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nday, December 18, 2011

다른 사람을 위해 눈물 한방울 흘려줄 능력 인문학적 기독교(2) - 인간의 본 모습을 회복시키는 학문

인문학적 기독교(2) - 인간의 본 모습을 회복시키는 학문
▲ ⓒ크로스로 윤동혁

인문학의 특징이 뭡니까? 인간의 불행에 대한 보편적인 공감의 능력을 확장시키는게 인문학 아닙니까? 인문학의 핵심은 뭡니까? 인문학은 문, 사, 철, 언 아닙니까? '문사철언'은 문학, 역사, 철학, 언어입니다. 

언어는 뭡니까? 의사소통의 능력입니다. 문학은 뭡니까? 보편적인 공감의 능력입니다. 역사는 뭡니까? 역사상에 일어났던 모든 부조리한 일들과 정답지 못한 일에 대한 울분입니다. 철학은 뭡니까? 지혜를 가르치는 학문입니다. 이 네 가지를 완전히 종합한 학문이 뭡니까? 인문학입니다.
 

인간의 본 모습을 회복시키는 학문이런 학문은 하나님의 형상에 따라 창조된 인간의 본 모습을 회복시키는 학문입니다. 인문학적 소양이 부족하면, 인간은 로봇과 같은 실용적인 지식을 가지고 도구적인 지식들을 가진 사람들로 가득 찬 세상이 돼버립니다. 도구적 지식과 실용적 지식은 네이버에서 검색하면 다 나오는 것들입니다. 

그러나 네이버 검색엔진은 지금 실연당하여 죽어버리려는 눈물에 공헌은 못합니다. 그 엄청난 도구적, 실용적, 통계적, 조작적 지식들과 지금의 경영학적, 경제학적, 공학적인, 이런 모든 지식들은 도구적 공학적 실용적 지능입니다. 그거는 인간성의 함량에 아무런 도움이 안 됩니다. 아무런 도움이 안된단 말이 좀 과장됐습니까? 거의 도움이 안 됩니다.
 
그런데 인문학을 공부한 청년들이, 지금 세상 사람들 눈에 취직을 못할 것 같은 느낌을 주는 것은 마치 하나님이 우리의 취직문제를 해결하지 못할 것 같다는 그런 의심과 똑같습니다. 그럼 뭘 믿어야 되냐면은 하나님을 믿어야 됩니다.
 
김우중과 이건희와 삼성과 메릴린쯔와 리먼브라더스같은 그런 회사의 이념을 믿지말고 인간의 심장과 고통에 빨리 공감하는 신적인 공감의 능력을 가지고, 신적인 동정과 긍휼의 능력을 가진 그런 사람들이 예수님이 찾으시는 인물이고 하나님이 찾으시는 인물이란 겁니다. 이것은 너무너무 중요합니다. 이 확신이 만일에 없으면 여러분은 문학과 역사와 철학과 언어를 공부하는 인문대에서는 아무런 것도 배울것이 없습니다.
 
여러분이 인문학적 소양을 거부하는 순간 여러분에게 남겨진 지식은 뭡니까? 조작적 지식입니다. 실용적 지식입니다. 도구적 지식입니다. 그건 도덕성과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내가 어제 엄청난 살인을 저지르고도 영어를 잘하면, 통역을 하면서 돈을 벌 수 있습니다. 내 인간성이 아무리 망가지고 내가 불효막심한 그런 인간이라도 내가 과학실험을 할 때, 그 플라스크와 실험도구가 내 인간성을 보고 응답을 주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아무리 나쁜 인간성을 가져도 실험은 결과가 나옵니다. 이런 도구적이고 조작적이고, 이런 실용적 지식들은 이 세상에 기계들이 공급적으로 할 수 있는 일들입니다.
 

다른 사람을 위해 눈물 한방울 흘려줄 능력
그러나 한방울의 눈물을 흘려줄 능력은 이건 인문학적 소양에서만 나오는 너무나 진귀하고 천연기념물 같은 희귀한 능력입니다. 이런 지식을 가르치는 것이 인문학이고 인문대학입니다. 여러분. 그런데 이런 인문학의 쇠퇴라는 것이 뭡니까? 이 세계의 손실입니다. 인문학이 쇠퇴하면 이 세계가 손해를 겪는 것이고, 한국에서 인문학이 쇠퇴하게 된 것은 박정희가 카이스트를 만들면서입니다. 

당시 인문학적 소망을 가진 사람들이 너무나 사회에 공공연히 정의와 공평을 빌미로 사고를 많이 치니깐 카이스트 이공계 학생들에게 엄청난 모든 특혜를 몰아주기 위해서 카이스트를 만들었습니다. 
 
의과대학과 법과대학에 가기위해서 아무도 기초학문 하지 않지 않습니까? 그러면 의과대학과 법과대학이 그렇게 인기가 있고 한의예과가 인기가 높은 이유가 뭡니까? 그건 인간성으로 하는 학문이 아닙니다. 도구적이고 실용적이고 조작적인 통계적인, 그런 사실적인 지식 가지고 다 하는 것이 그 학문 아닙니까? 근데 우리가 상담을 할 때 자판기처럼 할 것입니까? 데이터를 집어넣으면 그게 탁 자판기 응답이 나옵니까? 상담, 안됩니다. 상담은 뭡니까? 인간의 심장에 신적인 동정과 긍휼의 능력이 구비되지 않으면 상담 불가능 합니다.
 
인문학적 제자란 것은, 가내 수공업적 제자란 것은 그래서 수작업이 들어갑니다. 그래서 고도의 인격적 측면에서 우리가 신뢰가 동반되고 여기에는 책임이 동반됩니다. 인문학은 지금 너무 이상주의를 표방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인문학도들을, 청년들을 무능력하게 만들려고 하지는 않습니다. 여러분 능력이 많게 만들지만 그 능력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능력을 선하게 사용할 수 있는 압도적인 선한 인간상, 하나님의 형상입니다. 이것을 우리는 여러분에게 심어주려고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이것이 여러분을 취직으로 이끌고 취업으로 이끄는 지름길입니다. 한번 보세요, 어떤 결론이 나오나. 여러분이 만일에 이렇게 의로운 성품과 선한 마음을 갖지 못한채 좋은데 취직을 해본들 직장에서 승진해본들 마지막 인생의 프라임 타임때 감옥가게 됩니다. 여러분 지금 50대 때 감옥가는 사람들은 20대 때 무슨 결심해서 가는거 아닙니다. 50대 때에는 내가 기어코 감옥한번 가야지 50대 때에는 내가 마지막으로 탈옥 한번 크게 해야지 해서 하는게 아닙니다. 그 사람의 50대의 타락을 20대 때 한번도 이웃의 고통에 공감해 보지 못했기 때문에 그런 일이 일어납니다.
 
인문학적 소양이 없는 사람들은 쓰임직스러운 사람이 되지 못하는데, 가끔 인문학적 소양은 없고 인간성은 매우 더럽지만 도구적, 실용적, 조작적 지식이 탁월하여 출세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사람의 출세는 오래가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기초적인 정의감과 의로움과 공평과 정의에 대한 기초적인 것들이 하나님의 형상과 너무나 멀어진 삶을 살기 때문에, 반 사회적인 범죄에 연루될 수 밖에 없습니다.
 
예를 들어, 숭실대 기독교학과는 성경을 전공과목으로 가르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208개 4년제 대학 중에서 전공과목으로 인류의 고전인 성경을 가르치는 대학은 6개입니다. 국내에 6개만 있습니다. 히브리어 헬라어를 가르치는 대학이 6개입니다. 중세에 모든 대학이 1,000년동안 그렇게 열심히 했던 그 일을 지금 하는 대학이 208개 4년제 중에서 6개 밖에 없고 히브리어와 헬라어를 가르치는 대학은 6개밖에 없습니다. 지금 우리나라는 한마디로 인문학적 소양을 가진 사람들을 멸종시키는 나랍니다. 국가적으로 너무나 큰 실책입니다.
 

영어보다 더 중요한 것여러분 역발상이란 말 들어봤죠? 지금은 너무나 도구적 지식에 굉장히 미쳐있습니다. 누가 더 영어점수를 많이 받습니까? 사실은 영어점수, 토플점수 많이 받은 사람하고, 얼굴이 해맑게 웃고 생기있는 사람하고 누가 더 세일즈를 잘할지는 모릅니다. 토플점수 그것은 별거 아닙니다.
 
성경을 배우는 청년들의 얼굴들은 다른 청년들과는 완전히 다릅니다. 이거는 쌍커풀 수술이 해결 해 줄 수 있는 문제가 아니고, 무슨 턱을 사각에서 삼각으로 깎는다고 해결되는 문제가 아닙니다. 왜 성경을 배우는 청년들의 얼굴이 훨씬 낫냐 하면은 인문학적 소양이 그나마 있기 때문에 훨씬 고상해보이고 뭔가 그윽하게 보이고 뭔가 신비감이 좀 들어 보입니다.
 
물론 이런 인문학적 소양감이 많아지기 위해서는 반드시 영어를 빵점맞아야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 도구적, 실용적 지식보다 훨씬 압도하는 인문학적 소양이 있어야지만이 그 사람의 미래가 보장될 수 있고, 그 사람의 미래가, 그 사람이 얻었던 성공과 출세가 쓰임직스러운 결과를 가지고 사회공공재로 바쳐질 수 있다는 뜻입니다.

여러분이 지금 단순히 남과 경쟁해서 더 좋은데 취직하려고 하는 그런 발상만 가지고는 안 됩니다. 여러분은 예수님과 같이 마태복음 9장 35절에서 36절에 있는것처럼 목자없이 불쌍히 유리방황하는 민중들을 위해서, 불쌍한 백성들을 위해서 가난한 이웃들을 위해서 눈물이 몸서리치게 흘러내리며, 어찌하면 내가 저들을 도울 것인가 라는 그런 고민에 휩싸이는, 그런 하나님이 찾는 천연 기념물 같은, 그 설악산에 오랫동안, 천년동안 묵었던 산삼같은 그런 향기나는 인간성의 소유자가 되는 것, 이것이 청년시절에 필요한 것입니다. 
 
이것이 있고 나서야 실용적 지식도 의미가 있고, 이것이 확보된 사람이어야만 영어공부도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안 된 사람이 도구적, 조작적, 실용적 지식을 잔뜩 쌓아서 우선 출세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기억하십시오. 그 사람들은 이런 인문학적 소양을 쌓지 않고, 하나님 말씀인 성경도 모르고, 예수님의 마음도 모르고, 하나님의 형상도 모르고, 다른 사람의 아픔에 공감할 능력도 없는 채로 질주하여 먼저 고시를 패스하고, 먼저 공무원되고, 먼저 무역상사에 취직해본들 그것이 그들의 영구적인 성공이 될 수 없습니다.


퍼온글  http://www.crosslow.com/news/articleView.html?idxno=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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