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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uesday, April 9, 2013

직장 벤다이어그램



소명을 어떻게 알 수 있나요?
1. 옳은 일인가?
2. 잘 할 수 있는 일인가?
3. 기쁘게 하는 일인가?

어떻게 기회를 찾을 것인가?
작은 일부터 잘하라. 

회사에서 교회 일 하지 말라. 이는 도적절이다. 회사에서 교회 일 한큼 열심히 하지 말라. 
월급 주는 일을 잘하라. 
회사는 일은 세상일이고, 교회 일은 하나님일이라는 생각이 있는데, 이는 잘못되는 것이다. 
세상이 일이 하나님의 일이다. 
돈 주는 일을 잘하라. 돈 주는 일이 소명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꼭 해야만 하는 일이 있다면, 상사에 양해를 구하라. 양해를 구했음에도 불구하고 한다면 꼭 그 시간만큼 보충하라. 

소명을 찾아 직업을 일하라. 소명으로 하는 직업이 성직이다. 



Tuesday, February 7, 2012

한 날 묵상 - 창41:37-40 <꿈이 이루어진다. 그러나 이건 요셉의 꿈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꿈이었습니다. 물론 요셉의 꿈도 이루어졌습니다. 요셉의 꿈은 하나님의 꿈의 덤이었습니다. 하나님의 꿈의 덤으로 오는 게 우리의 꿈입니다.>

한 날 묵상 - 창41:37-40 <꿈이 이루어진다. 그러나 이건 요셉의 꿈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꿈이었습니다. 물론 요셉의 꿈도 이루어졌습니다. 요셉의 꿈은 하나님의 꿈의 덤이었습니다. 하나님의 꿈의 덤으로 오는 게 우리의 꿈입니다.>

 꿈은 이루어진다. 그런데 이게, 요셉의 꿈이었을까요? 아닙니다. 이건 바로 하나님이 꿈(38-39절)이었습니다.
 하나님의 꿈을 위해 요셉이 지금까지 인내하며, 하나님의 때에 쓰임받기 자신을 갈고 닭아, 하나님의 지혜와 영이 충만(38-39절)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우리도 꿈을 꿉시다. 나의 꿈이 아니라, 하나님의 꿈을 꿉시다. 아니 하나님의 꿈이 나를 통해서 이루어지도록 나를 더욱 단련시키며 정금같이 빛나게 합시다.

그렇다면, 요셉의 꿈은 어떻게 되었나요?
 그렇지요. 당연히 요셉의 꿈도 이루어집니다(40절). 요셉의 꿈이 하나님안에서 이루어졌습니다. 하나님의 꿈과 요셉의 꿈은 바늘과 실이었습니다. 하나님의 꿈이 이루어지니, 요셉의 꿈은 당연히 따라왔습니다.


37절 "바로와 그의 모든 신하가 이 일을 좋게 여긴지라"
=> 바로 뿐 아니라 모든 신하가  이 일을 좋게 여기었다는 말을 깊이 묵상해 보자.
 우리에게 과연 이러한 리더십이 있는가? 이러한 일의 깔끔하게 처리할 수 있다면, 이 보다 더 하나님께 영광스러움은 없을 것이다.
 지도자에게만 인정받는 사람이 아니라, 밑에 있는 사람들을 포함해서 모든 사람에 인정받는 사람이 진정 믿음의 사람이다. 위에 잘보이려고 할 필요도 없을 뿐더라, 아랫 사람을 무시할 필요도 없기 때문이다.

*이어지는 바로의 칭찬에서 하나님의 영광이 선포되다.
38절 "바로가 그 신하들에게 이르되 이와 같이 하나님의 영이 감동된 사람은 우리가 어지 찾을 수 있으리요"
39절 "요셉에게 이르되 하나님이 이 모든 것을 네게 보이셨으니 너와 같이 명철하고 지혜 있는 자가 없도다"
=> 바로의 입에서 끊이지 않는 않는 말은 요셉의 칭-찬이 아니다. 바로 하나님이다. 이방인의 입에서 하나님을 찬양하게 하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꿈이다. 열방이 주님을 찬양하는 그 날이 오는 것이 하나님의 꿈이다. 우리는 이를 위해 부르심을 받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쓰임받는 도구가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영이 감동된 사람", "하나님이 이 모든 것을 네게 보이셨으니... 명철하고 지혜 있는 자"



Tuesday, January 31, 2012

한 날 묵상 - 창40:1-23 <하나님과 함께 함이 느껴질 때 간절한 소망과 바램은 생기게 마련입니다. 요셉은 꿈을 해석하고, 꿈대로 이루어짐을 통해 간절한 소망과 바램을 가졌을습니다. 그렇지만 그 간절한 바램과 소망은 결코 하나님의 때를 앞서지 않았습니다.>

한 날 묵상 - 창40:1-23 <하나님과 함께 함이 느껴질 때 간절한 소망과 바램은 생기게 마련입니다. 요셉은 꿈을 해석하고, 꿈대로 이루어짐을 통해 간절한 소망과 바램을 가졌을습니다. 그렇지만 그 간절한 바램과 소망은 결코 하나님의 때를 앞서지 않았습니다.>

 요셉이 있는 곳에 형통함이 있는 또 다른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이 이야기의 시작은 요셉의 장기(?)인 꿈과 관련된 이야기이다. 꿈 해석과 해석되로 이루어짐은 자신의 억울함을 풀어주고, 고난을 벗어날 한 줄기 희망처럼 다가왔지만, 이 또한 속히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간절한 소망과 바램이 하나님의 때를 결코 앞서지 않았다.

1절 "그 후에"

2절 "바로가 그 두 관원장 곧 술 맡은 관원장과 떡 굽는 관원장에게 노하여"
3절 "그들을 친위대장의 집 안에 있는 옥에 가두니 곧 요셉이 갇힌 곳이라"
=> "그 후에"와 "곧"을 연결하여 읽다보면, 어떠한 손길을 느낄 수 있음을 성경은 의도적으로 말하고 있다. 요셉이 옥에 잡혀 들어가고, 여호와께서 그를 범사에 형통하게 하신 "그 후에", "곧" 술 맡은 관원장과 떡굽는 관원장이 옥에 갇히게 되었다. 
=> 그들의 만남은 우연히 아니야. 그곳에 누구의 손길이 있었어!
 그들의 만남은 시종드는 요셉과 갇힌 자들이었지만, 단지 거기까지가 아니다. 그 이면에 놀라운 하나님의 계획이 있음을 보게 된다.
=> 하나님의 손길이 요셉이 가는 곳마다 형통하게 하였고, 또 한번 하나님과 함께 함에 누릴 수 있는 형통함이 요셉과 함께 할 두 관원장들 앞에 드러날 것을 예고하고 있다.

또 다시 들어날 요셉의 형통함의 이야기는 어떻게 되어지는지 말씀을 통해 계속 살펴보자. 
 요셉의 또 다른 형통함의 이야기는 요셉의 장기인 것으로부터 꿈, 그리고 꿈해석으로 부터 시작된다.
꿈으로 시작됨.
5절 "옥에 갇힌 ... 두 사람이 하룻밤에 꿈을 꾸니 각기 그 내용이 다르더라"
6절 "요셉이 들어가 보니 그들에게 근심의 빛이 있는지라"
7-8절 "요셉이 .. 어찌하여 ... 얼굴에 근심의 빛이 있나이까 ... 해석은 하나님께 있지 아니하니이까 .. 내게 이르소서"
=> 자신감. 확신. 거칠 것 없는 질주. 옥에 갇혀 그 신분이 시종드는 자가 어찌 이러한 기질을 가질 수 있단 말인가? 무엇의 힘인가? 하나님과 함께 함이다.

꿈을 해석함.
9-19절 요셉의 꿈을 해석함.
 12절 "요셉이 그에게 이르되 그 해석이 이러하니" - 술 맡은 관원장
 14절 "당신이 잘 되시거든 나를 생각하고 내게 은혜를 베풀어서 내 사정을 바로에게 아뢰어 이 집에서 나를 건져주소서"
=> 그에게 소망이 있었다. 나가고 싶은 간절한 마음이 있었다.
 18절 "요셉이 대답하여 이르되 그 해석은 이러하니" - 떡 맡은 관원장

꿈이 실제로 이루어짐.
20-21절
 21절 "술 맡은 관원장은 전직을 회복하매"
 22절 "떡 맡은 관원장은 매달리니"
          "요셉이 그들에게 해석함과 같이 되었으나"
23절 "술 맡은 관원장이 요셉을 기억하지 못하고 그를 잊었더라"
=> 결코 낙담하거나 포기하지 않았다. 그에게 14절에서 보듯이 소망이 있었고, 나가고 싶은 간절한 마음이 있었다. 그러나 그렇게 되지 않더라도, 결코 그는 하나님의 때를 앞서가지 않았다.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고 있었다.

꿈을 통해 하나님의 통치가 드러남.
창 41장에서 이어짐.

요셉은 관원자의 꿈이야기를 보면서 자신의 때를 보았을 것이다.
나의 꿈은 지금 어디가지 와 있는가?
꿈 -> 해석 -> 이루어짐 -> 하나님의 통치.

Saturday, January 14, 2012

한 날 묵상 - 창 37:5-11 <요셉의 꿈과 형들의 미움. 가족의 비극의 시작인가? 가족의 은혜인가?>

한 날 묵상 - 창 37:5-11 <요셉의 꿈과 형들의 미움. 가족의 비극의 시작인가? 가족의 은혜인가?>

오늘 말씀의 흐름..

요셉의 꿈(두번)
요셉은 자신의 꿈을 말했다. 
아버지는 꾸짖었고, 형들은 더욱 미워했다. 
 반전 "아버지는 그 말을 간직해 두었더라"

말씀의 흐름속에 특별한 관계를 찾을 있는가?
요셉의 꿈은 가족의 비극인가? 가족의 은혜인가?
 오늘 말씀의 흐름에서 보면 가족의 비극으로  이어진다. 형제들안에 갈등이 시작되며, 서로 미워하며 시기하게 된다. 결국 요셉을 애굽에 팔게된다(37:12-36).
 그러나 요셉 꿈 이야기의 끝은 여기가 아니다. 그는 후에 애굽에서 힘든 일들을 만나지만 애굽의 총리가 되고(41:37-57), 결국 가족을 구원하며, 이스라엘을 구원하게 된다(46장).

 하나님은 꿈을 통해 요셉을 부르셨다. 요셉은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했다.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한 요셉에게 찾아오는 것은 형들이 미움, 시기였다. 형제들끼리의 갈등이 더욱 커지게 되었다. 요셉의 이러한 갈등은 결국 아름다운 이야기로 끝을 맺게 된다. 요셉의 꿈으로부터 시작된 사건에서는 하나님의 주도권이 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손이 모든 사건과 상황들을 이끌어가신다. 이 때 요셉은 항상 하나님편에서 서 있었다. 그 편이 가장 지혜롭고, 모든 문제를 가장 잘 풀어가는 길이기 때문이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부르심도  때로는 심한 관계의 갈등을 가져올 수 있다. 가족간, 형제들, 친구들, 이웃과의 갈등이다. 
 예수님의 부르심도 그렇다. - 가족의 미움을 받았다(마13:46-50. 막3:31-35).
 예수님의 가르침도 그렇다. - 가족의 미움을 받았을 것이다(눅9:59-60).
 제자의 삶도 그렇다.

5절 "요셉이 꿈을 꾸고 자기 형들에게 말하매 그들이 그를 더욱 미워하였더라"

6절 "요셉이... 이르되 청하건데... 들으시오"
7절 "밭에서 곡식 단... 내 단은 일어서고 당신들의 단은 내 단을 둘러서서 절하더이다"

8절 "그의 형들이 ... 우리 왕이 되겠느냐 참으로 우리를 다스리게 되겠느냐 하고 ... 그를 더욱 미워하더니"
  => 왜 꿈이야기에서, 단을 둘러서서 절하는 이야기에서 왕의 이야기가 나올까? 누가 누구를 다스린다는 이야기가 나올까?
      왜 이러한 말이 나오는지 당시의 시대적 배경은 무엇인가?

9절 "요셉이 다시 꿈을 꾸고 그의 형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가 또 꿈을 꾼즉 해와 달과 열한 별이 내게 절하더이다 하니라"
10절 "그가 .. 아버지와 형들에게 말하매 아버지가 그를 꾸짖고 .. "
11절 "그의 형들은 시기하되 그의 아버지는 그 말을 간직해 두었더라"
 => 형들의 미움은 3중 반복후 "그의 형들의 시기"에서 꽃을 피움.
      아버지는 첫 행동이 꾸짖음이었지만, 결국 그 말을 마음에 간직하게 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