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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ursday, April 11, 2013

하나님이 사용하시는 사람들은 누구인가? - 국제제자훈련원

http://www.purposedriven.co.kr/mailService/list.asp?m_Type=QT&LMCode=6&MMCode=2

하나님은 자신의 죄를 고백하는 사람들을 사용하신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준비함이 되리라” (딤후 2:21)
하나님은 모든 종류의 그릇을 사용하신다. 큰 것이든 작은 것이든, 장식이 있는 것이든 없는 것이든, 매우 값진 것이든 평범한 것이든 다 사용하신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사용하시지 않는 그릇이 한 가지 있는데, 바로 더러운 그릇이다. 따라서 하나님께 쓰임 받으려면 정화를 해야 한다.
여호수아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너희는 자신을 성결하게 하라. 여호와께서 내일 너희 가운데에 기이한 일들을 행하시리라.” (수 3:5) 사실 하나님은 당신의 미래에도 위대한 일을 행하기 원하신다. 그러나 먼저는 과거를 청산해야 한다. 어제의 일을 깨끗이 씻어내야 한다.
그것은 어떻게 가능할까? 바로 고백을 통해서이다. 어거스틴은 이렇게 말했다. “악한 일에 대한 고백은 선한 일의 시작이다.” 이는 과거를 더듬어봄으로써 시작할 수 있다. 성경은 말한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요일 1:9)
나는 처음으로 ‘죄 목록’을 만들었던 때를 결코 잊지 못한다. 당시 나는 하나님께서 너무나 멀리 계신 것처럼 느껴졌다. 그분의 권능도 그분의 은혜도 느낄 수 없었다. 내 기도가 천장에 부딪쳐 돌아오는 것만 같았다. 그래서 어느 날 밤 나는 종이를 꺼내 들고 이렇게 말했다. “하나님, 저와 하나님 사이에 있는 죄를 모조리 보여주십시오. 그러면 그것을 구체적으로 적겠습니다. 저는 구체적인 죄를 저질렀고, 그것을 구체적으로 고백하겠습니다. 하나님과 함께, 지금 당장 그것을 처리하여 없애겠습니다.”
나는 쓰기 시작했다. 쓰고 또 썼다. 마치 ‘목적이 이끄는 죄인’이라는 한 권의 책을 쓰기라도 할 기세로 말이다! 마침내 죄의 목록은 9페이지쯤에서 끝났다. 새벽 두 시였다. 나는 모든 죄를 하나님께 고백하고 각각의 죄 위에 요한일서 1장 9절 말씀을 적었다.
나는 그날 밤 이후로도 여러 번 ‘죄 목록’을 만들어야 했다. 우리와 하나님 사이에 죄가 비집고 들어오기란 매우 쉽기 때문이다.
깨끗한 그릇이 되어 하나님께 드려져 사용되려면 정기적으로 죄의 목록을 만들어야 한다. 집안의 쓰레기를 한 달에 한 번만 버리면 온 집안에 퀴퀴한 냄새가 나기 시작할 것이다.
다음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보자.
  • 당신이 마지막으로 ‘특정한’ 죄를 하나님께 고백한 것은 언제였는가?
  • 죄의 목록을 만들 때, 당신이 기억나는 것, 또는 기억나는 것의 수에 있어 어떤 점에 놀라게 되는가?

하나님은 ‘건강 증진의 원칙’을 실천하는 사람을 사용하신다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고전 6:19-20)
‘봉헌(sanctify)’은 무언가를 하나님께서 그분의 뜻대로 사용하시도록 바치는 것을 뜻한다. 집을 들어 “하나님, 이 집을 당신께 드립니다.”라고 말할 수도 있고, 차를 들어 “하나님, 이 차를 당신께 드립니다.”라고 말할 수도 있다. 무엇이든 그것을 들어서 하나님께서 그분 뜻대로 사용하시도록 바치는 것이다.
성경은 이렇게 말한다.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고전 6:19-20)
하나님은 모든 종류의 그릇을 사용하시지만, 우리의 그릇이 순수하고 깨끗하고 건강하길 바라신다. 하나님께 쓰임 받으려면 좋은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 당신의 몸(즉, 그릇)이 하나님이 사용하시도록 봉헌될 때, 그것은 하나님이 부르신 뜻을 행하기에 가장 좋은 상태에 있어야 한다. 성경은 말한다. “주의 손이 나를 만들고 세우셨사오니 내가 깨달아 주의 계명들을 배우게 하소서” (시 119:73)
하나님은 건강 증진의 원칙을 세우셨다. 즉 식사와 운동, 그리고 수면의 균형을 맞추라고 하신다. 좋은 건강을 유지하려면 이 세 가지가 다 필요하다.
하나님은 당신을 통해 위대한 일을 행할 수 있도록, 당신이 영적으로 건강한 것처럼 육체적으로도 건강하기 바라신다.
다음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보자.
  • 당신의 수면 습관은 어떠한가? 때때로 당신이 할 수 있는 가장 영적인 일은 잠자리에 드는 것이다.
  • 당신은 살기 위해 먹는가 아니면 먹기 위해 사는가? 당신의 식사 습관은 영적 건강에 어떤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하는가?
하나님은 단순화된 삶을 사는 이들을 사용하신다
“…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며” (히 12:1b)
하나님의 목적을 위해 사용되고자 할 때, 우리는 삶을 집중시켜야 한다. 성경은 인생을 마라톤에 비유하는데, 이는 우리가 삶을 단순화해야 함을 뜻한다.
성경은 말한다.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며” (히 12:1b)
이는 우리를 방해하고 저지하게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든 삶에서 제거해야 한다는 뜻이다. 사탄은 우리를 무너뜨리지 못한다면 우리를 바쁘게 만들 것이다. 심지어 ‘선한 일을 하느라’ 너무 바쁜 나머지 ‘최선의 일’을 할 시간을 못 내게 할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은 삶을 단순화하라고 말하는 것이다. 우리는 삶에서 불필요한 짐을 버려야 한다. 모든 것을 다 하려고 애쓰지 마라. 가장 중요한 것을 하라. 충실한 주자는 경주에 집중한다.
“하나님의 목적을 위해 살고 싶은 생각이 간절하지만, 시간이 없어요.”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그들이 시간이 없는 이유는 삶을 단순화하려는 데 시간을 내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음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보자.
삶을 단순화하지 못하게 방해하는 것들은 수없이 많다. 다음 중 당신의 주의를 분산시키고 삶을 단순화하지 못하도록 막는 것은 무엇인가?
  1.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대로 되려고 하는 대신 다른 사람들과 같이 되려고 노력하는 것
  2.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하려고 노력하는 것
  3. 다른 사람들이 제멋대로 정한 기대에 부응하려고 애쓰는 것
  4. 너무 많은 취미 또는 한 취미에 너무 많은 시간을 쏟는 것
  5. SNS, 블로그 등의 소셜미디어, 인터넷, 영화, 또는 TV
  6. 잘못된 종류의 관계
  7. 과거의 실수
하나님은 믿음을 견고히 하는 사람들을 사용하신다
“그 후로는 다시 사람의 정욕을 따르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육체의 남은 때를 살게 하려 함이라” (벧전 4:2)
당신은 믿음을 견고히 하기 위해 어떻게 하는가? 믿음을 강화하는 데는 몇 가지 방법이 있다.
성경을 연구하라. 우리는 하나님 말씀을 삶의 일부로 만들 필요가 있다. 하나님 말씀은 계시된 것이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을 다 할 수 있도록 우리를 온전히 준비시킬 것이다.
경건의 시간(QT)을 지속하라. 요즘 당신의 경건의 시간은 어떠한가? 어떤 사람들은 이 질문에 죄책감을 느낄지도 모른다. 그것은 아마도 누군가가 오래 전에 가르쳐준 대로 경건의 시간을 가지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그 방법이 하나님께서 자신을 지으신 방식과 맞지 않기 때문일 수도 있다. 당신이 매일 하나님 말씀 안에서 일정한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신앙 서적을 읽으라. 다른 신자들로부터, 가능한 한 모든 것을 배우라. 다른 신자들이 한 이야기들을 계속해서 영혼에 공급하라. 혼자서만 성경을 연구하고 다른 신자들이 그에 대해 하는 이야기를 듣지 않는다면, 다른 신자들의 지혜와 경험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것을 얻지 못한다.
간증거리를 새롭게 하라.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삶에 무엇을 행하고 계신가? 당신이 가장 마지막으로 간증거리를 쓴 때는 언제인가? 간증거리를 쓰면, 하나님께서 그것을 나눌 수 있는 기회를 주실 것이다. 다른 사람들과 간증거리를 나눌 때, 우리의 믿음은 강화된다.
신자들의 소그룹 모임에 성실하게 참여하라. 성경은 우리가 “피차 권면하고 서로 덕을 세우기를” 힘써야 한다고 말한다. (살전 5:11a) 우리는 믿음의 마라톤을 경주하고 있으며, 함께 뛰어야 한다. 우리는 다른 신자들의 지지와 격려가 필요하다.
다음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보자.
  • 정기적인 성경 연구를 위한 당신의 계획은 무엇인가?
  • 소그룹과 이야기를 나눠보고, 훌륭한 신앙 서적의 목록을 만들어보라.
  • 이번 주에 시간을 들여 당신의 간증문을 써보라. 길게 쓰지 않아도 된다. 그리고 몇몇 크리스천 친구들에게 그것을 보여주라. 그들은 당신이 진정 말하고자 하는 것에 초점을 맞출 수 있도록 도와줄 것이다.
  • 소그룹 내에서 서로를 격려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보라.




하나님은 그분을 향한 열정이 있는 사람들을 사용하신다
“배역한 자식들아 돌아오라 내가 너희의 배역함을 고치리라 하시니라. 보소서 우리가 주께 왔사오니 주는 우리 하나님 여호와이심이니이다.” (렘 3:22)
가장 마지막으로 하나님을 향한 갈망을 느꼈던 때가 언제였는가? 하나님과의 친밀함을 너무나 간절히 원해서 모든 것을 버려두고 하나님을 좇을 정도로, 하나님을 너무나 갈망해서 메마르고 거친 광야에서도 줄곧 그분을 따를 정도로 갈망했던 때 말이다. (렘 2:2)
당신도 나와 같다면 당신은 아마도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하나님, 그런 사랑은 인간적으로 불가능한 것 같습니다!”
당신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면, 당신 생각이 맞다. 우리는 우리 안에 예수님이 계셔야만 하나님 사랑의 초자연적인 신비로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다. 하나님은 당신 안의 욕구를 변화시키실 수 있다. 즉, 하나님은 당신 안에 깊고 헌신적인 사랑의 불꽃을 다시 살리실 수 있다.

하나님을 향한 열정을 잃어버렸다면, 그것을 되찾는 방법은 어떻게든 그 사랑의 수준에 도달할 때까지 더 열심히 노력하는 것이 아니다. 열정을 되찾는 방법은 당신을 깊은 헌신의 모습으로 돌아오게 하는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하는 것이다. (렘 2:2)
하나님은 우리의 방탕한 본성을 용서해주실 것이다. 그리고 우리의 무딘 믿음을 고쳐주실 것이다.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배역한 자식들아, 돌아오라. 내가 너희의 배역함을 고치리라.”
이때 우리의 반응은 다음과 같아야 한다. “보소서, 우리가 주께 왔사오니 주는 우리 하나님 여호와이심이니이다.” (렘 3:22)
다음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보자.
  • 당신은 하나님을 향한 자신의 열정을 어떻게 묘사할 수 있겠는가?
  • 하나님께서 우리의 무딘 믿음을 고쳐주실 거라면, 하나님을 향한 깊은 열정으로 돌아오지 못하도록 우리를 막는 것은 무엇인가?
하나님은 거룩한 열정을 다른 이들에게 전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을 사용하신다
“좋은 일에 대하여 열심으로 사모함을 받음은 … 언제든지 좋으니라” (갈 4:18)
하나님은 열정적인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은 열정적으로 어떤 것을 사랑하시고 열정적으로 다른 것을 미워하신다. 하나님께 더 가까이 갈수록, 하나님은 당신이 세상에서 그분의 대변인이 될 수 있도록 하나님이 깊이 마음 쓰시는 것에 대한 열정을 당신에게 부어주실 것이다.
그것은 문제에 대한 열정일 수도 있고, 목적, 원칙, 또는 사람들에 대한 열정일 수도 있다. 그것이 무엇이든 당신은 그것에 대해 소리 내어 말하고, 변화를 일으키고자 하는 열망에 휩싸일 것이다.
사람들은 자신이 가장 관심을 갖는 것에 대해 말하지 않고는 못 배긴다. 예수님은 “마음에 가득 찬 것을 입으로 말하는 법이다.”라고 말씀하셨다. (마 12:34, 새번역)
이에 대한 좋은 예가 두 가지 있다.
  • “주님의 집에 쏟은 내 열정이 내 안에서 불처럼 타고 있습니다.”라고 말한 다윗. (시 69:9, 새번역)
  • “주님의 말씀이 나의 심장 속에서 불처럼 타올라 뼛속에까지 타들어 가니, 나는 견디다 못해 그만 항복하고 맙니다.”라고 말한 예레미야. (렘 20:9, 새번역)
하나님은 어떤 사람들에게는 대의를 위해 싸우고자 하는 거룩한 열정을 주신다. 그것은 종종 학대, 중독, 불임, 우울증, 질병, 또는 다른 역경처럼, 자신이 개인적으로 경험한 문제가 된다.
때때로 하나님은 스스로 목소리를 낼 수 없는 사람들을 위해 소리를 낼 수 있는 열정을 주시기도 한다. 태아, 박해 받는 사람, 가난한 사람, 감옥에 갇힌 사람, 학대 받는 사람, 불우한 사람, 공평한 대우를 받지 못하는 사람 등.
성경은 방어 능력이 없는 사람들을 보호하라는 명령으로 가득 차 있다.
하나님은 열정적인 사람들을 사용하셔서 그분의 왕국을 발전시키신다. 하나님은 당신에게 새 교회를 시작하거나, 가정을 견고히 하거나, 성경 번역 사역에 자금을 공급하거나, 크리스천 리더를 훈련시키고자 하는 거룩한 열정을 주실 수도 있다. 또는 사업가, 십대 청소년, 외국인 교환학생, 젊은 엄마, 또는 특정한 취미를 가진 사람들처럼 특정 부류의 사람들에게 복음을 들고 나아가고자 하는 거룩한 열정을 주실 수도 있다.
또, 하나님께 여쭤본다면, 하나님은 강한 크리스천 증인을 간절히 필요로 하는 구체적인 나라 또는 민족을 향한 마음의 짐을 지워주실 것이다.
하나님은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서 이루시고자 하는 모든 것이 이뤄지도록 우리에게 서로 다른 열정을 주신다. 우리는 남들도 자기의 열정에 대해 똑같이 열정적이 되기를 기대해선 안 된다.
오히려 우리는 서로의 삶의 메시지를 귀 기울여 듣고 소중히 여겨야 한다. 모든 것을 다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절대 다른 누군가의 거룩한 열정을 경시해선 안 된다.
성경은 말한다. “좋은 일에 대하여 열심으로 사모함을 받음은 … 언제든지 좋으니라” (갈 4:18)
다음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보자.
  • 하나님은 당신에게 어떤 열정을 주셨는가?
  • 현재 당신은 그 열정을 추구하기 위해 무엇을 하고 있는가?
  • 당신은 하나님께서 당신이 그분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무언가를 더 많이 또는 다르게 하기를 바라신다고 믿는가?
  • 당신은 친구와 가족의 거룩한 열정을 어떻게 도울 수 있겠는가?
===
결국은 선택의 문제였다
===
하나님께서는 당신을 오래 전에 선택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오래 전에 여러분을 선택하셨고, 그분의 거룩한 백성으로 삼기로 계획해 놓으셨습니다.” (벧전 1:2, 쉬운성경)
좌절은 찾아온다. 좌절은 늘 우리를 찾아온다. 어쩌면 당신은 관계의 어려움이나 경력의 정체, 또는 질병 같은 것 때문에 좌절감을 느끼고 있을지도 모른다.
좌절이 찾아오면, 다음 한 가지를 확신하며 안도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 당신을 그분의 가족으로 삼기 위해 선택하셨다는 것이다. 당신이 하나님을 선택하기 오래 전에, 하나님께서 당신을 선택하셨다!
베드로전서 1:2은 이렇게 말한다. “하나님께서는 오래 전에 여러분을 선택하셨고, 그분의 거룩한 백성으로 삼기로 계획해 놓으셨습니다.” (쉬운성경)
하나님은 당신이 뭔가를 했기 때문에 당신을 선택하신 게 아니다. 당신을 선택하신 것은 하나님이 ‘그런 분’이시기 때문이다. 당신은 하나님께서 구원하실 만큼 선하지도, 똑똑하지도, 경건하지도 않았다. 하나님이 당신을 구원하신 것은 그분이 당신을 사랑하시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복음이다 - 진정 복된 소식인 것이다! 이것이 바로 당신의 전 생애의 토대가 되어야 할 복음이다.
하나님의 가족이 되기 위해 한 것이 아무 것도 없기에, 당신은 그것을 잃을 방도가 없다. 베드로전서 1:3은 이렇게 말한다. “하나님은 자비로우셔서, 우리에게 산 소망을 주셨습니다. … 우리는 새 생명을 받은 것입니다.” (쉬운성경)
하나님의 가족이 되는 것은 당신의 행위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비에 의한 것이다. 우선 당신은 하나님의 가족이 될 자격이 없었다. 또한 지금도 그럴 자격이 없다. 오직 우주의 창조주께서 “네가 내 가족이 되길 바란다”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다음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보자.
  • 자신이 틀림없는 하나님의 가족이라는 사실을 알 때, 삶에 대한 당신의 태도와 관점은 어떻게 바뀌겠는가?
  • 오늘 당신이 하나님의 견고한 사랑과 안아주심 속에서 안도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하나님께서 당신을 사용하실 수 있도록, 의심을 버리라
“…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약 1:6-7)
삶 속에서 자기회의에 빠지게 하는 것에는 다음 두 가지가 있다.
1. 남과 능력을 비교하면 자신의 능력을 의심하게 된다. 이는 하나님은 바라보지 않고 다른 사람들을 바라보기 시작하는 것이다. 다른 이들에게 더 많은 재능, 능력, 학력, 또는 경험이 있다고 생각한다. 자기 자신을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는 순간, 우리는 자기 회의에 가득 차게 된다.
성경은 자신을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는 것이 어리석다고 말한다. (고후 10:12) 하나님은 당신이 다른 누구와도 비교하길 원치 않으신다. 하나님은 당신이 고유한 존재로 있길 원하신다. 당신이 당신답길 바라신다.
2. 과거의 실패를 떠올리면 자신의 능력을 의심하게 된다. 과거의 실패를 떠올리는 것은 마치 그간의 모든 실수에 관한 영화를 머릿속에 집어넣고 그것을 되풀이하여 재생하는 것과 같다. 그것은 자신에게 엄청난 고문이다.
하나님은 당신이 과거에 초점을 맞추길 원치 않으신다. 과거의 실수에 계속 얽매어있으면, 현재를 제대로 살아갈 수 없으며, 하나님은 그러한 당신을 미래에 사용하실 수 없다. 하나님은 과거를 잊으라 말씀하신다.
과거의 의심이나 죄 때문에 하나님께 쓰임 받을 기회를 놓치지 마라. 하나님은 “네 과거가 어떻든, 난 상관 없다. 난 널 사용하고 싶다!”라고 말씀하신다.
다음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보자.
  • 당신은 하루에 몇 번이나 자신이 가진 것, 성취했거나 성취하지 못했던 것, 또는 보여지는 모습을 다른 사람과 비교하는가?
  • 당신은 하나님께서 그 허비했던 시간 대신 무엇을 이루시길 바라는가?

Thursday, January 10, 2013

한 날 묵상 - 갈 6:17-18 <내가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지니고 있노라>

한 날 묵상 - 갈 6:17-18 <내가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지니고 있노라>

1. "그 청년 바보 의사, 안수현" 그는 진정 그의 몸에 예수의 흔적을 남긴 사람이다. 그 섬김의 모습을 통해 우리는 진정 그리스도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2. 우리도 우리 몸에 예수 그리스도의 흔적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떠난 자리에도 예수의 흔적이 남아한다. 우리의 걸음 걸음이 곧 그리스도의 흔적이 남는 발걸음이 되어야 한다.

3. 바울은 진정 그러한 사람이었다. 그가 걷는 곳곳모다 그리스도의 흔적들이 남겨졌다.

4. 갈라디아 교회에 주는 편지에서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흔적만이 남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5. 예수 그리스도의 흔적이란 바로 성령의 열매이다. 육체적인 일을 버리고 오직 성령의 열매만을 율법 아래 놓이지 않고 자유한 인생들에게 기대할 수 있는 것들이다.

6. 바울은 자기의 육체를 위한 심는 인생이 아니라 오직 성령을 위하여 심는 인생을 살아 왔다.

7. 그리고 이제 마지막 갈라디아 성도들에게 편지하면서 오직 나는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지니고 있노라"고 말하고 있다.

8. 사실, 바울 자신의 육체에 흔적이 있었다. 유대인이며, 율법 아래 있던 자로서 흔적이 뚜렷이 남겨져 있었다.

9. 그러나 이제 자신에게 이러한 흔적은 아무 것도 아니며, 바울 자신에게아무 유익도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결코 그러한 것들을 자랑하지 않는다고 말하고 있다.

10. 바울 자신에게 남아 있는 흔적이란 오직 예수의 흔적 뿐이었다. 그래서 그는 말한다.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외는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바울의 자랑인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뿐이다.

11. 이제는 이러한 할례나, 율법 아래 있는 문제로 더 이상 고민할 필요도 없을 뿐 아니라, 이 문제로 인하여 괴로워할 필요도 없었다.

12. 갈라디아 서신을 통해 그의 인생 뿐 아니라, 복음의 진수를 깔끔하게 정리하였기 때문이다.

13. 우리도 그렇다. 바울을 본받아, 이제 오직 우리 몸에 남아 있어야 할 흔적은 십자가, 예수의 흔적 뿐이다.

14. 결코 다른 것이 우리의 흔적이 되어서는 안된다.

15. 현시대의 다른 복음인 "번영 복음", "탐욕의 복음"이 우리의 흔적이 되어서는 안된다.

16. 세상은 "정욕과 탐심"(갈 5:24)을 좇아 자기 이기주의, 물질주의로 자신의 온 몸의 흔적을 남긴다 할지라도, 복음의 진리는 그렇지 않다.

17. 오직 하나님의 뜻 안에서,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닮아 나도 그렇게 거룩하여지는 일에 내 믿음의 목표를 두어야 한다.

18. 바울은 골로새서 1장 24절에서 이렇게 고백한다. "나는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

19. 우리안에 예수의 흔적이 남을 때, 우리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 우리 심령 가운데 차고 넘치게 될 것이다.

20. 세상의 어떠한 것을도 맛볼 수 없으며, 채울 수 없으며, 공급받을 수 없는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내 심령안에 가득하게 된다.

21. 이것뿐이면 족한 인생이 그리스도인의 인생이다. 믿음의 경주를 하는 인생이다.

22. 그 이상, 다른 어떤 것도 아닌, 오직 그리스도의 은혜만을 내 심령안에 가득 채울 수 있는 은혜가 우리 안에 차고 넘치기를 소망한다.

23. 결코 다른 복음은 없습니다. 결코 다른 것을 내 몸에 남길 수 없습니다.

24. 오직 복음, 오직 예수, 오직 십자가 뿐입니다.

25. 할렐루야. 아멘.

=====
17절 "이 후로는 누구든지 나를 괴롭게 하지 말라"

       "내가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지니고 있노라"


18절 "형제들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너희 심령에 있을지어다"

       "아멘"

참고 - 골로새서 1장 24절
"나는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



* "스티그마 - 흔적"
 카엘레온은 영국 웨일즈 지방에 있는 역사적으로 뿌리가 깊은 마을입니다. 로마가 영국을 점령하였을 당시 로마 군단이 영국에 주둔하였던 세 장소 중 한 곳입니다. 로마군대의 주둔은 약 1500년 전에 끝났지만, 그들이 점령했던 흔적은 오늘날에도 볼 수 있습니다. 로마가 세계를 지배하고 웨일즈를 점령했던 당시를 상기시켜 주는 성곽, 병영, 원형경기장 등을 보기 위해 세계 곳곳에서 사람들이 관광을 옵니다. 이 작은 마을에 로마군대가 존재했었다는 증거들을 15세기가 지난 아직까지 매우 분명하게 볼 수 있다는 사실이 나에게는 신기하게만 느껴집니다.
 
* 흔적이란 헬라어로 “스티그마”입니다. 이는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 표시를 의미합니다. 예를 들면 소나 나귀 등에 자기 소유를 표시하기 위하여 불로 지졌습니다. 불로 지져서 죽을 때까지 지워지지 않는 표시가 되었습니다. 심지어는 어떤 노예에게 이마에 노예 표시를 하였다고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흔적’이라는 말은 고대 사회에서 주인이 노예에 대한 자신의 소유권을 나타내기 위해 노예의 몸에 찍는 낙인을 뜻하는 말입니다.
 
나포레옹 군대는 독일군을 포로로 잡아서 마구 죽였습니다. 그러나 예외가 있었습니다. 팔뚝에 나폴레옹을 상징하는 "N"이라는 글자를 불로 지져 나폴레옹에게 충성을 맹세하면 살려 주었습니다. 바울의 영혼에는 불로 지진 흔적보다도 더 강한 흔적이 있습니다. 다메섹에서 만난 예수 그리스도가 그의 영혼에 각인이 되었습니다. 그의 흔적이 사울을 바울 되게 한 것입니다.
 
*[흔적(痕迹)] - 하원택
 
갈보리 산 위에 십자가 흔적은 아니어도
주님 주신 가슴 아린 흔적은 가졌노라
스데반 같은 순교자의 흔적은 아니어도
성령의 감동으로 무릎적신 흔적은 지녔노라
엘리야가 외친 기적의 흔적은 아니어도
작은 것에 감사의 눈물을 흘릴 수 있는 흔적은 지녔노라
 
주님이 주시는 흔적은
내가 감당 할 수 있는 흔적이고
주님이 주시는 흔적은
내가 주안에 있는 흔적이고
주님이 주시는 흔적은
내가 주님의 자녀인 확증의 징표이다.

* 티그마라는 헬라어 단어는 ‘스티조’라는 동사에서 나온 것인데 이 스티조라는 단어는 ‘문신을 새기다’ 혹은 ‘날카로운 도구로 표시를 하다’라는 뜻입니다. 특별히 이 스티그마는 고대 헬라 세계에서 뜨거운 쇠도장으로 몸에 새긴 문신이나 표시를 의미했습니다. 이 스티그마가 뭐냐하면 쇠로 도장을 만들어서 뜨겁게 달구어서 몸에 대면 도장이 찍히잖아요. 이런 도장이나 문신을 스키그마라고 그랬는데 이 스티그마를 어떤 사람에게 찍었느냐면 물건을 훔치거나 도망간 노예들에게 찍었습니다. 이것이 부끄러움의 수치였습니다. 수치의 표시였습니다.
 
고대 중국에서도 어떤 죄를 지으면 혹은 중대한 죄를 지으면 그 얼굴에다가 도장을 찍어버려요. 그냥 도장이 아니라 쇠로 달구어서 찍어버려요. 그 도장이 새겨져 버리죠. 찍어버리기 때문에 사람들마다 그것을 보면 저 사람이 어떤 사람인 것을 금방 아는 것이죠. 이 문신이 스티그마입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을 따르려면 성령께 민감한 삶을 살려면 반드시 이 수치의 표시를 가져야 합니다. 능욕을 져야합니다. 주님을 따라는 삶에 이것이 포함됩니다.

* 1세기에 사용되던 ‘흔적’(痕迹, 스티그마)이란 단어의 배경을 살펴보면 몇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당시 로마나 헬라 사회에서 노예제도가 보편적이었는데, 노예들의 이마에 주인의 이름을 화인으로 만들어서 찍은 흔적이 있었습니다. 이 경우는 그 노예가 상전의 소유물이라는 사실을 표시한 것입니다.

두 번째 배경은 로마의 군인들이 자기 사령관의 흔적을 이마에 받은 적이 있다고 합니다. 이 경우는 사령관의 명령에 절대 복종하겠다는 표시가 되겠습니다. 

또 다른 배경은 당시에 억울하게 죄인으로 몰려 박해받는 사람이 로마의 신전에 들어가서 보호를 받게 되면 신전의 흔적을 이마에 받습니다. 이 사람은 아무나 함부로 손을 대어 해치지 못하도록 보호됩니다.



Monday, January 7, 2013

한 날 묵상 - 갈 6;11-16 <할례라, 율법이 아닌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의 십자가에 외는 결코 자랑할 것이 없다>

한 날 묵상 - 갈 6;11-16 <할례나, 율법이 아닌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외는 결코 자랑할 것이 없다>

1. 우리는 특별히 더 내 세울 것이 있는 사람들을 선호하는 듯 합니다. 그래서 더욱 열심히 공부하거나 자신의 스팩을 쌓기에 노력합니다.

2. 요즘 출세하는 사람들의 면면을 보면, 일반적으로 좋은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많습니다. 공부를 많이했거나, 능력이 있거나, 아니면 누군가가 뒤에서 밀어준다거나 하는 것 말입니다.

3. 새로운 2013년은 새로운 정부가 출발합니다. 새 술은 새부대에 담아 함다고 표현들 합니다. 그래서 수 많은 자리가 새로운 사람으로 채워지게 될 것입니다.

4. 그렇다면, 누가 그 자리에 주인이 되어야 할까요? 앞서 말한 면면히 화려한 사람들만으로 채워질 수 있을 것입니다.

5. 저게 바램이 있다면 정말 필요한 사람이, 그 자리에 잘 할 수 있는 사람이 그 자리의 주인이 되었으면 합니다.

6. 모든 사람을 포용하고, 품을 수 있는 사람이면 좋겠습니다. 거기에 그 자리에 충분히 일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사람이라면 금상첨화이겠지요.

7. 그렇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정말 필요한 사람이 그 자리에 앉는 것이 아니라, 임명권자를 잘 대변해 줄 수 있는 사람을 그 자리에 앉히는 것이 더욱 현실적입니다.

8. 초대교회에 있어서 유대인들은, 자칭 할례받은 자들에게는 특권의식이 있었습니다. 여전히 태어날 때부터 구별된 자로 선택받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말입니다.

9. 그들은 늘 자신의 혈통을 자랑했습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과는 다르다 말하곤 했습니다.

10. 바울은 지금 이게 아주 크게 잘못되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갈라디아 지역의 교회에 보내는 편지가 바로 이 내용입니다.

11. 오늘 본문은 바울의 갈리다아 여러 교회에 편지를 쓰면서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핵심의 요지를 정리하여 마지막 간곡한 부탁을 하고 있습니다.

12. 우리의 진짜 자랑은 혈통이 아니다. 율법이 아니다. 할례가 아니다.

13. 우리의 진짜 자랑은 14절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는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14. 오직 십자가이다. 이는 15절 "할례나 무할례가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새로 지으심을 받는 것만이 중요하니라"

15. 할례자나 무할례자나 모두가 다 새로 지음 받은 것만이 오직 중요할 뿐이다는 것입니다.

16. 믿음의 사람들에게 자랑은 오직 복음입니다. 십자가외에는 결코 자랑할 것이 없습니다.

17. 기독교인으로 출세하려고 합니다. 믿음으로 복받으려고 합니다.

18. 믿음의 크기가 출세가 부에 있다고 착각을 합니다. 그래서 나는 출세했기에, 부자이기에, 믿음이 좋다고 자랑하려고 합ㄴ디ㅏ.

19. 그러나 이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20. 복음은 우리에게 부나 출세를 주는 것이 아니라 평강과 긍휼의 마음을 줍니다. 그래서 없어서 평안할 수 있고, 있으면 나누어주려고 합니다.

21. 16절 "무릇 이 규례를 행하는 자에게와 하나님의 이스라엘에게 평강과 긍휼이 있을지어다"

22. 이 말씀은 십자가의 복음을 믿는 자들과 약속의 민족 이스라엘에게 함께 평강과 긍휼이 있겠다는 뜻이다.

23. 이는 먼저 십자가 복음만이 구원의 유일한 길임을 선포하는 것이다.

24. 또한 구약 이스라엘에게 약속된 선택 받은 민족이라는 의미도 결국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안에서 임을 강조하고 있다.

 사도행전 1장 8절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 되리라 하시니라"

 마태복음 24장 14절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언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


25. 우리 안에 십자가외에는 결코 어떠한 다른 자랑이 없기를 바랍니다.

26. 오늘도 십자가 복음만을 사랑합시다.

참고) 예레미야 9장 23-24절
"지혜로운 자는 그의 지혜를 자랑하지 말라...."




Tuesday, January 1, 2013

한 날 묵상 - 갈 6: 6-10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가 아니라, 성령을위하여 심는 자가 되라, 이를 위해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고 포기 하지 말자 때가 이르면 기쁨으로 단을 거두게 된다>

한 날 묵상 - 갈 6: 6-10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가 아니라,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가 되라, 이를 위해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고 포기하지 말자 때가 이르면 기쁨으로 단을 거두게 된다>

1. 지금 힘들다. 금식 2일차. 유혹은 더 심해진다. 진짜로 초콜릿 하나 먹고 싶다. 바로 앞에 초콜릿이 산더미다. 그런데 어떠하리? 좀 더 참아보자.  힘들어 글이 잘 써지지 않는다. 귀찮다. 뭐 금식 2일차 가지고 말할 수 있다. 그래도 난 처음이다. 첫경험이다. 그러니 힘든 것 이해해 주세요. 글이 이쯤해서 여긴 그냥 순서대로 마무리 하겠습니다.

2. 6절 "가르침을 받는 자는 말씀을 가르치는 자와 모든 좋은 것을 함께 하라"
표준새번역 "말씀을 배우는 사람은 가르치는 사람과 모든 좋은 것을 같이 나우어야 합니다"

3. 가르침을 받는 자는 말씀을 가르치는 자의 좋은 것을 잘 받도록 하라. 엘리사와 엘리야의 스승과 제자의 관계에서 갑절의 은혜를 구하는 엘리사처럼 가르침을 받는 자들은 그러한 자세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영적인 것 또한 훈련이 필요하다.

4. 7절 "스스로 속이지 말라". 정말 나에게 묻고 싶은 말이다. 목사로 진정 목사의 역할을 잘 하고 있는가? 잘하고 있다고 스스로 속고 있지는 않는가? 열정과 열심으로 최선을 다한다고 스스로 속고 있는지 않는가? 할 말이 참으로 많다.

5. 그리스도인들이 이 부분에 관해서는 스스로 정직하게 점검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스스로 속고 있는 그리스도인척하며 살아가고 있을 수 있다.

6. 스스로 속이는 것은 이어서 나오는 7절 "하나님은 업신 여김을 받지아니하시나니"과 관련이 있다.

7. 하나님은 이 둘을 철저히 구별하여 보고 계신다. 자기를 위하여 심으면서도 하나님을 위하여 심는다 말하는 자는 아닌가? 자기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인가? 심령을 위하여 심는자인가?

8. 우리의 열매는 아주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7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는 말씀에 따라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아주 특별한 경우란 하나님의 개입과 간섭이시다. 하나님께서 특별히 훈련을 하시기 위해 그렇게 하실 수 있다는 말씀이다.

9. 결국 우리는 8절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두고"

10. 또한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는 말씀에 따라 열매를 맺고 있다.

11. 그래서 마태복음에서 예수님은 그들은 열맬로 알리는 말씀을 주셨다. 마 7장 20절 "이러므로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12. 8절 말씀이 2012년을 보내고, 2013년을 시작하는 나에게 귀한 깨달음을 주었다.

13. 2012년 보내며, 2013년을 시작하면서 3일 금식기도를 하고 있다. 내 평생에 3일 금식은 처음이다. 하루 금식이나, 하루에 한끼, 두끼 금식은 해 보았어도, 3일 금식은 처음이다. 앞으로 7일 금식까지 하고 싶다. 아마 2011년 때의 생각이었다. 나도 하루를 넘어, 3일 금식을 할 수 있을까? 그리고 나아가 일주일 금식을 할 수 있을까?

14. 그런데 오늘 2013년 1월 1일 오후 1시이다. 오늘 오전부터 지금까지 드는 생각은 점차 유혹이 온다는 것이다. 먹을 것이 천지다. 연말을 보내면서 맛있는 초콜릿부터 새해 첫날이니 떡국 먹는 아이들까지, 눈을 들어 주변을 보니 먹을 것이 널려 있다.

15. 지금 드는 생각은 이틀만 할까? 커피는 괜찮겠지? 하나 쯤은 괜찮지 않을까?
 이런 저런 생각이 드면서 찾아오는 생각은 "누구를 위한 금식인가?"하는 것이다.
 혹 금식을 한다 하면서 하나님을 업신 여기지 않는지 생각해 본다.

16. 이번 금식의 목적은 다른 것에 있는 것이 아니다. 특별한 목적을 두고 하는 것도 아니다. 2013년 더욱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이 기뻐하실 뜻을 잘 분별하여 살아가고자 하는 마음 뿐이다. 

17. 하루 금식하며 드는 생각들은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자. 오직 하나님만이 나의 유일한 도움이시다. 하나님을 찾고 구하는 생각들이 많다.

18. 물론 시간을 때우기 위해 이런 저런 인간적인 일들을 하는 것도 있지만, 그 와중에 문득 찾아오는 주님을 향한 마음들이 참으로 고맙다. 참으로 감사하다.

19. 간절히 바라가니 나의 3일 금식, 그리고 앞으로 금식이 내 자신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것이 아니길 바랄 뿐이다. 금식이 훈장이 되지 않고, 금식이 철저히 하나님께 순복하는 순간이며 여정이며 과정이기를 갈급할 뿐이다.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가 되어 성령의 열매를 더욱 풍성히 맺고자 한다.

20. 금식의 기간동안 순간 순간 하나님을 만나는 그 때에 하나님이 주신 생각들로 나의 삶을 채우고 나의 비전을 세우고자 한다.
 그리고 이러한 시간에 주신 고귀한 생각들을 꼭 행할 수 있기를 원한다.

21. 이게 바로 9절에서 이어지는 말씀이 아닐까 한다. 9절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22. 자기 육신을 위하여 심는 것이 아니라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들의 선한 행위는 반드시 때가 되면 거두게 되어 있다는 것이다.

23. 여기서 중요한 말씀이 때가 되면이다. 그래서 때가 찰 때까지 결코 그 일을 함에 있어서 "낙심하거나",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

24. 하나님의 주시는 선한 마음이 우리 안에 차고 넘치게 되어 있다. 애써 들으려 하지 않고 거부하지 않고 무시하지 않는다면, 내 영안이 깨어 있다면, 즉 믿음이 있고, 성령이 내 안에 있어서 매일의 삶이 성령충만의 삶이면, 내 안에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선한 행동을 깨닫게 될 것이며, 그를 행해야 한다는 말씀이다.

25. 우리는 선한 행위가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갈라디아서 5장에서 나오는 말씀과 6장 초반부에 나오는 말씀을 통해서 잘 알고 있다.
 무엇보다 "서로 짐을 나누어 질 수 있는 선한 행위"를 기억하고자 한다. 고아와 과부를 섬기는 자가 되기를 원한다.

26. 2013년 새해맞이 예배를 드리고 오면서, 아내가 자신이 뽑은 올해의 말씀을 들려주었다. 구제와 관련 말씀이었다.
 잠언 11장 25절 "구제를 좋아하는 자는 풍족하여질 것이요 남을 윤택하게 하는 자는 자기도 윤택하여지리라"

27. 그 말씀을 들으면서 갈라디아서 6장 말씀을 묵상하고 있는 요즘 다시 한 번 이 일 위해 힘쓰는 것이 하나님이 나에게 주시는 성령을 위하여 심는 선한 일임을 직감하게 되었다.

28. 이러한 선한 행위를 하기를 원한다. 앞으로 사역의 방향으로 잡고 나아가길 원한다.
 기독교세계관 공부를 하면서 쓰게 된 페이퍼에서 "교통"이라는 부분이 있었다. 그 때 진정한 교통이 서로 삶을 나누며 섬기는 삶임을 깨닫게 되었다. 구약에서 주시는 메시지, 신약의 초대교회, 그리고 바울의 서신서에서, 성경은 줄기차게 그들을 섬기며 사랑하라 말씀하고 있다.

29. 10절 '그러므로 우리는 기회 있는 대로" 

30. 바울도 권면을 하고 있다. 이런 일을 함에 있어서 "기회 있는 대로" 하라고 말씀하고 있다.   할 수 있는대로 많이 해야 합니다. 할 수 있는 최선과 최대로 또한 해야 합니다. 늘 마음에 우리는 이러한 일을 향한 "거룩한 부담감"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이러한 거룩한 부담감이야말로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들의 마음입니다.

31. "모든 이에게 착한 일을 하되"

32.  모든 이에게 하라고 한다. 우리의 선한 행위의 손이 미치지 못할 곳이 없습니다. 우리의 손이 안갈 곳 또한 없습니다. 성령이 주시는 대로 순종하며 살아갈 때 온 세상이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가득하게 될 것입니다.

33. "더욱 믿음의 가정에게 할지니라" 표준새번역 "특히 믿음의 식구들에게는 더욱 그렇게 합시다"

34. 특별히 믿음의 가정을 먼저 살피라고 말씀하고 있다. 이 말씀이 참으로 마음에 와 닿는 말씀이다. 지난 주간 한 밤중에 깨닫는 것이 있어서 글을 적어 본 것이 있다. 기회가 되면 전체적으로 글을 올릴 날이 있을 것이다.

35. 가제는 이렇다. "나는 지난 10여년 비정규직이었다"
 내가 지난 교회의 사역자로 10여년을 돌아보니 절처히 나는 약자였다. 그런데 참으로 감사한 것은 그대로 지금까지 살아 왔다는 것이다. 그리고 철저히 교회와 성도의 도움을 받았다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앞으로 그러한 생활이 계속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제도적으로, 구조적으로 문제가 있다. 앞서 갈 6장 2-5절에서 나눈 것처럼 구조적으로, 제도적으로 나와 같은 사람을 도울 수 있어야 한다.

36. 교회안에는 나와 같은 사람들이 참으로 많다.

37. 그들은 사회생활에서 철저히 비정규직이다. 파트파임이다. 언제 나락을로 떨어질지 모르는 사람들이다. 그들을 도우며 섬길 수 있는 곳이 교회이다. 특히 믿음의 가정에게 그렇게 하라는 말씀은 그들을 섬기며 도우는 선한 행위 뿐 아니라, 구조적으로, 제도적으로 그들이 일어설 수 있는 도움을 교회가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38. 이러한 모습들은 여러 교회에서 실제적으로 하고 있다.

39. 말씀을 마치면서 새해를 시작하면서 이만열 교수님 쓰신 페이스북의 내용을 첨부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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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새벽에 문정식 목가님이 시무하시는 교회의 영신(迎新)예배에 참석, 사도행전 20장 35절의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는 말씀에 의거하여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요>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었다. 다음은 그 나눈 말씀의 부분 부분이다.

세상 사람들은 의를 행하면 귀하게 되고 명예를 얻게 된다고 가르칩니다. 실제로 의를 위해 고난을 받은 많은 사람들이 지상에서 그 보상을 받은 것을 보아 왔습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의를 행하다가 핍박을 당하는 것, 바로 그것이 복이라고 했습니다. 의를 위해 고난을 받으면 큰 보상을 받을 것이기 때문에 복되다고 가르치지 않습니다. 의를 위해 핍박을 받는 것 자체가 복이라고 했습니다. 하늘나라의 상급을 믿는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오늘날까지 남겨진 선한 역사와 전통은 보상받지 않고 죽어간 많은 의로운 자들의 희생의 결과이기도 합니다. 얼마나 많은 독립운동가들이 이름없이 죽음을 당했습니까. 우리가 오늘날 이만큼 사는 것은 그들 이름없이 죽어간, 의를 위해 핍박을 당하며 사라진 거룩한 이들의 희생의 은덕 결과입니다. 그러기에 성경은 우리에게 보상없이, 의를 위해 핍박을 받는 것이 복되다고 언명합니다. 그렇게 살도록 요구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복을 언급하다보면 복음서에서 언급하지 않은 복이 하나 있습니다. 오늘 읽은 사도행전 20장 35절의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는 그 복입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산상보훈에서 언급한 8복 외에 새로 추가된 복입니다. 이것은 나눔의 복이요, 주는 복입니다.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는 이 복은,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서 가장 먼저 제시한 ‘가난한 자가 복이 있다’는 이 복을 실천하는 대안적 방법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소유하고 더 얻는 것을 복되다고 합니다. 거기에 대해 이 말씀은 소유와 탐욕 중심의 복의 정의를 달리 할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받는 것과 주는 것, 그 사이에서 더 복된 것은 받는 것이 아니라 주는 것이라고 강조합니다. 얻는 것보다 주는 것, 베풂을 당하는 것보다 베푸는 것이 더 복되다고 합니다.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는, 주님께서 친히 하신 이 말씀은 세상 사람들이 갖고 있는 소유 중심의 일상적인 복 관념을 뒤집어(顚倒)버립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복에 대해 세상 사람들과는 달리 생각해야 한다고 명령합니다. 이렇게 함으로,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남에게 주고 가난을 실천하는 자가, 많이 가진 자보다 복되며, 많이 가지려고 탐욕을 부리는 자보다 훨씬 복된 삶이 가능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가난한 자가 오히려 부자보다 더 부자가 될 수 있는 기막힌 반전(反轉)이 여기서 가능하게 됩니다. 우리의 소유는 내 맘대로 쓰기 위해 하나님이 주신 것이 아닙니다. 소유란 땅 위에서 그것을 관리하도록 맡긴 위탁물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관리하는 청지기입니다. 청지기는 주인의 소유를 위탁받은 사람입니다. 청지기가 가진 소유는 제 때에 나누고 관리하기 위해 주인이신 하나님께로부터 위탁받은 물건에 불과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것을 움켜쥐고 자기 것인양 유세를 부리고 있는 것은 청지기의 취할 태도가 아닙니다.


세상은 많이 가진 자가 있음으로 풍요롭게 되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베푸는 자가 있음으로 넉넉하게 됩니다. 경제성장을 약속하면서 출발한 이 정권이지만 삶은 더 팍팍해졌고, 새해는 더 어려워질 것이라는 전망들을 내 놓고 있습니다. 이럴 때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는 말씀을 실천해야 합니다. 이것이 멍들어가는 공동체를 생명으로 이끄는 길입니다. 초대교회가 실천하여 세상 사람들로부터 칭송을 받은 나눔의 생활화를 실천하는 것입니다.


모든 것은 나누면 작아집니다. 특히 저급한 가치는 그렇습니다. 그러나 고급가치는 나눌 수록 불어납니다. 예술과 문화와 학문과 사상은 나눌 수록 커져 가고 불어납니다. 사랑과 희망, 위로와 평화도 나누면 나눌수록 더 커지는 것입니다. 물적 가치도 사랑으로 나누면 5병2어의 기적을 불러옵니다.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는 말씀을 실천하는 것은 나눌수록, 줄수록 더 커지는 기적을 가져오게 됩니다. 


하나님의 속성(屬性)은 사랑과 정의라고 합니다. 이것은 저울의 양 추와 같이 평형을 이루고 있습니다. 인간은 사랑과 정의의 균형을 이루기가 힘듭니다. 인간에게서 거의 불가능한 이 두 개를 동시에 이루는 것이, 주는 것과 나누는 것을 통해서 가능합니다. 나누고 주는 것은 사랑의 실천이요, 정의가 요구하는 균형을 이루기 위한 몸부림입니다. 정의는 균형을 토대로 하기 때문에, 나누는 것, 주는 것은 사랑과 정의를 동시에 만족시키는 것입니다. 주는 것, 나누는 것의 극치라고 할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하나님의 속성인 사랑과 정의는 동시에 만족될 수 있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부자의 정의를 새롭게 해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많이 가진 사람을 부자라 이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많이 베풀 수 있는 자, 많이 줄 수 있는 자가 부자입니다. 세상에는 많이 가졌지만 남에게 베풀지 못하는 가난한 이들이 많습니다. 가진 것은 많을지 몰라도 나누지 못하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서는 가난한 자입니다. 그와 반대로 많이 가지지는 못했지만 남에게 베풀기를 좋아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가난하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부자입니다. 우리가 많이 갖지는 못했을지라도, 베풀 수 있는 신앙인이 될 때, 또 베풀려고 노력하는 신앙인이 될 때, 부자가 됩니다. 하나님이 우리로 하여금 많이 베풀 수 있도록 끊임없이 공급해 주실 것이라고 약속했기 때문입니다.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는 말씀을 끊임없이 실천하려고 할 때, 온 우주를 소유하신 하나님은 당신의 아들딸들이 더 잘 줄 수 있도록, 더 잘 베풀 수 있도록 늘 공급해 주실 것입니다. 우리는 이 약속을 믿습니다. 이 약속을 믿는 것이 기독교 신앙이요, 그리스도인입니다. 


“새해 복많이 받으십시요”라고 할 때 정녕 받아야 할 복은 바로 이 복입니다.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는 이 복입니다. 많이 가지지는 못했을지라도 많이 베풀 수 있는 자가 되는 이 복입니다. 이 복을 실천할 때 그리스도인은 복을 공급하고 복을 나누는 복의 중보자가 될 수 있습니다.



40. 2013년 나의 표어 "기쁨으로 단을 거두리로다"

41. 아멘. 기쁨으로 참으로 많은 열매를 거둘 수 있는 한 해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42. 우리 모두 그러한 은혜가 있는 한 해가 되기를 간절히 축복합니다.

43. 오늘은 한 날 묵상이 아니라 한 해 묵상이었습니다.

44. 날마다 매일 기쁨으로 단을 거두는 은혜를 묵상하기 원합니다.

45. 할렐루야. 아멘.
       
                                         2013. 1. 1. 오후 4시 10분 금식2일차


Monday, December 31, 2012

한 날 묵상 갈 6: 2-5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

1.삶의 짐이 너무 힘겨운 사람들이 있다. 참으로 많다. 그들을 그대로 방치하는 것이 세상의 법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법은 무엇인가?

2.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 바울은 갈라디아 교회에 은혜로 믿음을 가진 자들, 그들은 성령의 열매를 맺는 것을 통해서 믿음 있는 자임을 알 수 있다는 것을 권면한다....

3. 이는 또한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주신 지상명령이다.

4. 이 명령을 잘 수행하느냐가 결국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는 길이기도 하다.

5. 바울이 갈라디아 교회에 주고 있는 그리스도의 법은 무엇이며, 어떻게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해야 하는가?

6. 바울은 갈6장 2절에서 이렇게 말씀하고 있다. "너희가 짐을 서로 지라" 그리함으로,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

7. 우리가 그리스도의 법 하면 생각나는 말씀이 있다.

8. 그리스도의 법(가장 큰 계명, 마22장 37-39절)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재 되는 계명이요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9. 달란트 비유(마태복음 25장 14-30절)
   21, 23절 "그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하고"

10. 냉수 한 그릇(마10장 40-42절)
   "또 누구든지 제자의 이름으로 이 작은 자 중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사람이 결단코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11. 3절 "만일 누구든지 아무 것도 되지 못하고 된 줄로 생각하면 스스로 속임이라"

12. 먼저 문득 생각나는 것이 이렇다. 그리스도의 제자가 아니면서 스스로 속아 나는 그리스도의 제자라고 생각한다.

13. 제자 어떻게 알 수 있나? 갈라디아서에서 말하는 육체의 일을 버리고 성령의 열매를 맺는 삶이다. 또한 마태복음 7장 15-27절에서 말씀하고 있는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는 말씀을 알 수 있다. 20절 "이러므로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14. 나는 그리스도의 제자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진정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이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있는가? 만일 내가 그리스도의 제가가 되지 못하고 된 줄로 생각하고 있다면 이는 내가 지금 스스로 속고 있다는 것인데, 어떻게 그리스도의 제자가 된 줄 알 수 있을까?

15. 2절에서 말씀하고 있는,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그리스도의 법의 성취란 "너희가 짐을 서로 지라"는 말씀이다.

16. 4절 "각각 자기의 일을 살피라"
  1) 내가 지금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고 있는지 자신을 살피라.
  2) 내가 지금 스스로 속임당하고 있지는 않은지 자신을 살피라.

17. 4절 표준새번역 "각 사람은 자기 행실을 살펴보십시오 그러면 자기에게는 자랑거리가 있더라도, 남에게까지 자랑할 것은 없을 것입니다"

18. 스스로 자신을 살피면 결코 다른 사람에게 자신을 자랑할 수 없다. 자기의 그릇을 잘 알 수 있기 때문이다.

19. 5절 표준새번역 "사람은 각각 자기 몫의 짐을 져야 합니다"
  "각각 자기의 짐을 질 것이라"

20. 서로 짐을 지기에 앞서 먼저는 각각 자기의 짐을 먼저 지는 것입니다. 이는 자신을 먼저 살펴볼 필요가 있다는 4절의 말씀과 이어지는 말씀입니다.

21. 게으른자는 먹지도 말라. 자신의 일에 먼저 최선을 다하라. 자신의 할 수 있는 달란트대로 최선을 다하는 삶이 먼저이다.

22. 그럼에도 불구하고 짐을 나누져야 할 사람이 있다. 개인적으로, 제도적으로, 정치적으로, 문화적으로, 국가적으로 제도를 만들고 도와주어야 한다.
 성도와 교회와 국가 모두가 함께 이 일에 열심을 다해야 한다.

23. 우리가 그렇게 하도록 하자.

24. 참고로, 어제 글을 다 써두었는데, 오늘 실수로 글을 전부 달리며 기초적인 자료에 근거해서 다시 글을 이었다. 내용도 맞지않을 것이다. 그런데 이 글은 이대로 두고 싶다.

* 참고 - 게으른자
창03:17 너는 종신토록 수고 하여야 그 소산을 먹을 것이라
창03:19 네가 얼굴에 땀을 흘려야 식물을 먹고
전10:18 게르른즉 석가래가 퇴락하고 손이 풀어진즉 집이 새느니라
잠06:06 게으른자여 개미에게 가서 그 하는것을 보고 지혜를 얻으라
시128:02 네가 네손이 수고 한대로 먹을 것이라
잠10:04 손을 게으르게 놀리는자는 가난하게 되고 손이 부지런한자는 부하게 된다
잠11:16 유덕한 여자는 존영을 얻고 근면한 남자는 재물을 얻는니라
잠12:24 부지런한자의 손은 사람을 다스리게 되어도 게으른자는 부림을 받느니라
잠12:27 게으른자는 그 잡을 것도 사냥하지 아니 하나니 사람의 부귀는 부지런 한 것이니라
잠13:04 게으른자는 마음으로 원하여도 얻지 못하나 부지런한자의 마음은 풍족함을 얻는다
잠19:15 게으름이 사람으로 깊이 잠들게 하나니 해태한 사람은 주릴것이라
잠19:24
잠26:15 게으른자는 그 손을 그릇에 넣고도 입으로 올리기를 괴로와 한다.
잠20:04 게으른자는 가을에 밭갈지 아니 하나니……구걸 할찌라도……
잠20:13 너는 잠자기를 좋아하지 말라 네가 빈궁하게 될까 두려우니라
네 눈을 뜨라 그리하면 양식이 족하니라
잠21:05 부지런한자의 경영은 풍부함에 이를 것이나 조급한자는 궁핍
잠22:13
잠26:13 게으른자는 말하기를 사자가 밖에 있은즉 내가 나가면……찢기겠다……
잠23:21 잠자기를 즐겨하는 자는 헤어진 옷을 입는다
잠26:14 문짝이 돌쩌귀를 따라 도는 것같이 게으른자는 침상에서 구으느니라
살후03:10 누구든지 일하기 싫어 하거든 먹지도 말라



Friday, December 28, 2012

한 날 묵상 - 갈6:1 <은혜와 사랑안에 거하는 성령에 속한 사람들은 죄의 꾀임에 넘어간 지체를 볼 때 사랑과 온유함으로 그들을 바라볼 뿐 아니라, 그들에게 드러난 범한 죄악들을 거울삼아 자신을 비춰보도록 해야 한다>

한 날 묵상 - 갈6:1 <은혜와 사랑안에 거하는 성령에 속한 사람들은 죄의 꾀임에 넘어간 지체를 볼 때 사랑과 온유함으로 그들을 바라볼 뿐 아니라, 그들에게 드러난 범한 죄악들을 거울삼아 자신을 비춰보도록 해야 한다>

1. 성령의 사람은 성령으로 행할것을 갈라디아서 5장에서 말씀하고 있다.

2. 갈라디아서 6장을 시작하면서 바울은 갈라디아 교회의 형제들에게 "사람이 무슨 범죄한 일이 드러나거든" 그 일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에 구체적으로 말씀하고 있다.

3. 세상의 죄는 만연하고 있다. 때론 성령의 사람도 넘어지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목사라고, 교회의 직분자로, 성령의 뛰어난 은사를 선물로 받았다고 예외가 결코 될 수 없다.

4. 이 땅에 속하여 살아가는 인생 여정에는 언제나 육체의 일은 생각보다 나에게 가까이 있을 뿐 아니라, 실제로 그렇게 살아가고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5. 결국 우리는 갈5장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성령의 사람으로 육체의 일을 버리는 믿음의 삶을 살아도록 늘 깨어 있어야 한다.

6. 아울러 6장 1절에서 말씀하고 있는 "범죄한 일이 드러난 사람들"을 어떻게 관용해야 하는지 분명히 기억해야 한다.

7. 죄는 미워하데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

8. 나쁜 행실은 죄의 영향아래 있기 때문에 드러나는 일이다. 죄의 영향아래 있지 않고 늘 성령안에 깨어 있도록 나를 살피고, 범죄한 사람을 권하여야 할 것이다.

9. 1절 "형제들아 사람이 만일 무슨 범죄한 일이 드러나거든" 이들을 교회와 성도는 어떻게 해야 할까?

10. 1절 이어서 말씀하기를 "신령한 너희는 온유한 심령으로 그러한 자를 바로잡고 너 자신을 살펴보아 너도 시험을 받을까 두려워하라"

11. 오늘 본문 1절 말씀을 묵상하면서 생각나는 말씀이 있다.

12. 참고하면 좋을 것 같다.  참고) 마태복음 7장 1-6절 <네 눈 속에 들보를 빼어라>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13. 참고) 고린도전서 4장 21절 "너희가 무엇을 원하느냐 내가 매를 가지고 너희에게 나아가랴 사랑과 온유한 마음으로 나아가랴"

14. 보다 구체적으로 말씀을 살펴보자. 나는 어떻게 죄를 범한 자들을 바라보아야 하는가?

15. 첫번째는, 1) 신령한 자가 되어라.
 나는 첫번째로 말하고 싶다. 먼저 늘 신령한 자가 되어야 한다. 세상속에서 이는 그 무엇보다 우선이며 가장 필요로 하는 것이다. 신령한 자가 되지 않은 충고나 권면이나, 사람들과의 관계는 늘 약함이 드러나게 되어 있다. 그렇다면 완벽히 신령한 자가 될 때까지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지 말라는 것이 아니다. 그 만큼 신령한 자가 되는 것이 무엇보다 가장 우선이다는 것을 가르치고 있다.
 신통한 사람이 아니라, 신령한 사람, 성령이 충만한 사람이 되자.

16. 두번째는 2) 온유한 심령으로 하라.
 온유한 심령을 가진 사람은 참으로 매력적인 사람이다. 그 사람에게는 끌리는 무엇이 있다. 잘 빗어진 심령같다. 포근하면서도 위로가 되며 안기고 싶다. 그 사람에게는 품지 못할 사람이 없을 것 같다. 그만큼 어머니처럼 포근하며 아버지의 다정함을 느낄 수 있다.
 죄로 실수하여 두려움과 무서움에 떨고 있는 사람이 가장 만나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그러한 사람은 바로 온유한 심령을 가진 사람이다.

 에덴동산에서 범죄한 아담과 하와에게 찾아온 하나님의 음성을 혼내기 위함이 아니요, 꾸짖음이 아니라 온유한 심령에서 부르는 사랑의 음성이다.
 창3장 8절 "그들이 그 날 바람이 불 때 동산에 거니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9절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부르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 있느냐"

 갈릴리 호숫가에서 예수님은 시몬을 부르셨다. 실망과 좌절과 실패속에 있는 베드로를 찾아가 말씀하셨다. 그 때 예수님의 모습이 바로 온유한 심령의 소리였다.
 요21장 15절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하고 부르시는 예수님의 음성속에서 요한의 마음을 녹았으며, 실망과 좌절, 실패는 물러나고 물밀듯 내 맘음을 적시는 사랑의 포근함을 누릴 수 있었다.

 죄와 실패한 인간을 찾아가신 하나님, 예수님의 심령으로 우리도 범죄한 일이 드러난 사람들을 찾아가야 한다.

17. 세번째는 3) 바로 잡도록 권면하라. 아주 조심스럽게 잘하라.
 아주 조심스럽게 잘못된 것을 바로 잡아 주어야 한다.
 에덴동산에서의 하나님, 갈릴리 호숫가에서 예수님은 아담과 하와, 베드로에게 찾아가 그들을 바로 서도록 도와주었다.
 결국 그들은 다시 일어설 수 있었으며 새사람이 되어 자신의 길을 갈 수 있게 되었다. 일으켜 세워주는 힘이 우리 안에 필요하다. 회복하여 다시 사명의 길을 걸을 수 있도록 격려하며 권할 수 있는 힘과 능력이 우리 안에 꼭 필요하다. 거기까지 셀 수 있도록 우리는 무한 책임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죄에 넘어져 일어나 새롭게 믿음의 길을 가는 사람들을 보라. 그들은 결코 홀로 설 수 없다.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했으면 권면과 사랑이 필요했다. 그들을 격려하는 누군가 있었으면, 그들을 위해 기도하는 한 사람, 한 사람이 그들을 다시 죄에서 넘어져 살아가는 인생이 아니라, 일어서 새사람의 길을 갈 수 있도록 하였다.

 18. 네번째는 4) 자신을 잘 살펴보아라.
 내 자신을 살펴보도록 하라. 성경은 우리의 삶을 비추는 거울이다. 그렇다면 죄로 넘어진 사람들을 또한 내 삶을 비추는 거울이다. 성경의 이야기는 사람의 이야기이다. 성경에 이야기는 성공한 이야기만 있는 것이 아니다. 실패한 이야기가 수두룩하다. 실패한 이야기는 우리에게 분명한 메시지를 주고 있다. 우리 자신을 살피는 것이다.
 시편 51편 다윗의 이야기는 인생에서 실패한 이야기이지만, 그 이야기는 실상은 우리의 이야기이며, 나의 이야기이다. 그래서 그 말씀은 나를 가장 잘 해부하고 있으며, 나의 치부를 드러내는 이야기지이지만, 실상은 나를 회복시키는 이야기이다. 나를 일으켜 주시는 이야기이다.
 시편 51편 10절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12절 "주의 구원의 즐거움을 내게 회복시켜 주시고"
  죄 또한 나를 살피는 거울이며 나를 회복시켜주는 아주 좋은 방법이다.

19. 다섯번째로 5) 범죄는 시험의 결과임을 기억하라. 죄에 넘어진 결과이다. 죄를 미워해야지 미혹한 영과 맞서 싸우도록 하라. 결코 사람을 상하게 하지 말라.
 우리의 싸움의 대상은 사람이 아니다. 미혹케 하는 영이다. 적을 바로 알아야 승리할 수 이다. 적을 바로 알아야 승리할 수 있다. 적을 바로 알아야 괜한 사람을 다치지 않게 한다. 권하여 바로 서도록 하는 선한 동기로 시작했을 지라도 적을 잘 알지 못해 오히려 상처를 주는 경우가 허다하다.
 조심하라. 조심하라. 또 조심하라.

20. 여섯번째로 6) 두려움으로 깨어 있으라. "늘 깨어 있으라"
 나도 언제나 시험에 넘어 질 수 있다. 교만하지 말자. 완벽하다 말하지 말자. 자신을 더욱 살펴 늘 깨어 조심하자. 이 일을 두려워하라. 그렇지만, 두려워하는 나를 망치는 일이 되지 않고, 더욱 하나님을 찾는 일이 되도록 하라. 두려움은 믿음의 가장 큰 적이다. 두려움이 오거든 하나님을 찾으라. 하나님을 만나라.
 하나님을 찾고 만나는 것이 바로 깨어 있다는 증거이다. 언제나 우리도 동일한 "범죄한 일이 드러나는 일"에 노출되어 있음을 기억하자.

21. 오늘도 아직 예수님의 재림이 임하지 아니한 때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미혹의 영은 최후의 결전을 하고 있다. 어떻게도 한 사람이라도 더 예수님께 나아가지 못하도록, 넘어지도록 쓰러지도록, 죄 아래 있도록 하고 있다.

22. 그들 가운데 맞서 싸울 강력한 무기는 서로 사랑하는 사랑의 띠이다.
"우리는 사랑의 띠로 하나가 되었으니" 그 어떠한 유혹과 시험으로 넘어지지 않고 더욱 견고한 사랑의 진을, 성령안에 하나가 되는 강력한 진을 구축하도록 하자.

23. 마지막으로 "우리들의 무기는" 찬양이 생각난다.
    우리들의 무기는 육체가 아니요
     그러나 강하오 참으로 강하오
    우리들의 무기는 육체가 아니요
     그러나 강하오 성령안에서
    견고한 진을 파하는 강력이요
     강한 힘이요 참으로 강하오
    견고한 진을 파하는 강력이요
     강한 힘이요 성령안에서

24. 아멘.


Thursday, December 27, 2012

한 날 묵상 - 갈 5:25-26 <성령과 믿음 4. 성령으로 살면 헛된 영광을 구하지 아니하기에 노함이나 투기는 그들의 삶에 없다>

한 날 묵상 - 갈 5:25-26 <성령과 믿음 4. 성령으로 살면 헛된 영광을 구하지 아니하기에 노함이나 투기는 그들의 삶에 없다>

1. 성령의 사람이 되어라.

2. 믿음의 삶은 성령의 삶과 일치된다. 믿음이 있는 것은 결국 성령에 이끌어 살아가는 삶이기 때문이다.

3. 믿음의 사랑은 성령의 사람이며, 성령의 사람은 성령의 열매를 맺어야 한다. 그런데 성령의 사람은 또한 옛것을 버리는 삶 또한 살아야 한다.

4. 옛것을 버리는 출발은 정욕과 탐심이다. 그리고 정욕과 탐심은 바로 헛된 영광을 구하는 것으로 드러나게 된다.

5. 인간은 오직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도록 창조되었다. 그리고 죄의 영향아래 벗어난 성령의 사람은 더욱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삶을 살아야 한다.

6. 인간의 제일된 목적은 하나님께 영광이다.

소요리문답 제1과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고전10:31)

제1문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은 무엇입니까?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과(고전10:31, 계4:11) 그를 영원토록 즐거워하는 것입니다(시73:25,26).

(고전10:31)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계4:11)  우리 주 하나님이여 영광과 존귀와 능력을 받으시는 것이 합당하오니 주께서 만물을 지으신지라 만물이 주의 뜻대로 있었고 또 지으심을 받았나이다 
(시73:25-26)  하늘에서는 주 외에 누가 내게 있으리요 땅에서는 주 밖에 나의 사모할 자 없나이다 내 육체와 마음은 쇠잔하나 하나님은 내 마음의 반석이시요 영원한 분깃이시라 

7. 25절 "만일 우리가 성령으로 살면 또한 성령으로 행할지니" 27절 "헛된 영광을 구하여" 사는 삶이 아니라. 성령으로 행하는 사람은 헛된 영광을 구하지 아는 삶을 살아야 한다.

8. 이어서 성경은 우리에게 말한다. 헛된 영광을 구함으로 오는 잘못된 현상들이 있다는 것이다.

9. 첫 번째는, 1) 서로 노엽게 하게 된다. 분노, 화를 다스리는 사람은 지혜로운 사람이다. 이러한 지혜는 성령에 붙들린봐 될 때 드러난다.

10. 그렇기에 늘 성령충만해야 한다. 단 한번의 성령충만으로는 분노와 화를 계속해서 다스릴 수 없다.

11. 늘 성령충만하기 위해 우리는 말씀을 읽고, 묵상하고, 암송해야 하며, 찬양하며 기도해야 한다. 이러한 일상의 삶은 우리를 성령과 긴밀하면서도 깨어 있는 관계를 유지시켜 준다.

12. 삶에서 분노와 화를 다스리기는 쉽지 않다. 실상은 늘상 분노와 화를 참지 못해 발설하는 것인 인간이며 나라는 존재이다.

13. 그런데 이러한 화나 분노는 바로 헛된 영광을 구하는 것에서 출발한다는 것을 주의하여 보아야 한다.

14. 내가 지금 하나님의 영광이 아닌 헛된 영광에 사로 잡히면 분을 참지 못하게 되기 때문이다.

15. 자신의 영광을 위해 살아갈 때 서로의 관계는 철저히 무시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목표를 이룰 수 없기 때문이다.

16. 헛된 영광을 구함으로 드러나는 또 다른 현상은 두 번째는 2) 서로 투기하게 된다.

17. 투기와 시기는 두말하면 잔소리가 된다. 시기와 투기는 참으로 헛된 영광을 쫓아가는 인간의 전형적인 술수이다.

18. 다른 사람을 짋밟고 넘어뜨리지 않고서는 싸움에서 이길 수 없기 때문이다. 경쟁의 시대에 남을 이기기 위해서는 그 어떠한 권묘술수도 다 용납이 된다.

19. 헛된 영광을 쫒아가는 사람들이 모습이다.

20. 그들에게 진정 여유가 없다. 하나님을 기억하고, 자신을 말씀과 성령으로 비춰볼 시간이 없다. 그 시간 마저도 아껴야 하기 때문이다. 참으로 불쌍한 인생이다.

21. 왜, 헛된 영광을 구하는 사람들에게 노함이나 투기함이 나타나는가?

22. 바로 헛된 영광을 성경에 기초하지 않을 뿐 아니라, 헛된 영광을 추구한다는 것을 바로 목표지향적이기 때문이다.

23.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을 사랑하기 쉽지 않다. 그래서 화를 내거나 다른 사람과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서 다른 사람을 투기하거나 시기하게 된다.

24. 결국 헛된 영광을 구함으로 오는 노함이나 투기는 "서로 사랑하라"에 반하는 말씀이다.

25. 이는 또한 갈라디아서 6장에서 이어 말씀하는 "서로 짐을 나눠지라"는 말씀에도 반하게 된다.

26. 결국 이러한 모습들은 성령으로 행하는 삶이 아님을 알 수 있다.

27. 성령으로 살아가는 사람에게는 사랑이 나타나며, 헛된 영광을 구하지 않고 오직 성령의 열매가 가득한 삶을 살게 된다.

28. 믿음과 성령의 관계에서 대해 갈5장 16-26절까지 네 번에 걸쳐 살펴 보았다. 믿음은 성령충만과 관련이 있으며, 성령이 충만할 때 어떠한 열매가 나타나며, 어떠한 삶을 버려야 하는 지에 대해서 살펴보았다.

29. 성령충만의 삶을 기대하면서 마지막으로 25절의 말씀이 깊이 마음에 새겨진다.

30. 25절 "만일 우리가 성령으로 살면 또한 성령으로 행할지니"

31. 성령으로 살아가면 성령으로 행하게 된다는 말씀이 깊이 도전이 된다.

32. 오늘도 기도한다. 나의 삶이 성령의 행하는 삶이 되기를....

33.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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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말씀 - 마태복음 5장 21-26절
하나님께 영광과 노함의 관계.
 24절 하나님께 예배할 때 다른 형제와 다툼이 있거나, 그들을 미워하는 마음으로 예배하지 말라. 먼저 그들과 화해하라.
 22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혀가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


===
 소요리문답 제1과 사람의 제일되는 목적  

소요리문답 제1과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고전10:31)

제1문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은 무엇입니까?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과(고전10:31, 계4:11) 그를 영원토록 즐거워하는 것입니다(시73:25,26).

(고전10:31)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계4:11)  우리 주 하나님이여 영광과 존귀와 능력을 받으시는 것이 합당하오니 주께서 만물을 지으신지라 만물이 주의 뜻대로 있었고 또 지으심을 받았나이다 
(시73:25-26)  하늘에서는 주 외에 누가 내게 있으리요 땅에서는 주 밖에 나의 사모할 자 없나이다 내 육체와 마음은 쇠잔하나 하나님은 내 마음의 반석이시요 영원한 분깃이시라 

질문) 1. 여기에서 ‘제일 된’이란 말은 무슨 뜻입니까?
       : 유일한 

2. ‘목적’이란 말은 무슨 뜻입니까?  
 : 사람의 유익을 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유익을 위해서

3. ‘영화롭게 하다’란 무슨 뜻입니까?
 : 하나님의 영광을 반사한다. 

4. 요리문답이 말하는 것이 왜 인간의 제일 된 목적입니까?
 : 하나님께로부터 지음 받은 자이기 때문에, 반대하고 배반해도 여전히 하나님의 지배아래 있다.

5. 창조된 본래의 인간은 무엇 중심이 되었습니까?
 : 하나님 중심

6. 죄를 지은 후 인간은 무엇 중심이 되었습니까?
 : 인간 중심, 자기(내)중심

7. 참된 신자의 삶은 하나님 중심이라는 말은 무슨 의미 입니까?
 :삶의 욕망이 하나님을 위해서 존재하며 섬기며 그분에서 즐거워한다.

8. 삶의 중심에 ‘자기’라는 말이 왜 나쁩니까?
 : 자기를 생각한다. 무엇과 같이 될 것을 생각하며, 자신을 즐겁게 하기를 애쓴다. 

9. 하늘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과 인간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 사이 엔 방법적이 차이가 있는가?
 : 하나님이 창조한 세계는 마치 거울과 같아서 들여다보면 하나님의 영광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인간은 그렇게 하도록 지음받았고, 초대되었고, 자원하여 이 일을 할 수 있는 특권을 부여받았다. 이것은 곧 예수님께서 지상에서 아버지 하나님을 섬기던 일이었다(요17:4). 

10. 행악자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 수 있는가?
 : 행악자는 없다. 하나님 스스로는 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그들을 심판하심으로서 영광을 받으신다.

11. 신자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목적 이외에 다른 목적들을 갖는 것도 적절한가?
 : 아니다.

12. 생의 어떤 부분들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해야 하는가?
 : 모든 부분에서 - 삶의 전부- 모든 시간과 활동을 불문하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해야 한다. 

http://www.donghaero.org/technote/read.cgi?board=bible&y_number=80&nnew=1

Friday, December 21, 2012

한 날 묵상 - 갈 5:22-24 <성령과 믿음 3. 오직 성령의 열매는>


1. 그리스도인은 성령의 사람이다.

2. 성령의 인도하심이 아니면 그리스도를 구주로 결코 고백할 수 없다.

3. 또한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의 육체를 그리스도아 함께 십자가에 못 박은 사람들이다. 그래서 이제는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살아가는데,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으로 살아가는 인생이다.

4. 결국 그리스도인들은 성령의 사람이며,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는 것으로 살아가는 인생이다.

5. 성령의 사람은 성령의 열매를 맺고 살아가야 한다.

6. 사과나무는 사과를 열매 맺듯이, 포도나무는 포도 열매를 맺듯이 성령의 사람도 성령의 열매를 맺으로 살아가야 한다.

7. 성령의 열매는 이러한 것이다.

22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23 온유와 절제니

8. 성령의 사람들이 맺어야 하는 성령의 열매를 금지할 법은 결코 없다.

9. 모세를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어진 십계명을 반드시 지켜야 하나님이 보호하시는 울타리안에 참 평안을 누릴 수 있듯이 그리스도인들도 성령안에서 성령의 열매를 맺을 때 하나님의 보호 아래 거할 수 있다.


10. 성령의 열매와 더불어 믿음의 사람들은 자신의 육체와 더불어 육체의 일의 뿌리가 되는 정욕과 팀심을 못박아야 한다.

11. 정욕과 탐심은 일만 악의 뿌리이다. 일상에서 일어나는 죄아래 있는 모든 행위들은 사람들의 마음속에 깊이 자리잡아 죄의 영향아래 있는 정욕과 탐심으로부터 시작된다.

12. 우리가 성령의 사람이 되어 아홉가지 성령의 열매를 맺기를 원한다면, 반드시 정욕과 탐심을 다스릴 수 있어야 한다.

13. 결코 사람은 두 가지를 함께 가질 수 없다. 정욕과 탐심이 드러나면 성령은 사그라들게 되어 있다.

14. 반대로 성령이 살아나야만 정욕과 탐심을 버릴 수 있다.

15. 오직 정욕과 탐심을 버릴 수 있는 유일한 방법 십자가에 못박는 것 뿐이다.

16. 십자가에 예수님은 죽으심으로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 새로운 세상을 허락해주셨다. 그렇듯 우리도 죄아래 있는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달아 죽어야 한다.

17. 로마서 12장 2절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18. 성령의 열매를 맺기 위해 우리는 이제 십자가에 못박은 것은 나의 육체의 소욕이 되어야 한다. 바로 정욕과 탐심이다. 그리스도만 홀로 십자가에 두어서는 결코 안된다.

19. 오늘 나는 성령의 열매를 맺고 있는가?

20. 오늘 나는 탐심과 정욕을 십자가에 못박았는가?

21. 이일에 집중하여 세상속에 거하기를 원한다.

22. 주님의 은혜를 구한다. 할렐루야.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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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23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24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오직 성령의 열매

1) 사랑

2) 희락

3) 화평

4) 오래참음

5) 자비

6) 양선

7) 충성

8) 온유

9) 절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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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욕

탐심

Monday, December 17, 2012

한 날 묵상 - 갈 5:19-21 <성령과 믿음 2. 성령의 사람은 육체의 일을 버리노 라. 육체의 일은 분명하니, 이를 버려 야 하노라>


1. 성령을 따라 사는 삶은 육체의 일을 버리는 삶이다.

2. 엡 5장 3절.
"음행과 온갖 더러운 것과 탐욕은 너희 중에서 그 이름조차도 부르지 말라 이는 성도에게 마땅한 바니라"
3. => 성도들이 행해야 하는 마땅한 것들은 육체의 일을 따라 사는 삶이 아닙니다.
4. => 이러한 것들은 그 이름 조차도 부르지 말아야 합니다. 말이 씨가 됩니다. 아무 생각없이 말하는 것들은 실상은 자기 자신의 내면에서 흘러 나오는 것입니다.
5. 한편으로 그렇든 아무 생각없이 하는 말일지라도 삼가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이러한 것을 생각이 되고, 행동이 되어 습관이 되기 때문입니다.

6. 19절 "육체의 일은 분명하니"
7. => 육체의 일이란 죄의 영향아래 드러나는 모습들이다. 죄로 인해 인간은 관계의 파괴가 몰아쳤다. 자신 한 사람으로부터 모든 관계가 파괴되었다.
8. 이게 바로 죄의 영향력이다.
하나님과의 관계
이웃과의 관계
자신과의 관계
9. 이 모든 것들이 죄로 인해 파괴되었다. 육체의 일이란 바로 이러한 죄의 영향아래 나타나는 현상들이다.

10.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11. => 가장 전형적인 육체적인 일이다. 이러한 일들이 가장 위험한 것은 이는 관계를 실제적으로 파괴하고 하나님이 허락하신 질서를 어지럽게 하는 것이다. 가정은 하나님이 허락하신 가장 중요한 관계의 질서이다. 가정을 통해 가족을 이루고, 가족의 세대를 통해 민족이 이루어지게 된다.
12. 최근에 일어나는 성폭력과 성추행은 가정을 파괴하며 생명까지 앚아가는 모습을 보게 된다. 이러한 일들을 고발하는 영화들이 있는데, "도가니", "돈크라이 마마"이다.
13. 성의 타락은 생명의 타락이며 가족의 파괴이며 새생명을 위해 이 땅에 예수님을 보내주시기까지 죄가운데 있지 않게 하시는 생명의 하나님이 가장 싫어하시는 죄악이다.

14. 20절 "우상 숭배와 주술과 원수 맺는 것과"
=> 이러한 육체적인 일들은 바로 십계명의 제1, 제2, 제 3의 계명을 어기는 행위들이다. 이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지게 된다.

14.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열함과 이단과"
15. => 이러한 육체의 일을 가지고서는 이웃과의 관계를 바르게 이룰 수 없다. 인간의 관계를 맺지 않고서는 살 수 없다. 홀로 있을 때에 일어나는 문제들이 무엇인지 우리는 충분히 잘 알고 있다.
16. 홀로 있지 않고 인간이 관계를 맺을 때 죄로 인해서 이웃과의 파괴된 관계를 맺게 되었다. 관계를 맺는데 바른 관계 맺기가 아니라 파괴된 관계 맺를 하게 된다.
17. 파괴된 관계 맺기는 끼리 끼리로 나타난다. 자기 당을 짖게 된다. 그리고 자기 당 이외의 사람들을 가만히 두지 않고 그들의 모임을 파괴하려고 한다.
18. 고린도전서에서 나타난 분쟁의 문제를 우리는 익히 알고 있다. 고린도전서 1장 10-17절에서 바울은 말하고 있다.
19. 10절 "형제들아 내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모두가 같은 말을 하고 너희 가운데 분쟁이 없이 같은 마음과 같은 뜻으로 온전히 합하라"
20. 12절 "내가 이것을 말하거니와 너희가 각각 이르되 나는 바울에게, 나는 아볼로에게, 나는 게바에게, 나는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 한다는 것이니"

21. 분쟁, 시기, 분냄을 바로 이처럼 이웃과의 관계를 파괴시키는 육체적인 일이다.

22. 21절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탐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23. => 탐욕, 한탕주의, 방탕함이는 바로 술취함과 관련이 있다. 그리스도인은 성령에 취해야 한다. 그런데 술에 취하게 되면 탐욕이 자라게 되고 방탕하면서 투기나 신실하지 삶을 살지 못하도록 한다.
24. 자신안에 있는 나와의 바른 관계를 맺지 못하고 오직 물질이나, 돈이나, 재물이나, 탐욕이 자신을 이끌어가도록 내버려 두는 일들이 일어나게 된다.
25. 바로 투기, 술취함, 방탕함은 자신이 온전히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지 못하고 유물론적 삶을 살을 살아가고자 하는 마음이 자신을 이끌어가는 것을 보게 된다.

26.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 것 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
27. => 이러한 자들이 바로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는 자들이다. 그렇다. 성령에서 떠나 있기 때문에 당연한 결과이다. 자연스럽게 귀결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28. 결론.
이러한 모든 모습들은 다 성령에서 떠나 살아가기 때문에 드러난 일들이다.
29. 한번의 성령체험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육신과의 싸움은 한 번의 성령체험으로 되지 않고, 끊임없이 내 안에 성령의 거하도록 훈련하지 않으면 안된다.
30. 바울은 갈라디아서 자유를 말하면서 성령안에서 자유하기를 간절히 바라는 이유이기도 한다. 육체의 일을 떠나야 한다는 말씀이다.

31. "일그러진 성령의 얼굴들" pp81-82.

성령을 체험함으로 우리는 옛자아의 실현이 아니라 죽음을 체험하낟. 옛 자아의 야망이 성취되기보다 좌절되는 쓰라림을 맛본다. 십자가의 은혜는 단순히 우리의 죄를 사할 뿐 아니라 죄의 근원인 옛사람의 생명을 파괴한다. 그 욕심과 야망을 가차 없이 십자가에 못 박는다. 우리의 옛 자아를 죽이는 십자가의 능력을 매일 체험하지 않으면 부활의 능력을 결코 경험할 수 없다. 성령의 열매를 맺는 새사람으로서의 변화가 전혀 이루어지지 않는다. 성령의 능력을 누리는 유일한 비결은 십자가의 죽음을 통과하는 것이다.

...

성령을 체험하면 나를 체험하는 동시에 또한 너를 체험한다. 인간은 진정한 자아뿐 아니라 타자를 잃어버렸다. 세상에는 오직 내가 이용할 '것'으로서의 너만 널려 있을 뿐 진정한 '너'는 존재하지 않는다.
지옥이 뒤틀린 관계에서 온다면 천국은 관계의 회복으로부터 온다. 구원과 하나님 나라의 핵심은 바로 관계의 회복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하나님과 원수 된 것뿐 아니라 인간 서로 간에 원수 된 것을 소멸하였다(엡 :15-18 참조). 그분은 우리와 하나님 사이 그리고 우리와 이웃 사이로 가신다. 그래서 우리를 하나님과 교제하게 하시고 또한 형제자매들과도 교제하게 하신다. 천국은 근본적으로 하나님과 이웃과의 관계가 회복된 곳이다.

32. 아직 미정리다. ^^

한 날 묵상 - 갈 5:16-18 <성령과 믿음 1. 성령의 인도하시는 바가 되면>

한 날 묵상 - 갈 5:16-18 <성령과 믿음 1. 성령의 인도하시는 바가 되면>

1. 갈라디아서의 믿음은 은혜이다.

2. 그리고 그 은혜는 결국 우리를 자유하게 한다.

3. 은혜안에 자유함은 사랑으로 나타나게 된다.

4. 1-3번의 말을 정리하면, 이렇게 말할 수 있다.
 1) 믿음이 사랑을 통하여 역사
 2) 사랑으로 역사하는 힘
 3) 믿음은 사랑을 타고

5. 그런데 문제는 우리가 믿음안에서 사랑을 지속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6. 때론 사랑으로 역사하는 힘으로 살아가기 쉽지 않다.

7. 왜 그럴까? 바로 우리가 여전히 율법아래 있기 때문이다.

8. 율법아래 있는 육체의 일에 대해서 19-21절에서 말하고 있다. 이 말씀에 대해서 다음에 살피기로 하자.

9. 그렇다면 율법 아래에서 벗어나기 위한 방법은 무엇일까?

10. 18절에 보니, "너희가 만일 성령의 인도하시는 바가 되면 율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리랴"고 말씀하고 있다.

11. 우리의 삶이 성령의 인도하시는 바가 될 때 사랑으로 역사하는 힘이 우리의 삶에 풍성히 드러나게 된다.

12. 이는 믿음이 사랑을 통해 역사하는 일들이다.

13. 믿음은 결국 사랑으로 드러나지 않으면 안된다. 이 일을 위해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는 것이 참으로 중요하다.

14. 갈 5장 22-24절에서 "오직 성령의 열매"가 무엇인지 말씀하고 있다. 성령의 열매가 우리 삶에 풍성히 맺는 삶을 살아야 한다.

15. 성령은 우리가 사랑하려 할 때 성령의 역할은 무엇인가?

16. 여기서 잠깐, New 굿데이 성경" 신약 p309에서 있는 글을 보자.

17. "성령의 인도" 성령은 우리의 모든 삶을 변화시킴으로써 우리를 인도하신다.
 첫째, 우리가 지켜야 할 성경의 지침, 목표에 해야 할 성경의 목표, 닮아야 할 성경의 모델을 가르쳐 주신다.
 둘째, 독실한 생각과 조언을 통해 우리에게 지혜를 주셔서 성경의 가리침을 가장 잘 따를 수 있는 방법을 알게 하신다.
 셋째,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과 은혜 안에서 성장을 간절히 소망하게 하신다.
 마지막으로, 성령은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분별할 때 그것을 기뻐하게 함으로써 우리를 인도하신다. 즉 우리가 하나님의 뜻이 우리에게 좋은 길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행하게 된다.

18. 16절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19. 성령을 따라 행하려 할 때 우리를 방해하는 것은 "육체의 소욕"이다.

20. 17절 "육체의 소육은 성령을 거스리고 성령은 육체를 거스르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가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21. 그렇다면, 하나님의 자녀들의 삶의 방향이 분명해진듯합니다.

22. 육체의 소욕은 버리고, 성령을 따라 행하는 것입니다.

23. 보다 구첵으로 사도 바울은 육체의 소욕은 무엇인지에 대해서 19-21절에서, 성령의 열매는 무엇인 22-24절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24. 다음에 이 두분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25. 오늘은 정말 육체의 일보다 성령의 열매를 따르는 한 날의 삶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26. 그리하여 우리의 믿음이 사랑을 타고 흘러 흘러 온 세상을 적시는 놀라운 축복이 있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27. 오늘 한 날도 샬롬을 구하며...

28.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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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마음 문을 여는 열 가지 무기

주위에 마음 문이 닫혀있는 사람이 있으세요? 
그 사람 때문에 힘이 드세요? 
마음 문만 연다는 악마가 천사로 변하는 
경험을 하게 될 겁니다.
그 사람 때문에 오히려 행복할 겁니다.

그래서 사람의 마음을 얻는다는 것은
모든 것을 얻는 것을 의미합니다.

다음과 같은 무기를 사용해 보세요.

1. 환한 미소
관계가 불편하다고 인상 쓰면 점점 더 악화됩니다.

2. 먼저 건네는 가벼운 인사
상대방이 인사하기를 기다리지 말고
밝은 목소리로 먼저 인사하세요.

3. 구체적인 칭찬
틀에 박힌 칭찬보다는
상대방의 변화에 민감한 칭찬이 효과적입니다.

4. 상대방에 대한 경청
귀로만 듣지 말고 눈과 몸짓으로도 들으세요.

5. 즉각적인 작은 배려
요청하거나 표현하기 전에 먼저 필요를 채워줘 보세요.

6. 낙심한 순간의 격려
힘들어 할 때 잘 할 수 있다는 용기를 줘 보세요.

7. 긍정적 리액션
상대방의 말이나 행동에 대하여
긍정적으로 반응하면 자연스럽게 하나가 됩니다.

8. 미러 효과
호감을 느끼는 사람에게는
무의식적으로 행동을 따라하는 심리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사람에게 호감을 갖습니다.
상대방이 물을 마시거나 깍지를 끼는 것 같은 행동을
자연스럽게 따라해 보세요.

9. 마음이 담긴 작은 선물
선물만큼 강력한 무기는 없지 않을까 싶네요.

10.기도
그래도 안 된다구요?
위의 것들을 실천하면서 매일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해 보세요.

가장 중요한 것은
그 사람 때문에 불편하고 싶지 않다는 마음보다는
그 사람과 좋은 관계에 있고 싶다는 간절한 소원을 갖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은 당신이 먼저 마음의 문을 여는 것을 의미합니다.


-탁영철님이 담벼락에 남겨주신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