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nday, December 18, 2011

"결국 영어점수 높은 놈이 출세한다고요?" 인문학적 기독교(4) - 영어공부보다 중요한 필독 도서


 인문학적 기독교(4) - 누가 악인이 되느냐?
  
▲ ⓒ크로스로 윤동혁


여러분이 청년일 때 하나님의 넉넉한 돌보심을 확신한다면, 여러분은 모든 공부가 갑자기 너무 너무 중요해지고 신학으로 돌변합니다. 그때는 영문학도 신학이 되고, 경영학도 신학이 되고, 전자공학도 신학이 되고, 문학도 하나님을 위한 것이 됩니다. 하나님의 넉넉한 돌보심을 확신하는 사람이 됩니다.
저는 우리 청년들이 공부하는 이것이 얼마나 중요한 공부인가를 실감했으면 좋겠습니다. 누구나 세상에 대해서 내일 일을 염려할 수 있습니다. 내일 일을 누가 의복을 위해 염려하는, 좀 좋은 옷을 입으려고 염려하는 것, 좀 좋은 음식을 먹으려고 염려하는 것. 그것이 취직 잘 하려고 하는 염려입니다. 외국에서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라고 하는 여사가 쓴 <오래된 미래>라는 책을 읽어 보셨습니까?
 
적극적 선 / 적극적 의 / 적극적 믿음

  
 
제목 : 오래된 미래
카테고리 : 시/에세이
지은이 :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 (중앙북스, 2007년)


이 책 두껍지 않습니다. 한번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데이비드 쓰로우와 마하트마 간디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우리가 만일에 기꺼이 오막살이에 살 마음을 갖지 않으면 이 세계는 항상 탐욕의 전쟁에 휩쓸려 갈 수 밖에 없다.”
내가 오막살이에 살 각오를 해야 이웃과 평안하게 지낼 수 있습니다. 내가 고대황실에서, 내가 엄청 좋은 아파트에서 살려고 몸부림하면 나는 좋은 사람이 될 수 없습니다.
예전 노원구청장과 송파구청장간의 싸움이 벌어졌던 때가 있습니다. 노원구청장에게 노원구에 25평짜리 국민주택을 지으라고 계속 국토해양부인지 무슨 토지공사인지에서 촉구가 들어왔습니다. 그런데 송파구청장은 더 많이 지어야 했습니다. 토지공사에서 주택공사에서 국민주택분양을 많이 했습니다. 그런데 당시 공정택이라는 교육감이 송파구청장에게 “강남에는 25평이하의 국민주택을 지으면 안된다. 강남이 강남땅값이 똥값으로 떨어지기 때문”에 그랬더니 그것을 듣고 노원구청장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그러면 우리 노원구는 지금 이 가난한 사람들이 사는 국민주택을 많이 지을수록 우리 노원은 슬럼화되고 빈민 동굴화 되는데 우리 노원구만 이렇게 못사는 사람들이 사는 집성촌이 되야되겠냐. 송파구 너희들도 좀 지어라.”
일찍이 서초구 우면동 사람들이 국민주택을 결사반대 해서 못사는 사람들을 쫓아냈습니다. 여러분이 바로 이 서초구 부녀회의 회원이 되어 머리띠 매고 데모하러 나온 사람들로 TV에 찍힐 수가 있습니다.
“국민주택 결사반대 ○○대 2007학번” 이렇게 막 나올수가 있습니다.

여러분 이런 것이 바로 인문학적 소양이 없는 사람입니다. 지금 나를 존경한다고 하는 많은 사람들이, 바로 그렇게 그런 사람들입니다. 제 설교를 좋아한다고 해 놓고 분명히 서초구 우면동 사람처럼 국민주택을 몰아내기 위해서 결사반대하면서 님비현상을 막 불러 일으켰습니다. 지금 우리 모두에게,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를, 25평 국민주택을 받아들일 수 없다면, 우리는 가난한 사람과 한동네 살기 싫다는 것 아닙니까? 아직도 이 악한 일이 지금 서울 백주대낮에 벌어지고 있습니다. 송파구는 국민주택 이백만호가 들어오면 송파구 땅값이 반값으로 떨어질 것을 두려워하여 무섭게 발버둥쳤었습니다. 얼마나 악한 것입니까?

여러분 우리 청년들이 사는 세상은, 우리 청년들이 직면하는 세상은 어설프게 의로운 사람이 있지 않습니까? 어설프게 믿는 사람은 금방 잠재적으로 악한 사람이 되거나, 악한 자의 동맹세가 될 만큼, 악인들이 활동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적극적으로 선하지 않으면, 적극적으로 의롭지 않으면, 절대로 믿음의 사람으로 살 수 없는 세상입니다.
여러분이 만약에 나이가 들어 서초구 우면동에 살고, 75평 빌라에 사는 사모님이 된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25평 빌라를 우리 동네에 지을 수 없다고 사인하시겠습니까? 데모하시겠습니까? "나는 옛날에 김회권 교수의 강의를 들었기 때문에 그럴 수 없다"고 할 것입니까? 그렇다면 주민들이 빨간 스프레이로 “죽어라!” 이렇게 문앞에 테러가 일어날 것입니다. 그런 식으로 내 차가 빵꾸납니다. 우리가 적극적으로 하나님 말씀을 묵상하면서 하나님 말씀대로 살지 않고 시냇가에 심은 나무처럼 의로운 열매를 맺지 않으면, 잠재적인 악의 동맹세력이 되어서 악한자의 이름으로 분류됩니다.
 
누가 악인이 되느냐?
  
 
제목 :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카테고리 : 인문
지은이 : 한나 아렌트 (한길사, 2006년)

여러분 잘 들으세요. 성질이 더러워서, 성질이 악해서 악한 일을 하는 사람보다, 악역을 맡은 악한 사람이 훨씬 더 많은 악한 일을 합니다. 성질은 좋지만 악역을 맡아서 하는, 평범한 악의 역할을 하는 사람이 더 악을 많이 범하는 겁니다. 성질이 더러워서 악을 범하는 사람은 징역 2년 받습니다. 한나 아렌트는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악의 평범성’이란 말은 무엇입니까? 한나 아렌트가 아우슈비츠에서 백오십만을 죽였던 그 아돌프 아이히만 중령이 얼마나 악한 사람인가를 보러 갔습니다. 아돌프 아이히만이 완전히 엄청난 악인처럼 생길 줄 알았습니다.
왜? 그렇게 악한 일을 많이 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루살렘에 열리는 전범재판에 갔던 사람들이 아돌프 아이히만의 얼굴을 보고 완전히 뒤로 넘어졌습니다. 너무나 모범적이고 선량한 얼굴을 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말이 뭐냐 하면, 우리가 성질이 더러워서 악한 일을 하는 것보다 성질이 더러워서 좀 절제를 못해서 악한 일을 하는 사람보다, 지식을 가지고 도구적, 조작적 지식을 가지고 월 스트리트 금융파산한 그 악한 인간들이 더 악한 인간들이라는 것입니다. 도구적, 조작적 지식을 가지고 엄청난 악을 범한 인간들이 더 많은 사람들을 죽입니다. 그래서 한나 아렌트는 악이란 너무나 평범한 모습을 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악의 평범성입니다.
그럼 누가 악인이 되느냐? 내가 하고 있는 일의 결과를 생각할 줄 모르는, 공감의 능력이 전혀 없는 사람, 상식적인 동정심이 없는 사람, 다른 사람이 죽겠다고 아우성쳐도 그 죽겠다고 아우성치는 사람의 아픔에 공감하지 못하는 관료적 성실성. 이 관료적 성실성이 가장 악한 것입니다. 

이 관료적 성실성이 예수님이 죄없는 자인줄을 알았지만 “네가 가이사의 총독의 자리에 있으면, 가이사의 충신이 아니냐? 이 예수를 사형에 처하지 않으면 너는 가이사의 충신이 아니다. 네가 총독의 자리를 보전하려면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아야 한다.”라는 말에 예수가 무죄인 것을 확신했던 로마총독 빌라도는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았습니다. 왜? 관료적 성실성, 자기 관료적 직위를 유지하기 위해서입니다. 이것을 바로 한나 아렌트는 무사유의 죄라고 했습니다.

무사유라는 말은 무엇입니까?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이 박힐 때 이런 말을 했습니다. “주여 저들이 무슨일을 하고 있는지를 알지 못합니다.” 로마 제국의 군병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떵떵 못박으면서 그들이 메시아 하나님 아들을 십자가에 못박는 것을 알지 못한 채 그런 일을 저질렀습니다. 우리가 그런 사람들이라는 겁니다. 인문학적 소양이 없는 사람, 인문학적 소양이 없는 사람들이 행정고시, 사법고시 출세하면 빌라도 같은 일을 할 수 밖에 없고, 아돌프 아히만 같은 일을 관료적 위계적 성실성으로, 그런 악한 일을 해버립니다.

프리모 레비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탈리아 출신 아우슈비츠 생존자입니다. 이 프리모 레비라는 사람은 아우슈비츠 생존자였던 비트프랭크과 맞먹는 정을 나누었습니다. 여러분 들어보았습니까?
 
  
 
제목 : 이것이 인간인가
카테고리 : 시/에세이
지은이 : 프리모 레비 (돌베개, 2007년)


여러분 프리모 래비가 <이것이 인간인가>라는 책을 썼는데, 그 프리모 레비가 쓴 <이것이 인간인가> 라는 책 속에 나오는 아우슈비츠의 병사들, 그 독일 병정들의 잔학무도함 앞에 자기를 저주합니다. 이 잔학무도한 아우슈비츠의 독일 병정들에게 놀이개감이 된 자기 인생을 증오합니다. 증오합니다. 이런 것에 대해서 가장 슬픔을 많이 느낀 사람이 최근에 돌아가신 알렉산드라 솔제니친입니다.

여러분께서 “에이 교수님 그렇지 않죠. 내가 아무리 교수님 그래봤자 결국 영어실력 좋은 놈이 출세하더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나는 인문학적 소양이 없는 그 스피디한 출세가, 그 신속한 출세가 아무 소용이 없는 거구나 그걸 깨닫게 되었습니다. 나는 점점 확신이 듭니다. 나는 우리 청년 여러분들이 굳건한 하나님의 믿음으로 인문학적 소양과 문사철언, 이 세상에 가장 근본인 인간의 도리를 문학, 역사, 철학, 언어 그리고 이 모든걸 종합하는 하나님에 대한 참된 믿음을 고양하면 반드시 여러분이 일자리를 구하는 것에 어떤 어려움도 나는 없으리라 믿습니다.

하나님과 기독교 신앙과 도킹하기

  
 
제목 : 모세 오경
카테고리 : 종교
지은이 : 김회권 (대한기독교서회, 2005년)

난 믿습니다. 여러분 진짜 어디서 지성을 연마하며, 어디서 인문학적 소양을 개발하며, 어디서 문사철언을 통합하는 이런 기독교 신앙을 배울 것입니까? 어디서 이 불확실한 시대에 하나님 없이 돈의 힘으로 돌파할 것입니까? 하나님 없이는 돌파할 수 없는 이 피조물의 한계를 여러분은 어떻게 할 것입니까? 여러분이 굳건한 기독교 신앙이 있는 것이 인문학을 완성하는 길입니다.
 
굳건한 기독교 신앙은 여러분이 교회 좀 다니고 약간 기독교 동아리에서 왔다리 갔다리 한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절대로. 하나님과 여러분 사이에 정말로 아무도 대체할 수 없는 고요하고 절대적인 만남의 순간이 있어야 합니다. 신앙의 회의가 들거든 산에 올라가서 몇 일씩 금식하면서 성경을 읽어야 할 것입니다. 

자기가 알고있는 신앙에 회의가 들고 믿어지지 않으면 정말로 기독교 신앙을 포기할 것인지 극적으로 도킹할 것인지를 결정하기 위하여 저는 금식기도, 산에 올라가서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핸드폰 끊고 모든 하나님의 메시지 외에는 모든 인간의 커뮤니케이션을 끊고 수직적인 하나님 계시를 기대하기 위해서 몰입해보는, 말씀에 몰입해보고 기도에 몰입해보는 찬양에 몰입해보고 명상에 몰입해보는 그런 시간이 청년기에 있기를 나는 바랍니다. 
그런 격조높은 영적 거성들이 우리 청년들에게서 우뚝우뚝 몇 사람씩 솟아나기를 바랍니다. 고만고만하고 이렇게 들어도 그만 안들어도 되는 잡담을 지껄이는 수준의 대화가 아니라 선배 한마디가 친구 한마디가 영적인 울림과 파도를 일으키는 그런 영적인 신령한 거인들의 하나님의 실제를 맛본 사람들의 신앙하나가 격조높은 믿음하나가 왜 우리 청년들 사이에 수수되기를 나는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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