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날 묵상 - 창 27:46-28:9 - <리브가의 꼼수와 에서의 마이웨이>
야곱을 살리기 위해서 리브가가 쓴 수는 에서의 잘못을 빗대어 만들어 낸 꼼수였다. 단지 꼼수로만 보지 말고 그녀의 지혜로움과 약속의 말씀을 향한 결단을 보라. 에서에게 소망이 없다면, 다른 수를 빨리 찾으면 찾을 수록 좋다. 에서에게는 소망이 없다. 계속되는 에서의 마이웨이에도 왜 에서가 소망이 없는지 분명하게 알 수 있다.
리브가의 꼼수(리브가의 꼼수안에 담긴 의미를 기억하라)
=> 에서의 행실을 빗대어서 야곱이 가야 할 길을 이삭에게 제시하다.
27:46 "내가 헷 사람의 딸들로 말미암아 내 삶이 싫어졌거늘 야곱이 ... "
-> 에서가 헷 족속 브에리의 딸을 아내로 맞이함. 이삭과 리브가의 마음에 근심이 됨(창26:34-35)
-> 에서의 삶은 그 자체로 부모의 기쁨이 되지 못하였다. 근심꺼리였으며 걱정꺼리였다.
28: 1-2 "이삭이 야곱을 불러 그에게 축복하고 또 당부하여 이르되 ... 라바의 딸중에서 아내를 맞이하라"
3-5 "전능하신 하나님이 네게 복을 주시어 네가 생육하고 번성하게 하여 네가 여러 족속을 이루게 하시고 아브라함에게 허락하신 복을 네게 주시되 너와 너와 함께 네 자손에게도 주사..."
=> 이삭의 축복안에 담겨 있는 의미를 살펴보라.
1) 전능하신 하나님이 너의 길을 축복하신다. 불안과 초조와 염려속에 떠나는 야곱을 축복하다.
2) 아브라함에게 주신 여호와의 복을 잇는 야곱이 되다(여러 족속을 이루고 .. 아브라함에게 허락하신 복을...)
3) 야곱 이후의 자손에게까지 복을 주시다.
* 야곱과 전혀 다른 길을 걸어가는 에서의 마이웨이
28:6 "에서가 본즉 이삭이 야곱을 축복하고 ... 가나안 딸들 중에서 아내를 맞이하지 말라 하였고"
28:8 "에서가 또 본즉 가나안 사람의 딸들이 그의 아버지 이삭을 기쁘게 하시 못하는지라"
28:9 "이에 에서가 이스마엘에게 가서 ... 아내로 맞이하였더라"
=> "에서의 마이웨이" 무엇을 그 혼자만의 길을 가게하는가?
그건 에서가 무엇을 보고 있는가에 달려 있다. 에서는 무엇을 보고 있는가?
- 에서를 보고 있다. 인간을 보고 있다. 아버지를 보고 있다. 우리가 진정 봐야 할 것은 무엇인가? 에서를 통해 역사하시는 여호와이시다.
- 에서의 동기는 좋게 보인다. 그러나 진정 봐야 할 것을 보고 있지 않기 때문에 "이에"하는 행동 또한 옳지 못하다. 이스마엘 중에서 아내를 맞이하는 것이 옳은 선택이었는가? 그렇지 않다.
* 창세기 28장 1절 -야곱의 마지막 당부. "이삭이 야곱을 불러 그에게 축복하고 또 당부하여 이르되 너는 가나안 사람의 딸들 중에서 아내를 맞이하지 말고"
2절 "일너나 밧단아름으로 가서 네 외조부 브두엘의 집에 이르러 거기서 네 외삼촌 라반의 딸 중에 아내를 맞이하라"
=> 이는 그 어떤 말보다 더 중요한 말이다. 이 말속에는 절대 하나님을 떠나지 말라는 당부가 들어가 있다. 이방 여인과 결혼은 곧 이방 신을 섬기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야곱은 아버지의 말을 꼭 지켰다. 이게 바로 에서와 야곱의 차이이다.
창세기 26장 34-35절로 보면, "에서가 사십 세에 헷 족속 브에리의 딸 유딧과 헷 족속 엘론의 딸 바스맛을 아내로 맞이하였더니 그들이 이삭과 리브가의 마음에 근심이 되었더라"
에서의 아주 못된 반항적이며 비신앙적인 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 바로 창 28장 6-9절의 말씀이다. 어떠한 분이 있더라도 결코 하나님을 떠나서는 안되며,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해서는 안된다. 이처럼 분은 사람과의 관계가 멀어지게 할 뿐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못하게 된다.
창세기 29장 18-20절 아리따움이 야곱의 마음을 사로잡았지만, 결코 말씀에서 벗어나지는 않았다.
=> 이삭과 리브가에게 근심이 되는 사람 에서와 이삭과 리브가의 말에 순종하는 사람 야곱. 곧 이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한 사람과 불순종한 사람이 된다.
******
야곱을 살리기 위해서 리브가가 쓴 수는 에서의 잘못을 빗대어 만들어 낸 꼼수였다.
그러나 리브가의 수를 단지 꼼수로만 보지 말아야 한다.
그녀의 지혜로움과 약속의 말씀을 향한 결단으로 봐야 한다.
에서에게 소망이 없다면, 다른 수를 빨리 찾으면 찾을 수록 좋다. 그를 가르치고 훈계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이다. 말씀을 붙잡고 순종하느냐? 아니면 그 약속의 말씀을 거스리느냐?의 문제이다.
에서에게는 소망이 없었다. 그는 무엇을 보았는가?
28:6 "에서가 본즉"
28:8 "에서가 또 본즉"
28:9 "이에"
보고 이에 결단했다. 그러나 여전히 외골수로 걸어가는 "May way"이다. 하나님을 중심에 품지 않은 들음이나, 보려함이 무슨 유익이 되겠는가?
자기 길을 고집하기 위해 보는 것과 이에 결단하는 위장술은 다른 사람에게 꼼수의 빌미가 될 뿐이다.
오늘 나는 꼼수일지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순종하기 원한다. 본 것으로 결단했다고 방법으로 마이웨이를 위장하지 않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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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nday, December 5, 2011
Thursday, December 1, 2011
한 날 묵상 - 창 27:5-45- <축복싸움. 사명이 담긴 축복이었다면 과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복받기 위해서 싸울까? 단지 눈에 보이는 축복만을 바라보고 사람들과 우리는 다른 축복 받기 위한 싸움을 해야 한다>
한 날 묵상 - 창 27:5-45- <축복싸움. 사명이 담긴 축복이었다면 과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복받기 위해서 싸울까? 단지 눈에 보이는 축복만을 바라보고 사람들과 우리는 다른 축복 받기 위한 싸움을 해야 한다>
네 명의 부모형제가 펼치는 숨막히는 축복싸움입니다. 아버지의 축복권을 놓고 벌이는 어머니와 두 아들간의 관계에서 결국 축복 싸움이 한 아들이 미움과 분노를 갖는 것으로 막을 내리고 있습니다.
무엇이 문제일까요?
왜 이러한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요?
축복에 대한 잘못된 생각입니다. 복, 복, 복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오늘 본문에서 펼쳐집니다.
그런데 진짜 복은 무엇을까요?
(오늘 본문에서 찾아보는 축복의 바른 의미, 아님 본문의 앞 뒤 문맥에 흐르는 축복의 의미를 살펴보며 연구하자)
하나님이 말씀하신 영적인 의미와 축복의 의미가 분명히 담겨 있다. 누가 약속의 말씀을 이을 것인가? 하나님의 주신 약속의 말씀을 이을자로서의 축복이다. 그 의미는 사명의 의미도 포함되어 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약속의 말씀을 이을자로서 훈련을 받으며, 시험을 통과했던 것처럼 결코 쉽지 않는 길임을 알아야 한다.
그러나 아직, 에서와 야곱은 그 의미를 모르고 있다. 단지 아버지가 축복하시는 복만을 받기 원했다. 사명에 붙들린 축복이 바른 축복의 의미이다.
이삭(부)
1절 "이삭이 나이가 많아 눈이 어두워 잘 보지 못하더니"
=> 축복싸움의 시작은 이삭이 눈이 어두워 잘 보이지 않은데에서 시작된다. 가장 절묘한 타이밍에 서 있다. 하나님의 주권 1.
5절 "이삭이 그의 아들 에서에게 말할 때에"
왜? 이삭은 에서였는가?
장자였으므로??
이삭은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은 어떻게 이해하고 있었는가?
18-22절
23절 "그의 손이 형 에서의 손과 같이 털이 있으므로 분별하지 못하고 축복하였더라"
분별력이 떨어진 이삭, 하나님의 계획안에 있는 이삭의 축복...
25절 "네게 축복하리라"
27절 "그에게 축복하여 이르되"
28-29절 이삭의 축복
30절 "이삭이 야곱에게 축복하기를 마치매"
리브가(모)
6절 "리브가가 그의 아들 야곱에게 말하여 이르되"
"네 아버지가 네 형 에서에게 말씀하시는 내가 들으니"
=> 절묘한 타이밍. 리브가가 이삭과 에서의 대화를 들었다. 하남니의 주권 2.
7절 "죽기 전에 여호와 아에서 네게 축복하게 하라 하셨으니"
10절 "죽기 전에 네게 축복하기 위하여 잡수시게 하라"
왜? 에서는 아니었는가?
하나님이 주신 말씀을 기억할 때,
에서가 지금까지 해온 행동을 비추어 볼 때,
13절 "어머니가 그에게 이르되 내 아들아 너의 저주는 내게로 돌리리니"
14-17절 리브가의 준비
42-45절 리브가와 야곱의 대화
44절 "노가 풀리기까지 몇 날 동안 그와 함께 거주하라"
=> 몇 날이 될지, 몇 년이 될지 리브가는 알 수 없었다. 모든 주권은 하나님에게 있다. 하나님의 주권 4. 야곱의 몇 년이 그가 훈련받는 시간이었으며, 주님과 인격적으로 만나는 여정이었다.
45절 "네 형의 분노가 풀려"
에서(형)
늦은 에서의 등장
30-41절
31절 에서가 말함. "내게 축복하소서"
33절 이삭의 대답 "그를 위하여 축복하였은즉" "그가 반드시 복을 받을 것이니라"
34절 에서 "내게 축복하소서"
35절 "네 복을 배앗았도다"
36절 "내 복을 빼앗았나이다" "나를 위하여 빌 복을 남기지 아니하셨나이까"
38절 에서 "아버지가 빌 복이 이 하나 뿐이리이까" "내 아버지여 내게 축복하소서"
39-40절 이삭이 에서에게 대답 이삭이 에서에게는 "축복"이라는 말을 쓰지 않고 있다.
40절 "네 아루를 섬길 것이며"
41절 "그의 아버지가 야곱에게 축복한 그 축복으로 말미암이"
41절 "에서가 야곱을 미워하여 심중에 이르기를 아버지를 곡할 때가 가까웠은즉 내가 내 아우를 죽이리라 하였더니"
리브가는 어떻게 에서의 심중에 있는 마음을 알 수 있었을까?
42절 "맏아들 에서의 이 말이 리브가에게 들리매" 하나님의 주권 3. 리브가는 에서의 심중의 말을 들을 수 있었다. 그 방법이 어떠했던들 들었다. 그리고 야곱의 피할 길을 생겼다.
야곱(동생)
12절 "내가 아버저의 눈에 속이는 자로 보일지라 복은 고사하고 저주를 받을까 하나이다"
* 생각해 볼 것..
에서의 축복관과 야곱의 축복관은 차이는?
에서는 자신의 개인적인 부를 위한 축복이었다.
야곱은 하나님의 주권과 역사안에서 하나님 나라를 위한 축복이었다.
가장 먼저는 36절에서 다시 한 번 언급되는 "장자의 명분"을 소홀히 하는 것에서 볼 수 있다.
나의 축복관은 어디인가? 에서의 축복관인가? 야곱의 축복관인가?
* 참으로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27장이다. 등장인물도 많으며, 상황도 급박하게 진행되며, 생사가 오고가며, 축복이 오고간다. 인간사 다 이런 것 아니겠는가? 그렇지만 중요한 것은 이 상황에서 하나님은 어디에 계시는가? 누가 하나님을 지금 기억하고 있는가?
반드시 하나 기억해야 할 것은 이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역사, 하나님의 주권, 하나님의 통치는 계속되고 있다는 것이다.
참으로 놀라운 사건이며, 은혜가 아닐 수 없다.
네 명의 부모형제가 펼치는 숨막히는 축복싸움입니다. 아버지의 축복권을 놓고 벌이는 어머니와 두 아들간의 관계에서 결국 축복 싸움이 한 아들이 미움과 분노를 갖는 것으로 막을 내리고 있습니다.
무엇이 문제일까요?
왜 이러한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요?
축복에 대한 잘못된 생각입니다. 복, 복, 복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오늘 본문에서 펼쳐집니다.
그런데 진짜 복은 무엇을까요?
(오늘 본문에서 찾아보는 축복의 바른 의미, 아님 본문의 앞 뒤 문맥에 흐르는 축복의 의미를 살펴보며 연구하자)
하나님이 말씀하신 영적인 의미와 축복의 의미가 분명히 담겨 있다. 누가 약속의 말씀을 이을 것인가? 하나님의 주신 약속의 말씀을 이을자로서의 축복이다. 그 의미는 사명의 의미도 포함되어 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약속의 말씀을 이을자로서 훈련을 받으며, 시험을 통과했던 것처럼 결코 쉽지 않는 길임을 알아야 한다.
그러나 아직, 에서와 야곱은 그 의미를 모르고 있다. 단지 아버지가 축복하시는 복만을 받기 원했다. 사명에 붙들린 축복이 바른 축복의 의미이다.
이삭(부)
1절 "이삭이 나이가 많아 눈이 어두워 잘 보지 못하더니"
=> 축복싸움의 시작은 이삭이 눈이 어두워 잘 보이지 않은데에서 시작된다. 가장 절묘한 타이밍에 서 있다. 하나님의 주권 1.
5절 "이삭이 그의 아들 에서에게 말할 때에"
왜? 이삭은 에서였는가?
장자였으므로??
이삭은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은 어떻게 이해하고 있었는가?
18-22절
23절 "그의 손이 형 에서의 손과 같이 털이 있으므로 분별하지 못하고 축복하였더라"
분별력이 떨어진 이삭, 하나님의 계획안에 있는 이삭의 축복...
25절 "네게 축복하리라"
27절 "그에게 축복하여 이르되"
28-29절 이삭의 축복
30절 "이삭이 야곱에게 축복하기를 마치매"
리브가(모)
6절 "리브가가 그의 아들 야곱에게 말하여 이르되"
"네 아버지가 네 형 에서에게 말씀하시는 내가 들으니"
=> 절묘한 타이밍. 리브가가 이삭과 에서의 대화를 들었다. 하남니의 주권 2.
7절 "죽기 전에 여호와 아에서 네게 축복하게 하라 하셨으니"
10절 "죽기 전에 네게 축복하기 위하여 잡수시게 하라"
왜? 에서는 아니었는가?
하나님이 주신 말씀을 기억할 때,
에서가 지금까지 해온 행동을 비추어 볼 때,
13절 "어머니가 그에게 이르되 내 아들아 너의 저주는 내게로 돌리리니"
14-17절 리브가의 준비
42-45절 리브가와 야곱의 대화
44절 "노가 풀리기까지 몇 날 동안 그와 함께 거주하라"
=> 몇 날이 될지, 몇 년이 될지 리브가는 알 수 없었다. 모든 주권은 하나님에게 있다. 하나님의 주권 4. 야곱의 몇 년이 그가 훈련받는 시간이었으며, 주님과 인격적으로 만나는 여정이었다.
45절 "네 형의 분노가 풀려"
에서(형)
늦은 에서의 등장
30-41절
31절 에서가 말함. "내게 축복하소서"
33절 이삭의 대답 "그를 위하여 축복하였은즉" "그가 반드시 복을 받을 것이니라"
34절 에서 "내게 축복하소서"
35절 "네 복을 배앗았도다"
36절 "내 복을 빼앗았나이다" "나를 위하여 빌 복을 남기지 아니하셨나이까"
38절 에서 "아버지가 빌 복이 이 하나 뿐이리이까" "내 아버지여 내게 축복하소서"
39-40절 이삭이 에서에게 대답 이삭이 에서에게는 "축복"이라는 말을 쓰지 않고 있다.
40절 "네 아루를 섬길 것이며"
41절 "그의 아버지가 야곱에게 축복한 그 축복으로 말미암이"
41절 "에서가 야곱을 미워하여 심중에 이르기를 아버지를 곡할 때가 가까웠은즉 내가 내 아우를 죽이리라 하였더니"
리브가는 어떻게 에서의 심중에 있는 마음을 알 수 있었을까?
42절 "맏아들 에서의 이 말이 리브가에게 들리매" 하나님의 주권 3. 리브가는 에서의 심중의 말을 들을 수 있었다. 그 방법이 어떠했던들 들었다. 그리고 야곱의 피할 길을 생겼다.
야곱(동생)
12절 "내가 아버저의 눈에 속이는 자로 보일지라 복은 고사하고 저주를 받을까 하나이다"
* 생각해 볼 것..
에서의 축복관과 야곱의 축복관은 차이는?
에서는 자신의 개인적인 부를 위한 축복이었다.
야곱은 하나님의 주권과 역사안에서 하나님 나라를 위한 축복이었다.
가장 먼저는 36절에서 다시 한 번 언급되는 "장자의 명분"을 소홀히 하는 것에서 볼 수 있다.
나의 축복관은 어디인가? 에서의 축복관인가? 야곱의 축복관인가?
* 참으로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27장이다. 등장인물도 많으며, 상황도 급박하게 진행되며, 생사가 오고가며, 축복이 오고간다. 인간사 다 이런 것 아니겠는가? 그렇지만 중요한 것은 이 상황에서 하나님은 어디에 계시는가? 누가 하나님을 지금 기억하고 있는가?
반드시 하나 기억해야 할 것은 이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역사, 하나님의 주권, 하나님의 통치는 계속되고 있다는 것이다.
참으로 놀라운 사건이며, 은혜가 아닐 수 없다.
Sunday, November 27, 2011
한 날 묵상 - 창 27:1-4- <떠나야 하고, 떠나 보내야 하는 부모와 자식 사이에 할 수 있는 최고의 축복은 무엇인가?>
한 날 묵상 - 창 27:1-4- <떠나야 하고, 떠나 보내야 하는 부모와 자식 사이에 할 수 있는 최고의 축복은 무엇인가?>
1절 "이삭이 나이 많아 눈이 어두워 잘 보지 못하더니"
-> 이삭의 삶이 어떠 했는지, 이 말씀에서 알 수 있다. 눈이 어두워져 있는 만큼이나, 그의 인생도 희미한 상황에서 시작했다. 그리고 꺼져가는 생명의 때도 있었다. 아내를 맞이할 때에도 뚜렷히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선하게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경험할 수 있다. 자녀들이 태어날 때에도 쉽지 않았을 뿐 아니라, 태어날 때에도 형제가 순서가 뒤바뀌는 운명으로 태어났다. 자녀들이 자라면서도 그 둘 사이에 늘 긴장감이 있었다. 서로 하나되지 못하는 형제에서 이삭의 마음이 얼마나 눈이 어두워져 잘 보이지 않는 것처럼 희미한 인생을 살았는지 충분히 알 수 있다.
그리고 마지막 임종의 순간에도 그의 눈은 어두워 잘 보이지 않았다. 이 또한 또 한번의 누간가의 손길이 필요하다.
바로 하나님이시다. 그의 인생은 희미했지만, 뒤돌아 본 그의 삶은 뚜렸하다. 왜? 하나님이 손길이 늘 함께 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그의 인생을 이끄시고 인도하셨기 때문이다.
파란 만장한 삶을 살아오다, 이 마지막 순간에 이르러 그는 무엇을 준비하고 있는가?
4절 "내가 즐기는 별미를 만들어 내게로 가져와서 먹게 하여 내가 죽기 전에 내 마음껏 네게 축복하게 하라"
-> 아비는 자식에서 마음 껏 축복을 해야 한다. 어떤 축복의 말씀을 하는가? 27-29절에서 분명하게 나온다. 하나님의 주시는 축복을 말한다. 하나님의 어떠한 축복을 주실 것인지 말씀하신다. 하나님과 함께 함이 형통이 함임을 선포하고 있다.
-> 자녀는 아비에게 자신이 할 수 있는 최고으 진미를 만들어 드려야 한다(2-4절). 에서가 할 수있는 최선의 준비를 드려서 아비를 공꿰하는 모습을 보게 한다.
-> 최선과 최선이 만나 최고의 분으로 이름으로 축복할 때 그 인생은 축복의 길, 형통함의 인생, 그 분의 함께 하심을 맛보는 인생을 살 수 밖에 없다.
하나님이 인생의 주인이시기 때문입니다.
1절 "이삭이 나이 많아 눈이 어두워 잘 보지 못하더니"
-> 이삭의 삶이 어떠 했는지, 이 말씀에서 알 수 있다. 눈이 어두워져 있는 만큼이나, 그의 인생도 희미한 상황에서 시작했다. 그리고 꺼져가는 생명의 때도 있었다. 아내를 맞이할 때에도 뚜렷히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선하게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경험할 수 있다. 자녀들이 태어날 때에도 쉽지 않았을 뿐 아니라, 태어날 때에도 형제가 순서가 뒤바뀌는 운명으로 태어났다. 자녀들이 자라면서도 그 둘 사이에 늘 긴장감이 있었다. 서로 하나되지 못하는 형제에서 이삭의 마음이 얼마나 눈이 어두워져 잘 보이지 않는 것처럼 희미한 인생을 살았는지 충분히 알 수 있다.
그리고 마지막 임종의 순간에도 그의 눈은 어두워 잘 보이지 않았다. 이 또한 또 한번의 누간가의 손길이 필요하다.
바로 하나님이시다. 그의 인생은 희미했지만, 뒤돌아 본 그의 삶은 뚜렸하다. 왜? 하나님이 손길이 늘 함께 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그의 인생을 이끄시고 인도하셨기 때문이다.
파란 만장한 삶을 살아오다, 이 마지막 순간에 이르러 그는 무엇을 준비하고 있는가?
4절 "내가 즐기는 별미를 만들어 내게로 가져와서 먹게 하여 내가 죽기 전에 내 마음껏 네게 축복하게 하라"
-> 아비는 자식에서 마음 껏 축복을 해야 한다. 어떤 축복의 말씀을 하는가? 27-29절에서 분명하게 나온다. 하나님의 주시는 축복을 말한다. 하나님의 어떠한 축복을 주실 것인지 말씀하신다. 하나님과 함께 함이 형통이 함임을 선포하고 있다.
-> 자녀는 아비에게 자신이 할 수 있는 최고으 진미를 만들어 드려야 한다(2-4절). 에서가 할 수있는 최선의 준비를 드려서 아비를 공꿰하는 모습을 보게 한다.
-> 최선과 최선이 만나 최고의 분으로 이름으로 축복할 때 그 인생은 축복의 길, 형통함의 인생, 그 분의 함께 하심을 맛보는 인생을 살 수 밖에 없다.
하나님이 인생의 주인이시기 때문입니다.
Thursday, November 24, 2011
한 날 묵상 - 창 26:12-35 <여호와를 의뢰하여 선을 행하라.. 땅에 거하며 그의 성실로 식물을 삼을지어다>
한 날 묵상 - 창 26:12-35 <여호와를 의뢰하여 선을 행하라.. 땅에 거하며 그의 성실로 식물을 삼을지어다> 시편 33편
13절 "그 사람이 창대하고 왕성하여"음에도 불구하고 이삭은 온유함으로 인내하였습니다. 그리고 여호와를 신뢰하였습니다. 결국 아비멜렉이 찾아와 "여호와꼐서 너와 함께 계심을 우리가 분명히 보았으므로"라고 고백합니다. 그랄지역에서 이삭이 우물 사건에 앞에 보인 믿음의 모습입니다.
12절 "이삭이 그 땅에서 농사하여 그 해에 백배나 얻었고 여호와께서 복을 주시므로"
-> 이삭의 수익이 전해에 백배인지?, 아니면 다른 사람들보다 백배인지? 알 수는 없지만, 중요한 사실은 백배의 소득이다. 여호와께서 복을 주시지 않으면 형통할 수 없다. 여호와께서 특별한 은혜를 주시지 않으면 일상의 소득은 얻을 수 없다.
땅은 정직하다. 노력한 만큼 얻게 되어 있다. 그러나 그게 전부가 아니다. 소출을 얻기 위해서 필요한 수많은 것들이 있다. 늦은비, 이른비, 일조량 등이 그렇다.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이 복 주셔야 한다.
13절 "그 사람이 창대하고 왕성하여 마침내 거부가 되어"
-> 하나님의 이삭을 살피심.
그렇다면, "여호와께서 이삭에게 나타나 가라사대 애굽으로 내려가지 말고 내가 네게 지시하는 땅에 거하라"
하나님이 지시한 땅은 어디인가????
14-22절 "블레셋 사람이 그를 시기하여" - 왜 다툼이 계속 일어났는가?
15절 아브라함 때의 모든 우물을 막고 흙으로 메웠더라.
16절 아비멜렉이 이삭에게 이르되 네가 우리보다 크게 강성한즉 우리를 떠나가라
17절 이삭이 그랄 골짜기에 장막을 치고 우거하며
18-19절 "이삭의 종들이 골짜기에 파서 샘 근원 얻었더니"
20절 "그랄 목자들이 이삭의 목자들과 다투어"
21절 또 다른 우물. 다툼
22절 또 다른 우물. 다투지 아니하였으므로. 르호봇. "이제는 여호와께서 우리의 장소를 넓게 하셨으니 이 땅에서 우리가 번성하리로다 하였더라"
-> 강성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싸우지 않고 자리를 스스로 피하는 이삭.
26-33절 아비멜렉의 약조
28절 "그들이 가로되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씸을 우리가 분명히 보았으므로 우리의 사이 곧 우리와 너의 사이에 맹세를 세워 너와 계약을 맺으리라 말하였노라"
34-35절 에서는 이삭과 리브가의 마음의 금심이 됨.
34절 "에서가 사십세에 헷 족속... 아내로 취였더니"
*충분히 상대방에게 대응할 수 있는 힘이 있을지라도, 선을 행하며, 함께 거하며 성실함을 그들에게 보여주어야 합니다.
이삭은 "그 사람이 창대하고 왕성하여"음에도 불구하고 온유함으로 인내하였습니다. 그리고 여호와를 신뢰하였습니다. 결국 아비멜렉이 찾아와 "여호와꼐서 너와 함께 계심을 우리가 분명히 보았으므로"라고 고백합니다. 그랄지역에서 다툼이 일어날 때, 이삭이 우물 사건에서 보인 믿음입니다.
오늘 하루 억울한 일을 만나며, 한 줌도 안되는 상대를 만나더라도 교만하지 말고 선을 행하고 함께 거하며, 성실함으로 다가가기 원합니다.
한 날 이러한 날을 기대하며 소원합니다.
* 26장이 다루고 있는 주제들은 이후와 마찬가지로 아브라함 생애의 초기 주제들과 유사하다.
25:19-34의 내용의 순서가 11:27-12:9과 유사하다.
26장과 12:10-14:19 내용이 유사다.
* 시편 33편
"여호와를 의뢰하여 선을 행하라.
땅에 거하며 그의 성실로 식물을 삼을지어다...
그러나 오직 온유한 자는 땅을 자치히며,
풍부한 화평으로 즐기리로다..
의인의 구원은 여호와께 있으니:
그는 환난 때에 저희 산성이시로다.
여호와께서 저희를 도와 건지시되:
악인에게서 건져 구원하심은,
그를 의지한 연고로다."
13절 "그 사람이 창대하고 왕성하여"음에도 불구하고 이삭은 온유함으로 인내하였습니다. 그리고 여호와를 신뢰하였습니다. 결국 아비멜렉이 찾아와 "여호와꼐서 너와 함께 계심을 우리가 분명히 보았으므로"라고 고백합니다. 그랄지역에서 이삭이 우물 사건에 앞에 보인 믿음의 모습입니다.
12절 "이삭이 그 땅에서 농사하여 그 해에 백배나 얻었고 여호와께서 복을 주시므로"
-> 이삭의 수익이 전해에 백배인지?, 아니면 다른 사람들보다 백배인지? 알 수는 없지만, 중요한 사실은 백배의 소득이다. 여호와께서 복을 주시지 않으면 형통할 수 없다. 여호와께서 특별한 은혜를 주시지 않으면 일상의 소득은 얻을 수 없다.
땅은 정직하다. 노력한 만큼 얻게 되어 있다. 그러나 그게 전부가 아니다. 소출을 얻기 위해서 필요한 수많은 것들이 있다. 늦은비, 이른비, 일조량 등이 그렇다.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이 복 주셔야 한다.
13절 "그 사람이 창대하고 왕성하여 마침내 거부가 되어"
-> 하나님의 이삭을 살피심.
그렇다면, "여호와께서 이삭에게 나타나 가라사대 애굽으로 내려가지 말고 내가 네게 지시하는 땅에 거하라"
하나님이 지시한 땅은 어디인가????
WBC 창세기 하, p356
"내가 지시하는 땅에 거하라" 그 땅은 가나안인가? 아니며 그랄인가? 대다수의 주석가들은 3절에서 명확히 드러나는 것처럼 그랄을 의미한다고 추정한다. 그러나 니콜은 2절과 3절 사이에 대조적인 면이 있다고 주장한다.
"내가 지시하는 땅에 거하라" 그 땅은 가나안인가? 아니며 그랄인가? 대다수의 주석가들은 3절에서 명확히 드러나는 것처럼 그랄을 의미한다고 추정한다. 그러나 니콜은 2절과 3절 사이에 대조적인 면이 있다고 주장한다.
2절의 '거하다'는 "브엘세바의 땅에서 영구적으로 사는 것"을 의미하며, 그것은 가나안 안에 있지만, 3절은 "그랄에 일시적인 이주민으로서 정착하다"로 이해한다.
14-22절 "블레셋 사람이 그를 시기하여" - 왜 다툼이 계속 일어났는가?
15절 아브라함 때의 모든 우물을 막고 흙으로 메웠더라.
16절 아비멜렉이 이삭에게 이르되 네가 우리보다 크게 강성한즉 우리를 떠나가라
17절 이삭이 그랄 골짜기에 장막을 치고 우거하며
18-19절 "이삭의 종들이 골짜기에 파서 샘 근원 얻었더니"
20절 "그랄 목자들이 이삭의 목자들과 다투어"
21절 또 다른 우물. 다툼
22절 또 다른 우물. 다투지 아니하였으므로. 르호봇. "이제는 여호와께서 우리의 장소를 넓게 하셨으니 이 땅에서 우리가 번성하리로다 하였더라"
-> 강성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싸우지 않고 자리를 스스로 피하는 이삭.
26-33절 아비멜렉의 약조
28절 "그들이 가로되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씸을 우리가 분명히 보았으므로 우리의 사이 곧 우리와 너의 사이에 맹세를 세워 너와 계약을 맺으리라 말하였노라"
34-35절 에서는 이삭과 리브가의 마음의 금심이 됨.
34절 "에서가 사십세에 헷 족속... 아내로 취였더니"
*충분히 상대방에게 대응할 수 있는 힘이 있을지라도, 선을 행하며, 함께 거하며 성실함을 그들에게 보여주어야 합니다.
이삭은 "그 사람이 창대하고 왕성하여"음에도 불구하고 온유함으로 인내하였습니다. 그리고 여호와를 신뢰하였습니다. 결국 아비멜렉이 찾아와 "여호와꼐서 너와 함께 계심을 우리가 분명히 보았으므로"라고 고백합니다. 그랄지역에서 다툼이 일어날 때, 이삭이 우물 사건에서 보인 믿음입니다.
오늘 하루 억울한 일을 만나며, 한 줌도 안되는 상대를 만나더라도 교만하지 말고 선을 행하고 함께 거하며, 성실함으로 다가가기 원합니다.
한 날 이러한 날을 기대하며 소원합니다.
* 26장이 다루고 있는 주제들은 이후와 마찬가지로 아브라함 생애의 초기 주제들과 유사하다.
25:19-34의 내용의 순서가 11:27-12:9과 유사하다.
26장과 12:10-14:19 내용이 유사다.
* 시편 33편
"여호와를 의뢰하여 선을 행하라.
땅에 거하며 그의 성실로 식물을 삼을지어다...
그러나 오직 온유한 자는 땅을 자치히며,
풍부한 화평으로 즐기리로다..
의인의 구원은 여호와께 있으니:
그는 환난 때에 저희 산성이시로다.
여호와께서 저희를 도와 건지시되:
악인에게서 건져 구원하심은,
그를 의지한 연고로다."
Monday, November 14, 2011
한 날 묵상 - 창 24:61-67 <너무 멋진 말!. 나를 멈추게 만든 말! "이삭이 저물 때에 들에 나가 묵상하다가">
한 날 묵상 - 창 24:61-67 <너무 멋진 말!. 나를 멈추게 만든 말! "이삭이 저물 때에 들에 나가 묵상하다가">
63절 "이삭이 저물 때에 들어 나가 묵상하다가"
-> 묵상은 아침에만 하는 것이 아니었군요! ㅎㅎ 물론 이삭은 아침에도 묵상을 했을거라 짐작됩니다. 허나! 오늘 본문은 분명히 "저물 때에"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삭의 일상이 하나님의 말씀을 늘 가까이 하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시편 63:6 "내가 나의 침상에서 주를 기억하며 밤중에 주를 묵상할 때에 하오리니"
저녁에 묵상할 때의 유익 - 하루를 돌아보며 어떤 염려와 어려움을 주님께 맡기고 잠자리에 위로 속에 거할 수 있다.
벧전 5:7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겨 버리라 이는 저가 너희를 권고 하심이니라"
어느 때에 하나님을 만나느냐?의 질문은 유익한 질문이 아니다. 어느 때에든지 하나님을 만날 수 있으면, 그 시간을 어떻게 만들어 내느냐가 좋은 질문이다.
저 이글거리는 해질녘에 주님을 만나 하루의 삶을 회상하며 모든 상황을 주님께 맡기라.
67절 "이삭이 리브가를 인도하여 ... 그를 맞이하여 아내로 삼고 사랑하였으니 ... 위로를 얻었더라"
-> 결혼이란? 사랑하는 것이며, 위로를 얻는 것이다.
- 평생 사랑해야 합니다. 그렇기에 사랑하는 법을 배워가야 합니다.
- 위로를 서로 얻어야 합니다. 삶의 힘듦에서 위로를 얻을 수 있는 길은 부부간에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 결혼이란? 함께 날아 오르는 느낌이 되어야 한다.
- 항상 행복할 수 없지만, 항상 행복을 만들어가야 한다.
- 항상 염려가 없을 수 없지만, 항상 염려를 물리쳐가야 한다.
- 항상 사랑할 수 없지만, 항상 사랑을 해야가려 해야 한다.
결혼이란, 나와 주님이 결혼한 상태로, 부부의 삶을 "JUMP UP!" 해 가는 것이다. 결국 주님이 보여주신 우리 눈에 이상처럼 보애는 실제속으로 우리 삶을 이끌어가는 것이다.(내가 쓰고도 말이 너무 어렵다. 말을 만들려니 더 어렵다.ㅋㅋㅋ.그래도 재미있고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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