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iday, January 27, 2012

한 날 묵상 - 창39:19-23 <억울한 누명, 현명한 방법은?>

한 날 묵상 - 창39:19-23 <억울한 누명, 현명한 방법은?>

 억울한 누명을 받을 때 하나님을 바라보십시오. 오직 양심으로만 답하십시요. 그리고 아무런 말도 하지 마십시오. 때가 되며, 무대가 될 때 말해도 늦지 않습니다. 먼저 양심을 하나님께 내어 보이는게 훨씬 중요합니다.
=> 억울한 누명을 받을 때 변명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

19절 "그의 주인이 ... 심히 하지라"
=>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는다. "주님이 때가 되면 하시리라"는 믿음이 있었다.
어느 것도 믿음을 이길 수 없다. 믿음이 있으니 무엇이든 승리한다.
 하나님과 항상 함께 한다는 의미는 매순간의 때에 늘 함께 해야 함이다.

20절 "이에 요셉의 주인이 그를 잡아 옥에 가두니"
=> 흔히들 우리는 이때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한다. 물론 힘의 논리로 사람을 지배하는 것이 가장 큰 문제이지만, 힘의 논리로 나오는 사람에게 힘의 논리로 정면승부하는 것 또한 현명하지 못하다. 이 찰라의 순간에도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한다.

21절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고 그에게 인자를 더하사 간수장에게 은혜를 베푸시매"
23절 "이는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심이라 여호와께서 그를 범사에 형통하게 하셨더라"
=> 39장의 처음과 시작은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이다. 그리고 그 사이의 내용이 요셉의 시험이다. 즉 억눌한 누명을 쓴 요셉이 어떻게 그 일을 처리하는 지를 보여주고 있다.
 요셉은 하나님께 칭찬 받을 뿐 아니라, 사람들에게도 인정받았다. 나아가 억울한 누명의 시험을 받더라도 자신의 힘이나 권력으로 그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때를 기다린다.
 하나님이 요셉과 함께 함에 그에게 늘 형통함이 있었다는 말씀은 이처럼 요셉이 형통함을 누리는 삶을 누릴 수 밖에 없는 사람이었음을 보게 된다.

* 시골의사 박경철의 자기혁명
2장 세상과의 대화
언어는 그 사람을 말해주는 지표다.
 말의 신중함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당나라 대 주요 관직에 있다가 당이 망한 후에도 진과 한 등에서 벼슬을 지낸 처세의 달인 풍도가  쓴 <설시>의 한 구절을 살펴보자.

 입은 곧 화에 이르는 무이요
 혀는 곧 몸을 베는 칼이니
 입을 닫고 혀를 깊숙히 감추면
 가는 곳마다 몸이 편할 것이라

말에서 충요한 첫번재 덕목은 호흡인데, 호흡을 고르기 위해서는 대화 도중 말을 하고 싶을 때 딱 2초만 쉬면 된다.
두번째는 설득력이다. 우리는 보통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들을 때 신중해 보이는 사람의 의견에 더 귀를 기울인다.
세번째는 분노를 다루는 것이다.
네번째는 진실성인데, 말의 앞뒤가 일관하고 논지가 바로 서 있으며 실수는 바로 인정하는 것이다.
다섯째는 평가를 자제하는 것인데, 그것이 좋은 것이건 나쁜 것이건 특히 사람에 대한 평가는 극히 주의해야 한다.
여섯번째는 같은 말을 반복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말은 그 사람의 삶을 보여준다.
 말은 한 사람이 살아온 흔적이기 때문에 거친 언행을 일삼아온 사람은 아무리 감추어도 그것이 드러나게 마련이다. 낭중지추라고, 송곳은 언제가 주머니를 뚫고 나오게 되어 있다. 또 말과 행동에는 상당히 밀접한 관계가 있다.

참고 http://www.hislove.or.kr/new/sub08/sub_01.htm?tname=sub04&mode=view&idx=35&page=1&key=&keystring=&flag=%C8%F7%BA%EA%B8%AE%BC%BC%B0%E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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