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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iday, October 25, 2013

한 날 묵상 - 막7:1-23 <바리새인들의 마음에 무엇이 가득 담겨 있는가? 형 식, 외식, 전통입니다. 그래서 그들의 문제는 마음입니다. 바리새인도 우리 도 보이는 것을 씻지 말고 마음을 씻어야 합니다. 마음을 씻기를 할 때 마음 에 거룩이 채워진다. 마음에 거룩이 채워질 때 행동 또한 거룩해진다.>

한 날 묵상 - 막7:1-23 <바리새인들의 마음에 무엇이 가득 담겨 있는가? 외식, 전통이 가득하였습니다. 그런데 바리새인들의 문제는 드러나는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의 문제는 마음이었습니다. 보이는 것을 씻지 말고 마음을 씻으라. 마음을 씻기를 할 때 마음에 거룩이 채워진다. 마음에 거룩이 채워질 때 행동 또한 거룩해진다. 나는 내 안에 무엇을 담고 있는가? 나는 내 마음을 잘 씻고 있는가?>

1. 예수님의 지상 사역의 또 다른 한 축을 오늘 본문을 통해서 보게 됩니다.

2. 예수님은 복음을 통해(복음을 주시고) 새생명을 주시기 위해, 불쌍히 여기는 마음으로 힘없는 약자들을(섬기고 치료하시고) 위해 참 소망을 주시기 위해 이 땅에 오셨습니다.

3. 그리고 예수님은 율법으로 인하여 돌같이 굳어버린 마음을 가진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의 마음을 깨뜨려 온전한 율법의 완성을 이루기 위해 힘들고 어려운 사역을 감당했습니다.

4. 오늘 본문을 기점으로 예수님을 시험하며, 죽이기 위해 중상모략하는 한 축의 인물들이 본격적으로 등장합니다.

5. 그들이 예수님을 넘어뜨리기 위한 시비의 주제는 율법입니다. 모세의 율법을 제대로 지키지 않는 일들을 통해서 예수님께 시비를 걸고, 예수님을 시험하고, 예수님의 제자들을 율법으로 낱낱이 파헤지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5장 17절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

 예수님께 제대로 그들은 걸려드렸습니다. 그들이 율법을 가지고 예수님께 나아올 때 예수님은 그들의 나아옴이 진정 기쁘셨을 것이 분명합니다.

6. 5절에서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예수께 묻되"라는 말씀을 통해서 스스로 판단하기에 예수님의 제자들이 율법에 벗어나지 않았느냐고 묻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당신의 제자들은 장로의 전통을 준행하지 아니하고 부정한 손으로 떡을 먹나이까"

7. 예수님을 이들의 질문에 대답을 이사야의 말씀으로 대답하십니다.
 "너희들은 문제는 마음이다". - 율법의 문제를 율법으로 대답하시는 예수님
 6-7절 "이사야가 너희 외식하는 자에 대하여 잘 예언하였도다 기록하였으되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

8. 그들의 문제는 하나님을 경배하지 않는 것에 있음이 아닙니다. 그들의 문제는 하나님보다 하나님의 계명으로 하나님을 경배한 것이 문제였습니다.

9. 하나님보다 모세를 통해서 주신 율법이 더 컸습니다. 바로 하나님을 경배하지 않고 율법이라는 우상을 숭배하고 있는 것입니다.

10. 그렇게 하나님이 없이 하나님의 계명을 더 앞세우다보니 결국에는 모세에게 율법을 주신 하나님의 의도와 뜻을 제대로 헤아리지 못하고, 결국은 그들 스스로 만들어버린 전통으로 하나님을 경배하는 모순에 빠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8절 "너희가 하나님의 계명은 버리고 사람의 전통을 지키느니라"

11. 결국 이러한 모습은 부모를 공경하라는 십계명의 말씀을 계명으로 지키지 않고 스스로 만든 전통으로 살아가는 모습으로 나아가게 됩니다.
 10-11절 "모세는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고 또 ... 너희는 이르되 사람이 아버지에게나 어머니에게나 말하기를 내가 드려 유익하게 할 것이 고르반 곧 하나님께 드림이 되었다고 하기만 하면 그만이라 하고"

12. 부모를 공경하기 부모님의 필요을 채워드려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부모님께 드릴 몫을 고르반이라 함을 통해 하나님께 드리고 부모님게 드리지 않게 된 것입니다.

13. 결국 그들은 12절 "자기 아버지나 어머니에게 다시 아무 것도 하여 드리기를 허락하지 아니하"게 되었습니다.

14. 그들의 말씀을 잘못 적용한 전통이 하나님의 말씀을 폐하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러한 잘못된 율법을 완전하게 하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15.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잘 깨달아야 합니다.

16. 오늘 우리도 우리에게 주어진 성경 말씀을 잘못 이해하며 적용하며 깨달을 때 하나님보다 성경으로 경배할 수 있습니다.

17. 또한 성경 말씀을 잘못 이해하고 적용함으로 상대방을 이해하지 못하고 포용하지 못하고, 본질적인 것이 아닌 것에 사랑을 할 여유를 갖지 못하게 될 수 있습니다.

18. 이러한 모습이 전통이 되어 버릴 수 있습니다. 한국 교회안에 지금 신학이라는 학문이 전통의 노릇을 하고 있습니다. 본질적인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서로를 용인하지 못하고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19. 이것 조심해야 합니다. 그래서 더욱 올바른 깨달음이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을 말씀하십니다. 14절 "무리를 다시 불러 이르시되 너희는 다 내 말을 듣고 깨달으라"

20. 말씀을 읽고 묵상하며 적용하면서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행한 오류의 빠지지 않기 위해서 우리는 이어지는 예수님의 말씀을 주목해야 합니다.

21. 우리의 겉이 아니라 마음을 씻어내야 합니다. 속은 탐욕과 거짓으로 가득하여도 겉은 반지르하게 살 수 있습니다.

추가) 로마서 7장 18절, "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
 
"갈고 닦고 기경해야 할 내 마음"

22. 목회자가 늘 조심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아무도 보고 있지 않을 때 목회자다움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때에 하나님이 보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23. 많은 사람들앞에 목사인척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혼자 있을 때에도 진정한 목회자가 되어야 합니다.

24. 이는 겉의 문제가 아니라 마음의 문제입니다. 겉만 씻을 뿐 마음을 씻지 못하는 바리새인들을 보게 된다.

25. 예수님의 말씀이 기록된 14-19절까지 말씀의 요지가 바로 이것입니다.

26. "밖에서 들어가는 것이 능히 사람을 더럽게 하지 못함이다. 사람에게서 나오는 그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27. 내 안에 지금 무엇이 있는가? 그것이 밖으로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28. 그래서 바울은 로마서 12장 2절에서 이런 말씀을 우리에게 하고 있습니다.
 롬 12:2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29.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말씀이 가지고 있는 선함, 기쁨, 온전함을 올바르게 깨닫고 분별할 수 있을 때 우리 마음은 새롭게 변화를 받을 수 있습니다.

30. 하나님의 주신 말씀에는 율법적으로, 문자적으로 의미하는 것 이상이 있습니다.

31. 예수님은 자주 비유를 말씀하셨습니다.

32. 우리가 영적인 예배를 온전히 드릴 때 성령님은 우리와 함께 하시고, 성령님은 우리에게 분명한 깨달을 할 수 있도록 도울 것입니다.

33. 바리새인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들의 선진들이 외식함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외식함을 그대로 본받는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의 모습을 보게 되다는 것입니다.

34. 그들에게 무엇이 문제입니까? 깨닫지 못하는 마음이 문제입니다. 그래서 마음에 온전한 말씀을 담지 못했고, 그래서 율법은 알지만, 외곡하였고, 온전한 뜻안에서 행하지 못한 것입니다.

35. 마음의 변화는 말씀의 깨달을 통해서 옵니다. 
14절 "너희는 다 내 말을 듣고 깨달으라"
18절 "너희도 이렇게 깨달음이 없느냐"

36. 만약 우리가 온전히 말씀을 깨닫지 못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어설프게 이해하고 적용한다면, 더 큰 왜곡과 상대방에게는 더 큰 상처를 주게 됩니다.

37. 율법을 외곡한 상황에서는 그들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들은 무엇입니까? 속에서 나오는 악한 것들은 무엇입니까?
21절 "속에서 곧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 곧 음란과 도둑질과 살인과"
22절 "간음과 탐욕과 악독과 속임과 음탕과 질투와 비방과 교만과 우매함이니"

38. 그런데 만약 믿음의 사람들이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깨닫지 못하며, 믿지 않는 사람들이 행하는 것보다 더 큰 상처와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행위를 할 수 있습니다.

39. 믿음의 사람들은 깨어 조심해야 합니다. 특별히 하나님의 주신 이 거룩한 말씀을 잘 분별하여 순종해야 합니다.

40. 외식함이나 가식이 먼저가 아닙니다. 어설픔 흉내가 먼저가 아닙니다. 진정성이 먼저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진정한 마음이 가장 큰 것입니다.

41. 지금도 함께 하시고 역사하시는 성령님께 나의 외식함이나 율법의 전통이 아니라 내 전부인 마음을 드리는 것이 바로 새롭게 변화받는 길입니다.

42. 이 찬양이 생각납니다. "성령님"
  성령님 내 마음 드립니다
  지금 이시간 충만하게 임하옵소서
  누구도 거부할 수 없는
  주의 임재로 나를 둘러 덮으소서

  후렴
  
  십자가를 바라보며 온 맘 다해 예배하니
  사랑스런 성령님 임하소서
  십자가를 바라보면 온 맘 다해 예배하니
  사랑스런 성령님 충만하게 임하소서

43. 형식이 아니라, 전통이 아니라, 후패한 속사람이 아니라, 새롭게 변화된 마음입니다.

44. 나의 전부인 마음을 주님께 내어 드리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45. 할렐루야!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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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 은혜의 복음이란 무엇인가? P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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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리새인들과 또 서기관  중 몇사람과 예수님의 대화

1절 "바리새인들과 또 서기관 중 몇이 예루살렘에서 와서 예수께 모엿들었다가"
=> 예루살렘으로부터 무엇을 하기 위해 내려왔는가? 그들의 발걸음의 의미는? 그다지 선하지 못하다. 순수하지 못하다. 무슨 꼼수를 쓰기 위해 내려 왔을 것이다.

겉모습을 씻는 것을 집중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2절 "그의 제자 중 몇 사람이 부정한 손 곧 씻지 아니한 손으로 떡 먹는 것을 보았더라"
3-4절 (손을 잘 씻지 않고서는 음식을 먹지 아니하며 ... 물을 뿌리지 않고서는 ... 씻음이러라"

5절 "이에 바래시인들과 서기관들이 예수께 묻되"

겉을 신경쓰는 것과 지금까지 행해왔던 전통과 연결시키는 바리새인들과 서기관
5절 "어찌하여 당신의 제자들은 장로들의 전통을 준행하지 아니하고 부정한 손으로 덕을 먹나이까"

예수님의 대답
6절 "이르시되"

첫번째, 전통을 내세우는 그들에 율법의 말씀을 통하여 그들의 외식을 문제를 지적하신다.
6절 "이사야가 너희 외식하는 자에 대하여 잘 예언하였도다"
6-7절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
=> 이스라엘 백성들은 형식적으로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망하는 백성이 되었다. 입술로는 찬양하며 예배하되 마음을 그렇지 못하엿다. 그들은 헛된 경배를 하였다.

=> 하나님의 계명을 온전히 이해하며 실천하기 바란다. 하나님의 경외하는 것이 무엇이며 하나님의 율법의 말씀을 주신 것을 잘 이해하고 실천하며 행하기 원하셨다.

=> 그런데 지금 바리새인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지 못하고 있다. 그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형식으로 하나님을 경배하고 있는 것이다.
8절 "너희가 하나님의 계명을 버리고 사람의 전통을 지키느니라"

둘째, 그들은 지금 전통에 얽매혀 형식적으로 율법을 지키면서 하나님의 계명을 참된 의미를 깨닫지 못할 뿐 아니라 거기에서 멀리 떠나 있음을 보게 된다.
9절 "또 이르시되"
      "너희가 전통을 지키려고 하나님의 계명을 잘 저버리는도다"
13절 "너희가 전한 전통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폐하며"

  - 예를들어, 모세의 율법 "네 부모를 공경하라"(10절) 또 "아버지나 어머니를 모욕하는 자는 죽임을 당하리라"(10절) 하였는데, 너희들은 이 말씀을 온전히 지키지 못하였다는 것이다.

11절 "너희는 이르되 사람이 아버지에게나 어머니에게나 말하기를 내가 드려 유익하게 할 것이 고르반 곧 하나님께 드림이 되었다고 하기만 하면 그만이라 하고"

12절 "자기 아버지나 어머니에게 다시 아무 것도 하여 드리기를 허락하지 아니하여"

 셋째, 겉만 씻을 뿐 마음을 씻지 못하는 바리새인들을 보게 된다.
14-19절 말씀입니다.
 - 밖에서 들어가는 것이 능히 사람을 더럽게 하지 못함이다.
 - 사람에게서 나오는 그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의 외식함을 그대로 본받는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의 모습을 보게 된다.

* 무엇이 문제인가?
깨닫지 못하는 마음이다. 그래서 마음에 온전한 말씀을 담지 못했다. 그래서 율법은 알지만, 외곡하였고, 온전한 뜻안에서 행하지 못했다.

14절 "너희는 다 내 말을 듣고 깨달으라"
18절 "너희도 이렇게 깨달음이 없느냐"


* 율법을 외곡한 상황에서는 그들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들은 무엇인가? 속에서 나오는 악한 것들은 무엇인가?
21절 "속에서 곧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 곧 음란과 도둑질과 살인과"
22절 "간음과 탐욕과 악독과 속임과 음탕과 질투와 비방과 교만과 우매함이니"

===
계명은 깨달음을 통해 행하라고 주신 것이다.
계명을 마음에 담아 행하자.

===
찬양 - 성령님
성령님 내 마음 드립니다
지금 이시간 충만하게 임하옵소서
누구도 거부할 수 없는
주의 임재로 나를 둘러 덮으소서

후렴

십자가를 바라보며 온 맘 다해 예배하니
사랑스런 성령님 임하소서
십자가를 바라보면 온 맘 다해 예배하니
사랑스런 성령님 충만하게 임하소서

찬양 - "내 마음에 가득채운"
내 마음을 가득 채운 주 향한 찬양과 사랑 어떻게 표현할 수 있나
수 많은 찬양들로 그 맘 표현할 길 없어 다시 고백 합니다

주 사랑해요 온 맘 다하여 
말로 다 할 수 없어 오 주 사랑해요 찬양 받아 주소서

수 많은 멜로디와 찬양들을 드렸지만 다시 고백하기 원하네
주님은 나의 사랑 삶의 중심 되시오니 주를 찬양합니다

주 사랑해요 온 맘 다하여 말로 다 할 수 없어

오 주 사랑해요 찬양 받아 주소서

주님 사랑 다시 고백하는 새 날 주심 감사해요
주님 사랑 다시 고백하는 찬양 주심 감사해요

주님 사랑 다시 고백하는 새 날 주심 감사해요
주님 사랑 다시 고백하는 찬양 주심 감사해요

주 사랑해요 온 맘 다하여
말로 다 할 수 없어
오 주 사랑해요 찬양 받아 주소서

주 사랑해요 온 맘 다하여
말로 다 할 수 없어
오 주 사랑해요 찬양 받아 주소서

주님 사랑 다시 고백하는 새 날 주심 감사해요
주님 사랑 다시 고백하는 찬양 주심 감사해요

주님 사랑 다시 고백하는 새 날 주심 감사해요
주님 사랑 다시 고백하는 찬양 주심 감사해요 

===
참고도서
1. 마음 전쟁 -
2. 하나님의 모략 p467. 변화된 신념은 행동과 상품을 바꾼다  "우리는 다가가 섬기는 이들의 마음을 바꾸는데 집중해야 한다"
     P488 "제자들로 하여금 사고와 감정과 행동을 지배하던 구습과 그 "노예" 상태에서 벗어나는 것이다(요8:34, 롬 6:6).
===
참고 - 동물이 돌이 되는 호수
http://blog.naver.com/lemonade3939?Redirect=Log&logNo=140198422578

Thursday, July 4, 2013

한 날 묵상 - 막 4:21-25 <등경위의 등불은 비추는 역할 뿐 아니라 작은 티 도 크게 보이기에 늘 스스로 삼가 조심해야 합니다>


1. 연예인들이나 우리가 공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두 가지 마음이 듭니다.

2. 첫째는 부럽다. 진짜 부럽다고 말 할 수 있습니다. 물론 '그게 무슨 부러운 것이냐?' 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말하는 사람과 저는 성격적으로 차이가 있다고 할 수 있기에 그들의 주장도 인정하는 바이지만, 제 생각에는 많은 사람들에 인정받고 늘 관심이 대상이 되는 것은 생각해 보면 기쁜 일이라 생각해야 합니다.

3. 그런데 두 번째로 생각해 볼 것은 그들은 공인이라는 사실에 그들의 조그만한 실수나 잘못도 많은 사람들의 눈에 크게 비춘다는 것입니다. 이 때 우리는 무조건적으로 공인들에게도 마태복음 7장1-5절에서 말씀하고 있는 "비판하지 말라"를 적용하는 것은 성급한 행동이라고 생각합니다. 
 참고로 보면, "보라 네 눈 속에 들보가 있는데 어찌하여 형제에게 말하기를 나로 네 눈 속에 있는 티를 빼게 하라 하겠느냐"

4. 왜 성급한 행동이라고 생각하게 되냐하면, 오늘 본 마가복음 4장 21-25절 말씀에 위의 마태복음 7장 비판하지 말라의 말씀을 적용하는 것은 바르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5. 등경위의 등불은 깨끗해야 합니다. 그래야 빛을 멀리 밝게 비출 수 있습니다. 조그마한 티나 잘못이 있으면 멀리도 비출 수 없을 뿐 아니라, 밝게도 비출 수 없기 때문입니다.

6. 공인은 공인입니다. 스스로 그렇게 인정하지 않았을 지라도 자신이 첫번째 많은 사람들로부터 사랑을 받고 롤 모델로 많은 사람들로부터 인정받고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면, 두번째로 살펴본 자신의 잘못이 일반 사람들보다 더 엄격한 것에 대해서 인정을 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알게 모르게 그 사람은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치고 있기 때문입니다. 특별히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는 지대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입니다. 

7. 우리도 그리스도인으로 세상에 구별된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우리를 보실 때 세상의 공인으로 보십니다. 세상에 믿음의 사람으로 특별히 구별된 사람으로 보신다는 말씀입니다.

8. 이는 우리에게 위의 두 가지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9. 우리에게 은혜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과 은혜과 관심을 독차지할 수 있는 은혜입니다. 참으로 귀한 것입니다.

10. 그러나 한편으로 티나 잘못에 대해 더 엄격합니다. 세상의 기준으로  괜찬ㅅ다고  말할 수 있지만, 하나님의 기준으로는 턱없이 부족할 수 있습니다. 그래도 우리의 기준은 세상의 기준이 아니라 하나님의 기준이 되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를 누릴 뿐 아니라 하나님이 인정한 하나님 나라의 공인이기 때문입니다. 

11. 그래서 오늘 본문은 "등경위의 등불"에 대해서 우리에게 이 두 가지 사실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12. 21절 "사람이 등불을 가져오는 것은 말 아래에나 평상 아리에 두려 함이냐 등경 위에 드려 함이냐"

13. 우리는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인으로 볼 수 있도록 행동해야 합니다. 아니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야 합니다. 가끔 보면 세상에서 볼 때 저 사람이 과연 '그리스도인인지', '아닌지' 구별이 안가는 사람을 볼 때가 있습니다.

14. 우리는 세상을 밝게 비추는 등불로서 등경위에 있서야 합니다 .세상에 그리스도인으로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야 합니다.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라)

15.  우리가 의식적으로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지 않는 것에 대해 예수님은 경고를 하십니다. 

16. 22절 "드러내려 하지 않고는 숨긴 것이 없고 나타내려 하지 않고는 감추인 것이 없느니라"

17. 스스로 감추거나 드러내려 하지 않는 것에 대한 경고의 말씀입니다. 자신의 정체가 드러나지 않는 것에 대한 책임은 자신에게 있습니다. 왜냐하면 믿음이 있는 사람은 자신의 정체가 드러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니다.

18. 그래서 예수님은 마태복음 5장에서 예수님의 제자들을 가리켜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 '세상의 빛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19. 드러난 삶을 사십시요. 아니 드러난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이는 당연한 것입니다. 23절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으라" 예수님의 말씀은 엄격하시면서 정확하십니다.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을 수 밖에 없습니다. 

20. 더불어 듣는자는 스스로 늘 조심해야 합니다. 24절 "너희가 무엇을 듣는가 스스로 삼가라" 들었다면 조심해야 합니다. 

21. 24절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며 더 받으리니"

22. 우리의 비춤으로 세상의 어둠은 밝게 비추게 됩니다. 빛이 들어오면 자연스럽게 어두움은 물러가게 됩니다. 빛이 많은 많을 수록 어두움이 설 자리는 점점 줄어듭니다. 

23. 그런데, 어두움이 물러 가면서 쉽게 물러가지 않습니다. 어떻게든 빛의 밝기를 줄이거나 완전히 끄려고 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24절 "더 받으리니"라는 말씀처럼 더 엄격하고 아주 작은 티라도 더 크게 하려고 합니다. 

24. 우리는 일을 조심해야 합니다. 더 헤아림을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25. 더 헤아림을 받을 수 있는 것이 두려워 때로는 등불의 역할을 포기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아닙니다. 그래서는 안됩니다. 등불은 반드시 등경위에 있어야 합니다.

25. 이게 바로 우리가 감당해야 할 소명이자, 짐어져야 할 십자가이며, 가야 할 넓은 길이 아닌 좁은 길입니다. 

26. 우리가 가는 이 길은 자신에게 큰 기쁨이자 유익입니다. 25절 "있는 자는 받을 것이요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도 빼앗기리라"

27. 오늘도 어떻게 하루를 살아가기를 원하십니까?

28. 등불로 살아가야 합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등경위에 있어야 합니다.

29. 이 자리는 은혜이며 기쁨이자 떄로는 고난의 자리입니다. 

30. 십자가의 길이 그렇습니다. 영광의 길이자 고난의 길입니다. 영광만 취할 수 없고, 고난만이 있는 것이 아니빈다. 십자가의 길은 영광이자 고난입니다. 

31. 오늘 하루도 등경위에 있는 등불의 삶을 살아가기를 축복합니다. 그 길이 영광의 길임을 기억하고 걸어갑시다. 걸어갈 때 고난이 오는 것은 필연적입니다.

32. 예수님도 우리를 사랑하사 그렇게 사랑하셨습니다. 

33. 한 날 등경위의 등불로 세상의 어두운 곳을 밝게 비추어 어두움이 물러가는 은혜가 있는 십자가의 흔적의 삶을 살아가기를 주님의 이름을 축복합니다.

34. 할렐루야! 아멘!





















Tuesday, April 23, 2013

한 날 묵상 - 막 1:40-45 <예수님의 병고침, 율법과 예수, 그리고 병고침 이후의 삶>

한 날 묵상 - 막 1:40-45 <예수님의 병고침, 율법과 예수, 그리고 병고침 이후의 삶>

1.  신이 있다는 것을 알면서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2.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하면서 하나님에 대해 잘 알려고 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3. 하나님에 대해서 알려하면서도 하나님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4. 하나님을 알되 제대로 아는 것이 중요한다.

5. 야고보의 형제 사도 요한은 요한복음에서 예수님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요한복음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요1:1)

6. 예수님도 말씀하십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지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요 14:9)

7. 예수님은 "그의 아들에 관하여 말하면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롬1:3) 나신 분이시다.

8. 예수님은 이처럼 율법의 약속의 말씀따라 이 땅에 오신 분이시다.

9. 이렇게 확실함에도 불구하고, 율법에 계시는 예수님을 율법에 정한데로 하지 않는다고 예수를 고발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10. 예수님은 결코 예수님은 율법 파괴자가 아니시다

11.예수님을 율법을 완성하러 오셨다.

12. 예수님은 율법의 말씀을 지킬 뿐 아니라 율법의 완전한 완성, 즉 의미를 온전히 세우기 위해 오셨다.  마태복음 5장 17-20절

17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
18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도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19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계명 중의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고 또 그같이 사람을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지극히 작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누구든지 이를 행하며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크다 일컬음을 받으리라
20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13. 오늘 본문에서도 예수님께서는 병든 나병환자를 고치시고(40절), 말씀하십니다. "삼가 아무에게 아무 말도 하지 말고 가서 네 몸을 제사장에게 보이고"(44절)

14. 예수님은 율법에 순종하였다. 나아가 예수님은 구약의 율법에 대해 온전한 해석자로 오셨습니다.

15. 율법을 주신 이유가 있다는 것입니다. 율법은 우리의 삶을 옭아매는 것이 아닙니다. 내 안에 있는 죄를 발견하는 도구로 율법을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

16. 율법을 통해 죄를 발견한 우리는 율법을 통해서 사랑을 받게 됩ㄴ디ㅏ.

17. 그래서 율법의 완성은 사랑입니다. 로마서 13장

8피차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 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느니라
9간음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탐내지 말라 한 것과 그 외에 다른 계명이 있을지라도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그 말씀 가운데 다 들었느니라
10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행하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니라

18. 예수님은 율법에 억매여 있는 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율법을 지키지 않는다고 하는 자들에게 대한 예수님은 질타합니다. 마가복음 7장 6-13절

6이르시되 이사야가 너희 외식하는 자에 대하여 잘 예언하였도다 기록하였으되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7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 하였느니라
8너희가 하나님의 계명은 버리고 사람의 전통을 지키느니라
9또 이르시되 너희가 너희 전통을 지키려고 하나님의 계명을 잘 저버리는도다
10모세는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고 또 아버지나 어머니를 모욕하는 자는 죽임을 당하리라 하였거늘
11너희는 이르되 사람이 아버지에게나 어머니에게나 말하기를 내가 드려 유익하게 할 것이 고르반 곧 하나님께 드림이 되었다고 하기만 하면 그만이라 하고
12자기 아버지나 어머니에게 다시 아무 것도 하여 드리기를 허락하지 아니하여
13너희가 전한 전통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폐하며 또 이같은 일을 많이 행하느니라 하시고


19. 율법은 외식함이 아니라 사랑함입니다.

20. 예수님을 율법의 말씀을 지키시면서 사랑을 위해 율법이 주어졌음을 말씀하십니다.

21. 예수님의 가르침을 본받아 율법아래 자유함으로 통해 사랑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아울러 율법의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의 사랑을 받으십시오.

22. 나아가 우리가 예수님의 사랑을 받은자로서 그 사랑의 노래를 선포할 수 있기를 원합니다.

23. "그 사람이 나가서 이 일을 많이 전파하여 널리 퍼지게 하니"(45절)

24. 오늘 우리가 불러야 할 노래는 내가 받은 사랑의 노래입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내게 오신 사랑을 노래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25. 할렐루야!

===
40절 한 나병환자가 예수께 와서 꿇어 엎드려 간구하여 이르되 원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나이다

41절 예수께서 불쌍히 여기사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시며 이르시되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하시니

42절 곧 나병이 그 사람에게서 떠나고 깨끗하여 진지라

44절 이르시되 삼가 아무에게 아무 말도 하지 말고 가서 네 몸을 제사장에게 보이고 네 깨끗하게 되었으니 모세가 명한 것을 드려 그들에게 입증하라 하셨더라

45절

Wednesday, May 16, 2012

예수님은 당신이 세상의 빛이라고 말씀하신다 - 마5:13-16절


목적이 이끄는 삶을 위한 매일의 묵상 962호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지지 못할 것이요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에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 안 모든 사람에게 비치느니라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마 5:13-16)
당신은 스스로를 세상의 빛으로 만들 수 없다. 예수님은 당신이 그분과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에 세상의 빛이라고 말씀하신다. “어두운 데에 빛이 비치라 말씀하셨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추셨느니라” (고후 4:6)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예수님의 빛이 우리 마음에 비쳤고, 그 빛이 우리 안에 너무나 강하게 비쳐서 우리는 우주의 별처럼 빛나 모든 인간에게 진정한 삶을 향해 가리킨다.
이것이 제자도의 초상이다. 세상의 빛이신 예수님은 우리를 세상의 빛으로 재창조하신다. 우리는 스스로 중요한 존재라서가 아니라 세상의 빛과 초자연적으로 결합하였기 때문에 빛인 것이다. 주님은 자신을 따르라고 우리를 부르시며 이렇게 말씀하신다.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요 8:12)
우리를 통해 빛을 드러내시도록 겸손하게 주를 의지하며, 우리의 초점은 늘 빛에 있어야 한다. 다음을 늘 기억하며 기도하라.
  • 내 영향력과 가시성(可視性)은 ‘내가 무엇을 하느냐’가 아니라, ‘내 안에 누가 사느냐’에 의해 결정된다. 나를 영향력과 가시성의 자리로 이끄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 나는 내게 주어진 영향력과 가시성을 관리하는 청지기일 뿐이다. 따라서 길을 비키고 예수님이 내 안에서 일하시게 맡기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 내 영향력과 가시성의 중요성을 측정할 수 있는 분은 하나님뿐이다. 내가 영향을 끼친 한 사람이 온 세상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 내 초점은 주님이 어디로 인도하시든지 그분을 따르는 데 있다.

Saturday, January 14, 2012

이번주 설교 : 에베소서 5:8-17 "빛의 자녀답게 살아라!"

에베소서 5:8-17
8 너희가 전에는 어둠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9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
10 주를 기쁘시게 할 것이 무엇인가 시험하여 보라
11 너희는 열매 없는 어둠의 일에 참여하지 말고 도리어 책망하라
12 그들이 은밀히 행하는 것들은 말하기도 부끄러운 것들이라
13 그러나 책망을 받는 모든 것은 빛으로 말미암아 드러나나니 드러나는 것마다 빛이니라
14 그러므로 이르시기를 잠자는 자여 깨어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어나라 그리스도께서 너에게 비추이시리라 하셨느니라
15 그런즉 너희가 어떻게 행할지를 자세히 주의하여 지혜 없는 자 같이 하지 말고 오직 지혜 있는 자 같이 하여
16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
17 그러므로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하라
 
마태복음 5장
13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 데 없어 다만 밖에 버려져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14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지지 못할 것이요
15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에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 안 모든 사람에게 비치느니라
16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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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도가니”라고 아십니까?
황 감독은 영화 `도가니`를 통해 2000년부터 5년간 비인간적인 성폭력과 학대로 얼룩진 장애인 학교의 은폐된 진실을 고발, 장애인 인권 침해와 불합리한 사회에 대한 경각심을 촉구했다. 이 영화 덕분에 일명 `도가니법`으로 불리는 `성폭력범죄의 처벌 특례법 개정안`이 통과되기도 했다.
 
영화 `도가니`의 황동혁 감독이 `2011 세상을 밝게 만든 사람들`로 선정됐다.
영화 “도가니”는 어두운 세상을 밝힌 사건으로 기록됩니다. 어두움에 영원히 묻힌 놀라운 일을 이 땅에 드러나게 했습니다.
 
세상을 밝게 하는 일은 가치 있는 일입니다. 의미입니다. 누구나 이러한 인생을 꿈꿀 것입니다.
 
어두움을 밝히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교회를 다니는 사람이든, 교회를 다니지 않던지, 어두운 세상을 빛추어야 한다는 강한 부르심을 느끼는 사람들이 세상에는 참으로 많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이러한 일을 통해 스스로 만족하거나, 사람들로부터 인정받기 원하거나, 정치에 뜻을 두거나, 후대에 이름을 남기려 합니다.
 
그렇지만, 교회를 다니는 사람들에게는 이건 사명입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입니다. 어느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모두가 감당해야 하는 사역입니다.
 
어두운 세상을 밝게 비추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밝게 비추는 삶이란 의미있는 삶입니다.
나에게 드러나는 빛을 한 사람이 받던, 많은 사람들이 받던 숫자는 다르지만 방향은 같은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이 우리 크리스찬의 삶입니다.
 
8절 너희가 전에는 어둠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이러한 빛의 삶은 어느 특정한 시간에만, 특정한 장소에서만, 특정한 사람들에게 행하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상시로, 어느 순간, 누구에게나 반드시 빛을 비추어야 합니다. 그래서 16절 말씀에서 “세월을 아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세상에 빛으로 사는 사람을 가리켜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세상에 꼭 필요한 사람”이다.
 
크리스챤을 포함해서 세상에 살아가는 사람들을 세 부류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꼭 필요한 사람.
있으나 마나 하는 사람,
있어서는 절대 안되는 사람.
 
여러분은 어떤 부류의 사람입니까?
나는 과연 어떤 부류의 사람입니까?
 
있어서는 절대로 안되는 사람입니까?
있으나마나 하는 사람입니까?
꼭 필요한 사람입니까?
 
“Linchipin 린치핀”이란 영어 단어가 있습니다.
책도 있고,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쓰는 단어입니다.
뜻은? (조직・계획 등의) 핵심이 되는 인물. 꼭 필요한 사람을 가리킵니다.
 
자동차 바퀴를 연결하는 쇠막대기를 고정시키는 핀이라는 것입니다.
이게 없으면 조직이 무너져 내린다는 의미입니다.
그저 그런 인간으로 살아가기를 거부하고, 핵심적인 역할을 해내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은 소모품입니까? 아니면 린치핀입니까?
핵심적인 사람이 된다는 의미는 차이를 만드는 사람입니다.
남과 다른 생각을 가지고, 나만의 계획과 행동으로 나아갈 때 꼭 필요한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세상은 꼭 필요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자기 실력이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자기계발이 필요합니다.
 
좋은 학벌이든, 능력이든, 힘이든, 권력이든, 재물이든, 나만의 특별한 것, 어느 누구나 따라올 수 없는 것이 있어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만약 이러한 것들이 없다면, 이러한 것들을 가질 수 있도록 자기계발을 통해서 인정받아서 세상에 꼭 필요한 사람이 되라고 말합니다.
 
그리스도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세상 어느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특별한 것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앞에서 말한 학벌이든, 능력이든, 돈이든, 권력이든, 그러한 것들이 아니라, 그러한 것들보다 더 중요한 것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바로 “사랑”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사랑”으로 세상을 비추는 사람들입니다.
 
예수님도 세상의 빛이셨습니다.
수많은 병자를 고치셨습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을 보이셨습니다.
죽은 자를 살리셨습니다.
수 많은 무리들이 따라다녔습니다.
그의 한 마디, 한 마디에 따르던 무리들은 춤을 추었습니다.
 
이 보다 더 빛나는 인생이 어디 있습니까?
 
그러나 진짜로 예수님을 빛나게 하는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사랑”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수많은 놀라운 일들을 행하셨지만, 그에게 사랑이 없었다면, 수 많은 무리들은 아침 안개와 같이 곧 사라져 버렸을 것입니다.
아니 예수님 생전에는 따라 다녔을지 모릅니다.
혹시나 하면서 기적을 바라면서요.
예수님 생전에 어떤 병고침을 받기 위해서, 허기진 배를 채우기 위해서, 놀라운 기적을 위해서, 로마를 전복하기 위해서,
 
그러나 사랑이 없었다면 2천년이 지난 지금에는 아무런 영향력을 끼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사랑으로 섬기었기 때문에 지금도 빛으로, 등대로 수 많은 사람들을 어둠에서 인도할 수 된 것입니다.
예수님이 비추는 “사랑”의 빛은 지금도 힘들고 소망없는 사람들에게, 낙망하고 있는 사람들을 비추는 빛이십니다. 참 소망이십니다.
세상을 꺼지지 않는 불빛으로 영원히 비추는 진정한 힘은 “사랑”입니다.
진정한 빛은 사랑에서 비롯됩니다.
 
이지성씨가 쓴 자기계발서 “리딩으로 리드하라”는 책을 읽었습니다.
그 책에서 인문고전을 읽는 사람들이 세상을 이끈 지도자가 되었고, 지금도 세상을 이끌어 가고 있다고 말하면서
세상을 리더하기 원한다면 인문고전 서적을 많이 있어야 한다고 말하더라고요.
 
그 책에서는 세상을 이끈 리더가 되기 위해서 조건으로 여러 가지가 있는데, 그중에서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특징은 인문고전을 사랑했다고 말합니다. 고전에는 짧게는 100년의 인생에서 1000년의 인생이 담겨있기 때문에 인문고전을 읽으면 읽을수록 더욱 지혜로운 사람이 된다는 말합니다. 인문고전을 읽으면 인생을 살아갈 길이 보인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진정한 리더가 되기를 원한다면 인문고전 서적만 읽어서는 안된다고 하면서 거기에 사랑이 있어야만 한다고 세상의 리더가 될 수 있다고 말하더라고요.
 
그의 책의 일부를 인용해 보겠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깨닫기 위해서는 영안이 열려야 한다. 쉽게 말해서 하늘의 은총이 필요한 것이다. 하지만 인문고전은 제아무리 대단하다 한들 인간이 쓴 것에 불과하다. 때문에 간절한 마음으로 다가간다면 누구나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
한편으로 사랑이 간절함보다 훨씬 중요하다. 사랑은 곧 인문고전 독서의 목적과 관련된다. “나는 왜 인문고전을 읽는가”라는 질문에 답을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천재가 되기 위해서, 창조적인 사고를 하기 위해서, 업무능력을 하기 높이기 위해서, 회사를 잘 경영하기 위해서, 부자가 되기 위해서 등등, 그렇다면 왜 천재가 되어야 하고, 왜 창조적인 사고를 해야 하고, 왜 업무능력을 높여야 하고, 왜 회사를 잘 경영해야 하고, 왜 부작 되어야 하는가? 여기에 대한 유일무이한 답은 ‘사랑’이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뿌리 깊은 나무” 아시죠? 드라마... 전 보다 말았습니다.
거기서 세종이 수많은 위험을 무릅쓰고 목숨을 내어 놓고 한글을 내어 놓았는가?
그가 애타게 백성을 사랑했기 때문이다.
바로 백성을 “사랑”했기 때문에, 그는 드라마의 표현으로 미쳐갔고, 그는 목숨을 내어 놓았고, 그는 자식을 내어 놓아야만 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세종이 집현전 학사들을 모아 놓고 한 말이 있습니다.
“내 유일한 소망은 백성들이 원망하는 일과 억울한 일에서 벗어나는 것이요. 농사 짓는 마을에서 근심하면서 탄식하는 일이 영원히 그치는 것이요. 그로 인해 백성들이 살아가는 기쁨을 누리고자 하는 것이다. 너희들은 내 지극한 마음을 알아주었으면 한다”
백성을 “사랑”한 그 마음을 알아달라는 것입니다. 사랑이 아니고 무엇으로 이것을 설명할 수 있겠습니까?
 
세종대왕이 한글을 내어 놓아서 지금까지 우리에 위대한 사람으로 남아 있는 것이 결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그를 위대한 사람으로, 존경받는 사람으로 만들었습니까?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백성들을 사랑했기 때문에, 그는 한글이 아니라 다른 어떤 것도 했을 것입니다.
어떻게 알 수 있느냐고요?
그의 이야기를 계속 들어보겠습니다.
“세종은 오직 백성을 위하여 마음으로 유교에 찌든 사대부 지식인들의 격렬한 반대를 무릅써가면서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문자인 ‘한글’을 창조했다. 어디 그뿐인가, 정치, 경제, 과학, 의학, 군사, 법률, 학문, 눙업 등 백성들의 삶과 관련된 거의 모든 영역에서 백성을 위해 분투했고, 인류 역사상 그 어떤 왕도 따라오지 못할 찬란한 결과물들을 만들어냈다. 심지어는 여자 노비들을 위하여 100일에 달하는 출산휴가 제도를 만들었고, 같은 노비인 남편도 한 달 동안 아내를 돌볼 수 있도록 했다. 재위 기간 내내 고안, 노인, 병자, 죄수 같은 사회적 약자들의 기본권을 직접 챙겼음은 물론이다”
 
무엇이 이렇게 그를 이끌었을까요?
사람을 진실로 사랑하는 마음이 없이는 결코 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다시 말씀으로 돌아가서 보면, 마태복음 5장 14절에서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단순한 부탁이 아니라, 반드시 “너희는 세상의 빛이 되어야 한다‘는 명령입니다.
사명입니다. 세상의 빛이며, 어두운 곳을 환하게 비출 사명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반드시 해야만 한다. 그게 한 사람이든, 열 사람이든, 수 만, 수 백만, 수 억의 사람이든 너희들은 반드시 세상의 빛이 되어야 된다는 강력한 명령입니다.
 
무엇으로 세상의 빛이 되기 원하십니까?
 
나는 가진 것이 없어서,
돈이 없고,
능력도 없고,
권력도 없고,
힘도 없어서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이렇게 말하시겠습니까?
 
아니요. 그렇게 말할 수 없습니다. 그러한 핑계를 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만 있으면 우리는 세상의 빛이 될 수 있기 때문에 그러한 핑계를 할 수 없습니다. “사랑”만 있으면 누구나 세상의 빛으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예수님 또한 그렇게 실제로 사셨습니다.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이 그를 세상의 빛으로 만드셨습니다.
사랑하는 마음이 그를 고아에게 나아가게 했습니다.
사랑하는 마음이 그를 과부에게로, 죄인 세리에게로, 보잘 것 없는 어린아이에게로 나아가게 했습니다.
사랑하는 마음이 배신 때리고 도망쳐버린 제자들에게로 나아가게 했습니다.
사랑하는 마음이 자기를 저주하면서 자신의 길로 가버린 베드로에게로 나아가게 했습니다.
 
그리고 그에게 빛이 되셨고, 다시 가야할 길을 보여주셨습니다.
 
베드로가 가야 할 길을, 제자들이 가야 할 길을, 고아들이, 과부들이 가야 할 길의 빛이 되시기 위해서, 자신을 배신하고, 저주하고, 세상이 보잘 것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나아가셨습니다.
 
사랑하는 마음이 그를 세상의 빛으로, 소금으로, 섬김으로 자리로 나아가게 했습니다.
 
(좀 쉬었다가.....)
사랑하는 마음을 갖는데 우리에게 뭐가 필요합니까? 우리에게 필요한 무엇이 또 필요하나요?
 
우리는 때가 되어 죽음을 맞게 됩니다. 그 때 하나님 앞에 섰을 때, 너는 왜 사람을 사랑하지 않음으로서 세상에 빛으로, 등대로 살아가지 않았느냐?라고 물으실 때,
 
저는 돈 없어 사랑하는 마음을 가질 수 없다고 하실 것입니까?
저는 능력이 없어서 사랑하는 마음을 가질 수 없었습니라고 말하시겠습니까?
저는 권력이 없어서
저는 좋은 회사의 사장이 아니어서
저는 목표로 하는 것을 다 아직 다 이루지 못해서 사랑하는 마음을 가질 수 없었습니다.
이러한 핑계는 통하지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세상의 빛으로 살아가라고 말씀하시면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사랑하는 그 마음” 뿐이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렇게 또 핑계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사랑을 몰라주면 어떻게 합니까?
내가 사랑했는데, 그 사람이 내 사랑을 몰라주면 어떻게 합니까?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마태복음 5장
16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우리의 착한 행실은 진정 사랑하는 그 마음을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진정 사랑의 마음을 가지고 있으면, 우리의 사랑의 마음은 착한 행실로 세상을 비추게 될 것이며, 나아가 세상 사람들이 우리의 착한 행실을 보며 빛을 보았다고 말하게 될 것입니다.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만 있으면, 빛이 되어 사람에 앞에 비출 수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우리의 사랑의 행실을 보고 우리안에 그들을 인도할 빛이 있음을 그들로 알게 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마음으로 우리 각자의 빛을 사람 앞에 비추게 될 때 하나님은 영광 받으십니다.
하나님의 이름이 높아지십니다.
 
하나님의 영광 받으심이,
여러분이 좋은 대학에 가는 것에,
여러분이 좋은 직장에
여러분이 돈 많이 버는 것, 그것 자체에 있지 않음을 반드시 기억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영광 받으심은 우리가 사람들을 사랑하여, 그 사랑의 착한 행실로, 그들을 섬기며 나아갈 때 드러납니다.
 
세상의 빛이 되십시오.
사명입니다.
사랑하는 마음만 있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예수님이 우리에게 보여주신 것이며, 우리를 부른 부르심이며, 우리에게 감당하라고 주신 미션입니다.
 
결론.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우리 모두는 세상의 빛입니다.
무엇으로 세상의 빛이 될까는 여러분 각자에게 주신 하나님의 부르심안에 있습니다.
어떠한 모습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돌리기 원하든지 그 안에 사람을 사랑하는 그 마음이 꼭 필요함을 기억하기 원하니다.
진정한 빛,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세상의 빛, 등불이 되고 싶다면 사람을 사랑하는 그 마음을 마음에 두고 살아가기 바랍니다.
 
또한 진정으로 그러한 꿈을 꾸는 우리 청소년부 친구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을 축복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