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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uesday, May 14, 2013

죄의 고백은 ...

목적을 이끄는 삶을 위한 매일의 묵상

죄의 고백은 몸을 건강하게 해준다
“내가 입을 다물고 죄를 고백하지 않았을 때에는, 온종일 끊임없는 신음으로 내 뼈가 녹아 내렸습니다.” (시 32:3, 새번역)
죄를 고백하는 것은 건강에 좋다. 심리학자라면 누구나 동의할 것이다. 이는 양심을 정화시키고 가슴에 응어리진 것을 털어내는 데 도움이 된다. 우리 몸은 그것을 간직하도록 되어 있지 않다. 죄를 내면에 품고 있는 것은 마치 소다 캔을 뚜껑을 닫은 채로 흔드는 것과 같아서, 마침내는 폭발하게 된다.
시 32:3-5에서 다윗은 이것을 이렇게 표현했다. “내가 입을 다물고 죄를 고백하지 않았을 때에는, 온종일 끊임없는 신음으로 내 뼈가 녹아 내렸습니다. … 나의 혀가 여름 가뭄에 풀 마르듯 말라 버렸습니다. 드디어 나는 내 죄를 주님께 아뢰며 내 잘못을 덮어두지 않고 털어놓았습니다. … 주님께서는 나의 죄악을 기꺼이 용서하셨습니다.” (새번역)
다윗이 자신의 죄를 내면으로 들이자, 그것은 신체적으로 영향을 주었다. 당신이 하나님과의 문제, 죄, 쓴 마음 등을 내어놓지 않으면, 당신의 몸이 그것들을 감당하게 될 것이다.
의사들은 자신이 다른 사람에게 지었던 것, 또는 다른 사람들이 자신에게 행했던 것에 대한 죄나 원한을 지우는 방법을 안다면 많은 사람들이 병원을 떠날 것이라고 말한다.
다음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보자.
  • 오늘 기도 중에 하나님께서 당신이 다른 이들에게 범한 죄를 용서해주시기를 구하는 시간을 잠시 가져보라.
  • 그런 다음 당신에게 상처를 주었던 사람들에 대해 당신이 갖고 있는 모든 원망과 쓴 마음에 대해 기도하라. 이 사람들을 용서함으로써 더 나은 건강을 얻을 수 있게 해주시기를 구하라.
죄의 고백은 변화를 이끌어낸다
“그 사람이 그에게 이르되 네 이름이 무엇이냐 그가 이르되 야곱이니이다” (창 32:27)
하나님은 우리의 주목을 끌기 위해 위기를 허락하신다. 그리고 그 위기를 사용하여 우리의 성품을 계발하신다. 우리가 변화되고 있는 신호 중 하나는 우리 자신이 문제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다. 남 탓하기를 그치고 “제가 제 인생의 문제입니다.”라고 고백하는 것이다. 이것을 이해하기 전까지는 인생에서 큰 변화가 일어날 수 없다. 하나님은 이것이 우리에게 필요한 돌파구임을 아신다.
하나님은 야곱에게 “네 이름이 무엇이냐?”라고 물으셨다. 이는 매우 이상한 질문이다. 분명 하나님은 야곱의 이름을 이미 알고 계셨기 때문이다. 여기서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고대 문화에서는 이름을 늘 그 성격에 따라 짓는다는 것이다. 이름이 그 사람됨을 나타낸다. 이름들은 ‘키 크다’, ‘키 작다’, 또는 ‘용감하다’, ‘게으르다’ 등등이 될 수 있었다. 이름은 그 사람에 대한 꼬리표였다. 그저 듣기 좋게 지은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성격이 나타나도록 지어졌다.
여기에 문제가 있었다. ‘야곱’은 ‘사기꾼, 속이는 자, 거짓말쟁이’라는 뜻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야곱은 그 이름대로 살았다! 야곱이 “제 이름은 야곱입니다.”라고 말한 것은 고백의 행위였다. 그는 “저는 속이는 자입니다.”라고 인정한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한 가지 통찰을 얻을 수 있다. 솔직하고 정직하게, 그리고 진정으로 자기 죄와 결점과 잘못과 약점과 성격상의 결함을 인정하고 자기 자신과 하나님과 다른 사람들에게 이것을 고백하기 전까지는, 우리는 결코 변화할 수 없다.
다음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보자.
  • 당신은 자기 자신에 대해 무엇을 인정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 당신은 누구에게 당신의 죄나 결점을 인정해야 하는가?

Thursday, March 14, 2013

한 날 묵상 - 막 1:14-15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한 날 묵상 - 막 1:14-15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1. 예수님의 가르침? 선포? 이는 상당히 단순합니다. 특별히 어려울 것이 없다는 말입니다.

2. 그런데 우리가 예수님의 가르침, 선포를 받아들이고 따라가는 삶은 단순하지 않다는 걸을 삶에서 알아가게 됩니다.

3. 왜 이러한 차이가 발생하는 것일까?

4. 이는 우리가 예수님의 선포, 가르침을 잘못 받아들였거나 잘못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5. 광야에서 시험을 받으 신 후 예수님의 사역과 가르침이 시작됩니다.

6. 예수님의 가르침의 중심 메시지는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입니다. 

7. 14절에서 세례 요한이 잡힌 후 갈릴리에 오셔서 예수님은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합니다. 그리고 그 메시지가 15절에 기록되어 있는데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입니다. 

8. 예수님은 사역을 시작하면서 "때가 찼다"고 말씀하십니다. 

9. 시간적으로 다 되었는데, 무엇을 위한 시간이 되었다는 의미일까요? 

10. 이는 이사야 61장 1-2절 말씀의 성취입니다.
"주 여호와의 영이 내게 내리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선포하며"
"여호와의 은혜의 해와 우리 하나님의 보복의 날을 선포하여 모든 슬픈 자를 위로하되"

11.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는 앞서 살핀 막 1장 9-11절 말씀을 통해 성취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12. 예수님의 감당하셔야 할 사역은 이제 분명해 졌습니다.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선포하며"
 "여호와의 은혜의 해와 우리 하나님의 보복의 날을 선포하여 모든 슬픈 자를 위로하되"

13. 하나님 나라은 바로 이런 나라입니다. 가난한 자가 아름다운 소식을 듣게 되며, 마음이 상한 자가 고침을 받게 되며 포로된 자가 자유를 얻게 됩니다. 갇힌 자들은 놓임을 받게 됩니다. 모든 슬픈자가 위로를 받게 됩니다. 

14. 하나님 나라는 이런 나라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을 나라를 이루시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사역을 통해 하나님 나라가 이제 시작되었습니다.

15. 예수님이 전하는 복음에 말씀을 듣는 자들은 반응을 해야 한다. 

16. 하나님 나라에 들어와 참 평안와 위로를 누리기 위해서 위해서 회개하며 복음을 믿어야 합니다. 

17. 그렇다면, 회개하며 복음을 믿는 의미는 무엇일까요?

18.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회개는 주님께 되돌아가는 인생(아버지를 떠난 아들이 아버지께 돌아가는 것처럼, 아버지 품으로 돌아가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19. 되돌아가야 회개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생각하는 회개는 여기까지 있지만, 예수님의 회개의 가르침은 그렇지 않습니다. 

20. 되돌아와서 해야 할 일이 있는데 이를 잘 감당함으로서 온전한 회개가 이루어진 것이 됩니다.

21. 예수님의 가르침에 우리의 이해가 이 부분까지 가지 못해서 우리 스스로 생각하기에 믿음의 삶이 복잡하다고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22. 결국 우리가 예수님의 가르침을 바르게 이해하면서 우리의 삶으로 하나님 나라를 위해 온전히 감당해야 할 그리스도인으로서의 몫이 있다는 것을 이해할 뿐 아니라, 그 일을 잘 순종하려고 할 때 우리는 예수님이 선포하신 단순한 삶을 이해하게 됩니다.

23. 예수님이 선포하신 복음의 핵심은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말씀을 바로 이해할 필요가 있는데..

24. 하나님께 돌아가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를 누릴 뿐 아니라, 하나님 아버지가 꿈꾸는 나라를 위해 우리가 감당해야 할 몫(내가 누리는 은혜를 모든 이들이 함께 누리는 일에 대한 부르심)이 있음을 기억하고 매일의 삶에서 잘 감당하는 것이 내가 이 땅에서 살아가야 할 삶이다는 것을 분명히 인식하게 될 때, 우리의 삶은 이 목표와 방향앞에 아주 단순한 삶이 되게 됩니다. 

25. 예수님은 이 일을 위해서 사람을 부르시고 계십니다. 우리는 진정으로 회개하고 복음을 믿음을 통해 제자가 되어야 합니다. 

26. 오늘 한 날도 예수님이 선포하신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는 가르침에 순종하는 삶이 오늘 하루를 살아가는 나의 가장 단순한 삶임을 기억하고 삶으로 순종해가는 한 날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27. 한 날의 삶이 올바른 회개의 삶이 되기를 소망하며....

===
14절 "요한이 잡힌 후에 예수께서 갈릴리에 오셔서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여"
15절 "이르시되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시더라"


15절 "때까 찼고"
=> 이사야 61장 1-2절의 성취
"주 여호와의 영이 내게 내리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선포하며"
"여호와의 은혜의 해와 우리 하나님의 보복의 날을 선포하여 모든 슬픈 자를 위로하되"


===
* 이방에 빛을 4장 예수님이 선교적 사명을 감당할 종말론적 백성을 모으시다
p178-181.
 예수님은 그분의 청중에게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고 촉구한다. 이에 응답한 이들은 하나님의 종말론적 백성이라는 신분에 들어간다. 현대 사회에서 믿음의 개념은 계몽주의에 의해 형성되었다. 그래서 우리는 자주 믿음을 단지 지적인 동의라고 생각하고, 회개에 대한 이해는 우리의 죄에 대한 유감을 뜻하는 것으로 개인화시켜 왔다. 따라서 우리가 예수님의 본래 명령을 참으로 이해하려면, 우리는 그분의 상황 속에서 그 명령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회개하라는 요청은 구약의 배경, 특히 하나님께로 되돌아오라는 언어를 배경으로 삼는다. 신명기 저자는 마지막 날에 "너와 네 자손이 네 하나님 여호와께 돌아와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한 것을 온전히 따라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여호와의 말씀을 청종하며"(신30:2) 이스라엘이 번영하게 될 것이라고 약속한다. 이 약속은 이스라엘의 심판 뒤에 오는 것이다(신29:29).
 회복은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께 돌아와서 그분의 선교를 위해 섬기고 그분을 온 마음으로 사랑할 때만 이루어질 것이라고 약속된다. 

 이스라엘 백성은 그들의 우상숭배적인 길을 떠나서 
 온 마음을 다해 여호와께 돌아오고
 그분의 길을 걸어가겠다고 헌신함으로써
 예수님의 초청에 응답해야 한다.

예수님의 회개하라는 요청에서 발견되는 참으로 놀라운 사실은, 그분은 사람들에게 예수님 자신에게 완전한 충성을 바침으로써 하나님께로 돌아오라고 요구하신다는 점이다. 이러한 방식으로 예수님께 헌신하는 것은 회개와 함께 "이스라엘의 신이 예수님 자신의 사역에서 결정적으로 행동하고 계신다는 믿음을 요구한다"

따라서 하나님 나라의 선포는 단순히 정보를 전달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급진적이고 철저한 결심"을 요구한다. 회개하고 믿으라는 요청은 어떤 사람이 자신의 삶 전체를 예수님께 드리고, 자신의 집과 가족을 포기하고, 하나님 나라를 위해 다른 모든 의무를 제쳐 놓을 것을 요구한다(눅 9:57-62). 그는 다른 어떤 사람보다, 심지어 가족보다 예수님을 더 사랑해야 한다(마 10:34-39). 다른 모든 충성, 헌신, 관계, 의무는 매우 귀 중한 보화와 진주, 곧 예수님 안에 나타난 하나님 나라를 얻기 위해 포기해야만 한다(마13:44-46). 

 복음서와 1세기 유대교 안에 나타난 제자도 개념의 차이는 이러한 부르심이 얼마나 근원적으로 제자들을 예수님의 인격과 결함시키는지 보여준다. 
 데이비드 보쉬David Bosch는 제자도에 대한 두 가지 개념을 잘 비교하여 보여준다.

 유대교에서 율법 혹은 토라는 랍비와 제자 관계의 중심에 서 있다. 랍비의 권위는 토라에 관한 그의 지식에 근거한다. 다시 말해 그는 율법의 자리를 차지하고 최고의 충성을 그의 인격과 사명에 바치도록 요구한다. 게다가 유대교에서 제자도는 단지 랍비와 같이 되는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 랍비의 제자가 토라를 배우고 익힐 때, 그는 그 자신이 선생이 될 순간을 바라보며 노력한다.

 그러나 예수님의 제자는 결코 랍비가 되는 일을 "마칠 수" 없을 것이다. 그는 언제나 예수님의 추정자이지 자제자로 남아 있다. 게다가 유대교에서 랍비의 제자들이 단지 학생에 불과하다. 그러나 예수님의 제자들은 그분의 종으로서 그분의 위대한 가르침과 통찰로부터 지적인 혜택을 입을 뿐만 아니라 그분의 권위에 복종하고 그분을 그들의 여호와로 섬긴다. 

 주목할 점은 유대인을 위해 쓰여진 마태복음에서, 예수님의 적들이 그분을 향해 "랍비"와 "선생"으로 불렀지만, 그분의 제자들은 그분을 "주님"이라고 불렀다는 것이다(다만 유다는 예수님을 배신 할 때 "랍비"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마 26:25, 28을 보라). 

 마지막으로 유대교의 가르침은 제자도의 목적이 예수님의 것과 다르다. 유대교에서 제자는 충실하게 랍비의 가르침을 따라 살아가야 한다. 하지만 예수님의 제자들은 그분과 함께 있어야 하고 그분의 하나님 나라 선교에 참여해야 하며, 그분을 증거해야 한다. -그분이 누구이고 그분이 성취하신 일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말이다(막3:14-15)

 마가복음 3:14-15절
 "이에 열둘을 세우셨으니 이는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고 또 보내서 전도도 하며 귀신을 내쫓는 권능도 가지게 하려 하심이러라"

그들은 단순히 배우는 공동체가 아니고, 하나님의 마지막 때에 예수님의 회집하시는 선교에 헌신적으로 참여하는 메시아적 백성의 선구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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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ursday, July 12, 2012

한 날 묵상 - 겔33장 10-20절 <하나님은 결코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우리는 마지날까지 끝까지 견뎌야 합니다>

한 날 묵상 - 겔33장 10-20절 <하나님은 결코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우리는 마지날까지 끝까지 견뎌야 합니다>

1. 요즘 사람들을 보면 쉽게 포기하고, 끝까지 견디지 못하는 사람을 보게 됩니다.

2. 축구 선수 이영표 선수와 만남을 여러 번 했습니다. 특별히 2012년 청소년부 수련회와 밴쿠버 유스 코스타에 오셔서 귀한 나눔을 해주셨습니다.

3. 그 때 이영표 선수가 했던 이야기가 기억에 납니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견디었더니, 나보다 재능이 많은 선수들이 중간에 하나 둘 포기하고 나만 남았다. 그래서 내가 국가대표 선수가 되었다"라는 말입니다.

4. 물론, 겸손에서 우러 나오는 말이었지만, 깊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요즘 시대 젊은 사람들에게 끈기가 없는 것은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5. 노력보다 값지 열매는 없는 것 같습니다. 끝까지 참고 견디는 자에게만 길이 보입니다.

6. 오늘 본문의 말씀은 참으로 귀한 말씀입니다. "의인의 범죄와 악인의 회개"의 제목에서 보듯이 의인이 범죄하면 심판을 받게 되며, 악인이 회개하면 은혜를 누리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7. 이 본문의 말씀속에서 저는 하나님의 은혜와 인간의 오래참음에 대해서 생각해 볼 수 있었습니다.

8. 하나님은 어떠한 죄인이라도 결코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끝까지 기다리십니다. 은혜를 못누릴 죄인은 아무도 없습니다. 어떠한 추악한 죄를 범했더라도 회개하면 하나님은 은혜를 베풀어 주십니다.
 11절 "나는 악인 죽는 것을 기뻐하지 아니하고 악인이 그의 길에서 돌이켜 떠나 사는 것을 기뻐하노라"
 12절 "악인이 돌이켜 그 악에서 떠나는 날에는 그 악이 그를 엎드려뜨리지 못할 것인즉"

9. 반대로 아무리 의인이라 할지라도 범죄하는 날에는 구원의 은혜를 누리지 못하게 됩니다.
 12절 "의인이 범죄하는 날에는 그 공의가 구원받지 못할 것이요" 
 12절 "의인이 범죄하는 날에는 그 의로 말미암아 살지 못하리라"

10. 궁극적으로 여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회개입니다. 죄인이든, 의인이든, 자신의 죄를 깨닫는 순간 회개해야 합니다. 
 20절 "그러나 너희가 이르기를 주의 길이 바르지 아니하다 하는도다 이스라엘 족속아 나는 너희가 각기 행한대로 심판하리라 하시니라"


11. 의인에게 있어서 옛날의 공의는 결코 중요하지 않습니다. 의인이 죄를 범하면 죄인이 됩니다. 죄인은 죄인일 뿐 옛날의 의인이었을 순간은 현재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합니다. 현재의 순간에 죄인으로서 회개해야 합니다.


12. 벧후 3장 9절을 보면, "주의 약속은 어떤 이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주께서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13. 하나님의 관심은 죄인들에게 있습니다. 결코 우리는 의인일 수 없습니다. 로마서 3장 10절 "기록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14. 그렇습니다. 우리가 죄인이기에 살아갈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의인이라면 결코 하나님의 은혜를 누릴 수 없습니다. 죄인이기에 오늘도 하나님의 은혜의 품안에 거할 수 있습니다.


15. 오늘 한 날도 하나님의 은혜를 충만히 누리는 삶이 되기를 원합니다. 

Tuesday, December 6, 2011

청.매.묵 - 겔 16:53-63 <회개에 마음의 쉬치심과 부끄러움이 있어야 온전한 회복이 있게됩니다.>

청.매.묵 - 겔 16:53-63 <회개에 마음의 쉬치심과 부끄러움이 있어야 온전한 회복이 있게됩니다.> 여호와는 이스라엘의 회복을 명하시면서, 그들의 죄애 대한 부끄러움과 수치심이 드러날 것을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반드시 회복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위로를 반드시 받게됩니다. 우리의 모든죄는 회복되었습니다. 다시는 부끄러움과 수치를 당할 죄을 가까이 하지 맙시다. 반드시 드러나게 되어있는 죄에 우리의 정결한 몸을 내아드리지 맙시다. 오늘부터라도 나의 몸과 맘을 거룩히 드리는 삶 살기를 기원합니다.

Friday, December 2, 2011

청.매.묵. 에스겔 16:35-52 <드러내시는 하나님>

청.매.묵. 에스겔 16:35-52 <드러내시는 하나님>

35-39절 네가 좋아했던 것들은 너를 배반할 것이다. 너를 결코 지키지 못한다.
 39절 "내가 너를 네 여인들의 손에 넘겨 주겠다. 그러면 그들이 네가 세운 제단들을 헐고, 헛된 신을 섬기던 신당들을 무너뜨릴 것이며, 너를 벌거벗겨 버리고, 네 보물을 빼앗아 갈 것이다"
 -> 우리가 섬기는 우상들도 하나님의 손에 있다. 하나님이 그것들이 행하는 것을 허락했을 때, 그들은 일한다. 하나님께서 이방 왕들을 사용하시어 구별된 백성들을 이끄시는 모습을 보라. 하나님은 세상의 모든 것을 다스리시고, 때를 따라 그것을 사용하신다.
 오늘날, 우리가 섬기는 우상인 재물도 하나님 손에 있다. 물질을 섬기는 세대, 물질이 우상이 되어 버린 세대, 권력에 심취해 있는 권력자들, 그 모든 것들이 하나님이 허락하시지 않으면 결코 내가 취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렇지 못할 때, 하나님은 우리가 섬기는 것들로부터 우리가 당하게 될 것을 말씀하신다. 재물이 우리를 섬키고, 권력이 우리를 삼키고, 우상으로 섬겼던 것들이 배반하여 우리를 칠 것이다.

우리가 무엇 때문에 하나님이 주신 축복을 우상으로 섬기고 만 것인가?
49절 "거만하였다"
50절 "교만했고" "험오스러운 짓들을 저질렀다"
51절 "혐오스런 짓을 더 많이 저질렀다" "네가 저지른 혐오스런 짓 때문에"

51절 "네 언니와 아우는 오히려 착한 사람으로 보일 정도였다"
52절 "너에 비하면 네 언니와 아우가 저지른 죄는 가벼운 심판을 받았다"
 -> 믿음이 사람들이 믿지 않는 사람들보다 더 타락하고 수치스러운 일들을 많이 한다. 거룩한 백성으로 선택받은 이스라엘 백성들인 소돔과 사마리아보다 더 타락하고 악한 죄를 일삼았다. 
 우리 주변에 사람들보다 믿음의 사람들이 더 타락된 죄를 일삼는 모습이 너무 많다. 한국 정치인들, 소위 여론 주도층에 있는 사람들 중에 크리스찬이 참으로 많다. 복이다. 그런데 복을 악으로 갚고 있다. 하나님의 영광을 가린다. 하나님이 주신 복에 감사하지 못하고, 하나님을 배신했다.
 우리가 그렇지 않도록 깨어있자.


다시 일어날 힘을 찾아 나서자! 다시금 하나님께 나아가자!
37절 "그들이 보는 앞에서 네 몸을 벌거벗겨 부끄러움을 당하게 하겠다"
52절 "그러므로 너는 부끄러움을 느껴야 할 것이다"
         "부끄러운 줄 알고 수치를 당함이 마땅하다"
  -> 우리에게 숨겨져 있던 수치스러운 일들을 언제가는 드러나게 되어 있다. 하나님이 때가 되면 다 부끄러운 죄들을 드러내시어 심판하신다.
  -> 회개하고, 만민앞에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일이 스치스러운 일이다. 부끄러운 일이다. 그러나 인정하라. 회개하라. 용서를 구하라. 그래야 회복할 수 있다. 하나님과 함께 일어날 수 있다. 그리고 자중하라. 시간을 가지라. 그  시간은 인내하는 시간이다. 하나님께서 일으켜 주실 때까지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이다. 그때까지 기다리라. 하나님의 일하심을 기다리라.
     잘못을 인정하는 수치와 부끄러움이 우리에게 필요하다. 진정한 사람이라면 그렇게 해야 한다. 수치와 부끄러움을 피해 숨을 때, 더 큰 화가 찾아온다. 하나님과 다시 한 번 맞서는 행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