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그 청년 바보 의사, 안수현" 그는 진정 그의 몸에 예수의 흔적을 남긴 사람이다. 그 섬김의 모습을 통해 우리는 진정 그리스도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2. 우리도 우리 몸에 예수 그리스도의 흔적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떠난 자리에도 예수의 흔적이 남아한다. 우리의 걸음 걸음이 곧 그리스도의 흔적이 남는 발걸음이 되어야 한다.
3. 바울은 진정 그러한 사람이었다. 그가 걷는 곳곳모다 그리스도의 흔적들이 남겨졌다.
4. 갈라디아 교회에 주는 편지에서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흔적만이 남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5. 예수 그리스도의 흔적이란 바로 성령의 열매이다. 육체적인 일을 버리고 오직 성령의 열매만을 율법 아래 놓이지 않고 자유한 인생들에게 기대할 수 있는 것들이다.
6. 바울은 자기의 육체를 위한 심는 인생이 아니라 오직 성령을 위하여 심는 인생을 살아 왔다.
7. 그리고 이제 마지막 갈라디아 성도들에게 편지하면서 오직 나는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지니고 있노라"고 말하고 있다.
8. 사실, 바울 자신의 육체에 흔적이 있었다. 유대인이며, 율법 아래 있던 자로서 흔적이 뚜렷이 남겨져 있었다.
9. 그러나 이제 자신에게 이러한 흔적은 아무 것도 아니며, 바울 자신에게아무 유익도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결코 그러한 것들을 자랑하지 않는다고 말하고 있다.
10. 바울 자신에게 남아 있는 흔적이란 오직 예수의 흔적 뿐이었다. 그래서 그는 말한다.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외는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바울의 자랑인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뿐이다.
11. 이제는 이러한 할례나, 율법 아래 있는 문제로 더 이상 고민할 필요도 없을 뿐 아니라, 이 문제로 인하여 괴로워할 필요도 없었다.
12. 갈라디아 서신을 통해 그의 인생 뿐 아니라, 복음의 진수를 깔끔하게 정리하였기 때문이다.
13. 우리도 그렇다. 바울을 본받아, 이제 오직 우리 몸에 남아 있어야 할 흔적은 십자가, 예수의 흔적 뿐이다.
14. 결코 다른 것이 우리의 흔적이 되어서는 안된다.
15. 현시대의 다른 복음인 "번영 복음", "탐욕의 복음"이 우리의 흔적이 되어서는 안된다.
16. 세상은 "정욕과 탐심"(갈 5:24)을 좇아 자기 이기주의, 물질주의로 자신의 온 몸의 흔적을 남긴다 할지라도, 복음의 진리는 그렇지 않다.
17. 오직 하나님의 뜻 안에서,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닮아 나도 그렇게 거룩하여지는 일에 내 믿음의 목표를 두어야 한다.
18. 바울은 골로새서 1장 24절에서 이렇게 고백한다. "나는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
19. 우리안에 예수의 흔적이 남을 때, 우리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 우리 심령 가운데 차고 넘치게 될 것이다.
20. 세상의 어떠한 것을도 맛볼 수 없으며, 채울 수 없으며, 공급받을 수 없는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내 심령안에 가득하게 된다.
21. 이것뿐이면 족한 인생이 그리스도인의 인생이다. 믿음의 경주를 하는 인생이다.
22. 그 이상, 다른 어떤 것도 아닌, 오직 그리스도의 은혜만을 내 심령안에 가득 채울 수 있는 은혜가 우리 안에 차고 넘치기를 소망한다.
23. 결코 다른 복음은 없습니다. 결코 다른 것을 내 몸에 남길 수 없습니다.
24. 오직 복음, 오직 예수, 오직 십자가 뿐입니다.
25. 할렐루야.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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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절 "이 후로는 누구든지 나를 괴롭게 하지 말라"
"내가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지니고 있노라"
18절 "형제들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너희 심령에 있을지어다"
"아멘"
참고 - 골로새서 1장 24절
"나는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
* "스티그마 - 흔적"
카엘레온은 영국 웨일즈 지방에 있는 역사적으로 뿌리가 깊은 마을입니다. 로마가 영국을 점령하였을 당시 로마 군단이 영국에 주둔하였던 세 장소 중 한 곳입니다. 로마군대의 주둔은 약 1500년 전에 끝났지만, 그들이 점령했던 흔적은 오늘날에도 볼 수 있습니다. 로마가 세계를 지배하고 웨일즈를 점령했던 당시를 상기시켜 주는 성곽, 병영, 원형경기장 등을 보기 위해 세계 곳곳에서 사람들이 관광을 옵니다. 이 작은 마을에 로마군대가 존재했었다는 증거들을 15세기가 지난 아직까지 매우 분명하게 볼 수 있다는 사실이 나에게는 신기하게만 느껴집니다.
* 흔적이란 헬라어로 “스티그마”입니다. 이는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 표시를 의미합니다. 예를 들면 소나 나귀 등에 자기 소유를 표시하기 위하여 불로 지졌습니다. 불로 지져서 죽을 때까지 지워지지 않는 표시가 되었습니다. 심지어는 어떤 노예에게 이마에 노예 표시를 하였다고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흔적’이라는 말은 고대 사회에서 주인이 노예에 대한 자신의 소유권을 나타내기 위해 노예의 몸에 찍는 낙인을 뜻하는 말입니다.
나포레옹 군대는 독일군을 포로로 잡아서 마구 죽였습니다. 그러나 예외가 있었습니다. 팔뚝에 나폴레옹을 상징하는 "N"이라는 글자를 불로 지져 나폴레옹에게 충성을 맹세하면 살려 주었습니다. 바울의 영혼에는 불로 지진 흔적보다도 더 강한 흔적이 있습니다. 다메섹에서 만난 예수 그리스도가 그의 영혼에 각인이 되었습니다. 그의 흔적이 사울을 바울 되게 한 것입니다.
*[흔적(痕迹)] - 하원택
갈보리 산 위에 십자가 흔적은 아니어도
주님 주신 가슴 아린 흔적은 가졌노라
스데반 같은 순교자의 흔적은 아니어도
성령의 감동으로 무릎적신 흔적은 지녔노라
엘리야가 외친 기적의 흔적은 아니어도
작은 것에 감사의 눈물을 흘릴 수 있는 흔적은 지녔노라
주님이 주시는 흔적은
내가 감당 할 수 있는 흔적이고
주님이 주시는 흔적은
내가 주안에 있는 흔적이고
주님이 주시는 흔적은
내가 주님의 자녀인 확증의 징표이다.
* 티그마라는 헬라어 단어는 ‘스티조’라는 동사에서 나온 것인데 이 스티조라는 단어는 ‘문신을 새기다’ 혹은 ‘날카로운 도구로 표시를 하다’라는 뜻입니다. 특별히 이 스티그마는 고대 헬라 세계에서 뜨거운 쇠도장으로 몸에 새긴 문신이나 표시를 의미했습니다. 이 스티그마가 뭐냐하면 쇠로 도장을 만들어서 뜨겁게 달구어서 몸에 대면 도장이 찍히잖아요. 이런 도장이나 문신을 스키그마라고 그랬는데 이 스티그마를 어떤 사람에게 찍었느냐면 물건을 훔치거나 도망간 노예들에게 찍었습니다. 이것이 부끄러움의 수치였습니다. 수치의 표시였습니다.
고대 중국에서도 어떤 죄를 지으면 혹은 중대한 죄를 지으면 그 얼굴에다가 도장을 찍어버려요. 그냥 도장이 아니라 쇠로 달구어서 찍어버려요. 그 도장이 새겨져 버리죠. 찍어버리기 때문에 사람들마다 그것을 보면 저 사람이 어떤 사람인 것을 금방 아는 것이죠. 이 문신이 스티그마입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을 따르려면 성령께 민감한 삶을 살려면 반드시 이 수치의 표시를 가져야 합니다. 능욕을 져야합니다. 주님을 따라는 삶에 이것이 포함됩니다.
* 1세기에 사용되던 ‘흔적’(痕迹, 스티그마)이란 단어의 배경을 살펴보면 몇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당시 로마나 헬라 사회에서 노예제도가 보편적이었는데, 노예들의 이마에 주인의 이름을 화인으로 만들어서 찍은 흔적이 있었습니다. 이 경우는 그 노예가 상전의 소유물이라는 사실을 표시한 것입니다.
두 번째 배경은 로마의 군인들이 자기 사령관의 흔적을 이마에 받은 적이 있다고 합니다. 이 경우는 사령관의 명령에 절대 복종하겠다는 표시가 되겠습니다.
또 다른 배경은 당시에 억울하게 죄인으로 몰려 박해받는 사람이 로마의 신전에 들어가서 보호를 받게 되면 신전의 흔적을 이마에 받습니다. 이 사람은 아무나 함부로 손을 대어 해치지 못하도록 보호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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