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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iday, October 5, 2012
한 날 묵상 - 겔 40-48장 에스겔 성전 환상
* 에스겔 성전 환상
- 새 생전과 그 위에 임하시는 하나님의 영광
* 에스겔 성전과 솔로몬 성전(New GoodDay 성경. p1219)
이 두 성전의 모습은 바깥문(1, 2절; 왕상 6;2), 지성서 벽과 골방(5-11절, 왕상 6:5-10) 등의 크기나 규모에 있어서 유사하다. 그러나 솔로몬 성전은 실제 건립된 반면, 에스겔 성전은 환산 중에 계시된 성전이다.
솔로몬 성전은 하나님이 백성 중에 거하신다는 약속을 담고 있으나, 에스겔 성전은 이스라엘 회복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완성되는 신약 교회를 예표한다(히 9:23-26).
* 천년 왕국의 성전(New GoodDay 성경. p1229)
1. 목적 - 하나님의 영광의 구름이 머물 수 있는 장소, 영광의 왕의 중심부(43:7).
2. 제사장 직분 - 사독의 혈통을 따라 세운 제사장들(40:46)
3. 특성 - 휘장이 없다. 진설병을 놓는 상이 없다. 등대가 없다. 언약궤가 없다. 동편 문이 닫힌다.
4. 제물 - 중생의 필요성을 모든 사람에게 상기시키기 위한 것. 구원의 대가가 크고 죄의 무서움을 실물로 보여주는 것. 하나님의 거룩하심.
5. 강 - 성전 밑에서부터 근원이 되어 흘러나와 사해와 지중해로 흘러간다. 그 물에서 헤엄칠 수 있을 정도록 깊다(47:1-12).
6. 성읍 - 천년 왕국의 예루살렘은 여호와삼마라는 명칭을 갖게 된다(48:35).
* 사독의 대제사장직(New GoodDay 성경. p1222) 참조 44장 15절
아비아달과 함께 다윗 통치 때 대제사장으로 섬긴 자다. 후일 아비아달은 아도니야의 반란에 가담했기 때문에 대제사장에서 면직되었으나 사독은 솔로몬 통치 때에도 대제사장으로 섬겼다. 그의 후손들은 새 성전에서 가장 중요한 기능을 담당하리라는 약속을 받았다. 하나님은 이같이 충성된 자들을 통해 구원 역사를 차질 없이 이루어 가신다.
* 에스겔 제단 형상에 담긴 의미 - 참조 43장 13-17절
제단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죄사함을 받기 위한 장소이다. 첫째, 제단의 구조가 밑받침, 아래층, 위층, 제단으로 되어 있다는 사실은 협력과 화합의 의미를 함축한다.
둘째, 제단의 뿔은 권세와 권능을 상징한다.
셋째, 제단이 길이와 폭의 치수가 정방형인 것은 견고성과 안전성을 시시한다. 제단이 내포한 이러한 의미는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적 죽음의 의미와 긴밀히 연관된다.
Wednesday, October 3, 2012
한 날 묵상 - 겔 39:1-29 <주님의 사랑은 영원하시다. 신실하신 주님의 사랑은 영원하다.>
한 날 묵상 - 겔 39:1-29 <주님의 사랑은 영원하시다. 신실하신 주님의 사랑은 영원하다.>
<침략자 곡의 멸망과 이스라엘의 회복>
1. '아들을 따끔하게 가르치지 않는 아버지는 그 아들을 미워하는 것'이라는 말이 있다.
2. 지금까지 유다를 향한 이방 민족들의 회초리는 바로 아들을 향한 아버지의 사랑의 마음이었다.
3. 아버지에게는 아들을 향한 분명한 뜻이 있다. 아버지께 돌아오는 것이다. 아버지 품에 안기는 것이다.
4. 이방 민족들을 들어 유다를 심판 하신 후, 이방민족의 교만함을 들어 그들을 징계하신 후, 하나님의 처음부터 의도하시고 원하셨던 마음이 있다.
5. 그 마음이 바로 이스라엘의 회복이시다.
6. 심판의 예언은 이미 선포되었지만, 그 심판이 임하지 않게 하는 방법은 오직 하나이다. 바로 회개하는 것이다. .
7. 물론 그런 가능성이 희박한 것이 사실이지만... 그래서 그들에게 심판은 임하게 된 것이다.
8.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면, 악순환은 계속 반복되었음을 알 수 있다. 수 없이 많은 하나님의 참으심에도 아주 짧은 순간 회개하고 말씀을 지키는 것처럼 보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예전의 신앙으로 되돌아가 버리는 그들은 모습은 몇 번이고 반복되었다.
9. 결국 예수님이 다시 오시기까지 400여 년의 하나님의 침묵기까지 가지게 되셨다.
10. 에스겔 39장에서 에스겔서가 담고 있는 메시지를 발견하게 된다. 바로 이스라엘의 회복이다.
11. 이스라엘의 회복은 곧 예루살렘 성전의 회복이다.
12. 따라서 에스겔 41장부터 48장까지는 하나님의 그리시는 성읍을 볼 수 있다.
13. 이쯤에서 앞서 살핀 에스겔의 주제로 되돌아 보자.
14. 1) 에스겔 전체를 뒤덮고 있는 주제는 하나님의 주권과 영광이다. 2) 인간의 철저한 죄성이다. 3) 처음 두 주제에서 발전하는 것으로 피할 수 없는 심판의 도래이다. 에스겔의 전체의 전환점은 예루살렘 멸망의 소식이 전해지는 것에서 시작된다. 그것은 에스겔 24장의 끝에 예기되었던 사건이며, 실제로 33:21-22에서 일어난다. 4) 왕이신 하나님이 돌아오시고 백성들은 땅과 축복을 되찾게 되는 것이다. 새로워진 성전에 대한 에스겔의 환상에서 그 중심은 하나님의 영광이 지극히 높은 곳으로 돌아오는 것이다(겔 43:1-5).
15. 하나님의 영광은 새하늘과 새 땅이다. 바로 하나님이 새롭게 세우신 곳이다. 다른 이로는 할 수 없는 거룩과 정결의 새하늘과 새 땅이다.
16. 침략자 곡의 멸망과 이스라엘의 회복을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를 향한 사랑의 마음을 알 수 있다.
17. 하나님의 자녀들은 누구인가? 하나님을 창조주로, 주관자로,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성령님을 나의 삶의 주인으로 인정하는 사람들이다.
18. 자녀됨은 지역적이지고, 선택적이지 않는다. 어느 누구나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다.
19. 하나님이 쏟으신 "새 영"(39:29)을 받은 누구나 하나님의 자녀이다.
20. 오늘도 자녀들이 본연의 자리로 돌아오기를 기다리시며 인내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알기 원한다.
21. 하나님의 그 거룩한 열심을 기억하자. 그리고 있는 모습 그대로 하나님께 나아가자.
22. 할렐루야!
====
* 하나님의 백성들을 지키심.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악을 심판하기 위해서 쓰임받았던 주변 나라들은 한결같이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고 교만함으로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되었다.
그리고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한 약속의 말씀을 기억하시고, 그들을 붙들어 일으키시고 회복시키신다.
오늘 본문의 말씀도 동일하다.
* 1-20절 침략자 곡의 멸망
1절 "로스와 메섹과 두발 왕 곡아 내가 너를 대적하여"
4절 "너와 네 모든 무리와 너와 함께 있는 백성이 다 이스라엘 산 위에 엎드러지리라"
6절 '내가 또 불을 마곡과 및 섬에 평안히 거주하는 자에게 내리리니"
7절 "내가 내 거룩한 이름을 내 백성 이스라엘 가운데에 알게 하여 다시는 내 거룩한 이름을 더럽히지 아니하게 하리니 내가 여호와 곧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인 줄을 민족들이 알리라"
* 21-29절 이스라엘의 회복
25절 "내가 이제 내 거룩한 이름을 위하여 열심을 내어 야곱의 사로잡힌 자를 돌아오게 하며 이스라엘 온 족속에게 사랑을 베풀지라"
26절 "그들이 그 땅에 평안히 거주하고"
29절 "내가 다시는 내 얼굴을 그들에게 가리지 아니하리니 이는 내가 내 영을 이스라엘 족속에게 쏟았음이라"
<침략자 곡의 멸망과 이스라엘의 회복>
1. '아들을 따끔하게 가르치지 않는 아버지는 그 아들을 미워하는 것'이라는 말이 있다.
2. 지금까지 유다를 향한 이방 민족들의 회초리는 바로 아들을 향한 아버지의 사랑의 마음이었다.
3. 아버지에게는 아들을 향한 분명한 뜻이 있다. 아버지께 돌아오는 것이다. 아버지 품에 안기는 것이다.
4. 이방 민족들을 들어 유다를 심판 하신 후, 이방민족의 교만함을 들어 그들을 징계하신 후, 하나님의 처음부터 의도하시고 원하셨던 마음이 있다.
5. 그 마음이 바로 이스라엘의 회복이시다.
6. 심판의 예언은 이미 선포되었지만, 그 심판이 임하지 않게 하는 방법은 오직 하나이다. 바로 회개하는 것이다. .
7. 물론 그런 가능성이 희박한 것이 사실이지만... 그래서 그들에게 심판은 임하게 된 것이다.
8.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면, 악순환은 계속 반복되었음을 알 수 있다. 수 없이 많은 하나님의 참으심에도 아주 짧은 순간 회개하고 말씀을 지키는 것처럼 보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예전의 신앙으로 되돌아가 버리는 그들은 모습은 몇 번이고 반복되었다.
9. 결국 예수님이 다시 오시기까지 400여 년의 하나님의 침묵기까지 가지게 되셨다.
10. 에스겔 39장에서 에스겔서가 담고 있는 메시지를 발견하게 된다. 바로 이스라엘의 회복이다.
11. 이스라엘의 회복은 곧 예루살렘 성전의 회복이다.
12. 따라서 에스겔 41장부터 48장까지는 하나님의 그리시는 성읍을 볼 수 있다.
13. 이쯤에서 앞서 살핀 에스겔의 주제로 되돌아 보자.
14. 1) 에스겔 전체를 뒤덮고 있는 주제는 하나님의 주권과 영광이다. 2) 인간의 철저한 죄성이다. 3) 처음 두 주제에서 발전하는 것으로 피할 수 없는 심판의 도래이다. 에스겔의 전체의 전환점은 예루살렘 멸망의 소식이 전해지는 것에서 시작된다. 그것은 에스겔 24장의 끝에 예기되었던 사건이며, 실제로 33:21-22에서 일어난다. 4) 왕이신 하나님이 돌아오시고 백성들은 땅과 축복을 되찾게 되는 것이다. 새로워진 성전에 대한 에스겔의 환상에서 그 중심은 하나님의 영광이 지극히 높은 곳으로 돌아오는 것이다(겔 43:1-5).
15. 하나님의 영광은 새하늘과 새 땅이다. 바로 하나님이 새롭게 세우신 곳이다. 다른 이로는 할 수 없는 거룩과 정결의 새하늘과 새 땅이다.
16. 침략자 곡의 멸망과 이스라엘의 회복을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를 향한 사랑의 마음을 알 수 있다.
17. 하나님의 자녀들은 누구인가? 하나님을 창조주로, 주관자로,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성령님을 나의 삶의 주인으로 인정하는 사람들이다.
18. 자녀됨은 지역적이지고, 선택적이지 않는다. 어느 누구나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다.
19. 하나님이 쏟으신 "새 영"(39:29)을 받은 누구나 하나님의 자녀이다.
20. 오늘도 자녀들이 본연의 자리로 돌아오기를 기다리시며 인내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알기 원한다.
21. 하나님의 그 거룩한 열심을 기억하자. 그리고 있는 모습 그대로 하나님께 나아가자.
22. 할렐루야!
====
* 하나님의 백성들을 지키심.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악을 심판하기 위해서 쓰임받았던 주변 나라들은 한결같이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고 교만함으로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되었다.
그리고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한 약속의 말씀을 기억하시고, 그들을 붙들어 일으키시고 회복시키신다.
오늘 본문의 말씀도 동일하다.
* 1-20절 침략자 곡의 멸망
1절 "로스와 메섹과 두발 왕 곡아 내가 너를 대적하여"
4절 "너와 네 모든 무리와 너와 함께 있는 백성이 다 이스라엘 산 위에 엎드러지리라"
6절 '내가 또 불을 마곡과 및 섬에 평안히 거주하는 자에게 내리리니"
7절 "내가 내 거룩한 이름을 내 백성 이스라엘 가운데에 알게 하여 다시는 내 거룩한 이름을 더럽히지 아니하게 하리니 내가 여호와 곧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인 줄을 민족들이 알리라"
* 21-29절 이스라엘의 회복
25절 "내가 이제 내 거룩한 이름을 위하여 열심을 내어 야곱의 사로잡힌 자를 돌아오게 하며 이스라엘 온 족속에게 사랑을 베풀지라"
26절 "그들이 그 땅에 평안히 거주하고"
29절 "내가 다시는 내 얼굴을 그들에게 가리지 아니하리니 이는 내가 내 영을 이스라엘 족속에게 쏟았음이라"
Friday, September 28, 2012
한 날 묵상 - 겔 38:17-23 <내 노여움이 내 얼굴에 나타나리라 그 때가 되기 전에 나를 알아, 너를 향한 나의 마음을 알라>
1. 우리집에 자녀들이 4명 있습니다. 아직 아이들이 그리 크지 않습니다.
2. 그 아이들이 아침마다 일어나 아빠를 찾습니다. 아빠를 찾아오는 아이들을 보면 너무 행복합니다.
3. 아빠를 찾는 아이들에게는 아빠에 대한 기대가 있을 듯합니다. 아빠가 나를 보고 환하게 웃어주며 앉아주는 기대말입니다.
4. 그런데 아빠가 어떤 화가 나있는지, 얼굴에 노여움이 가득하다면 달려오던 아이들이 그 모습을 볼 때 발길을 돌린다던지, 아니면 자신을 기뻐 반겨주지 못한 아빠로 인하여 하루를 시작하는 아침의 기분이 망칠 수 있습니다.
5. 이처럼, 우리는 하나님에 대한 기대가 있습니다. 환하게 웃어주며 사랑가득 반겨주는 기대말입니다. 언제나 달려갈 수 있고, 다가갈 때마다 사랑으로 품어주시는 아버지를 기대합니다.
6. 그런데, 왠 일입니까? 오늘 우리 아버지는 너무나 화가 나셨습니다."내 노여움이 내 얼굴에 나타나니라"(18절)
7. 너무나 당혹스럽기 짝이 없습니다.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아버지의 모습이기에 낯설기도 하고, 어찌 할 줄 몰라 당혹스럽습니다.
8. 그런데 그것 또한 아버지의 사랑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표현을 통해 "내 위대함과 내 거룩함을 나타내어 나를 알라게 하리니"(23절)라고 말씀하십니다.
9. 어찌 되었는지, 이스라엘 백성들은 아버지를 잃어버렸습니다. 스스로 아버지를 떠나 오랜 세월 지나다보니 아버지의 얼굴이 더 이상 떠 올려지지 않습니다. 특별히 아버지를 떠난 자녀들이 결혼을 하고, 자녀를 낳으면서, 떠난 자녀들이 자녀들은 할아버지의 얼굴을 한 번 본적이 없는 불효자의 가족에서 태어나게 되었습니다.
10. 하나님 아버지는 그게 지금 너무 화가 나셨습니다. 그래서 질투하시고 맹렬한 노여움을(19절,20-22절), 2) 떠난 자녀들과 그 가족들에게 나타내십니다.
11. 왜 그렇게 하실까요? 다시 보고 싶기 때문이다. 떠난 아이들이 다시 돌아오기를 원하는 아버지의 기다림의 마음이 있습니다.
12. 질투하시며 노여움을 표하시는 모습은 어딘가 익숙한 모습니다. 바로 출애굽할 때 애굽 백성들에게 향한 모습니다.
13. 하나님의 노여움에 세상 모든 열방이 떨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걱정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진노앞에 열방과 세상이 무서워하고 있을 노여움의 끝자락에 한줄기 빛을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14. 하나님의 자녀들은 그 빛이 무엇이며 무엇을 의미하는지 압니다. 그러나 그 상황에서도 결코 두려워하고 무서워 떨지 않습니다.
15. 그 빛은 사랑의 빛이며, 구원의 빛입니다. 사랑하기에 사랑의 회초리를 들 수 밖에 없는 부모의 마음말입니다.
16. 진정, 부모와 자녀 사이에 진정성이 있기에 자녀들은 부모의 사랑의 회초리에 담긴 의미를 알 수 있습니다.
17. 진정,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이기에 하나님의 노여움의 얼굴에 담긴 우리를 향한 사랑의 마음을 알 수 있습니다.
18. "나를 알게 하리니"(23절). 하나님을 깊이 알아갑시다.
19. 노여워하시는 하나님의 얼굴을 뵙기 전에 하나님을 더욱 알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을 날마다 더 깊이 사모하기를 원합니다.
20. 곡의 심판을 통해서 알기를 두 가지를 알아가기를 원합니다.
21. 하나님의 노여움의 얼굴의 의미를 알기를 원합니다.
22. 그리고 하나님을 더 깊이 알아가는 삶이 인생에 가장 먼저임을 기억하기를 원합니다.
23. 하나님은 오늘도 각기 다른 얼굴 모양을 통해 우리에게 다가오시며 말씀하십니다. "나를 알라"
24. 오늘도 기쁨과 행복이 가득한 한 날 되세요~~` 사랑합니다.
2. 그 아이들이 아침마다 일어나 아빠를 찾습니다. 아빠를 찾아오는 아이들을 보면 너무 행복합니다.
3. 아빠를 찾는 아이들에게는 아빠에 대한 기대가 있을 듯합니다. 아빠가 나를 보고 환하게 웃어주며 앉아주는 기대말입니다.
4. 그런데 아빠가 어떤 화가 나있는지, 얼굴에 노여움이 가득하다면 달려오던 아이들이 그 모습을 볼 때 발길을 돌린다던지, 아니면 자신을 기뻐 반겨주지 못한 아빠로 인하여 하루를 시작하는 아침의 기분이 망칠 수 있습니다.
5. 이처럼, 우리는 하나님에 대한 기대가 있습니다. 환하게 웃어주며 사랑가득 반겨주는 기대말입니다. 언제나 달려갈 수 있고, 다가갈 때마다 사랑으로 품어주시는 아버지를 기대합니다.
6. 그런데, 왠 일입니까? 오늘 우리 아버지는 너무나 화가 나셨습니다."내 노여움이 내 얼굴에 나타나니라"(18절)
7. 너무나 당혹스럽기 짝이 없습니다.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아버지의 모습이기에 낯설기도 하고, 어찌 할 줄 몰라 당혹스럽습니다.
8. 그런데 그것 또한 아버지의 사랑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표현을 통해 "내 위대함과 내 거룩함을 나타내어 나를 알라게 하리니"(23절)라고 말씀하십니다.
9. 어찌 되었는지, 이스라엘 백성들은 아버지를 잃어버렸습니다. 스스로 아버지를 떠나 오랜 세월 지나다보니 아버지의 얼굴이 더 이상 떠 올려지지 않습니다. 특별히 아버지를 떠난 자녀들이 결혼을 하고, 자녀를 낳으면서, 떠난 자녀들이 자녀들은 할아버지의 얼굴을 한 번 본적이 없는 불효자의 가족에서 태어나게 되었습니다.
10. 하나님 아버지는 그게 지금 너무 화가 나셨습니다. 그래서 질투하시고 맹렬한 노여움을(19절,20-22절), 2) 떠난 자녀들과 그 가족들에게 나타내십니다.
11. 왜 그렇게 하실까요? 다시 보고 싶기 때문이다. 떠난 아이들이 다시 돌아오기를 원하는 아버지의 기다림의 마음이 있습니다.
12. 질투하시며 노여움을 표하시는 모습은 어딘가 익숙한 모습니다. 바로 출애굽할 때 애굽 백성들에게 향한 모습니다.
13. 하나님의 노여움에 세상 모든 열방이 떨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걱정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진노앞에 열방과 세상이 무서워하고 있을 노여움의 끝자락에 한줄기 빛을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14. 하나님의 자녀들은 그 빛이 무엇이며 무엇을 의미하는지 압니다. 그러나 그 상황에서도 결코 두려워하고 무서워 떨지 않습니다.
15. 그 빛은 사랑의 빛이며, 구원의 빛입니다. 사랑하기에 사랑의 회초리를 들 수 밖에 없는 부모의 마음말입니다.
16. 진정, 부모와 자녀 사이에 진정성이 있기에 자녀들은 부모의 사랑의 회초리에 담긴 의미를 알 수 있습니다.
17. 진정,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이기에 하나님의 노여움의 얼굴에 담긴 우리를 향한 사랑의 마음을 알 수 있습니다.
18. "나를 알게 하리니"(23절). 하나님을 깊이 알아갑시다.
19. 노여워하시는 하나님의 얼굴을 뵙기 전에 하나님을 더욱 알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을 날마다 더 깊이 사모하기를 원합니다.
20. 곡의 심판을 통해서 알기를 두 가지를 알아가기를 원합니다.
21. 하나님의 노여움의 얼굴의 의미를 알기를 원합니다.
22. 그리고 하나님을 더 깊이 알아가는 삶이 인생에 가장 먼저임을 기억하기를 원합니다.
23. 하나님은 오늘도 각기 다른 얼굴 모양을 통해 우리에게 다가오시며 말씀하십니다. "나를 알라"
24. 오늘도 기쁨과 행복이 가득한 한 날 되세요~~`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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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절 "그 날에 곡이 이스라엘 땅을 치러 오면 내 노여움이 내 얼굴에 나타나리라"
19절 "내가 질투와 맹렬한 노여움으로 말하였거니와"
20절 "모든 산이 무너지며 절벽이 떨어지며 모든 성벽이 땅에 무너지리라"
21절 "칼로 그 형제를 칠 것이며"
22절 "전염병과 또 피로 심판하며.. 폭우와 큰 우박덩이와 불과 유황으로"
23절 "내가 여러 나라의 눈에 내 위대함과 내 거룩함을 나타내어 나를 알게 하리니"
Tuesday, September 25, 2012
한 날 묵상 - 겔 38:1-16 <네 마음에 여러 생각이 나서 악한 꾀를 내거든 평원의 고을로 올라 가라>
한 날 묵상 - 겔 38:1-16 <네 마음에 여러 생각이 나서 악한 꾀를 내거든 평원의 고을로 올라 가라>
1. "땅이 있을 동안에 심음과 거둠과 추위와 더위와 여름과 겨울과 낮과 밤이 쉬지 아니하리라"(창8:22)는 말씀만큼이나 사람의 마음의 계획은 어려서부터 악하다(창8:21)는 인간의 이치입니다.
2. 참으로 인간은 악합니다. 인간의 생각은 그리 선하지 못합니다.
3. 이 모든 것은 죄의 영향아래있기 때문입니다. 죄가 인간에게 들어온 후, 악은 깨어났고 인간을 지배하게 되었습니다. 어느 누구도 예외없이 죄의 영향아래 놓이게 되었습니다. 결국 하나님은 없는 인간은 생각과 계획은 언제나 악할 수 밖에 없습니다.
4. 이렇듯 우리가 우리 자신의 죄악을 생각할 때, 우리는 하나님을 찾을 수 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만이 우리의 생각을 바로 잡아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5. 이사야 55:8-9절을 보면, "여호와의 말씀에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 길과 달라서 하늘이 땅보다 높음같이 내 길은 너희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으니라"
6. 하나님의 생각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에게 새로운 생각을 가질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7. 결국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입은 백성들은 로마서 12장 2절 말씀에서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는 말씀에 순종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질 수 있게 되었습니다.
8.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이러한 능력이 있습니다. 성령에 도우심을 받으면 감히 이 세대를 악한 생각들을 본받지 않고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을 분별할 수 있는 생각을 가질 수 있게 됩니다.
9. 그러나 아쉽게도 모든 그리스도인들인 쉽게 이렇게 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옛것들로 생각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많습니다.
10. 그래서 로마서는 우리에게 "이것은 명령이다", "치열한 싸움이다"는 현실을 직시해주면서 꼭 지켜야 되는 말씀임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11. 에스겔 선지자는 말씀합니다. 겔 38장 10절 "그 날에 네 마음에서 여러 가지 생각이 나서 악한 꾀를" 내거든, 그 자리에 머물러 있지 말고, 11절 "말하기를 내가 평원의 고을로 올라 가리라"고 말씀합니다.
12. 그 평원의 고을은 어디일까요? 11절에 이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바로"성벽도 없고 문이나 빗장이 없어도 염려 없는 곳"입니다.
13. 많은 생각의 악함들로 인하여 생각의 괴로움이 찾아오거든, 다른 말로 말씀드리면, 삶에서 염려, 근심, 걱정으로 생각이 나아갈 때마다, 평안의 고을로 올라가라는 말씀입니다.
14. 이처럼 개인적인 신앙의 문제들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인으로서 합당하지 못한 생각을 하는 지도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성격적이지 못할 뿐 아니라, 세상이 비웃는 합리적이지 못한 계획들을 많이 하는 보습을 보게 됩니다.
15. 작금에 일어나는 담임목사 세습의 문제나, 97회 합동총회의 문제를 볼 때마다, 하나님의 없는 생각의 말로가 어디인지를 뚜렷히 보여주는 듯 합니다.
16. 이럴 때 일수록 지도자들이여 "자신의 생각대로 일을 처리하지 말고, 잠시 멈추어 평안의 고을로 올라가 하나님의 생각을 분별하는 지혜의 기도를 드리시기 바랍니다"
17. 지도자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인들 개인들에게도 개인적인 생각과 계획의 악함으로 인하여 주변의 가족, 친구, 이웃, 다른 지체들이 믿음의 낙심뿐만 아니라 기독교를 떠나게 하는 상황으로 그들을 이끌 수 있음을 기억하고 깨어 있기를 원합니다.
18. 우리에게는 평안의 고을이 있습니다.
19. 자신의 욕심이나 겸손하지 못함을 내려 놓고, 평안의 고을로 올라간다면, 모두가 함께 기뻐할 길을 찾을 수 있습니다.
20. 내 생각, 내 계획, 내 자손심에 스스로 갇혀 있지 말고 그 암흑한 터널을 빠져 나오기 바랍니다.
21. 그리하여 그곳에서 괴로워하지 말고 힘들어지 하지 말고, 모든 것을 내려 놓고 평안의 고을로 올라가기 바랍니다.
22. 진정한 참 평안을 누릴 수 있게 됩니다.
23. 진정한 하나님의 은혜를 맛보시게 됩니다.
24. 네 마음의 여러 생각이 나서 악한 길로 이끌어 가거든, 모든 것 내려 놓고 평안의 고을로 올라가 하나님이 주시는 참 위로와 평안을 누리는 한 날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25. 할렐루야~~~~!!!
====
Q. 마음에 여러 생각이 나며 왜 악한 꾀들이 들어오나?
Q. 평안의 고을은 어디인가?
1. "땅이 있을 동안에 심음과 거둠과 추위와 더위와 여름과 겨울과 낮과 밤이 쉬지 아니하리라"(창8:22)는 말씀만큼이나 사람의 마음의 계획은 어려서부터 악하다(창8:21)는 인간의 이치입니다.
2. 참으로 인간은 악합니다. 인간의 생각은 그리 선하지 못합니다.
3. 이 모든 것은 죄의 영향아래있기 때문입니다. 죄가 인간에게 들어온 후, 악은 깨어났고 인간을 지배하게 되었습니다. 어느 누구도 예외없이 죄의 영향아래 놓이게 되었습니다. 결국 하나님은 없는 인간은 생각과 계획은 언제나 악할 수 밖에 없습니다.
4. 이렇듯 우리가 우리 자신의 죄악을 생각할 때, 우리는 하나님을 찾을 수 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만이 우리의 생각을 바로 잡아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5. 이사야 55:8-9절을 보면, "여호와의 말씀에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 길과 달라서 하늘이 땅보다 높음같이 내 길은 너희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으니라"
6. 하나님의 생각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에게 새로운 생각을 가질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7. 결국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입은 백성들은 로마서 12장 2절 말씀에서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는 말씀에 순종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질 수 있게 되었습니다.
8.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이러한 능력이 있습니다. 성령에 도우심을 받으면 감히 이 세대를 악한 생각들을 본받지 않고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을 분별할 수 있는 생각을 가질 수 있게 됩니다.
9. 그러나 아쉽게도 모든 그리스도인들인 쉽게 이렇게 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옛것들로 생각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많습니다.
10. 그래서 로마서는 우리에게 "이것은 명령이다", "치열한 싸움이다"는 현실을 직시해주면서 꼭 지켜야 되는 말씀임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11. 에스겔 선지자는 말씀합니다. 겔 38장 10절 "그 날에 네 마음에서 여러 가지 생각이 나서 악한 꾀를" 내거든, 그 자리에 머물러 있지 말고, 11절 "말하기를 내가 평원의 고을로 올라 가리라"고 말씀합니다.
12. 그 평원의 고을은 어디일까요? 11절에 이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바로"성벽도 없고 문이나 빗장이 없어도 염려 없는 곳"입니다.
13. 많은 생각의 악함들로 인하여 생각의 괴로움이 찾아오거든, 다른 말로 말씀드리면, 삶에서 염려, 근심, 걱정으로 생각이 나아갈 때마다, 평안의 고을로 올라가라는 말씀입니다.
14. 이처럼 개인적인 신앙의 문제들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인으로서 합당하지 못한 생각을 하는 지도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성격적이지 못할 뿐 아니라, 세상이 비웃는 합리적이지 못한 계획들을 많이 하는 보습을 보게 됩니다.
15. 작금에 일어나는 담임목사 세습의 문제나, 97회 합동총회의 문제를 볼 때마다, 하나님의 없는 생각의 말로가 어디인지를 뚜렷히 보여주는 듯 합니다.
16. 이럴 때 일수록 지도자들이여 "자신의 생각대로 일을 처리하지 말고, 잠시 멈추어 평안의 고을로 올라가 하나님의 생각을 분별하는 지혜의 기도를 드리시기 바랍니다"
17. 지도자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인들 개인들에게도 개인적인 생각과 계획의 악함으로 인하여 주변의 가족, 친구, 이웃, 다른 지체들이 믿음의 낙심뿐만 아니라 기독교를 떠나게 하는 상황으로 그들을 이끌 수 있음을 기억하고 깨어 있기를 원합니다.
18. 우리에게는 평안의 고을이 있습니다.
19. 자신의 욕심이나 겸손하지 못함을 내려 놓고, 평안의 고을로 올라간다면, 모두가 함께 기뻐할 길을 찾을 수 있습니다.
20. 내 생각, 내 계획, 내 자손심에 스스로 갇혀 있지 말고 그 암흑한 터널을 빠져 나오기 바랍니다.
21. 그리하여 그곳에서 괴로워하지 말고 힘들어지 하지 말고, 모든 것을 내려 놓고 평안의 고을로 올라가기 바랍니다.
22. 진정한 참 평안을 누릴 수 있게 됩니다.
23. 진정한 하나님의 은혜를 맛보시게 됩니다.
24. 네 마음의 여러 생각이 나서 악한 길로 이끌어 가거든, 모든 것 내려 놓고 평안의 고을로 올라가 하나님이 주시는 참 위로와 평안을 누리는 한 날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25.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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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마음에 여러 생각이 나며 왜 악한 꾀들이 들어오나?
Q. 평안의 고을은 어디인가?
Friday, September 21, 2012
한 날 묵상 에스겔 37장 15-28절 <화평의 언약을 세워 견고한 백성으로 번성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
한 날 묵상 에스겔 37장 15-28절 <화평의 언약을 세워 견고한 백성으로 번성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
1. 주 안에 우린 하나 모습은 달라도 한 분만 섬기네. 사랑과 선행으로 서로를 섬기며 따스한 모습 그리어 가네.
2. 지금 도서관에 있다. 참으로 많은 사람들이 있다. 주변을 둘러 보니 여러 인종들이 한곳에 함께 앉아 있다. 물론 언어가 다르고, 문화가 다르긴 하지만, 한 곳에 함께 있다는 사실만으로 오늘의 말씀이 주는 은혜를 깊이 생각해 본다.
3. 하나님은 인간을 창조하신 처음시작부터 지금까지 한 분이시다. 홀로 사역하시지 않고 함께 사역하셨고, 사람들과 함께 하기를 원하셨다.
4. 그러나 인간의 죄로 인해, 그리고 하나 됨의 잘못된 욕망(창11장)으로 인해 하나님은 사람을 흩으셔야만 했다.
5. 그렇지만 하나님의 바램은 여전히 온전히 주안에서 모두가 하나되는 것이다.
6. 이스라엘 백성들든 가나안에 들어온 후 개인의 이익을 추구하다 솔로몬 이후 남유다와 북이스라엘로 나누어야만 했다.
7. 그 때부터 계속되어 온 분단의 아픔이 북이스라엘의 멸망과 남유다의 포로시대까지도 계속 되었다.
8. 에스겔 37장이 말씀과 성령안에서 온전한 회복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는데, 전반부가 마른뼈가 군대가 되는 환상을 통해 이스라엘이 온전히 회복될 것임을 말씀하고 있다면, 후반부는 온전한 회복이 거기서 그치지 않고, 유대와 이스라엘 자손이 하나가 되는 것으로 온전히 이루어질 것을 예언하고 있다.
9.21-22절이 에스겔 37장에서 말씀하고 있는 내용을 요약하고 있다.
10. "이스라엘 자손을 잡혀 간 여러 나라에서 인도하며 그 사방에서 모아서 그 고국 땅으로 돌아가게 하고 그 땅 이스라엘 모든 산에서 그들이 한 나라를 이루어서 한 임금이 모두 다스리게 하리니 그들이 다시는 두 민족이 되지 아니하며 두 나라로 나누이지 아니할지라"
11. 에스겔에게 주신 말씀은 다윗의 혈통인 예수님을 통해서 온전히 이루어졌다.
12. 신약 시대에 이방인과 유대인들이 복음안에서 하나가 되었다.
13.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는 인종이 다르고, 언어가 다르고, 그리고 문화가 다를지라도 복음안에서 하나가 되었다.
14. 한 임금, 한 목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말씀은 이루어지고 우리 안에 하나 됨을 회복하게 되었다.
15. 하나 됨과 하나 됨을 유지하는 힘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뿐이시다.
16. 하나님과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해서 세운 화평의 언약(26절)을 통해서 우리가 하나님과 하나 될 수 있을 뿐 아니라, 우리도 이웃과 하나 되게 되었다.
17. 예수님이 막힌 담을 허시는 화평의 언약은 어느 누구도 끊을 수 없는 견고한 언약이다. 아울러 세상 모든 민족까지 번성해야 할 영원한 언약이다.
18. 하나님 안에서 우리 모두는 그분의 자녀가 되고, 그분의 백성이 됨으로 하나가 되었습니다.
19. 결국 오늘도 우리에게는 은혜의 고백과 사명이 있습니다.
20. 화평의 은혜를 주신 사랑의 고백과 더불어, 하나 됨을 내가 깨뜨리지 않고 더욱 견고히 세워가야 할 뿐 아니라 확장해야 할 사명이 있는 것이다.
21. 오늘 미움, 타툼, 시기, 보복이 있는 곳에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하나가 되기를 원합니다. 이를 통해서 이스라엘을 거룩하게 하신 이가 여호와인 줄 열국이 알게(28절) 될 것입니다.
22.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 모두가 하나가 되도록 회복의 역사를 기대하고 계십니다.
23. 아직 화목하지 못하고 하나 되지 못한 지체가 있다면 먼저 찾아가는 섬김이 있기를 기대합니다.
24. 아멘.
===
16절 "너는 막대기 하나를 가져다가 그 위에 유다와 그 짝 이스라엘 자손이라 쓰고"
"또 다른 막대기 하나를 가지고 그 위에 에브라임의 막대기 곧 요셉과 그 짝 이스라엘 온 족속이라 쓰고"
17절 "그 막대기들을 서로 합하여 하나가 되게 하라"
"네 손에서 둘이 하나가 되리라"
18절 무슨 뜻인지 ...
19절 "요셉과 그 짝 이스라엘 막대기를 가져다가 유다의 막대기에 붙여서 한 막대기가 되게 한즉"
"내 손에서 하나가 되리라"
21절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잡혀 간 여러 나라에서 인도하며 그 사방에서 모아서 그 고국 땅으로 돌아가게 하고"
22절 "한 임금이 모두 다스리게 하리니 그들이 다시는 두 민족이 되지 아니하며 두 나라로 나누이지 아니할지라"
24절 "내 종 다윗이 그들의 왕이 되리니 그들 모두에게 한 목자가 있을 것이라"
25절 "그의 조상들이 거주하던 땅에 그들이 거주하되 그들과 그들의 자자 손손이 영원히 거기에 거주할 것이요 내 종 다윗이 영원히 그들의 왕이 되리라"
26절 "내가 그들과 화평의 언약을 세워서 영원한 언약이 되게 하고 또 그들을 견고하게 번성하게 하며 내 성소를 그 가운데에 세워서 영원히 이르게 하리니"
28절 "내 성소가 영원토록 그들 가운데에 있으리니 내가 이스라엘을 거룩하게 하는 여호와인 줄을 열국이 알리라 하셨다 하라"
=====
우리를 말씀안에서 성령으로 회복시키신 이유가 있습니다. 우리를 죄악으로 인해 하나님과 막힌 담을 허시고 하나되게 하시 위함입니다. 둘로 나누어진 이스라엘 백성들도 말씀안에서 성령으로 하나가 되었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동일한 말씀의 적용이 필요합니다. 나는 열방의 모두 하나님으로 인해 하나가 되도록 할 사명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잘 시작합시다. 학교에 있는 나의 열방의 친구들과 화해하고 사랑으로 하나가 됩시다.
Thursday, September 20, 2012
한 날 묵상 - 겔 37:11-14 <나에게 너에게 우리에게 마른 뼈가 살아나는 소망이 아주 가까이 있다>
1. 세상이 참으로 어지럽습니다. .
2. 가장 큰 문제는 교회인듯 합니다.
3. 세상의 비성경적 문화들이 교회와 교계 깊숙이 파고들고 있습니다.
4. 모든 사람들이 문제시하는 최악의 문화들이 이제 교회로 물밀듯 들어오고 있습니다.
5. 참으로 안타깝고 심히 우려스렵습니다.
6. 진정 회개와 회복이 필요할 때입니다.
7. 회개와 회복이 없다면 곧 심판이 임하겠지요..
8. 다시금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한 때입니다.
9. 그런데, 하나님께 되돌아가는 길은 의외로 간단하며 쉽습니다.
10. 왜냐하면, 하나님은 언제나 두 손 벌려 떠나간 자녀들이 돌아오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11. 진정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12. 지금, 오늘 이 시대 마른 뼈가 군대가 되는 은혜가 지금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13. 지금, 오늘 이 새다가 소망 없어 보이는 세상입니다. 스스로 자신에게 속고 남을 속이는 시대에 살아갑니다.
14. 하나님의 목표는 한 가지입니다. "여호와를 인정하라. 온 세상이 여호와인 줄을 알라"
15. 바로 이것입니다.
16. 하나님은 반드시 예언으로 주신 말씀을 이루십니다. 그게 심판이든, 축복이든, 반드시 하나님은 말씀을 이루어 가십니다.
17. 부디 우리가 축복이 말씀을 붙잡는 은혜가 있기를 간절히 원할 뿐입니다.
18. 회복에 있어서 목회자가, 지도자가 가장 중요합니다.
19. 목회자가, 지도자가 타락한 시대는 어김없이 소망없고, 질서 없고, 하나님도 없는 시대처럼 살아가는 모습을 말씀이 우리에게 경고하기 때문입니다.
20. 요즘, 참으로 목회자 문제입니다. 내 자신도 스스로 살펴보거던, 목회자로서 부족한 것이 사실입니다. 그래서 더 은혜를 갈망합니다.
21. 부디, 오늘의 목회자들이 교만하지 않고, 스스로에게 속지 않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날마다 순간마다 볼 수 있기를 원합니다.
22. 부디 하나님의 영이 늘 삶과 마음과 생각속에 가득하기를 기원합니다.
23. 성령이 늘 깨어 있는 은혜가 있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24. 나도 오늘 하나님의 영이 깨어 있기를 간절히 갈망합니다.
25. 은혜 내려 주시옵소서!
=======
11절 "인자야 이 뼈들은 이스라엘 온 족속이라"
=>꼭 오늘 우리에게 하시는 말씀인 듯합니다.
"우리의 뼈들이 말랐고 우리의 소망이 없어졌으니 우리는 다 멸절되었다 하느니라"
12절 "내 백성들아 내가 너희 무덤을 열고 너희로 거기에서 나오게 하고 이스라엘 땅으로 들어가게 하리라"
13절 "너희는 내가 여호와 인줄을 알리라"
=> 제발 알아달라. 내가 여호와인줄 알아 달라. 나에게 다른 뜻이 있는 것이 아니다. 다른 욕심이 있는 것도 아니다. 너희들이 내가 여호와인줄 알아주면 된다. 그것이면 족하다.
14절 "내가 또 내 영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가 살아나게 하고"
=> 제발 내 영이 너희 안에 있기를 원한다. 내 영이 너희 안에 있어 사람다운 삶을 살 수 있다. 살아있는 삶을 살 수 있다.
"나 여호와가 이 일을 말하고 이룬 줄을 너희가 알리라"
=> 말씀을 이루시는 하나님. 결코 공수표를 쓰지 않으시는 하나님. 공약을 공약되게 하지 않으시는 하나님. 그 분이 진정 우리의 아버지이십니다.
2. 가장 큰 문제는 교회인듯 합니다.
3. 세상의 비성경적 문화들이 교회와 교계 깊숙이 파고들고 있습니다.
4. 모든 사람들이 문제시하는 최악의 문화들이 이제 교회로 물밀듯 들어오고 있습니다.
5. 참으로 안타깝고 심히 우려스렵습니다.
6. 진정 회개와 회복이 필요할 때입니다.
7. 회개와 회복이 없다면 곧 심판이 임하겠지요..
8. 다시금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한 때입니다.
9. 그런데, 하나님께 되돌아가는 길은 의외로 간단하며 쉽습니다.
10. 왜냐하면, 하나님은 언제나 두 손 벌려 떠나간 자녀들이 돌아오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11. 진정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12. 지금, 오늘 이 시대 마른 뼈가 군대가 되는 은혜가 지금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13. 지금, 오늘 이 새다가 소망 없어 보이는 세상입니다. 스스로 자신에게 속고 남을 속이는 시대에 살아갑니다.
14. 하나님의 목표는 한 가지입니다. "여호와를 인정하라. 온 세상이 여호와인 줄을 알라"
15. 바로 이것입니다.
16. 하나님은 반드시 예언으로 주신 말씀을 이루십니다. 그게 심판이든, 축복이든, 반드시 하나님은 말씀을 이루어 가십니다.
17. 부디 우리가 축복이 말씀을 붙잡는 은혜가 있기를 간절히 원할 뿐입니다.
18. 회복에 있어서 목회자가, 지도자가 가장 중요합니다.
19. 목회자가, 지도자가 타락한 시대는 어김없이 소망없고, 질서 없고, 하나님도 없는 시대처럼 살아가는 모습을 말씀이 우리에게 경고하기 때문입니다.
20. 요즘, 참으로 목회자 문제입니다. 내 자신도 스스로 살펴보거던, 목회자로서 부족한 것이 사실입니다. 그래서 더 은혜를 갈망합니다.
21. 부디, 오늘의 목회자들이 교만하지 않고, 스스로에게 속지 않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날마다 순간마다 볼 수 있기를 원합니다.
22. 부디 하나님의 영이 늘 삶과 마음과 생각속에 가득하기를 기원합니다.
23. 성령이 늘 깨어 있는 은혜가 있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24. 나도 오늘 하나님의 영이 깨어 있기를 간절히 갈망합니다.
25. 은혜 내려 주시옵소서!
=======
11절 "인자야 이 뼈들은 이스라엘 온 족속이라"
=>꼭 오늘 우리에게 하시는 말씀인 듯합니다.
"우리의 뼈들이 말랐고 우리의 소망이 없어졌으니 우리는 다 멸절되었다 하느니라"
12절 "내 백성들아 내가 너희 무덤을 열고 너희로 거기에서 나오게 하고 이스라엘 땅으로 들어가게 하리라"
13절 "너희는 내가 여호와 인줄을 알리라"
=> 제발 알아달라. 내가 여호와인줄 알아 달라. 나에게 다른 뜻이 있는 것이 아니다. 다른 욕심이 있는 것도 아니다. 너희들이 내가 여호와인줄 알아주면 된다. 그것이면 족하다.
14절 "내가 또 내 영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가 살아나게 하고"
=> 제발 내 영이 너희 안에 있기를 원한다. 내 영이 너희 안에 있어 사람다운 삶을 살 수 있다. 살아있는 삶을 살 수 있다.
"나 여호와가 이 일을 말하고 이룬 줄을 너희가 알리라"
=> 말씀을 이루시는 하나님. 결코 공수표를 쓰지 않으시는 하나님. 공약을 공약되게 하지 않으시는 하나님. 그 분이 진정 우리의 아버지이십니다.
Wednesday, September 19, 2012
한 날 묵상 - 겔 37:1-10 <마른뼈가 살아나겠느냐? 주 여호와께서 아시나이다". 생기를 주시고, 대언하게 하시옵소서>
지금도 수면을 위를 운영하시는 하나님의 영(창1;2)을 보기 원합니다.
지금도 혼탁하고 무질서한 세상속에서 질서를 잡아가시고자 사람을 찾으시는 하나님의 영의 동반자가 되기를 원합니다.
지금도 말씀은 살아있고, 성령님은 역사하십니다.
1. 믿음으로만 안됩니다.
2. 하나님의 영이 필요합니다.
3. 하나님의 영으로만 안됩니다.
4. 순전한 믿음이 필요합니다.
5. 정말 기적을 원하신다면, 생기와 대언이 필요합니다.
6. 성령의 역사를 인정하십시오. 지금도 성령님을 역사하십니다. 또한 성령님은 반드시 사람을 통해 역사하십니다. 나를 통해 역사하시며, 너를 통해 역사하시며, 우리 공동체를 통해 역사하십니다.
7. 마음을 여십시오. 성령님을 인정하십시오.
8.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할 수 있습니다.
9. 또한 하나님이 주신 말씀을 믿음으로 받아 들일 수 있습니다.
10. 뼈들이 살아나 군대가 될 수 있겠습니까?
11. 가능하다고 쉽게 말할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에스겔 37장은 이 사실을 증언하고 있습니다. 마른 뼈들이 살아나 큰 군대가 되는 모습은 눈으로 본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증언하고 있습니다.
12. 지금도 놀라운 일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13. 나를 통해서, 너를 통해서, 우리 공동체를 통해서 계속됩니다.
14.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말씀입니다. 우리에겐 성령님이 필요합니다.
15. 내 모든 것을 내려 놓고 말씀과 성령님을 채우기 원합니다.
16.
===
1절 "여호와께서 권능으로 내게 임재하시고 그의 영으로 나를 데라고 가서"
"거기 뼈가 가득하더라"
2절 "그 골짜기 지면에 뼈가 심히 많고 아주 말랐더라"
3절 "인자야 이 뼈들이 능히 살 수 있겠느냐"
"주 여호와여 주께서 아시나이다"
4절 "너는 이 모든 뼈에게 대언하여 이르기를"
"너희 뼈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5절 "내가 생기를 너희에게 들어가게 하리니 너희가 살아나리라"
6절 "너희 속에 생기를 넣으리니"
7절 "내가 명령에 따라 대언하니"
8절 "그 뼈에 힘줄이 생기고 살이 오르며 그 위에 가죽이 덮이나 그 속에 생기는 없더라"
9절 "생기를 향하여 대언하라"
"생기야 사방에서부터 와서 이 죽음을 당한 자에게 불어서 살아나게 하라"
10절 "이에 내가 그 명령대로 대언하였더니 생기가 그들에게 들어가매 그들이 곧 살아나서 일어나 서는데 극히 큰 군대더라"
지금도 혼탁하고 무질서한 세상속에서 질서를 잡아가시고자 사람을 찾으시는 하나님의 영의 동반자가 되기를 원합니다.
지금도 말씀은 살아있고, 성령님은 역사하십니다.
1. 믿음으로만 안됩니다.
2. 하나님의 영이 필요합니다.
3. 하나님의 영으로만 안됩니다.
4. 순전한 믿음이 필요합니다.
5. 정말 기적을 원하신다면, 생기와 대언이 필요합니다.
6. 성령의 역사를 인정하십시오. 지금도 성령님을 역사하십니다. 또한 성령님은 반드시 사람을 통해 역사하십니다. 나를 통해 역사하시며, 너를 통해 역사하시며, 우리 공동체를 통해 역사하십니다.
7. 마음을 여십시오. 성령님을 인정하십시오.
8.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할 수 있습니다.
9. 또한 하나님이 주신 말씀을 믿음으로 받아 들일 수 있습니다.
10. 뼈들이 살아나 군대가 될 수 있겠습니까?
11. 가능하다고 쉽게 말할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에스겔 37장은 이 사실을 증언하고 있습니다. 마른 뼈들이 살아나 큰 군대가 되는 모습은 눈으로 본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증언하고 있습니다.
12. 지금도 놀라운 일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13. 나를 통해서, 너를 통해서, 우리 공동체를 통해서 계속됩니다.
14.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말씀입니다. 우리에겐 성령님이 필요합니다.
15. 내 모든 것을 내려 놓고 말씀과 성령님을 채우기 원합니다.
16.
===
1절 "여호와께서 권능으로 내게 임재하시고 그의 영으로 나를 데라고 가서"
"거기 뼈가 가득하더라"
2절 "그 골짜기 지면에 뼈가 심히 많고 아주 말랐더라"
3절 "인자야 이 뼈들이 능히 살 수 있겠느냐"
"주 여호와여 주께서 아시나이다"
4절 "너는 이 모든 뼈에게 대언하여 이르기를"
"너희 뼈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5절 "내가 생기를 너희에게 들어가게 하리니 너희가 살아나리라"
6절 "너희 속에 생기를 넣으리니"
7절 "내가 명령에 따라 대언하니"
8절 "그 뼈에 힘줄이 생기고 살이 오르며 그 위에 가죽이 덮이나 그 속에 생기는 없더라"
9절 "생기를 향하여 대언하라"
"생기야 사방에서부터 와서 이 죽음을 당한 자에게 불어서 살아나게 하라"
10절 "이에 내가 그 명령대로 대언하였더니 생기가 그들에게 들어가매 그들이 곧 살아나서 일어나 서는데 극히 큰 군대더라"
Thursday, September 13, 2012
한 날 묵상 - 겔 36:16-38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악으로 인해 더럽혀진 자신의 거룩함을 회복시키시는 하나님>
한 날 묵상 - 겔 36:16-38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악으로 인해 더럽혀진 자신의 거룩함을 회복시키시는 하나님>
1. 절망과 좌절의 시간을 보내고 소망이 없이 살아가는 인생들에게 보이는 모습이 있습니다.
2. 그들은 결코 홀로 일어서기 힘들다는 사실입니다. 무엇을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를 잘 알지 못하는 것이지요. 그래서 계속 그 속에서 방황하며 살아가게 됩니다.
3. 그발 강가에 포로 생활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되어봅시다. 긴 터널의 끝이 보이지 않는 순간이라 생각할 수 있을 것입니다.
4.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렇게 되기까지는 스스로 행했던 죄악 때문이었습니다(17-18절). 그래서 하나님이 행위대로 심판하시고 그들을 흩으셨습니다(19절).
5. 왜 하나님은 그렇게 하셨나요? 물론 하나님의 자녀들이 거룩하지 못함 때문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거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의 더럽힘은 바로 하나님의 더럽힘이라는 것에 궁극적 원인이 있습니다(20절).
6. 우리가 행하는 모든 행동들은 하나님의 이름을 걸고 하는 행위들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이 거룩하지 못하여 정결한 행동을 하지 않는다면, 그건 바로 하나님이 거룩하지 못하게 될 뿐 아니라 하나님의 정결함을 더럽히는 행위입니다.
7. 하나님은 그렇기에 심판하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심판하십니다. 우리를 심판하십니다.
8. 그런데 하나님의 심판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바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거룩하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바로 우리를 거룩하게 하시고자 하는 의도가 있습니다.
9. 결국 하나님의 거룩함을 회복하시고자하는 분명한 뜻이 있습니다.
10. 우리의 거룩이 곧 하나님의 거룩이 되기 때문입니다.
11. 그런데 우리가 거룩함을 회복의 시작을 위해서 필요치 않은 것이 있으며, 꼭 필요한 것이 있습니다.
12. 나의 어떠한 공로도 필요치 않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회복을 시작을 위해 필요한 것이 없었습니다
13. 그러나 반드시 필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건 "새 영"(26, 27절)입니다.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14. 우리에게 새 영이 필요하며, 새 마음이 필요합니다. 이게 선물입니다.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입니다. 이것을 선물로 받아야만 회복이 시작됩니다.
15. 성령님이 우리안에 내주하심으로 우리는 변할 수 있습니다.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26절)을 받을 수 있습니다. 성령님이 하실 수 있습니다.
16. 진정한 회복은 결국 성령님에 달려 있습니다. 이 시간도 성령의 충만함을 위해 기도합시다. 성령님의 내주하심에 감사합시다.
17. 새 영이 들어간 이스라엘 백성들은 삶은 이전에 180도 달라지게 되었습니다.
18. 밭에 다시 풍성한 열매가 맺기 시작합니다. 다시는 기근이 없게 됩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이방 사람들의 입에 다시 오르게 됩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하는 말이 이전과 다릅니다.
19. 35절 "사람이 이르기를 이 땅이 황폐하더니 이제는 에덴 동산 같이 되었고 황량하고 적막하고 무너진 성읍들에 성벽과 주민이 있다 하리니"
=> 20절과 비교하며 보면, 사람들의 비웃음이 변하여 부러움이 되었다.
20.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21. 오늘도 내 안에 새 영, 새 마음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아울러 새 영, 새 마음이 더욱 깨끗하며 정결하여 내 삶을 지속적으로 이끌어 가도록 우리 모든 삶을 성령님께 맡기는 한 날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22. 오늘 한 날도 주 안에서 ~~~~
===
16절 "여호와의 말씀이 또 내게 임하여"
17절 "이스라엘 족속이 그들의 고국 땅에서 거주할 때에 그들의 행위로 그 땅을 더럽혔나니"
18절 "그들이 ... 자신들을 더럽혔으므로 내가 분노를 그들 위에 쏟아"
19절 "그들을 그 행위대로 심판하여 각국에 흩으며 여러 나라에 헤쳤더니"
20절 "그들이 이른바 그 여러 나라에서 내 거룩한 이름이 그들로 말미암아 더러워졌나니"
"사람들이 그들을 가리켜 이르기를 이들은 여호와의 백성이라도 여호와의 땅에서 떠난 자라 하였음이라"
21절 "그러나 이스라엘 족속이 들어간 그 여러 나라에서 더럽힌 내 거룩한 이름을 내가 아겼노라"
* 22-31절 더럽혀진 하나님의 거룩함을 스스로 회복시키시다.
25절 "너희를 정결하게 할 것이며"
어떻게 행하시는가? 26,절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27절 "또 내 영을 너희 속에 두어"
관계회복 28절 "내가 너희에게 준 땅에서 너희가 거주하면서 내 배것ㅇ이 되고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리라"
29-30절 "곡식이 풍성하게 하여 .. 기근이 너희에게 닥치지 아니하게 할 것이며 .. 또 나무의 열매와 밭의 소산을 풍성하게 하여 너희가 다시는 기근의 욕을 여러 나라에게 당하지 아니하게 하리니"
31절 "그 때에 너희가 너희 악한 길과 너희 좋지 못한 행위를 기억하고 너희 모든 죄악과 가증한 일로 말미암아 스스로 밉게 보리라"
* 32-38절 -> 다시 한 번 강조하다.
32절 "너희의 행위로 말미암아 부끄러워하고 한탄할지어다"
33-34절 "황폐하게 보이던 그 황폐한 땅이 장차 경작이 될지라"
35절 "사람이 이르기를 이 땅이 황폐하더니 이제는 에덴 동산 같이 되었고 황량하고 적막하고 무너진 성읍들에 성벽과 주민이 있다 하리니"
=> 20절과 비교... 사람들의 비웃음이 변하여 부러움이 되었다.
1. 절망과 좌절의 시간을 보내고 소망이 없이 살아가는 인생들에게 보이는 모습이 있습니다.
2. 그들은 결코 홀로 일어서기 힘들다는 사실입니다. 무엇을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를 잘 알지 못하는 것이지요. 그래서 계속 그 속에서 방황하며 살아가게 됩니다.
3. 그발 강가에 포로 생활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되어봅시다. 긴 터널의 끝이 보이지 않는 순간이라 생각할 수 있을 것입니다.
4.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렇게 되기까지는 스스로 행했던 죄악 때문이었습니다(17-18절). 그래서 하나님이 행위대로 심판하시고 그들을 흩으셨습니다(19절).
5. 왜 하나님은 그렇게 하셨나요? 물론 하나님의 자녀들이 거룩하지 못함 때문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거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의 더럽힘은 바로 하나님의 더럽힘이라는 것에 궁극적 원인이 있습니다(20절).
6. 우리가 행하는 모든 행동들은 하나님의 이름을 걸고 하는 행위들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이 거룩하지 못하여 정결한 행동을 하지 않는다면, 그건 바로 하나님이 거룩하지 못하게 될 뿐 아니라 하나님의 정결함을 더럽히는 행위입니다.
7. 하나님은 그렇기에 심판하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심판하십니다. 우리를 심판하십니다.
8. 그런데 하나님의 심판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바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거룩하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바로 우리를 거룩하게 하시고자 하는 의도가 있습니다.
9. 결국 하나님의 거룩함을 회복하시고자하는 분명한 뜻이 있습니다.
10. 우리의 거룩이 곧 하나님의 거룩이 되기 때문입니다.
11. 그런데 우리가 거룩함을 회복의 시작을 위해서 필요치 않은 것이 있으며, 꼭 필요한 것이 있습니다.
12. 나의 어떠한 공로도 필요치 않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회복을 시작을 위해 필요한 것이 없었습니다
13. 그러나 반드시 필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건 "새 영"(26, 27절)입니다.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14. 우리에게 새 영이 필요하며, 새 마음이 필요합니다. 이게 선물입니다.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입니다. 이것을 선물로 받아야만 회복이 시작됩니다.
15. 성령님이 우리안에 내주하심으로 우리는 변할 수 있습니다.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26절)을 받을 수 있습니다. 성령님이 하실 수 있습니다.
16. 진정한 회복은 결국 성령님에 달려 있습니다. 이 시간도 성령의 충만함을 위해 기도합시다. 성령님의 내주하심에 감사합시다.
17. 새 영이 들어간 이스라엘 백성들은 삶은 이전에 180도 달라지게 되었습니다.
18. 밭에 다시 풍성한 열매가 맺기 시작합니다. 다시는 기근이 없게 됩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이방 사람들의 입에 다시 오르게 됩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하는 말이 이전과 다릅니다.
19. 35절 "사람이 이르기를 이 땅이 황폐하더니 이제는 에덴 동산 같이 되었고 황량하고 적막하고 무너진 성읍들에 성벽과 주민이 있다 하리니"
=> 20절과 비교하며 보면, 사람들의 비웃음이 변하여 부러움이 되었다.
20.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21. 오늘도 내 안에 새 영, 새 마음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아울러 새 영, 새 마음이 더욱 깨끗하며 정결하여 내 삶을 지속적으로 이끌어 가도록 우리 모든 삶을 성령님께 맡기는 한 날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22. 오늘 한 날도 주 안에서 ~~~~
===
16절 "여호와의 말씀이 또 내게 임하여"
17절 "이스라엘 족속이 그들의 고국 땅에서 거주할 때에 그들의 행위로 그 땅을 더럽혔나니"
18절 "그들이 ... 자신들을 더럽혔으므로 내가 분노를 그들 위에 쏟아"
19절 "그들을 그 행위대로 심판하여 각국에 흩으며 여러 나라에 헤쳤더니"
20절 "그들이 이른바 그 여러 나라에서 내 거룩한 이름이 그들로 말미암아 더러워졌나니"
"사람들이 그들을 가리켜 이르기를 이들은 여호와의 백성이라도 여호와의 땅에서 떠난 자라 하였음이라"
21절 "그러나 이스라엘 족속이 들어간 그 여러 나라에서 더럽힌 내 거룩한 이름을 내가 아겼노라"
* 22-31절 더럽혀진 하나님의 거룩함을 스스로 회복시키시다.
25절 "너희를 정결하게 할 것이며"
어떻게 행하시는가? 26,절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27절 "또 내 영을 너희 속에 두어"
관계회복 28절 "내가 너희에게 준 땅에서 너희가 거주하면서 내 배것ㅇ이 되고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리라"
29-30절 "곡식이 풍성하게 하여 .. 기근이 너희에게 닥치지 아니하게 할 것이며 .. 또 나무의 열매와 밭의 소산을 풍성하게 하여 너희가 다시는 기근의 욕을 여러 나라에게 당하지 아니하게 하리니"
31절 "그 때에 너희가 너희 악한 길과 너희 좋지 못한 행위를 기억하고 너희 모든 죄악과 가증한 일로 말미암아 스스로 밉게 보리라"
* 32-38절 -> 다시 한 번 강조하다.
32절 "너희의 행위로 말미암아 부끄러워하고 한탄할지어다"
33-34절 "황폐하게 보이던 그 황폐한 땅이 장차 경작이 될지라"
35절 "사람이 이르기를 이 땅이 황폐하더니 이제는 에덴 동산 같이 되었고 황량하고 적막하고 무너진 성읍들에 성벽과 주민이 있다 하리니"
=> 20절과 비교... 사람들의 비웃음이 변하여 부러움이 되었다.
Wednesday, September 12, 2012
한 날 묵상 - 겔 36:1-15<늘 언제나 함께 계시며 손 잡아 일으켜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한 날 묵상 - 겔 36:1-15<늘 언제나 함께 계시며 손 잡아 일으켜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1. 우리는 지난 시간 큰 흐름속에 에스겔을 살펴 본 것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참고) http://www.blogger.com/blogger.g?blogID=3681000074470592328#editor/target=post;postID=5737182913410444894
2. 참고로 보면, 에스겔의 중심 주제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이해할 수 있다.
에스겔에게 주어진 임무는 포로가 되어 멀리 바빌론으로 끌려간 유다 백성들에게 예언하는 것이었다. 그들은 절망에 가운데 있는 청중이었으며 왜 그러한 재앙이 그들에게 닥쳤는지, 그들이 개인적으로 겪은 대학살 가운데 하나님은 어디에 게셨는지 질문하고 있다.
그들은 자신들의 상황에 대해 이렇게 평가했다. "우리의 뼈들이 말랐고 우리의 소망이 없어졌으니 우리는 다 멸절되었다"(겔37:11)
자신의 땅을 지킬 수도 없고 또 지키려고 하지도 않는 하나님이 무슨 소용이 있는가?
예루살렘에 있는 자신의 성전을 더럽히도록 놔둔 하나님이 무슨 소용이 있는가?
자신의 백성을 그 선조들에게 약속의 땅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타국으로 끌려가게 하는 하나님이 무슨 소용이 있는가?
비록 그 하나님이 이제 그의 땅을 위해 개입한다 치더라도 포로로 끌려가 멀리 타국에 있는 사람들을 어떻게 도울 수 있겠는가?
1) 에스겔 전체를 뒤덮고 있는 주제는 하나님의 주권과 영광이다.
2) 인간의 철저한 죄성이다.
3) 처음 두 주제에서 발전하는 것으로 피할 수 없는 심판의 도래이다.
에스겔의 전체의 전환점은 예루살렘 멸망의 소식이 전해지는 것에서 시작된다. 그것은 에스겔 24장의 끝에 예기되었던 사건이며, 실제로 33:21-22에서 일어난다.
4) 왕이신 하나님이 돌아오시고 백성들은 땅과 축복을 되찾게 되는 것이다. 새로워진 성전에 대한 에스겔의 환상에서 그 중심은 하나님의 영광이 지극히 높은 곳으로 돌아오는 것이다(겔 43:1-5).
그렇다면, 우리가 에스겔에서 발견하는 주제는 하나님의 영광과 주권, 인간의 죄성, 심판의 확실성, 미래에 대한 자비와 소망의 약속이다.
소망에 대한 더 큰 게시는 그리스도 안에서 드러난다. 에스겔은 우리를 그에게 인도한다. 에스겔이 보았던 성전으로 내려오는 하나님의 영광은, 예수의 인성 안에 도래하였고, 그에 대해 요한은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요1:14)라고 증언하였다.
3. 에스겔의 앞 부분은 1-24장에서 하나님을 배반하는 백성이 걷는 길의 끝을 명료하게 묘사하고 있다. 그 끝은 심판이다. 그러나 그 길의 끝이 이야기의 끝이 아니다. 겔34-48장에서 궁극적으로 하나님 백성의 죄악성과 반역에 하나님이 베푸시는 은혜로 마무리되고 있다.
4. 우리가 오늘 읽은 에스겔 36장도 바로 하나님의 은혜로 귀결되는 말씀속에 있다.
5. 하나님은 심판으로 흩어졌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다시 모아 강한 군대(겔37장)로 세우실 것을 말씀하고 계신다.
6.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방인의 노략거리와 조롱거리가 된 버린 성읍들"(4절)에 있으며, 하나님이 버린 바 되어 "하나님의 질투와 하나님의 진노로 말미암아 이방인의 수치"(6절)을 당하게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다시 백성들을 불러 모아 축복의 통로가 되게 하신다(8절).
7. 하나님의 일으켜 세우시는 축복의 통로는 9-15절까지 이어진다. 하나님이 우리를 일으켜 세우실 때, 하나님이 먼저 하시는 행동이 있다. "내가 돌이켜"(9절)라는 말씀이다.
8. 하나님이 돌이키시지 않으면 우리는 일어설 수 없다.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우리를 다시 걸어갈 수 없다. 하나님의 사랑이 아니면 우리는 다시 살아날 수 없다. 오직 하나님이 돌이켜 우리를 긍휼히 여기고 사랑을 베푸실 때, 우리는 일어설 수 있으며, 걸을 수 있으며, 새생명을 얻을 수 있다.
9. 이제 우리가 돌이킬 차례이다. 하나님의 언제나 거룩하시다. 우리도 거룩과 정결로 나의 삶을 물들여야 한다.
10. 다시 일으켜 세운 바 된 이스라엘의 모습은 그야말로 축복의 보고이다. 축복의 보고를 넘어 축복의 통로로 열방에 흘러 넘치게 된다.
11. "사람을 너희 위에 많게 하리니"(10절)
"너희 위에 사람과 짐승을 많게 하되"(11절)
"그들의 수가 많고 번성하게 할 것이라"(11절)
"너희를 처음보다 낫게 대우히리니"(11절)
하나님은 바로 이런 분이시다. 왜? 우리에게 하나님은 이런 은총을 내리시는가? 아버지이시기 때문이다. 나는 어떻게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수 있는가? 자녀이기 때문이다. 내가 그 어떤 잘남이 있어서가 아니다. 아버지와 자녀의 관계이기 때문이다.
12.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신 축복의 말씀은 "내가 또 너를 여러 나라의 수치를 듣지 아니하게 하며 만민의 비방을 다시 받지 아니하게 하며 네 나라 백성을 다시 넘어뜨리지 아니하게 하리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하셨다 하라"(15절)
13. 하나님은 항상 언제나 함께 하십니다.
14. 죄악에 물든 곳을 정결케 하기 위해서 심판의 때에도 사랑의 매로 함께 하십니다.
15. 너무 힘들어 더 이상 일어설 힘이 없을 때에도 손 잡아 일으켜 세우시는 분이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16. 하나님을 결코 우리를 홀로 두시지 않고, 외면하시지 않고, 늘 내 곁에 함께 계십니다.
17. 하나님은 원래 그런 분이셨습니다.
18. 그 분이 나의 아버지 되십니다. 아빠~~~.
===
에스겔 35장과 달리 겔 36장은 이스라엘이 받는 복에 대해서 예언의 말씀을 주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이스라엘을 힘들게 했던 주변 나라들에게 임한 심판의 메시지(4절)와 달리 이스라엘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축복의 말씀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은 참으로 신실한 하나님이십니다.
약속은 반드시 지키시는 분이십니다.
35-36장의 흐름을 보면,
세일 산과 에돔이 황무하리라
이스라엘의 축복
이스라엘을 정결하게 하시다
===============
겔 36:9절 "내가 돌이켜 너희와 함께 하리니"
하나님이 돌이키시지 않으면 우리는 일어설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우리를 다시 걸어갈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아니면 우리는 다시 살아날 수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이 돌이켜 우리를 긍휼히 여기고 사랑을 베푸실 때, 우리는 일어설 수 있으며, 걸을 수 있으며, 새생명을 얻을 수 있습니다.
오늘 하나님이 돌이켜 나를 향하여 내민 손을 잡을 차례입니다. 당신에게 신세계가 열릴 것입니다. 전혀 다른 새로운 세상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그런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이십니다. 나는 그분의 자녀입니다. 자녀로서 아빠가 내민 사랑의 손을 굳게 잡는 한 날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1. 우리는 지난 시간 큰 흐름속에 에스겔을 살펴 본 것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참고) http://www.blogger.com/blogger.g?blogID=3681000074470592328#editor/target=post;postID=5737182913410444894
2. 참고로 보면, 에스겔의 중심 주제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이해할 수 있다.
에스겔에게 주어진 임무는 포로가 되어 멀리 바빌론으로 끌려간 유다 백성들에게 예언하는 것이었다. 그들은 절망에 가운데 있는 청중이었으며 왜 그러한 재앙이 그들에게 닥쳤는지, 그들이 개인적으로 겪은 대학살 가운데 하나님은 어디에 게셨는지 질문하고 있다.
그들은 자신들의 상황에 대해 이렇게 평가했다. "우리의 뼈들이 말랐고 우리의 소망이 없어졌으니 우리는 다 멸절되었다"(겔37:11)
자신의 땅을 지킬 수도 없고 또 지키려고 하지도 않는 하나님이 무슨 소용이 있는가?
예루살렘에 있는 자신의 성전을 더럽히도록 놔둔 하나님이 무슨 소용이 있는가?
자신의 백성을 그 선조들에게 약속의 땅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타국으로 끌려가게 하는 하나님이 무슨 소용이 있는가?
비록 그 하나님이 이제 그의 땅을 위해 개입한다 치더라도 포로로 끌려가 멀리 타국에 있는 사람들을 어떻게 도울 수 있겠는가?
1) 에스겔 전체를 뒤덮고 있는 주제는 하나님의 주권과 영광이다.
2) 인간의 철저한 죄성이다.
3) 처음 두 주제에서 발전하는 것으로 피할 수 없는 심판의 도래이다.
에스겔의 전체의 전환점은 예루살렘 멸망의 소식이 전해지는 것에서 시작된다. 그것은 에스겔 24장의 끝에 예기되었던 사건이며, 실제로 33:21-22에서 일어난다.
4) 왕이신 하나님이 돌아오시고 백성들은 땅과 축복을 되찾게 되는 것이다. 새로워진 성전에 대한 에스겔의 환상에서 그 중심은 하나님의 영광이 지극히 높은 곳으로 돌아오는 것이다(겔 43:1-5).
그렇다면, 우리가 에스겔에서 발견하는 주제는 하나님의 영광과 주권, 인간의 죄성, 심판의 확실성, 미래에 대한 자비와 소망의 약속이다.
소망에 대한 더 큰 게시는 그리스도 안에서 드러난다. 에스겔은 우리를 그에게 인도한다. 에스겔이 보았던 성전으로 내려오는 하나님의 영광은, 예수의 인성 안에 도래하였고, 그에 대해 요한은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요1:14)라고 증언하였다.
3. 에스겔의 앞 부분은 1-24장에서 하나님을 배반하는 백성이 걷는 길의 끝을 명료하게 묘사하고 있다. 그 끝은 심판이다. 그러나 그 길의 끝이 이야기의 끝이 아니다. 겔34-48장에서 궁극적으로 하나님 백성의 죄악성과 반역에 하나님이 베푸시는 은혜로 마무리되고 있다.
4. 우리가 오늘 읽은 에스겔 36장도 바로 하나님의 은혜로 귀결되는 말씀속에 있다.
5. 하나님은 심판으로 흩어졌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다시 모아 강한 군대(겔37장)로 세우실 것을 말씀하고 계신다.
6.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방인의 노략거리와 조롱거리가 된 버린 성읍들"(4절)에 있으며, 하나님이 버린 바 되어 "하나님의 질투와 하나님의 진노로 말미암아 이방인의 수치"(6절)을 당하게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다시 백성들을 불러 모아 축복의 통로가 되게 하신다(8절).
7. 하나님의 일으켜 세우시는 축복의 통로는 9-15절까지 이어진다. 하나님이 우리를 일으켜 세우실 때, 하나님이 먼저 하시는 행동이 있다. "내가 돌이켜"(9절)라는 말씀이다.
8. 하나님이 돌이키시지 않으면 우리는 일어설 수 없다.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우리를 다시 걸어갈 수 없다. 하나님의 사랑이 아니면 우리는 다시 살아날 수 없다. 오직 하나님이 돌이켜 우리를 긍휼히 여기고 사랑을 베푸실 때, 우리는 일어설 수 있으며, 걸을 수 있으며, 새생명을 얻을 수 있다.
9. 이제 우리가 돌이킬 차례이다. 하나님의 언제나 거룩하시다. 우리도 거룩과 정결로 나의 삶을 물들여야 한다.
10. 다시 일으켜 세운 바 된 이스라엘의 모습은 그야말로 축복의 보고이다. 축복의 보고를 넘어 축복의 통로로 열방에 흘러 넘치게 된다.
11. "사람을 너희 위에 많게 하리니"(10절)
"너희 위에 사람과 짐승을 많게 하되"(11절)
"그들의 수가 많고 번성하게 할 것이라"(11절)
"너희를 처음보다 낫게 대우히리니"(11절)
하나님은 바로 이런 분이시다. 왜? 우리에게 하나님은 이런 은총을 내리시는가? 아버지이시기 때문이다. 나는 어떻게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수 있는가? 자녀이기 때문이다. 내가 그 어떤 잘남이 있어서가 아니다. 아버지와 자녀의 관계이기 때문이다.
12.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신 축복의 말씀은 "내가 또 너를 여러 나라의 수치를 듣지 아니하게 하며 만민의 비방을 다시 받지 아니하게 하며 네 나라 백성을 다시 넘어뜨리지 아니하게 하리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하셨다 하라"(15절)
13. 하나님은 항상 언제나 함께 하십니다.
14. 죄악에 물든 곳을 정결케 하기 위해서 심판의 때에도 사랑의 매로 함께 하십니다.
15. 너무 힘들어 더 이상 일어설 힘이 없을 때에도 손 잡아 일으켜 세우시는 분이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16. 하나님을 결코 우리를 홀로 두시지 않고, 외면하시지 않고, 늘 내 곁에 함께 계십니다.
17. 하나님은 원래 그런 분이셨습니다.
18. 그 분이 나의 아버지 되십니다. 아빠~~~.
===
에스겔 35장과 달리 겔 36장은 이스라엘이 받는 복에 대해서 예언의 말씀을 주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이스라엘을 힘들게 했던 주변 나라들에게 임한 심판의 메시지(4절)와 달리 이스라엘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축복의 말씀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은 참으로 신실한 하나님이십니다.
약속은 반드시 지키시는 분이십니다.
35-36장의 흐름을 보면,
세일 산과 에돔이 황무하리라
이스라엘의 축복
이스라엘을 정결하게 하시다
===============
겔 36:9절 "내가 돌이켜 너희와 함께 하리니"
하나님이 돌이키시지 않으면 우리는 일어설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우리를 다시 걸어갈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아니면 우리는 다시 살아날 수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이 돌이켜 우리를 긍휼히 여기고 사랑을 베푸실 때, 우리는 일어설 수 있으며, 걸을 수 있으며, 새생명을 얻을 수 있습니다.
오늘 하나님이 돌이켜 나를 향하여 내민 손을 잡을 차례입니다. 당신에게 신세계가 열릴 것입니다. 전혀 다른 새로운 세상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그런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이십니다. 나는 그분의 자녀입니다. 자녀로서 아빠가 내민 사랑의 손을 굳게 잡는 한 날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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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uesday, September 11, 2012
한 날 묵상 - 겔 35:1-15 <하나님이 즐거워하실 때 함께 즐거워하는 자가 되라>
한 날 묵상 - 겔 35:1-15 <하나님이 즐거워하실 때 함께 즐거워하는 자가 되라>
1. 말씀을 가까이 하는 것이 쉬우면서도 결코 쉽지 않다. 특별히 한 번의 리듬을 놓치면 다시 돌아오기가 결코 쉽지 않다. 신앙 생활이라는 것이 전부 그런것 같다. 주일예배도 한 번 나오지 않게 되면 다시 나오기까지 쉽지 않다. 뜨겁게 드리는 찬양과 기도도 마찬가지다.
2. 회복이 쉽지는 않다. 그런데 한 번 시작하면 또한 계속 할 수 있는게 신앙생활이다. 왜냐하면 그 삶에 진짜 맛이 있기 때문이다. 그 맛을 본 사람은 결코 그 맛을 잊을 수 없으며, 다시 찾게 되어 있다.
3. 오랫만에 시작된 "한 날 묵상" 이제 다시 시작해 보렵니다. 말씀앞에 서 있는 시간이 가장 행복한 시간입니다.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입니다. 나를 세우는 시간입니다. 한 걸음 주님께 더 가까이 나아가는 시간입니다. 무엇보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자신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4. 인생에서 그것이면 족한것 아니겠습니까? 다른 어떤 것이 필요하겠습니까?
5. 오늘 본문은 "세일 산과 에돔이 황무하게 되리라"는 예언의 말씀입니다.
6. 하나님은 계획이 있으십니다. 분명한 뜻이 있으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계획과 뜻을 잘 분별하여 따라간다면 하나님이 행하시는 크신 역사에 함께 동역할 수 있습니다.
7. 오늘도 하나님은 쓰러져가는 회복이 불가능할 것처럼 보이는 어떤 사람을 일으켜 세우시고 하시고, 승승장구하여 어느 누구도 떨어뜨릴 수 없을 것처럼 보이는 사람도 무너뜨릴 수 있는 역사의 주인이십니다.
8. 에스겔은 "얼굴을 세일 산으로 향하고 그에게 예언"(2절)하라는 말씀을 듣게 됩니다.
9. 그 예언의 말씀은 이런 말씀입니다. "세일 산아 내가 너를 대적하여 내 손을 네 위에 펴서 네가 황무지와 공포의 대상이 되게 할지라"(3절). "세일 산이 황무지와 폐허가 되게 하여 그 위에 왕래하는 자를 다 끊을지라"(8절). "너를 영원히 황폐하게 하여 네 성읍들에 다시는 거주하는 자가 없게 하리니"(9절).
10. 하나님의 대적이 되면 살아남을 수 없습니다. 에돔의 중심지인 세일 산은 지금 하나님의 대적이 되었습니다. 그곳에 찾아올 손님은 희소식이 아닙니다. 황무지와 황무지가 너무 심해 그 땅 자체가 공포의 대상이 되는 것 뿐입니다.
11. 그들의 죄악이(5절) 가득하기에 죄악의 마지막 때문에 하나님의 진노의 칼을 피할 수 없습니다.
12. 인간은 참으로 어리석음니다. 부모의 충고를 무시하는 자녀들의 모습을 보면 자세히 알 수 있습니다. 자신에게 어려움이 닥치고, 고난이 닥쳐야 오래전의 부모의 충고를 떠오르게 됩니다. 물론 이렇게라도 하면 다행입니다.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기 때문입니다. 더러는 그것마져도 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13. 에돔이 승승장구하며 즐거워할 때, 하나님은 슬퍼하셨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즐거움에는 전혀 하나님이 계시지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14. 우리의 즐거움을 보십시오. 하나님이 주인이십니까? 나의 기쁨을 보십시오. 하나님도 함께 기뻐하십니까?
15. 우리는 하나님이 즐거워하실 때 함께 즐거워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게 진짜 즐거움일 뿐아니라 오랫동안 즐거워할 수 있는 비결입니다.
16. 하나님의 은총으로 인해 온 땅이 즐거워할 때, 에돔은 하나님의 심판과 진노로 인해 황폐하게(14절) 됩니다.
17.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도 동일한 말씀을 주셨습니다. 15절 "이스라엘 족속의 기업이 황폐하므로 네가 즐거워한 것 같이"
18. 이스라엘 백성도 스스로 즐거워하며 기뻐할 때 하나님은 전혀 계시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심판이 임하게 되었고, 황폐하게 되었습니다.
19. 이제 세일 산 차례입니다. 그리고 만약 우리도 하나님과 함께 즐거워하지 못한다며 우리고 그 뒤를 따르게 될 것입니다.
20. 오늘 한 날 깊이 묵상하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이 즐거워하실 때 함께 즐거워할 수 있는 인생됩시다. 내가 즐거워 기뻐할 그 순간에 함께 하나님이 거뻐하며 즐거워할 수 있는 한 날이 됩시다>
21. 오늘 한 날 내가 그러한 인생을 살아간다면 정말 행복하고 기쁨이 가득할 뿐 아니라 인생의 황무함이 결코 찾아오지 않는 하나님과 함께 즐거워하는 한 날이 될 것입니다.
1. 말씀을 가까이 하는 것이 쉬우면서도 결코 쉽지 않다. 특별히 한 번의 리듬을 놓치면 다시 돌아오기가 결코 쉽지 않다. 신앙 생활이라는 것이 전부 그런것 같다. 주일예배도 한 번 나오지 않게 되면 다시 나오기까지 쉽지 않다. 뜨겁게 드리는 찬양과 기도도 마찬가지다.
2. 회복이 쉽지는 않다. 그런데 한 번 시작하면 또한 계속 할 수 있는게 신앙생활이다. 왜냐하면 그 삶에 진짜 맛이 있기 때문이다. 그 맛을 본 사람은 결코 그 맛을 잊을 수 없으며, 다시 찾게 되어 있다.
3. 오랫만에 시작된 "한 날 묵상" 이제 다시 시작해 보렵니다. 말씀앞에 서 있는 시간이 가장 행복한 시간입니다.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입니다. 나를 세우는 시간입니다. 한 걸음 주님께 더 가까이 나아가는 시간입니다. 무엇보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자신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4. 인생에서 그것이면 족한것 아니겠습니까? 다른 어떤 것이 필요하겠습니까?
5. 오늘 본문은 "세일 산과 에돔이 황무하게 되리라"는 예언의 말씀입니다.
6. 하나님은 계획이 있으십니다. 분명한 뜻이 있으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계획과 뜻을 잘 분별하여 따라간다면 하나님이 행하시는 크신 역사에 함께 동역할 수 있습니다.
7. 오늘도 하나님은 쓰러져가는 회복이 불가능할 것처럼 보이는 어떤 사람을 일으켜 세우시고 하시고, 승승장구하여 어느 누구도 떨어뜨릴 수 없을 것처럼 보이는 사람도 무너뜨릴 수 있는 역사의 주인이십니다.
8. 에스겔은 "얼굴을 세일 산으로 향하고 그에게 예언"(2절)하라는 말씀을 듣게 됩니다.
9. 그 예언의 말씀은 이런 말씀입니다. "세일 산아 내가 너를 대적하여 내 손을 네 위에 펴서 네가 황무지와 공포의 대상이 되게 할지라"(3절). "세일 산이 황무지와 폐허가 되게 하여 그 위에 왕래하는 자를 다 끊을지라"(8절). "너를 영원히 황폐하게 하여 네 성읍들에 다시는 거주하는 자가 없게 하리니"(9절).
10. 하나님의 대적이 되면 살아남을 수 없습니다. 에돔의 중심지인 세일 산은 지금 하나님의 대적이 되었습니다. 그곳에 찾아올 손님은 희소식이 아닙니다. 황무지와 황무지가 너무 심해 그 땅 자체가 공포의 대상이 되는 것 뿐입니다.
11. 그들의 죄악이(5절) 가득하기에 죄악의 마지막 때문에 하나님의 진노의 칼을 피할 수 없습니다.
12. 인간은 참으로 어리석음니다. 부모의 충고를 무시하는 자녀들의 모습을 보면 자세히 알 수 있습니다. 자신에게 어려움이 닥치고, 고난이 닥쳐야 오래전의 부모의 충고를 떠오르게 됩니다. 물론 이렇게라도 하면 다행입니다.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기 때문입니다. 더러는 그것마져도 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13. 에돔이 승승장구하며 즐거워할 때, 하나님은 슬퍼하셨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즐거움에는 전혀 하나님이 계시지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14. 우리의 즐거움을 보십시오. 하나님이 주인이십니까? 나의 기쁨을 보십시오. 하나님도 함께 기뻐하십니까?
15. 우리는 하나님이 즐거워하실 때 함께 즐거워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게 진짜 즐거움일 뿐아니라 오랫동안 즐거워할 수 있는 비결입니다.
16. 하나님의 은총으로 인해 온 땅이 즐거워할 때, 에돔은 하나님의 심판과 진노로 인해 황폐하게(14절) 됩니다.
17.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도 동일한 말씀을 주셨습니다. 15절 "이스라엘 족속의 기업이 황폐하므로 네가 즐거워한 것 같이"
18. 이스라엘 백성도 스스로 즐거워하며 기뻐할 때 하나님은 전혀 계시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심판이 임하게 되었고, 황폐하게 되었습니다.
19. 이제 세일 산 차례입니다. 그리고 만약 우리도 하나님과 함께 즐거워하지 못한다며 우리고 그 뒤를 따르게 될 것입니다.
20. 오늘 한 날 깊이 묵상하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이 즐거워하실 때 함께 즐거워할 수 있는 인생됩시다. 내가 즐거워 기뻐할 그 순간에 함께 하나님이 거뻐하며 즐거워할 수 있는 한 날이 됩시다>
21. 오늘 한 날 내가 그러한 인생을 살아간다면 정말 행복하고 기쁨이 가득할 뿐 아니라 인생의 황무함이 결코 찾아오지 않는 하나님과 함께 즐거워하는 한 날이 될 것입니다.
Thursday, August 2, 2012
한 날 묵상 - 겔 34:1-31절 <목자가 없으므로 내 양 떼가 흩어진다. 그러나 여호와께서 양 떼를 구원하시고 목자들의 대적이 되리라>
한 날 묵상 - 겔 34:1-31절 <목자가 없으므로 내 양 떼가 흩어진다. 그러나 여호와께서 양 떼를 구원하시고 목자들의 대적이 되리라>
1. 공의 없는 세상에서 볼 수 있는 전형적인 모습은 무엇일까?
2. 힘 없는 자들의 약탈일까? 아니면, 힘 있는 자들의 폭거일까?
3. 이 둘의 질문에 좀 더 깊이 고민해야 할 것이 있다면, 그렇다면 이 둘에서 먼저 나타나는 것이 있다면, 혹 무엇일까?
4. 힘 없는 자들의 약탈이 시작되고, 후에 힘 있는 자들의 폭거가 일어날까? 아니면, 힘 있는 자들의 폭거가 있고, 그 후에 힘 없는 자들의 약탈이 이어질까?
5. 아무래도 힘 있는 자들의 몰상식한 자기 배 채움이 먼저라고 생각하게 된다.
6. 오늘 본문에 나오는 겔 34장은 심판과 구원에 관한 이야기이다.
7. 누구에 대한 심판이고, 누구를 위한 구원인가?
8. 양의 무리를 억압하던 목자들, 지도자들, 살찐 양에 대한 심판이다. 그리고 주님께서 친히 양들의 목자로 오심(10절)을 통해 양들을 구원하신다는 내용이다.
9. 하나님은 지금 목자들과 지도자들, 그리고 살찐 양들을 향해 무서운 경고를 하고 계신다.
"내가 목자들을 대적하여 내 양떼를 그들의 손에서 찾으리니" 어느 누가 이 경고를 피할 수 있을까?
10. 하나님은 친히 나의 목자가 되어 주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진정한 목자는 오직 하나님 한 분 뿐이십니다.
11. 목자되신 하나님은 악한 목자가 아닙니다. 자신만의 배를 살찌우는 목자가 아니십니다.
12. 다윗에게 하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내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며 이스라엘의 주권자가 되리라"(삼하 5;2)
13. 하나님은 나의 목자가 되십니다. 시편 23편 1절은 "주는 나의 목자시니"라고 분명히 말하고 있습니다.
14. 그리고 요한복음 10장 1절에서는 예수께서 말씀하십니다. "나는 선한 목자라"
15. 예수님은 당시 백성들에게 아주 선한 목자이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양을 인도하시며 약탈자로부터 양을 보호하시고, 무엇보다 우리 각 사람의 이름을 알고 계십니다(요10;11-14).
16. 예수님은 선한 목자이십니다. 잃어버린 한 마리의 양을 찾기 위해 아흔아홉마리의 양을 놓고 가시는 분이십니다.
17. 에스겔 34장은 우리에게 몇 가지를 말씀하십니다.
18. 목자라면 좋은 목자가 되십시오. 선한 목자가 되십시오. 선한 목자라면 양들의 이름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선한 목자되신 예수님을 롤모델 하십시오.
19. 우리에게는 결코 버리시지 않는 선한 목자 예수님이 계십니다. 그 분은 언제나, 어디서나 나를 지키십니다.
20. 무엇보다 좋은 목자를 만나십시오. 나쁜 목자도 많지만, 진정 좋은 목자도 널려 있습니다.
21. 나도 선한 목자가 되고 싶습니다.
22. 선한 목자되신 예수님을 롤 모델하여 조금이라도 따라갈 수 있다면, 그리고 거기에 조금 더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면, 정말 좋겠습니다.
23. 주님! 나의 마음을 이끄소서~~~
24. 아멘!!
-----
2절 "너는 이스라엘 목자들에게 예언하라"
"자기만 먹는 이스라엘 목자들은 화 있을진저"
"목자들이 양 떼를 먹이는 것이 마땅하지 아니하냐"
3절-4절 목자들이 양을 위해 자기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함
5절 "목자가 없으므로 그것들이 흩어지고 흩어져서 모든 들짐승들의 밥이 되었도다"
6절 "내 양떼가 ... 내 양떼가 온 지면에 흩어졌으며 찾고 찾는 자가 없었도다"
7절 "목자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8절 "내 양떼가 노략거리가 되고 모든 들짐승의 밥이 된 것은 목자가 없기 때문이라"
"내 목자들이 내 양을 찾지 아니하고 자기만 먹이고 내 양 떼를 먹이지 아니하였도다"
10절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내가 목자들을 대적하여 내 양떼를 그들의 손에서 찾으리니"
=> 목자들과 대적하게 되시는 여호와. 목자와 적이 되다.
"목자들이 양을 먹이지 못할 뿐 아니라 그들이 다시는 자기도 먹이지 못할지라 내가 내 양을 그들의 입에서 건져내어서 다시는 그 먹이가 되지 아니하게 하리라"
11절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나 곧 내가 내 양을 찾고 찾되"
12절 "양이 흩어졌으면 그 떼를 찾는 것 같이 내가 내 양을 찾아서 흐리고 캄캄한 날에 그 흩어진 모든 곳에서 그것들을 건져낼지라"
13절 "내가 그것들을 만민 가운데에서 끌어내며 여러 백성 가운데에서 모아 그 본토로 데리고 가서 이스라엘 산 위에와 시냇가에와 그 땅 모든 거주지에서 먹이되"
14절 "좋은 꼴로 먹이고 .. 이스라엘 산에서 살진 꼴을 먹으리라"
15절 "내가 친히 내 양의 목자가 되어 그것들을 누워 있게 할지라"
16절 -> 4절에 나오는 목자들과 다른 목자이신 여호와.
"정의대로 그것들을 먹이리라" -> 정의대로 그것들을 먹이리라는 의미는?
17절 "나의 양 떼 너희여 내가 양과 양 사이와 숫양과 숫염소 사이에서 심판하노라"
18-19절 "너희가 좋은 꼴을 먹는 것을 작은 일로 여기느냐 ... 나의 양은 너희 발로 밝은 것을 먹으며 너희 발로 더립힌 것을 마시는도다"
20절 "내가 살진 양과 파리한 양 사이에서 심판하리라"
21절 "너희가 ... 모든 병든 자를 뿔로 받아 무리를 밖으로 흩어지게 하는도다"
22절 "그들로 다시는 노략거리가 되지 아니하게 하고 양과 양 사이에 심판하리라"
23절 "내가 한 목자를 그들 위에 세워 먹이게 하리니 그는 내 종 다윗이라 그가 그들을 먹이고 그들의 목자가 될지라"
24절 "나 여호와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내 종 다윗은 그들 중에 왕이 되리라"
25절 "내가 또 그들과 화평의 언약읠 맺고 악한 짐승을 그 땅에서 그치게 하리니 그들이 빈들에 평안히 거하며 수플 가운데에서 잘지라"
26-31절 회복된 축복
27절 "내가 여호와인 줄을 그들이 알겠고"
30절 "그들이 내가 여호와 그들의 하나님이며 그들과 함께 있는 줄을 알고 그들 곧 이스라엘 족속이 내 백성인 줄 알리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라"
31절 "내 양 곧 초장의 양 너희는 사람이요 나는 너희 하나님이라"
1. 공의 없는 세상에서 볼 수 있는 전형적인 모습은 무엇일까?
2. 힘 없는 자들의 약탈일까? 아니면, 힘 있는 자들의 폭거일까?
3. 이 둘의 질문에 좀 더 깊이 고민해야 할 것이 있다면, 그렇다면 이 둘에서 먼저 나타나는 것이 있다면, 혹 무엇일까?
4. 힘 없는 자들의 약탈이 시작되고, 후에 힘 있는 자들의 폭거가 일어날까? 아니면, 힘 있는 자들의 폭거가 있고, 그 후에 힘 없는 자들의 약탈이 이어질까?
5. 아무래도 힘 있는 자들의 몰상식한 자기 배 채움이 먼저라고 생각하게 된다.
6. 오늘 본문에 나오는 겔 34장은 심판과 구원에 관한 이야기이다.
7. 누구에 대한 심판이고, 누구를 위한 구원인가?
8. 양의 무리를 억압하던 목자들, 지도자들, 살찐 양에 대한 심판이다. 그리고 주님께서 친히 양들의 목자로 오심(10절)을 통해 양들을 구원하신다는 내용이다.
9. 하나님은 지금 목자들과 지도자들, 그리고 살찐 양들을 향해 무서운 경고를 하고 계신다.
"내가 목자들을 대적하여 내 양떼를 그들의 손에서 찾으리니" 어느 누가 이 경고를 피할 수 있을까?
10. 하나님은 친히 나의 목자가 되어 주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진정한 목자는 오직 하나님 한 분 뿐이십니다.
11. 목자되신 하나님은 악한 목자가 아닙니다. 자신만의 배를 살찌우는 목자가 아니십니다.
12. 다윗에게 하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내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며 이스라엘의 주권자가 되리라"(삼하 5;2)
13. 하나님은 나의 목자가 되십니다. 시편 23편 1절은 "주는 나의 목자시니"라고 분명히 말하고 있습니다.
14. 그리고 요한복음 10장 1절에서는 예수께서 말씀하십니다. "나는 선한 목자라"
15. 예수님은 당시 백성들에게 아주 선한 목자이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양을 인도하시며 약탈자로부터 양을 보호하시고, 무엇보다 우리 각 사람의 이름을 알고 계십니다(요10;11-14).
16. 예수님은 선한 목자이십니다. 잃어버린 한 마리의 양을 찾기 위해 아흔아홉마리의 양을 놓고 가시는 분이십니다.
17. 에스겔 34장은 우리에게 몇 가지를 말씀하십니다.
18. 목자라면 좋은 목자가 되십시오. 선한 목자가 되십시오. 선한 목자라면 양들의 이름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선한 목자되신 예수님을 롤모델 하십시오.
19. 우리에게는 결코 버리시지 않는 선한 목자 예수님이 계십니다. 그 분은 언제나, 어디서나 나를 지키십니다.
20. 무엇보다 좋은 목자를 만나십시오. 나쁜 목자도 많지만, 진정 좋은 목자도 널려 있습니다.
21. 나도 선한 목자가 되고 싶습니다.
22. 선한 목자되신 예수님을 롤 모델하여 조금이라도 따라갈 수 있다면, 그리고 거기에 조금 더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면, 정말 좋겠습니다.
23. 주님! 나의 마음을 이끄소서~~~
24.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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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절 "너는 이스라엘 목자들에게 예언하라"
"자기만 먹는 이스라엘 목자들은 화 있을진저"
"목자들이 양 떼를 먹이는 것이 마땅하지 아니하냐"
3절-4절 목자들이 양을 위해 자기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함
5절 "목자가 없으므로 그것들이 흩어지고 흩어져서 모든 들짐승들의 밥이 되었도다"
6절 "내 양떼가 ... 내 양떼가 온 지면에 흩어졌으며 찾고 찾는 자가 없었도다"
7절 "목자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8절 "내 양떼가 노략거리가 되고 모든 들짐승의 밥이 된 것은 목자가 없기 때문이라"
"내 목자들이 내 양을 찾지 아니하고 자기만 먹이고 내 양 떼를 먹이지 아니하였도다"
10절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내가 목자들을 대적하여 내 양떼를 그들의 손에서 찾으리니"
=> 목자들과 대적하게 되시는 여호와. 목자와 적이 되다.
"목자들이 양을 먹이지 못할 뿐 아니라 그들이 다시는 자기도 먹이지 못할지라 내가 내 양을 그들의 입에서 건져내어서 다시는 그 먹이가 되지 아니하게 하리라"
11절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나 곧 내가 내 양을 찾고 찾되"
12절 "양이 흩어졌으면 그 떼를 찾는 것 같이 내가 내 양을 찾아서 흐리고 캄캄한 날에 그 흩어진 모든 곳에서 그것들을 건져낼지라"
13절 "내가 그것들을 만민 가운데에서 끌어내며 여러 백성 가운데에서 모아 그 본토로 데리고 가서 이스라엘 산 위에와 시냇가에와 그 땅 모든 거주지에서 먹이되"
14절 "좋은 꼴로 먹이고 .. 이스라엘 산에서 살진 꼴을 먹으리라"
15절 "내가 친히 내 양의 목자가 되어 그것들을 누워 있게 할지라"
16절 -> 4절에 나오는 목자들과 다른 목자이신 여호와.
"정의대로 그것들을 먹이리라" -> 정의대로 그것들을 먹이리라는 의미는?
17절 "나의 양 떼 너희여 내가 양과 양 사이와 숫양과 숫염소 사이에서 심판하노라"
18-19절 "너희가 좋은 꼴을 먹는 것을 작은 일로 여기느냐 ... 나의 양은 너희 발로 밝은 것을 먹으며 너희 발로 더립힌 것을 마시는도다"
20절 "내가 살진 양과 파리한 양 사이에서 심판하리라"
21절 "너희가 ... 모든 병든 자를 뿔로 받아 무리를 밖으로 흩어지게 하는도다"
22절 "그들로 다시는 노략거리가 되지 아니하게 하고 양과 양 사이에 심판하리라"
23절 "내가 한 목자를 그들 위에 세워 먹이게 하리니 그는 내 종 다윗이라 그가 그들을 먹이고 그들의 목자가 될지라"
24절 "나 여호와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내 종 다윗은 그들 중에 왕이 되리라"
25절 "내가 또 그들과 화평의 언약읠 맺고 악한 짐승을 그 땅에서 그치게 하리니 그들이 빈들에 평안히 거하며 수플 가운데에서 잘지라"
26-31절 회복된 축복
27절 "내가 여호와인 줄을 그들이 알겠고"
30절 "그들이 내가 여호와 그들의 하나님이며 그들과 함께 있는 줄을 알고 그들 곧 이스라엘 족속이 내 백성인 줄 알리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라"
31절 "내 양 곧 초장의 양 너희는 사람이요 나는 너희 하나님이라"
Thursday, July 12, 2012
한 날 묵상 - 겔33장 10-20절 <하나님은 결코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우리는 마지날까지 끝까지 견뎌야 합니다>
한 날 묵상 - 겔33장 10-20절 <하나님은 결코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우리는 마지날까지 끝까지 견뎌야 합니다>
1. 요즘 사람들을 보면 쉽게 포기하고, 끝까지 견디지 못하는 사람을 보게 됩니다.
2. 축구 선수 이영표 선수와 만남을 여러 번 했습니다. 특별히 2012년 청소년부 수련회와 밴쿠버 유스 코스타에 오셔서 귀한 나눔을 해주셨습니다.
3. 그 때 이영표 선수가 했던 이야기가 기억에 납니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견디었더니, 나보다 재능이 많은 선수들이 중간에 하나 둘 포기하고 나만 남았다. 그래서 내가 국가대표 선수가 되었다"라는 말입니다.
4. 물론, 겸손에서 우러 나오는 말이었지만, 깊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요즘 시대 젊은 사람들에게 끈기가 없는 것은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5. 노력보다 값지 열매는 없는 것 같습니다. 끝까지 참고 견디는 자에게만 길이 보입니다.
6. 오늘 본문의 말씀은 참으로 귀한 말씀입니다. "의인의 범죄와 악인의 회개"의 제목에서 보듯이 의인이 범죄하면 심판을 받게 되며, 악인이 회개하면 은혜를 누리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7. 이 본문의 말씀속에서 저는 하나님의 은혜와 인간의 오래참음에 대해서 생각해 볼 수 있었습니다.
8. 하나님은 어떠한 죄인이라도 결코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끝까지 기다리십니다. 은혜를 못누릴 죄인은 아무도 없습니다. 어떠한 추악한 죄를 범했더라도 회개하면 하나님은 은혜를 베풀어 주십니다.
11절 "나는 악인 죽는 것을 기뻐하지 아니하고 악인이 그의 길에서 돌이켜 떠나 사는 것을 기뻐하노라"
12절 "악인이 돌이켜 그 악에서 떠나는 날에는 그 악이 그를 엎드려뜨리지 못할 것인즉"
9. 반대로 아무리 의인이라 할지라도 범죄하는 날에는 구원의 은혜를 누리지 못하게 됩니다.
12절 "의인이 범죄하는 날에는 그 공의가 구원받지 못할 것이요"
12절 "의인이 범죄하는 날에는 그 의로 말미암아 살지 못하리라"
10. 궁극적으로 여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회개입니다. 죄인이든, 의인이든, 자신의 죄를 깨닫는 순간 회개해야 합니다.
20절 "그러나 너희가 이르기를 주의 길이 바르지 아니하다 하는도다 이스라엘 족속아 나는 너희가 각기 행한대로 심판하리라 하시니라"
11. 의인에게 있어서 옛날의 공의는 결코 중요하지 않습니다. 의인이 죄를 범하면 죄인이 됩니다. 죄인은 죄인일 뿐 옛날의 의인이었을 순간은 현재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합니다. 현재의 순간에 죄인으로서 회개해야 합니다.
12. 벧후 3장 9절을 보면, "주의 약속은 어떤 이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주께서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13. 하나님의 관심은 죄인들에게 있습니다. 결코 우리는 의인일 수 없습니다. 로마서 3장 10절 "기록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14. 그렇습니다. 우리가 죄인이기에 살아갈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의인이라면 결코 하나님의 은혜를 누릴 수 없습니다. 죄인이기에 오늘도 하나님의 은혜의 품안에 거할 수 있습니다.
15. 오늘 한 날도 하나님의 은혜를 충만히 누리는 삶이 되기를 원합니다.
1. 요즘 사람들을 보면 쉽게 포기하고, 끝까지 견디지 못하는 사람을 보게 됩니다.
2. 축구 선수 이영표 선수와 만남을 여러 번 했습니다. 특별히 2012년 청소년부 수련회와 밴쿠버 유스 코스타에 오셔서 귀한 나눔을 해주셨습니다.
3. 그 때 이영표 선수가 했던 이야기가 기억에 납니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견디었더니, 나보다 재능이 많은 선수들이 중간에 하나 둘 포기하고 나만 남았다. 그래서 내가 국가대표 선수가 되었다"라는 말입니다.
4. 물론, 겸손에서 우러 나오는 말이었지만, 깊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요즘 시대 젊은 사람들에게 끈기가 없는 것은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5. 노력보다 값지 열매는 없는 것 같습니다. 끝까지 참고 견디는 자에게만 길이 보입니다.
6. 오늘 본문의 말씀은 참으로 귀한 말씀입니다. "의인의 범죄와 악인의 회개"의 제목에서 보듯이 의인이 범죄하면 심판을 받게 되며, 악인이 회개하면 은혜를 누리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7. 이 본문의 말씀속에서 저는 하나님의 은혜와 인간의 오래참음에 대해서 생각해 볼 수 있었습니다.
8. 하나님은 어떠한 죄인이라도 결코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끝까지 기다리십니다. 은혜를 못누릴 죄인은 아무도 없습니다. 어떠한 추악한 죄를 범했더라도 회개하면 하나님은 은혜를 베풀어 주십니다.
11절 "나는 악인 죽는 것을 기뻐하지 아니하고 악인이 그의 길에서 돌이켜 떠나 사는 것을 기뻐하노라"
12절 "악인이 돌이켜 그 악에서 떠나는 날에는 그 악이 그를 엎드려뜨리지 못할 것인즉"
9. 반대로 아무리 의인이라 할지라도 범죄하는 날에는 구원의 은혜를 누리지 못하게 됩니다.
12절 "의인이 범죄하는 날에는 그 공의가 구원받지 못할 것이요"
12절 "의인이 범죄하는 날에는 그 의로 말미암아 살지 못하리라"
10. 궁극적으로 여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회개입니다. 죄인이든, 의인이든, 자신의 죄를 깨닫는 순간 회개해야 합니다.
20절 "그러나 너희가 이르기를 주의 길이 바르지 아니하다 하는도다 이스라엘 족속아 나는 너희가 각기 행한대로 심판하리라 하시니라"
11. 의인에게 있어서 옛날의 공의는 결코 중요하지 않습니다. 의인이 죄를 범하면 죄인이 됩니다. 죄인은 죄인일 뿐 옛날의 의인이었을 순간은 현재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합니다. 현재의 순간에 죄인으로서 회개해야 합니다.
12. 벧후 3장 9절을 보면, "주의 약속은 어떤 이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주께서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13. 하나님의 관심은 죄인들에게 있습니다. 결코 우리는 의인일 수 없습니다. 로마서 3장 10절 "기록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14. 그렇습니다. 우리가 죄인이기에 살아갈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의인이라면 결코 하나님의 은혜를 누릴 수 없습니다. 죄인이기에 오늘도 하나님의 은혜의 품안에 거할 수 있습니다.
15. 오늘 한 날도 하나님의 은혜를 충만히 누리는 삶이 되기를 원합니다.
Monday, July 9, 2012
한 날 묵상 - 겔 33:3-9 <진리를 품고 있는 이 시대의 한 사람의 파수꾼이 되어야 합니다. 진리가 중요합니다>
한 날 묵상 - 겔 33:3-9 <이 시대의 한 사람의 파수꾼이 되라. 그러나 이 시대에 한 사람이 아무리 중요하다 할지라도 그 속에 진리의 메시지를 담으라>
1. 세상의 진정한 소망을 찾을 수 없습니다. 세상의 것들중에서 희망이 없어 보입니다. 물론 그 속에 참 소망, 희망의 불씨를 태우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2. 그들이 진정 이 시대의 희망입니다. 이 시대를 지키며 밝히 비추는 진정한 파수꾼입니다.
3. 그러나 파수꾼이 필요하다고 해서 누구나 파수꾼이 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혹 그들은 거짓 선지자처럼 거짓 파수꾼일 수 있습니다.
4. 그래서 무엇보다 시대를 분별할 수 있는 매서운 눈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시대를 분별할 수 있는 매서운 눈을 어떻게 가질 수 있을까요?
5. 파수꾼이 담고 있는 메시지를 보면 그 파수꾼의 정체를 분별할 수 있습니다.
6. 거짓 파수꾼의 모습속에 보이는 희망의 메시지가 희망이 아닙니다. 그들이 전하는 소망의 메시지가 소망이 아닙니다.
7. 진정 파수꾼은 필요합니다. 그러나 파수꾼이 소망이 아닙니다. 파수꾼이 희망이 아닙니다.
8. 무엇이 소망이며, 무엇이 희망입니까?
9. 진리의 메시지가 희망입니다. 진리의 메시지가 소망입니다.
10. 그래서 진지의 메시지가 고통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진리의 메시지가 나의 전부를 전부를 포기하라는 명령일 수 있습니다.
11. 거짓 파수꾼은 고통의 길을 가지 않습니다. 자신의 것을 전부 포기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더욱 그러한 메시지를 담고 있지 않을 뿐 아니라, 그러한 메시지를 선포할 수도 없습니다.
12. 자신의 담고 있는 않는 것을 결코 선포할 수 없습니다.
13. 그래서 이 시대에 희망의 메시지가 난무하나 봅니다. 소망의 메시지가 흔한 것 같습니다.
14. 그러나 고통 없는, 자기 포기 없는 희망과 소망은 진정한 희망과 소망이 아닙니다.
15. 이 시대의 진정한 메시가 담긴 파수꾼은 진정한 힘은 우리의 소망 되시는 예수님이 이십니다.
16. 그래서 고통이, 자기 포기가 곧 희망입니다. 소망입니다.
17. 예수 그리스도가 이미 고통과 자기 포기를 통해서 희망과 소망을 우리에게 확실히 보여주었기 때문입니다.
18. 이제 속지 마십시오.
19. 희망의 메시지가 아닙니다. 소망의 메시지가 아닙니다.
20. 이제 진짜는 진리의 메시지입니다.
21. 이 시대를 깨울 우리의 사명, 내가 감당해야 할 파수군의 역할은 무엇입니까?
22. 바로 제대로 알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6절 "칼이 임함을 파수꾼이 보고도 나팔을 불지 아니하여"
23. 제대로 불어야 합니다. 진리가 담긴 메시지를 제대로 불어야 합니다.
24. 고통과 자기 포기가 있는 희망과 소망의 나팔을 제대로 불어야 합니다.
25. 오늘 이 시대를 깨울 나팔 누가 불겠습니까?
26. 바로 접니다. 바로 나입니다. 바로 우리입니다.
27. 오늘 하루를 작아 보이는 이 일을 위해 달려갑시다.
28. 아멘!
Tuesday, July 3, 2012
한 날 묵상 - 겔 32:17-32 <궁극적 실망으로부터의 도피>
1. 애굽에 관한 이야기가 계속된다. 그 만큼 애굽은 유다에게 있어서 중요한 존재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2. 애굽은 유다에게 전차와 말을 제공하여 주었다. 유다가 때로는 여호와보다 애굽을 의지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반드시 알아야 한다. 애굽에 대한 그러한 환상을 깨야 유다는 회복할 수 있다.
3. 앞서 1-16절에서 보았듯이 애굽의 힘은 악어와 사자이다. 그 만큼 강한 나라이다. 그래서 유다는 열방의 침략에 애굽을 의지할 수 밖에 없었다.
4. 그러나 애석하게도 애굽은 지하세계에 주인이 될 것을 에스겔이 예언하고 있다.
5. 애굽은 힘은 무력하게 될 것이며, 지하세계에서 주변의 열방들을 보게 될 것이다.
6. 아시리아, 엘람, 메섹과 두발, 에돔, 북방의 모든 방백들, 그리고 시돈, 이집트까지 모두가 지하세계의 주인공이 된다.
7. 그들이 아무리 살아생전에 사람들을 두렵게 하였으나, 결국은 그들이 죽인 칼에 죽임을 당한 자들과 함께 누이게 된다(32절).
8. 우리에게 있어서 애굽의 힘은 무엇인가? 교만하게 하며, 무너지지 않을 것처럼 붙들고 살아가는 것이 무엇인가?
9. 부인가? 재물인가? 권력인가? 무엇인가? 편안한 삶인가?
10. 결국은 이것또한 하나님을 이길 수 없다. 이러한 것들은 영원히 우리가 의지할 것이 결코 되지 못한다.
11. 하나님은 이 모든 것을 무너뜨릴 수 있으시다. 가진 부도 없게 하시고, 편안한 삶도 흩어버리실 수 있다.
12. 하나님은 세상의 그 어떠한 것보다 더 강하시다.
13. 비록 돈의 위력이 광고 문구처럼 위대하고, 실제로 삶의 행복과 만족을 살 수 있다 할지라도 죽음 여전히 이 세상의 모든 만물을 평등하게 만들고 비등하게 만드는 위대한 자로 남아 있다(NIV 적용주석, 에스겔, pp488-489).
14. 궁극적으로 하나님을 제외한 그 어떠한 피난처도 허상이다.
15. 우리는 무엇을 의지하는가? 미국의 은행지폐에는 다음과 같은 선언이 분명하게 나타나 있다 -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다"(In God we trust).
16. 그러나 지금 우리는 돈앞에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가? 지폐에 적힌 문구보다 더 못한 삶을 살고 있다.
17. C. S 루이스는 자신의 저서 "위대한 이혼" The Great Divorce에서 한 무리가 지옥에서 천국의 경계선까지 가게 되는 하루 동안의 여행을 묘사했다. 지옥은 회색빛이며 그림자 같은 장소로서 버스 정류장이나 분식점들과 같이 일상적인 것들로 가득한 곳이지만, 궁극적으로 실재하지 않는 곳이다.
그림자 같고 비현실적인 살마들에게 그 하루 동안의 여행에서 천국은 편한 곳이 아니다. 그들은 각자 도착하자마자 천국에 머물면서 아주 서서히 고통스럽게 "실재"할 것인지, 아니면 편안한 그림자 나라로 돌아갈 것인지를 선택하게 된다. 각 경우마다 그 결정은 우상을 간직한 채 서서히 우상의 희미한 그림자에 지나지 않는 사람이 될 것인지, 아니면 우상이 죽도록 놔눔으로써 자유롭게 새로운 삶을 살 것인지를 선택하는 것으로 요약된다.
루이스의 그러한 풍자는 우리가 삶에서 직면하고 있는 선택을 잘 묫하고 있다. 그것은 실재의 길을 따라 참 하나님을 따라가는 것 - 종종 고통스러운 결정이지만 궁극적으로 생명으로 이르는 길- 을 선택하거나, 우상들이 우리에게 자기들 없이는 살아갈 수 없다고 말할 때 그것들을 믿으면서 현재의 헛된 약속과 궁극적인 실망에 만족하는 것이다((NIV 적용주석, 에스겔, pp490-491)
18. 이 세상의 그 어떤 것도 영원한 것은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이 영원합니다.
19. 없어질 것들을 좇아가는 인생이 아니라, 영원한 것을 향해 나아가는 한 날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20. 아멘.
----
죽으 자들의 세계 (참고, 비교, 겔37장 1-14절)
17절 "열두째 해 어느 날 열다섯째 날에" -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18절 "애굽의 무리를 위하여 슬퍼 울고 ... "
19-21절 "지하에 던지며 ... 누울지어다 ... 죽임을 당한 자 가운데에 엎드려질 것임이여 ... 스올 가운데에서 ... 곧 칼에 죽임을 당한 자들이 내려와 가만히 누웠다 하리로다"
22절 "거기에 앗수르와 그 온 무리가 있음이여 다 죽임을 당하여 칼에 엎드러진 자라 그 무덤이 그 사방에 있도다"
23절 "그 무덤이 구덩이 깊은 곳에 만들어졌고 ... 생존하는 사람들의 세상에서 사람을 두렵게 하던 자로다"
24절 "그들이 생존하는 사람들의 세상에서 두렵게 하였으나 이제는 구덩이에 내려가는 자와 함께 수치를 당하였도다"
25절 "그들이 생존하는 사람들의 세상에서 두렵게 하였으나 이제는 구덩이에서 내려가는 자와 함께 수치를 당하고 죽임을 당한 자 가운데에 누었도다"
26절 "거기에 메섹과 두발과 그 모든 무리가 있고 ... 그들이 생존하는 사람들의 세상에서 두렵게 하였으나"
27절 "그들이 할례를 받지 못한 자 가운데에 이미 엎드러진 용사와 함께 누운 것이며 .. 이 용사들은 다 무기를 가지고 스올에 내려가서 자기 죄악을 졌음이며 생존하는 사람들의 세상에서 용사의 두려움이 있던 자로다"
28절 "오직 너는 할례를 받지 못한 자와 함께 패망할 것임이여"
29절 "거기에 에돔과 그 왕들과 그 모든 과관이 있음이여 ... 구덩이에 내려간 자와 함께 누우리로다"
30절 "거기에 죽임을 당한 자와 함께 내려간 북쪽 모든 방백과 모든 시돈 사람이 있음이여 그들이 본래는 강성하였으므로 두렵게 하였으나 ... 구덩이에 내려가는 자와 함께 수치를 당하였도다"
31절 "바로가 그들을 보고 그 모든 무리로 말미암아 위로를 받을 것임이여 "
32절 "내가 바로로 하여금 생존하는 사람들의 세상에서 사람을 두렵게 하게 하였으나 이제는 그가 모든 무리와 더불어 할례를 받지 못한 자 곧 칼에 죽임을 당한 자와 함꼐 누이리로다"
Monday, June 25, 2012
한 날 묵상 - 겔32장 1-16 <슬픈 노래의 주인공이 되지 맙시다. 애굽은 한 때 여러 나라들이 사자로, 악어로 생각했지만, 그들의 교만으로 인해 슬픈 노래의 주인공이 되었습니다.>
한 날 묵상 - 겔32장 1-16 <슬픈 노래의 주인공이 되지 맙시다. 애굽은 한 때 여러 나라들이 사자로, 악어로 생각했지만, 그들의 교만으로 인해 슬픈 노래의 주인공이 되었습니다.>
1. 에스겔서를 읽으면서 몇 군데 전환의 포인트가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전환점의 핵심이 됩니다.
2. 이해를 돕기 위해 에스겔에 나타나는 전환 포인트를 살펴보면 이렇습니다.
3. 1장부터 3장까지는 에스겔의 소명에 대한 부분입니다. 왜 에스겔를 부르게 되었는지에 대해서, 어떻게 너를 사용하겠는지에 대해서,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과 주변 나라들에 대해서 예언을 하는 부분입니다.
4. 두번째는 이스라엘의 멸망입니다. 4장부터 24장까지 이어집니다. 이스라엘의 멸망의 중심에 바로 이스라엘 백성의 죄악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철저히 백성들의 죄악에 대한 심판을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심판의 도구로 이웃 나라들의 힘을 잠시 빌리겠다고 하십니다.
5. 오늘 본문이 해당되면, 세번째로의 전환점의 끝부분이 되는 내용은 하나님이 잠시 힘을 빌린 이웃 나라들의 멸망에 관한 것입니다. 25장부터 32장까지입니다. 그런데 이들 나라들의 공통점은 교만입니다. 자신들의 힘이 하나님이 허락하신 것임을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하나같이 교만으로 인해 서로가 서로를 물고 물어지게 됩니다.
6. 그리고 마지막으로 33장부터 이어지는 이스라엘의 회복입니다. 새성전에 관한 예언입니다. 남은 자들과 포로로 끌려간 자들에 대한 소망의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회복이 궁극적으로 예수 그리스도가 이땅에 오심에 대한 예표가 됩니다.
7.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오늘 본문 애굽에 관한 이야기는 세번째 이야기의 마지막 부분입니다.
8. 애굽은 강한 나라였습니다(2절). 여러 나라에서 그들을 사자로, 악어로 생각했습니다. 사자나 악어 모두 아주 강한 동물입니다. 에스겔의 시대의 역사에서도 애굽은 강대국의 시기가 있었습니다.
9. 그러나 그들은 교만했습니다. 하나님의 슬픈 노래가 그들에게 임합니다. 악어를 잡기 위해서 그물을 치겠다 말씀하십니다.
10. 더 이상 애굽은 악어가 되지 못합니다. 슬픈 노래의 주인공이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 일시적으로 사용되는 도구가지 맙시다. 하나님과 늘 함께 하는 동반자가 되기를 원합니다.
11. 하나님을 우리를 부하게도 하실 수 있으며, 가난에 처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부하게 될 때 교만하지 맙시다. 가난에 처할 때 하나님을 원망하지 맙시다.'
12. 오직 어느 때에든지 하나님을 바라봅시다. 하나님과 함께 합시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합시다.
13. 악어를 잡기 위해 그물을 쳤던 그 강이 이제 흐려졌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곳을 그대로 두지 않으십니다. 참으로 은혜입니다. 13절에 보면, "그 때에 내가 그 물을 맑게 하여 그 강이 기름같이 흐르게 하리로다"고 말씀하십니다.
14. 하나님이 그렇게 하십니다. 진흙탕 같았던 강을 아주 맑게 하시는 분이시빈다. 하나님의 능력이십니다. 하나님의 주권이십니다. 우리의 아버지 되시는 하나님의 속성이십니다.
15. 하나님 앞에 바로 서기를 원합니다. 말씀앞에 바로 서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의 주권앞에 무릎을 꿇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의 일하심에 깊은 신뢰를 갖기를 원합니다.
16. 오늘 하루도 눈을 열어 하나님을 바라보십시오. 하나님은 결코 멀리 있지 않습니다. 아주 가까에 계시빈다.
17. 아멘!
---
1절 "열두째 해 열두째 달 초하루에"
2절 "너는 애굽의 바로 왕에 대하여 슬픈 노래를 불러 그에게 이르라 너를 여러 나라에서 사자로 생각하였더니 실상은 바다 가운데 큰 악어라"
3절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는니라 ... 그물을 네 위에 치고 그 그물로 너를 끌어오리로다"
4-10절 - 하나님의 주권으로 이집트의 교만을 흩어버리실 것이다.
11절 "바벨론 왕의 칼이 네게 오리로다"
12절 "나는 네 무리가 용사 곧 모든 나라의 무서운 자들의 칼에 엎드러지게 할 것임이여 그들이 애굽의 교만을 폐하며 그 모든 무리를 멸하리로다"
=> 하나님의 주권, 교만의 심판,
13절 "내가 또 그 모든 짐승을 큰 물가에서 멸하리니 사람의 발이나 짐승의 굽이 다시는 그 물을 흐리지 못할 것임이여"
14절 "그 때에 내가 그 물을 맑게 하여 그 강이 기름같이 흐르게 하리로다"
15절 "내가 애굽 땅이 황폐하여 사막이 되게 하여 거기에 풍성한 것이 없게 할 것임이여"
16절 "이는 슬피 부를 노래이니 ... 애굽과 그 모든 무리를 위하여 이것을 슬퍼 부르리로다"
1. 에스겔서를 읽으면서 몇 군데 전환의 포인트가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전환점의 핵심이 됩니다.
2. 이해를 돕기 위해 에스겔에 나타나는 전환 포인트를 살펴보면 이렇습니다.
3. 1장부터 3장까지는 에스겔의 소명에 대한 부분입니다. 왜 에스겔를 부르게 되었는지에 대해서, 어떻게 너를 사용하겠는지에 대해서,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과 주변 나라들에 대해서 예언을 하는 부분입니다.
4. 두번째는 이스라엘의 멸망입니다. 4장부터 24장까지 이어집니다. 이스라엘의 멸망의 중심에 바로 이스라엘 백성의 죄악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철저히 백성들의 죄악에 대한 심판을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심판의 도구로 이웃 나라들의 힘을 잠시 빌리겠다고 하십니다.
5. 오늘 본문이 해당되면, 세번째로의 전환점의 끝부분이 되는 내용은 하나님이 잠시 힘을 빌린 이웃 나라들의 멸망에 관한 것입니다. 25장부터 32장까지입니다. 그런데 이들 나라들의 공통점은 교만입니다. 자신들의 힘이 하나님이 허락하신 것임을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하나같이 교만으로 인해 서로가 서로를 물고 물어지게 됩니다.
6. 그리고 마지막으로 33장부터 이어지는 이스라엘의 회복입니다. 새성전에 관한 예언입니다. 남은 자들과 포로로 끌려간 자들에 대한 소망의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회복이 궁극적으로 예수 그리스도가 이땅에 오심에 대한 예표가 됩니다.
7.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오늘 본문 애굽에 관한 이야기는 세번째 이야기의 마지막 부분입니다.
8. 애굽은 강한 나라였습니다(2절). 여러 나라에서 그들을 사자로, 악어로 생각했습니다. 사자나 악어 모두 아주 강한 동물입니다. 에스겔의 시대의 역사에서도 애굽은 강대국의 시기가 있었습니다.
9. 그러나 그들은 교만했습니다. 하나님의 슬픈 노래가 그들에게 임합니다. 악어를 잡기 위해서 그물을 치겠다 말씀하십니다.
10. 더 이상 애굽은 악어가 되지 못합니다. 슬픈 노래의 주인공이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 일시적으로 사용되는 도구가지 맙시다. 하나님과 늘 함께 하는 동반자가 되기를 원합니다.
11. 하나님을 우리를 부하게도 하실 수 있으며, 가난에 처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부하게 될 때 교만하지 맙시다. 가난에 처할 때 하나님을 원망하지 맙시다.'
12. 오직 어느 때에든지 하나님을 바라봅시다. 하나님과 함께 합시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합시다.
13. 악어를 잡기 위해 그물을 쳤던 그 강이 이제 흐려졌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곳을 그대로 두지 않으십니다. 참으로 은혜입니다. 13절에 보면, "그 때에 내가 그 물을 맑게 하여 그 강이 기름같이 흐르게 하리로다"고 말씀하십니다.
14. 하나님이 그렇게 하십니다. 진흙탕 같았던 강을 아주 맑게 하시는 분이시빈다. 하나님의 능력이십니다. 하나님의 주권이십니다. 우리의 아버지 되시는 하나님의 속성이십니다.
15. 하나님 앞에 바로 서기를 원합니다. 말씀앞에 바로 서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의 주권앞에 무릎을 꿇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의 일하심에 깊은 신뢰를 갖기를 원합니다.
16. 오늘 하루도 눈을 열어 하나님을 바라보십시오. 하나님은 결코 멀리 있지 않습니다. 아주 가까에 계시빈다.
17. 아멘!
---
1절 "열두째 해 열두째 달 초하루에"
2절 "너는 애굽의 바로 왕에 대하여 슬픈 노래를 불러 그에게 이르라 너를 여러 나라에서 사자로 생각하였더니 실상은 바다 가운데 큰 악어라"
3절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는니라 ... 그물을 네 위에 치고 그 그물로 너를 끌어오리로다"
4-10절 - 하나님의 주권으로 이집트의 교만을 흩어버리실 것이다.
11절 "바벨론 왕의 칼이 네게 오리로다"
12절 "나는 네 무리가 용사 곧 모든 나라의 무서운 자들의 칼에 엎드러지게 할 것임이여 그들이 애굽의 교만을 폐하며 그 모든 무리를 멸하리로다"
=> 하나님의 주권, 교만의 심판,
13절 "내가 또 그 모든 짐승을 큰 물가에서 멸하리니 사람의 발이나 짐승의 굽이 다시는 그 물을 흐리지 못할 것임이여"
14절 "그 때에 내가 그 물을 맑게 하여 그 강이 기름같이 흐르게 하리로다"
15절 "내가 애굽 땅이 황폐하여 사막이 되게 하여 거기에 풍성한 것이 없게 할 것임이여"
16절 "이는 슬피 부를 노래이니 ... 애굽과 그 모든 무리를 위하여 이것을 슬퍼 부르리로다"
Thursday, June 14, 2012
한 날 묵상 - <에스겔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 왜 에스겔서를 읽는가?
- 에스겔의 이해를 돕기 위한 글들 - NIV 적용주석 "에스겔" 이안 두굿 Iain M. Duguid 지음.
에스겔성의 난해성은 환상들뿐만 아니라 에스겔서가 무질서와 혼동의 수많은 세월을 거치면서 기록되었다는 사실에서도 원인을 찾을 수 있다.
1. 에스겔은 한 가지 위기 상황을 세 가지 다른 국면, 즉 끔직한 외세의 정치권력에 의해 침략당하려고 했을 때, 침략을 당해 타국으로 쫓겨 갔을 때, 그리고 상실한 조국의 회복을 기대할 때로 나누어 이야기했다. 에스겔 선지자는 각 국면마다 분명한 메시지를 드러냈다.
2. 에스겔의 중심 주제
에스겔에게 주어진 임무는 포로가 되어 멀리 바빌론으로 끌려간 유다 백성들에게 예언하는 것이었다. 그들은 절망에 가운데 있는 청중이었으며 왜 그러한 재앙이 그들에게 닥쳤는지, 그들이 개인적으로 겪은 대학살 가운데 하나님은 어디에 게셨는지 질문하고 있다.
그들은 자신들의 상황에 대해 이렇게 평가했다. "우리의 뼈들이 말랐고 우리의 소망이 없어졌으니 우리는 다 멸절되었다"(겔37:11)
자신의 땅을 지킬 수도 없고 또 지키려고 하지도 않는 하나님이 무슨 소용이 있는가?
예루살렘에 있는 자신의 성전을 더럽히도록 놔둔 하나님이 무슨 소용이 있는가?
자신의 백성을 그 선조들에게 약속의 땅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타국으로 끌려가게 하는 하나님이 무슨 소용이 있는가?
비록 그 하나님이 이제 그의 땅을 위해 개입한다 치더라도 포로로 끌려가 멀리 타국에 있는 사람들을 어떻게 도울 수 있겠는가?
1) 에스겔 전체를 뒤덮고 있는 주제는 하나님의 주권과 영광이다.
2) 인간의 철저한 죄성이다.
3) 처음 두 주제에서 발전하는 것으로 피할 수 없는 심판의 도래이다.
에스겔의 전체의 전환점은 예루살렘 멸망의 소식이 전해지는 것에서 시작된다. 그것은 에스겔 24장의 끝에 예기되었던 사건이며, 실제로 33:21-22에서 일어난다.
4) 왕이신 하나님이 돌아오시고 백성들은 땅과 축복을 되찾게 되는 것이다. 새로워진 성전에 대한 에스겔의 환상에서 그 중심은 하나님의 영광이 지극히 높은 곳으로 돌아오는 것이다(겔 43:1-5).
그렇다면, 우리가 에스겔에서 발견하는 주제는 하나님의 영광과 주권, 인간의 죄성, 심판의 확실성, 미래에 대한 자비와 소망의 약속이다.
소망에 대한 더 큰 게시는 그리스도 안에서 드러난다. 에스겔은 우리를 그에게 인도한다. 에스겔이 보았던 성전으로 내려오는 하나님의 영광은, 예수의 인성 안에 도래하였고, 그에 대해 요한은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요1:14)라고 증언하였다.
3. 개관
1) 에스겔의 소명과 임무(1:1-3;27)
2) 멸망의 신탁(4:1-24:27)
3) 열방에 대한 신탁(25:1-32:32)
4) 복음의 신탁(33:1-48:35)
4. 역사적 배경
에스겔서에 나오는 환상들의 시발점은(1:2-3)은 유다 왕 여호야긴의 포로생활 5년차에 바빌론 그발 강가이다. 우리는 에스겔서를 이해하기 위해 이 장소의 신학적 의미를 검토해야 한다. 그러나 현재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역사적 배경에 대한 이해이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어덯게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은 장소에 이르게 되었는가?
그 답변의 일부는 당시 "세속사"의 흐름 가운데서 찾을 수 있다. 주전 신 아시리아인들은 수도를 니느웨로 정하면서 근동지역을 장악했다. 그 제국의 경계는 후퇴와 전진을 거듭하면서 이집트의 지경까지 이르렀다.
주전 841년에 예후와 북 왕국 이스라엘은 조공을 바치게 되었다. 그리고 한 세기가 지난 후에 티그랏-빌에셀 3세와 그의 아들 살만에셀 5세의 지배 아래 아시리아는 북 왕국 이스라엘의 영토를 침입하였고, 마침내 722년에 합병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아시리아 제국의 도처로 추방되었고, 다른 민족들이 그들을 대치하였다(왕하17장)
20년 사이에 아시리아는 산헤립의 통치 아래 예루살렘의 성문들을 다 휩쓸어 버렸으며, 반역의 소지가 있는 히스기야 왕을 "새장 속의 새처럼" 옥죄어 왔다. 그런 중에 히스기야가 살아 남을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주의 사자가 직접 개입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주의 사자가 185,000명의 아시리아 군대를 쳐 죽였던 것이다(왕하 19:35).
동시에 강력한 바빌론의 통치자 므로닥발라단은 봍노의 더욱 인접한 지역에서 산헤립에게 문제를 일으키고 있었다. 므로닥발라단은 히스기야의 배반을 선동하고자 사신을 보냈고, 히스기야는 그들을 대접하면서 왕실의 보호와 무기고를 보여주었다(왕하 20:13). 히스기야는 이전에 아시라아가 쳐들어 왔을 대 그를 구한 것이 재력이나 무기가 아니었다는 사실을 금방 잊어버렸던 것이다.
그 때 선지자 이사야를 하나님은 그의 사신으로 예루살렘에 보냈다. 이사야의 임무는 히스기야의 죄를 깨닫게 하는 것이었다(왕하 20:14-18). 바빌론에게 우호적이었던 히스기야는 머지않은 미래에 바로 그 바빌론인들이 다시 돌아와 궁궐의 보화들을 다 갈취해 갈 거라는 사실을 알아야 했다. 그러나 히스기야는 그 신탁을 선한 소식으로 생각하였다. 아마도 그 신탁이 히스기야가 사는 날만큼은 적어도 태평할 것라는 내용을 담고 있기 때문인 것 같다(왕하 20:19).
사실상 이 시기는 고대 근동의 작은 국가들에게 어려운 때였다. 산헤립이 바빌론 왕조를 주전 689년에 무너뜨리고, 바빌론의 수호신인 마르둑을 떨어뜨린 바빌론의 신성한 도시를 붕괴시켰으나, 아시리아의 세력은 이미 기울고 있었다.
주전 625년경에 이르러 바빌론은 나보폴라살의 지휘 아래 아시리아의 멍에에서 벗어나싿. 그리고 10년이 지난 주전 616년에 나보폴라살은 아시리아의 영토로 행군하여 성읍을 하나 둘씩 점령하기 시작했다. 주전 612년에 니느웨가 함락되었다. 그리고 주전 605년 카르케미시 전투를 기점으로 아시라아-이집트 동맹국은 멸망했다.
유다가 이 사건들에 직접 개인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유다는 이미 사면초가에 놓여 있었다. 공예배 개혁을 주도하던 유다의 마지막 선왕 요시야는 주전 609년에 아시리아를 지원하러 가는 이집트의 군사 원정을 차단하려고 했다. 그의 의도가 무엇이었든지 간에 요시아는 이집트와의 므깃도 전투에서 비극적으로 전사했다.
요시아의 죽음으로 짧았던 유다의 종교개혁은 갑작스런 종국을 맞는다.
그의 왕위는 아들 여호아하스가 계승했다. 3개월 통치기간에 여호아하스는 불행히도 부친의 의로운 길을 따르지 않고 조부인 아몬의 사악한 길을 따랐다. 그 후 이집트의 침입이 있었고 여호아하스는 포로가 되어 이집트로 끌려갔다.
그리고 그 형 엘리아김이 권자에 앉게 되었다(왕하23:34(. 바로 느고는 언약적 종주권을 명시하는 행위로 엘리아김의 이름을 여호아김("주께서 일으키신다")으로 바뀌어싿. 공교롭게도 그 이름은 사악한 왕을 일컫는 정통적인 이름이 되었다. 특히 외세의 세력을 업고 권좌를 차지했던 왕을 일컫게 되었다.
대력 주전 605년 경에 바빌론의 침략이 시작되었다. 이집트는 팔레스타인에서 쫓겨났다.
여호야김은 약삭빠르게 편을 바꾸어 바빌론에 충성을 맹세했다. 바빌론은 귀족 가운데 인질을 취해 바빌론으로 데려갔다. 그 중에 다니엘과 그의 세친구가 포함되었다. 그러나 여호아김은 바빌론과 맺은 조약들을 지키지 않았다. 그 가운데 아마도 엄청난 부담의 조공이 포함되었던 것 같다. 여호아김은 주전 598년 "대표 없는 곳에 과세할 수 없다" No taxation without representation고 외치며 바빌론을 배반하였다.
이 저항은 위대하고 영웅적이었다. 그러나 하나님 보시기에 그의 행동은 사악한 것이었다. 바빌론은 다시 돌아와 그의 반란을 재압했다. 이 과정에서 여호야김은 죽었다.
유다 백성은 그 자리에 그의 아들 여호아긴을 앉혔다. 여호야긴은 하나님이나 느브갓네살이 보기에도 그의 부친보다 나은 것이 없었다. 여호야긴은 예레미야의 조언을 따라 바빌론에 복종하기는는커녕 이집트 원조를 청했다(이것은 구약에서 하나님께 불신할 때 지속적으로 나타나는 대안이다). 그리고 3개월이 채 못 되어 여호야긴은 바빌론에 포로로 끌려가게 되었다.
여호야긴의 유수후에 느브갓네살은 여호야긴의 삼촌 맛디니아를 권좌에 앉히고, 그의 이름을 시드기야로 바꾸었다(왕하 24:17).
시드기야는 왕위에 앉아 있었지만, 신하들이 하는 일에 무지하거나 통제권을 갖지 못하는 빈약한 왕처럼 보인다. 그런 시드기야는 주전 589년에 반란에 동의하였다. 느부삿네살은 만반의 전쟁태세를 갖추고 내려왔다. 그리고 마침내 성벽이 무너졌다. 시드기야가 지켜보는 가운데 느브갓네살은 그의 아들들을 처형했다. 그런 다음 시드기야의 눈을 뽑아 바빌론으로 압송했다.
예루살렘성은 무너지고 불에 탔다. 그리고 그 땅에 남아 있던 거주자들 대부분은 포로로 끌려갔다. 단지 극빈자 중의 극빈자들만이 그곳에 남았다.
이런 격변의 세월이 에스겔서에 있는 예언들의 배경을 형성한다. 에스겔서의 시간적 배경은 예루살렘 멸망 전후로 하여 20년이라는 시간에 걸쳐 있다.
근본적으로 에스겔서 기자는 예루살렘 명망 소식을 듣게 되는 사건의 관점에서, 더 정확하히 말하자면 포로들이 예루살렘 멸망 소식을 듣게 되는 사건을 중심으로 배열하였다(겔24:27에서 예견되었고, 33:21-22에서 실현되었다). 그것은 포로로 있는 선지자와 하나님의 백성 모두에게 전환점이 되었다. 하나님을 배반하는 백성이 걷는 길의 끝은 명료하게 묘사하는 것으로 시작하는 예언(겔1-24장)은 그 길의 끝이 이야기의 끝이 아님을 보여줌으로써 종결된다(겔34-48장). 궁극적으로 하나님 백성의 죄악성과 반역조차 하나님이 베푸시는 은혜를 압도할 수 없다.
5. 바빌론과 아시리아의 포로정책이 미치는 영향
하나님의 섭리 속에서 비빌론과 아시리아는 포로정책에 관한한 매우 다른 정책을 취했다. 아시리아는 분리와 정복 정책을 채택하였다. 아시리아는 제국의 한 지역에서 많은 사람들을 데려다가 작은 무리로 나누어 제국의 여러 지역에 다시 정착시켰다. 아시리아는 기존의 연대감과 동맹관계를 무너뜨림으로써 피정복민들이 반란을 일으키지 못하도록 조직을 파괴하고 그들의 정체성을 혼란시켰다.
반면에 바빌론은 온갖 샐러드를 버무려 놓은 것처럼 다소 약화된 동화정책론 모델을 따랐다. 그들은 피정복국가에서 지도자와 기술자들을 데려다가 제국의 주변에서 중심으로, 곧 바빌론 제국으로 끌어들였다. 그곳에서 그들은 합리적인 대우를 받았고 그들의 종족집단을 따라 정착하였으며 바빌론 체제 안에서 진급하는 것이 허락되었다. 바빌론의 관점에서 볼 때 그 정책의 목적은 피정복민들의 종족적 정체성을 남겨둔 채 그들의 다양한 재능과 능력을 중심권으로 가져옴으로써 다양한 집단들을 병합시켜 제국에 봉사하도록 하는 것이었다.
이스라엘과 유다의 관점에서 보자면 그 결과들은 포로기의 남 왕국과 북 왕국에 각기 다른 운명을 초래하였다. 북 왕국 이스라엘은 분산되고 실제로 붕괴 되었다. 단지 신앙을 가진 개개인들이 미래에 열두 지파가 다시 연합할 것을 꿈꾸면서 디아스포라로 살았을 것이다. 그러나 정치적으로 북 왕국은 종말을 고하고 말았다. 그 땅은 다른 종족 집단들과 혈통이 섞이고, 하나님에 대한 그들의 산앙은 그 땅의 신에 대한 미신적 관점에 지나지 않았다.
반면에 유다는 주전 586년에 멸망한 후에 수많은 사람들이 추방되었지만 신앙을 지킨 사람들에게는 귀환의 가능성만 남아 있었다. 그 가운데 하나가 바빌론의 그발 강가에 정착한 포로들이다. 그 그룹에는 신실한 자와 그렇지 않은 자들이 모두 포함되어 있었다. 에스겔에게 주어진 임무는 그들에게 예언하는 것이었다.
6. 에스겔의 일기
1장 1절 "서른째 해 넷째 달 초닷새 ... 여호야긴 왕이 사로잡힌 지 오 년 그 달 초닷새라"
3장 16절 "칠 일 후에"
8장 1절 "여섯째 해 여섯째 달 초닷새에"
20장 1절 "일곱재 해 다섯째 달 열쨰 날에"
24장 1절 "아홉째 해 열째 달 열째 날에"
26장 1절 "열한째 해 어느 달 초하루에"
29장 1절 "열째 해 열째 달 열두째 날에"
31장 1절 "열한째 해 섯째 달 초하루에"
32장 1절 "열두째 해 열두째 달 초하루에"
32장 17절 "열두째 해 어느 달 열다섯째 날에"
40장 1절 "우리가 사로잡힌 지 스물다섯째 해, 성이 함락 된 후 열넷째 해 첫째 달 열째날에"
- 에스겔의 이해를 돕기 위한 글들 - NIV 적용주석 "에스겔" 이안 두굿 Iain M. Duguid 지음.
에스겔성의 난해성은 환상들뿐만 아니라 에스겔서가 무질서와 혼동의 수많은 세월을 거치면서 기록되었다는 사실에서도 원인을 찾을 수 있다.
1. 에스겔은 한 가지 위기 상황을 세 가지 다른 국면, 즉 끔직한 외세의 정치권력에 의해 침략당하려고 했을 때, 침략을 당해 타국으로 쫓겨 갔을 때, 그리고 상실한 조국의 회복을 기대할 때로 나누어 이야기했다. 에스겔 선지자는 각 국면마다 분명한 메시지를 드러냈다.
2. 에스겔의 중심 주제
에스겔에게 주어진 임무는 포로가 되어 멀리 바빌론으로 끌려간 유다 백성들에게 예언하는 것이었다. 그들은 절망에 가운데 있는 청중이었으며 왜 그러한 재앙이 그들에게 닥쳤는지, 그들이 개인적으로 겪은 대학살 가운데 하나님은 어디에 게셨는지 질문하고 있다.
그들은 자신들의 상황에 대해 이렇게 평가했다. "우리의 뼈들이 말랐고 우리의 소망이 없어졌으니 우리는 다 멸절되었다"(겔37:11)
자신의 땅을 지킬 수도 없고 또 지키려고 하지도 않는 하나님이 무슨 소용이 있는가?
예루살렘에 있는 자신의 성전을 더럽히도록 놔둔 하나님이 무슨 소용이 있는가?
자신의 백성을 그 선조들에게 약속의 땅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타국으로 끌려가게 하는 하나님이 무슨 소용이 있는가?
비록 그 하나님이 이제 그의 땅을 위해 개입한다 치더라도 포로로 끌려가 멀리 타국에 있는 사람들을 어떻게 도울 수 있겠는가?
1) 에스겔 전체를 뒤덮고 있는 주제는 하나님의 주권과 영광이다.
2) 인간의 철저한 죄성이다.
3) 처음 두 주제에서 발전하는 것으로 피할 수 없는 심판의 도래이다.
에스겔의 전체의 전환점은 예루살렘 멸망의 소식이 전해지는 것에서 시작된다. 그것은 에스겔 24장의 끝에 예기되었던 사건이며, 실제로 33:21-22에서 일어난다.
4) 왕이신 하나님이 돌아오시고 백성들은 땅과 축복을 되찾게 되는 것이다. 새로워진 성전에 대한 에스겔의 환상에서 그 중심은 하나님의 영광이 지극히 높은 곳으로 돌아오는 것이다(겔 43:1-5).
그렇다면, 우리가 에스겔에서 발견하는 주제는 하나님의 영광과 주권, 인간의 죄성, 심판의 확실성, 미래에 대한 자비와 소망의 약속이다.
소망에 대한 더 큰 게시는 그리스도 안에서 드러난다. 에스겔은 우리를 그에게 인도한다. 에스겔이 보았던 성전으로 내려오는 하나님의 영광은, 예수의 인성 안에 도래하였고, 그에 대해 요한은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요1:14)라고 증언하였다.
3. 개관
1) 에스겔의 소명과 임무(1:1-3;27)
2) 멸망의 신탁(4:1-24:27)
3) 열방에 대한 신탁(25:1-32:32)
4) 복음의 신탁(33:1-48:35)
4. 역사적 배경
에스겔서에 나오는 환상들의 시발점은(1:2-3)은 유다 왕 여호야긴의 포로생활 5년차에 바빌론 그발 강가이다. 우리는 에스겔서를 이해하기 위해 이 장소의 신학적 의미를 검토해야 한다. 그러나 현재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역사적 배경에 대한 이해이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어덯게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은 장소에 이르게 되었는가?
그 답변의 일부는 당시 "세속사"의 흐름 가운데서 찾을 수 있다. 주전 신 아시리아인들은 수도를 니느웨로 정하면서 근동지역을 장악했다. 그 제국의 경계는 후퇴와 전진을 거듭하면서 이집트의 지경까지 이르렀다.
주전 841년에 예후와 북 왕국 이스라엘은 조공을 바치게 되었다. 그리고 한 세기가 지난 후에 티그랏-빌에셀 3세와 그의 아들 살만에셀 5세의 지배 아래 아시리아는 북 왕국 이스라엘의 영토를 침입하였고, 마침내 722년에 합병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아시리아 제국의 도처로 추방되었고, 다른 민족들이 그들을 대치하였다(왕하17장)
20년 사이에 아시리아는 산헤립의 통치 아래 예루살렘의 성문들을 다 휩쓸어 버렸으며, 반역의 소지가 있는 히스기야 왕을 "새장 속의 새처럼" 옥죄어 왔다. 그런 중에 히스기야가 살아 남을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주의 사자가 직접 개입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주의 사자가 185,000명의 아시리아 군대를 쳐 죽였던 것이다(왕하 19:35).
동시에 강력한 바빌론의 통치자 므로닥발라단은 봍노의 더욱 인접한 지역에서 산헤립에게 문제를 일으키고 있었다. 므로닥발라단은 히스기야의 배반을 선동하고자 사신을 보냈고, 히스기야는 그들을 대접하면서 왕실의 보호와 무기고를 보여주었다(왕하 20:13). 히스기야는 이전에 아시라아가 쳐들어 왔을 대 그를 구한 것이 재력이나 무기가 아니었다는 사실을 금방 잊어버렸던 것이다.
그 때 선지자 이사야를 하나님은 그의 사신으로 예루살렘에 보냈다. 이사야의 임무는 히스기야의 죄를 깨닫게 하는 것이었다(왕하 20:14-18). 바빌론에게 우호적이었던 히스기야는 머지않은 미래에 바로 그 바빌론인들이 다시 돌아와 궁궐의 보화들을 다 갈취해 갈 거라는 사실을 알아야 했다. 그러나 히스기야는 그 신탁을 선한 소식으로 생각하였다. 아마도 그 신탁이 히스기야가 사는 날만큼은 적어도 태평할 것라는 내용을 담고 있기 때문인 것 같다(왕하 20:19).
사실상 이 시기는 고대 근동의 작은 국가들에게 어려운 때였다. 산헤립이 바빌론 왕조를 주전 689년에 무너뜨리고, 바빌론의 수호신인 마르둑을 떨어뜨린 바빌론의 신성한 도시를 붕괴시켰으나, 아시리아의 세력은 이미 기울고 있었다.
주전 625년경에 이르러 바빌론은 나보폴라살의 지휘 아래 아시리아의 멍에에서 벗어나싿. 그리고 10년이 지난 주전 616년에 나보폴라살은 아시리아의 영토로 행군하여 성읍을 하나 둘씩 점령하기 시작했다. 주전 612년에 니느웨가 함락되었다. 그리고 주전 605년 카르케미시 전투를 기점으로 아시라아-이집트 동맹국은 멸망했다.
유다가 이 사건들에 직접 개인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유다는 이미 사면초가에 놓여 있었다. 공예배 개혁을 주도하던 유다의 마지막 선왕 요시야는 주전 609년에 아시리아를 지원하러 가는 이집트의 군사 원정을 차단하려고 했다. 그의 의도가 무엇이었든지 간에 요시아는 이집트와의 므깃도 전투에서 비극적으로 전사했다.
요시아의 죽음으로 짧았던 유다의 종교개혁은 갑작스런 종국을 맞는다.
그의 왕위는 아들 여호아하스가 계승했다. 3개월 통치기간에 여호아하스는 불행히도 부친의 의로운 길을 따르지 않고 조부인 아몬의 사악한 길을 따랐다. 그 후 이집트의 침입이 있었고 여호아하스는 포로가 되어 이집트로 끌려갔다.
그리고 그 형 엘리아김이 권자에 앉게 되었다(왕하23:34(. 바로 느고는 언약적 종주권을 명시하는 행위로 엘리아김의 이름을 여호아김("주께서 일으키신다")으로 바뀌어싿. 공교롭게도 그 이름은 사악한 왕을 일컫는 정통적인 이름이 되었다. 특히 외세의 세력을 업고 권좌를 차지했던 왕을 일컫게 되었다.
대력 주전 605년 경에 바빌론의 침략이 시작되었다. 이집트는 팔레스타인에서 쫓겨났다.
여호야김은 약삭빠르게 편을 바꾸어 바빌론에 충성을 맹세했다. 바빌론은 귀족 가운데 인질을 취해 바빌론으로 데려갔다. 그 중에 다니엘과 그의 세친구가 포함되었다. 그러나 여호아김은 바빌론과 맺은 조약들을 지키지 않았다. 그 가운데 아마도 엄청난 부담의 조공이 포함되었던 것 같다. 여호아김은 주전 598년 "대표 없는 곳에 과세할 수 없다" No taxation without representation고 외치며 바빌론을 배반하였다.
이 저항은 위대하고 영웅적이었다. 그러나 하나님 보시기에 그의 행동은 사악한 것이었다. 바빌론은 다시 돌아와 그의 반란을 재압했다. 이 과정에서 여호야김은 죽었다.
유다 백성은 그 자리에 그의 아들 여호아긴을 앉혔다. 여호야긴은 하나님이나 느브갓네살이 보기에도 그의 부친보다 나은 것이 없었다. 여호야긴은 예레미야의 조언을 따라 바빌론에 복종하기는는커녕 이집트 원조를 청했다(이것은 구약에서 하나님께 불신할 때 지속적으로 나타나는 대안이다). 그리고 3개월이 채 못 되어 여호야긴은 바빌론에 포로로 끌려가게 되었다.
여호야긴의 유수후에 느브갓네살은 여호야긴의 삼촌 맛디니아를 권좌에 앉히고, 그의 이름을 시드기야로 바꾸었다(왕하 24:17).
시드기야는 왕위에 앉아 있었지만, 신하들이 하는 일에 무지하거나 통제권을 갖지 못하는 빈약한 왕처럼 보인다. 그런 시드기야는 주전 589년에 반란에 동의하였다. 느부삿네살은 만반의 전쟁태세를 갖추고 내려왔다. 그리고 마침내 성벽이 무너졌다. 시드기야가 지켜보는 가운데 느브갓네살은 그의 아들들을 처형했다. 그런 다음 시드기야의 눈을 뽑아 바빌론으로 압송했다.
예루살렘성은 무너지고 불에 탔다. 그리고 그 땅에 남아 있던 거주자들 대부분은 포로로 끌려갔다. 단지 극빈자 중의 극빈자들만이 그곳에 남았다.
이런 격변의 세월이 에스겔서에 있는 예언들의 배경을 형성한다. 에스겔서의 시간적 배경은 예루살렘 멸망 전후로 하여 20년이라는 시간에 걸쳐 있다.
근본적으로 에스겔서 기자는 예루살렘 명망 소식을 듣게 되는 사건의 관점에서, 더 정확하히 말하자면 포로들이 예루살렘 멸망 소식을 듣게 되는 사건을 중심으로 배열하였다(겔24:27에서 예견되었고, 33:21-22에서 실현되었다). 그것은 포로로 있는 선지자와 하나님의 백성 모두에게 전환점이 되었다. 하나님을 배반하는 백성이 걷는 길의 끝은 명료하게 묘사하는 것으로 시작하는 예언(겔1-24장)은 그 길의 끝이 이야기의 끝이 아님을 보여줌으로써 종결된다(겔34-48장). 궁극적으로 하나님 백성의 죄악성과 반역조차 하나님이 베푸시는 은혜를 압도할 수 없다.
5. 바빌론과 아시리아의 포로정책이 미치는 영향
하나님의 섭리 속에서 비빌론과 아시리아는 포로정책에 관한한 매우 다른 정책을 취했다. 아시리아는 분리와 정복 정책을 채택하였다. 아시리아는 제국의 한 지역에서 많은 사람들을 데려다가 작은 무리로 나누어 제국의 여러 지역에 다시 정착시켰다. 아시리아는 기존의 연대감과 동맹관계를 무너뜨림으로써 피정복민들이 반란을 일으키지 못하도록 조직을 파괴하고 그들의 정체성을 혼란시켰다.
반면에 바빌론은 온갖 샐러드를 버무려 놓은 것처럼 다소 약화된 동화정책론 모델을 따랐다. 그들은 피정복국가에서 지도자와 기술자들을 데려다가 제국의 주변에서 중심으로, 곧 바빌론 제국으로 끌어들였다. 그곳에서 그들은 합리적인 대우를 받았고 그들의 종족집단을 따라 정착하였으며 바빌론 체제 안에서 진급하는 것이 허락되었다. 바빌론의 관점에서 볼 때 그 정책의 목적은 피정복민들의 종족적 정체성을 남겨둔 채 그들의 다양한 재능과 능력을 중심권으로 가져옴으로써 다양한 집단들을 병합시켜 제국에 봉사하도록 하는 것이었다.
이스라엘과 유다의 관점에서 보자면 그 결과들은 포로기의 남 왕국과 북 왕국에 각기 다른 운명을 초래하였다. 북 왕국 이스라엘은 분산되고 실제로 붕괴 되었다. 단지 신앙을 가진 개개인들이 미래에 열두 지파가 다시 연합할 것을 꿈꾸면서 디아스포라로 살았을 것이다. 그러나 정치적으로 북 왕국은 종말을 고하고 말았다. 그 땅은 다른 종족 집단들과 혈통이 섞이고, 하나님에 대한 그들의 산앙은 그 땅의 신에 대한 미신적 관점에 지나지 않았다.
반면에 유다는 주전 586년에 멸망한 후에 수많은 사람들이 추방되었지만 신앙을 지킨 사람들에게는 귀환의 가능성만 남아 있었다. 그 가운데 하나가 바빌론의 그발 강가에 정착한 포로들이다. 그 그룹에는 신실한 자와 그렇지 않은 자들이 모두 포함되어 있었다. 에스겔에게 주어진 임무는 그들에게 예언하는 것이었다.
6. 에스겔의 일기
1장 1절 "서른째 해 넷째 달 초닷새 ... 여호야긴 왕이 사로잡힌 지 오 년 그 달 초닷새라"
3장 16절 "칠 일 후에"
8장 1절 "여섯째 해 여섯째 달 초닷새에"
20장 1절 "일곱재 해 다섯째 달 열쨰 날에"
24장 1절 "아홉째 해 열째 달 열째 날에"
26장 1절 "열한째 해 어느 달 초하루에"
29장 1절 "열째 해 열째 달 열두째 날에"
31장 1절 "열한째 해 섯째 달 초하루에"
32장 1절 "열두째 해 열두째 달 초하루에"
32장 17절 "열두째 해 어느 달 열다섯째 날에"
40장 1절 "우리가 사로잡힌 지 스물다섯째 해, 성이 함락 된 후 열넷째 해 첫째 달 열째날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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