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날 묵상 - 막 1:8, 12-13 <거듭남의 비밀, 물세례만 받았는가? 성령세례도 받았는가? 성령시험과 사탄의 시험을 통해 알 수 있다>
1. 개인적으로 스포츠를 좋아합니다. 공으로 하는 종목들은 거의 좋아한다고 보면 됩니다. 스포츠 경기를 하거나 보거나 직접 하는 것 다 좋아합니니다.
2. 물론 잘 하지 못하지만, 스포츠 경기에 재미있게 참여하려고 합니다. 때론 함께 하는 팀원들이 저를 어려워 할 때도 있습니다. 나이도 많고 목사라고 뺄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3. 스포츠를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지난 주에 참으로 안타까운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농구스타 선수 출신이며서 감독이었던 강동희 감독이 농구 경기에서 승부조작으로 구속된 사건입니다.
4. 스포츠 경기는 항상 공정해야 합니다. 필드에서 뿐아니라 어떠한 외풍에서도 공정하게 진행되어 경기 결과를 가져야 합니다.
5. 그런데 가장 공정해야 하는 스포츠 경기에서 외적인 영향에 의해 승부가 조작되었다는 것을 실로 충격이었습니다. 무엇보다 스타 선수 출신이며 감독인 사람이 그 사건 중심에 있었다는 것이 더욱 큰 충격이었습니다.
6. 참으로 좋아한 선수이며 감독이었는데 말입니다.
7. 왜 이러한 사건이 일어났을까? 그러면서 생각하는 것이 그리스도인도 그러할 때가 많다는 것입니다.
8. 무슨 말씀입니까? 그리스도인으로 거듭난 사람들은 참으로 정직하고 진실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급격히 적어진 것(기독교인에 대한 사회적 이미지가 좋지 않다는 의미입니다)은 참으로 안타까운 현실이지만, 그래도 그리스도인들은 스스로 생각하기에, 그리고 다른 사람이 생각하기에도 진실하고 정직한 사람으로 빚어져 가야 합니다.
9. 그런데, 그렇지 못할 경우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왜 이러한 일들이 일어날까요?
10. 마가복음 1장에서 보면, 오늘 본문에 앞서 예수님께서 세레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셨습니다. 세례를 받았다는 것은 중생했다는 의미입니다. 거듭났다는 말입니다.
11. 그런데, 거듭난 사람들이 여전히 죄 아래 살아간다는 것이 오늘 우리의 현실입니다. 저를 포함해서 모두가 그렇습니다.
12.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도 13절에서 보듯이 사탄에게 시험을 받음으로서 그 유혹에 노출되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13. 거듭난 사람이라도 이처럼 죄의 유혹에 노출될 수 밖에 없습니다. 마지막 생애를 끝내는 그 순간까지 이와 같은 유혹은 계속될 것입니다.
14. 그래서 결코 우리는 방심해서는 안됩니다. 항상 말씀안에, 진리안에 깨어 있어야 합니다.
15. 그리스도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죄의 유혹은 두 가지입니다.
16. 첫째는 성령의 시험입니다. 오늘 12절에 보면, "성령이 곧 예수를 광야로 몰아내신지라"고 말씀합니다.
17. 이는 성령께서 광야로 예수님을 이끌었다는 의미입니다. 광야는 어디입니까? 세상입니다. 세상은 어떠한 곳입니까? 사탄의 유혹이 득실 거리는 곳입니다. 13절에서 보면, "광야에서 사십 일을 계시면서 사탄에게 시험을 받으시며"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18. 우리가 다른 복음서에서 말씀하는 것처럼, 사십 일 금식후에만 사탄이 유혹했다고 생각할 수 있는데, 마가복음 그렇게 기록하지 않고 있습니다.
19. 사십 일 동안 광야에 있을 때에도 사탄의 유혹은 계속되었습니다. 그런데 사탄이 예수님을 시험하기 위해 결정적 세 가지것을 준비했는데, 그 내용이 바로 다른 복음서에 나오는 예수님의 광야 40일 이후의 시험입니다.
20. 이처럼 성령도 우리를 시험합니다. 야고보서에서도 그 내용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야고보서 1장 2-3절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브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참고로 약 1장 12-18절을 보는 것도 좋습니다.
21. 저는 성령의 시험을 가리켜 은혜 뒤에 찾아오는 고약한 시험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22. 은혜 뒤에 우리가 더욱 멋진 모습으로 믿음의 전성기를 누리면 좋겠는데, 아쉽게도 그렇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은혜뒤에 찾아오는 시험이 있습니다.
23. 그렇다면, 왜 은혜 뒤에 고약한 시험이 찾아올까? 그것도 성령이 우리를 시험하는 것일까요?
24. 저는 여기에서 몇 가지 성령의 시험이 주는 유익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24. 첫째는 성령이 충만할 때 어떠한 시험을 만나도 이길 수 있는 내성을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이는 "이김을 주고자"함입니다. 승리를 하는 사람이 계속 승리할 수 있습니다. 믿음의 이김을 하는 사람이 어떤 유혹에도 이길 수 있습니다. 성령 충만할 때 이김의 은혜를 체험하도로 하기 위함입니다.
25. 둘째는 "훈련을 하고자"함입니다. 믿음의 훈련, 신앙 성숙의 훈련은 계속되어야 합니다. 성령 충만의 순간, 은혜의 순간에도 훈련은 계속됩니다. 우리에게 있어서 성령을 사모하고, 은혜를 충만히 누리는 정점은 우리가 살아 있는 이 순간 찾아오지 않습니다. 계속 해서 훈련을 통해 믿음은 성숙해져가야 합니다. 교만하지 않기 위한 훈련의 시간이 되는 거죠.
26. 셋째는 성령의 시험 또한 이김으로 통해 "궁극적으로 은혜의 자리로 이끌고자"함입니다. 은혜를 받은 자에게 더 큰 은혜를 주시고자 하는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27. 그런데 이러한 성령의 시험 말고도 자신 스스로의 죄의 유혹을 받는 경우도 참으로 많습니다.
28. 내 자신을 경험을 나열하지 않아도, 물론 그렇게 할 때 참으로 많은 먹과 종이가 필요하겠지만요. 우리는 스스로 넘어질 때가 많습니다.
29. 왜 그럴까요?
30. 스스로 넘어지는 경우는 가짜 세례를 받은 사람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주 이 부분은 조심스러운 말씀이지만, 오늘 본문에서는 충분히 생각해 볼 수 있는 부분입니다.
31. 오늘 본문 8절을 보겠습니다.
"나는 너희에게 물로 세례를 베풀었거나와 그는 너희에게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시리라"
32. 우리는 물세례만을 받아서는 안됩니다. 성령 세례를 받아야 합니다.
33. 어떤 사람들은 물 세례만을 받는 사람도 있습니다. 없다고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렇지 않다면, 마가복음은 8절의 말씀을 구분할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저는 8절 말씀을 이유없이 기록하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34. 우리가 물세례를 받고 성령 세례를 받았다고 착각하지 말라는 경고를 주시기 위한 의미도 포함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35. 우리가 물세례를 받고 성령세례를 받으면 궁극적으로 예수님처럼 사탄의 시험, 성령의 시험을 잘 통과할 수 있습니다.
36. 혹 우리가 자꾸 이러한 시험에 넘어지고 있다면, 자기 자신 스스로를 생각해 봐야 합니다. 어떻게요? 나는 물세례만을 받은 사람인가? 성령 세례까지 받은 사람인가?
37. 자꾸 나에게 시험이 찾아오십니까?
38. 이는 두 가지 이유입니다. 성령 시험이든지, 사탄의 시험입니다.
39. 그런데 이 시험에 자꾸 넘어지십니까?
40. 그럼 문제가 있습니다. 물세례만 받은 것이 아닌지? 진정 성령 세례를 받은 것인지? 자문해 봐야 합니다.
41. 오늘 스스로 자신에게 질문함으로 하루를 시작하며, 승리하였으면 합니다.
42. 신앙은 이처럼 살아있는 숨쉬는 것입니다.
43. 오늘 신앙이 춤추는 은혜를 기대합니다.
44. 할렐루야.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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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uesday, March 12, 2013
Friday, January 27, 2012
한 날 묵상 - 창39:19-23 <억울한 누명, 현명한 방법은?>
한 날 묵상 - 창39:19-23 <억울한 누명, 현명한 방법은?>
억울한 누명을 받을 때 하나님을 바라보십시오. 오직 양심으로만 답하십시요. 그리고 아무런 말도 하지 마십시오. 때가 되며, 무대가 될 때 말해도 늦지 않습니다. 먼저 양심을 하나님께 내어 보이는게 훨씬 중요합니다.
=> 억울한 누명을 받을 때 변명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
19절 "그의 주인이 ... 심히 하지라"
=>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는다. "주님이 때가 되면 하시리라"는 믿음이 있었다.
어느 것도 믿음을 이길 수 없다. 믿음이 있으니 무엇이든 승리한다.
하나님과 항상 함께 한다는 의미는 매순간의 때에 늘 함께 해야 함이다.
20절 "이에 요셉의 주인이 그를 잡아 옥에 가두니"
=> 흔히들 우리는 이때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한다. 물론 힘의 논리로 사람을 지배하는 것이 가장 큰 문제이지만, 힘의 논리로 나오는 사람에게 힘의 논리로 정면승부하는 것 또한 현명하지 못하다. 이 찰라의 순간에도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한다.
21절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고 그에게 인자를 더하사 간수장에게 은혜를 베푸시매"
23절 "이는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심이라 여호와께서 그를 범사에 형통하게 하셨더라"
=> 39장의 처음과 시작은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이다. 그리고 그 사이의 내용이 요셉의 시험이다. 즉 억눌한 누명을 쓴 요셉이 어떻게 그 일을 처리하는 지를 보여주고 있다.
요셉은 하나님께 칭찬 받을 뿐 아니라, 사람들에게도 인정받았다. 나아가 억울한 누명의 시험을 받더라도 자신의 힘이나 권력으로 그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때를 기다린다.
하나님이 요셉과 함께 함에 그에게 늘 형통함이 있었다는 말씀은 이처럼 요셉이 형통함을 누리는 삶을 누릴 수 밖에 없는 사람이었음을 보게 된다.
* 시골의사 박경철의 자기혁명
2장 세상과의 대화
언어는 그 사람을 말해주는 지표다.
말의 신중함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당나라 대 주요 관직에 있다가 당이 망한 후에도 진과 한 등에서 벼슬을 지낸 처세의 달인 풍도가 쓴 <설시>의 한 구절을 살펴보자.
입은 곧 화에 이르는 무이요
혀는 곧 몸을 베는 칼이니
입을 닫고 혀를 깊숙히 감추면
가는 곳마다 몸이 편할 것이라
말에서 충요한 첫번재 덕목은 호흡인데, 호흡을 고르기 위해서는 대화 도중 말을 하고 싶을 때 딱 2초만 쉬면 된다.
두번째는 설득력이다. 우리는 보통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들을 때 신중해 보이는 사람의 의견에 더 귀를 기울인다.
세번째는 분노를 다루는 것이다.
네번째는 진실성인데, 말의 앞뒤가 일관하고 논지가 바로 서 있으며 실수는 바로 인정하는 것이다.
다섯째는 평가를 자제하는 것인데, 그것이 좋은 것이건 나쁜 것이건 특히 사람에 대한 평가는 극히 주의해야 한다.
여섯번째는 같은 말을 반복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말은 그 사람의 삶을 보여준다.
말은 한 사람이 살아온 흔적이기 때문에 거친 언행을 일삼아온 사람은 아무리 감추어도 그것이 드러나게 마련이다. 낭중지추라고, 송곳은 언제가 주머니를 뚫고 나오게 되어 있다. 또 말과 행동에는 상당히 밀접한 관계가 있다.
참고 http://www.hislove.or.kr/new/sub08/sub_01.htm?tname=sub04&mode=view&idx=35&page=1&key=&keystring=&flag=%C8%F7%BA%EA%B8%AE%BC%BC%B0%E8
억울한 누명을 받을 때 하나님을 바라보십시오. 오직 양심으로만 답하십시요. 그리고 아무런 말도 하지 마십시오. 때가 되며, 무대가 될 때 말해도 늦지 않습니다. 먼저 양심을 하나님께 내어 보이는게 훨씬 중요합니다.
=> 억울한 누명을 받을 때 변명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
19절 "그의 주인이 ... 심히 하지라"
=>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는다. "주님이 때가 되면 하시리라"는 믿음이 있었다.
어느 것도 믿음을 이길 수 없다. 믿음이 있으니 무엇이든 승리한다.
하나님과 항상 함께 한다는 의미는 매순간의 때에 늘 함께 해야 함이다.
20절 "이에 요셉의 주인이 그를 잡아 옥에 가두니"
=> 흔히들 우리는 이때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한다. 물론 힘의 논리로 사람을 지배하는 것이 가장 큰 문제이지만, 힘의 논리로 나오는 사람에게 힘의 논리로 정면승부하는 것 또한 현명하지 못하다. 이 찰라의 순간에도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한다.
21절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고 그에게 인자를 더하사 간수장에게 은혜를 베푸시매"
23절 "이는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심이라 여호와께서 그를 범사에 형통하게 하셨더라"
=> 39장의 처음과 시작은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이다. 그리고 그 사이의 내용이 요셉의 시험이다. 즉 억눌한 누명을 쓴 요셉이 어떻게 그 일을 처리하는 지를 보여주고 있다.
요셉은 하나님께 칭찬 받을 뿐 아니라, 사람들에게도 인정받았다. 나아가 억울한 누명의 시험을 받더라도 자신의 힘이나 권력으로 그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때를 기다린다.
하나님이 요셉과 함께 함에 그에게 늘 형통함이 있었다는 말씀은 이처럼 요셉이 형통함을 누리는 삶을 누릴 수 밖에 없는 사람이었음을 보게 된다.
* 시골의사 박경철의 자기혁명
2장 세상과의 대화
언어는 그 사람을 말해주는 지표다.
말의 신중함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당나라 대 주요 관직에 있다가 당이 망한 후에도 진과 한 등에서 벼슬을 지낸 처세의 달인 풍도가 쓴 <설시>의 한 구절을 살펴보자.
입은 곧 화에 이르는 무이요
혀는 곧 몸을 베는 칼이니
입을 닫고 혀를 깊숙히 감추면
가는 곳마다 몸이 편할 것이라
말에서 충요한 첫번재 덕목은 호흡인데, 호흡을 고르기 위해서는 대화 도중 말을 하고 싶을 때 딱 2초만 쉬면 된다.
두번째는 설득력이다. 우리는 보통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들을 때 신중해 보이는 사람의 의견에 더 귀를 기울인다.
세번째는 분노를 다루는 것이다.
네번째는 진실성인데, 말의 앞뒤가 일관하고 논지가 바로 서 있으며 실수는 바로 인정하는 것이다.
다섯째는 평가를 자제하는 것인데, 그것이 좋은 것이건 나쁜 것이건 특히 사람에 대한 평가는 극히 주의해야 한다.
여섯번째는 같은 말을 반복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말은 그 사람의 삶을 보여준다.
말은 한 사람이 살아온 흔적이기 때문에 거친 언행을 일삼아온 사람은 아무리 감추어도 그것이 드러나게 마련이다. 낭중지추라고, 송곳은 언제가 주머니를 뚫고 나오게 되어 있다. 또 말과 행동에는 상당히 밀접한 관계가 있다.
참고 http://www.hislove.or.kr/new/sub08/sub_01.htm?tname=sub04&mode=view&idx=35&page=1&key=&keystring=&flag=%C8%F7%BA%EA%B8%AE%BC%BC%B0%E8
Wednesday, November 2, 2011
한 날 묵상 - 창 22:1-2<사랑의 힘은 무섭습니다. 모든 것을 이길 수 있지만, 모든 것을 파멸시킬 수 있습니다.>
한 날 묵상 - 창 22:1-2
<사랑의 힘은 무섭습니다. 모든 것을 이길 수 있지만, 모든 것을 파멸시킬 수 있습니다.>
*시험 당함을 긍정적으로 바라봐야 할 이유는 무엇인가?
- 시험 당함을 이긴 후의 결과가 기적을 체험을 있는 것이라면 기꺼이 시험 당함을 이겨야 한다.
- 시험 당함은 기적을 낳는다.
* 어떻게 시험 당함을 긍정적으로 바라볼 수 있을까?
-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시간으로 여기라.(2절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부르심)
=> 하나님의 음성이 아니고는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시험은 시작되지 않는다. 하나님의 분명한 음성이나 sign이 없는 시험은 자기 자신의 죄나 허물, 또는 어떠한 행동을 통해 낳은 결과의 산물로부터의 시험이 가능성이 크다. 거의라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하나님의 시험이 긍정적인 이유는 우리가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귀가 있다는 것이다. 얼마나 감사하고 놀라운 일인가?
무엇으로 이것을 확신할 수 있는가? "하나님은 감당할 시험밖에 우리에게 주시지" 않기 때문이다. 감당할 시험을 주신 분의 음성을 들었으니 능히, 넉넉히 이길 수 있다.
* 시험의 마지막에 우리는 무엇을 교훈 받게 되는가?
- 시험 당함을 통해 더욱 온전한 사람으로 세워지게 된다.
- 진정한 의미를 발견하게 된다.
결론
- 아브라함은 시험을 받았습니다. 그 시험은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번제로 드리는 시험이었습니다.
이 시험을 통해 아브라함이 받은 교훈은 사랑을 온전히 이해하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균형잡힌 사랑의 영성을 소유하게 되었습니다.
아브라함의 균형잡힌 사랑 영성은 이후 이삭을 어떻게 양육하고 키우며 한 가정의 가정이 되며, 자녀 양육에 대한 가르침에서 나타납니다.
하나님의 사랑안에서 자녀를 사랑하며, 이웃을 사랑하는 사랑에 관한 영성을 시험을 통해서 갖게 되었습니다.
1절 "그 일 후에"
그곳이 어디인들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던 아브라함에게 찾아온 첫 번째 사건은 바로, 하나님의 시험이었다.
2절 "아브라함아 하시니 그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나님의 부르심의 따뜻한 음성을 들으라.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고, 세상의 어떤 소리와도 분별할 수 있는 신앙의 깊이를 가지고 있음을 감사하라. 하나님께서 이름을 불렀을 때 보인 아브라함의 반응이 그렇다.
2절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일러 준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
아들을 사랑할 수 있습니다. 어떤 누구를 죽도록 사랑할 수 있습니다. 아니 당연히 사랑해야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사랑이 하나님을 앞설 수 있음을 늘 경계해야 합니다. 그 사랑이 하나님을 앞서지 않도록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시험하셨습니다.
사랑의 힘은 무섭습니다. 사랑은 모든 것을 이기지만, 사랑은 모든 것을 미워할 수 있습니다. 사랑의 힘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라면 모든 것을 이기지만, 사랑의 힘은 사랑하는 사람을 대항하는 사람들을 삼키는 무서움이 있습니다.
오직 사랑의 힘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그 사랑으로 시작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의 균형잡힌 사랑을 할 수 있습니다.
<사랑의 힘은 무섭습니다. 모든 것을 이길 수 있지만, 모든 것을 파멸시킬 수 있습니다.>
*시험 당함을 긍정적으로 바라봐야 할 이유는 무엇인가?
- 시험 당함을 이긴 후의 결과가 기적을 체험을 있는 것이라면 기꺼이 시험 당함을 이겨야 한다.
- 시험 당함은 기적을 낳는다.
* 어떻게 시험 당함을 긍정적으로 바라볼 수 있을까?
-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시간으로 여기라.(2절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부르심)
=> 하나님의 음성이 아니고는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시험은 시작되지 않는다. 하나님의 분명한 음성이나 sign이 없는 시험은 자기 자신의 죄나 허물, 또는 어떠한 행동을 통해 낳은 결과의 산물로부터의 시험이 가능성이 크다. 거의라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하나님의 시험이 긍정적인 이유는 우리가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귀가 있다는 것이다. 얼마나 감사하고 놀라운 일인가?
무엇으로 이것을 확신할 수 있는가? "하나님은 감당할 시험밖에 우리에게 주시지" 않기 때문이다. 감당할 시험을 주신 분의 음성을 들었으니 능히, 넉넉히 이길 수 있다.
* 시험의 마지막에 우리는 무엇을 교훈 받게 되는가?
- 시험 당함을 통해 더욱 온전한 사람으로 세워지게 된다.
- 진정한 의미를 발견하게 된다.
결론
- 아브라함은 시험을 받았습니다. 그 시험은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번제로 드리는 시험이었습니다.
이 시험을 통해 아브라함이 받은 교훈은 사랑을 온전히 이해하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균형잡힌 사랑의 영성을 소유하게 되었습니다.
아브라함의 균형잡힌 사랑 영성은 이후 이삭을 어떻게 양육하고 키우며 한 가정의 가정이 되며, 자녀 양육에 대한 가르침에서 나타납니다.
하나님의 사랑안에서 자녀를 사랑하며, 이웃을 사랑하는 사랑에 관한 영성을 시험을 통해서 갖게 되었습니다.
1절 "그 일 후에"
그곳이 어디인들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던 아브라함에게 찾아온 첫 번째 사건은 바로, 하나님의 시험이었다.
2절 "아브라함아 하시니 그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나님의 부르심의 따뜻한 음성을 들으라.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고, 세상의 어떤 소리와도 분별할 수 있는 신앙의 깊이를 가지고 있음을 감사하라. 하나님께서 이름을 불렀을 때 보인 아브라함의 반응이 그렇다.
2절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일러 준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
아들을 사랑할 수 있습니다. 어떤 누구를 죽도록 사랑할 수 있습니다. 아니 당연히 사랑해야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사랑이 하나님을 앞설 수 있음을 늘 경계해야 합니다. 그 사랑이 하나님을 앞서지 않도록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시험하셨습니다.
사랑의 힘은 무섭습니다. 사랑은 모든 것을 이기지만, 사랑은 모든 것을 미워할 수 있습니다. 사랑의 힘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라면 모든 것을 이기지만, 사랑의 힘은 사랑하는 사람을 대항하는 사람들을 삼키는 무서움이 있습니다.
오직 사랑의 힘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그 사랑으로 시작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의 균형잡힌 사랑을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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