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dnesday, September 7, 2011

<밴쿠버올림픽 단상[斷想]>


2010년 2월 밴쿠버 올림픽으로 인해 많은 즐거움과 아쉬움이 교차되는 시간이었다. 자국의 경기결과에 따라 기쁨과 안타까움으로 보낸 시간들이었다. 열심히 한 선수가 메달을 탄 후 기쁨의 환호와 눈물을 흘리는 모습은 정말 멋진 모습이다. 한편으로 메달은 따지 못했지만 최선을 다한 후 만족하는 모습은 세상의 어떤 모습보다 멋진 모습이었다.
그러나 열심히 했음에도 불구하고 만족할 만한 결과를 얻지 못하고 자신의 감정을 억제하는 모습을 보는 것은 너무나 안타까운 모습이다. 특별히 김연아의 피겨 금메달로 환호 할 때, 최선을 다했음에도 불구하고 은메달에 만족해야 하는 아사다 마오의 흘린 눈물은 우리에게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한다. 그녀가 경기 후 한 인터뷰에서 “최고지만 2등은 함부로 울 수도 없었다”라고 말한 부분은 동양적 사고의 1등만 기억하는 세상적 사고의 단면을 보게 된다. 지난 1월 교사신년새다짐 시간에 담임목사님께서 말씀하신 1등이 아닌 1등급을 기억하시는 하나님에 대해서 다시금 생각해 본다. 믿음의 경주에 1등은 필요치 않습니다. 사역의 열매에도 1등은 필요치 않습니다. 5달란트 받은 자나 2달란트 받은 자 모두 “잘하였다 충성된 종”이라고 칭찬하시는 하나님은 우리가 믿음의 경주에서, 사역의 현장에서, 그리고 교사로서 1등급의 교사가 되기를 원하신다

 올림픽에 생각하며 또 하나 생각해보는 것은 쇼트트랙 여자 3000미터 릴레이 경기이다. 이 때 심판의 판정에 대해서 여러 이야기를 하게 된다. 특별히 피해자인, 아닌 앞서 말한 열심히 하고 정당한 결과를 기대했던 선수들의 입장에서 보면 이 세상은 공평하지 못한 세상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 공평하신 하나님이시지만, 그리고 세상을 향해 공의를 행하라 말씀하시지만, 이 땅 가운데 살아가는 사람과 세상은 공평하지 못한 게 현실이다. 단 하나의 사건을 일반화시키는 것은 문제가 있지만, 우리는 공평하지 못한 세상 가운데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이 문제에 대해서 온라인상에서 우리 청소년부 친구들이 격하게 분노하는 모습을 보면서 여러 생각을 하게 되었다.
 마침 요즘 몇 권의 책을 읽고 있는데, 거기에서 동일하게 하박국의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여호와여 내가 부르짖어도 주께서 듣지 아니하시니 어느 때 까지리이까 내가 강포를 말미암아 외쳐도 주께서 구원하지 아니 하시나이다 어찌하여 내게 죄악을 보게 하시며 패역을 눈으로 보게 하시나이까 겁탈과 강포가 내 앞에 있고 변론과 분쟁이 일어 났나이다” 하박국 1장 2-3절
 모순 된 세상, 모순된 권력, 모순된 통치자 밑에서 살아가는 우리이다. 이러한 세상에 살아가는 우리는 무엇으로 이 세상을 살아가야 하는가?이다. 정당한 노력을 기대하기 힘들거나 어려운 세상에, 그리스도인들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여기에 대한 질문의 답은 간단한다. 첫째는 하박국 선지자는 이 질문에 대해서 “의인은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믿음”은 ‘버티다’라는 뜻이 있다. 의인은 버텨야 한다. 세상 사람들과 똑같이 살아가고자하는 마음으로부터 믿음을 성실하게 지키며 버티는 것이다. 그들의 달콤한 유혹에 빠지지 않고 믿음을 지키는 것이다. 둘째는 로마서, 전도서의 말씀에서 찾을 수 있다. 로마서 13장 1절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복종하라”, 전도서 8장 2절 “내가 권하노라 왕의 명령을 지키라” 답은 간단하다. 악한 권세도 하나님이 그 자리를 허락하지 않으면 어느 누구도 그 자리에 앉아 있을 수 없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섭리에 순복해야 한다. 우리가 굴복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권력의 근원자앞에 순복하는 것이다.

그럼 마지막으로, 언제까지, How long?이란 질문이 남게 된다.
 그 답 역시 간단한다. 하나님이 이 땅이 온전히 통치하실 그 날을 소망하면서 인내하며 기다리며 기다리는 것이다.

No comments:

Post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