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iday, March 16, 2012

한 날 묵상 - 창44:1-34절 <선을 악으로 갚지 않는 길을 걷는 사람들의 이야기. 바로 유다와 형제들의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의 공의을 이 땅에 드러내기 위한 삶을 결단하는 내가 되는 한 날이 되기를 소망한다>


1. 어찌 우리가 선을 악으로 갚을 수 있을까요?

2. 세상은 선을 악으로 값는 일이 태반사입니다. 오늘의 동지가 내일의 적이 됩니다.
 어제의 적이 오늘의 동지가 됩니다.
 자신에게 이익된다면 어떠한 선택도 마다하지 않습니다. 양심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3. 양심이야기가 나와서 하는 말입니다. 사람은 양심이 있어야 합니다.
 선한 양심이 정도를 걸어가게 합니다. 양심은 가치관이라 할 수 있으며, 정체성이라도 할 수 있습니다. 분명한 자기 가치관과 정체성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살만한 세상을 만들어 갈 수 있습니다.

4. 하나님은 성경 말씀 곳곳에 공의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힘있는 사람뿐 아니라, 약한 사람들도 공의로 다스리를 것을 말씀하십니다.
 물론 둘 다 사랑이 기초가 되어야 합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의 의를 피할 사람은 아무도 없음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5. 선을 악으로 갚으면 어떻게 될까? 아마도 세상에서 살아가기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요즘 세상은 그렇지 안다. 선을 악으로 갚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는 세상이다. 이게 상식이 되어 있다. 참으로 희한한 세상이다.

6. 그리스도인들은 이러한 세상에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똑같아야 할까? 아님,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야 할까?

7. 요셉의 형제들이 처한 작금의 상황은 너무나 억울한 상태이다. 그들은 지금 일어나는 일들을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처음 양식을 구하러 갔을 때 일어났던 일들부터 지금 이 순간까지 모든 것이 전혀 예상치 못한 상황으로 흘러가고 있다.

8. 요셉도 이러한 경험이 있었다. 보디발의 집에서 당한 억울함이다. 그러나 요셉은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며, 하나님의 일하심을 기다리며 그 시기를 믿음으로 이겼다.

9. 우리에게 이러한 일들이 닥친다면, 우리는 어떻게 할까? 혼자 살아보려고 다른 사람들에게 잘못을 덮으려 하지 않았을까? 자신은 모르는 일이라고 혼자라도 살아보려고 하지 않았을까?

10. 어찌 보면, 요셉의 형제들을 요셉을 시험한 상황이라고 생각해 볼 수 있다.
'그들이 나를 팔았는데, 이번에는 어떻게 할까?' '똑같이 할까? 아니면 달리 할까?'

11. 요셉의 형제들은 요셉의 때와는 달랐다. 무너져 버릴 수 있는 아주 어려운 시기였지만, 형제애로 이 어려움을 스스로 극복해 가고 있다.

12. 유다는 스스로 베나민을 위하여 인질이 되기는 길을 차청했다.
여기에서 요셉과 베냐민을 유다가 어떻게 대하는지 비교해보자.

 창 37장 26-27절 "유다가 자기 형제에게 이르되 우리가 우리 동생을 죽이고 그의 피를 덮어둔들 무엇이 유익할까 자 그를 이스마엘 사람들에게 팔고 그에게 우리 손을 대지 말자 그는 우리의 동생이요 우리의 혈육이니라 하매 그의 형제들이 쳥종하였더라"

 창44장 16절 "유다가 말하되 우리가 내 주께 모슨 말을 하오리이까 무슨 설명을 하오리이가 우리가 어떻게 우리의 정직함을 나타내리이가 하나님이 종들의 죄악을 찾아내셨으니 우리와 이 잔이 발견된 자가 다 내 주의 노예가 되겠나이다"
 창44장 33절 "이제 주의 종으로 그 아이를 대신하여 머물러 있어 내 주의 종이 되게 하시고 그 아이는 그의 형제들과 함께 올려 보내소서"

13. 유다는 요셉의 때에는 자기에게 유익이 되는 선택을 하였다면, 지금은 모두가 함께 짐을 짊어지고 있다.

14. 또한, 유다는 아버지와의 약속을 지키는 것을 자신의 생명보다 귀하게 여긴다. 아버지의 아픔이 자신의 아픔보다 훨씬 큼을 알다(34절).

15. 나아가, 유다는 절규하고 있다. 가족을 살리고, 하나님의 약속을 이어가기 위한 요셉앞에서 절규의 모습을 보라(18-32절).

16. 유다와 그의 형제들은 이만큼 자라났다. 아직도 부족함이 있지만, 요셉을 팔때보다 성숙함이 틀림없다. 그들은 선을 악으로 갚을 사람들이 아니었다.

17. 아직이었을 때, 그들은 선을 악으로 갚는 사람들이었다면, 이미인 이 때 그들은 선을 더욱 아름답게 할 수 있었다.

18. 요셉과 야곱의 만남을 향해 정점으로 가는 요셉의 가족이야기는 아름다움이 한층 깊어지고 있다. 아끼며 사랑하며 생명을 나눌 수 있는 사람들이 되었다.

19. 선으로 악을 갚지 않는 삶을 살아가야 할 사명을 받았다.

20.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선을 행하셨다. 우리의 죄악을 짊어질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주셨다. 우리는 하나님의 선을 통해 믿음으로 의로움을 입게 되었다.

21. 이제 우리가 반응할 차례이다. 선으로 악을 갚는 사람이 되느냐? 아니면 선을 더욱 아름답게 하느냐? 내가 선택해야 할 시점이다.

22. 오늘도 선을 악을 갚지 않는 삶을 살아가기를 원한다.

23. 하나님이 주신 선을 악으로 갚지 않기 위해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24. 그렇다. 하나님의 공의를 이 땅가운데 스스로 실천해가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꿈이 아니라 하나님의 꿈을 위해 아낌없이 세상에 하나님의 선을 드러내는 삶이다.

25. 오늘 내가 가야 할 선을 악으로 갚지 않은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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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절 "너희가 어찌하여 선을 악으로 갚느냐"
=> 억울함.

12절 "그 잔이 베냐민의 자루에서 발견된지라"
13절 "그들이 옷을 찢고"
=> 억울함을 호소할 수 없다. 어떻게 하나? 모든 것이 최악으로 가고 있다.

* 형제 우애
16절 "유다가 말하되 우리가 내 주께 무슨 말을 하오리이까 무슨 설명을 하오리이까 우리가 어떻게 우리의 정직함을 나타내리이까 하나님이 종들의 죄악을 찾아내셨으니 우리와 이 잔이 발견된 자가 다 내 주의 노예가 되겠나이다"


 * 꿈이 이루어지다.
 24절 "우리가 주의 종 우리 아버지에게로 도로 올라가서"
 유다가 지금 아버지 야곱을 요셉의 총리의 종이라고 낮추어 말하고 있다. 창37장10,11절 말씀이 이루어지고 있다.

18-34절 유다의 아버지 사랑, 형제 사랑, 가족 사랑의 마음.
33절 "이제 주의 종으로 그 아이를 대신하여 머물러 있어 내 주의 종이 되게 하시고 그 아이는 그의 형제들과 함께 올려 보내소서"
34절 "그 아이가 나와 함께 가지 아니하면 내가 어찌 내 아버지에게로 올라갈 수 있으리이까 두럽건대 재해가 내 아버지에게 미침을 보리이다"
=> 요셉을 팔 때와 전혀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요셉을 팔 때와 비교해 보자.
무엇이 그들을 이렇게 만들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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