지는 하나님 말씀을 연구한 것이 아니라는 점을 기억하라.
그런 다음 하나님의 말씀으로 다시 그분께 기도 드리라. 성경을 통해 하나님께서 가르쳐주신 것을 적용하기로 약속하라.
시편 119:11은 이렇게 말한다. ”내가 주께 범죄하지 아니하려 하여 주의 말씀을 내 마음에 두었나이다” 하나님 말씀을 배우면 - 또는 여기서 한 발짝 더 나아가 그분의 말씀을 암기하면 - 시험에서 자신을 보호할 수 있게 된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4장에서 마귀에게 시험 당하셨을 때 이와 같이 하셨다. 예수님은 마귀의 모든 시험을 구약 신명기의 말씀으로 맞서셨다. 성경은 시험에 대한 이상적인 방어책이었다.
하나님 말씀은 우리도 역시 보호해준다. 이는 하나님 말씀을 배울 때 따르는 굉장한 보상이다.
다음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보자.
  • 성경이 이해하기 어려워 보인 적이 있는가? 본문을 자신의 표현으로 바꿔 말하기를 실천해본다면 하나님 말씀을 배우는 것에 대한 태도가 어떻게 바뀌겠는가?
  • 자신이 배우고 바꿔 표현한 것을 적는 것이 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가?
  • 오늘 당신 마음에 ‘감춰져 있는’ 구절은 무엇일까?
하나님 말씀을 개인화하라
“너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는 확신하노라” (빌 1:6)
당신의 삶은 하나님 말씀을 개인화할 때 비로소 변화된다. 하나님 말씀은 당신의 이웃, 친구, 배우자, 또는 길에서 만나는 낯선 사람에 관한 것이 아니다. 하나님 말씀은 ‘당신의 삶’에 적용되어야 한다. 성경은 구체적이 되기 전까지는 역동적이 되지 못한다.
그럼 하나님 말씀은 어떻게 개인화할 수 있을까? 성경 묵상의 ‘개인화하기’ 방법을 사용해보라. 그것은 누구나 할 수 있다. 특별한 도구도 필요 없고, 진보적인 신학 훈련도 필요 없다.
그저 성경에서 대명사나 명사의 자리에 자신의 이름을 놓으면 된다. 예를 들어 요한복음 3장 16절 말씀을 개인화한다고 하면, 다음과 같이 적는 것이다. “하나님이 릭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릭이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또한 빌립보서 1장 6절 말씀으로는, “릭 워렌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확신하노라”
본문에 당신의 이름을 넣어보라. 그러면 믿음이 강해지고 힘이 날 것이다.
또한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직접 말씀하시는 것처럼 말씀을 바꿔 쓸 수도 있다. 예를 들어 빌립보서 1장 6절을 이렇게 쓰는 것이다. “릭, 네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한 내가 그것을 이룰 것이다.”
이렇게 하면 성경의 많은 본문을 볼 때 눈에서 말 그대로 눈물이 샘솟을 것이다. 성경이 당신에게 보내진 하나님의 연애 편지로 보이기 시작할 것이다. 성경은 당신에게 주신 하나님의 선물이다! 성경 읽기는 단순히 말씀의 내용을 알아가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말씀의 저자를 ‘개인적으로’ 알아가는 것이다!
다음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보자.
  • 당신은 성경을 당신에게 보내진 연애 편지로 생각해본 적이 있는가?
  • 당신은 하나님이 오직 당신을 위해 성경을 쓰셨다고 믿는가? 당신은 성경과 당신의 경건의 시간을 개인적인 대화의 시간이자 삶의 교훈을 얻는 시간으로 대하는가?
  • 오늘 당신이 읽는 말씀을 어떻게 개인화하겠는가?
삶의 안정을 위해 성경을 사용하라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마 7:24)
집의 토대는 그 집이 얼마나 크게 지어질지를 가늠케 한다. 작거나 불완전한 토대 위에 큰 집을 지을 순 없다. 그런 경우는 늘 무너진다.

우리 삶도 마찬가지이다. 불완전한 토대 위에서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모습이 될 수 없다. 우리에겐 아래와 같이 우리 삶의 토대로 선택할 수 있는 것들이 많이 주어져 있다.
  • 대중적인 문화 - 어떤 사람들은 그저 다른 모든 사람들이 하는 대로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인기 있는 것이라면 자신도 해야 한다. 그러나 오늘 인기 있는 것이 내일도 인기 있으리라는 법은 없다. 삶을 대중적인 문화에 토대를 둔 것은 계속 움직이는 토대 위에 집을 짓는 것과 같다. 한 마디로 무익한 짓이다!
  • 전통 - 또 어떤 사람들은 항상 되어왔던 것 또는 부모님이 죽 해오셨던 것에 삶의 토대를 둔다. 여기에는 약간의 일리가 있다. 전통은 효과가 있기 때문에 전통이 된 것이다. 그러나 어떤 전통도 영원히 지속되진 않는다. 그것은 결국 낡게 되고 퇴행하며 효력이 없어진다. 마가복음 7:8에서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에게 결코 전통을 진리보다 우선하지 말라고 말씀하신다. 이것은 우리 모두가 새겨들어야 할 말씀이다.
  • 이성 -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성을 주셨고, 우리는 그 능력을 사용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의 이성은 절대적으로 옳은 것이 아니다. 잠언 16:25는 “어떤 길은 사람이 보기에 바르나 필경은 사망의 길이니라”라고 말한다. 우리 중 가장 똑똑한 사람이라도 때때로 비틀거린다. 그것은 예상할 수 있는 일이다. 하나님만이 늘 신뢰할 수 있는 유일한 분이다.
  • 감정 - 어떤 사람들은 감정에 삶의 토대를 둔다. 바른 것처럼 느껴지면 그것을 하는 것이다. 그러나 감정은 거짓말을 한다. 감정은 늘 그렇다. 우리는 다른 누구보다 스스로를 더 잘 속일 수 있다. 감정에 따라 살면 기분에 의해 조종되는 인생을 보내게 될 것이다.

대중적인 문화, 전통, 이성, 또는 감정에 삶의 토대를 두는 것이 무익하다면, 우리는 무엇에 우리 삶의 토대를 두어야 하겠는가? 바로 하나님 말씀이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7:24에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삶을 하나님 말씀이라는 반석 위에 세우면, 진리는 결코 변치 않는다. 대중적인 문화는 변하며, 전통은 낡고, 이성은 불완전하며, 감정은 속인다.
그러나 하나님 말씀은 결코 변하지 않는다.
하나님 말씀을 늘 이해하진 못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항상 맘에 들진 않을 수도 있을 것이다. 늘 정치적으로 올바르진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유일하게, 우리 삶의 토대를 둘 수 있을 만큼 안정된 것이다.
다음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보자.
  • 당신은 삶의 토대를 무엇에 두고 있었는가? 그것은 당신의 삶을 어떻게 떠받치고 있는가?
  • 당신이 삶의 토대를 성경에 온전히 두지 못하게 막는 방해요소들은 무엇인가?
성경을 집에만 두지 말고 마음에도 두라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골 3:16a)
육체적 힘을 내기 위해 육체적 음식이 필요한 것처럼, 영적 힘을 내기 위해서는 영적 양식이 필요하다. 성경은 그 자신을 영의 양식을 묘사한다. 우리의 영적 삶을 위한 생수, 우유, 떡, 고기와 같이 말이다. 이는 생명 유지에 필요한 모든 것이다.
만약 당신이 건축업자라면, 2주 동안 아무 것도 먹지 않은 사람을 현장에 내보낼 생각은 하지 않을 것이다. 당신이 군사령관이라면 한 달 동안 아무 것도 먹지 않은 사람을 전장에 내보내진 않을 것이다. 그렇지 않은가? 우리 앞에 놓인 임무를 완수할 힘을 얻기 위해서는 잘 먹어야 한다.
당신이 굶어 죽을 지경이라면 눈앞에 닥친 영적 전쟁에서 이기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 말씀을 먹어야 한다.
육체적 양식을 먹는 것과 다른 점은, 말씀을 먹을 때마다 훨씬 더 배고파진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얼마나 선하신지를 맛보고 눈으로 보면 말씀을 더 원하게 된다.
골로새서 3:16에서 성경은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라고 말한다. 사도 바울은 성경이 우리 삶에 풍성히, 깊이, 그리고 생명력 있게 거하게 하라고 말해주고 있다.

그럼 하나님 말씀은 어떻게 먹어야 하며, 어떻게 하면 그렇게 될 수 있을까?
  • 귀로 말씀을 받아들이라. 교회에 가서 선포되는 하나님 말씀을 듣는 데 전심을 다하라.
  • 눈으로 말씀을 읽으라. 이전에 말한 것처럼, 성경을 집 안에 두는 것으로는 삶에서 복을 받지 못한다. 성경을 마음에 두어야 한다.
  • 손과 입으로 말씀을 연구하라. 하나님 말씀을 연구할 때, 손에 연필을 들고 있으라. 하나님이 가르쳐주시는 것을 받아 적으라. 소그룹으로 모인 곳에서 당신이 발견한 것을 다른 신자들에게 이야기해주라.
  • 머리로 말씀을 상기하라. 하나님 말씀에 대해 생각하고 그것을 되새기라.
  • 마음으로 말씀을 기억하라. 성경은 필요로 할 때 곁에 있는 경우가 별로 없다. 하나님 말씀을 기억하는 데 힘을 쏟으라.
다음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보자.
  • 당신은 위 항목들을 모두 따라서 영의 양식을 먹고 있는가, 아니면 보통 첫 번째 항목만 하고 멈추는가? 영적 영양분을 풍부하게 섭취하기 위해 삶에서 어떤 변화가 필요하겠는가?
  • 당신은 하나님이 가르쳐주시는 것을 받아 적는가? 성경에서 기억나는 것은 무엇인가?
  • 당신은 오늘 어떤 영적 전쟁을 싸우고 있는가? 당신은 생명 유지를 위해 하나님 말씀을 의지해왔는가?

Thursday, January 10, 2013

한 날 묵상 - 갈 6:17-18 <내가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지니고 있노라>

한 날 묵상 - 갈 6:17-18 <내가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지니고 있노라>

1. "그 청년 바보 의사, 안수현" 그는 진정 그의 몸에 예수의 흔적을 남긴 사람이다. 그 섬김의 모습을 통해 우리는 진정 그리스도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2. 우리도 우리 몸에 예수 그리스도의 흔적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떠난 자리에도 예수의 흔적이 남아한다. 우리의 걸음 걸음이 곧 그리스도의 흔적이 남는 발걸음이 되어야 한다.

3. 바울은 진정 그러한 사람이었다. 그가 걷는 곳곳모다 그리스도의 흔적들이 남겨졌다.

4. 갈라디아 교회에 주는 편지에서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흔적만이 남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5. 예수 그리스도의 흔적이란 바로 성령의 열매이다. 육체적인 일을 버리고 오직 성령의 열매만을 율법 아래 놓이지 않고 자유한 인생들에게 기대할 수 있는 것들이다.

6. 바울은 자기의 육체를 위한 심는 인생이 아니라 오직 성령을 위하여 심는 인생을 살아 왔다.

7. 그리고 이제 마지막 갈라디아 성도들에게 편지하면서 오직 나는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지니고 있노라"고 말하고 있다.

8. 사실, 바울 자신의 육체에 흔적이 있었다. 유대인이며, 율법 아래 있던 자로서 흔적이 뚜렷이 남겨져 있었다.

9. 그러나 이제 자신에게 이러한 흔적은 아무 것도 아니며, 바울 자신에게아무 유익도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결코 그러한 것들을 자랑하지 않는다고 말하고 있다.

10. 바울 자신에게 남아 있는 흔적이란 오직 예수의 흔적 뿐이었다. 그래서 그는 말한다.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외는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바울의 자랑인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뿐이다.

11. 이제는 이러한 할례나, 율법 아래 있는 문제로 더 이상 고민할 필요도 없을 뿐 아니라, 이 문제로 인하여 괴로워할 필요도 없었다.

12. 갈라디아 서신을 통해 그의 인생 뿐 아니라, 복음의 진수를 깔끔하게 정리하였기 때문이다.

13. 우리도 그렇다. 바울을 본받아, 이제 오직 우리 몸에 남아 있어야 할 흔적은 십자가, 예수의 흔적 뿐이다.

14. 결코 다른 것이 우리의 흔적이 되어서는 안된다.

15. 현시대의 다른 복음인 "번영 복음", "탐욕의 복음"이 우리의 흔적이 되어서는 안된다.

16. 세상은 "정욕과 탐심"(갈 5:24)을 좇아 자기 이기주의, 물질주의로 자신의 온 몸의 흔적을 남긴다 할지라도, 복음의 진리는 그렇지 않다.

17. 오직 하나님의 뜻 안에서,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닮아 나도 그렇게 거룩하여지는 일에 내 믿음의 목표를 두어야 한다.

18. 바울은 골로새서 1장 24절에서 이렇게 고백한다. "나는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

19. 우리안에 예수의 흔적이 남을 때, 우리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 우리 심령 가운데 차고 넘치게 될 것이다.

20. 세상의 어떠한 것을도 맛볼 수 없으며, 채울 수 없으며, 공급받을 수 없는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내 심령안에 가득하게 된다.

21. 이것뿐이면 족한 인생이 그리스도인의 인생이다. 믿음의 경주를 하는 인생이다.

22. 그 이상, 다른 어떤 것도 아닌, 오직 그리스도의 은혜만을 내 심령안에 가득 채울 수 있는 은혜가 우리 안에 차고 넘치기를 소망한다.

23. 결코 다른 복음은 없습니다. 결코 다른 것을 내 몸에 남길 수 없습니다.

24. 오직 복음, 오직 예수, 오직 십자가 뿐입니다.

25. 할렐루야. 아멘.

=====
17절 "이 후로는 누구든지 나를 괴롭게 하지 말라"

       "내가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지니고 있노라"


18절 "형제들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너희 심령에 있을지어다"

       "아멘"

참고 - 골로새서 1장 24절
"나는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



"스티그마 - 흔적"
 카엘레온은 영국 웨일즈 지방에 있는 역사적으로 뿌리가 깊은 마을입니다. 로마가 영국을 점령하였을 당시 로마 군단이 영국에 주둔하였던 세 장소 중 한 곳입니다. 로마군대의 주둔은 약 1500년 전에 끝났지만, 그들이 점령했던 흔적은 오늘날에도 볼 수 있습니다. 로마가 세계를 지배하고 웨일즈를 점령했던 당시를 상기시켜 주는 성곽, 병영, 원형경기장 등을 보기 위해 세계 곳곳에서 사람들이 관광을 옵니다이 작은 마을에 로마군대가 존재했었다는 증거들을 15세기가 지난 아직까지 매우 분명하게 볼 수 있다는 사실이 나에게는 신기하게만 느껴집니다.
 
* 흔적이란 헬라어로 스티그마입니다. 이는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 표시를 의미합니다. 예를 들면 소나 나귀 등에 자기 소유를 표시하기 위하여 불로 지졌습니다. 불로 지져서 죽을 때까지 지워지지 않는 표시가 되었습니다. 심지어는 어떤 노예에게 이마에 노예 표시를 하였다고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흔적이라는 말은 고대 사회에서 주인이 노예에 대한 자신의 소유권을 나타내기 위해 노예의 몸에 찍는 낙인을 뜻하는 말입니다.
 
나포레옹 군대는 독일군을 포로로 잡아서 마구 죽였습니다. 그러나 예외가 있었습니다. 팔뚝에 나폴레옹을 상징하는 "N"이라는 글자를 불로 지져 나폴레옹에게 충성을 맹세하면 살려 주었습니다. 바울의 영혼에는 불로 지진 흔적보다도 더 강한 흔적이 있습니다. 다메섹에서 만난 예수 그리스도가 그의 영혼에 각인이 되었습니다. 그의 흔적이 사울을 바울 되게 한 것입니다.
 
*[흔적(痕迹)] - 하원택
 
갈보리 산 위에 십자가 흔적은 아니어도
주님 주신 가슴 아린 흔적은 가졌노라
스데반 같은 순교자의 흔적은 아니어도
성령의 감동으로 무릎적신 흔적은 지녔노라
엘리야가 외친 기적의 흔적은 아니어도
작은 것에 감사의 눈물을 흘릴 수 있는 흔적은 지녔노라
 
주님이 주시는 흔적은
내가 감당 할 수 있는 흔적이고
주님이 주시는 흔적은
내가 주안에 있는 흔적이고
주님이 주시는 흔적은
내가 주님의 자녀인 확증의 징표이다.

* 티그마라는 헬라어 단어는 스티조라는 동사에서 나온 것인데 이 스티조라는 단어는 문신을 새기다혹은 날카로운 도구로 표시를 하다라는 뜻입니다. 특별히 이 스티그마는 고대 헬라 세계에서 뜨거운 쇠도장으로 몸에 새긴 문신이나 표시를 의미했습니다. 이 스티그마가 뭐냐하면 쇠로 도장을 만들어서 뜨겁게 달구어서 몸에 대면 도장이 찍히잖아요. 이런 도장이나 문신을 스키그마라고 그랬는데 이 스티그마를 어떤 사람에게 찍었느냐면 물건을 훔치거나 도망간 노예들에게 찍었습니다. 이것이 부끄러움의 수치였습니다. 수치의 표시였습니다.
 
고대 중국에서도 어떤 죄를 지으면 혹은 중대한 죄를 지으면 그 얼굴에다가 도장을 찍어버려요. 그냥 도장이 아니라 쇠로 달구어서 찍어버려요. 그 도장이 새겨져 버리죠. 찍어버리기 때문에 사람들마다 그것을 보면 저 사람이 어떤 사람인 것을 금방 아는 것이죠. 이 문신이 스티그마입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을 따르려면 성령께 민감한 삶을 살려면 반드시 이 수치의 표시를 가져야 합니다. 능욕을 져야합니다. 주님을 따라는 삶에 이것이 포함됩니다.

1세기에 사용되던 ‘흔적’(痕迹, 스티그마)이란 단어의 배경을 살펴보면 몇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당시 로마나 헬라 사회에서 노예제도가 보편적이었는데, 노예들의 이마에 주인의 이름을 화인으로 만들어서 찍은 흔적이 있었습니다. 이 경우는 그 노예가 상전의 소유물이라는 사실을 표시한 것입니다.

두 번째 배경은 로마의 군인들이 자기 사령관의 흔적을 이마에 받은 적이 있다고 합니다. 이 경우는 사령관의 명령에 절대 복종하겠다는 표시가 되겠습니다. 

또 다른 배경은 당시에 억울하게 죄인으로 몰려 박해받는 사람이 로마의 신전에 들어가서 보호를 받게 되면 신전의 흔적을 이마에 받습니다. 이 사람은 아무나 함부로 손을 대어 해치지 못하도록 보호됩니다.



Monday, January 7, 2013

한 날 묵상 - 갈 6;11-16 <할례라, 율법이 아닌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의 십자가에 외는 결코 자랑할 것이 없다>

한 날 묵상 - 갈 6;11-16 <할례나, 율법이 아닌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외는 결코 자랑할 것이 없다>

1. 우리는 특별히 더 내 세울 것이 있는 사람들을 선호하는 듯 합니다. 그래서 더욱 열심히 공부하거나 자신의 스팩을 쌓기에 노력합니다.

2. 요즘 출세하는 사람들의 면면을 보면, 일반적으로 좋은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많습니다. 공부를 많이했거나, 능력이 있거나, 아니면 누군가가 뒤에서 밀어준다거나 하는 것 말입니다.

3. 새로운 2013년은 새로운 정부가 출발합니다. 새 술은 새부대에 담아 함다고 표현들 합니다. 그래서 수 많은 자리가 새로운 사람으로 채워지게 될 것입니다.

4. 그렇다면, 누가 그 자리에 주인이 되어야 할까요? 앞서 말한 면면히 화려한 사람들만으로 채워질 수 있을 것입니다.

5. 저게 바램이 있다면 정말 필요한 사람이, 그 자리에 잘 할 수 있는 사람이 그 자리의 주인이 되었으면 합니다.

6. 모든 사람을 포용하고, 품을 수 있는 사람이면 좋겠습니다. 거기에 그 자리에 충분히 일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사람이라면 금상첨화이겠지요.

7. 그렇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정말 필요한 사람이 그 자리에 앉는 것이 아니라, 임명권자를 잘 대변해 줄 수 있는 사람을 그 자리에 앉히는 것이 더욱 현실적입니다.

8. 초대교회에 있어서 유대인들은, 자칭 할례받은 자들에게는 특권의식이 있었습니다. 여전히 태어날 때부터 구별된 자로 선택받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말입니다.

9. 그들은 늘 자신의 혈통을 자랑했습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과는 다르다 말하곤 했습니다.

10. 바울은 지금 이게 아주 크게 잘못되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갈라디아 지역의 교회에 보내는 편지가 바로 이 내용입니다.

11. 오늘 본문은 바울의 갈리다아 여러 교회에 편지를 쓰면서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핵심의 요지를 정리하여 마지막 간곡한 부탁을 하고 있습니다.

12. 우리의 진짜 자랑은 혈통이 아니다. 율법이 아니다. 할례가 아니다.

13. 우리의 진짜 자랑은 14절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는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14. 오직 십자가이다. 이는 15절 "할례나 무할례가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새로 지으심을 받는 것만이 중요하니라"

15. 할례자나 무할례자나 모두가 다 새로 지음 받은 것만이 오직 중요할 뿐이다는 것입니다.

16. 믿음의 사람들에게 자랑은 오직 복음입니다. 십자가외에는 결코 자랑할 것이 없습니다.

17. 기독교인으로 출세하려고 합니다. 믿음으로 복받으려고 합니다.

18. 믿음의 크기가 출세가 부에 있다고 착각을 합니다. 그래서 나는 출세했기에, 부자이기에, 믿음이 좋다고 자랑하려고 합ㄴ디ㅏ.

19. 그러나 이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20. 복음은 우리에게 부나 출세를 주는 것이 아니라 평강과 긍휼의 마음을 줍니다. 그래서 없어서 평안할 수 있고, 있으면 나누어주려고 합니다.

21. 16절 "무릇 이 규례를 행하는 자에게와 하나님의 이스라엘에게 평강과 긍휼이 있을지어다"

22. 이 말씀은 십자가의 복음을 믿는 자들과 약속의 민족 이스라엘에게 함께 평강과 긍휼이 있겠다는 뜻이다.

23. 이는 먼저 십자가 복음만이 구원의 유일한 길임을 선포하는 것이다.

24. 또한 구약 이스라엘에게 약속된 선택 받은 민족이라는 의미도 결국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안에서 임을 강조하고 있다.

 사도행전 1장 8절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 되리라 하시니라"

 마태복음 24장 14절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언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


25. 우리 안에 십자가외에는 결코 어떠한 다른 자랑이 없기를 바랍니다.

26. 오늘도 십자가 복음만을 사랑합시다.

참고) 예레미야 9장 23-24절
"지혜로운 자는 그의 지혜를 자랑하지 말라...."




Tuesday, January 1, 2013

한 날 묵상 - 갈 6: 6-10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가 아니라, 성령을위하여 심는 자가 되라, 이를 위해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고 포기 하지 말자 때가 이르면 기쁨으로 단을 거두게 된다>

한 날 묵상 - 갈 6: 6-10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가 아니라,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가 되라, 이를 위해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고 포기하지 말자 때가 이르면 기쁨으로 단을 거두게 된다>

1. 지금 힘들다. 금식 2일차. 유혹은 더 심해진다. 진짜로 초콜릿 하나 먹고 싶다. 바로 앞에 초콜릿이 산더미다. 그런데 어떠하리? 좀 더 참아보자.  힘들어 글이 잘 써지지 않는다. 귀찮다. 뭐 금식 2일차 가지고 말할 수 있다. 그래도 난 처음이다. 첫경험이다. 그러니 힘든 것 이해해 주세요. 글이 이쯤해서 여긴 그냥 순서대로 마무리 하겠습니다.

2. 6절 "가르침을 받는 자는 말씀을 가르치는 자와 모든 좋은 것을 함께 하라"
표준새번역 "말씀을 배우는 사람은 가르치는 사람과 모든 좋은 것을 같이 나우어야 합니다"

3. 가르침을 받는 자는 말씀을 가르치는 자의 좋은 것을 잘 받도록 하라. 엘리사와 엘리야의 스승과 제자의 관계에서 갑절의 은혜를 구하는 엘리사처럼 가르침을 받는 자들은 그러한 자세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영적인 것 또한 훈련이 필요하다.

4. 7절 "스스로 속이지 말라". 정말 나에게 묻고 싶은 말이다. 목사로 진정 목사의 역할을 잘 하고 있는가? 잘하고 있다고 스스로 속고 있지는 않는가? 열정과 열심으로 최선을 다한다고 스스로 속고 있는지 않는가? 할 말이 참으로 많다.

5. 그리스도인들이 이 부분에 관해서는 스스로 정직하게 점검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스스로 속고 있는 그리스도인척하며 살아가고 있을 수 있다.

6. 스스로 속이는 것은 이어서 나오는 7절 "하나님은 업신 여김을 받지아니하시나니"과 관련이 있다.

7. 하나님은 이 둘을 철저히 구별하여 보고 계신다. 자기를 위하여 심으면서도 하나님을 위하여 심는다 말하는 자는 아닌가? 자기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인가? 심령을 위하여 심는자인가?

8. 우리의 열매는 아주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7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는 말씀에 따라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아주 특별한 경우란 하나님의 개입과 간섭이시다. 하나님께서 특별히 훈련을 하시기 위해 그렇게 하실 수 있다는 말씀이다.

9. 결국 우리는 8절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두고"

10. 또한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는 말씀에 따라 열매를 맺고 있다.

11. 그래서 마태복음에서 예수님은 그들은 열맬로 알리는 말씀을 주셨다. 마 7장 20절 "이러므로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12. 8절 말씀이 2012년을 보내고, 2013년을 시작하는 나에게 귀한 깨달음을 주었다.

13. 2012년 보내며, 2013년을 시작하면서 3일 금식기도를 하고 있다. 내 평생에 3일 금식은 처음이다. 하루 금식이나, 하루에 한끼, 두끼 금식은 해 보았어도, 3일 금식은 처음이다. 앞으로 7일 금식까지 하고 싶다. 아마 2011년 때의 생각이었다. 나도 하루를 넘어, 3일 금식을 할 수 있을까? 그리고 나아가 일주일 금식을 할 수 있을까?

14. 그런데 오늘 2013년 1월 1일 오후 1시이다. 오늘 오전부터 지금까지 드는 생각은 점차 유혹이 온다는 것이다. 먹을 것이 천지다. 연말을 보내면서 맛있는 초콜릿부터 새해 첫날이니 떡국 먹는 아이들까지, 눈을 들어 주변을 보니 먹을 것이 널려 있다.

15. 지금 드는 생각은 이틀만 할까? 커피는 괜찮겠지? 하나 쯤은 괜찮지 않을까?
 이런 저런 생각이 드면서 찾아오는 생각은 "누구를 위한 금식인가?"하는 것이다.
 혹 금식을 한다 하면서 하나님을 업신 여기지 않는지 생각해 본다.

16. 이번 금식의 목적은 다른 것에 있는 것이 아니다. 특별한 목적을 두고 하는 것도 아니다. 2013년 더욱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이 기뻐하실 뜻을 잘 분별하여 살아가고자 하는 마음 뿐이다. 

17. 하루 금식하며 드는 생각들은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자. 오직 하나님만이 나의 유일한 도움이시다. 하나님을 찾고 구하는 생각들이 많다.

18. 물론 시간을 때우기 위해 이런 저런 인간적인 일들을 하는 것도 있지만, 그 와중에 문득 찾아오는 주님을 향한 마음들이 참으로 고맙다. 참으로 감사하다.

19. 간절히 바라가니 나의 3일 금식, 그리고 앞으로 금식이 내 자신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것이 아니길 바랄 뿐이다. 금식이 훈장이 되지 않고, 금식이 철저히 하나님께 순복하는 순간이며 여정이며 과정이기를 갈급할 뿐이다.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가 되어 성령의 열매를 더욱 풍성히 맺고자 한다.

20. 금식의 기간동안 순간 순간 하나님을 만나는 그 때에 하나님이 주신 생각들로 나의 삶을 채우고 나의 비전을 세우고자 한다.
 그리고 이러한 시간에 주신 고귀한 생각들을 꼭 행할 수 있기를 원한다.

21. 이게 바로 9절에서 이어지는 말씀이 아닐까 한다. 9절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22. 자기 육신을 위하여 심는 것이 아니라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들의 선한 행위는 반드시 때가 되면 거두게 되어 있다는 것이다.

23. 여기서 중요한 말씀이 때가 되면이다. 그래서 때가 찰 때까지 결코 그 일을 함에 있어서 "낙심하거나",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

24. 하나님의 주시는 선한 마음이 우리 안에 차고 넘치게 되어 있다. 애써 들으려 하지 않고 거부하지 않고 무시하지 않는다면, 내 영안이 깨어 있다면, 즉 믿음이 있고, 성령이 내 안에 있어서 매일의 삶이 성령충만의 삶이면, 내 안에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선한 행동을 깨닫게 될 것이며, 그를 행해야 한다는 말씀이다.

25. 우리는 선한 행위가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갈라디아서 5장에서 나오는 말씀과 6장 초반부에 나오는 말씀을 통해서 잘 알고 있다.
 무엇보다 "서로 짐을 나누어 질 수 있는 선한 행위"를 기억하고자 한다. 고아와 과부를 섬기는 자가 되기를 원한다.

26. 2013년 새해맞이 예배를 드리고 오면서, 아내가 자신이 뽑은 올해의 말씀을 들려주었다. 구제와 관련 말씀이었다.
 잠언 11장 25절 "구제를 좋아하는 자는 풍족하여질 것이요 남을 윤택하게 하는 자는 자기도 윤택하여지리라"

27. 그 말씀을 들으면서 갈라디아서 6장 말씀을 묵상하고 있는 요즘 다시 한 번 이 일 위해 힘쓰는 것이 하나님이 나에게 주시는 성령을 위하여 심는 선한 일임을 직감하게 되었다.

28. 이러한 선한 행위를 하기를 원한다. 앞으로 사역의 방향으로 잡고 나아가길 원한다.
 기독교세계관 공부를 하면서 쓰게 된 페이퍼에서 "교통"이라는 부분이 있었다. 그 때 진정한 교통이 서로 삶을 나누며 섬기는 삶임을 깨닫게 되었다. 구약에서 주시는 메시지, 신약의 초대교회, 그리고 바울의 서신서에서, 성경은 줄기차게 그들을 섬기며 사랑하라 말씀하고 있다.

29. 10절 '그러므로 우리는 기회 있는 대로" 

30. 바울도 권면을 하고 있다. 이런 일을 함에 있어서 "기회 있는 대로" 하라고 말씀하고 있다.   할 수 있는대로 많이 해야 합니다. 할 수 있는 최선과 최대로 또한 해야 합니다. 늘 마음에 우리는 이러한 일을 향한 "거룩한 부담감"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이러한 거룩한 부담감이야말로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들의 마음입니다.

31. "모든 이에게 착한 일을 하되"

32.  모든 이에게 하라고 한다. 우리의 선한 행위의 손이 미치지 못할 곳이 없습니다. 우리의 손이 안갈 곳 또한 없습니다. 성령이 주시는 대로 순종하며 살아갈 때 온 세상이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가득하게 될 것입니다.

33. "더욱 믿음의 가정에게 할지니라" 표준새번역 "특히 믿음의 식구들에게는 더욱 그렇게 합시다"

34. 특별히 믿음의 가정을 먼저 살피라고 말씀하고 있다. 이 말씀이 참으로 마음에 와 닿는 말씀이다. 지난 주간 한 밤중에 깨닫는 것이 있어서 글을 적어 본 것이 있다. 기회가 되면 전체적으로 글을 올릴 날이 있을 것이다.

35. 가제는 이렇다. "나는 지난 10여년 비정규직이었다"
 내가 지난 교회의 사역자로 10여년을 돌아보니 절처히 나는 약자였다. 그런데 참으로 감사한 것은 그대로 지금까지 살아 왔다는 것이다. 그리고 철저히 교회와 성도의 도움을 받았다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앞으로 그러한 생활이 계속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제도적으로, 구조적으로 문제가 있다. 앞서 갈 6장 2-5절에서 나눈 것처럼 구조적으로, 제도적으로 나와 같은 사람을 도울 수 있어야 한다.

36. 교회안에는 나와 같은 사람들이 참으로 많다.

37. 그들은 사회생활에서 철저히 비정규직이다. 파트파임이다. 언제 나락을로 떨어질지 모르는 사람들이다. 그들을 도우며 섬길 수 있는 곳이 교회이다. 특히 믿음의 가정에게 그렇게 하라는 말씀은 그들을 섬기며 도우는 선한 행위 뿐 아니라, 구조적으로, 제도적으로 그들이 일어설 수 있는 도움을 교회가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38. 이러한 모습들은 여러 교회에서 실제적으로 하고 있다.

39. 말씀을 마치면서 새해를 시작하면서 이만열 교수님 쓰신 페이스북의 내용을 첨부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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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새벽에 문정식 목가님이 시무하시는 교회의 영신(迎新)예배에 참석, 사도행전 20장 35절의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는 말씀에 의거하여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요>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었다. 다음은 그 나눈 말씀의 부분 부분이다.

세상 사람들은 의를 행하면 귀하게 되고 명예를 얻게 된다고 가르칩니다. 실제로 의를 위해 고난을 받은 많은 사람들이 지상에서 그 보상을 받은 것을 보아 왔습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의를 행하다가 핍박을 당하는 것, 바로 그것이 복이라고 했습니다. 의를 위해 고난을 받으면 큰 보상을 받을 것이기 때문에 복되다고 가르치지 않습니다. 의를 위해 핍박을 받는 것 자체가 복이라고 했습니다. 하늘나라의 상급을 믿는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오늘날까지 남겨진 선한 역사와 전통은 보상받지 않고 죽어간 많은 의로운 자들의 희생의 결과이기도 합니다. 얼마나 많은 독립운동가들이 이름없이 죽음을 당했습니까. 우리가 오늘날 이만큼 사는 것은 그들 이름없이 죽어간, 의를 위해 핍박을 당하며 사라진 거룩한 이들의 희생의 은덕 결과입니다. 그러기에 성경은 우리에게 보상없이, 의를 위해 핍박을 받는 것이 복되다고 언명합니다. 그렇게 살도록 요구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복을 언급하다보면 복음서에서 언급하지 않은 복이 하나 있습니다. 오늘 읽은 사도행전 20장 35절의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는 그 복입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산상보훈에서 언급한 8복 외에 새로 추가된 복입니다. 이것은 나눔의 복이요, 주는 복입니다.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는 이 복은,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서 가장 먼저 제시한 ‘가난한 자가 복이 있다’는 이 복을 실천하는 대안적 방법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소유하고 더 얻는 것을 복되다고 합니다. 거기에 대해 이 말씀은 소유와 탐욕 중심의 복의 정의를 달리 할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받는 것과 주는 것, 그 사이에서 더 복된 것은 받는 것이 아니라 주는 것이라고 강조합니다. 얻는 것보다 주는 것, 베풂을 당하는 것보다 베푸는 것이 더 복되다고 합니다.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는, 주님께서 친히 하신 이 말씀은 세상 사람들이 갖고 있는 소유 중심의 일상적인 복 관념을 뒤집어(顚倒)버립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복에 대해 세상 사람들과는 달리 생각해야 한다고 명령합니다. 이렇게 함으로,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남에게 주고 가난을 실천하는 자가, 많이 가진 자보다 복되며, 많이 가지려고 탐욕을 부리는 자보다 훨씬 복된 삶이 가능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가난한 자가 오히려 부자보다 더 부자가 될 수 있는 기막힌 반전(反轉)이 여기서 가능하게 됩니다. 우리의 소유는 내 맘대로 쓰기 위해 하나님이 주신 것이 아닙니다. 소유란 땅 위에서 그것을 관리하도록 맡긴 위탁물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관리하는 청지기입니다. 청지기는 주인의 소유를 위탁받은 사람입니다. 청지기가 가진 소유는 제 때에 나누고 관리하기 위해 주인이신 하나님께로부터 위탁받은 물건에 불과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것을 움켜쥐고 자기 것인양 유세를 부리고 있는 것은 청지기의 취할 태도가 아닙니다.


세상은 많이 가진 자가 있음으로 풍요롭게 되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베푸는 자가 있음으로 넉넉하게 됩니다. 경제성장을 약속하면서 출발한 이 정권이지만 삶은 더 팍팍해졌고, 새해는 더 어려워질 것이라는 전망들을 내 놓고 있습니다. 이럴 때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는 말씀을 실천해야 합니다. 이것이 멍들어가는 공동체를 생명으로 이끄는 길입니다. 초대교회가 실천하여 세상 사람들로부터 칭송을 받은 나눔의 생활화를 실천하는 것입니다.


모든 것은 나누면 작아집니다. 특히 저급한 가치는 그렇습니다. 그러나 고급가치는 나눌 수록 불어납니다. 예술과 문화와 학문과 사상은 나눌 수록 커져 가고 불어납니다. 사랑과 희망, 위로와 평화도 나누면 나눌수록 더 커지는 것입니다. 물적 가치도 사랑으로 나누면 5병2어의 기적을 불러옵니다.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는 말씀을 실천하는 것은 나눌수록, 줄수록 더 커지는 기적을 가져오게 됩니다. 


하나님의 속성(屬性)은 사랑과 정의라고 합니다. 이것은 저울의 양 추와 같이 평형을 이루고 있습니다. 인간은 사랑과 정의의 균형을 이루기가 힘듭니다. 인간에게서 거의 불가능한 이 두 개를 동시에 이루는 것이, 주는 것과 나누는 것을 통해서 가능합니다. 나누고 주는 것은 사랑의 실천이요, 정의가 요구하는 균형을 이루기 위한 몸부림입니다. 정의는 균형을 토대로 하기 때문에, 나누는 것, 주는 것은 사랑과 정의를 동시에 만족시키는 것입니다. 주는 것, 나누는 것의 극치라고 할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하나님의 속성인 사랑과 정의는 동시에 만족될 수 있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부자의 정의를 새롭게 해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많이 가진 사람을 부자라 이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많이 베풀 수 있는 자, 많이 줄 수 있는 자가 부자입니다. 세상에는 많이 가졌지만 남에게 베풀지 못하는 가난한 이들이 많습니다. 가진 것은 많을지 몰라도 나누지 못하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서는 가난한 자입니다. 그와 반대로 많이 가지지는 못했지만 남에게 베풀기를 좋아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가난하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부자입니다. 우리가 많이 갖지는 못했을지라도, 베풀 수 있는 신앙인이 될 때, 또 베풀려고 노력하는 신앙인이 될 때, 부자가 됩니다. 하나님이 우리로 하여금 많이 베풀 수 있도록 끊임없이 공급해 주실 것이라고 약속했기 때문입니다.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는 말씀을 끊임없이 실천하려고 할 때, 온 우주를 소유하신 하나님은 당신의 아들딸들이 더 잘 줄 수 있도록, 더 잘 베풀 수 있도록 늘 공급해 주실 것입니다. 우리는 이 약속을 믿습니다. 이 약속을 믿는 것이 기독교 신앙이요, 그리스도인입니다. 


“새해 복많이 받으십시요”라고 할 때 정녕 받아야 할 복은 바로 이 복입니다.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는 이 복입니다. 많이 가지지는 못했을지라도 많이 베풀 수 있는 자가 되는 이 복입니다. 이 복을 실천할 때 그리스도인은 복을 공급하고 복을 나누는 복의 중보자가 될 수 있습니다.



40. 2013년 나의 표어 "기쁨으로 단을 거두리로다"

41. 아멘. 기쁨으로 참으로 많은 열매를 거둘 수 있는 한 해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42. 우리 모두 그러한 은혜가 있는 한 해가 되기를 간절히 축복합니다.

43. 오늘은 한 날 묵상이 아니라 한 해 묵상이었습니다.

44. 날마다 매일 기쁨으로 단을 거두는 은혜를 묵상하기 원합니다.

45. 할렐루야. 아멘.
       
                                         2013. 1. 1. 오후 4시 10분 금식2일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