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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iday, October 25, 2013

한 날 묵상 - 막7:1-23 <바리새인들의 마음에 무엇이 가득 담겨 있는가? 형 식, 외식, 전통입니다. 그래서 그들의 문제는 마음입니다. 바리새인도 우리 도 보이는 것을 씻지 말고 마음을 씻어야 합니다. 마음을 씻기를 할 때 마음 에 거룩이 채워진다. 마음에 거룩이 채워질 때 행동 또한 거룩해진다.>

한 날 묵상 - 막7:1-23 <바리새인들의 마음에 무엇이 가득 담겨 있는가? 외식, 전통이 가득하였습니다. 그런데 바리새인들의 문제는 드러나는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의 문제는 마음이었습니다. 보이는 것을 씻지 말고 마음을 씻으라. 마음을 씻기를 할 때 마음에 거룩이 채워진다. 마음에 거룩이 채워질 때 행동 또한 거룩해진다. 나는 내 안에 무엇을 담고 있는가? 나는 내 마음을 잘 씻고 있는가?>

1. 예수님의 지상 사역의 또 다른 한 축을 오늘 본문을 통해서 보게 됩니다.

2. 예수님은 복음을 통해(복음을 주시고) 새생명을 주시기 위해, 불쌍히 여기는 마음으로 힘없는 약자들을(섬기고 치료하시고) 위해 참 소망을 주시기 위해 이 땅에 오셨습니다.

3. 그리고 예수님은 율법으로 인하여 돌같이 굳어버린 마음을 가진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의 마음을 깨뜨려 온전한 율법의 완성을 이루기 위해 힘들고 어려운 사역을 감당했습니다.

4. 오늘 본문을 기점으로 예수님을 시험하며, 죽이기 위해 중상모략하는 한 축의 인물들이 본격적으로 등장합니다.

5. 그들이 예수님을 넘어뜨리기 위한 시비의 주제는 율법입니다. 모세의 율법을 제대로 지키지 않는 일들을 통해서 예수님께 시비를 걸고, 예수님을 시험하고, 예수님의 제자들을 율법으로 낱낱이 파헤지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5장 17절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

 예수님께 제대로 그들은 걸려드렸습니다. 그들이 율법을 가지고 예수님께 나아올 때 예수님은 그들의 나아옴이 진정 기쁘셨을 것이 분명합니다.

6. 5절에서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예수께 묻되"라는 말씀을 통해서 스스로 판단하기에 예수님의 제자들이 율법에 벗어나지 않았느냐고 묻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당신의 제자들은 장로의 전통을 준행하지 아니하고 부정한 손으로 떡을 먹나이까"

7. 예수님을 이들의 질문에 대답을 이사야의 말씀으로 대답하십니다.
 "너희들은 문제는 마음이다". - 율법의 문제를 율법으로 대답하시는 예수님
 6-7절 "이사야가 너희 외식하는 자에 대하여 잘 예언하였도다 기록하였으되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

8. 그들의 문제는 하나님을 경배하지 않는 것에 있음이 아닙니다. 그들의 문제는 하나님보다 하나님의 계명으로 하나님을 경배한 것이 문제였습니다.

9. 하나님보다 모세를 통해서 주신 율법이 더 컸습니다. 바로 하나님을 경배하지 않고 율법이라는 우상을 숭배하고 있는 것입니다.

10. 그렇게 하나님이 없이 하나님의 계명을 더 앞세우다보니 결국에는 모세에게 율법을 주신 하나님의 의도와 뜻을 제대로 헤아리지 못하고, 결국은 그들 스스로 만들어버린 전통으로 하나님을 경배하는 모순에 빠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8절 "너희가 하나님의 계명은 버리고 사람의 전통을 지키느니라"

11. 결국 이러한 모습은 부모를 공경하라는 십계명의 말씀을 계명으로 지키지 않고 스스로 만든 전통으로 살아가는 모습으로 나아가게 됩니다.
 10-11절 "모세는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고 또 ... 너희는 이르되 사람이 아버지에게나 어머니에게나 말하기를 내가 드려 유익하게 할 것이 고르반 곧 하나님께 드림이 되었다고 하기만 하면 그만이라 하고"

12. 부모를 공경하기 부모님의 필요을 채워드려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부모님께 드릴 몫을 고르반이라 함을 통해 하나님께 드리고 부모님게 드리지 않게 된 것입니다.

13. 결국 그들은 12절 "자기 아버지나 어머니에게 다시 아무 것도 하여 드리기를 허락하지 아니하"게 되었습니다.

14. 그들의 말씀을 잘못 적용한 전통이 하나님의 말씀을 폐하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러한 잘못된 율법을 완전하게 하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15.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잘 깨달아야 합니다.

16. 오늘 우리도 우리에게 주어진 성경 말씀을 잘못 이해하며 적용하며 깨달을 때 하나님보다 성경으로 경배할 수 있습니다.

17. 또한 성경 말씀을 잘못 이해하고 적용함으로 상대방을 이해하지 못하고 포용하지 못하고, 본질적인 것이 아닌 것에 사랑을 할 여유를 갖지 못하게 될 수 있습니다.

18. 이러한 모습이 전통이 되어 버릴 수 있습니다. 한국 교회안에 지금 신학이라는 학문이 전통의 노릇을 하고 있습니다. 본질적인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서로를 용인하지 못하고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19. 이것 조심해야 합니다. 그래서 더욱 올바른 깨달음이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을 말씀하십니다. 14절 "무리를 다시 불러 이르시되 너희는 다 내 말을 듣고 깨달으라"

20. 말씀을 읽고 묵상하며 적용하면서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행한 오류의 빠지지 않기 위해서 우리는 이어지는 예수님의 말씀을 주목해야 합니다.

21. 우리의 겉이 아니라 마음을 씻어내야 합니다. 속은 탐욕과 거짓으로 가득하여도 겉은 반지르하게 살 수 있습니다.

추가) 로마서 7장 18절, "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
 
"갈고 닦고 기경해야 할 내 마음"

22. 목회자가 늘 조심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아무도 보고 있지 않을 때 목회자다움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때에 하나님이 보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23. 많은 사람들앞에 목사인척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혼자 있을 때에도 진정한 목회자가 되어야 합니다.

24. 이는 겉의 문제가 아니라 마음의 문제입니다. 겉만 씻을 뿐 마음을 씻지 못하는 바리새인들을 보게 된다.

25. 예수님의 말씀이 기록된 14-19절까지 말씀의 요지가 바로 이것입니다.

26. "밖에서 들어가는 것이 능히 사람을 더럽게 하지 못함이다. 사람에게서 나오는 그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27. 내 안에 지금 무엇이 있는가? 그것이 밖으로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28. 그래서 바울은 로마서 12장 2절에서 이런 말씀을 우리에게 하고 있습니다.
 롬 12:2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29.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말씀이 가지고 있는 선함, 기쁨, 온전함을 올바르게 깨닫고 분별할 수 있을 때 우리 마음은 새롭게 변화를 받을 수 있습니다.

30. 하나님의 주신 말씀에는 율법적으로, 문자적으로 의미하는 것 이상이 있습니다.

31. 예수님은 자주 비유를 말씀하셨습니다.

32. 우리가 영적인 예배를 온전히 드릴 때 성령님은 우리와 함께 하시고, 성령님은 우리에게 분명한 깨달을 할 수 있도록 도울 것입니다.

33. 바리새인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들의 선진들이 외식함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외식함을 그대로 본받는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의 모습을 보게 되다는 것입니다.

34. 그들에게 무엇이 문제입니까? 깨닫지 못하는 마음이 문제입니다. 그래서 마음에 온전한 말씀을 담지 못했고, 그래서 율법은 알지만, 외곡하였고, 온전한 뜻안에서 행하지 못한 것입니다.

35. 마음의 변화는 말씀의 깨달을 통해서 옵니다. 
14절 "너희는 다 내 말을 듣고 깨달으라"
18절 "너희도 이렇게 깨달음이 없느냐"

36. 만약 우리가 온전히 말씀을 깨닫지 못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어설프게 이해하고 적용한다면, 더 큰 왜곡과 상대방에게는 더 큰 상처를 주게 됩니다.

37. 율법을 외곡한 상황에서는 그들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들은 무엇입니까? 속에서 나오는 악한 것들은 무엇입니까?
21절 "속에서 곧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 곧 음란과 도둑질과 살인과"
22절 "간음과 탐욕과 악독과 속임과 음탕과 질투와 비방과 교만과 우매함이니"

38. 그런데 만약 믿음의 사람들이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깨닫지 못하며, 믿지 않는 사람들이 행하는 것보다 더 큰 상처와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행위를 할 수 있습니다.

39. 믿음의 사람들은 깨어 조심해야 합니다. 특별히 하나님의 주신 이 거룩한 말씀을 잘 분별하여 순종해야 합니다.

40. 외식함이나 가식이 먼저가 아닙니다. 어설픔 흉내가 먼저가 아닙니다. 진정성이 먼저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진정한 마음이 가장 큰 것입니다.

41. 지금도 함께 하시고 역사하시는 성령님께 나의 외식함이나 율법의 전통이 아니라 내 전부인 마음을 드리는 것이 바로 새롭게 변화받는 길입니다.

42. 이 찬양이 생각납니다. "성령님"
  성령님 내 마음 드립니다
  지금 이시간 충만하게 임하옵소서
  누구도 거부할 수 없는
  주의 임재로 나를 둘러 덮으소서

  후렴
  
  십자가를 바라보며 온 맘 다해 예배하니
  사랑스런 성령님 임하소서
  십자가를 바라보면 온 맘 다해 예배하니
  사랑스런 성령님 충만하게 임하소서

43. 형식이 아니라, 전통이 아니라, 후패한 속사람이 아니라, 새롭게 변화된 마음입니다.

44. 나의 전부인 마음을 주님께 내어 드리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45. 할렐루야!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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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 은혜의 복음이란 무엇인가? P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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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리새인들과 또 서기관  중 몇사람과 예수님의 대화

1절 "바리새인들과 또 서기관 중 몇이 예루살렘에서 와서 예수께 모엿들었다가"
=> 예루살렘으로부터 무엇을 하기 위해 내려왔는가? 그들의 발걸음의 의미는? 그다지 선하지 못하다. 순수하지 못하다. 무슨 꼼수를 쓰기 위해 내려 왔을 것이다.

겉모습을 씻는 것을 집중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2절 "그의 제자 중 몇 사람이 부정한 손 곧 씻지 아니한 손으로 떡 먹는 것을 보았더라"
3-4절 (손을 잘 씻지 않고서는 음식을 먹지 아니하며 ... 물을 뿌리지 않고서는 ... 씻음이러라"

5절 "이에 바래시인들과 서기관들이 예수께 묻되"

겉을 신경쓰는 것과 지금까지 행해왔던 전통과 연결시키는 바리새인들과 서기관
5절 "어찌하여 당신의 제자들은 장로들의 전통을 준행하지 아니하고 부정한 손으로 덕을 먹나이까"

예수님의 대답
6절 "이르시되"

첫번째, 전통을 내세우는 그들에 율법의 말씀을 통하여 그들의 외식을 문제를 지적하신다.
6절 "이사야가 너희 외식하는 자에 대하여 잘 예언하였도다"
6-7절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
=> 이스라엘 백성들은 형식적으로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망하는 백성이 되었다. 입술로는 찬양하며 예배하되 마음을 그렇지 못하엿다. 그들은 헛된 경배를 하였다.

=> 하나님의 계명을 온전히 이해하며 실천하기 바란다. 하나님의 경외하는 것이 무엇이며 하나님의 율법의 말씀을 주신 것을 잘 이해하고 실천하며 행하기 원하셨다.

=> 그런데 지금 바리새인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지 못하고 있다. 그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형식으로 하나님을 경배하고 있는 것이다.
8절 "너희가 하나님의 계명을 버리고 사람의 전통을 지키느니라"

둘째, 그들은 지금 전통에 얽매혀 형식적으로 율법을 지키면서 하나님의 계명을 참된 의미를 깨닫지 못할 뿐 아니라 거기에서 멀리 떠나 있음을 보게 된다.
9절 "또 이르시되"
      "너희가 전통을 지키려고 하나님의 계명을 잘 저버리는도다"
13절 "너희가 전한 전통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폐하며"

  - 예를들어, 모세의 율법 "네 부모를 공경하라"(10절) 또 "아버지나 어머니를 모욕하는 자는 죽임을 당하리라"(10절) 하였는데, 너희들은 이 말씀을 온전히 지키지 못하였다는 것이다.

11절 "너희는 이르되 사람이 아버지에게나 어머니에게나 말하기를 내가 드려 유익하게 할 것이 고르반 곧 하나님께 드림이 되었다고 하기만 하면 그만이라 하고"

12절 "자기 아버지나 어머니에게 다시 아무 것도 하여 드리기를 허락하지 아니하여"

 셋째, 겉만 씻을 뿐 마음을 씻지 못하는 바리새인들을 보게 된다.
14-19절 말씀입니다.
 - 밖에서 들어가는 것이 능히 사람을 더럽게 하지 못함이다.
 - 사람에게서 나오는 그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의 외식함을 그대로 본받는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의 모습을 보게 된다.

* 무엇이 문제인가?
깨닫지 못하는 마음이다. 그래서 마음에 온전한 말씀을 담지 못했다. 그래서 율법은 알지만, 외곡하였고, 온전한 뜻안에서 행하지 못했다.

14절 "너희는 다 내 말을 듣고 깨달으라"
18절 "너희도 이렇게 깨달음이 없느냐"


* 율법을 외곡한 상황에서는 그들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들은 무엇인가? 속에서 나오는 악한 것들은 무엇인가?
21절 "속에서 곧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 곧 음란과 도둑질과 살인과"
22절 "간음과 탐욕과 악독과 속임과 음탕과 질투와 비방과 교만과 우매함이니"

===
계명은 깨달음을 통해 행하라고 주신 것이다.
계명을 마음에 담아 행하자.

===
찬양 - 성령님
성령님 내 마음 드립니다
지금 이시간 충만하게 임하옵소서
누구도 거부할 수 없는
주의 임재로 나를 둘러 덮으소서

후렴

십자가를 바라보며 온 맘 다해 예배하니
사랑스런 성령님 임하소서
십자가를 바라보면 온 맘 다해 예배하니
사랑스런 성령님 충만하게 임하소서

찬양 - "내 마음에 가득채운"
내 마음을 가득 채운 주 향한 찬양과 사랑 어떻게 표현할 수 있나
수 많은 찬양들로 그 맘 표현할 길 없어 다시 고백 합니다

주 사랑해요 온 맘 다하여 
말로 다 할 수 없어 오 주 사랑해요 찬양 받아 주소서

수 많은 멜로디와 찬양들을 드렸지만 다시 고백하기 원하네
주님은 나의 사랑 삶의 중심 되시오니 주를 찬양합니다

주 사랑해요 온 맘 다하여 말로 다 할 수 없어

오 주 사랑해요 찬양 받아 주소서

주님 사랑 다시 고백하는 새 날 주심 감사해요
주님 사랑 다시 고백하는 찬양 주심 감사해요

주님 사랑 다시 고백하는 새 날 주심 감사해요
주님 사랑 다시 고백하는 찬양 주심 감사해요

주 사랑해요 온 맘 다하여
말로 다 할 수 없어
오 주 사랑해요 찬양 받아 주소서

주 사랑해요 온 맘 다하여
말로 다 할 수 없어
오 주 사랑해요 찬양 받아 주소서

주님 사랑 다시 고백하는 새 날 주심 감사해요
주님 사랑 다시 고백하는 찬양 주심 감사해요

주님 사랑 다시 고백하는 새 날 주심 감사해요
주님 사랑 다시 고백하는 찬양 주심 감사해요 

===
참고도서
1. 마음 전쟁 -
2. 하나님의 모략 p467. 변화된 신념은 행동과 상품을 바꾼다  "우리는 다가가 섬기는 이들의 마음을 바꾸는데 집중해야 한다"
     P488 "제자들로 하여금 사고와 감정과 행동을 지배하던 구습과 그 "노예" 상태에서 벗어나는 것이다(요8:34, 롬 6:6).
===
참고 - 동물이 돌이 되는 호수
http://blog.naver.com/lemonade3939?Redirect=Log&logNo=140198422578

Wednesday, June 19, 2013

분노 - 국제제자훈련원 목적이 이끄는 매일의 묵상


분노를 다스리기로 결단하라

“[사랑은] … 성내지 아니하며” (고전 13:5)
성경은 “사랑은 성내지 않는다”라고 말한다. 이는 “사랑은 결코 화를 내지 않는다.”라는 말이 아니다. 사실 때때로 사랑의 행위에는 화가 나는 것도 포함된다. 예수님도 아버지의 집인 성전이 시장처럼 된 것을 보시고 화를 내셨다.
우리는 누군가를 사랑하면서 동시에 그 사람에게 화가 날 수 있다. 그 분노는 의롭게 보일 때도 있고 이기적으로 보일 때도 있지만, 보통은 우리가 제일 사랑하는 사람들이 우리를 가장 화 나게 만드는 사람들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생물학적 구성에 화를 내는 능력을 넣으셨다. 화가 나는 것은 죄가 아니다. 그것이 파괴적인 행위로 자신을 몰고 가도록 허락하는 것이 죄가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감정 그 자체는 죄가 아니다. 성경은 하나님도 분노하신다고 말한다.
화가 나는 것은 피할 수 없지만, 그것을 조절하는 법은 배울 수 있다. 분노를 다스리기로 결단하면 그것은 ‘의무’라기보다는 ‘자산’이 될 것이다. 즉 “그게 바로 나야. 화가 나는데 어떡해? 난 화를 참을 수 없어.”라고 하는 것처럼 분노에 대해 변명하고 정당화하는 것을 그치게 된다.
분노는 통제될 수 있다. 당신은 누군가와 말다툼이 시작되어 분위기가 고조되고 있는데, 바로 그 때 전화벨이 울렸던 경험이 있는가? 자신이 화를 얼마나 빨리 다스릴 수 있는지 보라! 당신은 자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분노를 훨씬 잘 통제할 수 있다. 화를 다스리기로 결단하라. 그리고 이렇게 고백하라. “저는 하나님께서 도와주셔야 화를 다스릴 수 있습니다.”
다음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보자.
  • 예수님은 아버지의 집인 성전이 시장처럼 된 것을 보시고 화를 내셨지만, 예수님을 ‘화 내는 분’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는 “그게 바로 나야. 화가 나는데 어떡해? 난 화를 참을 수 없어.”라는 주장에 대해 무엇을 말해주는가?
  • 당신이 마지막으로 버럭 화를 낸 때는 언제인가? 오늘의 교훈을 참고로 앞으로는 그 화를 다르게 해결할 수 있겠는가?
분노의 댓가를 기억하라

“어리석은 자는 성급하게 굴고 신중한 사람은 오래 참는다.” (잠 14:17, 공동번역)
성경은 통제되지 않은 분노에는 늘 가격표가 붙어 있다고 말한다. 그것을 다음 구절과 연관 지어 확인해보라.
  • “분을 쉽게 내는 자는 다툼을 일으켜도 노하기를 더디 하는 자는 시비를 그치게 하느니라” (잠 15:18)
  • “노하는 자는 다툼을 일으키고 성내는 자는 범죄함이 많으니라” (잠 29:22)
  • “어리석은 자는 성급하게 굴고 신중한 사람은 오래 참는다.” (잠 14:17, 공동번역)
성경은 말한다. “자기 가족을 괴롭히는 사람은 얻는 것이 없으며 미련한 자는 지혜로운 사람의 종이 될 것이다.” (잠 11:29, 현대인의 성경)
화를 참지 못할 때마다 우리는 지는 것이다. 번번히 분통을 터뜨리면 될 일도 안 된다. 영어에서 위험(danger)은 분노(anger) 앞에 d만 더 붙인 것이다. 분노는 위험하다. 분노 때문에 우리는 모든 것을 잃을 수도 있다. 명성, 배우자, 직장, 건강까지.
몇 년 전에 읽은 인간 심장에 대한 의학 연구에 따르면, 삶 속에서 적의나 반감을 줄이면 수명이 연장된다고 한다. 부모들이여, 기억하라. 우리는 분노를 통해 아이들에게 자극을 줌으로써 단기적인 이득(자녀가 두려움 때문에 순종하는 것)을 얻을 수 있을지는 모르나, 장기적인 관점에서는 우리가 지게 될 것이다. 분노는 늘 스스로 소외되도록 만들기 때문이다. 분노는 사람들을 끌어들이기보다는 쫓아내기 마련이다. 또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는 대신, 분노는 사람들로 하여금 당신의 필요에 대해 냉담하고 당신에 대해 화가 나게 만든다.
분노를 다스리는 법 중 하나는 그것 때문에 당신이 어떤 대가를 치르게 되는지 이해하는 것이다.
다음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보자.
  • 과거에 분노는 당신의 의사 결정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가?
  • 과거에 당신은 분노 때문에 인간 관계에서 어떤 대가를 치렀는가? 현재의 인간 관계에는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가?

“어리석은 자는 자기의 노를 다 드러내어도 지혜로운 자는 그것을 억제하느니라” (잠 29:11)
화가 났을 때, 충동적으로 반응하지 마라. ‘참음’은 화를 통제하는 데 훌륭한 도구이다. 이는 무한정 참으라거나 심지어 하루를 넘기라는 말이 아니다. 성경도 화가 난 상태로 잠자리에 들지 말라고 말한다. 내가 말하는 ‘참음’은 5분이다.
화가 나기 시작하면, 몇 분 동안 ‘타임 아웃’ 시간을 가지라. 잠시 상황에 대해 곰곰이 생각할 시간을 충분히 갖는 것이다. 잠시 멈춰 생각하지 않으면 잘못된 행동을 하기 쉽다. 반응하기 전에 심사 숙고해야 한다.
화가 나면 뒤로 물러서서 잠시 시간을 가지며 하나님의 관점에서 상황을 바라보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 성경에서 지혜로운 사람이 분노를 억제한다고 한 말에 주목하라. (잠 29:11) 이것을 현대적인 표현으로 바꾸면 “지혜로운 사람은 잠시 멈춰서 열을 식힌다.”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독립선언문을 쓴 토머스 제퍼슨은 이렇게 말했다. “화가 났다면, 입을 열기 전에 열을 세라. 화가 많이 났다면 일부터 백까지 세라.”
다음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보자.
화가 나는 이유를 이해하면 더 잘 인내할 수 있고, 심지어는 허물까지도 덮어줄 수 있게 된다. (잠 19:11) 다음과 같이 자신이 화가 나는 이유를 이해할 수 있게 도와주는 질문 세 가지를 던져보라.
  • 나는 왜 화가 나는가?
  • 내가 정말로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 그것은 어떻게 얻을 수 있는가?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엡 4:26a)
화를 푸는 데는 유익한 방법도 있고 해로운 방법도 있다. 예를 들어 때때로 우리는 자신의 분노를 인정하기보다 화가 난 상태에 머물려고 한다. 그러나 성경은 화가 났는데도 인정하지 않는 것은 거짓말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것은 죄이다.
분노가 꼭 잘못된 것은 아님을 명심하라. 분노는 그것을 부적절하거나 파괴적인 방식으로 표출했을 때만 잘못된 것이다. 목사로서 내 경험에 의하면, 우리 중 대부분은 두세 살 때 분노를 표현하는 법을 배웠으며, 어른이 돼서도 여전히 같은 방식으로 분노를 표현한다. 그러나 당연하게도, 지금은 이것이 통하지 않는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얻고자 했던 목표가 화를 내기 전보다 더 멀어지게 되는 방식으로 분노를 표현한다. 부적절하게 표현된 분노는 의도한 것과 정반대인 결과를 낳는다. 사람들을 향해 분노를 터뜨리면 변화를 지속시킬 수 없다. 더 많은 분노와 소외만 초래할 뿐이다. 그것을 알면서도 우리는 여전히 그렇게 한다.
분노는 결코 근본적인 문제가 아니다. 일반적으로 분노는 다음 세 가지 중 하나의 증상이다. 상처, 두려움, 또는 좌절. 이 세 가지 때문에 우리는 화가 난다. 그러므로 우리는 늘 잠시 멈춰 마음을 가라앉혀야 한다.
다음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보자.
분노의 근원을 이해하면 적절한 방식으로 반응하고, 결과적으로 분노로 인해 “죄를 짓지” 않게 된다. (엡 4:26) 잠시 멈춰 마음을 가라앉힐 때, 스스로에게 다음의 질문을 던져보라.
  • 내가 상처를 받았는가?
  • 내가 두려워하고 있는가?
  • 내가 위협을 느끼고 있는가? 아니면 뭔가 귀중한 것을 잃고 있는 것 같은가?
  • 내가 좌절했는가?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 (롬 12:2a)
행동하는 방식은 느끼는 방식에 의해 결정된다. 느끼는 방식은 생각하는 방식에 의해 결정된다. 행동 방식을 바꾸고 싶으면 사고 방식을 먼저 바꿔야 한다. 분노의 부적절한 관리가 습관화되어(툴툴대기, 울분 터뜨리기, 비난하기 등) 이를 바꾸고 싶다면, 먼저 정신을 개조할 필요가 있다.
가족상담가인 개리 스몰리는 스스로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지라고 제안한다. “나는 화를 내는 것을 즐기는가?” “화를 내면 내가 의도했던 결과가 나타나는가?” “동일한 결과를 좀더 효과적인 방법으로 얻을 순 없을까?” “나는 어떻게 달라질까?”
스몰리는 자신에게 편지를 쓰면서 그 답을 적고 6개월 동안 일주일에 한 번씩 (총 26번이 될 것이다) 큰 소리로 자신에게 읽어주라고 말한다. 또한 다른 사람 앞에서도 읽어보라고 말한다. 이렇게 하는 게 일이 많아 보일 수도 있겠지만, 당신은 이 습관을 바꾸는 것에 대해 얼마나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는가? 분노를 통제하는 것에 대해 얼마나 심각하게 여기는가?
나는 자신에게 쓰는 편지에 성경 말씀을 인용하기를 제안한다. 그러면 하나님의 말씀이 당신의 생각을 채우고,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게 될 것이다. 변화가 일어나는 것이다.
사실 분노하는 이들은 불안정한 사람들이다. 불안정할수록 더 많은 것들에 화가 나기 마련이다. 불안정할수록 더 예민해지고 더 짜증이 나게 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당신을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그리고 그리스도 안에서 당신이 얼마나 안전하고, 당신이 하나님께 얼마나 중요한지를 이해할 때, 당신은 화가 덜 나게 될 것이다.
다음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보자.
  • 에베소서 1장과 로마서 8장을 읽어보라. 이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그리고 우리가 그분 안에서 얼마나 안전한지 가르쳐줌으로써 분노를 방지하는 성경 말씀들이다.

Wednesday, November 28, 2012

한 날 묵상 - 갈 4:12-20절 <나와 같이 되기를 원하노라, 이 일을 위하여 나는 너희를 향한 또 한 번의 해산의 수고를 하겠다. 우리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이 우리는 그 날까지>

한 날 묵상 - 갈 4:12-20절 <나와 같이 되기를 원하노라,  이 일을 위하여 나는 너희를 향한 또 한 번의 해산의 수고를 하겠다. 우리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이 우리는 그 날까지>

1. 우리 사회에 "나와 같이 되기를 원합니다"라고 말해줄 수 있는 선생이 많았으면 좋겠습니다.

2. 오늘 우리 사회에 참으로 좋은 선생은 많이 있을 수 있지만, 좋은 선생을 만났다 말하는 이들은 적은 것 같습니다.

3. 한편으로 좋은 선생은 결코 혼자 만들어지지 않는 것 같습니다. 아무리 좋은 선생이라도 좋은 제자들이 있어야 진정 좋은 선생이 되겠지요.

4. 좋은 선생은 스스로 들어나는 것이 아니라, 좋은 제자들을 통해 드러 날 수 있기 때문에, 좋은 제자들이 좋은 선생은 세상에 드러나게 하는 것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5. 바울이 참으로 좋은 선생이었습니다. 그러나 결코 바울을 따르는 학생들 없이는 그는 결코 좋은 선생으로 드러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6. 바울은 갈리디아 교회에 이렇게 자신있게 말하고 있습니다. 12절 "형제들아 내가 너희와 같이 되었은즉 너희도 나와 같이 되기를 구하노라"

7. 바울은 이렇게 말할 수 있는 처지에 있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바울은 참으로 허물많은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13절 "내가 처음에 육체에 약함으로 말미암아 너희에게 복음을 전한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

8. 그럼에도 바울이 좋은 선생으로 들어날 수 있었던 이유는 그의 가르침을 따르는 자들이 바울의 허물과 약점을 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오직 그 안에 역사하시는 성령님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9. 바울의 고백을 들어보겠습니다. 14절 "너희는 시험하는 것이 내 육체 있으되 이것을 너희가 업신여기지도 아니하며 버리지도 아니하고 오직 나를 하나님의 천사와 같이 또는 그리스도 예수와 같이 영접하였도다"

10. 여기서 생각해 볼 것은, 흠많은 우리의 인생에서 어떻게 서로 사랑해야 할까? 시험꺼리가 많은 우리 인생에서 과연 우리는 어떻게 남을 바라 보아야 할까? 때론 서로가 짐이 될 수 있는 상황에 닥칠 때 우리는 과연 어떻게 이 어려움을 이겨야 할까?

11. 다음 세 가지로 정해 보았습니다. 
 1) 업신 여기지 말라. 무시하지 말라. 허물은 덮으라고 있는 것이다. 
 2) 짐이 된다 버리지 말라. 부부관계에서, 가족관계에서, 신앙안에서.
 3) 그렇다면 어떻게 그들을 바라볼까? 하나님의 천사같이 보라. 그리스도 예수와 같이 영접하라. 

12. 바울은 참으로 흠 많은 이전의 인생을 살았다.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하고 감옥에 넣고, 죽이기까지 했다. 스데반의 죽음의 증인이기도 했다.

13. 바울이 이제 다메석에서 주님을 만난 이후 전혀 다른 인생의 길에 접어들었다. 옛것은 지나가고 보라 새것이 되었습니다.

14. 바울이 마음을 새롭게 하여 주님의 증인의 삶을 살아 복음을 전할 때, 복음을 듣는 자들이나 동역자들의 마음에 아직 아픔은 채 가시지 않았다.

15. 그러나 바울은 복음안에 우리와 하나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아픔많은 사연이 아직 가슴이 남아 있는 우리는 복음안에 하나가 된 바울을 어떻게 대해야 할까요?

16.  바울은 지금 그들앞에 이렇게 고백합니다. "너희는 시험하는 것이 내 육체 있으되 이것을 너희가 업신여기지도 아니하며 버리지도 아니하고 오직 나를 하나님의 천사와 같이 또는 그리스도 예수와 같이 영접하였도다"

17. 그들은 한 걸음 더 나아갑니다. 바울을 본 것이 아니라 바울속에 역사하시는 성령을 본 것입니다. 그렇다. 우리도 죄인인 한 사람을 보는 것이 아니라, 죄인인 사람이 그리스도를 만나 새영으로 새롭된 성령의 역사와 그리스도의 은혜를 보아아 합니다. 

18. 이것을 가리켜  바로 우리의 영안이 열리었다 말하는 것이다. 죄를 보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의롭게 된 사건을 보는 것이다.

19. 그들은 바울이 아니라 그 속에 역사하시는 성령의 역사를 보고 바울에게 전적인 도움을 준다. 자신의 눈이라도 빼어줄 수 있는 전적인 도움이었다.

20. 바울의 육신의 가시가 "눈"이었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래서 "바울에 눈이라도 빼어" 줄 정도로 전적인 성령의 역사에 동참하게 된 것이다.

21. 15절 "너희의 복이 지금 어디 있느냐 내가 너희에게 증언하노니 너희가 할 수만 있었더라면 너희의 눈이라도 빼어 나에게 주었으리라"

22. 바울이 여기서 참으로 "복"에 관한 중요한 말씀을 하고 있다. 그리스도인에게 있어 "복은 무엇인가?"

23. 바울은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복은 주님의 사역에 동참하는 것이라 말하고 있습니다.

24. 하나님은 결코 혼자 일하시지 않으십니다. 사람을 부르시고 사람을 일으켜 사용하신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부르시는 사람들이 있다. 하나님께 쓰임받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25. 바울은 하나님의 부름받아 하나님의 사역에 쓰임받는 일이야 말로 진정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인들의 "복"임을 말씀하고 있다. 

26. 그렇게 바울은 도와 하나님의 사역에 동참하던 그들이 이제 다시 이전의 돌아가 하나님과 복음으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자에게 열심을 내는 사람들이 되었다.(16-18절).

27. 이럴 때 바울은 그리스도안에서 참된 교제가 무엇인지를 또한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28. 하나님으로부터, 복음으로부터 멀어지려 할 때, 바울은 그들을 결코 포기 않고 또 한 번의 해산의 수고를 하고 있다.
 고린도전서 4장 15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내가 복음으로써 너희를 낳았음이라"

29. 19절 "나의 자녀들아 너희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기까지 다시 너희를 위하여 해산하는 수고를 하노니"

30. 바울은 그들은 "자녀들"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므로 자녀를 낳은 한 번의 해산의 수고를 이미 했다.

31. 그리고 또 한 번의 해산의 수고를 하는데, 그 이유는 "그들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기까지" 또 한번의 해산의 수고를 하는 것이다.

32. 이 일을 위해서 바울은 자신의 "언성"을 높이겠다고 말합니다. 바울이 큰 소리로 말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런데 이 순간만큼은 언성을 높이겠다고 말한다. 그 만큼 "우리 안에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는까지" 그들이 자라는 것을 포기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이것이 바로 가장 중요하고 우선순위에 있기 때문이다.

33. 마지막으로 이 말씀이 생각납니다. 로마서 12장 2절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34. 바울이 추구하는 하나님의 자녀들의 삶이 바로 이런 것 아니겠습니다.

35. 허물많은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이 이처럼 바울과 갈라디아 교인들과의 모습이 되기를 원합니다.

36. 이런 아름다운 공동체를 꿈꾸고 함께 만들어 갈 수 있다면, 그것 자체로 행복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