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ursday, December 1, 2011

한 날 묵상 - 창 27:5-45- <축복싸움. 사명이 담긴 축복이었다면 과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복받기 위해서 싸울까? 단지 눈에 보이는 축복만을 바라보고 사람들과 우리는 다른 축복 받기 위한 싸움을 해야 한다>

한 날 묵상 - 창 27:5-45- <축복싸움. 사명이 담긴 축복이었다면 과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복받기 위해서 싸울까? 단지 눈에 보이는 축복만을 바라보고 사람들과 우리는 다른 축복 받기 위한 싸움을 해야 한다>

네 명의 부모형제가 펼치는 숨막히는 축복싸움입니다. 아버지의 축복권을 놓고 벌이는 어머니와 두 아들간의 관계에서 결국 축복 싸움이 한 아들이 미움과 분노를 갖는 것으로 막을 내리고 있습니다.

무엇이 문제일까요?
왜 이러한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요?

축복에 대한 잘못된 생각입니다. 복, 복, 복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오늘 본문에서 펼쳐집니다.
그런데 진짜 복은 무엇을까요?

(오늘 본문에서 찾아보는 축복의 바른 의미, 아님 본문의 앞 뒤 문맥에 흐르는 축복의 의미를 살펴보며 연구하자)

 하나님이 말씀하신 영적인 의미와 축복의 의미가 분명히 담겨 있다. 누가 약속의 말씀을 이을 것인가? 하나님의 주신 약속의 말씀을 이을자로서의 축복이다. 그 의미는 사명의 의미도 포함되어 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약속의 말씀을 이을자로서 훈련을 받으며, 시험을 통과했던 것처럼 결코 쉽지 않는 길임을 알아야 한다.

 그러나 아직, 에서와 야곱은 그 의미를 모르고 있다. 단지 아버지가 축복하시는 복만을 받기 원했다. 사명에 붙들린 축복이 바른 축복의 의미이다.


이삭(부)
 1절 "이삭이 나이가 많아 눈이 어두워 잘 보지 못하더니"
 => 축복싸움의 시작은 이삭이 눈이 어두워 잘 보이지 않은데에서 시작된다. 가장 절묘한 타이밍에 서 있다. 하나님의 주권 1.

 5절 "이삭이 그의 아들 에서에게 말할 때에"

 왜? 이삭은 에서였는가?
 장자였으므로??
 이삭은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은 어떻게 이해하고 있었는가?

 18-22절
 23절 "그의 손이 형 에서의 손과 같이 털이 있으므로 분별하지 못하고 축복하였더라"

 분별력이 떨어진 이삭, 하나님의 계획안에 있는 이삭의 축복...
 25절 "네게 축복하리라"
 27절 "그에게 축복하여 이르되"
  28-29절 이삭의 축복
 30절 "이삭이 야곱에게 축복하기를 마치매"


리브가(모)
 6절 "리브가가 그의 아들 야곱에게 말하여 이르되"
       "네 아버지가 네 형 에서에게 말씀하시는 내가 들으니"
 => 절묘한 타이밍. 리브가가 이삭과 에서의 대화를 들었다. 하남니의 주권 2.
 7절 "죽기 전에 여호와 아에서 네게 축복하게 하라 하셨으니"
 10절 "죽기 전에 네게 축복하기 위하여 잡수시게 하라"

 왜? 에서는 아니었는가?
 하나님이 주신 말씀을 기억할 때,
 에서가 지금까지 해온 행동을 비추어 볼 때,

 13절 "어머니가 그에게 이르되 내 아들아 너의 저주는 내게로 돌리리니"
 14-17절 리브가의 준비

 42-45절 리브가와 야곱의 대화
  44절 "노가 풀리기까지 몇 날 동안 그와 함께 거주하라"
 => 몇 날이 될지, 몇 년이 될지 리브가는 알 수 없었다. 모든 주권은 하나님에게 있다. 하나님의 주권 4. 야곱의 몇 년이 그가 훈련받는 시간이었으며, 주님과 인격적으로 만나는 여정이었다.
  45절 "네 형의 분노가 풀려"


에서(형)
  늦은 에서의 등장
 30-41절
 31절 에서가 말함. "내게 축복하소서"
 33절 이삭의 대답 "그를 위하여 축복하였은즉" "그가 반드시 복을 받을 것이니라"
 34절 에서 "내게 축복하소서"
 35절 "네 복을 배앗았도다"
 36절 "내 복을 빼앗았나이다" "나를 위하여 빌 복을 남기지 아니하셨나이까"
 38절 에서 "아버지가 빌 복이 이 하나 뿐이리이까" "내 아버지여 내게 축복하소서"
 39-40절 이삭이 에서에게 대답 이삭이 에서에게는 "축복"이라는 말을 쓰지 않고 있다.
 40절 "네 아루를 섬길 것이며"

 41절 "그의 아버지가 야곱에게 축복한 그 축복으로 말미암이"
 41절 "에서가 야곱을 미워하여 심중에 이르기를 아버지를 곡할 때가 가까웠은즉 내가 내 아우를 죽이리라 하였더니"

리브가는 어떻게 에서의 심중에 있는 마음을 알 수 있었을까?
42절 "맏아들 에서의 이 말이 리브가에게 들리매" 하나님의 주권 3. 리브가는 에서의 심중의 말을 들을 수 있었다. 그 방법이 어떠했던들 들었다. 그리고 야곱의 피할 길을 생겼다.

야곱(동생)
 12절 "내가 아버저의 눈에 속이는 자로 보일지라 복은 고사하고 저주를 받을까 하나이다"


* 생각해 볼 것..
에서의 축복관과 야곱의 축복관은 차이는?
에서는 자신의 개인적인 부를 위한 축복이었다.
야곱은 하나님의 주권과 역사안에서 하나님 나라를 위한 축복이었다.
 가장 먼저는 36절에서 다시 한 번 언급되는 "장자의 명분"을 소홀히 하는 것에서 볼 수 있다.

나의 축복관은 어디인가? 에서의 축복관인가? 야곱의 축복관인가?

* 참으로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27장이다. 등장인물도 많으며, 상황도 급박하게 진행되며, 생사가 오고가며, 축복이 오고간다. 인간사 다 이런 것 아니겠는가? 그렇지만 중요한 것은 이 상황에서 하나님은 어디에 계시는가? 누가 하나님을 지금 기억하고 있는가?
 반드시 하나 기억해야 할 것은 이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역사, 하나님의 주권, 하나님의 통치는 계속되고 있다는 것이다.
 참으로 놀라운 사건이며, 은혜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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