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dnesday, February 29, 2012

한 날 묵상 - 창 42장 26-38절 <하나님, 지금 나는 무엇을 해야할까요?” “내려갈까요?, 아니면 어떻게 할까요?”라고 묻는 우리가 되자.>


한 날 묵상 - 창 42장 26-38절 <하나님, 지금 나는 무엇을 해야할까요?” “내려갈까요?, 아니면 어떻게 할까요?”라고 묻는 우리가 되자.>

35절 “그들과 그들의 아버지가 돈뭉치를 보고 다 두려워하더니”
36절 “그들의 아버지 ... 요셉도 없어졌고 시므온도 없어졌거늘 베냐민을 또 빼앗아 가고자 하니”
=>여전히 야곱의 마음에 있었다. 누구? 요셉이다. 수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아버지 마음에는 요셉이 있었다. 구체적으로 그 마음을 알 수 없지만, 아마도 요셉이 살아있음을 기대하고 있지는 아닌지 생각해보다. 물론 38절에서 형의 죽음을 언급하고 있지만, 어찌되었든, 지금 야곱의 마음에는 계속 요셉은 살아있다.
=> 이쯤이 바로 타이밍이다. “하나님”이 나올 타이밍이었다.
하나님의 의지하고 하나님의 생각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나님은 야곱에게 나타나셨다.
창46장2절에 “그 밤에 하나님이 이상 중에 이스라엘에게 나타나 이르시되”.

이후에 나타나는 야곱 가족의 모습
1. 곤란의 시기, 곤고의 시기. 기근의 시기에 야곱의 가족이 놓여 있다.

2. 이 때 야곱의 모습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3. 일어난 일의 질타하며 잘잘못을 따지는 것이 우선순위가 아니다. 나름 최선을 다했음을 우리는 앞의 성경을 읽어 알 수 있다. 그 정도면 충분히 자신의 소임을 다 했다. 그러나 야곱은 그 상황을 전혀 공감하지도 않고 일어난 일에 대한 문제만을 지적하고 있다.

4. 일의 상황을 따지고 묻기전에 야곱은 먼저 해야 할 일이 있었다. 그는 결코 하나님께 묻지 않았다. 그는 그것을 해야 했다.
 하나님께 묻는 것이야말로 믿음의 삶의 꽃이다. 보이지 않는 곳을 향해 나아갈 때 기도가 필요하다. 믿음으로 결단하기 위해서 하나님께 묻는 것은 가장 먼저해야 할 일이었다.
 
5. 야곱에게 있어서 단지 하나님은 복을 빌고 응답받기를 원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었다고 생각할 수 있다.
 43장 14절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그 사람 앞에서 너희에게 은혜를 베푸사 그 사람으로 너희 다른 형제와 베냐민을 돌려보내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내가 자식을 잃게 되면 잃으리로다”
 이 때에는 그는 기도한다. 형통함을 위해서, 자녀들의 앞길을 위해서, 자녀들의 형통의 길을 원하고 있다. 그렇게 기도하고 있다.

6. 이게 우리네의 믿음의 보습이자. 야곱의 믿음의 한계이며, 우리 믿음의 한계가 아닐까?
왜 먼저 묻지 않았을까? 내려가야 하는지? 내가 지금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 전혀 물음이 없다.

7. 우리가 묻지 않으면, 하나님은 믿음으로 보이지 않는 길을 가야하는 길에 대해 하나님이 먼저 우리이게 말씀해주신다. 우리가 묻지 않고 머뭇고리고 있다면 그렇게 하신다.
 하나님은 야곱에게도 그렇게 하셨다. 이상 중에 야곱에게 나타나 길에 대해 길잡이를 해 주시다. “애굽으로 내려가기를 두려워하지 말라”(46:2)

8. 여기서 우리의 믿음을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
 우리는 현재의 자리에서 복을 빌고 형통함을 위한 기도는 참으로 잘한다.
 그렇지만, 히브리서 11장의 믿음은 우리에게 없다.
 히 11:1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있는 자리에서 형통함을 빌고, 자녀들의 미래를 위해 누구보다 열심히 기도하지만, 내가 떠나야 할 믿음의 결단을 위해서는 기도하지 않는다.
 눈에 그려지는 것만을 위해 기도한다.
 눈에 그릴 수 없는 것을 보기 위한 기도는 결코 하지 않는다.
 바로 이게 우리의 믿음의 현주소이다.

9. 그러나 믿음의 대가들은 자신의 형통함을 위한 기도보다(사도바울은 자족하는 은혜를 가지고 있었다.) 볼 수 없는 믿음의 길을 위해 기도하며 결단하며 나아가는 사람들이었다.
 
10. 내가 나아가야 할 길에 대해 분명히 하나님은 길을 안내해주신다. 내가 묻지 않으면 말씀으로 인도하여주신다.
 그때는 좀 늦은 것이 아닐까요?  좀 더 일찍 갔으면 하지 않을까요?
 
11. 하나님의 이상이 나타나기전에 물으면 어떠했을까? 한 번쯤 우리가 생각해봐야 할 질문이라 생각된다.
 “하나님 내려가야 하나요?” “하나님, 지금 이 순간에 내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12. 평강을 위한, 형통함을 위한 기도보다 보이지 않지만, 함께 하시는 그 분을 경험할 수 있는 믿음의 길을 위한 기도를 하자.
 믿음의 길을 걷는 사람들에게 형통함이라 우리가 구하지 않아도, 갈급해하지 않아도, 당연히 주어지는 부산물이다.
 오늘 나는 보이지 않는 믿음의 길을 위해 기도한다. 그리고 결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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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절 “그들이 곡식을 나귀에 싣고 그곳을 떠났더니”
=> 희망을 갖고 떠나다.

27-28절 “하나님이 어찌하여 이런 일을 우리에게 행하셨는가 하고”
=> 혼란속으로 빠져들다. 자중지란에 빠지다.
그 속에서 하나님을 찾는다.

29절 “그들이 아버지 야곱에게 이르러 그들이 당한 일을 자세히 알리어 아뢰되”

30-34절 요셉과의 만남을 다시 말하다.

35절 “그들과 그들의 아버지가 돈뭉치를 보고 다 두려워하더니”
36절 “그들의 아버지 ... 요셉도 없어졌고 시므온도 없어졌거늘 베냐민을 또 빼앗아 가고자 하니”
=>여전히 야곱의 마음에 있었다. 누구? 요셉이다. 수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아버지 마음에는 요셉이 있었다. 구체적으로 그 마음을 알 수 없지만, 아마도 요셉이 살아있음을 기대하고 있지는 아닌지 생각해보다. 물론 38절에서 형의 죽음을 언급하고 있지만, 어찌되었든, 지금 야곱의 마음에는 계속 요셉은 살아있다.
=> 이쯤이 바로 타이밍이다. “하나님”이 나올 타이밍이었다.
하나님의 의지하고 하나님의 생각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나님은 야곱에게 나타나셨다.
창46장2절에 “그 밤에 하나님이 이상 중에 이스라엘에게 나타나 이르시되”.

이후에 나타나는 야곱 가족의 모습
1. 곤란의 시기, 곤고의 시기. 기근의 시기에 야곱의 가족이 놓여 있다.
2. 이 때 야곱의 모습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3. 그는 결코 하나님께 묻지 않았다. 단지 하나님께 복을 빌었다.
 43장 14절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그 사람 앞에서 너희에게 은혜를 베푸사 그 사람으로 너희 다른 형제와 베냐민을 돌려보내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내가 자식을 잃게 되면 잃으리로다”
 자녀들의 형통의 길을 원하고 있다. 그렇게 기도하고 있다.
4. 야곱의 믿음의 한계이자, 우리 믿음의 한계가 아닐까?
왜 먼저 묻지 않았을까? 내려가야 하는지? 내가 지금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 전혀 물음이 없다.
5. 하나님이 먼저 이상 중에 야곱에게 나타나 길에 대해 길잡이를 해 주시다.
“두려워하지 말라”
6. 내가 나아가야 할 길에 대해 분명히 하나님은 길을 안내해주신다. 내가 묻지 않으면 말씀으로 인도하여주신다.
7. 하나님의 이상이 나타나기전에 물으면 어떠했을까? 한 번쯤 우리가 생각해봐야 할 질문이라 생각된다.
 “하나님 내려가야 하나요?” “하나님, 지금 이 순간에 내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38절 “야곱이 이르되 내 아들은 너희와 함께 내려가지 못하리니 그의 형은 죽고 그만 남았음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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