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iday, January 13, 2012

하나님과 더 가까이 동행할 이유 - 크리스천 지성인과의 가상인터뷰


하나님과 더 가까이 동행할 이유- J. C. Ryle


J. C. 라일(John Charles Ryle)은 빅토리아 여왕 시대의 위대한 복음주의자 중 한 사람이었다.
그의 제자 F. J. Chavasse는 그를 ‘대단히 완고하면서도 어린아이 같은 마음을 지니고 있는 사람’이라고 묘사했다. 또한 위대한 침례교 설교가 스펄전은 그를 ‘영국 국교회 내에서 가장 고귀한 인물’이라고 칭했다.
그는 39년 동안 시골 교구에서 봉사했으며, 20년 동안 리버풀 최초의 주교로 일하다가 1900년 83세를 일기로 운명했다.

Q1. 19세기 가장 위대한 복음주의자로 평가 받는 라일 목사님, 이렇게 만나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이번에 ‘거룩’을 주제로 한 설교집을 출간하셨다고 들었어요. 책에 대한 간단한 소개 부탁 드릴게요.

A1. 책에 들어있는 20편의 설교는 오늘날 많은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주제인 성경적 거룩을 진작시키고자
하는 작은 노력의 일환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저는 거룩을 추구하는 사람이 마주치게 되는 고난이나 시험이 무엇인지, 참된 거룩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이 설교들을 통해 최대한 분명하게 조명하려 노력했죠.
거룩한 삶을 살기 위해 분투하는 모든 사람에게 주어지는 예수 그리스도의 위로가 얼마나 풍성한지 신앙이
약한 신자들도 알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요. 그렇기 때문에 직접적으로 논쟁과 관련된 것들은 가급적 이 책에 포함시키지 않았습니다.
제가 한 성경 연구, 개인적인 묵상, 성령의 조명하심을 구하는 기도, 그리고 옛 목회자의 저서로부터 얻은
결과들을 담아내는 것으로 그쳤습니다.
저는 오늘날 성화라는 주제에 특별히 관심을 기울이는 분들에게 입문적인 지침이라도 제공하는 것이 복음주의자라는 사명을 가진 저의 의무라고 생각하며 이 책을 펴냈습니다. 물론 어떤 면에서 저의 지침이 단정적으로 다가갈 수도 있고, 그것 때문에 마음 상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하나님의 진리에 관한 문제에서는 어느 정도 그런 것을 감수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 책을 읽으시는 독자들이 이 책을 모두 다 읽고 ‘이 시대를 향해 던지는 거룩에 관한 경고’라고 이해해 주신다면 이 책의 소기의 목적은 달성된 것입니다.

Q2. 그렇군요. 목사님의 책은 읽기 쉽고 초신자도 이해하기 쉬운데요,
책의 내용은 모두 개인적인 경험에서 우러나온 경험을 토대로 쓰신 건가요?

A2. 읽어보셨다시피 제 책은 꽤 두껍습니다(웃음).
특히 앞에 언급하신 ‘거룩’이란 책은 이미 나온 책에 몇 편의 설교를 덧붙여서 다시 출간한 만큼 그 양부터가 방대하죠. 그러나 책이 그 양에 비해 읽기 쉬웠다면, 감사하게도 그것은 제가 회심한 방법이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경험한 방법과 같다는 것이겠죠. 혹은 저의 신앙이 전문적인 지식 수준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에게 다가갈 수 있는 대중적인 지식도 함께 융화되어 전해지고 있다는 것으로 보고 싶습니다. 제 저서들의 토대를 물으셨는데요.
저는 책 이외에도 수 십 편의 논문을 썼지만 그 모든 것의 토대되는 뿌리는 그 무엇도 아닌 단 하나, 오직 성경이었습니다.

Q3. 당시의 많은 사역자들이 척박한 환경에서 시작했는데요,
이 환경을 보고도 과감히 복음 사역에 뛰어들 수 있었던 이유는?

A3. 아무리 척박한 땅이라도 뿌리를 내리는 씨앗이 있습니다.
주님은 결코 모든 퇴로를 차단해버리시는 야박한 분이 아니시죠.
그 당시 많은 목사들이 힘든 환경에서 목회를 하던 것이 보통이었으나 저는 그 환경을 비교적 늦게 체험했습니다. 저는 부유한 은행가의 가문에서 성장해, 옥스퍼드라는 명문대를 나와 1838년 우연히 읽은 성경 말씀에 감화 받아 복음 전도자의 사명을 깨닫기 전까지 정치계에서 경력을 쌓으며 탄탄대로를 달려갈 준비를 거진 마친 상태였습니다. 갑작스런 사명을 받은 후에도 전혀 당황함 없이 사역에 매진할 수 있었던 이유는, 아마도 평생 동안 한 번도 무엇엔가의 부족함을 모르고 살아왔기 때문일 수도 있겠군요.

Q4. 현 시대의 기독교에 대한 문제점들이 여기저기서 제기되고 있는데요,
이러한 현 상황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A4. 지난 25년 동안 기독교는 감각적이고, 의식적이고, 형식적인 모습을 가지고 영국 전역을 휩쓸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현상에 대한 가장 좋은 해결책은 죄에 대한 바른(성경적) 이해입니다.
가슴 아픈 일이지만, 이 나라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사람의 삶의 수준이 점점 무너져 내리고 있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스도를 본받은 자비와 양선, 이타성과 온유함, 친절함, 자기부인, 선량함, 선을 위한 열심, 세상과의 분리 등은 마땅히 환영 받아야 할 만큼 환영 받지 못하고 있고, 우리 조상들의 시대에 비해 평가절하되고 있는 현실입니다.
하지만 일단 우리의 양심에 각성이 일어나면, 우리는 오감에 호소하는 의식적인 기독교만으로 만족할 수 없게 됩니다. 아이에게 배고픔이라는 본능의 욕구가 깨어나면 신기한 장난감이나 인형 등이 아니라 오로지 음식만이 그 아이를 잠재울 수 있습니다. 이는 영혼에도 대입해 볼 수 있는데, ‘죽은 자들 가운데서 살아난 사람’은 아름다운 종교 음악, 꽃, 촛불, 향, 거룩한 신앙 고백 등과 같이 눈에 보이는 것으로는 결코 만족하지 못하게 됩니다. 일단 자기 죄를 깨닫게 되면 그 죄에서 자기를 ‘구원할 자’를 찾을 수 밖에 없습니다.

죽음을 선고 받은 환자처럼, 자신의 병을 고칠 탁월한 의사를 찾는 것이 가장 시급하고 중요한 일이 되는 것이죠. 생명의 떡에 굶주리고 목마를 수밖에 없습니다. 조금 당돌하게 들릴지도 모르지만, 만약 영국 사람이 죄의 본질과 악독함과 죄악됨에 대해 조금이라도 더 완전하게 분명하게 알았다면, 지난 사반세기 동안에 생겨난 반(半)가톨릭적인 교회들의 5분의 4는 결코 생겨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Q5. 그리스도인들에게 죄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요구된다는 말씀이군요.
그렇다면 우리가 죄를 이해하고 나면 일상에서 맞닥뜨리는 죄악들을 피하는 것이 가능해질까요?

A5. 죄는 우리가 태어나면서부터 지니고 있는 성질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가진 이 죄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께로 더 가까이 갈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아시나요?
일단 죄가 우리가 생각하던 것보다 훨씬 더 악하고, 훨씬 더 우리에게 가까이 있고, 우리에게 착 달라붙어있음을 깨닫게 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죄악의 존재를 깨닫고 나면 사도 바울이 그랬던 것처럼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법’을 온전히 배우게 될 것이라 기대합니다. 이는 우리가 그리스도인의 본분에 맞게 시험에 더 인내하고, 우리의 보잘것없고 약한 마음을 더욱더 깨어 살피고, 모든 일상의 사사로운 일에도 주님과 같이 행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 것을 뜻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얼마나 많은 일을 하셨는지 우리가 깨닫는 만큼 그리스도를 위해 살려고 힘쓰는 노력들이 많아지지 않겠습니까? 많이 용서하는 만큼 더 많이 사랑하게 되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리고 이는 나중에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것’으로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롬 11:15).

죄악은 무조건 피해버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뛰어 넘어야 할, 우리 전 인생에 걸친 도전이자 과제입니다. 우리가 높이 지어져 가려면 반드시 먼저 낮아져야 합니다. 더 높은 표준의 거룩에 이르는 첫걸음은, 죄의 엄청난 죄악됨을 더 철저하게 깨닫는 것입니다.

Q6. 우리 시대의 특징 가운데 하나가 거룩에 대한 관심이 증대되고 있다는 사실인데요.
많은 사람들이 거룩한 삶에 대한 지침을 궁금해하고 있습니다.

A6. 저는 기자님이 말씀하신 ‘거룩한 삶에 대한 지침’으로 많은 사람들이 꺼리는 ‘성화’를 강조합니다.
예수께서 어떤 사람을 참된 신자로 부르실 때 성령을 통하여 신자에게 역사하시는 영적인 일을 성화라고 합니다. 이 성화는 많은 사람들이 꺼리는 주제임은 물론이고 비아냥거리며 관심조차 기울이지 않는 사람도 있습니다.
하지만 ‘성도’가 되거나 ‘거룩한 사람’이 되는 것에는 관심을 기울이는데 ‘성화’에는 무관심한 태도는 잘못된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 영혼의 가장 중요한 주제가 바로 성화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이 진리라면, ‘성화되지’ 못하는 한 우리는 구원에 이르지 못할 것입니다. 성경에 따르면 기독교 신앙을 고백하며 살아가는 모든 사람의 구원에 꼭 필요한 세 가지는 칭의와 중생과 성화이고, 하나님의 자녀에게서는 이 세가지가 모두 발견되어야 하기 때문이죠.
이 세가지 가운데 하나라도 결여된 사람은 하나님이 보시기에 참된 그리스도인이 아닙니다.
현재 우리 시대에는 이 ‘성화’에 대한 정의가 흐려지고 있는 안타까운 현상이 보입니다. 성화 전반에 관한 이상한 가르침들이 생겨나고, 칭의와 성화를 혼동하는 사람도 많으며 또 어떤 사람은 값없이 받은 은혜에 대한 열정을 빙자하여 성화의 가르침을 쓸모 없는 것으로 만들어버리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런 행위는 사실상 값없이 받은 은혜를 경시하는 것입니다. 성화에 대한 나름의 잘못된 기준을 가지고 자기가 원하는 것을 얻겠다는 헛된 희망으로 교회와 교단을 무수히 옮겨 다니지만 결국 참된 성화에 이르지 못하고 생을 허비해버리는 사람이 생각보다 많다는 것을 아시는지요?

Q7. 성도들에게 추천하는 신학자가 있으시다고 들었어요?

A7. 간혹 ‘목사님이 가장 존경하는 사람이 있느냐?’ 라는 물음을 받곤 합니다.
그 대답에 ‘예수님’-이라고 한다면 너무 재미없는 대답이 되겠지요? (웃음) 물론 저는 예수님을 사랑하고 그 분을 닮기 위해 평생 노력할 것입니다. 그러나 좀 더 현실적인 대안이 될 모델을 찾으라면 저는 주저 없이 ‘존 오웬’을 대답하겠습니다.
오늘날 사람들이 오웬의 저서를 달가워하지 않고, 전혀 거리낌없이 그를 청교도라고 비아냥거린다는 것을 압니다. 그러나 오웬은 성경에 대한 바른 지식과 학식에 있어, 그를 비난하는 사람들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이 탁월했습니다! 체험적 신앙을 연구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것입니다. 존 오웬을 능가할 만큼 심도 있게 이 신앙을 연구하고, 성과를 올린 사람이 다신 없다는 것을요. 존 오웬의 신앙은 제가 추구하는 신앙과도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신앙은 성숙한 삶의 체험에서 우러나오는 그리스도의 향기이다-라는 면에서 저희는 뜻을 같이 하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값없는 은혜’를 마치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공짜와 같은 것이라 생각하며 그저 받기만 하고 있는 모습을 보이는데, 우리의 구원은 예수님의 피로 이미 값을 치러진 것임이 잊혀지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그래서 더욱 오웬과 그의 신앙을 인용하는지도 모르겠네요.

기자: 많은 생각을 하며 임한 라일 목사님과의 인터뷰였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다가 아니라 시작이다-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는데요, 그리스도인으로서 가져야 할 진실한 믿음의 자세는 무엇일까? 다 함께 생각해보는 시간이었으면 합니다. 오늘 인터뷰는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참고도서: 거룩/ J. C. Ryle 지음, 장호준 옮김/ 복 있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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