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날 묵상 - 창 30:1-24 <하나님이 라헬의 소원을 들으시고 그녀를 생각하신지라. 하나님의 일하심이 시작되었다>
우리가 일할 때 우리는 우리의 한계를 보게 된다.
우리가 기도할 때 하나님의 일하심을 보게 된다.
1-21절 인간이 일할 때의 한계...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자꾸 문제가 꼬이게 하는 것 뿐이다.
화... 싸움... 시기... 질투... 뺏고 뺏앗김...
경쟁에서 이기고자 하는 마음만 가득한 것이 죄 아래 있는 인간의 마음이다. 이 때, 이곳에 하나님은 아니 계신다. 하나님은 어디 계신가? 인간적인 생각아래 경쟁과 이기고자 하는 마음 뿐이다.
야곱과 자녀 이야기
레아(르우벤 시므온 레위 유다) -> 시기. 질투 -> 라헬 -> 빌하(단 납답리-언니와 경쟁하여 이김) -> 실바(갓 아셀- 모든 딸들 위에 기쁜자가 되리라) -> 14-15절 절정. 합환채. 과연 합환체는 무엇인가? 그녀들에게 이것이 왜 이토록 중요한가? 이 때 하나님은 어디 계신가?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하나님께 기도하는 자도 없다. -> 레아(잇사갈 스불론) -> 하나님의 라헬을 생각하신지라(22절) -> 라헬(요셉).
1절 "라헬이 자기가 야곱에게서 아들을 낳지 못함을 보고 그의 언니를 시기하여"
2절 "야곱이 라헬에게 성을 내어 이르되 ...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겠느냐"
=> 야곱의 깊은 내면에 하나님이 어느새 자리잡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분을 내는 상황에서는 그는 하나님과 대화하고 있다.
엡 4:26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고" 문을 내어도 죄를 짓지 않는 방법은 하나님과 대화하면서 분을 내는 것이다. 쉽지 않고, 믿음의 고수만이 할 수 있다. 그런데 지금 야곱이 믿음의 고수 자리에 와 있다.
벧엘의 하나님이 바로 야곱의 하나님이요.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되셨다.
하나님과 대화한 근거는? 약속의 말씀을 기억하였던 것이다.
창28:14-15 "너의 자손이 땅의 티끌처럼 많아 질 것이며, 동서남북 사방으로 퍼질 것이다. ... 내가 너에게 약속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내가 너를 더나지 않겠다"
3절 인간이란? "빌하"
이렇게라도 하고 싶어한다. 그런데, 이렇게 해서는 안된다.
이 둘의 차이를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 극복해야만 한다면, 어떻게 이겨야 할까?
- 라헬도 그랬다. 우리도 너무 자책하지 말자. 누구다 예외일 수 있다. 그렇기에 더욱 조심해야 한다. 더 한 걸음이 중요하다.
6절 "하나님이 내 억울함을 푸시려 내 호소를 들으사"
한편으로 그렇지만, 한 편으로 그렇지 않다.
생명은 여호와께 있기 때문에 맞다. 그러나?
"단" 그는 누구인가? 단지파에 내린 축복은 무엇인가?
9절 "실바" 악은 반복되어진다.
좋아 보여 따라가는게 인간이다. 좋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Hye Jin Hanhttps://www.facebook.com/profile.php?id=100001568072855
[스스로도 속을 수 있다]
이사야와 예레미야 선지자가 활동할 당시, 백성들은 물론 종교 지도자들까지 우상숭배에 젖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정작 본인들은 우상숭배를 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으며 하나님을 잘 섬기고 있다고 여겼습니다. 종교생활은 잘 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시대의 문제는 오늘날에도 동일합니다. 역사는 되풀이 됩니다. 맘몬신과 물질주의와 자아(포스트모던)의 우상을 섬기고 있지만 정작 본인은 하나님을 잘 섬기고 있다고 여길 수가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종교에 속지 않으시는 분입니다.
14절 "밀 거둘 때 르우벤이 나가서 들에서 합한채를 얻어 ... "
15절 "레아가 그에게 이르되 네가 내 남편을 빼앗은 것이 작은 일이냐 ... 합한채도 빼앗고자 하느냐"
22-24절 우리가 기도할 때 하나님이 일하신다.
22절 "하나님이 라헬을 생각하신지라 하나님이 그의 소원을 들으시고 그의 태를 여셨으므로"
23절 내 부끄러움을 씻을 수 있는 한 분 여호와 "내 부끄러움을 씻으셨다"
김기현 "내 안의 야곱 DNA" p19. 인간의 방법으로 하나님의 뜻을 이우려 했으니 인생 고달플 수 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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