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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dnesday, June 19, 2013

분노 - 국제제자훈련원 목적이 이끄는 매일의 묵상


분노를 다스리기로 결단하라

“[사랑은] … 성내지 아니하며” (고전 13:5)
성경은 “사랑은 성내지 않는다”라고 말한다. 이는 “사랑은 결코 화를 내지 않는다.”라는 말이 아니다. 사실 때때로 사랑의 행위에는 화가 나는 것도 포함된다. 예수님도 아버지의 집인 성전이 시장처럼 된 것을 보시고 화를 내셨다.
우리는 누군가를 사랑하면서 동시에 그 사람에게 화가 날 수 있다. 그 분노는 의롭게 보일 때도 있고 이기적으로 보일 때도 있지만, 보통은 우리가 제일 사랑하는 사람들이 우리를 가장 화 나게 만드는 사람들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생물학적 구성에 화를 내는 능력을 넣으셨다. 화가 나는 것은 죄가 아니다. 그것이 파괴적인 행위로 자신을 몰고 가도록 허락하는 것이 죄가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감정 그 자체는 죄가 아니다. 성경은 하나님도 분노하신다고 말한다.
화가 나는 것은 피할 수 없지만, 그것을 조절하는 법은 배울 수 있다. 분노를 다스리기로 결단하면 그것은 ‘의무’라기보다는 ‘자산’이 될 것이다. 즉 “그게 바로 나야. 화가 나는데 어떡해? 난 화를 참을 수 없어.”라고 하는 것처럼 분노에 대해 변명하고 정당화하는 것을 그치게 된다.
분노는 통제될 수 있다. 당신은 누군가와 말다툼이 시작되어 분위기가 고조되고 있는데, 바로 그 때 전화벨이 울렸던 경험이 있는가? 자신이 화를 얼마나 빨리 다스릴 수 있는지 보라! 당신은 자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분노를 훨씬 잘 통제할 수 있다. 화를 다스리기로 결단하라. 그리고 이렇게 고백하라. “저는 하나님께서 도와주셔야 화를 다스릴 수 있습니다.”
다음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보자.
  • 예수님은 아버지의 집인 성전이 시장처럼 된 것을 보시고 화를 내셨지만, 예수님을 ‘화 내는 분’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는 “그게 바로 나야. 화가 나는데 어떡해? 난 화를 참을 수 없어.”라는 주장에 대해 무엇을 말해주는가?
  • 당신이 마지막으로 버럭 화를 낸 때는 언제인가? 오늘의 교훈을 참고로 앞으로는 그 화를 다르게 해결할 수 있겠는가?
분노의 댓가를 기억하라

“어리석은 자는 성급하게 굴고 신중한 사람은 오래 참는다.” (잠 14:17, 공동번역)
성경은 통제되지 않은 분노에는 늘 가격표가 붙어 있다고 말한다. 그것을 다음 구절과 연관 지어 확인해보라.
  • “분을 쉽게 내는 자는 다툼을 일으켜도 노하기를 더디 하는 자는 시비를 그치게 하느니라” (잠 15:18)
  • “노하는 자는 다툼을 일으키고 성내는 자는 범죄함이 많으니라” (잠 29:22)
  • “어리석은 자는 성급하게 굴고 신중한 사람은 오래 참는다.” (잠 14:17, 공동번역)
성경은 말한다. “자기 가족을 괴롭히는 사람은 얻는 것이 없으며 미련한 자는 지혜로운 사람의 종이 될 것이다.” (잠 11:29, 현대인의 성경)
화를 참지 못할 때마다 우리는 지는 것이다. 번번히 분통을 터뜨리면 될 일도 안 된다. 영어에서 위험(danger)은 분노(anger) 앞에 d만 더 붙인 것이다. 분노는 위험하다. 분노 때문에 우리는 모든 것을 잃을 수도 있다. 명성, 배우자, 직장, 건강까지.
몇 년 전에 읽은 인간 심장에 대한 의학 연구에 따르면, 삶 속에서 적의나 반감을 줄이면 수명이 연장된다고 한다. 부모들이여, 기억하라. 우리는 분노를 통해 아이들에게 자극을 줌으로써 단기적인 이득(자녀가 두려움 때문에 순종하는 것)을 얻을 수 있을지는 모르나, 장기적인 관점에서는 우리가 지게 될 것이다. 분노는 늘 스스로 소외되도록 만들기 때문이다. 분노는 사람들을 끌어들이기보다는 쫓아내기 마련이다. 또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는 대신, 분노는 사람들로 하여금 당신의 필요에 대해 냉담하고 당신에 대해 화가 나게 만든다.
분노를 다스리는 법 중 하나는 그것 때문에 당신이 어떤 대가를 치르게 되는지 이해하는 것이다.
다음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보자.
  • 과거에 분노는 당신의 의사 결정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가?
  • 과거에 당신은 분노 때문에 인간 관계에서 어떤 대가를 치렀는가? 현재의 인간 관계에는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가?

“어리석은 자는 자기의 노를 다 드러내어도 지혜로운 자는 그것을 억제하느니라” (잠 29:11)
화가 났을 때, 충동적으로 반응하지 마라. ‘참음’은 화를 통제하는 데 훌륭한 도구이다. 이는 무한정 참으라거나 심지어 하루를 넘기라는 말이 아니다. 성경도 화가 난 상태로 잠자리에 들지 말라고 말한다. 내가 말하는 ‘참음’은 5분이다.
화가 나기 시작하면, 몇 분 동안 ‘타임 아웃’ 시간을 가지라. 잠시 상황에 대해 곰곰이 생각할 시간을 충분히 갖는 것이다. 잠시 멈춰 생각하지 않으면 잘못된 행동을 하기 쉽다. 반응하기 전에 심사 숙고해야 한다.
화가 나면 뒤로 물러서서 잠시 시간을 가지며 하나님의 관점에서 상황을 바라보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 성경에서 지혜로운 사람이 분노를 억제한다고 한 말에 주목하라. (잠 29:11) 이것을 현대적인 표현으로 바꾸면 “지혜로운 사람은 잠시 멈춰서 열을 식힌다.”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독립선언문을 쓴 토머스 제퍼슨은 이렇게 말했다. “화가 났다면, 입을 열기 전에 열을 세라. 화가 많이 났다면 일부터 백까지 세라.”
다음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보자.
화가 나는 이유를 이해하면 더 잘 인내할 수 있고, 심지어는 허물까지도 덮어줄 수 있게 된다. (잠 19:11) 다음과 같이 자신이 화가 나는 이유를 이해할 수 있게 도와주는 질문 세 가지를 던져보라.
  • 나는 왜 화가 나는가?
  • 내가 정말로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 그것은 어떻게 얻을 수 있는가?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엡 4:26a)
화를 푸는 데는 유익한 방법도 있고 해로운 방법도 있다. 예를 들어 때때로 우리는 자신의 분노를 인정하기보다 화가 난 상태에 머물려고 한다. 그러나 성경은 화가 났는데도 인정하지 않는 것은 거짓말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것은 죄이다.
분노가 꼭 잘못된 것은 아님을 명심하라. 분노는 그것을 부적절하거나 파괴적인 방식으로 표출했을 때만 잘못된 것이다. 목사로서 내 경험에 의하면, 우리 중 대부분은 두세 살 때 분노를 표현하는 법을 배웠으며, 어른이 돼서도 여전히 같은 방식으로 분노를 표현한다. 그러나 당연하게도, 지금은 이것이 통하지 않는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얻고자 했던 목표가 화를 내기 전보다 더 멀어지게 되는 방식으로 분노를 표현한다. 부적절하게 표현된 분노는 의도한 것과 정반대인 결과를 낳는다. 사람들을 향해 분노를 터뜨리면 변화를 지속시킬 수 없다. 더 많은 분노와 소외만 초래할 뿐이다. 그것을 알면서도 우리는 여전히 그렇게 한다.
분노는 결코 근본적인 문제가 아니다. 일반적으로 분노는 다음 세 가지 중 하나의 증상이다. 상처, 두려움, 또는 좌절. 이 세 가지 때문에 우리는 화가 난다. 그러므로 우리는 늘 잠시 멈춰 마음을 가라앉혀야 한다.
다음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보자.
분노의 근원을 이해하면 적절한 방식으로 반응하고, 결과적으로 분노로 인해 “죄를 짓지” 않게 된다. (엡 4:26) 잠시 멈춰 마음을 가라앉힐 때, 스스로에게 다음의 질문을 던져보라.
  • 내가 상처를 받았는가?
  • 내가 두려워하고 있는가?
  • 내가 위협을 느끼고 있는가? 아니면 뭔가 귀중한 것을 잃고 있는 것 같은가?
  • 내가 좌절했는가?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 (롬 12:2a)
행동하는 방식은 느끼는 방식에 의해 결정된다. 느끼는 방식은 생각하는 방식에 의해 결정된다. 행동 방식을 바꾸고 싶으면 사고 방식을 먼저 바꿔야 한다. 분노의 부적절한 관리가 습관화되어(툴툴대기, 울분 터뜨리기, 비난하기 등) 이를 바꾸고 싶다면, 먼저 정신을 개조할 필요가 있다.
가족상담가인 개리 스몰리는 스스로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지라고 제안한다. “나는 화를 내는 것을 즐기는가?” “화를 내면 내가 의도했던 결과가 나타나는가?” “동일한 결과를 좀더 효과적인 방법으로 얻을 순 없을까?” “나는 어떻게 달라질까?”
스몰리는 자신에게 편지를 쓰면서 그 답을 적고 6개월 동안 일주일에 한 번씩 (총 26번이 될 것이다) 큰 소리로 자신에게 읽어주라고 말한다. 또한 다른 사람 앞에서도 읽어보라고 말한다. 이렇게 하는 게 일이 많아 보일 수도 있겠지만, 당신은 이 습관을 바꾸는 것에 대해 얼마나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는가? 분노를 통제하는 것에 대해 얼마나 심각하게 여기는가?
나는 자신에게 쓰는 편지에 성경 말씀을 인용하기를 제안한다. 그러면 하나님의 말씀이 당신의 생각을 채우고,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게 될 것이다. 변화가 일어나는 것이다.
사실 분노하는 이들은 불안정한 사람들이다. 불안정할수록 더 많은 것들에 화가 나기 마련이다. 불안정할수록 더 예민해지고 더 짜증이 나게 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당신을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그리고 그리스도 안에서 당신이 얼마나 안전하고, 당신이 하나님께 얼마나 중요한지를 이해할 때, 당신은 화가 덜 나게 될 것이다.
다음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보자.
  • 에베소서 1장과 로마서 8장을 읽어보라. 이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그리고 우리가 그분 안에서 얼마나 안전한지 가르쳐줌으로써 분노를 방지하는 성경 말씀들이다.

Saturday, June 1, 2013

모든 사람을 만족시키려 하지 마라 - 목적이 이끄는 삶을 위한 매일의 묵상 1180호

모든 사람을 만족시키려 하지 마라
“사람을 두려워하면 올무에 걸리게 되거니와” (잠 29:25)
다른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지에 대해 염려할 때, 우리는 그들에게 휘둘리는 셈이다. 우리는 남들이 우리가 어떤 사람이 되길 바라는지 알고자 하고 그와 같이 되려고 하는 데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허비한다.
다른 사람들의 생각에 대해 염려하는 것은 위험하다. 그럴수록 비판에 더 굴복하기 쉽기 때문이다. 이는 우리가 늘 옳은 일을 하는 것은 아님을 뜻한다. 오히려 다른 모든 이들이 우리에게 바라는 것을 하는 것이다.
또한 이 경우 하나님의 최선을 놓칠 위험이 있다. 왜냐하면 다른 사람들이 바라는 것에 너무 신경 쓴 나머지 정작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무엇인지 깨닫지 못하기 때문이다.
  • 진실 1 - 모든 사람을 만족시킬 수는 없다. 하나님도 모든 사람을 만족시키실 순 없다. 비가 오길 기도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해가 나길 기도하는 사람도 있다. 하나님은 누구에게 응답하시겠는가? 하나님도 모두를 만족시키실 순 없다. 오직 어리석은 자만이 하나님도 하실 수 없는 것을 하려고 애쓴다.
  • 진실 2 - 반드시 모두를 만족시킬 필요는 없다. ‘행복하기 위해서는 모두에게 사랑 받고 인정받아야 한다’는 말은 신화이다. 이는 전혀 진실이 아니다. 인생에서 행복하기 위해 모두를 만족시킬 필요는 없다.
  • 진실 3 - 거절은 삶을 파괴하지 않는다. 물론 거절은 아프다. 즐거울 순 없다. 거절은 불편하다. 그러나 그것은 자신이 허락하지 않는 한 삶을 파괴하지 않는다.

모두를 만족시키려고 애쓰길 그치라! 당신이 허락하지 않는 한, 그 누구도 당신이 자신을 열등하게 느끼도록 만들 수 없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사도 바울은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롬 8:31)라고 말한다. 이는 다음처럼 생각할 수 있다는 뜻이다. “하나님이 나를 좋아하시고 나도 나를 좋아한다. 누군가가 날 좋아하지 않는다면 그 사람에게 문제가 있는 것이다. 하나님이 나를 좋아하신다면, 내가 하는 것을 맘에 들어 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는 게 무슨 상관이 있는가?”
기억하라. 당신이 하는 그 어떤 것도 당신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줄어들게 할 수 없다. 당신이 무엇을 해도 그분의 사랑을 더 늘릴 순 없다. 하나님은 바로 지금 당신을 완전하게 사랑하신다.
다음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보자.
  • 당신은 누구에게 잘 보이거나, 인정을 받거나, 만족시키려고 가장 신경을 쓰는가?
  • “당신이 하는 그 어떤 것도 당신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줄어들게 할 수 없다”는 사실은 당신에게 평안을 가져다 주어야 한다. 당신의 삶은 그러한 평안을 어떻게 반영하는가?

Saturday, October 20, 2012

하나님 말씀을 습관화하는 네 가지 방법, 성경 해석의 여섯 가지 원칙 - 목적이 이끄는 삶을 위한 매일의 묵상 1048호

성경 해석의 여섯 가지 원칙
“…이와 같이 하나님의 일도 하나님의 영 외에는 아무도 알지 못하느니라” (고전 2:11b)
당신은 누군가로부터 “그건 네가 성경을 자의적으로 해석한 거야.”라는 말을 들어보았는가? 마치 이 말 한 마디로 지금까지 한 말이 무효가 되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사실 그 말은 아무 것도 무효로 만들지 못한다.
성경 해석에는 옳은 방법과 그른 방법이 있다. 개중에는 늘 잘못된 해석으로 이끄는 성경 해석 방법들도 있다. 이제 어디에서나 수용되는 성경 해석의 여섯 가지 원칙을 살펴보도록 하자.
  1. 성경을 해석하려면 믿음과 성령이 필요하다. 성경은 비신자의 눈에는 이치에 닿지 않는다. 성경은 신자를 향한 하나님의 연애 편지이다. 비신자가 성경을 읽는 것은 다른 사람에게 보내진 편지를 읽는 것과 같다. 성경은 영적인 사람들이 이해해야 하는 영적인 책이다. 고린도전서 2:11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하나님의 일도 하나님의 영 외에는 아무도 알지 못하느니라”
  2. 성경의 가장 좋은 주석은 성경이다. 성경은 성경을 해석한다. 여백에 상호 참조된 성경을 유의하면서 이 원칙을 적용해보라. 다른 상호 참조를 찾아보면 하나님께서 본문 한 부분만이 아니라 성경 전체적으로 말씀하신 것의 그림을 더 훨씬 더 크고 명확하게 이해하게 될 것이다.
  3. 신약을 염두에 두고 구약을 읽으라. 그리고 구약을 염두에 두고 신약을 읽으라. 신약은 구약에 감춰져 있다. 또한 구약은 신약에서 그 존재가 드러난다.
  4. 항상 명확한 본문에 비추어 불명확한 본문을 해석하라. 모순되거나 혼란스러워 보이는 본문을 만났을 때, 성경에서 하나님의 온전한 가르침을 보고 분명한 이해를 얻으라. 예를 들어 고린도전서 15:29을 보면 죽은 자를 위한 세례가 매우 모호하게 언급된다. 성경에서 이 개념이 거론된 것은 단 한 번뿐이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이것을 묵과하지 않는다. 성경의 그 어디에도 이것을 묵과하는 내용을 찾을 수 없다. 구원과 세례에 대한 명확한 본문으로 이 불명확한 본문을 해석하라. 그 반대로 하지 마라.
  5. 역사적 사건에만 기초를 둔 신조를 만들지 마라. 성경에서 역사적 서술법에 의한 본문을 그 의도와 다르게 해석하여 좋은 교훈으로 삼지 마라. 그것을 토대로 신조를 만들지 마라. 예를 들어 마가복음 1:35에서는 예수님이 매우 일찍 일어나 한적한 곳으로 가서 기도하셨다고 말한다. 이것이 매일 새벽 네 시에 일어나 집에서 나가 어딘가로 가서 기도해야 한다는 뜻인가? 당연히 그렇지 않다! 하나님께서 그것이 좋은 생각임을 납득시키실 수는 있겠지만, 그것은 명령이 아니다. 신조를 만들고자 할 때는 교리적인 본문을 이용하라. 서술된 본문은 교훈을 가르치는 데 사용하라.
  6. 절대 자신의 경험에 근거하여 성경을 해석하지 마라. 성경 연구의 핵심은 성경을 자신의 주관적인 견해나 경험과 일치시키도록 만드는 데 있지 않다. 감정과 느낌은 우리를 속인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영원한 진리를 발견하여 그것으로 자신의 인생을 만들어가라. 열린 마음으로 성경을 공부하고 하나님을 초청하여 당신을 그분 뜻대로 만들어 가시게 하라.
성경을 공부할 때, 하나님은 말씀에 눈을 떠가는 우리를 떠나지 않으신다. 이 기본적인 여섯 가지 성경 공부의 법칙을 따르면 끊임없이 하나님의 관점에서 말씀을 읽게 될 것이다.
다음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보자.
  • 위의 원칙을 염두에 두고 지난 몇 일간 경건의 시간에 읽었던 본문 중 하나를 다시 읽어보라. 하나님께서 어떤 새로운 통찰을 보여주시는가?
  • 당신은 성령이 당신의 삶에 역사하시도록 문을 열어두고 있는가? 성경을 해석할 때, 성령이 당신의 생각을 인도하시도록 마음을 여는가?

하나님 말씀을 습관화하는 네 가지 방법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으로 내 제자가 되고” (요 8:31)
성경을 짧은 기간(몇 주 정도) 정기적으로 읽는 데 전념하는 것은 정말 중요한 단계이다. 그것은 시작하기에 좋은 방법이지만, 거기서 멈춰선 안 된다. 예수님은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으로 내 제자가 되고”라고 말씀하셨다. (요 8:31) 우리를 예수님의 제자로 만드는 것은 장기적으로 예수님과 그분의 말씀으로부터 배우는 데 전념하는 것이다.
장기적으로 예수님의 말씀에 거하고 말씀을 통해 예수님과 연결되어 있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1) 그렇게 하기로 결심하라. 말씀에 거하는 것은 결단으로부터 출발한다. 하나님 말씀을 삶의 정기적인 부분으로 만들 수 있는 더 좋은 때를 기다리지 마라. 오늘 결단함으로 시작하라.
2) 선포하라. 당신의 의지를 다른 사람들에게 알리라. 자신의 말에 대해 책임을 지라. 하나님 앞에서 한 결단을 비밀로 하면 잘못되기 쉽다.
3) 결연히 행하라. 그 무엇도 당신의 결심을 넘어뜨리게 놔두지 마라. 이것을 인생에서 (특히 첫 몇 달간) 영원한 습관으로 삼기로 결연히 다짐하라. 건너뛰는 날이 생기기 시작하면 하나님 말씀에 거하는 것이 훨씬 어려워질 것이다.
4) 배로 늘리라. 당신과 함께 가면서 지원과 격려를 해줄 영적 파트너를 찾으라. 이는 당신이 경건의 시간 때 배운 것을 나눌 수 있는 사람으로, 소그룹, 친구, 또는 가족 중 누군가가 될 수 있다. 성경은 말한다. “… 두 사람이 한 사람보다 나은 것은 두 사람이 힘을 합치면 더 큰 일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전 4:9, 쉬운성경)
하나님과 시간을 보내는 것은 일시적인 기분에 의한 것이 아니라, 평생의 습관이 되어야 한다. 어느 연구 결과에 따르면 습관을 들이려면 약 6주를 연속해서 무언가를 해야 한다고 한다. 하나님 말씀을 오늘, 그리고 남은 평생 동안 삶의 일부분으로 만들어라.
다음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보자.
  • 하나님 말씀이 인생의 습관이 되게 하기 위해 오늘 어떤 결단을 하겠는가?
  • 이 결단을 누구에게 알리겠는가? 그리고 누가 책임감을 갖고 당신을 도와주겠는가?
  • 매일 하나님 말씀에 거하기로 결심할 때 마주치게 될 가장 큰 방해물들을 나열해보라. 그러한 방해물을 최소화하거나 제거하기 위해 오늘 무엇을 바꿀 수 있겠는가?

Thursday, September 20, 2012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방법 - 목적이 이끄는 삶을 위한 매일의 묵상

하나님 말씀을 ‘듣는’ 방법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롬 10:17)

 당신이 정원사가 됐다고 가정해보자. 당신은 똑같은 씨앗을 가지고 서로 다른 세 장소에 심는다. 
그러자 세 가지 결과가 나타난다. 한 곳에서는 거대한 토마토가 열리며
다른 곳에서는 작은 토마토가 열린다. 
그리고 마지막 세 번째 장소에서는 아무 것도 나지 않는다. 차이가 무엇일까? 차이는 씨앗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밭에 있다. 밭이 씨앗을 심을 준비가 되어 있느냐의 문제인 것이다.

 하나님 말씀을 듣는 것도 이와 다르지 않다. 우리 마음은 말씀을 들을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아침에 늦게 일어나 주차할 곳을 찾느라 헤매다가 짜증 난 상태로 허둥지둥 예배를 드리면, 아마도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지 않을 것이다. 마음이 말씀을 받아들일 상태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두 명이 똑같이 교회를 가서 나란히 앉아도 한 사람은 하나님께서 진정 자신에게 말씀하셨다고 생각하며 돌아가는 반면 다른 한 사람은 예배에서 아무 것도 얻지 못하는 경우가 생기는 것이다. 한 사람의 마음은 준비되었지만 다른 한 사람의 마음은 그렇지 않은 것이다.

성경은 이렇게 말한다. “사람마다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며 성내기도 더디 하라. 사람이 성내는 것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함이라. 그러므로 모든 더러운 것과 넘치는 악을 내버리고 너희 영혼을 능히 구원할 바 마음에 심어진 말씀을 온유함으로 받으라” (약 1:19b-21)
위 말씀에 따르면, 말씀을 잘 받아들이기 위해 우리는 네 가지 태도를 가져야 한다.
  • 잠잠하라. 말하고 있으면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없다.
  • 침착하라. 하나님 앞에서 서두르지 마라. 흥분하면 하나님 말씀을 들을 수 없다. 성경은 “너희는 가만히 있어 내가 하나님 됨을 알지어다”라고 말한다. 나는 이것을 다음과 같이 해석한다. “자리에 앉아 입을 다물어라.”
  • 정결하라. 하나님과 만나기 전에 우리는 감정적, 영적 쓰레기를 내다 버려야 한다. 인생에서 냄새 나는 것들을 제거해야 한다. 쓰레기는 하나님께 죄를 고백하고 우리가 한 짓이 잘못된 것임을 인정할 때 제거된다.
  • 겸손하라. 성경을 통해 하나님께서 뭐라고 말씀하시든 간에 그것에 순종할 준비를 하라. 교만한 태도로는 아무 것도 되지 않는다.
다음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보자.
  • 교만은 왜 그렇게 고백하기 어려운 죄인 것일까?
  • 오늘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하도록 당신을 방해하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Wednesday, September 5, 2012

경건의 시간 - 목적이 이끄는 삶을 위한 매일의 묵상에서



당신의 하루 중 가장 중요한 시간은 언제인가?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마 6:33)
많은 사람들이 경건의 시간(QT)을 가질 시간이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것은 핑계다. 누구나 똑같이 한 주에 168시간을 갖고 있다. 다만 문제는 이것이다 - 주어진 시간을 어떻게 사용하는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시간은 그 누구에게도 없다. 따라서 우리는 정말 중요한 것에 시간을 내야 한다. 즉 이것은 시간의 문제가 아니라 우선순위와 가치의 문제인 것이다. 매일의 묵상을 위한 시간을 내는 비결은 예수님과 그분의 나라를 인생의 최우선 순위로 삼는 것이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마 6:33) 삶 속에서 하나님을 최우선으로 두면 더 많은 시간이 생길 것이다. 삶에서 무엇이든 더 필요한 게 있다면, 그 영역에서 하나님을 최우선으로 두라.
경건의 시간과 하나님을 알아가는 것은 삶의 최우선 순위가 되어야 한다. 당신이 이 땅에 보내진 것은 매일의 일과를 처리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과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이기 때문이다.
경건의 시간(QT)는 우리가 받은 엄청난 특권이다. 우주의 창조주께서 매일 함께 시간을 보내기 위해 우리를 초대하시는 것이다. 상상해보라. 당신이 가장 좋아하는 배우, 음악가, 가수, 또는 운동선수가 매일 함께 시간을 보내자고 하는데, “죄송하지만 전 시간이 없어요.”라고 대답하겠는가? 당연히 그렇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왜 함께 시간을 보내자고 하시는 하나님의 초대에는 “노”라고 대답하는가? 하나님의 초대를 거절할 때, 당신은 너무나 많은 것을 놓치고 있는 것이다.
다음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보자.
  • 현재 당신의 하루는 우선순위가 어떻게 되어 있는가? 하나님과의 경건의 시간을 최우선 순위로 둔다면 위의 우선순위가 어떻게 바뀌겠는가?
  • 하나님과 함께 하는 경건의 시간이 특권임을 인식할 때, 하루의 우선순위를 짜는 태도에 변화가 생기는가?


경건의 시간의 특권
“… 주의 앞에는 충만한 기쁨이 있고 주의 오른쪽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 (시 16:11)
어제 나는 경건의 시간은 우리에게 특권이라고 했다. 우주의 왕이시자 모든 것의 창조주이신 하나님을 알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경건의 시간이 왜 커다란 특권이기 때문에 그것을 놓쳐서는 안 되는 걸까? 하나님과 시간을 보낼 때 네 가지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나기 때문인데, 그것은 다음과 같다.
1. 하나님께 헌신하게 된다. “나를 보아라. 지금 내가 문 앞에 서 있다. 내가 노크하고 있다. 만일 내가 부르는 소리를 네가 듣고 문을 열면, 나는 곧장 들어가 너와 더불어 앉아 만찬을 나눌 것이다.” (계 3:20, 메시지성경) 하나님은 우리의 창조주이시자 구원자, 공급자, 보호자, 충고자, 그리고 위로자시다. 따라서 우리의 경배를 받기에 합당한 분이다. 하나님이 없다면 삶은 아무 의미가 없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하나님도 우리의 헌신을 원하신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당신과 시간을 보내고 싶어하신다.
2. 하나님께서 방향을 알려주신다. “여호와여 주의 도를 내게 보이시고 주의 길을 내게 가르치소서 주의 진리로 나를 지도하시고 교훈하소서 주는 내 구원의 하나님이시니 내가 종일 주를 기다리나이다” (시 25:4-5) 당신과 나는 매일 방향 제시가 필요하다. 하나님은 그 방향을 알려주시고자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가 하나님과 시간을 보내야 한다. 경건의 시간을 가지면 매일 삶 속에서 중간에 궤도를 수정할 기회를 얻게 될 것이다.
3. 하나님 안에서 기쁨을 누린다. “주께서 생명의 길을 내게 보이시리니 주의 앞에는 충만한 기쁨이 있고 주의 오른쪽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 (시 16:11) 실제로 하나님과 시간을 보내면 더 행복해진다. 경건의 시간은 하나님을 기뻐하는 시간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이 기쁨의 비결이다.
4. 성장하여 하나님을 더 닮게 된다. 하나님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낼수록 우리는 더 경건해진다. TV를 보면서 시간을 보내면 당신의 성품은 TV에서 보는 사람들을 따라 만들어진다. 하나님 말씀을 공부하고 기도하며 하나님과 시간을 보내면, 당신의 성품은 그리스도의 성품을 따라 만들어질 것이다.
당신은 매일 하나님과 시간을 보내고 있는가? 그렇게 하기로 선택하는 것은 인생 최고의 결정이 될 것이다.
다음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보자.
  • 당신은 오늘 어느 영역에서 하나님께 방향 제시를 요청하겠는가?
  • 말씀 안에서, 그리고 하나님과의 경건의 시간으로 하루를 시작할 때, 하루가 다르게 흘러감을 경험한 적이 있는가?


경건의 시간에 적합한 시간과 장소 찾기
“새벽 아직도 밝기 전에 예수께서 일어나 나가 한적한 곳으로 가사 거기서 기도하시더니” (막 1:35)
지난 몇 일간 우리는 경건의 시간에 대해 살펴보았다. 하나님과 보내는 시간은 하루 중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분을 언제 어디에서 만나느냐는 매우 중대한 문제다. 또한 때와 장소를 정함에 있어서 일관성은 필수적이다.

매일 동일한 시간에 하나님과 만나라. 마가복음 1장 35절은 이렇게 말한다. “새벽 아직도 밝기 전에 예수께서 일어나 나가 한적한 곳으로 가사 거기서 기도하시더니” 예수님이 일찍 일어나 기도하셨다고 해서 당신도 꼭 그렇게 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핵심은 이것이다. 하루 중 최고의 시간을 하나님께 드려라. 하루 중에서 가장 기운찬 시간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다. 그 시간이 아침인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런 사람들은 아침부터 분주히 몸을 움직인다. 아침 11시가 되어도 일어나지 못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런 사람들은 밤 12시에도 쌩쌩하다.
가장 중요한 것은, 하루 중 가장 좋은 시간을 하나님께 드리고 약속이 있을 때처럼 경건의 시간을 하루 일정 속에 배정하라는 것이다.
천천히 시작하라. 이전에 경건의 시간(QT)을 가져본 적이 없다면, 5분으로부터 시작하라. 작게 시작해서 서서히 늘려가는 것이다. 처음부터 경건의 시간을 매일 한 시간씩 가지려고 애쓰면 꾸준히 하기 힘들다. 따라서 매일 15분 이내를 목표 삼아 해보라. 과연 15분도 없는 사람이 있을까?
하나님과 만날 특별한 장소를 찾아라. 예수님께는 아버지와 만날 특별한 장소가 있었다. 누가복음 22장 39절은 “예수께서 나가사 습관을 따라 감람 산에 가시매 제자들도 따라갔더니”라고 전한다. 감람산에 가시는 것은 예수님의 평소 습관이었다. 예수님께는 정해놓고 기도하신 장소가 있었다. ‘정해진 장소’를 찾으려면 어떤 요소를 고려해야 할까? 그것은 다음과 같다.
  • 한적함: 혼자 있을 수 있고 조용하며 방해 받지 않을 곳을 찾아라. 뿐만 아니라 소리 내어 기도할 수 있는 곳이어야 한다.
  • 일관성: 매일 동일한 장소에서 할 수 있어야 한다.
다음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보자.
  • 이제 시간을 들여 경건의 시간을 위한 당신의 ‘시간’과 ‘장소’를 정해보라. 당신을 신앙적으로 붙들어줄 수 있는 가까운 친구에게 그 시간과 장소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보라.
  • 하루 중에서 당신이 엄청난 주의를 기울이고, 결코 시간을 어기지 않으며, 가장 고대하는 시간들은 무엇인가? 경건의 시간을 그것들보다 더 위에 두라.

경건의 시간에 적합한 태도
“내가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삼상 16:7b)
경건의 시간은 어디에서나 가질 수 있지만, 중요한 것은 올바른 자세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당신의 마음이 올바른 곳에 있는지 알고 싶어하신다. 사무엘상 16장 7절은 이렇게 말한다. “내가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삼상 16:7b)
그렇다면 경건의 시간 중에 가져야 할 올바른 자세는 무엇일까?
1. 기대감을 가지고 나오라. 간절히 바라는 마음으로 하나님의 임재 앞에 나오라. 당신은 지금 온 우주의 창조주이신 하나님을 뵈려는 것이다! 하나님과의 교제를 통해 좋은 시간을 갖고 은혜 받기를 기대해야 한다.
2. 경외심을 가지고 나오라. 당신은 하나님을 뵈러 오는 것이므로, 그분의 임재 앞에 허둥지둥 나오면 안 된다. 하나님 앞에서 잠잠히 있음으로써 마음을 준비시키라. 만약 대통령이나 영국 여왕을 만나기로 했다면 약속시간보다 일찍 도착할 것이다. 또, 가장 멋지게 차려 입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주의 창조주의 임재 앞에 나가는 우리는 얼마나 더 큰 경외심을 가져야 할까?
3. 정신을 바짝 차리고 나오라. 하나님과 만나기 전에 잠에서 완전히 깨고 정신을 차리라. 거듭 강조하지만 당신은 우주의 창조주를 뵈려는 것이다. 경건의 시간을 잠자리에서 갖지 마라. 그럼 아마도 잠들어버릴 것이다. 사실 경건의 시간을 준비하기에 가장 좋은 시간은 바로 전날 밤이다. 필요하다면 15분 일찍 잠자리에 들라. 그리고 좋은 상태에서 하나님을 만나러 나오라. 하나님은 당신의 전적인 주목을 받기에 합당한 분이다.
4. 기꺼이 순종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나오라. 하나님의 말씀을 다 들은 다음 순종할지 말지를 결정하겠다는 생각으로 경건의 시간을 시작하지 마라. 그 대신, 이미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기로 결심했다고 고백하라.
경건의 시간을 갖기 전에 좋은 태도를 견지하라. 그러면 그 시간을 통해 좋은 결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반면, 잘못된 태도로 하나님 앞에 나오면 그 반대의 결과가 나올 것이다.
다음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보자.
  • 하나님과 함께 하는 시간에서의 태도를 되돌아볼 때, 당신이 경건의 시간을 가짐에 있어 구체적으로 어떤 것이 바뀌어야 하겠는가?
  • 경건의 시간 중에 하나님께서 당신의 마음에 ‘무엇’을 행하실 지에 대해 기대감이 있다면 당신의 태도가 어떻게 달라지겠는가?
계획이 있어야 한다
“부지런한 사람의 계획은 반드시 이득을 얻지만, 성급한 사람은 가난해질 뿐이다.”(잠 21:5, 새번역)
경건의 시간(QT)을 갖는 것은 삶에서 하는 다른 많은 행위와 크게 다르지 않다. 적어도 한 가지 측면에서는. 바로, 성공하려면 계획을 세우는 것이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성경은 말한다. “부지런한 사람의 계획은 반드시 이득을 얻지만, 성급한 사람은 가난해질 뿐이다.” (잠 21:5, 새번역)
당신이 이전에 경건의 시간을 가져본 적이 없다면, 경건의 시간을 위한 간단하면서도 좋은 계획을 갖고 있지 않을 것이다. 어떤 계획을 세우든 간에 단순함은 중요한 요소다. 복잡하게 하면 길을 잃을 염려가 많다. 경건의 시간을 효과적으로 갖기 위해 꼭 필요한 것은 성경과 노트뿐이며, 하나 덧붙인다면 찬송가 또는 찬양집 정도가 될 것이다.
그럼 경건의 시간은 어떻게 가져야 하는가?
먼저, 하나님 앞에서 잠잠하라. 이를 가리켜 성경은 ‘하나님 앞에서의 기다림’이라고 표현한다. 그저 자리에 앉아 입을 다무는 것으로 시작하는 것이다. 이렇게 할 때, 자신 안에서 돌아가던 엔진의 속도가 느려지고 마음이 가라앉는 것을 느끼게 될 것이다.
그 다음 짧게 기도하라. 짧게 여는 기도를 드리라. 하나님께 마음 문을 열어주시고 인도해주시라고 구하라. 마음을 정결하게 해주시기를 기도하라.
성경 본문을 천천히 읽으라. 바로 여기서 하나님과의 대화가 시작된다. 하나님은 그분의 말씀을 통해 당신에게 이야기를 시작하시고, 그 다음 기도를 통해 당신이 하나님께 이야기하는 것이다. 성경을 천천히 읽으라. 너무 빨리, 또는 너무 많이 읽으려고 하지 마라. 성경을 천천히 읽을수록 읽고 있는 내용에 대해 더 많이 생각할 수 있게 된다.
말씀에 대해 묵상하라. 시간을 들여 하나님께서 말씀하고 계시는 것을 곱씹어보라. 소가 여물을 되새김질하듯이 말씀을 되새기는 것이다. 마음 속에서 그 말씀을 곰곰이 생각하고 그 말씀의 의미와 씨름해보라. 말씀을 묵상하는 데는 멋진 방법이 아주 많다. 내가 지은 “릭 워렌과 함께하는 개인 성경 연구”를 참고하면 성경 묵상 방법에 대한 구체적인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발견한 것을 적으라. 하나님이 말씀을 통해 당신에게 이야기하실 때, 받은 말씀을 흘려버리지 말고 종이에 충실하게 적으라. 종이에 적으면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을 기억할 수 있고, 또 자신이 발견한 것을 기록으로 남길 수 있다.
다시 기도하라. 잠잠하라. 하나님께서 그분의 말씀을 보여주시길 구하라.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말씀하신 것에 대해 이야기하라.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에 대해 당신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말씀 드리라. 무엇이든, 마음에 떠오르는 것을 그분께 이야기하라.
경건의 시간을 갖는 데 한 가지 방법만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이와 비슷한 계획을 갖고 하면 은혜로운 묵상 여행을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다음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보자.
  • 경건의 시간을 하나님과 나누는 친밀한 대화의 시간으로 여겨본 적이 있는가?
  • 당신은 “잠잠히” 있기 위해 어떤(주의를 산만하게 만드는) 것을 없앨 필요가 있는가?

성경 묵상의 또 다른 방법 - ‘상상하기’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요 1:14a)
며칠 전에 우리는 도구가 거의 필요 없는 성경 묵상 방법, 즉 ‘단어별 힘주기’에 대해 살펴보았다. 이것은 연필이나 펜, 그리고 성경책만 있으면 할 수 있다.
오늘 설명할 방법도 똑같이 쉽다. 그저 성경책, 연필, 그리고 약간의 상상력만 있으면 된다.
‘상상하기’라고 하는 이 성경 묵상법은 매우 유용한데, 그 이유는 성경이 이야기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마치 적극적인 참여자가 된 것처럼 성경 이야기 상의 장면에 자신을 집어넣으면 된다. 그리고 이렇게 자문하는 것이다. “내가 이 상황에 처했다면 어떤 느낌이 들었을까? 난 뭐라고 얘기했을까? 난 어떻게 해야 할까?”
이렇게 할 때, 하나님의 말씀은 삶 속에서 “육신”이 되시고 우리 삶은 변화가 일어난다.
예를 하나 들어보자. 마가복음 2장에는 중풍병자인 친구를 예수님께로 데리고 온 네 사람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그 병자는 자신의 힘으로는 예수님께 나올 수가 없다. 네 명의 친구는 병자를 자리에 뉘어 각각 네 귀퉁이를 잡아 들고 예수님께로 데려간다. 그러나 예수님이 계신 곳에 도착했을 때, 그 집은 사람들로 꽉 차 있다. 안으로 들어갈 수 없게 되자, 그들은 꾀를 낸다.
지붕으로 올라가 기와를 뜯어내고 지붕을 통해 중풍병자인 친구를 달아 내린 것이다. 그것을 보시고 예수님은 그 친구를 고쳐주신다.
이것은 성경을 묵상할 때 머릿속에서 쉽게 상상할 수 있는 단락이다. 당신이 바로 자리에 누워있는 병자라고 상상해보라. 친구들이 지붕을 통해 당신을 달아 내린 후에 주위를 둘러보니 방에 사람들이 입추의 여지 없이 꽉 들어차 있는 장면을 상상해보라. 먼지는 위에서 계속 떨어지고 있고, 그곳에 당신을 도와 이곳까지 와준 네 친구들의 얼굴이 보인다. 그들은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까? 한번 곰곰이 생각해보라.
그 다음 당신이 막 끼어든 그 상황에서, 당신의 눈과 마주친 예수님의 눈을 상상해보라. 그러나 주님은 성난 얼굴이 아니라 사랑스러운 눈으로 당신을 바라보신다. 주님은 신이기에, 당신이 올 것을 이미 알고 계셨다. 그러한 주님을 보면 무슨 생각이 들까? 사람들은 뭐라고 생각할까? 예수님이 “내가 네게 이르노니 일어나 네 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막 2:11)라고 하실 때 당신은 무슨 생각이 들까?
이제 성경을 당신의 삶에 적용해보라. 본문 상상하기의 핵심이 바로 이것이다. 당신은 무언가 - 두려움, 의심, 스트레스 등 - 에 의해 마비되어 혼자 힘으로 예수님께 나아올 수가 없는가? 당신은 본문을 보며 중풍병자의 입장에서 상상해보았다. 어쩌면 예수님이 당신도 치유하기를 원하신다는 것을 깨달아야 할지도 모른다. 주님은 당신이 일어나 다시 걷기를 원하신다. 어쩌면 당신도 친구들에게 예수님께 데려다 달라고 부탁해야 할지도 모른다.
이것이 오늘 우리가 적용할 수 있는 진리이다. 이는 모두 성경 말씀 안으로 들어가 말씀이 삶 속에서 “육신”이 되도록 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이것은 성경 속의 어느 이야기에서도, 또는 성경 이야기 속의 어느 등장인물을 통해서도 할 수 있는 방법이다.
그리고 이것을 통해 우리의 성경 보는 눈이 변화될 것이다.
다음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보자.
  • 당신은 성경을 ‘이야기’로 보는가 아니면 그냥 ‘글’로 보는가?
  • 당신이 어릴 때 좋아했던 성경 속 이야기를 떠올려보라. 이야기를 상상할 때 기억에 남는 이미지가 생겼기 때문에 그 이야기가 좀더 실제적이지 않았는가? 오늘 그 이야기에서 얻은 진리를 삶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겠는가?

모든 성경 본문에 던질 수 있는 세 가지 질문
“…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의 목소리를 청종하는 것을 좋아하심 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삼상 15:22)
하나님 말씀을 삶에 적용하는 것을 경험해보지 않는다면 당신은 낙심할 수도 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오늘 나는 성경을 삶에 적용하는 데 도움이 되는, 어느 본문에나 던질 수 있는 세 가지 질문을 알려주고자 한다.
  • 성경이 쓰여졌을 때, 이 본문은 무슨 뜻이었을까?
  • 이 말씀의 배후에 있는 영원불변한 진리는 무엇일까?
  • 본문에서 지금 내게 적용되는 부분은 무엇일까?
우리는 이것을 ‘적용 다리’라고 부른다. 성경의 세계와 우리가 사는 세계 사이를 잇는 다리를 놓는 것이다. 고린도전서 8장에서 사도 바울이 우상에게 바쳐진 제물을 먹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는 본문을 보면서 성경을 적용할 때 ‘적용 다리’를 놓는 법에 대해 살펴보자. 고린도전서 8장 1-13절을 읽은 뒤, 위의 세 가지 질문을 스스로에게 물어보라.
1. 성경이 쓰여졌을 때, 이 본문은 무슨 뜻이었을까? 당시 고린도 교회에는 우상이 아무 것도 아니며, 우상에게 바쳐진 음식에는 아무런 마력이 없음을 아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 음식은 햄버거나 맛있는 스테이크에 불과했다. 그 음식이 바쳐진 우상은 진짜가 아니기에, 그것을 먹는 것은 아무런 해가 되지 않았다. 따라서 이런 무리들은 자유롭게 음식을 먹었는데, 다만 남들이 어떻게 생각할지는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그러나 고린도 교회에는 그런 행위를 보고 마음이 상한 초신자도 있었다. 그들은 다른 종교의 신에 바쳐진 음식을 먹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바울은 성숙한 신자들에게 다른 형제들을 실족시킬 수 있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유를 제한하라고 말한다.
2. 이 말씀의 배후에 있는 영원불변한 진리는 무엇일까?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유를 다른 사람을 실족시키는 데 사용하지 마라. 자유는 사랑 안에서 사용되어야 한다.
3. 본문에서 지금 내게 적용되는 부분은 무엇일까? 내가 살고 있는 캘리포니아 남부에서는 우상에게 바쳐진 제물을 보기가 쉽지 않다. 당신이 사는 곳에서도 그런 상황을 경험하기 힘들지도 모른다. 만약 그렇다면 이것이 우리와 상관 없는 문제인가? 당연히 그렇지 않다! 영원불변한 진리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유를 다른 사람을 실족시키는 데 사용하지 마라. 자유는 사랑 안에서 사용되어야 한다.”라면, 나는 주변 사람에게 민감해야 한다. 그것이 사랑을 표현하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속으로 이렇게 물어보라. “주님, 제 안에 이기심, 교만, 또는 의도적인 무관심으로 행동하여 형제나 자매를 실족시킬 수 있는 것들이 있습니까? 저는 내 지식에서 나온 자유로 우쭐거리고 있습니까, 아니면 다른 사람들을 사랑 안에서 세워주고 있습니까?”
다음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보자.
  • 당신이 익히 잘 알고 있는 성경 속 이야기에 대해 잠시 생각해보라. 그 본문을 다시 읽어보고 위의 세 가지 질문을 던져보라. 그 이야기에서 어떤 새로운 진리 혹은 적용점을 발견할 수 있는가?
  • 하나님께서 성경을 당신의 삶의 인도자로 삼도록 뜻하셨음을 믿는가? 그 진리가 영원불변하고 그 메시지와 적용점이 여전히 오늘날의 삶과 관련이 있음을 믿는가?

성경은 왜 그렇게 적용하기가 힘든가
“그의 영광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너희 속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시오며” (엡 3:16)
성경 말씀을 삶에 적용하는 것은 쉽지 않다. 그것이 쉬웠다면 그렇게 하는 사람이 더 많았을 것이다. 성경을 읽는 사람 중 읽은 것을 삶에 진정으로 적용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왜 그런가?
그것은 힘든 일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 적용을 어렵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 삶에 성경 적용이 힘든 것은 다음의 세 가지 이유 때문이다.
  • 적용은 진지한 사고를 요구한다. 자신이 배운 성경을 적용하려면 긴 시간의 집중된 기도와 생각이 필요하다. 적용 사항을 늘 즉각적으로 이해할 순 없다. 읽은 것을 생각해봐야 한다. 읽은 것을 묵상해야 한다. 여기에는 시간이 필요한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종종 그러한 시간을 내고 싶어하지 않는다.

  • 사탄이 적용하지 못하게 하려고 싸운다. 사탄은 격렬하게 싸운다. 공부한 것을 적용하려고 할 때, 마귀의 가장 강력한 공격이 당신의 경건의 시간에 들어올 것이다. 사탄은 당신이 그저 말씀을 듣거나 읽기만 하는 데 만족하는 한 사탄의 계획에 별 위협이 되지 못함을 알고 있다. 그러나 당신이 진지하게 삶의 변화를 일으키려고 하는 순간, 사탄은 필사적으로 싸울 것이다. 사탄은 말씀을 행하는 자를 미워하기 때문이다.
  • 우리는 변화를 선천적으로 싫어한다. 변화를 싫어하는 것은 인간의 천성이다. 그러나 그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을 주신 주목적이다. 하나님은 우리 삶이 말씀으로 변화되길 원하시고, 우리를 좀더 예수님처럼 만들고 싶어하신다. 우리를 좀더 예수님처럼 만드는 열쇠가 바로 하나님 말씀을 적용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대부분의 교회가 성경 해석과 성경 배경 연구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것에 만족한다. 그러나 우리는 성경의 인물들과 성경의 배경과 성경의 교리를 다 배울 수 있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세속적으로 살 수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 말씀을 다른 사람에게 적용하는 것은 좋아하지만, 우리 자신에게 적용하는 것은 싫어한다.

우리는 하나님 말씀을 삶에 적용함으로써 영적으로 성장하고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다. 당신과 나는 성령에게 힘 주시기를 간구해야 한다. 우리에겐 스스로 순종할 수 있는 힘이 없기 때문이다. 성경은 하나님께 성령을 통해 우리에게 능력 주시길 구하라고 말한다. “그의 영광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너희 속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시오며” (엡 3:16) 우리 힘으로 하려고 할 때마다 방해물이 나타날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는 우리가 그분의 말씀을 적용하도록 돕는 “풍성함”이 있다. 우리는 그저 하나님께 구하기만 하면 된다.
다음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보자.
  • 오늘 당신이 하나님의 말씀을 더 깊이 묵상하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것들은 무엇인가?
  • 하나님께 힘 주시길 기도할 때, 하나님은 당신에게 필요한 것을 공급하기 위해 삶 속에서 사람들을 사용하실 수도 있다. 당신에겐 자신의 어려움을 털어놓을 수 있고 당신이 영적으로 성장하도록 책임져줄 수 있는 사람이 있는가?
질문을 통해 성경을 깊이 탐색하라
“너희는 말씀을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 (약 1:22)
지난 몇 주간 살펴본 것처럼, 기독교적 묵상은 성경에 대해 생각하는 것을 뜻한다. 소가 여물을 되새김질하는 것처럼 성경을 묵상하는 것이다. 말씀을 씹고, 또 씹고, 또 씹는 것이다.
성경 공부 방법 중 ‘탐색하기’는 그러한 묵상에 매우 좋은 방법이다. 이 방법은 마치 잭해머(휴대용 압축 공기식 드릴)처럼 질문을 던지며 본문을 깊이 탐색해가는 것이다. 탐색하기를 보다 쉽게 하기 위해, 내가 사용한 것 중 가장 특이한 단어, ‘SPACEPETS’를 알려주고자 한다. 여기서 각각의 글자는 하나님 말씀과 관련하여 던질 질문의 키워드의 머리글자이다.
  1. 내게 고백해야 할 죄(Sin)가 있는가? 하나님 말씀 속에서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바로잡아야 할 것을 발견했는가?
  2. 붙들어야 할 약속(Promise)이 있는가? 하나님 말씀에는 7천 개가 넘는 약속이 있다. 방금 읽은 본문에 보편적인 약속이 포함되어 있는지 스스로 물어보라. 약속에 어떤 조건들이 있는지 질문을 던져보라. 모든 약속에는 전제조건이 있다!
  3. 바꿔야 할 태도(Attitude)가 있는가? 내가 바꿔야 하는 생각이 있는가? 부정적인 태도, 염려, 죄의식, 두려움, 외로움, 상처, 교만, 무관심, 또는 이기심 등을 해결할 필요가 있는가?
  4. 순종해야 할 명령(Command)이 있는가? 그것에 대해 어떻게 느끼든 간에 내가 순종해야 할 명령이 있는가?
  5. 따라야 할 본(Example)이 있는가? 따라야 할 긍정적인 본이 있는가? 또는 피해야 할 부정적인 본이 있는가?
  6. 기도해야 할 기도문(Prayer)이 있는가? 특히 바울, 다윗, 솔로몬, 엘리야, 이사야 등 인물들이 성경 속에서 기도한다. 그들의 기도를 이용하여 기도하면 응답을 받게 됨을 알 수 있다. 성경에 있으며 하나님의 뜻 안에 있는 기도이기 때문이다.
  7. 피해야 할 과오(Error)가 있는가? 경험으로부터 배우는 것은 현명하다. 또한 다른 사람의 경험으로부터 배우는 것은 훨씬 더 현명하다! 우리에겐 직접 모든 실수를 저지를만한 시간이 없다. 그럼 성경에 나온 사람들의 과오로부터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8. 믿어야 할 진리(Truth)가 있는가? 종종 성경에는 우리가 어떻게 할 수 없는 내용이 나온다. 그럴 땐 그저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 아버지, 예수님, 성령님, 과거, 미래, 천국, 지옥, 또는 기타 성경의 주제에 대해 믿어야 한다.
  9. 하나님을 높여드릴 무언가(Something)가 있는가? 우리는 하나님이 행하신 일이나 하나님이 우리를 보호하심과 같이, 본문에서 늘 하나님께 감사 드릴 것을 찾을 수 있다.
위 리스트의 모든 질문에는 ‘동사’가 있다. 질문과 관련하여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있다는 뜻이다. 그것들을 성경이나 성경에 넣고 다닐 수 있는 작은 카드에 적어보라. 그러면 성경을 묵상할 때마다 ‘말씀을 행하는 자’가 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다음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보자.
  • ‘탐색하기’ 성경공부법에 대해 읽은 후 어제 경건의 시간에 읽은 성경으로 돌아가서, 이 방법을 그 본문에 적용해보라. 어떤 새로운 진리를 발견하게 되는가?
  • 오늘 당신은 하나님의 어떤 약속을 의지하고 있는가?

일관된 경건의 시간을 갖는 방법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마 6:33)
사람들은 누구나 경건의 시간에서 일관성을 유지하는 데 때때로 어려움을 겪는다. 당신이 이런 문제를 겪고 있다면, 안심하라. 당신만 그런 것이 아니다! 다행인 것은 공통의 문제에는 공통의 해결책이 있다는 사실이다. 앞으로 경건의 시간과 또 씨름하게 되면 - 또는 씨름을 시작하기 전이라도 - 아래 제시하는 해결책을 이용해보라.
1) 약속을 정하라. 매일 하나님과 최소한 얼마만큼의 시간을 보낼 것인지(단 2분이라도 좋다) 하나님께 약속하라. 약속한 것을 종이에 적으라. 이것은 그저 모두가 그렇게 하기 때문이 아니라 당신이 예수님과 시간을 보내고 싶어하기 때문에 매일 하나님과 시간을 갖기로 하는 약속이다.
2) 그것을 주간 일정에 집어 넣으라. 약속한 것을 알람시계, 컴퓨터, 휴대폰, 또는 그 어디든 일정을 표시해놓는 곳에 집어 넣으라. 병원 예약이나 비즈니스 미팅, 또는 회의 시간을 잡을 때처럼, 매일 하나님과 만나기 전에 잠시 준비하는 시간도 배정하라.
3) 사탄의 공격에 대비하라. 대비하는 것은 절반을 승리한 것이다. 사탄은 당신이 하나님과 시간을 갖지 못하게 하려고 갖은 수를 써서 방해할 것이다. 경계심을 갖고 공격에 대비하라.

4) 6주 연속 실천하라. 심리학자들의 말에 따르면 습관을 들이는 데는 6주 정도가 필요하다고 한다. 새로운 업무 또는 새로운 행동에 익숙해지려면 3주 정도가 필요하며, 삶 속에서 그것이 견고한 습관이 되려면 3주가 더 필요하다.
습관은 일종의 끈 뭉치와도 같다. 끈 뭉치는 떨어뜨릴 때마다 실이 길게 풀려 나온다. 이 기간 동안에는 ‘이번 한 번만’이라는 정신은 용납하지 말아야 한다. 끈 뭉치는 한번 떨어지면 지금까지 감은 것들이 다 풀린다. 유혹에 지는 행동은 의지력 및 자제력을 약화시킨다.

5) 자기 힘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라. 우리는 오직 성령의 능력으로만 성공할 수 있다. 이 습관을 계발하는 것을 도우시는 하나님을 의지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 능력 주시기를, 그리고 그리스도의 마음을 주시기를 구하라. 자신의 의지력만 믿으면 일관성을 유지할 가망이 없다.
예수님은 당신이 그분과 시간을 보내기를 원하신다. 주님은 당신과 화목하기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셨다. 당신에겐 분명 주님과 교제할 시간이 있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6:33에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하나님께 시간을 내어드리라. 그러면 그로 인해 삶이 변화될 것이다.
다음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보자.
  • 오늘 당신은 일관된 경건의 시간을 갖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겠는가?
  • 일관된 경건의 시간을 갖는 것이 크리스천의 성장에 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가?
  • 당신의 경건의 시간을 갖는 방식은 위 질문에 대한 대답과 조화를 이루는가?

멋진 적용문 쓰기
“너희는 말씀을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 (약 1:22)
성경은 구체적이 되어야 비로소 역동적이 된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 말씀을 읽을 때 ‘과거의 말씀’에서 ‘지금 내가 해야 할 일’(즉, 적용)로 옮기려고 노력해야 하는 것이다.
성경을 읽은 다음에 가져야 할 위대한 습관은 방금 읽은 것을 적용할 내용을 한 문장으로 쓰는 것이다. 이 습관을 통해 우리는 그저 듣기만 하는 자가 아니라 “말씀을 행하는 자”가 될 수 있다.
그렇다면 좋은 적용문이란 무엇일까? 여기에는 네 가지 특징이 있다.
좋은 적용문은 개인적이다. 적용문은 다른 누군가를 위해 쓰는 것이 아니다. 세상이 어떠해야 하는지, 또는 남편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또는 자녀들이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것이 아니다. 적용문은 ‘당신’이 무엇을 해야 하느냐에 관한 것이다!
좋은 적용문은 실제적이다. 적용은 ‘실제로 행할 수 있는 것’, 실천할 계획을 세울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포괄적이고 일반적인 내용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 오히려 그런 것은 실천이 거의 일어나지 않아 무력감이 들게 만든다.
좋은 적용문은 가능한 것이다. 적용할 것을 실제로 이루지 못한다면 쉽게 낙심하게 될 것이다. 예컨대 ‘하루에 다섯 시간 기도하기’를 적용하기로 삼았다면, 그것을 해내지 못할 것이다. 반면 ‘매일 꼭 기도하기’는 실제적이다. 적용문은 실천이 가능한 것이어야 한다.
좋은 적용문은 입증할 수 있는 것이다. 스스로 점검할 수 있는 데드라인(기한)을 설정하라. 기한과 목표를 설정하지 않으면 스스로를 점검할 수 없다. 그러면 그 적용은 꿈에 불과하게 된다.
이것은 현재 당신이 읽고 있는 성경의 어느 부분에서나 적용할 수 있다. 성경은 “너희는 말씀을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라고 말한다. (약 1:22)
다음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보자.
  • 이 묵상글을 읽은 후에, 당신의 경건의 시간은 어떻게 변화되겠는가?
  • 오늘 당신은 어떤 한 문장으로 된 적용점을 실천에 옮기겠는가?

Wednesday, August 29, 2012

목적이 이끄는 삶을 위한 매일의 묵상 - 성경공부


하나님 말씀을 공부하는 방법 (1부)
“내 눈을 열어서 주의 율법에서 놀라운 것을 보게 하소서” (시 119:18)
하나님 말씀을 공부하고 배운 것을 실천에 옮기면 삶이 변화된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하나님 말씀을 공부하고자 하는 의지로부터 시작한다.
성경은 “내 눈을 열어서 주의 율법에서 놀라운 것을 보게 하소서”라고 말한다. (시 119:18)
하나님은 우리에게 보여주고자 하시는 것이 무척 많지만, 먼저 열린 눈으로 그분의 말씀을 들여다보고자 하는 의지가 우리에게 있어야 한다.
그럼 하나님 말씀은 어떻게 공부해야 하는가? 어떤 방법을 사용하든 간에 효과적인 성경공부는 다섯 부분으로 나눠진다. 오늘은 그 중에서 두 가지를 살펴보고, 내일 세 가지를 알아보도록 하자.
1. 올바른 질문을 던진다. 성경공부법을 배우는 것은 본문으로부터 좋은 질문을 던지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성경에 대해 던질 수 있는 질문의 한계는 없다. 그 지혜와 명철은 끝이 없기 때문이다. 성경을 더 깊이 파고들수록 더 많은 금을 찾을 수 있다.
읽고 있는 본문에 대해 질문을 던지면 완전히 새로운 시각으로 본문을 읽을 수 있게 된다. 하나님의 말씀을 집어 들고 공부할 때마다 갑자기 눈 앞에 새로운 진리가 튀어나올 것이다.
2. 관찰한 것을 적으라. 손에 펜과 종이를(또는 성향에 따라 키보드를) 들지 않고 성경공부를 하는 일이 없게 하라. 질문을 던지고 대답을 찾았다면, 배운 것을 적어보라. 무언가를 적지 않고 성경을 읽을 수는 있지만, 성경 공부는 그런 식으로 되지 않는다.
네비게이토 선교단체의 설립자인 도슨 트로트만(Dawson Trotman)은 다음과 같이 말하곤 했다. “생각은 입술과 손끝을 통해 나가면 얽혀있던 것이 풀린다.” 즉 말로 할 수 없고, 글로도 쓸 수 없다면, 그것에 대해 진짜로 생각해보지 않은 것이다. 비록 성경구절에서 아무 것도 찾을 수 없다 하더라도, 아무 것도 찾을 수 없다고 적으라. 그것을 적는 행위만으로도 새로운 사고가 열릴 수 있다.
다음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보자.
  • 매일 하나님의 말씀을 공부하는 장소에 대해 생각해보라. 그 곳은 집중에 도움이 되는가 아니면 방해가 되는가?


성경 공부의 놀라운 원리 (2부)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하시니” (마 4:4)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 말씀을 적용하여 그 말씀으로 삶이 변화되길 원하신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하나님 말씀을 공부하는 데서 시작한다. 어제 나는 어느 성경 공부법에나 적용할 수 있는 두 가지 일반적인 성경 공부 원리를 설명했는데, 그것은 다음과 같다.
1. 올바른 질문을 던져라.
2. 관찰한 것을 적어라.
오늘 나는 세 가지 성경 공부 원리를 더 나누고자 한다.
3. 하나님 말씀을 적용하라. ‘진리’를 찾았다면 ‘그래서 어떻게 해야 하는가?’로 나아가 성경이 말하는 바를 행해야 한다. 모든 성경 공부의 궁극적인 목표는 ‘적용’이다. 즉 ‘이 말씀이 내 삶을 어떻게 변화시킬 것인가?’이다. 이해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매일의 삶에 성경적 원리를 적용해야 한다.
적용이 없는 해석은 낙태와 같다! 완전한 결실에 이르기도 전에 과정을 멈추는 것이기 때문이다. 최종적으로 그리스도를 닮지 않는다면, 성경을 공부하는 모든 노력은 실상 아무런 가치가 없다.
사실 성경은 적용하는 부분만 믿는 것이다. 당신은 그리스도를 전하는 것에 대해 믿는가? 십일조에 대해 믿는가? 그렇다면 그러한 행위들을 하는가? 행하지 않는다면 성경이 그것들에 대해 가르치는 것을 진정으로 믿고 있지 않은 것이다. 성경에 관하여 우리 대부분이 갖고 있는 문제는 성경을 이해하지 못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이해하는 것을 적용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4. 성경을 체계적으로 연구하라. 성경을 무턱대고 공부하지 마라. 성경은 구절별로, 책별로, 주제별로, 테마별로 공부함으로써 체계적으로 들여다볼 수 있다. 이와 정반대되는 방법은 낡은 ‘메뚜기식’ 공부로, 그냥 무작정 성경을 펼쳐 공부하고 싶은 곳에 손가락을 대고 읽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는 하나님께서 우리 삶에 원하시는 결과를 이룰 수 없다.
5. 성경을 반복해서 읽어라. 간단한 방법이지만, 이렇게 하면 삶이 변화된다. 똑같은 단락을 반복해서 연구한 다음, 몇 달 후에 똑같은 단락을 다시 읽어보라. 아마 너무나 많은 것을 발견하게 되는 것을 보고 놀랄 것이다. 같은 단락을 더 많이 읽을수록 그 안에서 더 많은 것을 얻게 된다.
오늘, 스스로 성경 공부하기를 시작하라. 어떤 공부법을 선택하든 간에 이 다섯 가지 원리를 적용해보라. 그러면 성경의 어느 곳을 보든 간에 그 안에서 더 많은 것을 얻게 될 것이다.
다음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보자.
  • 오늘, 하나님은 당신이 삶 가운데 특히 어느 영역에서 말씀을 적용하길 바라실까?
  • 당신에겐 담당파트너가 있는가? 만약 없다면, 담당파트너가 성경 공부를 좀더 성실하게 하는 데 도움이 되리라 생각하지 않는가?
성경공부는 위험한 일이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마 7:24)
당신은 성경 공부가 위험할 수도 있음을 아는가? 사실 성경 공부의 결과가 재난이 될 수도 있다.
이 말이 이상하게 들릴 거라는 건 안다. 그러나 하나님은 성경을 삶에 적용하라고 하신 것이지 그냥 읽으라고 하신 것이 아니다. 성경은 정보가 아니라 변화에 대한 것이다. 산상수훈의 말미에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마 7:24) 하나님 말씀을 적용하는 것은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그렇다면 하나님 말씀을 우리 삶에 적용하는 것이 왜 중요할까?
  • 진리를 삶에 적용하지 않으면 지식이 교만을 낳는다. 고린도전서 8장 1절은 “지식은 교만하게 하며 사랑은 덕을 세우나니”라고 말한다. 우리는 주변에서 성경은 잘 알지만 말씀이 삶에 전혀 침투하지는 않는 사람들을 종종 본다. 그들은 성경을 다른 사람들을 내려치는 망치로 사용한다. 결국 우리는 우리가 만나는 사람 중 가장 심술궂고 악하며 옹졸하고 까다롭고 비판적이며 정죄하는 사람이 ‘될 수’ 있다. 성경을 삶에 적용하는 단계를 전혀 밟지 않는다면 말이다.
    적용 없는 지식은 교만을 낳는다. 사랑을 토대로 적용하지 않고, 그저 우쭐해지기만 한다. 그것은 자신에게 도움이 아니라 해가 된다.
  • 지식은 행동을 요구한다. 야고보서 1장 22절은 말한다. “너희는 말씀을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 아는 것은 행동으로 드러나야 한다. 메모를 해가며 성경 공부를 한다고 해서 자신이 성장한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자신을 속이는 것이다. 하나님의 명령을 따르는 것은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 많이 알수록 책임이 늘어난다. 야고보서 4장 17절은 이렇게 말한다. “그러므로 사람이 선을 행할 줄 알고도 행하지 아니하면 죄니라” 성경을 더 깊이 알수록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것을 적용하지 못하면 더 큰 심판이 우리를 기다린다. 성경 공부를 시작하면, 하나님은 우리 삶에서 변화되어야 할 영역들을 보여주기 시작하시고, 그러면서 더욱 더 큰 책임의 자리로 우리를 부르신다. 
다음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보자.
  • 예배를 드리고 온 후에, 또는 경건의 시간을 마치고 나서, 당신은 설교 시간에 혹은 성경 공부 시간에 적은 것을 가지고 어떻게 하는가?
  • 조금 전 한 시간 동안 당신이 한 말과 행동에 대해 생각해보라. 그 말과 행동은 하나님께서 최근에 말씀을 통해 당신에게 가르쳐주신 것을 반영하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