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dnesday, February 29, 2012

청.매.묵 - 겔 29:1-21 <오늘 애굽이 받을 심판을 에스겔을 통해 주신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오늘 하루도 "갈대 지팡이"이가 아니라 "새 뿔"을 믿음으로 붙잡으시기 바랍니다.>


1. 오늘은 하나님의 일하심의 방법에 대한 묵상입니다.

2. 이스라엘이 의지한 애굽이 받을 심판에 대한 말씀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애굽을 의지하고 피하였습니다. 역설입니다. 자신들을 그렇게 괴롭혔던 민족인데 다시 손을 벌리고 피할 길을 찾는 어리석음입니다.

3. 그런데 애굽은 그리 의지할 만한 민족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애굽 민족을 가리켜 "갈대 지팡이"(6절)라 했습니다.
 '갈대 지팡이'의 의미는 애굽에서 나오는 갈대로는 도저히 지팡이를 만들 수 없다는 뜻입니다.
 결국 의지할 것이 결코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그들을 의지했습니다.

4. 애굽은 아주 교만한 민족입니다. 그들 스스로 강의 주인이라 말하고 있습니다.
 자신들을 가리켜 "큰 악어"라 하면서 스스로 말하기를 "이 강은 내 것이라"말합니다.
 앞서 두로에서 보았지만, 자신의 부함을 자신의 힘으로 취했다는 하는 어리석음을
 애굽도 보여주고 있습니다.

5. 교만한 애굽에게 남은 것은 넘어짐 뿐입니다. 흩어지고 먹이가 될 것을 하나님은 에스겔을 통해서 말씀하십니다.

6.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니' 이 땅에 영원한 것은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이 영원합니다.
 애굽도 없어지고, 시돈도 없어지고, 애굽과 시돈이 없어질 것을 주신 하나님의 말씀만 남습니다.

7. 이스라엘 백성은 애굽을 좇아갈 것이 아니라, 바로 영원한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가야 합니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영원합니다. 눈에 보이는 것이 영원할 것같은 착각이나 망상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을 볼 수 있으며, 하나님의 말씀을 볼 수 있습니다.

8. 하나님은 우리에게 "한 뿔"이 돋아나게 하십니다. 이게 바로 그리스도인의 힘입니다.
 이 "한 뿔"은 소망이며, 희망입니다. 싹을 뽑지 않고 새싹을 주시는 하나님을 믿음으로 의지합시다.

9. 믿음은 의지입니다. 하나님 신뢰입니다. '새 싹'은 작지만, 자라나게 되어있습니다.
 지금 내가 '새 싹'을 볼 수 있기 원하며, 보았다면 자라날 것을 인내함으로 기다려야 합니다.
 그래야 크게 자란 나무와 숲을 볼 수 있습니다.

10. 애굽을 좇아 갈 것인지? 새 뿔을 인내하며 믿음으로 바라볼 것인지?
 오늘도 우리는 눈에 보이는 세계에서 작아 보이는 겨자 씨 믿음을 바라보기 원합니다.
 작지만, 능력이 있어 크게 자라날 때를 인내하며 믿음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11. 오늘 애굽이 받을 심판을 에스겔을 통해 주신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오늘 하루도 "갈대 지팡이"이가 아니라 "새 뿔"을 믿음으로 붙잡으시기 바랍니다.


12. 하나님은 찢으시며 알리시고
  하나님은 싸매시며 알리시고
  하나님은 알리시는 분이다.
  이게 은혜임을 고백할 수 있어야 하는데!
  오! 주님! 당신 마음을 조금이나마 헤아릴 수 있기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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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절 "애굽의 바로 왕이여... 큰 악어라 스스로 이르기를 나의 이 강은 내 것이라 내가 나를 위하여 만들었다 하는도다"
4절 "내가 갈고리로 네 아가미를 꿰고 너의 강의 고기가 네 비늘에 붙게 하고 네 비늘에 붙은 모든 고기와 함께 너를 너의 강들 가운데에서 끌어내고"
5절 "너와 너의 강의 모든 고기를 들에 던지리니 네가 지면에 떨어지고 다시는 거두거나 모으지 못할 것은 내가 너를 들짐승과 공중의 새의 먹이로 주었음이라"
6절 "애굽의 모든 주민이 내가 여호와인 줄을 알리라"
      "애굽은 본래 이스라엘 족속에게 갈대 지팡이라"
=> 출애굽에서도 애굽의 모습은 어떠했는가?
    진작, 알았어야 할것을... 애굽의 역할은 분명하다. 이스라엘 족속을 위한 지팡이다. 바른 길로 가게 하는 역할을 한다. 그러나 진정 그들은 하나님을 알지 못한다. 어찌하오리이까?
    출애굽에서도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 바로에게 분명한 하나님의 메시지를 전한다.
    출 7:5 "내가 내 손을 애굽 위에 펴서 이스라엘 자손을 그 땅에서 인도하여 낼 때에야 애굽 사람이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하시매"
=> 진정, 그대는 지팡이로만 머물기를 원하는가? 쓰다버려질 지팡이가 되려는가? 지팡이에 채찍에 맞는 인생이지만, 하나님을 알고 그분을 인정하기를 원하는가?
=> 이스라엘 백성이여 당신들은 갈대 지팡이인 애굽을 의지하겠는가? 본래 애굽에서 나오는 갈대로는 지팡이를 만들 수 없다. 너무 약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은 갈대로 만든 지팡이같은 애굽을 의지한다. 그러나 아무런 도움을 받지 못한다. 애굽은 B.C. 701년경 앗수르의 침공 때(사36:16), 그리고 B.C. 588년 바벨론의 예루살렘 침공 때 이스라엘에게 아무 도움을 주지 못했다(렘37:7, 8).

8-16절 애굽이 받을 심판
9절 "애굽 땅이 사막과 황무지가 되리니 내가 여호와인 줄을 그들이 알리라"
11절 "그 가운데로 사람의 발도 지나가지 아니하며 .. 거주하는 사람 없이 사십년이 지날지라"
13절 "사십년 끝에 내가 만민 중에 흩은 애굽 사람을 다시 모아 내되"
14절 "바드로스 땅 곧 고국 땅으로 돌아가게 할 것이라 그들이 거기서 미약한 나라가 되되"
15절 "다시는 나라들 위에 스스로 높이지 못하리니"
16절 "그들이 다시는 이스라엘 족속의 의지가 되지 못할 것이요 이스라엘 족속은 돌이켜 그들을 바라보지 아니하므로 그 죄악이 기억되지 아니하리니 내가 여호와인 줄을 그들이 알리라 하셨다 하라"

17-21절 느브갓네살이 애굽을 정복하리라
19절 "내가 애굽 땅을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에게 넘기리니"
20절 "그들의 수고는 나를 위하여 함인즉 그 대가로 내가 애굽 땅을 그에게 주었느니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21절 "그 날에 나는 이스라엘 족속에게 한 뿔이 돋아나게 하고 나는 또 네가 그들 가운데에서 입을 열게 하리니 내가 여호와인 줄을 그들이 알리라"
=> 싹을 뽑지 않으시는 하나님. 새싹 돋아나도록 하시는 하나님.그 분이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시며, 나의 하나님이시다.


성경읽기 - 민수기 7-8장

솔선수범으로 자신의 몸과 맘을 드린 감독자들에게서
찐한 리더십의 모습을 본다.

첫 마음인 이 마음이 변치 않아야 하는데,
시작은 아름다우니 끝도 아름다워야 하리.

레위인을 요제로 거룩과 구별은
하나님께 속함의 표시로,
자녀됨을 거룩과 구별로 보이라.

민수기 7-8장

한 날 묵상 - 창 42장 26-38절 <하나님, 지금 나는 무엇을 해야할까요?” “내려갈까요?, 아니면 어떻게 할까요?”라고 묻는 우리가 되자.>


한 날 묵상 - 창 42장 26-38절 <하나님, 지금 나는 무엇을 해야할까요?” “내려갈까요?, 아니면 어떻게 할까요?”라고 묻는 우리가 되자.>

35절 “그들과 그들의 아버지가 돈뭉치를 보고 다 두려워하더니”
36절 “그들의 아버지 ... 요셉도 없어졌고 시므온도 없어졌거늘 베냐민을 또 빼앗아 가고자 하니”
=>여전히 야곱의 마음에 있었다. 누구? 요셉이다. 수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아버지 마음에는 요셉이 있었다. 구체적으로 그 마음을 알 수 없지만, 아마도 요셉이 살아있음을 기대하고 있지는 아닌지 생각해보다. 물론 38절에서 형의 죽음을 언급하고 있지만, 어찌되었든, 지금 야곱의 마음에는 계속 요셉은 살아있다.
=> 이쯤이 바로 타이밍이다. “하나님”이 나올 타이밍이었다.
하나님의 의지하고 하나님의 생각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나님은 야곱에게 나타나셨다.
창46장2절에 “그 밤에 하나님이 이상 중에 이스라엘에게 나타나 이르시되”.

이후에 나타나는 야곱 가족의 모습
1. 곤란의 시기, 곤고의 시기. 기근의 시기에 야곱의 가족이 놓여 있다.

2. 이 때 야곱의 모습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3. 일어난 일의 질타하며 잘잘못을 따지는 것이 우선순위가 아니다. 나름 최선을 다했음을 우리는 앞의 성경을 읽어 알 수 있다. 그 정도면 충분히 자신의 소임을 다 했다. 그러나 야곱은 그 상황을 전혀 공감하지도 않고 일어난 일에 대한 문제만을 지적하고 있다.

4. 일의 상황을 따지고 묻기전에 야곱은 먼저 해야 할 일이 있었다. 그는 결코 하나님께 묻지 않았다. 그는 그것을 해야 했다.
 하나님께 묻는 것이야말로 믿음의 삶의 꽃이다. 보이지 않는 곳을 향해 나아갈 때 기도가 필요하다. 믿음으로 결단하기 위해서 하나님께 묻는 것은 가장 먼저해야 할 일이었다.
 
5. 야곱에게 있어서 단지 하나님은 복을 빌고 응답받기를 원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었다고 생각할 수 있다.
 43장 14절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그 사람 앞에서 너희에게 은혜를 베푸사 그 사람으로 너희 다른 형제와 베냐민을 돌려보내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내가 자식을 잃게 되면 잃으리로다”
 이 때에는 그는 기도한다. 형통함을 위해서, 자녀들의 앞길을 위해서, 자녀들의 형통의 길을 원하고 있다. 그렇게 기도하고 있다.

6. 이게 우리네의 믿음의 보습이자. 야곱의 믿음의 한계이며, 우리 믿음의 한계가 아닐까?
왜 먼저 묻지 않았을까? 내려가야 하는지? 내가 지금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 전혀 물음이 없다.

7. 우리가 묻지 않으면, 하나님은 믿음으로 보이지 않는 길을 가야하는 길에 대해 하나님이 먼저 우리이게 말씀해주신다. 우리가 묻지 않고 머뭇고리고 있다면 그렇게 하신다.
 하나님은 야곱에게도 그렇게 하셨다. 이상 중에 야곱에게 나타나 길에 대해 길잡이를 해 주시다. “애굽으로 내려가기를 두려워하지 말라”(46:2)

8. 여기서 우리의 믿음을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
 우리는 현재의 자리에서 복을 빌고 형통함을 위한 기도는 참으로 잘한다.
 그렇지만, 히브리서 11장의 믿음은 우리에게 없다.
 히 11:1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있는 자리에서 형통함을 빌고, 자녀들의 미래를 위해 누구보다 열심히 기도하지만, 내가 떠나야 할 믿음의 결단을 위해서는 기도하지 않는다.
 눈에 그려지는 것만을 위해 기도한다.
 눈에 그릴 수 없는 것을 보기 위한 기도는 결코 하지 않는다.
 바로 이게 우리의 믿음의 현주소이다.

9. 그러나 믿음의 대가들은 자신의 형통함을 위한 기도보다(사도바울은 자족하는 은혜를 가지고 있었다.) 볼 수 없는 믿음의 길을 위해 기도하며 결단하며 나아가는 사람들이었다.
 
10. 내가 나아가야 할 길에 대해 분명히 하나님은 길을 안내해주신다. 내가 묻지 않으면 말씀으로 인도하여주신다.
 그때는 좀 늦은 것이 아닐까요?  좀 더 일찍 갔으면 하지 않을까요?
 
11. 하나님의 이상이 나타나기전에 물으면 어떠했을까? 한 번쯤 우리가 생각해봐야 할 질문이라 생각된다.
 “하나님 내려가야 하나요?” “하나님, 지금 이 순간에 내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12. 평강을 위한, 형통함을 위한 기도보다 보이지 않지만, 함께 하시는 그 분을 경험할 수 있는 믿음의 길을 위한 기도를 하자.
 믿음의 길을 걷는 사람들에게 형통함이라 우리가 구하지 않아도, 갈급해하지 않아도, 당연히 주어지는 부산물이다.
 오늘 나는 보이지 않는 믿음의 길을 위해 기도한다. 그리고 결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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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절 “그들이 곡식을 나귀에 싣고 그곳을 떠났더니”
=> 희망을 갖고 떠나다.

27-28절 “하나님이 어찌하여 이런 일을 우리에게 행하셨는가 하고”
=> 혼란속으로 빠져들다. 자중지란에 빠지다.
그 속에서 하나님을 찾는다.

29절 “그들이 아버지 야곱에게 이르러 그들이 당한 일을 자세히 알리어 아뢰되”

30-34절 요셉과의 만남을 다시 말하다.

35절 “그들과 그들의 아버지가 돈뭉치를 보고 다 두려워하더니”
36절 “그들의 아버지 ... 요셉도 없어졌고 시므온도 없어졌거늘 베냐민을 또 빼앗아 가고자 하니”
=>여전히 야곱의 마음에 있었다. 누구? 요셉이다. 수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아버지 마음에는 요셉이 있었다. 구체적으로 그 마음을 알 수 없지만, 아마도 요셉이 살아있음을 기대하고 있지는 아닌지 생각해보다. 물론 38절에서 형의 죽음을 언급하고 있지만, 어찌되었든, 지금 야곱의 마음에는 계속 요셉은 살아있다.
=> 이쯤이 바로 타이밍이다. “하나님”이 나올 타이밍이었다.
하나님의 의지하고 하나님의 생각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나님은 야곱에게 나타나셨다.
창46장2절에 “그 밤에 하나님이 이상 중에 이스라엘에게 나타나 이르시되”.

이후에 나타나는 야곱 가족의 모습
1. 곤란의 시기, 곤고의 시기. 기근의 시기에 야곱의 가족이 놓여 있다.
2. 이 때 야곱의 모습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3. 그는 결코 하나님께 묻지 않았다. 단지 하나님께 복을 빌었다.
 43장 14절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그 사람 앞에서 너희에게 은혜를 베푸사 그 사람으로 너희 다른 형제와 베냐민을 돌려보내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내가 자식을 잃게 되면 잃으리로다”
 자녀들의 형통의 길을 원하고 있다. 그렇게 기도하고 있다.
4. 야곱의 믿음의 한계이자, 우리 믿음의 한계가 아닐까?
왜 먼저 묻지 않았을까? 내려가야 하는지? 내가 지금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 전혀 물음이 없다.
5. 하나님이 먼저 이상 중에 야곱에게 나타나 길에 대해 길잡이를 해 주시다.
“두려워하지 말라”
6. 내가 나아가야 할 길에 대해 분명히 하나님은 길을 안내해주신다. 내가 묻지 않으면 말씀으로 인도하여주신다.
7. 하나님의 이상이 나타나기전에 물으면 어떠했을까? 한 번쯤 우리가 생각해봐야 할 질문이라 생각된다.
 “하나님 내려가야 하나요?” “하나님, 지금 이 순간에 내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38절 “야곱이 이르되 내 아들은 너희와 함께 내려가지 못하리니 그의 형은 죽고 그만 남았음이라”

Tuesday, February 28, 2012

성경읽기 - 민수기 5-6장

부정한 자를 어찌하오리이까?
나실인처럼 구별된 자는 또 어찌하오리이까?

정답은 다 똑같다.
실상은 거룩을 위한 부정한 자를 구별하는 것이며,
거룩을 위해 나실인을 구별한것 뿐이다. 

부정한 자도 거룩하면 축복받고,
나실인도 거룩해야 축복받는다.

민수기 5-6장

성경읽기 - 민수기 3-4장

나는 하나님을 섬기기에 부족함이 없이
구별되어 있는가?

거룩과 구별의 파급효과를 위한 구별됨이
제사장, 레위인으로부터 시작되었다.

나로부터 거룩과구별이 시작되어
강물처럼 흘러 넘치리.

태어난 바로부터 거룩함을 지키라.
맡은 직무에서 거룩하라.

민수기3-4장

Friday, February 24, 2012

성경읽기 - 민수기 1-2장 <"계수"와 "진영 구축">

 출애굽이 하나님의 인도하심이라면, 민수기는 하나님과 함께 승리하는 삶을 기대하며 하나님은 이스라엘과 함께 하기를 원하신다. "계수"와 "진영"을 통해 은혜에 감사, 앞으로도 숫자가 아닌 하나님을 바라보는 결단과 더불어 함께 승리하자는 마음.
민수기1-2장

1장
2절 "이스라엘 자손의 모든 회중 각 남자의 수를 그들의 종족과 조상의 가문에 따라 그 명수대로 계수할지니"
3절 "이스라엘 중 이십 세 이상으로 싸움에 나갈 만한 모든 자를 너와 아론은 그 진영별로 계수하되"
=> 출애굽의 역사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의 역사라면, 민수기의 역사는 하나님과 함께함에 역사로 볼 수 있다. 함께 승리하는 삶으로 하나님은 이스라엘과 함께 하기를 원하신다.

2장 "계수와 진영"
"계수" => 지금까지 은혜에 감사, 앞으로도 숫자가 아닌 하나님을 바라보는 결단이 필요함.
"진영" => 더불어 함께 가자.

33절 "레위인은 이스라엘 자손과 함께 계수되지 아니하였으니"
=> 레위인은 성별과 거룩을 위해 헌신할 자이다. 전쟁과 일이 아니라, 기도와 후원이다.
후방부대로 영적 전쟁을 하라. 용기를 주라. 마음이 흔들리지 않도록 지원하라.

Thursday, February 23, 2012

한 날 묵상 - 겔 28:20-26절 <회복이 영광이다. 회복은 아버지와 관계가 처음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아버지는 늘 기다리십시다. 아들만 돌아오면, 됩니다. 자녀는 하나님의 기업입니다. 아버지의 영광은 아들에게 있습니다.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를 회복하십니다.>

한 날 묵상 - 겔 28:20-26절 <회복이 영광이다. 회복은 아버지와 관계가 처음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아버지는 늘 기다리십시다. 아들만 돌아오면, 됩니다. 자녀는 하나님의 기업입니다. 아버지의 영광은 아들에게 있습니다.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를 회복하십니다.>

1. 아버지는 결코 자녀를 떠나지 않습니다. 이게 하나님이 창조하신 자연의 법칙입니다.
혹, 지금 그렇지 못한 가정이 있다면 하나님께 너무 멀리 떨어져 있는 상태입니다.
정상이 아니라, 비정상의 상태라는 것입니다. 아버지와 자녀는 함께 있어야 합니다.

2. 하나님은 결코 자녀들을 떠나지 않습니다. 이게 하나님의 마음이며,
하나님이 결국 하시는 일입니다. 이스라엘이 흩어졌지만, 다시금 모이게 되었고,
모이게 된 그 땅 가운데 평안히 살며 집짓고, 포도원 만들고 행복하게 살게 되었습니다.

3.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나의 아버지이십니다.
이 고백이 있으시다면, 지금 하나님이 떠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우리 개인의 문제입니다. 하나님은 결코 떠나지 않으셨습니다.
혹 떠나 있다고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는 회복을 전제로 한 떠남입니다.
이미 회복을 약속하셨고, 그 안에서 떠나 계실 뿐입니다.

4. 우리가 빠른 회복을 위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심판을 달게 받고, 죄를 자복하고, 회개행 합니다.
에스겔이 줄기차게 말하고 있는 하나님은 심판은 회복을 위한 심판입니다
자녀들이 죄를 자복하고 고백하면, 회복합니다.

5. 모세는 이미 레위기에서 이러한 말씀을 주셨습니다.
레위기 26장에 보면, 이런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http://saltandlight21.blogspot.com/2012/02/26-27.html
회개하고 죄를 자복하는 안식입니다.
회개하고 자복할 때 내 마음의 밭은 안식하며
하나님의 약속으로 충만하게 됩니다.
회개하고 자복할 때 회복되는 이유입니다.
회개와 자복없이 회복은 없습니다.
회개하고 자복함으로 마음의 안식을 누리십시오.
회개하고 자복하면 아픔닙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이 때 진정한 평안과 안식을 누립니다.
하나님의 법칙입니다.
레26장


6. 하나님의 왜 자녀들이 죄를 자복하고 회개하면 회복하실까요?
이게 바로 하나님의 원래 성품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변하지 않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신 약속을 결코 잊지 않으셨습니다.


7. 하나님의 영광과 거룩은 회복과 관계가 있습니다. 

김병삼 목사님. fb에서....Byoung Sam Kim

"회복이 영광이다!"
요즘 젊은이들은 잘 부르지 않는데,
"복의 근원 강림하사"라는 찬송을 아시나요?
이 찬송은 로버트 로빈슨이란 청년이 20살 때 복음을 받으들이고 지은 많은 시 중에 하나입니다. 그의 시는 영적인 탁월함으로 많은 영국사람들에게 영감을 주었지만, 불행하게도 그는 세상의 유혹 앞에서 방황하고 갈등을 겪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그가 마차를 타고 가는데 옆에 앉은 부인이 두툼한 시집을 꺼내더니 '복의 근원 강림하사'라는 시에 대하여 아느냐고 물었습니다.
불행히도 그는 자신이 지은 시를 기억하지 못했습니다.
반응을 보이지 않는 청년을 보며 이 여인은 '이 사람은 신앙과 거리가 먼 사라이구나!'라고 생각하게 되었고,
이 시가 자신의 삶을 어떻게 바꾸어 주었나를 들려주었습니다.
로빈슨은 자신의 시를 들으며 눈물을 흘리며 회개하며 다시 하나님께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캠브리지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영적 거장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관심은 지금 우리의 상태에 있는 것이 아니라 "회복"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가능성은 지금 우리의 능력에 있는 것이 아니라, 회복시키시며 새롭게 하실 미래에 있습니다.
우리 민족과 한국 교회를 보며 뜨거웠던 부흥의 역사를 잃어버린 초라함이 아닌, 회복시키실 하나님의 영광을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이 찬송시를 보며 누군가의 마음이 뜨거워 지기를. . .

복의 근원 강림하사 찬송하게 하소서
한량없이 자비하심 측량할 길 없도다.
천사들의 찬송가를 내게 가르치소서
구속하신 그 사랑을 항상 찬송합니다.

주의 크신 도움받아 이때까지 왔으니
이와 같이 천국에도 이르기를 바라네
하나님의 품을 떠나 죄에 빠진 우리를
예수 구원하시려고 보혈 흘려 주셨네.

주의 귀한 은헤받고 일생 빚진 자되네
주의 은혜 사슬되사 나를 주께 매소서
우리 맘은 연약하여 범죄하기 쉬우니
하나님이 받으시고 천국인을 치소서.




9. 하나님께 영광 돌리기 원하십니까?
회복하십시오. 우리가 회복하며, 여러분이 회복하면,
하나님은 영광 받으십니다.
하나님의 거룩함이 드러납니다.

10. 오늘도 회복이 영광임을 기억하고 살아가는 한 날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내가 회복해야 할 부분이 무엇인지를 생각하는 한 날이 됩시다.
죄라면 자복하고,
부족함이라면 채워야하고...


* 시돈이 받을 심판
21절 "인자야 너는 얼굴을 시돈으로 향하고 그에게 예언하라

22절 "주 여호와께서 이가이 말씀하시되 시돈아 내가 너를 대적하리니 네 가운데에서 내 영고아이 나타나리리 하셨다 하라"
         "내가 그 가운데에서 심판을 행하여 내 거룩함을 나타날 때에 무리가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 하나님의 영광, 하나님의 거룩함은 세상과 또는 우리와 어떤관계가 있는가?
온 세상이, 우리가 여호와 인줄을 알게 된다.
하나님을 알게 될 때 세상과 우리는 어떻게 되는가?
진짜 주인을 만나게 된다. 신약의 표현으로 쓰면, 아바 아버지를 만나게 된다.
진짜 주인은 종을 사랑한다. 아빠는 자녀들을 사랑한다.
우리에게 찌르는 가시와 아프게 하는 다시는 없게 된다(25절).
이 때 또 한 번 세상과 우리는 여호와를 알게 된다.

* 이스라엘이 복을 받으리라(25-26절)
이스라엘은 어떻게 되었는가?
흩어졌지만 다시금 모이게 되었다. 회복이 될 때 하나님의 거룩함이 나타남.
다시금 모이게 된 이스라엘 백성들은,
평안히 살며, 집을 건축하고, 포도원을 만들고, 그들의 사방에서 멸시하던
모든 자를
내가 심판할 때에 그들이 평안히 살며
내가 그 하나님 여호와인 줄을
그들이 알리라.

성경읽기 - 레위기 26-27장


회개하고 죄를 자복하는 안식입니다.
회개하고 자복할 때 내 마음의 밭은 안식하며
하나님의 약속으로 충만하게 됩니다.
회개하고 자복할 때 회복되는 이유입니다.
회개와 자복없이 회복은 없습니다.
회개하고 자복함으로 마음의 안식을 누리십시오.
회개하고 자복하면 아픔닙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이 때 진정한 평안과 안식을 누립니다.
하나님의 법칙입니다.
레26장


서원하셨습니까? 합당한 열매를 드리십시오.
열매가 없다고요? 간구하고 부르짖으십시오.
간구하고 부르짖으셨다고요? 그럼 인내하며 기다리십시오.
인내하고 기다리고 있다고요? 은혜의 때가 곧 옵니다.
남아공선교를 생각하며 주님께 이 맘을 드립니다.
레27장

26장
1절 "너희는 자기를 위하여 우상을 만들지 말지니...너희는 내 안식을 일을 지키며 내 성소를 경외하라"
2절 "너희가 내 규례와 계명을 준행하면"

14절 "그러나 너희가 내게 청종하지 아니하여 이 모든 명령을 준행하지 아니하며"
19절 "내가 너희의 세력으로 말미암은 교만을 꺽고"

23절 "이런 일을 당하여도 너희가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고 내게 대항할진대"

27절 "너희가 이같이 될지라도 내게 청종하지 아니하고 내게 대항할진대"

34-35절 "땅이 안식을 누릴 것이라 그 때에 땅이 안식을 누리리니"
36절 "너희 남은 자에게는"
39절 "남은자"

40절 "그들이 나를 거스른 잘못으로 자기의 죄악과 그들의 조상의 죄악을 자복하고 또 그들이 내게 대항하므로"
42절 "아브라함과 맺은 내 언약을 기억하고 그 땅을 기억하리라"
44절 "그런즉 그들의 원수들의 땅에 있을 때에 내가 그들을 버리지 아니하며 미워하지 아니하며"
45절 "기억하리라 나는 여호와이니라"

Wednesday, February 22, 2012

성경읽기 - 레위기 24-25장

등불이 되어 세상을 비추라!
그러나 순결한 등불만이 세상의 등불이 될수 있다.

이 세상에 순전한 등불이 꺼지지 않도록하라.
내가 그 등불을 비추는 순결한 그름이되어야 한다.
순결한 기름은 찧길 때 더욱 값진 기름이 된다.
찧기는 걸 멀리하지마라.
레위기24 장

예배는 하나님께 드리지만 이웃과함께 드린다.
예배에 이웃을 초대하라.
예배에 중보기도가 꼭 필요한 이유이다.
 가정 예배도 예외가 아니다.
안식하라. 희년을 지키라.
부당한 이익을 취하지 말라. 
이는 다른 사람을 살릴 뿐 아니라 무엇보다 나를 살리는 행위다. 
살고 싶거든 안식하라.
희년하라.
더불어 험께하라.
작은 돌을 먼저 넣지 않는 이유이다.
레위기25장

 황성주 목사님의 트윗을 인용한다. Hwang Sung Joo (@mcity007) 12. 2. 21. 오후 4:00
휴식스케줄을 먼저 잡아라. 그러면 일의 집중성이 높아진다.
유리병에 돌을 채울 때 큰 돌(휴식)을 먼저 넣으면
작은 돌들(업무)을 틈새에 많이 채워넣을 수 있다.
먼저 작은 돌들을 채우면 큰 돌을 넣을 공간이 없어진다.

성경읽기 - 레위기 22-24장

준비되어을때 성물을 먹으라.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제물은
제물의 대상의 문제가 아니라, 마음의 문제다.
우리의 일상은 일이 예배고 안식이 예배되게하라.
제사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기억하며,
이웃사랑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다. 모이라!모이라!
레22-24 장
예배에 사람을 초대하거나,
예배에 중보기도가 빠지면 안된다.
예배는 하나님께 드리지만, 이웃과 함께 드린다.
참여 하든지, 이웃을 예배에 기도로 끌여드리든지 말이다.
예배가 홀로 드리는 것으로 그치지 않게하라.

Tuesday, February 21, 2012

소그룹에서 거룩함을 개발하라




거룩함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속하신 최종 목표입니다(에베소서 5장 25-27절). 새로운 피조물인 우리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추구해야 할 목표인 것입니다. 우리가 거듭난 것은 계속 성장하여 마침내 그리스도를 닮아가도록 하기 위합니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새롭게 태어나는 과정을 통해 거룩해지려는 본능을 부여받습니다. 그러나 그 거룩함을 향한 본능은 가만히 내버려 두어서는 지속적인 성장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거룩함을 배우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이는 운동 경기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재능이 있는 운동선수가 그 타고난 능력만 믿고 가만히 있지는 않는 것처럼 말입니다. 운동선수는 이론만을 공부할 뿐만 아니라 실제 경기에 필요한 기술을 몸으로 연습하면서 준비를 합니다.
또한 거룩함에 대한 추구는 학교에서 교육받는 과정과 유사한 면도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세우신 학교에서, 교과과정과 규칙을 따르고 엄한 훈련을 받으며 이따금 상을 타기도 하고 선생님들에게 배우며 친구들과 어울려 놀다가 싸우기도 하고 다시 화해하기도 합니다. 이 모든 과정이 하나님의 절대적인 섭리 속에서 진행됩니다. 때로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인으로 하여금 삶에서 느끼는 온갖 감정들인 기쁨과 슬픔, 성취감과 좌절감, 환희와 실망, 행복과 상처 등을 겪게 하신다면, 거기에는 반드시 우리가 알지 못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이러한 모든 경험은 성결학교에서 우리를 위해 하나님이 마련하신 교과과정 중의 일부이고, 성결학교는 그분이 세우신 영적 훈련장입니다.


제임스 패커(James I. Packer)는 그의 책 <거룩함을 재발견>에서 거룩함은 내가 맺는 관계와 깊은 관련이 있다고 말합니다. 
 특별히 우리가 속한 공동체와 긴밀한 연관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 설명은 과거 4세기 중세 시대에 추구하던 것과는 전혀 다른 설명입니다. 당시의 그리스도인들은(특히 수도사들은) 습관적으로 자신들을 고립시키며 육체적 고행과 영적 훈련을 실천하였습니다. 안토니는 20년 동안 이집트 사막에서 수도하였고, 시므온은 자신이 세운 기둥 꼭대기에서 무려 30년을 살았습니다. 
 중세시대에는 거룩함을 ‘고차원적인 삶’으로 이해하고, 신앙생활을 훨씬 진지하고 엄격하게 하려는 신앙인이 선택하는 삶으로 보았습니다. 그래서 사회로부터 이탈하려는 현상을 당연시 하고, 거룩해지려면 수도사나 수녀, 은둔자가 되어 결혼이나 재물을 포기할 필요가 있다고 믿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종교개혁가들은 인간에게 주어진 모든 관계를 성실하게 수행하고, 자신의 소질과 시간을 활용하여 타인을 섬기며, 사랑과 겸손과 순결과 하나님에 대한 열정을 유지시키는 것을 거룩한 삶으로 여겼습니다. 종교개혁가들의 관점에서 보면 거룩해지기 위해서 공동체로부터 자신을 고립시키겠다는 사고는 버려야 합니다. 죄를 용서받은 자로서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자신을 헌신하는 생활이 성결의 삶인 줄 깨달아, 예배자와 일꾼과 증인으로서 가정과 교회와 더 큰 공동체 내에서 타인과의 관계를 통해 반드시 거룩함을 성취하겠다는 생각을 품어야 합니다.

 패커는 제임스 필립의 의견을 소개합니다. 그리스도인 중에 상대방에게 공감하기를 싫어하고 항상 자신만 조명 받으려고 노력하며 다른 사람을 지배하려는 욕망을 가진 사람들이 더러 있다고 말입니다. 필립은 하나님의 관점에서 결국 이러한 증상이 마음을 완악하게 하여 모든 관계를 망친다고 조언합니다. 결국 가장 근원적인 문제는 아직 ‘죽는 법을 배우지 못한 자아’입니다. 

패커는 책에서 100여 년 전에 살았던 한 여성에 관한 이야기를 합니다. 그녀는 거룩함에 대한 책을 쓰기도 하고 강연도 했던 유명인 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녀를 오랜 기간 지켜본 그녀의 사위는 그녀를 평가하기를 “그분은 제가 알고 있는 사람들 중에 매우 악독한 인물 중의 하나입니다”라고 했습니다. 이렇듯 남편과 아내, 직장 동료와 동료, 소그룹 멤버들 사이에서 대인관계에 문제가 있는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는다면 거룩하지 못하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속한 소그룹에서 기쁨과 슬픔, 성취감과 좌절감, 환희와 실망, 행복과 상처 등을 겪게 하십니다. 거기에는 반드시 우리가 알지 못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 과정을 통해서 우리는 거룩해 지는 것입니다. 이러한 모든 경험은 성결학교에서 우리를 위해 하나님이 마련하신 교과과정 중의 일부이고, 성결학교는 그분이 세우신 영적 훈련장이기 때문입니다.

이번 한 주간 우리는 교회의 소그룹에서, 직장에서, 가정에서 각종 공동체에서 여러 가지 대인관계를 해 나갈 것입니다. 소그룹 가운데 발생하는 여러 가지 대인관계의 문제들은 우리가 거룩해 질 수 있는 과정이라는 것을 믿고 거룩함을 재발견하시기 바랍니다.
이 글은 제임스 패커(James I. Packer)는 그의 책 <거룩함을 재발견> 1장 일부를 발췌 정리하였습니다.

죄는 재정적, 직업적 어려움을 초래한다


“인생은 왜 이리 힘듭니까? 우리는 왜 고통을 겪습니까?” (요1 7:1, CEV)

경제는 언제 무너지게 될까? 우리가 하나님의 재정적 원칙을 무시할 때이다.
정산, 기록, 저축, 소비, 나눔, 투자, 수입의 범위 내에서 생활하기 등의 원칙은 모두 성경적인 원칙들이다. 하나님은 이 원칙을 따르면 인생이 번영하도록 복 주시겠다고 말씀하신다. 이것이 꼭 모두가 거부가 된다는 뜻은 아니지만, 하나님은 그분의 말씀을 따르면 우리가 필요한 것을 얻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내가 해 아래에서 큰 폐단 되는 일이 있는 것을 보았나니 곧 소유주가 재물을 자기에게 해가 되도록 소유하는 것이라 그 재물이 재난을 당할 때 없어지나니 비록 아들은 낳았으나 그 손에 아무것도 없느니라” (전 5:13-14) 솔로몬이 그의 시대에서 본 것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사실이다. 죄 역시 세상에 계속 존재해왔기 때문이다. 주식시장에서 주가가 떨어지면 사람들은 “저건 옳지 않아!”라고 말하지만, 그것은 죄로 인해 깨어진 세상에서 사는 삶의 일부분이다.

죄는 또한 직장과 하나님께서 우리를 창조한 목적에 따라 행하는 일에서 의미, 성취, 그리고 목표를 앗아간다. 전도서 2장에서 솔로몬은 말한다. “이러므로 내가 사는 것을 미워하였노니 이는 해 아래에서 하는 일이 내게 괴로움이요 모두 다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기 때문이로다 … 이러므로 내가 해 아래에서 한 모든 수고에 대하여 내가 내 마음에 실망하였도다” (전 2:17, 20)

솔로몬은 아주 열심히 일해서 돈을 많이 벌거나 수많은 성취를 한다고 해서 만족감을 얻는 것은 아님을 깨달았다. 마치 언젠가 내게 말해준 한 남자의 이야기처럼 말이다. “저는 성공의 사다리를 열심히 올라갔습니다. 사다리의 꼭대기에 다다랐을 때, 제가 알게 된 것은 그 사다리가 잘못된 벽에 걸쳐져 있었다는 거였죠. 결국 저는 모든 노력을 낭비했던 겁니다.”
어쩌면 재정적 어려움을 초래하는 죄는 하나님께서 주신 돈을 오용하는 것일 지도 모른다. 시간을 들여 당신의 재정적(그리고 직업적) 상황을 평가해보고, 당신이 꼭 알아야 하는 것을 하나님께서 보여주시길 간구하라.

한 날 묵상 - 창42:6-25 <얽히고 설킨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을 요셉과 형들의 만남에서 볼 수 있다. 복수인가? 회복인가? 용서와 회개에 달려 있다>

한 날 묵상 - 창42:6-25 <얽히고 설킨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을 요셉과 형들의 만남에서 볼 수 있다. 복수인가? 회복인가? 용서와 회개에 달려 있다>

1. 역사적 만남이 오늘 요셉과 형들가운데 일어났다. 세상으로 보면, 이들의 사이는 절천지 원수관계이다. 그러나 믿음의 사람들이기에 이들은 얽히고 설킨 문제를 "하나님의 경외"하는 방법으로 이 문제를 해결해 가는 요셉과 형들의 만남을 볼 수 있다.

2. 세상은 복수가 난무한다. 세상은 복수가 정당하다 말한다. 세상은 복수를 해야 잘했다 말한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그렇지 않다. 복수보다 더 강력한 방법이 있다. 용서이다. 용서할 때 진정한 복수(?)를 하게 된다.

3. 복수의 의미는 한자로 보면, "  회복할 복, 다시 부  원수" 수 이다. "원수()를 갚음"이다.

 그런데, 이런 의미로 생각해 보면, 어떻게? "원수와 다시 회복하다"
 그렇다면, 원수와 다시 회복하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용서이다. 용서보다 온전한 회복을 가능케 하는 것은 없다.

4. 요셉과 형들의 관계는 얼키고 설킨 복수만이 남아 있는 관계처럼 보인다. 그러나 요셉은 복수가 아니 용서로 복수의 의미를 반전키시고 있다.

5. 얼키고 설킨 관계를 어떻게 회복할까? 요셉과 형들의 오랫만에 만남을 통해서 살펴보자.

6. 대화하라. 그 자로 나아가라.
 대화하면서, 형들의 마음이 이전 요셉에까지 미치게 되었다. 요셉과 형들과의 대화에서 해묵은 이전의 감정들이 하나 하나 정리되고 있다.

7. 누구든 먼저 마음에 용서하고 가라. 용서할 마음이 채워지지 않았다면 대화의 자리에 나아가지 마라. 그러나, 대화에 자리에 나아가지 않는 것, 즉 용서하지 않았다는 것을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우리를 용서를 기대하는 것은 혹 무리가 아니겠는가?

8. 대화중에 마음에 범죄함이 깨닫게 되거든 회개하라. 마음에 짐을 벗어버리라. 회개는 다른 사람들에게 하는 것이 아니다. 자신에게 하는 것이다. 자신이 회복된다. 온전히 회복된다. 자존감이 살아난다. 자괴감에서 벗어날 수 있다.

9.  그에 따른 값을 치를 것이 있다면,  감당하라(22절 "르우벤이... 그러므로 그의 핏값을 치르게 되었도다"). 죄값을 치른다는 것은 은혜다. 다시 살아남을 의미한다. 예수님이 우리의 죄값을 치르고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우리가 어떻게 되었는가? 살아났다. 값을 치르는 것은 다시 나를 살리는 것이다.

10. 요셉이 값을 치르도록 한 행위를 기억하라(24절 "요셉이 그들을 따나가서 울고 다시 돌아와서 그들과 말하다가 ... 시므몬을 끌어내어 그들의 눈 앞에서 결박하고").

11. 얽히고 설킨 문제에 회복은 모두가 자신이 감당해야 할 몫을 제대로 했을 때에 가능합니다. 진정한 용서를 합시다. 진정한 회개를 합시다. 진정한 용서는 이미 용서하과 대화의 자리에 나아가는 것이며, 진정한 회개는 죄값을 치는 것입니다. 이 모두가 그낭할 때 마음의 용서 뿐아니라 몸의 용서도 이루어집니다.

12. 몸과 마음이 모두 용서로 회복되는 한 날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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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절 "때에 요셉이 나라의 총리로서 그 땅 모든 백성에게 곡식을 팔더니 요셉의 형들이 와서 그 앞에서 땅에 엎드려 절하매"
=> "때에" 역사적 만남의 순간이다.
 한 사람은 모진 고생끝에 낙을 찾았고, 한 사람은 혹 하나 떼어내고 편하게 살다가 굶주림 속에서 먹을 것을 찾아 나선 끝에 그들의 만남은 이루어졌다.

7절 "요셉이 보고 형들 줄을 아나 모르는 체하고"
=> 알았으나 모르는체 하였다.
얼마나 그리웠으면, 하나도 잊지 않았을까?
얼마나 보고 싶어 마음에 품었으면, 첫 눈에 그이인줄을 알았을까?
얼마나 사랑했으면 이미 만나기도 전에 마음에 용서를 하였고 지난 일들을 잊어버렸을까?
얼마나 그리웠고, 마음에 품었고, 그리고 이미 용서했기에...

9절 "요셉이 그들에게 대하여 꾼 꿈을 생각하고" "이르되 너희는 정탐꾼들이라 이 나라의 틈을 엿보려고 왔느니라"
=> 요셉의 꿈과 그들을 정탐꾼으로 몰아 세운 관계는 무엇일까? 
 꿈을 생각했는데, 그들을 정탐꾼으로 몰아세웠을까?
  문맥적으로 보면,  형들 스스로 이야기를 풀어 내도록 하는 방법이었다. 요셉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지 않고 현재 형들의 집에 대한 소식을 알아보고자 했다(10절 "그들이 그에게 이르되 내 주여 아니니이다", 11절 "우리는 다 한 사람의 아들로서", 창42:29-36절)

15절 "너희는 이같이 하여 너희 진실함을 증명할 것이라"
16절 "너희 중 하나를 보내어 너희 아우를 데려오게 하고"

18절 "사흘 만에 요셉이 그들에 이르되 나는 하나님을 경외하노니" "너희는 이같이 하여 생명을 보전하라"
=> 왜 이 말씀이 이제야 눈에 돌어왔을까? 한 번도 눈여겨 보지 않았다.
=> 하나님의 방법으로 우리가 이 문제를 해결하자. 하나님의 일하심으로 우리가 이 문제를 접근하자. 나는 하나님의 사람이다. 너희도 하나님의 사람이지 않느냐.
요셉의 진실성을 보다.

21절 "그들이 서로 말하되 우리가 아우의 일로 말미암아 범죄하였도다 그가 우리에게 애걸할 때에 그 마음의 괴로움을 보고도 듣지 아니하였으므로괴로움이 우리에게 임하도다"
=> 형들의 마음이 이전 요셉에까지 미치게 되었다. 요셉과 형들과의 대화에서 해묵은 이전의 감정들이 하나 하나 정리되고 있다. 정리는 요셉이 이미 행한 마음의 용서와 형들이 이전의 일에 대한 회개하는 모습에서 잘 나타나고 있다.
얽히고 설킨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이 무엇인지를 오늘 본문은 우리에 말씀하고 있다.
- 대화하라. 그 자로 나아가라.
- 누구든 먼저 마음에 용서하고 가라. 용서할 마음이 채워지지 않았다면 대화의 자리에 나아가지 마라. 그러나, 대화에 자리에 나아가지 않는 것, 즉 용서하지 않았다는 것을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우리를 용서를 기대하는 것은 혹 무리가 아니겠는가?
- 대화중에 마음에 범죄함이 깨닫게 되거든 회개하라. 마음에 짐을 벗어버리라. 회개는 다른 사람들에게 하는 것이 아니다. 자신에게 하는 것이다. 자신이 회복된다. 온전히 회복된다. 자존감이 살아난다. 자괴감에서 벗어날 수 있다.
- 그에 따른 값을 치를 것이 있다면,  감당하라(22절 "르우벤이... 그러므로 그의 핏값을 치르게 되었도다"). 죄값을 치른다는 것은 은혜다. 다시 살아남을 의미한다. 예수님이 우리의 죄값을 치르고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우리가 어떻게 되었는가? 살아났다. 값을 치르는 것은 다시 나를 살리는 것이다.
- 요셉이 값을 치르도록 한 행위를 기억하라(24절 "요셉이 그들을 따나가서 울고 다시 돌아와서 그들과 말하다가 ... 시므몬을 끌어내어 그들의 눈 앞에서 결박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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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셉과 형들의 만남에서 보는 얽히고 설킨 문제의 해결방법? 복수의 다른 의미 원수와 회복하는 것이다. 진짜 복수를 하라? 어떻게 용서와 회개로...
진정한 용서는 이미 용서하과 대화의 자리에 나가고, 진정한 회개는 죄값을 치는 것. 이 때에 마음의 용서 뿐아니라 몸의 용서도 이루어집니다.
빛오섬삶:한날묵상-창42:6-25
 http://saltandlight21.blogspot.com/2012/02/426-25.html?spref=tw

성경읽기 - 레위기 19-21장

거룩하라~~ 거룩. 


하나님이 거룩함이라. 
우리를 향한 하나님 닮은 거룩은
이웃을 존중하고, 
자연을 아끼는 것으로 
나의 거룩함을 드러내야 합니다.

나아가 이스라엘 공동체가,
온 피조물이 거룩으로 나아가야 하는데 
이스라엘이 주도해야합니다. 


레19-21장

Monday, February 20, 2012

청.매.묵 - 겔 28:1-19절 <두로의 교만과 심판에서 배우다. 무엇이 교만으로부터 나를 지킬 수 있을까? 질문에 답을 찾아서>

한 날 묵상 - 겔 28:1-19절 <두로의 교만과 심판에서 배우다. 무엇이 교만으로부터 나를 지킬 수 있을까? 질문에 답을 찾아서>

1. 인생에서 늘 경계해야 할 것은 "나의 부와 지혜와 총명등 나의 은사는 어디서 왔고, 어디로 가야 하고, 누구를 향해 있어야 하는가?"에 대한 분명한 자신의 답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이러한 질문들은 삶의 실존적인 질문이다.
실존적 질문이라 함은 내 삶과 직접적으로 연관되어 있다는 뜻이며, 이러한 것을 생각하지 않고 살아가면 하나님과 깊은 교제를 나눌 수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2. 나의 은사는 어디서 왔는가?
 두로의 지혜와 총명으로 얻은 재물. 금과 은, 그리고 큰 지혜와 무역으로 얻은 재물은 모둔 하나님의 주신 것이다.
 바로 하나님의 청지기로서의 재물의 은사를 받은 것이다.

3. 나의 은사는 어디로 가야 하는가?
 그렇다면, 나의 재물은 어디에 사용되어야 하는가? 자신의 교만의 앞잡이가 되어서는 안된다.
교만은 폐망의 압잡이다. 폐망의 길에서 지금까지 가졌던 은사들은 장애물이 될 것이며, 더욱 폐망의 늪으로 빠져들게 하는 강력한 힘이 된다.
 나의 은사가 교만으로 흘러갈 때, 폐망하게 되고, 나의 은사 하나님의 선한 일에 사용 할 때, 나의 은사들은 더욱 빛을 발하게 되어 있다.

4. 나의 은사는 누구를 지향해야 하는가?
 당연히 나의 은사는 하나님을 지향해야 한다. 더욱 구체적으로 말하면, 하나님의 영광을 지향하도록 해야 한다.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고 인간들에게 피조물을 다스리고  경작하라고 주신 이유는 다스리고 경작한 열매를 통해 하나님께 기쁨의 찬양을 드리고, 하나님의 영광돌리기 위한 도구로서 인간들에게 피조물의 다스리고 경작할 수 있는 지혜와 총명의 은사를 주셨다.
 나의 은사가 하나님의 영광을 지향하지 않으면 안된다.

5. 나의 은사가 지향하는 것에 있어서 회색지대는 없다. 중간지대는 결코 없다.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고 예수님은 분명하게 말씀하셨다. 중간지대는 괜찮겠다, 적당주의는 괜찮은 신앙생활이라는 세상의 목소리, 시대의 흐름을 흔들리지 말아야 한다.
 오직 한 길, Only one way만 있다.

6. 한편으로 아무생각없이 사는 사람이 있다. 다시 말하면 이러한 질문들을 하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이 있다. 그러나 애석하게 이러한 질문없이 살아가는 삶은 거의 대부분 세상에 물든 삶이다.
 왜냐하면 세상의 문화를 따라가는 삶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세상속에 있다. 세상과 맞서 싸우는 것은 전쟁이다. 결코 쉬운 것이 아니다. 생각하지 않고 노력하지 않고, 전략을 세우지 않으면 지는 것이다. 아니 차라리 져버리면 괜찮다. 실패가 분명하게 드러나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는 것같지도 않고, 세상에 물들어 살아가는 것이 가장 위험한 삶이다. 전투하지 않고 세상에 익숙해져 있기에 더 이상 내 몸이 신앙적 반응을 하지 않게 된다.

7. 삶의 실존적 질문을 하는 사람을 지난 토요일(2012. 2.18) 만났습니다. 바로 이영표 축구 선수였습니다. 이영표 집사님과 나눈 대화를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이영표 집사님은 10년 동안 교회를 다녔습니다. 2001년부터 신앙생활을 했는데, 믿음이 참으로 좋습니다그런데, 늘 생각하던게 있었다고 하더라고요.
 특별히 사우디에서 2년동안 운동하면서 그들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을 품다가 너무 아직 구원을 모르는 사람들이 안타까웠던 것입니다.
 자신은 예수님을 믿어 구원을 선물로 받았는데, 그들은 아직 복음을 들어보지 못해서 구원을 받지 못한 것에 대한 안타까움으로 복음을 들어보지 못한 사람들은 어떻게 구원을 받을 수 있는지에 대해서 안타까운 마음에 대화를 나눈것입니다.
 
그 때 이렇게 말씀드렸습니다. 
 이슬람이나, 다른 종교나, 복음을 전혀 들어보지 못한 사람들이 구원을 받을 수 있는지? 없는지?는 정확히 우리는 알 수 없습니다.
로마서 1장에 보면 이런 말씀이 있다하나님을 알만한 것이 그들 속에 있다그래서 그들은 복음을 듣지 못했어도 구원을 받을 수 있다그런데 우리의 고민이 여기에 그쳐서는 안된다.
이스람이나, 다른 종교나 복음을 듣지 못한 사람들이 구원을 받았느냐? 못받았느냐?”의 질문만 그리스도인들이 하고 있으면 안된다.
우리가 고민하고 질문하고 답을 찾아야 할 것이 있다면, 그것은?
구원에 이르는 유일한 길은 예수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그들에게 전해야 한다.
그것이 한시라도 빨리왜냐하면 구원에 이르는 정답을 우리가 알고 있는데, 가지고 있는데, 그래서 그들에게 그것을 전해 주기면 하면 더 이상의 앞에서의 질문을 필요치 않는데, 왜 우리가 복음을 전하는 일을 지체할 수 있느냐?
복음을 전할 수 있는 길을 찾는 것에 질문하고, 거기에 고민하고, 답을 찾아야 하는 것이 우리가 지금 당장 해야 할 일이라고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8.  앞의 질문들에 답을 하지 못하고, 스스로의 재능에 사로잡히면 교만하여 두로처럼 됩니다. 자신의 정체성을 상실하고, 존재 이유가 빗나가고("죄"와 같음. "죄"는 타겟에서 빗나갔다는 뜻이다), 목적을 상실하게 됩니다.

9. 그런 의미에서 삶은 전쟁입니다. 전쟁이라 생각하지 않으면 맨날 실제적으로 폐배하며 살아가고 있다. "늘 깨어 있으라" 바울의 강조가 여기에 있습니다. 내가 깨어 있지 않으면,  내가 지금 폐배자인지 조차도  모르고 살아갈 뿐이지, 실제로는 폐배자의 인생입니다.

10. 특별히 두로의 심판은 26장-28장까지 세장에 걸쳐 계속되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반복은 중요성을 내포합니다.두로의 심판의 내용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무엇때문에 두로가 심판을 받게 되는지를 알고 그것을 파악하며 나의 삶에 적용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11. 두로의 심판의 언급 무게만큼이나 우리에게 있어서도 두로의 심판 내용은 중요성의 무게가 아주 큽니다.
 오늘 한 날도 두로의 심판이 상징적으로 나에게 어떠한 경고의 메시지를 담고 있는지 기억하면서 늘 세상에 질문하면서 깨어 있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을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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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절 "인자야 너는 두로 왕에게 이르기를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네 마음이 교만하여 말하기를 나는 신이라 내가 하나님의 자리 곧 바다 가운데에 앉아 있다 하도다 네 마음이 하나님의 마음 같은 체할지라도 너는 사람이요 신이 아니거늘"

3절 "네가 다니엘보다 지혜로워 은밀한 것을 깨닫지 못할 것이 없다 하고"
4절 "네 지혜와 총명으로 재물을 얻었으며 금과 은을 곳간에 저축하였으며"
5절 "네 큰 지혜와 네 무역으로 재물을 더하고 그 재물로 말미암아 네 마음이 교만하였도다"

7절 "이방인 곧 여러 나라의 강포한 자를 거느리고 와서 너를 치리니"
8절 "또 너를 구덩이에 빠드려서 너를 바다 가운데에서 죽임을 당한 자의 죽음 같이"

9절 "너를 치는 자들앞에서 사람일 뿐이요 신이 아니라"

12-19절 에덴동산에서 하나님의 정원에서 마음껏 뛰놀다 타락한 인간의 모습을 보게 된다.
12절 "인자야 두로 왕을 위하여 슬픈 노래를 지어 그에게 이르기를"
         "너는 완전한 도장이었고 지혜가 충족하며 온전히 아름다웠다"
15절 "네가 지음을 받던 날로부터 네 모든 길에 완전하더니 마침내 네게서 불의가 드러났도다"
17절 "네가 아름다우므로 마음이 교만하였으며 네가 영화로우므로 네 지혜를 더럽혔음이여 내가 너를 땅에 던져 왕들 앞에 두어 그들의 구경거리가 되게 하였도다"
18절 "네가 죄악이 많고 무역이 불의하므로 네 모든 성소를 더럽혔음이여"
19절 "만민 중에 너를 아는 자가 너로 말미암아 다 놀랄 것임이여 네가 공포의 대상이 되고 네가 영원히 다시 있지 못하리로다 하였다 하라"

성경읽기 - 레위기 16-18장

대속죄일, 일곱째 달 그 달 십일에
모든 사람이 여호와 앞에 모여
정결의 제사를 드려야 합니다.

인생에 한 번은 예수님을 만나야 합니다.
구원에 이르는 유일한 길은
오직 예수 뿐입니다.

생명은 누구에게 소중하지만
특별히 하나님은
하나님의 형상따라 지음받은
사람들이 영원한 생명을
소유하기를 열망하십니다.

늘 하나님의 길을 따라가는
각 사람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레 16-18장

Sunday, February 19, 2012

성경읽기 - 레위기 13-15장

차이와 차별은 크게 다릅니다.

차이는 가진 것이 다르기에 형편에 따라 '
제물을 드리는 것이며,
하나님의 차별은 거룩을 위한 구별,
살리기 위해 정결할 때까지
필요한 한시적 방법으로,

그러나, 이 때에도 조심할 것은
깨어있는 제사장,
기도하는 자가 필요합니다.

레13-15장

Saturday, February 18, 2012

성경읽기 - 레위기 10-12장

하나님을 가까이 하지 않고
거룩함을 원치 말고,
하나님의 영광을 말하지 말자.
먼저 그 분을 가까이하라.

먹을 음식에도 구별이 필요했다.
먹을때마다 하나님을 기억해야 한다.
먹는것은 보는 것부터 먼저 잘 해야한다.
먹을 수있는 것만 보라.

레위기 10-12장

Friday, February 17, 2012

한 날 묵상 - 겔 27:1-36 <두로에 대한 애가. 화려함의 상징인 두로는 화려함이 혼자의 힘으로도 안되기에 결코 자랑치 말아야 함을 깨우쳐 줄 뿐 아니라, 영원하지도 않기에 붙잡아야 할 것이 될 수 없음을 말합니다>

청.매.묵 - 겔 27:1-36
<두로에 대한 애가. 두로가 주는 교훈은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인생이 되라"입니다. 화려함의 상징인 두로는 화려함이 혼자의 힘으로도 안되기에 결코 자랑치 말아야 함을 깨우쳐 줄 뿐 아니라, 영원하지도 않기에 붙잡아야 할 것이 될 수 없음을 말합니다.  두로를 기억할 때 무엇을 화려함을 좇아가는 폐망하는 인생입니다.>

1. 우리에게 자랑할 만한 것이 하나 쯤은 있습니다. 스스로를 그렇게 생각하지 않은 것이 겸손이기에 겸손한 사람은 결코 자랑하지 않지만, 또는 자신이 알지 못할 수도 있지만, 그러나 주변에서 보기에 '저 사람, 저 것만큼은 정말 잘해'라고 말할 수 있는 한 가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2. 이러한 자랑할 만한 것은 사실 결코 혼자서 될 수 없습니다. 내가 어려서부터 스스로 결코 한 것이 아닙니다. 부모의 도움이 있었고, 역사의 도움이 있었고, 사회의 도움이 있었고, 국가의 도움이 있었고, 책의 도움을 받았을 뿐 아니라, 과학의 도움도 받았습니다. 나아가 하나님의 선물이 아니고는 지금의 나는 결코 될 수 없었습니다.

3. 우리가 두로에서 배워야 할 교훈이 있다면, 바로 이런 것입니다. 두로의 화려함은 혼자만의 것이 아니었습니다. 본문에서 주변 나라들을 언급하면서 그들과 함께 지금 화려함을 꽃피웠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4. 그렇기에 두로는 나누었어야 합니다. 함께 공존했어야 합니다. 자신이 가진 것들을 주변 나라들과 공유했어야 합니다. 그래야 오랫동안 자신의 자랑할 만한 것을 유지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교만했습니다.
 스스스 말하기를 2절 "두로야 네가 말하기를 나는 온전히 아름답다 하였도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5. 이러한 상태가 지속되면, 화려함이 변하여 슬픈연가가 됩니다. 하나님의 간섭하심이 아니어도, 물론 특별한 경우에 역사하십니다만, 스스로 무너져 버립니다. 지금 자신의 것을 감사하지 못하고, 나누려 하지 않을 때 스스로 무너지게 되어 있습니다.

6. 두로에서 배워야할 교훈은 무엇일까요?
 1)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두로의 아름다움이 진정 온전하게 된 것은 지으신 이 때문입니다.
  4절 "네 땅이 바다 가운데에 있음이여 너를 지은 자가 네 아름다움을 온전하게 하였도다"
 2) 혼자 홀로 아름다움을 취한 것이 아닙니다. 두로는 이웃 나라와 교역하면서 아름다움을 만들어 갔습니다. 이제 더불어 함께 살아가야 할 이유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 사랑하듯 이웃을 사랑하라"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인생이 가장 아름다운 인생입니다.
 3) 일은 함께 할 때 아름답습니다(이건 제가 잘 못하는 부분입니다. 혼자 편하다 생각하니, 같이 하는 것에 익숙하지 못합니다. 가장 바꾸어야 할 부분입니다. 주님! 내 안의 두로를 버리게 하소서! 아멘.). 삼위일체 하나님을 기억하기 원합니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창1:26)

7. 하나님없는 아름다움은 영원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은 이 땅이 아름다움을 통해 드러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을 비추는 거룩한 몸이 될 때, 그 떄가 가장 아름다울 때입니다.  오늘 하나님이 영광이 나를 통해 드러나는 아름다운 한 날 되기를 기원합니다!

2절 "인자야 너는 두로를 위하여 슬픈 노래를 지으라"
3절 "두로야 네가 말하기를 나는 온전히 아름답다 하였도다"

4절 "네 땅이 바다 가운데에 있음이여 너를 지은 자가 네 아름다움을 온전하게 하였도다"
=> 바로 알았어야 한다.

두로의 화려함이 빛날 수 있던 이유를 알아야 한다. 너 홀로 할 수 없었다.
5-11절 너의 아름다움은 너 혼자의 힘으로 된 것이 아니다. 주변의 도움이 있었다.
12-25절두로의 화려함은 주변 나라들과 함께였을 때이다.
26-36절 자연앞에 너는 아주 연약한 자임을 알았어야 한다.




* 6세기 초의 두로
주전 605년에 이집트가 패한 뒤, 두로는 서아시아에서 바벨론의 주적이었다. 두로는 페니키아에 있던 주요 성읍으로서 해양 무약으로 명성이 높았다.
 본토에서 약 550미터 가량 떨어진 해안에 위치한 이 두로라는 섬과 그 항구는 장기적인 공성 공격 외에는 어떤 도전에 대해서도 안전했다. 무거운 화물선이 접안하여 하역하기에 충분할만큼 수심도 깊었다. 상업 활동에 전념하고 있던 두로에 양식과 그 밖의 생필품들을 댄 것은 우슈라는 자매 성읍이었다.
 두로의 함대들은 구브로와 북아프리카의 카르타고와 같은 지중해 지역에 식민지들을 두로 확보하여 특히 금속류와 같은 자원을 공급받았고, 동지중해와 서지중해 사이에서 물품을 교역하는 역할을 감당했다. 이 지경 전반에서 페니키아식 금속 공예와 도자기류가 발굴되고 있는 것은 그들이 무역 관계를 얼마나 광범위하게 오랫동안 지속했는가를 짐작하게 해준다.
 주요 수출품목은 백향목과 옷감, 염료 및 유리 제품이었다.
 요세푸스에 따르면, 두로와 그 왕 에트바알 3세는 바벨론에 대항하는 수많은 동맹과 음모들에 가담했다.

성경읽기 - 레위기 8-9장

제사장은 거룩으로 자신을 가득채워야 합니다.
이제 그 거룩이 온전한 제사를 위한 기초가 됩니다. 
말씀 선포자로 서는 나에게 예배는 기초는 지속적 거룩이다.
제물을 온전히 불살라 향기로운 제사를 드리듯,
내 자신을 성령의 불로 태워야합니다.

레8-9장

성경읽기 - 레위기 5-7장

정직도 예배입니다.
거룩도 예배입니다.
정결도 예배입니다. 
온 맘 다해 예배함은 외적인 차이에서 오지 않습니다.
온 맘 다해 주사랑은 주일 예배 한 시간이 전부가 아닙니다.
번제 소제 화목제 속건제 속죄제의 예배는 단 하나,
나를 희생하는 예배입니다.

레5-7장

Wednesday, February 15, 2012

한 날 묵상 - 창42:1-5 <이번에가 애굽으로 내려가야 할 때입니다. "애굽의 이야기" 새로운 이야기, 강 밑바닥을 흐르고 있는 강의 흐름을 이제야 드러나, 방향을 알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요셉을 통해서 이루시고자 하시는 또 다른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바로 "애굽이야기"(창41장 - 출14장)입니다.

1. 먼저, 이번 기근은(5절 "가나안 땅에 기근이 있음이라") 이전의 기근(창12장 10절 "그 땅에 기근이 들었으므로", 창26장 1절 "흉년이 들매 이삭이 그랄로 가서 블레셋 왕 아비멜렉에게 이르렀더니", 2절 "여호와께서 이삭에게 나타나 이르시되 애굽으로 내려가지 말고"과 달랐습니다.

2. 아브라함은 기근 때문에 애굽으로 내려가 곤란한 일을 당합니다.

3. 이삭은 그랄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애굽으로 내려가지 말함을 듣고 그랄에 거주하게 됩니다.

4. 야곱은 요셉의 형들을 애굽으로 보냅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다릅니다. 왜냐하면 이미 애굽에 요셉이 총리로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이미 강 밑바닥 강의 흐름으로 통해서 강줄기의 방향을 이끌어가고 계셨습니다.

5. 지금은 내려가야만 합니다. 두려움과 떨림이 있을지라도 내려가야만 합니다. 우리가 어떨 때 똑같은 상황을 만났지만 전혀 다른 일처리를 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반대로 하면 안됩니다. 해야 할 때는 안하고, 하지 말아야 할 때 하면 안됩니다.

6. 그럼 어떻게 정확히 해야 할 때와 하지 말아야 할 때를 구별할 수 있을까요? 질문에 정답은 쉽습니다. 하나님이 가라 하시면 가고, 가지 말라 하지만 가지 않는 것입니다.

7. 하나님은 애굽을 결코 내려가지 말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아직 때가 되지 않았기 때문에 가지 말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분명한 것을 보여주실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 때가 되지 않았다면 가지 말아야 합니다. 가야 할 때가 분명히 찾아 옵니다. 더욱 자신을 준비시키고 자신을 갉고 닳아 쓰임받을  준비를 합시다.

8. 준비에는 진정한 노력이 필요합니다. 진정한 노력은 자신을 감동시키는 것입니다. 조정래는 "최선을 다했다는 말을 함부로 쓰지 마라. 최선이란 자기의 노력이 스스로를 감동키실 수 있을 때 비로서 쓸 수 있는 말이다"라고 했다.

9. 준비되었다면, 결단해야 합니다. 행동하지 않는 준비나 좋은 생각들은, 의미있는 결단은 아무런 열매가 없습니다. 열매를 원한다면, 지금 애굽으로 내려가야 합니다.

10. 오늘도 내일을 준비합시다. 오늘 최선을 다하는 것이 오늘을 이기는 방법이며, 내일을 준비하는 것입니다. 준비가 되었다면 결단합시다. 실천하십시다. 믿음은 변화를 수용하며 실천할 때 성숙합니다. 하나님은 그곳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1절 "그 때에 야곱이 애굽에 고식이 있음을 보고 아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어찌하여 서로 바라고만 있느냐"
2절 "너희는 그리고 가서 거기서 우리를 위하여"
=>
1. 거기로 가는 것을 두려워하지 맙시다. 거기는 우리를 위하여 놀라운 예비가 있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이 그곳을 평탄케 하시고,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 놓으셨습니다. 거기로 가야 합니다.

3. 거기로 가는 것은 두려운 길이며 힘든 길(5절 야곱은 그 길이 두려움이 있는 길일지도 모른다면서 베냐민은 보내지 않았다)일지라도 가야 합니다. 두려움 때문에 가지 않는다면 거기서 누릴 복을 맛볼 수 없게 됩니다.

4. 그러니 이제 가십시오. 거기 가서 축복을 누리십시오.

3절 "요셉의 형 열 사람이 애굽에서 곡식을 사려고 내려갔으나"
=>
1. 거기로 누가 내려갔습니까? 요셉이 형이 내려갔습니다. 요셉이 있는 곳에 요셉이 형들이 내려갔습니다.

2. 왜 우리가 내려가야 합니까? 우리는 하나님이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가 하나님이 예비 놓으신 은혜의 곳으로 내려가는 것입니다.

3. 하나님의 자녀로 다른 곳에 가지 마십시오. 악과 죄가 있는 곳은 하나님의 자녀가 가야 할 곳이 결코 입니다.

4. 하나님의 자녀는 내려가야 할 길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예비해 두신 곳으로 가야 합니다.

4절 "야곱이 요셉의 아우 베냐민은 그의 형들과 함께 보지 아니하였으니"
       "그의 생각에 재난이 그에게 미칠까 두려워함이었더라"
5절 "가나안 땅에 기근이 있음이라"


성경읽기 - 레위기 1-4장

이스라엘의 제사는
정성이며 결코 쉽지 않아 보입니다.
그렇듯 마음이 문제이겠지요!
물론 은혜는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선물입니다.

우리는 너무 쉬운 예배를 드리거나
자신을 전부 태우지 않는 소제없는,
정성없는 헌신을 가장한 예배를 드립니다.

예배는 준비부터,
순간 순간 흠이 없고,
허황된 누룩을 경계하고,
한결같이 소금을 치듯하여,
거룩이 이를때까지
온 마음으로 드려야 합니다.

그때에도 은혜는 선물입니다.

레위기 1-4장

성경읽기 - 출애굽기 39-40장

제사장의 옷에 이스라엘 열두지파의 이름이 주렁주렁 달렸습니다.
무슨 의미일까요?

거룩을 입은 제사장이
거룩함을 온 백성 12지파에게 흘러 보내기 위함입니다.

제사장은 늘 그들을 늘 기억해야 합니다.
그들이 거룩하도록....

목회자인 나의 음성에 나의 양들의 이름이,
그들이 이름이 있기를 원합니다.

성전의 아름다움은, 교회의 아름다움은
창조와 같은 아름다움은
사람의 수고와 헌신을 통해 이루어져갑니다.

교회에, 예배에, 그곳 어디든지,
이제 거룩, 말씀, 이루어짐이 있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출애굽기 39-40장

Tuesday, February 14, 2012

성경읽기 - 출애굽기 36-38장


하나님이 명령하신 대로 하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일은 결코 부족함이 없다록 넉넉하도록 할 때 기쁨이 넘칩니다.
 이 때의 "부족함이 없고 넉넉하도록"이 바른 의미는 스스로에 대한 마음입니다. 마음이 넘치면 결코 하나님의 일에 쓸 것에 부족함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일에는 순서가 있습니다.
 먼저, 주님의 희생을 통해 죄의 문제에 깨끗하십시오!
 나아가, 날마다 회개함으로 내 삶을 정결케 하십시오!
 마지막으로, 하나님의 일을 하라!
이 때 시작해도 결코 늦지 않습니다.

출 36-38장

성경 해석자를 양육하기 - 국제제자훈련원 리더십 네트워크 609호



 교회의 리더이며 또한 목회자라면 스승의 마음이 아니라 아버지의 마음으로 성도들을 양육하겠노라고 결단하는 것이 마땅합니다(고전 4:15).
 그리고 아버지라면 아이에게 생선을 주기보다 고기 잡는 법을 가르쳐야 한다는 데에 이의를 제기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정작 자기가 섬기는 성도들에게 성경의 말씀을 일일이 해석하고 가르치기는 하여도 그들로 하여금 직접 말씀을 해석할 수 있는 능력을 갖도록 훈련하지는 않는 목회자가 많습니다. 그러다보니 교인들은 같은 본문을 가지고 다른 설교자가 다른 관점으로 설교하는 것을 들으면 그것을 통해 본문이 가진 풍부한 영적 양식을 깨닫기보다는 혼란을 느끼고, 목회자가 미리 일일이 가르쳐주지 않으면 주일학교 공과를 미리 준비하는 것마저도 힘들어합니다.

 물론 특별한 훈련을 받지 않더라도 쉽게 사용할 수 있는 묵상용 교재나 성경공부 교재가 시중에 나와 있으니 평신도들에게 성경을 해석하는 훈련을 제공하지 않아도 충분히 성경을 묵상할 수 있지 않느냐고 반문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교재들은 대부분 성경본문을 읽기만 하면 쉽게 답할 수 있는 문제들을 몇 개 던진 후에 곧 “이 본문이 나에게 말하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질문, 다시 말해, “내가 이 본문을 읽을 때, 그것은 내 안에서 어떤 생각이나 느낌을 자극하는가?”라는 주관적인 형태의 질문을 던지곤 합니다.
 결국 이런 교재에만 의존하는 것은 성경이 무엇을 말하든 간에 읽는 사람이 편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메시지를 찾아내는 것이 성경공부라고 생각하게 만듭니다.

 이는 모든 성도들을 성경전문가로 키워야 한다는 말이 아닙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이미 거룩한 제사장이며 중간에 개입하는 전문가가 없이도 얼마든지 하나님과 그 분의 계시 앞에 나아갈 수 있는 권세를 부여받았습니다. 그러나 이 권세를 가졌다고 해서 자기 주관적인 느낌으로 사도와 선지자들의 목소리를 압도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성경의 권위를 믿는다면, 그리고 이 말씀이 모든 이에게 필요하고 적합함을 믿는다면 더욱 성경을 해석하는 훈련을 받아야 하고, 또한 다른 성도들이 이런 훈련을 받도록 독려해야 합니다.

 성도들을 성경해석자로 양육한다는 것은 “이 본문이 지금 나에게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에 관심을 갖기 전에 “이 본문이 원래 무엇을 의미했던 것인가?”에 먼저 관심을 갖게 한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그 “원래 의미”가 있기 때문에 이 본문을 내 입맛에 맞게 적용할 수 없음을 인정하는 사람을 만든다는 뜻입니다. 마치 식사시간에 자기 입맛에 맞지 않는 야채들을 하나하나 골라내는 아이들과 같이 성경 가운데 자기 입맛에 거슬리는 본문을 건너뛰거나 마음대로 적용하려는 마음을 제거한다는 뜻입니다. 이를 통해서 말씀을 통하여 일하시는 성령께서 성도들의 마음과 삶 속에서 마음껏 일하실 수 있게 모든 것을 내어드리는 성도를 만든다는 뜻입니다. 이것이야말로 성도들을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사는 사람들로 만드는 것이며, 하나님을 진정으로 믿는 사람으로 양육하는 길입니다.


이는 다니엘 도리아니의 <해석, 성경과 삶의 의미를 찾다>의 서론을 각색한 글입니다.

파온글. http://www.disciplen.com/resource/mail/now2.asp?m_mode=rn&v_msid=2786&m3_No=2&page=1

Monday, February 13, 2012

청.매.묵. 에스겔 26:1-21 <두로의 멸망. 영원할 것 같은 피조물은 없습니다. 세상을 호령하던 두로는 자신이 피조물임을 망각하고 하나님의 자녀인 이스라엘을 우숩게 여기었습니다. 그래도 유다는 하나님이 택한 민족입니다. 두로는 이제 호령하던 곳에서 가장 평범한 사람들이 되어서 이방인의 웃음거리가 되었습니다.>

청.매.묵. 에스겔 26:1-21 <두로의 멸망. 영원할 것 같은 피조물은 없습니다. 세상을 호령하던 두로는 자신이 피조물임을 망각하고 하나님의 자녀인 이스라엘을 우숩게 여기었습니다. 그래도 유다는 하나님이 택한 민족입니다. 두로는 이제 호령하던 곳에서 가장 평범한 사람들이 되어서 이방인의 웃음거리가 되었습니다.>

 오늘 어깨를 펴고 하나님의 자녀됨을 회복합시다. 그 하나만 있으면 세상은 우리를 결코 우숩게 볼 수 없습니다.

2절 "인자야 두로가 예루살렘에 관하여 이르기를 아하 만민의 문이 깨져서 내게로 돌아왔도다 그가 황폐하였으니 내가 충만함을 얻으리라 하였도다"
=> 세상 어느 누구도, 우리를 어떻게든 우습게 볼 수 없습니다.
 우리의 정결과 거룩을 위한 그들이 일시적 가시일 뿐입니다. 그들이 자신의 신분을 알지 못하고 우리를 우숩게 보는 경우가 많습니다.
 전부 우리의 잘못입니다. 우리 스스로 차조한 일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회개하고 돌아올 때, 결코 그들은 우리를 우숩게 볼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가시가 되도록 두로를 사용하신 분은 나의 아버지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두로는 도구일 뿐입니다. 결코 우리를 우숩게 볼 수 있는 자들이 아닙니다.
 우리가 회개하고 돌아오기를 기다리시는 아버지의 마음을 읽어야 합니다.

5절 "바다 가운데에 그물 치는 곳이 되게 하리니 내가 말하였음이라"
       "그가 이방인의 노략거리가 될 것이요"
=> 우리를 우숩게 여기던 그들이 이제 우숩게 되었습니다. 바다를 호령하던 자들이, 바다 한가운데에서 그물 치는 곳이 되어습니다. 그들의 화려함이 없어지고, 이제는 평범한 자들이 되었습니다.
 자기의 분수를 알고 자리를 지킬 때에야 은혜가 지속됩니다. 조금이라도 자신의 위치를 벗어나려 할 때 둑에 작은 구멍이 생겼다는 표시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17절 "그들이 너를 위하여 슬픈 노래를 불러 이르기를 항해자가 살았던 유명한 성읍이여 너와 너의 주민이 바다 가운데 있어 견고하였도다 해변의 모든 주민을 두렵게 하였더니 어찌 그리 멸망하였는고"
 영원할 것 같았던 두로. 그러나 그 때도 마지막이 있습니다. 주 하나나님외에는 영원한 것은 어느 것도 없습니다. 오직 주의 말씀만 영원하합니다.
 영원할 것을 붙잡습니다. 안개처럼 사라져 버릴 것을 애써 잡으려 하지 맙시다.
 이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은 헛된 것들입니다.
 우리를 위하여 존재하고 다스리며 가꾸어 후대에 아름답게 전수해 주어야 할 것이지, 결코 우리가 붙들고 매여 있어야 할 것이 아닙니다.
 주변 모든 나라들이 두로의 멸망을 보고 의아해 했지만, 이 땅의 피조세계는 이게 현실입니다.
두로가 존재하는 것만으로 주변 주민들을 두렵케 하였지만, 그들의 역사도 이제 끝이 나게 되었습니다.

성경읽기 - 출애굽기 34-35장

두번째 기회를 주시는 은혜, 회개하고 일어납시다.
질투하시는 하나님. 질투하실만 하십니다.
진실로 그만큼 사랑했습니다.
질투할만 한 사랑을 해보라.
진실한 사랑을 해야 질투가 생김을 체험케됩니다.
지혜로운 마음을 충만케 하십니다.
자원하십시요.
출34-35장

성경읽기 - 출애굽기 31-33장

감당할 일을 주시고 할 수있는 지혜를 주시니
하나님은 젠틀한 분이십니다.
주일을 온전히 지킴은
나를 거룩하게 하는 방법입니다. 
인간에게 있는 종교성이 선하게 역사하지 않으면
악의 수렁으로 빠지게 됩니다.
주일 아침 선한 예배를 드립시다.
출31-33장

Saturday, February 11, 2012

한 날 묵상 - 창41:46-57 <삼십 세 청년 요셉 바로 앞에 서 애굽의 총리가 되다. 총리로서 하나님의 마음을 품고 모든 창고를 열고 백성을 섬기다>

한 날 묵상 - 창41:46-57 <삼십 세 청년 요셉 바로 앞에 서 애굽의 총리가 되다. 총리로서 하나님의 마음을 품고 모든 창고를 열고 백성을 섬기다.>

 항상 낮은 자리에 있어 높은 위치에서 어떻게 살아야할 지를 모를 수 있는 요셉이었지만, 총리로서도 그는 하나님의 마음을 품고 백성을 섬길 줄 알았습니다.


46절 "요셉이 애굽 왕 바로 앞에 설 때에 삼십 세라"
=> 요셉이 수 많은 고난을 겪을 때가 청년의 때였다.

* 요셉의 청년과 나의 청년의 시기를 비교해 보자.
청년 요셉
- 하나님이 주신 꿈을 위해 오직 말씀만 주인으로 삶다.
나의 청년
- 오래참기 힘들다. 즉흥적이다. 쉽게 포기하다.

* 무엇으로 그의 행실을 깨끗하게 할 수 있을까?
시편 119편 9절 "청년이 무엇으로 그의 행실을 깨끗하게 하리이까 주의 말씀만 지킬 따름이니이다"
전도서 12장 1-2절 "너는 청년의 때에 너의 창조주를 기억하라 곧 곤고한 날이 이르기 전에, 나는 아무 낙이 없다고 할 해들이 가깝기 전에 해와 빛과 달과 별들이 어둡기 전에, 비 뒤에 구름이 다시 일어나기 전에 그리하라"

47절 "일곱 해 풍년에 토지 소출이 심히 많은지라"
48절 "...각 성에 저장하되..."
53절 "애굽 땅에 일곱 해 풍년이 그치고"
54절 "각국에는 기근이 있으나 애굽 온 땅에는 먹을 것이 있더니"
55절 "애굽 온 땅이 굶주리매 ... 양식을 구하는지라 ... 요셉에게 가서 그가 너희에게 이르는대로 하라"
56절 "요셉이 모든 창고를 열고 ..."
=> 총리로서도 겸손하게 섬길 줄 알다.

성경읽기 - 출애굽기 25-30장

성막짓기는 화려함이 아닌
내실입니다.

하나님을 만나는 삶의 생활방식으로 성소를 지어야 합니다.
하나님 없는 성소,
하나님과 교제 없는 성소는 무용지물입니다.

성소의 모든 것은 하나님과 나와의 만남을 위한 것입니다.
우리는
교회를,
내 마음의 성전을
지금 어떻게 지어가고 있습니까? 
거룩을 위한 도구입니까?
아니면,
보여주기 위한 화려함입니까?

내실입니까, 화려함입니까?

출25-30장

Friday, February 10, 2012

청.매.묵. 에스겔 25:1-17 <"그러므로.. 그 후에 너희가 알리라" 암몬, 모압, 세일, 에돔, 그리고 블레셋도 하나님의 역사안에서 심판을 받게 됩니다. 오늘의 역사를 보고 그 안에서 하나님을 볼 수 있다면, 그게 바로 은혜입니다.>

청.매.묵. 에스겔 25:1-17 <"그러므로.. 그 후에 너희가 알리라" 암몬, 모압, 세일, 에돔, 그리고 블레셋도 하나님의 역사안에서 심판을 받게 됩니다. 오늘의 역사를 보고 그 안에서 하나님을 볼 수 있다면, 그게 바로 은혜입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말씀으로 세상을 운행하십니다.>

"그러므로.. 그 후에 너희가 알리라"
"여호와의 말씀으로 하늘이 지음이 되었으며 그 만상을 그의 입 기운으로 이루었도다"(시편 33:6, 9; 참고 히11:3).

 하나님이 창조 시 맺은 언약은 대체로 순종하면 축복이 임하고, 불순종하면 심판이 따른다는 것이다(신 30:15-20).
 이 말씀에 예외는 없다. 세상의 모든 나라와 민족은 창조시 맺은 하나님의 언약안에 있다.
유다의 심판에 쓰임받았던 민족들, 그리고 그 때의 웃음이 변하여, 그들도 그들의 불순종에 심진멸될 것을 에스겔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예언하고 있다.

---구약탐험. 디모데. p752 ---
바벨론이 예루살렘을 포위하기 시작했고 예루살렘은 곧 멸망하게 될 것이다. 그래서 에스겔은 이제 주변 국가들에게로 관심을 돌려 말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의 죄 때문에 그들을 남겨두지 않으신다면 그 주변 국가들이 어떻게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있다는 소망을 가질 수 있겠는가?
 하나님의 심판이 유다에서부터 사방에 있는 나라들로 확대되어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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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암몬이 받을 심판
1절 "네 얼굴을 암몬 족속에게 돌리고 그들에게 예언하라"
=> 얼굴을 돌려

2절 "너희는 ... 내 성소가 더립힘을 받을 때에 .. 이스라엘 땅이 황폐할 때에 ... 유다 족속이 사로 잡힐 때에 네가 그들에 대하여 이르기를 아하 좋다 하였다도"
3절 "그러므로 내가 너를 동방 사람에게 기업으로 넘겨 주리니 ... 그들이 .. 네 열매를 먹으며 네 젖을 마실지라"

5절 "내가 여호와 인줄을 너희가 알리라"

6절 "네가 이스라엘 땅에 대하여 손뼉을 치며 발을 구르며 마음을 다하여 멸시하며 즐거워하였나니"
7절 "그런즉 내가 손을 네 위에 펴서 너를 다른 민족에게 넘겨 주어 ... 내가 주 여호와인 줄을 너희가 알리라 하셨다 하라"

* 모압과 세실이 받을 심판
10절 "암몬 족속과 더불어 동방 사람에게 넘겨 주어 .. 다시는 이방 가운데서 기억되지 아니하게 하려니와"
11절 "내가 모압에 벌을 내리리니 내가 주 여호와인 줄을 너희가 알리라"

* 에돔과 블레셋이 받을 심판
12절 "에돔이 유다 족속을 쳐서 원수를 갚았고 원수를 갚음으로 심히 범죄하였도다"
13절 "내가 내 손을 에돔 위에 펴서 ... 황폐하게 하리니... 칼에 엎드러지리라"
14절 "내가 내 백성 이스라엘의 손으로 내 원수를 에돔에게 갚으리니 ..."
15절 "블레셋 사람이 옛날부터 미워하여 멸시하는 마음으로 원수를 갚아 진멸하고자 하였도다"
16절 "내가 불레셋 사람 위에 손을 펴서 .. 진멸하되"
17절 "분노의 책벌로 내 원수를 그들에게 크게 갚으리라 ... 내가 여호와인줄을 그들이 알리라"


성경읽기 - 출애굽기 19-24장

하나님은 지나치리 만큼
거룩, 성결을 말씀하십니다.

이게 귀찮니즘입니까?

아닙니다.

하나님의 소유와 백성이 되기원한다면,
이건 자연스러움입니다.
거룩과 성결이
자연스러움이 될 때,
율법은 내게 너무 잘 어울리는
옷이 됩니다.

오늘 옷맵시 기대합니다.

출애굽기 19-24장

Thursday, February 9, 2012

한 날 묵상 - 창41:40-45 <하나님의 크나 큰 역사, 가나안 구원의 길을 여는 역사의 시작>에 철저히 쓰임 받은 요셉을 보라!


한 날 묵상 - 창41:40-45 <하나님의 크나 큰 역사, 가나안 구원의 길을 여는 역사의 시작에 철저히 쓰임 받은 요셉을 보라!  고센 땅에서 출애굽할 때까지 구별되어 하나님의 백성의 정체성을 유지할 수 있는 길을 열어 주는 자가 되다.>

40절 "너는 내 집을 다스리라"
41절 "바로가 또 요셉에게 이르되 내가 너를 애굽 온 땅의 총리가 되게 하노라 하고"
42절 "자기의 인장반지 ... 세마포 옷 ... 금 사슬 목에 걸고"
43절 "버금 수례에 그를 태우고 무리가 그의 앞에서 소리 지르기를 엎드리라 하더라"
=> 하나님의 꿈(v37-40. 하나님의 영광이 만방에 선포됨)을 이루어짐을 통해, 요셉의 꿈(창28:10-22절)도 이루어집니다.
         "바로가 그에게 애굽 전국을 총리로 다스리게 하였더라"
=> 느낀점...
 읽으면서 흥분이 된다. 어찌 마음이 요동치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하나님께서 요셉을 이렇게 사용하시다니.
 놀랍다. 하나님의 눈에 벗어나 있는 자는 아무도 없다. 그가 종이 되었을 때에도, 옥에 갇혀 있을 때에도, 억울한 누명을 쓸 때에도 하나님의 눈에 여전히 요셉이 있었다.

44절 "애굽 온 땅에서 네 허락없이는 수족을 놀릴 자가 없으리라 하고"
=> 요셉의 영향력은 대단하다. 이토록 애굽 땅에서 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니..

어느 정도 였는가?
출 1장 8절을 보면, "요셉을 알지 못하는 새 왕이 일어나 애굽을 다스리더니"
=> 바로 요셉을 전혀 알지 못하는 새 왕이 일어날 때까지 요셉의 영향력은 계속 되었다.

그렇다면, 얼마동안 요셉의 당대에 영향을끼쳤는가?
애굽에서 종살이하던 기간이 430년이었다.

 출12:40-41절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에 거주한지 사백삼십년이라 사백삼십 년이 끝나는 그 날에 여호와의 군대가 다 애굽 땅에서 나왔은즉"
 이 기간 동안 이스라엘 백성은 종이었지만, 애굽의 주인이었다. 지역적으로 변방인 고센 땅에 거하였지만, 그들의 영향은 애굽의 중심이었다.
  430년 동안 75명의 사람이 20세 이상 계수된 인원만 육십만 삼천오백오십명(민1장46절)이었다. 족히 이백만 이상의 대가족이 되어서,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하나님의 크나 큰 역사의 시작은 어디서부터 인가?
 바로 요셉의 꿈이었다. 요셉의 꿈은 하나님의 꿈이셨다. 요셉은 자기의 꿈을 자기의 야망으로 보지 않았고, 하나님의 꿈이 이루어질 통로로 철저히 보았다. 그래서 그는 인내했고, 준비했고, 하나님의 영이 충만할 때까지 훈련했다. 하나님의 때에 그는 충만한 하나님의 영과 지혜로 열방이 하나님께 영광돌리도록 쓰임받은 하나님의 신실한 도구가 되었다.

45절 "요셉의 이름을 사브낫바네아라 하고 또 온의 제사장 보디베라의 달 아스낫을 그에게 주어 아내로 삼게 하니라"
 => 요셉의 한계. 요셉의 쓰임은 여기까지. 길을 여는 자로 쓰임받데, 예수님의 족보(마1장2절. "야곱은 유다")에는 들지 못함.
 여호와 하나님의 계획은 알았지만, 철저히 자신이 감당해야 할 몫에서까지 충실히 감당함.
  자신이 감당해야 할 선을 넘지 말자. 철저히 하나님의 뜻안에서 감당하자.
  * 디모데후서 2장 20-21절
 "큰 집에는 금 그릇과 은 그릇뿐 아니라 나무 그릇과 질그릇도 있어 귀하게 쓰는 것도 있고 천하게 쓰는 것도 있나니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준ㅂ함이 되리라"
  * 예레미아 18장 1-6절
 "진흙과 토기장이"

성경읽기 - 출애굽기 13-18장

구별하라,구별하라, 내 입에 말씀이 떠나지 않게하라.

불기둥, 구름기둥, 신뢰하라. 눈을 들어 주되심을 보라.

시험지를 받아든 백성, 고비고비마다 시험하고 말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진실하며 불의한 이익을 미워하는 자 누구인가?

(출애굽기13-18장)

Wednesday, February 8, 2012

청.매.묵. 에스겔 24:15- 27 <'눈'에 '기뻐하는 것'을 잃어도 슬퍼하지 못할 때가 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눈'에 '기뻐하는' 예루살렘 성전이 멸망되고 남은 자들이 죽음을 당하여도 결코 슬퍼할지 못할 것입니다. 이보다 더 큰 충격이 어디있을까요? 있다 사라져 버릴 '눈'에 '기뻐하는' 무엇을 좇는 인생이 아니라, 하나님을 인정하는 삶이 '눈'에 '기쁨'이 되는 인생이기를 소망합니다>

청.매.묵. 에스겔 24:15- 27 <'눈'에 '기뻐하는 것'을 잃어도 슬퍼하지 못할 때가 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눈'에 '기뻐하는' 예루살렘 성전이 멸망되고 남은 자들이 죽음을 당하여도 결코 슬퍼할지 못할 것입니다. 이보다 더 큰 충격이 어디있을까요? 있다 사라져 버릴 '눈'에 '기뻐하는' 무엇을 좇는 인생이 아니라, 하나님을 인정하는 삶이 '눈'에 '기쁨'이 되는 인생이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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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에 '기뻐하는 것'을 잃어도 슬퍼하지 못할 때는 온다 '눈'에 '기뻐하는'것을 좇는 않고, 여호와를 인정하는 일에 '눈'이 가는 한날 되기를 기원합니다 하나님의 눈으로 볼때 모든게 기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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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탐험 pp751-752.
 가슴이 미어지는 아내의 죽음을 경험하면서 에스겔은 포로가 될 유대인들이 느끼게 될 내적인 고통을 표현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아내의 비참한 죽음을 알리시면서 그 죽음을 슬퍼하거나 애통해하지 말 것을 명하셨다. 그래서 상실의 고통을 안으로만 느끼고 간직하고 있어야 했다.
 포로 생활을 하던 에스겔의 행동에 중요한 의미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 그 뜻을 물었다. 그는 자기 아내의 죽음은 하나님의 성전의 멸망과 포로 생활하는 그들이 살아하던 예루살렘에 남아 있는 사람들의 죽음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설명해 주었다.
 에스겔의 그의 '눈'의 '기뻐하는' 아내를 잃었다(24:16). 포로 생활을 하는 사람들은 그들 '눈'의 '기뻐하는' 예루살렘을 잃게 될 것이다.
 그 재난이 너무나 놀라워서 어떤 슬픔의 표현도 그저 무색하게 보일 것이다. 그들은 슬퍼하면서 자기들의 죄로 쇠폐하여 피차 바라보고 탄식하게 될 것이다. 그 재난으로 포로 생활을 하는 모든 사람들은 큰 충격을 받고 여호와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이다.
"때로 하나님께서는 보다 큰 목적을 이루시기 위해 개인의 재난을 사용하기도 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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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절 "내가 네 눈에 슬퍼하거나 울거나 눈물을 흘리거나 하지말며"
17절 "죽은 자들을 위하여 슬퍼하지 말고 조용히 탄식하며 ..."
=> 슬퍼하거나 울지도 못할 탄식.

18절 "저녁에 내 아내가 죽었으므로 아침에 내가 받은 명령대로 행하매"


21절 "너는 이스라엘 족속에게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내 생서는 너희 세력의 영광이요 너희 눈의 기쁨이요 너희 마음에 아낌이 되거니와 내가 더럽힐 것이며 너희의 버려 둔 자녀를 칼에 엎드러지게 할지라"

22-23절 "입술을 가리지 아니하며 사람의 음식물을 먹지 아니하며 수건으로 머리를 동인 채, 발에 신을 신은 채로 두고 슬퍼하지도 아니하며 울지도 아니하며 죄악 중에 패망하여 피차 바라보고 탄식하리라"

24절 "이같이 에스겔이 너희에게 표징이 되리니" "내가 주 여호와인 줄을 너희가 알리라 하라"
=> 이스라엘 백성의 표증이 되다. 아내가 죽어도 슬퍼하며 울지 못하며, 탄식하지 못하는 이스라엘 백성들.

25절 "내가 그 힘과 그 즐거워하는 영광과 그 눈이 기뻐하는 것과 그 마음이 간절하게 생각하는 자녀를 데려가는 날"
27절 "너는 그들에게 표징이 되고 그들은 내가 여호와인줄 알리라"


성경읽기 - 출애굽기 7-12장

호흡척척, 하나님과 모세.
우리는 하나, 말씀과 순종.

여호와께서 완악한 마음을 품게 하신 바,
기적도 소용없는 고집불통의 열리지 않는 완강한 마음의 바로.

구별의 절정을 이룬 유월절 어린양의 피가 구별한 이스라엘과 애굽.

난, 난, 난,
모세일까?
바로일까?

(출애굽기 7-12장)


* 출 14장 10-31절 - 구원을 이루시는 사랑 
이스라엘 백성들
- 두려움. 여호와께 부르짖고
- 원망.
- 진퇴양난의 시기에, 바다가 육지라면 좋겠다. 
이 때, 뒤돌어서지 않아야 합니다. 


제목:돌아 서지 않으리(No Turning Back)
주님 뜻대로 살기로 했네... x 3
뒤돌아 서지 않겠네 x 2
이세상 사람 날 몰라줘도...x 3
뒤돌아 서지 않겠네 x 2
세상등지고 십자가 보네...x 3
뒤돌아 서지 않겠네..x 2

어떠한 시련이 와도 수많은 유혹속에도
신실하신 주님 약속 나 붙들리라
세상이 이해 못하고 우리를 조롱하여도
신실하신 주님 약속만 붙들리다
결코 돌아서지 않으리

- 따라서, 사람이 할 수 없는 장애가 있음을 인정하라. 
- 하나님의 구원은 놀라운 것이다. 
  못하실 일이 없다. 
  인간의 상식을 초월한 방법으로 일하신다. 
- 하나님의 기적을 체험할 기회이다. 
- 두려워 말고 가만히 서 있어라. v14절. 믿음으로 굳게 서서 굳게 서 있으라. 
- 뒤를 향해서는 싸우고, 앞으로는 길을 열겠다. 

Tuesday, February 7, 2012

한 날 묵상 - 창41:37-40 <꿈이 이루어진다. 그러나 이건 요셉의 꿈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꿈이었습니다. 물론 요셉의 꿈도 이루어졌습니다. 요셉의 꿈은 하나님의 꿈의 덤이었습니다. 하나님의 꿈의 덤으로 오는 게 우리의 꿈입니다.>

한 날 묵상 - 창41:37-40 <꿈이 이루어진다. 그러나 이건 요셉의 꿈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꿈이었습니다. 물론 요셉의 꿈도 이루어졌습니다. 요셉의 꿈은 하나님의 꿈의 덤이었습니다. 하나님의 꿈의 덤으로 오는 게 우리의 꿈입니다.>

 꿈은 이루어진다. 그런데 이게, 요셉의 꿈이었을까요? 아닙니다. 이건 바로 하나님이 꿈(38-39절)이었습니다.
 하나님의 꿈을 위해 요셉이 지금까지 인내하며, 하나님의 때에 쓰임받기 자신을 갈고 닭아, 하나님의 지혜와 영이 충만(38-39절)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우리도 꿈을 꿉시다. 나의 꿈이 아니라, 하나님의 꿈을 꿉시다. 아니 하나님의 꿈이 나를 통해서 이루어지도록 나를 더욱 단련시키며 정금같이 빛나게 합시다.

그렇다면, 요셉의 꿈은 어떻게 되었나요?
 그렇지요. 당연히 요셉의 꿈도 이루어집니다(40절). 요셉의 꿈이 하나님안에서 이루어졌습니다. 하나님의 꿈과 요셉의 꿈은 바늘과 실이었습니다. 하나님의 꿈이 이루어지니, 요셉의 꿈은 당연히 따라왔습니다.


37절 "바로와 그의 모든 신하가 이 일을 좋게 여긴지라"
=> 바로 뿐 아니라 모든 신하가  이 일을 좋게 여기었다말을 깊이 묵상해 보자.
 우리에게 과연 이러한 리더십이 있는가? 이러한 일의 깔끔하게 처리할 수 있다면, 이 보다 더 하나님께 영광스러움은 없을 것이다.
 지도자에게만 인정받는 사람이 아니라, 밑에 있는 사람들을 포함해서 모든 사람에 인정받는 사람이 진정 믿음의 사람이다. 위에 잘보이려고 할 필요도 없을 뿐더라, 아랫 사람을 무시할 필요도 없기 때문이다.

*이어지는 바로의 칭찬에서 하나님의 영광이 선포되다.
38절 "바로가 그 신하들에게 이르되 이와 같이 하나님의 영이 감동된 사람은 우리가 어지 찾을 수 있으리요"
39절 "요셉에게 이르되 하나님이 이 모든 것을 네게 보이셨으니 너와 같이 명철하고 지혜 있는 자가 없도다"
=> 바로의 입에서 끊이지 않는 않는 말은 요셉의 칭-찬이 아니다. 바로 하나님이다. 이방인의 입에서 하나님을 찬양하게 하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꿈이다. 열방이 주님을 찬양하는 그 날이 오는 것이 하나님의 꿈이다. 우리는 이를 위해 부르심을 받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쓰임받는 도구가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영이 감동된 사람", "하나님이 이 모든 것을 네게 보이셨으니... 명철하고 지혜 있는 자"



성경읽기 - 출애굽기 1-6장

기억하시는 하나님,
들으시는 하나님.
길을 여시는 하나님,

But
갈팡질팡 하는 백성들,
오락가락 하는 백성들,
왔다갔다 하는 백성들,

나아가,
물쭈물 하는 지도자 모세,
멈칫멈칫 주저하는 지도자 모세. 출 1-6장

오늘 나는 어떤가?
하나님과 나의 관계처럼 보인다.
믿음으로 뜻을 정하지 못하고 ,
갈팡질팡,
오락가락,
우물쭈물 ,
멈칫멈칫,

나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Monday, February 6, 2012

청.매.묵. 에스겔 24:1- 14 <녹슨 가마로는 무엇을 해도 안됩니다. 녹슨가마에 극상품 포도나무를 심은들 들포도밖에 맺지 못합니다(사5장). 녹슨 마음을 먼저 정결케 합시다. 숯불로 입술 뿐 아니라 마음도 뜨겁게 하여 내 안에 녹을 제거합시다>


청.매.묵. 에스겔 24:1- 14 <녹슨 가마로는 무엇을 해도 안됩니다. 녹슨가마에 극상품 포도나무를 심은들 들포도밖에 맺지 못합니다(사5장).  녹슨 마음을 먼저 정결케 합시다. 숯불로 입술 뿐 아니라 마음도 뜨겁게 하여 내 안에 녹을 제거합시다. 오늘 한 날도 녹슬어서 꽝이 되지 않는 내 마음이 되기를 원합니다.>

 녹슨가마가 되어 버린 예루살렘. 무엇이 그들을 이토록 만들었는가? 하나님의 분노이다.

 하나님의 분노를 피할 방법은 없다. 하나님의 분노가 우리가 가운데 있지 않도록 해야 한다. 하나님의 분노는 예루살렘의 더러운 것들중의 하나인 음란이다. 음란을 피하라. 요즘 세상에 보이는 악행중에 하나도 여전히 음란이다. 아주 죄스러운 것이다. 이를 버려야 한다.

 하나님의 분노가 우리에 미칠 때, 아무리 좋은 덩이를 그 가운데 넣어, 고른 뼈를 가득히 남아, 잘 삶되 가마 속의 뼈가 무르도록 삶아도 먹을 수 없습니다. 무엇을 해도 내 것이 결국 될 수 없습니다. 

 결국, 녹슨 가마로는 무엇을 해도 안됩니다가마를 깨끗히 해야 합니다. 무엇을 오늘 나의 가마를 깨끗하게 할 것인가?

 녹슨 가마에 채웠던 것을 버리십시오. 채우려 했던 것으로부터 떠나십시오. 내 마음에 가득 채웠던 세상의 것들을 버리십시오.
 그리고 빈 마음에 숯불을 놓아 뜨겁게 하여 녹이 그 속에서 벗겨지게 하십시오. 그 속에 더러운 것이 녹게 되어 소멸 될 때 성령의 불이 우리를 정결케 합니다.

녹슨 가마로는 무엇을 해도 안됩니다.


6절 "피를 흘린 성읍, 녹슨 가마 곧 그 속의 녹을 없이하지 아니한 가마여 화 있을진저"
7절 "그 피가 그 가운데 있음이여 피를 당에 쏟아 티끌이 덮이게 하지 않고 맨 바위 위에 두었도다"
8절 "내가 그 피를 맨 바위 위에 두고 덮이지 아니하게 함은 분노를 나타내어 보응하려 함이로라"

* 녹을 소멸하게 하리라
10절 "불을 피워 그 고기를 삶아 녹이고 국물을 졸이고 그 뼈를 태우고"
11절 "가마가 빈후에는 숯불 위에 놓아 뜨겁게 하며 그 가마의 놋을 달궈서 그 속에 더러운 것을 녹게 하며 녹이 소멸되게 하라"
12절 "이 성읍이 수고하므로 스스로 피곤하나 많은 녹이 그 속에서 벗겨지지 아니하며 불에서도 없어지지 아니하는도다"
13절 "너의 더러운 것들 중에 음란이 그 하나이니라"
         "내가 너를 깨끗하게 하나 네가 깨끗하여지지 아니하니 내가 네게 향한 분노를 풀기 전에는 네 더러움이 다시 깨끗하여지지 아니하리라"
14절 "나 여호와가 말하였은즉 그 일이 이루어지질지라"
         "내가 돌이키지도 아니하고 아끼지도 아니하며 뉘우치지도 아니하고 행하리니 그들이 네 모든 행위대로 너를 재판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