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dnesday, November 28, 2012

한 날 묵상 - 갈 4:12-20절 <나와 같이 되기를 원하노라, 이 일을 위하여 나는 너희를 향한 또 한 번의 해산의 수고를 하겠다. 우리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이 우리는 그 날까지>

한 날 묵상 - 갈 4:12-20절 <나와 같이 되기를 원하노라,  이 일을 위하여 나는 너희를 향한 또 한 번의 해산의 수고를 하겠다. 우리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이 우리는 그 날까지>

1. 우리 사회에 "나와 같이 되기를 원합니다"라고 말해줄 수 있는 선생이 많았으면 좋겠습니다.

2. 오늘 우리 사회에 참으로 좋은 선생은 많이 있을 수 있지만, 좋은 선생을 만났다 말하는 이들은 적은 것 같습니다.

3. 한편으로 좋은 선생은 결코 혼자 만들어지지 않는 것 같습니다. 아무리 좋은 선생이라도 좋은 제자들이 있어야 진정 좋은 선생이 되겠지요.

4. 좋은 선생은 스스로 들어나는 것이 아니라, 좋은 제자들을 통해 드러 날 수 있기 때문에, 좋은 제자들이 좋은 선생은 세상에 드러나게 하는 것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5. 바울이 참으로 좋은 선생이었습니다. 그러나 결코 바울을 따르는 학생들 없이는 그는 결코 좋은 선생으로 드러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6. 바울은 갈리디아 교회에 이렇게 자신있게 말하고 있습니다. 12절 "형제들아 내가 너희와 같이 되었은즉 너희도 나와 같이 되기를 구하노라"

7. 바울은 이렇게 말할 수 있는 처지에 있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바울은 참으로 허물많은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13절 "내가 처음에 육체에 약함으로 말미암아 너희에게 복음을 전한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

8. 그럼에도 바울이 좋은 선생으로 들어날 수 있었던 이유는 그의 가르침을 따르는 자들이 바울의 허물과 약점을 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오직 그 안에 역사하시는 성령님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9. 바울의 고백을 들어보겠습니다. 14절 "너희는 시험하는 것이 내 육체 있으되 이것을 너희가 업신여기지도 아니하며 버리지도 아니하고 오직 나를 하나님의 천사와 같이 또는 그리스도 예수와 같이 영접하였도다"

10. 여기서 생각해 볼 것은, 흠많은 우리의 인생에서 어떻게 서로 사랑해야 할까? 시험꺼리가 많은 우리 인생에서 과연 우리는 어떻게 남을 바라 보아야 할까? 때론 서로가 짐이 될 수 있는 상황에 닥칠 때 우리는 과연 어떻게 이 어려움을 이겨야 할까?

11. 다음 세 가지로 정해 보았습니다. 
 1) 업신 여기지 말라. 무시하지 말라. 허물은 덮으라고 있는 것이다. 
 2) 짐이 된다 버리지 말라. 부부관계에서, 가족관계에서, 신앙안에서.
 3) 그렇다면 어떻게 그들을 바라볼까? 하나님의 천사같이 보라. 그리스도 예수와 같이 영접하라. 

12. 바울은 참으로 흠 많은 이전의 인생을 살았다.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하고 감옥에 넣고, 죽이기까지 했다. 스데반의 죽음의 증인이기도 했다.

13. 바울이 이제 다메석에서 주님을 만난 이후 전혀 다른 인생의 길에 접어들었다. 옛것은 지나가고 보라 새것이 되었습니다.

14. 바울이 마음을 새롭게 하여 주님의 증인의 삶을 살아 복음을 전할 때, 복음을 듣는 자들이나 동역자들의 마음에 아직 아픔은 채 가시지 않았다.

15. 그러나 바울은 복음안에 우리와 하나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아픔많은 사연이 아직 가슴이 남아 있는 우리는 복음안에 하나가 된 바울을 어떻게 대해야 할까요?

16.  바울은 지금 그들앞에 이렇게 고백합니다. "너희는 시험하는 것이 내 육체 있으되 이것을 너희가 업신여기지도 아니하며 버리지도 아니하고 오직 나를 하나님의 천사와 같이 또는 그리스도 예수와 같이 영접하였도다"

17. 그들은 한 걸음 더 나아갑니다. 바울을 본 것이 아니라 바울속에 역사하시는 성령을 본 것입니다. 그렇다. 우리도 죄인인 한 사람을 보는 것이 아니라, 죄인인 사람이 그리스도를 만나 새영으로 새롭된 성령의 역사와 그리스도의 은혜를 보아아 합니다. 

18. 이것을 가리켜  바로 우리의 영안이 열리었다 말하는 것이다. 죄를 보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의롭게 된 사건을 보는 것이다.

19. 그들은 바울이 아니라 그 속에 역사하시는 성령의 역사를 보고 바울에게 전적인 도움을 준다. 자신의 눈이라도 빼어줄 수 있는 전적인 도움이었다.

20. 바울의 육신의 가시가 "눈"이었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래서 "바울에 눈이라도 빼어" 줄 정도로 전적인 성령의 역사에 동참하게 된 것이다.

21. 15절 "너희의 복이 지금 어디 있느냐 내가 너희에게 증언하노니 너희가 할 수만 있었더라면 너희의 눈이라도 빼어 나에게 주었으리라"

22. 바울이 여기서 참으로 "복"에 관한 중요한 말씀을 하고 있다. 그리스도인에게 있어 "복은 무엇인가?"

23. 바울은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복은 주님의 사역에 동참하는 것이라 말하고 있습니다.

24. 하나님은 결코 혼자 일하시지 않으십니다. 사람을 부르시고 사람을 일으켜 사용하신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부르시는 사람들이 있다. 하나님께 쓰임받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25. 바울은 하나님의 부름받아 하나님의 사역에 쓰임받는 일이야 말로 진정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인들의 "복"임을 말씀하고 있다. 

26. 그렇게 바울은 도와 하나님의 사역에 동참하던 그들이 이제 다시 이전의 돌아가 하나님과 복음으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자에게 열심을 내는 사람들이 되었다.(16-18절).

27. 이럴 때 바울은 그리스도안에서 참된 교제가 무엇인지를 또한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28. 하나님으로부터, 복음으로부터 멀어지려 할 때, 바울은 그들을 결코 포기 않고 또 한 번의 해산의 수고를 하고 있다.
 고린도전서 4장 15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내가 복음으로써 너희를 낳았음이라"

29. 19절 "나의 자녀들아 너희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기까지 다시 너희를 위하여 해산하는 수고를 하노니"

30. 바울은 그들은 "자녀들"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므로 자녀를 낳은 한 번의 해산의 수고를 이미 했다.

31. 그리고 또 한 번의 해산의 수고를 하는데, 그 이유는 "그들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기까지" 또 한번의 해산의 수고를 하는 것이다.

32. 이 일을 위해서 바울은 자신의 "언성"을 높이겠다고 말합니다. 바울이 큰 소리로 말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런데 이 순간만큼은 언성을 높이겠다고 말한다. 그 만큼 "우리 안에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는까지" 그들이 자라는 것을 포기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이것이 바로 가장 중요하고 우선순위에 있기 때문이다.

33. 마지막으로 이 말씀이 생각납니다. 로마서 12장 2절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34. 바울이 추구하는 하나님의 자녀들의 삶이 바로 이런 것 아니겠습니다.

35. 허물많은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이 이처럼 바울과 갈라디아 교인들과의 모습이 되기를 원합니다.

36. 이런 아름다운 공동체를 꿈꾸고 함께 만들어 갈 수 있다면, 그것 자체로 행복할 것 같습니다.

1 comment:

  1. 탐욕의 복음을 버려라
    8장 믿음의 고난은 그리스도인의 표지입니다

    P232.
    갈라디아서에서 바울은 해산의 수고에 대해 언급하는데뇨. 목회자로서 성도를 목양하는 일에 대한 고난을 표현하는 것이 아닐까요?

    그것도 사도직의 고난입니다 성도들이 올바른 복음에서 떠나비
    않도록 거짓 사도들과 싸우는 것 자체가 엄청난 고난이에요. 해산의 수고를 하는 거죠. 복음 선포자로서의 고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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