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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ursday, October 17, 2013

한 날 묵상 - 막 6:45-52절 <기적을 보면서도 깨닫지 못하고 도리어 그 마음이 둔하여지는 믿음 없음을 보이지 말고 두려워하지 말라는 예수님의 말씀, 늘 나와 함께 하시겠다는 약속의 말씀을 기쁨으로 받아들이라>

한 날 묵상 - 막 6:45-52절 <기적을 보면서도 깨닫지 못하고 도리어 그 마음이 둔하여지는 믿음 없음을 보이지 말고 두려워하지 말라는 예수님의 말씀, 늘 나와 함께 하시겠다는 약속의 말씀을 기쁨으로 받아들이라>

1. 예수님의 제자들을 훈련하며 양육하는 쫓기는 시간에서도 자기만의 시간을 갖기 원하셨습니다. 얼마나 그렇게 하기 원하셨는지 45절을 보면, "예수께서 즉시 제자들을 재촉하사 ".

2. 예수님은 제자들을 떠나 보내고 홀로 있기 원하셨습니다. 그 마음이 간절하여 재촉하여 그들이 가야 할 길을 가도록 하셨습니다.

3. 예수님의 이렇게까지 홀로 있는 시간을 갖기 원하셨던 이유는 기도입니다. 46절 "무리를 작별하신 후에 기도하러 산으로 가시니라"

4. 지도자가 기도해야 합니다. 리더자가 기도해야 합니다. 선생이 더욱 기도해야 합니다. 훈련생으로 인하여 시간이 없다고 절대 빼 먹을 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기도입니다.

5. 기도하지 않고서는 제자들을 바로 양육하며 훈련할 수 없습니다. 얼마나 오랫동안 기도했을까요?

6. 언제 시작했는지 알 수 없지만, 예수님의 기도시간이 끝나는 시간은 나와 있습니다. 날이 저물었다는 것입니다. 47절 "저물매"

7. 날이 저물때까지 예수님은 기도하고 기도하셨습니다. 앞에서 오병이어 기적을 통해서 무리들에게 먹을 것을 주시고, 예수님은 분명히 자신이 누구인지 보여주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모든 사람들, 무리들과 제자들을 보내고 홀로 기도하는 시간을 가지셨습니다.

8. 기도해야 합니다. 지도자는 더욱 기도해야 합니다. 훈련생보다 더욱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해야 바로 가르치며 훈련하며 지혜를 발휘할 수 있습니다.

9. 기도하신 후에 예수님은 홀로 뭍에 계셨습니다. 그리고 배는 저 멀리 바다 가운데 있었을 때였습니다. 47절 "저물매 배는 바다 가운데 있고 예수는 홀로 뭍에 계시다가"

10. 이 때 예수님은 바람에 흔들리는 배를 보게 되었습니다. 아니 더욱 구체적으로 말씀드리며, 흔들리는 배에 갈팡 질팡 당황하며 두려워하는 제자들의 모습을 보게 된 것입니다. 
마태복음 14장 24절 "배가 이미 육지에서 수 리나 떠나서 바람에 거스르므로 물결로 말미암아 고난을 당하더라"

11. 에수님은 제자들이 자신의 인생의 문제앞에 흔들리며 힘겹게 가고 있을 때 외면하지 않고 찾아가시는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기도를 위해 자신만의 시간을 보내셨을 뿐 아니라 늘 그의 눈에는 제자들이 있었습니다.
마가복음 6장 48절 "바람이 거스르므로 제자들이 힘겹게 노 젓는 것을 보시고"

12. 그렇게 인생의 문제앞에 힘들고 힘겨워하는 제자들을 보시고 예수님은 전에 없는 결단을 하십니다. 바다 위를 걸어 가시기로 결정하셨습니다.
 48절 "밤 사경즘에 바다 위로 걸어서 그들에게 오사 지나가려고 하시매"

13. 예수님이 이렇게 하신 이유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예수님 자신에 대해서 다시 한 번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14. 제자들은 바다 위를 걸어가시는 예수님을 통해 결과론적으로 몇 가지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15. 창조주 예수님을 보다. 세상을 만드신 예수님을 믿으라

16. 세상의 통치자를 보다. 세상의 역사를 이끌어 가시는 예수님을 믿으라.

17. 전능자를 보다. 그 분은 못하실 없은 분이심을 믿으라.

18. 세상의 만물의 초월자를 보다.

19. 예수님은 자신이 누구인지 제자들이 분명히 깨닫고 알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어리석게도 아직 예수님을 제다로 알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여전히 이러한 예수님을 깨닫지 못하는 제자들입니다.

20. 마가복음이 시간적 기록으로 기록되어 있다면, 오늘 본문 바다 위를 걸으시는 예수님의 기적은 이미 제자들이 이와 유사하거나 또는 바로 앞 부분에서 언급한 기적을 체험하고도 도저히 예수님을 바로 볼 수 없는 어리석음에 빠져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21. 첫째로, 마가복음 4장 35-41절에서 바다를 잔잔케 하시는 예수님을 제자들은 보았습니다.

22. 둘째로, 제자들은 얼마전에 오병이어의 기적을 직접 눈으로, 몸으로 본 사람들이었습니다.

23. 그런데 지금 그들은 바다 위로 걸어오시는 예수님을 보며 "심히 놀라"(51절)는 모습만 보여줍니다.

24. "유령"(49절)인가하여 소리를 지르고 있습니다. 그럴 수 있습니다. 충분히 이해가 갑니다. 그런데, 지금 그들은 예수님과 함께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그 예수님을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25. 무엇이 문제일까요? 그 마음이 둔하여졌기 때문이다.

26. 이는 우리에게도 지금 마찬가지입니다. 인생의 문제앞에 예수님은 우리를 찾아오십니다. 그런데 그렇게 찾아오시는 예수님은 인정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계속해서 예수님게 자신의 문제를 내려놓기 보다는 예수님이 함게 하시는지를 의심하기만 합니다.

27. 그러면서 여전히 인생의 문제를 두려워하고 힘겨워합니다. 예수님은 지금도 우리와 함께 하십시다.

28. 예수님은 우리에게 약속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마태복음 28장 20절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게 있으리라"

요한복음 16장 7절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 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

29. 예수님을 도무지 깨닫지 못하는 제자들처럼, 도무지 우리도 예수님을 삶속에서 인정하지 않고 살아갑니다. 예수님이 도무지 어디에 계시는지 우리를 보고는 도저히 나와 세상 사람들 모두 알 수 없습니다.

30. 그렇게 살아가는 인생이 바로 "그 떡 떼시는 일을 깨닫지 못하고 도리어 그 마음이 둔하여"(52절) 살아가는 인생입니다.

31. 아무리 기적을 보고 체험해도 좀처럼 성도들이 하나님께 항복하지 않고 모습을 보게 됩니다.

32. 마음이 깨어나지 못하면 눈으로 보이는 예수님, 역사하시는 예수님, 이성을 뛰어넘는 예수님을 보면서도 그 예수님을 알지못한다.

33. 우리의 늘 지금도 함께 하시는 예수님을 깨닫지 못하고 두려워하는 인생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이 있습니다.

34. 예수님을 인정하지 못하고 홀로 떨고 있는 인생앞에 주시는 말씀이 있습니다. 
막 6장 50절 "안심하라 내니 드려워하지 말라"

35. 예수님의 말씀에 대한 제자들의 반응이 공관복음에 다르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각기 나타나는 반응이 재미있고 우리에게 주시는 메시지도 각기 다른 듯합니다.

36. 마태복음에 나타나는 베드로의 반응입니바. 마태복음 14장 28-31절 - 의심많은 베드로, 확인하고 싶은 베드로, "오라", 바람을 보고 무서워하는 베드로, "믿음이 작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 확인하고 싶은 마음이 강하지만 믿음이 작은 자의 모습을 보입니다.

37. 마태복음에 나타나는 제자들의 반응입니다.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입니다"는 고백입니다.마14장 33절 "예수께 절하며 이르되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로소이다" 믿음의 고백으로 이어집니다.

38. 마가복음에서 나타나는 제자들의 반응입니다. 마가복음 6장 51절 "배에 올라 그들에게 가시니 바람이 그치는지라 제자들이 마음에 심히 놀라니" 그져 놀라고 있습니다.

39. 요한복음에서 나타나는 제자들의 반응입니다. 요한복음 6장 21절 "이에 기뻐서 배로 영접하니" 기쁨으로 영접합니다.

40. 공관복음에서 각기 다른 반응을 기록한 이유는 이처럼 똑같은 예수님을 보면서 각기 받아들이는 반응이 다르다는 것을 분명하게 확실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41. 이는 예수님은 여전히 지금도 우리와 함께 하시는다는 말씀을 받아들이는 우리의 모습이 각기 다른 것처럼 말입니다.

42. 아니면, 둔하여 도무지 말씀을 깨닫지 못나는 자들로 살아가고 있지는 않습니까...

43. 그렇다면, 이 말씀 앞에 우리들은 지금 어떤 반응을 하고 있습니까?

44. 여전히 예수님은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문제 앞에 심히 염려하는 우리들을 그냥 내버려 두시지 않고 적극적으로 우리의 문제에 개입하기 원하십니다. 그 때 예수님의 찾아오심을 기쁨과 감사함으로 영접하기 원합니다.

45. 어리석고 우둔하여 깨닫지 못하는 것으로 인하여 마음이 점점 더 둔하여지는 인생이라 아니라, 주님을 기쁘게 영접함으로 우리와 늘 함께 하기 원하는 주님께 나의 인생앞에 놓인 수 많은 문제들을 내려놓기 원합니다.

46. 예수님은 지금도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47. 할렐루야! 아멘!

Tuesday, April 23, 2013

한 날 묵상 - 막 1:40-45 <예수님의 병고침, 율법과 예수, 그리고 병고침 이후의 삶>

한 날 묵상 - 막 1:40-45 <예수님의 병고침, 율법과 예수, 그리고 병고침 이후의 삶>

1.  신이 있다는 것을 알면서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2.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하면서 하나님에 대해 잘 알려고 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3. 하나님에 대해서 알려하면서도 하나님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4. 하나님을 알되 제대로 아는 것이 중요한다.

5. 야고보의 형제 사도 요한은 요한복음에서 예수님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요한복음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요1:1)

6. 예수님도 말씀하십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지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요 14:9)

7. 예수님은 "그의 아들에 관하여 말하면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롬1:3) 나신 분이시다.

8. 예수님은 이처럼 율법의 약속의 말씀따라 이 땅에 오신 분이시다.

9. 이렇게 확실함에도 불구하고, 율법에 계시는 예수님을 율법에 정한데로 하지 않는다고 예수를 고발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10. 예수님은 결코 예수님은 율법 파괴자가 아니시다

11.예수님을 율법을 완성하러 오셨다.

12. 예수님은 율법의 말씀을 지킬 뿐 아니라 율법의 완전한 완성, 즉 의미를 온전히 세우기 위해 오셨다.  마태복음 5장 17-20절

17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
18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도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19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계명 중의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고 또 그같이 사람을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지극히 작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누구든지 이를 행하며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크다 일컬음을 받으리라
20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13. 오늘 본문에서도 예수님께서는 병든 나병환자를 고치시고(40절), 말씀하십니다. "삼가 아무에게 아무 말도 하지 말고 가서 네 몸을 제사장에게 보이고"(44절)

14. 예수님은 율법에 순종하였다. 나아가 예수님은 구약의 율법에 대해 온전한 해석자로 오셨습니다.

15. 율법을 주신 이유가 있다는 것입니다. 율법은 우리의 삶을 옭아매는 것이 아닙니다. 내 안에 있는 죄를 발견하는 도구로 율법을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

16. 율법을 통해 죄를 발견한 우리는 율법을 통해서 사랑을 받게 됩ㄴ디ㅏ.

17. 그래서 율법의 완성은 사랑입니다. 로마서 13장

8피차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 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느니라
9간음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탐내지 말라 한 것과 그 외에 다른 계명이 있을지라도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그 말씀 가운데 다 들었느니라
10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행하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니라

18. 예수님은 율법에 억매여 있는 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율법을 지키지 않는다고 하는 자들에게 대한 예수님은 질타합니다. 마가복음 7장 6-13절

6이르시되 이사야가 너희 외식하는 자에 대하여 잘 예언하였도다 기록하였으되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7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 하였느니라
8너희가 하나님의 계명은 버리고 사람의 전통을 지키느니라
9또 이르시되 너희가 너희 전통을 지키려고 하나님의 계명을 잘 저버리는도다
10모세는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고 또 아버지나 어머니를 모욕하는 자는 죽임을 당하리라 하였거늘
11너희는 이르되 사람이 아버지에게나 어머니에게나 말하기를 내가 드려 유익하게 할 것이 고르반 곧 하나님께 드림이 되었다고 하기만 하면 그만이라 하고
12자기 아버지나 어머니에게 다시 아무 것도 하여 드리기를 허락하지 아니하여
13너희가 전한 전통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폐하며 또 이같은 일을 많이 행하느니라 하시고


19. 율법은 외식함이 아니라 사랑함입니다.

20. 예수님을 율법의 말씀을 지키시면서 사랑을 위해 율법이 주어졌음을 말씀하십니다.

21. 예수님의 가르침을 본받아 율법아래 자유함으로 통해 사랑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아울러 율법의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의 사랑을 받으십시오.

22. 나아가 우리가 예수님의 사랑을 받은자로서 그 사랑의 노래를 선포할 수 있기를 원합니다.

23. "그 사람이 나가서 이 일을 많이 전파하여 널리 퍼지게 하니"(45절)

24. 오늘 우리가 불러야 할 노래는 내가 받은 사랑의 노래입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내게 오신 사랑을 노래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25.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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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절 한 나병환자가 예수께 와서 꿇어 엎드려 간구하여 이르되 원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나이다

41절 예수께서 불쌍히 여기사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시며 이르시되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하시니

42절 곧 나병이 그 사람에게서 떠나고 깨끗하여 진지라

44절 이르시되 삼가 아무에게 아무 말도 하지 말고 가서 네 몸을 제사장에게 보이고 네 깨끗하게 되었으니 모세가 명한 것을 드려 그들에게 입증하라 하셨더라

45절

Tuesday, April 16, 2013

한 날 묵상 - 막 1:35-39 <새벽 한 적한 곳에서 기도 후 전도여행, 그리고 예수님의 말씀 "내가 이를 위하여 왔노라">

한 날 묵상 - 막 1:35-39 <새벽 한 적한 곳에서 기도 후 전도여행, 그리고 예수님의 말씀 "내가 이를 위하여 왔노라">

1. 하루를 시작하기 앞서, '너 거기서 무엇을 하였는가'라는 물음에 어떻게 답할 것인가?

2. 예수님은 이렇게 답하신다. " "새벽 아직도 밝기 전에"  "예수께서 일어나 나가"  "한적한 곳으로 가사"  "거기서 기도하시더니"(35절)

3. 삶으로 가르시시는 예수님의 교육이시다.

4. 우리가 할 수만 있으면, 아니 항상 최우선에 예수님의 이 가르침을 기억해야 하며, 또한 실천해야 할 것이다.

5. 오늘도 기도하러 가시는 잔잔한 예수님의 모습으로 내 자신을, 그리고 이른 아침 시간을 비추어 본다.

6. 예수님께서 능력을 덧입을 수 있었던 힘은 기도로부터 시작되었다. 늘 기도하였기에 사역에 능력과 힘이 있었다.

7. 오늘도 바쁘 움직이셔야 했던 예수님께 수 많은 무리들이 찾아온다.(36절)

8. 그러나 왠지 예수님은 이들을 만나주시지 않고, 가셔야 했던 길을 찾아 나선다.(38절)

9. 시몬과 그와 함께 있는 자들이 예수를 따라 나서며 말한다. "모든 사람이 주를 찾나이다"(36-37절).

10. 예수님께서 이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시 않고, 말씀하신다. "우리가 다른 가까운 마을들로 가자"(38절)

11. 예수님은 왜 이렇게 말씀하셨을까? 왜 찾아온 이들을 만나주시지 않았을까?

12. 여기에는 두 가지 분명한 이유가 있었다.

13. 첫번째는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이유가 있었으며, 그 오신 이유에 합당한 일들을 바삐하셔야 했기 때문이다.

14. "거기서 전도하리니 내가 이를 위하여 왔노라"(38절)

15. 예수님은 복음을 위해 오셨다. 복된 소식을 선포하기 위해 오셨다. 복음을 전하기 위해 오셨다. 이 일을 위해서 기도하셔야 했고, 깨어 있어야 하셨다.

16. 그렇기에 찾아온 이들을 만나 줄 수 없었다. 그들과 이야기하며 대답할 시간이 없었다. 그 만큼 긴박하고 시간이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17. 그렇지만 여기서 하나 생각해 볼 필요가 있었다.

18. 왜 찾아온 이들에게는 전도하지 않으셨을까? 복음을 전하지 않으셨을까? 그들에게 복된 소식을 전하지 않으셨을까?

19. 여기서 우리는 앞서 찾아 온 이들을 만나지 않으신 두 번째 이유를 생각해 볼 수 있다.

20. 찾아온 이들의 관심은 무엇이었나? 그들은 예수님을 통해 무엇을 얻고한 것이 있는것 아니었을까? 복음을 그들이 받아들일 수 없는 어떤 마음에 곽찬 욕심이나 생각들이 있었던 것은 아닌가?

21. 찾아온 이들을 향한 이런 저런 생각이 내 머리를 두드린다. 나도 그들중에 있는 것은 아닌가?

22. 찾아온 이들은 항상 많았다(막1장 33절을 보라). 그러나 그들은 고침을 받는 것에만 관심이 있었다. 고침을 받고 난 이후에는 그 어떠한 것도 없었다.

23. 예수님을 그렇게 찾아 온 이들을 떠나셔야 했다. 누가복음 4장 42절에 보니 "무리가 찾다가 만나서 자기들에게 떠나시지 못하게 만류하려 하매"라고 말씀하고 있다.

24. 찾는 이들은 왜 예수님을 붙잡으려 했을까? 동네 이장을 시키려고 했을까? 자기들과 함께 한 평생 살기를 바라고 붙잡지 않았을까?

25. 예수님을 찾아온 이들에게는 가득한 것은 자기 욕심이었다. 예수님의 능력이었다. 그들이 복음만이면 족했다면 예수님을 떠나 보내야 한다.

26. 예수님은 떠나셨어도 복음은 여전히 내 마음에 있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육신과 함께 함에 기쁨이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주신 복음이 함께 함에 기쁨과 평안이 있는 것이다.

27. 이게 바로 예수님이 주신복음이 주는 유익이다.

28. 나는 지금 예수님의 현존만을 붙잡기 원하는가? 예수님은 눈에 보이시지 않지만, 예수님이 주신 복음만으로 만족하고 있는가?

29. 눈으로 보는 예수님만을 원한다면, 우리 또한 지금 예수님을 찾아온 무리들과 다르지 않다.

30. 우리도 자기 자신만을 위해 예수님 계속 붙잡아 두기 원하는 그들과 차이가 없다.

31. 예수님은 이 땅에 영원토록 죽지 않고 우리와 함께 하기 위해서 오신 것이 아니다. 우리에게 복음을 주기 위해 오셨다.

32. 그렇기에 지금도 우리는 복음만이면 족할 줄 알아야 한다. 그리고 때론 예수님께서 다른 마음에 복음을 전하기 위해 가신다면 기꺼이 보내드려야 한다.

33. 왜냐하면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이 일을 위해 보내심을 받았"(눅5:43)기 때문이시다.

34. 예수님이 나만을 위해 머물러 있기를 원하는 마음이 있어서는 안된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복음만을 남겨두시고 떠나셔야만 합니다. 그래야 또 다른 동네에서 하나님 나라의 복음은   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35. 그리고 예수님 떠나셨다고 슬퍼하거나 낙담하지 마십시오. 지금 나에게 예수님께서 자신의 생명을 바꿔 주신 복음이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36. 복음만이면 족하십시니까? 아니면 복음만으로는 부족하여 예수님을 늘  내눈앞에 있기를 원하십니까?

37.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이유를 분명히 기억하기 원합니다.

38. 예수님의 능력만을 원하는 자들을 위해 오신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과 함께 하면 마음에 위로가 되니가 예수님을 절대 다른 사람에게 내어줄 수 없다고 말하는 자들을 위해 오신 것이 아니다.

39. 예수님을 이 땅에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하기 위해 오셨습니다.

40. 이 일을 위해 이른 새벽에 동이 트기도 전에 한 적한 곳에서 가셔서 기도하셔야 하셨고, 우리에게 복음을 전해주시고 다른 동네로 떠나셔야만 하셨습니다.

41. 우리도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이유를 따라 그 길을 믿음으로 걸어가기를 원합니다. 그 길을 걸어가기 위해서 행하셨던 일들을 따라 순종하기 원합니다.

42. 새벽 한 적한 곳에서 기도하신 후 다른 가까운 마을로 예수님이 나에게 주신 복음을 전하러 가는 오늘 한 날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43. 이 일을 위해 우리 또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44. 아멘!

===
35절 "새벽 아직도 밝기 전에"
       "예수께서 일어나 나가"  
       "한적한 곳으로 가사"
       "거기서 기도하시더니"

= => 예수님의 한 날 사역의 시작은 기도이시다. 아직 날이 밝기도 전에, 일어나시고, 한적한 곳으로 가시사, 거기서 하신 것은 기도셨다.
= => 이렇게 하는 것이 기도다. 말씀만 들어도 참으로 기도에 여유가 묻어나 있다. 기도하러 가시는 예수님의 잔잔한 모습이 그려진다.

36-37절 "시몬과 그와 함께 있는 자들이 예수의 뒤를 따라가 만나서 이르되 모든 사람이 주를 찾나이다"

= => 주를 찾아 온 자들에게는 어떤 특징이 있을까? 왜 예수님은 찾아오는 이들에게 가시지 않았을까? 그들을 왜 만나주지 않았을까? 예수님을 찾아온 이들의 관심은 무엇이었을까?

 복음이었을까?
 자기에게 좋은 것들이었을까? 예를 들어보면, 놀라운 기적? 병고침? 자기 배만 채우려는 욕심?

38절 "이르시되 우리가 다른 가까운 마을들로 가자 거기서도 전도하리니 내가 이를 위하여 왔노라 하시고"

= => 왜, 예수님을 찾는 자들에게 가지 않고, 다른 가까운 마을로 가셨을까?

36-38절을 고래해보면,
 예수님은 그 어떠한 것보다 "전도", 즉 복음을 전파하며 진짜 Good News를 전하는 일에 우선이 있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전도하리니 내가 이를 위해 왔노라"고 말씀하셨다.

 예수님은 복음이 되시기 위해 오셨다. 우리가 예수님께 나아오는 이유는 복음을 위해서이다.
 나는 지금 예수님을 왜 찾는가? 무엇이 나를 예수님께서 나아가게 하는가?
 복음인가? 자기 채움인가?

참고) 요한복음 18장 37절
"빌라도가 이르되 그러면 네가 왕이 아니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네 말과 같이 내가 왕이니라 내가 이를 위하여 태어났으며 이를 위하여 세상에 왔나니 곧 진리에 대하여 증언하려 함이로라 무릇 진리에 속한 자는 내 음성을 듣느니라 하신대"

= => 진리에 대하여 증언하려 이 땅에 오시고, 진리에 대하여 증언하는 삶아 사신 예수님. 내가 진리에 속해 있다면, 이 진리의 음성을 들을 수 있을 것이다.

 진리에 대해여 증언하는 음성이 들리는가?

39절 "이에 온 갈릴리에 다니시며 그들의 여러 회당에서 전도하시고 또 귀신들을 내쫓으시더라"


= => 온 갈릴리로 다니시면서 하신 일은 전도하시며 귀신들을 내 쫓는 일이셨다. 왜 찾아오는 이들에게 가서 전도하시고 귀신을 쫓아내시지 않으셨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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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고의 워십 뮤직 호주 힐송 처치의Brian Houston(브라이언 휴스톤)

For This I was Born
“내가 이를 위하여 세상에 왔나니”
“삶, 교회, 목적과 이유, 헌신에 관한브라이언 휴스톤 목사의 탁월한 도전”

- 목 차 -
제 1부 : 내가 이를 위하여 세상에 왔나니
- 1. 그리스도의 이유를 위해서 태어나다
- 2. 그리스도의 이유와 지역교회

제 2부 : 이유와 비전
- 3. 당신의 비전과 그리스도의 이유
- 4. 이유가 중심이 된 연합
- 5. 영원한 비전

제 3부 : 이유와 소명
- 6. 구원과 부르심
- 7. 당신의 손에 있는 것을 사용하라
- 8. 힘든 수고가 주는 축복

제 4부 : 이유와 목적
- 9. 목적이 있는 삶
- 10. 모든 목적이 이룰 때가 있나니
- 11. 번영과 목적

제 5부 : 이유와 대가
- 12. 내려놓는 삶
- 13. 확신안에 거하라
- 14. 헌신된 삶을 살아가기
- 15. 축복의 근원
저자소개
그의 아내 바비(Bobbie)와 함께 호주에서 가장 큰 교회 힐송 처치의 담임목사로 섬기고 있다. 21,000명이 넘는 성도들이 매주 출석하고 있으며 두 곳의 캠퍼스로 나누어 예배를 드린다. 힐송뮤직, 힐송 컨퍼런스, 힐송 인터내셔널 리더십 컬리지와 함께, 글로벌 사역을 펼쳐나가고 있 으며, 힐송 TV는 한국을 포함, 현재 180여 개국에서 방영되고 있다.

휫셔(Fisher)뮤직은 호주 힐송(Hillsong)뮤직의 공식 디스트리뷰터로서 1998년부터 힐송처치의 워십을 10년 넘게 국내에 소개해왔다. 처음 힐송의 음반들을 가져와 알릴 때의 감사와 흥분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그래서 이번 휫셔북스를 통해 힐송 브라이언 휴스톤 목사의 저서 “내가 이를 위하여…”를 소개하는 일이 우리에게는 큰 의미가 아닐 수 없다.
많은 이들이 힐송하면 우선 워십을 떠올리지만 브라이언 목사의 말처럼 오늘날 힐송뮤직이 오랫동안 사랑 받는 그 은혜를 이해할 수 있는 열쇠는 훨씬 더 깊은 곳에 있다. 이 책은 세계 최고의 워십뮤직 이면의 믿음, 말씀과 영성의 깊이를 보여준다. 또 그의 목회 철학, 성장의 힘, 그리스도의 이유와 목적에 사로잡힌 헌신에 도전 받게 될 것이다. 목회자, 음악사역자, 워십리더는 물론 그리스도의 이유를 위해서 사는 이들에게 꼭 필요한 책이다.
- 유지연_ 휫셔뮤직그룹 대표
인생을 값있고 기쁘게 살 수 있는 비결은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에게 ‘Why?’와 ‘For what?’을 질문하고 응답을 받는 것이라 배웠다. 그래서 나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하나님께 이 두 가지 질문을 통하여 그분의 뜻을 발견하라고 훈련 받았다. 성경을 볼 때도 설교를 준비할 때도 나는 끊임 없이 이 두 질문을 한다. 예수님께서도 십자가를 지셔야 할 때 당혹스럽고 괴로우셨기에 겟세마네 동산에서 고민하고 기도하시며 거기서 위의 두가지 질문을 하셨을 것이다. 그리고 아버지의 뜻을 아셨다. 그래서 그 모진 고문과 협박의 불의한 재판가운데서도 “내가 이를 위하여(For this cause) 세상에 왔나니”라고 말씀 하실 수 있었다. 브라이언 휴스톤 목사는 그 이야기를 탁월하게 서술해 놓았다. 이책 과 함께 당신도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 질문하여 예수님처럼 담대하게 “내가 이를 위하여…”라고 고백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 문희곤_ 높은뜻 푸른교회 담임목사
이 혼돈의 세상속에서 진정으로 하나님이 원하시는 참된 번영과 성취가 필요하다면, 브라이언 휴스톤 목사와 함께 그 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 박기범_ 어노인팅 대표
목적이 함께하는 삶은 늘 내 마음에 붙어 다니는 주제다. 브라이언 휴스톤 목사는 이 책에서 그리스도의 이유가 당신의 세계에 스며들 때 삶이 어떻게 변할 수 있는지 자세히,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 조이스 마이어_ 베스트셀러 저자, 성경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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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참고할 것.


[진중권의 미학 에세이]
[진중권의 아이콘] 개시(開示)로서의 진리


아방가르드의 성공 혹은 실패에 대하여

“네 나라 사람과 대제사장들이 너를 내게 넘겼으니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 빌라도가 가로되 “그러면 네가 왕이 아니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네 말과 같이 내가 왕이니라. 내가 이를 위하여 났으며, 이를 위하여 세상에 왔나니, 곧 진리에 대하여 증거하려 함이로다”. (…) 빌라도가 가로되 “진리가 무엇이냐?”(요한복음 18:33-38)


신약성서에서 가장 인상적인 대목은 빌라도가 예수와 대면하는 장면이리라. 심문의 마지막에 빌라도가 던진 질문은 사뭇 냉소적이다. “진리가 무엇이냐?” (Quid est veritas?) 예수는 이 물음에 답하지 않았지만, 어느 호사가가 철자의 순서를 바꾸는 파자(anagram)를 이용해 물음 속에서 답변을 끌어냈다. “앞에 서 있는 바로 그 사람이다.”(Est vir qui adest). 예수, 그 사람이 바로 진리다.


‘진리’에 대한 두 관념의 충돌



예수와 빌라도의 만남에서 헤브라이즘과 헬레니즘의 충돌을 볼 수 있다. 가령 빌라도는 로마법의 절차에 따라 먼저 피고의 혐의를 나열한 뒤 예수의 변론을 기다린다. “빌라도가 이르되, 그들이 너를 쳐서 얼마나 많은 것으로 증언하는지 듣지 못하느냐.” 예수가 로마인이었다면, 그 자리에서 조목조목 따져가며 자신의 무고함을 주장했을 것이다. 하지만 예수는 빌라도의 게임에 들어가지 않는다. “고발을 당하되 아무 대답도 아니 하시는지라.” 예수는 자신을 변호하지 않고, 그 모든 것을 신이 정하신 자신의 운명으로 받아들인다. 이에 “총독이 크게 놀라워하더라”.


“나는 그에게서 아무 죄도 찾지 못하였노라.” 빌라도는 적당히 매질이나 해서 풀어주려 한 모양이다. 예수를 채찍질한 뒤 그를 대중 앞으로 이끌어 매질로 만신창이가 된 그의 몸을 보여주며 외친다. “보라, 이 사람이로다.”(Ecce homo) 하지만 성난 군중은 매질로 만족할 수 없었다. 예수를 십자가에 매달라고 외치며 심지어 빌라도를 협박하기까지 한다. “이 사람을 놓으면 가이사의 충신이 아니니이다. 무릇 자기를 왕이라 하는 자는 가이사를 반역하는 것이니이다.” 두려움을 느낀 빌라도는 예수의 운명을 대중의 뜻에 맡기며 자신은 대야의 물에 손을 씻는다.


여기에서 보는 것은 ‘진리’에 관한 상이한 두 관념의 충돌이다. 헬레니즘의 진리와 헤브라이즘의 진리. 흔히 ‘진리’라고 하면, 우리는 명제 혹은 진술의 속성이라고 생각한다. 빌라도가 자신의 법정에서 밝히려 했던 것도 그런 종류의 진리였으리라. ‘유대인들이 예수에게 내건 혐의들이 과연 사태에 부합하는가?’ 하지만 예수 앞에서 빌라도가 구하는 진리는 사소한 것이었다. 예수의 진리는 오늘날 전세계에 퍼져 있는 기독교회의 존재를 통해서 입증된다. 수천년이 지난 오늘날까지도 전해 내려오는 새로운 삶의 원리. 그것이 빌라도의 것을 압도한 예수의 진리다.


하이데거에 따르면 진리는 ‘명제진리’와 ‘사태진리’로 구별된다. ‘명제진리’는 이미 우리에게 익숙한 인식론적 진리, 즉 참인 명제가 갖는 속성으로서 진리다. ‘사태진리’는 그와는 차원이 달라서 가령 예수의 진리처럼 논증이나 증명 없이 선포된다. 선포(kerigma)로서 진리는 존재론적 진리다. 근원적인 것은 이 사태진리이고, 명제진리는 거기에서 파생된 것에 불과하다. 수학을 예로 들어보자. 어떤 수학적 명제의 올바름은 정리를 이용해 증명된다. 정리의 올바름은 공리를 이용해 증명된다. 그렇다면 공리의 올바름은 어떤가? 그것은 증명없이 옳은 것으로 선포되지 않는가.


사태로서 진리가 일어나는 데에는 세 가지 방식이 있다. 예술, 사유, 그리고 국가다. 하이데거에 따르면, 이 세 가지가 과학에서 말하는 진리보다 근원적인 것이다. 시인과 철학자가 세계를 열어서 보여주면, 과학자들은 그렇게 열린 세계 속으로 들어와 개념적 정리를 할 뿐이라는 것이다. 여기서 흥미로운 것은 국가를 세우는 것이 곧 진리라는 생각이다. 하이데거가 강의실에서 이런 얘기를 하던 30년대 초반, 강의실 밖에서는 나치운동이 일어나고 있었다. 하이데거는 한때 나치운동이 바로 그런 진리를, 새로운 민족적 삶의 세계를 세우는 일이라 믿었다.


급진주의자라면 국가 대신에 혁명을 들 것이다. 조례의 올바름은 법률로 판단하고, 법률의 올바름은 헌법으로 판단한다. 그럼 헌법의 올바름은 무엇으로 판단하는가? 기존 헌법의 올바름을 판단하는 것은 법률적 과제가 아니다. 그것을 판단하는 것은 ‘혁명’이다. 혁명으로 새 세상이 열리면, 사후에 법률가들이 들어와 새 헌법의 정신에 맞추어 법률과 조례를 만들 것이다. 진리론의 좌익적 버전에서는 혁명의 전위(‘당’)가 곧 진리가 된다. ‘당의 무오류’라는 스탈린주의 원칙은 어떤 면에서는 필연적인 것이다. 공리를 향해서 자신의 올바름을 증명하라고 요구할 수는 없잖은가.


견자(見者)의 편지



사건으로서 진리는 ‘종교’나 ‘정치’만이 아니라 예술에도 존재한다. 랭보는 견자(‘voyant’)에 관해 이야기한다. “내가 말하노니, (…) 시인은 모든 감각의 기나긴 거대한 이성적 일탈을 통해 자신을 견자(見者)로 만들어야 한다. 모든 형태의 사랑, 고통, 광기. 그는 자신을 탐색한다. 그는 자기 안의 모든 독약을 소진하여 그 속에서 오직 핵심만을 건져낸다. 모든 신념과 모든 초인적 힘을 요하는 말할 수 없는 고문. 그것을 통해 그는 인간들 중에 인내심이 있는 자, 위대한 범죄자, 저주받은 자-그리고 위대한 학자가 된다. 그는 미지의 세계에 도달하기 때문이다.”


랭보의 ‘견자’는 유대인들이 ‘선지자’라 부른 것의 예술적 버전이라 할 수 있다. 견자, 즉 보는 자는 아무도 보지 못하는 미래를 보며, 나아가 아직 존재하지 않는 그 미래를 비로소 존재하게 만든다. 시인은 “진보의 배가자”로서, 알 수 없는 미래를 향해 용감하게 몸을 던진다. 당연히 거기에는 커다란 위험이 따른다. “그가 방황하다가 결국 제 비전의 지성을 잃고 말지라도, 그는 이미 그 비전들을 보았다. 그로 하여금 들어보지도 이름할 수도 없는 것들 속으로 뛰어들다가 죽게 놔두라. 다른 무서운 일꾼들이 나타나, 다른 이가 쓰러진 그 지평에서 다시 시작할 것이다.”


랭보의 ‘견자의 편지’(1871)는 훗날 ‘아방가르드’라 불릴 운동의 전주곡이 된다. “새로운 세대는 제 조상을 저주할 자유가 있다.” 여기에서 숨막힐 듯이 답답한 낡은 질서를 무너뜨리며 강림할 새로운 예술, 새로운 사회에 대한 기대를 읽을 수 있다. “시는 더이상 행동에 리듬을 맞추지 않을 것이다. 시는 앞서 나갈 것이다.” 이 말은 시야말로 그 어떤 행동에도 앞서 세계를 열어주는 진리라는 시인의 자의식을 보여준다. 20세기의 아방가르드 예술을 추동한 것은 바로 이 자의식이었다. 그것은 죽어가는 사회 속에 새로운 진리를 일으키려는 운동이었다.


아방가르드는 제 비전을 실현하기 위해 정치와 손을 잡았으나, 결과는 치명적이었다. 진리의 원천이 둘일 수는 없지 않은가. 결국 아방가르드 운동은 앞서 나가지 못하고, (나치당이나 전위당의) 행동에 리듬을 맞춰주는 신세로 전락한다. 역사적 아방가르드는 정치적으로 실패했다. 하지만 미학적으로는 성공했는지도 모른다. 20세기 초에 그들이 가졌던 예술적 비전은 오늘날 생활세계의 일부가 되었기 때문이다. 보지 못한 것을 보게 해주고, 없었던 것을 있게 해주는 개시(開示)로서의 진리는 여전히 필요하다. ‘견자의 편지’는 아직도 수신자를 찾는다.


Monday, December 10, 2012

하나님의 가르침에 대해 이야기하라 - 목적이 이끄는 삶을 위한 매일의 묵상

하나님의 가르침에 대해 이야기하라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연구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것이니라” (요 5:39)
다음 두 가지를 해야 우리는 진짜로 성경을 연구한다고 할 수 있다. 첫째, 배운 것을 글로 적고, 둘째, 그것에 대해 사람들에게 이야기하는 것이다. 이 두 가지를 할 때, 하나님은 우리 삶을 변화시키실 것이다.
성경으로부터 배운 것을 글로 적으면 그것을 기억하게 된다. 자리를 잡고 하나님 말씀을 읽을 때마다 종이와 연필을(또는 성향에 따라 컴퓨터를) 옆에 두라. 그저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하신 말씀을 듣고 적으라. 계속 기록해 가라. 몇 년 후 그 동안 하나님께서 가르쳐주신 것을 다시 들여다볼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리고 나서 하나님 말씀 안에서 배운 것에 대해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라. 바로 이 때문에 우리 모두는 어떤 종류든 소그룹 사역에 참여해야 한다. 그곳에서 우리는 하나님 말씀을 공부하고 그것에 대해 다른 사람들과 나눌 수 있다. 이는 굉장히 중요한 영적 훈련이다.
우리는 성경에서 이렇게 했던 한 소그룹을 찾을 수 있다. 사도행전 17:11은 이렇게 말한다. “베뢰아에 있는 사람들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사람들보다 더 너그러워서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므로”
베뢰아의 신자들은 성경을 상고(연구)했다. 그들은 소그룹으로 토론을 벌였다. 당신도 그렇게 하고 있는가? 소그룹에 참여하고 있는가? 만약 그렇지 않다면, 소그룹 참여를 미루는 이유는 무엇인가?

다음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보자.
  • 학생이었을 때, 당신은 배운 것을 기억하기 위해 어떠한 전략을 사용했는가?
  • 때때로 가장 힘든 부분은 어디서부터 시작할지를 아는 것이다. 소그룹에 참여하기 위한 첫 발을 내딛기 위해 당신은 오늘 무엇을 하겠는가?

Friday, November 30, 2012

추천도서 -" 거침없이, 주를 향해" 팀 티보, 시공사



전 세계를 열광시킨 ‘티보잉Tebowing’의 주인공 팀 티보
그의 거침없는 믿음과 살아 있는 신앙의 증거들 

당신은 삶에서 살아계신 하나님을 경험하는가? 여기, 자신의 온 생애 가운데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고 증명해내는 한 청년이 있다. 그의 이름은 팀 티보Tim Tebow. 미국 프로풋볼리그NFL 최고의 스타플레이어인 그는 프로 풋볼선수로서, 또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거침없이 복음을 전파하는 설교자로서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져 있다.

전 세계적으로 미국 풋볼선수 팀 티보가 알려진 것은 아마 그의 독특한 기도 세리모니 때문일 것이다. 한쪽 무릎을 꿇은 채 주먹을 쥔 한쪽 손을 이마에 갖다 대고 기도하는 자세, 즉 ‘티보잉Tebowing’ 말이다. 티보잉은 오직 하나님께만 영광 돌리는 것이 삶의 우선순위임을 온몸으로 보여준 팀 티보의 기도를 칭하는 단어다. 열기와 환호성이 가득한 경기장에서 무릎을 꿇고 맨 먼저 하나님께 모든 영광을 돌렸던 그의 기도는 이제 전 세계 사람들이 즐겁게 따라하는 최고의 세리모니가 되었다. SNS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며 사전에까지 등재된 ‘티보잉’이라는 단어에는 이런 뜻이 있다. 

‘주변에 다른 사람이 있어도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자세’
이는 삶에서 모진 풍파가 다가올 때나 행복과 즐거움만 가득할 때나 상관없이 하나님께 초점을 맞추고 무릎을 꿇는 행위를 뜻한다. 이 책 《거침없이, 주를 향해》(원제 : Through my eyes)는 기쁨이나 슬픔이나, 성공이나 좌절이나 언제나 한결같은 마음으로 하나님을 향해 감사의 세리모니(티보잉)를 올려드렸던 열정 넘치는 한 청년의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책을 통해 우리는 주를 향해 거침없이 달려 나가는 청년 팀 티보의 인생 이야기와 그의 열정을 외면치 않으시고 우리의 생각을 뛰어넘는 증거들로 나타나신 예수 그리스도의 크나큰 사랑에 관한 이야기를 만나게 될 것이다.

요한복음 3장 16절의 기적,
전 세계 그리스도인의 심장을 다시 뛰게 하다


2012년 1월, 미국 전역이 들썩였다. 미국 프로풋볼리그의 덴버 브롱코스Denver Broncos와 피츠버그 스틸러스Pittsburgh Steelers의 경기 때문이었다. 경기는 종료 직전 팀 티보의 기적적인 터치다운 패스로 덴버 브롱코스의 승리로 돌아갔다. 극적인 승리였지만 사실 그것만으로 미국 전역을 뒤흔들 수는 없었을 것이다. 전미가 들썩였던 이유는 바로, 경기장 안팎에서 일어난 요한복음 3장 16절(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의 기적 때문이었다.

경기 중 총 패스의 거리 316야드
각 패스의 거리 31.6야드
결승 터치다운 패스 중 순간시청률 31.6퍼센트


팀 티보가 경기 중 던졌던 10번의 패스가 각각 31.6야드, 총 316야드를 기록했고, 승부를 결정지은 마지막 터치다운 패스 당시 순간시청률이 31.6퍼센트가 나왔다. 뿐만 아니라 구글Google에서 요한복음 3장 16절을 검색한 수가 1억 2,000이 넘고, 트위터Twitter에서 관련 트윗이 1초에 9,420개가 전송되는 등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이와 같은 ‘기적’은 경기 다음 날 ABC 뉴스에서 비중 있게 다뤄지면서 전미를 강타한 신기하고도 놀라운 소식이 되었고 곧이어 전 세계의 수많은 사람들이 요한복음 3장 16절을 검색하는 진기한 일로 이어졌다. 

요한복음 3장 16절의 기적은 시간을 좀 더 거슬러 올라간다. 팀 티보는 대학 리그에서 뛰던 시절 처음으로 성경구절을 적어넣은 검정색 아이패치를 눈 밑에 붙였다. 그는 이를 통해 사람들에게 풋볼 경기보다 더 중요한 것들을 이야기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길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의 예상대로 아이패치 속 성경구절은 사람들의 호기심과 관심을 불러 모아 많은 사람들에게 성경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주었다. 아이패치에 써넣은 여러 성경구절 중 티보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구절이 바로 요한복음 3장 16절 말씀이다. 이것은 복음의 핵심을 가장 잘 담고 있는 구절로, 경기장 안에서나 밖에서나 더 많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파하길 원했던 팀 티보의 열정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구절이기도 하다. 

요한복음 3장 16절의 기적은 하나님을 향한 열정이 아름답고 풍성하게 열매 맺었음을 잘 드러내준다. 그리고 이는 전 세계 그리스도인들의 심장을 다시 뛰게 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이 책은 자신의 모든 삶에서 하나님을 노래하는 한 기독 청년이 미지근한 믿음으로 주저앉은 신앙인에게 전하는 뜨거운 간증문이다.

하나님을 자랑하는 사람,
기적을 뛰어넘는 복된 삶으로의 초대


팀 티보는 세상의 설교자로서 부르심을 받은 사람이다. 선교사였던 그의 아버지는 귀한 생명을 자신에게 맡겨주신다면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하는 설교자로 그를 키우겠다고 서원했다. 그러한 기도로 잉태된 팀 티보는 뱃속 태아일 당시 ‘종양’이라는 진단을 받기도 했다. 의사로부터 임신 중절 수술을 권유받았지만 그의 부모님은 강력한 믿음과 하나님이 주신 평안으로 난관을 극복했고, 팀 티보는 결국 건강한 아이로 성장하게 된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홈스쿨링으로 교육을 받은 팀 티보는 약점은 보완하고 강점은 극대화하는 교육 방식을 통해 높은 학업 성과와 올바른 인성, 그리고 굳건한 신앙을 얻게 되었다. 그는 풋볼선수로 성장하면서 운동선수 특유의 집념과 투지를 지니게 됐고, 운동에서뿐만 아니라 신앙에서도 그 집념과 투지를 그대로 적용했다. 믿음의 본질을 정확하게 꿰뚫고 이 땅에서 감당해야 할 사명을 기꺼이 받아든 그는 오늘도 하나님을 위해 달리고, 하나님을 위해 훈련하고, 하나님을 위해 말한다. 사람들은 그가 그라운드 위에서 이루어낸 기적에 주목하지만 그가 더욱 칭찬받고 격려받아야 할 것은 바로 자신의 온 삶을 하나님께 드렸다는 점이다. 우리는 그러한 삶의 자세를 배움으로써 기적을 뛰어넘는 복된 삶을 향해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게 될 것이다.

<타임Time>지 선정 ‘2012년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에 뽑힌 팀 티보는 오늘도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통해 복음을 전파하는 일에 힘쓰고 있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가슴속 뜨거운 사랑이 있다면, 멈추지 마십시오. 계속해서 그 사랑을 말하고 전하십시오.”
팀 티보는 이 책을 통해 우리에게 믿음의 도전을 제시한다. 복음을 위한 도전에 불가능은 없다고 말하는 그의 열정적인 인생 스토리가 오늘 우리의 마음을 다시 한 번 불타오르게 만들 것이다.

어릴 때부터 부모님은 내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사람은 누구나 말이나 행동을 통해 다른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다고. 그리고 그 능력을 다른 사람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는 방향으로 사용할 책임이 있다고 말이다. (…) 나는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큰 그림 아래, 다른 사람들에게 선한 영향을 끼치는 일은 온전히 나의 소관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내가 몇 살이든, 어디에 있든, 삶에 어떤 일이 닥치든 상관없이 말이다. 우리의 삶이 어떠한 조건 위에 펼쳐졌는가 하는 문제보다 하나님께서 자기의 선한 목적을 위해 사용하실 수 있는 능력이 나 자신에게 주어졌다는 사실이 더욱 중요하고 신경 써야 할 일일 것이다.
- 글을 시작하며 p.11

“당신이 살려면 아이를 포기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의사의 말에 따르면 나는 ‘태아 조직의 덩어리’ 또는 ‘종양’에 불과했다. (…) 부모님은 심한 충격을 받은 채 진료실을 나섰다. 하지만 어떤 길을 택할지는 이미 결심한 상태였다. 어머니는 그 순간 마음속에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말할 수 없는 평안이 찾아왔다고 고백하셨다. 그리고 지금도 그 순간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계신다. 훗날 내게 말씀하시기를, 하나님께서 그러한 평안을 주셨기에 계속되는 고통과 출혈, 그리고 아이의 건강을 확신할 수 없는 상태를 견딜 수 있었다고 한다.
- 01 또 한 명의 설교자를 보내소서 pp.21~22

하나님은 당신과 나를 평범함을 뛰어넘는 비범한 사람으로 창조하셨다. 그는 우리 각 사람을 특별하게, 이 세상 누구와도 다른 은사와 능력을 지닌 자로 만드셨다. 또한 우리를 창조하신 바로 그 목적대로 우리의 독특한 은사와 능력을 발휘하기를 원하신다. 다른 사람과 같아지려 한다면 하나님이 창조하신 우리의 모습을 찾을 수 없게 된다. (…)
나는 하나님께서 나의 타고난 승부욕을 둥글게 다듬어주셨다고 믿는다. 단순히 남을 이겨서 그 위에 군림하려는 세상의 이기적인 모습이 아니라, 하나님의 방식으로 승리하는 방법을 터득하게 하신 것이다. 겸손한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보내신 뜻을 되새기며 살아가게 하심에 언제나 커다란 감사를 드린다.
- 03 거친 승부욕의 부드러운 쓰임새 p.39

나는 그에 부응하는 삶을 살기 위해 모든 방면에서 최선을 다했다. 어머니가 항상 들려주셨던 이사야서 말씀처럼, 하나님을 앙망하는 것은 현실에 안주한다는 뜻이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때와 계획이 있다는 것, 우리가 주관자가 아니라는 것을 이해한다는 뜻이다. 하지만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무엇을 예비하고 계시든지, 그때가 언제 오든지 간에 우리는 우리의 은사와 능력을 더욱 발전시켜야 하고 최선을 다해야 한다. 나는 하나님이 항상 우리를 보살피고 계시며 그의 목적을 위해 우리를 준비시키고 계신다는 것을 더욱 분명히 깨닫기 시작했다. 그리고 큰 축복과 약속뿐만 아니라 큰 책임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 06 준비시키시는 하나님 p.62

누가복음 12장 48절에는, 많이 받은 자에게 많이 요구할 거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그리고 마태복음 25장 14~30절의 달란트 이야기에는 영적인 면이 담겨 있다. 내가 볼 때 이들 이야기에 담긴 기본 교훈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특별한 재능(능력)들을 주셨다면 우리가 그 재능을 땅에 묻어두거나 헛되이 쓰지 않고 극대화하기를 원하신다는 것이다. 그는 우리가 나가서 달란트를 두 배로 불리기를 원하신다. 누가 보고 있든 말든 열심히 일하는 것도 그에 해당한다고 생각한다. 카메라에 우리 얼굴이 찍힐 때만 일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나는 나의 주님이며 구세주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경기를 뛴다고 말할 수 있다. 사실이다. 하지만 그게 다가 아니다. 매일매일, 모든 환경에서, 열심히 일해야 한다. 하나님은 당신께서 내게 주신 기술들을 가지고 일하는 것을 보실 때 기뻐하신다. 나는 그것을 진심으로 믿기 때문에 헌신적으로 경기에 임하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삶을 열심히 살아야 하고 또 받은 능력을 향상시키기 위해 열심히 노력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그 능력들을 사랑하고 존중하는지 지켜보고 계신다.
- 18 부족함을 깨닫고 순종하는 사람 pp.170~171

나는 검정색 패치 위에 글을 쓰고 그것을 눈 밑에 붙인 채 경기장에 나갔다. 그것이 처음부터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던 것은 아니지만 나는 다음 경기에 또 붙이고 나갈지 말지 전혀 고민하지 않았다. 몇몇 기자들이 경기 후에 패치에 대해 질문을 하긴 했다. 나는 남은 시즌 동안 계속 눈 밑에 빌립보서 4장 13절을 붙였다. 오른쪽 눈 밑에는 ‘빌PHIL’이라고 썼고 왼쪽 눈 밑에는 ‘4:13’이라고 썼다. 가끔씩 빌이 누구이며, 그 숫자가 그와 무슨 관련이 있냐고 묻는 사람들이 있었다. 누군가 그런 질문을 했다는 것은 내게 영원한 의미가 있는 것들에 대해 이야기할 기회가 생겼다는 뜻이었다.
- 19 나를 붙드시는 하나님 p.177

우리가 하늘나라에 갔을 때 예수님이 헤드폰을 벗으며 두 팔 벌려 우리를 힘껏 안아주시면서 “장하다. 잘했어. 이제 끝났어. 사랑한다”라고 말씀해주시면 얼마나 더 기쁘겠는가. 나는 항상 어린아이들에게 그 얘기를 해준다. 마무리를 멋지게 하라고 말이다. 그것은 풋볼 경기에 잘 적용된다. 풋볼 경기는 마지막까지 승부를 알 수가 없다. 모든 것이 점점 더 힘들어진다. 하지만 끝까지 가라. 결국 어떤 사람들은 도중에 멈추고, 어떤 사람들은 그만두며, 어떤 사람들은 더 천천히 가기 시작할 것이다.
그러나 계속해서 전진하면 처음보다 더 강해질 것이며 마침내 성공을 거머쥐게 될 것이다. 결국엔 그런 사람들이 위대한 사람이 될 것이다. 그들은 이 세상에서 영향력을 가지며 주변 사람들의 삶에 큰 영향을 끼칠 것이다. 인생에서 마무리를 멋지게 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 당신 자신을 위해, 세상을 위해, 다른 사람들을 위해, 당신을 창조하신 하나님을 위해.
- 22 주의 안전한 날개 아래서 pp.213~215

티보는 이제 아이패치를 붙이는 대신 운동장에서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 감사 기도를 올렸다. 그가 하는 특유의 기도 세리모니는 순식간에 전국적인 화제를 불러 모았고 그 세리모니를 지칭하는 ‘티보잉’이라는 신조어가 만들어졌다. (…) 뿐만 아니라 이 경기에서는 또 하나의 믿을 수 없는 사건이 벌어졌다.

경기 중 총 패스의 거리 316야드
각 패스의 거리 31.6야드
결승 터치다운 패스 중 순간시청률 31.6퍼센트

경기장 안에서 요한복음 3장 16절의 기적이 일어난 것이다. 그날 구글에서 요한복음 3장 16절의 검색 수는 무려 1억 2,000번이 넘었다. 트위터Twitter 또한 그와 관련한 트윗이 1초에 무려 9,420개나 전송됐다고 한다.
-계속되는 이야기 p.257

추천의 글
글을 시작하며

PART 1 | 포기보다 내려놓음
01 또 한 명의 설교자를 보내소서
02 딕 삼촌의 위대한 영향력
03 거친 승부욕의 부드러운 쓰임새
04 인생의 방향을 정하다
05 다른 것이 틀린 것은 아니다

PART 2 | 의심보다 전적인 신뢰
06 준비시키시는 하나님
07 꿈을 향한 지독한 집념
08 하나님을 신뢰하며 따라가라
09 운명 같은 필리핀 선교 여행
10 내일을 향해 뛰어라
11 멋진 미래를 위한 중대한 결정

PART 3 | 침묵보다 자랑과 외침12 새롭게 솟아오른 도전과 열정
13 삶에서 아름답게 꽃피워라
14 이기든 지든 주님께 영광을
15 고난이 축복이 될 때
16 주님을 자랑하는 사람
17 그 사랑을 온 천하에 드러내라
18 부족함을 깨닫고 순종하는 삶
19 나를 붙드시는 하나님

PART 4 | 미지근함보다 뜨거운 열정
20 좌절하기엔 주어진 시간이 짧다
21 끝까지 달려가리라
22 주의 안전한 날개 아래서
23 최고의 마무리를 위하여
24 영원한 생명의 길

글을 마치며
감사의 글
계속되는 이야기

‘티보잉’이란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의 우선순위를 온몸으로 보여준 팀 티보의 기도를 가리킵니다. 그리고 이 새로운 단어는 이제 그리스도인이라면 언제 어디서든 삶으로 드러내야 할 예배의 모습을 지칭하는 말이 되었습니다. 담대하게 주를 자랑하는 청년 팀 티보의 이야기가 오늘 우리의 마음을 거침없이 뒤흔들어줄 것입니다.
- 오정현(사랑의교회 담임목사)

팀 티보는 자신의 삶을 통해 그리스도의 마음을 온전히 증명하는 사람입니다. 그가 그라운드 위에서 이루어낸 ‘기적’보다 더욱 칭찬받고 격려받아야 할 것은 삶의 모든 부분을 주님께 드렸다는 것과 주신 은혜에 감사하여 언제나 거침없이 주님께 달려 나간다는 점일 것입니다.
- 이찬수(분당우리교회 담임목사)

팀 티보는 믿음의 본질을 정확하게 꿰뚫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맡겨진 사명을 냉철하게 바라보고 그 사명을 따라 거침없는 열정을 발산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자기를 위한 열정을 찾고 계십니다. 팀 티보의 이야기를 통해 주를 향해 거침없이 달려 나가는 주인공이 되길 바랍니다.
- 장경동(대전중문교회 담임목사)

티보는 주변 사람들이 스스로 더 좋은 사람이 되도록 항상 격려해주고 도와주는 사람입니다. 이 책은 그의 리더십과 마음과 인격의 성장을 여과 없이 이야기해줍니다.
- 토니 던지Tony Dungy(전 NFL 코치, 베스트셀러 저자, TV 애널리스트)

티보의 이야기는 굳은 결심으로 열심히 노력하면 불가능한 일이 없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 척 노리스Chuck Norris(영화배우, 베스트셀러 작가, kickstartkids.org 설립자)

팀 티보의 이야기는 우리로 하여금 주님을 신뢰하고, 우리의 삶을 맡기고, 주님의 전능하고 완벽한 때에 그가 모든 것을 행하시도록 전적으로 의존하는 삶으로 인도합니다.
- 독서커뮤니티 ‘굿리즈goodreads’ 독자 서평

이제껏 읽은 책 중 단연 최고의 책입니다. 당신은 팀 티보의 열심 어린 삶의 여정과 하나님에 대한 강력한 헌신에 경의를 표해야 할 것입니다. 이 세상에 그와 같은 젊은 청년들이 더 많이 나오기를 바랍니다.
- ‘아마존Amazon’ 독자 서평

팀 티보
Tim Tebow
<타임Time>지 선정 ‘2012년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
거침없는 믿음으로 전 세계를 놀라게 한 미국 프로풋볼리그NFL 선수. 대학풋볼리그 역사상 최고의 쿼터백이자 명실 공히 프로 리그 최고의 스타플레이어다. 플로리다대학교의 풋볼선수로 활동할 당시 BCS 내셔널 챔피언십의 트로피를 두 번이나 들어 올렸으며 2학년 학생으로는 사상 처음으로 하이즈먼 트로피를 수상했다. 프로 리그 신인선발에서 첫 라운드에 덴버 브롱코스Denver Broncos의 선수로 선발된 이후에는 ‘티보잉Tebowing’ 열풍과 요한복음 3장 16절의 기적을 일궈내며 선풍적인 인기와 영향력을 지속적으로 이끌어오고 있다. 2012년 현재 덴버 브롱코스를 떠나 뉴욕 제츠New York Jets의 선수로 활약하고 있으며, 오늘도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일에 힘쓰고 있다.

이 책에서 그는 어머니 뱃속의 종양이라 진단받아 세상의 빛을 보지 못할 뻔했던 이야기부터 선교사였던 부모님의 가르침으로 바른 인성과 신앙을 가진 아이로 성장한 이야기, 고등학교를 거쳐 대학에서도 풋볼선수로 활동하면서 오직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것을 우선순위로 두고 모든 일에 열심과 성실로 임했던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그리고 그러한 열정을 외면치 않으시고 우리의 생각을 뛰어넘는 증거들로 나타나신 예수 그리스도의 크나큰 사랑에 관한 이야기를 전한다.

나단 휘태커
Nathan Whitacker
토니 던지Tony Dungy의 《조용한 믿음의 힘Quiet Strength》을 비롯한 6권의 책을 공저했다. 현재 집필 활동과 더불어 대학교, 교회, 시민단체 등을 대상으로 다양한 강연활동을 펼치고 있다.

Saturday, April 7, 2012

[고난 주간 특새] 요 19:16-18 - 자기의 십자가를 지시고


고난주간 특별새벽기도회 다섯 째날 "자기의 십자가를 지시고" 요19:16-18

십자가는 은총의 선물이다.
십자가를 바로 볼 때, 자기 십자가를 질 때에...
우리 인생의 방향을 잃지 않을 수 있다.
따라서 십자가는 우리 삶의 이정표이다.

십자가를 계산하고 마음에 넣을 때 우리 마음이 자유로워진다.
이 때 용서가 커지게 된다.
그리고, 기쁨을 주게된다.
나아가 무한한 것들이 그곳으로부터 터져 나오게 된다.

Friday, November 25, 2011

청.매.묵 -에스겔 15:1-8 <열매를 맺지 못하면?>

청.매.묵 -에스겔 15:1-8 <열매를 맺지 못하면?>

앙상한 가지 - 정훈

오늘
마지막 남은 나무잎이 떨어졌습니다
이제 앙상한 가지만
남아 있습니다.

오늘
앙상한 가지를 보니
더 이상
이 나무에게서
소망을 발견할 수 없어 보입니다.

오늘
소망을 발견할 수 없는
앙상한 가지에서
한 걸음 물러나
나무를 보았습니다.

오늘
나무를 보니
희망을 보았습니다.
나무에 붙은 가지이기에
이게 끝이 아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내일
앙상한 가지에서
다시금 화려한 옷들이
피어 오를 것입니다.

가지는 나무에 붙어 있어야 합니다.
가지는 도구일 뿐입니다.
앙상한 가지는
오늘이 아니라 내일을 바라봐야 합니다.



요한복음 15장 6절 "사람이 내안에 거하지 아나하면 가지처럼 밖에 버리워 말라지나니 사람들이 이것을 
  모아다가 불에 던져 사르느니라"


 하나님안에 거하지 아니하는 것은 포도나무가 열매를 맺지 못하는 것과 같습니다. 포도나무가 열매를 맺지 못하면 땔감으로 사용되고 그 땅의 모든 나무는 베어져 땅은 들판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기에 하나님 말씀안에 거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포도나무요, 우리는 가지입니다. 말씀으로 맺어진 하나님과 우리입니다. 

2절 "사람아, 포도나무가 다른 나무보다 더 쓸모가 있느냐?"
3절 "포도나무로 무엇을 만들겠느냐?"

4절 "포도나무는 땔감밖에 달리 사용할 곳이 없다"

5절 "곧게 자란 포도나무로도 만들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는데 하물며 불에 타 버린 포도나뭇가지로 무엇을 할 수 있겠느냐?"

6절 "내가 수풀 가운데서 포도나무를 베어 땔감으로 불어 던져 넣었듯이 예루살렘에 사는 백성들도 그렇게 만들 것이다"

7절 "내가 그들을 여지없이 치겠다"
  8절 "내가 그 땅을 거친 들판으로 만들 것이니 이는 그 백성이 내게 신실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요한복음 15장 1-17절
1,내가 참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그 농부라
2,무릇 내게 있어 과실을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이를 제해 버리시고 무릇 과실을
  맺는 가지는 더 과실을 맺게 하려 하여 이를 깨끗케 하시느니라
3,너희는 내가 일러준 말로 이미 깨끗하였으니
4,내 안에 가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절로
  과실을 맺을 수 없음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

 겨울입니다. 아직 떨어지지 않는 낙엽도 있고, 다 떨어져 버려 앙상한 가지만 남아있는 나무도 있습니다. 이 겨울이 지나면 또 봄이 오고 나무에서 잎이 나오고 꽆이 피겠지요.
 이러한 아름다음을 준비하기 위해서는 이 겨울 나무에 가지가 잘 어 있어야 합니다. 앙상한 가지일지라도 붙어야 있어야 내년 봄을 기대할 수 있습니다.

 내가 지금 앙상항 가지일지라도 좋습니다. 포도나무 되신 예수님께 붙어있으면 겨울이 지나가면 아름다운 낙엽과 열매와 꽃을 피게 되어 있습니다.
 봄이 오면 잎이 나오고 꽃이 피고 열매를 맺는 것이 하나님의 창조하신 피조물의 질서라면, 사람이 포도나무된 예수님께 붙어 있으면 열매를 맺는 것, 역시 창조의 질서입니다.

 열매를 맺지 못하면 땔감으로 사용되고, 그 땅은 들판이 된다고 에스겔은 경고하고 있습니다. 말씀만이, 하나님 안에 거하는 것만이 포도나무에서 가지로 공급되는 수액입니다.

 오늘 한 날도 아름다움 기다리며 나무에 말씀의 수액을 공급받아 앙상할지라도  나무에 붙어 있는 가지가 되어 살아가는 한 날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Monday, July 11, 2011

한 날 묵상 - 요 13장 3-5절 "빛으로 오신 예수님, 섬김의 삶을 살다"

요한복음 133-5
저녁 먹는 중 예수는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자기 손에 맡기신 것과 또 자기가 하나님께로부터 오셨다가 하나님께로 돌아가실 것을 아시고 저녁 잡수시던 자리에서 일어나 겉옷을 벗고 수건을 가져다가 허리에 두르시고 이에 대야에 물을 떠서 제자들의 발을 씻으시고 그 두르신 수건으로 닦기를 시작하여
 
1. 아시고
예수님의 섬김의 원리는 자기 자신을 분명하게 인식하는 것에 출발하고 있다.
예수님은 아셨다. “자기가 하나님께로부터 오셨다가 하나님께로 돌아가실 것을 아시고
그렇기에 예수님은 자신은 하나님이 원하셨던 삶이 무엇인지를 깨닫고 그 삶을 살기로 결단하였다.
그 결단이 자신에게 어떻게 비춰질까 고민하지 않았다. 아니 전혀 개의치 않으셨다.
아신 그대로 순종하기로 결단하였다. 아시고 결단하는 사이에 어떠한 개입도 원치 않으셨다.
 
예수님의 모습에서 배우길 원한다.
먼저 알아라. 나는 어디에서 왔는지를 알아야 한다. 나는 어디로 갈지를 알아야 한다.
나는 하나님께서부터 왔다. 그리고 하나님께로 다시 돌아갈 것이다.
이미already 하나님께로 와 있는 이 땅에서 삶, 그러나 아직not yet 하나님께로 돌아가지 않는 삶,
나는 오늘 하나님의 이 땅 가운데 허락한 삶의 이유가 무엇인지 반드시 깨닫고 결단해야만 한다.
그리고 그 결단에 어떤 다른 인간적인 개입을 버려야 할 것이다.
 
2. 자리에서 일어나
예수님의 섬김의 원리는 자신을 인식하고 그 인식함을 따라 자리에서 일어나셨다.
그 자리는 선생의 자리였다. 제자들만 있는 자리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그 자리에서 일어나셨다.
아셨기때문이다. 분명한 자기인식을 했기 때문이다.
자리에서 일어나야 한다. 익숙한 자리에서 일어나야 한다.
왜 일어나야 하는가? 부르심이 있는 자리이기 때문이다. 그 자리가 선생의 자리일지라도, 복받는 자리일지라도 일어나야 한다. 부르심이 때문이다.
 
3. 시작하여
예수님은 시작하셨다. 내일 십자가의 죽음의 날을 맞이하지만, 그 전날 밤 새로운 일을 시작하셨다.
그것도 어떤 놀라운 큰 일이 아니었다, 자신이 3년 동안 사랑한 제자들의 발을 씻는 것이었다.
시작하라. 아니, 시작해야만 한다.
큰 것을 위한 시작이 결코 아니다. 극히 작아 보이는 그것이 지금 이 순간에 가장 먼저 해야 할 시작이다.
그건 섬김이다.
무엇보다, 섬길 수 있을 만큼 거리에 있는 사람을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한다.
더욱 좋다면, 상사라면 부하 직원을 섬기라. 부모라면 자녀를 진심으로 진정성을 가지고 예수님의 마음을 섬기라.
이웃 주변, 친구, 원수를 섬기라.
오늘은 그 섬김을 위하도록 주신 한 날이다.
 
빛으로 오신 예수님, 섬김의 삶을 살다.
 

Friday, June 17, 2011

한 날 묵상 - Come and you will see(요한복음 1장 35-51절)

본문은 두 번 "와 보라"는 말씀이 나온다.
첫번째는 예수님께서 요한의 두 제를 향하여 "Come and you will see"고 말씀하신다.
 이 때 두 제자는 예수님과 함께 거하면서 메시아(41절)을 만나게 됩니다.
두번째 "와 보라"는 빌립이 나다니엘에게 말한 내용입니다.
 이 때는 "와 보라"는 빌립이 나다니엘에 예수님을 소개하며 만나보자고 말하는 내용입니다.

 우리는 흔히 "와 보라"는 의미를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예수님을 소개할 때 사용합니다(첫번째 "와 보라")
 그러나 좀 더 관심을 갖기 원하는 의미는 두 번째입니다. 예수님을 만나도록 믿지 않는 사람들의 길잡이가 되는 것입니다.

 오늘의 묵상에면 이런 글이 나옵니다. David Mcasland
"예수님을 증거하는 일은 다른 사람에게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한 번에 끝날 수도 있지만, 도움을 주면서 그 사람이 성숙할 때까지 함께 걸어가는 경우도 있습니다. 우리가 그들의 영적인 행복에 대해 진정한 관심을 가지고 그들을 위해 기도하고, 그리고 그들과 좋은 관계를 가지면 "와 보세요. 함께 걸어요. 내가 주님께 인도해 드릴께요." 라고 소리 없이 말하는 것이 됩니다.

 이 시대에 우리에게 필요한 부분은 한 번의 "와 보라"를 넘어 "동반자"로서 "와 보세요"를 말하면서 함께 걷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오늘 함께 걸어가요? 예수님께로...

Friday, June 10, 2011

한 날 묵상 - 시몬 너는 아느냐?(요 21장 15-17절)

한 날묵상 - 시몬 너는 아느냐?(요 21장 15-17절)

시몬 너는 아느냐?
오늘 너를 통해 하나님의 성육신의 겸손을 베풀어야 할 한 사람을?

시몬 너는 아느냐?
오늘 너를 통해 빛되신 진리의 말씀을 보여줘야 할 한 사람을?

시몬 너는 아느냐?
오늘 너를 통해 하나님의 사랑이 흘러가야 할 한 사람을?

오늘 나는 아는가?
나를 통해 해야만 하는 한 사람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