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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ursday, March 14, 2013

한 날 묵상 - 막 1:14-15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한 날 묵상 - 막 1:14-15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1. 예수님의 가르침? 선포? 이는 상당히 단순합니다. 특별히 어려울 것이 없다는 말입니다.

2. 그런데 우리가 예수님의 가르침, 선포를 받아들이고 따라가는 삶은 단순하지 않다는 걸을 삶에서 알아가게 됩니다.

3. 왜 이러한 차이가 발생하는 것일까?

4. 이는 우리가 예수님의 선포, 가르침을 잘못 받아들였거나 잘못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5. 광야에서 시험을 받으 신 후 예수님의 사역과 가르침이 시작됩니다.

6. 예수님의 가르침의 중심 메시지는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입니다. 

7. 14절에서 세례 요한이 잡힌 후 갈릴리에 오셔서 예수님은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합니다. 그리고 그 메시지가 15절에 기록되어 있는데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입니다. 

8. 예수님은 사역을 시작하면서 "때가 찼다"고 말씀하십니다. 

9. 시간적으로 다 되었는데, 무엇을 위한 시간이 되었다는 의미일까요? 

10. 이는 이사야 61장 1-2절 말씀의 성취입니다.
"주 여호와의 영이 내게 내리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선포하며"
"여호와의 은혜의 해와 우리 하나님의 보복의 날을 선포하여 모든 슬픈 자를 위로하되"

11.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는 앞서 살핀 막 1장 9-11절 말씀을 통해 성취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12. 예수님의 감당하셔야 할 사역은 이제 분명해 졌습니다.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선포하며"
 "여호와의 은혜의 해와 우리 하나님의 보복의 날을 선포하여 모든 슬픈 자를 위로하되"

13. 하나님 나라은 바로 이런 나라입니다. 가난한 자가 아름다운 소식을 듣게 되며, 마음이 상한 자가 고침을 받게 되며 포로된 자가 자유를 얻게 됩니다. 갇힌 자들은 놓임을 받게 됩니다. 모든 슬픈자가 위로를 받게 됩니다. 

14. 하나님 나라는 이런 나라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을 나라를 이루시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사역을 통해 하나님 나라가 이제 시작되었습니다.

15. 예수님이 전하는 복음에 말씀을 듣는 자들은 반응을 해야 한다. 

16. 하나님 나라에 들어와 참 평안와 위로를 누리기 위해서 위해서 회개하며 복음을 믿어야 합니다. 

17. 그렇다면, 회개하며 복음을 믿는 의미는 무엇일까요?

18.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회개는 주님께 되돌아가는 인생(아버지를 떠난 아들이 아버지께 돌아가는 것처럼, 아버지 품으로 돌아가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19. 되돌아가야 회개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생각하는 회개는 여기까지 있지만, 예수님의 회개의 가르침은 그렇지 않습니다. 

20. 되돌아와서 해야 할 일이 있는데 이를 잘 감당함으로서 온전한 회개가 이루어진 것이 됩니다.

21. 예수님의 가르침에 우리의 이해가 이 부분까지 가지 못해서 우리 스스로 생각하기에 믿음의 삶이 복잡하다고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22. 결국 우리가 예수님의 가르침을 바르게 이해하면서 우리의 삶으로 하나님 나라를 위해 온전히 감당해야 할 그리스도인으로서의 몫이 있다는 것을 이해할 뿐 아니라, 그 일을 잘 순종하려고 할 때 우리는 예수님이 선포하신 단순한 삶을 이해하게 됩니다.

23. 예수님이 선포하신 복음의 핵심은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말씀을 바로 이해할 필요가 있는데..

24. 하나님께 돌아가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를 누릴 뿐 아니라, 하나님 아버지가 꿈꾸는 나라를 위해 우리가 감당해야 할 몫(내가 누리는 은혜를 모든 이들이 함께 누리는 일에 대한 부르심)이 있음을 기억하고 매일의 삶에서 잘 감당하는 것이 내가 이 땅에서 살아가야 할 삶이다는 것을 분명히 인식하게 될 때, 우리의 삶은 이 목표와 방향앞에 아주 단순한 삶이 되게 됩니다. 

25. 예수님은 이 일을 위해서 사람을 부르시고 계십니다. 우리는 진정으로 회개하고 복음을 믿음을 통해 제자가 되어야 합니다. 

26. 오늘 한 날도 예수님이 선포하신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는 가르침에 순종하는 삶이 오늘 하루를 살아가는 나의 가장 단순한 삶임을 기억하고 삶으로 순종해가는 한 날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27. 한 날의 삶이 올바른 회개의 삶이 되기를 소망하며....

===
14절 "요한이 잡힌 후에 예수께서 갈릴리에 오셔서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여"
15절 "이르시되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시더라"


15절 "때까 찼고"
=> 이사야 61장 1-2절의 성취
"주 여호와의 영이 내게 내리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선포하며"
"여호와의 은혜의 해와 우리 하나님의 보복의 날을 선포하여 모든 슬픈 자를 위로하되"


===
* 이방에 빛을 4장 예수님이 선교적 사명을 감당할 종말론적 백성을 모으시다
p178-181.
 예수님은 그분의 청중에게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고 촉구한다. 이에 응답한 이들은 하나님의 종말론적 백성이라는 신분에 들어간다. 현대 사회에서 믿음의 개념은 계몽주의에 의해 형성되었다. 그래서 우리는 자주 믿음을 단지 지적인 동의라고 생각하고, 회개에 대한 이해는 우리의 죄에 대한 유감을 뜻하는 것으로 개인화시켜 왔다. 따라서 우리가 예수님의 본래 명령을 참으로 이해하려면, 우리는 그분의 상황 속에서 그 명령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회개하라는 요청은 구약의 배경, 특히 하나님께로 되돌아오라는 언어를 배경으로 삼는다. 신명기 저자는 마지막 날에 "너와 네 자손이 네 하나님 여호와께 돌아와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한 것을 온전히 따라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여호와의 말씀을 청종하며"(신30:2) 이스라엘이 번영하게 될 것이라고 약속한다. 이 약속은 이스라엘의 심판 뒤에 오는 것이다(신29:29).
 회복은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께 돌아와서 그분의 선교를 위해 섬기고 그분을 온 마음으로 사랑할 때만 이루어질 것이라고 약속된다. 

 이스라엘 백성은 그들의 우상숭배적인 길을 떠나서 
 온 마음을 다해 여호와께 돌아오고
 그분의 길을 걸어가겠다고 헌신함으로써
 예수님의 초청에 응답해야 한다.

예수님의 회개하라는 요청에서 발견되는 참으로 놀라운 사실은, 그분은 사람들에게 예수님 자신에게 완전한 충성을 바침으로써 하나님께로 돌아오라고 요구하신다는 점이다. 이러한 방식으로 예수님께 헌신하는 것은 회개와 함께 "이스라엘의 신이 예수님 자신의 사역에서 결정적으로 행동하고 계신다는 믿음을 요구한다"

따라서 하나님 나라의 선포는 단순히 정보를 전달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급진적이고 철저한 결심"을 요구한다. 회개하고 믿으라는 요청은 어떤 사람이 자신의 삶 전체를 예수님께 드리고, 자신의 집과 가족을 포기하고, 하나님 나라를 위해 다른 모든 의무를 제쳐 놓을 것을 요구한다(눅 9:57-62). 그는 다른 어떤 사람보다, 심지어 가족보다 예수님을 더 사랑해야 한다(마 10:34-39). 다른 모든 충성, 헌신, 관계, 의무는 매우 귀 중한 보화와 진주, 곧 예수님 안에 나타난 하나님 나라를 얻기 위해 포기해야만 한다(마13:44-46). 

 복음서와 1세기 유대교 안에 나타난 제자도 개념의 차이는 이러한 부르심이 얼마나 근원적으로 제자들을 예수님의 인격과 결함시키는지 보여준다. 
 데이비드 보쉬David Bosch는 제자도에 대한 두 가지 개념을 잘 비교하여 보여준다.

 유대교에서 율법 혹은 토라는 랍비와 제자 관계의 중심에 서 있다. 랍비의 권위는 토라에 관한 그의 지식에 근거한다. 다시 말해 그는 율법의 자리를 차지하고 최고의 충성을 그의 인격과 사명에 바치도록 요구한다. 게다가 유대교에서 제자도는 단지 랍비와 같이 되는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 랍비의 제자가 토라를 배우고 익힐 때, 그는 그 자신이 선생이 될 순간을 바라보며 노력한다.

 그러나 예수님의 제자는 결코 랍비가 되는 일을 "마칠 수" 없을 것이다. 그는 언제나 예수님의 추정자이지 자제자로 남아 있다. 게다가 유대교에서 랍비의 제자들이 단지 학생에 불과하다. 그러나 예수님의 제자들은 그분의 종으로서 그분의 위대한 가르침과 통찰로부터 지적인 혜택을 입을 뿐만 아니라 그분의 권위에 복종하고 그분을 그들의 여호와로 섬긴다. 

 주목할 점은 유대인을 위해 쓰여진 마태복음에서, 예수님의 적들이 그분을 향해 "랍비"와 "선생"으로 불렀지만, 그분의 제자들은 그분을 "주님"이라고 불렀다는 것이다(다만 유다는 예수님을 배신 할 때 "랍비"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마 26:25, 28을 보라). 

 마지막으로 유대교의 가르침은 제자도의 목적이 예수님의 것과 다르다. 유대교에서 제자는 충실하게 랍비의 가르침을 따라 살아가야 한다. 하지만 예수님의 제자들은 그분과 함께 있어야 하고 그분의 하나님 나라 선교에 참여해야 하며, 그분을 증거해야 한다. -그분이 누구이고 그분이 성취하신 일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말이다(막3:14-15)

 마가복음 3:14-15절
 "이에 열둘을 세우셨으니 이는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고 또 보내서 전도도 하며 귀신을 내쫓는 권능도 가지게 하려 하심이러라"

그들은 단순히 배우는 공동체가 아니고, 하나님의 마지막 때에 예수님의 회집하시는 선교에 헌신적으로 참여하는 메시아적 백성의 선구자다. 
 ===

Saturday, February 16, 2013

한 날 묵상 - 막 1:1 <복음의시작과 끝은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나의 시작과 끝 또한 복음이어야 합니다>

한 날 묵상 - 막 1:1 <복음의시작과 끝은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나의 시작과 끝 또한 복음이어야 합니다>

          1절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이라"

1. 나의 존재, 정체성이란? 나를 나는 어떻게 평가할 수 있을까? 다른 사람은 나를 어떻게 볼까?

2. 복음의 정점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복음은 인간의 삶의 윤택이나 편안함을 위해서 있는 것이 결단코 아닙니다.

3. 그래서 마가복음 1장 1절은 단호하게 이렇게 시작하고 있습니다. 1절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이라"

4. 복음의 시작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 땅에서의 삶의 시작 또한 복음입니다.

5. 우리는 지금 복음앞에 무엇을 바라고 있습니까? 우리는 지금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안에 무엇을 바라고 있습니까?

6. 오직 복음뿐입니다. 마가복음은 말씀입니다. 그리고 그 말씀은 그 자체로 복음입니다.

7. 말씀을 읽고 깨달는 것이 있다면 오직 복음 뿐입니다. 말씀을 읽고 깨닫고 듣는 일에 있어서 복음을 제대로 깨닫는 것외는 다른 것은 없습니다.

8. 나의 삶과 정체성, 가치관에 복음만이 있기를 원한다.

9. 복음의 향기의 나의 삶과 흔적 곳곳에 무더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10. 왜 이리 어렵고 힘들까? 나를 아직 버리지 못해서 그렇다.

11. 예수님은 신성과 인성을 모두 가지고 계시다. 예수님의 복음이 시작되기 위해서 이 둘을 다 필요하다. 그러나 필요함으로 그치지 않는다. 신성을 버리시고, 포기하시고 인성으로 오셔야 피로서 복음이 시작된다.

12. 복음이 나의 향기가 되기 위해서 나의 옛 자아가 죽어야 한다. 고린도후서 5;17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13. 옛자아를 죽이기 위한 우리의 관심과 헌신은 지속되어야 한다. 다음의 글에서 "죄 죽이기 실행"에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http://cafe.naver.com/mokyang1016/54

14.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으로 아들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15. 복음은 예수님의 신성과 인성을 모두 포함합니다.

16. 진정 복음이 나의 삶에 충만하기 원합니다. 진정 복음이 우리 사회에 충만하기 원합니다. 진정 복음이 우리 모두의 정체성이 되기를 원합니다. 진정 복음이 우리 모두의 시작과 끝이길 원합니다.

17. 마가복음은 시작을 복음을 아주 간단 명료하게 제시하고 있습니다.

18. 내가 인생에서 써내려가는 인생의 이야기가 이 복음의 이야기로 가득차기를 원합니다.

19. 오직 복음만이,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오직 그 은혜만을 간구합니다.

20. 은혜 내려 주시옵소서. 아멘.

참고
열방에 빛을, 마이클 고힌
pp67-72.

Sunday, January 27, 2013

생일( 生業)

생일(生業) - 생生 살 일業

생명을 살리는 날

오늘는 나의 생일이다
사실,
어제도 나의 생일이었다
그리고,
내일도 나의 생일이다

사실,
날마다 내 생일이다

왜?
날마다 내 생일이냐면,
나는 오늘 꿈을 꾸었다.
진짜 꿈 말이다.
하나님이 나를 부르셨다.
생명을 살리는 일에,
그래서,
나는 날마다 생일이다.

생살일
생일
생명을 살리는 일
이게 바로
내 일이다

오늘은 나의 생일이다
어제도 생일이었다
물론 내일도 생일이다
나는,
날마다 생일이다.


2013. 1.21 by Hooney Dooley.


오늘 생일케익은 김혜민 선생님이 준비해 주셨습니다.

Monday, November 5, 2012

한 날 묵상 - 갈 3:5-14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았습니다. 율 법 의 행위로는 성령을 받을 수 없습니다. 오직 믿음으로 그리스도의 의에 이 르 고 성령의 행하시는 일을 받게 됩니다.>

한 날 묵상 - 갈 3:5-14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았습니다. 율법의 행위로는 성령을 받을 수 없습니다. 오직 믿음으로 그리스도의  의에 이르고 성령의 행하시는 일을 받게 됩니다.>

1.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힘은 어디서 오나요?

2. 밥심! 지심(지식)! 권심(권력)! ㅋㅋㅋㅋ 뭐 대충 이런 저런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오늘 우리가 살아갈 힘은 어디서 오는가?

3. 성령의 역사하심은 우리에게 주시는 믿음을 넘어 삶의 전영역에서 역사하십니다.

4. 우리가 성령의 역사하심에 대해서 생각할 때 믿음으로만 제한시키면 우리의 삶이 율법에 매일 수 있습니다.


5. 5절 "너희에게 성령을 주시고 너희 가운데서 능력을 행하시는 이의 일이 율법의 행위에서냐 혹은 듣고 믿음에서냐"

6. 신앙이 오래되다면 보면 잊어버리거나 익숙해지면서 초심의 은혜를 잊어버리기 쉽게 되는데, 초기의 은혜는 바로 믿음으로 성령의 은혜이다. 신앙이 오래되다면, 그리고 교회의 일들이 익숙해지다면 자신의 경험이나 능력을 의지하게 되는데, 이 때 늘 초심을 잊지 말아야 한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바로 성령의 역사와 성령의 은혜이다.


7. 성령의 역사하심은 삶의 전영역에 미칩니다.

8. 우리가운데 성령을 주시고, 믿음으로 능력을 행하게 하시는 일은 하나님의 전적인 선물입니다.

9. 우리의 그 어떠한 행위에서 오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10. 믿음에 관한 성령이 주시는 선물은 아브라함의 의가 어디서 온 것인가에 대한 예를 통해 확증하고 있습니다.

11. 아브라함의 의는 믿음에서 왔습니다.

12. 결코 아브라함의 행위로는 의로운 사람이 될 수 없었습니다.

13.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복의 근원이 된다는, 즉 8절 "모든 이방인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는 약속의 말씀은 하나님을 믿는 믿음에서 비롯됩니다.

14. 9절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는 믿음이 있는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받느니라"

15. 오직 믿음으로 성령의 능력을 받습니다.

16. 그렇다면, 죄와 은혜를 논 할 때, 성령은 어떻게 죄 속에서 역사하는가?

17.   박총님 facebook에서...
  "너는 네 과거의 죄와 부도덕한 습관에서 온 모든 결함이 너를 위한 나의 사랑스런 섭리의 한부분이라는 것과, 그 결함을 지닌 너의 지금 모습 그대로 내가 너를 사랑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단다. 
그러므로 너는 내 마음에 들기 위해 자신을 어떻게 만들어야 할지 
판단하는 습관을 극복해야 한단다.…
네가 나의 마음에 드는 길, 즉 내가 너를 사랑하기 원하는 길은, 너의 모든 결점과 결함을 지닌 채 지금 있는 그대로 있는 것이란다.
만약 내가 원한다면 순식간에 그 단점과 결점을 없애버릴 수 있단다. 그러나 그렇게 되면 내가 너를 사랑하기 원하는 방식으로 즉, 너의 지금 그대로의 모습대로 사랑할 수 없게 된단다."
_Julian of Norwich, Revelations of Divine Love.

18. 율법은 여전히 그 나름대로 필요성이 있습니다.

19. 율법의 행위가 그리스도의 의에 이르는 단초는 되지 못합니다.

20. 그러나 우리는 우리가 행하는 율법의 행위속에서 우리가 전적으로 그리스도의 선물을 구하게 하는 상한 심령으로, 심령의 가난함으로 인도합니다.

21. 그래서 율법은 율법 나름의 역할을 잘 하고 있습니다.

22. 우리안에 있는 성령의 은혜와 율법의 행위의 전쟁은 끝나지 않고 계속되어질 것입니다.

23. 물론 성령의 은혜가 승리하겠지만 말이지요.

24. 아브라함이 믿음으로 의에 이르렀다는 말씀을 통해서, 모든 민족으로 구원의 선물을 받는 것이 결코 율법의 행위가 아닌 믿음으로 뿐임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25. 오늘 이 말씀은 우리에게 또 다른 은혜와 감사를 줍니다.

26. 성령이 여전히 내 안에 나의 잘남이나 못남이나 능력이나 무능력이나 나의 상태를 떠나서 여전히 계시다는 것입니다.

27. 왜냐하면 믿음이 내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28. 오로지 나는 하나님을 찾아 나서기 때문입니다.

29. 오늘도 그 은혜, 성령의 내주하심의 은혜를 주시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30. 할렐루야. 아멘.

==
5절 "너희에게 성령을 주시고 너희 가운데서 능력을 행하시는 이의 일율법의 행위에서냐 혹은 듣고 믿음에서냐"
=> 신앙이 오래되다면 보면 잊어버리거나 익숙해지면서 초심의 은혜를 잊어버리기 쉽게 되는데, 초기의 은혜는 바로 믿음으로 성령의 은혜이다. 신앙이 오래되다면, 그리고 교회의 일들이 익숙해지다면 자신의 경험이나 능력을 의지하게 되는데, 이 때 늘 초심을 잊지 말아야 한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바로 성령의 역사와 성령의 은혜이다.

6-12절 아브라함에게 나타난 의. 믿음에 관한 이야기
 6절 아브라함의 의 -=>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믿으매"
 7절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들이 아브라함의 자손이다.
 8절 이방인 -=> 이방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로 정하실 것을 미리 성경이 미리 알고
       아브라함에 전함 복음이란? 모든 이방인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
        => 복이란 복음을 통해서 온다. 따라서 복은 구원이다.
 9절 "믿음으로 말마암은 자는 믿음이 있는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받느니라"

 10절 율법의 행위에 속한 자들 -=> 저주 아래 있다.
        "기록된 바 누구든지 율법 책에 기록된 대로 모든 일을 항상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11절 "하나님 앞에서 아무도 율법으로 말미암아(롬3:9-18) 의롭게 되지 못할 것이 분명하니"
       우리는 항상 죄가운에 있다. 율법 아래 있지 않다. 율법아래 있으면 저주를 받게 된다.
 그러나 죄아래 있기 때문에 은혜안에 있다.
  박총님 facebook에서...
  "너는 네 과거의 죄와 부도덕한 습관에서 온 모든 결함이 너를 위한 나의 사랑스런 섭리의 한부분이라는 것과, 그 결함을 지닌 너의 지금 모습 그대로 내가 너를 사랑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단다. 
그러므로 너는 내 마음에 들기 위해 자신을 어떻게 만들어야 할지 
판단하는 습관을 극복해야 한단다.…
네가 나의 마음에 드는 길, 즉 내가 너를 사랑하기 원하는 길은, 너의 모든 결점과 결함을 지닌 채 지금 있는 그대로 있는 것이란다.
만약 내가 원한다면 순식간에 그 단점과 결점을 없애버릴 수 있단다. 그러나 그렇게 되면 내가 너를 사랑하기 원하는 방식으로 즉, 너의 지금 그대로의 모습대로 사랑할 수 없게 된단다."
_Julian of Norwich, Revelations of Divine Love.

12절 그리스도께서 율법으로부터 우리를 자유하게 하셨다. 율법을 항상 행하지 않음으로 오는 우리의 저주를 그리스도께서 감당하셨다.
13절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 아래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 이 말씀의 저주가 신명기 28:15-69에 나오는 저주(질병, 가난, 줏음을 포함하는)와 동일하다고 확신하는 번영복음주의 자들이 있다.
여기서 바울의 관점은 하나님 앞에서 바로 서는 것이다.


 
14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
       "또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려 함이라"
 






참고
갈 3:8.또 하나님이 이방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로 정하실 것을 성경이 미리 알고 먼저 아브라함에게 복음을 전하되 모든 이방인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 하였느니라
-> 열방에 빛을, 마이클 고힌 pp79-84.

Wednesday, October 31, 2012

한 날 묵상 - 갈 2:11-14 <복음의 진리에서 벗어날 때 분명한 목소리를 내라. 게바도 책망받았다면 나도 예외일 수 없고, 그 어느 누구도 예외일 수 있는가? 그렇지만, 나에겐 말씀을 칼처럼 적용하라, 다른 사람에겐 관용함으로 보라.>

한 날 묵상 - 갈 2:11-14 <복음의 진리에서 벗어날 때 분명한 목소리를 내라. 게바도 책망받았다면 나도 예외일 수 없고, 그 어느 누구도 예외일 수 있는가? 그렇지만, 나에겐 말씀을 칼처럼 적용하라, 다른 사람에겐 관용함으로 보라.>

1. 갈라디아서는 은혜의 복음과 율법에 관한 이야기가 계속된다. 우리는 나 자신에게 이러한 질문을 할 수 있따. 나의 구원은 어디서 왔는가?

2. 나의 구원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이다. 하나님의 나를 사랑과 용서로 품으셨다.

3.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한 구원을 기억할 때, 나를 보지말고 하나님의 은혜를 바라보아야 한다.

4. 구원이 하나님의 선물임에도 불구하고, 율법에 갖혀 있는 사람들이 있다.

5. 아직도 삶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인정하지 못하고, 율법에 갇혀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6. 게바는 지금 안디옥에서 '복음의 진리를 따라 행하지 아니함으로' 바울의 책망을 받고 있다.

7. 바리새인의 외식함이 게바에게서 나타난 것이다.

8. 그리스도인들은 복음의 진리에서 벗어날 때를 조심해야 한다. 사실 그외에 모든 것은 관용함으로 인정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 결코 복음의 진리에 따르지 않는 단 한가지 이것은 결코 관용함이 있어서는 결코 아니된다.

9. 교회안에, 공동체안에 이러한 모습이 드러날 때 어떻게 해야 할까? 이때 잘 처리해야 합니다. 절대 관용함이 있어서는 안되면 신속정확한 결단이 필요합니다.

10. 바울이 게바를 책망하는 모습에서 우리는 몇 가지 사실을 생각해 봐야 한다.

11. 첫째는 복음의 진리를 따르지 않는 것이 보일 때, 책망해야 하며 바르게 세워야 한다. 그들의 말들과 논리가 뿌리 내리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12. 게바도 책망 받았다. 바나바도 책망받았다. 이들이 누구인가? 결국 한 사람도 예수 그리스도외에는 그 어는 것도 예외일 수 없다.

13. 둘째는, 복음의 진리를 따르지 않는 행동들은 전염성이 아주 강하다는 경각심이 필요하다. 왜냐하면 외식은 우리의 삶에 아주 친숙하기 때문이다. 전혀 이러한 것들은 낯설지 않는다. 특별한 모티브가 없더라도 쉽게 외식에 유혹된다. 그래서 더욱 절처히 해야 한다.
 영화 "연가시"에서 처음 동네 일가족 사건이 일어났을 때, 이장이 제대로 위험성과 전염성의 경각심을 가졌더라면 하는 생각이 갖는다.

14. 게방의 영성은 뛰어나다. 또한 바나바도 그에 못지 않는다. 그러나 게바의 행동은 바나바에게도 쉽게 전염되었다. 이게 바로 악함의 힘이다.

15. 셋째, 책망의 목적이 분명해야 한다. 복음이 바로 서게 함에 있다. 책망 받는 사람을 사장시키는 것이 아니다. 교회를 떠나게 함도 아니다. 복음이 바로 서는 일에까지만 책망해야 하며 그 후 바로 일으켜 세워야 한다.

16. 교회안에 이단이 침투할 수 있다. 요즘은 더욱 그렇다. 어떻게 그들과 대처해야 하는가? 우리의 질문이며 답이 바로 여기에 있다.

17. 복음의 진리에 벗어남에는 단호하며, 그들을 긍휼히 여기는 마음이 필요하다.

18. 또한 어느 위치에 있든, 공동체에서 차지하는 위치가 매우 크다 할지라도 복음의 진리를 따르지 않는 일이 보이면 단호하게 신속해야 한다.

19. 오늘도 거짓 선지자들이 활동하고 있다. 그들을 경계하며 찾아내는 것, 그리고 현명하게 대처하는 것 또한 우리가 깨어 해야 할이다.

20. 주님의 은혜만이 가득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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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절 "게바가 안디옥에 이르렀을 때 책망 받을 일이 있기로 내가 그를 대면하여 책망하였노라"
=> 할 말은 하는구나. 꼭 필요한 말은 하구나.
 왜냐하면 14절 "그들이 복음의 진리를 따라 바르게 행하지 아니함을" 보았기 때문이다.
 2장 5절 "복음의 진리가 항상 너희 가운데 있게 하려 함이라"
 --> 복음의 진리가 항상 우리의 삶 가운데 있어야 합니다.

  게바의 책망 내용
  14절 "네가 유대인으로서 이방인을 다르고 유대인답게 살지 아니하면서 어찌하여 이방인을 유대인답게 살게 하려느냐 하였노라"
 "복음의 진리" => 율법으로 아닌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는다는 기독교 신앙의 핵심이다(롬3:19-30).


12-13절 게바의 책망 받을 일 ... 이방인과 함께 먹다가 그들이 오매 그가 할례자를 두려워하여 떠나 물러가매"
=> 게바의 당시의 마음 이해하기. 율법이 무엇이기에... 율법은 유대인에게 무엇이기에 ..

  13절 "남은 유대인들도 그와 같이 외식하므로 바나바도 그들의 외식에 유혹되었느니라"




Saturday, October 20, 2012

한 날 묵상 - 갈 1:11-17 <누구에게나 필요합니다. 진정 제자 되기 원한다면, 특별한 경험이 진정 필요합니다. 그 특별함에는 어느 누구도 건드릴 수 없는 힘, 능력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걸 붙잡으시기 바랍니다>

한 날 묵상 - 갈 1:11-17 <누구에게나 필요합니다. 진정 제자 되기 원한다면, 특별한 경험이 진정 필요합니다. 그 특별함에는 어느 누구도 건드릴 수 없는 힘, 능력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걸 붙잡으시기 바랍니다>

1. 누구에게나 필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건 사람으로부터 난 것이 결코 아닙니다.

2. 이는 아주 특별한 경험입니다. 바로 예수님과의 만남입니다.
11-12절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내가 전한 복음은 사람의 뜻을 따라 된 것이 아니니라

3. 바울의 복음전도의 파워의 힘은 복음에 있습니다. 복음에는 능력이 있다.

4. 또한 복음을 만나 사람 모두에게 이러한 힘은 주어집니다. 바울이 복음을 만났기에 힘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능력이 나타났습니다.

5. 복음은 자기가 가진 것이 많이 있었음으로 불구하고 복음외에 다른 것에 자신의 사도 됨을 뒤받침하지 않았습니다. 오직 내가 만난 그 특별함, 즉 복음과의 만남만으로 충분했습니다.

6. 결국 복음은 모든 제자되기 원하는 사람들에게는 필요충분조건입니다. 제자됨에는 반드시 복음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복음이면 충분합니다.

7. 복음 자체에 놀라운 능력이 있습니다. 복음은 누구나 포용하며 받아 들일 수 있습니다.

8. 진정 요즘 우리 시대에 필요한 것은 복음으로 포용하며 품을 수 있는 사랑이 필요합니다.

9. 바울의 과거는 어느 누구보다 복음에 가장 멀리 가 있었던 사람입니다.
13-14절 "내가 이전에 유대교에 있을 때에 행한 일을

10. 그런데, 그가 지금 열정적인 복음 전도자가 되었습니다. 자신의 목숨을 오직 주님께 맡기며 자신의 전 삶을 내어 드리는 자가 되었습니다.

11. 이게 바로 복음의 힘입니다. 복음의 능력입니다

12. 복음으로 세상의 못 품을 것이 없습니다. 복음으로 세상의 그 어떠한 것도 사랑하지 못할 것 없습니다. 복음은 전혀 영적이지 못한 사람을 온전히 영적인 사람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힘이, 그리고 능력이 있습니다.

13. 그런데 이 복음이 어디서 왔습니까?

14. 다른 이로서 올 수 없습니다.

15. 오직 태초부터 예정하시고, 바울이 태어나기 전부터 부르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으로밖에 할 수 없습니다.
 15절 "그러나 내 어머니의 태로부터 나를 택정하시고 그의 은혜로 나를 부르신 이가"

16. 복음의 또 다른 힘은 복음을 만난 자는 분명한 자신의 삶의 방향을 제시 받는 것입니다.
  16절 "그의 아들을 이방에 전하기 위하여 그를 내 속에 나타내시기를 기뻐하셨을 때에 내가 곧 혈육과 의논하지 아니하고

17. 또한 복음이 들어오는 것은 형식에 억매이지 않습니다.  복음이 교회를 통해서, 사도를 통해서, 목회자를 통해서 오는 것이 아닙니다.

18. 만약 그렇다면, 바울은 택정함을 입은 바울은 예루살렘에서 예수님을 만나야 했습니다.

19. 그런데 그는 예루살렘에서 예수님을 만나지 않습니다. 그곳에서만 예수님이, 하나님이 계시지 않습니다. 그곳만이 예수님을 만나는 장소가 아닙니다.
 17절 "

20. 바울은 아라비라로 갔다가 다시 다메섹으로 돌아가는 길에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21. 하나님은 어디에나 계십니다. 예수님을 어디에서나 만날 수 있습니다. 이게 진정한 은혜입니다.

22. 이게 바로 뜻밖의 은혜입니다. 이런 은혜를 누려야 합니다. 이런 은혜를 구해야 합니다.

23. 다른 복음은 없습니다. 다른 은혜는 없습니다. 정해진 율법은 없습니다.

24. 오직 은혜, 오직 복음이 나에게 임할 뿐입니다.

25. 요나에게 임한 은혜처럼 은혜는 ....

26. 이런 은혜가 있는 복음의 참 맛을 아는 한 날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27. 할렐루야!

Wednesday, October 17, 2012

한 날 묵상 - 갈 1:6-10 <다른 복음은 없습니다. 우리가 살아가야 할 길도 여러가지가 있지 않습니다. 오직 한 길, 오직 한 복음뿐입니다>


1. 나의 말이 너에게 다가가 다른 의미가 되거나 말의 의미가 퇴색이 될 때, 나는 정말 힘들고 괴롭다.

2. 만약 나의 말이 너에게 정확한 의미로 전달이 될 때, 나는 큐피트의 화살을 맞은 기분일 것이다.

3. 말에는 힘이 있다. 긍정의 힘도 있지만, 강한 상처를 줄 수 있는 힘도 있다.

4. 말은 듣는 이로 하여금 좋은 길로 갈 수 있게 도울 수도 있지만, 한편으로 나락으로 떨어질 수도 있다.

5. 이런 두 갈래의 길의 차이는 어디서 올까? 말하는 이에게도 시작될 수 있고, 듣는 이로 인해서 시작될 수 있다.

6. 바울은 오직 복음만을 전했다. 그러나 갈라디아 지역에서 들리는 복음은 바울이 전한 복음이 아니었다. 그리고 나아가 그들은 바울이 전한 복음 자체에 문제가 있다며 바울을 몰아세우고 있다.

7. 바울은 생각한다. "나는 너희들이 이런 반응이 정말 이상하다. 내가 전한 복음에서 떠나 다른 복음을 따르는 것이 정말 이상하다."
6절 "그리스도의 은혜로 너희를 부르신 이를 이같이 속히 떠나 다른 복음을 따르는 것을 내가 이상하게 여기노라"

8. 복음에서 떠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이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너무 쉽게 생각한다. 바울의 편지를 보면 많은 부분 복음을 잘못 이해하고, 복음을 잘못 사용하고, 복음에 합당한 삶을 살지 못하는 수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쓰여 있다.

9. 결국 복음에 합당한 삶을 위해 조심해야 할 것들이 오늘에도 너무나 많다.

10. 다른 복음을 선동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복음에 벗어난 사람들로 그들의 목소리가 복음보다 더 클 때가 많다. 그들이 전하는 말은 달콤하다. 왜냐하면, 본질에 벗어난 것이 진정 죄로 물든 세상안에서는 사탕처럼 달콤하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따라가게 된다. 그래서 넓은 길로 많은 사람들이 쏠리게 되어있다.
7절 "다른 복음은 없나니 다만 어떤 사람이 너희를 교란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게 하려 함이라"

11. 갈라디아서를 보면 알 수 있듯이, 비단 복음을 거부한 사람들도 많지만, 잘못된 복음에 사로잡혀 살아가는 자들도 많다. 다른 복음을 분별할 영적 지혜가 각 사람 우리에게 필요하다.

12. 바울이 전한 복음은, 율법에 사로 잡혀 있던 자들에게 진정한 은혜와 자유를 선포하는 것이다. 진정 이게 복음이다.

13. 다른 복음을 전하는 자들의 끝은 정해져 있다. 그들의 끝을 주목하면 된다. "열매로 알리라". 진정이 그들이 거두는 열매가 무엇인지를 주목하여 보자. 복음으로 그들의 열매를 바로바자.

14. 다른 복음을 전하는 자들에게 결국 임하는 저주를 받는 일 뿐이다.
8-9절,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 만일 누구든지 너희가 받은 것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15. 복음이 세상 사람들에게 인기가 없을지라도, 우리가 늘 붙잡아야 할 기준이 있다.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하랴"

16. 많은  사람들이 가는 길이 아니라, 사람들의 기쁨을 주는 길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을 좋게하며, 하나님의 기쁨을 위해 걸어가는 자가 되라. 그 길이 바울처럼 고난의 길일지라도 그리하라.
10절 "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들의 기쁨을 구하였다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

17. 복음은 우리에게 은혜와 자유를 준다. 복음은 그 어떠한 것들도 풀 수 있는 힘이 있다. 결코 다른 복음은 없다.

18.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도 다른 복음은 있다. 우리의 관심을 쏟도록 교란하여 변장된 복음이 우리를 유혹한다.

19. 거기에 넘어지지 말자. 현혹되지 말자. 그들의 열매를 보자. 그들의 행위를 보자.

20. 그리고 오직 바울이 전한 복음만을 따라가자. 그 길이 결코 사람들에게 인기가 없을지라도 그 길을 가자.

21. 그 길을 걷는 바울이 아름다운 것처럼, 그 길을 걷는 우리가 더욱 아름다울 것이다.

22. 오늘도 오직 복음에 매임바 되어 살아가는 한 날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23. 할렐루야!

===
바울의 개인 간증문 - 비전성경, 두란노, p1470.
갈라디아 교회에 있었던 유대주의자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도 율법을 지키고 할례를 받아야만 구원받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들은 또한 바울의 사도직까지 의심하였다. 그래서 바울은 그가 전한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직접적인 계시로부터 온 것이며, 그의 사도직 역시 하나님의 직접적인 게시와 위탁을 통해서 얻은 것이라는 사실을 그의 개인 간증을 통해 설명할 수 밖에 없었다.

오늘의 찬양 - 오직 예수
http://www.youtube.com/watch?v=Yf7d1bUgcZ0&feature=fvwrel
http://www.youtube.com/watch?NR=1&v=a13LiXkq8zo&feature=endscreen

생각해보기...
현대에서 다른 복음은 무엇인가? "탐욕의 복음"
부와 건강의 번영복음이지 않을까.
물질적 번영. 육체적 건강.

"탐욕의 복음"은 다른 복음이다.
"탐욕의 복음 대 은혜의 복음"
참고도서 "탐욕의 복음을 버려라" 부와 건강의 복음을 해부한다. 새물결플러스, 김세윤, 고든 피, 월터 카이저, 더글라스 무 외 지음.


Monday, October 15, 2012

한 날 묵상 - 갈 1:1-5 <모든 것이 주께로부터 왔으니, 모든 영광을 그에게 세세토록 돌릴지어다>

한 날 묵상 - 갈 1:1-5 <모든 것이 주께로부터 왔으니, 모든 영광을 그에게 세세토록 돌릴지어다>

1. 갈기 갈리 찢긴 복음이라 해야 할까? .지난 시간 갈라디아서를 공부하면서 "갈라진 복음"이라는 말을 듣곤 했다.

2. 복음은 오직 한 길, 오직 하나임에도 복음이 나누어졌다는 의미는 복음이 복음이 되지 못했다는 뜻이기도 할것이다.

3. 바울이 갈라디아 교회에 편지를 쓸 때 뿐만 아니라 지금도 이 우려의 말씀은 동일하게 우리에게 적요되어지고 있다.

4. 즉, 복음이 복음의 자리에 있지 못하고 각자 자기만의 복음이 믿음의 사람들 모습 여러 형태로 나타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5. 복음이 개인적으로 잘못 적용될 뿐 아니라, 그로 인한 복음의 참 맛이 희석되어 전해지는 모습을 볼 때, 목사인 나는 너무나 두렵고 떨린다.

6. 혹 '내가 지금 그렇게 하고 있지는 않은지?' 내 자신을 살피고 살펴야 하기 때문이다.

7. 갈라디아 지역에 사도 바울은 편지를 쓰면서 자신이, 또한 자신이 사도 됨이 어디서부터 왔는지 분명하게 1절에서 선포하고 있다.

8. 1절 "사람들에게서 난 것도 아니요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하나님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도된"

9. 사도 바울의 사도 됨이, 또한 그에게 임한 복음은 전적으로 주님께로부터 왔다. 즉 4절에서 언급되고 있는 말씀의 주인공으로부터 직접 왔다.
 4절 "그리스도께서

10. 사도 바울 뿐 아니라 우리 각자에게 임한 복음도, 그리고 제자 됨도 "아버지의 뜻을 따라 이 악한 세대에서 우리를 건지려고 우리 죄를 대속하기 위하여 자기 몸을" 십자가에 내어 던지신 그리스도로부터 왔다.

11. 이 복음외에 다른 것은 없다. 그리스도 보다 높은 곳에 교회도 없고, 목사도 없다. 우리 각자에게는 그리스도의 복음만이 있을 뿐이다.

12. 제발 혼동하지 말자. 헷갈리지 말자. 복음을 보자. 복음을 통해서 보자. 그리스로를 보며,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보자.

13. 인생의 제일 된 목적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그를 영원토록 즐거워 하는 것이다면, 우리가 올려드려야 할 영광의 대상은 오직 나의 복음이 되시어(4절) 나를 자녀 삼아주신(1절) 그리스도 뿐임을 기억하자.

14. 5절 "영광이 그 에게 세세토록 있을지어다 아멘" 바로 오늘 우리 각자가 살아가야 할 인생의 방향이자 목표이며 살아가는 삶의 목적입니다.

15. 갈리진 복음, 찢겨진 복음을 회복하는 하는 길은 복음의 시작으로, 복음의 처음으로 돌아가는 길 뿐입니다.

16. 다른 방법이나, 다른 사람에게 복음의 나눠진 복음이 하나로 회복될 수 없습니다. 오직 한 길이 있습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 그리고 성령님안에서의 복음 뿐입니다.

17. 우리는 주님께로부터 왔습니다. 나의 몸 뿐만 아니라 나의 삶, 나의 가진 것, 나아가 이 세상의 모든 것은 전부 다 주님께로부터 왔습니다.

18. 그렇기에 모든 영광을 주님께 올려드려야 합니다.

19. 나의 몸 뿐만 아니라, 나의 삶, 나의 가진 것, 나아가 이 세상의 모든 것은 전부다 주님께 영광을 드려야 합니다.

20. 다른 피조물은 참으로 잘하는데, 그것을 다스리고 경작하는 인간이 문제입니다. 최고의 작품 우리만 잘하면 됩니다. 그렇다면 창조의 원래의 위치로 돌아가게 될 것입니다.

21. 갈라디아서 묵상을 통해서 복음에만 집중해 보려고 합니다. 깊은 묵상을 통해 복음의 참 맛을 느끼기 원합니다. 아울러 나눔을 통해 복음만이 영원토록 영광받은 일에 조금이나마 쓰임받기를 원합니다.

22. 샬롬의 마음을 전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