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왜 에스겔서를 읽는가?
- 에스겔의 이해를 돕기 위한 글들 - NIV 적용주석 "에스겔" 이안 두굿 Iain M. Duguid 지음.
에스겔성의 난해성은 환상들뿐만 아니라 에스겔서가 무질서와 혼동의 수많은 세월을 거치면서 기록되었다는 사실에서도 원인을 찾을 수 있다.
1. 에스겔은 한 가지 위기 상황을 세 가지 다른 국면, 즉 끔직한 외세의 정치권력에 의해 침략당하려고 했을 때, 침략을 당해 타국으로 쫓겨 갔을 때, 그리고 상실한 조국의 회복을 기대할 때로 나누어 이야기했다. 에스겔 선지자는 각 국면마다 분명한 메시지를 드러냈다.
2. 에스겔의 중심 주제
에스겔에게 주어진 임무는 포로가 되어 멀리 바빌론으로 끌려간 유다 백성들에게 예언하는 것이었다. 그들은 절망에 가운데 있는 청중이었으며 왜 그러한 재앙이 그들에게 닥쳤는지, 그들이 개인적으로 겪은 대학살 가운데 하나님은 어디에 게셨는지 질문하고 있다.
그들은 자신들의 상황에 대해 이렇게 평가했다. "우리의 뼈들이 말랐고 우리의 소망이 없어졌으니 우리는 다 멸절되었다"(겔37:11)
자신의 땅을 지킬 수도 없고 또 지키려고 하지도 않는 하나님이 무슨 소용이 있는가?
예루살렘에 있는 자신의 성전을 더럽히도록 놔둔 하나님이 무슨 소용이 있는가?
자신의 백성을 그 선조들에게 약속의 땅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타국으로 끌려가게 하는 하나님이 무슨 소용이 있는가?
비록 그 하나님이 이제 그의 땅을 위해 개입한다 치더라도 포로로 끌려가 멀리 타국에 있는 사람들을 어떻게 도울 수 있겠는가?
1) 에스겔 전체를 뒤덮고 있는 주제는 하나님의 주권과 영광이다.
2) 인간의 철저한 죄성이다.
3) 처음 두 주제에서 발전하는 것으로 피할 수 없는 심판의 도래이다.
에스겔의 전체의 전환점은 예루살렘 멸망의 소식이 전해지는 것에서 시작된다. 그것은 에스겔 24장의 끝에 예기되었던 사건이며, 실제로 33:21-22에서 일어난다.
4) 왕이신 하나님이 돌아오시고 백성들은 땅과 축복을 되찾게 되는 것이다. 새로워진 성전에 대한 에스겔의 환상에서 그 중심은 하나님의 영광이 지극히 높은 곳으로 돌아오는 것이다(겔 43:1-5).
그렇다면, 우리가 에스겔에서 발견하는 주제는 하나님의 영광과 주권, 인간의 죄성, 심판의 확실성, 미래에 대한 자비와 소망의 약속이다.
소망에 대한 더 큰 게시는 그리스도 안에서 드러난다. 에스겔은 우리를 그에게 인도한다. 에스겔이 보았던 성전으로 내려오는 하나님의 영광은, 예수의 인성 안에 도래하였고, 그에 대해 요한은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요1:14)라고 증언하였다.
3. 개관
1) 에스겔의 소명과 임무(1:1-3;27)
2) 멸망의 신탁(4:1-24:27)
3) 열방에 대한 신탁(25:1-32:32)
4) 복음의 신탁(33:1-48:35)
4. 역사적 배경
에스겔서에 나오는 환상들의 시발점은(1:2-3)은 유다 왕 여호야긴의 포로생활 5년차에 바빌론 그발 강가이다. 우리는 에스겔서를 이해하기 위해 이 장소의 신학적 의미를 검토해야 한다. 그러나 현재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역사적 배경에 대한 이해이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어덯게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은 장소에 이르게 되었는가?
그 답변의 일부는 당시 "세속사"의 흐름 가운데서 찾을 수 있다. 주전 신 아시리아인들은 수도를 니느웨로 정하면서 근동지역을 장악했다. 그 제국의 경계는 후퇴와 전진을 거듭하면서 이집트의 지경까지 이르렀다.
주전 841년에 예후와 북 왕국 이스라엘은 조공을 바치게 되었다. 그리고 한 세기가 지난 후에 티그랏-빌에셀 3세와 그의 아들 살만에셀 5세의 지배 아래 아시리아는 북 왕국 이스라엘의 영토를 침입하였고, 마침내 722년에 합병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아시리아 제국의 도처로 추방되었고, 다른 민족들이 그들을 대치하였다(왕하17장)
20년 사이에 아시리아는 산헤립의 통치 아래 예루살렘의 성문들을 다 휩쓸어 버렸으며, 반역의 소지가 있는 히스기야 왕을 "새장 속의 새처럼" 옥죄어 왔다. 그런 중에 히스기야가 살아 남을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주의 사자가 직접 개입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주의 사자가 185,000명의 아시리아 군대를 쳐 죽였던 것이다(왕하 19:35).
동시에 강력한 바빌론의 통치자 므로닥발라단은 봍노의 더욱 인접한 지역에서 산헤립에게 문제를 일으키고 있었다. 므로닥발라단은 히스기야의 배반을 선동하고자 사신을 보냈고, 히스기야는 그들을 대접하면서 왕실의 보호와 무기고를 보여주었다(왕하 20:13). 히스기야는 이전에 아시라아가 쳐들어 왔을 대 그를 구한 것이 재력이나 무기가 아니었다는 사실을 금방 잊어버렸던 것이다.
그 때 선지자 이사야를 하나님은 그의 사신으로 예루살렘에 보냈다. 이사야의 임무는 히스기야의 죄를 깨닫게 하는 것이었다(왕하 20:14-18). 바빌론에게 우호적이었던 히스기야는 머지않은 미래에 바로 그 바빌론인들이 다시 돌아와 궁궐의 보화들을 다 갈취해 갈 거라는 사실을 알아야 했다. 그러나 히스기야는 그 신탁을 선한 소식으로 생각하였다. 아마도 그 신탁이 히스기야가 사는 날만큼은 적어도 태평할 것라는 내용을 담고 있기 때문인 것 같다(왕하 20:19).
사실상 이 시기는 고대 근동의 작은 국가들에게 어려운 때였다. 산헤립이 바빌론 왕조를 주전 689년에 무너뜨리고, 바빌론의 수호신인 마르둑을 떨어뜨린 바빌론의 신성한 도시를 붕괴시켰으나, 아시리아의 세력은 이미 기울고 있었다.
주전 625년경에 이르러 바빌론은 나보폴라살의 지휘 아래 아시리아의 멍에에서 벗어나싿. 그리고 10년이 지난 주전 616년에 나보폴라살은 아시리아의 영토로 행군하여 성읍을 하나 둘씩 점령하기 시작했다. 주전 612년에 니느웨가 함락되었다. 그리고 주전 605년 카르케미시 전투를 기점으로 아시라아-이집트 동맹국은 멸망했다.
유다가 이 사건들에 직접 개인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유다는 이미 사면초가에 놓여 있었다. 공예배 개혁을 주도하던 유다의 마지막 선왕 요시야는 주전 609년에 아시리아를 지원하러 가는 이집트의 군사 원정을 차단하려고 했다. 그의 의도가 무엇이었든지 간에 요시아는 이집트와의 므깃도 전투에서 비극적으로 전사했다.
요시아의 죽음으로 짧았던 유다의 종교개혁은 갑작스런 종국을 맞는다.
그의 왕위는 아들 여호아하스가 계승했다. 3개월 통치기간에 여호아하스는 불행히도 부친의 의로운 길을 따르지 않고 조부인 아몬의 사악한 길을 따랐다. 그 후 이집트의 침입이 있었고 여호아하스는 포로가 되어 이집트로 끌려갔다.
그리고 그 형 엘리아김이 권자에 앉게 되었다(왕하23:34(. 바로 느고는 언약적 종주권을 명시하는 행위로 엘리아김의 이름을 여호아김("주께서 일으키신다")으로 바뀌어싿. 공교롭게도 그 이름은 사악한 왕을 일컫는 정통적인 이름이 되었다. 특히 외세의 세력을 업고 권좌를 차지했던 왕을 일컫게 되었다.
대력 주전 605년 경에 바빌론의 침략이 시작되었다. 이집트는 팔레스타인에서 쫓겨났다.
여호야김은 약삭빠르게 편을 바꾸어 바빌론에 충성을 맹세했다. 바빌론은 귀족 가운데 인질을 취해 바빌론으로 데려갔다. 그 중에 다니엘과 그의 세친구가 포함되었다. 그러나 여호아김은 바빌론과 맺은 조약들을 지키지 않았다. 그 가운데 아마도 엄청난 부담의 조공이 포함되었던 것 같다. 여호아김은 주전 598년 "대표 없는 곳에 과세할 수 없다" No taxation without representation고 외치며 바빌론을 배반하였다.
이 저항은 위대하고 영웅적이었다. 그러나 하나님 보시기에 그의 행동은 사악한 것이었다. 바빌론은 다시 돌아와 그의 반란을 재압했다. 이 과정에서 여호야김은 죽었다.
유다 백성은 그 자리에 그의 아들 여호아긴을 앉혔다. 여호야긴은 하나님이나 느브갓네살이 보기에도 그의 부친보다 나은 것이 없었다. 여호야긴은 예레미야의 조언을 따라 바빌론에 복종하기는는커녕 이집트 원조를 청했다(이것은 구약에서 하나님께 불신할 때 지속적으로 나타나는 대안이다). 그리고 3개월이 채 못 되어 여호야긴은 바빌론에 포로로 끌려가게 되었다.
여호야긴의 유수후에 느브갓네살은 여호야긴의 삼촌 맛디니아를 권좌에 앉히고, 그의 이름을 시드기야로 바꾸었다(왕하 24:17).
시드기야는 왕위에 앉아 있었지만, 신하들이 하는 일에 무지하거나 통제권을 갖지 못하는 빈약한 왕처럼 보인다. 그런 시드기야는 주전 589년에 반란에 동의하였다. 느부삿네살은 만반의 전쟁태세를 갖추고 내려왔다. 그리고 마침내 성벽이 무너졌다. 시드기야가 지켜보는 가운데 느브갓네살은 그의 아들들을 처형했다. 그런 다음 시드기야의 눈을 뽑아 바빌론으로 압송했다.
예루살렘성은 무너지고 불에 탔다. 그리고 그 땅에 남아 있던 거주자들 대부분은 포로로 끌려갔다. 단지 극빈자 중의 극빈자들만이 그곳에 남았다.
이런 격변의 세월이 에스겔서에 있는 예언들의 배경을 형성한다. 에스겔서의 시간적 배경은 예루살렘 멸망 전후로 하여 20년이라는 시간에 걸쳐 있다.
근본적으로 에스겔서 기자는 예루살렘 명망 소식을 듣게 되는 사건의 관점에서, 더 정확하히 말하자면 포로들이 예루살렘 멸망 소식을 듣게 되는 사건을 중심으로 배열하였다(겔24:27에서 예견되었고, 33:21-22에서 실현되었다). 그것은 포로로 있는 선지자와 하나님의 백성 모두에게 전환점이 되었다. 하나님을 배반하는 백성이 걷는 길의 끝은 명료하게 묘사하는 것으로 시작하는 예언(겔1-24장)은 그 길의 끝이 이야기의 끝이 아님을 보여줌으로써 종결된다(겔34-48장). 궁극적으로 하나님 백성의 죄악성과 반역조차 하나님이 베푸시는 은혜를 압도할 수 없다.
5. 바빌론과 아시리아의 포로정책이 미치는 영향
하나님의 섭리 속에서 비빌론과 아시리아는 포로정책에 관한한 매우 다른 정책을 취했다. 아시리아는 분리와 정복 정책을 채택하였다. 아시리아는 제국의 한 지역에서 많은 사람들을 데려다가 작은 무리로 나누어 제국의 여러 지역에 다시 정착시켰다. 아시리아는 기존의 연대감과 동맹관계를 무너뜨림으로써 피정복민들이 반란을 일으키지 못하도록 조직을 파괴하고 그들의 정체성을 혼란시켰다.
반면에 바빌론은 온갖 샐러드를 버무려 놓은 것처럼 다소 약화된 동화정책론 모델을 따랐다. 그들은 피정복국가에서 지도자와 기술자들을 데려다가 제국의 주변에서 중심으로, 곧 바빌론 제국으로 끌어들였다. 그곳에서 그들은 합리적인 대우를 받았고 그들의 종족집단을 따라 정착하였으며 바빌론 체제 안에서 진급하는 것이 허락되었다. 바빌론의 관점에서 볼 때 그 정책의 목적은 피정복민들의 종족적 정체성을 남겨둔 채 그들의 다양한 재능과 능력을 중심권으로 가져옴으로써 다양한 집단들을 병합시켜 제국에 봉사하도록 하는 것이었다.
이스라엘과 유다의 관점에서 보자면 그 결과들은 포로기의 남 왕국과 북 왕국에 각기 다른 운명을 초래하였다. 북 왕국 이스라엘은 분산되고 실제로 붕괴 되었다. 단지 신앙을 가진 개개인들이 미래에 열두 지파가 다시 연합할 것을 꿈꾸면서 디아스포라로 살았을 것이다. 그러나 정치적으로 북 왕국은 종말을 고하고 말았다. 그 땅은 다른 종족 집단들과 혈통이 섞이고, 하나님에 대한 그들의 산앙은 그 땅의 신에 대한 미신적 관점에 지나지 않았다.
반면에 유다는 주전 586년에 멸망한 후에 수많은 사람들이 추방되었지만 신앙을 지킨 사람들에게는 귀환의 가능성만 남아 있었다. 그 가운데 하나가 바빌론의 그발 강가에 정착한 포로들이다. 그 그룹에는 신실한 자와 그렇지 않은 자들이 모두 포함되어 있었다. 에스겔에게 주어진 임무는 그들에게 예언하는 것이었다.
6. 에스겔의 일기
1장 1절 "서른째 해 넷째 달 초닷새 ... 여호야긴 왕이 사로잡힌 지 오 년 그 달 초닷새라"
3장 16절 "칠 일 후에"
8장 1절 "여섯째 해 여섯째 달 초닷새에"
20장 1절 "일곱재 해 다섯째 달 열쨰 날에"
24장 1절 "아홉째 해 열째 달 열째 날에"
26장 1절 "열한째 해 어느 달 초하루에"
29장 1절 "열째 해 열째 달 열두째 날에"
31장 1절 "열한째 해 섯째 달 초하루에"
32장 1절 "열두째 해 열두째 달 초하루에"
32장 17절 "열두째 해 어느 달 열다섯째 날에"
40장 1절 "우리가 사로잡힌 지 스물다섯째 해, 성이 함락 된 후 열넷째 해 첫째 달 열째날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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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ursday, June 14, 2012
Saturday, March 31, 2012
한 날 묵상 - 창47:13-26절 <애굽과 가나안에 큰 흉년이 들었다. 누가 이 때에 이기는 자가 되는가? 요셉이 총리로 애굽를 치리할 때 어떻게 가진 자본을 사용하고 있는지 배워 오늘 우리 시대에 적용하라>
한 날 묵상 - 창47:13-26절 <애굽과 가나안에 큰 흉년이 들었다. 누가 이 때에 이기는 자가 되는가? 요셉이 총리로 애굽를 치리할 때 어떻게 가진 자본을 사용하고 있는지 배워 오늘 우리 시대에 적용하라>
오늘 묵상의 포인트는 두 가지이다.
첫째는 애굽과 가나안 땅의 비교에서 얻는 교훈이다. 땅이 아니라 임재이다.
둘재는 요셉의 치리에서 배우는 교훈이다. 땅을 어떻게 사용하고 있는지를 살펴보자. 오늘날은 땅보다 자본이 옛날의 땅의 의미이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인들은 자본을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를 요셉의 치리에서 배울 수 있게 된다.
13절 "기근이 더욱 심하여 사방에 먹을 것이 없고"
"애굽 땅과 가나안 땅이 기근으로 황폐하니"
14절 "요셉이 곡식을 팔아"
"애굽 땅과 가나안 땅에 있는 돈을 거두어 들이고"
15절 "애굽 당과 가나안 땅에 돈이 떨어진지라"
17절 "그들이 그들의 가축을 끌어온지라"
"그 모든 가축과 바꾸어서 그 해 동안에 먹을 것을 그들에게 주니라"
19절 "우리가 어찌 ... 우리 몸과 우리 토지를 먹을 것을 주고 사소서"
* 애굽과 가나안 땅의 비교(17절 "그들이", 19절 "우리가"도 애굽과 가나안 땅에 사는 사람들임)
둘 중에 어떤 땅이 약속의 땅인가? 야곱 가족이 머물러야 할 땅인가?
1) 공통점
- 기근으로 황폐하여 짐.
- 돈으로 곡식을 사게 됨.
- 돈도 떨어져, 더 이상 곡식을 살 수 없음.
- 가축과 바꾸어 먹을 것을 받음.
- 몸과 토지를 주고 사소서.
2) 다른점
- 애굽에 요셉이 총리로 있었다.
- 돈이 애굽으로 몰림.
3) 애굽과 가나안 땅의 비교에서 무엇을 교훈받게 되는가?
- 땅이 아니라, 하나님의 임재다.
- 성전이 아니라, 하나님들의 사람이 거하는 처소다.
- 하나님의 꿈과 비전을 품고 있는 자는 결코 내일에 대한 염려가 없다.
- 하나님의 말씀을 품은 사람은 여유가 있으며 자신감이 있다.
- 언약궤만을 바라보지 말고, 왜 우리가 언약궤를 바라봐야 하는지를 알라.
(사무엘상 4장 1-18절, 블레셋과의 싸움. 17절 "하나님의 궤는 빼았겼나이다")
- 불기둥과 구름기둥이 있는 곳이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이다.
- 하나님의 말씀이 머물른 곳이 우리의 거처이며, 우리가 머물러야 할 곳이다.
20절 "요셉이 개웁의 모든 토지를 다 사서 바로에게 바치니"
Q. 그럼, 가축은 어떻게 하였는가?
가축은 애굽 사람들이 싫어하였고, 바로의 가축도 야곱의 형제들이 치게 되었음으로, 당연히 야곱의 형제들에게 맡겨졌을 것이다.
* 궁핍과 흉년의 시기에, 먹을 것이 없는 시기에 요셉은 어떻게 하였는가?
현대에 먹을 것이 남아도는 곳과 먹을 것이 없는 사람들이 수 많이 공존하는 시대에 우리는 총리 요셉을 통해서 무엇을 배워야 하는가?
23절 "요셉이 백성에게 이르되 오늘 내가 바로를 위하여 너희 몸과 너희 토지를 샀노라"
"여기 종자가 있으니 너희는 그 땅에 뿌리라"
24절 "추수의 오분의 일을 바로에게 상납하고 오분의 사는 너희가 가져가 토지의 종자로도 삼고 너희의 양식으로도 삼고 너희 가족과 어린 아이의 양식으로도 삼으라"
45장 6절 "이 땅에 이 년 동안 흉년이 들었으나 아직 오년은 밭갈이도 못하고 추수도 못할지라"
=> 야곱 가족은 충분히 양식을 보관하지 않았다. 기근 두번째 해에 벌써 두번씩이나 먹을 사러 애굽 땅으로 왔다.
오늘 본문에서는 아직 몇년이 남은지 구체적으로 알 수는 없다. 다음과 같이 유추해 볼 수 있다.
기근 이년 째 - 돈으로 먹을 것을 사다. 14-15절
기근 삼년 째 - 가축으로 먹을 것을 사다. 17절
기근 사년 째 - 토지와 몸으로 먹을 것을 사다. 19절
기근 오년 째 - 종자를 뿌려 먹을 것을 억게 됨. 오분이 일을 바로에게 상납. 24절.
기근 육년 째 - ?
기근 칠년 째 - ?
18절 "그 해가 다 가고 새 해가 되매"
=> 여기서 "그 해가 다 가고 새 해가 되매"에서 "그 해"를 기근의 칠년으로 해석하면, "새 해"는 기근이 끝나고 난 후 첫 해를 의미할 것이다. 그렇게 될 때, 19절에서 받은 종자를 가지고 24절에서 처럼 열매를 맺게 되고, 소득의 오분의 일을 바로에게 상납할 수 있게 된다.
원어는 어떻게 이 말씀을 기록하고 있는지 찾아보는 것도 좋을 것다.
25절 "그들이 이르되... 우리를 살리셨사오니"
26절 "요셉이 애굽 토지법을 세우매"
=> 요셉의 치리 방법을 배워, 오늘 우리의 시대에 적용하라.
우리가 할 수 있는 질문들..
Q. 토지를 가진 자 어떻게 해야 하나?
Q. 요즘 토지는 자본이다. 자본을 가진 자 어떻게 해야 하는가?
---
오늘 묵상의 포인트는 두 가지이다.
첫째는 애굽과 가나안 땅의 비교에서 얻는 교훈이다. 땅이 아니라 임재이다.
둘재는 요셉의 치리에서 배우는 교훈이다. 땅을 어떻게 사용하고 있는지를 살펴보자. 오늘날은 땅보다 자본이 옛날의 땅의 의미이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인들은 자본을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를 요셉의 치리에서 배울 수 있게 된다.
13절 "기근이 더욱 심하여 사방에 먹을 것이 없고"
"애굽 땅과 가나안 땅이 기근으로 황폐하니"
14절 "요셉이 곡식을 팔아"
"애굽 땅과 가나안 땅에 있는 돈을 거두어 들이고"
15절 "애굽 당과 가나안 땅에 돈이 떨어진지라"
17절 "그들이 그들의 가축을 끌어온지라"
"그 모든 가축과 바꾸어서 그 해 동안에 먹을 것을 그들에게 주니라"
19절 "우리가 어찌 ... 우리 몸과 우리 토지를 먹을 것을 주고 사소서"
* 애굽과 가나안 땅의 비교(17절 "그들이", 19절 "우리가"도 애굽과 가나안 땅에 사는 사람들임)
둘 중에 어떤 땅이 약속의 땅인가? 야곱 가족이 머물러야 할 땅인가?
1) 공통점
- 기근으로 황폐하여 짐.
- 돈으로 곡식을 사게 됨.
- 돈도 떨어져, 더 이상 곡식을 살 수 없음.
- 가축과 바꾸어 먹을 것을 받음.
- 몸과 토지를 주고 사소서.
2) 다른점
- 애굽에 요셉이 총리로 있었다.
- 돈이 애굽으로 몰림.
3) 애굽과 가나안 땅의 비교에서 무엇을 교훈받게 되는가?
- 땅이 아니라, 하나님의 임재다.
- 성전이 아니라, 하나님들의 사람이 거하는 처소다.
- 하나님의 꿈과 비전을 품고 있는 자는 결코 내일에 대한 염려가 없다.
- 하나님의 말씀을 품은 사람은 여유가 있으며 자신감이 있다.
- 언약궤만을 바라보지 말고, 왜 우리가 언약궤를 바라봐야 하는지를 알라.
(사무엘상 4장 1-18절, 블레셋과의 싸움. 17절 "하나님의 궤는 빼았겼나이다")
- 불기둥과 구름기둥이 있는 곳이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이다.
- 하나님의 말씀이 머물른 곳이 우리의 거처이며, 우리가 머물러야 할 곳이다.
20절 "요셉이 개웁의 모든 토지를 다 사서 바로에게 바치니"
Q. 그럼, 가축은 어떻게 하였는가?
가축은 애굽 사람들이 싫어하였고, 바로의 가축도 야곱의 형제들이 치게 되었음으로, 당연히 야곱의 형제들에게 맡겨졌을 것이다.
* 궁핍과 흉년의 시기에, 먹을 것이 없는 시기에 요셉은 어떻게 하였는가?
현대에 먹을 것이 남아도는 곳과 먹을 것이 없는 사람들이 수 많이 공존하는 시대에 우리는 총리 요셉을 통해서 무엇을 배워야 하는가?
23절 "요셉이 백성에게 이르되 오늘 내가 바로를 위하여 너희 몸과 너희 토지를 샀노라"
"여기 종자가 있으니 너희는 그 땅에 뿌리라"
24절 "추수의 오분의 일을 바로에게 상납하고 오분의 사는 너희가 가져가 토지의 종자로도 삼고 너희의 양식으로도 삼고 너희 가족과 어린 아이의 양식으로도 삼으라"
45장 6절 "이 땅에 이 년 동안 흉년이 들었으나 아직 오년은 밭갈이도 못하고 추수도 못할지라"
=> 야곱 가족은 충분히 양식을 보관하지 않았다. 기근 두번째 해에 벌써 두번씩이나 먹을 사러 애굽 땅으로 왔다.
오늘 본문에서는 아직 몇년이 남은지 구체적으로 알 수는 없다. 다음과 같이 유추해 볼 수 있다.
기근 이년 째 - 돈으로 먹을 것을 사다. 14-15절
기근 삼년 째 - 가축으로 먹을 것을 사다. 17절
기근 사년 째 - 토지와 몸으로 먹을 것을 사다. 19절
기근 오년 째 - 종자를 뿌려 먹을 것을 억게 됨. 오분이 일을 바로에게 상납. 24절.
기근 육년 째 - ?
기근 칠년 째 - ?
18절 "그 해가 다 가고 새 해가 되매"
=> 여기서 "그 해가 다 가고 새 해가 되매"에서 "그 해"를 기근의 칠년으로 해석하면, "새 해"는 기근이 끝나고 난 후 첫 해를 의미할 것이다. 그렇게 될 때, 19절에서 받은 종자를 가지고 24절에서 처럼 열매를 맺게 되고, 소득의 오분의 일을 바로에게 상납할 수 있게 된다.
원어는 어떻게 이 말씀을 기록하고 있는지 찾아보는 것도 좋을 것다.
25절 "그들이 이르되... 우리를 살리셨사오니"
26절 "요셉이 애굽 토지법을 세우매"
=> 요셉의 치리 방법을 배워, 오늘 우리의 시대에 적용하라.
우리가 할 수 있는 질문들..
Q. 토지를 가진 자 어떻게 해야 하나?
Q. 요즘 토지는 자본이다. 자본을 가진 자 어떻게 해야 하는가?
---
Tuesday, March 13, 2012
청.매.묵. 겔 31:10-18절 <홍해에서 애굽의 대군이 바다에 잠겼습니다. 살 길이 있었음에도 교만해서 그랬습니다. 이제에스겔 시대에 다시 한 번 그러한 일들이 일어날 것을 에스겔은 말하고 있습니다.>
1. 출애굽시 하나님은 충분히 애굽 백성들에게 "여호와"에 대해 보였주셨습니다.
2. 그러나 바로는 강퍅해서 결코 자신의 길을 멈추지 않았고, 자신의 가진 힘들을 의지하였습니다.
3. 결국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좇아 강한 군대를 이끌고 나가게 됩니다.
4. 그 모습이 얼마나 위대했는지, 이스라엘 백성들은 두려워 떨었습니다. 그 모습에 더욱 자신의 힘과 능력에 도취되어 "여호와", 즉 "스스로 계신 분"을 기억하지 못했습니다.
5. 결국 어떻게 되었습니까? "홍해에서 나오지 못했습니다. 모든 것이 잠기고 말았습니다.
6. 그 후로 많은 시간이 지났습니다. 다시금 애굽의 화려함은 회복되었습니다. 애굽은 백향목 처럼 보기에도 듬직한 큰 아름나가 되었습니다. 많은 열매들, 새들이 와서 쉴 수 있었고, 그늘까지 진 화력하고 당당한 모습이 바로 애굽의 모습입니다.
7. 그러나, 인간의 마음으로 보면 애석하게도 그들은 여전히 교만했습니다.
10절 "마음이 교만하였은즉" 스스로 할 수 있다는 생각은 어리석은 생각입니다
교만을 버리기가 쉽지 않습니다. 인간의 죄악된 습성입니다.
교만이 반복되니 심판도 반복됩니다.
8. 31장 1-9절과 10-14절은 대조본문입니다. 잘 나갈 때의 애굽과 무너질 때의 애굽의 모습입니다.
이러한 모습은 우리에게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이후는 차이를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8절 "하나님의 동산의 백향목이 능히 그를 가리지 못하며"
18절 "너의 영광과 위대함이 에덴의 나무들 중에서 어떤 것과 같은고 그러나 네가 에덴의 나무들과 함께 내려갈 것이요"
=> "네가 에덴의 나무들과 함께 내려갈 것이요" 무슨 의미일까?????
9. 그 이후의 차이란? 애굽은 15-18절에서, 결국 선대처럼 스올에 내려가게 됩니다.
다시금, 앞선 세대를 스올에서 만나게 된 것입니다.
10. 그러나 우리는 차이를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교만"에서 벗어나 은혜의 자리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스올에 빠지지 않고, 지하에 내려가지 않도록, 애굽과 다른 길을 걸어가는 것입니다.
11. 좋은 역사를 반복합시다. 잘못된 역사는 끊어버립시다.
좋은 것들을 물려줍니다. 잘못된 것들은 물려주지 말고 나의 세대에서 끊어버립시다.
12. 오늘 내가 끊어버려야 할 것들은 무엇일까? 그걸 끊어버려 스올에 내려가는 일이 없도록 합시다.
오늘 내가 나의 자녀들에게 이어주어야 할 것은 무엇인가? 영원한 것을 이어줄 수 있는 한 날이 됩시다.
13. 오늘도 그러한 한 날을 기대하며...
------------------------
* 한 때 백향목 같았던 애굽을 향한 메시지
10절 "그러므로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그의 키가 크고 꼭대기가 구름에 닿아서 높이 솟아났으므로 교만하였은즉"
11절 "내가 여러 나라의 능한 자의 손에 넘겨 줄지라"
* 3-8절과 12-14절 비교
고스란히 자기가 의지한 것들이 무너지는 것을 보게 된다.
앞서 에스겔을 통해서 보여준 이스라엘 주변 나라들을 향한 심판의 경고의 대부분은 자신들의 화려함을 의지하여 교만하였다는 것이다.
교만이 폐망의 앞잡이가 되었다.
15절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그가 스올에 내려가던 날에 내가 그를 위하여 슬프게 울게 하며 깊은 바다를 덮으며 모든 강을 쉬게 하며 큰 물을 그치게 하고 레바논이 그를 위하여 슬프게 울게 하며 들의 모든 나무를 글로 말미암아 쇠잔하게 하였느니라"
16절 "내가 그를 구덩이에 내려가는 자와 함께 스올에 떨어뜨리던 때에"
17절 "그러나 그들도 그와 함께 스올에 내려"
18절 "너의 영광과 위대함이 에덴의 나무들 중에서 어떤 것과 같은고 그러나 네가 에덴의 나무들과 함께 지하에 내려갈 것이요 거기에서 할례를 받지 못하고 칼에 죽음을 당한 자 가운데에 누우리라 이들은 바로와 그의 모든 군대니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하라"
Tuesday, March 6, 2012
청.매.묵 겔 30:1-26 <애굽왕의 꺽인 팔과 거기에 붙은 구스의 근심>
1. 요즘 청소년부 남아공 선교관련으로 머리가 아프다. 사실 골치아픈 것이 없지만, 내 마음이 그리되니 마음 씀씀이로 인해 신경이 써진다.
2. 오늘 아침에도 기도에 대한 묵상 내용이지만, 선교를 기획하면서 기도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본다.
3. twitter의 글을 인용하면,
기도는 눈을 감고 하나님께 나의 마음을 아뢰는 것이라면, 진정한 기도의 응답은 눈을 감는 것이 아니라, 눈을 뜨는 것이다. 기도 한 것들을 행함으로 몸소 행할 때 기도가 이루어진다. 기도는 눈을 감는게 아니라, 눈을 뜨는 것이다. -남아공 선교준비하며
4. 하나님의 일을 함에 있어서 두 가지를 묵상해 본다.
5. 첫 번째는 누구를 의지하는냐이다.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느냐? 아니면 주어진 여러가지 문제를 해결하는 것에 집중하느냐? 결국 사람과 환경을 바라보느냐? 바라봄이 결국 의지의 문제로 이어지기 때문에 사람과 환경을 의지하는 것이 된다.
6. 선교를 기획하면서 주신 마음은, 선교는 하나님의 일이라는 것이다. 단 어떤 사람이 가느냐는 사람의 문제일 뿐 하나님의 일과는 무관하다.
우리가 가지 않으면, 그곳에 하나님의 일을 해야 할 사람이 필요하다면, 당연히 우리 말고도 다른 사람을 들어 사용하실 것이다.
7. 이렇게 하니 첫번째 문제에서는 늘 자유롭다. 단 하나 안타까운 것은 우리가 이 귀한 사역에 동참할 때 누릴 수 크나 큰 은혜와 축복을 우리가 아닌 다른 사람이 누릴 수 있다는 것이다.
8. 선교에 동참하는 이들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이 심히 크심을 알기에 놓치고 싶지 않다. 결코 쉬운 길이 아니라 할지라도, 청소년 친구들을 생각하면 더욱 마음이 뜨거워진다.
9. 애굽을 의지한 사람들은 애굽과 함께 근심이 가득한 삶을 살게 된다. 종국에는 망하는 애굽과 함께 팔이 꺽임을 당하고, 칼을 빼앗기게 된다.
10. 하나님을 의지하라. 하나님 편에 서라. 하나님의 일하심에 동참하라. 다른 것을 의지하지 말고, 다른 편에 서지 말고, 하나님의 일하심을 외면하지 말라.
11. 하나님 편에서 일하며, 하나님을 의지할 때 필요한 것은 기도 뿐이다. 기도로 하나님의 마음을 품고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고 하나님의 일하심을 기대하며 힘을 얻는다. 그럴 때 하나님의 의지하는 마음이 절정에 이른다.
12. 그렇다면,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 편에 서기 위해 하는 기도는 과연 무엇인가? 곰곰히 선교를 생각하며 주신 마음은 그렇지 않다. 기도는 눈을 감는 것이 아니라, 눈을 뜨는 것이다.
13. 기도할 때 주신 하나님의 마음을 이제는 믿음으로 행할 차례이다. 하나님이 주신 마음, 뜻, 일하심을 기대하는 열정, 그것을 어디에 쏟을 것인가? 그냥 침묵함으로 기다릴 것인가? 아니다. 하나님의 마음, 뜻, 열정을 품었다면, 품은 그대로 행해야 한다.
14. 이게 바로 기도는 눈을 감는 것이 아니라, 눈을 뜨는 것이라고 말한 이유이다.
15. 오늘도 기도하였다. 간절히 기도하였다. 이 시간 말씀을 묵상하는 시간이 지나면 기도한 것들을 품고 사람을 만나며, 대화하며, 하나님의 일하심을 기대해야 할 부분이 남아있다.
16. 하나님 오늘도 나의 발걸음 가운데 함께 하시고, 담대히 말하게 하시고, 그들의 마음을 움직여 귀한 사역에 함께 하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남아공 선교이야기 계속 ---
2012년 3월 6일. 8시30분.
Twitter에 - 불확실의 고뇌. "고도의 집중력을 요함" 흔들리거나 마음을 빼앗기면 안됨. 오! 주님.
2012년 3월 6일 9시 30분.
저녁 금식이 공식적으로 깨지다. 라면 부셔먹음.
2012년 3월 6일 10시
담임목사님 전화 - 여러 정황상 교회에서 공식적으로 지원하기 힘들다. 자비량으로 가야 한다. 여러 말씀을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여기서 끝내기로 결정함"
2012년 3얼 6일 10시 30분
Twitter에 - 홀가분. 하나님의 뜻이 아니었음이다. 아니 우리가 하나님의 마음을 아직 채워드리지 못함. 우리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 필요했다. 감사. 감사. 감사. 이 시간 마음이 편하다.
한편으로 찐한...무진장 아쉽움이 크다.
2012년 3월 6일 10시 35분
연락할 일만 남았다. 한 분 한 분 감사의 인사를 드리자. 서 선생님. 이 집사님. 락규, 영준이네로. 감사의 전화를 드리자.
우리의 지난 2주간의 시간은 이렇게 흘러갔다.
나의 저녁 금식도 이렇게 끝나다. 이젠 좀 먹어야겠다. 저녁마다 무진장 힘들었다. 육신이 약하니 마음도 약해지더라. 배고프면 뵈는 것이 없다는 말을 전적으로 이해함. 동감함. 먹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무엇을 할꼬. 당근 도와야지.
감사하게 하루를 마치며...
2012년 3월 6일 10시 40분
Twitter에서 - 지못미 선생님(?) 그리고 친구들. ^^ 더 열심히 할께요. 담 번에는 더 잘할께요. ^^
아마도....
더 잘 할 수 있을겁니다. ^^
왜???
주님이 날 사랑하니까.
땡큐 하나님.
지난 2주간 축복하시고 많은 생각을 주심에 감사. 누구보다 지금 행복함.
------------
2절 "너희는 통곡하며 이르기를 슬프다 이 날이여 하라"
3절 "그 날이 가깝도다 여호와의 날이 가깝도다"
6절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애굽을 붙들어 주는 자도 엎드러질 것이요 애굽의 교만한 권세도 낮아질 것이라"
8절 "내가 애굽에 불을 일으키며 그 모든 돕는 자를 멸할 때에 그들이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9절 "염려 없는구스 사람을 두렵게 하리니 애굽의 재앙의 날과 같이 그들에게도 심한 근심이 있으리라"
=> 줄을 잘 서십시오. 구스가 지금 줄을 잘못섰네요. 기회주의자가 되라는 말이 아닙니다.
시편 20편 7절
"어떤 사람은 병거, 어떤 사람은 말을 의지하나 우리는 여호와 우리 하나님의 이름을 자랑하리로다"
20-26절 애굽 왕의 팔을 꺽고 칼을 빼앗아 바벨론 왕에게 넘겨주리가. 바벨론 왕의 팔을 견고하게 하리라.
2. 오늘 아침에도 기도에 대한 묵상 내용이지만, 선교를 기획하면서 기도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본다.
3. twitter의 글을 인용하면,
기도는 눈을 감고 하나님께 나의 마음을 아뢰는 것이라면, 진정한 기도의 응답은 눈을 감는 것이 아니라, 눈을 뜨는 것이다. 기도 한 것들을 행함으로 몸소 행할 때 기도가 이루어진다. 기도는 눈을 감는게 아니라, 눈을 뜨는 것이다. -남아공 선교준비하며
4. 하나님의 일을 함에 있어서 두 가지를 묵상해 본다.
5. 첫 번째는 누구를 의지하는냐이다.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느냐? 아니면 주어진 여러가지 문제를 해결하는 것에 집중하느냐? 결국 사람과 환경을 바라보느냐? 바라봄이 결국 의지의 문제로 이어지기 때문에 사람과 환경을 의지하는 것이 된다.
6. 선교를 기획하면서 주신 마음은, 선교는 하나님의 일이라는 것이다. 단 어떤 사람이 가느냐는 사람의 문제일 뿐 하나님의 일과는 무관하다.
우리가 가지 않으면, 그곳에 하나님의 일을 해야 할 사람이 필요하다면, 당연히 우리 말고도 다른 사람을 들어 사용하실 것이다.
7. 이렇게 하니 첫번째 문제에서는 늘 자유롭다. 단 하나 안타까운 것은 우리가 이 귀한 사역에 동참할 때 누릴 수 크나 큰 은혜와 축복을 우리가 아닌 다른 사람이 누릴 수 있다는 것이다.
8. 선교에 동참하는 이들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이 심히 크심을 알기에 놓치고 싶지 않다. 결코 쉬운 길이 아니라 할지라도, 청소년 친구들을 생각하면 더욱 마음이 뜨거워진다.
9. 애굽을 의지한 사람들은 애굽과 함께 근심이 가득한 삶을 살게 된다. 종국에는 망하는 애굽과 함께 팔이 꺽임을 당하고, 칼을 빼앗기게 된다.
10. 하나님을 의지하라. 하나님 편에 서라. 하나님의 일하심에 동참하라. 다른 것을 의지하지 말고, 다른 편에 서지 말고, 하나님의 일하심을 외면하지 말라.
11. 하나님 편에서 일하며, 하나님을 의지할 때 필요한 것은 기도 뿐이다. 기도로 하나님의 마음을 품고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고 하나님의 일하심을 기대하며 힘을 얻는다. 그럴 때 하나님의 의지하는 마음이 절정에 이른다.
12. 그렇다면,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 편에 서기 위해 하는 기도는 과연 무엇인가? 곰곰히 선교를 생각하며 주신 마음은 그렇지 않다. 기도는 눈을 감는 것이 아니라, 눈을 뜨는 것이다.
13. 기도할 때 주신 하나님의 마음을 이제는 믿음으로 행할 차례이다. 하나님이 주신 마음, 뜻, 일하심을 기대하는 열정, 그것을 어디에 쏟을 것인가? 그냥 침묵함으로 기다릴 것인가? 아니다. 하나님의 마음, 뜻, 열정을 품었다면, 품은 그대로 행해야 한다.
14. 이게 바로 기도는 눈을 감는 것이 아니라, 눈을 뜨는 것이라고 말한 이유이다.
15. 오늘도 기도하였다. 간절히 기도하였다. 이 시간 말씀을 묵상하는 시간이 지나면 기도한 것들을 품고 사람을 만나며, 대화하며, 하나님의 일하심을 기대해야 할 부분이 남아있다.
16. 하나님 오늘도 나의 발걸음 가운데 함께 하시고, 담대히 말하게 하시고, 그들의 마음을 움직여 귀한 사역에 함께 하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남아공 선교이야기 계속 ---
2012년 3월 6일. 8시30분.
Twitter에 - 불확실의 고뇌. "고도의 집중력을 요함" 흔들리거나 마음을 빼앗기면 안됨. 오! 주님.
2012년 3월 6일 9시 30분.
저녁 금식이 공식적으로 깨지다. 라면 부셔먹음.
2012년 3월 6일 10시
담임목사님 전화 - 여러 정황상 교회에서 공식적으로 지원하기 힘들다. 자비량으로 가야 한다. 여러 말씀을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여기서 끝내기로 결정함"
2012년 3얼 6일 10시 30분
Twitter에 - 홀가분. 하나님의 뜻이 아니었음이다. 아니 우리가 하나님의 마음을 아직 채워드리지 못함. 우리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 필요했다. 감사. 감사. 감사. 이 시간 마음이 편하다.
한편으로 찐한...무진장 아쉽움이 크다.
2012년 3월 6일 10시 35분
연락할 일만 남았다. 한 분 한 분 감사의 인사를 드리자. 서 선생님. 이 집사님. 락규, 영준이네로. 감사의 전화를 드리자.
우리의 지난 2주간의 시간은 이렇게 흘러갔다.
나의 저녁 금식도 이렇게 끝나다. 이젠 좀 먹어야겠다. 저녁마다 무진장 힘들었다. 육신이 약하니 마음도 약해지더라. 배고프면 뵈는 것이 없다는 말을 전적으로 이해함. 동감함. 먹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무엇을 할꼬. 당근 도와야지.
감사하게 하루를 마치며...
2012년 3월 6일 10시 40분
Twitter에서 - 지못미 선생님(?) 그리고 친구들. ^^ 더 열심히 할께요. 담 번에는 더 잘할께요. ^^
아마도....
더 잘 할 수 있을겁니다. ^^
왜???
주님이 날 사랑하니까.
땡큐 하나님.
지난 2주간 축복하시고 많은 생각을 주심에 감사. 누구보다 지금 행복함.
------------
2절 "너희는 통곡하며 이르기를 슬프다 이 날이여 하라"
3절 "그 날이 가깝도다 여호와의 날이 가깝도다"
6절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애굽을 붙들어 주는 자도 엎드러질 것이요 애굽의 교만한 권세도 낮아질 것이라"
8절 "내가 애굽에 불을 일으키며 그 모든 돕는 자를 멸할 때에 그들이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9절 "염려 없는구스 사람을 두렵게 하리니 애굽의 재앙의 날과 같이 그들에게도 심한 근심이 있으리라"
=> 줄을 잘 서십시오. 구스가 지금 줄을 잘못섰네요. 기회주의자가 되라는 말이 아닙니다.
시편 20편 7절
"어떤 사람은 병거, 어떤 사람은 말을 의지하나 우리는 여호와 우리 하나님의 이름을 자랑하리로다"
20-26절 애굽 왕의 팔을 꺽고 칼을 빼앗아 바벨론 왕에게 넘겨주리가. 바벨론 왕의 팔을 견고하게 하리라.
Wednesday, February 29, 2012
청.매.묵 - 겔 29:1-21 <오늘 애굽이 받을 심판을 에스겔을 통해 주신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오늘 하루도 "갈대 지팡이"이가 아니라 "새 뿔"을 믿음으로 붙잡으시기 바랍니다.>
1. 오늘은 하나님의 일하심의 방법에 대한 묵상입니다.
2. 이스라엘이 의지한 애굽이 받을 심판에 대한 말씀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애굽을 의지하고 피하였습니다. 역설입니다. 자신들을 그렇게 괴롭혔던 민족인데 다시 손을 벌리고 피할 길을 찾는 어리석음입니다.
3. 그런데 애굽은 그리 의지할 만한 민족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애굽 민족을 가리켜 "갈대 지팡이"(6절)라 했습니다.
'갈대 지팡이'의 의미는 애굽에서 나오는 갈대로는 도저히 지팡이를 만들 수 없다는 뜻입니다.
결국 의지할 것이 결코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그들을 의지했습니다.
4. 애굽은 아주 교만한 민족입니다. 그들 스스로 강의 주인이라 말하고 있습니다.
자신들을 가리켜 "큰 악어"라 하면서 스스로 말하기를 "이 강은 내 것이라"말합니다.
앞서 두로에서 보았지만, 자신의 부함을 자신의 힘으로 취했다는 하는 어리석음을
애굽도 보여주고 있습니다.
5. 교만한 애굽에게 남은 것은 넘어짐 뿐입니다. 흩어지고 먹이가 될 것을 하나님은 에스겔을 통해서 말씀하십니다.
6.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니' 이 땅에 영원한 것은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이 영원합니다.
애굽도 없어지고, 시돈도 없어지고, 애굽과 시돈이 없어질 것을 주신 하나님의 말씀만 남습니다.
7. 이스라엘 백성은 애굽을 좇아갈 것이 아니라, 바로 영원한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가야 합니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영원합니다. 눈에 보이는 것이 영원할 것같은 착각이나 망상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을 볼 수 있으며, 하나님의 말씀을 볼 수 있습니다.
8. 하나님은 우리에게 "한 뿔"이 돋아나게 하십니다. 이게 바로 그리스도인의 힘입니다.
이 "한 뿔"은 소망이며, 희망입니다. 싹을 뽑지 않고 새싹을 주시는 하나님을 믿음으로 의지합시다.
9. 믿음은 의지입니다. 하나님 신뢰입니다. '새 싹'은 작지만, 자라나게 되어있습니다.
지금 내가 '새 싹'을 볼 수 있기 원하며, 보았다면 자라날 것을 인내함으로 기다려야 합니다.
그래야 크게 자란 나무와 숲을 볼 수 있습니다.
10. 애굽을 좇아 갈 것인지? 새 뿔을 인내하며 믿음으로 바라볼 것인지?
오늘도 우리는 눈에 보이는 세계에서 작아 보이는 겨자 씨 믿음을 바라보기 원합니다.
작지만, 능력이 있어 크게 자라날 때를 인내하며 믿음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11. 오늘 애굽이 받을 심판을 에스겔을 통해 주신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오늘 하루도 "갈대 지팡이"이가 아니라 "새 뿔"을 믿음으로 붙잡으시기 바랍니다.
12. 하나님은 찢으시며 알리시고
하나님은 싸매시며 알리시고
하나님은 알리시는 분이다.
이게 은혜임을 고백할 수 있어야 하는데!
오! 주님! 당신 마음을 조금이나마 헤아릴 수 있기 원합니다.
---------------------
3절 "애굽의 바로 왕이여... 큰 악어라 스스로 이르기를 나의 이 강은 내 것이라 내가 나를 위하여 만들었다 하는도다"
4절 "내가 갈고리로 네 아가미를 꿰고 너의 강의 고기가 네 비늘에 붙게 하고 네 비늘에 붙은 모든 고기와 함께 너를 너의 강들 가운데에서 끌어내고"
5절 "너와 너의 강의 모든 고기를 들에 던지리니 네가 지면에 떨어지고 다시는 거두거나 모으지 못할 것은 내가 너를 들짐승과 공중의 새의 먹이로 주었음이라"
6절 "애굽의 모든 주민이 내가 여호와인 줄을 알리라"
"애굽은 본래 이스라엘 족속에게 갈대 지팡이라"
=> 출애굽에서도 애굽의 모습은 어떠했는가?
진작, 알았어야 할것을... 애굽의 역할은 분명하다. 이스라엘 족속을 위한 지팡이다. 바른 길로 가게 하는 역할을 한다. 그러나 진정 그들은 하나님을 알지 못한다. 어찌하오리이까?
출애굽에서도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 바로에게 분명한 하나님의 메시지를 전한다.
출 7:5 "내가 내 손을 애굽 위에 펴서 이스라엘 자손을 그 땅에서 인도하여 낼 때에야 애굽 사람이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하시매"
=> 진정, 그대는 지팡이로만 머물기를 원하는가? 쓰다버려질 지팡이가 되려는가? 지팡이에 채찍에 맞는 인생이지만, 하나님을 알고 그분을 인정하기를 원하는가?
=> 이스라엘 백성이여 당신들은 갈대 지팡이인 애굽을 의지하겠는가? 본래 애굽에서 나오는 갈대로는 지팡이를 만들 수 없다. 너무 약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은 갈대로 만든 지팡이같은 애굽을 의지한다. 그러나 아무런 도움을 받지 못한다. 애굽은 B.C. 701년경 앗수르의 침공 때(사36:16), 그리고 B.C. 588년 바벨론의 예루살렘 침공 때 이스라엘에게 아무 도움을 주지 못했다(렘37:7, 8).
8-16절 애굽이 받을 심판
9절 "애굽 땅이 사막과 황무지가 되리니 내가 여호와인 줄을 그들이 알리라"
11절 "그 가운데로 사람의 발도 지나가지 아니하며 .. 거주하는 사람 없이 사십년이 지날지라"
13절 "사십년 끝에 내가 만민 중에 흩은 애굽 사람을 다시 모아 내되"
14절 "바드로스 땅 곧 고국 땅으로 돌아가게 할 것이라 그들이 거기서 미약한 나라가 되되"
15절 "다시는 나라들 위에 스스로 높이지 못하리니"
16절 "그들이 다시는 이스라엘 족속의 의지가 되지 못할 것이요 이스라엘 족속은 돌이켜 그들을 바라보지 아니하므로 그 죄악이 기억되지 아니하리니 내가 여호와인 줄을 그들이 알리라 하셨다 하라"
17-21절 느브갓네살이 애굽을 정복하리라
19절 "내가 애굽 땅을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에게 넘기리니"
20절 "그들의 수고는 나를 위하여 함인즉 그 대가로 내가 애굽 땅을 그에게 주었느니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21절 "그 날에 나는 이스라엘 족속에게 한 뿔이 돋아나게 하고 나는 또 네가 그들 가운데에서 입을 열게 하리니 내가 여호와인 줄을 그들이 알리라"
=> 싹을 뽑지 않으시는 하나님. 새싹 돋아나도록 하시는 하나님.그 분이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시며, 나의 하나님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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