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의 밥상
고전 4:20 <생각 그리고 기도>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아니하고 오직 능력에 있음이라"
생각을 하지 말고 기도하자.
아니 정확한 표현은 생각 먼저 하기 전에 기도부터 하자.
사람이 생각하지 않고 살 수 없다. 무슨 일에든 계획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생각하지 말고 기도하자는 말은 무슨 말인가?
바로 생각하기 앞서 기도하니 하나님의 생각이 나의 생각을 뒤덮게 된다는 것이다.
내 생각이 하나님의 마음과 계획을 품게 되는 것이다.
하나니의 인도하심이 있는 생각을 갖게 되다라는 것이다.
===
하나니의 일꾼
충성
===
기도가 이어지면 그가 보이지만
기도가 끊어지면 내가 보입니다.
기도를 이어가겠습니다.
- 조병범 목사님 페이스북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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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nday, February 3, 2020
Monday, September 23, 2013
한 날 묵상 - 막 5:21-34 <적극적 간청자이든, 소극적 간청자이든, 간청자의 자세와 예수님의 마음>
한 날 묵상 - 막 5:21-34 <적극적 간청자이든, 소극적 간청자이든, 간청자의 자세와 예수님의 마음>
추가) 간절함을 갈망하자. 간절함은 회복시키며 역사한다.
1. 말씀을 매일 매일 묵상하며 하나님의 뜻을 찾는 것이 쉽지 않다.
2. 마가복음 묵상을 시작한지 꽤 되었지만, 아직도 5장에 머물러 있다. 더욱 문제는 요즘 묵상의 속도나 질이 무척이나 떨어진다는 사실이다.
3. 이 모든 것은 집중력의 차이인듯하다. 말씀을 묵상하고자 하는 마음의 집중력이나, 말씀을 묵상할 때의 집중력이 현저히 떨어지기 때문에, 매일 묵상이 힘들고, 묵상의 질도 또한 높지 않게 되는 것이다.
4. 요즘 새벽기도를 다시 나간다. 정확히 말하면 2주되었다. 그러나 2주 동안도 정확히 3일은 빼 먹었다.
5. 어제 주일을 보내면서, 늦은 시간에 잠을 이루었다. 요즘 내 상황이 결코 편치 않기 때문에 이런 저런 생각이 눈 앞을 가리기 때문에 쉽사리 잠자리에 들 수 없다. 그렇다고 그 시간에 딱히 다른 유익한 일들을 하는 것도 아니다.
6. 어제 늦게 잠들었지만, 오늘 아침 알람 소리 한 번에 잠이 깼다. 정확히 말하면 몽롱한 상태에서 일어났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이전 같으면 바로 다시 잠을 청했을 것인데, 그 몸을 일으켜 잠자리에서 일어났다는 사실이다.
7. 그만큼 요즘 기도가 간절히 필요하다. 기도의 간절함이 나의 몸을 이기고 있는 듯 하다. 아침 기도하러 가면서 이런 저런 생각이 들었다. 새벽을 깨우는 일에 완전히 익숙해진 것은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때 교만하지 말자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시작인데, 뭐 익숙해진것은 무엇이란 말인가....
8. 요즘 기도하지 않으면 살지 못할 것 같다. 기도의 자리에 있지 않으면 불완하다. 그 만큰 내일에 대한 불완히 참으로 많다.
9. 새로운 사역지 문제, 한국으로 귀국하는 문제, 재정문제, 한국 귀국하는 항공권 재정문제, 한국에 돌아가면 전셋집 문제, 아이들 한국 적응문제, 한국에서 일어나 일련의 일들에 대한 염려까지 그야말로 내 앞에 놓인 수만가지의 기도제목이다.
10. 참으로 지금이 기도할 때이다. 그렇다고 기도한다면서 일상을 완전히 떠나 기도만 할 수 없다.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마음을 품고, 하나님의 마음을 품은 그대로 합력하여 선을 이루도록 나도 열심히 뛰어야 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주신 지혜대로 말이다.
11.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어떻게 "쉬지 말고 기도하라"(살전 5:17)는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기도함으로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공급받을 수 있을까...
2. 마가복음 묵상을 시작한지 꽤 되었지만, 아직도 5장에 머물러 있다. 더욱 문제는 요즘 묵상의 속도나 질이 무척이나 떨어진다는 사실이다.
3. 이 모든 것은 집중력의 차이인듯하다. 말씀을 묵상하고자 하는 마음의 집중력이나, 말씀을 묵상할 때의 집중력이 현저히 떨어지기 때문에, 매일 묵상이 힘들고, 묵상의 질도 또한 높지 않게 되는 것이다.
4. 요즘 새벽기도를 다시 나간다. 정확히 말하면 2주되었다. 그러나 2주 동안도 정확히 3일은 빼 먹었다.
5. 어제 주일을 보내면서, 늦은 시간에 잠을 이루었다. 요즘 내 상황이 결코 편치 않기 때문에 이런 저런 생각이 눈 앞을 가리기 때문에 쉽사리 잠자리에 들 수 없다. 그렇다고 그 시간에 딱히 다른 유익한 일들을 하는 것도 아니다.
6. 어제 늦게 잠들었지만, 오늘 아침 알람 소리 한 번에 잠이 깼다. 정확히 말하면 몽롱한 상태에서 일어났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이전 같으면 바로 다시 잠을 청했을 것인데, 그 몸을 일으켜 잠자리에서 일어났다는 사실이다.
7. 그만큼 요즘 기도가 간절히 필요하다. 기도의 간절함이 나의 몸을 이기고 있는 듯 하다. 아침 기도하러 가면서 이런 저런 생각이 들었다. 새벽을 깨우는 일에 완전히 익숙해진 것은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때 교만하지 말자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시작인데, 뭐 익숙해진것은 무엇이란 말인가....
8. 요즘 기도하지 않으면 살지 못할 것 같다. 기도의 자리에 있지 않으면 불완하다. 그 만큰 내일에 대한 불완히 참으로 많다.
9. 새로운 사역지 문제, 한국으로 귀국하는 문제, 재정문제, 한국 귀국하는 항공권 재정문제, 한국에 돌아가면 전셋집 문제, 아이들 한국 적응문제, 한국에서 일어나 일련의 일들에 대한 염려까지 그야말로 내 앞에 놓인 수만가지의 기도제목이다.
10. 참으로 지금이 기도할 때이다. 그렇다고 기도한다면서 일상을 완전히 떠나 기도만 할 수 없다.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마음을 품고, 하나님의 마음을 품은 그대로 합력하여 선을 이루도록 나도 열심히 뛰어야 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주신 지혜대로 말이다.
11.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어떻게 "쉬지 말고 기도하라"(살전 5:17)는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기도함으로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공급받을 수 있을까...
12. 시간을 정하고 적극적으로 기도만 하는 것으로 쉬지 않고 기도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속세를 떠나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기도하는 시간을 정하지 않고, 간절하게 부르짖지도 않고 쉬지 말고 기도하라는 말씀에 순종했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13. 우리는 어떻게 기도함으로 "쉬지 말고 기도하라"는 말씀에 순종하며 기도함으로 누릴 수 있는 유익과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하나님의 능력을 공급받을 수 있다는 말인가...
14. 오늘 본문에서 그 해답을 찾아 보고자 한다.
15. 본문은 예수님의 사역에 두 부류의 간청자가 등장한다. 그들은 자신의 문제를 해결받고자 예수님께 자신의 문제를 들고 나아왔다.
16. 회당장의 하나인 야이로의 딸과 예수의 옷에 손을 댄 여자이다.
17. 이 둘의 행동은 그들의 신분만큼이나 상반되었다. 나는 이를 "적극적 간청자와 소극적 간청자"로 말하려 한다. 달리 하면서 일상에서 적극적으로 시간을 정하고 기도에 목숨을 거는 일과 소극적이지만 매 순간 기도하는 일이다.
18. 전혀 상반된 두 사람의 간청자들의 일상과 기도의 모습을 정리해 보자.
19. 적극적 간청자 회당장
1) 예수님 앞에 당당하게 설 수 있었다.
2) 그러나 자신의 신분을 뒤로한다.
3) 자신보다 주님께 집중했다.
4) 적극적으로 간청하지만 그는 높은 신분의 사람이었다.
5) 자신을 비우고 진심으로 주님께 나아갔다.
20. 소극적 간청자 혈루증 앓은 여인
1) 그녀는 예수님께 나아갈 때 숨어 갈 수 밖에 없었다.
2) 내세울 것이 전혀 없었다.
3) 나를 전혀 봐주지 않는 사람들속에서 오직 주님께 집중했다.
4) 소극적으로 간청했다.
5) 자신을 비우고 진심으로 주님께 나아갔다.
21. 전혀 다른 두 가지가 바로 우리가 이 땅을 살아가는 기도의 일상이 되어야 한다. 일상에서 이 두 가지의 기도를 적절히 유지할 때에 "쉬지 말고 기도하라"는 말씀에 순종할 수 있다.
22. 만약 이 두 가지 중 하나라도 소홀히 한다면, 우리의 일상은 기도하는 것 때문에 무너질 것이다.
23. 매일 매 순간 24시간 가정이나 일터 등 삶을 떠나 기도만 한다면 그는 그 일만을 위해 부르심을 받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 또한 일상에서 순간적으로, 찰라의 기도, 즉 집중하며 간절함으로 적극적으로 눈물로 기도하지 않고 기도하였다고 하면서 잘못된 기도의 함점에 빠져서 기도했다는 속임에 넘어져 살아가는 신앙인이 될 것이다.
24. 이 둘은 적절한 균형이 필요하다. 그래야 이 땅에 그리스도인다운 그리하여 사람들에게 온전히 기독교와 복음을 전할 수 있는 최소한의 자격을 갖춘 자로 삶의 자리에 있다고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25. 그런데 이 두 가지의 기도방법중에 가장 기본이 되면서도 중요한 것이 있다.
26.바로 기도의 자세이다. 마음 가짐이다.이들을 향한 예수님의 마음은 한결같았다.
22절 "회당장 중의 하나인 야이로라 하는 이가 와서 예수를 보고 발 아래 엎드리어"
33절 "여자가 자기에게 이루어진 일을 알고 두려워하여 떨며 와서 그 앞에 엎드려"
27. 간청자로서 우리의 자세는 단 하나이다. 오직 예수님만이 나의 구원자이십니다. 오직 예수님만이 나의 치료자이십니다. 오직 예수님만이 나의 문제를 해결해 주실 수 있습니다.
28. 오직 예수님, 당신 한 분만이 하실 수 있습니다.
29. 이 사실을 알고 이 사실이 진리이기에 우리는 오늘도 예수님앞에 무릎을 꿇고 기도하게 됩니다.
30. 예수님께 기도할 때, 우리에게 다가오시는 주님의 음성을, 주님의 손길을 들을 수 있고, 느낄 수 있습니다.
34절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네 병에서 놓여 건강할지어다"
31. 예수님은 우리에게 구원을 주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그리고 또한 평안을 위해 오셨습니다.
32. 오늘 우리가 구원받은 자로서 평안하기 원한다면, 기도의 자리에 있기 바랍니다.
33. 적극적 간청자로 서 기도하던, 소극적 간청자로 기도하던, '예수님 당신만이 하실 수 있기에 오늘 당신의 존전앞에 무릎을 꿇고 나아갑니다. 나를 받아 주시옵소서'라고 쉬지 말고 기도할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34. 기도하니, 이제야 마음이 평안해집니다.
35. 아침 기도후에 한결 마음이 편해집니다. 물론 빛에서 멀어지고 어두움에 가까이갈 때 또 다시 두려움과 염려는 몰려오겠지만, 그 때마다 기도함으로 평안이 가는 인생을 살아가기 소망해 봅니다.
36. 우리 모두에게 이러한 평안이 삶에 가득하기를 축복합니다.
37. 오늘 한 날도 기도함으로 예수님이 주시는 참 평안, 영원한 평안을 누릴 수 있기를 간절히 축복합니다.
38. 할렐루야!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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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마음
- 적극적 간청자
- 소극적 간청자
==> 이들을 향한 예수님의 마음은 한결같다.
22절 "회당장 중의 하나인 야이로라 하는 이가 와서 예수를 보고 발 아래 엎드리어"
33절 "여자가 자기에게 이루어진 일을 알고 두려워하여 떨며 와서 그 앞에 엎드려"
간청자로서 우리의 자세는 단 하나이다.
오직 예수님만이 나의 구원자이십니다.
오직 예수님만이 나의 치료자이십니다.
오직 예수님만이 나의 문제를 해결해 주실 수 있습니다.
오직 예수님, 당신 한 분만이 하실 수 있습니다.
* 21절 예수님의 한결같은 마음을 볼 수 있다.
무리가 따르니, 바닷가에서 서시다.
22-24절 회당장 중의 하나인 야이로와 그의 딸
회당장 - 자신의 신분의 걸맞지 않게 "예수를 보고 발 아래 엎드리어"(22절), "간곡히 구하여"(23절)
자신의 신분의 잊고 딸을 향한 처절한 몸부림으로 예수님께 옆드려 기도하는 회당장 야이로의 모습을 본다.
* 25-34절 열두 해 혈루증으로 앓아 온 한 여자
혈루증 앓아 온 한 여자 - 혈루증을 앓아온 여인은 아무도 과부였을 것이다. 돌보는 사람이 없었을 것이다. 12년을 병들어 있었기 때문에 주변에 아무도 없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래서 그는 많은 사람들 앞에 당당하게 설 수 없었다. 그래도 그는 살기 원했고, 예수님의 이야기를 듣고 그는 결심하게 된다. 그녀가 선택한 방법은, "무리 가운데 끼어 뒤로 와서 그의 옷에 손을 대니"(27절), "이는 내가 그의 옷에만 손을 대어도 구원을 받으리라 생각함일러라"(28절),
예수님의 일련의 반응(30-32절)에 그녀는 "여자가 자기에게 이루어진 일을 알고 두려워하여 떨며 와서 그 앞에 엎드려" 예수님께 두려움과 무서움을 나아오는 모습을 볼 수 있다.
* 전혀 상반된 두 사람의 간청
- 적극적 간청자 회당장
1) 예수님 앞에 당당하게 설 수 있었다.
2) 그러나 자신의 신분을 뒤로한다.
3) 자신보다 주님께 집중했다.
4) 적극적으로 간청하지만 그는 높은 신분의 사람이었다.
5) 자신을 비우고 진심으로 주님께 나아갔다.
- 소극적 간청자 혈루증 앓은 여인
1) 그녀는 예수님께 나아갈 때 숨어 갈 수 밖에 없었다.
2) 내세울 것이 전혀 없었다.
3) 나를 전혀 봐주지 않는 사람들속에서 오직 주님께 집중했다.
4) 소극적으로 간청했다.
5) 자신을 비우고 진심으로 주님께 나아갔다.
Wednesday, September 11, 2013
한 날 묵상 - 막 5:1-20 <주님의 은혜를 맛 본자들의 반응>
한 날 묵상 - 막 5:1-20 <주님의 은혜를 맛 본자들의 반응>
1. 우리가 인정을 하든, 인정하지 않든, 창조주 하나님을 알아보는 인생이 가장 행복한 인생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2. 우리가 일상에서 창조주 하나님을 늘 기억한다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습니다.
3. 왜냐하면 우리가 늘 영적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4. 우리가 영적인 삶을 살아갈 때 우리는 창조주 하나님을 기억할 수 있습니다.
5. 제가 하나님을 말씀하면서 앞에 "창조주"라는 말을 반복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6. 우리는 하나님의 피조물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타락한 천사도, 오늘 본문에서는 "귀신도" 창조주 하나님의 피조물이기 때문에, 그 귀신도 창조주 하나님을 단 번에 알아보았습니다.
7. 2절 "배에서 나오시매 곧 더러운 귀신 들린 사람이 무던 사이에서 나와 예수를 만나니라"
8. 이처럼 우리는 영적인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인간의 타락으로 인하여 우리안에 육신의 소욕을 따라 살아가는 삶에 익숙해있지만, 비록 우리가 믿음을 가졌다 할지라도, 우리안에 믿음이 있기에 우리는 더욱 영적으로 민감해야 반응해야 합니다.
9. 귀신도 영적이기에 창조주 하나님을 단 번에 알아볼 수 있듯이, 우리도 영적으로 늘 꺠어 있을 때 하나님을 여전히 세상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알 수 있습니다.
10. 그렇게 우리가 일상에서 주님과 함께 동행하는 삶을 살아가는 힘은 우리가 하나님을 알아볼 수 있는 마음과 눈을 가질 때 가능하게 됩니다.
11. 6절 "그가 멀리서 예수를 보고 달려와 절하며" 나아왔던 귀신처럼, 우리도 창조주 하나님을 알아 볼 수 있도록 영적으로 깨어 민감한 삶을 살아가기 원합니다.
12. 하나님은 진실로 우리와 늘 함께 계십니다. 지금도 내 옆에 동행하고 계십니다. 그 하나님을 볼 수 있는 영성을 갖기를 축복합니다.
13. 계속해서 이어지는 본문에서 우리는 주님께 기도하며 간구하며 간청하는 여러 상황들을 7절, 12절, 17절, 18절에서 볼 수 있습니다. 이 부분을 이름하여 <주님께 간청하는 여러 상황들>이라고 정해보았습니다.
14. 간청과 간구의 삶은 주님의 은혜를 맛보기 원하는 통로입니다. 기도할 때 우리는 더욱 큰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게 됩니다.
15. 세 부류의 간청을 통해서 배워 보길 원합니다. "우리는 어떻게 간청하는 삶을 살 것인가? "
16. 첫번째, 1) 귀신의 간구입니다. 7절 "큰 소리로 부르짖어 이르되"
17. 귀신의 간구는 창조주 하나님을 인정한 간구입니다. 하나님이 모든 생명의 주관자이심을 알기에, 자기에 생명에 대한 주권이 하나님께 있음을 인정한 간구입니다. 그래서 그의 목소리르 크며 간절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여"
18. 우리는 기도를 하나님께 올려드립니다. 하나님께 올려드릴 때, 우리의 기도의 자세가 중요합니다. 창조주 하나님을 인정하는 기도, 나의 생명의 주관자 되심을 인정하며 기도하는 것, 그리하여 나의 모든 간구의 응답하여 주실 수 있고, 거절하실 수 있는 하나님을 보는 기도를 드려야 합니다.
19. 그러할 때 우리의 기도는 전혀 다른 기도가 될 것입니다.
20. 두번째, 2) 거라사인의 당 근방 모든 백성들의 간구(귀신 떠난자가 어떻게 구원 받았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백성들)입니다.
21.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그들은 창조주 하나님이 자신을 떠났으면 좋겠다는 간구를 하고 있습니다. 자기들 인생에서는 창조주가 필요하지 않다는 교만한 생각입니다.
22. 자기 스스로 인생을 살아가겠다는 것이며, 또한 어리석게도 그렇게 살아갈 수 있다는 생각에서 드리는 기도입니다. 이러한 기도는 하나님의 마음을 떠난 기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23. 하나님은 우리와 늘 함께 하기 원하는데, 우리가 그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고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지 못하는 기도를 드리는 것입니다. 우리 안에 이러한 기도를 드리는 경우가 너무나 많습니다.
24. 우리의 기도는 하나님께 더 가까이 갈 수 있는 기도를 드려야합니다. 우리의 기도는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알 수 있는 기도를 드려야 합니다. 우리는 기도는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기도가 되어야 합니다.
25. 하나님은 늘 우리와 함께 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늘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삶을 살아가기를 원하십니다. 우리는 이 일을 위한 기도를 드려야 합니다. 이게 바로 우리의 기도 제목이 되어야 합니다.
26. 세번째로, 3) 귀신 떠난 자의 간구입니다. 그의 간구는 주님과 함께 다니고 싶다는 간청이었습니다. 18절 "귀신 들렸던 사람이 함께 있기를 간구하였으나"
27. 이러한 기도가 어찌 보면, 합당해 보입니다. 그러나 방법이 달랐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하는 삶은 예수님과 지근 거리에서 살아가는 것만이 아닙니다.
28. 주님과 함께 하는 삶은 진정 내가 있어야 할 자리에서 주님의 마음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19절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그에게 이르시되 집으로 돌아가 ... 네 가족에게 알리라 하시니"
29. 18-20절을 이렇게 정리할 수 있습니다. <주님의 은혜를 맛 본자들의 반응이 합당해야 한다. 그들은 집으로 돌아갔으며, 세상으로 나아가 그곳에서 은혜 맛본자의 합당한 삶을 살았다>
30. 주님과 함께 하는 삶은 예수님과 함께 밥먹고, 잠자는 것만이 아닙니나. 진정한 주님과 함께 하는 삶은, 진정한 주님의 제자의 삶은 바로 이것입니다.
19절 "네 가족에게 알리라"
20절 "그가 가서 예수꼐서 자기에게 어떻게 큰 일 행하셨는지를 데가볼리에 전파하니 모든 사람이 놀랍게 여기더라"
31. 우리의 간구는 "초막 셋을 짓고"(마 17장 1-13절) 거기서 주님과 함께 한 평생 그곳에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그곳을 내려와서 가족에게, 세상으로 나아가 내가 만난 하나님, 영원한 생명이신 주님을 전하는 사명을 감당할 수 있는 기도여야 합니다.
32. 주님의 은혜를 맛보기 원하십니까? 주님의 은혜를 맛본 후에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알기를 원하십니까?
33. 오늘 주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마가복음 5장 1-20절의 말씀을 깊이 다시 묵상하고 주님의 은혜를 맛 본자의 합당한 삶을 살아가는 오늘 한 날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34. 주님은 지금도, 이 순간에도 나와 여러분과 함게 하십니다.
35. 임마누엘 하나님을 찬양하며, 할렐루야. 아멘.
1. 우리가 인정을 하든, 인정하지 않든, 창조주 하나님을 알아보는 인생이 가장 행복한 인생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2. 우리가 일상에서 창조주 하나님을 늘 기억한다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습니다.
3. 왜냐하면 우리가 늘 영적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4. 우리가 영적인 삶을 살아갈 때 우리는 창조주 하나님을 기억할 수 있습니다.
5. 제가 하나님을 말씀하면서 앞에 "창조주"라는 말을 반복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6. 우리는 하나님의 피조물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타락한 천사도, 오늘 본문에서는 "귀신도" 창조주 하나님의 피조물이기 때문에, 그 귀신도 창조주 하나님을 단 번에 알아보았습니다.
7. 2절 "배에서 나오시매 곧 더러운 귀신 들린 사람이 무던 사이에서 나와 예수를 만나니라"
8. 이처럼 우리는 영적인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인간의 타락으로 인하여 우리안에 육신의 소욕을 따라 살아가는 삶에 익숙해있지만, 비록 우리가 믿음을 가졌다 할지라도, 우리안에 믿음이 있기에 우리는 더욱 영적으로 민감해야 반응해야 합니다.
9. 귀신도 영적이기에 창조주 하나님을 단 번에 알아볼 수 있듯이, 우리도 영적으로 늘 꺠어 있을 때 하나님을 여전히 세상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알 수 있습니다.
10. 그렇게 우리가 일상에서 주님과 함께 동행하는 삶을 살아가는 힘은 우리가 하나님을 알아볼 수 있는 마음과 눈을 가질 때 가능하게 됩니다.
11. 6절 "그가 멀리서 예수를 보고 달려와 절하며" 나아왔던 귀신처럼, 우리도 창조주 하나님을 알아 볼 수 있도록 영적으로 깨어 민감한 삶을 살아가기 원합니다.
12. 하나님은 진실로 우리와 늘 함께 계십니다. 지금도 내 옆에 동행하고 계십니다. 그 하나님을 볼 수 있는 영성을 갖기를 축복합니다.
13. 계속해서 이어지는 본문에서 우리는 주님께 기도하며 간구하며 간청하는 여러 상황들을 7절, 12절, 17절, 18절에서 볼 수 있습니다. 이 부분을 이름하여 <주님께 간청하는 여러 상황들>이라고 정해보았습니다.
14. 간청과 간구의 삶은 주님의 은혜를 맛보기 원하는 통로입니다. 기도할 때 우리는 더욱 큰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게 됩니다.
15. 세 부류의 간청을 통해서 배워 보길 원합니다. "우리는 어떻게 간청하는 삶을 살 것인가? "
16. 첫번째, 1) 귀신의 간구입니다. 7절 "큰 소리로 부르짖어 이르되"
17. 귀신의 간구는 창조주 하나님을 인정한 간구입니다. 하나님이 모든 생명의 주관자이심을 알기에, 자기에 생명에 대한 주권이 하나님께 있음을 인정한 간구입니다. 그래서 그의 목소리르 크며 간절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여"
18. 우리는 기도를 하나님께 올려드립니다. 하나님께 올려드릴 때, 우리의 기도의 자세가 중요합니다. 창조주 하나님을 인정하는 기도, 나의 생명의 주관자 되심을 인정하며 기도하는 것, 그리하여 나의 모든 간구의 응답하여 주실 수 있고, 거절하실 수 있는 하나님을 보는 기도를 드려야 합니다.
19. 그러할 때 우리의 기도는 전혀 다른 기도가 될 것입니다.
20. 두번째, 2) 거라사인의 당 근방 모든 백성들의 간구(귀신 떠난자가 어떻게 구원 받았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백성들)입니다.
21.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그들은 창조주 하나님이 자신을 떠났으면 좋겠다는 간구를 하고 있습니다. 자기들 인생에서는 창조주가 필요하지 않다는 교만한 생각입니다.
22. 자기 스스로 인생을 살아가겠다는 것이며, 또한 어리석게도 그렇게 살아갈 수 있다는 생각에서 드리는 기도입니다. 이러한 기도는 하나님의 마음을 떠난 기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23. 하나님은 우리와 늘 함께 하기 원하는데, 우리가 그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고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지 못하는 기도를 드리는 것입니다. 우리 안에 이러한 기도를 드리는 경우가 너무나 많습니다.
24. 우리의 기도는 하나님께 더 가까이 갈 수 있는 기도를 드려야합니다. 우리의 기도는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알 수 있는 기도를 드려야 합니다. 우리는 기도는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기도가 되어야 합니다.
25. 하나님은 늘 우리와 함께 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늘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삶을 살아가기를 원하십니다. 우리는 이 일을 위한 기도를 드려야 합니다. 이게 바로 우리의 기도 제목이 되어야 합니다.
26. 세번째로, 3) 귀신 떠난 자의 간구입니다. 그의 간구는 주님과 함께 다니고 싶다는 간청이었습니다. 18절 "귀신 들렸던 사람이 함께 있기를 간구하였으나"
27. 이러한 기도가 어찌 보면, 합당해 보입니다. 그러나 방법이 달랐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하는 삶은 예수님과 지근 거리에서 살아가는 것만이 아닙니다.
28. 주님과 함께 하는 삶은 진정 내가 있어야 할 자리에서 주님의 마음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19절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그에게 이르시되 집으로 돌아가 ... 네 가족에게 알리라 하시니"
29. 18-20절을 이렇게 정리할 수 있습니다. <주님의 은혜를 맛 본자들의 반응이 합당해야 한다. 그들은 집으로 돌아갔으며, 세상으로 나아가 그곳에서 은혜 맛본자의 합당한 삶을 살았다>
30. 주님과 함께 하는 삶은 예수님과 함께 밥먹고, 잠자는 것만이 아닙니나. 진정한 주님과 함께 하는 삶은, 진정한 주님의 제자의 삶은 바로 이것입니다.
19절 "네 가족에게 알리라"
20절 "그가 가서 예수꼐서 자기에게 어떻게 큰 일 행하셨는지를 데가볼리에 전파하니 모든 사람이 놀랍게 여기더라"
31. 우리의 간구는 "초막 셋을 짓고"(마 17장 1-13절) 거기서 주님과 함께 한 평생 그곳에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그곳을 내려와서 가족에게, 세상으로 나아가 내가 만난 하나님, 영원한 생명이신 주님을 전하는 사명을 감당할 수 있는 기도여야 합니다.
32. 주님의 은혜를 맛보기 원하십니까? 주님의 은혜를 맛본 후에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알기를 원하십니까?
33. 오늘 주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마가복음 5장 1-20절의 말씀을 깊이 다시 묵상하고 주님의 은혜를 맛 본자의 합당한 삶을 살아가는 오늘 한 날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34. 주님은 지금도, 이 순간에도 나와 여러분과 함게 하십니다.
35. 임마누엘 하나님을 찬양하며, 할렐루야. 아멘.
Tuesday, April 16, 2013
한 날 묵상 - 막 1:35-39 <새벽 한 적한 곳에서 기도 후 전도여행, 그리고 예수님의 말씀 "내가 이를 위하여 왔노라">
한 날 묵상 - 막 1:35-39 <새벽 한 적한 곳에서 기도 후 전도여행, 그리고 예수님의 말씀 "내가 이를 위하여 왔노라">
1. 하루를 시작하기 앞서, '너 거기서 무엇을 하였는가'라는 물음에 어떻게 답할 것인가?
2. 예수님은 이렇게 답하신다. " "새벽 아직도 밝기 전에" "예수께서 일어나 나가" "한적한 곳으로 가사" "거기서 기도하시더니"(35절)
3. 삶으로 가르시시는 예수님의 교육이시다.
4. 우리가 할 수만 있으면, 아니 항상 최우선에 예수님의 이 가르침을 기억해야 하며, 또한 실천해야 할 것이다.
5. 오늘도 기도하러 가시는 잔잔한 예수님의 모습으로 내 자신을, 그리고 이른 아침 시간을 비추어 본다.
6. 예수님께서 능력을 덧입을 수 있었던 힘은 기도로부터 시작되었다. 늘 기도하였기에 사역에 능력과 힘이 있었다.
7. 오늘도 바쁘 움직이셔야 했던 예수님께 수 많은 무리들이 찾아온다.(36절)
8. 그러나 왠지 예수님은 이들을 만나주시지 않고, 가셔야 했던 길을 찾아 나선다.(38절)
9. 시몬과 그와 함께 있는 자들이 예수를 따라 나서며 말한다. "모든 사람이 주를 찾나이다"(36-37절).
10. 예수님께서 이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시 않고, 말씀하신다. "우리가 다른 가까운 마을들로 가자"(38절)
11. 예수님은 왜 이렇게 말씀하셨을까? 왜 찾아온 이들을 만나주시지 않았을까?
12. 여기에는 두 가지 분명한 이유가 있었다.
13. 첫번째는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이유가 있었으며, 그 오신 이유에 합당한 일들을 바삐하셔야 했기 때문이다.
14. "거기서 전도하리니 내가 이를 위하여 왔노라"(38절)
15. 예수님은 복음을 위해 오셨다. 복된 소식을 선포하기 위해 오셨다. 복음을 전하기 위해 오셨다. 이 일을 위해서 기도하셔야 했고, 깨어 있어야 하셨다.
16. 그렇기에 찾아온 이들을 만나 줄 수 없었다. 그들과 이야기하며 대답할 시간이 없었다. 그 만큼 긴박하고 시간이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17. 그렇지만 여기서 하나 생각해 볼 필요가 있었다.
18. 왜 찾아온 이들에게는 전도하지 않으셨을까? 복음을 전하지 않으셨을까? 그들에게 복된 소식을 전하지 않으셨을까?
19. 여기서 우리는 앞서 찾아 온 이들을 만나지 않으신 두 번째 이유를 생각해 볼 수 있다.
20. 찾아온 이들의 관심은 무엇이었나? 그들은 예수님을 통해 무엇을 얻고한 것이 있는것 아니었을까? 복음을 그들이 받아들일 수 없는 어떤 마음에 곽찬 욕심이나 생각들이 있었던 것은 아닌가?
21. 찾아온 이들을 향한 이런 저런 생각이 내 머리를 두드린다. 나도 그들중에 있는 것은 아닌가?
22. 찾아온 이들은 항상 많았다(막1장 33절을 보라). 그러나 그들은 고침을 받는 것에만 관심이 있었다. 고침을 받고 난 이후에는 그 어떠한 것도 없었다.
23. 예수님을 그렇게 찾아 온 이들을 떠나셔야 했다. 누가복음 4장 42절에 보니 "무리가 찾다가 만나서 자기들에게 떠나시지 못하게 만류하려 하매"라고 말씀하고 있다.
24. 찾는 이들은 왜 예수님을 붙잡으려 했을까? 동네 이장을 시키려고 했을까? 자기들과 함께 한 평생 살기를 바라고 붙잡지 않았을까?
25. 예수님을 찾아온 이들에게는 가득한 것은 자기 욕심이었다. 예수님의 능력이었다. 그들이 복음만이면 족했다면 예수님을 떠나 보내야 한다.
26. 예수님은 떠나셨어도 복음은 여전히 내 마음에 있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육신과 함께 함에 기쁨이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주신 복음이 함께 함에 기쁨과 평안이 있는 것이다.
27. 이게 바로 예수님이 주신복음이 주는 유익이다.
28. 나는 지금 예수님의 현존만을 붙잡기 원하는가? 예수님은 눈에 보이시지 않지만, 예수님이 주신 복음만으로 만족하고 있는가?
29. 눈으로 보는 예수님만을 원한다면, 우리 또한 지금 예수님을 찾아온 무리들과 다르지 않다.
30. 우리도 자기 자신만을 위해 예수님 계속 붙잡아 두기 원하는 그들과 차이가 없다.
31. 예수님은 이 땅에 영원토록 죽지 않고 우리와 함께 하기 위해서 오신 것이 아니다. 우리에게 복음을 주기 위해 오셨다.
32. 그렇기에 지금도 우리는 복음만이면 족할 줄 알아야 한다. 그리고 때론 예수님께서 다른 마음에 복음을 전하기 위해 가신다면 기꺼이 보내드려야 한다.
33. 왜냐하면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이 일을 위해 보내심을 받았"(눅5:43)기 때문이시다.
34. 예수님이 나만을 위해 머물러 있기를 원하는 마음이 있어서는 안된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복음만을 남겨두시고 떠나셔야만 합니다. 그래야 또 다른 동네에서 하나님 나라의 복음은 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35. 그리고 예수님 떠나셨다고 슬퍼하거나 낙담하지 마십시오. 지금 나에게 예수님께서 자신의 생명을 바꿔 주신 복음이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36. 복음만이면 족하십시니까? 아니면 복음만으로는 부족하여 예수님을 늘 내눈앞에 있기를 원하십니까?
37.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이유를 분명히 기억하기 원합니다.
38. 예수님의 능력만을 원하는 자들을 위해 오신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과 함께 하면 마음에 위로가 되니가 예수님을 절대 다른 사람에게 내어줄 수 없다고 말하는 자들을 위해 오신 것이 아니다.
39. 예수님을 이 땅에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하기 위해 오셨습니다.
40. 이 일을 위해 이른 새벽에 동이 트기도 전에 한 적한 곳에서 가셔서 기도하셔야 하셨고, 우리에게 복음을 전해주시고 다른 동네로 떠나셔야만 하셨습니다.
41. 우리도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이유를 따라 그 길을 믿음으로 걸어가기를 원합니다. 그 길을 걸어가기 위해서 행하셨던 일들을 따라 순종하기 원합니다.
42. 새벽 한 적한 곳에서 기도하신 후 다른 가까운 마을로 예수님이 나에게 주신 복음을 전하러 가는 오늘 한 날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43. 이 일을 위해 우리 또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44. 아멘!
===
35절 "새벽 아직도 밝기 전에"
"예수께서 일어나 나가"
"한적한 곳으로 가사"
"거기서 기도하시더니"
= => 예수님의 한 날 사역의 시작은 기도이시다. 아직 날이 밝기도 전에, 일어나시고, 한적한 곳으로 가시사, 거기서 하신 것은 기도셨다.
= => 이렇게 하는 것이 기도다. 말씀만 들어도 참으로 기도에 여유가 묻어나 있다. 기도하러 가시는 예수님의 잔잔한 모습이 그려진다.
36-37절 "시몬과 그와 함께 있는 자들이 예수의 뒤를 따라가 만나서 이르되 모든 사람이 주를 찾나이다"
= => 주를 찾아 온 자들에게는 어떤 특징이 있을까? 왜 예수님은 찾아오는 이들에게 가시지 않았을까? 그들을 왜 만나주지 않았을까? 예수님을 찾아온 이들의 관심은 무엇이었을까?
복음이었을까?
자기에게 좋은 것들이었을까? 예를 들어보면, 놀라운 기적? 병고침? 자기 배만 채우려는 욕심?
38절 "이르시되 우리가 다른 가까운 마을들로 가자 거기서도 전도하리니 내가 이를 위하여 왔노라 하시고"
= => 왜, 예수님을 찾는 자들에게 가지 않고, 다른 가까운 마을로 가셨을까?
36-38절을 고래해보면,
예수님은 그 어떠한 것보다 "전도", 즉 복음을 전파하며 진짜 Good News를 전하는 일에 우선이 있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전도하리니 내가 이를 위해 왔노라"고 말씀하셨다.
예수님은 복음이 되시기 위해 오셨다. 우리가 예수님께 나아오는 이유는 복음을 위해서이다.
나는 지금 예수님을 왜 찾는가? 무엇이 나를 예수님께서 나아가게 하는가?
복음인가? 자기 채움인가?
참고) 요한복음 18장 37절
"빌라도가 이르되 그러면 네가 왕이 아니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네 말과 같이 내가 왕이니라 내가 이를 위하여 태어났으며 이를 위하여 세상에 왔나니 곧 진리에 대하여 증언하려 함이로라 무릇 진리에 속한 자는 내 음성을 듣느니라 하신대"
= => 진리에 대하여 증언하려 이 땅에 오시고, 진리에 대하여 증언하는 삶아 사신 예수님. 내가 진리에 속해 있다면, 이 진리의 음성을 들을 수 있을 것이다.
진리에 대해여 증언하는 음성이 들리는가?
39절 "이에 온 갈릴리에 다니시며 그들의 여러 회당에서 전도하시고 또 귀신들을 내쫓으시더라"
= => 온 갈릴리로 다니시면서 하신 일은 전도하시며 귀신들을 내 쫓는 일이셨다. 왜 찾아오는 이들에게 가서 전도하시고 귀신을 쫓아내시지 않으셨을까?
===
- 목 차 -
1. 하루를 시작하기 앞서, '너 거기서 무엇을 하였는가'라는 물음에 어떻게 답할 것인가?
2. 예수님은 이렇게 답하신다. " "새벽 아직도 밝기 전에" "예수께서 일어나 나가" "한적한 곳으로 가사" "거기서 기도하시더니"(35절)
3. 삶으로 가르시시는 예수님의 교육이시다.
4. 우리가 할 수만 있으면, 아니 항상 최우선에 예수님의 이 가르침을 기억해야 하며, 또한 실천해야 할 것이다.
5. 오늘도 기도하러 가시는 잔잔한 예수님의 모습으로 내 자신을, 그리고 이른 아침 시간을 비추어 본다.
6. 예수님께서 능력을 덧입을 수 있었던 힘은 기도로부터 시작되었다. 늘 기도하였기에 사역에 능력과 힘이 있었다.
7. 오늘도 바쁘 움직이셔야 했던 예수님께 수 많은 무리들이 찾아온다.(36절)
8. 그러나 왠지 예수님은 이들을 만나주시지 않고, 가셔야 했던 길을 찾아 나선다.(38절)
9. 시몬과 그와 함께 있는 자들이 예수를 따라 나서며 말한다. "모든 사람이 주를 찾나이다"(36-37절).
10. 예수님께서 이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시 않고, 말씀하신다. "우리가 다른 가까운 마을들로 가자"(38절)
11. 예수님은 왜 이렇게 말씀하셨을까? 왜 찾아온 이들을 만나주시지 않았을까?
12. 여기에는 두 가지 분명한 이유가 있었다.
13. 첫번째는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이유가 있었으며, 그 오신 이유에 합당한 일들을 바삐하셔야 했기 때문이다.
14. "거기서 전도하리니 내가 이를 위하여 왔노라"(38절)
15. 예수님은 복음을 위해 오셨다. 복된 소식을 선포하기 위해 오셨다. 복음을 전하기 위해 오셨다. 이 일을 위해서 기도하셔야 했고, 깨어 있어야 하셨다.
16. 그렇기에 찾아온 이들을 만나 줄 수 없었다. 그들과 이야기하며 대답할 시간이 없었다. 그 만큼 긴박하고 시간이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17. 그렇지만 여기서 하나 생각해 볼 필요가 있었다.
18. 왜 찾아온 이들에게는 전도하지 않으셨을까? 복음을 전하지 않으셨을까? 그들에게 복된 소식을 전하지 않으셨을까?
19. 여기서 우리는 앞서 찾아 온 이들을 만나지 않으신 두 번째 이유를 생각해 볼 수 있다.
20. 찾아온 이들의 관심은 무엇이었나? 그들은 예수님을 통해 무엇을 얻고한 것이 있는것 아니었을까? 복음을 그들이 받아들일 수 없는 어떤 마음에 곽찬 욕심이나 생각들이 있었던 것은 아닌가?
21. 찾아온 이들을 향한 이런 저런 생각이 내 머리를 두드린다. 나도 그들중에 있는 것은 아닌가?
22. 찾아온 이들은 항상 많았다(막1장 33절을 보라). 그러나 그들은 고침을 받는 것에만 관심이 있었다. 고침을 받고 난 이후에는 그 어떠한 것도 없었다.
23. 예수님을 그렇게 찾아 온 이들을 떠나셔야 했다. 누가복음 4장 42절에 보니 "무리가 찾다가 만나서 자기들에게 떠나시지 못하게 만류하려 하매"라고 말씀하고 있다.
24. 찾는 이들은 왜 예수님을 붙잡으려 했을까? 동네 이장을 시키려고 했을까? 자기들과 함께 한 평생 살기를 바라고 붙잡지 않았을까?
25. 예수님을 찾아온 이들에게는 가득한 것은 자기 욕심이었다. 예수님의 능력이었다. 그들이 복음만이면 족했다면 예수님을 떠나 보내야 한다.
26. 예수님은 떠나셨어도 복음은 여전히 내 마음에 있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육신과 함께 함에 기쁨이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주신 복음이 함께 함에 기쁨과 평안이 있는 것이다.
27. 이게 바로 예수님이 주신복음이 주는 유익이다.
28. 나는 지금 예수님의 현존만을 붙잡기 원하는가? 예수님은 눈에 보이시지 않지만, 예수님이 주신 복음만으로 만족하고 있는가?
29. 눈으로 보는 예수님만을 원한다면, 우리 또한 지금 예수님을 찾아온 무리들과 다르지 않다.
30. 우리도 자기 자신만을 위해 예수님 계속 붙잡아 두기 원하는 그들과 차이가 없다.
31. 예수님은 이 땅에 영원토록 죽지 않고 우리와 함께 하기 위해서 오신 것이 아니다. 우리에게 복음을 주기 위해 오셨다.
32. 그렇기에 지금도 우리는 복음만이면 족할 줄 알아야 한다. 그리고 때론 예수님께서 다른 마음에 복음을 전하기 위해 가신다면 기꺼이 보내드려야 한다.
33. 왜냐하면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이 일을 위해 보내심을 받았"(눅5:43)기 때문이시다.
34. 예수님이 나만을 위해 머물러 있기를 원하는 마음이 있어서는 안된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복음만을 남겨두시고 떠나셔야만 합니다. 그래야 또 다른 동네에서 하나님 나라의 복음은 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35. 그리고 예수님 떠나셨다고 슬퍼하거나 낙담하지 마십시오. 지금 나에게 예수님께서 자신의 생명을 바꿔 주신 복음이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36. 복음만이면 족하십시니까? 아니면 복음만으로는 부족하여 예수님을 늘 내눈앞에 있기를 원하십니까?
37.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이유를 분명히 기억하기 원합니다.
38. 예수님의 능력만을 원하는 자들을 위해 오신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과 함께 하면 마음에 위로가 되니가 예수님을 절대 다른 사람에게 내어줄 수 없다고 말하는 자들을 위해 오신 것이 아니다.
39. 예수님을 이 땅에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하기 위해 오셨습니다.
40. 이 일을 위해 이른 새벽에 동이 트기도 전에 한 적한 곳에서 가셔서 기도하셔야 하셨고, 우리에게 복음을 전해주시고 다른 동네로 떠나셔야만 하셨습니다.
41. 우리도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이유를 따라 그 길을 믿음으로 걸어가기를 원합니다. 그 길을 걸어가기 위해서 행하셨던 일들을 따라 순종하기 원합니다.
42. 새벽 한 적한 곳에서 기도하신 후 다른 가까운 마을로 예수님이 나에게 주신 복음을 전하러 가는 오늘 한 날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43. 이 일을 위해 우리 또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44. 아멘!
===
35절 "새벽 아직도 밝기 전에"
"예수께서 일어나 나가"
"한적한 곳으로 가사"
"거기서 기도하시더니"
= => 예수님의 한 날 사역의 시작은 기도이시다. 아직 날이 밝기도 전에, 일어나시고, 한적한 곳으로 가시사, 거기서 하신 것은 기도셨다.
= => 이렇게 하는 것이 기도다. 말씀만 들어도 참으로 기도에 여유가 묻어나 있다. 기도하러 가시는 예수님의 잔잔한 모습이 그려진다.
36-37절 "시몬과 그와 함께 있는 자들이 예수의 뒤를 따라가 만나서 이르되 모든 사람이 주를 찾나이다"
= => 주를 찾아 온 자들에게는 어떤 특징이 있을까? 왜 예수님은 찾아오는 이들에게 가시지 않았을까? 그들을 왜 만나주지 않았을까? 예수님을 찾아온 이들의 관심은 무엇이었을까?
복음이었을까?
자기에게 좋은 것들이었을까? 예를 들어보면, 놀라운 기적? 병고침? 자기 배만 채우려는 욕심?
38절 "이르시되 우리가 다른 가까운 마을들로 가자 거기서도 전도하리니 내가 이를 위하여 왔노라 하시고"
= => 왜, 예수님을 찾는 자들에게 가지 않고, 다른 가까운 마을로 가셨을까?
예수님은 그 어떠한 것보다 "전도", 즉 복음을 전파하며 진짜 Good News를 전하는 일에 우선이 있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전도하리니 내가 이를 위해 왔노라"고 말씀하셨다.
예수님은 복음이 되시기 위해 오셨다. 우리가 예수님께 나아오는 이유는 복음을 위해서이다.
나는 지금 예수님을 왜 찾는가? 무엇이 나를 예수님께서 나아가게 하는가?
복음인가? 자기 채움인가?
참고) 요한복음 18장 37절
"빌라도가 이르되 그러면 네가 왕이 아니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네 말과 같이 내가 왕이니라 내가 이를 위하여 태어났으며 이를 위하여 세상에 왔나니 곧 진리에 대하여 증언하려 함이로라 무릇 진리에 속한 자는 내 음성을 듣느니라 하신대"
= => 진리에 대하여 증언하려 이 땅에 오시고, 진리에 대하여 증언하는 삶아 사신 예수님. 내가 진리에 속해 있다면, 이 진리의 음성을 들을 수 있을 것이다.
진리에 대해여 증언하는 음성이 들리는가?
39절 "이에 온 갈릴리에 다니시며 그들의 여러 회당에서 전도하시고 또 귀신들을 내쫓으시더라"
= => 온 갈릴리로 다니시면서 하신 일은 전도하시며 귀신들을 내 쫓는 일이셨다. 왜 찾아오는 이들에게 가서 전도하시고 귀신을 쫓아내시지 않으셨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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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고의 워십 뮤직 호주 힐송 처치의Brian Houston(브라이언 휴스톤)
For This I was Born
“내가 이를 위하여 세상에 왔나니”
“내가 이를 위하여 세상에 왔나니”
“삶, 교회, 목적과 이유, 헌신에 관한브라이언 휴스톤 목사의 탁월한 도전”
- 목 차 -
제 1부 : 내가 이를 위하여 세상에 왔나니
- 1. 그리스도의 이유를 위해서 태어나다
- 2. 그리스도의 이유와 지역교회
- 1. 그리스도의 이유를 위해서 태어나다
- 2. 그리스도의 이유와 지역교회
제 2부 : 이유와 비전
- 3. 당신의 비전과 그리스도의 이유
- 4. 이유가 중심이 된 연합
- 5. 영원한 비전
- 3. 당신의 비전과 그리스도의 이유
- 4. 이유가 중심이 된 연합
- 5. 영원한 비전
제 3부 : 이유와 소명
- 6. 구원과 부르심
- 7. 당신의 손에 있는 것을 사용하라
- 8. 힘든 수고가 주는 축복
- 6. 구원과 부르심
- 7. 당신의 손에 있는 것을 사용하라
- 8. 힘든 수고가 주는 축복
제 4부 : 이유와 목적
- 9. 목적이 있는 삶
- 10. 모든 목적이 이룰 때가 있나니
- 11. 번영과 목적
- 9. 목적이 있는 삶
- 10. 모든 목적이 이룰 때가 있나니
- 11. 번영과 목적
제 5부 : 이유와 대가
- 12. 내려놓는 삶
- 13. 확신안에 거하라
- 14. 헌신된 삶을 살아가기
- 15. 축복의 근원
- 12. 내려놓는 삶
- 13. 확신안에 거하라
- 14. 헌신된 삶을 살아가기
- 15. 축복의 근원
| 저자소개 | |
그의 아내 바비(Bobbie)와 함께 호주에서 가장 큰 교회 힐송 처치의 담임목사로 섬기고 있다. 21,000명이 넘는 성도들이 매주 출석하고 있으며 두 곳의 캠퍼스로 나누어 예배를 드린다. 힐송뮤직, 힐송 컨퍼런스, 힐송 인터내셔널 리더십 컬리지와 함께, 글로벌 사역을 펼쳐나가고 있 으며, 힐송 TV는 한국을 포함, 현재 180여 개국에서 방영되고 있다.
|
휫셔(Fisher)뮤직은 호주 힐송(Hillsong)뮤직의 공식 디스트리뷰터로서 1998년부터 힐송처치의 워십을 10년 넘게 국내에 소개해왔다. 처음 힐송의 음반들을 가져와 알릴 때의 감사와 흥분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그래서 이번 휫셔북스를 통해 힐송 브라이언 휴스톤 목사의 저서 “내가 이를 위하여…”를 소개하는 일이 우리에게는 큰 의미가 아닐 수 없다.
많은 이들이 힐송하면 우선 워십을 떠올리지만 브라이언 목사의 말처럼 오늘날 힐송뮤직이 오랫동안 사랑 받는 그 은혜를 이해할 수 있는 열쇠는 훨씬 더 깊은 곳에 있다. 이 책은 세계 최고의 워십뮤직 이면의 믿음, 말씀과 영성의 깊이를 보여준다. 또 그의 목회 철학, 성장의 힘, 그리스도의 이유와 목적에 사로잡힌 헌신에 도전 받게 될 것이다. 목회자, 음악사역자, 워십리더는 물론 그리스도의 이유를 위해서 사는 이들에게 꼭 필요한 책이다.
- 유지연_ 휫셔뮤직그룹 대표
인생을 값있고 기쁘게 살 수 있는 비결은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에게 ‘Why?’와 ‘For what?’을 질문하고 응답을 받는 것이라 배웠다. 그래서 나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하나님께 이 두 가지 질문을 통하여 그분의 뜻을 발견하라고 훈련 받았다. 성경을 볼 때도 설교를 준비할 때도 나는 끊임 없이 이 두 질문을 한다. 예수님께서도 십자가를 지셔야 할 때 당혹스럽고 괴로우셨기에 겟세마네 동산에서 고민하고 기도하시며 거기서 위의 두가지 질문을 하셨을 것이다. 그리고 아버지의 뜻을 아셨다. 그래서 그 모진 고문과 협박의 불의한 재판가운데서도 “내가 이를 위하여(For this cause) 세상에 왔나니”라고 말씀 하실 수 있었다. 브라이언 휴스톤 목사는 그 이야기를 탁월하게 서술해 놓았다. 이책 과 함께 당신도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 질문하여 예수님처럼 담대하게 “내가 이를 위하여…”라고 고백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 문희곤_ 높은뜻 푸른교회 담임목사
이 혼돈의 세상속에서 진정으로 하나님이 원하시는 참된 번영과 성취가 필요하다면, 브라이언 휴스톤 목사와 함께 그 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 박기범_ 어노인팅 대표
목적이 함께하는 삶은 늘 내 마음에 붙어 다니는 주제다. 브라이언 휴스톤 목사는 이 책에서 그리스도의 이유가 당신의 세계에 스며들 때 삶이 어떻게 변할 수 있는지 자세히,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 조이스 마이어_ 베스트셀러 저자, 성경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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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참고할 것.
[진중권의 미학 에세이]
[진중권의 아이콘] 개시(開示)로서의 진리
아방가르드의 성공 혹은 실패에 대하여
“네 나라 사람과 대제사장들이 너를 내게 넘겼으니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 빌라도가 가로되 “그러면 네가 왕이 아니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네 말과 같이 내가 왕이니라. 내가 이를 위하여 났으며, 이를 위하여 세상에 왔나니, 곧 진리에 대하여 증거하려 함이로다”. (…) 빌라도가 가로되 “진리가 무엇이냐?”(요한복음 18:33-38)
신약성서에서 가장 인상적인 대목은 빌라도가 예수와 대면하는 장면이리라. 심문의 마지막에 빌라도가 던진 질문은 사뭇 냉소적이다. “진리가 무엇이냐?” (Quid est veritas?) 예수는 이 물음에 답하지 않았지만, 어느 호사가가 철자의 순서를 바꾸는 파자(anagram)를 이용해 물음 속에서 답변을 끌어냈다. “앞에 서 있는 바로 그 사람이다.”(Est vir qui adest). 예수, 그 사람이 바로 진리다.
‘진리’에 대한 두 관념의 충돌
예수와 빌라도의 만남에서 헤브라이즘과 헬레니즘의 충돌을 볼 수 있다. 가령 빌라도는 로마법의 절차에 따라 먼저 피고의 혐의를 나열한 뒤 예수의 변론을 기다린다. “빌라도가 이르되, 그들이 너를 쳐서 얼마나 많은 것으로 증언하는지 듣지 못하느냐.” 예수가 로마인이었다면, 그 자리에서 조목조목 따져가며 자신의 무고함을 주장했을 것이다. 하지만 예수는 빌라도의 게임에 들어가지 않는다. “고발을 당하되 아무 대답도 아니 하시는지라.” 예수는 자신을 변호하지 않고, 그 모든 것을 신이 정하신 자신의 운명으로 받아들인다. 이에 “총독이 크게 놀라워하더라”.
“나는 그에게서 아무 죄도 찾지 못하였노라.” 빌라도는 적당히 매질이나 해서 풀어주려 한 모양이다. 예수를 채찍질한 뒤 그를 대중 앞으로 이끌어 매질로 만신창이가 된 그의 몸을 보여주며 외친다. “보라, 이 사람이로다.”(Ecce homo) 하지만 성난 군중은 매질로 만족할 수 없었다. 예수를 십자가에 매달라고 외치며 심지어 빌라도를 협박하기까지 한다. “이 사람을 놓으면 가이사의 충신이 아니니이다. 무릇 자기를 왕이라 하는 자는 가이사를 반역하는 것이니이다.” 두려움을 느낀 빌라도는 예수의 운명을 대중의 뜻에 맡기며 자신은 대야의 물에 손을 씻는다.
여기에서 보는 것은 ‘진리’에 관한 상이한 두 관념의 충돌이다. 헬레니즘의 진리와 헤브라이즘의 진리. 흔히 ‘진리’라고 하면, 우리는 명제 혹은 진술의 속성이라고 생각한다. 빌라도가 자신의 법정에서 밝히려 했던 것도 그런 종류의 진리였으리라. ‘유대인들이 예수에게 내건 혐의들이 과연 사태에 부합하는가?’ 하지만 예수 앞에서 빌라도가 구하는 진리는 사소한 것이었다. 예수의 진리는 오늘날 전세계에 퍼져 있는 기독교회의 존재를 통해서 입증된다. 수천년이 지난 오늘날까지도 전해 내려오는 새로운 삶의 원리. 그것이 빌라도의 것을 압도한 예수의 진리다.
하이데거에 따르면 진리는 ‘명제진리’와 ‘사태진리’로 구별된다. ‘명제진리’는 이미 우리에게 익숙한 인식론적 진리, 즉 참인 명제가 갖는 속성으로서 진리다. ‘사태진리’는 그와는 차원이 달라서 가령 예수의 진리처럼 논증이나 증명 없이 선포된다. 선포(kerigma)로서 진리는 존재론적 진리다. 근원적인 것은 이 사태진리이고, 명제진리는 거기에서 파생된 것에 불과하다. 수학을 예로 들어보자. 어떤 수학적 명제의 올바름은 정리를 이용해 증명된다. 정리의 올바름은 공리를 이용해 증명된다. 그렇다면 공리의 올바름은 어떤가? 그것은 증명없이 옳은 것으로 선포되지 않는가.
사태로서 진리가 일어나는 데에는 세 가지 방식이 있다. 예술, 사유, 그리고 국가다. 하이데거에 따르면, 이 세 가지가 과학에서 말하는 진리보다 근원적인 것이다. 시인과 철학자가 세계를 열어서 보여주면, 과학자들은 그렇게 열린 세계 속으로 들어와 개념적 정리를 할 뿐이라는 것이다. 여기서 흥미로운 것은 국가를 세우는 것이 곧 진리라는 생각이다. 하이데거가 강의실에서 이런 얘기를 하던 30년대 초반, 강의실 밖에서는 나치운동이 일어나고 있었다. 하이데거는 한때 나치운동이 바로 그런 진리를, 새로운 민족적 삶의 세계를 세우는 일이라 믿었다.
급진주의자라면 국가 대신에 혁명을 들 것이다. 조례의 올바름은 법률로 판단하고, 법률의 올바름은 헌법으로 판단한다. 그럼 헌법의 올바름은 무엇으로 판단하는가? 기존 헌법의 올바름을 판단하는 것은 법률적 과제가 아니다. 그것을 판단하는 것은 ‘혁명’이다. 혁명으로 새 세상이 열리면, 사후에 법률가들이 들어와 새 헌법의 정신에 맞추어 법률과 조례를 만들 것이다. 진리론의 좌익적 버전에서는 혁명의 전위(‘당’)가 곧 진리가 된다. ‘당의 무오류’라는 스탈린주의 원칙은 어떤 면에서는 필연적인 것이다. 공리를 향해서 자신의 올바름을 증명하라고 요구할 수는 없잖은가.
견자(見者)의 편지
사건으로서 진리는 ‘종교’나 ‘정치’만이 아니라 예술에도 존재한다. 랭보는 견자(‘voyant’)에 관해 이야기한다. “내가 말하노니, (…) 시인은 모든 감각의 기나긴 거대한 이성적 일탈을 통해 자신을 견자(見者)로 만들어야 한다. 모든 형태의 사랑, 고통, 광기. 그는 자신을 탐색한다. 그는 자기 안의 모든 독약을 소진하여 그 속에서 오직 핵심만을 건져낸다. 모든 신념과 모든 초인적 힘을 요하는 말할 수 없는 고문. 그것을 통해 그는 인간들 중에 인내심이 있는 자, 위대한 범죄자, 저주받은 자-그리고 위대한 학자가 된다. 그는 미지의 세계에 도달하기 때문이다.”
랭보의 ‘견자’는 유대인들이 ‘선지자’라 부른 것의 예술적 버전이라 할 수 있다. 견자, 즉 보는 자는 아무도 보지 못하는 미래를 보며, 나아가 아직 존재하지 않는 그 미래를 비로소 존재하게 만든다. 시인은 “진보의 배가자”로서, 알 수 없는 미래를 향해 용감하게 몸을 던진다. 당연히 거기에는 커다란 위험이 따른다. “그가 방황하다가 결국 제 비전의 지성을 잃고 말지라도, 그는 이미 그 비전들을 보았다. 그로 하여금 들어보지도 이름할 수도 없는 것들 속으로 뛰어들다가 죽게 놔두라. 다른 무서운 일꾼들이 나타나, 다른 이가 쓰러진 그 지평에서 다시 시작할 것이다.”
랭보의 ‘견자의 편지’(1871)는 훗날 ‘아방가르드’라 불릴 운동의 전주곡이 된다. “새로운 세대는 제 조상을 저주할 자유가 있다.” 여기에서 숨막힐 듯이 답답한 낡은 질서를 무너뜨리며 강림할 새로운 예술, 새로운 사회에 대한 기대를 읽을 수 있다. “시는 더이상 행동에 리듬을 맞추지 않을 것이다. 시는 앞서 나갈 것이다.” 이 말은 시야말로 그 어떤 행동에도 앞서 세계를 열어주는 진리라는 시인의 자의식을 보여준다. 20세기의 아방가르드 예술을 추동한 것은 바로 이 자의식이었다. 그것은 죽어가는 사회 속에 새로운 진리를 일으키려는 운동이었다.
아방가르드는 제 비전을 실현하기 위해 정치와 손을 잡았으나, 결과는 치명적이었다. 진리의 원천이 둘일 수는 없지 않은가. 결국 아방가르드 운동은 앞서 나가지 못하고, (나치당이나 전위당의) 행동에 리듬을 맞춰주는 신세로 전락한다. 역사적 아방가르드는 정치적으로 실패했다. 하지만 미학적으로는 성공했는지도 모른다. 20세기 초에 그들이 가졌던 예술적 비전은 오늘날 생활세계의 일부가 되었기 때문이다. 보지 못한 것을 보게 해주고, 없었던 것을 있게 해주는 개시(開示)로서의 진리는 여전히 필요하다. ‘견자의 편지’는 아직도 수신자를 찾는다.
Thursday, February 7, 2013
한 날 묵상 - 마가복음을 시작하며 "기도와 예수"
1. 2013년을 시작한지 벌써 한 달 하고도 일주일이 지났습니다. 참으로 빠른 시간입니다.
2. 올 한해 한 날 묵상을 해야 할 말씀 본문을 적어보았고, 첫 순서로 마가복음을 하려고 했는데, 벌써 이렇게 시간이 지나고 나서 첫 글을 쓰게 됩니다.
3. 이렇게 늦게 된 이후의 핑계를 되자면 먼저 마가복음 전체를 한 번 읽어보고 난 후에 하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오늘이야 다 읽었습니다.
4. 그럼 왜 이렇게 한 달이나 걸렸는냐? 라고 물을 수 있는데 맥케인 성경읽기 표를 따라 읽다 보니 좀 늦어졌씁니다. 그렇지만 맥케인 일정보다는 좀 빠르게 읽고 마가복음을 다 읽게 되었습니다.
5. 사실 마가복음을 한 번 다 읽지 않아서 충분히 말씀 묵상을 나룰 수 있습니다. 그런데 생각보다 마음은 가는데 몸이 따라주지 않아서 지금까지 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6. 게으름이란 영적 성숙에 큰 걸림돌 중에 하나입니다. 게으름은 영적 병입니다. 하나님과 교제함은 영적인 것이서 영적으로 출발해서 삶의 곳곳에 영적인 교제가 흘러 넘쳐야 합니다.
7. 그런데 게으름이란 육체적 이기심이 자꾸 영적인 교제를 하지 못하도록 방해꾼이 됩니다.
8. 게으름은 영적인 만남을 위한 장애일 뿐 아니라 사람들이 성숙하며 성장하며 지속적으로 나아가는 것에도 아주 큰 방해입니다.
9. 게으름에 저버리는 자는 결코 성공할 수 없습니다. 어떠한 목표를 이룰 수 없게 됩니다.
10. 그런데 게으름을 이길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이면서 좋은 방법은 역시 말씀입니다. 말씀을 읽으며 묵상하면 자연히 자신을 정직하게 보게 됩니다.
11. 그 뿐 아니라 하나님은 참으로 게으른 자는 먹지도 말라 하신 말씀처럼 게으른 상태에 놓이 자를 가리켜 죄의 자리에 있는 자로 말씀하십니다.
12. 결국 말씀을 가까이 하는 그리스도인이라면 게으름을 털고 일어날 수 있는 부지런한 자가 될 수 밖에 었습니다. 이게 바로 말씀의 위력이 아닐까 합니다.
13. 오늘 이렇게 마가복음 묵상을 시작합니다.
14. 먼저 왜 이렇게 늦어진지에 대한 나눔을 통해 게으름에 대해서 먼저 살펴보았습니다.
15. 여기서 잠깐 먼저 마가복음 전체를 읽으면서 느낀 두 가지를 나누어 보려고 합니다.
16. 마가복음을 읽으면서 느낀 첫 번째는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혼내는 모습이 눈에 띤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과 함께 하면서 "아직도 깨닫지 못하느냐"(막8:21), "믿음이 없는 세대여"(막9:19)등 여러 곳에서 제자들을 책망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는 것입니다.
17. 책망이나 혼냄은 결코 잘못된 것이 아니다. 예수님과 제자들과의 관계에서 왜 이게 잘못이 아닌가 하면, 바로 제자들을 훈련하는 시기이기 때문입니다.
18. 정말 우리가 자녀들을 훈련하며, 교사가 되어, 목사가 되어, 순장이 되어 다른 사람을 훈련할 때 때론 책망이나 혼냄이 필요합니다. 이것은 결코 나쁜 방법이 아닙니다. 좋은 방법이다.
19. 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훈련을 위한 서로의 관계가 예수님과 제자처럼 친밀하느냐입니다. 서로가 친밀함속에서 교육생과 피교육생이 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친밀함 없이 훈련만을 위한 책망과 혼냄이 있다면 이 훈련은 제대로 되지 못할 뿐 아니라 예수님과 제자들에서 배우는 훈련 방법이라 할 수 없습니다.
20. 마가복음을 읽으면서 두 번째는 바로 예수님의 기도입니다. 예수님은 기도의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21. 믿음을 위해서도 기도하였고, 하나님과 바른 지속적 관계를 위해서 늘 기도하셨습니다. 이는 참으로 하나님의 자녀된 우리에게 좋은 본이 됩니다.
22. "기도와 예수"
23. 예수님에게 기도는 꼭 필요했습니다.
24. 하나님이 마음을 이해하기 위해서라도, 하나님의 마음을 자신의 마음에 충만히 채우기 위해서라도, 자신의 인간적인 이 세상의 마음을 버리기 위해서라도, 그리고 이 땅에 남겨질 제자들을 위해서도, 나아가 그가 완성해야 할 사명, 십자가 사역을 위해서도 그에게 꼭 기도는 필요했습니다.
25. 예수님에게서 배웁니다. 기도는 이 땅에서 우리가 살아가야 할 길을 알 수 있는 가장 쉽고도 어려운 방법이라는 사실을 배우게 됩니다.
26. 오늘 시작되는 마가복음 한 날 묵상에 하나님의 크신 은혜와 예수님의 사랑하심과 성령님의 역사하심이 가득하기를 소망합니다.
27. 그리고 굳모닝과 함께 Let' go!
2. 올 한해 한 날 묵상을 해야 할 말씀 본문을 적어보았고, 첫 순서로 마가복음을 하려고 했는데, 벌써 이렇게 시간이 지나고 나서 첫 글을 쓰게 됩니다.
3. 이렇게 늦게 된 이후의 핑계를 되자면 먼저 마가복음 전체를 한 번 읽어보고 난 후에 하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오늘이야 다 읽었습니다.
4. 그럼 왜 이렇게 한 달이나 걸렸는냐? 라고 물을 수 있는데 맥케인 성경읽기 표를 따라 읽다 보니 좀 늦어졌씁니다. 그렇지만 맥케인 일정보다는 좀 빠르게 읽고 마가복음을 다 읽게 되었습니다.
5. 사실 마가복음을 한 번 다 읽지 않아서 충분히 말씀 묵상을 나룰 수 있습니다. 그런데 생각보다 마음은 가는데 몸이 따라주지 않아서 지금까지 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6. 게으름이란 영적 성숙에 큰 걸림돌 중에 하나입니다. 게으름은 영적 병입니다. 하나님과 교제함은 영적인 것이서 영적으로 출발해서 삶의 곳곳에 영적인 교제가 흘러 넘쳐야 합니다.
7. 그런데 게으름이란 육체적 이기심이 자꾸 영적인 교제를 하지 못하도록 방해꾼이 됩니다.
8. 게으름은 영적인 만남을 위한 장애일 뿐 아니라 사람들이 성숙하며 성장하며 지속적으로 나아가는 것에도 아주 큰 방해입니다.
9. 게으름에 저버리는 자는 결코 성공할 수 없습니다. 어떠한 목표를 이룰 수 없게 됩니다.
10. 그런데 게으름을 이길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이면서 좋은 방법은 역시 말씀입니다. 말씀을 읽으며 묵상하면 자연히 자신을 정직하게 보게 됩니다.
11. 그 뿐 아니라 하나님은 참으로 게으른 자는 먹지도 말라 하신 말씀처럼 게으른 상태에 놓이 자를 가리켜 죄의 자리에 있는 자로 말씀하십니다.
12. 결국 말씀을 가까이 하는 그리스도인이라면 게으름을 털고 일어날 수 있는 부지런한 자가 될 수 밖에 었습니다. 이게 바로 말씀의 위력이 아닐까 합니다.
13. 오늘 이렇게 마가복음 묵상을 시작합니다.
14. 먼저 왜 이렇게 늦어진지에 대한 나눔을 통해 게으름에 대해서 먼저 살펴보았습니다.
15. 여기서 잠깐 먼저 마가복음 전체를 읽으면서 느낀 두 가지를 나누어 보려고 합니다.
16. 마가복음을 읽으면서 느낀 첫 번째는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혼내는 모습이 눈에 띤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과 함께 하면서 "아직도 깨닫지 못하느냐"(막8:21), "믿음이 없는 세대여"(막9:19)등 여러 곳에서 제자들을 책망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는 것입니다.
17. 책망이나 혼냄은 결코 잘못된 것이 아니다. 예수님과 제자들과의 관계에서 왜 이게 잘못이 아닌가 하면, 바로 제자들을 훈련하는 시기이기 때문입니다.
18. 정말 우리가 자녀들을 훈련하며, 교사가 되어, 목사가 되어, 순장이 되어 다른 사람을 훈련할 때 때론 책망이나 혼냄이 필요합니다. 이것은 결코 나쁜 방법이 아닙니다. 좋은 방법이다.
19. 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훈련을 위한 서로의 관계가 예수님과 제자처럼 친밀하느냐입니다. 서로가 친밀함속에서 교육생과 피교육생이 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친밀함 없이 훈련만을 위한 책망과 혼냄이 있다면 이 훈련은 제대로 되지 못할 뿐 아니라 예수님과 제자들에서 배우는 훈련 방법이라 할 수 없습니다.
20. 마가복음을 읽으면서 두 번째는 바로 예수님의 기도입니다. 예수님은 기도의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21. 믿음을 위해서도 기도하였고, 하나님과 바른 지속적 관계를 위해서 늘 기도하셨습니다. 이는 참으로 하나님의 자녀된 우리에게 좋은 본이 됩니다.
22. "기도와 예수"
23. 예수님에게 기도는 꼭 필요했습니다.
24. 하나님이 마음을 이해하기 위해서라도, 하나님의 마음을 자신의 마음에 충만히 채우기 위해서라도, 자신의 인간적인 이 세상의 마음을 버리기 위해서라도, 그리고 이 땅에 남겨질 제자들을 위해서도, 나아가 그가 완성해야 할 사명, 십자가 사역을 위해서도 그에게 꼭 기도는 필요했습니다.
25. 예수님에게서 배웁니다. 기도는 이 땅에서 우리가 살아가야 할 길을 알 수 있는 가장 쉽고도 어려운 방법이라는 사실을 배우게 됩니다.
26. 오늘 시작되는 마가복음 한 날 묵상에 하나님의 크신 은혜와 예수님의 사랑하심과 성령님의 역사하심이 가득하기를 소망합니다.
27. 그리고 굳모닝과 함께 Let' go!
Thursday, January 17, 2013
너 지금 뭐하니? - 정훈
기도하니?
그래 나 기도한다
기도하니 좋다
그래 나 지금 기도해!!!
너도 하길 바래!!!
그래 나 기도한다
기도하니 좋다
기도하니 생명이 싹튼다
기도하니 사랑 또한 싹튼다
기도하니 생각이 정리되고,
기도하니 꿈을 꿀 필요가 없다
기도하니 사람들이 생각나고,
기도하니 사람들이게 할 말이 적어진다
기도하니 마음이 가볍다
기도하니 이 자리가 그립다
기도하니 이 자리를 또 찾고 싶다
기도하니 저 멀리 동이 터오고 있다
기도하니 내 가까이 희망이 솟아오고 있다
그래 지금 너 뭐하니? 기도하니?
너도 하길 바래!!!
2013. 1. 17 by Hooney Dooley.
Wednesday, May 16, 2012
소그룹을 묶어주는 기도 - 소그룹네크워크 350호
정해진 기간 동안 함께 특수한 목적을 가지고 모였던 소그룹이 그 목적을 달성한 이 후에도 계속해서 정기적으로 모임을 갖는 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닐 것입니다. 물론 이들이 공유하고 있는 경험이 다른 이들과는 공유할 수 없는 유대감을 갖게 합니다만 이것만으로는 소그룹의 멤버들이 꾸준히 만남을 갖고 관계를 유지해나가기에는 역부족입니다.
이런 특수한 목적을 가진 소그룹 외에 일반 소그룹에서도 유대감을 형성할 수 있는 공통분모를 찾는 것 외에 다른 무언가가 필요하다는 것을 금새 소그룹 지도자는 발견할 수 있습니다.
NCD의 데이브 얼리는 <성공하는 소그룹 리더의 8가지 습관> 중에 소그룹을 하나로 묶어 줄 수 있는 소그룹 리더의 습관들에 대해 이야기 합니다. 얼리는 소그룹 리더가 소그룹의 비전과 방향성 제시하는 것 다음으로 기도를 가장 중요한 리더의 습관으로 손꼽고 있습니다.
얼리는 성공적인 소그룹 리더는 멤버들을 위해 매일 기도하는 사람이라 말합니다. 어떻게 보면 아주 기초적인 지침이지만 그는 기도의 유익함을 자세히 설명하면서 그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소그룹 리더가 얼리가 말하는 대로 기도의 중요성을 깨닫고 기도를 할 때 왜 그 소그룹의 결속력이 더욱 강해 질 수 있을까요? 리더가 기도의 모범을 보였을 때 소그룹 안에서 일어나는 현상은 아주 자연스러운 현상일 것입니다.
모범을 보았으니 멤버들은 조금씩 모방하며 자신들도 기도의 습관을 갖게 될 것입니다. 멤버들이 점차 기도하며 무릎을 꿇는 시간을 늘려갈 것입니다. 이렇게 기도의 습관을 키워가다 보면 얼리가 말하는 기도의 유익함을 멤버들도 스스로 느낄 수 있게 됩니다.
- 기도가 일상 속에서 시간과 에너지를 절약하게 해준다는 사실
- 기도는 어떤 상황에서든지 할 수 있다는 사실
- 기도가 꼭 필요한 통찰력을 얻게 해준다는 사실
이 외에도 얼리는 기도가 영적 성장을 위해 꼭 필요한 무기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리도 유익한 기도가 소그룹을 더욱 하나로 연합시켜 줄 수 있는 이유는 바로 하나님의 눈으로 다른 멤버들을 바라보고 그들을 위해 기도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기도의 끈은 소그룹을 묶어주는 가장 튼튼한 재료라 할 수 있는 사랑의 실제이기도 합니다. 한 멤버가 다른 멤버들을 위해 기도하며 하루에 정해 놓은 시간에 다른 지체들의 얼굴을 떠 올리며 그들의 삶 속에 지금 해결돼야 할 문제들, 그리고 그들의 영적 건강을 위해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는 그 멤버를 향하여 가지신 자신의 사랑을 기도하는 사람에게도 보여주십니다. 이 놀라운 사랑이 소그룹을 진정으로 하나되게 하는 것입니다.
한 주간 동안 못 보는 것도 아쉬워하는 소그룹 멤버들은 모임 장소로 들어오자 마자 서로의 안부를 묻습니다. 그냥 한 주간 동안 어떻게 지냈느냐 물어보는 것이 아니라 서로가 지난 한 주간 동안 함께 기도하며 지냈던 일들에 대해 확인하고 때론 감사의 찬양을 또는 더욱 간절한 기도의 자리로 나아갑니다.
우리가 속한 소그룹에서는 지금 기도가 얼마나 넘쳐나고 있을까요?
오늘도 우리와 함께 하는 소그룹 멤버들의 얼굴을 떠올리며 그들의 기도제목을 가지고 또 한 번 무릎을 꿇고 기도의 자리로 조용히 나가봅니다.
오늘도 우리와 함께 하는 소그룹 멤버들의 얼굴을 떠올리며 그들의 기도제목을 가지고 또 한 번 무릎을 꿇고 기도의 자리로 조용히 나가봅니다.
* 이 글은 데이브 얼리의「성공하는 소그룹 리더의 8가지 습관」의 일부를 발췌 각색한 글입니다.
Wednesday, April 11, 2012
느헤미야 2:1-20 <느헤미야의 비전과 기도는 지혜로움, 하나님의 일하심에 대한 확신을 통해서 더욱 구체화 되고 있다>
느헤미야 2:1-20 <느헤미야의 비전과 기도는 지혜로움, 하나님의 일하심에 대한 확신을 통해서 더욱 구체화 되고 있다>
1. 기도의 응답은 우리의 때가 아니라 하나님의 때에 이루어진다.
2. 기도의 응답의 때가 있다.
1절 "왕 앞에 포도주가 있기로 내가 그 포도주를 왕에게 드렸는데"
3. 비전을 품고 기도하면, 비전을 구체적을 품고 기도할 수 있게 된다. 구체적으로 기도할 수 있게 된다.
4. 기도는 하나님께서 일하게 하시는 방법이 된다. 우리가 하나님이 일하신다. 왕이 먼저 묻기 시작하다.
2절 "왕이 내게 이르시되 네가 병이 없거늘 어찌하여 얼굴에 수심이 있느냐"
기도해보라. 하나님이 일하심을 보게 된다.
5. 느헤미야는 기도하며 비전을 준비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일하심을 통해 일사천리로 일이 진행되어질 때, 그 순간 순간 자신의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충분한 지혜가 있었습니다.
5절 "왕에게 아뢰되"
7절 "내가 또 왕에게 아뢰되"
8절 "또 왕의 삼림 감독 아삽에게 조서를 내리사"
기도할 뿐 아니라, 지혜도 필요하다. 느헤미야의 리더십은 준비된 리더십이었다.
6. 비전이 하나님의 일하심을 통해 이루지더라도 어려움은 있기 마련이다.
10절 "호론 사람 산발락과 종이었던 암몬 사람 도비야가 이스라엘 자손을 흥왕하게 하려는 사람이 왔다 함을 듣고 심히 근심하더라"
7. 어려운 상황에서 즉흥적인 행동은 지혜로운 행동이 아닙니다. 성경이 "사흘"을 기다렸다고 말합니다. 이것을 기록한 이유가 있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느헤미야의 시작부터 본문에 이르기까지 느헤미야가 규칙적으로 했던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기억하며, 기도하는 것이었습니다.
11절 "내가 예루살렘에 이르러 머무른 지 사흘 만에"
12절 "내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지 내 마음에 주신 것을 내가 아무에게도 말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서 사흘을 머무르는 동안 느헤미야의 마음에 주신 무엇이 있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8. 사흘이 지나, 몇몇 사람(12절)과 함께 예루살렘 성벽을 시찰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느헤미야은 말하는 태도를 보게 됩니다.
9. 느헤미야는 비전을 품고 나아가는 갈 때, 확신을 가지고 있습니다. 느헤미야는 성벽이 무너져 버리고, 예루살렘이 황폐하고, 성문이 불탔있는(17절) 어려운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의지하며 신뢰함으로 확신을 품고 나아갔다. 2장 곳곳에 이러한 표현은 계속됩니다.
8절 "내 하나님의 선한 손이 나를 도우시므로"
18절 "또 그들에게 하나님의 선한 손이 나를 도우신 일과 왕이 내게 이른 말씀을 전하였더니"
20절 "하늘의 하나님이 우리를 형통하게 하시리니"
10. 느헤미야가 계속해서 강조하고 있는 것은 하나님이 계획하신 일은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를 신뢰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우쳐주고 있습니다.
20절 "하늘의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이 일을 꼭 이뤄 주실 것이다. 생벽 재건은 주의 종인 우리가 할 일이다. 너희는 아무 것도 없고 권리도 없고 역사적 명분도 없다"
11. 느헤미야에게 이런 마음을 가질 수 있는 힘은 어디서 나온 것일까요? 성벽 재건은 내 일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이라는 것이며, 또한 이것은 하나님의 종인 우리가 해야 할 일이고, 우리의 비전이기에 반드시 해야 한다는 사명의식이었습니다.
12. 비전과 기도의 사람의 느헤미야의 예루살렘 성벽 재건을 위한 민족을 향한 사랑이 한 걸음 더 전진하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13. 우리의 인생에 많은 어려운 일들과 고난은 있겠지만, 그러한 것들은 아무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모든 것을 이기셨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위해서,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살아갈 때 우리의 비전은 이루어집니다.
1. 기도의 응답은 우리의 때가 아니라 하나님의 때에 이루어진다.
2. 기도의 응답의 때가 있다.
1절 "왕 앞에 포도주가 있기로 내가 그 포도주를 왕에게 드렸는데"
3. 비전을 품고 기도하면, 비전을 구체적을 품고 기도할 수 있게 된다. 구체적으로 기도할 수 있게 된다.
4. 기도는 하나님께서 일하게 하시는 방법이 된다. 우리가 하나님이 일하신다. 왕이 먼저 묻기 시작하다.
2절 "왕이 내게 이르시되 네가 병이 없거늘 어찌하여 얼굴에 수심이 있느냐"
기도해보라. 하나님이 일하심을 보게 된다.
5. 느헤미야는 기도하며 비전을 준비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일하심을 통해 일사천리로 일이 진행되어질 때, 그 순간 순간 자신의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충분한 지혜가 있었습니다.
5절 "왕에게 아뢰되"
7절 "내가 또 왕에게 아뢰되"
8절 "또 왕의 삼림 감독 아삽에게 조서를 내리사"
기도할 뿐 아니라, 지혜도 필요하다. 느헤미야의 리더십은 준비된 리더십이었다.
6. 비전이 하나님의 일하심을 통해 이루지더라도 어려움은 있기 마련이다.
10절 "호론 사람 산발락과 종이었던 암몬 사람 도비야가 이스라엘 자손을 흥왕하게 하려는 사람이 왔다 함을 듣고 심히 근심하더라"
7. 어려운 상황에서 즉흥적인 행동은 지혜로운 행동이 아닙니다. 성경이 "사흘"을 기다렸다고 말합니다. 이것을 기록한 이유가 있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느헤미야의 시작부터 본문에 이르기까지 느헤미야가 규칙적으로 했던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기억하며, 기도하는 것이었습니다.
11절 "내가 예루살렘에 이르러 머무른 지 사흘 만에"
12절 "내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지 내 마음에 주신 것을 내가 아무에게도 말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서 사흘을 머무르는 동안 느헤미야의 마음에 주신 무엇이 있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8. 사흘이 지나, 몇몇 사람(12절)과 함께 예루살렘 성벽을 시찰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느헤미야은 말하는 태도를 보게 됩니다.
9. 느헤미야는 비전을 품고 나아가는 갈 때, 확신을 가지고 있습니다. 느헤미야는 성벽이 무너져 버리고, 예루살렘이 황폐하고, 성문이 불탔있는(17절) 어려운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의지하며 신뢰함으로 확신을 품고 나아갔다. 2장 곳곳에 이러한 표현은 계속됩니다.
8절 "내 하나님의 선한 손이 나를 도우시므로"
18절 "또 그들에게 하나님의 선한 손이 나를 도우신 일과 왕이 내게 이른 말씀을 전하였더니"
20절 "하늘의 하나님이 우리를 형통하게 하시리니"
10. 느헤미야가 계속해서 강조하고 있는 것은 하나님이 계획하신 일은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를 신뢰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우쳐주고 있습니다.
20절 "하늘의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이 일을 꼭 이뤄 주실 것이다. 생벽 재건은 주의 종인 우리가 할 일이다. 너희는 아무 것도 없고 권리도 없고 역사적 명분도 없다"
11. 느헤미야에게 이런 마음을 가질 수 있는 힘은 어디서 나온 것일까요? 성벽 재건은 내 일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이라는 것이며, 또한 이것은 하나님의 종인 우리가 해야 할 일이고, 우리의 비전이기에 반드시 해야 한다는 사명의식이었습니다.
12. 비전과 기도의 사람의 느헤미야의 예루살렘 성벽 재건을 위한 민족을 향한 사랑이 한 걸음 더 전진하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13. 우리의 인생에 많은 어려운 일들과 고난은 있겠지만, 그러한 것들은 아무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모든 것을 이기셨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위해서,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살아갈 때 우리의 비전은 이루어집니다.
Tuesday, April 10, 2012
느헤미야 1:1-11 <비전과 기도의 사람 느헤미야>
느 1:1-11 <비전과 기도의 사람 느헤미야> 느헤미야의 마음을 가득채운 비전과 기도는 무엇이었는가? 느헤미야의 비전과 기도는 하나님의 대한 생각으로, 조국 이스라엘 대한 생각으로 가득찼다.
1. 느헤미야의 마음을 가득채운 것은 하나님에 대한 생각과 조국 이스라엘 대한 생각이었습니다.
2. 그의 마음을 가득 채운 이 두 가지는 그의 비전과 기도로 다시 불붙듯 일어나게 됩니다.
3. 그러나 느헤미야의 비전과 기도가 이루어지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4. 먼저 상황적으로 어려운 시기입니다. 먼저는, 이스라엘 민족은 포로된 백성이었다. 또한, 오늘 본문이 주전 440년경으로서, 예루살렘 성벽이 142년이나 허물어진 상태로 있었습니다.
5. 포로된 백성들이, 그리고 142년이 지나 버린 오래된 기억들을 일으켜 세우는 일들에 대한 동기부여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6. 우리는 이 때에 포기하기 쉽습니다. '내가 아니어도 다른 사람이 하겠지'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느헤미야는 비전을 품었고 기도하였습니다.
7. 여기서 그럼 느헤미야는 어떤 사람이었는지 살펴보고자 합니다.
8. 그는 포로된 백성이었지만, 실력이 있는 믿음을 가진 자였습니다. 느1장 1절 "아닥사스다 왕 제이십년 기슬르월에 내가 수산 궁에 있는데"
포로로 잡혀간 페르시아에서 아닥사스다 왕의 술 맡은 관원이 되었다. 술 맡은 관원은 왕 가까이에 있는 사람이었다. 왕과 대화하며 당시에 나라 전반의 일을 나누며 여러 자문을 구하고 소식을 전하는 자가 아니면 그 자리에 있을 수 없습니다.
9. 포로로 잡혀 온 사람으로서 실력이 있었기에 느헤미야는 그 자리까지 올라가게 되었습니다.
10.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믿음이 좋아 보이지만 실력이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반대로 실력은 좋아보이지만 믿음이 없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러한 사람은 세상 사람들은 좋아할지 모르지만, 하나님은 결코 그 사람을 좋아하지 않을 뿐더라, 일으켜 세우시지도 않습니다.
11. 느헤미야는 이스라엘에 대한 형편을 들은 후에 울고 수일 동안 슬퍼하며 하나님 앞에 금식하며 기도하였습니다(4절).
12. 기도의 시작은 자복입니다(6절). 자신의 죄를 회개하는 것입니다. 또한 자기 민족인 이스라엘을 위한 회개의 기도도 하였습니다. 이처럼, 우리도 공동체의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서 먼저 공동체의 잘못을 회개하는 기도가 필요합니다.
13. 느헤미야는 자복의 기도를 드린 후, 여기서 멈추지 않습니다. 다시금 말씀앞에 나아갔습니다. 느헤미야는 분명히 알았습니다. 우리가 말씀에 순종할 때 우리는 회복된다(8-9절). "범죄하면 흩어지게 되며, 계명을 지켜 행하면 거거서부터 다시 모아 돌아오게 하십니다"는 고백을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이 말씀앞에 나아가 회복되기를 원했습니다.
14. 앞서 살핀 것처럼 느헤미야의 실력있고 믿음 좋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실력이 남달라 개인적으로 느헤미야는 왕의 술 관원의 자리에 앉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자신이 그 위치에 오른 이유가 있음을 알고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15. 비전은 이처럼 하나님의 계획안에 있는 비전을 품어야 합니다. 개인적 야망과 하나님의 비전은 구별됩니다. 자신의 영달을 위한 야망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획안에서의 비전이 하나님의 비전입니다.
16. 느헤미야는 에스더와 동시대 사람입니다. 에스더을 향한 모르드개의 유명한 고백이 나옵니다. "왕후의 자리를 얻은 것이 이 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알겠느냐"(에스더 4:14). 바벨론 포로 시대의 포로된 백성들이 가지고 있는 동일한 마음입니다.
17. 이 시대 더욱 우리를 향한 마음입니다. 바로 이 때를 위함입니다. 우리가 성공하고, 품은 뜻을 이루었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언약안에, 그리고 하나님의 자녀들의 공동체, 믿음의 공동체, 하나님의 나라를 위함입니다.
느헤미야의 비전이 곧 하나님 언약이 이루어지는 통로가 되었던 것처럼, 우리의 비전과 꿈이, 나아가 비전과 꿈이 이루어짐은 당연히 "이 때를 위함인줄" 알아야 합니다.
18. 느헤미야의 꿈과 비전은 유다와 예루살렘의 형편을 들은 후에, 예루살렘 성벽이 허물어지고 성문들은 불탔다 하는 말을 들은 후에 느헤미아의 비전은 이제 느헤미야의 기도가 되었습니다.
19.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권면합니다.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실력을 갖추기 바랍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믿음이 좋은 사람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꼭 품은 뜻을 이루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우리의 성공과 이룸은 하나님의 언약이 이루어지는 도구가 되어야 함을 기억하기 바랍니다.
20. 하나님은 오늘 믿음 좋고 실력 좋은 사람을 찾으십니다. 여기서 물론 먼저는 믿음입니다.
Saturday, April 7, 2012
Tuesday, March 6, 2012
청.매.묵 겔 30:1-26 <애굽왕의 꺽인 팔과 거기에 붙은 구스의 근심>
1. 요즘 청소년부 남아공 선교관련으로 머리가 아프다. 사실 골치아픈 것이 없지만, 내 마음이 그리되니 마음 씀씀이로 인해 신경이 써진다.
2. 오늘 아침에도 기도에 대한 묵상 내용이지만, 선교를 기획하면서 기도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본다.
3. twitter의 글을 인용하면,
기도는 눈을 감고 하나님께 나의 마음을 아뢰는 것이라면, 진정한 기도의 응답은 눈을 감는 것이 아니라, 눈을 뜨는 것이다. 기도 한 것들을 행함으로 몸소 행할 때 기도가 이루어진다. 기도는 눈을 감는게 아니라, 눈을 뜨는 것이다. -남아공 선교준비하며
4. 하나님의 일을 함에 있어서 두 가지를 묵상해 본다.
5. 첫 번째는 누구를 의지하는냐이다.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느냐? 아니면 주어진 여러가지 문제를 해결하는 것에 집중하느냐? 결국 사람과 환경을 바라보느냐? 바라봄이 결국 의지의 문제로 이어지기 때문에 사람과 환경을 의지하는 것이 된다.
6. 선교를 기획하면서 주신 마음은, 선교는 하나님의 일이라는 것이다. 단 어떤 사람이 가느냐는 사람의 문제일 뿐 하나님의 일과는 무관하다.
우리가 가지 않으면, 그곳에 하나님의 일을 해야 할 사람이 필요하다면, 당연히 우리 말고도 다른 사람을 들어 사용하실 것이다.
7. 이렇게 하니 첫번째 문제에서는 늘 자유롭다. 단 하나 안타까운 것은 우리가 이 귀한 사역에 동참할 때 누릴 수 크나 큰 은혜와 축복을 우리가 아닌 다른 사람이 누릴 수 있다는 것이다.
8. 선교에 동참하는 이들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이 심히 크심을 알기에 놓치고 싶지 않다. 결코 쉬운 길이 아니라 할지라도, 청소년 친구들을 생각하면 더욱 마음이 뜨거워진다.
9. 애굽을 의지한 사람들은 애굽과 함께 근심이 가득한 삶을 살게 된다. 종국에는 망하는 애굽과 함께 팔이 꺽임을 당하고, 칼을 빼앗기게 된다.
10. 하나님을 의지하라. 하나님 편에 서라. 하나님의 일하심에 동참하라. 다른 것을 의지하지 말고, 다른 편에 서지 말고, 하나님의 일하심을 외면하지 말라.
11. 하나님 편에서 일하며, 하나님을 의지할 때 필요한 것은 기도 뿐이다. 기도로 하나님의 마음을 품고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고 하나님의 일하심을 기대하며 힘을 얻는다. 그럴 때 하나님의 의지하는 마음이 절정에 이른다.
12. 그렇다면,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 편에 서기 위해 하는 기도는 과연 무엇인가? 곰곰히 선교를 생각하며 주신 마음은 그렇지 않다. 기도는 눈을 감는 것이 아니라, 눈을 뜨는 것이다.
13. 기도할 때 주신 하나님의 마음을 이제는 믿음으로 행할 차례이다. 하나님이 주신 마음, 뜻, 일하심을 기대하는 열정, 그것을 어디에 쏟을 것인가? 그냥 침묵함으로 기다릴 것인가? 아니다. 하나님의 마음, 뜻, 열정을 품었다면, 품은 그대로 행해야 한다.
14. 이게 바로 기도는 눈을 감는 것이 아니라, 눈을 뜨는 것이라고 말한 이유이다.
15. 오늘도 기도하였다. 간절히 기도하였다. 이 시간 말씀을 묵상하는 시간이 지나면 기도한 것들을 품고 사람을 만나며, 대화하며, 하나님의 일하심을 기대해야 할 부분이 남아있다.
16. 하나님 오늘도 나의 발걸음 가운데 함께 하시고, 담대히 말하게 하시고, 그들의 마음을 움직여 귀한 사역에 함께 하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남아공 선교이야기 계속 ---
2012년 3월 6일. 8시30분.
Twitter에 - 불확실의 고뇌. "고도의 집중력을 요함" 흔들리거나 마음을 빼앗기면 안됨. 오! 주님.
2012년 3월 6일 9시 30분.
저녁 금식이 공식적으로 깨지다. 라면 부셔먹음.
2012년 3월 6일 10시
담임목사님 전화 - 여러 정황상 교회에서 공식적으로 지원하기 힘들다. 자비량으로 가야 한다. 여러 말씀을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여기서 끝내기로 결정함"
2012년 3얼 6일 10시 30분
Twitter에 - 홀가분. 하나님의 뜻이 아니었음이다. 아니 우리가 하나님의 마음을 아직 채워드리지 못함. 우리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 필요했다. 감사. 감사. 감사. 이 시간 마음이 편하다.
한편으로 찐한...무진장 아쉽움이 크다.
2012년 3월 6일 10시 35분
연락할 일만 남았다. 한 분 한 분 감사의 인사를 드리자. 서 선생님. 이 집사님. 락규, 영준이네로. 감사의 전화를 드리자.
우리의 지난 2주간의 시간은 이렇게 흘러갔다.
나의 저녁 금식도 이렇게 끝나다. 이젠 좀 먹어야겠다. 저녁마다 무진장 힘들었다. 육신이 약하니 마음도 약해지더라. 배고프면 뵈는 것이 없다는 말을 전적으로 이해함. 동감함. 먹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무엇을 할꼬. 당근 도와야지.
감사하게 하루를 마치며...
2012년 3월 6일 10시 40분
Twitter에서 - 지못미 선생님(?) 그리고 친구들. ^^ 더 열심히 할께요. 담 번에는 더 잘할께요. ^^
아마도....
더 잘 할 수 있을겁니다. ^^
왜???
주님이 날 사랑하니까.
땡큐 하나님.
지난 2주간 축복하시고 많은 생각을 주심에 감사. 누구보다 지금 행복함.
------------
2절 "너희는 통곡하며 이르기를 슬프다 이 날이여 하라"
3절 "그 날이 가깝도다 여호와의 날이 가깝도다"
6절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애굽을 붙들어 주는 자도 엎드러질 것이요 애굽의 교만한 권세도 낮아질 것이라"
8절 "내가 애굽에 불을 일으키며 그 모든 돕는 자를 멸할 때에 그들이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9절 "염려 없는구스 사람을 두렵게 하리니 애굽의 재앙의 날과 같이 그들에게도 심한 근심이 있으리라"
=> 줄을 잘 서십시오. 구스가 지금 줄을 잘못섰네요. 기회주의자가 되라는 말이 아닙니다.
시편 20편 7절
"어떤 사람은 병거, 어떤 사람은 말을 의지하나 우리는 여호와 우리 하나님의 이름을 자랑하리로다"
20-26절 애굽 왕의 팔을 꺽고 칼을 빼앗아 바벨론 왕에게 넘겨주리가. 바벨론 왕의 팔을 견고하게 하리라.
2. 오늘 아침에도 기도에 대한 묵상 내용이지만, 선교를 기획하면서 기도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본다.
3. twitter의 글을 인용하면,
기도는 눈을 감고 하나님께 나의 마음을 아뢰는 것이라면, 진정한 기도의 응답은 눈을 감는 것이 아니라, 눈을 뜨는 것이다. 기도 한 것들을 행함으로 몸소 행할 때 기도가 이루어진다. 기도는 눈을 감는게 아니라, 눈을 뜨는 것이다. -남아공 선교준비하며
4. 하나님의 일을 함에 있어서 두 가지를 묵상해 본다.
5. 첫 번째는 누구를 의지하는냐이다.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느냐? 아니면 주어진 여러가지 문제를 해결하는 것에 집중하느냐? 결국 사람과 환경을 바라보느냐? 바라봄이 결국 의지의 문제로 이어지기 때문에 사람과 환경을 의지하는 것이 된다.
6. 선교를 기획하면서 주신 마음은, 선교는 하나님의 일이라는 것이다. 단 어떤 사람이 가느냐는 사람의 문제일 뿐 하나님의 일과는 무관하다.
우리가 가지 않으면, 그곳에 하나님의 일을 해야 할 사람이 필요하다면, 당연히 우리 말고도 다른 사람을 들어 사용하실 것이다.
7. 이렇게 하니 첫번째 문제에서는 늘 자유롭다. 단 하나 안타까운 것은 우리가 이 귀한 사역에 동참할 때 누릴 수 크나 큰 은혜와 축복을 우리가 아닌 다른 사람이 누릴 수 있다는 것이다.
8. 선교에 동참하는 이들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이 심히 크심을 알기에 놓치고 싶지 않다. 결코 쉬운 길이 아니라 할지라도, 청소년 친구들을 생각하면 더욱 마음이 뜨거워진다.
9. 애굽을 의지한 사람들은 애굽과 함께 근심이 가득한 삶을 살게 된다. 종국에는 망하는 애굽과 함께 팔이 꺽임을 당하고, 칼을 빼앗기게 된다.
10. 하나님을 의지하라. 하나님 편에 서라. 하나님의 일하심에 동참하라. 다른 것을 의지하지 말고, 다른 편에 서지 말고, 하나님의 일하심을 외면하지 말라.
11. 하나님 편에서 일하며, 하나님을 의지할 때 필요한 것은 기도 뿐이다. 기도로 하나님의 마음을 품고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고 하나님의 일하심을 기대하며 힘을 얻는다. 그럴 때 하나님의 의지하는 마음이 절정에 이른다.
12. 그렇다면,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 편에 서기 위해 하는 기도는 과연 무엇인가? 곰곰히 선교를 생각하며 주신 마음은 그렇지 않다. 기도는 눈을 감는 것이 아니라, 눈을 뜨는 것이다.
13. 기도할 때 주신 하나님의 마음을 이제는 믿음으로 행할 차례이다. 하나님이 주신 마음, 뜻, 일하심을 기대하는 열정, 그것을 어디에 쏟을 것인가? 그냥 침묵함으로 기다릴 것인가? 아니다. 하나님의 마음, 뜻, 열정을 품었다면, 품은 그대로 행해야 한다.
14. 이게 바로 기도는 눈을 감는 것이 아니라, 눈을 뜨는 것이라고 말한 이유이다.
15. 오늘도 기도하였다. 간절히 기도하였다. 이 시간 말씀을 묵상하는 시간이 지나면 기도한 것들을 품고 사람을 만나며, 대화하며, 하나님의 일하심을 기대해야 할 부분이 남아있다.
16. 하나님 오늘도 나의 발걸음 가운데 함께 하시고, 담대히 말하게 하시고, 그들의 마음을 움직여 귀한 사역에 함께 하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남아공 선교이야기 계속 ---
2012년 3월 6일. 8시30분.
Twitter에 - 불확실의 고뇌. "고도의 집중력을 요함" 흔들리거나 마음을 빼앗기면 안됨. 오! 주님.
2012년 3월 6일 9시 30분.
저녁 금식이 공식적으로 깨지다. 라면 부셔먹음.
2012년 3월 6일 10시
담임목사님 전화 - 여러 정황상 교회에서 공식적으로 지원하기 힘들다. 자비량으로 가야 한다. 여러 말씀을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여기서 끝내기로 결정함"
2012년 3얼 6일 10시 30분
Twitter에 - 홀가분. 하나님의 뜻이 아니었음이다. 아니 우리가 하나님의 마음을 아직 채워드리지 못함. 우리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 필요했다. 감사. 감사. 감사. 이 시간 마음이 편하다.
한편으로 찐한...무진장 아쉽움이 크다.
2012년 3월 6일 10시 35분
연락할 일만 남았다. 한 분 한 분 감사의 인사를 드리자. 서 선생님. 이 집사님. 락규, 영준이네로. 감사의 전화를 드리자.
우리의 지난 2주간의 시간은 이렇게 흘러갔다.
나의 저녁 금식도 이렇게 끝나다. 이젠 좀 먹어야겠다. 저녁마다 무진장 힘들었다. 육신이 약하니 마음도 약해지더라. 배고프면 뵈는 것이 없다는 말을 전적으로 이해함. 동감함. 먹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무엇을 할꼬. 당근 도와야지.
감사하게 하루를 마치며...
2012년 3월 6일 10시 40분
Twitter에서 - 지못미 선생님(?) 그리고 친구들. ^^ 더 열심히 할께요. 담 번에는 더 잘할께요. ^^
아마도....
더 잘 할 수 있을겁니다. ^^
왜???
주님이 날 사랑하니까.
땡큐 하나님.
지난 2주간 축복하시고 많은 생각을 주심에 감사. 누구보다 지금 행복함.
------------
2절 "너희는 통곡하며 이르기를 슬프다 이 날이여 하라"
3절 "그 날이 가깝도다 여호와의 날이 가깝도다"
6절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애굽을 붙들어 주는 자도 엎드러질 것이요 애굽의 교만한 권세도 낮아질 것이라"
8절 "내가 애굽에 불을 일으키며 그 모든 돕는 자를 멸할 때에 그들이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9절 "염려 없는구스 사람을 두렵게 하리니 애굽의 재앙의 날과 같이 그들에게도 심한 근심이 있으리라"
=> 줄을 잘 서십시오. 구스가 지금 줄을 잘못섰네요. 기회주의자가 되라는 말이 아닙니다.
시편 20편 7절
"어떤 사람은 병거, 어떤 사람은 말을 의지하나 우리는 여호와 우리 하나님의 이름을 자랑하리로다"
20-26절 애굽 왕의 팔을 꺽고 칼을 빼앗아 바벨론 왕에게 넘겨주리가. 바벨론 왕의 팔을 견고하게 하리라.
Monday, December 26, 2011
일상기도 - 시 132:2 <기도가 나를 고요하고 평온함으로€
"실로 내가 내 영혼으로 고요하고 평온하게 하기를 젖 뗀 아이가 그의 어머니 품에 있음 같게 하였나니"
일상기도 p56.
당신의 마음이 아무리 피폐하고 아무리 은혜를 달라고 부르짖어야 한다 해도 부끄러워하지 말라.
그냥 기도를 시작하라.
Friday, December 23, 2011
“생각하고 또 생각하고, 기도하고 또 기도하면 보입니다”
“생각하고 또 생각하고, 기도하고 또 기도하면 보입니다”
사랑하면 창의적으로 돼요. 머리가 좋다거나 창의적인 능력도 중요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자꾸 생각하는 일이지요.
제가 잘 하는 게 있는데요, 목회에 대해 자꾸 생각하는 겁니다. 저는 교회에 대해서 다른 사람들보다 아마 열 배는 더 생각할 거에요. 한 번 생각하면 잘 안 되지만, 밤새도록 생각하면 뭔가 나와요.
그러니까 그런 부분에서 저는 어디서도 자신 있게 얘기를 합니다. 저만큼 온누리교회를 생각하는 성도가 있다면, 그 사람은 바로 담임목사예요. 아마 저만큼 온누리교회를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거예요. 저는 그런 자신감을 갖고 있어요.
생각을 굉장히 많이 해요. 생각하고 또 생각하고, 기도하고 또 기도합니다. 한 번 보면 안 보여도 열 번 보면 보입니다. 글도 한 번 읽으면 안 보이지만, 열 번 읽으면 안 보이던 게 보여요.
설교도 마찬가지예요. 본문을 뚫어지게 보고 있으면 결국 보게 돼요. 그런데 사람들이 거기까지 가지 않아요. 그리고 자신이 갖고 있는 주석이나 지식으로 얼른 타협해 버립니다.
예를 들면, 저는 설교하려면 일주일 내내 생각하거든요. 잠자면서도 계속 생각합니다. 어떤 때는 잠을 자면서도 막 설교를 해요. 그러다 마지막에 정리하는 거예요.
이와 같이 사랑을 하면 보여요. 그 사람을 사랑하면 그 사람에게 필요한 뭔가를 볼 수 있어요. 생각을 많이 하면 볼 수 있어요.
저는 다른 사람들보다 탁월하다는 생각을 별로 하지 않아요. 그런데 정상에 올라 있는 사람들은 모두 똑같아요. 탁구를 하든, 축구를 하든, 바이올린을 하든, 미술을 하든, 무엇을 하든 간에 일정 수준에 올라가 있는 사람들은 보는 세계가 달라요.
보이니까 그려내고, 들리니까 작곡하는 거죠. 쥐어짜서는 안 나와요. 사진도 마찬가지일 거예요. 앵글이 보이니까 찍는 거지, 보이지 않으면 셔터를 눌러봐야 아무 소용이 없거든요. 보일 때 찍어야죠. 설교도 그렇고요.
몰입하기 위한 좋은 환경을 만드는 것 요소 중 하나는 환경이다.
1장 Work Hard에서 Think Hard로 ‘생각’을 이동하라
천재적 과학자들의 연구 태도나 방법을 보면 탁월한 지적 재능보다는 주어진 문제를 풀려고 혼신의 노력을 기울인 몰입적 사고가 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과학문화연구소 이인식 소장은 <조선일보>에 연재중인 칼럼 ‘멋진 과학’을 통해 천재와 범인의 차이점을 명료하게 설명한 바 있다.
“천재의 수수께끼에 도전한 인지과학자들은 천재나 범인, 모두 문제 해결 방식이 동일한 과정을 밟는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다시 말해 천재와 보통 사람 사이의 지적 능력 차이는 질보다는 양의 문제라는 것이다”
자유롭고 자연스로운 흐름, 몰입
몰입 이론의 창시자라 할 수 있는 마하이 칙센트미하이는 몰입을 ‘플로우’(flow)라고 명명했다. 삶이 고조되는 순간, 마치 자유롭게 하늘을 날아가는 듯한 느낌이나 물 흐리는 것처럼 편안하고 자연스럽게 행동이 나오는 상태에서 몰입이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칙센트미하이는 “몰입은 의식이 경험으로 꽉 차있는 상태이다. 이때 각각의 경험은 서로의 조화를 이룬다. 느끼는 것, 바라는 것, 생각하는 것이 하나로 어우러지는 것이다”라고 말한다.
몰입 상태에 이르기 위한 길 찾기
칙센트미하이는 삶을 훌륭하게 가꾸어주는 것은 행복감이 아니라 깊이 빠져드는 몰입이라고 단언하며, 몰입에 뒤이어 오는 행복감은 스스로의 힘으로 만들어낸 것이어서 우리의 의식을 그만큼 고양시킨다고 했다. 몰입에 의하여 일과 놀이가 하나로 어우러지는 것이 바람직하고 건강한 삶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순간’이 아니라 ‘오래’ 몰입하는 것이 중요하다.
칙센트미하이는 몰입을 쉽게 하기 위해서는 첫째, 목표가 명확해야 하고 둘째, 일의 난이도가 적절하고 셋째, 결과의 피드백이 빨라야 한다고 했다.
Tuesday, December 13, 2011
한 날 묵상 - 창 30:1-24 <하나님이 라헬의 소원을 들으시고 그녀를 생각하신지라. 하나님의 일하심이 시작되었다>
한 날 묵상 - 창 30:1-24 <하나님이 라헬의 소원을 들으시고 그녀를 생각하신지라. 하나님의 일하심이 시작되었다>
우리가 일할 때 우리는 우리의 한계를 보게 된다.
우리가 기도할 때 하나님의 일하심을 보게 된다.
1-21절 인간이 일할 때의 한계...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자꾸 문제가 꼬이게 하는 것 뿐이다.
화... 싸움... 시기... 질투... 뺏고 뺏앗김...
경쟁에서 이기고자 하는 마음만 가득한 것이 죄 아래 있는 인간의 마음이다. 이 때, 이곳에 하나님은 아니 계신다. 하나님은 어디 계신가? 인간적인 생각아래 경쟁과 이기고자 하는 마음 뿐이다.
야곱과 자녀 이야기
레아(르우벤 시므온 레위 유다) -> 시기. 질투 -> 라헬 -> 빌하(단 납답리-언니와 경쟁하여 이김) -> 실바(갓 아셀- 모든 딸들 위에 기쁜자가 되리라) -> 14-15절 절정. 합환채. 과연 합환체는 무엇인가? 그녀들에게 이것이 왜 이토록 중요한가? 이 때 하나님은 어디 계신가?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하나님께 기도하는 자도 없다. -> 레아(잇사갈 스불론) -> 하나님의 라헬을 생각하신지라(22절) -> 라헬(요셉).
1절 "라헬이 자기가 야곱에게서 아들을 낳지 못함을 보고 그의 언니를 시기하여"
2절 "야곱이 라헬에게 성을 내어 이르되 ...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겠느냐"
=> 야곱의 깊은 내면에 하나님이 어느새 자리잡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분을 내는 상황에서는 그는 하나님과 대화하고 있다.
엡 4:26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고" 문을 내어도 죄를 짓지 않는 방법은 하나님과 대화하면서 분을 내는 것이다. 쉽지 않고, 믿음의 고수만이 할 수 있다. 그런데 지금 야곱이 믿음의 고수 자리에 와 있다.
벧엘의 하나님이 바로 야곱의 하나님이요.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되셨다.
하나님과 대화한 근거는? 약속의 말씀을 기억하였던 것이다.
창28:14-15 "너의 자손이 땅의 티끌처럼 많아 질 것이며, 동서남북 사방으로 퍼질 것이다. ... 내가 너에게 약속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내가 너를 더나지 않겠다"
3절 인간이란? "빌하"
이렇게라도 하고 싶어한다. 그런데, 이렇게 해서는 안된다.
이 둘의 차이를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 극복해야만 한다면, 어떻게 이겨야 할까?
- 라헬도 그랬다. 우리도 너무 자책하지 말자. 누구다 예외일 수 있다. 그렇기에 더욱 조심해야 한다. 더 한 걸음이 중요하다.
6절 "하나님이 내 억울함을 푸시려 내 호소를 들으사"
한편으로 그렇지만, 한 편으로 그렇지 않다.
생명은 여호와께 있기 때문에 맞다. 그러나?
"단" 그는 누구인가? 단지파에 내린 축복은 무엇인가?
9절 "실바" 악은 반복되어진다.
좋아 보여 따라가는게 인간이다. 좋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Hye Jin Hanhttps://www.facebook.com/profile.php?id=100001568072855
[스스로도 속을 수 있다]
이사야와 예레미야 선지자가 활동할 당시, 백성들은 물론 종교 지도자들까지 우상숭배에 젖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정작 본인들은 우상숭배를 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으며 하나님을 잘 섬기고 있다고 여겼습니다. 종교생활은 잘 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시대의 문제는 오늘날에도 동일합니다. 역사는 되풀이 됩니다. 맘몬신과 물질주의와 자아(포스트모던)의 우상을 섬기고 있지만 정작 본인은 하나님을 잘 섬기고 있다고 여길 수가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종교에 속지 않으시는 분입니다.
14절 "밀 거둘 때 르우벤이 나가서 들에서 합한채를 얻어 ... "
15절 "레아가 그에게 이르되 네가 내 남편을 빼앗은 것이 작은 일이냐 ... 합한채도 빼앗고자 하느냐"
22-24절 우리가 기도할 때 하나님이 일하신다.
22절 "하나님이 라헬을 생각하신지라 하나님이 그의 소원을 들으시고 그의 태를 여셨으므로"
23절 내 부끄러움을 씻을 수 있는 한 분 여호와 "내 부끄러움을 씻으셨다"
우리가 일할 때 우리는 우리의 한계를 보게 된다.
우리가 기도할 때 하나님의 일하심을 보게 된다.
1-21절 인간이 일할 때의 한계...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자꾸 문제가 꼬이게 하는 것 뿐이다.
화... 싸움... 시기... 질투... 뺏고 뺏앗김...
경쟁에서 이기고자 하는 마음만 가득한 것이 죄 아래 있는 인간의 마음이다. 이 때, 이곳에 하나님은 아니 계신다. 하나님은 어디 계신가? 인간적인 생각아래 경쟁과 이기고자 하는 마음 뿐이다.
야곱과 자녀 이야기
레아(르우벤 시므온 레위 유다) -> 시기. 질투 -> 라헬 -> 빌하(단 납답리-언니와 경쟁하여 이김) -> 실바(갓 아셀- 모든 딸들 위에 기쁜자가 되리라) -> 14-15절 절정. 합환채. 과연 합환체는 무엇인가? 그녀들에게 이것이 왜 이토록 중요한가? 이 때 하나님은 어디 계신가?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하나님께 기도하는 자도 없다. -> 레아(잇사갈 스불론) -> 하나님의 라헬을 생각하신지라(22절) -> 라헬(요셉).
1절 "라헬이 자기가 야곱에게서 아들을 낳지 못함을 보고 그의 언니를 시기하여"
2절 "야곱이 라헬에게 성을 내어 이르되 ...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겠느냐"
=> 야곱의 깊은 내면에 하나님이 어느새 자리잡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분을 내는 상황에서는 그는 하나님과 대화하고 있다.
엡 4:26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고" 문을 내어도 죄를 짓지 않는 방법은 하나님과 대화하면서 분을 내는 것이다. 쉽지 않고, 믿음의 고수만이 할 수 있다. 그런데 지금 야곱이 믿음의 고수 자리에 와 있다.
벧엘의 하나님이 바로 야곱의 하나님이요.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되셨다.
하나님과 대화한 근거는? 약속의 말씀을 기억하였던 것이다.
창28:14-15 "너의 자손이 땅의 티끌처럼 많아 질 것이며, 동서남북 사방으로 퍼질 것이다. ... 내가 너에게 약속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내가 너를 더나지 않겠다"
3절 인간이란? "빌하"
이렇게라도 하고 싶어한다. 그런데, 이렇게 해서는 안된다.
이 둘의 차이를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 극복해야만 한다면, 어떻게 이겨야 할까?
- 라헬도 그랬다. 우리도 너무 자책하지 말자. 누구다 예외일 수 있다. 그렇기에 더욱 조심해야 한다. 더 한 걸음이 중요하다.
6절 "하나님이 내 억울함을 푸시려 내 호소를 들으사"
한편으로 그렇지만, 한 편으로 그렇지 않다.
생명은 여호와께 있기 때문에 맞다. 그러나?
"단" 그는 누구인가? 단지파에 내린 축복은 무엇인가?
9절 "실바" 악은 반복되어진다.
좋아 보여 따라가는게 인간이다. 좋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Hye Jin Hanhttps://www.facebook.com/profile.php?id=100001568072855
[스스로도 속을 수 있다]
이사야와 예레미야 선지자가 활동할 당시, 백성들은 물론 종교 지도자들까지 우상숭배에 젖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정작 본인들은 우상숭배를 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으며 하나님을 잘 섬기고 있다고 여겼습니다. 종교생활은 잘 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시대의 문제는 오늘날에도 동일합니다. 역사는 되풀이 됩니다. 맘몬신과 물질주의와 자아(포스트모던)의 우상을 섬기고 있지만 정작 본인은 하나님을 잘 섬기고 있다고 여길 수가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종교에 속지 않으시는 분입니다.
14절 "밀 거둘 때 르우벤이 나가서 들에서 합한채를 얻어 ... "
15절 "레아가 그에게 이르되 네가 내 남편을 빼앗은 것이 작은 일이냐 ... 합한채도 빼앗고자 하느냐"
22-24절 우리가 기도할 때 하나님이 일하신다.
22절 "하나님이 라헬을 생각하신지라 하나님이 그의 소원을 들으시고 그의 태를 여셨으므로"
23절 내 부끄러움을 씻을 수 있는 한 분 여호와 "내 부끄러움을 씻으셨다"
Friday, August 12, 2011
기도할 시간 - 무명
어느 날은 아침 일찍 일어나
정신없이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할 일이 태산 같아
기도할 시간이 없었습니다.
사사건건 문제가 생기고
일마다 첩첩산중입니다.
"하나님, 왜 안 도와주십니까?"라고 묻자
하나님은 "왜 도와달라고 하지 않느냐?"라고 하셨습니다.
아무 낙도 보람도 없이
암울한 하루가 갑니다.
"왜 주님은 제게 나타나시지 않습니까?"라고 묻자
하나님은 "왜 네가 찾은 적도 없지 않으냐?"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 들어가려고
열쇠를 죄다 꺼내 잠긴 문구멍에 꽂아봅니다.
그때 하나님은 부드럽고 다정하게 저를 나무라십니다.
"얘야, 문을 두드려보지 않으련?"
오늘 아침에는 일찍 일어나
하루를 시작하기 전에 잠시 멈추어 섭니다.
할 일이 태산 같지만
기도할 ㅎ시간을 내야겠습니다. 아멘.
- 일상의 깃든 하나님의 손길....
정신없이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할 일이 태산 같아
기도할 시간이 없었습니다.
사사건건 문제가 생기고
일마다 첩첩산중입니다.
"하나님, 왜 안 도와주십니까?"라고 묻자
하나님은 "왜 도와달라고 하지 않느냐?"라고 하셨습니다.
아무 낙도 보람도 없이
암울한 하루가 갑니다.
"왜 주님은 제게 나타나시지 않습니까?"라고 묻자
하나님은 "왜 네가 찾은 적도 없지 않으냐?"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 들어가려고
열쇠를 죄다 꺼내 잠긴 문구멍에 꽂아봅니다.
그때 하나님은 부드럽고 다정하게 저를 나무라십니다.
"얘야, 문을 두드려보지 않으련?"
오늘 아침에는 일찍 일어나
하루를 시작하기 전에 잠시 멈추어 섭니다.
할 일이 태산 같지만
기도할 ㅎ시간을 내야겠습니다. 아멘.
- 일상의 깃든 하나님의 손길....
Tuesday, July 19, 2011
"쉬지 말고 기도하라"
기도는 방법이 아니다. 대화다. 우리가 기도를 방법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어렵다.
어린아이의 옹알이부터 노인의 어눌함이 있는 말까지 모든 것이 기도다.
너무 아파서 말도 할 수 없어 신음소리 그게 바로 진짜 기도인 것이다.
가장 잘하는 기도는 매 순간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실까?"하는 질문으로 시작하는 기도이다.
항상 쉬지 않고 영적 호흡이 있는 생기 있는 삶 살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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