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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nday, February 20, 2012

청.매.묵 - 겔 28:1-19절 <두로의 교만과 심판에서 배우다. 무엇이 교만으로부터 나를 지킬 수 있을까? 질문에 답을 찾아서>

한 날 묵상 - 겔 28:1-19절 <두로의 교만과 심판에서 배우다. 무엇이 교만으로부터 나를 지킬 수 있을까? 질문에 답을 찾아서>

1. 인생에서 늘 경계해야 할 것은 "나의 부와 지혜와 총명등 나의 은사는 어디서 왔고, 어디로 가야 하고, 누구를 향해 있어야 하는가?"에 대한 분명한 자신의 답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이러한 질문들은 삶의 실존적인 질문이다.
실존적 질문이라 함은 내 삶과 직접적으로 연관되어 있다는 뜻이며, 이러한 것을 생각하지 않고 살아가면 하나님과 깊은 교제를 나눌 수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2. 나의 은사는 어디서 왔는가?
 두로의 지혜와 총명으로 얻은 재물. 금과 은, 그리고 큰 지혜와 무역으로 얻은 재물은 모둔 하나님의 주신 것이다.
 바로 하나님의 청지기로서의 재물의 은사를 받은 것이다.

3. 나의 은사는 어디로 가야 하는가?
 그렇다면, 나의 재물은 어디에 사용되어야 하는가? 자신의 교만의 앞잡이가 되어서는 안된다.
교만은 폐망의 압잡이다. 폐망의 길에서 지금까지 가졌던 은사들은 장애물이 될 것이며, 더욱 폐망의 늪으로 빠져들게 하는 강력한 힘이 된다.
 나의 은사가 교만으로 흘러갈 때, 폐망하게 되고, 나의 은사 하나님의 선한 일에 사용 할 때, 나의 은사들은 더욱 빛을 발하게 되어 있다.

4. 나의 은사는 누구를 지향해야 하는가?
 당연히 나의 은사는 하나님을 지향해야 한다. 더욱 구체적으로 말하면, 하나님의 영광을 지향하도록 해야 한다.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고 인간들에게 피조물을 다스리고  경작하라고 주신 이유는 다스리고 경작한 열매를 통해 하나님께 기쁨의 찬양을 드리고, 하나님의 영광돌리기 위한 도구로서 인간들에게 피조물의 다스리고 경작할 수 있는 지혜와 총명의 은사를 주셨다.
 나의 은사가 하나님의 영광을 지향하지 않으면 안된다.

5. 나의 은사가 지향하는 것에 있어서 회색지대는 없다. 중간지대는 결코 없다.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고 예수님은 분명하게 말씀하셨다. 중간지대는 괜찮겠다, 적당주의는 괜찮은 신앙생활이라는 세상의 목소리, 시대의 흐름을 흔들리지 말아야 한다.
 오직 한 길, Only one way만 있다.

6. 한편으로 아무생각없이 사는 사람이 있다. 다시 말하면 이러한 질문들을 하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이 있다. 그러나 애석하게 이러한 질문없이 살아가는 삶은 거의 대부분 세상에 물든 삶이다.
 왜냐하면 세상의 문화를 따라가는 삶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세상속에 있다. 세상과 맞서 싸우는 것은 전쟁이다. 결코 쉬운 것이 아니다. 생각하지 않고 노력하지 않고, 전략을 세우지 않으면 지는 것이다. 아니 차라리 져버리면 괜찮다. 실패가 분명하게 드러나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는 것같지도 않고, 세상에 물들어 살아가는 것이 가장 위험한 삶이다. 전투하지 않고 세상에 익숙해져 있기에 더 이상 내 몸이 신앙적 반응을 하지 않게 된다.

7. 삶의 실존적 질문을 하는 사람을 지난 토요일(2012. 2.18) 만났습니다. 바로 이영표 축구 선수였습니다. 이영표 집사님과 나눈 대화를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이영표 집사님은 10년 동안 교회를 다녔습니다. 2001년부터 신앙생활을 했는데, 믿음이 참으로 좋습니다그런데, 늘 생각하던게 있었다고 하더라고요.
 특별히 사우디에서 2년동안 운동하면서 그들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을 품다가 너무 아직 구원을 모르는 사람들이 안타까웠던 것입니다.
 자신은 예수님을 믿어 구원을 선물로 받았는데, 그들은 아직 복음을 들어보지 못해서 구원을 받지 못한 것에 대한 안타까움으로 복음을 들어보지 못한 사람들은 어떻게 구원을 받을 수 있는지에 대해서 안타까운 마음에 대화를 나눈것입니다.
 
그 때 이렇게 말씀드렸습니다. 
 이슬람이나, 다른 종교나, 복음을 전혀 들어보지 못한 사람들이 구원을 받을 수 있는지? 없는지?는 정확히 우리는 알 수 없습니다.
로마서 1장에 보면 이런 말씀이 있다하나님을 알만한 것이 그들 속에 있다그래서 그들은 복음을 듣지 못했어도 구원을 받을 수 있다그런데 우리의 고민이 여기에 그쳐서는 안된다.
이스람이나, 다른 종교나 복음을 듣지 못한 사람들이 구원을 받았느냐? 못받았느냐?”의 질문만 그리스도인들이 하고 있으면 안된다.
우리가 고민하고 질문하고 답을 찾아야 할 것이 있다면, 그것은?
구원에 이르는 유일한 길은 예수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그들에게 전해야 한다.
그것이 한시라도 빨리왜냐하면 구원에 이르는 정답을 우리가 알고 있는데, 가지고 있는데, 그래서 그들에게 그것을 전해 주기면 하면 더 이상의 앞에서의 질문을 필요치 않는데, 왜 우리가 복음을 전하는 일을 지체할 수 있느냐?
복음을 전할 수 있는 길을 찾는 것에 질문하고, 거기에 고민하고, 답을 찾아야 하는 것이 우리가 지금 당장 해야 할 일이라고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8.  앞의 질문들에 답을 하지 못하고, 스스로의 재능에 사로잡히면 교만하여 두로처럼 됩니다. 자신의 정체성을 상실하고, 존재 이유가 빗나가고("죄"와 같음. "죄"는 타겟에서 빗나갔다는 뜻이다), 목적을 상실하게 됩니다.

9. 그런 의미에서 삶은 전쟁입니다. 전쟁이라 생각하지 않으면 맨날 실제적으로 폐배하며 살아가고 있다. "늘 깨어 있으라" 바울의 강조가 여기에 있습니다. 내가 깨어 있지 않으면,  내가 지금 폐배자인지 조차도  모르고 살아갈 뿐이지, 실제로는 폐배자의 인생입니다.

10. 특별히 두로의 심판은 26장-28장까지 세장에 걸쳐 계속되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반복은 중요성을 내포합니다.두로의 심판의 내용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무엇때문에 두로가 심판을 받게 되는지를 알고 그것을 파악하며 나의 삶에 적용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11. 두로의 심판의 언급 무게만큼이나 우리에게 있어서도 두로의 심판 내용은 중요성의 무게가 아주 큽니다.
 오늘 한 날도 두로의 심판이 상징적으로 나에게 어떠한 경고의 메시지를 담고 있는지 기억하면서 늘 세상에 질문하면서 깨어 있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을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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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절 "인자야 너는 두로 왕에게 이르기를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네 마음이 교만하여 말하기를 나는 신이라 내가 하나님의 자리 곧 바다 가운데에 앉아 있다 하도다 네 마음이 하나님의 마음 같은 체할지라도 너는 사람이요 신이 아니거늘"

3절 "네가 다니엘보다 지혜로워 은밀한 것을 깨닫지 못할 것이 없다 하고"
4절 "네 지혜와 총명으로 재물을 얻었으며 금과 은을 곳간에 저축하였으며"
5절 "네 큰 지혜와 네 무역으로 재물을 더하고 그 재물로 말미암아 네 마음이 교만하였도다"

7절 "이방인 곧 여러 나라의 강포한 자를 거느리고 와서 너를 치리니"
8절 "또 너를 구덩이에 빠드려서 너를 바다 가운데에서 죽임을 당한 자의 죽음 같이"

9절 "너를 치는 자들앞에서 사람일 뿐이요 신이 아니라"

12-19절 에덴동산에서 하나님의 정원에서 마음껏 뛰놀다 타락한 인간의 모습을 보게 된다.
12절 "인자야 두로 왕을 위하여 슬픈 노래를 지어 그에게 이르기를"
         "너는 완전한 도장이었고 지혜가 충족하며 온전히 아름다웠다"
15절 "네가 지음을 받던 날로부터 네 모든 길에 완전하더니 마침내 네게서 불의가 드러났도다"
17절 "네가 아름다우므로 마음이 교만하였으며 네가 영화로우므로 네 지혜를 더럽혔음이여 내가 너를 땅에 던져 왕들 앞에 두어 그들의 구경거리가 되게 하였도다"
18절 "네가 죄악이 많고 무역이 불의하므로 네 모든 성소를 더럽혔음이여"
19절 "만민 중에 너를 아는 자가 너로 말미암아 다 놀랄 것임이여 네가 공포의 대상이 되고 네가 영원히 다시 있지 못하리로다 하였다 하라"

Friday, February 17, 2012

한 날 묵상 - 겔 27:1-36 <두로에 대한 애가. 화려함의 상징인 두로는 화려함이 혼자의 힘으로도 안되기에 결코 자랑치 말아야 함을 깨우쳐 줄 뿐 아니라, 영원하지도 않기에 붙잡아야 할 것이 될 수 없음을 말합니다>

청.매.묵 - 겔 27:1-36
<두로에 대한 애가. 두로가 주는 교훈은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인생이 되라"입니다. 화려함의 상징인 두로는 화려함이 혼자의 힘으로도 안되기에 결코 자랑치 말아야 함을 깨우쳐 줄 뿐 아니라, 영원하지도 않기에 붙잡아야 할 것이 될 수 없음을 말합니다.  두로를 기억할 때 무엇을 화려함을 좇아가는 폐망하는 인생입니다.>

1. 우리에게 자랑할 만한 것이 하나 쯤은 있습니다. 스스로를 그렇게 생각하지 않은 것이 겸손이기에 겸손한 사람은 결코 자랑하지 않지만, 또는 자신이 알지 못할 수도 있지만, 그러나 주변에서 보기에 '저 사람, 저 것만큼은 정말 잘해'라고 말할 수 있는 한 가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2. 이러한 자랑할 만한 것은 사실 결코 혼자서 될 수 없습니다. 내가 어려서부터 스스로 결코 한 것이 아닙니다. 부모의 도움이 있었고, 역사의 도움이 있었고, 사회의 도움이 있었고, 국가의 도움이 있었고, 책의 도움을 받았을 뿐 아니라, 과학의 도움도 받았습니다. 나아가 하나님의 선물이 아니고는 지금의 나는 결코 될 수 없었습니다.

3. 우리가 두로에서 배워야 할 교훈이 있다면, 바로 이런 것입니다. 두로의 화려함은 혼자만의 것이 아니었습니다. 본문에서 주변 나라들을 언급하면서 그들과 함께 지금 화려함을 꽃피웠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4. 그렇기에 두로는 나누었어야 합니다. 함께 공존했어야 합니다. 자신이 가진 것들을 주변 나라들과 공유했어야 합니다. 그래야 오랫동안 자신의 자랑할 만한 것을 유지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교만했습니다.
 스스스 말하기를 2절 "두로야 네가 말하기를 나는 온전히 아름답다 하였도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5. 이러한 상태가 지속되면, 화려함이 변하여 슬픈연가가 됩니다. 하나님의 간섭하심이 아니어도, 물론 특별한 경우에 역사하십니다만, 스스로 무너져 버립니다. 지금 자신의 것을 감사하지 못하고, 나누려 하지 않을 때 스스로 무너지게 되어 있습니다.

6. 두로에서 배워야할 교훈은 무엇일까요?
 1)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두로의 아름다움이 진정 온전하게 된 것은 지으신 이 때문입니다.
  4절 "네 땅이 바다 가운데에 있음이여 너를 지은 자가 네 아름다움을 온전하게 하였도다"
 2) 혼자 홀로 아름다움을 취한 것이 아닙니다. 두로는 이웃 나라와 교역하면서 아름다움을 만들어 갔습니다. 이제 더불어 함께 살아가야 할 이유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 사랑하듯 이웃을 사랑하라"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인생이 가장 아름다운 인생입니다.
 3) 일은 함께 할 때 아름답습니다(이건 제가 잘 못하는 부분입니다. 혼자 편하다 생각하니, 같이 하는 것에 익숙하지 못합니다. 가장 바꾸어야 할 부분입니다. 주님! 내 안의 두로를 버리게 하소서! 아멘.). 삼위일체 하나님을 기억하기 원합니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창1:26)

7. 하나님없는 아름다움은 영원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은 이 땅이 아름다움을 통해 드러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을 비추는 거룩한 몸이 될 때, 그 떄가 가장 아름다울 때입니다.  오늘 하나님이 영광이 나를 통해 드러나는 아름다운 한 날 되기를 기원합니다!

2절 "인자야 너는 두로를 위하여 슬픈 노래를 지으라"
3절 "두로야 네가 말하기를 나는 온전히 아름답다 하였도다"

4절 "네 땅이 바다 가운데에 있음이여 너를 지은 자가 네 아름다움을 온전하게 하였도다"
=> 바로 알았어야 한다.

두로의 화려함이 빛날 수 있던 이유를 알아야 한다. 너 홀로 할 수 없었다.
5-11절 너의 아름다움은 너 혼자의 힘으로 된 것이 아니다. 주변의 도움이 있었다.
12-25절두로의 화려함은 주변 나라들과 함께였을 때이다.
26-36절 자연앞에 너는 아주 연약한 자임을 알았어야 한다.




* 6세기 초의 두로
주전 605년에 이집트가 패한 뒤, 두로는 서아시아에서 바벨론의 주적이었다. 두로는 페니키아에 있던 주요 성읍으로서 해양 무약으로 명성이 높았다.
 본토에서 약 550미터 가량 떨어진 해안에 위치한 이 두로라는 섬과 그 항구는 장기적인 공성 공격 외에는 어떤 도전에 대해서도 안전했다. 무거운 화물선이 접안하여 하역하기에 충분할만큼 수심도 깊었다. 상업 활동에 전념하고 있던 두로에 양식과 그 밖의 생필품들을 댄 것은 우슈라는 자매 성읍이었다.
 두로의 함대들은 구브로와 북아프리카의 카르타고와 같은 지중해 지역에 식민지들을 두로 확보하여 특히 금속류와 같은 자원을 공급받았고, 동지중해와 서지중해 사이에서 물품을 교역하는 역할을 감당했다. 이 지경 전반에서 페니키아식 금속 공예와 도자기류가 발굴되고 있는 것은 그들이 무역 관계를 얼마나 광범위하게 오랫동안 지속했는가를 짐작하게 해준다.
 주요 수출품목은 백향목과 옷감, 염료 및 유리 제품이었다.
 요세푸스에 따르면, 두로와 그 왕 에트바알 3세는 바벨론에 대항하는 수많은 동맹과 음모들에 가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