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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turday, February 11, 2012

한 날 묵상 - 창41:46-57 <삼십 세 청년 요셉 바로 앞에 서 애굽의 총리가 되다. 총리로서 하나님의 마음을 품고 모든 창고를 열고 백성을 섬기다>

한 날 묵상 - 창41:46-57 <삼십 세 청년 요셉 바로 앞에 서 애굽의 총리가 되다. 총리로서 하나님의 마음을 품고 모든 창고를 열고 백성을 섬기다.>

 항상 낮은 자리에 있어 높은 위치에서 어떻게 살아야할 지를 모를 수 있는 요셉이었지만, 총리로서도 그는 하나님의 마음을 품고 백성을 섬길 줄 알았습니다.


46절 "요셉이 애굽 왕 바로 앞에 설 때에 삼십 세라"
=> 요셉이 수 많은 고난을 겪을 때가 청년의 때였다.

* 요셉의 청년과 나의 청년의 시기를 비교해 보자.
청년 요셉
- 하나님이 주신 꿈을 위해 오직 말씀만 주인으로 삶다.
나의 청년
- 오래참기 힘들다. 즉흥적이다. 쉽게 포기하다.

* 무엇으로 그의 행실을 깨끗하게 할 수 있을까?
시편 119편 9절 "청년이 무엇으로 그의 행실을 깨끗하게 하리이까 주의 말씀만 지킬 따름이니이다"
전도서 12장 1-2절 "너는 청년의 때에 너의 창조주를 기억하라 곧 곤고한 날이 이르기 전에, 나는 아무 낙이 없다고 할 해들이 가깝기 전에 해와 빛과 달과 별들이 어둡기 전에, 비 뒤에 구름이 다시 일어나기 전에 그리하라"

47절 "일곱 해 풍년에 토지 소출이 심히 많은지라"
48절 "...각 성에 저장하되..."
53절 "애굽 땅에 일곱 해 풍년이 그치고"
54절 "각국에는 기근이 있으나 애굽 온 땅에는 먹을 것이 있더니"
55절 "애굽 온 땅이 굶주리매 ... 양식을 구하는지라 ... 요셉에게 가서 그가 너희에게 이르는대로 하라"
56절 "요셉이 모든 창고를 열고 ..."
=> 총리로서도 겸손하게 섬길 줄 알다.

Thursday, February 9, 2012

한 날 묵상 - 창41:40-45 <하나님의 크나 큰 역사, 가나안 구원의 길을 여는 역사의 시작>에 철저히 쓰임 받은 요셉을 보라!


한 날 묵상 - 창41:40-45 <하나님의 크나 큰 역사, 가나안 구원의 길을 여는 역사의 시작에 철저히 쓰임 받은 요셉을 보라!  고센 땅에서 출애굽할 때까지 구별되어 하나님의 백성의 정체성을 유지할 수 있는 길을 열어 주는 자가 되다.>

40절 "너는 내 집을 다스리라"
41절 "바로가 또 요셉에게 이르되 내가 너를 애굽 온 땅의 총리가 되게 하노라 하고"
42절 "자기의 인장반지 ... 세마포 옷 ... 금 사슬 목에 걸고"
43절 "버금 수례에 그를 태우고 무리가 그의 앞에서 소리 지르기를 엎드리라 하더라"
=> 하나님의 꿈(v37-40. 하나님의 영광이 만방에 선포됨)을 이루어짐을 통해, 요셉의 꿈(창28:10-22절)도 이루어집니다.
         "바로가 그에게 애굽 전국을 총리로 다스리게 하였더라"
=> 느낀점...
 읽으면서 흥분이 된다. 어찌 마음이 요동치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하나님께서 요셉을 이렇게 사용하시다니.
 놀랍다. 하나님의 눈에 벗어나 있는 자는 아무도 없다. 그가 종이 되었을 때에도, 옥에 갇혀 있을 때에도, 억울한 누명을 쓸 때에도 하나님의 눈에 여전히 요셉이 있었다.

44절 "애굽 온 땅에서 네 허락없이는 수족을 놀릴 자가 없으리라 하고"
=> 요셉의 영향력은 대단하다. 이토록 애굽 땅에서 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니..

어느 정도 였는가?
출 1장 8절을 보면, "요셉을 알지 못하는 새 왕이 일어나 애굽을 다스리더니"
=> 바로 요셉을 전혀 알지 못하는 새 왕이 일어날 때까지 요셉의 영향력은 계속 되었다.

그렇다면, 얼마동안 요셉의 당대에 영향을끼쳤는가?
애굽에서 종살이하던 기간이 430년이었다.

 출12:40-41절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에 거주한지 사백삼십년이라 사백삼십 년이 끝나는 그 날에 여호와의 군대가 다 애굽 땅에서 나왔은즉"
 이 기간 동안 이스라엘 백성은 종이었지만, 애굽의 주인이었다. 지역적으로 변방인 고센 땅에 거하였지만, 그들의 영향은 애굽의 중심이었다.
  430년 동안 75명의 사람이 20세 이상 계수된 인원만 육십만 삼천오백오십명(민1장46절)이었다. 족히 이백만 이상의 대가족이 되어서,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하나님의 크나 큰 역사의 시작은 어디서부터 인가?
 바로 요셉의 꿈이었다. 요셉의 꿈은 하나님의 꿈이셨다. 요셉은 자기의 꿈을 자기의 야망으로 보지 않았고, 하나님의 꿈이 이루어질 통로로 철저히 보았다. 그래서 그는 인내했고, 준비했고, 하나님의 영이 충만할 때까지 훈련했다. 하나님의 때에 그는 충만한 하나님의 영과 지혜로 열방이 하나님께 영광돌리도록 쓰임받은 하나님의 신실한 도구가 되었다.

45절 "요셉의 이름을 사브낫바네아라 하고 또 온의 제사장 보디베라의 달 아스낫을 그에게 주어 아내로 삼게 하니라"
 => 요셉의 한계. 요셉의 쓰임은 여기까지. 길을 여는 자로 쓰임받데, 예수님의 족보(마1장2절. "야곱은 유다")에는 들지 못함.
 여호와 하나님의 계획은 알았지만, 철저히 자신이 감당해야 할 몫에서까지 충실히 감당함.
  자신이 감당해야 할 선을 넘지 말자. 철저히 하나님의 뜻안에서 감당하자.
  * 디모데후서 2장 20-21절
 "큰 집에는 금 그릇과 은 그릇뿐 아니라 나무 그릇과 질그릇도 있어 귀하게 쓰는 것도 있고 천하게 쓰는 것도 있나니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준ㅂ함이 되리라"
  * 예레미아 18장 1-6절
 "진흙과 토기장이"

Tuesday, February 7, 2012

한 날 묵상 - 창41:37-40 <꿈이 이루어진다. 그러나 이건 요셉의 꿈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꿈이었습니다. 물론 요셉의 꿈도 이루어졌습니다. 요셉의 꿈은 하나님의 꿈의 덤이었습니다. 하나님의 꿈의 덤으로 오는 게 우리의 꿈입니다.>

한 날 묵상 - 창41:37-40 <꿈이 이루어진다. 그러나 이건 요셉의 꿈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꿈이었습니다. 물론 요셉의 꿈도 이루어졌습니다. 요셉의 꿈은 하나님의 꿈의 덤이었습니다. 하나님의 꿈의 덤으로 오는 게 우리의 꿈입니다.>

 꿈은 이루어진다. 그런데 이게, 요셉의 꿈이었을까요? 아닙니다. 이건 바로 하나님이 꿈(38-39절)이었습니다.
 하나님의 꿈을 위해 요셉이 지금까지 인내하며, 하나님의 때에 쓰임받기 자신을 갈고 닭아, 하나님의 지혜와 영이 충만(38-39절)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우리도 꿈을 꿉시다. 나의 꿈이 아니라, 하나님의 꿈을 꿉시다. 아니 하나님의 꿈이 나를 통해서 이루어지도록 나를 더욱 단련시키며 정금같이 빛나게 합시다.

그렇다면, 요셉의 꿈은 어떻게 되었나요?
 그렇지요. 당연히 요셉의 꿈도 이루어집니다(40절). 요셉의 꿈이 하나님안에서 이루어졌습니다. 하나님의 꿈과 요셉의 꿈은 바늘과 실이었습니다. 하나님의 꿈이 이루어지니, 요셉의 꿈은 당연히 따라왔습니다.


37절 "바로와 그의 모든 신하가 이 일을 좋게 여긴지라"
=> 바로 뿐 아니라 모든 신하가  이 일을 좋게 여기었다말을 깊이 묵상해 보자.
 우리에게 과연 이러한 리더십이 있는가? 이러한 일의 깔끔하게 처리할 수 있다면, 이 보다 더 하나님께 영광스러움은 없을 것이다.
 지도자에게만 인정받는 사람이 아니라, 밑에 있는 사람들을 포함해서 모든 사람에 인정받는 사람이 진정 믿음의 사람이다. 위에 잘보이려고 할 필요도 없을 뿐더라, 아랫 사람을 무시할 필요도 없기 때문이다.

*이어지는 바로의 칭찬에서 하나님의 영광이 선포되다.
38절 "바로가 그 신하들에게 이르되 이와 같이 하나님의 영이 감동된 사람은 우리가 어지 찾을 수 있으리요"
39절 "요셉에게 이르되 하나님이 이 모든 것을 네게 보이셨으니 너와 같이 명철하고 지혜 있는 자가 없도다"
=> 바로의 입에서 끊이지 않는 않는 말은 요셉의 칭-찬이 아니다. 바로 하나님이다. 이방인의 입에서 하나님을 찬양하게 하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꿈이다. 열방이 주님을 찬양하는 그 날이 오는 것이 하나님의 꿈이다. 우리는 이를 위해 부르심을 받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쓰임받는 도구가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영이 감동된 사람", "하나님이 이 모든 것을 네게 보이셨으니... 명철하고 지혜 있는 자"



Saturday, February 4, 2012

한 날 묵상 - 창 41:1-36절 <요셉과 바로, 꿈의 이야기>

한 날 묵상 - 창 41:1-36절 <요셉과 바로, 꿈의 이야기>

 요셉의 지난 인내의 시간들이 드디어 빛을 발하고 있습니다. 겸손에서 뭍어나온 지혜들이 아름답게 꽃을 피우고 있습니다.

 이러한 요셉의 현명함은 하나님의 지혜를 그가 가졌기에 가능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지혜를 가질 때 하나님의 꿈을 해석할 뿐 아니라, 꿈이 실제가 되었을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까지 꾸밈없이 진실하게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요셉을 닮기 원한다면, 두 가지를 마음에 품기를 원합니다.
 첫번째, 요셉은 인내과 고통의 시간에 자신을 돌아보고, 하나님께 자신을 드릴 수 있었습니다. 깊이 있는 하나님의 마음을 품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과연 나에게 인내와 고통을 피하지 않을 담대함이 있는가? 또한 그 시간에 분을 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비우고 하나님을 채울 훈련이 되어 있는가? 자신을 비우고 하나님을 채우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극한 훈련이다.

두번째, 하나님의 지혜를 품었다면, 겸손하라. 그리고 겸손함에 그치지 말고 기회가 주어졌을 때 변화를 즐기라. 변화의 길로 나아가는 자들은 담대함이 있어야 한다. 요셉은 수염을 깍고 옷을 갈아있고, 자신에게 주어질 미션을 즐길 준비를 하였다. 물론 거침없이 꿈의 해석 뿐 아니라, 그 꿈에 해석으로 이루어질 미래에 대한 청사진을 보여주였다. 바로이 이미 압도당했고, 그를 신뢰하는 마음은 거기서 시작되었다.
 준비되었음에도 변화를 두려워해 담담해 나아가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무작정 아니라, 하나님의 때를 읽고 성령의 지혜를 의지함으로 담대히 자신의 길을 나가는 것이다. 그리고 그 길을 즐기며 나아갔다.

 오늘도 나는 꿈을 꾼다.
 오늘 그의 꿈이 이루어졌다.
 오늘부터 변화를 즐기라.
 오늘 놀라운 일들이 이루어지리라.

 "하나님을 아는 지식 " 제임스 패커
 운전을 잘 하기 위해서는 눈을 크게 뜨고 앞에 무엇이 있는지를 정확하게 지켜보아야 한다. 지혜롭게 살기 위해서는 냉정할 정도로 명민하고 현실적이어야 하고 인생을 있는 그대로 보아야 한다.
 지혜는 위안을 주는 환상들, 그릇된 감상 또는 장밋빛 안경을 쓰는 것과는 어울리지 않는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은 머리는 구름 속에 파묻고 발은 땅에서 뗀 채 꿈의 세계에 살고 있다. 우리는 결코 세상이나 세상에 속한 사람을 있는 그대로 보지 않는다. 죄로 말미암은 이러한 고질적인 비현실주의는, 우리에게, 심지어 우리 중 가장 건전하고 가장 정통적인 사람들에게도 지혜가 없는 한 가지 이유다.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의 은사는 타락한 세상에서의 우리 삶에 가득 찬 어렵고 고통스러운 것들에게 대해 우리가 이전보다 더 겸손하고 더 즐겁고 더 경건하고, 하나님의 뜻에 더 예민하여, 그것을 행하는 일에 더 단호하고 덜 불안하도록 만드는 효력이 있다.
 신약의 지혜의 열매가 그리스도를 닮는 것 - 화평과 겸손과 사랑 - 이며, 그 뿌리는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지혜가 나타난 것으로 믿는 믿음이라고 말한다. 따라서, 하나님이 구하는 자들에게 주시고 기다리는 지혜는 바로 우리를 하나님과 결속시킬 지혜, 믿음의 정신과 신실한 삶에서 표현될 지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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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절 "바로가 꿈을 꾼즉"
2-8절 "보니 ...  그것을 바로에게 해석하는 자가 없었더라"

* 술 맡은 관원장.
9절 "술 맡은 관원장이 바로에게 말하여 이르되"
12절 "히브리 청년이 우리와 함께 있기로 ... 그가 우리의 꿈을 풀되 그 꿈대로 각 사람에게 해석하더니
13절 "그 해석한 대로 되어 나는 복직되고 그는 매달렸나이다"

* 바로와 요셉
14절 "이에 바로가 사람을 보내어 요셉을 부르매 .. 요셉이 곧 수염을 깍고 그의 옷을 갈아 입고 바로에게 들어가니"
 => 요셉은 알았을까? 이제 그가 들어 사용될 때가 되었음을... 그는 수염을 깍았고, 옷을 갈아 입었다. 준비가 되었다는 의미가 아닐까?
 한편으로, 겸손한 사람이었다. 왕을 뵈러 갈 준비를 제대로 하는 사람이었다.
15절 "내가 한 꿈을 꾸었으나 그것을 해석하는 자가 없더니"
16절 "요셉이 바로에게 대답하여 .. 내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바로에게 편안한 대답을 하시리이다"
17-24절 바로의 꿈 이야기
25절 "요셉이 바로에게 아뢰되 바로의 꿈은 하나라 하나님이 그가 하실 일을 바로에게 보이심이니이다"
26-27절 요셉의 1차 꿈 해석
28절 "내가 바로에게 이르기를 하나님이 그가 하실 일을 바로에게 보이신다 함이 이것이라"
29-31절 요셉의 2차 꿈 해석
32절 "바로께서 꿈을 두 번 겹쳐 꾸신 것은 하나님이 이 일을 정하셨으미이라 하나님이 속히 행하시리니"
33-36절 요셉의 꿈의 해몽에 대한 지혜로운 대처법.
 33절 "명철하고 지혜 있는 사람을 택하여"
 36절 "당이 흉년으로 말미암아 망하지 아니하리이다"
=> 요셉의 지혜로움이 어디까지 인지를 할 수 있다. 하나님이 보이신 꿈의 해석을 통해, 그 꿈을 통해서 하나님의 행하실 일에 대해, 어떻게 대처해야 할 것인지까지를 바로에게 말하고 있다. 어느 누가 이쯤되면 신뢰하지 않을 수 있을까?
 사람의 마음을 얻고 싶거든, 하나님과 관계가 깨어 있으라. 하나님과 관계가 깨어 있을 때, 일어날 일뿐만 아니라, 일어날 일들을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 알 수 있다.
 미래를 예측할 수 없다하는 사람들이 있다. 어느 누가 미래를 예측할 수 있단 말인가? 그러나 미래를 준비할 수 있는 있다. 미래를 준비할 수 있는 것은 다른 어떠한 것이 아니다. 바로 하나님의 지혜를 갖는 것이다.

로마서11장 33절

11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풍성함이여, 그의 판단은 헤아리지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
Oh, the depth of the riches of the wisdom and knowledge of God! How unsearchable his judgments, and his paths beyond tracing out!

고전 2장 6-10절

6 그러나 우리가 온전한 자들 중에서는 지혜를 말하노니 이는 이 세상의 지혜가 아니요 또 이 세상에서 없어질 통치자들의 지혜도 아니요
We do, however, speak a message of wisdom among the mature, but not the wisdom of this age or of the rulers of this age, who are coming to nothing.
7 오직 은밀한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지혜를 말하는 것으로서 곧 감추어졌던 것인데 하나님이 우리의 영광을 위하여 만세 전에 미리 정하신 것이라
No, we speak of God's secret wisdom, a wisdom that has been hidden and that God destined for our glory before time began.
8 이 지혜는 이 세대의 통치자들이 한 사람도 알지 못하였나니 만일 알았더라면 영광의 주를 십자가에 못 박지 아니하였으리라
None of the rulers of this age understood it, for if they had, they would not have crucified the Lord of glory.
9 기록된 바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 생각하지도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
However, as it is written: "No eye has seen, no ear has heard, no mind has conceived what God has prepared for those who love him"-
10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까지도 통달하시느니라
but God has revealed it to us by his Spirit. The Spirit searches all things, even the deep things of God.

Thursday, February 2, 2012

한 날 묵상 - 창41:1 <요셉의 강점은 꿈의 해석이다. 포부가 아니라, 꿈을 맹목적으로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강점을 최대한 활용한 것이다. 요셉의 장점을 위기에 순간에 사용하신 하나님은 우리에게 닥친 위기를 자기의 장점을 활용하여 돌파하기를 기대하신다. 그리고 자기 강점은 곧 하나님과 더욱 친밀한 관계를 맺는 커넥션이 되었다. 오늘 나의 강점을 활용하라>

한 날 묵상 - 창41:1 <요셉의 강점은 꿈의 해석이다. 창37장 꿈을 품은 포부가 아니라, 꿈을 맹목적으로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강점을 최대한 활용한 것이다. 요셉의 장점을 위기에 순간에 사용하신 하나님은 우리에게 닥친 위기를 자기의 장점을 활용하여 돌파하기를 기대하신다. 그리고 자기 강점은 곧 하나님과 더욱 친밀한 관계를 맺는 커넥션이 되었다. 오늘 나의 강점을 활용하라>

요셉의 강점은 꿈의 해석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장점을 활용하신다. 창37장에서 꿈을 품은 요셉을 이끌어가는 것은 포부가 아니라, 꿈을 맹목적으로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자기의 강점을 활용하실 때를 신뢰함으로 기다림이다. 요셉의 강점을 위기에 순간에 사용하신 하나님은 나에게 닥친 위기를 나의 장점을 활용하여 돌파하기를 기대하신다.무엇보다 자기강점은 하나님과 더욱 친밀한 관계를 맺는 커넥션이다.나의 강점을 활용하라


1절 "만 이 년 후에"   "바로가 꿈을 꾼즉"
       => 요셉의 장점을 사용하시는 하나님. 요셉이 자기의 꿈과 자기 꿈의 해석(창37장 1-11절)부터 시작된, 관원장의 꿈 해석, 그리고 바로의 꿈 해석까지, 요셉에게 있어서 꿈 해석은 자기의 큰 장점이 되었다. 꿈의 해석을 올바르게 할 수 있던 능력이 바로 요셉이 하나님과 함께 함의 증거가 되었다. 
 하나님은 우리의 강점을 사용하신다.
 하나님의 요셉의 위기에 순간마다 요셉을 깨우신다. 요셉을 일으키는 힘은 다름아닌 요셉의 강점을 활용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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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점을 발휘하며 사는 사람은 행복하다> "위대한 자기 나의 발견, 강점 혁명" 추천자, 구본형.
 "자기 계발은 자신의 강점을 발견하고 집중적으로 활용함으로써 스스로를 차별시키는 것이다"
벤자민 플랭클린 "인생의 진정한 비극은 우리가 충분한 강점을 갖고 있지 않다는 데이 있지 않고, 오히려 갖고 있는 강점을 충분히 활용하지 못한다는 데에 있다" 그는 미쳐 활용하지 못한 채 낭비되는 재능을 '그늘에 놓인 해시계'라고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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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기다리는 요셉. "만 이 년"의 시간은 하나님이 일하실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하나님이 일하시게 하라. 
"우리가 일할 때 하나님은 침묵하신다. 우리가 기도하기 시작할 때 하나님은 일하신다."
 2년의 시간은 요셉이 또 다시 훈련하는 시간이었다. 그리고 그에게 이 시간은 하늘의 하나님을 향해 기도하는 시간이었다.
 하나님의 때를 알고 있었으며, 하나님의 역사에 쓰임받기 위해서는 자신이 무엇을 할 때가 아니라, 하나님의 자신을 들어 사용하실 때임을 알고 있었다.


Saturday, January 14, 2012

한 날 묵상 - 창 37:5-11 <요셉의 꿈과 형들의 미움. 가족의 비극의 시작인가? 가족의 은혜인가?>

한 날 묵상 - 창 37:5-11 <요셉의 꿈과 형들의 미움. 가족의 비극의 시작인가? 가족의 은혜인가?>

오늘 말씀의 흐름..

요셉의 꿈(두번)
요셉은 자신의 꿈을 말했다. 
아버지는 꾸짖었고, 형들은 더욱 미워했다. 
 반전 "아버지는 그 말을 간직해 두었더라"

말씀의 흐름속에 특별한 관계를 찾을 있는가?
요셉의 꿈은 가족의 비극인가? 가족의 은혜인가?
 오늘 말씀의 흐름에서 보면 가족의 비극으로  이어진다. 형제들안에 갈등이 시작되며, 서로 미워하며 시기하게 된다. 결국 요셉을 애굽에 팔게된다(37:12-36).
 그러나 요셉 꿈 이야기의 끝은 여기가 아니다. 그는 후에 애굽에서 힘든 일들을 만나지만 애굽의 총리가 되고(41:37-57), 결국 가족을 구원하며, 이스라엘을 구원하게 된다(46장).

 하나님은 꿈을 통해 요셉을 부르셨다. 요셉은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했다.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한 요셉에게 찾아오는 것은 형들이 미움, 시기였다. 형제들끼리의 갈등이 더욱 커지게 되었다. 요셉의 이러한 갈등은 결국 아름다운 이야기로 끝을 맺게 된다. 요셉의 꿈으로부터 시작된 사건에서는 하나님의 주도권이 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손이 모든 사건과 상황들을 이끌어가신다. 이 때 요셉은 항상 하나님편에서 서 있었다. 그 편이 가장 지혜롭고, 모든 문제를 가장 잘 풀어가는 길이기 때문이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부르심도  때로는 심한 관계의 갈등을 가져올 수 있다. 가족간, 형제들, 친구들, 이웃과의 갈등이다. 
 예수님의 부르심도 그렇다. - 가족의 미움을 받았다(마13:46-50. 막3:31-35).
 예수님의 가르침도 그렇다. - 가족의 미움을 받았을 것이다(눅9:59-60).
 제자의 삶도 그렇다.

5절 "요셉이 꿈을 꾸고 자기 형들에게 말하매 그들이 그를 더욱 미워하였더라"

6절 "요셉이... 이르되 청하건데... 들으시오"
7절 "밭에서 곡식 단... 내 단은 일어서고 당신들의 단은 내 단을 둘러서서 절하더이다"

8절 "그의 형들이 ... 우리 왕이 되겠느냐 참으로 우리를 다스리게 되겠느냐 하고 ... 그를 더욱 미워하더니"
  => 왜 꿈이야기에서, 단을 둘러서서 절하는 이야기에서 왕의 이야기가 나올까? 누가 누구를 다스린다는 이야기가 나올까?
      왜 이러한 말이 나오는지 당시의 시대적 배경은 무엇인가?

9절 "요셉이 다시 꿈을 꾸고 그의 형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가 또 꿈을 꾼즉 해와 달과 열한 별이 내게 절하더이다 하니라"
10절 "그가 .. 아버지와 형들에게 말하매 아버지가 그를 꾸짖고 .. "
11절 "그의 형들은 시기하되 그의 아버지는 그 말을 간직해 두었더라"
 => 형들의 미움은 3중 반복후 "그의 형들의 시기"에서 꽃을 피움.
      아버지는 첫 행동이 꾸짖음이었지만, 결국 그 말을 마음에 간직하게 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