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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uesday, January 17, 2012

한 날 묵상 - 창 37:12-36 <요셉이 애굽으로 팔려가는 상황에서 하나님은 드러나시지 않으지만 역사하고 계십니다.>

한 날 묵상 - 창 37:12-36 <요셉이 애굽으로 팔려가는 상황에서 하나님은 드러나시지 않으지만 역사하고 계십니다.>

 하나님과 함께하는 우리의 인생도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드러나시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인생에서 늘 역사하고 계십니다. 믿음의 눈을 가지고 이러한 흐름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이렇게 해야 팔려가는 인생에서도 기쁨과 감사가 넘칩니다. 분노와 울분은 사라지게 되어 있습니다.
 나의 지금의 현실을 보십시오. 현실이면에서 나와 함께 하셔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보십시오.

오늘 본문의 흐름을 정리하면 이렇다.
이스라엘의 요셉에게 심부르시킴(v13) -> 요셉이 이스라엘의 심부름에 순종(v13) -> 요셉이 세겜에서 형들을 찾지 못함(v15) -> 요셉이 형들을 찾으로 도단으로 감(v17). 결코포기 하지 않음. -> 요셉의 형들이 요셉이 오는 것을 보고 죽이고자 꾀함(v18) -> 르우벤이 죽이지는 말자고 함(v21) -> 구덩이에 요셉을 집어 넣음(v24) -> 요셉이 애굽 사람들에게 은 이십에 팔림(v28) -> 아버지 이스라엘의 애통(v34) -> 애굽에서 바로의 신하 친위대장 보디발에게 팔림(v36).

하나님의 이끄심의 흔적들. 다른 말로 고통의 연속들. 
 1) 15절 세겜에서 한 사람을 만남. 만나지 않았더라면?
 2) 21절 르우벤이 생명을 해치지 말자고 함. 말하지 않았더라면?
 3) 25절 길르앗에서 오는 이스마엘 사람들을 만남. 만나지 않았더라면?
 4) 36절 바로의 신하 친위대장 보디발에게 팔림. 보디발에게 팔리지 않았더라면?


12절 "그의 형들이 세겜에 가서 아버지의 양떼를 칠 때에"
13절 "이스라엘이 요셉에게 이르되 ... 요셉이 아버지에게 대답하되 내가 그리하겠나이다"
      => 아버지 말씀에 순종하는 요셉.
14-17절. 도단으로 이동한 형들을 찾아 나서는 요셉.
      => 책임과 성실. 아버지와의 약속을 끝까지 지키고자 함.
  15절 "어떤 사람이 그를 만난즉 ... 그에게 물어 이르되"
  => 왜 여기서 집으로 갈 수도 있었는데, 한 사람을 만나게 되었는가?

18절 "요셉이 그들에게 가까이 오기 전에 그들이 요셉을 멀리서 보고 죽이기를 꾀하여"
19절 "서로 이르되 꿈 꾸는 자가 오는도다"
      => 나는 다른 사람들에게 누구인가? 꿈 꾸는 자인가? 다른 사람들은 나를 어떻게 보는가?
 다른 사람을 의식하지 않는 것이 좋다 한다. 틀린 말이 아니다. 그렇지만, 다른 사람이 나를 잊혀진 존재로 인식한다면 그것은 더 큰 문제이다. 더불어 함께 사는 세상이라면, 그리스도인들은 비그리스도인들에게 어떤 존재여야 하는가?
  꿈과 이상을 가진 존재여야 하지 않을까!
  "꿈 꾸는 자가 오는도다" 이런 말을 들을 수 있는 자들이 되자!

20-22절 요셉 죽이기를 모의.
   21절 "르우벤이 듣고 요셉을 그들의 손에 구원하려 하여 이르되"
23절 "요셉이 형들에게 이르매"
23절하-24절 형들이 요셉을 잡아 구덩이에 던짐.

25-36절. 애굽으로 팔려가는 요셉.
 => 요셉의 팔려가는 상황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큰 흐름에서 요셉을 이끌어가는 한 힘을 보아야 한다. 바로 하나님이시다.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은 드러나시지 않으지만, 역사하고 계시다.


한 날 묵상 - 창 37:5-11 <요셉의 꿈과 형들의 미움. 가족의 비극의 시작인가? 가족의 은혜인가?>
http://saltandlight21.blogspot.com/2012/01/375-11.html
하나님은 꿈을 통해 요셉을 부르셨다. 요셉은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했다.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한 요셉에게 찾아오는 것은 형들이 미움, 시기였다. 형제들끼리의 갈등이 더욱 커지게 되었다. 요셉의 이러한 갈등은 결국 아름다운 이야기로 끝을 맺게 된다. 요셉의 꿈으로부터 시작된 사건에서는 하나님의 주도권이 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손이 모든 사건과 상황들을 이끌어가신다. 이 때 요셉은 항상 하나님편에서 서 있었다. 그 편이 가장 지혜롭고, 모든 문제를 가장 잘 풀어가는 길이기 때문이다. 

Saturday, January 14, 2012

한 날 묵상 - 창 37:5-11 <요셉의 꿈과 형들의 미움. 가족의 비극의 시작인가? 가족의 은혜인가?>

한 날 묵상 - 창 37:5-11 <요셉의 꿈과 형들의 미움. 가족의 비극의 시작인가? 가족의 은혜인가?>

오늘 말씀의 흐름..

요셉의 꿈(두번)
요셉은 자신의 꿈을 말했다. 
아버지는 꾸짖었고, 형들은 더욱 미워했다. 
 반전 "아버지는 그 말을 간직해 두었더라"

말씀의 흐름속에 특별한 관계를 찾을 있는가?
요셉의 꿈은 가족의 비극인가? 가족의 은혜인가?
 오늘 말씀의 흐름에서 보면 가족의 비극으로  이어진다. 형제들안에 갈등이 시작되며, 서로 미워하며 시기하게 된다. 결국 요셉을 애굽에 팔게된다(37:12-36).
 그러나 요셉 꿈 이야기의 끝은 여기가 아니다. 그는 후에 애굽에서 힘든 일들을 만나지만 애굽의 총리가 되고(41:37-57), 결국 가족을 구원하며, 이스라엘을 구원하게 된다(46장).

 하나님은 꿈을 통해 요셉을 부르셨다. 요셉은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했다.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한 요셉에게 찾아오는 것은 형들이 미움, 시기였다. 형제들끼리의 갈등이 더욱 커지게 되었다. 요셉의 이러한 갈등은 결국 아름다운 이야기로 끝을 맺게 된다. 요셉의 꿈으로부터 시작된 사건에서는 하나님의 주도권이 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손이 모든 사건과 상황들을 이끌어가신다. 이 때 요셉은 항상 하나님편에서 서 있었다. 그 편이 가장 지혜롭고, 모든 문제를 가장 잘 풀어가는 길이기 때문이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부르심도  때로는 심한 관계의 갈등을 가져올 수 있다. 가족간, 형제들, 친구들, 이웃과의 갈등이다. 
 예수님의 부르심도 그렇다. - 가족의 미움을 받았다(마13:46-50. 막3:31-35).
 예수님의 가르침도 그렇다. - 가족의 미움을 받았을 것이다(눅9:59-60).
 제자의 삶도 그렇다.

5절 "요셉이 꿈을 꾸고 자기 형들에게 말하매 그들이 그를 더욱 미워하였더라"

6절 "요셉이... 이르되 청하건데... 들으시오"
7절 "밭에서 곡식 단... 내 단은 일어서고 당신들의 단은 내 단을 둘러서서 절하더이다"

8절 "그의 형들이 ... 우리 왕이 되겠느냐 참으로 우리를 다스리게 되겠느냐 하고 ... 그를 더욱 미워하더니"
  => 왜 꿈이야기에서, 단을 둘러서서 절하는 이야기에서 왕의 이야기가 나올까? 누가 누구를 다스린다는 이야기가 나올까?
      왜 이러한 말이 나오는지 당시의 시대적 배경은 무엇인가?

9절 "요셉이 다시 꿈을 꾸고 그의 형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가 또 꿈을 꾼즉 해와 달과 열한 별이 내게 절하더이다 하니라"
10절 "그가 .. 아버지와 형들에게 말하매 아버지가 그를 꾸짖고 .. "
11절 "그의 형들은 시기하되 그의 아버지는 그 말을 간직해 두었더라"
 => 형들의 미움은 3중 반복후 "그의 형들의 시기"에서 꽃을 피움.
      아버지는 첫 행동이 꾸짖음이었지만, 결국 그 말을 마음에 간직하게 됨.


Thursday, January 12, 2012

한 날 묵상 - 창 37:1-4 <성실을 식물로 삼을 때 더 큰 사랑을 받는다. 더 큰 사랑이 시기와 미움이 대상이 된다할지라도 무엇보다 더욱 성실하라>

한 날 묵상 - 창 37:1-4 <성실을 식물로 삼을 때 더 큰 사랑을 받는다. 더 큰 사랑이 시기와 미움이 대상이 된다할지라도 무엇보다 더욱 성실하라>


시 37:3 "Trust in the LORD and do good; dwell in the land and enjoy safe pasture."


1절 "야곱이 가나안 땅 곧 그의 아버지가 거류하던 땅에 거주하였더니"
 => 야곱은 약속의 땅을 떠나지 않고, 아버지가 거한 곳에, 아버지가 주신 말씀안에, 하나님과 함께 가나안 땅에 거주하였다. 형 에서와는 다른 모습이다.

2절 "야곱의 족보 ... 요셉의 실칠 세의 소년으로서"
 => 야곱의 족보를 언급하면서 가장 먼저 요셉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 것이 상징적으로 무엇을 의미하고 있는지 알아야 한다.
 그는 형들과 달랐다.
 요셉은 야곱의 마음에 들었다. 그에게 형제들과 다른 어떠한 것이 그  당시에 있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는 형제들과 달랐다. 가장 먼저 족보에 언급되었다는 것이 의미하는 바가 크다.

      "그이 형들과 함께 양을 칠 때에 ... 그가 그들의(형들의) 잘못을 아버지에게 말하더라"
 => 형들과 함께 양을 치고 있었다. 그 때에 그는 정직한 소년이었다. 어떠한 잘못을 형들이 했는지 알 수 없지만, 그는 정직하면서도 성실했고, 이러한 것들이 형들과 달랐다. 그리고 잘못한 것들에 대해서 바르게 하고자 하는 마음이 강했다. 그랬기 때문에 형들의 잘못을 아버지에게 말하지 않았을까.

3절 "요셉은 노년에 얻은 아들이므로 이스라엘이 여러 아들보다 그를 더 사랑하므로 그를 위하여 채색옷을 지었더니"
 => 채색옷이 가지는 상징적인 의미가 있다. 다른 사람보다 더 귀한 사랑을 받고 있었다는 것이다. 

4절 "그의 형들이 아버지가 형들보다 그를 더 사랑함을 보고 그를 미워하여 그에게 편안하게 말할 수 없었더라"
=> 형들의 미움을 받을 정도로 아버지의 사랑을 받았다. 아버지의 재산을 노리는 것이 아니라, 성실로 식물을 삼았더니(시37:3), 더 큰 사랑을 받은 것이다.

 지금 같은 상황이라면, 즉 내가 형들이라면, 내가 요셉이라면, 내가 아버지라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러한 질문도 가히 나쁘지는 않다.
 요셉의 입장에서 풀어보면, 그는 차라리 아버지의 미움을 받는 것보다 형들의 미움을 받는 편을 택했을 뿐 아니라, 그가 택한 것들이 무엇보다 정직함과 성실함에서 드러나는 것이었기에 더욱 빛을 발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우리도 한 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다른 사람의 미움을 받을 정도로 아버지를 더 사랑하고 있는가?
 무엇보다 하나님을 더 사랑함으로 다른 사람의 시기와 질투, 편안하게 대할 수 없는 정도로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하나님을 사랑해 본 적이 있는가?
 특별히 정도의 길을 걸을 때 오는 고난, 불의와 타협하지 않을 때 오는 장애물은 기쁨으로 감당함 마음이 있는가?

 우리가 이처럼 좁은 길을 가면, 하나님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주실 것이다. 무엇보다 개인에게 어떠한 큰 이익이 아니라, 협력하여 선을 이루어, 관계가 회복되는 은혜를 주신 다는 것임을 기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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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37:3 "Trust in the LORD and do good; dwell in the land and enjoy safe pasture."

성실로 식물을 삼을 때, 아버지의 사랑을 받게 된 요셉.

"여호와를 의뢰하고 선을 행하라 땅에 머무는 동안 그의 성실을 먹을 거리로 삼을지어다"
여호와를 의로하고 선을 행할 때에 다른 사람의 미움과 시기와 질투의 대상이 될 수 있다.
그렇다고, 포기하겠는가?

나는 과연 미움을 받을 정도로 아버지를 더 사랑하고 있는가?
무엇보다 아버지를 더 사랑하고 있는가?
혹, 관계가 틀어질 것이 겁이 나 하나님 사랑하는 것을 타협하고 있지는 않는가?

요셉은 형들과 타협하지 않았다.
2절 "그들의 잘못을 아버지에게 말하더라"
그는 정직과 성실을 땅에 머무르는 동안 그의 먹을 거리로 삼았다.

오늘 우리의 먹거리는 타협인가? 성실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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