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turday, March 24, 2012

주일설교 - 창세기 3장 6-13, 22-24 <돌아올 수 없는 길, 그러나 십자가로 환하게 열려있는 길>



설교본문 창세기 3장 6-13, 22-24
설교제목 돌아올 수 없는 길그러나 십자가로 환하게 열려있는 길
6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열매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 있는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
7 이에 그들의 눈이 밝아져 자기들이 벗은 줄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로 삼았더라
8 그들이 그 날 바람이 불 때 동산에 거니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아담과 그의 아내가 여호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은지라
9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부르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 있느냐
10 이르되 내가 동산에서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
11 이르시되 누가 너의 벗었음을 네게 알렸느냐 내가 네게 먹지 말라 명한 그 나무 열매를 네가 먹었느냐
12 아담이 이르되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 있게 하신 여자 그가 그 나무 열매를 내게 주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13 여호와 하나님이 여자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찌하여 이렇게 하였느냐 여자가 이르되 뱀이 나를 꾀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22 여호와 하나님이 이르시되 보라 이 사람이 선악을 아는 일에 우리 중 하나 같이 되었으니 그가 그의 손을 들어 생명 나무 열매도 따먹고 영생할까 하노라 하시고
23 여호와 하나님이 에덴 동산에서 그를 내보내어 그의 근원이 된 땅을 갈게 하시니라
24 이같이 하나님이 그 사람을 쫓아내시고 에덴 동산 동쪽에 그룹들과 두루 도는 불 칼을 두어 생명 나무의 길을 지키게 하시니라
참고말씀 로마서 6:15-23
15 그런즉 어찌하리요 우리가 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에 있으니 죄를 지으리요 그럴 수 없느니라
16 너희 자신을 종으로 내주어 누구에게 순종하든지 그 순종함을 받는 자의 종이 되는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혹은 죄의 종으로 사망에 이르고 혹은 순종의 종으로 의에 이르느니라
17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너희가 본래 죄의 종이더니 너희에게 전하여 준 바 교훈의 본을 마음으로 순종하여
18 죄로부터 해방되어 의에게 종이 되었느니라
19 너희 육신이 연약하므로 내가 사람의 예대로 말하노니 전에 너희가 너희 지체를 부정과 불법에 내주어 불법에 이른 것 같이 이제는 너희 지체를 의에게 종으로 내주어 거룩함에 이르라
20 너희가 죄의 종이 되었을 때에는 의에 대하여 자유로웠느니라
21 너희가 그 때에 무슨 열매를 얻었느냐 이제는 너희가 그 일을 부끄러워하나니 이는 그 마지막이 사망임이라
22 그러나 이제는 너희가 죄로부터 해방되고 하나님께 종이 되어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맺었으니 그 마지막은 영생이라
23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요한1서 2:16
16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
요한1서 3:4
4 죄를 짓는 자마다 불법을 행하나니 죄는 불법이라
설교문
오늘 우리를 유혹하는 것들은 너무나 많습니다마음을 빼앗는 것들이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습니다어디에 눈을 두어야 할지 정하기 힘들 정도로 세상은 빠르게 변화하면서 새로운 것들이 우리의 눈을 자극하고 있습니다.
죄라는 것은 눈을 빼앗길 때 찾아옵니다아무리 우리가 믿음의 경주를 잘 하고 있어도 눈을 빼앗기면 바로 죄가 동물적 감각으로 우리에게 찾아옵니다본능적으로 찾아옵니다.
2. 하나님은 세상을 창조하시고 에덴동산 중앙에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두었습니다아담과 하와에게 하나님은 말씀하셨습니다다른 것을 다 괜찮은데, “그것만은 안 된다바로 동산 중앙에 있는 그 나무만은 안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3. 그리고 얼마 시간이 지났습니다사실 하나님이 말씀을 주시고 하와와 아담이 선악을 알게 하는 동산 중앙의 나무를 따먹을 때까지 얼마의 시간이 지났는지에 대해서는 아무런 말씀이 없습니다.
4. 이 시간적 차이를 생각하면 우리에게 신앙적 유익이 있습니다바로 하나님의 감동은말씀의 감동은 한 번이면 족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창세기 2장과 3장에 얼마큼의 시간적 차이가 있는지 알 수 없지만중요한 사실 하나는 한 번의 은혜로 우리는 평생을 살아갈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내가 하나님을 대면하고 살아계신 하나님의 능력을 받았기 한 번 맛보았기 때문에, “이젠 앞으로 나는 결코 죄에 넘어지지 않을거야”, “나는 하나님을 결코 배반하지 않을 거야라고 말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5. 우리가 지난 주 2012 유스밴쿠버 코스타를 통해서 받은 은혜가 많습니다저도 새로운 은혜를 경험했습니다그러나 그 때 받은 감동은 잔잔하게 아주 오랜 시간동안 남아 있을 수 있습니다그러나 그 때의 은혜가 나의 믿음을 영원히 지켜주지는 않습니다.
6. 아담과 하와도 감동했습니다세상의 모든 창조물을 보고그리고 자신을 창조하신 하나님을 기억하며 큰 기쁨과 감동을 받았습니다놀라운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했습니다.
7. 그러나 아담과 하와는 넘어졌습니다그 중앙에 있는 나무의 열매를 따서 먹었습니다.
그렇다면우리가 받은 하나님의 은혜를 계속 잘 유지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바로 은혜의 자리로 늘 나아가야 합니다.
은혜의 자리는 어디입니까?
예배의 자리입니다말씀을 읽고 묵상하는 자리입니다기도의 자리입니다영적인 교제가 있는 자리입니다.
우리가 은혜의 자리에 담대히 나아가지 않으면우리가 받은 은혜의 감동은 사그라져 버리고죄에 무너져 버릴 수 밖에 없습니다.
8. 우리가 은혜의 자리에 나아가지 않을 때죄가 그 은혜의 자리를 차지하게 됩니다.
9. 죄는 어떻게 은혜의 자리를 차지할까요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세상의 첫 범죄를 통해서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습니다우리가 죄가 은혜의 자리를 대신하는 것을 잘 막고 관리만 할 수 있다면우리의 삶은 하나님의 은혜로 더욱 풍성하게 될 것입니다.
10. 오늘 본문 6절을 보면에덴동산 중앙에 있는 선악을 알게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11. 아담이 창조된 후그리고 하와와 함께 에덴동산에 생활은 행복했습니다너무나 기쁨과 감사가 넘쳐 흐렀습니다그렇기에 지금까지는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가 별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그런데 이제 문제가 생겼습니다지금까지 에덴동산 중앙에 있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는 보암직도 하고 먹음직도 하게” 전혀 보이지 않았습니다그런데 갑자기 그 열매를 볼 때 그 열매가 보암직도 하고 먹음직도 하게” 보이게 되었습니다.
12. 우리의 죄는 이렇게 시작됩니다갑자기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가 보암직도 하고 먹음직도 하게 보이는 것이 전혀 낯설지 않게 느껴질 때 죄는 시작됩니다내가 지금 은혜의 자리에 있지 않으면 바로 보암직도 하고 먹음직도” 하는 죄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합니다.
부모님께 반항하는 것이 전혀 낯설게 느껴지지 않을 때 죄는 이미 시작되었습니다.
친구들과 대화를 할 때 욕을 섞어서 하는 것이 전혀 낯설지 않게 될 때 그 때에 죄가 시작됩니다.
다른 사람들의 흉을 보는 것인 전혀 낯설지 않게 될 때..
시기하고 질투하는 것이 전혀 낯설지 않게 될 때,
거짓말을 자연스럽게 하게 될 때바로 그 때 죄악이 은혜의 자리를 대신하게 됩니다.
13. 또 하나 보암직도 하고 먹음직도 하는” 죄가 언제 시작됩니까?
바로 죄에 대해 무감각하게 되어 질 때 죄가 시작됩니다.
모세가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신 말씀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신명기 8장 11절 말씀을 보면, “내가 오늘 네게 명하는 여호와의 명령과 법도와 규례를 지키지 안하며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리지 않도록 삼갈지어다
축복의 땅가나안을 앞에 놓고서 모세가 가장 두려워한 것이 무엇입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그 땅을 얻게 될 때모든 것이 풍족하게 될 때더는 하나님의 도우심이 없어도 살 것 같은 세상이 될 때교만하여서 여호와를 잊어버리지 않을까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신명기 8장 14절은 여호와를 잊어버릴까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할 때 우리는 교만하게 되며죄의 자리에 들어가게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기억할 때 하나님의 은혜가 있습니다반대로 하나님을 기억하지 못하고 무지하면 하나님의 은혜의 자리에 죄가 대신 자라잡게 됩니다.
14. 오늘날 여러분은 죄의 기준을 어디에 둡니까하나님의 말씀입니까아니면 하나님의 말씀에 무지하여서 세상 사람들과 똑같이 죄의 기준을 둡니까?
15. 세상의 기준으로 보면, “보암직도 하고 먹음직도 한 것을 따 먹는 것은 죄가 아닐 수 있습니다.
생각해 보면지금 너무 굶어 배고 고픕니다도저히 다른 나무에 가서 열매를 따먹을 수 없습니다힘도 없고너무 멀어서 갈 수 없는 상태입니다.
그런데 바로 눈 앞에 그 나무가 있는 것입니다.
지금 내가 죽을 수 밖에 없는 상태인데이걸 좀 먹은 듯 뭐가 문제입니까?
사람이 죽고 사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을까요?
그래서 따 먹었습니다그런데 뭐가 문제입니까?
이게 바로 세상의 기준입니다하나님의 말씀이 우선이 아니라상황이 먼저입니다인간 중심입니다.
(공리주의자유시장주의)
따라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무지하면하나님의 말씀의 죄의 기준으로 삼을 수 없습니다지금까지 내가 본 것들이 기준이 될 것이며경험한 것들이 기준이 될 것이며다수가 기준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충청도 이발소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어느 외국인이 충청도에 가서 이발소에 들렸습니다이발소에 들어가서 자리에 앉았는데충성도 이발사가 왔씨요?”하고 인사를 합니다외국 사람은 이 말을 “What see you?"로 알아들었습니다그리고 자리에 앉아서 보이는 것이 거울이기에 이발사가 영어를 잘 하는 줄 알고 ”mirror"라고 영어로 대답을 했습니다그러자 이발사는 이 말을 듣고는 외국사람 머리를 그대로 빡빡 밀었다고 합니다그리고는 하는 말이 이를 어쩐대유
이 무지를 어떻게 해야 할까요무지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습니다.
무지하면 당합니다죄도 그렇습니다하나님의 말씀에 무지하면 죄의 공격을 폭풍으로 받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무지는 교만의 다른 이름입니다.
세상 사람들에게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따 먹는 것은 결코 죄가 아니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사람이 죽는 상태일 수 있는데그까지 그것 좀 먹었다고 무슨 문제가 되겠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하나님의 말씀을 알지 못하면 그게 무슨 죄가 되겠어요?” “그건 죄가 아니죠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그런데 하나님은 분명하게 우리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그건 죄인데
죄의 자리에서 벗어나기 원한다면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무지에서 벗어나기 바랍니다그럴 때 은혜의 자리에 앉을 수 있습니다.
16. 무감각한 죄에서 벗어납시다죄의 기준을 성경에 맞추어 살아갑시다.
갑자기 죄악들이 전혀 낯설게 느껴지지 않습니까지금 그렇다면죄에 대한 무감각한 상태라는 것은 기억하십시오.
17. 그렇다면우리가 범죄 한 후에 어떻게 해야 할까요? 죄를 짓지 않고 살아갈 수 없습니다죄를 줄여 나갈 수 있을 뿐입니다그렇습니다죄를 완전히 짓지 않을 수 없지만범죄 한 후에 우리는 그 문제를 반드시 해결해야 합니다.
7절 말씀에 더욱 재미있는 말씀이 나옵니다.(죄의 상태는?) 7절 이에 그들의 눈이 밝아져 자기들이 벗은 줄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로 삼았더라
=> 아담과 하와의 눈이 밝아져 어떻게 되었습니까? “벗은 줄을 알게” 되었습니다하나님의 창조질서에서 벗어난 상태에 이르게 되었습니다하나님의 창조질서는 벗어도 부끄러움이 없는 상태였는데지금 죄가 들어온 후에 눈이 밝아져 창조 질서에서 벗어난 상태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들의 눈이 밝아졌지만그래서 새로운 세계를 보았지만그로 인해 보지 않아도 될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죄의 상태에 눈을 뜨게 된 것입니다가지 말아야 할 죄의 자리에 가게 되었습니다.
그들의 눈이 밝아져있는 상태를 가리켜 신학자들은 죄에 눈 뜬 상태라고 말합니다.
18.이렇게 이미 죄를 범한 상태에 이르렀다면여기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쭉우욱 죄의 상태로 계속 나아가야 할까요우리의 질문은 여기서 다시 시작되어야 합니다.
죄에 눈을 떠버린 후에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범죄한 것을 인정하십시오죄인임을 인정하십시오.
여기서 우리가 생각해야 합니다아담과 하와는 누구 앞에서 자기들이 벗은 줄을 알았을까요서로에게라고 말 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그렇지 않습니다바로 하나님 앞에 자기들이 벗을 줄” 알게 되었습니다.
10절 말씀을 보면, “이르되 내가 동산에서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아담은 하나님 앞에 자신이 벗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지금 하나님 앞에 자신이 서 있음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이처럼죄에서 회복은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하나님을 찾는 것입니다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입니다.
죄의 자리에서 회복은 어떻게 이루어집니까?
코스타 말씀 중에 둘째날 성현경 목사님이 이런 말씀을 주셨습니다기억하시겠지요.
회개가 무엇이라고요나의 잘못을 고백하는 것이 아니라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이다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하는 것이다.
범죄한 순간에 내가 범죄한 줄을 하나님이 아신다는 것을 인정할 때 회복 하게 됩니다.
범죄한 그 순간에도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이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하는 것이 회개이며 회복입니다.
19. 죄악의 순간에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하는 죄인들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은 무엇입니까?
9절 말씀에 나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부르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 있느냐
코스타에서 성현경 목사님은 이 부분을 어떻게 말씀하셨습니까기억하는 친구있어요?부모님과 비유해서 말씀하셨지요?
집에서 가장 좋은 도자기수억 가는 도자기를 깨뜨렸을 때 부모님을 어떻게 말합니까?
이 놈의 자식 네가 지금 무슨 짓을 했느냐?”라고 말씀하신다면,
하나님은 어떻게 말씀하신다고요.
네가 지금 어디 있느냐” “Where are you”
무슨 행동을 했는지 질타하지 않으시고지금 너는 어디에 있느냐?하고 찾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20. 우리가 여기서 하나님의 속성을 한 가지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범죄 하기 전에도우리가 범죄 한 후에도 우리를 향한 여전한 하나님의 속성을 알 수 있는데그것은 바로 하나님은 언제나 나와 관계를 계속 맺고 싶어 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은 한결 같습니다.
혹 우리가 하나님을 떠나 있을 때에도하나님의 마음을 제대로 알지 못해서 범죄했을 때에도하나님은 여전히 우리와 관계를 맺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지금도 하나님은 네가 어디 있느냐하며 찾고 계십니다.
21. 우리는 에덴동산으로 다시 돌아갈 수 없습니다. 24절에서 보듯이돌아갈 수 없도록 에덴동산을 지키는 자들이 있습니다.
이 말씀은 범죄 한 이전의 상태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한 번 엎어진 물을 다시 담을 수 없습니다다시 담아서도 안됩니다결코 먹을 수 없는 물이기 때문입니다.
결코 다시 돌아가서도 안된다는 말씀입니다.
22. 전혀 새로운 길을 갈아야 합니다익숙한 길은 아닙니다낯선 길입니다.
저는 이런 생각도 해 봅니다.
아담과 하와에게 죄에 따른 벌은 주시되 삶은 그냥 에덴동산에서 살도록 허락하는 것입니다.
그럼 얼마나 좋겠습니까?
익숙하고잘 알고어디에 무엇이 있고선악을 알게 하는 중앙에 있는 그 나무를 결코 먹어서는 안되고너무나 잘 알고 있는 에덴동산으로 다시 아담과 하와를 보내지 않으셨습니다.
23. 아담과 하와를 에덴동산에서 좇아내신 사건이 우리에게는 무슨 의미일까하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믿음의 길은 익숙하며 아무런 고통과 고난이 없는 길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전혀 새로운 길입니다그렇게 가야 하는 합니다이를 가리켜 십자가의 길입니다.
24. 그러나 걱정할 것이 없는 것은 가죽옷을 지어 입히신 하나님께서 우리와 여전히 관계를 맺고 계신다는 사실입니다.
21절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과 그의 아내를 위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나라
예수님을 통해서 새로운 길을 주셨고성령님을 통해서 함께 새로운 길을 갈 수 있는 힘을 주시고능력을 주시고동반자가 되어 주신다는 사실입니다.
25. 죄의 자리에서 벗어나 은혜의 자리로 회복하기를 원하신다면?
새로운 길을 열어 놓으신 예수님이 개척하신 십자가의 길을 믿어야 합니다.
그리고 지금도 나와 동행하시는 성령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나를 향해 손을 내밀어주시는 성령 하나님의 손을 잡아야 합니다그럴 때 회복하게 되며은혜의 자리에 나아갈 수 있습니다.
26. 오늘 말씀, 6-7, 21, 24절 말씀을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보임직도 하고 먹음직도” 하다는 것을 느끼고 생각하는 것은 죄가 시작되었다고 사인이라는 것입니다이 상태에서 죄를 끊어버리면 괜찮습니다왜 이러한 죄가 시작되었다는 사인이 나의 영적인 상태에서 느끼게 되는가하면 그것은 내가 지금 은혜의 자리에 있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첫 번째는 내가 은혜의 자리에 머물러 있으면 이러한 상태에 오지 않습니다그러나 한시라도 방심하고 은혜의 자리에 있지 않으면 죄의 시작되는 상태가 시작될 수 밖에 없습니다.
두 번째는 죄에 대해 무감각할 때에도 죄가 시작될 수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더욱 알기에 힘쓸 때 죄를 멀리 할 수 있습니다모세가 두려워한 것은 여호와를 잊을까하는 것이었습니다죄를 범할까범죄 할까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여호와를 잊어버릴까를 두려워하며 염려했습니다.
무지에서 벗어납시다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벗어나야 죄의 자리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죄에서 벗어나 다시 은혜의 자리로 나아가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하나님을 바라보십시오죄의 고백보다 더 우선시 되는 것이 바로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하나님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우리를 향한 마음을 알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와 죄를 범한 후에도 여전히 관계를 맺기 원하십니다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를 맺기 원하십니다그래서 찾으십니다. “네가 어디 있느냐” 찾으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알 수 있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십자가의 길을 걸어갑시다그 길은 결코 익숙한 에덴동산이 아닙니다낯설고 수많은 고통과 고난의 길입니다어떤 사람은 자신해서 십자가의 길을 걸어가는 사람이 있습니다그러나 걱정하지 맙시다그 길은 예수님이 주신 길입니다그리고 성령님이 함께 하는 길입니다.
죄의 자리에 넘어질지라도 은혜의 자리로 다시금 걸어 나아가기를 결단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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