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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nday, January 7, 2013

한 날 묵상 - 갈 6;11-16 <할례라, 율법이 아닌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의 십자가에 외는 결코 자랑할 것이 없다>

한 날 묵상 - 갈 6;11-16 <할례나, 율법이 아닌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외는 결코 자랑할 것이 없다>

1. 우리는 특별히 더 내 세울 것이 있는 사람들을 선호하는 듯 합니다. 그래서 더욱 열심히 공부하거나 자신의 스팩을 쌓기에 노력합니다.

2. 요즘 출세하는 사람들의 면면을 보면, 일반적으로 좋은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많습니다. 공부를 많이했거나, 능력이 있거나, 아니면 누군가가 뒤에서 밀어준다거나 하는 것 말입니다.

3. 새로운 2013년은 새로운 정부가 출발합니다. 새 술은 새부대에 담아 함다고 표현들 합니다. 그래서 수 많은 자리가 새로운 사람으로 채워지게 될 것입니다.

4. 그렇다면, 누가 그 자리에 주인이 되어야 할까요? 앞서 말한 면면히 화려한 사람들만으로 채워질 수 있을 것입니다.

5. 저게 바램이 있다면 정말 필요한 사람이, 그 자리에 잘 할 수 있는 사람이 그 자리의 주인이 되었으면 합니다.

6. 모든 사람을 포용하고, 품을 수 있는 사람이면 좋겠습니다. 거기에 그 자리에 충분히 일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사람이라면 금상첨화이겠지요.

7. 그렇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정말 필요한 사람이 그 자리에 앉는 것이 아니라, 임명권자를 잘 대변해 줄 수 있는 사람을 그 자리에 앉히는 것이 더욱 현실적입니다.

8. 초대교회에 있어서 유대인들은, 자칭 할례받은 자들에게는 특권의식이 있었습니다. 여전히 태어날 때부터 구별된 자로 선택받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말입니다.

9. 그들은 늘 자신의 혈통을 자랑했습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과는 다르다 말하곤 했습니다.

10. 바울은 지금 이게 아주 크게 잘못되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갈라디아 지역의 교회에 보내는 편지가 바로 이 내용입니다.

11. 오늘 본문은 바울의 갈리다아 여러 교회에 편지를 쓰면서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핵심의 요지를 정리하여 마지막 간곡한 부탁을 하고 있습니다.

12. 우리의 진짜 자랑은 혈통이 아니다. 율법이 아니다. 할례가 아니다.

13. 우리의 진짜 자랑은 14절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는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14. 오직 십자가이다. 이는 15절 "할례나 무할례가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새로 지으심을 받는 것만이 중요하니라"

15. 할례자나 무할례자나 모두가 다 새로 지음 받은 것만이 오직 중요할 뿐이다는 것입니다.

16. 믿음의 사람들에게 자랑은 오직 복음입니다. 십자가외에는 결코 자랑할 것이 없습니다.

17. 기독교인으로 출세하려고 합니다. 믿음으로 복받으려고 합니다.

18. 믿음의 크기가 출세가 부에 있다고 착각을 합니다. 그래서 나는 출세했기에, 부자이기에, 믿음이 좋다고 자랑하려고 합ㄴ디ㅏ.

19. 그러나 이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20. 복음은 우리에게 부나 출세를 주는 것이 아니라 평강과 긍휼의 마음을 줍니다. 그래서 없어서 평안할 수 있고, 있으면 나누어주려고 합니다.

21. 16절 "무릇 이 규례를 행하는 자에게와 하나님의 이스라엘에게 평강과 긍휼이 있을지어다"

22. 이 말씀은 십자가의 복음을 믿는 자들과 약속의 민족 이스라엘에게 함께 평강과 긍휼이 있겠다는 뜻이다.

23. 이는 먼저 십자가 복음만이 구원의 유일한 길임을 선포하는 것이다.

24. 또한 구약 이스라엘에게 약속된 선택 받은 민족이라는 의미도 결국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안에서 임을 강조하고 있다.

 사도행전 1장 8절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 되리라 하시니라"

 마태복음 24장 14절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언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


25. 우리 안에 십자가외에는 결코 어떠한 다른 자랑이 없기를 바랍니다.

26. 오늘도 십자가 복음만을 사랑합시다.

참고) 예레미야 9장 23-24절
"지혜로운 자는 그의 지혜를 자랑하지 말라...."




Tuesday, January 1, 2013

한 날 묵상 - 갈 6: 6-10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가 아니라, 성령을위하여 심는 자가 되라, 이를 위해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고 포기 하지 말자 때가 이르면 기쁨으로 단을 거두게 된다>

한 날 묵상 - 갈 6: 6-10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가 아니라,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가 되라, 이를 위해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고 포기하지 말자 때가 이르면 기쁨으로 단을 거두게 된다>

1. 지금 힘들다. 금식 2일차. 유혹은 더 심해진다. 진짜로 초콜릿 하나 먹고 싶다. 바로 앞에 초콜릿이 산더미다. 그런데 어떠하리? 좀 더 참아보자.  힘들어 글이 잘 써지지 않는다. 귀찮다. 뭐 금식 2일차 가지고 말할 수 있다. 그래도 난 처음이다. 첫경험이다. 그러니 힘든 것 이해해 주세요. 글이 이쯤해서 여긴 그냥 순서대로 마무리 하겠습니다.

2. 6절 "가르침을 받는 자는 말씀을 가르치는 자와 모든 좋은 것을 함께 하라"
표준새번역 "말씀을 배우는 사람은 가르치는 사람과 모든 좋은 것을 같이 나우어야 합니다"

3. 가르침을 받는 자는 말씀을 가르치는 자의 좋은 것을 잘 받도록 하라. 엘리사와 엘리야의 스승과 제자의 관계에서 갑절의 은혜를 구하는 엘리사처럼 가르침을 받는 자들은 그러한 자세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영적인 것 또한 훈련이 필요하다.

4. 7절 "스스로 속이지 말라". 정말 나에게 묻고 싶은 말이다. 목사로 진정 목사의 역할을 잘 하고 있는가? 잘하고 있다고 스스로 속고 있지는 않는가? 열정과 열심으로 최선을 다한다고 스스로 속고 있는지 않는가? 할 말이 참으로 많다.

5. 그리스도인들이 이 부분에 관해서는 스스로 정직하게 점검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스스로 속고 있는 그리스도인척하며 살아가고 있을 수 있다.

6. 스스로 속이는 것은 이어서 나오는 7절 "하나님은 업신 여김을 받지아니하시나니"과 관련이 있다.

7. 하나님은 이 둘을 철저히 구별하여 보고 계신다. 자기를 위하여 심으면서도 하나님을 위하여 심는다 말하는 자는 아닌가? 자기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인가? 심령을 위하여 심는자인가?

8. 우리의 열매는 아주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7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는 말씀에 따라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아주 특별한 경우란 하나님의 개입과 간섭이시다. 하나님께서 특별히 훈련을 하시기 위해 그렇게 하실 수 있다는 말씀이다.

9. 결국 우리는 8절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두고"

10. 또한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는 말씀에 따라 열매를 맺고 있다.

11. 그래서 마태복음에서 예수님은 그들은 열맬로 알리는 말씀을 주셨다. 마 7장 20절 "이러므로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12. 8절 말씀이 2012년을 보내고, 2013년을 시작하는 나에게 귀한 깨달음을 주었다.

13. 2012년 보내며, 2013년을 시작하면서 3일 금식기도를 하고 있다. 내 평생에 3일 금식은 처음이다. 하루 금식이나, 하루에 한끼, 두끼 금식은 해 보았어도, 3일 금식은 처음이다. 앞으로 7일 금식까지 하고 싶다. 아마 2011년 때의 생각이었다. 나도 하루를 넘어, 3일 금식을 할 수 있을까? 그리고 나아가 일주일 금식을 할 수 있을까?

14. 그런데 오늘 2013년 1월 1일 오후 1시이다. 오늘 오전부터 지금까지 드는 생각은 점차 유혹이 온다는 것이다. 먹을 것이 천지다. 연말을 보내면서 맛있는 초콜릿부터 새해 첫날이니 떡국 먹는 아이들까지, 눈을 들어 주변을 보니 먹을 것이 널려 있다.

15. 지금 드는 생각은 이틀만 할까? 커피는 괜찮겠지? 하나 쯤은 괜찮지 않을까?
 이런 저런 생각이 드면서 찾아오는 생각은 "누구를 위한 금식인가?"하는 것이다.
 혹 금식을 한다 하면서 하나님을 업신 여기지 않는지 생각해 본다.

16. 이번 금식의 목적은 다른 것에 있는 것이 아니다. 특별한 목적을 두고 하는 것도 아니다. 2013년 더욱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이 기뻐하실 뜻을 잘 분별하여 살아가고자 하는 마음 뿐이다. 

17. 하루 금식하며 드는 생각들은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자. 오직 하나님만이 나의 유일한 도움이시다. 하나님을 찾고 구하는 생각들이 많다.

18. 물론 시간을 때우기 위해 이런 저런 인간적인 일들을 하는 것도 있지만, 그 와중에 문득 찾아오는 주님을 향한 마음들이 참으로 고맙다. 참으로 감사하다.

19. 간절히 바라가니 나의 3일 금식, 그리고 앞으로 금식이 내 자신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것이 아니길 바랄 뿐이다. 금식이 훈장이 되지 않고, 금식이 철저히 하나님께 순복하는 순간이며 여정이며 과정이기를 갈급할 뿐이다.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가 되어 성령의 열매를 더욱 풍성히 맺고자 한다.

20. 금식의 기간동안 순간 순간 하나님을 만나는 그 때에 하나님이 주신 생각들로 나의 삶을 채우고 나의 비전을 세우고자 한다.
 그리고 이러한 시간에 주신 고귀한 생각들을 꼭 행할 수 있기를 원한다.

21. 이게 바로 9절에서 이어지는 말씀이 아닐까 한다. 9절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22. 자기 육신을 위하여 심는 것이 아니라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들의 선한 행위는 반드시 때가 되면 거두게 되어 있다는 것이다.

23. 여기서 중요한 말씀이 때가 되면이다. 그래서 때가 찰 때까지 결코 그 일을 함에 있어서 "낙심하거나",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

24. 하나님의 주시는 선한 마음이 우리 안에 차고 넘치게 되어 있다. 애써 들으려 하지 않고 거부하지 않고 무시하지 않는다면, 내 영안이 깨어 있다면, 즉 믿음이 있고, 성령이 내 안에 있어서 매일의 삶이 성령충만의 삶이면, 내 안에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선한 행동을 깨닫게 될 것이며, 그를 행해야 한다는 말씀이다.

25. 우리는 선한 행위가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갈라디아서 5장에서 나오는 말씀과 6장 초반부에 나오는 말씀을 통해서 잘 알고 있다.
 무엇보다 "서로 짐을 나누어 질 수 있는 선한 행위"를 기억하고자 한다. 고아와 과부를 섬기는 자가 되기를 원한다.

26. 2013년 새해맞이 예배를 드리고 오면서, 아내가 자신이 뽑은 올해의 말씀을 들려주었다. 구제와 관련 말씀이었다.
 잠언 11장 25절 "구제를 좋아하는 자는 풍족하여질 것이요 남을 윤택하게 하는 자는 자기도 윤택하여지리라"

27. 그 말씀을 들으면서 갈라디아서 6장 말씀을 묵상하고 있는 요즘 다시 한 번 이 일 위해 힘쓰는 것이 하나님이 나에게 주시는 성령을 위하여 심는 선한 일임을 직감하게 되었다.

28. 이러한 선한 행위를 하기를 원한다. 앞으로 사역의 방향으로 잡고 나아가길 원한다.
 기독교세계관 공부를 하면서 쓰게 된 페이퍼에서 "교통"이라는 부분이 있었다. 그 때 진정한 교통이 서로 삶을 나누며 섬기는 삶임을 깨닫게 되었다. 구약에서 주시는 메시지, 신약의 초대교회, 그리고 바울의 서신서에서, 성경은 줄기차게 그들을 섬기며 사랑하라 말씀하고 있다.

29. 10절 '그러므로 우리는 기회 있는 대로" 

30. 바울도 권면을 하고 있다. 이런 일을 함에 있어서 "기회 있는 대로" 하라고 말씀하고 있다.   할 수 있는대로 많이 해야 합니다. 할 수 있는 최선과 최대로 또한 해야 합니다. 늘 마음에 우리는 이러한 일을 향한 "거룩한 부담감"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이러한 거룩한 부담감이야말로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들의 마음입니다.

31. "모든 이에게 착한 일을 하되"

32.  모든 이에게 하라고 한다. 우리의 선한 행위의 손이 미치지 못할 곳이 없습니다. 우리의 손이 안갈 곳 또한 없습니다. 성령이 주시는 대로 순종하며 살아갈 때 온 세상이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가득하게 될 것입니다.

33. "더욱 믿음의 가정에게 할지니라" 표준새번역 "특히 믿음의 식구들에게는 더욱 그렇게 합시다"

34. 특별히 믿음의 가정을 먼저 살피라고 말씀하고 있다. 이 말씀이 참으로 마음에 와 닿는 말씀이다. 지난 주간 한 밤중에 깨닫는 것이 있어서 글을 적어 본 것이 있다. 기회가 되면 전체적으로 글을 올릴 날이 있을 것이다.

35. 가제는 이렇다. "나는 지난 10여년 비정규직이었다"
 내가 지난 교회의 사역자로 10여년을 돌아보니 절처히 나는 약자였다. 그런데 참으로 감사한 것은 그대로 지금까지 살아 왔다는 것이다. 그리고 철저히 교회와 성도의 도움을 받았다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앞으로 그러한 생활이 계속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제도적으로, 구조적으로 문제가 있다. 앞서 갈 6장 2-5절에서 나눈 것처럼 구조적으로, 제도적으로 나와 같은 사람을 도울 수 있어야 한다.

36. 교회안에는 나와 같은 사람들이 참으로 많다.

37. 그들은 사회생활에서 철저히 비정규직이다. 파트파임이다. 언제 나락을로 떨어질지 모르는 사람들이다. 그들을 도우며 섬길 수 있는 곳이 교회이다. 특히 믿음의 가정에게 그렇게 하라는 말씀은 그들을 섬기며 도우는 선한 행위 뿐 아니라, 구조적으로, 제도적으로 그들이 일어설 수 있는 도움을 교회가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38. 이러한 모습들은 여러 교회에서 실제적으로 하고 있다.

39. 말씀을 마치면서 새해를 시작하면서 이만열 교수님 쓰신 페이스북의 내용을 첨부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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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새벽에 문정식 목가님이 시무하시는 교회의 영신(迎新)예배에 참석, 사도행전 20장 35절의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는 말씀에 의거하여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요>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었다. 다음은 그 나눈 말씀의 부분 부분이다.

세상 사람들은 의를 행하면 귀하게 되고 명예를 얻게 된다고 가르칩니다. 실제로 의를 위해 고난을 받은 많은 사람들이 지상에서 그 보상을 받은 것을 보아 왔습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의를 행하다가 핍박을 당하는 것, 바로 그것이 복이라고 했습니다. 의를 위해 고난을 받으면 큰 보상을 받을 것이기 때문에 복되다고 가르치지 않습니다. 의를 위해 핍박을 받는 것 자체가 복이라고 했습니다. 하늘나라의 상급을 믿는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오늘날까지 남겨진 선한 역사와 전통은 보상받지 않고 죽어간 많은 의로운 자들의 희생의 결과이기도 합니다. 얼마나 많은 독립운동가들이 이름없이 죽음을 당했습니까. 우리가 오늘날 이만큼 사는 것은 그들 이름없이 죽어간, 의를 위해 핍박을 당하며 사라진 거룩한 이들의 희생의 은덕 결과입니다. 그러기에 성경은 우리에게 보상없이, 의를 위해 핍박을 받는 것이 복되다고 언명합니다. 그렇게 살도록 요구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복을 언급하다보면 복음서에서 언급하지 않은 복이 하나 있습니다. 오늘 읽은 사도행전 20장 35절의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는 그 복입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산상보훈에서 언급한 8복 외에 새로 추가된 복입니다. 이것은 나눔의 복이요, 주는 복입니다.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는 이 복은,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서 가장 먼저 제시한 ‘가난한 자가 복이 있다’는 이 복을 실천하는 대안적 방법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소유하고 더 얻는 것을 복되다고 합니다. 거기에 대해 이 말씀은 소유와 탐욕 중심의 복의 정의를 달리 할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받는 것과 주는 것, 그 사이에서 더 복된 것은 받는 것이 아니라 주는 것이라고 강조합니다. 얻는 것보다 주는 것, 베풂을 당하는 것보다 베푸는 것이 더 복되다고 합니다.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는, 주님께서 친히 하신 이 말씀은 세상 사람들이 갖고 있는 소유 중심의 일상적인 복 관념을 뒤집어(顚倒)버립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복에 대해 세상 사람들과는 달리 생각해야 한다고 명령합니다. 이렇게 함으로,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남에게 주고 가난을 실천하는 자가, 많이 가진 자보다 복되며, 많이 가지려고 탐욕을 부리는 자보다 훨씬 복된 삶이 가능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가난한 자가 오히려 부자보다 더 부자가 될 수 있는 기막힌 반전(反轉)이 여기서 가능하게 됩니다. 우리의 소유는 내 맘대로 쓰기 위해 하나님이 주신 것이 아닙니다. 소유란 땅 위에서 그것을 관리하도록 맡긴 위탁물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관리하는 청지기입니다. 청지기는 주인의 소유를 위탁받은 사람입니다. 청지기가 가진 소유는 제 때에 나누고 관리하기 위해 주인이신 하나님께로부터 위탁받은 물건에 불과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것을 움켜쥐고 자기 것인양 유세를 부리고 있는 것은 청지기의 취할 태도가 아닙니다.


세상은 많이 가진 자가 있음으로 풍요롭게 되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베푸는 자가 있음으로 넉넉하게 됩니다. 경제성장을 약속하면서 출발한 이 정권이지만 삶은 더 팍팍해졌고, 새해는 더 어려워질 것이라는 전망들을 내 놓고 있습니다. 이럴 때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는 말씀을 실천해야 합니다. 이것이 멍들어가는 공동체를 생명으로 이끄는 길입니다. 초대교회가 실천하여 세상 사람들로부터 칭송을 받은 나눔의 생활화를 실천하는 것입니다.


모든 것은 나누면 작아집니다. 특히 저급한 가치는 그렇습니다. 그러나 고급가치는 나눌 수록 불어납니다. 예술과 문화와 학문과 사상은 나눌 수록 커져 가고 불어납니다. 사랑과 희망, 위로와 평화도 나누면 나눌수록 더 커지는 것입니다. 물적 가치도 사랑으로 나누면 5병2어의 기적을 불러옵니다.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는 말씀을 실천하는 것은 나눌수록, 줄수록 더 커지는 기적을 가져오게 됩니다. 


하나님의 속성(屬性)은 사랑과 정의라고 합니다. 이것은 저울의 양 추와 같이 평형을 이루고 있습니다. 인간은 사랑과 정의의 균형을 이루기가 힘듭니다. 인간에게서 거의 불가능한 이 두 개를 동시에 이루는 것이, 주는 것과 나누는 것을 통해서 가능합니다. 나누고 주는 것은 사랑의 실천이요, 정의가 요구하는 균형을 이루기 위한 몸부림입니다. 정의는 균형을 토대로 하기 때문에, 나누는 것, 주는 것은 사랑과 정의를 동시에 만족시키는 것입니다. 주는 것, 나누는 것의 극치라고 할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하나님의 속성인 사랑과 정의는 동시에 만족될 수 있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부자의 정의를 새롭게 해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많이 가진 사람을 부자라 이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많이 베풀 수 있는 자, 많이 줄 수 있는 자가 부자입니다. 세상에는 많이 가졌지만 남에게 베풀지 못하는 가난한 이들이 많습니다. 가진 것은 많을지 몰라도 나누지 못하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서는 가난한 자입니다. 그와 반대로 많이 가지지는 못했지만 남에게 베풀기를 좋아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가난하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부자입니다. 우리가 많이 갖지는 못했을지라도, 베풀 수 있는 신앙인이 될 때, 또 베풀려고 노력하는 신앙인이 될 때, 부자가 됩니다. 하나님이 우리로 하여금 많이 베풀 수 있도록 끊임없이 공급해 주실 것이라고 약속했기 때문입니다.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는 말씀을 끊임없이 실천하려고 할 때, 온 우주를 소유하신 하나님은 당신의 아들딸들이 더 잘 줄 수 있도록, 더 잘 베풀 수 있도록 늘 공급해 주실 것입니다. 우리는 이 약속을 믿습니다. 이 약속을 믿는 것이 기독교 신앙이요, 그리스도인입니다. 


“새해 복많이 받으십시요”라고 할 때 정녕 받아야 할 복은 바로 이 복입니다.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는 이 복입니다. 많이 가지지는 못했을지라도 많이 베풀 수 있는 자가 되는 이 복입니다. 이 복을 실천할 때 그리스도인은 복을 공급하고 복을 나누는 복의 중보자가 될 수 있습니다.



40. 2013년 나의 표어 "기쁨으로 단을 거두리로다"

41. 아멘. 기쁨으로 참으로 많은 열매를 거둘 수 있는 한 해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42. 우리 모두 그러한 은혜가 있는 한 해가 되기를 간절히 축복합니다.

43. 오늘은 한 날 묵상이 아니라 한 해 묵상이었습니다.

44. 날마다 매일 기쁨으로 단을 거두는 은혜를 묵상하기 원합니다.

45. 할렐루야. 아멘.
       
                                         2013. 1. 1. 오후 4시 10분 금식2일차


Monday, December 31, 2012

한 날 묵상 갈 6: 2-5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

1.삶의 짐이 너무 힘겨운 사람들이 있다. 참으로 많다. 그들을 그대로 방치하는 것이 세상의 법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법은 무엇인가?

2.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 바울은 갈라디아 교회에 은혜로 믿음을 가진 자들, 그들은 성령의 열매를 맺는 것을 통해서 믿음 있는 자임을 알 수 있다는 것을 권면한다....

3. 이는 또한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주신 지상명령이다.

4. 이 명령을 잘 수행하느냐가 결국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는 길이기도 하다.

5. 바울이 갈라디아 교회에 주고 있는 그리스도의 법은 무엇이며, 어떻게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해야 하는가?

6. 바울은 갈6장 2절에서 이렇게 말씀하고 있다. "너희가 짐을 서로 지라" 그리함으로,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

7. 우리가 그리스도의 법 하면 생각나는 말씀이 있다.

8. 그리스도의 법(가장 큰 계명, 마22장 37-39절)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재 되는 계명이요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9. 달란트 비유(마태복음 25장 14-30절)
   21, 23절 "그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하고"

10. 냉수 한 그릇(마10장 40-42절)
   "또 누구든지 제자의 이름으로 이 작은 자 중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사람이 결단코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11. 3절 "만일 누구든지 아무 것도 되지 못하고 된 줄로 생각하면 스스로 속임이라"

12. 먼저 문득 생각나는 것이 이렇다. 그리스도의 제자가 아니면서 스스로 속아 나는 그리스도의 제자라고 생각한다.

13. 제자 어떻게 알 수 있나? 갈라디아서에서 말하는 육체의 일을 버리고 성령의 열매를 맺는 삶이다. 또한 마태복음 7장 15-27절에서 말씀하고 있는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는 말씀을 알 수 있다. 20절 "이러므로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14. 나는 그리스도의 제자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진정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이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있는가? 만일 내가 그리스도의 제가가 되지 못하고 된 줄로 생각하고 있다면 이는 내가 지금 스스로 속고 있다는 것인데, 어떻게 그리스도의 제자가 된 줄 알 수 있을까?

15. 2절에서 말씀하고 있는,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그리스도의 법의 성취란 "너희가 짐을 서로 지라"는 말씀이다.

16. 4절 "각각 자기의 일을 살피라"
  1) 내가 지금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고 있는지 자신을 살피라.
  2) 내가 지금 스스로 속임당하고 있지는 않은지 자신을 살피라.

17. 4절 표준새번역 "각 사람은 자기 행실을 살펴보십시오 그러면 자기에게는 자랑거리가 있더라도, 남에게까지 자랑할 것은 없을 것입니다"

18. 스스로 자신을 살피면 결코 다른 사람에게 자신을 자랑할 수 없다. 자기의 그릇을 잘 알 수 있기 때문이다.

19. 5절 표준새번역 "사람은 각각 자기 몫의 짐을 져야 합니다"
  "각각 자기의 짐을 질 것이라"

20. 서로 짐을 지기에 앞서 먼저는 각각 자기의 짐을 먼저 지는 것입니다. 이는 자신을 먼저 살펴볼 필요가 있다는 4절의 말씀과 이어지는 말씀입니다.

21. 게으른자는 먹지도 말라. 자신의 일에 먼저 최선을 다하라. 자신의 할 수 있는 달란트대로 최선을 다하는 삶이 먼저이다.

22. 그럼에도 불구하고 짐을 나누져야 할 사람이 있다. 개인적으로, 제도적으로, 정치적으로, 문화적으로, 국가적으로 제도를 만들고 도와주어야 한다.
 성도와 교회와 국가 모두가 함께 이 일에 열심을 다해야 한다.

23. 우리가 그렇게 하도록 하자.

24. 참고로, 어제 글을 다 써두었는데, 오늘 실수로 글을 전부 달리며 기초적인 자료에 근거해서 다시 글을 이었다. 내용도 맞지않을 것이다. 그런데 이 글은 이대로 두고 싶다.

* 참고 - 게으른자
03:17 너는 종신토록 수고 하여야 그 소산을 먹을 것이라
03:19 네가 얼굴에 땀을 흘려야 식물을 먹고
10:18 게르른즉 석가래가 퇴락하고 손이 풀어진즉 집이 새느니라
06:06 게으른자여 개미에게 가서 그 하는것을 보고 지혜를 얻으라
128:02 네가 네손이 수고 한대로 먹을 것이라
10:04 손을 게으르게 놀리는자는 가난하게 되고 손이 부지런한자는 부하게 된다
11:16 유덕한 여자는 존영을 얻고 근면한 남자는 재물을 얻는니라
12:24 부지런한자의 손은 사람을 다스리게 되어도 게으른자는 부림을 받느니라
12:27 게으른자는 그 잡을 것도 사냥하지 아니 하나니 사람의 부귀는 부지런 한 것이니라
13:04 게으른자는 마음으로 원하여도 얻지 못하나 부지런한자의 마음은 풍족함을 얻는다
19:15 게으름이 사람으로 깊이 잠들게 하나니 해태한 사람은 주릴것이라
19:24
26:15 게으른자는 그 손을 그릇에 넣고도 입으로 올리기를 괴로와 한다.
20:04 게으른자는 가을에 밭갈지 아니 하나니……구걸 할찌라도……
20:13 너는 잠자기를 좋아하지 말라 네가 빈궁하게 될까 두려우니라
네 눈을 뜨라 그리하면 양식이 족하니라
21:05 부지런한자의 경영은 풍부함에 이를 것이나 조급한자는 궁핍
22:13
26:13 게으른자는 말하기를 사자가 밖에 있은즉 내가 나가면……찢기겠다……
23:21 잠자기를 즐겨하는 자는 헤어진 옷을 입는다
26:14 문짝이 돌쩌귀를 따라 도는 것같이 게으른자는 침상에서 구으느니라
살후03:10 누구든지 일하기 싫어 하거든 먹지도 말라



Friday, December 28, 2012

한 날 묵상 - 갈6:1 <은혜와 사랑안에 거하는 성령에 속한 사람들은 죄의 꾀임에 넘어간 지체를 볼 때 사랑과 온유함으로 그들을 바라볼 뿐 아니라, 그들에게 드러난 범한 죄악들을 거울삼아 자신을 비춰보도록 해야 한다>

한 날 묵상 - 갈6:1 <은혜와 사랑안에 거하는 성령에 속한 사람들은 죄의 꾀임에 넘어간 지체를 볼 때 사랑과 온유함으로 그들을 바라볼 뿐 아니라, 그들에게 드러난 범한 죄악들을 거울삼아 자신을 비춰보도록 해야 한다>

1. 성령의 사람은 성령으로 행할것을 갈라디아서 5장에서 말씀하고 있다.

2. 갈라디아서 6장을 시작하면서 바울은 갈라디아 교회의 형제들에게 "사람이 무슨 범죄한 일이 드러나거든" 그 일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에 구체적으로 말씀하고 있다.

3. 세상의 죄는 만연하고 있다. 때론 성령의 사람도 넘어지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목사라고, 교회의 직분자로, 성령의 뛰어난 은사를 선물로 받았다고 예외가 결코 될 수 없다.

4. 이 땅에 속하여 살아가는 인생 여정에는 언제나 육체의 일은 생각보다 나에게 가까이 있을 뿐 아니라, 실제로 그렇게 살아가고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5. 결국 우리는 갈5장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성령의 사람으로 육체의 일을 버리는 믿음의 삶을 살아도록 늘 깨어 있어야 한다.

6. 아울러 6장 1절에서 말씀하고 있는 "범죄한 일이 드러난 사람들"을 어떻게 관용해야 하는지 분명히 기억해야 한다.

7. 죄는 미워하데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

8. 나쁜 행실은 죄의 영향아래 있기 때문에 드러나는 일이다. 죄의 영향아래 있지 않고 늘 성령안에 깨어 있도록 나를 살피고, 범죄한 사람을 권하여야 할 것이다.

9. 1절 "형제들아 사람이 만일 무슨 범죄한 일이 드러나거든" 이들을 교회와 성도는 어떻게 해야 할까?

10. 1절 이어서 말씀하기를 "신령한 너희는 온유한 심령으로 그러한 자를 바로잡고 너 자신을 살펴보아 너도 시험을 받을까 두려워하라"

11. 오늘 본문 1절 말씀을 묵상하면서 생각나는 말씀이 있다.

12. 참고하면 좋을 것 같다.  참고) 마태복음 7장 1-6절 <네 눈 속에 들보를 빼어라>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13. 참고) 고린도전서 4장 21절 "너희가 무엇을 원하느냐 내가 매를 가지고 너희에게 나아가랴 사랑과 온유한 마음으로 나아가랴"

14. 보다 구체적으로 말씀을 살펴보자. 나는 어떻게 죄를 범한 자들을 바라보아야 하는가?

15. 첫번째는, 1) 신령한 자가 되어라.
 나는 첫번째로 말하고 싶다. 먼저 늘 신령한 자가 되어야 한다. 세상속에서 이는 그 무엇보다 우선이며 가장 필요로 하는 것이다. 신령한 자가 되지 않은 충고나 권면이나, 사람들과의 관계는 늘 약함이 드러나게 되어 있다. 그렇다면 완벽히 신령한 자가 될 때까지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지 말라는 것이 아니다. 그 만큼 신령한 자가 되는 것이 무엇보다 가장 우선이다는 것을 가르치고 있다.
 신통한 사람이 아니라, 신령한 사람, 성령이 충만한 사람이 되자.

16. 두번째는 2) 온유한 심령으로 하라.
 온유한 심령을 가진 사람은 참으로 매력적인 사람이다. 그 사람에게는 끌리는 무엇이 있다. 잘 빗어진 심령같다. 포근하면서도 위로가 되며 안기고 싶다. 그 사람에게는 품지 못할 사람이 없을 것 같다. 그만큼 어머니처럼 포근하며 아버지의 다정함을 느낄 수 있다.
 죄로 실수하여 두려움과 무서움에 떨고 있는 사람이 가장 만나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그러한 사람은 바로 온유한 심령을 가진 사람이다.

 에덴동산에서 범죄한 아담과 하와에게 찾아온 하나님의 음성을 혼내기 위함이 아니요, 꾸짖음이 아니라 온유한 심령에서 부르는 사랑의 음성이다.
 창3장 8절 "그들이 그 날 바람이 불 때 동산에 거니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9절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부르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 있느냐"

 갈릴리 호숫가에서 예수님은 시몬을 부르셨다. 실망과 좌절과 실패속에 있는 베드로를 찾아가 말씀하셨다. 그 때 예수님의 모습이 바로 온유한 심령의 소리였다.
 요21장 15절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하고 부르시는 예수님의 음성속에서 요한의 마음을 녹았으며, 실망과 좌절, 실패는 물러나고 물밀듯 내 맘음을 적시는 사랑의 포근함을 누릴 수 있었다.

 죄와 실패한 인간을 찾아가신 하나님, 예수님의 심령으로 우리도 범죄한 일이 드러난 사람들을 찾아가야 한다.

17. 세번째는 3) 바로 잡도록 권면하라. 아주 조심스럽게 잘하라.
 아주 조심스럽게 잘못된 것을 바로 잡아 주어야 한다.
 에덴동산에서의 하나님, 갈릴리 호숫가에서 예수님은 아담과 하와, 베드로에게 찾아가 그들을 바로 서도록 도와주었다.
 결국 그들은 다시 일어설 수 있었으며 새사람이 되어 자신의 길을 갈 수 있게 되었다. 일으켜 세워주는 힘이 우리 안에 필요하다. 회복하여 다시 사명의 길을 걸을 수 있도록 격려하며 권할 수 있는 힘과 능력이 우리 안에 꼭 필요하다. 거기까지 셀 수 있도록 우리는 무한 책임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죄에 넘어져 일어나 새롭게 믿음의 길을 가는 사람들을 보라. 그들은 결코 홀로 설 수 없다.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했으면 권면과 사랑이 필요했다. 그들을 격려하는 누군가 있었으면, 그들을 위해 기도하는 한 사람, 한 사람이 그들을 다시 죄에서 넘어져 살아가는 인생이 아니라, 일어서 새사람의 길을 갈 수 있도록 하였다.

 18. 네번째는 4) 자신을 잘 살펴보아라.
 내 자신을 살펴보도록 하라. 성경은 우리의 삶을 비추는 거울이다. 그렇다면 죄로 넘어진 사람들을 또한 내 삶을 비추는 거울이다. 성경의 이야기는 사람의 이야기이다. 성경에 이야기는 성공한 이야기만 있는 것이 아니다. 실패한 이야기가 수두룩하다. 실패한 이야기는 우리에게 분명한 메시지를 주고 있다. 우리 자신을 살피는 것이다.
 시편 51편 다윗의 이야기는 인생에서 실패한 이야기이지만, 그 이야기는 실상은 우리의 이야기이며, 나의 이야기이다. 그래서 그 말씀은 나를 가장 잘 해부하고 있으며, 나의 치부를 드러내는 이야기지이지만, 실상은 나를 회복시키는 이야기이다. 나를 일으켜 주시는 이야기이다.
 시편 51편 10절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12절 "주의 구원의 즐거움을 내게 회복시켜 주시고"
  죄 또한 나를 살피는 거울이며 나를 회복시켜주는 아주 좋은 방법이다.

19. 다섯번째로 5) 범죄는 시험의 결과임을 기억하라. 죄에 넘어진 결과이다. 죄를 미워해야지 미혹한 영과 맞서 싸우도록 하라. 결코 사람을 상하게 하지 말라.
 우리의 싸움의 대상은 사람이 아니다. 미혹케 하는 영이다. 적을 바로 알아야 승리할 수 이다. 적을 바로 알아야 승리할 수 있다. 적을 바로 알아야 괜한 사람을 다치지 않게 한다. 권하여 바로 서도록 하는 선한 동기로 시작했을 지라도 적을 잘 알지 못해 오히려 상처를 주는 경우가 허다하다.
 조심하라. 조심하라. 또 조심하라.

20. 여섯번째로 6) 두려움으로 깨어 있으라. "늘 깨어 있으라"
 나도 언제나 시험에 넘어 질 수 있다. 교만하지 말자. 완벽하다 말하지 말자. 자신을 더욱 살펴 늘 깨어 조심하자. 이 일을 두려워하라. 그렇지만, 두려워하는 나를 망치는 일이 되지 않고, 더욱 하나님을 찾는 일이 되도록 하라. 두려움은 믿음의 가장 큰 적이다. 두려움이 오거든 하나님을 찾으라. 하나님을 만나라.
 하나님을 찾고 만나는 것이 바로 깨어 있다는 증거이다. 언제나 우리도 동일한 "범죄한 일이 드러나는 일"에 노출되어 있음을 기억하자.

21. 오늘도 아직 예수님의 재림이 임하지 아니한 때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미혹의 영은 최후의 결전을 하고 있다. 어떻게도 한 사람이라도 더 예수님께 나아가지 못하도록, 넘어지도록 쓰러지도록, 죄 아래 있도록 하고 있다.

22. 그들 가운데 맞서 싸울 강력한 무기는 서로 사랑하는 사랑의 띠이다.
"우리는 사랑의 띠로 하나가 되었으니" 그 어떠한 유혹과 시험으로 넘어지지 않고 더욱 견고한 사랑의 진을, 성령안에 하나가 되는 강력한 진을 구축하도록 하자.

23. 마지막으로 "우리들의 무기는" 찬양이 생각난다.
    우리들의 무기는 육체가 아니요
     그러나 강하오 참으로 강하오
    우리들의 무기는 육체가 아니요
     그러나 강하오 성령안에서
    견고한 진을 파하는 강력이요
     강한 힘이요 참으로 강하오
    견고한 진을 파하는 강력이요
     강한 힘이요 성령안에서

24.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