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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ursday, April 11, 2013

하나님이 사용하시는 사람들은 누구인가? - 국제제자훈련원

http://www.purposedriven.co.kr/mailService/list.asp?m_Type=QT&LMCode=6&MMCode=2

하나님은 자신의 죄를 고백하는 사람들을 사용하신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준비함이 되리라” (딤후 2:21)
하나님은 모든 종류의 그릇을 사용하신다. 큰 것이든 작은 것이든, 장식이 있는 것이든 없는 것이든, 매우 값진 것이든 평범한 것이든 다 사용하신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사용하시지 않는 그릇이 한 가지 있는데, 바로 더러운 그릇이다. 따라서 하나님께 쓰임 받으려면 정화를 해야 한다.
여호수아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너희는 자신을 성결하게 하라. 여호와께서 내일 너희 가운데에 기이한 일들을 행하시리라.” (수 3:5) 사실 하나님은 당신의 미래에도 위대한 일을 행하기 원하신다. 그러나 먼저는 과거를 청산해야 한다. 어제의 일을 깨끗이 씻어내야 한다.
그것은 어떻게 가능할까? 바로 고백을 통해서이다. 어거스틴은 이렇게 말했다. “악한 일에 대한 고백은 선한 일의 시작이다.” 이는 과거를 더듬어봄으로써 시작할 수 있다. 성경은 말한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요일 1:9)
나는 처음으로 ‘죄 목록’을 만들었던 때를 결코 잊지 못한다. 당시 나는 하나님께서 너무나 멀리 계신 것처럼 느껴졌다. 그분의 권능도 그분의 은혜도 느낄 수 없었다. 내 기도가 천장에 부딪쳐 돌아오는 것만 같았다. 그래서 어느 날 밤 나는 종이를 꺼내 들고 이렇게 말했다. “하나님, 저와 하나님 사이에 있는 죄를 모조리 보여주십시오. 그러면 그것을 구체적으로 적겠습니다. 저는 구체적인 죄를 저질렀고, 그것을 구체적으로 고백하겠습니다. 하나님과 함께, 지금 당장 그것을 처리하여 없애겠습니다.”
나는 쓰기 시작했다. 쓰고 또 썼다. 마치 ‘목적이 이끄는 죄인’이라는 한 권의 책을 쓰기라도 할 기세로 말이다! 마침내 죄의 목록은 9페이지쯤에서 끝났다. 새벽 두 시였다. 나는 모든 죄를 하나님께 고백하고 각각의 죄 위에 요한일서 1장 9절 말씀을 적었다.
나는 그날 밤 이후로도 여러 번 ‘죄 목록’을 만들어야 했다. 우리와 하나님 사이에 죄가 비집고 들어오기란 매우 쉽기 때문이다.
깨끗한 그릇이 되어 하나님께 드려져 사용되려면 정기적으로 죄의 목록을 만들어야 한다. 집안의 쓰레기를 한 달에 한 번만 버리면 온 집안에 퀴퀴한 냄새가 나기 시작할 것이다.
다음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보자.
  • 당신이 마지막으로 ‘특정한’ 죄를 하나님께 고백한 것은 언제였는가?
  • 죄의 목록을 만들 때, 당신이 기억나는 것, 또는 기억나는 것의 수에 있어 어떤 점에 놀라게 되는가?

하나님은 ‘건강 증진의 원칙’을 실천하는 사람을 사용하신다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고전 6:19-20)
‘봉헌(sanctify)’은 무언가를 하나님께서 그분의 뜻대로 사용하시도록 바치는 것을 뜻한다. 집을 들어 “하나님, 이 집을 당신께 드립니다.”라고 말할 수도 있고, 차를 들어 “하나님, 이 차를 당신께 드립니다.”라고 말할 수도 있다. 무엇이든 그것을 들어서 하나님께서 그분 뜻대로 사용하시도록 바치는 것이다.
성경은 이렇게 말한다.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고전 6:19-20)
하나님은 모든 종류의 그릇을 사용하시지만, 우리의 그릇이 순수하고 깨끗하고 건강하길 바라신다. 하나님께 쓰임 받으려면 좋은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 당신의 몸(즉, 그릇)이 하나님이 사용하시도록 봉헌될 때, 그것은 하나님이 부르신 뜻을 행하기에 가장 좋은 상태에 있어야 한다. 성경은 말한다. “주의 손이 나를 만들고 세우셨사오니 내가 깨달아 주의 계명들을 배우게 하소서” (시 119:73)
하나님은 건강 증진의 원칙을 세우셨다. 즉 식사와 운동, 그리고 수면의 균형을 맞추라고 하신다. 좋은 건강을 유지하려면 이 세 가지가 다 필요하다.
하나님은 당신을 통해 위대한 일을 행할 수 있도록, 당신이 영적으로 건강한 것처럼 육체적으로도 건강하기 바라신다.
다음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보자.
  • 당신의 수면 습관은 어떠한가? 때때로 당신이 할 수 있는 가장 영적인 일은 잠자리에 드는 것이다.
  • 당신은 살기 위해 먹는가 아니면 먹기 위해 사는가? 당신의 식사 습관은 영적 건강에 어떤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하는가?
하나님은 단순화된 삶을 사는 이들을 사용하신다
“…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며” (히 12:1b)
하나님의 목적을 위해 사용되고자 할 때, 우리는 삶을 집중시켜야 한다. 성경은 인생을 마라톤에 비유하는데, 이는 우리가 삶을 단순화해야 함을 뜻한다.
성경은 말한다.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며” (히 12:1b)
이는 우리를 방해하고 저지하게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든 삶에서 제거해야 한다는 뜻이다. 사탄은 우리를 무너뜨리지 못한다면 우리를 바쁘게 만들 것이다. 심지어 ‘선한 일을 하느라’ 너무 바쁜 나머지 ‘최선의 일’을 할 시간을 못 내게 할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은 삶을 단순화하라고 말하는 것이다. 우리는 삶에서 불필요한 짐을 버려야 한다. 모든 것을 다 하려고 애쓰지 마라. 가장 중요한 것을 하라. 충실한 주자는 경주에 집중한다.
“하나님의 목적을 위해 살고 싶은 생각이 간절하지만, 시간이 없어요.”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그들이 시간이 없는 이유는 삶을 단순화하려는 데 시간을 내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음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보자.
삶을 단순화하지 못하게 방해하는 것들은 수없이 많다. 다음 중 당신의 주의를 분산시키고 삶을 단순화하지 못하도록 막는 것은 무엇인가?
  1.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대로 되려고 하는 대신 다른 사람들과 같이 되려고 노력하는 것
  2.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하려고 노력하는 것
  3. 다른 사람들이 제멋대로 정한 기대에 부응하려고 애쓰는 것
  4. 너무 많은 취미 또는 한 취미에 너무 많은 시간을 쏟는 것
  5. SNS, 블로그 등의 소셜미디어, 인터넷, 영화, 또는 TV
  6. 잘못된 종류의 관계
  7. 과거의 실수
하나님은 믿음을 견고히 하는 사람들을 사용하신다
“그 후로는 다시 사람의 정욕을 따르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육체의 남은 때를 살게 하려 함이라” (벧전 4:2)
당신은 믿음을 견고히 하기 위해 어떻게 하는가? 믿음을 강화하는 데는 몇 가지 방법이 있다.
성경을 연구하라. 우리는 하나님 말씀을 삶의 일부로 만들 필요가 있다. 하나님 말씀은 계시된 것이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을 다 할 수 있도록 우리를 온전히 준비시킬 것이다.
경건의 시간(QT)을 지속하라. 요즘 당신의 경건의 시간은 어떠한가? 어떤 사람들은 이 질문에 죄책감을 느낄지도 모른다. 그것은 아마도 누군가가 오래 전에 가르쳐준 대로 경건의 시간을 가지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그 방법이 하나님께서 자신을 지으신 방식과 맞지 않기 때문일 수도 있다. 당신이 매일 하나님 말씀 안에서 일정한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신앙 서적을 읽으라. 다른 신자들로부터, 가능한 한 모든 것을 배우라. 다른 신자들이 한 이야기들을 계속해서 영혼에 공급하라. 혼자서만 성경을 연구하고 다른 신자들이 그에 대해 하는 이야기를 듣지 않는다면, 다른 신자들의 지혜와 경험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것을 얻지 못한다.
간증거리를 새롭게 하라.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삶에 무엇을 행하고 계신가? 당신이 가장 마지막으로 간증거리를 쓴 때는 언제인가? 간증거리를 쓰면, 하나님께서 그것을 나눌 수 있는 기회를 주실 것이다. 다른 사람들과 간증거리를 나눌 때, 우리의 믿음은 강화된다.
신자들의 소그룹 모임에 성실하게 참여하라. 성경은 우리가 “피차 권면하고 서로 덕을 세우기를” 힘써야 한다고 말한다. (살전 5:11a) 우리는 믿음의 마라톤을 경주하고 있으며, 함께 뛰어야 한다. 우리는 다른 신자들의 지지와 격려가 필요하다.
다음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보자.
  • 정기적인 성경 연구를 위한 당신의 계획은 무엇인가?
  • 소그룹과 이야기를 나눠보고, 훌륭한 신앙 서적의 목록을 만들어보라.
  • 이번 주에 시간을 들여 당신의 간증문을 써보라. 길게 쓰지 않아도 된다. 그리고 몇몇 크리스천 친구들에게 그것을 보여주라. 그들은 당신이 진정 말하고자 하는 것에 초점을 맞출 수 있도록 도와줄 것이다.
  • 소그룹 내에서 서로를 격려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보라.




하나님은 그분을 향한 열정이 있는 사람들을 사용하신다
“배역한 자식들아 돌아오라 내가 너희의 배역함을 고치리라 하시니라. 보소서 우리가 주께 왔사오니 주는 우리 하나님 여호와이심이니이다.” (렘 3:22)
가장 마지막으로 하나님을 향한 갈망을 느꼈던 때가 언제였는가? 하나님과의 친밀함을 너무나 간절히 원해서 모든 것을 버려두고 하나님을 좇을 정도로, 하나님을 너무나 갈망해서 메마르고 거친 광야에서도 줄곧 그분을 따를 정도로 갈망했던 때 말이다. (렘 2:2)
당신도 나와 같다면 당신은 아마도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하나님, 그런 사랑은 인간적으로 불가능한 것 같습니다!”
당신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면, 당신 생각이 맞다. 우리는 우리 안에 예수님이 계셔야만 하나님 사랑의 초자연적인 신비로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다. 하나님은 당신 안의 욕구를 변화시키실 수 있다. 즉, 하나님은 당신 안에 깊고 헌신적인 사랑의 불꽃을 다시 살리실 수 있다.

하나님을 향한 열정을 잃어버렸다면, 그것을 되찾는 방법은 어떻게든 그 사랑의 수준에 도달할 때까지 더 열심히 노력하는 것이 아니다. 열정을 되찾는 방법은 당신을 깊은 헌신의 모습으로 돌아오게 하는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하는 것이다. (렘 2:2)
하나님은 우리의 방탕한 본성을 용서해주실 것이다. 그리고 우리의 무딘 믿음을 고쳐주실 것이다.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배역한 자식들아, 돌아오라. 내가 너희의 배역함을 고치리라.”
이때 우리의 반응은 다음과 같아야 한다. “보소서, 우리가 주께 왔사오니 주는 우리 하나님 여호와이심이니이다.” (렘 3:22)
다음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보자.
  • 당신은 하나님을 향한 자신의 열정을 어떻게 묘사할 수 있겠는가?
  • 하나님께서 우리의 무딘 믿음을 고쳐주실 거라면, 하나님을 향한 깊은 열정으로 돌아오지 못하도록 우리를 막는 것은 무엇인가?
하나님은 거룩한 열정을 다른 이들에게 전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을 사용하신다
“좋은 일에 대하여 열심으로 사모함을 받음은 … 언제든지 좋으니라” (갈 4:18)
하나님은 열정적인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은 열정적으로 어떤 것을 사랑하시고 열정적으로 다른 것을 미워하신다. 하나님께 더 가까이 갈수록, 하나님은 당신이 세상에서 그분의 대변인이 될 수 있도록 하나님이 깊이 마음 쓰시는 것에 대한 열정을 당신에게 부어주실 것이다.
그것은 문제에 대한 열정일 수도 있고, 목적, 원칙, 또는 사람들에 대한 열정일 수도 있다. 그것이 무엇이든 당신은 그것에 대해 소리 내어 말하고, 변화를 일으키고자 하는 열망에 휩싸일 것이다.
사람들은 자신이 가장 관심을 갖는 것에 대해 말하지 않고는 못 배긴다. 예수님은 “마음에 가득 찬 것을 입으로 말하는 법이다.”라고 말씀하셨다. (마 12:34, 새번역)
이에 대한 좋은 예가 두 가지 있다.
  • “주님의 집에 쏟은 내 열정이 내 안에서 불처럼 타고 있습니다.”라고 말한 다윗. (시 69:9, 새번역)
  • “주님의 말씀이 나의 심장 속에서 불처럼 타올라 뼛속에까지 타들어 가니, 나는 견디다 못해 그만 항복하고 맙니다.”라고 말한 예레미야. (렘 20:9, 새번역)
하나님은 어떤 사람들에게는 대의를 위해 싸우고자 하는 거룩한 열정을 주신다. 그것은 종종 학대, 중독, 불임, 우울증, 질병, 또는 다른 역경처럼, 자신이 개인적으로 경험한 문제가 된다.
때때로 하나님은 스스로 목소리를 낼 수 없는 사람들을 위해 소리를 낼 수 있는 열정을 주시기도 한다. 태아, 박해 받는 사람, 가난한 사람, 감옥에 갇힌 사람, 학대 받는 사람, 불우한 사람, 공평한 대우를 받지 못하는 사람 등.
성경은 방어 능력이 없는 사람들을 보호하라는 명령으로 가득 차 있다.
하나님은 열정적인 사람들을 사용하셔서 그분의 왕국을 발전시키신다. 하나님은 당신에게 새 교회를 시작하거나, 가정을 견고히 하거나, 성경 번역 사역에 자금을 공급하거나, 크리스천 리더를 훈련시키고자 하는 거룩한 열정을 주실 수도 있다. 또는 사업가, 십대 청소년, 외국인 교환학생, 젊은 엄마, 또는 특정한 취미를 가진 사람들처럼 특정 부류의 사람들에게 복음을 들고 나아가고자 하는 거룩한 열정을 주실 수도 있다.
또, 하나님께 여쭤본다면, 하나님은 강한 크리스천 증인을 간절히 필요로 하는 구체적인 나라 또는 민족을 향한 마음의 짐을 지워주실 것이다.
하나님은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서 이루시고자 하는 모든 것이 이뤄지도록 우리에게 서로 다른 열정을 주신다. 우리는 남들도 자기의 열정에 대해 똑같이 열정적이 되기를 기대해선 안 된다.
오히려 우리는 서로의 삶의 메시지를 귀 기울여 듣고 소중히 여겨야 한다. 모든 것을 다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절대 다른 누군가의 거룩한 열정을 경시해선 안 된다.
성경은 말한다. “좋은 일에 대하여 열심으로 사모함을 받음은 … 언제든지 좋으니라” (갈 4:18)
다음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보자.
  • 하나님은 당신에게 어떤 열정을 주셨는가?
  • 현재 당신은 그 열정을 추구하기 위해 무엇을 하고 있는가?
  • 당신은 하나님께서 당신이 그분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무언가를 더 많이 또는 다르게 하기를 바라신다고 믿는가?
  • 당신은 친구와 가족의 거룩한 열정을 어떻게 도울 수 있겠는가?
===
결국은 선택의 문제였다
===
하나님께서는 당신을 오래 전에 선택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오래 전에 여러분을 선택하셨고, 그분의 거룩한 백성으로 삼기로 계획해 놓으셨습니다.” (벧전 1:2, 쉬운성경)
좌절은 찾아온다. 좌절은 늘 우리를 찾아온다. 어쩌면 당신은 관계의 어려움이나 경력의 정체, 또는 질병 같은 것 때문에 좌절감을 느끼고 있을지도 모른다.
좌절이 찾아오면, 다음 한 가지를 확신하며 안도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 당신을 그분의 가족으로 삼기 위해 선택하셨다는 것이다. 당신이 하나님을 선택하기 오래 전에, 하나님께서 당신을 선택하셨다!
베드로전서 1:2은 이렇게 말한다. “하나님께서는 오래 전에 여러분을 선택하셨고, 그분의 거룩한 백성으로 삼기로 계획해 놓으셨습니다.” (쉬운성경)
하나님은 당신이 뭔가를 했기 때문에 당신을 선택하신 게 아니다. 당신을 선택하신 것은 하나님이 ‘그런 분’이시기 때문이다. 당신은 하나님께서 구원하실 만큼 선하지도, 똑똑하지도, 경건하지도 않았다. 하나님이 당신을 구원하신 것은 그분이 당신을 사랑하시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복음이다 - 진정 복된 소식인 것이다! 이것이 바로 당신의 전 생애의 토대가 되어야 할 복음이다.
하나님의 가족이 되기 위해 한 것이 아무 것도 없기에, 당신은 그것을 잃을 방도가 없다. 베드로전서 1:3은 이렇게 말한다. “하나님은 자비로우셔서, 우리에게 산 소망을 주셨습니다. … 우리는 새 생명을 받은 것입니다.” (쉬운성경)
하나님의 가족이 되는 것은 당신의 행위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비에 의한 것이다. 우선 당신은 하나님의 가족이 될 자격이 없었다. 또한 지금도 그럴 자격이 없다. 오직 우주의 창조주께서 “네가 내 가족이 되길 바란다”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다음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보자.
  • 자신이 틀림없는 하나님의 가족이라는 사실을 알 때, 삶에 대한 당신의 태도와 관점은 어떻게 바뀌겠는가?
  • 오늘 당신이 하나님의 견고한 사랑과 안아주심 속에서 안도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하나님께서 당신을 사용하실 수 있도록, 의심을 버리라
“…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약 1:6-7)
삶 속에서 자기회의에 빠지게 하는 것에는 다음 두 가지가 있다.
1. 남과 능력을 비교하면 자신의 능력을 의심하게 된다. 이는 하나님은 바라보지 않고 다른 사람들을 바라보기 시작하는 것이다. 다른 이들에게 더 많은 재능, 능력, 학력, 또는 경험이 있다고 생각한다. 자기 자신을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는 순간, 우리는 자기 회의에 가득 차게 된다.
성경은 자신을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는 것이 어리석다고 말한다. (고후 10:12) 하나님은 당신이 다른 누구와도 비교하길 원치 않으신다. 하나님은 당신이 고유한 존재로 있길 원하신다. 당신이 당신답길 바라신다.
2. 과거의 실패를 떠올리면 자신의 능력을 의심하게 된다. 과거의 실패를 떠올리는 것은 마치 그간의 모든 실수에 관한 영화를 머릿속에 집어넣고 그것을 되풀이하여 재생하는 것과 같다. 그것은 자신에게 엄청난 고문이다.
하나님은 당신이 과거에 초점을 맞추길 원치 않으신다. 과거의 실수에 계속 얽매어있으면, 현재를 제대로 살아갈 수 없으며, 하나님은 그러한 당신을 미래에 사용하실 수 없다. 하나님은 과거를 잊으라 말씀하신다.
과거의 의심이나 죄 때문에 하나님께 쓰임 받을 기회를 놓치지 마라. 하나님은 “네 과거가 어떻든, 난 상관 없다. 난 널 사용하고 싶다!”라고 말씀하신다.
다음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보자.
  • 당신은 하루에 몇 번이나 자신이 가진 것, 성취했거나 성취하지 못했던 것, 또는 보여지는 모습을 다른 사람과 비교하는가?
  • 당신은 하나님께서 그 허비했던 시간 대신 무엇을 이루시길 바라는가?

Wednesday, December 5, 2012

"하나님의 말씀은 거울이다" 목적이 이끄는 삶을 위한 매일의 묵상 1079호

하나님 말씀은 거울이다
“너희는 말씀을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 누구든지 말씀을 듣고 행하지 아니하면 그는 거울로 자기의 생긴 얼굴을 보는 사람과 같아서 제 자신을 보고 가서 그 모습이 어떠했는지를 곧 잊어버리거니와 자유롭게 하는 온전한 율법을 들여다보고 있는 자는 듣고 잊어버리는 자가 아니요 실천하는 자니 이 사람은 그 행하는 일에 복을 받으리라. (약 1:22-25)

야고보 사도는 하나님 말씀이 거울이라고 말한다. 거울은 우리 자신을 평가할 수 있게 도와준다. 거울을 들여다보면 무언가를 시작하기 전에 내게 고쳐야 할 것이 있는지를 판단할 수 있다. 성경도 마찬가지다.

사람들은 성경이라는 거울을 둘 중 한 가지 방법으로 본다. ‘흘깃’ 보거나 ‘자세히’ 보는 것이다. 70년대 TV 시트콤 ‘해피데이즈(Happy Days)’에서 등장인물인 폰즈는 거울을 힐끔 보고 지나쳤다. 가다가 멈춰서 거울을 보고는 “안녕!”이라고 말하는 식이었다. 다른 건 아무 것도 할 필요가 없었다. 그 자신은 완벽한 존재였기 때문이다. 그저 힐끗 보기만 하면 되었다.

그러나 하나님 말씀은 그렇게 보는 것이 아니다. 또, 허둥지둥 조급한 마음으로 하나님 말씀을 흘깃 보고 자리에서 일어나선 안 된다. 하나님 말씀을 잠깐 보는 것으로는 인생이 변화되지 않는다.
하나님이 복 주시는 삶을 원하는가? 그러려면 하나님 말씀을 자세히 들여다보는 것으로 시작해야 한다.

야고보서 1:22-25은 하나님이 복 주시는 성경 공부에 대한 청사진을 다음과 같이 제시한다.
  • 성경을 읽고 해석하라. “… 율법을 들여다보고 있는 자는 …”
  • 성경을 기억하라. “… 듣고 잊어버리는 자가 아니요 …”
  • 성경에 반응하라. “… 실천하는 자니 …”
다음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보자.
  • 하나님 말씀을 힐끗 보지 않고 자세히 볼 때 하루의 삶이 어떻게 다른 것을 느끼는가?
  • 당신이 현재 경건의 시간을 위해 떼어 놓는 시간의 양은 하나님 말씀을 읽고 해석하고 기억하고 반응하기에 충분한가?

성경으로 삶을 비춰보라
“주의 말씀을 열면 빛이 비치어 우둔한 사람들을 깨닫게 하나이다” (시 119:130)

모든 사람은 빛을 필요로 한다. 물리적 빛은 주변 세계를 바라볼 수 있게 해주고 장애물에 부딪히는 것을 피하게 해준다.

하나님은 그분의 말씀을 통해 당신의 마음에도 빛을 비춰주기 원하신다. 성경은 “주의 말씀을 열면 빛이 비치어 우둔한 사람들을 깨닫게 하나이다”라고 말한다. (시 119:130)

하나님은 빛 - 그분의 빛 - 을 모든 개개인에게 비춰주길 바라신다. 그분을 아는 진리로 우리의 마음과 그분이 뜻하시는 우리 삶의 다음 단계를 밝혀주기 원하신다.

성경적 묵상은 종종 그 빛을 켜는 열쇠가 된다. 우리는 그 빛에 마음을 흠뻑 적셔야 한다. 성경적 묵상은 우주에 마음을 빼앗기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 말씀에 마음의 초점을 맞추는 것이다. 그렇게 할 때, 삶에 빛이 들어온다.

하나님은 그분의 말씀을 통해 당신이 색다른 관점으로 삶을 볼 수 있도록 도우신다. 시 119편 105절은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라고 말한다. 하나님 말씀은 우리 삶에 방향을 제시하고, 하나님께서 우리가 가길 원하시는 길을 보여준다.

이 시편이 쓰여졌을 때, ‘등’은 사람들이 들고 다니던, 양초가 든 램프였다. 오늘날로 치면 손전등과 같은 것이다. 손전등을 들고 가면서 좀더 앞의 길을 보고 싶다면 한 발짝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나는 갈 길을 몰라 헤맬 때, 하나님께서 길 전체를 볼 수 있도록 빛을 비춰주시길 구한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저 다음 발걸음을 뗄 수 있을 만큼만 빛을 비춰주셨다. 우리가 발걸음을 떼면, 하나님께서 그 다음 발걸음을 디딜 수 있도록 빛을 비춰주신다.

하나님 말씀의 빛을 켜는 가장 좋은 방법 중 하나는, 시 119편 18절과 같은 하나님 말씀으로 기도하는 것이다. “내 눈을 열어서 주의 율법에서 놀라운 것을 보게 하소서” 당신은 하나님 말씀에서 놀라운 것을 보고 싶지 않은가? 하나님께서 당신의 눈을 열어 그분이 당신의 삶을 통해 하고자 하시는 것을 보여주시길 구하라.

하나님은 그 빛을 비춰주실 준비가 되어 있으시다.

다음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보자.
  • 하나님이 도무지 알 수 없는 분처럼 느껴진 적이 있는가? 그러한 때, 당신은 답을 찾기 위해 하나님 말씀을 의지했는가?
  • 당신은 그저 하나님께서 명확하게 해주시길 기다리는가, 아니면 그분의 명확성과 통찰력을 구하는가?
  • 성경을 그냥 읽는 것과 성경적 묵상의 차이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Wednesday, November 16, 2011

야고보서의 믿음과 행함, 어떻게 봐야 하나?


야고보서의 믿음과 행함(약 2:1, 14-17), 어떻게 봐야 하나?

현재 한국교회에서 논란이 되는 이슈가 무엇인가 생각해 보았습니다그 중의 하나가 믿음과 행함의 관계가 아니겠는가 생각되었습니다이 주제와 관련해서는 예수님의 산상설교가 많이 논의되지만야고보서 2장도 빼놓을 수 없는 본문입니다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는 야고보서 2장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야고보는 믿음과 행함에 대해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가에 대해 핵심만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야고보서 2장은 ‘행함에 대해 강조하고 있다고 합니다물론 이것은 맞습니다야고보는 성도의 실생활에 대해 많이 강조하고 있습니다그러나 야고보는 믿음과 분리된 행함믿음과 관계없는 행함을 강조하는 것이 아닙니다오히려 참 믿음은 행함으로 나타난다는 것을 말합니다그래서 야고보의 관심은 참된 믿음이란 무엇인가참 믿음은 어떤 것인가하는 것에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우리는 이것을 어디서 알 수 있을까요간단하게 네 가지로 살펴보겠습니다.

믿음을 외모로 취함으로 갖는 문제
1절은 “내 형제들아 영광의 주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너희가 받았으니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말라고 말합니다(개역한글판). 개역개정판도 비슷합니다. “내 형제들아 영광의 주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너희가 가졌으니 사람을 차별하여 대하지 말라.” 그러나 이런 번역은 오해를 초래하기 쉽습니다너희는 이미 믿음을 가지고 있으니 이제부터는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말라”, 이제부터는 ‘행함에 대해 말한다는 인상을 줍니다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야고보서 2장은 ‘행함에 대해 말한다고 봅니다.
그러나 원문을 직역하면 “내 형제들아너희는 영광의 주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외모로 취함으로 가지지 말라.”가 됩니다여기서 ‘믿음이 목적어입니다야고보는 여기서 우리가 ‘믿음을 어떻게 가져야 하는가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우리는 영광의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외모로 취함으로 가지지 말라는 것입니다차별함으로 가지지 말라고 합니다.
그래서 남아공화국의 L. 플로어(Floor) 교수가 1-13절을 ‘외모로 취함이 없는 믿음’, 14-26절을 ‘행함이 있는 믿음으로 본 것은 매우 적절한 것으로 생각됩니다영어로 표현하자면, 1-13절은 “faith without ...”, 14-26절은 “faith with ...”가 됩니다.
따라서 야고보서 2장은 “참 믿음이 무엇인가?”, “영광의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은 어떤 것인가?”에 대해 말하는 것입니다첫째는외모로 취함이 없는 믿음 곧 차별함이 없는 믿음입니다가난한 자라고 무시하거나 멸시하는 것이 없어야 한다는 말입니다둘째는행함이 있는 믿음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행함으로 나타나는 믿음이어야 합니다.

믿음과 행함말함과 행함의 대비
많은 사람들은 야고보서 2장의 말씀을 ‘믿음 ‘행함의 대비라고 생각합니다. 14절의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이익이 있으리요?”라는 말씀에 대해, ‘믿음 ‘행함이 대비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믿음만 있으면 안 되고 ‘행함이 있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믿음> + <행함>이 야고보가 말하는 주제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본문을 자세히 읽어 보면 그게 아닙니다믿음이 있노라 하고(levgh/, 말하고행함이 없으면 아무 유익이 없다는 것입니다따라서 이것은 믿음이 있노라고 ‘말함과 실제로 ‘행함’ 사이의 대비입니다말하는 것은 거짓될 수 있고 속일 수 있습니다말뿐인 믿음,거짓된 믿음죽은 믿음은 아무 소용이 없고 유익이 없다는 것입니다.
16절 끝에 “평안히 가라 더웁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 하며(ei[ph/, 말하며그 몸에 쓸 것을 주지 아니하면 무슨 이익이 있으리요?”에서도 ‘말함 ‘의 대비입니다 ‘말뿐인 믿음과 실제로 ‘행함이 있는 믿음’ 사이의 대비인 것입니다.
17절에 보면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고 합니다여기서그 자체가’(kaq! eJauthvn) ‘자기 안에서’(in itself), ‘스스로’, ‘원래부터란 의미입니다.그리고 ‘죽은 것’(nekrav)은 형용사로서 죽은 상태(dead)에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중간에 죽은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계속 죽은 상태에 있다는 말입니다.
처음에 믿음이 있었는데나중에 행함이 없어서 죽은 것이 아닙니다행함이 보태지지 않아서첨가되지 않아서 죽은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죽은 상태에 있었다는 것입니다곧 원래부터 참 믿음이 없었다는 뜻입니다따라서 그것은 거짓 믿음이요 헛된 믿음이며 말뿐인 믿음이었습니다.
26절에도 같은 내용이 나옵니다.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처럼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 여기서 ‘죽은 것’(nekrav)도 형용사로서 계속 죽은 상태에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영혼 없는 몸은 처음부터 죽은 상태에 있었던 것처럼곧 한 번도 산 적이 없었던 것처럼행함이 없는 믿음은 처음부터 죽은 믿음이었다는 것입니다한 번도 산 적이 없었다한 번도 참 믿음인 적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야고보서 2장이 말하는 것은 ‘믿음 ‘행함을 플러스 하라는 것이 아니라 ‘참 믿음을 가지라는 것입니다그리고 참 믿음은 행함으로 나타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로마서는 이신칭의야고보서는 이행칭의(?)
21절에 보면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그 아들 이삭을 제단에 드릴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고 합니다여기서 “행함으로 의롭다 함 받았다고 하니 참 당혹스럽습니다어찌 이런 말을 한단 말인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왜냐하면 사도 바울은 믿음으로 의롭다 함 받는다고 누누이 말하기 때문입니다왜 서로 다르게 말하느냐 하는 의문이 생깁니다그래서 루터는 야고보서를 안 좋게 보았습니다야고보서를 ‘지푸라기 서신으로 불렀습니다.
그러나 바울과 야고보의 주장이 다른 것이 아닙니다바울은 ‘이신칭의를 주장하고야고보는 ‘이행칭의를 주장하는 것이 아닙니다이렇게 서로 주장이 다른 것은 아닙니다바울과 야고보는 각기 사용하는 용어의 개념이 다릅니다이 사실을 바로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단어는 같지만 그 의미가 다릅니다.
우선, ‘의롭다 함 받는다’(dikaiovomai)는 용어의 개념이 서로 다릅니다바울은 이 용어를죄인이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고 인정받는다’, ‘죄 용서 받고 하나님과 화목하게 된다는 의미로 사용합니다법정적 용어입니다이에 반해 야고보는 하나님을 믿고 있는 사람,곧 의롭다 함 받은 사람이 그의 믿음이 하나님에 의해 인정받는다분명히 드러난다는 의미로 사용합니다. 22절 끝에 “믿음이 온전케 된다고 했는데이것을 야고보는 ‘의롭다 함 받는다는 의미로 사용합니다.
둘째로, ‘행함’ 또는 ‘행위’(e[rga)의 개념도 다릅니다바울은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 함 받으려는 노력공로라는 의미로 ‘행위를 사용합니다그래서 부정적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이에 반해 야고보는 믿음의 열매로 나타나는 행함이라는 의미로 사용합니다이 행함은 믿음이 있다는 것을 증거하는 것이며믿음의 열매가 드러나는 것으로서의 행함입니다그래서 긍정적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이처럼 각자가 사용하는 단어의 의미가 다릅니다그런데 이런 의미상의 차이를 무시하고단어가 같다고 의미도 같은 것으로 보면 큰일 납니다예를 들어집에서 아기가 ‘마마라고 하면 어머니(mother)란 뜻입니다그러나 궁중에서 임금을 보고 ‘마마라고 하고,중전과 왕자를 보고 ‘마마라고 부르면 다른 뜻입니다왕족이나 궁중 사람을 높여 부르는 말입니다또 의사가 어떤 사람을 보고 ‘마마’ 걸렸다고 한다면그것은 ‘천연두란 뜻입니다.
이처럼 같은 단어라 하더라도 뜻이 전혀 다릅니다그런데 이런 의미상의 차이를 고려하지 않고 ‘마마라는 단어가 나타나면 무조건 ‘어머니란 뜻이라고 보면 안 됩니다전혀 맞지 않습니다예를 들어어떤 역사학자가 조선실록을 보고서 조선시대에는 대신들이 임금을 보고 ‘어머니라고 불렀다고 주장한다면그것은 얼토당토않은 말이며 그런 사람은 학자도 아닙니다.
그런데 지금 한국에서는 그런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야고보가 여기서 “행함으로 의롭다 함 받는다고 말했기 때문에우리가 ‘행함으로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옳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우리는 사도 바울이 사용하는 용어들과 야고보가 사용하는 용어들의 의미상의 차이를 고려해야지그렇지 않으면 대단히 위험합니다큰일 납니다.
우리는 야고보의 가르침을 오해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야고보는 바울과 다른 것을 가르친 것이 아닙니다갈라디아서 2장에 보면바울은 예루살렘에서 야고보와 교제의 악수를 하였다고 합니다사도들이 전하는 복음에 아무런 차이가 없었다는 것을 확인한 것입니다.
야고보는 바울에게 단지 가난한 자들 생각하는 것을 부탁했습니다가난한 자 구제에 힘을 써 달라고 부탁했습니다바울은 이에 대해 “이것을 나도 본래 힘써 행하노라고 말합니다바울은 구제에 열심이었습니다바울은 가는 곳마다 복음을 전할 뿐만 아니라또한 구제 헌금을 모아서 예루살렘의 가난한 자들 돕는 일을 힘썼습니다.

참 믿음은 행함이 있는 믿음
우리 한국교회는 믿음으로 의롭다 함 받는다 하는 이신칭의 교리를 바로 이해하고 굳게 붙들고 힘 있게 전해야 하겠습니다그리고 또한 구제에 힘쓰는 교회가 되어야 하겠습니다가난한 자들과 서민들을 돕는 일에 힘쓰는 교회가 되어야 하겠습니다이것은 곧 야고보가 강조했던 것이고또한 바울이 힘써 행했던 것입니다이렇게 하는 것이 곧 참 믿음을 드러내는 것입니다이것이 곧 행함이 있는 믿음이며 참 믿음입니다.
여러분은 미래의 한국교회를 짊어지고 나갈 교회 지도자들입니다여러분이 담당할 한국교회는 바울이 힘써 행했고 야고보가 강조하였던 바대로 가난한 자들을 돌아보고사회적 약자들과 소외된 자들을 사랑하고 돌아보는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그렇게 할 때,우리 한국교회는 다시금 세상의 빛이 되고 소금이 되어서 우리 사회를 환하게 밝히는 등불이 될 줄로 믿습니다이런 희망과 꿈을 가지고 힘써 기도하고 열심히 공부하고 준비하는 여러분들이 다 되시기 바랍니다아멘.

-변종길 교수(고려신학대학원 신약학), 2011 11 10일 고려신학대학원 경건회 설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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