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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nday, March 12, 2012

한 날 묵상 - 창 43장 16-34절 <요셉의 꿈이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나 그 꿈은 개인이 영달을 위한 꿈이 아니라, 형제를 살리고, 민족을 살리고, 무엇보다 기쁨과 환희 눈물을 주는 극적인 만남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한 날 묵상 - 창 43장 16-34절 <요셉의 꿈이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나 그 꿈은 개인이 영달을 위한 꿈이 아니라, 형제를 살리고, 민족을 살리고, 무엇보다 기쁨과 환희 눈물을 주는 극적인 만남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1. 자신의 뜻을 접는 것과 하나님의 꿈을 접는 것은 다릅니다.
 앞서 야곱은 자신의 뜻을 접어야 했습니다. 왜냐하면 자신의 뜻과 의지는 하나님의 꿈에 아무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2. 우리가 생각하고 계획했던 뜻을 접어야 할 때 아픔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의 꿈을 사람은 자신의 의지와 뜻을 버리기 쉽습니다. 물론 처음부터 자신의 뜻과 하나님이 꿈이 같도록하는 것이 무척이나 중요하겠지요.

3. 자신의 뜻이 하나님의 꿈에 가장되어서는 결코 안됩니다.

4. 자신의 뜻과 하나님을 어떻게 구별할 수 있을까요? 참으로 중요한 질문입니다. 우리는 많은 생각과 계획을 하면서, 하나님의 꿈이기를 원합니다. 너무나 순수하고 소중한 다짐입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이러한 순수함과 소중함은 퇴색되고 자신의 야망이 하나님의 꿈을 대신하게 될 때가 많습니다

5. 수많은 사람들이 순수한 마음과 소중함으로 시작된 아름다운 계획들이 왜 무너집니까? 어느 순간 자신의 야망이 순수함과 소중함을 야금야금 갉아 먹기 때문입니다.

6. 더욱 지킬만 한 것들 중에 자신의 마음을 지켜야 합니다. 처음 그 품었던 하나님의 꿈. 그리고 그 순수함과 소중함을 더욱 지켜야 합니다.

7. 43장의 흐름은 이렇습니다. 하나님의 역사안에, 하나님이 보시는 방향안에 "기근"이 각처에 심하게 되었습니다. 이제 야곱이 살 던 곳에도 더 이상 곡식이 없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요셉이 치리하는 애굽에는 곡식이 풍성하였습니다.
 이제 야곱은 자신의 뜻을 접어야 했습니다. 그리고 모든 것을 내려놓고 하나님만을 의지하게 되었습니다.
 그 때에 하나님의 꿈이 수십년이 지난 요셉과 형제들의 만남에서 이루어집니다.

8. 앞서 한 질문으로 다시 돌아가 보겠습니다. 자신의 뜻과 하나님의 꿈을 어떻게 구별할까요?

9. 오늘 본문에서 몇 가지 인사이트를 얻고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주로 하나님의 꿈 위주로 말씀의 내용을 풀어가도록 하겠습니다.

10. 하나님의 꿈은 만인에게 유익이 되어야 합니다.

11. 순수하게 요셉의 꿈부터 보겠습니다. 26절에 보면 "땅에 엎드려 절하니"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우리가 너무나 잘 알고 있듯이, 요셉이 사지로 몰리게 되는 이유가 되었던, "그 꿈"이제  이루어졌습니다.

12. 그러나 요셉의 꿈, 즉 하나님의 꿈이 이루어질 때, 만은 사람들에게 유익을 주는 모습을 오늘 본문은 확실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13. 먼저는 요셉이 총리로 있던 애굽에게 큰 유익입니다. 또한 요셉을 섬기는 신하들이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게 됩니다(23절 "너희 하나님, 너희 아버지의 하나님이").
 나아가, 야곱을 살리고, 야곱의 형제들을 살리고, 이스라엘의 민족에게 큰 유익을 줍니다.
 모든 사람에게 유익입니다.

14. 우리의 꿈, 나의 꿈도 그래야 합니다. 모든 사람이 함께 유익을 누릴 수 있는 꿈을 꾸어야 합니다. 바로 이게 하나님의 꿈입니다.

15. 또한 하나님의 꿈이 이루어짐으로 인해, 기쁨과 환희 눈물이 있어야 합니다. 즉 꿈은 감동이 있습니다.
 30절 "요셉이 아루를 사랑하는 마음이 복받쳐 급히 울 곳을 찾아 안방으로 들어가서 울고"

16. 요셉의 마음입니다. "야, 보라, 내가 수 년전에 너희에게 말했던 그 꿈대로 되었지 않느냐?" "내가 그 때 뭐라고 했어!" "너희들이 나에게 고개 숙일 것이라 했지! 그대로 돼잖아!"라고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17. 요셉은 울었습니다. 하나님의 꿈이 이루어져 기쁨과 감사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베냐민을 다시 보고 너무 감격해서 울었습니다. 베냐민이 좋아서 울었습니다. 또한 나에게 주신 하나님의 꿈이 이루어져서 감사하며 울었습니다.
 45: 14-15절 "자기 아우 베냐민의 목을 안고 우니 베냐민도 요셉의 목을 안고 우니라 요셉이 또 형들과 입맞추며 안고 우니 형들이 그제서야 요셉과 말하니라"

18. 우리의 꿈은 이러한 기쁨과 환희의 눈물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꿈입니까? 아니면 자신의 배만 채우고, 다른 사람들은 시기하고 질투하며 미워하는 꿈입니까?

19. 아주 큰 꿈이어서 기뻐하고 감동했나요? 아닙니다. 아주 작은 것이었습니다. 가족이 수년만에 떨어져 있다가 만나는 만남이었습니다. 그 순간 요셉의 꿈이 이루어졌습니다.

20. 우리의 꿈이 커야 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가 작고 소중한 꿈들이 아름다운 사회를 만들도, 많은 사람들에 유익이 되며, 또한 기쁨과 환희의 울음을 줄 수 있는 것이라면, 아주 귀중한 위대하고 원대한 꿈입니다.

21. 말씀을 정리하면서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22. 오늘 본문에서 요셉의 꿈이 언제, 어느 상황에서, 어떠한 모습으로 이루어지고 있는지에 초점을 맞추고 묵상하기를 원합니다.

23. 요셉의 꿈은 결국 수년 동안 떨어져 있다고 다시 만나는 이산가족상봉으로 이루어집니다.

24. 아주 사소해보이지만, 결국 이 꿈은 가족에게 기쁨과 환희 눈물을 주었습니다. 그리고 가족을 살리고, 민족을 살리고, 나라를 살리는것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25. 우리도 이러한 꿈을 꾸기를 원합니다. 원대한 꿈이 아니라, 소소할지라도 많은 사람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줄 수 있는 꿈을 꿀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을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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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한편으로 꿈이 이루어질 때에도 선한 영향력을 주는 꿈을 꾸자.
연결하면, 애굽을 살리고, 요셉의 신하들도 하나님을 고백하는 그림에서 말씀을 생각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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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절 "너희는 안심하라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 하나님, 너희 아버지의 하나님이 재물을 너희 자루에 넣어 너희에게 주신 것이니라 너희 돈은 내가 이미 받았느니라 하고 시므온을 그들에게로 이끌어내고"

26절 "요셉이 집으로 오매 그들이 집으로 들어가서 예물을 그에게 드리고 땅에 엎드려 절하니"

29절 "그가 또 이르되 소자여 하나님이 네게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노라"

30-31절 "요셉이 아루를 사랑하는 마음이 복받쳐 급히 울 곳을 찾아 안방으로 들어가서 울고 얼굴을 씻고 나와서 그 정을 억제하고 음식을 차리라 하매"

33절 "그들이 요셉 앞에 앉되 그들의 나이에 따라 앉히게 되니 그들이 서로 이상히 여겼더라"

Tuesday, February 7, 2012

한 날 묵상 - 창41:37-40 <꿈이 이루어진다. 그러나 이건 요셉의 꿈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꿈이었습니다. 물론 요셉의 꿈도 이루어졌습니다. 요셉의 꿈은 하나님의 꿈의 덤이었습니다. 하나님의 꿈의 덤으로 오는 게 우리의 꿈입니다.>

한 날 묵상 - 창41:37-40 <꿈이 이루어진다. 그러나 이건 요셉의 꿈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꿈이었습니다. 물론 요셉의 꿈도 이루어졌습니다. 요셉의 꿈은 하나님의 꿈의 덤이었습니다. 하나님의 꿈의 덤으로 오는 게 우리의 꿈입니다.>

 꿈은 이루어진다. 그런데 이게, 요셉의 꿈이었을까요? 아닙니다. 이건 바로 하나님이 꿈(38-39절)이었습니다.
 하나님의 꿈을 위해 요셉이 지금까지 인내하며, 하나님의 때에 쓰임받기 자신을 갈고 닭아, 하나님의 지혜와 영이 충만(38-39절)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우리도 꿈을 꿉시다. 나의 꿈이 아니라, 하나님의 꿈을 꿉시다. 아니 하나님의 꿈이 나를 통해서 이루어지도록 나를 더욱 단련시키며 정금같이 빛나게 합시다.

그렇다면, 요셉의 꿈은 어떻게 되었나요?
 그렇지요. 당연히 요셉의 꿈도 이루어집니다(40절). 요셉의 꿈이 하나님안에서 이루어졌습니다. 하나님의 꿈과 요셉의 꿈은 바늘과 실이었습니다. 하나님의 꿈이 이루어지니, 요셉의 꿈은 당연히 따라왔습니다.


37절 "바로와 그의 모든 신하가 이 일을 좋게 여긴지라"
=> 바로 뿐 아니라 모든 신하가  이 일을 좋게 여기었다말을 깊이 묵상해 보자.
 우리에게 과연 이러한 리더십이 있는가? 이러한 일의 깔끔하게 처리할 수 있다면, 이 보다 더 하나님께 영광스러움은 없을 것이다.
 지도자에게만 인정받는 사람이 아니라, 밑에 있는 사람들을 포함해서 모든 사람에 인정받는 사람이 진정 믿음의 사람이다. 위에 잘보이려고 할 필요도 없을 뿐더라, 아랫 사람을 무시할 필요도 없기 때문이다.

*이어지는 바로의 칭찬에서 하나님의 영광이 선포되다.
38절 "바로가 그 신하들에게 이르되 이와 같이 하나님의 영이 감동된 사람은 우리가 어지 찾을 수 있으리요"
39절 "요셉에게 이르되 하나님이 이 모든 것을 네게 보이셨으니 너와 같이 명철하고 지혜 있는 자가 없도다"
=> 바로의 입에서 끊이지 않는 않는 말은 요셉의 칭-찬이 아니다. 바로 하나님이다. 이방인의 입에서 하나님을 찬양하게 하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꿈이다. 열방이 주님을 찬양하는 그 날이 오는 것이 하나님의 꿈이다. 우리는 이를 위해 부르심을 받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쓰임받는 도구가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영이 감동된 사람", "하나님이 이 모든 것을 네게 보이셨으니... 명철하고 지혜 있는 자"



Thursday, February 2, 2012

한 날 묵상 - 창41:1 <요셉의 강점은 꿈의 해석이다. 포부가 아니라, 꿈을 맹목적으로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강점을 최대한 활용한 것이다. 요셉의 장점을 위기에 순간에 사용하신 하나님은 우리에게 닥친 위기를 자기의 장점을 활용하여 돌파하기를 기대하신다. 그리고 자기 강점은 곧 하나님과 더욱 친밀한 관계를 맺는 커넥션이 되었다. 오늘 나의 강점을 활용하라>

한 날 묵상 - 창41:1 <요셉의 강점은 꿈의 해석이다. 창37장 꿈을 품은 포부가 아니라, 꿈을 맹목적으로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강점을 최대한 활용한 것이다. 요셉의 장점을 위기에 순간에 사용하신 하나님은 우리에게 닥친 위기를 자기의 장점을 활용하여 돌파하기를 기대하신다. 그리고 자기 강점은 곧 하나님과 더욱 친밀한 관계를 맺는 커넥션이 되었다. 오늘 나의 강점을 활용하라>

요셉의 강점은 꿈의 해석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장점을 활용하신다. 창37장에서 꿈을 품은 요셉을 이끌어가는 것은 포부가 아니라, 꿈을 맹목적으로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자기의 강점을 활용하실 때를 신뢰함으로 기다림이다. 요셉의 강점을 위기에 순간에 사용하신 하나님은 나에게 닥친 위기를 나의 장점을 활용하여 돌파하기를 기대하신다.무엇보다 자기강점은 하나님과 더욱 친밀한 관계를 맺는 커넥션이다.나의 강점을 활용하라


1절 "만 이 년 후에"   "바로가 꿈을 꾼즉"
       => 요셉의 장점을 사용하시는 하나님. 요셉이 자기의 꿈과 자기 꿈의 해석(창37장 1-11절)부터 시작된, 관원장의 꿈 해석, 그리고 바로의 꿈 해석까지, 요셉에게 있어서 꿈 해석은 자기의 큰 장점이 되었다. 꿈의 해석을 올바르게 할 수 있던 능력이 바로 요셉이 하나님과 함께 함의 증거가 되었다. 
 하나님은 우리의 강점을 사용하신다.
 하나님의 요셉의 위기에 순간마다 요셉을 깨우신다. 요셉을 일으키는 힘은 다름아닌 요셉의 강점을 활용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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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점을 발휘하며 사는 사람은 행복하다> "위대한 자기 나의 발견, 강점 혁명" 추천자, 구본형.
 "자기 계발은 자신의 강점을 발견하고 집중적으로 활용함으로써 스스로를 차별시키는 것이다"
벤자민 플랭클린 "인생의 진정한 비극은 우리가 충분한 강점을 갖고 있지 않다는 데이 있지 않고, 오히려 갖고 있는 강점을 충분히 활용하지 못한다는 데에 있다" 그는 미쳐 활용하지 못한 채 낭비되는 재능을 '그늘에 놓인 해시계'라고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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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기다리는 요셉. "만 이 년"의 시간은 하나님이 일하실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하나님이 일하시게 하라. 
"우리가 일할 때 하나님은 침묵하신다. 우리가 기도하기 시작할 때 하나님은 일하신다."
 2년의 시간은 요셉이 또 다시 훈련하는 시간이었다. 그리고 그에게 이 시간은 하늘의 하나님을 향해 기도하는 시간이었다.
 하나님의 때를 알고 있었으며, 하나님의 역사에 쓰임받기 위해서는 자신이 무엇을 할 때가 아니라, 하나님의 자신을 들어 사용하실 때임을 알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