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날 묵상 - 갈 5:25-26 <성령과 믿음 4. 성령으로 살면 헛된 영광을 구하지 아니하기에 노함이나 투기는 그들의 삶에 없다>
1. 성령의 사람이 되어라.
2. 믿음의 삶은 성령의 삶과 일치된다. 믿음이 있는 것은 결국 성령에 이끌어 살아가는 삶이기 때문이다.
3. 믿음의 사랑은 성령의 사람이며, 성령의 사람은 성령의 열매를 맺어야 한다. 그런데 성령의 사람은 또한 옛것을 버리는 삶 또한 살아야 한다.
4. 옛것을 버리는 출발은 정욕과 탐심이다. 그리고 정욕과 탐심은 바로 헛된 영광을 구하는 것으로 드러나게 된다.
5. 인간은 오직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도록 창조되었다. 그리고 죄의 영향아래 벗어난 성령의 사람은 더욱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삶을 살아야 한다.
6. 인간의 제일된 목적은 하나님께 영광이다.
소요리문답 제1과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고전10:31)
제1문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은 무엇입니까?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과(고전10:31, 계4:11) 그를 영원토록 즐거워하는 것입니다(시73:25,26).
(고전10:31)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계4:11) 우리 주 하나님이여 영광과 존귀와 능력을 받으시는 것이 합당하오니 주께서 만물을 지으신지라 만물이 주의 뜻대로 있었고 또 지으심을 받았나이다
(시73:25-26) 하늘에서는 주 외에 누가 내게 있으리요 땅에서는 주 밖에 나의 사모할 자 없나이다 내 육체와 마음은 쇠잔하나 하나님은 내 마음의 반석이시요 영원한 분깃이시라
7. 25절 "만일 우리가 성령으로 살면 또한 성령으로 행할지니" 27절 "헛된 영광을 구하여" 사는 삶이 아니라. 성령으로 행하는 사람은 헛된 영광을 구하지 아는 삶을 살아야 한다.
8. 이어서 성경은 우리에게 말한다. 헛된 영광을 구함으로 오는 잘못된 현상들이 있다는 것이다.
9. 첫 번째는, 1) 서로 노엽게 하게 된다. 분노, 화를 다스리는 사람은 지혜로운 사람이다. 이러한 지혜는 성령에 붙들린봐 될 때 드러난다.
10. 그렇기에 늘 성령충만해야 한다. 단 한번의 성령충만으로는 분노와 화를 계속해서 다스릴 수 없다.
11. 늘 성령충만하기 위해 우리는 말씀을 읽고, 묵상하고, 암송해야 하며, 찬양하며 기도해야 한다. 이러한 일상의 삶은 우리를 성령과 긴밀하면서도 깨어 있는 관계를 유지시켜 준다.
12. 삶에서 분노와 화를 다스리기는 쉽지 않다. 실상은 늘상 분노와 화를 참지 못해 발설하는 것인 인간이며 나라는 존재이다.
13. 그런데 이러한 화나 분노는 바로 헛된 영광을 구하는 것에서 출발한다는 것을 주의하여 보아야 한다.
14. 내가 지금 하나님의 영광이 아닌 헛된 영광에 사로 잡히면 분을 참지 못하게 되기 때문이다.
15. 자신의 영광을 위해 살아갈 때 서로의 관계는 철저히 무시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목표를 이룰 수 없기 때문이다.
16. 헛된 영광을 구함으로 드러나는 또 다른 현상은 두 번째는 2) 서로 투기하게 된다.
17. 투기와 시기는 두말하면 잔소리가 된다. 시기와 투기는 참으로 헛된 영광을 쫓아가는 인간의 전형적인 술수이다.
18. 다른 사람을 짋밟고 넘어뜨리지 않고서는 싸움에서 이길 수 없기 때문이다. 경쟁의 시대에 남을 이기기 위해서는 그 어떠한 권묘술수도 다 용납이 된다.
19. 헛된 영광을 쫒아가는 사람들이 모습이다.
20. 그들에게 진정 여유가 없다. 하나님을 기억하고, 자신을 말씀과 성령으로 비춰볼 시간이 없다. 그 시간 마저도 아껴야 하기 때문이다. 참으로 불쌍한 인생이다.
21. 왜, 헛된 영광을 구하는 사람들에게 노함이나 투기함이 나타나는가?
22. 바로 헛된 영광을 성경에 기초하지 않을 뿐 아니라, 헛된 영광을 추구한다는 것을 바로 목표지향적이기 때문이다.
23.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을 사랑하기 쉽지 않다. 그래서 화를 내거나 다른 사람과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서 다른 사람을 투기하거나 시기하게 된다.
24. 결국 헛된 영광을 구함으로 오는 노함이나 투기는 "서로 사랑하라"에 반하는 말씀이다.
25. 이는 또한 갈라디아서 6장에서 이어 말씀하는 "서로 짐을 나눠지라"는 말씀에도 반하게 된다.
26. 결국 이러한 모습들은 성령으로 행하는 삶이 아님을 알 수 있다.
27. 성령으로 살아가는 사람에게는 사랑이 나타나며, 헛된 영광을 구하지 않고 오직 성령의 열매가 가득한 삶을 살게 된다.
28. 믿음과 성령의 관계에서 대해 갈5장 16-26절까지 네 번에 걸쳐 살펴 보았다. 믿음은 성령충만과 관련이 있으며, 성령이 충만할 때 어떠한 열매가 나타나며, 어떠한 삶을 버려야 하는 지에 대해서 살펴보았다.
29. 성령충만의 삶을 기대하면서 마지막으로 25절의 말씀이 깊이 마음에 새겨진다.
30. 25절 "만일 우리가 성령으로 살면 또한 성령으로 행할지니"
31. 성령으로 살아가면 성령으로 행하게 된다는 말씀이 깊이 도전이 된다.
32. 오늘도 기도한다. 나의 삶이 성령의 행하는 삶이 되기를....
33.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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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말씀 - 마태복음 5장 21-26절
하나님께 영광과 노함의 관계.
24절 하나님께 예배할 때 다른 형제와 다툼이 있거나, 그들을 미워하는 마음으로 예배하지 말라. 먼저 그들과 화해하라.
22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혀가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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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요리문답 제1과 사람의 제일되는 목적
소요리문답 제1과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고전10:31)
제1문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은 무엇입니까?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과(고전10:31, 계4:11) 그를 영원토록 즐거워하는 것입니다(시73:25,26).
(고전10:31)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계4:11) 우리 주 하나님이여 영광과 존귀와 능력을 받으시는 것이 합당하오니 주께서 만물을 지으신지라 만물이 주의 뜻대로 있었고 또 지으심을 받았나이다
(시73:25-26) 하늘에서는 주 외에 누가 내게 있으리요 땅에서는 주 밖에 나의 사모할 자 없나이다 내 육체와 마음은 쇠잔하나 하나님은 내 마음의 반석이시요 영원한 분깃이시라
질문) 1. 여기에서 ‘제일 된’이란 말은 무슨 뜻입니까?
: 유일한
2. ‘목적’이란 말은 무슨 뜻입니까?
: 사람의 유익을 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유익을 위해서
3. ‘영화롭게 하다’란 무슨 뜻입니까?
: 하나님의 영광을 반사한다.
4. 요리문답이 말하는 것이 왜 인간의 제일 된 목적입니까?
: 하나님께로부터 지음 받은 자이기 때문에, 반대하고 배반해도 여전히 하나님의 지배아래 있다.
5. 창조된 본래의 인간은 무엇 중심이 되었습니까?
: 하나님 중심
6. 죄를 지은 후 인간은 무엇 중심이 되었습니까?
: 인간 중심, 자기(내)중심
7. 참된 신자의 삶은 하나님 중심이라는 말은 무슨 의미 입니까?
:삶의 욕망이 하나님을 위해서 존재하며 섬기며 그분에서 즐거워한다.
8. 삶의 중심에 ‘자기’라는 말이 왜 나쁩니까?
: 자기를 생각한다. 무엇과 같이 될 것을 생각하며, 자신을 즐겁게 하기를 애쓴다.
9. 하늘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과 인간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 사이 엔 방법적이 차이가 있는가?
: 하나님이 창조한 세계는 마치 거울과 같아서 들여다보면 하나님의 영광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인간은 그렇게 하도록 지음받았고, 초대되었고, 자원하여 이 일을 할 수 있는 특권을 부여받았다. 이것은 곧 예수님께서 지상에서 아버지 하나님을 섬기던 일이었다(요17:4).
10. 행악자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 수 있는가?
: 행악자는 없다. 하나님 스스로는 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그들을 심판하심으로서 영광을 받으신다.
11. 신자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목적 이외에 다른 목적들을 갖는 것도 적절한가?
: 아니다.
12. 생의 어떤 부분들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해야 하는가?
: 모든 부분에서 - 삶의 전부- 모든 시간과 활동을 불문하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해야 한다.
http://www.donghaero.org/technote/read.cgi?board=bible&y_number=80&nnew=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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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ursday, December 27, 2012
Friday, December 21, 2012
한 날 묵상 - 갈 5:22-24 <성령과 믿음 3. 오직 성령의 열매는>
1. 그리스도인은 성령의 사람이다.
2. 성령의 인도하심이 아니면 그리스도를 구주로 결코 고백할 수 없다.
3. 또한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의 육체를 그리스도아 함께 십자가에 못 박은 사람들이다. 그래서 이제는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살아가는데,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으로 살아가는 인생이다.
4. 결국 그리스도인들은 성령의 사람이며,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는 것으로 살아가는 인생이다.
5. 성령의 사람은 성령의 열매를 맺고 살아가야 한다.
6. 사과나무는 사과를 열매 맺듯이, 포도나무는 포도 열매를 맺듯이 성령의 사람도 성령의 열매를 맺으로 살아가야 한다.
7. 성령의 열매는 이러한 것이다.
22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23 온유와 절제니
8. 성령의 사람들이 맺어야 하는 성령의 열매를 금지할 법은 결코 없다.
9. 모세를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어진 십계명을 반드시 지켜야 하나님이 보호하시는 울타리안에 참 평안을 누릴 수 있듯이 그리스도인들도 성령안에서 성령의 열매를 맺을 때 하나님의 보호 아래 거할 수 있다.
10. 성령의 열매와 더불어 믿음의 사람들은 자신의 육체와 더불어 육체의 일의 뿌리가 되는 정욕과 팀심을 못박아야 한다.
11. 정욕과 탐심은 일만 악의 뿌리이다. 일상에서 일어나는 죄아래 있는 모든 행위들은 사람들의 마음속에 깊이 자리잡아 죄의 영향아래 있는 정욕과 탐심으로부터 시작된다.
12. 우리가 성령의 사람이 되어 아홉가지 성령의 열매를 맺기를 원한다면, 반드시 정욕과 탐심을 다스릴 수 있어야 한다.
13. 결코 사람은 두 가지를 함께 가질 수 없다. 정욕과 탐심이 드러나면 성령은 사그라들게 되어 있다.
14. 반대로 성령이 살아나야만 정욕과 탐심을 버릴 수 있다.
15. 오직 정욕과 탐심을 버릴 수 있는 유일한 방법 십자가에 못박는 것 뿐이다.
16. 십자가에 예수님은 죽으심으로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 새로운 세상을 허락해주셨다. 그렇듯 우리도 죄아래 있는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달아 죽어야 한다.
17. 로마서 12장 2절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18. 성령의 열매를 맺기 위해 우리는 이제 십자가에 못박은 것은 나의 육체의 소욕이 되어야 한다. 바로 정욕과 탐심이다. 그리스도만 홀로 십자가에 두어서는 결코 안된다.
19. 오늘 나는 성령의 열매를 맺고 있는가?
20. 오늘 나는 탐심과 정욕을 십자가에 못박았는가?
21. 이일에 집중하여 세상속에 거하기를 원한다.
22. 주님의 은혜를 구한다. 할렐루야. 아멘.
=====
22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23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24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오직 성령의 열매
1) 사랑
2) 희락
3) 화평
4) 오래참음
5) 자비
6) 양선
7) 충성
8) 온유
9) 절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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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욕
탐심
Monday, December 17, 2012
한 날 묵상 - 갈 5:19-21 <성령과 믿음 2. 성령의 사람은 육체의 일을 버리노 라. 육체의 일은 분명하니, 이를 버려 야 하노라>
1. 성령을 따라 사는 삶은 육체의 일을 버리는 삶이다.
2. 엡 5장 3절.
"음행과 온갖 더러운 것과 탐욕은 너희 중에서 그 이름조차도 부르지 말라 이는 성도에게 마땅한 바니라"
3. => 성도들이 행해야 하는 마땅한 것들은 육체의 일을 따라 사는 삶이 아닙니다.
4. => 이러한 것들은 그 이름 조차도 부르지 말아야 합니다. 말이 씨가 됩니다. 아무 생각없이 말하는 것들은 실상은 자기 자신의 내면에서 흘러 나오는 것입니다.
5. 한편으로 그렇든 아무 생각없이 하는 말일지라도 삼가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이러한 것을 생각이 되고, 행동이 되어 습관이 되기 때문입니다.
6. 19절 "육체의 일은 분명하니"
7. => 육체의 일이란 죄의 영향아래 드러나는 모습들이다. 죄로 인해 인간은 관계의 파괴가 몰아쳤다. 자신 한 사람으로부터 모든 관계가 파괴되었다.
8. 이게 바로 죄의 영향력이다.
하나님과의 관계
이웃과의 관계
자신과의 관계
9. 이 모든 것들이 죄로 인해 파괴되었다. 육체의 일이란 바로 이러한 죄의 영향아래 나타나는 현상들이다.
10.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11. => 가장 전형적인 육체적인 일이다. 이러한 일들이 가장 위험한 것은 이는 관계를 실제적으로 파괴하고 하나님이 허락하신 질서를 어지럽게 하는 것이다. 가정은 하나님이 허락하신 가장 중요한 관계의 질서이다. 가정을 통해 가족을 이루고, 가족의 세대를 통해 민족이 이루어지게 된다.
12. 최근에 일어나는 성폭력과 성추행은 가정을 파괴하며 생명까지 앚아가는 모습을 보게 된다. 이러한 일들을 고발하는 영화들이 있는데, "도가니", "돈크라이 마마"이다.
13. 성의 타락은 생명의 타락이며 가족의 파괴이며 새생명을 위해 이 땅에 예수님을 보내주시기까지 죄가운데 있지 않게 하시는 생명의 하나님이 가장 싫어하시는 죄악이다.
14. 20절 "우상 숭배와 주술과 원수 맺는 것과"
=> 이러한 육체적인 일들은 바로 십계명의 제1, 제2, 제 3의 계명을 어기는 행위들이다. 이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지게 된다.
14.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열함과 이단과"
15. => 이러한 육체의 일을 가지고서는 이웃과의 관계를 바르게 이룰 수 없다. 인간의 관계를 맺지 않고서는 살 수 없다. 홀로 있을 때에 일어나는 문제들이 무엇인지 우리는 충분히 잘 알고 있다.
16. 홀로 있지 않고 인간이 관계를 맺을 때 죄로 인해서 이웃과의 파괴된 관계를 맺게 되었다. 관계를 맺는데 바른 관계 맺기가 아니라 파괴된 관계 맺를 하게 된다.
17. 파괴된 관계 맺기는 끼리 끼리로 나타난다. 자기 당을 짖게 된다. 그리고 자기 당 이외의 사람들을 가만히 두지 않고 그들의 모임을 파괴하려고 한다.
18. 고린도전서에서 나타난 분쟁의 문제를 우리는 익히 알고 있다. 고린도전서 1장 10-17절에서 바울은 말하고 있다.
19. 10절 "형제들아 내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모두가 같은 말을 하고 너희 가운데 분쟁이 없이 같은 마음과 같은 뜻으로 온전히 합하라"
20. 12절 "내가 이것을 말하거니와 너희가 각각 이르되 나는 바울에게, 나는 아볼로에게, 나는 게바에게, 나는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 한다는 것이니"
21. 분쟁, 시기, 분냄을 바로 이처럼 이웃과의 관계를 파괴시키는 육체적인 일이다.
22. 21절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탐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23. => 탐욕, 한탕주의, 방탕함이는 바로 술취함과 관련이 있다. 그리스도인은 성령에 취해야 한다. 그런데 술에 취하게 되면 탐욕이 자라게 되고 방탕하면서 투기나 신실하지 삶을 살지 못하도록 한다.
24. 자신안에 있는 나와의 바른 관계를 맺지 못하고 오직 물질이나, 돈이나, 재물이나, 탐욕이 자신을 이끌어가도록 내버려 두는 일들이 일어나게 된다.
25. 바로 투기, 술취함, 방탕함은 자신이 온전히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지 못하고 유물론적 삶을 살을 살아가고자 하는 마음이 자신을 이끌어가는 것을 보게 된다.
26.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 것 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
27. => 이러한 자들이 바로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는 자들이다. 그렇다. 성령에서 떠나 있기 때문에 당연한 결과이다. 자연스럽게 귀결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28. 결론.
이러한 모든 모습들은 다 성령에서 떠나 살아가기 때문에 드러난 일들이다.
29. 한번의 성령체험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육신과의 싸움은 한 번의 성령체험으로 되지 않고, 끊임없이 내 안에 성령의 거하도록 훈련하지 않으면 안된다.
30. 바울은 갈라디아서 자유를 말하면서 성령안에서 자유하기를 간절히 바라는 이유이기도 한다. 육체의 일을 떠나야 한다는 말씀이다.
31. "일그러진 성령의 얼굴들" pp81-82.
성령을 체험함으로 우리는 옛자아의 실현이 아니라 죽음을 체험하낟. 옛 자아의 야망이 성취되기보다 좌절되는 쓰라림을 맛본다. 십자가의 은혜는 단순히 우리의 죄를 사할 뿐 아니라 죄의 근원인 옛사람의 생명을 파괴한다. 그 욕심과 야망을 가차 없이 십자가에 못 박는다. 우리의 옛 자아를 죽이는 십자가의 능력을 매일 체험하지 않으면 부활의 능력을 결코 경험할 수 없다. 성령의 열매를 맺는 새사람으로서의 변화가 전혀 이루어지지 않는다. 성령의 능력을 누리는 유일한 비결은 십자가의 죽음을 통과하는 것이다.
...
성령을 체험하면 나를 체험하는 동시에 또한 너를 체험한다. 인간은 진정한 자아뿐 아니라 타자를 잃어버렸다. 세상에는 오직 내가 이용할 '것'으로서의 너만 널려 있을 뿐 진정한 '너'는 존재하지 않는다.
지옥이 뒤틀린 관계에서 온다면 천국은 관계의 회복으로부터 온다. 구원과 하나님 나라의 핵심은 바로 관계의 회복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하나님과 원수 된 것뿐 아니라 인간 서로 간에 원수 된 것을 소멸하였다(엡 :15-18 참조). 그분은 우리와 하나님 사이 그리고 우리와 이웃 사이로 가신다. 그래서 우리를 하나님과 교제하게 하시고 또한 형제자매들과도 교제하게 하신다. 천국은 근본적으로 하나님과 이웃과의 관계가 회복된 곳이다.
32. 아직 미정리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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