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esday, December 6, 2011

美 와튼스쿨이 전하는 ‘행복과 돈의 관계’


美 와튼스쿨이 전하는 ‘행복과 돈의 관계’

“돈으로 행복을 살 수 없다.” “돈이 있어야 행복할 가능성이 더 크다.” “행복과 소득은 어느 정도 연관성이 있다.”
돈과 행복에 대한 전문가들의 견해가 미묘하게 갈리고 있다. 누구의 주장에 손을 들어줘야 할까. ‘행복의 경제학’ 저자인 쓰지 신이치 메이지가쿠인대 국제학부 교수는 “돈과 행복 사이에는 등호가 성립하지 않는다”며 “인간의 영혼이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물질적 풍요만 추구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자본주의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돈의 위력은 참으로 강하다. 물질만능주의가 팽배하면서 돈만 있으면 모든 게 해결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아지고 있다. 좋은 집에 살고, 좋은 차를 타고, 값비싼 옷에 명품 가방을 걸쳐야 행복해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다. 특히 돈이 없어 비참한 지경에 처해봤던 사람이라면 더더욱 돈의 힘을 신봉할 수도 있을 것이다. 결혼을 앞둔 자녀가 있는 부모들이 기왕이면 좋은 조건을 가진 사람과 결혼해야 고생하지 않고 행복해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도 자신도 모르게 돈의 힘을 의식하고 있기 때문. 대부분의 경제학자들도 소득이 행복의 필요조건이라는 데에는 동의하고 있다. 소득이 높을수록 효용이 증가하면서 행복해지는 것 아니겠느냐는 것이 경제학자들의 입장.
최근 와튼스쿨의 웹진 ‘Knowledge@Wharton’에서는 이 문제에 대해 다각적인 분석을 하며 행복과 돈의 관계에 대한 학계의 입장을 보여주고 있다. 우선 웹진에서는 경제학자에서 사회학자, 심리학자에 이르기까지 대부분의 학자들이 일국의 경제 발전과 개인의 행복 사이에 강한 연관성이 있음을 인정하고 있다고 전한다.
와튼스쿨의 베시 스티븐슨, 저스틴 울퍼스 교수는 ‘주관적 웰빙(행복), 소득, 경제 발전과 성장’이란 논문을 통해 경제 발전과 행복 사이에는 밀접한 연관관계가 있음을 밝혀냈다고 주장했다. 울퍼스 교수는 “한 국가 내에서 보다 부유한 사람이 행복하고, 부유한 나라의 국민이 가난한 나라의 국민보다 더 행복하다는 사실을 입증했다”며 “미국과 같은 부국의 높은 생산성이 국민들의 소비 선택 범위를 넓혀주기 때문에 행복감을 더 느낄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이는 기존 ‘국민소득이 늘어난다고 해서 행복한 사람의 비율이 늘어나지는 않는다’는 내용의 ‘이스털린의 역설(Easterlin’s paradox)’이 실제 사실에 근거하지 않고 있다고 주장한 것. 리처드 이스털린 서던캘리포니아대 교수는 70년대 중반 방글라데시, 부탄과 같은 빈곤국가 국민들의 행복지수는 높은 반면 미국, 프랑스 등 선진국은 행복도가 낮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은 바 있다.
상대적인 박탈감에서 벗어나야 행복하다
최근 이스털린 교수는 자신의 견해를 입증하기 위해 새로운 논문을 발표하면서 “한국, 중국, 칠레의 경우를 보면 지난 20년간 1인당 국민소득이 2배 늘어났음에도 삶의 만족도는 떨어지고 있다”며 “장기적으로 행복의 수준이 소득 수준과 함께 높아지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이는 로널드 잉글하트 미시간대 교수의 견해와도 일정 부분 맥을 같이한다. 잉글하트 교수는 “일정 수준까지는 소득이 높아짐에 따라 행복지수가 높아지는 정(+)의 관계가 성립하지만, 1인당 국민소득이 1만5000달러 수준에 이르면 소득이 행복지수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해진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지난 1945년부터 2000년까지 미국의 1인당 국민소득이 3배 늘었음에도 행복지수는 제자리에 머물렀다.
물론 가난이 생존 자체를 위협하는 국가에서는 부가 행복을 가져다 줄 수 있다. 긍정심리학의 대가인 마틴 셀리그먼 펜실베이니아대 교수도 이를 부정하지는 않았다. 기본적인 삶의 조건들이 갖춰져 있지 않은 상황에서 행복을 논한다는 것 자체가 사치일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셀리그먼 교수는 잉글하트 교수의 견해처럼 일정 수준의 경제력이 뒷받침된 국가, 이를테면 한국과 같은 상황에서는 소득이 많고 적음이 행복으로 이어지지 않음을 분명히 했다.
지난해 미국 심리학협회에서는 행복은 소득과 어느 정도 연관성이 있지만, 국민소득이 높은 나라에 산다고 해서 국민이 행복감을 느끼는 건 아니라는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조사에 참여한 에드 디너 일리노이대 심리학과 교수는 “비교적 소득 수준이 높은 한국 국민은 기대했던 것보다 이하로 조사됐다”며 “한국은 국민소득에 비해 사회·심리적 필요 충족도가 떨어지는 대표적인 국가”로 꼽았다.
그렇다면 왜 국민소득이 늘어나는데 행복지수는 제자리에 머물러 있거나 감소하는 것일까. 이는 돈과 행복의 관계에 있어서 ‘얼마나 많은 돈을 벌고 있는가’의 문제가 아닌 ‘타인과 비교했을 때 적정 수준의 돈을 벌고 있는지’가 개인의 행복감을 결정짓기 때문이다.
미 캘리포니아대 리버사이드캠퍼스(UCR)의 소냐 류보미르스키 교수는 “연구 결과 개인의 연봉이 삭감되거나 실직하게 되면 상당한 실망감을 느끼지만 모든 사람이 다 같이 겪을 경우 삶의 만족도는 줄어들지 않는다”며 “사람들은 은행 계좌에 돈이 얼마나 들어 있는지, 절대적인 평판이 어떤지보다는 사회에서의 위상, 서열 등에 더 많은 관심을 갖는다. 이는 인간 본연의 특성에 기인한다”고 지적했다. 잉글하트 교수도 “사회 전반적으로 경쟁을 부추기는 환경 속에서 타인과의 비교가 훨씬 중요해지고 있다”며 “사회의 유형에 따라 국민의 행복과 웰빙 수준이 크게 높아질 수 있다”고 설명한다.
이와 함께 웹진에서는 에드 디너 교수의 말을 인용해 “돈과 행복의 관계는 한마디로 정의할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하다”며 “돈이 많을수록 행복해진다는 결론에 이르기 위해서는 경제적으로 풍요로운 국가에 살고 있는지, 어떻게 돈을 지출하는지, 자신의 부를 타인의 부와 어떻게 비교하는지, 시간에 대해 어느 정도 가치를 부여하고 있는지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순간순간의 행복은 얼마를 버는지와 무관하다
웹진은 갤럽에서 전 세계 개인들의 행복도 조사를 실시한 결과, 일상적인 삶의 만족도는 소득과 밀접한 상관관계를 보이지만, 개인들이 순간순간 느끼는 감정은 그들이 벌어들이는 소득보다는 다른 요인에 영향을 많이 받고 있다고 전했다. 다시 말해 개인들은 자신이 직장을 갖고 있거나 결혼을 했거나 또는 건강이 좋다면 행복하다고 답하기 때문에 이 경우 개인소득, 국민소득과 행복 간에는 전 세계적으로 강한 상관관계가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현재 직장 생활이 즐거운지, 새로운 것을 배우고 있는지, 친구들을 만나 시간을 보내는지 등 순간순간 삶에서 행복감을 느끼고 있는지에 대한 질문을 할 경우 얼마만큼의 돈을 벌고 있는지는 답변에 큰 영향을 끼치지 못한다는 설명이다.
또한 웹진은 돈을 어떻게 벌고 있는지 그리고 그 돈을 어떻게 쓰고 있고, 시간을 어떻게 활용하는지도 행복을 측정하는 데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대기업에 근무하면서 연봉을 많이 받더라도 자신의 행복을 증진하는 데 투자하기보다 대부분의 돈을 자신의 품위 유지나 가정부 월급으로 써버린다면 연봉을 많이 받는 게 의미가 없을 수도 있다는 것. 게다가 대부분의 시간을 일하고 출퇴근하는 데 사용하고 업무 외 다른 일에는 시간을 쓰지 못한다면 결코 행복한 삶을 누리지 못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따라서 차라리 돈이 많고 적음을 떠나서 갖고 있는 돈을 어떻게 지출할 것인지를 고민하는 게 행복감을 더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웹진은 설명한다. 웹진은 류보미르스키 교수의 말을 인용해 “얼마나 많은 돈을 갖고 있는지와 관계없이 그 돈을 어떻게 쓸 것인지 전략을 잘 짠다면 개인의 행복을 극대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예를 들어 자신을 위해 물질을 사용하기보다는 자선사업에 동참하거나 친구에게 식사 대접을 할 때 행복감은 배가될 수 있다는 것. 이는 브리티시컬럼비아대 연구 결과와도 일치한다. 브리티시컬럼비아대 연구팀이 자원자들에게 돈을 나눠주고 일부는 자기 자신을 위해 돈을 쓰게 하고, 다른 일부는 타인을 위해 돈을 사용하도록 실험을 했는데, 실험 결과 후자의 경우가 행복감이 훨씬 높게 나왔다.
류보미르스키 교수는 굳이 타인을 위해 돈을 쓰지 않더라도 개인적인 발전을 위해 돈을 지출한다든지, 특별한 여행을 다녀온다든지 할 경우에도 행복감은 지속될 수 있다고 설명한다.
특히 신혼여행과 같이 개인적인 특별한 경험은 기억에도 오래 남을 뿐 아니라 타인과도 비교할 수 없기 때문에 행복감은 오래 유지될 수 있다. 행복감이 일시적인 기분에 취하는 쾌락과 달리 지속적인 상태를 의미하는 것과도 일맥상통한다.
[김헌주 기자 dongan@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1593호(11.02.16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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