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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ursday, May 30, 2013

한 날 묵상 - 막 3:1-6 <마음이 완악함하여 봐야 할 것은 주시하지 못하고 엉뚱한 곳을 주시하는 사람들을 향하여>

 한 날 묵상 - 막 3:1-6 <마음이 완악함하여 봐야 할 것은 주시하지 못하고 엉뚱한 곳을 주시하는 사람들을 향하여>

1. 외쳐도 반응도 없고 듣지도 않고, 들으려 하지 않는 세대를 가리켜, 아님 자기에게 이익이 되는 것만을 들으려 하는 세대를 가리켜, 무슨 세대라 말하는 것이 좋을까?

2. 음 성경적 표현을 빌리면, 완악한 세대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완악"하는다는 말은 '성질이 억세게 고집스럽다'는 의미가 있네요.

3. 그래서, 신구약 성경본문에서 찾을 수 있는 완악함의 전형적인 모습들을 찾아 보았다.

4. 구약에서는 출 4-14장의 애굽의 바로왕의 완악함을 예를 살필 수 있다. 바로는 도무지 모세의 말을 들으려 하지 않았다. 자신이 고통을 받는 상황에서도 말이다.

5. 신약에서는 마태복음 11장 15-17절 "장터에서 피를 불어도 춤추지 않고, 슬퍼 울어도 가슴을 치지 않는"
 15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
 16 이 세대를 무엇으로 비유할까 비유하건대 아이들이 장터에 앉아 제 동무를 불러
 17 이르되 우리가 너희를 향하여 피를 불어도 너희가 춤추지 않고 우리가 슬퍼 울어도 너희가 가슴을 치지 아니하였다 함과 같도다

6. 하나님의 자녀들을 향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한 완악함은 바로 말씀을 듣고 깨닫지 못하는 자들이었다.

7. 이런 의미로 볼 때, 심지어 이스라엘 백성들도 하나님께 완악한 백성이었다. 사 6:9-10.
  9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가서 이 백성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하여
  10 이 백성의 마음을 둔하게 하여 그들의 귀가 막히고 그들의 눈이 감기게 하라 염려하건데 그들이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닫고 다시 돌아와 고침을 받을까 하노라 하시기로

8. 이렇듯 "완악함"을 이기는 출발은 들음이다. 그래서 난 '들음은 섬김이다'고 말하고 싶다. 또한 들음에서 출발하는 믿음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들음은 이웃을 품는 출발이다.

9. 요즘 시대는 참으로 귀가 닫혀 있는 시대라 할 수 있다. 한편으로 불신의 시대라고 할 수 있고, 그래서 친밀한 교제가 없는 시대에 살고 있다 할 수 있다.

10. 완악함의 시대를 살아가는 복음의 빚진 자들의 삶을 어떤 삶이 되어야 할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예수님의 모습속에서 발견해 보도록 하자.

11. 복음에, 예수님께 마음이 완악함을 가진 자들을 향햐여 예수님의 반응은 이러하셨다.

12. 1) 탄식하셨다. 그리고 2) 노하심으로 그들을 둘러 보셨다.

13. WHY? 탄식과 노하심을 예수님은 가지셨을까?

14. 예수님을 고발하려 예수님을 주시하는 완악한 마음을 가진 그들에게는 모든 사람에게 복된 소식인 복음을 이해하지 못했고, 받아들이지도 않았고, 삶 속에 누리지도 못하였다.

15. 그들의 완악한 마음을 보신 예수님의 마음은 그들을 향해 탄식하셨고, 그 마음을 사로잡고 있는 악한 세력에 대하여 노하셨다.
 탄식함과 노하심은 구별을 잘해야 한다. 절대로 반대로 해서는 안된다.

16. 그들이 복음에 대해 이해하지 못하고, 받아들이지도 않았고, 누리지도 못했던 것은 무엇이었나?
  4절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과 악을 행하는 것, 생명을 구하는 것과 죽이는 것, 어느 것이 옳으냐"

17. 세번째로 완악함 세대를 향한 예수님의 반응은 3) 복음의 길을 가라. 사랑의 길을 가라. 섬김의 길을 가라(5절)였다. "그 사람에게 이르시되 네 손을 내밀라 하시니"
 완악한 반응을 보이는 그들을 향해 복음을 가진 자들이 할 수 있는 최고의 삶은 복음을 살아내는 인생이다.

18. 복음에 완악한 자들과 논쟁하지 않았으며,  긍휼과 사랑으로 복음의 삶을 살아가며, 복음이 말씀하신 사랑의 완성의 삶을 살아야 한다.

19. 당신은 지금 무엇을 주시하고 있는가? 어디를 바라보고 있는가? 그런데 이 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바로 내 마음에 무엇을 담아 주시하며 바라보고 있는가? 이다.

20. 완악함인가? 열린 마음인가? 무엇보다 복음에 열린 마음인가?

21. 또한 완악함으로 당신을 주시하는 사람들을 향한 당신의 반응은 또한 어떠한가?

22. 똑같은 완악함인가? 아니면 예수님 완약한 그들을 향해 보여주신 모습인가?

23. 완악한 세대, 백성을 향한 탄식함을 가지라. 그들을 행해 또한 분노함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진정한 복음의 삶을 살아가는 삶이야 말로 완악한 세대와 백성들을 향한 복음의 삶임을 기억하자.

24. 오늘도 완악함이 여전히 남아 있다. 그렇지만 신실한 그리스도인들도 여전히 남아있다. 비록 그 수가 적을지라도 말이다.

25. 신실한 그리스도인으로 남아있는 나는 오늘도 예수님의 본받아 복음의 삶을 통해 완악한 세대와 백성들과는 대조적 삶을 살아가는 인생의 오늘 한 날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26. 그들의 완악함이 조금이라도 무너질수만 있다면....

27. 할렐루야! 아멘!

===
‘완악하다’ (hardening)는 것은 하나님과 그 분의 말씀과 사역에 대해 냉담하다는 뜻이다. 
 영적 완악함은 구약에서 30회, 신약에서 20회 언급된다. 대하 36:13절은 남 유다의 패망의 원인을 시드기야의 완악함-강퍅함이라고 본다: 
 “느부갓네살 왕이 저 (시드기야왕)로 그(의) 하나님을 가리켜 맹세하게 하였으나, 저 (시드기야)가 배반하고 목을 곧게 하며 (stiff-necked) 마음을 강퍅케 하여 (hardened his heart)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오지 아니하였고.” 
 먼저 출 4-14장의 애굽의 바로왕의 완악함을 예로 들 수 있다. 사 6:9-10절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하며,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한 완악함은 마음의 둔함 때문이라고 말씀한다.
 시 95:7-11절은 이스라엘의 광야에서의 반역 사건에 대한 회고이다. 히브리서 기자는 독자들의 완악함을 경고하기 위해서 시 95편을 인용한다 (히 3:7-4:11). 

 예수님께서 비유를 설명하시면서 사 6:9-10절을 인용하신다 (마 13:13-15; 막 4:11-12; 눅 8:10).
 예수님이 행하신 많은 이적을 유대인들이 보고도 돌아오지 않은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요 12:40). 그런데 예를 들어, 바로의 경우 그 마음을 완악하게 하신 분은 여호와라고 10번이나 말씀하신다 (출 4:21; 7:3; 9:12 등). 
 그렇다면 신적 목적과 인간의 책임 사이에는 어떤 연관이 있는가? 바로의 마음이 완악해 졌다라고 수동형으로 말하는 구절도 있고 (출 7:14, 22; 8:19; 9:7, 35), 바로 스스로 완악한 마음을 먹었다고 능동형으로 말하는 구절도 있다 (출 8:32; 9:34). 

 롬 9:6-13절에서 바울은 혈통적인 이스라엘 가운데서 일부의 남은 자가 있는 반면에 다수는 남은 자에 들어오지 못했다고 하면서 하나님은 그렇게 하실 수 있는 분이라고 말한다: “그런즉 하나님께서 하시고자 하시는 자를 긍휼히 여기시고 하고자 하시는 자를 완악하게 하시느니라” (롬 9:18). 
 하나님께서 구원받을 자와 저주 받을 자를 예정하실 수 있다고 믿는 전통적인 ‘이중예정설’의 근거 구절이 바로 롬 9:18절이다. 주목해 볼 것은 완악하게 되는 것은 궁극적으로 섭리하시는 하나님에 의해 비롯되지만, 한편으로는 완악함이 영구불변의 상태는 아니라는 점이다 (롬 11:11-24). 완악해진 상태는 하나님의 은혜로 변화될 수 있다. 복음을 믿음으로 완악함은 변화 가능하다. 혈통적 유대인들 전부가 완악해진 (우둔해진) 사람들이 되어 넘어지기까지 (회복 불가능할 정도로, to fall beyond recovery) 실족하지는 않았다 (롬 11:7, 11). 그들은 믿음을 통해서 다시 감람나무에 접붙임을 받을 수 있다 (롬 11:23). 적용해 보면 마음의 완악함은 우리의 책임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경외하고 순종하고자 하는 적극적인 실천이 중요하다. 우리의 사명은 성령의 역사로 인해서 부드러운 마음으로 가지고 100배의 결실을 하는 것이다. 

참고 

Moo, D.J. 2004. 완악. IVP 성경신학사전. IVP. p. 951-954. 

참고
“완전한 미움(perfecto odio)으로 악인들을 미워한다는 뜻은 무엇인가?

악인들 안에 있는 죄악을 미워하되, 악인들은 하나님의 피조물로서 사랑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완전한 미움으로 미워하는 것이니, 곧 악 때문에 악인을 미워하게 되지도 않고, 악인 때문에 악을 사랑하게 되지도 않는 것이다.”
— 아우구스티누스, 『시편주석』 시편 139편 22절 주석 중에서.

 모든 사람을 위한 마가복음 <톰 라이트>
p55. " 왜 예수님은 그날(안식일)을 무시하는 듯이 행동하시는가? 안식일이 무기가 되었기 때문이다. 강력한 배타적 민족주의의 표지가 되었기 때문이다."

Thursday, November 29, 2012

한 날 묵상 - 갈 4:21- 5장 1절 <우리를 자유롭게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이제는 굳게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1. 우리는 어느때 자유할 수 있는가?

2. 율법안에 있을 때 결코 자유할 수 없다.

3. 은혜 안에 있을 때 자유할 수 있다.

4. 법은 우리를 억압하려고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를 지키려고 있다. 결국 법안에 자유할 수 있으련 법이 있는 목적을 깊이 알아야 한다.

5. 율법안에 있으면 우리는 결코 죄 아래 있을 수 밖에 없다. 율법에 완벽한 사람은 결코 없기 때문이다.

6. 그렇지만 우리는 여전히 율법을 떠나서는 살 수 없지만, 율법을 초월하여 자유할 수 있다. 은혜안에 거하기 때문이다.

7. 예수님은 우리게 참 자유를 주셨다. 진정한 자유를 주시기 위해서 자유를 주신 것이다.
 5장 1절

8. 우리는 태어날 때 신분상 약속을 따라 났다.

9. 아브라함에게는 두 아들이 있었다. 여종 하갈에게서 난 아들과 자유있는 여자에게서 난 아들이다.

10. 여종에게서는 육체를 따라 났다. 그러나 자유 있는 여자에게서는 약속을 따라 났다.

11. 육체를 따라 낳은 자녀는 시내 산으로부터 온 율법의 아들이다.(24절) 시내 산에는 속박이 있고, 억압이 있고, 죄가 있다.

12. 자유 있는 여자에게서난 낳은 아들은 예루살렘으로부터 온 어머니로부터 나왔다. 예루살렘에는 약속이 있다. 그리고 자유가 있으며, 은혜가 있다.(24절)
 참고) 로마서 9장 1-18절. 약속의 자녀 약속의 말씀.

13. 믿음의 사람들은 시내산이 아니라, 예루살렘에서 낳은 아들 이삭과 같이 약속의 자녀이다.(28절) "형제들아 너희는 이삭과 같이 약속의 자녀라"

14.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지금 여저히 육체를 따라 살아가고 있다. 29절 "그러나 그 때에 육체를 따라 난 자가 성령을 따라 난 자를 박해한 것 같이 이제도 그러하도다"

15. 로마서 7장에서는 혼인 관계로 비유한 율법과 죄에 대해서, 로마서 8장에서는 생명의 성령의 법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다.

16. 우리는 로마서 7장 24절 말씀을 읽히 알고 있다.
 24절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17. 우리에게는 자유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나 결코 쉽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종의 멍에를 메는 것이 때로는 편하기 때문이다.

18. 출애굽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십시오.
 출애굽기 16장 2-3절 "이스라엘 자손 온 회중이 그 광야에서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여"
 "이스라엘 자손이 그들에게 이르되 우리가 애굽 땅에서 고기 가마 곁에 앉아 있던 때와 떡을 배불리 먹던 때에 여호와의 손에 죽었더라면 좋았을 것을 너희가 이 광야로 우리를 인도하여 내어 이 온 회중이 주려 죽게 하는도다"

19. 왜 그럴까요? 왜 우리는 진정한 자유를 누리지 못할까요? 왜 자꾸 종의 습성을 버리지 못할까요?

20. 갈라디아서 5장 1절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건하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21.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22. 마태복음 11장 28-30절에서는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23. 이게 바로 하나님이 원하시는 자녀들의 삶입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우리에게 참 자유를 주시려고 오셨다.

24. 우리가 자유할 수 있는 은혜를 갖는것에 아무런 조건이나 의무사항이 없습니다. 전적인 은혜 뿐입니다.

25. 하나님의 이 사랑을 받으십시오. 예수님의 이 마음을 받으십시오. 그리고 자유의 삶을, 은혜의 삶을 진정 누리며 살아가기 바랍니다.

26.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있다면, 바로 이런 삶입니다.

27. 자유하라. 무엇을 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버리라. 나아게 믿음이 있기에 내가 무엇을 섬기지 않으면 안된다는 생각을 버리라. 그져 예수님이 주시는 은혜안에 자유함을 누리라고 말씀하신다.

28. 우리는 무엇으로부터 자유할 수 있는가?
 죄책감으로부터 자유할 수 있다. 은혜의 복음은 우리를 그렇게 만든다.

29. 래디컬 투게더, p58-59에 실린 글이다.
 복음은 인류를 행위의 중압감에서 해방시켰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은 죄책감으로부터 자유로워졌다. 하나님은 그리스도 안에 머무는 이들의 죄를 말소해 주셨다.
 ...
 어떠한 행위나 공로로도 구원의 조건을 충족시킬 방도가 전혀 없다는 사실을 마음 깊이 새기고 늘 떠올리지 못하기 때문에 아무리 많은 일을 해도 하나님 앞에서 의로워질 수 없다. 오직 이미 할 일을 다 하신 그리스도를 신뢰해야만 주께 나갈 수 있다.
 ..
수준이 떨어지는 죄책감은 내면에서 솟아나는 자발적이고, 절박하며, 즐겁고, 단호하며, 은혜에 감격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고품격 순종에서 밀려난다. 어떤지 죄를 짓는 것 같아서가 아니라 한없이 큰 사랑을 받았으면 남을 위해 희생하는 사랑에서 큰 만족을 얻을 수 있기에 아낌없이 베푸는 삶을 살게 된다. 의무감이 아니라 기대감을 가지고 급진적인 그리스도인의 길을 걷게 된다는 뜻이다.

30. 그져 선물이다. 인생이 선물이다. 삶이 선물이다. 결코 인생이 불행이 아니다. 삶이 불행이 아니다.

31. 성령이 주시는 참 자유를 누리기 원한다. 성령이 주시는 참 자유속에서야 우리는 하나님께 온전히 순종할 수 있다.

32. 아멘.





Friday, November 2, 2012

출 4장 24-26절 십보라의 할례


출애굽 4장에서 왜 하나님은 모세를 죽이려 하셨을까?인데....

십보라의 할례는 모세와 아들 모두에게 행한 할례입니다.
25절 십보라가 아들에게 할례를...   
       "피남편이로다" 말함은 모세에게 행한 영적할례입니다.

모세는 아마도 할례를 받지 않았을 것입니다.
모세가 태어났을 때 모든 아이는 죽었어야 했기에
할례를 행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석달동안 숨어서 키워야 하니까요..
물론 바로 궁에서 할례는 더욱 더 못했을 것이고..
그렇게.. 시간이 흘러 이제 80살이 되어 부르심을 받았는데.
지금 당장 바로에게 가야 하는데 
모세가 할례를 받을 수 없으니
십보라가 남편에게는 "피 남편"이라는 말을 통해서
26절에서 보듯이 "피 남편이라 함은 할례 때문이었더라"는
말처럼 남편에게도 영적 할례를 행하게 되었는데
하나님이 이를 받아주신 것입니다.

육체의 할례가 아닌 마음의 할례가 중요하다는 말씀이 구약에서도 나오듯이
마음의 할례를 통해서 할례의 문제와 지도자의 리더십 문제를 해결하신 것입니다.


정리하면...
하나님의 백성들은 아브라함때부터 내려온 전통에 따라 태어난지 8일만에 
할례를 행해야 합니다. 하지만 모세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자신과 아들모두에게...

또한 모세는 지도자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할례를 행하지 않음으로
모세의 리더십에 문제가 생길 수 있었습니다.

결국 할례를 행해야 하는 당면적 문제와 지도자로 부르심속에서 리더십을 위해
하나님께서 극단적인 방법을 사용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또 하나 중요한 사실은 모세의 아내 십보라는 
이방출신이라는 사실입니다.
구약 때부터 이미 하나님은 할례를 통한 율법을 통한 구원이 아닌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말씀하신 것이지요.
이방인에게도 구원이 임할 것임을 십보라를 통해서 
한 번 더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할례를 행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Wednesday, February 15, 2012

성경읽기 - 출애굽기 39-40장

제사장의 옷에 이스라엘 열두지파의 이름이 주렁주렁 달렸습니다.
무슨 의미일까요?

거룩을 입은 제사장이
거룩함을 온 백성 12지파에게 흘러 보내기 위함입니다.

제사장은 늘 그들을 늘 기억해야 합니다.
그들이 거룩하도록....

목회자인 나의 음성에 나의 양들의 이름이,
그들이 이름이 있기를 원합니다.

성전의 아름다움은, 교회의 아름다움은
창조와 같은 아름다움은
사람의 수고와 헌신을 통해 이루어져갑니다.

교회에, 예배에, 그곳 어디든지,
이제 거룩, 말씀, 이루어짐이 있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출애굽기 39-40장

Tuesday, February 14, 2012

성경읽기 - 출애굽기 36-38장


하나님이 명령하신 대로 하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일은 결코 부족함이 없다록 넉넉하도록 할 때 기쁨이 넘칩니다.
 이 때의 "부족함이 없고 넉넉하도록"이 바른 의미는 스스로에 대한 마음입니다. 마음이 넘치면 결코 하나님의 일에 쓸 것에 부족함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일에는 순서가 있습니다.
 먼저, 주님의 희생을 통해 죄의 문제에 깨끗하십시오!
 나아가, 날마다 회개함으로 내 삶을 정결케 하십시오!
 마지막으로, 하나님의 일을 하라!
이 때 시작해도 결코 늦지 않습니다.

출 36-38장

Monday, February 13, 2012

성경읽기 - 출애굽기 34-35장

두번째 기회를 주시는 은혜, 회개하고 일어납시다.
질투하시는 하나님. 질투하실만 하십니다.
진실로 그만큼 사랑했습니다.
질투할만 한 사랑을 해보라.
진실한 사랑을 해야 질투가 생김을 체험케됩니다.
지혜로운 마음을 충만케 하십니다.
자원하십시요.
출34-35장

성경읽기 - 출애굽기 31-33장

감당할 일을 주시고 할 수있는 지혜를 주시니
하나님은 젠틀한 분이십니다.
주일을 온전히 지킴은
나를 거룩하게 하는 방법입니다. 
인간에게 있는 종교성이 선하게 역사하지 않으면
악의 수렁으로 빠지게 됩니다.
주일 아침 선한 예배를 드립시다.
출31-33장

Saturday, February 11, 2012

성경읽기 - 출애굽기 25-30장

성막짓기는 화려함이 아닌
내실입니다.

하나님을 만나는 삶의 생활방식으로 성소를 지어야 합니다.
하나님 없는 성소,
하나님과 교제 없는 성소는 무용지물입니다.

성소의 모든 것은 하나님과 나와의 만남을 위한 것입니다.
우리는
교회를,
내 마음의 성전을
지금 어떻게 지어가고 있습니까? 
거룩을 위한 도구입니까?
아니면,
보여주기 위한 화려함입니까?

내실입니까, 화려함입니까?

출25-30장

Friday, February 10, 2012

성경읽기 - 출애굽기 19-24장

하나님은 지나치리 만큼
거룩, 성결을 말씀하십니다.

이게 귀찮니즘입니까?

아닙니다.

하나님의 소유와 백성이 되기원한다면,
이건 자연스러움입니다.
거룩과 성결이
자연스러움이 될 때,
율법은 내게 너무 잘 어울리는
옷이 됩니다.

오늘 옷맵시 기대합니다.

출애굽기 19-24장

Thursday, February 9, 2012

성경읽기 - 출애굽기 13-18장

구별하라,구별하라, 내 입에 말씀이 떠나지 않게하라.

불기둥, 구름기둥, 신뢰하라. 눈을 들어 주되심을 보라.

시험지를 받아든 백성, 고비고비마다 시험하고 말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진실하며 불의한 이익을 미워하는 자 누구인가?

(출애굽기13-18장)

Wednesday, February 8, 2012

성경읽기 - 출애굽기 7-12장

호흡척척, 하나님과 모세.
우리는 하나, 말씀과 순종.

여호와께서 완악한 마음을 품게 하신 바,
기적도 소용없는 고집불통의 열리지 않는 완강한 마음의 바로.

구별의 절정을 이룬 유월절 어린양의 피가 구별한 이스라엘과 애굽.

난, 난, 난,
모세일까?
바로일까?

(출애굽기 7-12장)


* 출 14장 10-31절 - 구원을 이루시는 사랑 
이스라엘 백성들
- 두려움. 여호와께 부르짖고
- 원망.
- 진퇴양난의 시기에, 바다가 육지라면 좋겠다. 
이 때, 뒤돌어서지 않아야 합니다. 


제목:돌아 서지 않으리(No Turning Back)
주님 뜻대로 살기로 했네... x 3
뒤돌아 서지 않겠네 x 2
이세상 사람 날 몰라줘도...x 3
뒤돌아 서지 않겠네 x 2
세상등지고 십자가 보네...x 3
뒤돌아 서지 않겠네..x 2

어떠한 시련이 와도 수많은 유혹속에도
신실하신 주님 약속 나 붙들리라
세상이 이해 못하고 우리를 조롱하여도
신실하신 주님 약속만 붙들리다
결코 돌아서지 않으리

- 따라서, 사람이 할 수 없는 장애가 있음을 인정하라. 
- 하나님의 구원은 놀라운 것이다. 
  못하실 일이 없다. 
  인간의 상식을 초월한 방법으로 일하신다. 
- 하나님의 기적을 체험할 기회이다. 
- 두려워 말고 가만히 서 있어라. v14절. 믿음으로 굳게 서서 굳게 서 있으라. 
- 뒤를 향해서는 싸우고, 앞으로는 길을 열겠다. 

Tuesday, February 7, 2012

성경읽기 - 출애굽기 1-6장

기억하시는 하나님,
들으시는 하나님.
길을 여시는 하나님,

But
갈팡질팡 하는 백성들,
오락가락 하는 백성들,
왔다갔다 하는 백성들,

나아가,
물쭈물 하는 지도자 모세,
멈칫멈칫 주저하는 지도자 모세. 출 1-6장

오늘 나는 어떤가?
하나님과 나의 관계처럼 보인다.
믿음으로 뜻을 정하지 못하고 ,
갈팡질팡,
오락가락,
우물쭈물 ,
멈칫멈칫,

나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