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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nday, August 5, 2013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들을 사랑하는 법(갈등 해결 방법) - 국제제자훈련원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들을 사랑하는 법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목하라” (롬 12:28)
우리가 그리스도와 동행하면서 계발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기술 중 하나는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들을 사랑하는 것이다.
다음은 예수님께서 어려운 사람들을 만나셨을 때 본을 보이셨던 네 가지 방법들이다.
  • 모든 사람을 만족시킬 수는 없음을 깨달으라. (마 22:18) 그것은 하나님도 하실 수 없는 일이다! 그들에게 좌우되는 것을 거부하라. (마 22:18)
  • 비현실적인 기대에 ‘노’라고 말하는 법을 배우라. (엡 4:15)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말함”으로써 그들을 대하라.
  • ‘절대’ 보복하지 마라. (마 5:38-39) 그렇게 하면 그들의 수준까지 내려갈 뿐이다.
  • 그들을 위해 기도하라. (마 5:44) 그러면 상대방과 나 모두에게 도움이 된다. 하나님께서 직접 말씀하시게 하라.
먼저 행동을 취함으로써 갈등을 해결하라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절제하는 마음이니” (딤후 1:7)
아담과 하와가 범죄하고 하나님께서 아담을 찾으러 오셨을 때 아담은 “내가 …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라고 말했다. (창 3:10) 이러한 두려움은 인류 역사만큼이나 오래된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진짜 자아를 숨긴다. 우리가 진정 어떠한 사람인지 사람들이 모르게 하는 것이다. 왜 그런가? 바로 “내가 어떤 사람인지 얘기했다가 상대가 날 안 좋아하면 어떡하지?”라는 생각 때문이다.
두려움은 관계에 세 가지 악영향을 미친다.
두려움은 우리를 방어적으로 만든다. 두려울 때 우리는 자신을 드러내기를 겁낸다. 사람들이 약점을 지적하면 우리는 그에 보복하고 우리 자신을 방어한다.
두려움은 사람들로부터 거리를 두게 만든다. 두려울 때 우리는 사람들이 가까이 오지 못하게 한다. 뒤로 물러나서 감정을 숨기고 싶어한다. 마음을 열고 정직하게 대하기를 원치 않는다.
두려움은 지나치게 요구하게 만든다. 불안정할수록 우리는 통제하거나 지배하려고 애쓰게 된다. 관계에서도 결정권을 가지려고 든다. 이는 언제나 두려움과 불안정함의 징후이다.
갈등을 해소할 때 먼저 발걸음을 뗄 수 있는 용기는 어디에서 얻을 수 있을까? 이는 삶 속의 하나님의 영으로부터 온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비겁함의 영을 주신 것이 아니라, 능력과 사랑과 절제의 영을 주셨습니다.” (딤후 1:7, 새번역)
누군가와 관계를 재개하는 출발점은 잠시 멈췄다가 이렇게 기도하는 것이다. “하나님, 제가 이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 먼저 발걸음을 뗄 수 있도록 도우소서.”
자신의 부분을 인정함으로써 갈등을 해결하라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 먼저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어라 그 후에야 밝히 보고 형제의 눈 속에서 티를 빼리라” (마 7:3-5)
갈등 상황에 직면했을 때, 비난하거나 공격하거나 다른 사람 탓으로 돌리기 대신, 겸손함으로 시작하라. 이는 갈등의 90퍼센트가 상대방 탓일지라도 마찬가지다.
사람은 누구나 맹점이 있다. 완벽한 사람은 없으며, 사람은 각자 자신이 미처 보지 못하는 것이 있기 때문에 갈등에 기여하는 부분이 생긴다.
그러므로 공격하거나 비난하려고 하기 전에 스스로 솔직하게 평가하고 이렇게 물어야 한다. “이 갈등에서 내 잘못은 얼마나 되는가?” 정직하게 진단하고 내 부분을 인정해야 한다. 잘못한 것이 있으면 인정하라.
그리고 당신이 옳았다면, 그저 입을 다물어라!
자기 자신에게 솔직해라. 예수님은 자신의 눈 속에 있는 것을 먼저 보라고 말씀하신다. 그러면 그 갈등 상황이 명확하게 보일 것이다.
이렇게 자문하라. “내가 비현실적으로 행동하고 있는가? 내가 둔감한가? 내가 너무 민감한가? 내가 지나치게 요구하고 있는가? 내가 감사하지 못하고 있는가?”
목사로서 내 경험에 의하면, 제일 가는 이혼 사유는 “우린 서로 안 맞아요!”이다. 성경은 서로 성장한다면 어떤 두 사람이라도 서로 사랑하는 법을 배울 수 있다고 가르친다.
그러나 우리의 본성은 자기중심적이고 완고하며 변화하려고 하지 않는다! 다른 어떤 것보다 ‘굽히지 않는 태도’ 때문에 관계가 깨진다.
성경은 우리가 겸손함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가르친다. 갈등 상황에서 막힌 곳은 어떻게 뚫을 수 있을까? 이렇게 말하라. “미안해. 내가 내 생각만 했어.”
갈등 해결 방법 - 상대방을 우선으로 생각하라
“각각 자기 일을 돌볼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하게 하라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빌 2:4-5)
갈등은 저절로 해결되지 않는다. 갈등은 의도적으로 다뤄야 한다. 갈등을 내버려두면 상태는 더 나빠진다. 어떤 사람과 관계가 좋지 않거나 문제가 생겼다면, 당신이 먼저 나서서 해결하라.
갈등은 언제 해결해야 하는가? 그 즉시이다. 해결을 미루면 상태는 악화된다. 가능한 한 빨리, 상황이 곪아서 반감으로 변하기 전에 해야 한다. 자신의 관점이나 상황만 봐서는 안 된다. 다른 사람의 관점도 봐야 한다. 이는 본능을 거스르는 것이기 때문에 무척 어렵다. 초점을 자신의 필요를 바라보는 데서 다른 사람의 필요를 바라보는 데로 옮기는, 의도적인 전환이 요구되는 것이다.
여기에는 그렇게 하도록 삶 속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도움도 필요하다.
상대방의 행동에 대한 배경을 이해할 때, 우리는 갈등을 덜 겪게 될 것이다.
다른 사람을 이해하는 법은 어떻게 배우는가? 그들의 말을 들어야 한다. 말하기보다 듣기를 더 많이 해야 한다. 이것이 쉬운 사람 또한 별로 없다. 우리는 자신의 논지를 분명히 하고, 자신의 입장을 말하고, 자신을 변호하는 데 급급한 경우가 많다. 잠시 멈춰 상대방이 하는 이야기가 뭔지 듣거나 그들의 관점에서 생각하려 하지 않는다.
“상대방의 필요는 무엇이며, 내가 그것을 어떻게 채워줄 수 있을까?”라고 물을 때, 우리는 더욱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것이다. 화가 나면 자신에 대한 생각으로 꽉 차게 된다. 그러나 그리스도와 같이 되면 자기만 보는 게 아니라, ‘서로’의 이해를 바라보게 된다.
평화를 가져오는 가장 강력한 말 중 하나는 “미안해. 내가 내 생각만 했어.”라고 말하는 것이다.
다음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보자.
  • 당신에게는 현재 곪도록 내버려두고 있는 갈등이 있는가? 시간을 더 흘려버리지 마라. 오늘 시간을 들여 그것을 해결하라.
  • 당신의 듣기 기술은 몇 점 정도 되겠는가? 잘 듣는 사람이 되는 데 집중하라.
갈등 해결 방법 - 사랑으로 상대방을 마주하라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마귀에게 틈을 주지 말라” (엡 4:26-27)
갈등은 일어나게 마련이다. 그것을 피할 방법은 없다.
갈등이 생겼을 때는 정면으로 대응해야 한다. 그것이 곪아가도록 내버려두지 마라. “그냥 무시해야지. 시간이 가면 없어질 거야.”라고 생각하는 것은 큰 실수이다.
갈등은 무시한다고 없어지지 않는다. 사도 바울은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마귀에게 틈을 주지 말라”라고 말한다. (엡 4:26-27)
이 구절은 죄에 이르는 분노가 있고 죄에 이르지 않는 분노가 있음을 시사한다. 분을 품는 데도 바른 방법과 틀린 방법이 있는 것이다.
그 차이는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잘못된 분노는 빨리 해결하지 않은 분노이다. 제대로 다뤄지지 않은 분노는 원망과 반감으로 변한다. 원망과 반감은 언제나 죄이다. 이러한 감정은 늘 잘못된 것이다.
갈등은 어떻게 해야 빨리 해결할 수 있을까? 그 해결책은 대면하는 것이다. 갈등을 해결하려 한다면, 직접 마주해야 한다.
그러나 분노를 품은 상태에서 대면할 필요는 없다. 사실, 분노한 상태에서 대면해서는 안 된다. 사랑하는 마음으로 상대방에게 가서, 사랑 안에서 진실된 것을 말하고, 즉시 문제를 다뤄야 한다.
성경은 사람을 대면할 때의 세 가지 원칙을 가르쳐준다. 누구나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며, 성내기도 더디 하라”는 것이다. (약 1:19)
첫 두 가지 원칙을 지키면 세 번째는 자동적으로 된다. 듣기를 속히 하고 말하기를 더디 하면, 성내는 것도 더뎌질 것이다.
다음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보자.
  • 누군가를 대면해야 함을 알 때, 당신은 어떤 감정이 생기는가? 왜 그런 감정이 든다고 생각하는가?
  • 두렵거나 위축된다고 느낄 때도, 당신은 하나님께서 당신이 대면하는 순간을 인도하심을 믿는가?
  • 성경은 우리가 사랑으로 마주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것은 어떤 모습이라고 생각하는가?
갈등 해결 방법 - 화해에 초점을 맞추라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마 5:9)
갈등 상황에 놓였을 때, 해답보다는 화해에 집중하라. 이 둘에는 큰 차이가 있다. 화해는 관계의 재건을 뜻하지만, 해답은 모든 것에 동의하게 됨으로써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뜻한다.
이러한 해결은 이뤄질 수 없다. 두 사람이 다 하나님을 사랑하든, 서로를 깊이 사랑하든 상관 없이, 두 사람이 결코 동의하지 못하는 것이 있다. 하나님께서 우리 각 사람을 서로 다르게 지으셨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불쾌해 하지 않고도 동의하지 않을 수 있는데, 이것을 지혜라고 부른다. 야고보서 3장은 “지혜는 평화를 조성하고, 양순하다. 지혜는 토론을 용납하며, 기꺼이 다른 사람에게 양보한다.”고 말한다.
성경은 양보하는 것이 지혜롭다고 말한다. 우리는 일치함 없이도 통일을 이룰 수 있다. 마음이 맞지 않아도 손 잡고 걸을 수 있다. 모든 문제를 해결하지 않아도 화해할 수 있다.
관계에 초점을 맞출 때, 문제는 무의미한 것이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내가 당신에게 던지는 도전은 이것이다. - 갈등, 전쟁, 편견, 폭력, 분열, 깨진 관계로 가득 찬 세상에서, 화해의 행동가가 되는 데 힘쓰라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를 평화의 사람이 되게 하는 목적을 갖고 계신다. 갈등을 해결하는 것은 관계를 끝내는 것보다 훨씬 더 가치가 있다.
다음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보자.
  • 당신은 삶 속의 어떤 관계, 어떤 상황에서 화해의 행동가가 될 수 있는가?
  • 당신은 갈등 상황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할 때, “내가 할 수 있는 건 여기까지야.”라고 생각하곤 했는가? 관계를 화해로 이끌기 위해 당신의 태도는 어떻게 바뀌어야 하겠는가?
언쟁에서 이기려고 애쓰지 마라
“형제들아 내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모두가 같은 말을 하고 너희 가운데 분쟁이 없이 같은 마음과 같은 뜻으로 온전히 합하라” (고전 1:10)
언쟁에서 이기려고 애쓰지 마라.
그 대신, 당신과 생각지 맞지 않는 사람들을 사랑하는 것을 목표로 삼으라. 승리가 아니라 사랑을 추구하라. 예수님은 사랑이 언제나 이긴다고 말씀하신다. 주님은 그것을 무덤에서 나오심으로 보증하셨다.
다른 신자들과 언쟁이 벌어졌다면, 원만한 해결을 위해 다음 성경적 지침을 사용하라.
자비로 반응하라. (잠 3:3-6) 갈등 상황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공정한 것만을 원한다고 말하지만, 하나님의 접근법은 공정함이 아니라, 은혜와 자비에 대한 것이다. (롬 5:8)
진실에 대한 판단은 하나님께 맡기라. (고후 13:8) 진실은 당신의 생각이나 감정으로, 또는 다른 사람들의 의견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요일 4:1) 진실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이 진실이다. 하나님만이 모든 상황을 설명하시는 유일한 권위이시다. (고후 10:5)
성경은 자기 자신의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고 말한다. (잠 3:5) 즉 우리 눈엔 올바르게 보이는 것도 잘못된 것일 수 있다는 것이다. (잠 14:12)
하나님의 임재를 찾으라. (마 28:20) 사탄은 우리가 전쟁터에 혼자 있다고 믿기를 바란다. 어린 양치기 소년 다윗의 예를 본받으라. 그는 하나님께서 싸우고 계시며, 전쟁이 하나님께 속해 있다고 믿었다. (삼상 17:47)
갈등의 진정한 근원을 찾으라. (엡 6:12) 하나님 말씀에 따르면, 실제로 우리는 다른 사람들과 싸우고 있는 게 아니다. 우리의 진짜 적은 사탄이며 그의 “보이지 않는 악한 영의 세력”이다.
인간의 무기를 내려놓으라. (고후 10:4-5)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독립적으로 행동하면서 자기 자신의 필요를 채우려고 애쓸 때, 우리는 사도 바울이 말했던 ‘육신의 무기’를 사용하는 경향이 있다. 여기에는 조작, 험담, 비방, 조롱, 위협, 비난, 잔소리, 속임, 침묵 등이 포함된다. 그러한 것들을 사용할 때 우리는 결국 ‘악에는 악으로’의 상황을 반복하게 되는데, 이는 ‘냄새’를 이용하여 스컹크와 싸우려고 드는 것과 마찬가지다. 모두가 패배자가 되는 것이다!
영적 무기 사용법을 배우라 (고후 10:4) 성경은 기도가 강력한 영적 무기라고 말한다. 하나님의 전신갑주로 무장한 후, 우리는 “모든 기도와 간구를 하되 항상 성령 안에서 기도”해야 한다. (엡 6:18)
다음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보자.
  • 다른 신자와 갈등이 있다면, 오늘 당신은 그것에 대해 무엇을 해야 하는가?

Tuesday, July 23, 2013

불쾌한 기분, 낙심, 분노 - 국제제자훈련원

불쾌한 기분은 전염성이 있다
“노를 품는 자와 사귀지 말며 울분한 자와 동행하지 말지니 그의 행위를 본받아 네 영혼을 올무에 빠뜨릴까 두려움이니라” (잠 22:24-25)
분노는 전염이 될까? 그렇다. 당신은 다른 사람의 분노에 감염될 수 있을까? 물론이다. 상대방이목소리를 높여서 당신도 그렇게 한 경험이 있는가? 이때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에너지가 전달된 것이다. 분노는 전염성이 있다.
당신이 부적절한 분노가 깊이 들어와 있는, 습관적인 분노의 생활방식을 바꾸고자 심각하게 고려 중이라면, 분노를 다스리는 법을 아는 사람들과 어울리기 시작해야 한다. 교회의 유익 중 하나가 그것이다. 그러한 이유로 나는 교회 공동체에 속하고 소그룹 모임에 참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믿는다. 긍정적인 가치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분노를 표현하기 위해 사용하는 방식은 습득된 것이다. 습득된 것이기에 고의로 잊을 수도 있다. 부모들이 분통을 터뜨리고 냉정을 잃을 때마다 자녀는 부적절한 분노의 본을 배운다. 부모는 가르치고, 자녀는 배우는 것이다.
오늘 다음과 같이 기도해보지 않겠는가?
“하나님, 저는 제 분노를 다스리기로 결심합니다. 오늘 저는 하나님의 도움으로 제 분노를 조절할 것입니다. 전에는 넘어졌지만, 오늘 저는 새롭게 결단합니다. 제가 분노의 대가를 깨닫도록 도와주소서. 분노는 언쟁과 실수를 불러오고 어리석은 일을 하게 하고 온갖 종류의 곤경에 빠뜨린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아버지여, 제가 반응하기 전에 심사숙고 하도록, 지혜를 갖고 스스로 ‘내가 왜 화가 났는가? 나는 무엇을 정말로 원하는가? 그것은 어떻게 얻을 수 있는가?’라고 묻게 도와주소서. 제가 제 분노 저변에 있는 원인을 보게 하옵소서. 분노를 적절히 풀 수 있게 하시고, 더 이상 폭력, 고함, 투덜거림, 또는 겉으론 참으면서 속으론 원망하는 것으로 표현하지 않게 도와주소서. 제 분노에 대해 인정하고, 주님과 다른 사람들과 제 자신에게 그것을 고백하도록 도우소서. 아멘.”
다음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보자.
  • 당신은 잘못된 사람들과의 관계로 분노를 다루는 방법에 영향을 받은 적이 있는가?
  • 당신은 성장할 때, 분노를 표현하는 법을 어떻게 배웠는가? 자녀에게도 동일한 방법을 물려주고 있는가?

낙심을 다루는 다섯 단계
“주께서 심지가 견고한 자를 평강하고 평강하도록 지키시리니 이는 그가 주를 신뢰함이니이다” (사 26:3)
삶 속에서 낙심을 다루는 다섯 가지 간단한 단계가 있는데, 그것은 다음과 같다.
스스로에게 물으라. “내가 초래한 일인가?” 성경은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라고 말한다. (갈 6:7b) 우리는 삶 속에서 스스로 초래한 일로 인해 낙심할 때가 많다.
스스로에게 물으라. “여기서 배울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로마서 8:28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라고 말한다. 세상에는 나쁜 일들도 많지만, 모든 것이 연관되어 있다. 하나님은 우리가 그분께 맡기면, 부정적인 것까지도 들어 긍정적인 것으로 바꾸실 수 있다. 거슬리는 일도 보다 그리스도를 닮아갈 기회로 사용하라.
상황 속에서 하나님께 감사하라. 데살로니가전서 5:18은 “범사에 감사하라”라고 말한다. 나쁜 상황으로 인해 감사할 필요는 없지만, 나쁜 상황에서 감사할 수는 있다. 낙심은 변장하고 찾아온 복일 수 있다.
낙심을 재미있고 유머러스한 사건으로 바꾸라. 성경은 “마음의 즐거움은 양약이라”고 말한다. (잠 17:22) 유머감각은 분노와 좌절에 대해 하나님이 주신 해독제이다.
하나님께서 그분의 사랑으로 당신을 채우시길 구하라. 왜 그래야 하는가? 고린도전서 13:5은 ”[사랑은] 성내지 아니하며”라고 말한다. 사랑은 희생하는 것이지, 섬김을 받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모두가, 또 모든 것이 자신을 중심으로 돌아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화가 나게 된다. 그러나 사랑은 다른 사람에게 집중하는 것이다.
예수님은 끊임없는 낙심에 직면하셨지만 결코 성내시지 않았다. 주님은 늘 사람들을 위해 시간을 내셨다. 우리는 자기 자신의 일에 너무나 바빠서 인생의 우선순위가 사람들에게 있음을 잊는다.


분노를 다스리기로 결단하라
“[사랑은] … 성내지 아니하며” (고전 13:5)
성경은 “사랑은 성내지 않는다”라고 말한다. 이는 “사랑은 결코 화를 내지 않는다.”라는 말이 아니다. 사실 때때로 사랑의 행위에는 화가 나는 것도 포함된다. 예수님도 아버지의 집인 성전이 시장처럼 된 것을 보시고 화를 내셨다.
우리는 누군가를 사랑하면서 동시에 그 사람에게 화가 날 수 있다. 그 분노는 의롭게 보일 때도 있고 이기적으로 보일 때도 있지만, 보통은 우리가 제일 사랑하는 사람들이 우리를 가장 화 나게 만드는 사람들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생물학적 구성에 화를 내는 능력을 넣으셨다. 화가 나는 것은 죄가 아니다. 그것이 파괴적인 행위로 자신을 몰고 가도록 허락하는 것이 죄가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감정 그 자체는 죄가 아니다. 성경은 하나님도 분노하신다고 말한다.
화가 나는 것은 피할 수 없지만, 그것을 조절하는 법은 배울 수 있다. 분노를 다스리기로 결단하면 그것은 ‘의무’라기보다는 ‘자산’이 될 것이다. 즉 “그게 바로 나야. 화가 나는데 어떡해? 난 화를 참을 수 없어.”라고 하는 것처럼 분노에 대해 변명하고 정당화하는 것을 그치게 된다.
분노는 통제될 수 있다. 당신은 누군가와 말다툼이 시작되어 분위기가 고조되고 있는데, 바로 그 때 전화벨이 울렸던 경험이 있는가? 자신이 화를 얼마나 빨리 다스릴 수 있는지 보라! 당신은 자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분노를 훨씬 잘 통제할 수 있다. 화를 다스리기로 결단하라. 그리고 이렇게 고백하라. “저는 하나님께서 도와주셔야 화를 다스릴 수 있습니다.”
다음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보자.
  • 예수님은 아버지의 집인 성전이 시장처럼 된 것을 보시고 화를 내셨지만, 예수님을 ‘화 내는 분’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는 “그게 바로 나야. 화가 나는데 어떡해? 난 화를 참을 수 없어.”라는 주장에 대해 무엇을 말해주는가?
  • 당신이 마지막으로 버럭 화를 낸 때는 언제인가? 오늘의 교훈을 참고로 앞으로는 그 화를 다르게 해결할 수 있겠는가?

분노의 대가를 기억하라
“어리석은 자는 성급하게 굴고 신중한 사람은 오래 참는다.” (잠 14:17, 공동번역)
성경은 통제되지 않은 분노에는 늘 가격표가 붙어 있다고 말한다. 그것을 다음 구절과 연관 지어 확인해보라.
  • “분을 쉽게 내는 자는 다툼을 일으켜도 노하기를 더디 하는 자는 시비를 그치게 하느니라” (잠 15:18)
  • “노하는 자는 다툼을 일으키고 성내는 자는 범죄함이 많으니라” (잠 29:22)
  • “어리석은 자는 성급하게 굴고 신중한 사람은 오래 참는다.” (잠 14:17, 공동번역)
성경은 말한다. “자기 가족을 괴롭히는 사람은 얻는 것이 없으며 미련한 자는 지혜로운 사람의 종이 될 것이다.” (잠 11:29, 현대인의 성경)
화를 참지 못할 때마다 우리는 지는 것이다. 번번히 분통을 터뜨리면 될 일도 안 된다. 영어에서 위험(danger)은 분노(anger) 앞에 d만 더 붙인 것이다. 분노는 위험하다. 분노 때문에 우리는 모든 것을 잃을 수도 있다. 명성, 배우자, 직장, 건강까지.
몇 년 전에 읽은 인간 심장에 대한 의학 연구에 따르면, 삶 속에서 적의나 반감을 줄이면 수명이 연장된다고 한다. 부모들이여, 기억하라. 우리는 분노를 통해 아이들에게 자극을 줌으로써 단기적인 이득(자녀가 두려움 때문에 순종하는 것)을 얻을 수 있을지는 모르나, 장기적인 관점에서는 우리가 지게 될 것이다. 분노는 늘 스스로 소외되도록 만들기 때문이다. 분노는 사람들을 끌어들이기보다는 쫓아내기 마련이다. 또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는 대신, 분노는 사람들로 하여금 당신의 필요에 대해 냉담하고 당신에 대해 화가 나게 만든다.
분노를 다스리는 법 중 하나는 그것 때문에 당신이 어떤 대가를 치르게 되는지 이해하는 것이다.
다음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보자.
  • 과거에 분노는 당신의 의사 결정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가?
  • 과거에 당신은 분노 때문에 인간 관계에서 어떤 대가를 치렀는가? 현재의 인간 관계에는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가?

분노 - 반응하기 전에 생각하라
“어리석은 자는 자기의 노를 다 드러내어도 지혜로운 자는 그것을 억제하느니라” (잠 29:11)
화가 났을 때, 충동적으로 반응하지 마라. ‘참음’은 화를 통제하는 데 훌륭한 도구이다. 이는 무한정 참으라거나 심지어 하루를 넘기라는 말이 아니다. 성경도 화가 난 상태로 잠자리에 들지 말라고 말한다. 내가 말하는 ‘참음’은 5분이다.
화가 나기 시작하면, 몇 분 동안 ‘타임 아웃’ 시간을 가지라. 잠시 상황에 대해 곰곰이 생각할 시간을 충분히 갖는 것이다. 잠시 멈춰 생각하지 않으면 잘못된 행동을 하기 쉽다. 반응하기 전에 심사 숙고해야 한다.
화가 나면 뒤로 물러서서 잠시 시간을 가지며 하나님의 관점에서 상황을 바라보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 성경에서 지혜로운 사람이 분노를 억제한다고 한 말에 주목하라. (잠 29:11) 이것을 현대적인 표현으로 바꾸면 “지혜로운 사람은 잠시 멈춰서 열을 식힌다.”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독립선언문을 쓴 토머스 제퍼슨은 이렇게 말했다. “화가 났다면, 입을 열기 전에 열을 세라. 화가 많이 났다면 일부터 백까지 세라.”
다음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보자.
화가 나는 이유를 이해하면 더 잘 인내할 수 있고, 심지어는 허물까지도 덮어줄 수 있게 된다. (잠 19:11) 다음과 같이 자신이 화가 나는 이유를 이해할 수 있게 도와주는 질문 세 가지를 던져보라.
  • 나는 왜 화가 나는가?
  • 내가 정말로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 그것은 어떻게 얻을 수 있는가?
분노를 적절히 표출하라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엡 4:26a)
화를 푸는 데는 유익한 방법도 있고 해로운 방법도 있다. 예를 들어 때때로 우리는 자신의 분노를 인정하기보다 화가 난 상태에 머물려고 한다. 그러나 성경은 화가 났는데도 인정하지 않는 것은 거짓말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것은 죄이다.
분노가 꼭 잘못된 것은 아님을 명심하라. 분노는 그것을 부적절하거나 파괴적인 방식으로 표출했을 때만 잘못된 것이다. 목사로서 내 경험에 의하면, 우리 중 대부분은 두세 살 때 분노를 표현하는 법을 배웠으며, 어른이 돼서도 여전히 같은 방식으로 분노를 표현한다. 그러나 당연하게도, 지금은 이것이 통하지 않는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얻고자 했던 목표가 화를 내기 전보다 더 멀어지게 되는 방식으로 분노를 표현한다. 부적절하게 표현된 분노는 의도한 것과 정반대인 결과를 낳는다. 사람들을 향해 분노를 터뜨리면 변화를 지속시킬 수 없다. 더 많은 분노와 소외만 초래할 뿐이다. 그것을 알면서도 우리는 여전히 그렇게 한다.
분노는 결코 근본적인 문제가 아니다. 일반적으로 분노는 다음 세 가지 중 하나의 증상이다. 상처, 두려움, 또는 좌절. 이 세 가지 때문에 우리는 화가 난다. 그러므로 우리는 늘 잠시 멈춰 마음을 가라앉혀야 한다.
다음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보자.
분노의 근원을 이해하면 적절한 방식으로 반응하고, 결과적으로 분노로 인해 “죄를 짓지” 않게 된다. (엡 4:26) 잠시 멈춰 마음을 가라앉힐 때, 스스로에게 다음의 질문을 던져보라.
  • 내가 상처를 받았는가?
  • 내가 두려워하고 있는가?
  • 내가 위협을 느끼고 있는가? 아니면 뭔가 귀중한 것을 잃고 있는 것 같은가?
  • 내가 좌절했는가?

분노 - 마음을 새롭게 다지라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 (롬 12:2a)
행동하는 방식은 느끼는 방식에 의해 결정된다. 느끼는 방식은 생각하는 방식에 의해 결정된다. 행동 방식을 바꾸고 싶으면 사고 방식을 먼저 바꿔야 한다. 분노의 부적절한 관리가 습관화되어(툴툴대기, 울분 터뜨리기, 비난하기 등) 이를 바꾸고 싶다면, 먼저 정신을 개조할 필요가 있다.
가족상담가인 개리 스몰리는 스스로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지라고 제안한다. “나는 화를 내는 것을 즐기는가?” “화를 내면 내가 의도했던 결과가 나타나는가?” “동일한 결과를 좀더 효과적인 방법으로 얻을 순 없을까?” “나는 어떻게 달라질까?”
스몰리는 자신에게 편지를 쓰면서 그 답을 적고 6개월 동안 일주일에 한 번씩 (총 26번이 될 것이다) 큰 소리로 자신에게 읽어주라고 말한다. 또한 다른 사람 앞에서도 읽어보라고 말한다. 이렇게 하는 게 일이 많아 보일 수도 있겠지만, 당신은 이 습관을 바꾸는 것에 대해 얼마나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는가? 분노를 통제하는 것에 대해 얼마나 심각하게 여기는가?
나는 자신에게 쓰는 편지에 성경 말씀을 인용하기를 제안한다. 그러면 하나님의 말씀이 당신의 생각을 채우고,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게 될 것이다. 변화가 일어나는 것이다.
사실 분노하는 이들은 불안정한 사람들이다. 불안정할수록 더 많은 것들에 화가 나기 마련이다. 불안정할수록 더 예민해지고 더 짜증이 나게 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당신을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그리고 그리스도 안에서 당신이 얼마나 안전하고, 당신이 하나님께 얼마나 중요한지를 이해할 때, 당신은 화가 덜 나게 될 것이다.
다음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보자.
  • 에베소서 1장과 로마서 8장을 읽어보라. 이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그리고 우리가 그분 안에서 얼마나 안전한지 가르쳐줌으로써 분노를 방지하는 성경 말씀들이다.


Wednesday, June 19, 2013

분노 - 국제제자훈련원 목적이 이끄는 매일의 묵상


분노를 다스리기로 결단하라

“[사랑은] … 성내지 아니하며” (고전 13:5)
성경은 “사랑은 성내지 않는다”라고 말한다. 이는 “사랑은 결코 화를 내지 않는다.”라는 말이 아니다. 사실 때때로 사랑의 행위에는 화가 나는 것도 포함된다. 예수님도 아버지의 집인 성전이 시장처럼 된 것을 보시고 화를 내셨다.
우리는 누군가를 사랑하면서 동시에 그 사람에게 화가 날 수 있다. 그 분노는 의롭게 보일 때도 있고 이기적으로 보일 때도 있지만, 보통은 우리가 제일 사랑하는 사람들이 우리를 가장 화 나게 만드는 사람들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생물학적 구성에 화를 내는 능력을 넣으셨다. 화가 나는 것은 죄가 아니다. 그것이 파괴적인 행위로 자신을 몰고 가도록 허락하는 것이 죄가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감정 그 자체는 죄가 아니다. 성경은 하나님도 분노하신다고 말한다.
화가 나는 것은 피할 수 없지만, 그것을 조절하는 법은 배울 수 있다. 분노를 다스리기로 결단하면 그것은 ‘의무’라기보다는 ‘자산’이 될 것이다. 즉 “그게 바로 나야. 화가 나는데 어떡해? 난 화를 참을 수 없어.”라고 하는 것처럼 분노에 대해 변명하고 정당화하는 것을 그치게 된다.
분노는 통제될 수 있다. 당신은 누군가와 말다툼이 시작되어 분위기가 고조되고 있는데, 바로 그 때 전화벨이 울렸던 경험이 있는가? 자신이 화를 얼마나 빨리 다스릴 수 있는지 보라! 당신은 자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분노를 훨씬 잘 통제할 수 있다. 화를 다스리기로 결단하라. 그리고 이렇게 고백하라. “저는 하나님께서 도와주셔야 화를 다스릴 수 있습니다.”
다음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보자.
  • 예수님은 아버지의 집인 성전이 시장처럼 된 것을 보시고 화를 내셨지만, 예수님을 ‘화 내는 분’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는 “그게 바로 나야. 화가 나는데 어떡해? 난 화를 참을 수 없어.”라는 주장에 대해 무엇을 말해주는가?
  • 당신이 마지막으로 버럭 화를 낸 때는 언제인가? 오늘의 교훈을 참고로 앞으로는 그 화를 다르게 해결할 수 있겠는가?
분노의 댓가를 기억하라

“어리석은 자는 성급하게 굴고 신중한 사람은 오래 참는다.” (잠 14:17, 공동번역)
성경은 통제되지 않은 분노에는 늘 가격표가 붙어 있다고 말한다. 그것을 다음 구절과 연관 지어 확인해보라.
  • “분을 쉽게 내는 자는 다툼을 일으켜도 노하기를 더디 하는 자는 시비를 그치게 하느니라” (잠 15:18)
  • “노하는 자는 다툼을 일으키고 성내는 자는 범죄함이 많으니라” (잠 29:22)
  • “어리석은 자는 성급하게 굴고 신중한 사람은 오래 참는다.” (잠 14:17, 공동번역)
성경은 말한다. “자기 가족을 괴롭히는 사람은 얻는 것이 없으며 미련한 자는 지혜로운 사람의 종이 될 것이다.” (잠 11:29, 현대인의 성경)
화를 참지 못할 때마다 우리는 지는 것이다. 번번히 분통을 터뜨리면 될 일도 안 된다. 영어에서 위험(danger)은 분노(anger) 앞에 d만 더 붙인 것이다. 분노는 위험하다. 분노 때문에 우리는 모든 것을 잃을 수도 있다. 명성, 배우자, 직장, 건강까지.
몇 년 전에 읽은 인간 심장에 대한 의학 연구에 따르면, 삶 속에서 적의나 반감을 줄이면 수명이 연장된다고 한다. 부모들이여, 기억하라. 우리는 분노를 통해 아이들에게 자극을 줌으로써 단기적인 이득(자녀가 두려움 때문에 순종하는 것)을 얻을 수 있을지는 모르나, 장기적인 관점에서는 우리가 지게 될 것이다. 분노는 늘 스스로 소외되도록 만들기 때문이다. 분노는 사람들을 끌어들이기보다는 쫓아내기 마련이다. 또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는 대신, 분노는 사람들로 하여금 당신의 필요에 대해 냉담하고 당신에 대해 화가 나게 만든다.
분노를 다스리는 법 중 하나는 그것 때문에 당신이 어떤 대가를 치르게 되는지 이해하는 것이다.
다음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보자.
  • 과거에 분노는 당신의 의사 결정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가?
  • 과거에 당신은 분노 때문에 인간 관계에서 어떤 대가를 치렀는가? 현재의 인간 관계에는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가?

“어리석은 자는 자기의 노를 다 드러내어도 지혜로운 자는 그것을 억제하느니라” (잠 29:11)
화가 났을 때, 충동적으로 반응하지 마라. ‘참음’은 화를 통제하는 데 훌륭한 도구이다. 이는 무한정 참으라거나 심지어 하루를 넘기라는 말이 아니다. 성경도 화가 난 상태로 잠자리에 들지 말라고 말한다. 내가 말하는 ‘참음’은 5분이다.
화가 나기 시작하면, 몇 분 동안 ‘타임 아웃’ 시간을 가지라. 잠시 상황에 대해 곰곰이 생각할 시간을 충분히 갖는 것이다. 잠시 멈춰 생각하지 않으면 잘못된 행동을 하기 쉽다. 반응하기 전에 심사 숙고해야 한다.
화가 나면 뒤로 물러서서 잠시 시간을 가지며 하나님의 관점에서 상황을 바라보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 성경에서 지혜로운 사람이 분노를 억제한다고 한 말에 주목하라. (잠 29:11) 이것을 현대적인 표현으로 바꾸면 “지혜로운 사람은 잠시 멈춰서 열을 식힌다.”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독립선언문을 쓴 토머스 제퍼슨은 이렇게 말했다. “화가 났다면, 입을 열기 전에 열을 세라. 화가 많이 났다면 일부터 백까지 세라.”
다음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보자.
화가 나는 이유를 이해하면 더 잘 인내할 수 있고, 심지어는 허물까지도 덮어줄 수 있게 된다. (잠 19:11) 다음과 같이 자신이 화가 나는 이유를 이해할 수 있게 도와주는 질문 세 가지를 던져보라.
  • 나는 왜 화가 나는가?
  • 내가 정말로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 그것은 어떻게 얻을 수 있는가?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엡 4:26a)
화를 푸는 데는 유익한 방법도 있고 해로운 방법도 있다. 예를 들어 때때로 우리는 자신의 분노를 인정하기보다 화가 난 상태에 머물려고 한다. 그러나 성경은 화가 났는데도 인정하지 않는 것은 거짓말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것은 죄이다.
분노가 꼭 잘못된 것은 아님을 명심하라. 분노는 그것을 부적절하거나 파괴적인 방식으로 표출했을 때만 잘못된 것이다. 목사로서 내 경험에 의하면, 우리 중 대부분은 두세 살 때 분노를 표현하는 법을 배웠으며, 어른이 돼서도 여전히 같은 방식으로 분노를 표현한다. 그러나 당연하게도, 지금은 이것이 통하지 않는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얻고자 했던 목표가 화를 내기 전보다 더 멀어지게 되는 방식으로 분노를 표현한다. 부적절하게 표현된 분노는 의도한 것과 정반대인 결과를 낳는다. 사람들을 향해 분노를 터뜨리면 변화를 지속시킬 수 없다. 더 많은 분노와 소외만 초래할 뿐이다. 그것을 알면서도 우리는 여전히 그렇게 한다.
분노는 결코 근본적인 문제가 아니다. 일반적으로 분노는 다음 세 가지 중 하나의 증상이다. 상처, 두려움, 또는 좌절. 이 세 가지 때문에 우리는 화가 난다. 그러므로 우리는 늘 잠시 멈춰 마음을 가라앉혀야 한다.
다음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보자.
분노의 근원을 이해하면 적절한 방식으로 반응하고, 결과적으로 분노로 인해 “죄를 짓지” 않게 된다. (엡 4:26) 잠시 멈춰 마음을 가라앉힐 때, 스스로에게 다음의 질문을 던져보라.
  • 내가 상처를 받았는가?
  • 내가 두려워하고 있는가?
  • 내가 위협을 느끼고 있는가? 아니면 뭔가 귀중한 것을 잃고 있는 것 같은가?
  • 내가 좌절했는가?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 (롬 12:2a)
행동하는 방식은 느끼는 방식에 의해 결정된다. 느끼는 방식은 생각하는 방식에 의해 결정된다. 행동 방식을 바꾸고 싶으면 사고 방식을 먼저 바꿔야 한다. 분노의 부적절한 관리가 습관화되어(툴툴대기, 울분 터뜨리기, 비난하기 등) 이를 바꾸고 싶다면, 먼저 정신을 개조할 필요가 있다.
가족상담가인 개리 스몰리는 스스로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지라고 제안한다. “나는 화를 내는 것을 즐기는가?” “화를 내면 내가 의도했던 결과가 나타나는가?” “동일한 결과를 좀더 효과적인 방법으로 얻을 순 없을까?” “나는 어떻게 달라질까?”
스몰리는 자신에게 편지를 쓰면서 그 답을 적고 6개월 동안 일주일에 한 번씩 (총 26번이 될 것이다) 큰 소리로 자신에게 읽어주라고 말한다. 또한 다른 사람 앞에서도 읽어보라고 말한다. 이렇게 하는 게 일이 많아 보일 수도 있겠지만, 당신은 이 습관을 바꾸는 것에 대해 얼마나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는가? 분노를 통제하는 것에 대해 얼마나 심각하게 여기는가?
나는 자신에게 쓰는 편지에 성경 말씀을 인용하기를 제안한다. 그러면 하나님의 말씀이 당신의 생각을 채우고,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게 될 것이다. 변화가 일어나는 것이다.
사실 분노하는 이들은 불안정한 사람들이다. 불안정할수록 더 많은 것들에 화가 나기 마련이다. 불안정할수록 더 예민해지고 더 짜증이 나게 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당신을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그리고 그리스도 안에서 당신이 얼마나 안전하고, 당신이 하나님께 얼마나 중요한지를 이해할 때, 당신은 화가 덜 나게 될 것이다.
다음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보자.
  • 에베소서 1장과 로마서 8장을 읽어보라. 이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그리고 우리가 그분 안에서 얼마나 안전한지 가르쳐줌으로써 분노를 방지하는 성경 말씀들이다.

Thursday, June 6, 2013

서번트 리더의 특징 - 리더십 네트워크

21세기 초에 들어 우리는 전통적이고 독재적이며 위계적인 리더십의 양식 보다 새로운 리더십 모델을 추구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바로 서번트 리더십입니다. 서번트와 리더는 상반된 단어입니다. 상반된 두 단어가 창의적이고 의미 있는 방식으로 결합하면 역설이 발생하게 됩니다. 서번트와 리더도 그렇게 결합하여 서번트 리더십이라는 역설적인 개념을 낳았습니다. 아래 내용들을 통해 서번트 리더로 발전하는 데 더 없이 중요하게 여겨지는 특징들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듣기

리더를 평가하는 전통적인 기준은 의사소통 및 의사결정 능력이었습니다. 서번트 리더는 한 집단의 의지를 확인하고 명료화하기 위해 다른 사람들의 말을 하나하나 귀담아 듣는데 집중함으로써 이 중요한 능력을 강화해야 합니다.

2. 공감

서번트 리더는 다른 사람들을 이해하고 그들과 공감하려고 애씁니다. 그는 다른 사람들의 고유한 재능과 정신을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합니다. 서번트 리더는 동료들의 선의를 믿으며, 그들을 인간적으로 거부하지 않습니다.

3. 치유

어려운 상황을 치유하는 데 도움을 주는 능력은 변형하고 완성하는 강력한 힘입니다. 서번트 리더는 사람들과 기관들이 온전해지도록 도울 기회가 자신에게 주어져 있음을 인정합니다.

4. 설득

서번트 리더의 또 다른 특징은 조직 내에서 결정을 내릴 때 직권이 아니라 설득에 의지한다는 점입니다. 서번트 리더는 동의를 강제하기보다 다른 사람들을 납득시키려고 노력합니다. 서번트 리더는 여러 집단들 사이에서 합의를 이끌어내는 데 유능합니다.

5. 인식

전체적인 인식, 특히 자기인식은 서번트 리더를 강하게 만듭니다. 인식은 윤리와 가치가 결부된 사안들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며, 상황을 보다 통합적이고 전체적인 관점에서 바라 볼 수 있게 해 줍니다.

6. 선견

어떤 상황에서 비롯될 만한 결과를 선견하는 능력을 통해, 서번트 리더는 과거의 교훈과 오늘날의 현실, 그리고 의사결정이 미래에 가져올 결과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선견은 직관적인 정신에서 비롯됩니다.

7. 개념화 

서번트 리더는 원대한 꿈을 꾸는 능력을 키우려고 노력합니다. 이는 곧 일상의 경영 현실을 넘어서서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8. 사람들의 성장을 위한 헌신

서번트 리더는 사람들이 노동자로서 기여하는 바를 넘어 본질적인 가치를 지닌다고 믿습니다. 그래서 조직에 소속된 모든 개인들의 인간적, 직업적, 정신적 성장을 위해 헌신합니다.

9. 공동체 형성

서번트 리더는 조직에 소속된 사람들 사이에서 공동체의식을 형성하려고 노력합니다. 그린리프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공동체를 재건하여 수많은 사람들에게 유효한 삶의 형태가 되도록 만드는 데는, 충분한 수의 서번트 리더들이 대중운동을 통해서가 아니라 각자 공동체와 관련된 어떤 특정 집단에 대해 무한책임을 보여줌으로써 그 길을 제시하는 것으로 족하다.”

이상의 것들로 서번트 리더십의 특징을 총망라했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특징들은 서번트 리더십 개념의 초대와 도전에 응하는 사람들에게 제공하는 힘과 약속을 잘 보여 줍니다. 영향력 있는 리더가 되기 위해 먼저 서번트 리더가 되어야 할 필요가 있음을 기억하는 한 주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 이 글은 스티븐 R. 코비외 32인이 쓴「오늘을 이끄는 힘 ‘리더십’」의 일부를 발췌 각색한 글입니다.

퍼온글

Saturday, June 1, 2013

모든 사람을 만족시키려 하지 마라 - 목적이 이끄는 삶을 위한 매일의 묵상 1180호

모든 사람을 만족시키려 하지 마라
“사람을 두려워하면 올무에 걸리게 되거니와” (잠 29:25)
다른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지에 대해 염려할 때, 우리는 그들에게 휘둘리는 셈이다. 우리는 남들이 우리가 어떤 사람이 되길 바라는지 알고자 하고 그와 같이 되려고 하는 데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허비한다.
다른 사람들의 생각에 대해 염려하는 것은 위험하다. 그럴수록 비판에 더 굴복하기 쉽기 때문이다. 이는 우리가 늘 옳은 일을 하는 것은 아님을 뜻한다. 오히려 다른 모든 이들이 우리에게 바라는 것을 하는 것이다.
또한 이 경우 하나님의 최선을 놓칠 위험이 있다. 왜냐하면 다른 사람들이 바라는 것에 너무 신경 쓴 나머지 정작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무엇인지 깨닫지 못하기 때문이다.
  • 진실 1 - 모든 사람을 만족시킬 수는 없다. 하나님도 모든 사람을 만족시키실 순 없다. 비가 오길 기도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해가 나길 기도하는 사람도 있다. 하나님은 누구에게 응답하시겠는가? 하나님도 모두를 만족시키실 순 없다. 오직 어리석은 자만이 하나님도 하실 수 없는 것을 하려고 애쓴다.
  • 진실 2 - 반드시 모두를 만족시킬 필요는 없다. ‘행복하기 위해서는 모두에게 사랑 받고 인정받아야 한다’는 말은 신화이다. 이는 전혀 진실이 아니다. 인생에서 행복하기 위해 모두를 만족시킬 필요는 없다.
  • 진실 3 - 거절은 삶을 파괴하지 않는다. 물론 거절은 아프다. 즐거울 순 없다. 거절은 불편하다. 그러나 그것은 자신이 허락하지 않는 한 삶을 파괴하지 않는다.

모두를 만족시키려고 애쓰길 그치라! 당신이 허락하지 않는 한, 그 누구도 당신이 자신을 열등하게 느끼도록 만들 수 없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사도 바울은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롬 8:31)라고 말한다. 이는 다음처럼 생각할 수 있다는 뜻이다. “하나님이 나를 좋아하시고 나도 나를 좋아한다. 누군가가 날 좋아하지 않는다면 그 사람에게 문제가 있는 것이다. 하나님이 나를 좋아하신다면, 내가 하는 것을 맘에 들어 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는 게 무슨 상관이 있는가?”
기억하라. 당신이 하는 그 어떤 것도 당신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줄어들게 할 수 없다. 당신이 무엇을 해도 그분의 사랑을 더 늘릴 순 없다. 하나님은 바로 지금 당신을 완전하게 사랑하신다.
다음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보자.
  • 당신은 누구에게 잘 보이거나, 인정을 받거나, 만족시키려고 가장 신경을 쓰는가?
  • “당신이 하는 그 어떤 것도 당신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줄어들게 할 수 없다”는 사실은 당신에게 평안을 가져다 주어야 한다. 당신의 삶은 그러한 평안을 어떻게 반영하는가?

Thursday, April 25, 2013

성경적 자녀교육 - 국제제자훈련원


목적이 이끄는 삶을 위한 매일의 묵상에서.....



자녀에게 생명의 삶을 준비시켜라

“예수는 지혜와 키가 자라가며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욱 사랑스러워 가시더라” (눅 2:52)
성경은 자녀 양육의 목표 중 하나가 자녀에게 생명의 삶을 준비시키는 것이라고 말한다. 하나님은 가족이 생명의 삶을 위한 배움터가 되도록 뜻하셨다. 가족 안에서 우리는 다른 곳에서는 배울 수 없는 것들을 배운다. 나는 우리 막내가 트림과 재채기를 동시에 하는 법을 가르쳐준 때를 잊을 수 없다. 진짜 굉장하지 않은가? 내가 그것을 언제 어디서 쓰게 될지는 알 수 없지만, 그렇게 할 수 있다는 것은 멋진 영적 경험이다.
우리는 걷기, 말하기, 먹기, TV 리모컨 사용하기 등, 인생의 기본적인 기술을 가족 안에서 배운다. 따라서 하나님은 우리가 자녀에게 생명의 삶을 준비시켜야 한다고 말씀하신다.
누가복음 2:52은 예수님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예수는 지혜와 키가 자라가며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욱 사랑스러워 가시더라”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네 가지 면에서 성장하셨음을 알려주는데, 부모로서 당신은 당신의 자녀도 이 네 가지 면에서 성장하도록 도와야 한다.
성경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 예수님은 지혜가 자랐다 - 이는 정신적 또는 지적 성장을 뜻한다.
  • 예수님은 키가 자랐다 - 이는 신체적 성장을 뜻한다.
  • 예수님은 하나님께 사랑스러워가셨다 - 이는 영적 성장을 뜻한다.
  • 예수님은 사람에게 사랑스러워가셨다 - 이는 사회적 성장을 뜻한다.
이것들은 당신이 각 자녀를 향해 가져야 할 목표이다. 정신적으로, 신체적으로, 영적으로, 그리고 사회적으로 균형 있게 성장하는 데 초점을 맞추는 것이다. 성경은 자녀를 양육하는 것과 자녀에게 생명의 삶을 준비시키는 것의 주된 책임이 부모에게 있음을 분명하게 밝힌다.
자녀를 품는 순간, 당신에겐 자녀를 잘 양육하는 것이 자신의 책임이라는 직무가 생긴 것이다. 자녀가 정신적으로, 신체적으로, 영적으로, 그리고 사회적으로 성장하도록 도우라.
다음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보라.
  • 신명기 6:7은 부모로서의 직무 중 일부를 이렇게 기록한다.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을 갈 때에든지 누워 있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 당신은 자녀에게 하나님의 계명을 어떻게 가르치는가? 당신은 어떤 새로운 것을 시도할 수 있겠는가?
  • 신명기 6:7 말씀은 자녀를 하루 온종일 교육하라는 뜻을 내포한다. 당신은 어떤 방식으로 매일의 일과에 자녀 교육을 포함시킬 수 있겠는가?


자녀와 함께 즐거워하라!

“자식은 주님께서 주신 선물이요” (시 127:3a, 새번역)
하나님은 가정이 행복과 즐거움을 누리는 안식처가 되기 바라신다. 놀고, 편히 쉬고, 휴식을 취하고, 좋은 시간을 보내는 곳 말이다.
함께 기도하는 가정이 결속력이 강한 것은 사실이다. 또한 함께 ‘노는’ 가정도 결속력이 강하다.
자녀는 주님께서 주신 선물이다. 함께 즐거워할 대상이지 신경전을 벌일 대상이 아니라는 말이다. 많은 부모들이 자녀와 즐거워하지 못하고, 자녀와 신경전을 벌이기만 한다. 신명기 16장은 “온 가족과 함께 즐거워하라”고 말한다. 실컷 즐거워하라! 좋은 시간을 보내라. 모든 문제가 사라진 다음에야 인생을 즐기려고 기다린다면, 우리는 결코 인생을 즐기지 못할 것이다.
내 자녀가 어렸을 때, 아이들은 일반적으로 어른들이 감명 받는 것에 감명 받은 적이 전혀 없었다. 우리 애들이 알고 싶어했던 것은 그저 “아빠는 재미있는 분인가?”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이 부분에 대해 의도적으로 열심을 냈다. 나는 종종 학교에서 수업을 받고 있던 아이들을 중간에 ‘납치’해서 재미있는 것을 하러 가곤 했다. 내 설교는 다 기억하지 못하겠지만, 아이들은 아빠가 재미있었는지 그렇지 않은지 분명히 기억할 것이다.
아이들이 성장하는 동안 가정이 즐겁지 않다면, 아이들이 다 자랐을 때 집에 자주 들어오지 않는다 해도 놀라지 마라. 집에 왜 들어오고 싶겠는가?
다음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보자.
  • 당신은 얼마나 자주 집에서 즐겁게 노는 시간을 갖는가?
  • 당신은 자녀와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가 아니면 자녀와 신경전을 벌이고 있는 편인가?
  • 당신은 재미있는 시간을 계획하는가 아니면 너무 바빠서 즐길 시간을 내지 못하는가?


자녀의 시선이 하나님을 향하게 하라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요” (잠 9:10a)
우리가 자녀에게 가르칠 가장 중요한 교훈은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는 것이다.
우리는 모든 해답을 알지 못한다. 당신이 아직 그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면, 언젠가 깨닫게 될 것이다. 당신은 자녀가 묻는 것에 다 답을 해주지 못한다. 이는 “하늘은 왜 파래요?”나 “개들은 왜 짖어요?”와 같이, 잠시 동안 자녀를 만족시켜줄 수 있는 답을 꾸며낼 수 있는 질문들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성장하면서, 아이들은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진다. “하나님은 왜 날 이런 모습으로 만드셨어요?” 또는 “하나님이 사랑의 하나님이고 모든 것을 통치하신다면, 왜 할머니가 돌아가시도록 내버려 두셨나요?” 그러한 질문은 대답하기 매우 곤란하고, 내 해답의 저장소는 매우 협소하다. 그러나 부모로서 내가 할 일은 자녀로 하여금 모든 해답을 갖고 계신 하나님께 시선을 돌리게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자녀를 앉혀놓고 하나님에 대해 이야기해주는 것은 어느 정도 효과가 있다. 그러나 훨씬 더 효과적이 되고 싶다면, 당신이 직접 롤모델이 되어야 한다. 자녀를 가르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자녀가 이해하길 바라는 진리를 몸소 보여주는 것이다.
때때로 부모들은 자신이 고군분투하고 있는 문제들을 자녀에게 숨기는 실수를 범한다. 자녀를 보호하고 싶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떤 상황에서는, 삶에서 일어나는 문제를 자녀와 나눌 때, 그러한 어려움을 헤쳐나가는 방법을 몸소 보여줄 수 있다. 재정적 어려움에 직면했을 때, 자녀에게 하나님을 믿으라고 가르치는 것과 끊임없이 자녀에게 “맞아, 지금 우린 힘들지만, 우리에겐 신실하신 하나님이 계시잖니. 하나님이 우리에게 공급해주실 거야.”라고 표현하는 것 중 어느 것이 더 효과적이겠는가? 부모가 삶 속에서 하나님과 그분의 구원하심을 믿는 것을 자녀가 보지 못한다면, 왜 자녀가 하나님을 의지하려 하겠는가?
잠언 9:10은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요”라고 말한다. 하나님을 알고 경외하는 것이 인생의 근간이다. 크리스천이 아닌 많은 부모들조차 신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러나 그것으론 충분하지 않다. 우리는 매일 하나님과 그분의 독생자에 대해 우리가 진리라고 아는 것을 자녀에게 몸소 보여줌으로써 자녀가 그들의 구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게 해야 한다.
다음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보자.
  • 자녀가 하나님을 바라볼 수 있게 하는 부분에서 당신은 어떻게 하고 있는가?
  • 당신의 삶은 예수 그리스도께 100퍼센트 헌신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자녀에게 어떻게 보여주고 있는가?
  • 당신이 보여주는 본에 의해, 당신은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이라고 자녀에게 알려주고 있는가? 직장인가? 또는 돈, 취미, 오락? 아니면 예수님과의 관계?


자녀의 고유함을 인정하라


“모든 것을 모든 사람 가운데서 이루시는 하나님은 같으니” (고전 12:6b)
한 가족 안에서도 자녀들은 각각 다르고 고유하다. 쌍둥이조차도 똑같지 않다. 부모로서 우리는 각 자녀의 개성을 인지하고 가치 있게 여겨야 한다.
고린도전서 12:6은 이렇게 말한다. “모든 것을 모든 사람 가운데서 이루시는 하나님은 같으니” 하나님이 모든 사람을 서로 다르게 지으신 것은, 그렇게 하지 않으면 세상이 극도로 지루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완수되지 않는 일도 많았을 것이다. 우리 모두가 똑같은 것을 좋아했다면 아무도 하고 싶어하지 않는 일이 많았을 것이고, 그런 일들은 완수되지 않을 것이다.
내가 자녀의 고유함을 인정한 것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간단하다. 자녀가 당신처럼 되어야 한다는 고집을 버릴 때이다. 하나님은 우리를 하나님 형상대로 만드셨는데, 이제 우리는 부모가 되어 자녀를 우리 형상대로 만들고 싶어한다. 따라서 공공연히 또는 넌지시, “넌 나처럼 되어야 해. 나처럼 생각해야 해. 내가 좋아하는 것을 좋아해야 해. 내가 학교에서 잘한 것을 너도 잘 해야 해.”
그럼 다음과 같은 메시지가 크고 분명하게 자녀에게 울린다. “넌 있는 모습 그대로 될 수 없어. 네가 사랑과 인정과 승인을 받는 유일한 방법은 엄마와 아빠처럼 되는 것뿐이야.”
자녀는 틀에 넣어 찍어낼 물건이 아니라, 펼쳐야 할 ‘사람’이다. 인생의 목표가 자녀를 자신의 형상대로 찍어내는 것이 되어선 안 된다. 인생의 목표는 자녀가 하나님이 자신을 어떤 사람이 되도록 지으셨는지 발견하도록 돕는 것이어야 한다.
하나님은 그 주권에 따라, 당신의 자녀를 그 모습으로 만들기로 택하셨다. 하나님은 당신의 자녀를 당신과 아무 상관 없는 방식으로 지으셨다. 당신의 눈에 자녀가 너무 이질적인 행동을 보여 “넌 도대체 어느 별에서 왔니?”라고 외치고 싶을 때도, 당신은 하나님의 지혜를 신뢰하고 하나님께서 자녀의 필요와 당신의 필요를 정확히 아시며, 하나님의 고유한 목적을 위해 당신과 자녀를 한 가족으로 묶으셨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다음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보자.
  • 자녀가 자신의 고유함을 깨닫도록 돕는 것은 부모로서 어려운 임무다. 세상에는 순응하라는 압력과 비교하라는 압력, 이 두 가지 상충되는 압력이 있기 때문이다. 친구들과 함께 이것이 무엇을 뜻하는지에 대해 얘기해보라. 
  • 이러한 압력에도 불구하고 당신은 어떤 방법으로 자녀가 자신의 고유함을 이해하도록 돕고 있는가? 
  • 당신은 자신의 고유함을 기꺼이 받아들였는가? 다름은 좋은 것이고, 하나님은 결코 실수하지 않으시며, 우리가 그러한 하나님의 형상대로 만들어졌음에 대해 당신은 자녀에게 어떻게 본을 보이고 있는가?


책임감을 갖고 자녀를 신뢰하라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되고 지극히 작은 것에 불의한 자는 큰 것에도 불의하니라. … 너희가 만일 남의 것에 충성하지 아니하면 누가 너희의 것을 너희에게 주겠느냐” (눅 16:10, 12)
주변에 자신을 믿어주고 책임을 맡기는 사람이 있는 것만큼 사람으로 하여금 최선을 다하도록 만드는 것은 없다. 예수님도 이 점을 지적하셨다. 사람은 책임을 감당하면서 성장한다고 하신 것이다. 누가복음 16장은 이렇게 말한다.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되고 지극히 작은 것에 불의한 자는 큰 것에도 불의하니라. … 너희가 만일 남의 것에 충성하지 아니하면 누가 너희의 것을 너희에게 주겠느냐” (10, 12절)
현명한 지도자와 부모는 이러한 원리를 이해한다. 사람들은 책임에 반응한다. 아이들도 책임에 반응한다. 우리 모두는 신뢰받고, 성장하고 발전하고 자신의 능력을 증명해 보일 수 있는 곳을 필요로 한다. 책임감이라는 인생의 기술을 배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줄 기회를 얻는 것이다.
자녀에게서 최선을 이끌어내는 것에는 실패를 허락하는 것도 포함된다. 우리는 자녀를 실패하지 않도록 보호하는 경향이 있다. 그것은 당연하다. 우리는 아이들이 실수하지 않도록 보호하고 싶어한다. 자녀가 기분 상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이다. 자녀가 실패하면, 우리는 그들을 재빨리 구해주어 상처 받지 않도록 한다.
그러나 그것은 자녀가 소중한 교훈을 얻는 것을 막는 행위이다. 실패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 모든 것을 잘하는 사람은 아무데도 없다. 핵심은 삶에서 실패하지 않는 것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 이것은 실패로부터 다시 일어서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자녀에게 실패할 기회를 주지 않는 것은 이렇게 말하는 것과 같다. “넌 능력이 없으니까 믿을 수 없어. 넌 이것을 처리할 수 없으니 내가 대신 해줄게.” 그러한 접근법은 자녀가 부모에게 계속 의존적이 되도록 만든다.
성경은 이에 대해 갈라디아서 6:5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사람은 저마다 자기 일에 책임을 져야 합니다.” (쉬운성경) 자녀가 실패할 때, 어느 누구 탓도 돌리지 않게 하라. 왜 그런가? 우리 모두는 자신의 행위에 책임을 지는 법을 배워야 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오늘날 우리 사회에 절실히 필요한 진리이다. 우리는 피해자가 만연한 시대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모두가 피해자이다! 모두가 다른 사람의 잘못이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에게 저마다 자기 일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말한다. 자녀를 지나치게 신뢰하지 않는 것보다는 자녀를 너무 많이 신뢰하는 편이 훨씬 낫다.
다음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보자.
  • 당신은 자녀 대신 너무 많은 것을 해주고 있는가? 누군가를 대신해서 책임을 지는 것이 어떻게 그 사람으로부터 책임을 빼앗는 것이 될 수 있겠는가?
  • 삶에서 경험했던 실패에 대해 이야기해보라. 그러한 것들은 당신이 한 사람으로서 성장하는 데, 그리고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어떤 도움이 되었는가?
  • 자녀가 비슷한 삶의 교훈을 배우기 위해 실패를 경험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가? 당신은 이것을 어떻게 실천하고 있는가?


책망하지 않으면서 자녀 고치기

“아직 희망이 있을 때에 자식을 징계하여라. 그가 망할 때까지 내버려 두지 마라.” (잠 19:18, 쉬운성경)
사람은 누구나 때때로 고침을 받아야 한다. 완벽한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부모가 자녀를 징계하지 않는다는 것은 다음을 뜻한다.
부모가 자녀의 파멸에 기꺼이 동참하는 것이다. 잠언 19:18은 이렇게 말한다. “아직 희망이 있을 때에 자식을 징계하여라. 그가 망할 때까지 내버려 두지 마라.” (쉬운성경) 부모가 시간을 내어 자녀의 잘못을 고치고 새로운 습관과 올바른 행동 및 사고 방식을 가르쳐주지 않는다면, 그것은 사실상 자녀가 실패하고 파멸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심지어 시간을 들여 자녀를 징계하기를 거부하는 것은 우리 마음에 사랑이 없다는 증거가 될 수 있다. 단지 우리가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뿐이다. 때때로 우리는 너무 피곤해서 전쟁을 더 벌이려고 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는 우리의 필요를 자녀의 필요보다 우선시하는 것이다. 우리는 자녀를 징계하는 데 시간을 들여야 한다.
그럼 어떻게 해야 자녀를 책망하지 않으면서 잘못을 고칠 수 있을까?
분노한 상태에서 고치려 하지 마라. 엡세소서 6:4는 이렇게 말한다. “아버지는 자녀들의 마음을 상하게 하거나, 화를 돋우지 말고, 주님의 훈계와 가르침으로 잘 키우십시오.” (쉬운성경) 자녀에게 짜증과 화가 나 있을 때, 그 짜증과 화를 분출하면 기분이 나아진 것처럼 느껴진다. 이러한 분출은 순간적인 해결법이다. 그러나 이것은 장기적인 문제에는 아무런 효과가 없으며, 자녀와 부모의 관계를 긴장시킨다. 화가 난 상태에서 훈계하는 것보다는 잠시 물러서서 열을 식히고 평정심을 회복한 다음 다시 그 문제를 다뤄야 한다.
말을 함부로 하지 마라. 에베소서 4:29은 이렇게 말한다. “더러운 말은 입 밖에도 내지 말고 기회 있는 대로 남에게 도움이 되는 유익한 말을 하십시오.” (현대인의성경) 해로운 말은 상처가 되는 기억을 만든다. 화가 난 상태에서 하는, 그리고 우리의 결점과 흠과 단점을 경시하는 이러한 말은 마음에 꽂히는 비수가 된다. 가족의 기억에 해로운 말을 남기지 않도록 하라. 그 대신 단어를 주의 깊게 선택하고 사랑 안에서 말하라.
부모의 기도 
오늘, 그리고 매일 다음과 같이 기도하라. “내가 완전한 길을 주목하오리니 주께서 어느 때나 내게 임하시겠나이까 내가 완전한 마음으로 내 집 안에서 행하리이다.” (시 101:2, 현대인의성경)

Thursday, April 4, 2013

반드시 성경을 공부하십시오. 타협하지 마세요! - 국제제자훈련원 소그룹네트워크 367호

http://www.disciplen.com/resource/mail/now2.asp?m_mode=sn&v_msid=3144&m3_No=4&page=1


소그룹 멤버들이 소속감을 느끼게 하고, 모임 시간을 의미 있는 시간으로 여기게 하며, 또한 각자가 영적으로 성장하는 것을 체험하게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소그룹 시간에 성경을 공부하고 그 말씀에 비춰진 자신들의 모습을 나누는 시간을 가져야만 합니다. 또한 소그룹 리더는 멤버들이 주중에 꾸준히 성경을 묵상하는 삶을 살고 있는지 점검하며 소그룹 성경 공부를 위해 미리 준비해 오도록 독려해야 합니다. 

교회 소그룹에서 성경이 다뤄지는 것은 지나치게 당연하지 않느냐고 생각하시는 분도 있겠지만, 실제로는 소그룹에서 성경을 성실하고 주의 깊게 다루지 않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마치 소그룹을 시작 의식, “개회선언”과 같이 성경을 한 구절 읽거나, 정해진 성경을 돌아가면서 읽는 것이 전부인 경우도 있고, 예배 시간에 목사님의 설교를 다시 다루는 정도로 그치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리고 나머지 시간은 멤버들의 신변잡기, 경제문제, 교육문제, 시사문제, 건강문제 이야기로 채워집니다. 

이렇게 소그룹에서 성경이 제대로 다뤄지지 않고 각자 멤버들의 관심사들을 이야기하며 시간을 보내면, 일단 그 모임을 준비하는 데 부담이 없고, 모였을 때 쉽게 시간을 보낼 수도 있고, 각자가 관심사를 말하며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느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시간이 끝나고 돌아가는 멤버들에게 남는 것은 허무한 느낌뿐입니다. 장기적으로 볼 때 왜 이 모임이 있는지 알 수 없다는 반응이 나타날 것이며, 실제로 영적 성장은 전혀 찾아볼 수 없을 것입니다. 

윌로우크릭 교회는 2003년부터 1,000여 개의 교회를 전문적인 설문조사 도구를 사용하여 조사한 결과 보고서 “MOVE”(국제제자훈련원 간)를 통해 "모든 개인적인 신앙 훈련 중에서도 ‘성경 묵상’이 다른 어떤 신앙 훈련보다도 영적 성장에 훨씬 큰 영향을 미친다... 다른 어떤 신앙훈련보다도 이 요소가 두 배의 영향력을 발휘한다"는 사실을 밝히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때문에 “성도들에게 규칙적으로 성경을 읽으라고 조언하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우리는 이것을 당위의 문제로 가르쳐야 한다. 그것을 고집스럽게 요구하라. 그리고 계속해서 그 과정을 주시하라. 매주 성경을 묵상할 것을 성도들에게 도전하라”(p. 191)고 말합니다. 

그렇기에 소그룹 리더는 결코 성경을 공부하지 않고 소그룹 시간을 보내려는 유혹과 타협해서는 안 됩니다. 이런 유혹 중 가장 많은 것은 “우리에게는 친교가 필요하다”는 주장입니다. 충분한 친교시간을 갖기 위해 한 번 쯤 성경을 공부하지 않아도 되지 않느냐, 성경공부를 꼭 해야 한다면 짧고 간단하게 끝내고 다른 시간을 가져도 되지 않겠느냐는 의견에 휩쓸리지 않아야 합니다. 그리고 목회자, 교회 지도자들은 교회에 속한 소그룹들이 그 시간마다 성경을 제대로 공부하며 삶에 적용하는 시간을 갖고 있는지 끊임없이 점검하며 모두가 모인 예배, 집회 시간에는 소그룹마다 성경을 공부해야 함을 강조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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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소그룹으로 모이는 목적이 또 하나의 친교 단체를 만들기 위함이 아님을 기억하십시오. 성도의 친교는 성경 말씀 아래에서 성경의 저자이신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심으로 이뤄진다는 사실을 믿으십시오. 타협하지 말고 성경을 펼치고 이번에 다룰 본문을 다루십시오. 성경을 공부하고, 거기에 자기 삶을 비춰보는 시간이야말로 신변잡기와 농담을 나누는 시간이 줄 수 없는 참된 친교를 경험하게 해 줄 것입니다.

Monday, March 25, 2013

리더십 네트워크 633호 - 신뢰 받는 리더

http://www.disciplen.com/resource/mail/now2.asp?m_mode=rn&v_msid=3137&m3_No=2


리더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 중에 하나는 신뢰이다. 리더에 대한 신뢰가 깊어지면 깊어질수록 영향력도 깊어 질 것이다. 더욱이 주님을 위해 뭔가를 하기 원하는 리더라면 신뢰 쌓기를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한다. 그렇다면 신뢰를 쌓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리더가 신뢰를 쌓으려면 다음 요소들이 필요하다.
  1. 인격을 닦아라

    리더에 대한 신뢰를 형성하는 첫 번째 요소는 인격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닮은 인격이야말로 그리스도인 리더의 밑바탕이 되는 자격요소이다. 올바른 인격은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고 무엇보다 신뢰감을 주기 때문에 모든 대인관계의 기반이 된다. 사람들은 자신이 따르는 리더가 훌륭한 인격의 소유자라는 사실을 확인하고 나서야 리더가 제안하는 것들을 마음으로부터 따를 것이다. 그리스도인 리더들은 신뢰를 쌓기 위해 예수님의 성품과 인격을 닮고자 기도하며 노력해야 한다.
  2. 유능함을 갖추어라
    신뢰 형성의 두 번째 요소는 능력 다른 말로 유능함이다. 유능함이란 무엇일까? 어떤 상황에서 일을 잘 처리하는 능력이다. 즉 뛰어난 재능으로 일을 완수하는 것이다. 일을 수행 하는 데 필요한 은사, 지식, 재능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리더들은 이것들을 계발하여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 유능함은 리더에게 자신감을 가져다 준다. 그러나 인간의 유능함은 제한적이고 한계가 있다는 것을 리더는 늘 명심하고 주의해야 한다.
  3. 분명한 방향을 제시하라

    리더에 대한 신뢰 형성의 세 번째 요건은 명확한 방향성이다. 요즘 사람들은 리더, 특히 교회의 리더들이 어디를 향해 가는가에 대해 매우 관심이 많다. 그러기에 리더는 자신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그리고 사람들을 어디로 이끌고 있는지를 분명히 알아야 한다. 그래서 누가 물어봐도 교회의 방향성이 어디인지를 확실하게 대답해 줄 수 있어야 한다.
  4.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려 주어라

    리더들은 사람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정기적으로 알려 주어야 한다. 알려 주는 사람은 신뢰를 얻고 알려주지 않는 사람은 의심을 받는다. 리더가 무엇을 숨기고 있다는 의심이 들면 사람들은 그 리더를 따르려고 하지 않는다. 특히 교회의 리더들은 교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에 대해 정기적으로 교인들에게 알려 주어 원활한 의사전달이 될 수 있어야 한다.
  5. 돌봄의 자세를 가져라

    사람들은 누군가가 자신을 돌봐 주고 진심으로 관심을 가져 주기를 바란다. 성의껏 돌봐주는 사람에게는 저절로 신뢰가 형성된다. 돌봄이란 리더가 따르는 사람들을 사랑하고 그들의 행복과 복지에 최선을 다하는 관심의 표현이다. 또한 상대의 인격을 존중하고 마음에서 우러난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 돌봄이다. 하나님이 자신의 백성을 돌보시듯 리더도 하나님의 사람들을 잘 돌봐 주기를 하나님은 바라신다. 사람들이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어떤 아픔과 두려움이 있는지를 알고 성경적으로 그러한 문제를 도와줄 수 있어야 한다. 
리더는 영향력을 통해 사람들을 따라오게 만들고 목적지까지 갈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리더는 신뢰를 깊이 쌓아가야만 한다. 만약 여러분이 리더의 위치에 있다면 위에서 제시된 요건들을 통해 신뢰가 더욱 깊어지길 바란다. 신뢰가 무너지면 리더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신뢰가 무너진 후에 그것을 회복하고 다시 쌓게 위해 노력하기 보다 신뢰가 무너지지 않도록 예방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더 나아가 신뢰가 깨어지기 전에 오히려 깊어 질 수 있도록 만든다면 사람들은 더욱 기쁜 마음으로 리더를 따르게 될 것이다.
* 이 글은 오브리 맬퍼스의 「리더가 된다는 것은,」의 일부를 발췌해서 각색한 글입니다.

Monday, March 18, 2013

366호 - 예배하는 소그룹 - 국제제자훈련원


http://www.disciplen.com/resource/mail/now2.asp?m_mode=sn&v_msid=3132&m3_No=4&page=1

많은 사람들이 ‘예배’라 하면 ‘찬양’과 ‘경배’를 떠올립니다. 한편 ‘소그룹’이라 하면, 구역예배 드리는 모습을 쉽게 떠올립니다. 하지만 우리가 모이는 소그룹에서 주일 예배와 같이 우리에게 익숙한 예배 순서와 형식을 동일하게 사용할 필요는 없습니다.

만약 소그룹 모임 내내 기도만 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교회에 처음 나온 지체들이 소그룹에 더러 있다면 그들은 기도만 하는 이 모임이 익숙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어색함을 잘 넘어선다면 그들에겐 아마도 잊지 못할 시간이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소그룹을 다음 순서로 인도해 보십시오.
  1. 우선 함께 기도하고 싶은 마음을 나눠 보십시오.
  2. 가사에 집중하며 좋아하는 찬양을 다 함께 불러 보십시오.
  3. 찬양을 부르면서 생각난 것을 나눠 보십시오.
  4. 또 다른 지체에게 소그룹을 위하여 적절한 시편을 읽되 천천히 또박또박 읽어 줄 것을 부탁해 보십시오. 다음으로는 시편의 내용을 더 깊이 살펴보고 왜 공동체에 유익한지 설명해 주십시오.
  5. 이제 모든 지체가 편안한 자세로 기도할 수 있도록 인도해 주십시오. 필요하다면 기도에 필요한 요소들도 설명해 주십시오.
  6. 서너 개의 공동 기도제목과 개인 기도제목을 가지고 함께 기도한 후 마지막으로 인도자가 대표로 이를 위해 기도하십시오. 기도하는 시간은 소그룹의 형편에 맞게 하되 넉넉한 시간을 할애하십시오.
  7. 마지막으로 기도로 모임을 마치십시오. 다음 모임 때 이날 가졌던 모임에 대한 소감을 나눠 보십시오.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어하십니다. 하나님이 그분의 뜻 가운데 우리와 함께하길 원하신다는 사실을 깨닫고 마음을 정하여 하나님과 함께한다면, 우리는 그분의 임재를 더욱 온전히 맛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과 함께하는 시간이야말로 우리가 소중히 여겨야 할 예배일 것입니다.

소그룹 모임은 다양한 모습과 형태를 가질 수 있습니다. 이에 비해 위에 소개한 형식은 단순하게만 느껴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소그룹 모임이 하나님의 함께하심을 체험할 수 있는 이런 시간을 정기적으로 가진다면 삶 속에서 하나님과 보내는 시간이 늘어나는 지체들의 모습을 점점 많이 보게 될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예배가 예배 장소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삶의 영역까지 침투하는 모습을 보게 될 것입니다.

* 이 글은 새들백교회에서 소개한 기본적인 소그룹 인도방식을 번역, 각색한 글입니다.

Tuesday, March 12, 2013

‘사실’은 리더의 친구 - 리더십 네트워크 63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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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교회에 대대적인 개혁을 감행하여 급진적인 변화의 길을 걷고 있는 교회가 있다. 바로 한국에도 잘 알려져 있는 윌로크릭 교회이다. 
 이 교회는 2008년 이후 지금까지 계속 몇 가지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우선 이원화되어 있는 예배 모델을 없애고, 수요 예배를 강의식 형태로 바꾸었고, 주일 예배에도 중대한 변화를 단행했다. 그리고 20년이 넘게 가지고 있던 소그룹의 목표를 다시 설정하고 소그룹 전략을 변경했다.

 모든 교인들에게 기본적으로 매일 성경을 읽는 훈련을 요구하고, 지역 공동체를 섬기는 일에 더 많은 에너지와 물질을 투자하기 시작했다. 꾸준히 변화를 시도한 결과 현재 윌로크릭 교회에는 다음과 같은 변화가 생겨났다.
  1. 성경을 읽고 묵상하는 교인들의 비율이 35퍼센트 증가하여, 이 항목에 대한 윌로크릭의 수준이 다른 최고의 모범 교회들과 같아졌다.
  2. 주일 예배에 대한 교인들의 만족도가 모든 단계의 성도들에게서 골고루 상승했다. 이 예배들이 자신들의 영적 성장에 도움이 된다고 말하는 교인 수가 전체적으로 29퍼센트 많아졌다.
  3. 영적 삶에서 성장하고 다음 단계로 나아가도록 도전하는 교회의 역할에 대한 만족도가 27퍼센트 증가했다.
  4. 성도들의 영적 성장을 돕는 교회의 역할에 대한 전체적인 만족도가 34퍼센트 증가했다.
 윌로크릭 교회의 변화는 설문조사 결과가 보여준 ‘사실’을 받아들이면서 가능했다. 그 과정에 대해서 잠시 알아보자. 

 빌 하이벨스 목사는 교회에서 처음 설문조사가 시작된 이유는 윌로크릭 교회가 제공하는 다양한 활동과 프로그램 가운데 어떤 것이 성도들의 영적 성장에 가장 큰 도움이 되는지를 알아보는 것이었다.
 설문조사 결과를 가지고 기존의 다양한 사역들을 면밀히 재조정해서 좀 더 많은 사람들의 신앙을 성장시키는 데 도움을 주려고 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조사결과가 보여준 ‘사실’은 윌로크릭 교회가 가지고 있던 몇몇 핵심 전제들에 의문점을 남겼다고 한다.

 설문조사가 보여준 ‘사실’은 다음과 같은 내용을 포함하고 있었다. 전체 교인 중 18퍼센트의 사람들이 영적으로 침체된 상태에 있으면서도 그 상황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모르고 있고, 아예 교회를 떠날 생각을 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가장 성숙하고 열정적인 성도들은 더 깊은 신앙의 세계로 나아가고 더 큰 도전을 받고 싶어 했지만, 다음 단계로 성장하는 일에 교회가 그리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사실’을 보고받은 담임목사는 얼마나 힘들었을까가 상상된다. 한 기관의 리더가 자신이 추구하고 생각하고 있는 기관의 모습과 실제로 달성한 바가 상이하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만큼 힘든 일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빌 하이벨스 목사처럼 이러한 ‘사실’을 받아들이는 길만이 원래 리더가 추구하고자 했던 그 본질을 더 확실히 이룰 수 있는 첫걸음이 된다는 것을 간접 경험했다. 그리고 ‘사실’을 바로 직시하기 위해서는 윌로크릭 교회와 같이 정확한 측정 도구를 가지고 교회를 진달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윌로크릭 교회는 자신들의 교회를 진단했던 동일한 측정도구를 가지고 미국 내 1,000여개 교회의 25만 명 이상의 성도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했고 그 결과를 가지고 중요한 책을 발간했다. 

 바로 국제제자훈련원에서 최근 출간한 <무브_영적 성장에 대한 1,000여개 교회들의 증언>이라는 책이다. 이 책을 설문조사는 아직 실시하지 못하여도 이러한 책자를 통하여 교회를 올바로 바라볼 수 있는 시각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사실’은 리더의 친구라고 말하는 빌 하이벨스 목사의 말은 한 교회를 이끄는 목회자들이 귀담아 들어야 할 명언이다. 

Saturday, March 9, 2013

영성훈련의 일곱가지 방법

http://www.disciplen.com/resource/mail/now2.asp?m_mode=rn&v_msid=701&m3_No=2&page=78

많은 목회자들과 평신도 지도자들을 만나고, 또 다양한 목회현장을 방문하여 대화를 나누면서 확인하게 되는 진리는 ‘리더십의 중요성’입니다. 목회의 환경이나 토양 등은 다양하지만 열매맺는 사역의 중심에는 언제나 좋은 지도자가 있습니다. 좋은 리더십이 없이 성공적인 사역이 이루어진다는 것은 정말 기적과 같은 일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자신이 좋은 지도자가 되는 것과 좋은 지도자를 발굴하고 훈련시켜 지도자로 세우는 것은 너무도 중요한 일입니다.

물론 어떤 지도자가 좋은 지도자 인지 한마디로 정의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시편에 기록된 바처럼 ‘성실함과 그 손의 공교함“의 균형을 갖춘 지도자라고 표현할 것입니다. 깊은 영성과 참된 목자의 심정을 소유한 지도자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사실 어느 것 하나도 놓칠 수 없는 것들입니다. 한마디로 정의할 수 없다 할찌라도 우리가 어떠한 리더십을 지향하고 있는지를 분명히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스스로에게 한번 물어보십시오. 그리고 그것이 어떻게 드러나고 있는지, 지향함의 증거로 지금 하고 있는 일은 무엇인지 물어보시기 바랍니다.

목회자의 리더십을 이야기할 때, 특별히 제자훈련 인도자로써의 리더십을 이야기 할때 ‘영성훈련’은 빼놓을 수 없는 주제라고 생각합니다. 영성의 깊이를 가지지 않고서는 사람들을 제대로 섬길 수가 없습니다. 성도들의 인격과 삶에 하나님의 흔적을 남기기 어렵습니다.

 저는 게리 토마스의 책 ‘뿌리 깊은 영성은 흔들리지 않는다’를 매우 인상깊에 읽었습니다. 한번 읽어버리고 말 책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그 책에서 지금까지 잊혀졌거나 등한시된 영성훈련의 일곱 가지 방법을 다음과 같이 정리하고 있습니다.

1. 경건한 책 읽기

믿음에서 성숙해 가기를 원한다면 성숙한 시각에서 우리 보다 앞서 고민하고 이 주제에 대해 글을 쓴 사람들에게 눈을 돌리는 것이 좋습니다. 우리가 그들의 신학에 100% 동의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의 글은 우리 가슴에 헌신과 열정의 불길을 타오르게 해 줄 것입니다. 우리 영혼에게 ‘거룩한 열심이 타오르게 할 수 있는 고전작가’들을 찾아보십시오. 그들은 우리에게 깊이 있는 통찰력을 제공해 주는 좋은 친구가 될 수 있습니다. 제가 개인적으로 고전읽기를 권하는 또다른 이유는 이 시대가 너무나 분주한 시대라는 것입니다. 경건한 책들은 우리로 멈춰 서서 보다 중요한 것들을 볼 수 있도록 도움을 줍니다.

2. 훌륭한 본보기들을 본 받기


무엇인가를 배울 수 있는 영적인 만남은 중요합니다. 제게는 영적으로 도전을 주는 그런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과 이메일을 주고 받거나 대화를 나누고 나면 내 영혼이 소생하는 느낌이 들 때도 있고, 목표를 향해 달려가고자 하는 열정이 생기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러한 만남을 소중히 여기십시오. 동시에 내가 다른 사람들에게 본보기가 되는 것 또한 우리의 소명임을 잊지 마십시오.

3. 덕목을 기르기


성경은 우리가 성령의 일에 협력해야한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전 원래 그래요”라는 말은 겸손의 고백이 아니라 게으름의 고백입니다. 아빌라의 테레사의 말처럼 덕을 기르고 행하는데 애쓰지 않으면 성장하지 않는데서 멈추지 않고 퇴보하게 될 것입니다.

4. 불편함을 활용하기


불편함을 꺼리는 우리의 태도를 극복해야 합니다. 때때로 우리는 편안한 길을 택하지 않고 훈련함으로써 우리의 열정과 습관을 새롭게 형성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진정으로 성장하기를 원하는 사람에게 불편함은 적이 아니라 친구일 수 있습니다.

5. 진리를 몸에 적용하기


훈련의 궁극적인 목표는 진리를 우리 삶에 적용하는 것입니다. 몸에 우리를 맡기면 우리는 하나님께 멀어지게 됩니다. 단지 바르게 행동한다고 마음이 깨끗해지는 것은 아니지만, 율법주의의 위험 때문에 진리가 우리 안에서 살아 움직이게 하는 훈련을 포기하면 안됩니다. 외적행위들의 주인이 되는 것은 마음의 내적 상태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몸의 주인이 되느냐 몸이 우리의 주인이 되느냐에 따라 몸은 우리의 친구도 적도 될 수 있습니다.

6. 일찍 일어나기


역사적으로 일찍 일어나는 것은 그리스도인들의 영적 훈련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해 왔습니다. 일찍 일어나는 것은 효율성 이상의 의미는 가집니다. 게리 토마스는 젊은이들을 훈련 시키면서 가장 골치 아픈 문제들은 저녁 늦은 시간에 일어난다는 것을 발견했다고 말합니다. 훈련된 스케쥴은 실제로 죄를 없앨 수 있으며, 우리 마음과 삶에서 죄를 제거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로우는 이렇게 말합니다. “지나친 수면은 영혼을 느슨하고 게으르게 만듭니다. 그리고 그 게으름은 자신을 부인하는 영, 곧 그리스도의 영, 그 분의 사도들의 영, 모든 성도들과 순교자들의 영과는 너무나 대조됩니다”

7. 되돌아 보면서 살기


지혜로운 사람, 성숙한 사람들은 자신을 돌아봅니다. 자기반성, 자기성찰이야말로 영적훈련의 핵심적인 요소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규칙적인 자기 성찰은 세월을 허송하지 않도록 도와줄 것입니다.
헌신이 없이 목표는 성취되지 않습니다. 우리에게 거룩한 목표가 있다면 우리는 그것을 추구해야하며, 그 추구함의 과정에는 헌신이 필요합니다. 그리스도인의 영성은 일깨워진 마음으로 모든 것을 드림으로써 하나님의 자비에 반응하는 은혜의 영성임을 잊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자비에 올바르게 반응하기 위해서 우리는 훈련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잘 훈련되는 만큼 우리는 더 건강한 삶을 살 수 있으며, 우리의 사역도 건강하고 풍성해 질 것입니다. 우리 자신을 세우는 일, 이것은 놓칠 수 없는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Tuesday, February 19, 2013

소그룹 네트워크 - 364호 - 좋은 질문들로 경청하십시오!(국제제자훈련원)


좋은 질문들로 경청하십시오!

소그룹을 인도할 때 중요한 것 중 하나는 경청입니다. Robert L. Montgomery는 경청의 가장 보편적인 특징들을 다음과 같이 제시하였습니다.
  1. 말하는 사람의 얼굴을 바라본다.
  2. 무엇을 말하는지 명확하게 하는 질문을 한다.
  3. 말하는 사람의 느낌에 대해 질문을 하면서 관심을 표현한다.
  4. 말하는 사람을 몰아붙이지 않는다.
  5. 차분하게 감정을 유지하며 듣는다.
  6. 고개를 끄덕이거나 미소를 지으면서 상대방에게 반응한다.
  7. 말을 중간에 자르거나 끼어들지 않는다.

위 경청의 특징 중 질문과 관련된 것이 두 개나 됩니다. 이 말은 경청을 잘하는 사람은 곧 좋은 질문을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좋은 질문을 통해 효과적인 대화를 이끌어갈 수 있 을뿐더러 말하고 있는 사람들에 대해 더욱 잘 알 수 있게 됩니다.

소그룹을 인도하다 보면 모두가 긴 대화를 나눌 만큼 시간이 길지 않습니다. 그래서 가끔은 인도자가 적절한 때에 자연스럽게 영적인 주제로 대화를 이끌어갈 필요가 있습니다. 좋은 질문들을 통해 대화의 주제를 영적인 문제로 연결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어린 시절에 관해 이야기 하고 있다면, 이렇게 질문할 수 있을 것입니다. “어린 시절 교회에 대해 어떤 기억이 있으신가요?” “어린 시절 교회에서 가장 즐거웠던 추억은 무엇인가요?”

또한, 배경, 감정, 태도, 관심, 궁금증과 필요 등의 질문을 통해 사람들은 대화 주제에 집중할 뿐만 아니라 그들의 경험들을 분류하고 그들의 생각과 느낌들을 분석할 수 있게 됩니다. 그런 질문들을 통해 인도자 역시 중요한 사실들을 얻을 수 있습니다. 흔히 사용하는 육하원칙을 이용하여 좋을 질문들을 만들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어떤 것에 적대감을 가지고 있는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면 다음과 같이 질문할 수 있을 것입니다.
  1. 언제부터 이렇게 느끼셨나요?
  2. 당신이 이렇게 느끼게 된 데에 가장 크게 영향을 미친 경험은 무엇인가요?
  3.  당신은 그 경험에 그렇게 반응하셨나요?
  4. 이 상황에 당신에게 가장 도움이 되는 사람은 누구인가요?
  5. 당신은 어디서 이런 느낌을 많이 갖게 되나요?
  6. 이 문제에 대해 지금까지 어떻게 대처해 왔나요?
위와 같은 질문들을 통해 인도자는 그룹원들을 이해할 수 있을뿐만 아니라 그룹원들도 자신을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좋은 질문들로 경청할 때 그룹원들은 소그룹 내에서 마음을 오픈하기가 편해질 것입니다. 그렇게 될 때 보다 더 역동적인 소그룹을 기대할 수 있습니다.

* 이 글은 Doug Self의 “Good Questions Show Good Listening”(SmallGroups.com)을 번역 및 각색한 것입니다

Monday, January 28, 2013

성공적인 소그룹 만들기 - 363호 - 성공적인 소그룹 만들기(소그룹 네트워크)

교회 안에서 소그룹을 인도하는 지도자들은 누구나 성공적인 소그룹을 원한다. 그러나 성공적인 소그룹을 위해 어떻게 시작해야 하는 지를 모르고 소그룹을 시작하고 진행하는 경우가 많다. 단지 교회 안에 소그룹이 필요하고 있어야 하기 때문에 하는 것이다. 성공적인 소그룹을 만들기 위해서는 다음 3가지를 가장 먼저 점검해야 한다.
1.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 
성공적인 소그룹을 만들려면 여러 가지 방법을 잔뜩 모아 놓은 것 이상이 필요하다. 성공적인 소그룹은 단지 올바른 방법을 제때에 적용한다고 해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성공적인 소그룹을 위해 최우선 순위에 두어야 할 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와의 개인적인 관계에서 성장하는 것이다. 올바른 지식과 방법은 하나님과 동행한 이후에야 생길 수 있다. 소그룹을 인도하기 위한 가장 좋은 준비는 하나님과 교제를 발전시키고 삶 가운데서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깨어 있는 것이다. 소그룹 사역은 예수 그리스도와 얼마나 친밀한 교제를 나누며 성령의 인도하심에 얼마나 민감히 깨어 있느냐에 달려 있다. 그리스도께서 최우선 순위에 있어야 한다. 소그룹은 관계 속에서 일어나는 것이기에 교회 안에서의 소그룹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먼저 바르게 세워져 있지 않으면 성공적인 소그룹으로 갈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소그룹 인도자는 소그룹을 시작하기 전에 자신이 얼마나 그리스도와 친밀한 관계 속에 있는가를 늘 점검하며 나아가야 하는 것이다.
2. 올바른 소그룹 사역의 동기 
소그룹의 동기가 무엇인지를 정확히 알고 있어야 한다. 무엇을 위해 소그룹을 하는가에 대한 답을 인도자는 분명히 가지고 있어야 한다. 교회 안의 소그룹의 동기는 무엇인가? 바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한 것이다.(골3:17) 교회 안의 소그룹 인도자들은 이 점에 있어서 정직히 자신을 돌아 볼 수 있어야 한다. 성공적인 소그룹을 통해 교회의 외적 성장을 바라거나 자신의 성공에 대한 성취감을 기대하고 있다면 잘못된 동기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많은 소그룹 지도자들이 자기도 모른 사이에 자신의 능력으로 소그룹을 성공시키고 성공적 수행에 대한 주목과 찬사를 받고 싶어한다. 교회 안의 소그룹 인도자는 늘 이점에 대해 주의하여야 한다. 그리스도께서 영광을 받으시기 위한 동기를 가진 소그룹이 되어야 할 것이다.
3. 소그룹의 목적과 목표설정 
교회 안의 소그룹은 그 소그룹이 존재하는 목적과 목표가 분명해야 한다. 소그룹을 통해서 무엇을 성취하고 싶은 지에 대해 분명해야 한다. 이것이 없이 행동의 방향을 정한다는 것은 매우 어리석은 일이다. 왜냐하면 목적과 목표가 없으면 방향이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목적과 목표는 어떻게 다른 것인가?
목적은 그룹이 왜 존재하는가에 대한 문제이다. 그룹이 어떤 이유로 만나고 그룹의 초점이 무엇인지를 말하는 것이다. 너무도 당연히 있어야 할 것으로 보이지만 상당수의 소그룹들이 분명한 목적 없이 진행되고 있다. 소그룹의 목적은 대개 그 그룹의 유형에 잘 반영되어 있다. 대체로 4가지 유형의 그룹이 있다. 과정중심의 소그룹, 내용중심의 소그룹, 과업중심의 소그룹, 필요중심의 소그룹이다.
과정중심의 소그룹은 그룹 멤버 상호간의 관계발전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주로 교제를 위한 그룹들이다.
내용중심의 소그룹은 새로운 지식과 정보를 배우고 토의하는 위한 그룹이다. 성경공부를 위한 그룹이 예가 된다.
과업중심의 소그룹은 그룹이 함께 어떤 일이나 책임을 완수하는 것으로 대개 사역이 그 대상이 된다. 위원회나 부서 그리고 전도 팀 등이 예가 된다.
필요중심그룹은 그룹멤버들이 공통적인 필요를 채우기 위한 그룹으로 회복과 치유를 위한 소그룹이 예가 된다.
목표는 목적과 연관하여 구체적으로 성취하기를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것이다. 소그룹이 함께 추구하는 과정 속에서 만들어지는 “측정 가능한 결과”이다. 소그룹의 최종적인 목적을 이루기 위해 눈에 보이는 단계적 목표들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기간적으로 언제까지, 분량적으로 얼마나에 대한 분명한 목표가 있어야 하는 것이다.
이렇게 소그룹이 하나님과의 관계를 최우선 순위에 두고, 소그룹에 대한 올바른 동기를 가지며, 소그룹의 목적과 목표를 분명히 하는 것은 성공적인 소그룹을 위한 첫걸음이 될 것이다.
* 이 글은 닐 F. 맥브라이드의「성공적인 소그룹 만들기」의 일부를 발췌 각색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