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esday, February 21, 2012

한 날 묵상 - 창42:6-25 <얽히고 설킨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을 요셉과 형들의 만남에서 볼 수 있다. 복수인가? 회복인가? 용서와 회개에 달려 있다>

한 날 묵상 - 창42:6-25 <얽히고 설킨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을 요셉과 형들의 만남에서 볼 수 있다. 복수인가? 회복인가? 용서와 회개에 달려 있다>

1. 역사적 만남이 오늘 요셉과 형들가운데 일어났다. 세상으로 보면, 이들의 사이는 절천지 원수관계이다. 그러나 믿음의 사람들이기에 이들은 얽히고 설킨 문제를 "하나님의 경외"하는 방법으로 이 문제를 해결해 가는 요셉과 형들의 만남을 볼 수 있다.

2. 세상은 복수가 난무한다. 세상은 복수가 정당하다 말한다. 세상은 복수를 해야 잘했다 말한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그렇지 않다. 복수보다 더 강력한 방법이 있다. 용서이다. 용서할 때 진정한 복수(?)를 하게 된다.

3. 복수의 의미는 한자로 보면, "  회복할 복, 다시 부  원수" 수 이다. "원수()를 갚음"이다.

 그런데, 이런 의미로 생각해 보면, 어떻게? "원수와 다시 회복하다"
 그렇다면, 원수와 다시 회복하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용서이다. 용서보다 온전한 회복을 가능케 하는 것은 없다.

4. 요셉과 형들의 관계는 얼키고 설킨 복수만이 남아 있는 관계처럼 보인다. 그러나 요셉은 복수가 아니 용서로 복수의 의미를 반전키시고 있다.

5. 얼키고 설킨 관계를 어떻게 회복할까? 요셉과 형들의 오랫만에 만남을 통해서 살펴보자.

6. 대화하라. 그 자로 나아가라.
 대화하면서, 형들의 마음이 이전 요셉에까지 미치게 되었다. 요셉과 형들과의 대화에서 해묵은 이전의 감정들이 하나 하나 정리되고 있다.

7. 누구든 먼저 마음에 용서하고 가라. 용서할 마음이 채워지지 않았다면 대화의 자리에 나아가지 마라. 그러나, 대화에 자리에 나아가지 않는 것, 즉 용서하지 않았다는 것을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우리를 용서를 기대하는 것은 혹 무리가 아니겠는가?

8. 대화중에 마음에 범죄함이 깨닫게 되거든 회개하라. 마음에 짐을 벗어버리라. 회개는 다른 사람들에게 하는 것이 아니다. 자신에게 하는 것이다. 자신이 회복된다. 온전히 회복된다. 자존감이 살아난다. 자괴감에서 벗어날 수 있다.

9.  그에 따른 값을 치를 것이 있다면,  감당하라(22절 "르우벤이... 그러므로 그의 핏값을 치르게 되었도다"). 죄값을 치른다는 것은 은혜다. 다시 살아남을 의미한다. 예수님이 우리의 죄값을 치르고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우리가 어떻게 되었는가? 살아났다. 값을 치르는 것은 다시 나를 살리는 것이다.

10. 요셉이 값을 치르도록 한 행위를 기억하라(24절 "요셉이 그들을 따나가서 울고 다시 돌아와서 그들과 말하다가 ... 시므몬을 끌어내어 그들의 눈 앞에서 결박하고").

11. 얽히고 설킨 문제에 회복은 모두가 자신이 감당해야 할 몫을 제대로 했을 때에 가능합니다. 진정한 용서를 합시다. 진정한 회개를 합시다. 진정한 용서는 이미 용서하과 대화의 자리에 나아가는 것이며, 진정한 회개는 죄값을 치는 것입니다. 이 모두가 그낭할 때 마음의 용서 뿐아니라 몸의 용서도 이루어집니다.

12. 몸과 마음이 모두 용서로 회복되는 한 날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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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절 "때에 요셉이 나라의 총리로서 그 땅 모든 백성에게 곡식을 팔더니 요셉의 형들이 와서 그 앞에서 땅에 엎드려 절하매"
=> "때에" 역사적 만남의 순간이다.
 한 사람은 모진 고생끝에 낙을 찾았고, 한 사람은 혹 하나 떼어내고 편하게 살다가 굶주림 속에서 먹을 것을 찾아 나선 끝에 그들의 만남은 이루어졌다.

7절 "요셉이 보고 형들 줄을 아나 모르는 체하고"
=> 알았으나 모르는체 하였다.
얼마나 그리웠으면, 하나도 잊지 않았을까?
얼마나 보고 싶어 마음에 품었으면, 첫 눈에 그이인줄을 알았을까?
얼마나 사랑했으면 이미 만나기도 전에 마음에 용서를 하였고 지난 일들을 잊어버렸을까?
얼마나 그리웠고, 마음에 품었고, 그리고 이미 용서했기에...

9절 "요셉이 그들에게 대하여 꾼 꿈을 생각하고" "이르되 너희는 정탐꾼들이라 이 나라의 틈을 엿보려고 왔느니라"
=> 요셉의 꿈과 그들을 정탐꾼으로 몰아 세운 관계는 무엇일까? 
 꿈을 생각했는데, 그들을 정탐꾼으로 몰아세웠을까?
  문맥적으로 보면,  형들 스스로 이야기를 풀어 내도록 하는 방법이었다. 요셉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지 않고 현재 형들의 집에 대한 소식을 알아보고자 했다(10절 "그들이 그에게 이르되 내 주여 아니니이다", 11절 "우리는 다 한 사람의 아들로서", 창42:29-36절)

15절 "너희는 이같이 하여 너희 진실함을 증명할 것이라"
16절 "너희 중 하나를 보내어 너희 아우를 데려오게 하고"

18절 "사흘 만에 요셉이 그들에 이르되 나는 하나님을 경외하노니" "너희는 이같이 하여 생명을 보전하라"
=> 왜 이 말씀이 이제야 눈에 돌어왔을까? 한 번도 눈여겨 보지 않았다.
=> 하나님의 방법으로 우리가 이 문제를 해결하자. 하나님의 일하심으로 우리가 이 문제를 접근하자. 나는 하나님의 사람이다. 너희도 하나님의 사람이지 않느냐.
요셉의 진실성을 보다.

21절 "그들이 서로 말하되 우리가 아우의 일로 말미암아 범죄하였도다 그가 우리에게 애걸할 때에 그 마음의 괴로움을 보고도 듣지 아니하였으므로괴로움이 우리에게 임하도다"
=> 형들의 마음이 이전 요셉에까지 미치게 되었다. 요셉과 형들과의 대화에서 해묵은 이전의 감정들이 하나 하나 정리되고 있다. 정리는 요셉이 이미 행한 마음의 용서와 형들이 이전의 일에 대한 회개하는 모습에서 잘 나타나고 있다.
얽히고 설킨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이 무엇인지를 오늘 본문은 우리에 말씀하고 있다.
- 대화하라. 그 자로 나아가라.
- 누구든 먼저 마음에 용서하고 가라. 용서할 마음이 채워지지 않았다면 대화의 자리에 나아가지 마라. 그러나, 대화에 자리에 나아가지 않는 것, 즉 용서하지 않았다는 것을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우리를 용서를 기대하는 것은 혹 무리가 아니겠는가?
- 대화중에 마음에 범죄함이 깨닫게 되거든 회개하라. 마음에 짐을 벗어버리라. 회개는 다른 사람들에게 하는 것이 아니다. 자신에게 하는 것이다. 자신이 회복된다. 온전히 회복된다. 자존감이 살아난다. 자괴감에서 벗어날 수 있다.
- 그에 따른 값을 치를 것이 있다면,  감당하라(22절 "르우벤이... 그러므로 그의 핏값을 치르게 되었도다"). 죄값을 치른다는 것은 은혜다. 다시 살아남을 의미한다. 예수님이 우리의 죄값을 치르고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우리가 어떻게 되었는가? 살아났다. 값을 치르는 것은 다시 나를 살리는 것이다.
- 요셉이 값을 치르도록 한 행위를 기억하라(24절 "요셉이 그들을 따나가서 울고 다시 돌아와서 그들과 말하다가 ... 시므몬을 끌어내어 그들의 눈 앞에서 결박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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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셉과 형들의 만남에서 보는 얽히고 설킨 문제의 해결방법? 복수의 다른 의미 원수와 회복하는 것이다. 진짜 복수를 하라? 어떻게 용서와 회개로...
진정한 용서는 이미 용서하과 대화의 자리에 나가고, 진정한 회개는 죄값을 치는 것. 이 때에 마음의 용서 뿐아니라 몸의 용서도 이루어집니다.
빛오섬삶:한날묵상-창42:6-25
 http://saltandlight21.blogspot.com/2012/02/426-25.html?spref=t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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